생의 가치


선지자선교회 1985년 7월 31일 수야

 

본문 : 창세기 5장 21절∼24절  에녹은 육십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이번 주일에 가르칠 공과입니다. 지난 주일 오전 오후에 이 말씀을 증거 했고,  또 그 후도 새벽마다 계속해서 증거를 했습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에 대해서 지식으로 알려고 하시는 분은 벌써 첫 시간에 다  알았을 것이고, 또 설교하기 전에 성경만 읽어도 여기 대한 도리를 다 지식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자기가 지식으로 무슨 배운다든지  안다든지 기억한다든지 여기까지를 목표로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이 말씀을  그만 두고 자꾸 새 말씀을 증거 했으면 좋을 터인데 이 말씀을 거듭거듭 증거  하게 되니까 마구 권태도 나고 또 지루하기도 하고 필요 없는 그 은혜라 그렇게  혹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꼭 같은 사람이 아니고 모든  수준이 다 각각 다르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기만을 생각지 말고 전체를 생각해서  어디까지 나아갔던지 그 사람도 이 시간에 자기가 받을 은혜가 없는가 찾아서  자기가 받을 은혜를 찾아 가지고 이 시간에도 은혜 받는 시간이 되고 허송하는  시간이 안되도록 하는 것이 지혜 있는 일이요. 또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요,  자기에게도 유익이 될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몇 번들어도 잘 모르는 사람은 아, 또 오늘밤에 새로 한번 더  증거해 주시니까 이제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다 하고 지식으로 똑똑히 알라고  하는고 욕망과 노력을 해야 되겠고, 또 이 말씀을 다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내가  이 말씀대로 이제까지 알고만 있었지 시작하지를 못했으니까 이 말씀대로 실지로  내가 생활 시작을 하겠다 그러면 이 말씀대로 내가 실지로 생활을 시작하겠다  그렇게 자기는 생각해 가지고 요 말씀대로 실행을 시작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  복될 것이고, 또 실행 이미 한 사람은 실행하고 있는 사람은 내가 실행은  시작했는데 이 시작한 실행에 혹 오점이 없나, 혹 이 말씀대로 다 행하지 못하고  거기 모자란 점이 없나, 이 고칠 것을 찾아서 고치도록 그렇게 노력을 할 것이고  또 그렇게 자기 마음에 고칠 것이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면 그  사람은 내가 현실에서는 이 말씀대로 지켰지만 앞으로 어떤 현실이 닥쳐올지  모르니까 공산주의와의 대립이 되든지 또 현정부와 대립이 되든지 사회와 대립이  되든지 모든 종교계에 종교와의 대립이 되든지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니 어떤 일이 닥친다 할지라도 요 말씀대로 요대로 실행할 수 있는 실력 이  내가 있나 없나 그런 것을 또 스스로 살펴서 자기를 단속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하면 뭐 이 가운데 있는 누구든지 새로 받을 은혜가  있겠고, 또 준비해야 될 것이 있겠고, 또 모자라는 점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국도 자기가 마련해야 되고 참 행복도 자기가 마련해야 되고  평강도 자기가 마련해야 되고 자기를 기르는 것도 자기가 길러야 되고. 뭐  자기에게 대해서 모든 피조물이 관련을 가졌지만 하나님이나 내게 대해서 도움이  될까 아야 피조물은 도움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피조물에게는  내가 도와야 될 사람이지 뭐 도움을 바라는 그것은 성경 적이 아닌 것을  생각하고 어쩌든지 이모저모로 내가 도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공과를 한번 읽겠습니다.

제목은, 생의 가치라 그렇게 제목을 했습니다.

 서론은,  사람은 누구나 삶의 가치를 따라 살고 보다 나은 가치를 택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생애의 가치는 너무도 그 종류의 수가 많다. 무엇이든지 제대로의 가치는  다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가치의 결과와 가치의 대소와 가치의 수명 등을  계산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범사에 비교하고, 비판하고 평가를 심각히 하여야  하고 다각도로 심사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자기의 영원한 흥망이 금세의 짧은  것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심신의 능력은 그가 가치 있다라고 생각하는  거기에 기울이기 마련이다.

 본론,  1. 창세기 5장은 수억도 넘은 가치의 종류들을 간추려 둘로만 평가하라고  가르친다. 하나는 영생이요 또 하나는 영원한 사망이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수많은 가치 속에 파묻혀 정신을 잃고 허덕거리다가 일생을 죽인다. 가치 속에  묻히지 말고 멀리서 모든 가치를 건니다보고 영생하는 것이면 무조건 취하고  영원히 멸망하는 것이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취하고 좋아할지라도 사정없이  버려야 된다.


 2. 인생 일생을 사는데 방편도 너무도 많다. 옛날 방편, 현대 방편, 헤아릴 수  없는 수만 수억도 넘은 생애의 방편들이 있다. 그러나 창세기 5장은 생의 방편을  두 가지로만 간추려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 내 놓고  인간들이나 모든 권세들이나 물질이나 수없는 지식이나 과학이나 유사한 종교  철학 이런 것들과 함께 하여 사는 방편이 있으니 이는 영원히 사망하는  방법들이다. 둘째,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세상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이 있으니 이는 영생과 평안의 방법이다.

