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0 10:16
망하는 원인
1987. 9. 24. 새벽 (목)
본문:시편 1편 1절∼3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지난밤에도 세 가지를 간추려서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하나는 기독자들이 어떻게 해서 망하는가? 망하는 그 원인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는데 믿지를 아니하고 망하는 원인이 어떤 사람에게 있다고, 자기는 뭐 부모가 죄를 지어서 선조의 죄값으로 그렇다 이렇게 선조에게 자기 흥망을 전가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도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부모의 범죄한 그 죄를 자녀에게 자손에게 책임지우지 않는다고 성경에 똑똑히 말씀해 놨습니다. 에스겔서를 가 찾아보면 여러분들이 알 것입니다.
여러번 말했습니다.
형제간이든지 친구간이든지 이웃의 범죄한 그 죄값으로 제가 망한다는 이런 생각 가지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꼭 죄 지은 그자에게 죄의 값으로 망치지 다른 사람의 죄를 책임지우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계명에 「네가 범죄하면 자손의 삼사대까지 갚는다」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가?’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을 가지겠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범죄하는 그 범죄의 영향이 당대만이 아니고 삼사 대까지 미친다 하는 그 말입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의 선조가 범죄하면 범죄하는 그것을 그 자손이 보고 듣고 접해서 거게 물들어서 자손도 그만큼 범죄하기 때문에 범죄한 것만큼 망합니다.
제가 죄를 짓고 아무리 수단이 좋아서 이리 저리 해도 하나님은 그 수단에 떨어지는 하나님이 아니고 아무리 제가 묘하게 덮고 가루어도 거게 하나님은 떨어지는 하나님 아닙니다. 당장에 징계가 없으면은 그 징계는 앞으로 큰 것으로 오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위에 사람이 범죄하면 그 범죄하는 데에 본을 떠 가지고서 거게 물들어서 자기도 범죄하기 때문에 그 범죄가 자꾸 물들어 나가기를 삼사 대까지 나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범죄한 그 죄값을 삼사 대까지 받는다는 그런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망하는 원인을 이 지난밤에 공부한 대로 성경, 다른 데도 다 그러합니다.
시편 1편에 “망하는 것은 악으로 인해서 망한다” 그랬습니다. 악 때문에 망한다.
“악 때문에 망한다” 이 악이라는 것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또 범위를 넓혀서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 자기도 피조물이요 모든 피조물 그것도 자기로 인해서 자기에게 관련되기 때문에 어짜든지 죄의 뿌럭지가 자기 위하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입니다. 모든 죄는 자기를 위주로 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그것이 인간의 원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망하는 것은 전부 하나님보다 자기, 하나님 위하는 것보다 자기 위하는 거, 하나님 중심보다도 자기 중심, 이것은 그만 모든 죄악의 종자입니다. 이것이 원죄입니다. 원죄로 인해서 본죄가 생겨지는 것입니다.
악은 자기 중심 원죄인데 원죄로 인해서 망하면 망치기는 누가 망치는가? 몇 가지가 망친다고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두 가지가 망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망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망쳐 버립니다.
하나님이 망치는 것은 성공도 망치는 것도 하시는 일이 서서히 하십니다.
하나님이 봄을 오게 하시는 것도 봄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게 가다 보면 좀 있다 보면은 봄이 왔고 벌써 있다 보면 봄이 가는 줄 모르게 다 가 버리고 여름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그렇게 유유하게 하시요, 인간 모양으로 그렇게 짧게 단편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화원에 기르는 그 꽃이 자라는 것 암만 봐야 자라는 것 안 보입니다. 제가 아무리 정신차려 봐도 자라는 게 안 보입니다. 그러나 하루를 지내고 보면은 자라졌어.
이틀을 지내고 가 보면은 더 많이 자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라는 것을 사람들이 볼 수 없게 서서히 그렇게 능숙하게 기르십니다. 망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망칩니다.
