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11:40
생의 가치
본문 : 창세기 5장 1절∼32절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은 일백 오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십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 십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게난은 칠십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 사십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마할랄렐은 육십오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 삼십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팔백 구십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야렛은 일백 육십이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육십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녹은 육십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 팔십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 육십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라멕은 일백 팔십이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 구십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칠백 칠십칠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지난 주일 오전 오후에 이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또 이 말씀은 다음 주일 유치반 중간반 공과로 가르칠 말씀입니다.
여기는 사람이 일생을 살면 그 일생의 삶을 분류한다고 하면 어떤 생활을 하는가 하는 것을 여기 간단하게 분류해 놨습니다. 인간 일생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분류해 놨습니다. 분류했는데, 하나는 사람이 나 가지고 결혼하기까지 몇해 동안 이렇게 저렇게 살고 또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자녀를 나으면서 이렇게 저렇게 몇해 동안을 살고, 또 자녀 낳던 일이 늙어서 끝이 나면 자녀 낳는 일을 그치고 난 다음에 또 몇해를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 그것이 인생의 일생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악령이 들어서 혼돈을 시키기 때문에 이렇게 간단 명료하게 분류하지를 못하고 거기서 뭐 지저분하게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 일생을 무엇하고 죽는지 무엇하고 사는지도 모르고 지내기 쉽습니다.
거기 여러 사람을 예를 들어 말을 했는데 모든 생활이 꼭 같습니다. 나고 나면 음식 먹고 아장아장 자라고, 뭐 공부하면서 자라고 일하면서 자라고 또 뭐 이런 생활 저런 생활을 하면서 자라다가 결혼할 때 되면 결혼하고, 또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각각 모두 이런 생활 저런 생활, 다 각각 자기 딴에는 이것이 제일 가치있고 제일 복된 생활이라. 중요한 것이라, 모두 제 나름대로는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선택하고 부모들은 자녀에게서 선택을 협조해 주고 자녀들은 또 선택하고 이래 가지고 결혼하고 난 다음에 몇 해를 살면서 자녀를 낳습니다.
자녀를 많이 낳든지 적게 낳든지 자녀를 낳고, 또 자녀를 낳아 가지고 어떤 사람은 병신을 낳았다고도 울고 불고 어떤 사람은 잘난 사람을 낳았다고 아주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어떤 사람은 자녀가 없다고 또 울고 불고 어떤 사람은 자녀가 많다고 세도를 부리고 뭐 이렇게 사람들이 살다가 자녀 낳는 걸 그치고 난 다음에 그 후에 혹은 몇 해를 이렇게 삽니다. 살다가 마지막에는 죽습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의 인생의 일생을 분류한다면 그런 움직임으로 살다가 마지막에 결말은 죽고 끝나는 것입니다.
제가 혹 봅니다. 저 사람은 참 아주 쌩쌩해서 안 늙는다 이랬는데 아닐성 보니까 내나 그 사람도 늙습니다. 늙는 걸 내가 보고 나이를 계산해 봤습니다.
'저 사람이 용모에 몇 살이나 될꼬' 해 볼 때에 뭐 오십이나 육십이나 사십이나 삼십이나 그 생각나는 대로 고라고 난 다음에 혹 그런 기회가 있어 물어 보면 별로 틀리지 않게 다 맞춥니다.
