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법칙 네 가지

 

1981. 5. 28. 새벽(목)

 

본문:창세기 9장 20절∼27절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우리가 진리를 깨닫지 못할 때는 진리에 대한 해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깨달았으면 복잡한 해석은 두고 진리를 굳게 잡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다 보면 우리 환경이 어떤 때는 너무 분주해서 신앙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또 어떤 때는 정반대로 한가해서 공상에 빠지기도  쉽습니다. 또 어떤 때는 너무 두려워서 신앙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어떤 때는  너무 평안하고 좋아서 신앙을 잊어버리기도 쉽습니다.

그러면, 사람과 일과 물건 이런 것들이 다 합력해서 나로 하여금 분주하고  복잡하도록 만드는데 이것은 피 흘려 구속하신 주님이 내 구원을 이루도록  현실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제나 죽는 날까지 변동 없는 현실 속에서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사는 것을 원하는데 이것은 벌써 주님이 구원하시려는 경영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런 사람은 원망하기 쉽고, 불평하기 쉽고, 낙망하기 쉬워서  그런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보면 끓는 물 옆에 아이를 앉혀놓은 것과 같아서  일시적으로는 감사합니다, 기쁩니다,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하더라도 안심이  안됩니다.

귀로 들리고 눈에 보이고 접촉되는 별스러운 일이 천도 만도 넘는데, 우리가  신문을 보는 것도 직접 접하지 못한 일을 보려는 것인데 그런 일이 언제  우리에게도 당할지 모릅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까!’ 하는 사람은 철없는  사람이요. ‘내게도 이런 일이 언제나 닥칠런가?’ 하면서 생각하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내게 안 닥쳤으면 좋겠다 하는 사람은 뒤에 그 일이 닥치면  낙망이 되겠습니다. 또 이런 일은 닥치지 않겠다 하는 그 생각도 벌써  월권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제가 원한다고 됩니까? 이러기에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과연 이런 일이 닥칠 때 내가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 참혹한 일이 닥칠 때  지금의 내 신앙으로는 두말할 것 없이 당황하다가 고민에 빠질 것이니까  아무래도 기도해야 되겠다!’ 하는 이것이 성도의 지혜가 됩니다.

지금은 우리들이 성경 말씀을 잘 모르니까 성경 해석이 필요하지만 이 해석으로  인해서 성경 진리를 알았으면 성경 해석은 필요 없고 성경 진리만 붙들면  간단하고 요긴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천하에도 둘 곳이 없는 복잡한 예수 믿는  도리를 66권 성경에 간단하고 명료하게 함축해서 주셨기 때문에 구원을 이루는  데 필요있게 써먹으려고 하면 복잡해서는 안됩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가르치되 다른 말은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인간이 썩었기 때문에 성경 말씀 열 마디를 들어도 비유 한 마디 듣고 나면 성경  말씀은 간 곳도 없고 한 마디 비유만 또렷하게 남습니다. 그까짓 이야기가  우리를 살릴 능력이 있습니까? 전부 인간들의 이야기요, 인간들의 말이요,  허탄한 이야기지만 혹 성경 말씀을 깨닫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하는 것이니까  성경 이치를 단단히 깨닫고 본문을 거머쥐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 내용도 없는 말인데 고함을 지르고 책상을 두드리면 감동을  받아서 힘이 납니다. 그런 감동의 힘은 흥분이 없으면 사르르 죽어버리는데,  죽었다가도 큰 소리에 충격만 받으면 힘이 불끈 솟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를  내놓으라는 고함 소리가 벼락같이 나면 그 고함소리에는 피동이 안 될 것  같습니까? 피동됩니다. 그런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고함을 치든지 모기 소리처럼 더듬거리면서 말하든지 ‘진리냐, 아니냐!’  여기에 가치를 두고 은혜 받으려는 사람은 모기 소리처럼 들려도 진리라면 생명  내놓을 만큼 힘이 납니다. 그런 사람은 고함을 질러가면서 천언 만언을 늘어놔도  진리가 아니면 가치로 여기지 않습니다.

한 마디를 들어도 진리에 입각해서 은혜 받는 사람은 인민군이 벼락치듯 고함을  질러도 ‘네 까짓게 무슨 소리를 해도 깨지고 망하는 소리라. 마귀 말에는 내가  평생 피동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조금도 마음에 동요가 없습니다. 이런  준비를 하라고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환경을 오늘 아침에 몇 가지로 말했습니까? 네 가지로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어떤 환경이든지 ‘아, 이것은 네 가지 중에 복잡한 것이냐,  한가한 것이냐, 내가 원치 아니하는 두려움에 속한 것이냐, 기쁘고 즐거운  것이냐?’ 이렇게 분류하면 알 수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 알기는 했지만 자기에게는 성경 해석이 많습니까 성경 본문이  많습니까? 해석이 많지요.

