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0 19:04
물질문제-인간문제
1987. 10. 23. 밤(금)
본문:창세기 12장 1절∼13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그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아브라함은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혈육의 자손이 아니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자손이라는 말씀이니 곧 아브라함은 모든 택자들의 신앙의 표본이라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그 신앙을 표본해서 그 신앙을 본받아 그와 같은 신앙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어떻게 믿었으며 또 어떻게 하나님에게 잘못을 저질렀는가 하는 그것을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잘 배워 가지고 아브라함이 실패한 것은 우리가 그런 실패에 들지 아니하도록 노력해야 되겠고, 또 아브라함이 지킨 그 행위는 우리도 지켜서 가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신앙 법칙을 주신 것이 곧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신앙 법칙으로 주신 것이요, 또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것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 생활한 그 믿음 생활을 본받아 그대로 할 때에 아브라함이 온갖 하나님의 복을 받은 거와 같은 그런 복을 우리들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의 그 신앙 생애를 우리가 깊이 연구해서 우리의 표본으로, 거울로, 또 신앙 행위의 그 척도로 그렇게 지키는 것이 아브라함의 신앙 자손이 가질 행위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첫째 명하시기를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이것을 첫째 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내 명령을 순종할려고 하면 떠나라.” 첫째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명령이요 아브라함이 제일 처음에 지켜야 할 믿음입니다.
둘째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에게 어디로 가라든지 가라 하면 가라 하는 그곳으로 가라 하는 이것이 둘째로 하나님이 명령하신 명령이요 아브라함이 지켜야 할 믿음입니다.
그리하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그리하면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또 둘째로는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그러면 네 이름이 아주 창대해서 세상뿐 아니라 영원토록 네 이름이 창대하게 되리라. 또 셋째로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모든 사람이 복받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복의 근원이 될지라는 말씀은 복의 근거가 될지라,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는 말씀입니다. 복의 뿌럭지가 될지라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 다음에 넷째로 복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리라” 이것을 하나님 또 약속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을 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위해 주시고 아브라함을 해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해하고, 아브라함을 멸할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멸하고 아브라함을 북돋우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북돋아 준다. 이런 큰 축복을 넷째로 말씀했습니다.
다섯째로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서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는 이 말씀은 곧 영원한 구원의 복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러면 이 다섯 가지 축복을 말씀했습니다.
기독자에게 이 다섯 가지 축복은 이것은 세상에서 있다가 없어질 축복은 아닙니다. “큰 민족을 이루고” “큰 민족을 이루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큰 민족 이룬 그 민족은 세상에서 끝나지 않고 영원 무궁토록 계속합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그 민족이 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나사로도 아브라함의 품안에 있었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슬하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것도 영원한 축복입니다. “네가 큰 민족을 이루고” 또 “네 이름이 창대하리니” 그러면 이 이름이 창대해지는 것, 땅위에서 사람 쳐놓고 아벨의 이름이 창대해졌고, 또 아브라함의 이름이 창대해졌고, 그 뒤에도 모든 선지 사도들의 이름이 창대해졌습니다. 그래서 제일 창대하기는 예수님의 이름이 제일 창대해졌습니다. 이래서 요한계시 21장에 보면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이 다 십이 지파가 기초가 됐고 십이 사도가 다 진주문이 된 것으로 그렇게 표시돼 있습니다.
또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네가 모든 복의 근거가 될지라, 이것도 땅에 있는 복뿐만이 아니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는 그 복만이 아니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원한 복 또 세상복 그것을 아브라함 너를 통하여 다 복을 받게 된다는 것으로 복의 근원이 될지라 이랬습니다.
또 “너를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도 그를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를 저주하겠다” 그러면 이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될 뿐만이 아니라 저주의 근원도 됩니다. 이래서 아브라함을 복과 저주받는 근원으로, 아브라함을 해하면 하나님이 그를 해하고 아브라함을 위하면 그는 위하도록, 곧 아브라함과 하나님은 하나되어서 역사한다 하는 것을 여게 보입니다. 하나가 되어서 역사한다.