이러니까, 안 늙어가는 사람이 없고 또 죽음을 향하여 찾아가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참 인생의 일생을 살면서 모든 사람들이 지금 안타까와하고 소원하는 것은 안 늙을라고 하는 것과 안 죽을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제일 소원입니다. 늙는 것과 죽는 문제를 생각지 못할 철없을 때에는 어떻게 하면 미인을 만날까 미남을 만날까. 또 좋은 기술을 가질까 여기다가 사람들이 마음을 집중하지만 어느 시기가 지나가면 다 그것도 다 헛되다, 암만 있어 봤자 늙으면 헛일이다. 암만 미남이라도 늙으니까 쭈글쭈글한 송장같고 아무리 미인이라도 뭐 요래 꾸미고 조래 꾸미고 삐쭉쌔쭉 하지만 그것도 좀 있으면 또 송장같고, 아무리 많아도, 자녀가 많아도 그것도 나중에 아게 다게 나중에 가서는 시비 뭐 분열뿐이지, 하나 슬픔과 고통뿐이지. 이래서, 모든 사람이 말하기를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이 없다 그 말합니다. 그거는 자손 많은 사람이 평안할 날이 없다 그 말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살지만 차차 차차 살아갈수록 모든 철이, 들고 모든 경험이 들고 이라니까 '안 늙었으면 좋겠다. 안 죽었으면 좋겠다' 이래서 이제 가롯늦게 안 늙을 그런 방편을 주력하고 있습니다, 자기 있는 재산 있는 대로 힘 있는 대로 안 늙을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안 늙을라고 애쓰는 그거는 뭐 언제 생각할 여가도 없이 어짜든지 한번 돈이나 벌어보자, 이렇게 또 사업이나 확대시켜 보자 이라다가 그만 갑자기 죽음이 오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내가 어떻게 할 걸' 모두 후회하고 떠나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 창세기 5장에는 인생의 일생 생애에 대한 그 가치를 평해 놨습니다. 이것은 성경 말씀이 이렇게 하니까 우리가 알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뭐 수백 수천도 더 보지만,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지만 거기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안 죽지' 생각하고 안 죽는다는 거기서 살기만 위해서 노력을 하지 죽는 준비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공과는 여러가지로 생각하다가 사람의 일생에 대한 가치라 그렇게 제목을 한번 잡아 봤습니다. 어제 아침부터 기도하고 시작해도 공과 못 했습니다. 할라 하면 또 요런 일 생겨서 못 하고 조런 일 생겨서 못 하고 자꾸 이래 가지고 그저 몇 자 써 놓고 난 다음에 그것을 작성을 못 했습니다. 오늘은 일찍 작성을 해야 또 공사를 할 거라서 이 공과 공부를 또 하나 더 한번 더 시켜야 되겠다 해서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증거하게 된 동기입니다.
그런데, 여기 성경에서는 사람의 일생 생애를 간추려서 제일 중요한 것을 들어서 인간 일생 생활에 제일 중요하게 그 문제를 생각해야 된다. 그러면, 인간 일생 생활에 제일 중요하게 중대하게 다루어야 될 문제는 뭐인가? 인간 일생 생활에, 인간 일생 생활에 제일 중대한 문제가 뭐인가? 제일 중요한 문제가 뭐인가? 제일 중요하게 중대하게 생각하여야 할, 문제가 뭐인가? 여기 말하기를 그것은 죽고 영원히 죽지 안한 것이다. 죽는 것과 영원히 죽지 않는 것, 죽는 것과 영원히 죽지 않는 것, 사망과 영생이다, 사망과 영생이다 하는 것을 여기 간추려서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기에, 뭐 사람이 결혼할 때까지의 그 토막에 어떤 생활을 하든지, 그 생활이 넓다, 둥글다, 그 생활이 명예가 좋다. 권세가 있다, 기술이 있다. 돈이 많다, 소원대로 다,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쓰고 싶은 대로 다 쓴다 그것은 네가 인생 생애에 제일 중요한 것은 못 된다, 제일 중요한 것이 뭐 인 줄을 알고 그것을 제일 중요하게 다뤄라. 그러면, 제일 중요한 것이 뭐입니까? 그것은 영생과 사망이라고 이렇게 5장에 말씀을 했습니다. 영생하는 길이 있고 영원히 사망하는, 그런 길이 있으니 네가 인생 생애를 걸어 갈 때에 뭐 이렇든지 저렇든지. 뭐 밥이 믿다. 돈이 많다, 권세가 많다, 건강이 많다, 미가 많다, 영광과 모든 호강이 많다. 