우리는 둘째 방법 외의 것은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 내놓은 것이라면 무조건  버려야 한다. 하나님을 버리고 나오는 것이라면 무조건 버려야 한다.


 3. 종교나 철학이나 도덕이나 최종 목적은 쾌락에 있다 쾌락도 너무도 종류가  많고 사이비한 것이 많다. 기뻐서 야단을 치나 조금만 있으면 울음으로  바꾸어지고 영광 영광 한 것이 잠시 후면 수치로 변하여 가는 세상이다.

목마르지도 늙지도 죽지도 쇠하여지지도 않고 영영 청청한 쾌락은 인생들은 알지  못하고 알아도 어쩔 수 없는데 이것도 주님만이 바로 아시고 바로 걸어 가셨고  또 바로 가르쳐 주신다. 주님이 가르치시는 쾌락은 십자가 쾌락과 주님 만나는  기쁨이다. 십자가 기쁨은 주님에게 은혜 받아 전 인류와 만물에게 봉사하는  기쁨이요, 또 하나는 사랑하는 주님 만나는 것과 선물 받는 기쁨이다. 이 둘  외의 것은 다 자타를 죽이고 속이는 일만 된다. 성경은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어 영원히 항상 기쁨을 가지라고 권하신다.

 문답.


 1. 모든 사람은 어디다가 주력하느냐?  답 : 제일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일에 주력합니다.


 2. 주님이 가르친 두 가지 가치를 말하시오.

 답 : 사망할 것들의 가치와 또 하나는 영생하는 것들의 가치입니다.


 3. 수많은 생활 방법 중에 제일 좋은 방법이 무엇이뇨?  답 :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입니다.


4.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기쁨 두 가지를 말하라.

 답 : 십자가 기쁨과 주님 만나고 선물 받는 기쁨입니다.

 네, 요것이 이번 공과입니다.

사람이, 비유건대 물이 좋은 것입니다. 물 안 먹고 못 사는 것이지만 물을 내가  이용해야 물의 효력을 볼 수가 있지 물에 빠지면 그만 뭐 허퍼허퍼 이래 쌓다가  나중에 그만 물먹고 그만 죽어 버립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는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 일생에 어떤 생활이 가치 있나, 어떤 걸음을 걷는  것이 가치 있나 하는 고게 하나 있고, 또 그러면 인간이 일생 사는 데에 어떻게  사는 방편이 제일 지혜롭고 후회 없는 좋은 방편이냐 그거 하나 있고 또 하나는,  그러면 사람이 최고로 바라는 욕망은 다 쾌락이요 기쁨인데 쾌락인데, 그러면  사람에게 제일 참 기쁨이 되는 그 기쁨은 무엇이냐? 인간의 쾌락이라. 요 세  가지로 나누면 인간 일생의 강령은 다 간추려서 요 안에 포함되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면, 인간 일생을 산 그 생의 가치, 어떻게 사는 게 제일 가치 있는가? 또  어떤 그 생활 방편을 취하는 것이 제일 후회 없는 복 있는 좋은 방편인가? 또  하나는 어떻게 하면 영원히 기쁘게 살고 쾌락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이 세  가지를 뽑으면 이 세상 인생살이는 다 껍데기뿐이지 알맹이는 요 가운데 다  뽑혔습니다. 이 세 가지로 분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하면 마치 사람이 물에 빠져 가지고 그만 이 물 저 물에게  빠져서 이 물 좀 마시고 저 물 마시고 해 가지고 나중에 가서는 앞에 옆에 물  마셔 가지고 나중에 그만 물에 빠져 가지고 죽는 거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 생활의 가치라 그 말하는 것도 뭐하나 둘이  아니라 여러 수백 수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치. 인생 생활의 가치라  하는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이라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또, 이 세상은 인간들이 어떻게 살면 행복 되게 사느냐 하는 인간 생애에 지혜의  방법 인간들이 사는 제일 좋은 방편, 방법, 생의 방법, 생의 법칙 그것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세상은 그 기쁨이라는 그 기쁨, 이런 기쁨, 저런 기쁨, 그  쾌락으로 가득 차 가지고 있는 세상이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뭐 잘났든지 못났든지 어리든지, 장성하든지 간에 사람들은 다 이 세  가지를 찾아 헤매고 있고. 또 이 세 가지 중에 자기 나름대로 요게 제일 좋다  하는 그것을 찾아 잡고 그대로 사람은 거기서 힘써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하면 요 세 가지로 답할 수  있습니다.

