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6 14:52
기독자의 생활관
1988. 3. 25. 밤
본문 : 누가복음 16장 10절-13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성구가 가르치는 그 뜻을 바로 깨닫고 붙들도록 노력을 하고 이 진리에 복종을 해야 다 영생을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작은 것 또 큰 것 이렇게 말씀한 작은 것이니. 큰 것이니 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인가? 이거는 곧 9절에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는 그일 그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 이것은 자기가 청지기로 있으면서 빚진 자의 빚을 탕감해 준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러면 여기에 친구를 사귀라는 것이나 빚을 탕감해 준 것이나 다 같은 뜻의 말입니다.
빚을 탕감해 준 것은 사람을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구출해 내서 하나님에게로 옮겨 붙이는 것을 가리켜서 빚 탕감해 준다 그렇게 표시했고, 또 ‘친구를 사귀라는 말은 이렇게 하나님의 세 가지 복음을 가지고, 세 가지 복음은 주님의 대속의 피공로와 피공로로 말미암은 성신의 감동과 진리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곧 사람을 대접하는 것만이 아니고 주님과 함께 대접함이 된다 하는 말이오.
그라면, 영원한 처소에서 너를 영접하리라 하는 말은 불의의 물질계의 것 가지고 친구 사귀는 일, 곧 구속주 주님을 사귀는 일, 곧 죄인을 구원하는 일 이 일을 하면 영원무궁한 세계에서 없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것으로 주님이 그에게 갚아 주신다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물질계에서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다 일단 저주받아 있기 때문에 없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되겠고, 없어질 것 이것을 잘 사용하면은 없어지지 아니할 것을 마련할 수 있고, 또 이 없어질 불완전한 것을 가지고 잘 사용하면은 완전하고 영원한 것을 마련할 수가 있고, 아주 보잘 것 없는 유한한 이것을 가지고 이 친구 사귀는 일 복음에 투자하면 무한한 것으로 영원한 세계에서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으로 갚음을 받을 수 있다 하는 이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늘 이래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알고 기억도 하고 있고 하면서 실상을 만들지 아니하기, 때문에 이 말씀이 복음이 되지 아니하고 마지막에는 알고 행치 안했기 때문에 정죄가 되어지는 정죄의 심판법이 되어지기 때문에 자꾸만 계속해서 또 말하고 또 말하고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밤에는 교역자들이 더러 참석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다시 봅니다.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 잘 한 사람은 지극히 큰 것도 잘 하고, 여기에 지극히 작은 것이라는 말은 지극히를 붙였고 큰 것에 대해서는 지극히를 안 붙였지마는 그게 문장상으로 붙어야 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지극히 큰 것에도 충성되고 하는 그것이 다 연맥적으로 붙어 있는 것입니다. 또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 불충성한 자는 큰 것에도 불충하게 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교역자들이 기억해 가지고 자기가 집에 가서 기도하면은 깨달아질 것입니다.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다른 각도로 한번만 말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이 복음 운동에 있어서는 작은 거 큰 거 그 차이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작은 것은 바다가에 모래알만하다고 하면은 큰 것은 하늘에 저 태양만합니다.
그만치 차이가 크다고 성경에 말씀을 해 놨습니다. 이러기에, 이 복음 운동은 다른 운동과 달라서 지극히 작은 그것을 자기가 알뜰히 충성되게 성의 있게 충실하게 했다고 하면 지극히 작은 것 그렇게 한 그 사람은 지극히 큰 것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네가 시골 산골에서 교인 한 두서너 명 너댓 명 있는 그 교인을 향해서 이 일을 알뜰히 충성되게 하면 너는 세계에 제일 큰 교회도 네가 맡아서 하게 된다, 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세상일은 선천이나 후천이나 그것이 다 마치 종자가 새도 보면 요맨한 새 있고 요만한 새 있고 이렇게 큰 새 있고 한 거 모양으로 다 종자 종류들이 돼 가지고 있어서 작은 거는 크지 못하고 큰 것은. 작아지지 못하지마는 이 복음 운동에 있어서는 어떻게 작은 것이 어떻게 클 수도 있고 어떻게 클 수 있는 것이 어떻게 작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러기에 현실에 어떠하든지 그 현실에서 적다 생각지 말고 불만 불평 품지 말고 업신여기지 말고 지극히 작은 거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지극히 큰 것을 맡겨 주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거기에 있다 하는 것입니다.