또 누가 망치는가? 자기 악이 들어서 자기를 망칩니다. 자기 악이 들어서 어떻게 자기를 망치는가? 그 악이 들어서 쭉정이를 만듭니다. 악이 알맹이가 들지 못하게 합니다. 알맹이가 뭐인데? 알맹이는 악과 정반대 되는 것입니다. 알맹이는 악과 정반대 되는 것입니다. 알맹이가 뭐인데? 예수님의 열여섯 가지 구속 이것은 전부 조물주 중심이요 하나님 중심이요 그 위주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와 제일 일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에 정반대인 원수를 자기가 가졌기 때문에, 뭘로 가졌어?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그것입니다. 그걸 가졌기 때문에 알곡이 되는, 하나님의 재앙이나 심판이나 멸망이 와도 꼼짝도 안 하고 멸망되지 안할 그것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에 그걸 마련치 못하고 하나님이 멸망시킬 때 멸망할 것만 마련합니다.
하나님이 심판할 때에 정죄받을 것들만 마련합니다. 그게 뭐인데? 악이 들어서 마련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악을 가지고는 예수 믿는 사람이 성공을 못 합니다. 제가 젊으니까 뭐 우선간 좀 얼마 동안 살고 또 처음 시작이니까 아직까지 그것이 그릇이 차지 안했으니까 멸망이 되지 안하고 있지 그릇이 차면은 그 멸망은 어누리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자가 망하는 것은 악으로 인해서 망한다. 그걸 단단히 기억합시다. 악은 뭐이냐? 자기 중심 자기 위주,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입니다.
왕을 중심하고 위주하는 것도 악입니다. 부모를 위주로 중심으로 하는 것도 악입니다. 자기 가정을 위주로 중심하는 것도 악입니다. 민족을 위주로 중심하는 것도 악입니다. 이 세상 과학을 위주로 중심하는 것도 악입니다. 돈을 위주로 중심하는 것도 악입니다. 자기를 위주로 중심하는 것도 악입니다. 전부 악입니다.
악으로 인해서 인간은 망합니다.
망하기는 왜 망하는가? 하나님이 망치기 때문에 제가 망합니다. 하나님이 망치는데 또 다른 게 망치는 건 뭐인가? 악이 들어서 망칩니다. 악이 들어서 왜 망쳐? 악이 들어서 자기를 살려고 악을 사용하고 있는데.
악은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데에 하나님의 재앙에 하나님의 심판에 멸망하지 안할 수 있는, 천인 만인이 멸망해도 하나님의 재앙이 거게는 상관 없는 이런 알맹이와 같은 멸망하지 않는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는 그 기회에 악 그놈이 들어서 그것을 하나도 만들지 못하게 했고 하나님의 심판에 멸망할 그런 것들만 자꾸 만듭니다.
악. 자기 중심의 욕심, 또 소원, 성질, 감정, 그 모든 계획 전체가 다 악입니다.
악으로 인해서 망합니다. 악으로 망하는 것은 악이 망하지 아니할 수 있는 열여섯 가지 구속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 그것을 마련치 못하게 한 그놈이 악입니다.
악이 뭐인데? 자기 중심인데.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 중심이요 악은 자기 중심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하고 하나님 중심하고 둘이 싸워 가지고서, 자기 중심 그놈이 하나님 중심을 반대하기 때문에 결국은 망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악은 자기가 아닌데 미혹받아 가지고서, 자기 중심 그거는 마귀가 꼬와서 그런 것이지 마귀 사상이고 마귀가 미혹시켜 주는 것이지 자기 생각이 아닌데 자기 생각, 자기는 악을 행하다가 죽어버렸어. 악을 행하다가 죽다니? 영이 죽었다 그 말이오. 중생된 사람들은 영은 살아났지마는 영이 그거 어리고 약해서 실력이 없어서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이 악 이놈을 박차 밀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로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병은, 영병이라 하는 말은 영이 어리고 약해서 자기 마음과 몸을 다스리고 있는 그 악을 쫓아내지 못하는 그것이 영병이라. 저거 알기 쉽도록 그것을 영병이라 이랬는데 요것을 자꾸, ‘고거 참 그러하다’ 하는 그걸 깨닫고 믿을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어떻게 하든지 변명해 가지고서 ‘그놈을 영이 무슨 병이 드느냐?’ 그걸 그래 가지고 변명을 해서 이번에도 거창 집회에서 아마 한 장시간을 걸쳐서 거게 대해서 가르쳤어. 그 강퍅하고 악독해 그래요. 알 수 있는데.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해 놓고 어찌 영병 영죄가 있다 말인가?’ 영이 죄가 아니고 영병이라. 병. 그런데 그 병은 뭐이냐 하면은 그만 유약병이라고 하기 싫거들랑은 유약성이라 해. 유약 성질. 약하고 어린 본질과 본성이라 그래 붙이든지.