 아, 저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제일 요 일 하는 것이 내게는 제일 가치  있고 복 있겠다 해서 자기에게 제일 필요하고 요긴한 그런 가치 있는 것을 자기  깨달음대로는 하고 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깨달은 대로 자기에게  제일 필요하고 중요한 그 가치 있는 그 가치를 찾아가고 그 가치를 이루기  위해서 가치를 잡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은 다 이렇게 뛰고 저렇게 뛰고 있다  그렇게 우리가 보면 고거 틀림없는 정견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이 사는 방편에도 참 좋은 방편도 있고 나쁜 방편도 있고  성공하는 방편도 있고 실패하는 방편도 있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 그런  방편도 뭐하나 둘이 아니라 천도만도 넘습니다, 억도 넘습니다. 이래 방편으로  가득 차 가지고 있는데 모든 사람들은 자기대로는 제일 요긴하고 좋고 실수가  없고 든든한 그런 제일 좋은 든든한 좋은 방편을 취해 가지고 그 방편대로  자기는 살겠다고 하고 있는 세상인 것입니다.

또, 사람은 그러면 이렇게 뭐 가치를 따지고 이런 좋은 방편을 쓰고 하는 것이  그 목적이 어디 있느냐? 목적은 어쩌든지 기쁘게 행복 되게 살라는 그 쾌락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철학의 결말은 쾌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교에도 극락 하는 것은 즐거울 락(樂)자 '극락'하는 것은 제일 기쁨을 목표로  하고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나 모든 철학이나 전부는 다 쾌락이  인생이 찾고 있는 제일 목적지라 그렇게 들 말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을을 좀 넓게 엽시다. 이 세상에는 가치 있는 것이 하나 둘  같으면 고거 가리기가 쉽겠는데, 하나 둘 같으면 요거는 나쁘고 요거는 좋다  이래 가리기가 쉽겠는데 뭐 가치라는 것이 사이비한 것 이 참, 필요하다 요게는  요 가치 있는 요것은 요게는 생명보다 가치가 귀하다, 요게는 요것이 내,  가족보다 요 가치가 귀하다 그렇게 뭐 가치 귀한 것이 어떻게 가득 차 있는지 그  원첨 너무 숫자가 많으니까 가치라는 그 가치라는 종류가 너무 많으니까 어느  것을 내가 가치로 삼아 가지고 그것을 달성해 볼까 사람들이 더듬다가 그만  실패하기 쉽습니다.

이러니까 요 것보다는 요게 가치 있다, 요것보다는 요게 가치 있다 그렇게  비중을 따져서 갈라고 하면 우리가 그 백분지 일 천분지 일도 따져 보기도 전에  다 늙어서 죽어 버리고 맙니다. 뭐 가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요거보다 요게  낫다, 요거 보다 요게 낫다. 우리가 참 공부를 많이 안한 것이 그거 다행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이 가치의 종류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많이 아는  것만치 성경에 말하기를 그 사람은 마음이 번민스럽다. 그랬습니다. 또 그  사람은 수고가 많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가치가 이렇게 세상에 가득 차 있고, 뭐 가치가 천 종류 만  종류도 넘은 가치가 이 세상에 가득 차 있으니까 어느 게 좋은지 그거  선택하기가 참 힘듭니다. 선택할 때 그래도, 그러면 가치를 좀 따져보지. 따져  봅시다. 요거보다는 요게 낫다, 요거보다는 요게 낫다, 요거보다는 요게 낫다.

그 가치를 우리가 비판하고 평가해서 따질라고 해 보면 한 백 가지 되면 그걸  따지면 며칠 따지면 될 터인데. 또 하나 따지면 가치 비교를 할라 해도 당장에  하루 이틀 생각해 가지고는 그 가치를 바로 그 정평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러니까 그 많은 가치 그것을 따질라고 하면 뭐 평생 가도 못 따지니까 그거  따지다 보면 그만 시간 다 가 버렸고 다 늙어져 버렸고 헛일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사람들은 이게 가치 있다 해 가지고 여기서 조금한 일 년 하다 보니까  '아, 이거 가치 없다.' 또 이리 옮겨 가지고 또 요게 일 년 '아 요것도 가치  없다. 여기서 십 년. 그만 십 년 일 년 십 년 이십 년 이 몇 가지 그만 가치 가  가지고 찾아보고 아, 이것도 아니다 하다 보니까 세월 다 지나가 버렸고 벌써  늙어서 머리는 하얀 백발이 돼 버렸고 가야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이러다가  맙니다.

 가치라는 것도 그렇고, 또 방편도 그렇습니다. 공부하는 방편이 제일이다. 뭐  기술 배우는 방편이 제일이다. 얼굴 곱게 만드는 방편이 제일이다. 글씨를  배우는 방편이 제일이다. 무슨 기술 배우는 방편이 제일이다. 사기 횡령을  잘하는 그 방편이 제일이다. 이 방편도 뭐 천 가지 만 가지도 넘는 것이오. 그거  뭐 그 헤아릴 수도 없고 또 그거 다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생전 몰랐던 그런  이외의 방편도 나오고 천 명이면 천 가지 방편이 있다고 봐서 틀림이 없습니다.

