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0 10:21
먼저된 자와 나중 된 자
1980. 7. 31. 목새
본문 : 마가복음 10장 30절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핍박을 겸하여 받는다. 부모 형제 자매 이 처자 전토들 버리는 자는 그 말은 이것 뿐만 아니고, 이것 뿐만 아니고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치 않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진리의 법칙대로 살려고 하면 우리 현실에서는 마찰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다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사람도 일들도 세상도 모든 운동도 전부가 다 이것을 세상적이요. 다시 말하면 다 마귀적이요 불법적으로 되어 있는 이 세상이기 때문에 이렇게 진리대로 살려고 하면 마찰 안되는 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 비유 맞추려고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고 진리대로 살 수 없고, 또 세상에 맞춰서 살려고 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대로 따라서 살 수가 없는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부모 형제 자매 처자 전토를 버릴 것입니까? 그 말은 우리가 하나님 모시고 진리대로 살려고 하면 이런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과 마찰이 안 될 수 없다는 말이오. 대립이 안 될 수가 없다는 그거요.
왜? 그 모든 것이 다 죄로 되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슬려 되 있는 것이며 진리에 거슬려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마찰이 없을 수는 없기 때문에 버린다 그 말은 마찰이 있을 그때에 그것을 취하려면 하나님과 진리를 버리야 되고 하나님과 진리를 모시고살려고 하면 그만 그것을 아야 포기 해야 되고 이런 마찰이 없는 경우가 혹 있지마는 없는 경우가 별로히 없다는 것입니다.
없는 경우가 있을 그때는 우리가 다른 면이 있는 것이고 또 준비하는 준비로 기간을 주신 것입니다. 마찰이 없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 일하는 것은 그걸 좀 연습을 시키는 것이요. 대번에 마찰이 있으면 안될터이니까 마찰 없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십니다. 그러기에 처음 믿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대로 살기가 쉽습니다. 믿어 갈수록 이게 차차 차차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 현실을 누가 만든다고요? 누가 만든다고요? 네 주님이 다 만드시지요.
만드시는데 처음 믿을 때에는 그 만들어 놓으신 우리 현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에 마찰이 없이 뜻대로 살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만드셔서 처음에 믿는 사람들은 모두 뭐와 말씀대로 못살아 한만큼 말씀대로 살려하니까 다 살아지는 그런 형편으로 됩니다.
처음에 믿을 때에 그 남편이 하 교회 안 간다고 '교회 가라. 교회 가라.' 연보도 주고 권면도 하고 이렇게 하지마는 차차 차차 교회가는 것을 반대를 하고 나중에는 못 가도록 굉장한 그 핍박이 일어나고 합니다.
하나 예를 들면 그게 하나님께서 그 남편에 마음을 주장해서 그렇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오히려 믿는 일을 주장해서 그렇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오히려 믿는 일을 협조하도록 하나님 만드시고 차차 차차 믿는 것을 반대 되도록 이렇게 만드십니다. 그거는 처음에 마찰이 안 될 때는 준비케 하는 것이고, 마찰이 되는 때는 네가 어느것 보다 어느 것이냐? 하나님이냐, 그것이냐? 이제 둘을 시험하는 때입니다. 그럴 때가 버리는 자입니다. 그때에 이제 하나님을 버리든지 그걸 버리든지 그 말은 하나님을 자기가 모시든지 그러치 안하면 자기 목숨이나 그런것을 돌봐서 그것에 손해를 안보려고 하면 하나님을 버리야 된다 이거요.
그럴 때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앙 걸음을 걸으려고 하면 이런 마찰이 필연적으로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있는데 그럴 때는 그 마찰 있을 때에 하나님이냐, 그것이냐? 그 두 갈레길에 우리가 섰는데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편으로 서면 일시는 그게 마찰이 있어서 부모와도 사이가 벌어지고 부부와도 형제간도 물질도 사업도 일시는 손해 봅니다. 일시는 그와 나눠지고 이렇게 나눠지게 됩니다. 그와 지금 사이가 벌어지게 된다 그말이오.