이런 것들이 없다, 없다고 자기는 아주 못나고 천한 자로 그렇게 여겨서 아주 저자세되고 이런 게 많다고 우쭐거리고 그런 걸로써 거기다가 가치를 두지 말아라 이랬습니다. 거기다가 가치를 두지 말아라. 가치는 영생이냐 사망이냐 거기다가 가치를 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래서, 야고보서 1장 9절에 보면 낮은 자는 높아진 걸로 자랑하고 높은 자는 낮은 걸로 자랑한다 이랬습니다. 그거 뭐이냐? 이 세상 높고 낮은 그까짓 것을 가치로 보지 않는다 그말이오. 성경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적으로 뭐 어떻게 높다 어떻게 낮다, 나는 이 세상적으로 낮으니까 이거는 나는 천한 인간이라 그래 여겼던 자가 성경을 보고 보니까, 아 그까짓 거는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나는 세상적으로 이래 높으다 했는데 높은 그까짓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높고 낮은 그까짓 게 문제가 아니다. 인간들 모르는 그 위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 중대한 문제가 뭐이 영생이다 사망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나서 장가가기까지의 그 토막에 어떤 생활을 했든지 네가 영생을 이루었느냐 사망을 이루었느냐 그것으로 평가해라. 또 아이 낳으면서 아이를 뭐 많이 낳았다. 잘 낳았다. 이마가 홀떡 벗겨놨다, 이거는 귀가 축 쳐졌다, 이는 코가 커다랗다 뭐 어떻다 해 가지고 잘났다 못났다 잘나도 그까짓 거 한 도매금이요 못나도 도매금이요, 많아도 한가지이 그 적어도 한 가지 이고 없어도, 한가지이다. 그것을 네 인생 일생의 가치로 삼지를 말아라. 가치를 거기 두지 말아라. 영생이냐 사망이냐 거기다 가치를 둬라. 거기다 가치, 제일 중요한 가치를 거기 두고 해야 모든 자기의 전 생애가 그리 기울어지지, 사람이라는 것은 가치를 둔 데다가 그리 다 따라 가고 거기 다 협력하고 주력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녀를 낳는 그 토막에 이런 거 저런 거 많이 있지만 거기다가 네가 가치를 두지말고 '아, 이 일 하면 영생하느냐 이 일 하면 영원한 사망을 하느냐' 사망이냐 영생이냐 하는 거기다가 중점을 두고 거기다가 가치를 두고 거기 그 가치에다가 기준해 가지고 그 가치를 따라서 네가 살아라. 그 가치를 따라 살지 못하고 네가 뭐 낳았다, 뭐 많이 낳았다 적게 낳았다, 나는 지금 높은 자리에 있다, 몇 사람을 통솔하고 있다, 애! 그까짓 거는 네 인생의 중대한 가치가 아니다. 네가 가치를 만일 많은 사람을 통솔한다 거기다 가치를 두면 네 전심 전력은 거기다가 다 기울이게 된다. 인생이 영생하느냐 멸망하느냐 거기다가 가치를 두면 네 전심 전력은 거기다가 기울이게 된다. 네가 가치를 어디다가 두고 있느냐 성경이 이렇게 말씀해 줍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소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뭐 낳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은 늙어서 돈 없어 고생하네, 아 그 사람은 자녀 다 낳아서 결혼시켜 놓고 난 다음에 팔도강산을 유람하고 세계를 관광하고 돌아다니니까 복 있다, 얘! 그까짓 거 세계 만 바퀴 돌면 뭐 할 것이고? 팔도강산의 저 좋은 경치를 마구 그 속에 파묻히면 뭐 하느냐? 마지막에 사망하면 어찌 되느냐? 그러기 때문에 영생이냐 사망이냐 하는 그것을 제일 중점적으로 거기다가 가치를 두라. 거기다가 가치를 두고 그 가치를 따라서 살아라 이게 성경인데 암만 들어야 모른다 말이오. 들어야 몰라. 참 우리가 답답합니다.
여기 대해서, 가치를 여기 두는 사람은 땅에서 지저분한 거 이까짓 거 저까짓 거, '온 천하 줄 터이니까 너 이거 차지해라' '얘! 천하보다 영생이 더 크고 영원한 사망이 문제이기 때문에 천하 얻어도 영원한 사망 받으면 무슨 소용있느냐!' 이러니까. '천하 준다 해도 눈도 꼼짝하지 않습니다. 천하 주는 거보다도 그 일 하면 영생하느냐 사망하느냐 물어서. '이 일 하면 영생 주는 자와 배치가 되기 때문에 이는 사망에 속했다.' '이 일 하면 고생하고 눈물 흘리고 배고프고 피곤하지만 이 일 하면 영생에 속했다.' '아. 그러면 하루 밤 같은 고까짓 거야 배고픈들 못 견디며 뭐 헐벗은들 못 견디며 천대받은 들 못 견디겠느냐 나는 영생 취하겠다' 이렇게 나가는 것이 성도들입니다.