그라고 “천하에 있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서 복을 얻는다” 하는 이 복도 곧 영생의 구원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래서 우리에게 전해 온 이 도를 가리켜서 복음이라 그렇게 말씀을 합니다.
그러면 이 다섯 가지 이 축복은 기독자에게만 있는 축복입니다. 이 다섯 가지 축복은 금생과 내세 영원 무궁토록 있는 축복인데 이 축복은 금생에도 충만할 수 있고 또 무궁세계에서도 충만할 수 있습니다.
기독자가 금생과 내세, 육과 영,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자들 이들이 이 다섯 가지 축복을 받는 데에는 세 가지 순종 생활 믿음 생활에서 이루어진다. 요 세 가지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이 다섯 가지 축복을 주시고 이 세 가지 믿음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이 다섯 가지 축복 중에 하나도 그에게는 가지 않습니다.
꼭 다섯 가지 축복은 이 세 가지 믿음 지키는 것, 세 가지 순종 지키는 데 한해서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이 세 가지 믿음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에게 받을 영원한 복은 절대 없습니다.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에 이렇게 말씀해 놨기 때문에 변치 안할 뿐 아니라 우리가 이 약속하신 말씀의 뜻을 깨닫고 보면 절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혹 물 없는 공중에 고기가 놀고 자라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마는,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라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하나님이 못 하십니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 세 가지 믿음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는 없습니다. 축복을 못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 가지 믿음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축복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축복할 능력이 없다 말은 하나님은 죄를 지을 수가 없다는 말과 꼭 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믿음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축복하는 것은 죄가 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만큼 중대한 문제가 여게 있는 이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겠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조상에게 쉬운 것 같으나 이 세 가지 명령을 말씀하시면서 이 세 가지 명령을 지키면 이 다섯 가지 축복을 주겠다 이 다섯 가지 축복 외에 또 딴게 뭐 있겠습니까? 딴거 없습니다.
이 다섯 가지 축복 외에 딴 축복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외에는 다 저주와 화뿐이지 이 다섯 가지 축복에 빠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다섯 가지 축복은 세 가지 순종에 있다 하는 요것을 굳게 잡고, 그러면 이 세 가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다섯 가지 축복을 주셨고, 이 세 가지가 없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축복해 주실 수가 없다, 축복해 줄 수가 없다, 하나님은 축복해 줄 그런 힘이 없다, 절대 축복해 줄 수 없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은 당신은 삐뚤어진 일을 하지 못합니다. 범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은 곧 죄가 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순종이 없는 데에 하나님은 축복하는 것은 죄가 되기 때문에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는 “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요것이 둘째 명령입니다. 셋째는 “지시하는 그 땅에서 살아라” 지시하는 그 땅에 살아라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셋째 명령입니다.
이랬는데 아브라함은 첫째 명령을 잘 순종했고 또 둘째 명령을 잘 순종했습니다.
셋째 명령을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벧엘과 아이 사이 거게 장막을 치고 하나님이 거게 살라고 “이 땅을 내가 너에게 줬다” 이랬으니까 하나님이 다시 이 땅을 떠나서 어데로 가라고 명령할 때까지는 그 자리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자리에 살지를 못했습니다. 너무 흉년이 들어서 기근이 심해서 견디지를 못해 그곳을 하나님의 명령 없이 제맘대로 그곳을 떠나 가지고 애굽으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가 가지고 그 뒤가 어떻게 된 것은 여러분들이 여러 번 들었고 또 성경을 읽어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줄 압니다.
그곳에 가서 큰 낭파를 당했습니다. 어떤 낭파를 당했는가? 하나님이 그를 돕지 안했다고 하면은 가정도 파괴되고 또 아브라함의 생명도 다 죽고 완전히 전멸되는 그런 길을 걸어갔습니다. 전멸되는 길을 걸어가서 전멸 속에 들었는데 하나님이 그를 도와서 그 멸망에서 구출은 됐어. 구출돼서 그가 다시 본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벧엘과 아이 사이 처음에 장막 치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돌아올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왔을 때에 축복해 주셨습니다.