저거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영병이라 그렇게 말하는데 그것을 깨닫고 할려고 하지 안하고 자꾸 어짜든지 변명해서 반대해서 삐뚤어지도록만 하고 옳은 것을 인식하지 못하도록만 할라 하는 그게 악령 그놈이 들어 그렇다 말이오. 그걸 원하는 그 사람은 자꾸 악령이 그 사람을 지배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맘대로 하지를 못해.
그런고로 기독자가 망하는 것은 악으로 인해서 망한다 고거 기억하고, 또 기독자들은 스스로 제가 자기를 행복되게 하지 못한다. 꼭 하나님이 자기를 잘 심어 줘야 되고 자기를 잘 가꾸어 줘야 됩니다. 제일 좋은 자리 아주 복된 자리에 심어 줘야 되고, 복된 자리에 심어 줘야 되고 또 복되도록 가꾸어 줘야 돼.
복된 자리에 심어 줘야 되고 복되도록 가꾸어 줘야 되지 하나님은 생각지 안하고 제 욕심만 거석해 가지고 ‘내가 어짜든지 그 취해 보자. 어짜든지 택해 보자.’ 이래 가지고 참 여자들은 남자들보다도 불행스러운 허영이 굉장히 많습니다. 아예 중매할라 하면은 그거는 아는 자리는 결혼 못 합니다.
그 통계에는 ‘아는 데에 결혼하는 것은 삼대 적선을 해야 하지 그렇지 안하면 복을 받지 못하면 못 한다’ 그런 말 있어. 왜? 이거는 다 같은 처녀가 어떤 자리에 어떤 사람은 시집 잘 가 가지고서 큰 부자고 어떤 사람은 시집 잘못 가 가지고 거지고, 어떤 사람은 잘 먹고 잘살고 어떤 사람은 못 먹고 못살고, 이라니까 ‘야, 이거 어짜든지 탱구기만 탱궈 가지고 이거 지금 욕심만 내면 되겠다.’ 그러면 헛일입니다.
내가 가만히 처녀들 이래 볼 때에 복있는 처녀는, 복있는 총각은 그래요.
중매하면은, 문둥이 같은 걸 해 줘도 ‘내야 뭐 이렇츰 못났는데’ 저는 잘났는데.
문둥이 같은 걸 해 줘도 해 주면 ‘뭐 저는 하겠습니다. 저는 뭐 그 사람이 나보다 나으니까 내가 하겠습니다.’ 이랍니다.
그런다고 해서 하나님이 정함이 없는 데 시집가지는 게 아니라. 그게 자신이 사람이 됐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나보다 나은데 내가 뭐 그 사람을 찰 턱이 뭐 있나?’ 이라는 것을 그렇게 모든 사람 한다고, 그러니까 어떤 처녀는 여기 말하니까 ‘그것도 좋습니다.’ 또 여기 말하니까 ‘그것도 좋습니다.' 다 좋다 하는데 그러면 될 것 같아도 안 돼요. 하나님이 그 뜻이 아니니까 삐틀어 가지고서 딴 사람을, 상대방을 삐틀려 가지고서 그 사람이 안 할라 해.