영생을 알기 때문에 인간이 할 말 다 못 하고, 인간이 하고 싶은 거 다 못 하고, 인간이 쓸 세력 다 못 쓰고, 인간이 다 싫어하는 그런 거라도, 천대 멸시라도 영생이 되면 좋습니다. 감옥에 갇혀도 영생되면 좋습니다. 불에 굽혀서 죽어도 영생이 된다면 좋습니다. 이것이 인생 일생의 가치를 영생이냐 사망이냐 하는 거기다가서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사망이면 그까짓 거 소용 없고 아무리 쓰고 고통스러워도 영생이라면 그까짓 거 뭐 다른 그까짓 거야 따질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좀 폭 넓혀 가지고 지혜를 가지고 살라 그말이오! 소경 모양으로 그래 살지 말고 이 세상에 눈 뜬 자가 있는 줄 압니까? 신구약 성경을 부인하는 자는 다 소경이요 병신이요 다 사망에 속해 있는 송장 한가지인 것입니다. 뭐 넥타이를 매도 송장이요 아무리 어떤 지위에 있어도 송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정말로 인생 일생의 생애에 대하여 영생이냐 사망이냐 여기다가 가치를 두고 이 가치를 기준해서 여기 이 가치에 따라서 내가 움직이고 있나, 이 가치가 제일 중요한 것인데 이것은 다 벗어 버려 버리고 엉뚱한 지금 생각과 생활하고 있느냐? 자기를 살펴 보라 그말이오! 너무도 몰라 여러분들! 다 사욕에 끌려 가지고, 육체의 소욕에 끌려 가지고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암만 성경 말씀 들어야 그만이라. 뭐 어떤 자는 돈 좀 있다고, 임마 네가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는데? 돈 그게 네 사망을 면해 줄 것이가? 돈이 영생을 시켜 주나? 돈 가지고 우쭐거리는 자를 볼 때에 불쌍하게 보는 눈이 없으면 안된다 말이오. 야, 영생과 사망이 있다, 돈 그게 너 영생을 주겠느냐. 돈 그게 너를 사망으로 끌어내리면 무슨 가치 있느냐? 어떤 자는 뭐 공부해 가지고 내가 지금 이렇게 높은 학위를 받았고 이렇게 지금 높은 지위를 받았다. 야, 지위 그거, 지위 그거보다 큰 문제 있다. 그 지위가 영생을 주느냐 그 지위가 사망을 주느냐 그거 따져 봐라. 그게 제일 중요하다. '아, 여기는 영생이 없는데.' 영생 없으면 다 헛일이요 그것은 다 없는 거와 같이 여겨.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 그까짓 가치로 삼을 것 없어. 그거 보고 네가 우쭐해지고 자랑하고 있으니 네가 미친 자다. 그거 없다고 네가 울고 불고 나는 저거 없으니까 못 난 자다. 그것도 어리석은 자다. 영생을 가졌으면 제일 가치있는 자요 사망을 가졌으면 불쌍하고 무가치한 자이지 뭐 어디서 가치를 따지고 있느냐? 인생아! 네 중대한 가치를 어디 두느냐! 이것이 우리에게 창세기 5장에서 주신 말씀입니다.
나고 살다가 장가 가고 시집 가고 자녀 낳고, 자녀 낳다가 또 다 낳고 난 다음에는 얼마 살다가 죽고 죽고 죽고 다 죽는데 그 한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다른 사람 죽는 죽음을 보지 안하고 그는 산 채로 하늘나라로 올라가서 영생을 했습니다. 그걸 우리에게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 생애의 일생에 가치관을 바로 못 정하면 그 사람은 망하고 맙니다. 자기가 제일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데 거기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일생을 바치게 되기 때문에 제일 가치 있는 데다가 가치를 정해 놨으면 그 사람은 일생 생활은 자연히 전심전력이 거기 기울어져서 살터이니까 속는 생활이 아니지만 가치를 잘못 정하면 헛일이라 그말이오.
저 집사님은 눈물은 쭐쭐 잘 흘리고 울기는 잘 우는데 예배볼 때는 장 조울라.
잠 마귀가 들어서. 잠 마귀 들면 소용없어. 울어도 다 헛 울어. 울어도 제 슬픔에나 울고 신세 타령이나 하고 울고 그렇지 참말로 영생에 속한 울음 아닌 울음 울기 쉬워, 울음도 영생을 위한 울음, 웃음도 영생을 위한 웃음 노력도 영생을 위한 노력, 계획도 영생을 위한 계획, 부러운 것도 영생을 위해 부러움, 자랑도 영생을 위한 자랑 이래야 그 사람이 올바른 생애를 가질 수가 있지요.
뭐 누가 '야 이렇고 이렇고' 한참 말합니다. 입에 침이 마르게 말합니다.
'이렇고 이렇고 좋고, 좋고, 좋고, 좋고, 좋고, 좋고, 좋고, 좋고, 영광스럽고, 영광스럽고, 가치있고, 가치있고, 이렇게, 이렇게, 권세있고, 권세있고, 권세있고' 암만 말해도 다 듣고 있다가 '야. 그게 영생을 얻는 것이가 사망 얻는 것이가? 뭣 되는 것이고? 그 결과가 뭐꼬? 그것부터 가르쳐 달라.' '영생? 뭐 영생에는 상관이 없지. 영생이야 할 수 있나. 어디? 사망하는 것이지' '야 그라면 나 안 할란다. 뭐 뭐라고 지껄여 쌓으며 많이 뭐 지껄여 쌓았지만 나는 지금 가치를 영생이냐 사망이냐 거기 두기 때문에 네가 암만 주 지껄였지만 그게 영생을 향하여 가는 것이냐 사망을 이루어 가는 것이냐 거기다가 나는 가치 두고 있기 때문에 사망을 이루어 가는 것이라면 온 천하 가져도 내게는 소용이 없다.