셋째로 그에게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이곳을 너에게 준다고 하시면서 여게 머물라 했기 때문에 거게서 장막을 치고 제단을 쌓고 거게 있었습니다. 거게 있었는데 하나님이 지시할 때까지는 그곳에 사는 것이 믿음인데 아브라함은 너무 견디기가 어려워서 견디지 못하고 그만 어려움을 피해서 슬슬 애굽으로 갔다가 사탄이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안하고 도리어 사람 일만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탄이 당장 됐습니다. 좀전에는 아주 온 교회를 맡긴다고, 천국 열쇠도 준다 했고, 네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도 하셨고, 네 이름을 반석이라고도 하셨고 이렇게 하나님이 칭찬하셨지마는 하나님의 일 생각지 안하고 자기 일 생각하니까 당장 사탄이 돼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하시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셋째 순종은 뭐인고 하니 셋째 순종은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인내의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은 인내를 못 했습니다. 인내를 못 하고 실패한 것으로써 큰 재를 저질렀고 크게 자멸 자살하는 구멍에 들어간 것을 하나님께서 거게서 구출해 내셨습니다.
우리는 여게서, 아브라함의 그 신앙이 첫째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시는 데에 떠난 그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또 지시할 곳으로 가라 하는 그 명령을 잘 지켜서 지시하신 곳으로 갔습니다. 이제 그곳에서 하나님의 명령이 다시 내릴 때까지는 머물러 참고 견디고 있어야 되는데 견디지 못해서 실패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그 신앙을 쭈욱 살펴보면 아브라함은 회개의 사람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셋째 인내를 하지 못하고 인내의 순종을 하지 못함으로 실패된 그 일을 인해서 그 다음에 다시는 인내에 실패한 일이 없었고 또 물질로 실패한 일이 없었고 사람으로 실패한 일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갈 때 그때에 벌써 갔다가 벧엘로 돌아가면서 물질 시험에 실패한 것을 깨달았고 인간 시험에 실패한 것을 깨달아서 그는 여생에 물질로 실패해서 주님을 거슬리는 일이 없었고 사람으로 실패해서 주님을 거슬린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인간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배반한 일이 없었고 물질로 인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중단시킨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여게서 우리 신앙 생활은 세 가지입니다. 세 가지. 하나는 이 본토와 친척 문제, 둘째로는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순종해 가는 문제, 셋째로는 하나님이 지시한 그 땅에서 다시 당신의 지시가 있기까지는 죽어도 그 자리서 죽고 배를 곯아도 그 자리서 곯고 하나님이 지시한 그곳에서 살고 그 지시한 곳을 떠나지 안합니다. 이 세 가지가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된 우리들이 지킬 믿음이요 이 세 가지 지키는 믿음, 믿음의 결과로 다섯 가지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요것을 작은 문제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의 그 본토는 작게 말하면 자기 곧 자기 동리일 것입니다, 자기 동리.