이렇게 방편이 많으니까 어느 방편이 좋은지 이 방편 이것도 비교해 가지고 좋은  방편을 찾을라 하니까 어떻게 힘든지 그 방편 찾다 보면 그만 세월 다 가 버리고  늙어서 죽어 버리고 만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방편 속에서 제일 좋은 방편은 거기 하나일 터인데, 뭐 이든지 제일  좋은 거는 하나지 둘은 아니라 말이오. 이기는 자는 하나 뿐이라 하는 건 모든  것 다 이긴 자는 하나 뿐이지요. 제일 좋은 방편은 하나 뿐일 거라 발이오.

이런데 그 하나가 어디 있는지 뭐 그걸 알 수가 있습니까? 이제 방편도 가득  찼으니까 방편 속에서 좋은 방편 찾을라고 이리저리 비교하고 평판하고 또  자기가 모르니까 이 가치는 이 방편은 어떤고 이 방편은 공부해 보자. 그 방편을  공부할라고 무슨 무슨 학이니 무슨 학이니 그것을 공부해 가지고도 방편  공부할라 하니까 적어도 일 년 이 년 삼 년 동안 그 방편 공부해 가지고 나중에  보니까 그거도 또 아니라. 이러다 보니까 세월 다 가 버립니다. 이 방편도 참  제일 좋은 방편은 하나 뿐인데 그 방편 선택하는 것도 심히 힘들지.

 또, 사람이 사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하면 기쁘게 살라 하는 것이요, 즐겁게  살라고 하는 것이라, 즐겁고 기쁜 것이 그것이 최종 우리의 목표입니다.

기독교에서도 낙원이라 말합니다. 낙원이라 말은 즐거울 락(樂)자 그 원이라는  원(園)자입니다. 즐거운 낙원. 또 불교에도 극락이라. 지극히 즐겁다고 해서  극락이라 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쨌든지 이런데 어느 즐거움이 제일 좋은  즐거움인가? 인간의 이 쾌락을 이것을 제일 좋은 쾌락은 하나 뿐일 터인데 이  쾌락이 어떤 건지 이걸 선택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좀 더 오늘보다 내일, 또  젊어서보다 늙어서. 또 자기보다 자손대 좀 더 기쁘게 행복 되게 살라고 하는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찾고 있는데 너무 그  쾌락이라 하는 것이 종류가 하나든지 둘이든지 되면 그걸 좀 가려 가지고 할  터인데 수많은 종류인데 거기 좋은 거 하나 뿐인데 그거 가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은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 가치가 물 같이 가득 찬  세상이다. 방편이 물과 같이 가득 찬 세상이다. 쾌락의 종류가 가득 차 있는  세상이다. 이 세 가지로 합한 그 조류로, 이 세 가지로 합한 사회로 이 세  가지로 합한 세상으로 이렇게 이 세 가지 물로 철렁철렁하게 채여 가지 그 있는  세상이다. 이라니까 사람들이 그만 그 가치 속에 방편 속에 쾌락 속에 푹 빠져  가지고 이게 좋은 이 저게 좋은 이 이래 더듬다 보니까 그만 물 쓰듯이 먹어  버려 가지고, 나중에는 허퍼허퍼허퍼 이라 다가 그만 후회하면서 아무리 후회  후회해도 소용없고 다 거기 다 그만 가라앉아 파묻혀 죽고 만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가치 속에 파묻히지 말아라. 이 방편 속에  파묻히지 말아라. 이 쾌락 속에 파묻히지 말아라. 노아는, 홍수 속에 파묻히지  안하고 홍수 위에 높이 들려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홍수를 이용했지 홍수에게  피해를 받지 안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 모든 가치나 방편이나 쾌락이 많지만 이 위에 두부렁이  떠 가지고 그것을 멀리 보고 그 전체를 다 파악해 가지고 멀리 보고 자, 여기서  제일 좋은 게 뭐이냐? 가치 중에 제일 좋은 거는 뭐이냐? 방편 중에 제일 좋은  거는 뭐이냐? 쾌락 중에 제일 좋은 거는 뭐이냐? 이 좋은 것 하나 있으니까  그것을 찾아 가지고 네가 가지라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창세기 5장에는 거기서  이 세 가지를 똑똑히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치는 뭐라고 말했느냐? 가치를 거기 말하기를, 사람들이 나고 자라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아들 딸 낳고, 또 그거 공부시키고 출세시키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거 영광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이래 아  우리 아들은 뭐 지금 뭐 어디 가 공부하고 지금 무슨 직장에 있고 어디 있고  어디 있고 또 이제 그 재미로 이렇게 모든 사람들은 살고 있는데 그러다가  마지막에 죽었고 이랬습니다. 마지막에 죽었고   이래도 모든 사람이 뭐 나고 난 다음에 시집갈 때까지 그 순서에 제대로는  가치를 취한다고 취했을 것이고, 제대로는 좋은 방편을 취한다고 취했을 것이고,  제대로는 쾌락을 취한다고 취했을 터인데 그때 얼마나 되며, 결혼해 가지고 아들  낳고 단산하기까지의 사는 동안에 그 가치가 얼마나 있었으며 또 방편이 얼마나  있었으며 쾌락이 얼마나 있었는가? 그러니까 이것 저것 뭐 찾아 가지고 사람마다  분주하게 이게 제일이다, 저게 제일이다 자꾸 이래 가지고 저만 또 할 게 아니라  이게 제일이라고 또 글을 써내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선전도 하고, 그것 또  가르치고 돈도 받고 뭐 이래 가지고 이게 제일이다 이렇게 뭐 세상은 참 이상한  세상이라. 눈을 딱 뜨고 멀리서 세상을 먼 데서 세상을 똑 계란 하나 모양으로  딱 멀리 놓고 이모 저 모로 이렇게 살피고 세상 속에 파묻히지 말고 이렇게 보면  세상은 이상한 세상이요, 묘한 세상이요, 기이한 세상이요, 참 우스운 세상이요,  사람들은 정신없이 빠져 있는 세상입니다. 이런데 이 속에 이렇게 다 가치를  취했지만 마지막에 다 죽었다. 자, 죽었다.