벌어지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사업과 관계든지, 부부와 관계든지, 형제관계든지, 이 사업관계든지 내가 그렇게 마찰이 있을 때 그때가 어떤 땐고 하니 그는 틀려 가지고 있을 때고 그는 틀려 가지고 잘못돼 가지고 있을 때고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바로 되어 있는 때고 이래서 나는 바로 하려하고 그거는 삐뚤어지게 하려 할 때에 서로 마찰이 되는데 그때에 마찰이 돼도 하나님 뜻대로 하는 것은 내가 바로 하는 것이니 그와 나와 상대 될 때에 서로 마찰이 되는데 그때 마찰이 돼도 하나님 뜻대로 하는 것은 내가 바로 하는 것이니, 그와 나와 상대 될 때에 그가 반쪼가리 내가 반쪼가리 둘이 합작한 것 아닙니까? 합작인데 그거는 삐뚤어져 있지만 내가 바로 되니까 둘이 합해서 사업하고 자기하고 합하든지, 아내와 남편이 합하든지, 뭐 인간과 자기와 합하든지 어쩌든지 둘이 합해서 마찰이 있다 말이오.
마찰이 돼서 이것을 취하려 하면 내가 하나님하고 떨어져야 되겠고, 또 하나님하고 같이 하나님 모시고 하나 되려고 하면 이거와 떨어져야 되고 하나님과 그 세상과 사이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내가 들어 있는 것인데 내가 하나님 편으로 속하면 이것과 떨어지게 되고 이것에 계속해서 둘이 합작 되면 하나님과 떨어지게 하는 요런 요 사이에 딱 끼여 가지고 있을 그때입니다. 그럴 때에 그러면 이 세상과 둘이 합하니까 마찰이 있다 말이오.
마찰되는데 둘이 합해서 그 현실을 만들었는데 마찰이 되는데 이 현실과 나와 둘이 이제 마주 부딪혔는데 그때 내가 하나님 배반하고 그거 한토로 붙어 이리 되지면 이 둘다 틀렸습니까, 하나는 옳습니까? 자 둘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둘다 틀렸다고 생각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요. 또 하나만 틀렸다고 생각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요. 모르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요.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뭐인고 잘못 알아 들었소. 내 다시 말하겠소.
요거는 자기입니다. 요거는 세상이요. 세상이라니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내 자녀 사업 직장 모도 그런 것들이라 말이오. 요 현실에서 이와 나와의 관계를 가지고 살게 되는 것 아닙니까? 어떨 때는 가족 접촉될 때도 있고, 사업 접촉될 때도 있고, 어쩌든지 그것들과 이리 접촉이 됩니다. 접촉이 되는데 그만 둘이 합작 돼. 이리 살면 좋겠는데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따라서 살려고 하니까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고 이거는 이 세상 죄악대로 있는 것이고 하니까 이 둘이 만나니까 탁 부딪힌다 말이오. 둘이 탁 마찰이 있는다 말이오.
마찰이 될 때에 그때에 내가 이것과 마찰을 피해서 합하려고 하면 하나님을 배반해야 되겠고 이쪽에 있는 하나님과 합하려 하면 이것을 배반해야 될 것 아니겠소. 이 양쪽 사이에 들어 있는 게 우리라 그말이오. 그럴 때에 할 수 없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둘이 합작을 하니까 부부간에 싸움도 안나고, 분쟁도 안나고, 사업에도 일시 지장도 되지 않고, 뭐 거짓말 할 것 거짓말 하고 또 자기 온갖 수단 방법 부리고 이러니까 모든 것이 마찰없이 딱 되버립니다. 그러면 이 둘이 이제 의논이 맞습니다. 합작이 됐습니다.
여기에 누만 또 누가 떨어졌습니까? 하나님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떨어지고 둘은 합작이 됐습니다. 그러면 이럴 때에 이 둘이 다 둘다 틀렸습니까, 하나만 틀렸습니까? 둘다 틀렸다고 아는 분들 손 들어봅시다. 네 손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 합니다. 네 맞습니다. 둘다 틀렸습니다. 똑똑히 아십시요. 둘다 틀렸습니다. 이럴 때에 이 가운데 있는 내가 그래도 이와 마찰이 되도 이거와 마찰되는 이것을 마찰 없애서 합하려고 하면 하나님 배반해야 되겠고, 그럴수 있나 하나님과 합해 가지고 이것을 상대하려 하니까 부득히 이거와 마찰이 되어 이거는 나하고 반대로 떨어져버립니다. 날 반대하고 떨어진다 그말이오.
그러면 나는 하나님하고 합해 가지고 있고 그러면 그것한테는 떨어져 버렸고 그거는 따로 떨어져 나가 버렸고 이러면 요 둘 중에 이거 세상하고 나하고 둘이 둘이 합해 가지고 합작인데 그러면 나는 바로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나는 바로 됐지요. 그러면 이 둘이 합해서 내 생활인데 그러면 이 생활에 반은 바로 됐으면 그 다음에 이 반을 하나님이 바로 되게 해주신다 그말입니다.