자기 동리에 뭐 골목에도 정이 들었겠고, 돌팍에도 정이 들었겠고, 거게 짐승에도 정이 들었겠고, 초목에도 정이 들었겠고 모든, 사람 제외한 모든 그 물질에 다 정이 들고 인연이 맺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조금 범위를 넓히면 자기 면이 될 것이고, 더 넓히면 자기의 도가 될 것이고, 더 넓히면 자기의 나라가 될 것이고, 더 넓히면 자기가 사는 동양이면 동양 서양이면 서양 그 주가 될 것이고, 더 넓히면 지구 땅덩어리가 될 것이고, 더 넓히면 이 물질계 우주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요것을 종자적으로 이렇게 움싹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한 말로 말하면 네가 모든 물질, 사람을 제외한 모든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 다음에는, 친척이라고 말하면 자기 부모 형제 처자일 것이요, 그 다음에 차차 차차 자기 뭐 사촌 오촌, 또 자기 사가간, 자기 동리 사람, 자기 면 사람, 자기 나라 사람, 동양 사람, 또 세계 사람 전 인류까지 다 범위가 넓어져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깊이 우리가 생각해 보면 네가 신앙 생활로 주님에게 순종하여 믿음을 지킬라고 하는 데에는 모든 이 물질계에 온갖 물질들에 대한 이 문제를 네가 바로 해결해서 이 모든 만물관, 이 만물관을 네가 신앙으로 바로 가져야 된다. 또 넓혀서 전인류관을 네가 바로 가져야 된다. 만물관과 인류관을 바로 가지고 바로 취급하지 안하면 너는 신앙 생활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축복은 받지를 못한다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것은 이해가 됩니까? 간단하게 여게는 “본토” 했지마는 본토가 차차 차차 범위 넓히면 모든 우주와 물질계 이 우주가 된다는 것, 범위를 넓히면 다 우주가 된다는 것, 또 친척을 말했지마는 부모 형제 처자 여게서 번져나가서 전인류를 다 여게 포함시켜서 말씀한 것으로 그렇게 이해가 됩니까? 이게 이해가 돼야 됩니다.
이것을 들어서 말씀한 것입니다.
여게 보니까 본토 친척을 떠날 때에, 본토 친척을 떠날 때에 그들이 어떻게 떠났을까? 떠날 때에, ‘에, 이 원수스러운 놈의 본토, 원수스러운 놈의 뭐 인간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하고서 그래 갔을까? 분명히 거게서 다 ‘가지 마라 가라, 이래 뭐 잘 있으라.’ 하며 떠날지라도 다 눈물로 헤어진 것은 필연할 것입니다. 눈물로 헤어진 것은 필연일 것이오.
여게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순종하기 위하여, 하나님에게 순종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하여 이 모든 물질 문제 인간 문제를 참 떠날 때에, 내가 그를 두고 떠날 때에, 그와 나와 인연을 끊을 때에, 내가 그를 같이 있지 못하고 거게서 떨어져 나올 때에, 떨어져 나올 때에 그때에 눈물을 흘리면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 이것이 요 성경적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여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뭐 원수라 떨어져 나오는 게 아니라.
또, 나올 때에 거게 보니까 아브라함이 그러면 친척이라고 사람을 다 떼내 버리고 왔느냐? 자기의 아내도 데리고 왔고, 또 조카도 데리고 왔고, 또 거게서 얻은 모든 종업자들도 데리고 왔고, 또 거게서 자기가 모은 모든 소유도 다 가지고 떠났습니다.
그러면 여게서 또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뭐인가? 우리가 이 모든 물질 문제, 꼭 내 본토만이 아니고, 땅위에 있는, 우리가 차차 차차 넓어지게 되면은, 물질 문제라면은 우로도 물질이요, 풍우도 물질이요, 일월성진도 물질이요, 모든 물질 문제 그 모든 물질은 하나님의 명령 순종하기 위해서, 하나님 명령을 순종하는 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데에 도움이 되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에 같이 협동이 되면 그것은 다 가지고 이렇게 믿음을 지킬 수 있다면 그걸 가지고 믿음을 지키지마는, 만일 그것이 믿음 지키는 데에 방해가 될 때는 부득이 그것을 네가 눈물로 서로 작별을 하고 거게 붙지 안하고, 눈물로 작별하고 거게 붙지 안하고 거게를 떠나서 주님의 인도를 따라가야 되지, 그것을, 거게 필요성이나, 애착이나, 딱한 사정이나 뭐 별별 그런 것들이 많을 터인데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같이 순종할 수 있고 순종하면서도 가질 수 있는 물질, 순종하면서도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 같이 신앙 걸음을 갈 수 있는 사람, 이 사람은 같이 가되, 주님의 인도를 따라 주의 뜻대로 그 명령 순종할라고 할 때에 순종하고는 가질 수 없는 물건, 순종하고는 같이 있을 수 없는 사람 요것은 네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어쨌든지 요것은 네가 거게서 떨어져 나와 떠날 수 있어야 되지 거게 떨어져 나와 떠나지 못하면 너는 신앙 생활은 안 된다. 요것이 아주 첫째 조건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공연히 거게 “본토” 했는데 ‘본토 한 것을 뭐 넓혀서 확대해서 면을 말하고, 나라를 말하고, 지구 땅덩어리를 말하고, 이 물질계 우주를 다 말하고 자꾸 이렇게 확대해서 말한다는 그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는가?’ 요렇게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해 보면 이거는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닥쳐옵니다.