 그러면 여기 모두 죽었다. 그 사람들이 제일 좋은 가치 천인이면 천가지 가치를  제 각각 취했고, 천인이면 천 가지 제일 좋은 방편을 취한다고 제딴에는 최고  방편을 취한다고 취했고, 천 명이면 천 명이 제일 좋은 완벽한 그 쾌락을  취하겠다고 쾌락을 취했고 이랬지만 마지막에 원치 안하는 죽음이 와 가지고  죽었고, 이러니까 그 결말이 죽음이 아니냐? 그러기 때문에 결말 가기까지의  그런 데서 네가 당황하지 말고 그 물에 빠진 자와 같이 그래 허푸허푸 하다가서  익사해 죽지를 말고 물에 빠져 죽지를 말고 이제 멀리 서서 모든 가치 중에는  이런 거 저런 거 모든 방편 중에 모든 쾌락 중에 인간들이 다 형형 색색으로  취해서 구름 같은 그 간증 자들이 다 취해서 나는 이 가치를 취했다. 나는 이  방편을 취했다 이 쾌락을 취했다 했지만 마지막에 결론이 다 죽음이다 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우지 안했느냐?  이러기 때문에 너희들은 여기서 훅 뛰어나서 그런 거를 멀리 보면서 모든  가치들이 많이 있지만 방편도 가치도 모든 것 다 있지만 그저 거기는 다 죽는 것  있고 영원히 죽지 안하는 영생하는 것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에녹은  죽지 안하고 영생했다. 이러니까 그 모든 것이 이렇다 저렇다 해도 그 결말이 다  죽는 것은 결말이 그러니까 실패 아니냐?  아, 장사를 암만 잘해서 '오늘은 돈이 몇 천 만원 나갔다 들어왔다 했습니다.'  암만 나가고 들어가고 많이 해도 마지막에 결산을 지울 때에 '네게 남는 게  얼마냐?' '남는 거는 하나도 없고 부도가 나서 좀 손해가 가 있습니다.' '그러면  많이 들어온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아. 그 사람은 보니까 들어오고 나가는  돈이 별로 없던 데도 나중에 마지막에 결산을 딱 대니까''얼마나 있느냐?' '아,  오늘 돈 천 원 벌었다.' '천 원이라도 벌었으니까 됐습니다.' 저거는 수억이  왔다 갔다 했지만 나중에 보니까 부도만 나 가지고 있지 그 마지막 결산에는  한푼도 수입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결과에서 살아라. 결말에서 살아라.

결말에서 살고 결과에서 살지 중간에서 거기 침몰돼 가지고 익사하는 자와 같이  그렇게 하지 말아라 성경이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치로서는 안 죽고 영생하는 것이 제일 가치 있다. 그러니까  에녹은, 영생하는 그 가치를 취했기 때문에 그는 영생했기 때문에 제일 좋은  가치를 취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 아들이 너거 아들보다 낫다. 나는 아들이  둘이다 서이다. 나는 돈을 한 달에 얼마 번다. 우리는 뭐 뭣이 있다. 지금  가구가 얼마나 들어 있다. 단스가 얼마나 들어 있고 뭐 피아노도 얼마짜리가  들어 있고 또 우리 남편은 어디 있고 뭐 뭐 어느 직장에 있고 이렇게 쌓아도  마지막에 보니까 다 결말이 그만 사망 구덩이로 쑥 들어 가지고 다 죽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면 그 전체를 통합해서 이건 다 사망의 것들이다. 이 가치는 다  사망의 것들이다. 그러나 에녹은 거기서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죽지 안하고  영생을 가졌습니다  이러니까, 가치 중에는 네가 무엇이든지 평가할 때 이것이 영생하는 것인가  사망하는 것인가? 그 두 가지로 따져 가지고 영생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추하고  험하고 천하고 괴로와도 그거는 가치 있기 때문에 가지고 그 결말이 사망하는  것이라면 천하 사람이 좋고 부러워하고 이렇게 칭찬을 해도 그거는 가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모조리 던져 버려라. 그렇게,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또, 방편도 그러합니다. 방편도 뭐 이런 방편 저런 방편 모든 방편 많지만 그  모든 방편들이, 사람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살다가 또 누리다가  마지막에 죽을 때까지 살았으니까 그 사람들이 뭐 오만 방편 다 취하지  안했겠소? 에녹 외에는 오만 방편 다 취했지만 그 방편이 마지막에 다 사망을  찾아가는 방편이지 하나도 사망을 벗어나는 방편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모든 방편이 다 사망을 찾아가는 방편이기 때문에 네가 이 방편이 결말로 사망  찾아가나 생명 찾아가나 그것만 네가 봐라. 다만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방편 취했다. 그만 그 방편 취하니까 그 동행하는 그 방편은 영원히 죽지 안하고  영생했다.