요걸 잡지 못하기 때문에 교역자들은 좀 교세가 큰 교회에 가라하면은 입이 벙긋거리고 감사하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주 교세가 약한 교회에 가라 하면 고만 실쭉합니다.
요사이 우리 총공회서는 임명제를 이제는 청빙제로 했기 때문에 작은 교회 있는 사람은 큰 교회는 못 가겠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과거에는 작은 교회 있는 사람이 좀 큰 교회 맡겨도 잘할 수 있고 큰 교회를 맡아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 교회는 감당 못 하겠고 좀 작은 교회로 보내야 되겠다 이랄 때에는 그것을 사람이 들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이 들어서 싯는데 이제는 사람이 할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하도록 이제는 맡겼습니다. 사람은 고 실력을 따라서 이동을 한다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그만치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실력 따라서 이동한다는 그것은 뭐 완전하고 원만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역자들이 자꾸 이래 이동이 되면 내가 작은 데서 충성한거 보고 위에 상부에 어른들이 ‘너는 그렇게 충성하니까 아마 너는 좀 큰 교회를 맡겨도 되겠다’하고서 큰 교회로, ‘시골 교회를 네가 잘하는 것 보니까 도시 교회로’ 이렇게 이동하는 희망이 있었지마는 이제는 아예 교회서 청빙해야 되지 위에서는 거기에 대해서 간섭을 안 하고 내비 둔다 이라니까 낙망되는 그런 교역자들이 많이 있으리라 제 생각에 그렇습니다. 사실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그러나, 사람보다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주님에게 맡겼기 때문에 주님이 잘 아십니다. 아셔서 이렇게 작은 교회에 있으나 이 사람은 총공회서 제일 큰 교회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다 하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면 당신의 능력으로 그 일을 성사시킬 것입니다.
또, 이 사람은 아주 아무도 알아주지 안하는 그런 참 숨어 있는 보배지마는 사람 같으면 모르지마는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에 이 보배는 한국에만 둘 게 아니라 세계에 제일 높은 교회, 힘드는 교회, 상등 교회, 큰 교회를 맡겨야 되겠다 하면은 하나님이 그렇게 이동시켜서 맡기십니다. 하나님이 맡기는 그 방편은 아무도 알지도 못하고 방해도 못 합니다.
그런 걸 우리가 성경에 많이 봅니다. 다윗이 저거 아버지도 저거형제간도 모르고 그까짓 거는 쓸모없는 저 목동 아이인데 볕에 굽혀서 낯이 빨가이 그래 가지고서 새카마이 해 가지고서 돌아다니면서 양이나 먹이고 그라니까 아주 업수이 봤는데 그 아들에게, 이새의 아들 중에 이스라엘 왕 될 사람이 있다 하고서 하나님이 사무엘을 보내서 지금 기름 부어 장립시킬라고 갔는데, 처음에 아주 미꿈한 아들이 큰 아들이 오니까 그 사무엘이 깜짝 놀랬어.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여기에 있구나 하면서 좋아서 거기다가 기름을 부어 가지고서 장립을 시킬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있다가서 이는 그자가 아니다. 내가 버린 자이다. 너는 사람의 키 크고 훌륭하고 미남되고 한 그런 신장을 보지 말아라. 내가 보는 거는 너와 같지 않다. 사람의 중심을 내가 본다.
이라기 때문에, 그만 사무엘이 깜짝 놀라 가지고서 이거는 아니다. 둘째 아들이 오는데 또 훌륭합니다. 둘째 아들에 기름 부으려 하니까 또 하나님이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일곱이 다 와도 아니다 아니다 해서 그만 사무엘이 어짠 일인가 이래 가지고 묻기를 ‘그러면 아들이 다왔느냐?’ ‘네, 다 왔습니다.’ ‘다 왔느냐?’ ‘하나 남기는 남아 있지마는 그까짓 거야 뭐 사람 축에도 칠 것도 없고 그저 양이나 부지런히 먹이고 낮이 빨가이 굽혀 가지고 돌아다니는 그거, 그거는 뭐 오나마나 볼 것도 없습니다.’ 이래 놨다 말이오.