그런고로 이것은 역부러 확대를 해서 지내치게 말하는 게 아니고 요게서 말했는데 우리가 신앙 생활을 실지로 해 보면 주님의 명령 순종할라고 할 때는 비도 거리낄 때가 있습니다. 바람도 거리낄 때가 있습니다. 흉년도 거리낄 때가 있습니다. 풍년도 거리낄 때가 있습니다. 일월성진도 거리낄 때가 있습니다. 이 우주도 거리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본토라 하는 것은 땅을 말했기 때문에 땅은 흙만이 말한 것이 아니고 땅은 거게 있는 짐승도 풀도 곤충도 또 넓게 말해서 이 물질계 되는 이 전부도 다 연관성 있는 그것을 여게서 우리에게 하나의 구원 도리로, 믿음의 도리로 가르치신 것이기 때문에 여게서는 본토를 떠났는데 우리는 본토 문제, 주님에게 순종할라 할 때에 본토 문제가 거리낄 때는 본토를 부득이 눈물로 아깝지마는 이별하고라야 순종하는 것처럼 우리가 주의 명령 순종할 때에 이 우주 문제도 모든 물질계 모든 문제도 그 문제를 참 안타깝고 그거 없는 데로 갈라 하면 우리가 죽는 일이지마는,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하지마는 그런 것까지도 우리가 다, 눈물을 흘리면서 아깝고 없으면 기가 차지마는 주님의 명령 순종할라고 하면은 그것도 내가 두고 떠나지 안하면, 그 애착을 떠나서 내가 그 모든 것을 두고 눈물로 두고, 기가 차고 원통한 거 두고라야 주님의 명령을 순종할 수 있는 그런 것을 우리가 신앙 생활에서 자주 접촉해 보게 됩니다. 또 사람도 그러합니다.
이래서, 제일 주님이 요구하신 첫째 명령 순종이 뭐인가? 이 물질계의 모든 거게 우리가 과거에는 속해 살았고, 그것을 믿었고, 그것을 소망했고, 또 그것에게 붙들렸고, 그것을 따라서 피동으로 움직였고 했었는데 땅위에 물질계의 이 모든 물질이라는 이 전부의 문제를 네가 해결 단정짓고 주님 명령 순종하는 여기에는, 아깝지마는서도 물질이 거리낄 때에는 물질의 이 모든 것을 떠나지 안하면 주님 명령 순종하지 못한다.
주님 명령 순종할 때에 인연을 끊지 않고 떠나지 안해도, 떠나지 안해도 주님을 따라갈 수 있으면 좋지마는 떠나지 안하고 주님에게 따라갈라고 하면은 그게 나를 따라와야 되지, 그게 나를 따라와야 되지 그게 나를 따라오지도 안하는데 저는 제대로 있는데 내가 거기 따르든지 주님에게 따르든지 두 군데 중에 하나 따르지 양쪽을 다 따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질도 그러하고 사람도 그러하고, 물질은 비도 물질이요, 바람도 물질이요, 추위도 물질이요, 해도 달도 물질이요, 공기도 물질이요 다 물질이라.