백 배나 얻는다 그 말은 암만 마찰이 있어도 이것을 네가 바로 되면 그 다음 것은 바로 되게 해준다 그말이오. 그러면 나만 바로 됐으면 이 둘로 합해서 하나인데 얼마나 바로 됐습니까? 십분에 일이 바로 됐습니까, 반은 바로 됐습니까? 반이 바로 됐지요. 반이 바로 됐다 말이오. 반이 바로 됐으니까 나머지기 반 이까짓거는 문제가 없습니다. 이거는 하나님이 바로 합니다.
네 이러기 때문에 나버지기 이것이 바로 되니까 내것이 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러 배 백 배를 얻게 된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 생활에서 하나님 모시고 진리대로 살려고 할 때에 마찰이 없을 때는 마찰 없도록 하나님이 그것을 만들었습니다. 왜? 어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 하나님 뜻대로 사는 일을 졸졸 마찰이 없으니까 그 연습을 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삽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이 생활이 마찰이 없도록 해서 살도록 얼마 동안 연습을 시키고 그 다음에는 이제 조그만한 마찰이 있도록 합니다.
그럴 때도 이제 조그만한 마찰이 있어도 양보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니까 그것이 나중에 잘되고 이러니까 '마찰이 있어도 하나님 모시고 사는 게 되더라.' 요래서 차차 차차 작은 것부터 빠짐없이 이리 하는 사람을 나중에 태산같은 점, 아브라함같은 예수님같은 그런 마찰이 어려움 있어도 꿈적 없이 이와같이 나가는데 우리가 그런 것 연습하는 기회를 자꾸 놓쳐 버렸습니다.
이래서 마찰이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능히 할 수 있는 이런 것으로 차차 차차 자기가 강해지는데 따라서 마찰이 되어지도록 이랬는데 그걸 얼마동안 쉬 나버리니까 그 자기에게 닥치는 마찰이 어찌 됩니까? 그 자기에게 닥치는 쉬운 마찰입니까? 쉬 놓으니까 어려운 마찰입니까? 쉬 놓으니까 어려운 힘들은 그만 자기 정도에 넘은 힘든 마찰이 왔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 사람이 넘어지고 넘어지고 자꾸 넘어져서 뗄수록 넘어집니다. 자기 현실에서 이것을 마찰을 자꾸 피하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마찰이 오고, 자꾸 마찰 오는 것을 하나도 지나 보내지 않고 마찰이 와도 빠짐없이 하나님하고 합해 가지고 마찰해도 그것을 승리해 나가는 사람은 평상 믿어도 그에게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렇게 감당 못할 어려움은 없고 이 사람은 어려움 있습니다.
이렇게 나간 사람은 순교 당할 때도 그 사람에게는 기쁘고 즐겁지 아무 데일것이 없지마는 이것은 그만 이 마찰을 자기가 조금 어려우니까 항상 마음을 들고 살지를 못해서 뭐 마찰이 되니까 '뒤에 잘하지. 뒤에 잘하지.' 이러고 그 마찰 그것을 그만 하나님 배반하고 진리 배반하고 그게 맞춰서 지나가 버리면 벌써 자기가 올라갈 그 거리가 한자욱 뛰놓지 안하니까 안돼서 벌써 한 자욱이 멀어졌다 말이오. 그 다음에 올 때 그 일을 또 그만 양보해 버리면 이제 두 자욱이 거리가 멀어져 버렸습니다. 이래서 열 번 그러고 나니까 열 자욱이 거리가 멀어져 버렸습니다. 열 자욱이 거리가 멀어져 버렸소.
그러면 한 자욱 올라가는 그 거리는 누구든지 올라 갈 수 있지만 열 자욱을 걸어야 올라갈 수 있는 그 거리는 올라갈 사람 혹 틀별한 운동한 사람 올라 갈가 그 다음에는 못 올라 갑니다.
이렇게 우리 신앙 생활이 이런 것인데 언제든지 하나님 모시고 진리대로 살려 하면 마찰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필연적이라는 것을 왜 그것은 내려가고 나는 올라가려 하기 때문에 마찰이 있을 수 밖에 더 있습니까? 나는 사는 길로, 나는 자꾸 건설해 가려 하고 그거는 파과하는 자이고 그거는 파괴요 나는 건설이요, 그거는 죽는 것이요 나는 사는 것이요, 그거는 하나님 배반하는 것이요 나는 하나님 모시는 것인데 마찰이 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핍박이 없을 수 없어.