여게 내 그런 처녀 하나 이름 들까요? 아이까지 낳았어. 그 뭐이니라? ○○○집사님 구역에 그 이름이 뭐이야?○○이? 어? ○○? 너거 보자 ○○이 너거 언니가? ○○. ○○ 그거 말이지. 저게 목장하는 데 만날 거게서 뭐 똥이나 치고 하는 거 아무것도 아닌 거 거기 중매할라 하니까 ‘저는 하겠습니다. 그뭐 상대방이 할라 하면 저는 하지요.’ 그런데 그거는 참 금덩이하고 똥덩이하고 하는데 금덩이는 할라 하는데 똥덩이가 마다 해 그게 안 돼요.
또 어데 말하니까 또 한다 해. ‘너는?’ 하니까 `내야 하겠습니다. 뭐 그 사람만 할라 하면.’ 또 그래서 안 돼. 그 뜻이 아니까 제 본인이 안 할라 하지 부모네들이 안 할라 하지 이래 가지고 그게 기어코 못 하게 된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마지막에 시집갔어. 시집갔었는데 그 지금 목사될 것이고 아주 좋은 총각한테 시집갔다 그거요.
이런데 거석한 거는 저는 똥덩이고 상대방의 총각은 금덩이라도 하라 하면 안 해.
그거 안 할라 해. 물론 하나님의 뜻이니 그렇지마는, 뜻이 아니라서 안 되는 데에는 제가 안 할라 해 가지고 안 하는 그거는 교만에 속하고 상대방이 안 할라 해서 안 하는 데는 그거는 겸손에 속하고, 이 겸손한 사람이라야 복받아요. 교만한 사람은 복 못 받아요.
이래서, 복된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복되게 잘 심어 줘야 돼.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이 비유라 말이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누구든지 하나님이 잘 심어 줘야 되지, 남자도 하나님이 잘 심어 줘야 되지 잘 심어 주지 안하면은 하나님이 자기 입장, 처지, 소속, 형편, 사정, 현실, 주위 환경, 공기, 그 전부가 다 좋은 자리 자기를 복되게 할 자리에 하나님이 세워 줘야 되지 그런 것이 다 자기에게 복되게 할 수 있는 그런 그 좋은 복된 자리에 심어 주는 것은 하나님이 심지 제까짓 게 심겨지지 못한다 말이오.
나무가 좋은 자리 제가 심기고 싶다고 심어져요? 나무가 심어지는데 그 주인이 심으는 대로 심어져요 제가 좋은 자리 심기고 싶다고 제 욕심대로 제 소원대로 심어져요? 자, 나무가 제 소원대로 심어진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 그래 생각하면 그거는 바보라. 주인이 복되게 심어 주면 복된 데 심어지고 망할 데에 심어 주면 망할 데 심어지고, 이러니까 주인인 하나님에게 매였지 제가 저를 복되게 할려고 아무리 날뛰어 쌓아도 안 된다 그 말이오.
또 열매 맺는 것도 잎사귀가 청청한 것도 자꾸 주인이 가꿔 줘야 되지, 거름 없으면 거름 넣고 또 벌레 있으면 약 쳐 주고 잡고 이렇게 자꾸 가꾸어 줘야 되지 안 가꿔 주면 또 헛일이라. 가꾸어 줘야 되지.
그거 내가 엊저녁에 어떤 사람에게 그 말 했어. ‘따라 해라. 사람은 하나님이 복되게 심어 줘야 되고 복되게 가꾸어 주셔야 된다. 따라 해라.’ 내가 읽으라 그랬어.
그런데, ‘내가 뭐 복될라면 복될 수 있다. 내가 노력하면 복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그 월권의 말입니까 정상의 말입니까? 월권 말이라.
망하고 말아. 그거 안 돼요. 성경에 그래 놨어.
기독자가 복된 것은, 안 믿는 사람 불택자가 세상이 말하는 복되다 하는 그것은 저거 힘으로 할 수 있어, 저거 힘으로. 알겠습니까? 왜? 불택자에게 복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한번 대답해 봐요. 불택자에게 복이 많지는 못해도 불택자에게 참 끝끝내 복된, 불택자에게 참 복이 조그매라도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그매도 조그만한 것도 참 복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참 복은 털끝만한 것도 없어요. 다 복 같으나 멸망이요, 성공 같으나 실패요, 사는 거 같으나 죽는 거요, 행복 같으나 불행이 되지.