산다싱이 시체굴에 들어갔을 때에 그때에 제일 시험이 어렵다 했는데 거게는 산소가 하나도 없어. 악취뿐이고 산소는 하나도 없어. 하나도 없는데 거게서 그런 가운데서 제일 어려움에서도 그는 하나님에게 부르짖고 하나님께 달라붙었지 거게서 만일 어떤 그 좋은 공기가 옆에 있다고서 그리 피해 가지 안하고 거게서도 끝까지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하나님으로 해결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문제가 얼마나 큰 문제인가 이것을 우리가 깨닫고 여게서 미리부터 기도하고 이런 것을 확정짓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랬는데 거게 보니까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래와” 이 사람은 데리고 갔어. 이 사람들은, 만일 그때 아브라함에게 사래가 ‘이 영감이 지금 칠십다섯 살이나 되면서 노망했네, 나는 여기 본토 떠나지 않겠다.’ 했으면 아브라함이 그 자기 아내를 데리고 갔겠습니까 붙들려서 안 가고 말았겠습니까? 아내는 두고 자기 혼자 갔을 것입니다.
아내가 따라갈라 하니까 같이 갈 수 있으니까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은 같이 갔습니다. 같이 하나님 명령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다 같이 갔소. 롯도 같이 가자 하니까 따라갈라 하니 같이 갔고, 또 모든 얻은 사람들도 다 하나님 지시하는 곳으로 아브라함 가는 데에 자기도 하나님 명령 순종해서 같이 가겠다 하는 사람은 다 같이 갔습니다.
같이 가지 안할라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도 그 사람은 자기가 그 두고 떠나지 안하면 하나님에게는 순종 못 합니다. 이거는 할 수가 없어. 물질도 그러하고. 이래서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도 다 가지고 갔어, 모든 소유도. 여기에 큰 뜻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신앙 생활이 장성해 감에 따라서 본토에 대해서 동리 시험도 있을 것이고, 면 시험도 있을 것이고, 군 시험도 있을 것이고, 나라 시험도 있을 것이고, 세계에 이 물질의 시험도 있을 것입니다.
이랬는데 아브라함은 이 셋째에 참고 견디라는 그것을 견디지 못해서 실패하고 난 다음에 회개해서 벧엘로 돌아가 가지고는 이 물질로 인한 시험에 한번도 떨어지지 안했어. 조카로 더불어 시비될 때에도 뭐 서슴지 않게 완전히 단정짓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명령 순종하는 데 물질이 조그마치라도 제재를 주거나 방해를 하는 그 방해를 받지 않기로 단정지운 그 아브라함에게는 롯과 시비할 때에 하나님을 근심되게 하는 그런, 물질로 인하여 하나님을 근심되게 하는 그런 일을, 섭섭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안했어.
또 그 다음에 롯이 포로돼 갔을 때에 그 적산이 그렇츰 많았지마는 적산이라는 그 물질 가지고 아브라함은 조금도 시험 들지를 안했어.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실나끈 하나도 내가 그것을 탐하고 취하지 않겠다. 하나님으로 내가 부요하지 너거 적산 가지고 부요됐다고 그런 소리 내가 듣기 싫다.’ 하나님 영광 돌리기 위해서.
그 후로는 아브라함의 생애를 볼 때에 물질에 대한 시험을 한번도 받지 안했습니다. 완전히 그는 물질에 대해서 획선을 긋고 물질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축복에 꼭 매여서 살았습니다.
그는 또 사람에게 붙들려 매이지를 안했습니다. 롯으로 더불어 시비할 때에 롯의 가족보다는 아브라함의 가족이 더 많았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족들이 아브라함에게 대해서, 물론 롯의 가족들이 하니까 그보다 더 심했을 것입니다. 사람도 많고 큰집이고 원리가 또 그것이 큰집이 그와 같이 하는 게 마땅하기 때문에.
얼마나 심했지마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따르는 일에 있어서 사람에게 대한 털끝만치도 구애를 받지 안했습니다. 완전히 해결짓고 다시는, 한번 애굽으로 돌아간 그 실수하고 난 다음에는 철저하게 회개하고 다시는 하나님을 근심되게 하지 안했습니다.
그뒤에 마지막으로 시험에 하나님이 만민의 복의 근원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하나님의 기적으로 백 세 돼서 낳은 독자 이삭, 이삭이지마는 하나님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할 때에 아브라함은 그 마음에 한 모퉁이도 주저되지 안했습니다.