 이러니까? 세상에 수많은 방편 속에 파묻히지 말아라. 저 사람은 모른다. 요  방편은 참 좋은 방편이다. 야, 해 아래 새 것이 없어. 해 아래 새것이 없어.

만물들이 다 피곤해서 탄식하고 있어. 처음 만나니까 막 제 욕심대로 이리저리  흔들고 이라니까 이거야 옳다 이게 옳다 떠들어 쌓았지만 그 만물이 하나님께서  정해 놨기 때문에 또 이거에게 이용당하고 저것에게 이용당하지만 이용을 당하며  삐쭉삐쭉 웃습니다. 네 욕심대로 나를 밀어닥치고 삣고 깎고 뭐 야단을 지기지만  너는 이 자식아 마지막에 뒤진다. 소용없는 가치 없는 일하는데 내가  이용당하느라고 골탕만 주어먹는다. 만물의 피곤한 것을 말로 다 할 수 없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 다 이전에 있었던 것이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방편 중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편이 제일이고, 가치 중에는 죽지  안하고 영생하는 그 가치가 제일 가치 있고, 쾌락은 어떤 것이 쾌락이냐? 쾌락은  이 세상에서, 쾌락은 둘인데 모든 피조물끼리 서로 상대방의 것을 뺏들고  뺏들어서 내가 기쁘고 상대방을 이용해서 기쁘고 모든 피조물 저거끼리 상대방을  이용하고 상대방을 정복하고 상대방을 탈취해 가지고 상대방을 희생시켜 가지고  기쁜 이 쾌락이 하나 있으니 요것이 세상에 속한 쾌락이라, 땅에 속한 쾌락이라,  요것은 다 사망을 향하여 가는 사망의 쾌락이라.

 그러나, 예수님 안에는 십자가의 쾌락이 있으니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나 당신이  지으신 피조물을 구출하기 위해서 모든 부요와 영광과 지위를 다 버리고 몸과  소유와 생명까지 다 희생해서 모든 피조물들을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있는  것을 다 주어서 희생하니까 다 주어 희생하고 나니까 하나님이 다 준 자에게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을 다 그에게 주기 때문에 당신에게 있는 것 피조물 우리  위해서 다 주시니까 하나님 아버지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 다 예수님에게  주셨으니까, 당신에게 있는 것 모든 것 주어서 구출하고 당신은 하나님의 모든  것이 자기 것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빼앗고 침략으로 쾌락을 가지는 이 쾌락이 아니고 예수 안에  십자가의 쾌락은 위로 주님이 소원하시는 대로의 모든 이웃과 만물을 구출하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시켜서 제물로 바치는 여기에 기쁜 이 기쁨이 십자가의  기쁨인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기쁨은, '얻어야 기쁘지 주어서 기쁜 게 어디 있느냐?' 이러나  실은 사람들은 어두워져서 모르지 안 믿는 사람들도 얻어 기쁨보다도 주어서  기쁨이 더 낫습니다. 아, 얼마 전에 저 그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에 대해서 제가  텔레비젼을 보고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자기에게 있는 대로 이웃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서 갖다 넣은 사람은 많이 갖다 넣든지 적게 갖다 넣든지 자기 힘대로  갖다 넣은 사람. 또 힘에 지나치게 갖다 넣은 사람 조그매 갖다 넣은 사람,  조그매 갖다 넣은 사람은 기쁨이 조금하고 자기 힘대로 갖다 넣은 사람은 기쁨이  더 되고 자기 있는 걸 전부 다 갖다 넣은 사람은 막 날아가요. 기뻐서 날아가.

인생은 그게 본능입니다. 인생의 본능이오.