이라니까, 사무엘이 ‘아니다. 데리고 오너라. 네 아들 중에 왕으로 세울 자가 있다 했는데 이 일곱은 다 헛일이니까 아마 그 아들이다. 데리고 오너라.’ ‘데리고 을 것도 없습니다’ ‘만일 안 데리고 오면 내가 여기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내가 굶어 죽기까지 죽어도 내가 여기서 데려오기까지 기다릴 거다’ 이래 놓으니까 그때 일국의 사사인데 안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래 데리고 왔다 말이오.
오니까 낯이 뺄가이 뭐 쪼그만한 아이라 말이오. 하나님께서 이가 그로라 기름 부어라 이랬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왕이 됐습니다. 인간은 그를 모르지마는 하나님은 그 중심에 어떤 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래 가지고서 다윗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세웠는데 그 사람이 출세해 나가는 것 보면은 내나 물맷돌 한 개가지고서 전국이 달라들어도 못 이기는 그 골리앗 대장을 물맷돌 한 개가지고서 이마를 딱 께서 그만 꺼꿀뜨렸다 말이오. 이러니까 뭐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막을 자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못 할 것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께서 직접 심사해 가지고서 이동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여러분들이 아예 인간 운동으로 이거 뭐 총회장 뭐 어짜고, 이번에 내가 OOO교회 문제만 해결되면 총회장은 사면할 것입니다. 인제는 아무리 투표 아니라 아무 걸 해도 내가 총회장안 할 것입니다. 인제 다른 사람들일랑 하도록 하고 저는 안 할 것입니다.
총회장이니 뭐 행정위원이니 총공회 위원이니 그 사람들 사귀어 봤자 실력도 없고 또 알지도 못하고, 그런 사람들은 뭐 돈에도 매수 당하고 사과에도 매수당하고 또 뭐 친절에도 매수당하고 돈에도 매수당하고 당할 수 있습니다.
당할 수 있어.
저도 돈에는 당하지 안했는데 자꾸 사람들이 이거 뭐 과일이니 뭐이니 갖다 주는 거 보면 그 매수당할까 싶어서 인제 준다 그거요. 그래도 실상 그라면 뒤로 버투고 좀 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도 뭐 드릴 것도 없어. 그만 뭐이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이 시골에서 교인 한 대여섯 명되는데 이걸 쥐면 깨어질까 놓으면 날아갈까 이래 가지고서 뭐 그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 가지고서 그 참 주님이 만족하실 수 있도록 이렇게 알뜰히 충성되게 하면 주님이 그거 보시고 지극히 큰일도 맡깁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뭐 진급이라 합니까 영전이라 합니까, 올라가는 거? 이렇게 올라가는 것도 자꾸 커지는 것도 이거 인간 그거 자유없는 거 사귀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로 작정했으니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고 충성에서 이게 다 결정됩니다. 그러니까, 그리 알고 안심하고, ‘내가 이라다가는 이거 언제 목사될는지 모르겠다. 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야 되겠다.’ 그것도 자수 자기 속이는 일이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만 바라보고 하고 또 주님이 당신이 모르는 거 없어 사람들은 뭐 말만 하면 알고 자꾸 거짓말 하면 자꾸 말에 설복을 당하지마는 하나님은 말 안 해도 다 알아요. 우리의 참을 알아. 우리의 참을 알기 때문에 아셔서 우리에게 대한 모든 향상도 전진도 당신이촉복의 은혜로 주관하시게 됐으니까 이제는 사람 볼 것 없이 주님이 인정하실 수 있는 사람만 되도록만 마구 힘을 써야 되겠어.
인제 아주 좋은 때가 나왔습니다.