조금도 주저 안 하고 ‘이제, 인간으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겠다.’ 요거 단정짓고 살았습니다. ‘인간으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과 내가 조그마치라도 멀어지거나 그 사이가 벌어지거나 하나님께 대해 조그마치라도 거리끼지 않고 주저하지 않겠다.’ 단정했기 때문에 이삭에도 요동치 안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신앙은 그후 물질과 사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명령 순종에 조금도 주저하지 안한 요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런 것을 단정짓고 살지 안하면 마귀란 놈은 콧노래 부릅니다.
그까짓 거 유명한 목사, 부흥사, 뭐 대개혁가, 대학자, 신령한 목사, 큰 교회를 인도하는 목사, 암만 떠들어 쌓아도 마귀는 ‘저까짓 거야 잡아서 다래끼 안에 넣어 놓은 고기라’ 다래끼 안에 넣어 놓은 고기. 여기 바다에 가보니까 대로 만든 이만한 큰 다래끼가 있는데 그 안에 보니까 꿈장어도 있고 뭐 뭐 잉어도 있고 오만 거 다 있습디다. 제맘대로 그 안에 좀 자유는 없지만 좀 놀고 있어.
이래도 그것은 잡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며칠 지내면 하나도 없이 다 구워 먹어요. 딱 보고서 ‘조놈 주십시오’ 하면은 깔고랭이 가지고 탁 찍으면 콕 찍혀 딱 나와서 껍데기 홀랑 벗겨 가지고 구워 먹어.
이거 모양으로 이제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짓지 안한 사람 그 사람은 아무리 제가 신앙 생활 한다 해도, 왜정 말년에 다 꼭 찍혀서 껍데기 벗겨서 회해 먹게 된 그것은 뭐이냐 하면은 다 요 문제를 해결 못 해 그래. 물질 문제, 인간 문제 해결을 못했기 때문에 다 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일차 순종, 이차 순종은 문제없이 했지마는 삼차 순종에 그가 실패했으니 삼차 순종이 얼마나 어려운가? 삼차 순종은 뭐인가? 하나님이 지시한 그 땅에, 다시 명령이 있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참고 견디는 것이 제일 어려워.
참고 견디는 것이. 하나님이 떠나라 하기 전에 거기 있어야 되니까 배가 고파 못 견디겠거든. 죽을 지경이라.
이것이 하나님이 머물라 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참고 견디는 인내의 시험 이것이 제일 어려운 시험입니다. 이 세 가지 시험.
첫째 둘째 이 시험은 좀 쉽습니다. 이 시험은 좀 쉬워. 이 시험 이긴 사람들 많아요. 이 시험을 이긴 사람들은 많아. 이겼다고 해도, 폭풍이 불고 마구 노아 때와 같이 홍수가 내려서 마구 죽어지게 되면 그때에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어떻게 되나? 참 넓게 생각하면 기막힙니다.
사람 문제 이것도 쉽지마는 이것도 깊이 생각하면 얼마나 어려운지. 저는 사람 시험에 대해서 오늘도 제가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아침에 산에 가서 기도하면서 무슨 기도했느냐 하면은, 사람 문제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요 사람 문제에 대해서, 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홍순철 목사를 암으로 하나님이 데려갔어.
또 전성수 목사를 하나님이 암으로 데려갔어. 또 추순덕 전도사를 암으로 데려갔어. 또 서 목사를 젊은 사람을 데려갔어.
여게 대해서 내가 오랫동안 기쁨이 없고 그저 마음에 참 보배 잃은 것처럼 섭섭하게 그저 겨우 섭섭함이 좀 어떻게 좀 사라질라 하면은 또 한 건 생기고 또 한 건 생기고 자꾸 이래 생겨서 할 때에, 그래 내가 오늘 아침에, 오늘 아침에사 깨달았어. ‘요것이 인간에 대한 시험이라.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했는데 내가 떠나지 안했기 때문에 요런 충격을 받았고 떠나지 안한 요 증거로구나. 요거 나를 떠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요런 시험도 나에게 닥치게 했구나.’ 제가 아침에 기도하고 또 단정을 지웠습니다. 단정을 지웠어.