자, 잘 먹고 잘 입던 사람이 입대하면 말라요 못 먹고 고생하던 사람이 입대하면 말라요? 어때?○○○씨? 어? 어때? 저거 만날 조는 거라. 거창서도 졸더니만 여기 와서도 장 졸아.
다 같이 입대했는데, 내가 그때 그거 지금 이름은 말 안 해. 다 같이 입대를 했는데 하나는 갔다 왔는데 보니까 살이 퉁퉁 쪄 가지고 왔는데 하나는 어떻게 말랐는지 뭐 참 위험할 만큼 말랐어. 꼭 같은 밥 먹는데. 그거는 집구석에서 잘 먹이고 잘 입고 하던 놈이 가 놓으니까 그렇게 말랐는데 하나는 고생하던 것이 가 놓으니까 뭐 그곳같이 더 좋은 데가 없으니까 살이 퉁퉁하게 쪄 가지고 왔어.
그러면 이 세상에 모두 세상으로 행복된 그 행복이 구비한 사람이 이 이제 죽을 때에 고통이 많겠소, 지옥에 가서 고통이 많겠소 누가 고통이 많겠소? 세상에 행복된 사람이 많겠소 세상에 불행스럽던 사람이 많겠소? 행복됐던 사람 그 사람이 많은 거라. 그러니까 그게 뭐 복이 될 게 뭐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불택자에는 복이 하나도 없습니다. 복 같은 그거는 더 화가 되는 거, 화요.
기독자들은, 불택자가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제가 제 행복은 만들지 못 합니다. 제가 제 행복을 만드는 것은 전부 가짜인데 그것은 참 행복을 만나지 못하도록 속이는 것, 그만 미혹받는 것뿐이지 행복되지 못해.
기독자들이 복된 것은 꼭 하나님이 복되게 해 주셔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됩니다. 기독자들은 하나님이 성공되게 해 주셔야 되지 저 혼자는 성공 못 합니다.
이런 소리를 자꾸 들으면 그래도 사람이 좀 소견이 들어서 ‘내가 이 사업 성공하는 데는 하나님이 사업 성공하는 데 심어 줘야, 사업 성공할 수 있는 그 현실, 그 입장, 처지, 그 환경 주위, 그 형편 사정, 복될 수 있는 데 나를 심어 줘야 되지 이분이 안 심어 주면 안 된다. 또 이분이 안 가꿔 주면 안 된다.’ 이라면은 하나님 멀리 떠나서 망령부리지 안하고 하나님께 달라붙을 것인데, 이걸 제가 하면 될 수 있다 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 전부 하나님은 뭐 내버려 버리고 자기만, 자기가 하면 된다고 해 가지고서 믿는 사람이 주일도 범하고 오만 수단 방법 다 가리지 안하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 자꾸 범죄만 하니까 무슨 성공이 있을 턱이 뭐 있습니까? 이게 아주 큰 지혜요! 택자들이 복받는 것은 하나님이 잘 심어 줘야 되고 잘 가꾸어 주셔야 된다. 하나님이 안 가꿔 주시면 아무리 좋은 자리 심어져도 소용 없다. 또 좋은 자리 심어지지 안해 놓으면 아무리 주인이 가꾸어 줘도 소용 없다.
돌팍 위에 심어 놓은 놈의 식물을 아무리 주인이 가꾼다고 거기다가 뭐 물을 주고 아무리 한다 해도 그게 안 자라요. 밑에 돌 위에가 아니고 이거 흙에다 심어야 되지.
이러니까 사람이 복된 것은 하나님이 복된 데 심어 줘야 되고 또 복되도록 가꾸어 줘야 되고, 하나님이 가꾸어 주심과 심어 주심 요 둘만 받으면 복 안 될 사람 하나도 없어요.