이러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에게도 '야, 이거 이웃에게 이거 떡을 갖다 줘야 될  터인데 이거 떡을 누가 가져갈래?' 아. 내가 가져 갈랍니다. 내가 가져  갈랍니다, 주러 가는 거는 서로 가지고 갈라고 야단을 칩니다. 그러나 아무 집에  가 가지고 그거 좀 얻어 가지고 오너라 하면 얻으러 가는 거는 아무도 안 갈라  합니다. '야, 아무것이 가라. '나는 안 갈랍니다' 안 갈라고 한다 말이오.

그것보다도 '야. 아무것이 집에 가서 그거 좀 뺏들어 가지고, 훔쳐 가지고  오너라.' 그거는 아무도 안 갈라 합니다. 이게 사람의 본능인데 너무 생에  시달려 가지고 이와 같이 자기의 본능도 다 잊어버리고 이 변질이 돼 가지고  세상이 기쁨을, 싸워서 이기고. 기뻐하고 정복하고 기뻐하고, 이용하고 기뻐하고  하는 이것은 이거는 정상의 기쁨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말하기를 십자가 기쁨이라. 주님이 누리신 십자가의 기쁨,  십자가의 기쁨, 이렇게 십자가의 기쁨으로써 내게 있는 거 다 줘 버리면 나는  뭣하고? 내게 있는 것 다 줘서 다 줘서 내게 아무것도 없어지면 불쌍한  사람되어지지. 그러나 성경에 계약했다 말이오. '네가 나와 내 복음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손해 보면 세상에서도 여러 배 백 배나 내가 주겠다' 백 배 받은  사람이 없습니까? 천 배 받은 사람도 많습니다.

구세군 창설자 그 창설자는 그분은 아무것도 없이 빈손 쥐고 나서 가지고 자기가  물자로 이 모든 기독자들을 구제하는 구제로써는 그 사람보다 더 구제 많이 한  사람 없습니다. 구세군 창설자. 아, 내가 그 이름 잊어 버렸다. 뭐 이제? 어?  아, '윌리엄 부우드' '윌리엄 부우드'가 많이 했는데 그래 다른 사람이 시작할  때 '나는 이 세상에 물질로써 구제를 하는 것을 내가 하고 가겠다' '네가 한푼도  없는 게 물질 구제 어찌할 거냐?' '아 아무 것도 나는, 자녀도 아무도 없지만  우리 마누라 있고 나 있고 둘 있고 주님 있고 우리 둘 있고 주님 있고 있으니까  넉넉하다.' 그래 가지고 나가 가지고 그 사람이 역사에 물질로써는 제일 많은  봉사를 했다고 합니다. 하니까 하나님이 자꾸 주신다 말이오. 하니까. 성경에  말하지 않습니까? 씨와 양식을 줘서 씨는 심으고 양식은 먹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더 많이 심으는 씨와 양식을 더 준다 이랬습니다. 자꾸 주고 주고  이라니까 자꾸 많아진다 그 말이오.

 우리가 이 선을 넘지 못해서 참 불쌍한 사람이지, 우리가 십자가의 이 기쁨,  주는 것으로 기쁨, 봉사함으로 기쁨,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으로 기쁨, 어제인가  언제도 말했지만 어떤 사람이 그 새벽에 저 냇물 가에서 냇물 가에서 툴툴,  보니까 밤이슬을 맞아서 옷이 흠뻑 젖어 가지고 오면서 기뻐 즐거워하고 이래  옵니다. 기뻐 즐거워서 아. 저 사람이 밤에 뭐 냇가에 가 가지고 뭐 뭐하러  갔더노? 뭐 도적질하러 갔나, 냇가 뭐하러 가서 그렇게 뭐 아마 뭐 때문에 저래  기쁜가? 기쁘고 즐거워서 막 물은, 초라해 가지고 야단입니다. '뭐이 그리 기뻐?  어디 갔다 와?' '아예 뭐 저 어제 좀 냇물에 좀 갔다 왔습니다.' 그 나중에  알아보니까 자기 교회에 참 어떤 교인 가운데 비참한 그 어려운 일이 있는데 그  문제 때문에 밤새도록 가 가지고 기도하고 또 밤새도록 기도하고 며칠 밤을  기도하다가 그 날 밤에는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됐다. 내가 이루어 주마. 내가  책임지마.' 하는 그 응답을 듣고 난 다음에 좋아서 기뻐서 올라와 보니까 벌써  일 다 돼 버렸어. 일 다 돼 버렸어. 이거는 자기가 혼자밖에는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기쁨, 이 기쁨이 성경이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기쁨입니다,  그 기쁨 하나, 그거 또 외의 기쁨은 뭐입니까? 이렇게 주님을 기쁘게 이렇게  하니까 당신이 여러 배 백 배를 갚아 주는 것, 아, 주를 위해서 주를 위해서  모든 것을 했는데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는데 나중에 보니까 조그만 한  것 바치고 많은 것 얻었고, 보잘 것 없는 것 바치고 아주 영광스러운 것 얻었고,  이래 가지고 모든 기독자들이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기독자 천물,  하나님은 그래요. 아주 천한 자 버림받은 자 그런 자를 택해 가지고 이 세상에서  높은 자를 부끄럽게 한다 했어. 아무 것도 아닌 천한 것이. 천한 것이 주님  위해서 바치고 나니까 하나님이 좀 더 존귀하게 해 줘, 또 바치고 나니까  존귀하게 해 줘 나중에 그래 하다 보니까, 주님 위해서 바쳤다 하는 것이 오히려  똥덩이가 금덩이 되고 말았어. 주님 위해서 바친 것이 똥덩이 같은 제가 금덩이  되고 말았어. 이라니까 성도들이 마지막에 결론은 다 그렇게 공동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내가 언제 주를 위해서 했습니까? 전부 나 위해서 한 것뿐입니다.