영생을 이루는 일이라면 감옥도 좋고 매도 좋고 욕도 좋고 굶는 것도 좋고 천대도 좋고 뭐 병신도 좋고 사형받는 것도 좋다. 영생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좋다' 이 사람으로 좀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한자리에서 살지만 껍데기는 같은 사람이지만 속은 뭐 천층 만층도 더 돼요? 얼마나 층어리가 많은지 모릅니다. 이래서 자꾸 우리가 모든 것을 바로 잡아서 이제 정말로 사람이 가치있는 사람으로 자꾸 변화돼 나가자 그말이오.
다음으로는 여기서 뭘 가르치는고 하니 사람이 그러면 가치가 제일 가치있는 것은 영생이요 제일 가치 없는, 피할 것은 사망이라. 그러면, 우리가 사망을 되하고 영생을 할라고 하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세상에서 생활하는 생활하는 세상 살이를 하는 방편이 천도 만도 억만도 넘으니까. 이 방편으로 살아야 복되다 저 방편으로 살아야 복되다. 뭐 그 방편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 가지고 제 지능대로는 제일 좋은 방편을 취해서 이 방편대로 살라고, 자기를 제일 행복되게 하는 방편을 취해 가지고 살라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가르치는 제일 행복된 좋은 방편은 뭐입니까? 성경이 가르치는 제일 좋은 행복된, 속지 안하고. 영원히 속지 안하고 후회 없는 제일 좋은 생활 방편은 뭐입니까? ○○○씨. 뭐이지? 뭐이지? 저게 서울서 여기까지 진리 듣는다고 와 가지고 새벽에 나와서 나오기는 나왔지만 꾸벅꾸벅 졸면 뭐 하는고? 새벽에 나와서 졸게 하는 게 남편이면 그 남편이 원수라. 그걸 알아야지. 네 집안 식구라고. 잠 못 자게 하거들랑 남편한테 말해. 남편은 어디, 남편은 보니까 졸지 않는데 저거는 조는구만. 어만 일 했지. 어만. 아이 보고 그것만 좋아하고 했든지 막 그런 거 했지.
방편 중에 제일 좋은 방편이 뭐이냐? 아, 이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 기술을 배워야 된다. 얼굴을 예쁘게 다듬어야 된다, 이거는 자꾸 운동을 해 가지고 키가 커 가지고 아주 아랫도리가 미끔하게 스타일이 좋아 가지고 미남이 돼야 된다, 뭐 취직을 잘해야 된다, 뭐 사업 경영을 잘해 가지고 좋은 업체를 가져야 된다 그거. 이런 방편 그거 좋은 방편이라 이래도 '야야야, 그거 나는 싫다. 그게 영생하는 방편이냐? 그 방편에서 천하에 제일 갑부가 되면 어찌 되지? 그거 가지고 영생하느냐? '영생은 못 한다.' '아, 그러면 말 말아라 영생을 못 하는 생활 방편이라면 도매금으로 다 싫다. 다 무가치하다. 나는 영생하는 그 방편만이 내게 필요하다.' 영생하는 방편이 뭐인데? 영생하는 방편이 뭐 있습니까? 자. 영생하는 방편 말해 보시오. 누가 큰 고함 소리로, 누가 고함 소리 크노? 누가 그랬노? 누가 그랬노? 손들어 봐. 누가 그 말했어? 아, ○○○, ○장로님 아들 잘 뒀어.
○○○씨,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 이것이 인간 생활에 수억만의 방편 있는 가운데, 지저분한 거 뭐 이거나 저거나 말할 거 없이 그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게 제일 좋은 방편이오,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편이다 요렇게 자기가 확정을 짓고, 뭐 사장되는 것보다, 대통령 되는 것보다, 어떤 기술자, 문화의 공로자, 명예자, 무슨 좋은 행락자, 미남 미인 데리고 사는 거, 뭐 모든 거 다, 아름다운 가정, 아기자기 깨소금아 쏟는 뭐 따뜻한 가정 그것도 다 좋지만 그거 표준해서 안 되겠다. 이러니까, '그것보다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제일 가치 있다.