그러면 예를 들어서 창고에서 물건을 찾는데 하나만 있는 데서 찾는 것과 만가지  가운데서 하나를 찾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쉽습니까? 알록달록한 물건이 만 개  가운데 검은 물건 하나를 찾는 것이 쉽겠습니까, 검은 것 하나만 있는 것을  찾기가 쉽습니까?  이와 같이 간단 명료하게 가지고 있으면 찾아 쓰기 쉽고, 분주 복잡하면 어느  것인지 찾기가 어렵다 말입니다. 이러니까 성경 해석을 해주면 여러분들이  본문을 깨닫고 이 해석은 버리고 본문만 가지고 있어야 환난을 이기기 쉽다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금 간단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도 복습을 했는데 이 에덴동산 다섯 가지에 대해서 배운 것으로 대략  이 네 가지 현실을 만나서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아, 저 사람 불쌍하고 가련하게 됐다. 신세가 절단  났네!’ 이런 고통스러운 현실을 내가 만났을 때 다섯 가지 중에 어느 것을 써야  됩니까?

천하 사람들이 불행스럽다 하는 현실을 만났을 때에 다섯 가지 중에 첫째는  에덴동산이라 하는 것을 배웠으니까 ‘아, 이것이 내게는 천하에 제일 좋은  곳이라! 여기서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나오고 요긴하고 제일 좋은 것이 있다!’  하는 것을 알고 기쁘게 맞이해야 됩니다. ‘이 보배로운 현실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니까 이 현실에 지금 무엇이 있을까?’ 이렇게 다섯 가지 중에 첫째 것을  써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둘째 것을 쓰면 됩니다. 다스려야 합니다. ‘아, 내가 이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고 명령하시고 감화 감동시켜 주시는 대로  하겠다!’  그 다음에 셋째는 지키는 것이니까,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생각이나  마음이나 소원이나 뜻이나 감정이나 성품은 하나도 용납치 안겠다!’ 이렇게  지키면 됩니다.

그 다음에 넷째는 하나님이 먹으라고 취하라고 하신 그것만 먹고 취합니다. 그게  양식이 되니까 내가 자랍니다. 힘이 생깁니다.

다니엘이 ‘나는 기도는 해야 됩니다!’ 하는 그것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다른  생각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과실을 임의로  따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다리오는 하루 종일 다니엘을 붙들고 실랑이를 했는데 그 실랑이 한  것은 이 다섯 가지 중에 어떤 일입니까? 선악과 따먹으라는 것입니다. ‘이것  봐라, 이것 먹어야 된다!’ 하루 종일 선악과 먹으라고 했지만 다니엘은 먹으면  죽는 줄 아니까 따먹지 않았습니다. 다리오 왕이 ‘한 달 동안만 속으로  기도하고 표를 내지 않으면 된다. 네가 기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해라!’ 하는 그게 선악과 따먹으라는 것입니다.

이걸 모르니까 배워도 재미가 없지요. 여기 와서 진리를 알면 죽인다 해도 죽지  따라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알면 죽어도 달아나지 않습니다. 진리를 몰라  그렇지요. 이렇게 간단히 간추려서 거머쥐고 있어야 급한 현실이 닥치면 척 내어  쓸 수 있지, 간단 명료한 하나님의 진리에 입각하지 않으면 재미있는 말 많이  들은 것 가지고는 참 신앙 생활할 때에는 귀에 즐겁던 일은 하나도 필요가  없습니다.

또 노아에 대해서 어제 아침에 몇 가지로 가르쳤습니까? 어제 아침에 세 가지  가르쳤습니다.

첫째는 무엇입니까? 노아가 천하를 정죄하고 의인되고 구원 얻은 것이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노아가 되도록 하셨기 때문인 것을 그가 깊이  느꼈더라면 하나님 앞에서 우쭐했겠습니까, 머리를 숙였겠습니까? 머리가  숙여지지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니면 다른 사람과 꼭 같이 홍수 속에  시체가 되었을 자신이라고 느꼈으면 홍수 속에 시체들을 생각하면서 노아가  우쭐해야 되겠습니까 두려워해야 하겠습니까? 참 두렵고 감사하고 머리를 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서 날뛴 것은 그가 안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똑 같은 죄인을 살려주셨으니 이분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하실지?’ 이런  마음이 있었다면 포도주에 취하겠습니까? 노아가 성공한 뒤에 실패가  이것입니다. 다윗이 성공한 뒤에 실패한 원인도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과 멸망  받은 인간을 직접 자기와 관련시켜서 생각하는 것을 떠났기 때문에 노아가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됐습니다.