사람은 꼭 같애. 종자는 같애. 다 같은 종자라도 옥토에 심어지면 무성하고 주인이 잘 관리하면 잘되고, 아무리 옥토에 심어 놔도 잡초 제하지 안하고 냅두면 좀 있으면 곡식은 녹아버리고 잡초만 무성해져 버려.
이러니까, 그러면 종자는 옥토에 심겨진 것하고 돌 위에 심어진 것하고, 시골에 가 봐야 돼. 시골에 가서 보면은 밭을 매다 보면은 어떤 데는 막 무성하게 자랐는데 노라이 요래 가지고 크지도 안하고 노라이 요래 가지고 있어요. 노라이 요래 가지고 있어. 그거 왜 그럴까요? 왜 그렇겠어? ○○○선생? 알겠나, 지금 배워서 알지? 배워서 알지? 실지로 느끼지 못해. ○○○씨 많이 느껴 봤지? 매 가다가서 있으면은 ‘여기 돌이 들었구나’ 그만 보면 `여기 돌 들었구나’ 요라다가 ‘이 돌은 돌이 둥그럼하이 이래 생겼구나' 또 `돌이 딱 모대기로 모잽이로 요래 생겼구나’ 그거 보고 알아요? 곡식 보고 알아요 몰라요? 알아요 몰라요? 저 ○집사? 어째 알아? 둥그름한 거는 말라 가지고 차차 차차 마르고 마르고 말라 좀 말라 가지고 조금 그보다 낫고 낫고 낫고 이래 스르르 가에가 말라져. 요런 거는 요게는 노라이 거석했는데 요게는 잘 돼. ‘요 돌이 요래 딱 요래 가지고 있어서 요게 요 조금 나가면 옥토가 되는구나.’ ‘이놈을 널널하게 이래 놓으니까 위에부터 차차 차차 똑 이거 박지기 엎어 놓은 거 이러니까 위에는 제일 마르고 저 끄트머리는 차차 차차 좀 나아지는구나.’ 이거 돌을 알 수 있다 말이오.
그거 모양으로, 이제 하나님이 심어 주기를 잘 심어 주셔야 돼. 아무리 좋은 데 심어도 안 가꾸면 또 안 돼요. 비료도 안 해 주고 잡초를 제해 주지 않으면 제까짓 게 뭐 됩니까?
이래서, 우리를 포도나무로 비유했는데 그 포도나무 비유한 데 거게도, 제가 신학교 다닐 때에, 방에서 예배를 보는데 나더러 인도하라 해. 그래 내가 포도나무 비유를 내 가지고 설교를 했어. 설교를 하니까 거기 있는 사람들이 하나도 못 알아듣는 거 같애.
내가 간단하게 말하기를 ‘포도나무는 포도나무 둥치에서 받지 안한 것은 전부 병이다.’ 맞아요 안 맞아요? 포도나무 가지의 둥치에서 받지 안한 것은 병 아닌 거 뭐 있어요? 병 아닌 거 하나도 없어요. 먼지가 와 덮어 가지고 있는 것도 그것도 병이요, 그거 손해지 유익될 거 하나도 없어. ‘똑 둥치에서 나온 것만 그 가지에게는 유익된다. 이제 주님에게서 얻은 것만 유익되지 딴데서 온 것은 다 손해다.’ 이래 하니까 못 알아들어.
또 ‘포도나무는 저를 해치는 것은 저는 그것을 제거할 수가 없다. 아무리 벌레가 먹어도, 狗a니까 이놈이 대항한다 하는 놈이, 먹으니까 막 진액을 들이 올리니까 물이 자꾸 쿨쿨 올라오니까 이놈은 좋다고 입을 벌리고 꿀떡꿀떡 자꾸 둘러마십니다. 봉 a야 포도나무 가지에 해치는 것을 제거할 수가 있지 주인 외에는 제거하지 못한다. 인생은 자기를 해치는 것은 인생 스스로는 제거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제거해 주셔야 된다.’ ‘그거 무슨 말 하는가?’ 이랬어.