또 그러고, 그 10절에는 보니까 작은 거 잘하면 큰 거 얼마든지 잘 할 수가 있다. 작은 거 잘하는 데서. 다윗이 양 먹이는 데에서 충성한 그 실력 가지고 양만 먹이는 줄 알았는데, 충성된 그 실력 가지고서 양을 삼키러 오는 이리만 쫓을 줄 알았는데 전국이 꼼짝 못 하는 골리앗 대장도 쫓아냅니다. 양만 잘 다스리는 게 아니라 양 잘 다스리는 그거가지고서 다윗같이 그렇게 성군이고 위대한 왕은 없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성경에 약속이니 ‘나는 무슨 밟고 올라갈 사다리가 없다, 나를 끌고 올라갈 사람들이 없다, 나는 배경이 없다, 뭐 없다.’ 염려할 것 없고 주님은 우리의 전부의 전부입니다. 불평할 것이 없어 그분은 하후하박이 없어.
다 공정되게 합니다.
고거 기억하고, 그 다음에 11절에, ‘너희가 만일’ 만일이라 말은 너희들이 행여나 하나라도 만에 하나라도 그말이오. 하기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실수하면 큰일난다 그말이오. 만에 하나라도.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위에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는 그 불의의 재물과 같은 겁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의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잘못하면 재물에 대해서 충성한 것으로 요렇게 알기가 쉽다 말이오. 그말이 아니라. 이실은 불의의, 재물을 가지고 충성치 아니하면 그말인데 ‘불의의 재물에 대해서’하는 말이기 때문에 다 같은 말이라.
‘불의의 재물에 대해서 네가 취급하기를 충성치 아니하면’ 이 충성이라는 것은 왕에게 상전에게 주인에게 상관에게 쓰는 말입니다. 다른 데는 쓰지를 안해요. 이러니까 요 충성이라는 것은 곧 구속하신 주님을 두고서 한 말입니다.
네가 불의의 재물 가지고서 없어질 물질계의 것을 가지고 주님에게 충실되이 하지 안하면, 친구 사귀는 일을 진실되게 하지 안하면, 빚탕감해 주는 복음으로 인간 구원하는 그 일을 충실히 하지 아니하면, 만일이라 이 말은, 이 말은 아주 엄격하게 ‘불의의 재물로 충성치 아니하면 큰 화다, 충성치 않는데 만에 일이라도 충성이 안 되면 큰일난다.’ 이러니까 충성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일이라는 말을 고게 붙였습니다.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맡기겠느냐’ 없어질 물질계의 것을 가지고, 구속하신 주님, 피로 값 주고 산 우리의 상전, 우리의 왕, 우리의 주되신 그분에게 ‘충성치 아니하면’ 그분 대접을 잘하지 안하면, 빚 탕감하는 일에 성심성의를 기울여 하지 안하면, 피 성령 진리 이 세 가지 복음을 가지고서 인간을 구원하는 그 일에 정성되게 하지 안하면, 충성되게 하지 안하면, ‘없어질 것’ 번연히 네가 네 몸이나 네 마음이나 네 실력이나 네소유나 기능이나 모든 것은 다 오늘이라도 주님이 생명 부르면 가버리면 다 없어 버려는 건데 없어질 건 줄 알고도 이것을 가지고 주님시키시는 대로 주님을 잘 섬기는 충성되게 정성되게 하지 안한다고 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그 참된 것은 뭐이겠습니까? 참된 것은 불의한 것의 정반대입니다. 불의한 거 정반대. 그러면 참된 거는 뭐이라 말이요? 불의한 것은 없어질 물질계의 것인데 참된 것은 없어지지 아니할 신령한 것들이라 그말이오. 없어지지 안할 신령한 것들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이 불의한 이거 너한테 맡겨 놓으니까 없어질 줄 알면서도 주님위하지 안하고 이거 가지고 전부 너를 위하고 네 욕심대로 쓰고, 네 욕심대로 쓰고 쓰다가 남으면 딱 딱 풀어 놓지 주님을 대접하는 일을 하지 안하는데 참된 것 없어지지 안할 것을 너에게 맡겨 놓으면 네가 어떻게 할 거라고? 맡겨 놓으면 그거 가지고는 더 네가 욕심 부리고 남은 것 있으면 꽁꽁 싸놓지 주인 섬기겠느냐? 그러니까 참된 것을 맡기지 안한다 그말이오.