하나님과 동행이 안 되고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라면, 하나님과 원수되는 이 대통령 네가 해라. 안 할란다! 하나님과 원수되는 이 갑부 네가 해라. 안 할란다! 하나님과 원수되는 이 미인 네 아내 삼아라. 안 할란다! 하나님과 이별되는 이거 미남 이거 네 남편 삼아라. 안 할란다! 이거는 뭐이든지 하나님과 동행이 아니라면 뭐이든지 싫다 하네. 그래, 싫지? 이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아나, 여기 문둥이 같은 마누라 이거 이거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네가 장가가는 것이다. 이 여자하고 살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아. 좋다! 문둥이라도 좋다! 문둥이라 봤자 하루밤 나그네 같은 거 잠깐 지나갈 거 뭐 그까짓 거 무슨 상관있느냐? 이러니까. 결혼관도 그 방편에 대해서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이 결혼하면 하나님과 동행되느냐? 이 결혼하면 저 결혼보다 하나님과 동행된다 이 사업하면 하나님과 동행된다. 이 취직은 하나님과 동행된다. 이 공부 하나님과 동행된다.
그러면, 공부하는 것도 하나님과 동행이냐? 하나님과 동행하는 공부로써 세상 제일 유력할 수도 있고, 다니엘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공부 해 가지고 그 시대에 제일 유력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돈도 벌 수 있고 자녀도 낳을 수 있고 모든 가정생활도 할 수 있고 모든 거 다 성공할 수가 있는데 왜 하나님과 하 원수 돼 가지고 나가는 그따위 길을 우리가 취할라고 합니까? 얼마나 어리석소? 어리석은 걸 알고 통회할 줆을 알아야 되지! 도무지 듣기만 하지 암만 들어도 몰라.
또 다음에 셋째로는 이 세상에는 쾌락이 많습니다. 모든 인간 철학들이 있는데 철학의 그 결론을 지우면, 철학의 모든 철학들의 결론이 뭐이냐? 쾌락입니다, 쾌락. 모든 철학들이 어떻게 하면 인생이 쾌락으로 살 수 있느냐, 어떻게 하면 영원히 기쁠 수가 있느냐, 영원히 쾌락으로 살 수 있느냐? 모든 인간들은 실은 다 따져 들어가 보면 그 쾌락이 자기의 최고의 최종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의 기쁨. 인생의 쾌락. 인생의 쾌락은 뭐 돈으로 기쁘다 지위로 기쁘다 권세로 기쁘다 참피온. 세상에서 참피온 땄다고 참피온으로 기쁘다 뭐 오만 거 다 있겠습니다. 오만 거 다 있어. 오만 기쁨 오만 기쁨 다 있어도 크 기쁨은 다 슬픔으로 화해집니다. 그 즐거움은 다 고통으로 화해집니다. 영원히 고통으로 화해지지 안하고 영원히 기쁘고 영원히 즐겁고 늙지도 쇠하지도 죽지도 안하는 기쁨, 영원한 기쁨 그 기쁨이 무슨 기쁨인가? 그 기쁨을 취해야지. 그 기쁨은 무슨 기쁨이라 했습니까? 그 기쁨이 두 가지 기쁨인데 그 두 가지 기쁨, 그 기쁨이, 내가 잘못했네. 그 기쁨이 몇 가지인고 손가락으로 좀 들어 보라 할 걸. 그 기쁨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봐요. 저 ○○○ 집사는 모르는가? 왜 그라면 손가락 안 들어? 미국식 모양 여기는 그래 안돼. 여기는 뭐 뭐 장로님들이라도 손가락 들어야 돼. 강단에,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대리로 하는 거니까 하나님이 하는 건데 왜 손을 안 들어. 안 들기는? 또 한번 들어봐요. 들라 할 만한 가치가 있어. 둘. 요래.
하나는 뭐이냐? 하나는 십자가의 기쁨. 십자가의 기쁨. 내가 주님을 위함으로,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그러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뭐인데? 주님 위하는 것과 주님 기쁘시게 하는 것은 당신이 지어 놓은 모든 피조물을 위하는 것을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십니다. 이러니까, 주님을 사랑하고 위함으로써 모든 피조물을 위하는 자기가 되어지는 그것이 십자가라 그말이오. 그것을 하면서 희생당하는 어려움 당하는 그게 십자가라. 그게 십자가.
십자가는, 이 세상에는 도둑놈의 기쁨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낳을 희생 시켜야 되고 남을 밀어 내트리고 제가 들어서야, 남을 밑에 깔아 앉히고 그 위에 사다리 모양으로 밟고 위로 올라서야 이래야 좋은, 남을, 모든 인간을 다 착취해 가지고 자기 이용물로 삼아야 기뻐하는 것이 기쁨인데 그 거는 사망의 기쁨이라, 사망의 기쁨. 암만 기뻐도 사망의 기쁨이라.