또 뭐 이 물질에 대해서 물질 시험이 얼마나 뭣이 내가 상상도 못 할 그런 것이 어데서 기다리고 있는지? 인인 관계의 시험이 어데서 기다리고 있는지?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오늘까지 인간들이 물질에 매여 있고 인간에 매여 있기 때문에 전부 물질을 하나님으로 인간을 하나님으로 삼고 살았기 때문에 이 두 우상을 완전히 버리고, 물질 우상, 인간 우상 이것을 완전히 주의 명령 순종하기 위해서 주의 명령 순종에 거리끼는 것은 부득이 이런 것을 떼놓고 이런 것을 떠나서 주의 명령 순종할 수 있는 이 사람,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물질이나 사람을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혜로는 가지고 떠났어. 아내도 따라올라 하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준 아내요, 은혜요.
조카도 따라올라 하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붙여 준 조카요, 모든 사람들도 따라올라 하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붙인 거라 말이오.
하나님의 선물인 은혜로는 가져갔지마는 하나님께 거리끼는 우상으로서는 가지지 안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상으로는 가지지 못하게 하고 은혜의 선물로 가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라고 주님이 어데로 인도하든지 그저, 요것도 우리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항상 형통을 원합니다. 형통하면 감사하다 합니다. 교역자들도 좀 큰 교회 가라 하면은 ‘아이구 감사합니다.’ 당장 이동합니다. 큰 교회서, 좀 작은 교회나 큰 교회나 다 교회는 교회인데 가라 하면 싫어합니다. 우리가 순종에 대해서도 얼마나 이거 우리가 참 옹졸하고 약한지? 이래서 이 순종도,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지시한 땅으로 가라” 지시한 땅으로 가라 해서 지시한 땅까지 갔습니다. 만일 가다가 불로 들어가라 하면 불로 갔을 것이오. “지시할 땅으로 가라” 어데든지 지시할 땅이라 말은 거게 이 지면을 말해. 지시할 곳으로 가라 말이요, 지시할 곳으로. 지시할 현실로 가라 말이요, 지시할 처소로 가라 말이오. 이것도 우리가 미리부터 기도하지 안하면은 판판이 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되 내 주관에 맞으면 감사하고 기뻐하지마는 내 주관 전폭이 다 부인되고 내 주관 전폭이 다 반대될 때에 그때에 우리가 어떻게 될까? 주님은 꼭 우리가 매이기를 물질에 매였고 사람에게 매였기 때문에 여게서 똑 떼서, 똑 떼서 당신에게 딱 매이도록 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이십니다.
똑 떼서 당신에게만 딱 붙어 있을 때에 당신은 모든 사람을 준다 했습니다.
명예를 준다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너 때문에 복 받는다. 모든 사람에 복의 근원이니까 모든 사람에 복덩어리가 된다는 말이오. 너를 반대하는 자는 내가 반대할 것이고 너를 환영하는 자는 환영하겠다. 모든 인류가 너로 인하여 복 받겠다.
이렇게, 인간을 떼라. 주의 명령 순종을 인하여서 인간에게서 떠나라. 그러면 내가 인간을 너에게 주겠다. 주의 명령 순종하기 위해서 물질을 떠나라. 그러면 내가 물질을 너에게 주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가 이거 참, 작은 문제 아닙니다. 신앙이 있는 대로 생각하면 넓고 넓고 깊고 깊고 길고 길고 높고 높습니다. 있는 데까지 끝을 해서 물질관을 바로 가져서 완전 해결, 인류관을 바로 가져서 완전 해결, 이거 하기 전에는 항상 그물 속에 들어 있는 고기이기 때문에 암만 해 봤자 그거는 마귀의 것이요 거게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