제가 신학교 갔을 때 입학할 때 입학 논문을 쓰라 하는데 논문을 나는 그래 썼어.
‘나는 포도나무 둥치에 붙은 원가지가 되기 위해서 이 고려신학교 왔습니다.’ 이래 떡 논문을 그래 써서 넣어 놨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그 모두 고려신학교 교무실에서 모두 되게 웃었대, 껄껄껄 하고. ‘이 논문 쓰라 하니까 이래 썼다.
논문은 이 방식 저 방식 이래 가지고 쓰는 건데.’ 저거 놈의 논문은 그렇지마는서도 내 논문은 딴 논문이라.
이라니까, 모두 웃으면서 ‘이거 낙제시켜야 된다.’ 그만 낙제를 시켜 버렸다 말이오. 논문 쓴 거 보고 낙제를 시켰어. 논문 쓰면 뭐 쓴 걸 보면 ‘이거 야, 이걸 잘 가꿔 놓으면 이거 포도나무 원가지 되면은 이거 굉장한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 이렇게 봐야 될 터인데 그만 낙제를 시켜. 낙제시킨 것을 주남선 목사님이 사정을 해 가지고 그래 입학을 시켰어. 지금도 그 논문 자랑을 해요.
우리 포도나무 비유인데 원가지니까 모든 교회는 가지인데 원가지니까 모든 교회의 제일 근원과 으뜸이 되겠다 그 말이지. 그 말 아니요? 기독자의 행복은 제가 복되게 할 수 없다. 저는 제 복을 마련할 수가 없다. 또 저는 저를 가꾸지를 못한다. 가꾸기는 하나님이 가꿔 줘야 되고 복되기는 하나님 복된 자리에 심어 줘야 된다. 우리는 식물 같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된 자리에 심어 줘야 되고 복되도록 가꾸어 주셔야 된다 요것을 단정지워야 된다 말이오.
이러니 우리는 자신을 복되게 할 수도 없고 잘되게 할 수도 없다. 복된 자리에 심지도 못하고 가꾸지도 못한다. 하나님이 해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해 주실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이 복의 반대되는, 세상 복에 반대되는, 세상 사람들의 그 깨달음에 반대되는 이 다섯 가지 행하는 것이 하나님이 복되게 해 주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섯 가지 하는 거.
오늘 아침에 그것 할라 했는데 지금 시간이 없어서 또 안 됐어.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복된 자리에 심어 주시고 나를 복되도록 가꾸어 주시고 이렇게 두 가지 해 주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받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이 두 가지를 해 주십니까? 몇 가지 있는 사람에게 이 두 가지 해 주십니까? 다섯 가지 있는 사람에게 이 두 가지 해 줘.
○집사는 뭐 모르는가배?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어떤 사람에게 해 주십니까? 몇 가지 있는 사람에게 해 주시요? 이 다섯 가지 있는 사람에게 해 줘, 다섯 가지.
이걸 좀 알아요. 다섯 가지 있는 사람에게.
이러니까 다섯 가지 이거는 사람들이 ‘그것만 하다가 망할라고?’ 학생들도 집에서 뚜드려 맞는 것은 이놈 공부 안 하고 이 다섯 가지 한다고. 어찌 됐든간에 제가 저를 복되게 하려는 그 방편 안 하고 이 다섯 가지 한다고 뚜드려 맞지, 다섯 가지 한다고 쫓겨나지, 또 남편이 이것 다섯 가지 한다고 아내가 자꾸 박지기 긁지, 또 남편은 또 아내가 이 다섯 가지 한다고 야단이지, 모두 다 망할 놈들은 이 다섯 가지 한다고 자꾸 막 뚜드리고 야단지기고 싸우고 이란다 말이오. 복된 사람은 ‘복은 인간이 할 수 없다. 하나님만이 복되게 해 주신다. 하나님에게 복되게 해 주심을 받으려거든 이 다섯 가지만 해야 된다.’ 이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