전부 나 위해서 한 것뿐이고 내가 형제 위해서 한 것도 모두 전부 나 위해서 한  것뿐입니다. 주를 위해 한 게 뭐입니까?' 주님 위해서 한 것도 없고 형제 위해서  한 것도 없고 나중에 결말을 보니까 전부 자기 위해서 한 것 뿐이라. 자기에게  돌아온 것 뿐이라. 이것이 기독자의 고백입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당신이 선물을 보내 주시는 선물로 기쁨, 당신이 축복해서  주신 건강의 기쁨. 당신이 축복으로 형통케 해 주신 형통의 기쁨, 당신이  출세하도록 해 주신 기쁨, 당신이 모든 문제 해결시켜 주시는 기쁨, 주님이 해  주신 이에 대해서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이랬는데,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것, 처음에 받을 때에 '아, 이거 낭파다.'  이러다가 이제 주님께서 턱 해결해 주시면 '이는 주님이 주셨다' 감사하지만 그  감사한 것을 그만 얼마 있으면 잊어 버려 버립니다. 감사한 그 태도를  잊어버리지 안하고 사는 것이 겸손한 자입니다. 그 자는 하나님께서 은혜 위에  은혜를 자꾸 더 주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선물을 주시고 또 그러다가 나중에 주님 만나면 더 좋습니다. 주님  만나면 얼마나 좋습니까? 이러니까, 이 세상에 쾌락이 많으나 주님이 우리에게  권고하신 이 기쁨, '이 기쁨은 세상이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내가 주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같지 않다. 내가 이 기쁨을 주나니 너희가 근심하지도 말고  염려하지도 말고 받아 봐라.' 그게 뭐이냐?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주니까 근심인  줄 알고 했지만 나중에 짊어지고 보니까 크게 행복이요 영광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주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염려하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말고 받아 봐라. 이 기쁨이 얼마나 좋은가 받아 봐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십자가의 기쁨 주님의 선물과 주님 만나는 기쁨, 이 기쁨은 세상이  해하지 못합니다. 이 기쁨을, 이 기쁨을 가졌다고 이 기쁨을 없애 버릴라고 그  사람을 형을 주면 그 기쁨이 더 많아져요. 죽이면 영원한 기쁨으로 굉장해져요.

아, 모두 손해케 하지만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기쁨. 십자가의 기쁨, 주님의  선물과 주님 만나는 기쁨.

 생의 방편 중에는 이 수많은 방편 속에 들어가 이게 좋으냐 저게 좋으냐  하다가는 그만 그게 파묻혀 죽습니다. 그 방편이라는 물 속에 파묻혀 죽어  버립니다.

그런 방편 그게 가라앉지 말고, 방편 중에는 주님과 동행하는 방편 주님과  동행하는 방편이 뭐입니까? 내 현실에 괴롭든지 즐겁든지 손해가 가든지 유익이  가든지 내 현실에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주의 말씀대로 그대로 사는 것 주의  말씀대로 내가 요 현실에 살라 할 때에 애로가 있고 굴곡이 있고 매가 있고 뭐  어떤 고통이 있고 낭파가 있어도 주님 살아 계시기 때문에 주님을 믿고 내  현실에 주님이 인도하시는 주의 말씀대로 그대로 사는 그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방편입니다.

 방편 중에는 주님과 동행하는 방편 이 방편 제일 좋고, 또 생애 가치 중에는  어쩌든지 결말에 안 죽고 영생하는 그게 제일 가치 있기 때문에 영생하는 일만  해. 이것이 영생하는 일이냐 뭐이냐? 영생하는 일이면 가치 있는 일이요 영생을  못 하고 멸망하는 것이라면 가치 없는 일인데, 요래 해서 만 간추려 살면 우리는  참 하나님의 후사가 넉넉히 될 수 있고 하늘과 땅의 것을 다 우리의 것으로  관할하고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저 뭐 어디 가 기도하든지 자유로 삼 십 분  정확하게 할 게 아니라 이제는 자기네들이 다 아니까 어디 가 기도하든지 산에  가 기도할 사람은 산으로 가고 또 어디든지 기도하러 그런 데 가서 뭐 우리  예배당은 널러 놓으니까 저 널리 퍼지면 산만큼 들판 만큼이나 합니다. 세  가지를 굳게 잡고 놓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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