핍박이 없을 수 없는 그때 내가 핍박을 받아도 하나님과 진리를 버리면 그것을 나하고 마찰이 되어 그것은 나를 버리고 나를 대립하고 나와 떨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모시고 진리대로 했으면 나와 상대했던 그것을 그것이 나를 떠나지마는 내가 그것을 점령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부모나, 형제나, 사업이나, 직장이나 그것을 떠났지마는 그것을 점령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반은 점령했습니다. 내가 할 점령을 했소. 그러면 그 다음 점령 반 남은 점령은 누가 해야 됩니까?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다 되는데 사람이 이것을 하나님과 약속했기 때문에 이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되는데 이것을 하나님과 진리 모시고 살려 하니까 당장에 그거와 자기와 멀어지니까 요것만 보는 근시자는 '아이구 이거 지금 손해고 마찰이 돼면 안 된다.' 손해 가는 줄 알고 하나님과 진리하고 배반하고 그거와 합작됐습니다. 합작됐으면 둘다 썩었소, 하나만 썩었소? 둘다 죽었소, 하나만 죽었소? 둘다 죽은 건 둘다 죽었기 때문에 살아날 희망이 없다 말이오.
전신이 죽었으니까 살아날 희망이 없어.
그것이 그러면 그 상대방에 비유를 맞추어서 내가 그와 마찰되지 않고 그를 위하려고 그 사업을 되게 하려고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하고 그거하고 합작됐으니까 그것이 그 사업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사업을 죽이는 것입니까?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가족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죽이는 것입니까? 네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진리를 모시고 살기 위해서 그와 일시적 마찰을 당해도 눈물을 먹음고 어쩔 수 없어 하나님과 진리대로 하면 내가 그것을 살리는 것입니까, 죽이는 것입니까? 그것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미워하는 것입니까? 그것을 구원하는 것입니까, 버리는 것입니까? 구원하는 것이라 말이오. 요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걸 모르고 사는 사람은 그게 늙도록 살아도 그 가정에 복음의 역사를 안해. 요런 사람들이 보면 인본주의요 그 사람이 뭐 인본주의로 인간 잘 맞춥니다. 그 사람이 도덕주의요. 그 사람이 인간들 비위와 인간들 성미에 맞춰서 우리 아줌마는, 우리 아버지는, 우리 형님은 예수를 믿어도 저렇게 마찰되도록 저렇게 믿지 않고 원만하게 믿더라. 우리 남편은 믿어도 원만하게 믿더라. 아무것이 아내는 원만하게 믿더라고서 이런 인간에게는 칭찬을 받지마는 하나님과 진리에게는 벌써 버림당했어.
이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것은 너희들이 서로 인간끼리 불법으로 합해지는 이 합함으로 더 화평하도록 하기 위해서 온 줄 아느냐 불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왔다. 그런데에서 이제는 마찰이 되도 하나님과 진래대로 살 수 있는 이 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 왔다. 아내와 남편과, 부모와 자녀와, 형님과 동생과, 며느리와 시어머니와, 이렇게 사장과 그 직공과, 상관과 부하와, 부하와 상관과 이렇게 마찰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 내가 오기 전에 이와 같은 마찰들이 있어서 산 자들이 살아 나갔으면 좋을뻔 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지 안했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요것을 깨닫고 살아야 됩니다. 저 제가 위천교회에 있을 때에 그 (정) 집사라고 개평 정씨인데 개평 정씨가 양반입니다. 양반들은 그는 참 예수 믿기 어렵습니다. 왜 그러냐? 과거에 양반들이라 하는 것은 어떤 것을 양반들이라 하는고 하니 그저 자기 가족끼리 똘똘 뭉쳐 가지고 김가면 김가 이가면 이가 똘똘 뭉쳐 가지고 다 성바지를 대립해서 막 싸우기 때문에 이거는 생사를 같이 합니다. 이래 가지고 똘똘 뭉쳐 가지고 마찰이 돼면 다른 사라을 전부 착취해 먹어버렸어. 그 양반은 전부 착취자들입니다. 전부 착취자들이요.