참된 것은 뭐이요? 참된 것은 딴거는 없습니다. 참된 것은 진리와 그 능력이 참된 것이요 영감과 그 능력이 참된 것이요 주님의 대 속의 그 구속과 그 능력이 참된 것입니다. 이게 천국이요 이것만 가지고 천국 만들지 딴 거는 천국 못 만듭니다. 이 셋으로만 천국을 만들지 딴 거로는 천국을 만들지 못해요.
이것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그라면, 진리에 충만한 사람, 이 신구약 성경은 다같이 보지마는 그 사람은 신구약 성경 육십 육 권 요것밖에 모르는데 육십 육 권에서 육백 육십 권도 더 알고 육천 육백 권도 더 알고 육만 육천 권도 더 압니다. 더 넓게 알아. 진리를 더 넓게 알아. 이러니까, 한 진리 속에 무한함이 있는 걸 그걸 다 가르칠라 하면은 어떤 사람이라고 하면은 다 가르칠라고 하면 그런 사람은 한 달 가르쳐도 그 안에 남았고 두 달 가르쳐도 남았고 한 절수 가지고 평생 가르쳐도 다 못 가르치고 이러니까 부득이 여기에 저게 가르쳐야 되지. 이러니까 이 진리를 그 사람이 가진 것이 많이 가졌다.
영감도 그 영감이 천층만층이 아니다. 그 영감은 형체의 차이와 같다. 형체가 모래알도 하나 형체요 성경에 말하기를 저 태양도 한 형체인데 태양이라는 한 개의 형체와 모래알 한 개의 형체가 그 형체의 차이가 얼마나 큽니까? 영감도 이렇게 차이가 크다. 진리도 이렇게 차이가 크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그 권능을 제가 입고 있는 것도 이렇게 차이가 크다.
다른 사람에게 입혀 주는 것도 차이가 크다. 영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는 것도 차이가 크다.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는 것도 차이가 크다. 이게 참된 것이라. 참된 것.
그러면, 이 참된 것을 우리가 마련하는 데에는 우리 힘으로 마련할 수 있습니까? 아니오.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참된 것은 당신이 우리에게 맡겨야 되지 맡기지 안하고 인간이 스스로 구할 수가 없어.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어. 당신이 맡겨야 되는데. 참된 것은 맡겨야 돼요.
진리와 진리의 능력도 주님이 맡겨 주셔야 되고, 진리의 광대하고 충만하고 깊고 높고 넓이를 아는, 이 진리는 무한함이라. 무한한 진리를 그 사람 부요 하게 가지는 거, 영감을 부요 하게 충만하게 가지는 거, 예수님의 대속의 이 완성을 무한하게 부요 하게 가지는 거 그 가지는 것은 인간이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맡겨야 된다 했어, ‘참된 것을 누가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주님이 맡겨 줘야 되지 맡겨주지 안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맡겨 줘야 돼요. 맡겨 줘야 제가 가질 수 있지 주님이 맡기지 안하고 가질 수 없어.
그러니까, 주님이 나에게 맡겨 주시도록 하는 데에는 뭐입니까? 주님이 나에게 맡겨 주시도록 하는 그 방편이 뭐입니까? 뭐이요? 불의의 재물로 충성하는 거, 요게 진리라. 요걸 딱 알아요! 요거 알면 돼! 요거 모르고는 자기가 뭐 이런 소리 저런 소리 앙만 엉뚱하게 해 쌓아도 소용없어, 여기 와서 똑똑히 배우면 양성원 학생들이 새벽으로 배우는 것만 해도 다른 데 가서 평생 배우는 것보다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 례만 알면 다른 거 다 아는 거라. 그대로만 알면.
이러니까, ‘불의의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참된 것이 뭐인데? 불의한 것 반대지.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안 맡기면 소용없어.
맡겨야 되지. 맡겨 주심을 받을라면은 불의의 것 가지고서 충성하면 돼.
이미 없어질 내 물질계에 속한 거, 자연 은총에 속한 거, 첫째 아담에게 속한 거 이거 가진 거, 이거 가지고 주님의 복음 운동에 주님을 생각하고 그분에게 충성되게 진실되게 충실히 정성되게 하면. 하나님께서 충만한 것을 자꾸, 맡겨 주신다. 충만한 걸 맡겨 주신다.