이러니까 성경에 ‘스스로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했고, 바울은  그렇기 때문에 디모데전서 1장에 ‘내가 나된 것이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나를 이렇게 일으키셨다’ 했습니다.

꼭 같은 죄인인데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기는 그렇게 됐고 그 사람들은 멸망  받았으니 그 사람들 보기에 죄송하고 부끄럽고 마음에 미안함이 생겨지겠습니까,  우쭐한 마음이 생겨지겠습니까? 같은 사람인데 그 사람은 꽁꽁 얼도록 밖에  두고, 자기는 뜨뜻한 방에 주인이 영접하면 ‘아따, 저것들은 다 얼어 뒈진다,  나는 뜨뜻해서 좋다’ 이렇게 하겠습니까? 밖에 사람 생각에 불안하고 마음에  미안하겠습니까?  안 됐어야 정상이라 말입니다. ‘나도 얼어죽을 건데 주인이 나를 따뜻하게  해줬는데, 이분이 또 어떻게 할지 모른다’ 이러니까 주인에게 두려움이 생기지  따뜻한 방에 있다고 안심이 되고 좋아지지 않는다 말입니다.

이게 은혜 받은 사람의 태도인데 노아는 이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노아가  성공하고 이제부터 자기 세상입니다. 이러니까 포도주를 실컷 먹고 마음에  흥분이 되어서 벌거벗고 드러누웠다 말입니다.

이것을 어제 세 가지 가르치는 중에 한 가지로 가르쳤는데, 나된 것이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 인해서 내게 좋은 것이 되었다는 이 마음이 우리에게  없으면 그 좋은 것이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성공한 다음에, 돈 모으고 난 다음에, 일을 성사하고 난 다음에, 자기가  지식으로 성공한 다음에, 목회에 성공한 다음에, 병 나은 다음에 무엇이든지  좋은 성사가 된 후에 이 노아 같이 되기 쉽다 말입니다. 잘된 그것이 바울 같이  됐으면 끝까지 보배가 되지만 노아같이 되면 실패라 말입니다.

노아의 성공이 둘째 아들로 영원한 저주를 받게 해서 지금도 흑인종은 저주 중에  저주입니다. 인도에서는 지금도 굶어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간디가  6억명이나 되는 인구가 굶어죽는 길밖에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비참합니다. 흑인종들은 계속 비참합니다. 노아가 저주한 그대로요.

예수님 재림 때까지 그대로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를 배웠습니다. 쉬운 말이 아닙니다. 우리를 얼마나  경성시키고 얼마나 등을 누르는지 모르는 말입니다. 사람이 좋아지면 고생은  잊어버리고 과거의 실수도 잊어버리는 망각성을 가지고 있는데 스스로 됐다고  아는 제일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 스스로 됐다고 하는 것이 들어오면 반드시  그 다음에는 넘어지고야 맙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경제적으로, 명예적으로, 학식적으로, 또 사업적으로,  복음적으로, 목회적으로, 가정적으로 무엇이든지 선 것은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선물로 긍휼로 받은 것이요, 자기와 같은 자들이 멸망 받은 것을 볼  때에 자기도 저와 같은 자요,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저렇게 만들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스스로 됐다는 그게 없어지면 성공이 오고, 자기가 한 자를  섰으면 하나님이 한 자를 세우셨으니 자기로서는 한 자 만큼 꼬부라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우고 자기는 꼬부라져요.

이게 얼마나 실행하기가 어려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이게 쉽습니까? 지금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스로 됐다는 것이 나와 가지고 다  실패합니다. 스스로 됐다고 알다가 실패한 경험이 많습니다. 그걸 경험해서  뼈아프게 녹아지는 일이 없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서고 난 다음에 스스로라는 이것이 나타나서 입술로는 뭐  하나님을 불러도 아니라 말입니다. 자기가 섰을 때에 하나님이 열 길을  올려놨으면 자기는 열 길 땅속으로 기어 들어가야지 이게 없으면 스스로라  말입니다. 입술로는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습니다. 이런데 마구 좋다고 흥분해서  기뻐서 즐거워서 뛰노는 그 속에 무슨 승리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배우고 듣는 이것이 앞으로 반드시 쓰여지는 전쟁이 있습니다. 그때에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 성공했으니까 좋다, 오늘도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것이라, 성공이라,  또 성공됐으니 참 좋다, 나는 부요하다, 이렇게 스스로 됐다는 것이 나오면 나는  망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배은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멸망 받을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사람들과 같은 것이라!’ 이렇게 깨달은 사람은 끔찍스러워서  스스로 된 것처럼 우쭐해지는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 말씀이 쉬운 것  아닙니다. 이 도를 쓰는 것이, 자기에게 도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안 들으면 소용없어요. 이 진리는 고함을 지르면 여러분들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들리지 않습니다. 세미한 음성 속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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