김일성이가 이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착취해 가지고 고통을 주고 제가 쭉 올라서 가지고 서지만 그놈의 불쌍한 것은 가련한 것은 뭐 말할 것 없어. 그 뒤가 가련한 것은. 여기도 간첩이 와 있는지 몰라. 간첩이 있으면서 나중에 가서, 나중에 혹 그런 일이 있으면 잡혀 들어가 가지고 '김일성 뭐 어버이를 욕했다' 하면서 설교를 내놓을는지 몰라. 그거 녹음 해 놓은 걸 내놓을는지 몰라. 그라면서 '네가, 내가 모든 사람을 착취해 가지고 내가 이렇게 높은 지위에서 영광있는 이걸 불쌍하고 가련하다고 네가 그렇게 말했지? 그거 네가 불쌍하고 가련하지' '이놈의 새끼' 하고 때려 주면, 때려 주면 나를 손해 보였소? 나를 유익케 했소? 때려 주면 얼마나 손해갔소? 대답해요. 여기에, 여기 대답해. 예. 예? 예? 손해 얼마 나 갔어? 맞은 것만치 갔어? 맞은 것만치 갔어? 예? 뭐라 하노? 손해 간 거 없어? 아, 손해 안 갔어? 손해간 거 없어? 그러면, 맞아도 손해 안 간다 그라다가 '이놈의 새끼, 너 백 목사 너는 나 욕했기 때문에, 내가 모든 사람 착취하고 이래. 가지고 높아졌다고 욕했으니까 너는 죽어야 된다? 죽였으면 죽였으면 손해 봤소? 대답해 봐. 손해 안 갔어. 어떻게 손해보일 거라? 뺨만 하나 때려도 수입, 욕만 하나 받아도 수입, 왈칵 밀트려도 수입 나쁜 소리 한 마디 들어도 수입 전부 유익뿐이지, 유익뿐이지 해를 지울 자 없어.
이러니까 십자가의 기쁨을 여러분들이 기도 가운데서 많이 해서 이것이 화해야 됩니다. 알쏭알쏭하면 안 돼요. 십자가의 기쁨, 인생이 영원히 쾌락 영원한 쾌락. 영원히 기쁨. 모든 만물 앞에서도 기쁘고 하나님 앞에서도 기쁘고 영원히 기쁠 것은 십자가의 기쁨이다 이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십자가의 기쁨을 만나게 되고 빼앗기지 안하게 되지 십자가의 기쁨의 행복이라는 것을 모르는 인간이 그거 안 뺏기고 됩니까? 이 세상, 막 온 세상은 그것을 뺏들라고 유혹도 탄압도 오만 방편을 다 쓰는데? 십자가의 '기쁨.
그 다음에 기쁨 하나 있는 것은 무슨 기쁨인고 하니 그 다음에 기쁨은 당신 위해서 요렇게 자기를 바쳐서 사니까 당신이 기뻐해서 직접 찾아오실 때도 있고 '내가 못 가니까 선물이나 받아라, 내가 좀 있다가 가겠으니까 선물 받아라' 하는 선물을 받을 때의 기쁨, 선물 받는 게 뭐요?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전토를 읾은 자는 세상에서 여러 배 배를 받고' 그게 선물 받는 거라. 사랑하는 주님이 주시는 선물 받는 거라. 선물 받을 때에 '내가 지금 아직까지 못 가니까 나 본듯이 이 선물을 받으십시오.' 하니까 선물 받을 때 얼마나 기쁩니까? 선물 받을 때 기쁨.
그라고 난 뒤에 주님을 딱 만날 때에 그 기쁨.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께서 '네가 날 이렇게 사랑했다'고 하는, 이 나를 대면해 주는 이런 기쁨이야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얼마나 기쁘겠소? 이 기쁨. 십자가의 기쁨, 주님의 선물과 주님을 만나는 기쁨 이 기쁨이 인생의 기쁨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고, 여러분들, 어제도 말이오, 청년들은 지금 이십여 명이 저 서로 교대해 가면서 지키고 있습니다. 왜? 그 사람들이 자꾸 무례하게 자꾸 뚜em립니다. 자꾸 꽝꽝 이래 가지고 울리는데, 안 한다고 해 놓고, 안 한 다고 해 놓고 약속해 놓고, '만나서 타협해 가지고 하겠습니다.' 해 놓고 일방적으로 우리한테는 이쪽에서 하라 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거짓말하면, 그 사람들이 거짓말하면서 공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발표가 났다 그 거요. 또 말하기를 뭘 '측정하면서, 측정해 가지고, 측정해 보기 위해서 뚜드려 박으니까 쪼끔만 참으십시오. 한 개 뚜드려 박고 두 개째 또 뚜드려 박고 측정한다고 그걸 떡 보고 앉아서 '측정하고 그래 하니까 보고 있자' 뭐 측정 측정 하다 보면 다 헛일되고 말아. 토끼란 놈이 진지를 하면서 딱 놔 놓고 이게 길다 하고 싹 베어먹고 또 이게 많다 싹 베어 먹고, 쪼금, 많은 걸 많은 걸 싹싹 베어 먹고 없애 버리고 나니까 나중에 혼자 다 먹어 버렸어. 그게 세상에 지혜를 주는 예화라 그말이오. 측정하면 측정하면서, 측정 측정하면서 나중에 가서 그거 다 뚜드려 박을 거라 말이오.