이렇게 똘똘 뭉쳤기 때문에 예수 믿고 난 다음에도 저거끼리 뭉친 뭉텅이가 하나님과 진리 뭉칭이 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결국 그 뭉텅이로 따라가지 하나님과 진리 뭉텅이로 따라 오지 못한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양반 동네는 전도 하려 하면 참 힘이 듭니다. 그게 잘나 그런게 아니고 그것은 지금 멸망의 밧줄에 뭉쳐 가지고 있는 것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사라 그 황산 또 그 여 목사 친척 그 골짜기에서는 황산 씨 개평 씨 두 성 받이가 아주 양반이 돼 가지고마구 서로 원수가 대대 원수가 되어 싸우고 마찰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금방에 타 성 받이 약한 그런 성 받이들은 꼼작을 못해요. 이렇게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데 그 양반이 또 양반 집으로 시집을 왔다 말이오. 이런데 모든 사람이 있다 '예수를 믿어도 우리 개평 할머니 모양으로 그렇게 예수 믿으면 우리 다 믿겠다' 모두 다 좋다 합니다. 이놈의 할망타구는 말이오. 그런걸 집사로 떡 내놔 집사를. 내 왔다 말이오. 이것은 제사 지낸대도 가면 그만 그를 비유 맞추기 위해서 하나님과 진리 배반하고 거기 가서 그 사람 되고, 우상 섬기는 대도 가면 그렇그렇고, 교회 오면 또 민첩하게 예수 잘 믿고 이런다 이거요.
그러니까 내가 가고 난 다음에 한 몇칠 있다 그만 병이 들어 그만 죽게 됐어요.
아프다 해 가보니까 집사인데 아들도, 손자, 손녀 까지도 교회 나온 게 하나도 없어. 저 혼자만 나와. 아프다 해서 가 보니까 벌써 말문을 닫고 있어. 그래 가지고 프 - 프 프 프 불며 살만 쪄 가지고 들어 누었어. 네 (이만기) 목사가 집산데 '(이)집사야 와 이 집엔 하나도 안 믿노?' 게 안 믿는다고 '그러면 이분에 안 믿는 이 집안 들이 좋다 하나?' '아이 동네서 모두 거림니다.
동네서는 덕을 세우고 참 빛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놈이 빛이 무슨 빛이지?' 이러니까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을 다 하니까 좋다 한다 말이오.
빛을 보여 빛이고 덕을 세운다 그러니까 내가 '그게 무슨 빛이고? 저거 따라서 가는데 깜깜하니 다 어두운데 무슨 빛이고? 이 말도 안하는 난 갈란다. 나 이까짓거 그저 그 마귀 뭉텅이 내가 붙들어 이런 걸 누가 집사를 세웠노?' 아마 귀로 들었는지 모를거야. 말은 못해도 말이지 하도 내 거기 그랬더니 내가 말하기를 '이러다가 죽거들랑 나중에 죽을 때 마지막이라도 회개를 하고 내가 누구한테 전도하지 못했다. 누구 예수 믿지 않으면 안 된다. 가족들에게 그렇게 전도 하거든 나한테 기별하고 내 어데 갈테대 그럼 내가 와서 출상 예배 바줄 것이고 아예 그러지 안하고 그만 그 집불 모양으로 이렇게 프프 가서 뒤에 한번도 전도도 않고 회개도 않고 뒤지거들랑 나한테 기별하지 말아라.' 이래 놨다 말이오.
가 가지고 내가 어데 집회 갔던가? 뭐 무슨 일로 갔던가? 사흘이 됐는데 죽었다고 기별이 왔어. 내가 묻기를 '그러면 나중에 회개하고 죽었나, 아무 말도 않고 죽었나? 아무 말도 않고 죽었다. 그러면 나 안간다.' 게 안가 버렸어.
그것은 핍박을 겸하여 받으리라 했는데 핍박을 겸하여 받으리라 했는데 핍박을 피했으니까 그 가족들 받지 못하고 살림살이로 아무것도 못 받았가 그말이오.
"핍박을 겸하여 받으리라" 그 핍박 안 받으려 하니까 그를 구원하는 일을 저도 안했고 하나님도 안했고 이러니까 헛일이라 그말이오.
따라합시다. '핍박을 겸하여 받으리라' '핍박을 겸하여 받으리라' 핍박을 버리면 자기의 모든 세상도 다 죽인다 핍박을 피하면 세상에 있는 자기의 모든 것을 죽인다 똑똑이 알고 믿으십시요.
이래 놓으니까 그런 사람은 안만 믿어야 가정이 살아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진리만 배반 안하면 하나님이 역사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쨌지요? 어쨌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피했소, 고난을 받았소?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 구원 도는 이런 것이요.
내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핍박을 받아가 그 가정에 안 믿는 가정에 남편이나 그 모든 사람들에게 자 핍박을 받다가 죽임을 받았소. 죽었소.
죽었으면 그 사람 뭐요? 순교 아닙니까? 순교자요. 그러면 순교만 하면 그 가정이 어찌 됩니까? 그 가정은 벌써 다 구원 얻소. 마귀란 놈이 손 못 댑니다.
그 사람의 생명으로 했기 때문에 마귀가 손 못 대요. 그 가정을 벌써 다 구원입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