이러니까,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 가지고 지극히 큰 데까지간다.
지극히 작은 것 무시하고 안 한 자는 지극히 큰 것도 그에게가지도 안 하고 맡겨 주지도 안하고 못 한다. 이게 진리입니다. 진리. 진리 아닙니까? 여기에는 인간들의 인본의 모든 거짓부리는 하나도 없어. 다 진실이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절에, ‘너희가 만일’ 만일이라 말은 만에 하나라도 해서는 안 된다 그 말입니다. 엄격하게 지금 이 중요성을 귀중성을 중대성을 가리켜서 만일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만에 한 가지라도 만일 그래 한다면 큰일 난다 그 말이오.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이것만 보면 인간이 남의 것을 알뜰히 해 줘야 그 사람들이 알뜰히 해 준다. 이것은 사회에도 맞고 윤리에도 맞고 도덕에도 맞고 다 맞으니까 그리 해석해서 삐뚤어져 나가기 쉽습니다. 그게 아니라. 남의 것은 누구요? 남의 것은 주님의 것이라, 주님의 것. 네가 주님에게 대해서, 주님의 것에 대해서, 주님의 것이 뭐인데? 피로 값주고 산 모든 성도들이지. 네가 주님의 것에 대해서 ‘충성치 아니하면’ 정성 성심성의를 기울여서, ‘저거 손해 갈라? 저거 시험에 들라? 믿음 깨질라?’ ‘그까짓 거 믿음이야 깨지든지 말든지 시험에 들든지 말든지 대가리가 갈라지고 싸우든지 말든지 내 욕심만 차렸으면 됐다’ ‘그래! 나도 네게 대해서 그라겠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항해서 이길 수 있는가? 하나님보다 큽니까? 어리석어.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네가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구속한 주의 것. 남의 것은 주님의 것 말합니다. 주님의 것. 주님의 것을 네가 알뜰밧게, ‘내가 손해 가도 이것이 시험에 들라? 이게 믿음에 손해가 갈라? 이 구원에 손해를 볼라?’ 뻘뻘 떠는 그것이 바로 주님이 내게 대해서 이거 구원에 손해 갈라 잘못 될라 뻘뻘 떨면서 당신이 관심가지고 일해 주시고, 내가 거기에 대해서 무시하고 멸시하고 관심 없이 그렇게 제 하고 싶은 대로 이래하고 이와같이 하면 주님께서도 네 구원에 대해서 주님이 관심 없고 주지 않는다. 요거 말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네가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양떼의 구원에 대해서 귀중히 여기지 안하면 네 구원을 누가 귀중히 여겨 주겠느냐? 귀중히 여겨’줄이는 인간이 귀중히 여. 겨 줄 수가 있소 없소? 없어. 주님만이 귀중히 여길 수 있어. 주님이 인간을 통해서 귀중히 여겨 줘요. 우리의 구원은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귀중히 여기고 알뜰 맞게 해 주실 수 있지 주님 외에는 아무도 해 줄 이가 없습니다.
내가 주님의 것, 이 주님의 것인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 내가 신중히 조심 있게 성의 있게 뻘뻘 떨면서 그 구원에 조그마치라도 손상이 갈까 이렇게 뻘뻘 떠는 그자에게는 주님이 그자의 구원이 잘못될까 뻘뻘 떨고, 네가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네 맘대로 하는 자에게는 네 구원에 대해서 누가 그걸 관심 있게 해 주겠느냐?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누가는 누굽니까? 누가는 누구지요? OOO 목사님, 누가 너희에게 누구는, 그 누가 너희에게 그 누가 하는 거는 누굽니까? 주님이라, 주님.
맞았어. 주님이라.