그런데, 박는데, 우리 보기에 집이 무너질 거 같고 지금 이래서 그런 것이지 사실은 무너질는지 안 무너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뭐이냐?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라고 확정을 냈습니다. 하나는 뭐이요? '하나님이여, 어짜든지 우리 이 건물이 상해서 우리가 여기 치어 죽지 안하도록 하나님께서 이 건물을 보호해 주옵소서' 그 기도를 자꾸 해요. 그 기도를 하면 그 사람들을 그렇게 상해하지 못하도록 해 가지고 보호를 해 주시는 방편이 하나 있겠고, 암만 막 상해하게 막 지진이 나도 하나님께서 이 집만은 상하지 안하도록 그렇게 또 하실 수도 있고, 그러면. 하나님이 이 방편을 쓰든지 저 방편을 쓰든지 어떤 방편을 쓰든지 우리는 그렇게 보호해 주시기를 우리가 기도해야 되겠다 그거요.
그라고 난 다음에 하나는 뭐이냐? 또 사람이 할 일은 해야 되기 때문에 진정서를 쓰든지 사람을 보내든지 해 가지고 아무래도 시장을 만나야 되겠다 그거요. 시장에게 진정을 하든지, 진정서를 하든지 그래 아니면 시장에게 사람이 가서 방문을 하든지 해야 되겠다 그거요. 그거 둘 하고, 그라고 나면 우리는 집회 가야 됩니다. 집회 가고 난 다음에 그 사람들이 우리가 가고 나서 뚱뚱 두드려 박는 그거는 우리는 상관할 거 없어. 그때까지만 기도하고 그거 하고 난 다음에는 뭐이 어찌되든지 뚜드려 박든지 집이 부서지든지 우리 할 일 했기 때문에 상관없어. 그 이상 우리는 못하기 때문에. 집이 뿌서져 우리가 몰사해 죽으면 하나님의 뜻이면 뭐 몰사해 죽기도 하지 뭐 상관 있소? 그라고 난 다음에는 집회 가서는 생각 안 하고 다 하나님께 맡겨 놓고 우리는 그만 은혜나 받자 그거요.
그러니까, 그동안에는 빠짝 기도해야 돼요, 여러분들이. 바짝. 자, 어제 기도 세 번 이상 한 사람 손들어 봐요. 어제 이 문제 가지고 기도 세 번 이상 한 사람. ○○○이도 기도 안 했는 가베. 봐. 새로 한번 들어 봐요. 바짝, 한번 내가 좀 보구로. 세 번 이상 기도 한 사람. 이래 놓으니까 안 돼요. 하나님이 기도 다 하는 걸 원해요. 기도 다 해야 당신이 원하지 모 두 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로 여기지 안하는데 하나님이 들어 주시는가? 자. 이제 오늘부터는 하루 세 번 이상 기도할 사람들 손듭시다. 네, 감사합니다.
우리는 불쌍한 과부요 과부 한가지요. 이러니까, 주님 앞에 호소하는 거 이 외에는 딴게 없습니다. 우리가 뭐 멱살 잡고 싸우겠소 어짜겠소? 어제 청년들이 한 이십 명 잠을 못자고 고생하고 있는 그것도 그 뭐냐 하면 자꾸 이라면 이거 가서 사정을 하고 못 하게 자꾸 그라기 위해 그런 것이지 그 사람하고 우리가 싸워서 육박전으로 뭐 그래 할 생각 없어. 그건 또 영생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거 자꾸 우리집 무너지는 거 이거 무너지는 거 무너지지 못하도록 기도하는 것도 영생하는 길이요. 또 그 일 하면 안 되니까 하지 말라 하는 그것도 영생하는 길이요, 진정하는 것도 영생하는 길이라. 영생하는 길이 아니면 할 필요가 없어. 우리 할 일 그래 해 그놓고 난 다음에는 또 집회갈 때는 뭐 기쁨으로 집회 가서 하나님께 맡겨 놓고. 다 했으니까 맡겨 놓고 어짜든지 하나님께 맡겨 놔 버리고 가는 그게 또 영생하는 거라. 영생하는 길이 아니면 할 면할 필요가 없어. 영생하는 기쁨이 필요가 없어. 영생하는 방편이 아니 아니면 그 기쁨을 가질 필요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