‘누가 너희의 것을’ 주님이 네 구원을 관심 가질 것이 어디 있으며 책임질 것이 어데 있겠느냐? 안 준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전부 이 진리가 이래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변동하지 못해, 우리 OOO교회는 예배당 때문에 지금 문제가 있는데 그저 기다리면서 요번 교역자회 때까지는 기도하고서 자꾸 거기서 예배는 계속보고 이러다가 그때 가도 그분들이 공정하게 반씩 나누자든지 이렇게 뭣을 하지 안하고 다 한다 하면 두 말 없이 다 내 주고 나올 것입니다. 왜? 그리 안 하면 그들의 구원도 안 되겠고 이쪽 저쪽 구원 안 되기 때문에 다 주고 나와 가지고서 구원되면 하나님이 주실라면 얼마든지 주실 수 있지.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네가 남의 짓을, 주님의 것을 알뜰히 하면 주님이 네게 대해서 알뜰히 해 주시고 네가 주님의 것에 대해서 그거야 상하거나 망하거나 이렇거나 저렇거나 관심 없으면 나도 네게 대해서 관심 없이한다. 주님이 관심 없으면 그까짓 거 다지 무슨 소용 있소? 아무리 높아도 주님이 모른다 하고 쫙 그어 버리면 그만입니다. 뭐 아무 가치 없어.
13절에 ‘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그거야 의례히 그렇지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네가 하나님이냐 물질계의 것이냐? 이 물질계, 이 물질계라는 이 우주 안에 있는 이물질계의 것이냐 하나님이냐 둘 중에 하나라.
네 딴에는 하나님도 섬기고 이 물질계 이 세상 것도 섬기고 둘 다 섬기는 줄로 이렇게 네가 알고 있지마는 가다 보면 마지막에는 이거냐 저거냐 하는 그것이 종착이다. 물질계의 것이냐 하나님이냐? 둘은 못 취한다.
하나님을 취하든지 물질계의 것을 취하든지, 말하자면 이 세상이지요. 세상 걸 취하든지 하나님을 취하든지 둘 중에 하나이지 이것도 취하고 저것도 취한 줄 알지마는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요렇게 딱 말했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말했어. 이런데 사람은 있다고 말한 그거는 어리석어.
하나님은 없다 했는데.
이러니까, 최종은 둘을 섬길 수는 없고 하나로 네가 귀속되는 것이니 네가 지금 어데 귀속이 되느냐? 평소에 이 둘이 될 때에 하나님에게 속하고 땅의 것을 버리고 하나님에게 속하고 하는 이것을 평소에 해놔야 그 일이 되고, 평소에, 하나님 버리고 세상 것 취하고 하나님 버리고 세상 것 취하고, 둘 다 취할 수 있으면 둘 다 취하지마는 하나님을 버리느냐 세상을 버리느냐 둘 다 이래 닥칠 때에는 어느 것이든지 하나만 해라 할 때는 하나님 버리고 세상 것 취하는 요 버르징이를 한 번 두 번 연습해. 놓은 자가 절대로 최종에 가 가지고서 세상 버리고 하나님 취하는 일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평소에 요거 해 놔야 되지.
이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생활도 마지막에 그럴 때 갈 게 아니라 제가 자문자답으로 판단해야 돼. 보자. 내가 이 사건 처리하는 거 이 사건은 요거는 세상에 속한 면이고 요거는 하나님에게 속한 면이고 이거냐 이거냐 둘 중에 어느 것이냐?’ 이걸 판단해 가지고서 요리 하면 세상을 내가 취하는 것이고 요리하면 하나님 취하는 것이다. 둘 중에 어느 것인가 요걸 구별하지 안하고 마구 사는 인간은 평생 살고 목사 아니라 부흥사 아니라 어떤 게 돼도 헛일입니다.
뭐 택한 자야 하늘나라 가기는 갑니다. 가는데 이 건설구원이라는 이 영광구원은 행위구원은 보다 어느 것이냐 할 때에 보다 세상보다 하나님이라 하는 요게 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은 제 하나님이 되는 것이지 하나님도 세상도 같이 취하면서 이거 둘 다 취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는 둘 다 취하는 게 아니고 둘 중에 너는 하나밖에 못 취하는 것이니까 어느 걸 더 중하게 여기느냐 따져봐서 하나님을 세상보다 중하게 여기지 안하면 이 구원에는 상관이 없다 하는 것을 판명해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물질계의 것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네 딴에는 다 같이 섬기는 줄 알지마는 네가 하나님께 속했든지 물질계에 속했든지 둘 중에 하나이다.
거기에서 구원과 멸망이 결정된다 말씀한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