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6 14:48
기독자의 생활관
1984. 3. 20. 새벽
본문: 베드로후서 1장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성경은 어느 한 성구라도 실은 그 한 성구 안에 온 성경이 다 내포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면을 생각할 때에는 저 면을 잊어버리고, 또 저 면을 생각할 때에는 이 면을 잊어버리고 그리 되면 그 신앙이 이리 저리 치우쳐서 다 곁길로 탈선됨으로 옳은 효력을 얻지를 못합니다.
베드로후서를 하나님에게 은혜 입어서 기록한 이 베드로도 잠시 여기 발표한 것을 봐도 그 베드로 안에는 어떤 것이 가득 채여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만침 이렇게 표시했습니다. 그 베드로의 생각은 베드로 개인의 생각이지마는 그 생각이 자기 단독의 생각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각을 베드로에게 역사하게 해서 베드로가 하나님의 생각 곧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가지고 이런 생각을 베드로가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의 이렇게 생각한 것은 하나님의 생각이요 곧 우리가 이 성경을 은혜로 받아서 읽고 믿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는 우리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성신의 감화를 받으면 베드로와 같은 이런 사람이 차차 더 되어져 가는 것이 그것이 성신의 감동에 충만한 것입니다.
이제까지 여러 시간을 걸쳐서 베드로후서 1장 1절을 증거한 것을 총괄적으로 말한다면. 만물도 그러하지마는 사람은 더욱 더 안팎이 있다 안과 밖이 있다.
밖에 보다 안은 더 귀중하고 또 실력 있다. 그러기에, 겉은 약하나 속은 강할 수 있고, 겉은 속의 것을 위해서 있다. 겉의 것은 속의 것으로 인하여서 생겨진 것들이다. 겉의 것은 폐해지지마는서도 속의 것은 영원함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그분은 속 중의 속이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볼 수 없고 영원히 보지 못한다.
모든 선진들 중에 하나님을 보았다는 그 사실은, 뒤에 보면 하나님이라고 했고 그 다음에는 천사라고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신비하게 나타나셔 가지고 내가 여호와 하나님이라 이렇게 하셨는데 그 뒤에 보면 천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나타나신 그 형편을 말씀하십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모세에게는 나를 네가 대면하면 절단 날 터이니까 내가 지나갈 때에 내 등만 봐라, 하나님의 등만 봤다 그것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정면으로 대하면 우리는 거기에서 다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사랑의 은혜 역사가 나오고 나오고 해 가지고 여러 차례를 거쳐서 우리에게 비로서 보여 주고 알려지게 된다 그런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이 모든 신앙 행위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말로하고, 행동으로 하는 그것보다 하나님이 더 귀한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 믿는다고 하면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것을 자기가 알고 또 인정하고 확신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데로 딿는 것을 가리켜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니,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다 거부하지 안하고 단 마음으로 받는 것이 믿음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식을 주실 때에 그 지식을 아무리 내 주관 내 관념 선입적의 지식, 어떤 것에 배치가 되고 온 천하 인류의 지식에 지식에 비추어 봐서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그 지식이 배치가 되어져도 온 세상을 부인했고 자기를 부인했지 하나님이 주시는 지식은 그대로 바로 옳은 사실을 인정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지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을 받는 데에도 사람의 주관과 비슷한 것은 받고 또 같은 것은 받고 사람의 지식과 다른 것은 고만 이해를 하지 안하고 인정을 하지 안하고 받지 않는 그런 것은 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에게 받는 것이 믿음인데 하나님이 어떤 지식을 줘도 그 지식을. 그 지식으로 인하여 세상과 대립되면 세상을 부인 했지 하나님은 부인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옳다 참되다 받아 인정하고 확정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또 하나님이 능력을 주실 때에 그 능력을 거부하지 안하고 그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그 능력을 받는 것은 사람들이 능력이라면 다 좋아 하지마는서도 능력을 주실 때에도 그 능력은 우리에게 지식으로 오고 행위로 옵니다. 지식으로 오고 행위로 오는데. 능력은 좋아하지마는서도 그 지식은 인정하지 안하고 그 행위는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식을 자기가 받아 가져 자기 지식을 삼고 하나님이 그 지식을 통하여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 할 때에 하면 곧 한 그것이 능력이요, 또한 그것이 능력인데 한 그것이 능력인 줄을 사람이 잘 보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한 그것이 능력이었던 것을 과거가 되어 지내가면 이 능력이었다는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결과가. 예를 든다면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지식을 주셨고 그 지식대로 하는 나는 기도는 해야 됩니다. 하는 그것이 행동인데 지식대로 행동하는 그것은 지극히 큰 능력입시다.
지극히 큰 능력이지마는 사람들이 볼 때에는 능력으로 보지 안하고 그는 참, 다니엘은 총리나 된 사람이 그런 지혜도 없어 가지고 저 사자 구덩이에 묶이 들어간다, 아주 무능한 자로 여겼지마는 그 결과에 이튿날 살아 나와서 그 원수가 다 절단이 나고 일국의 제일 왕보다 도 존귀한 그런 권위와 인정을 받게 될 때에 야 그 참 다니엘이 하나님의 지식을 받아서 버리지 안하고 그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은 그것이 능력이고 또 그대로 '나는 기도하겠습니다.' 하는 그 말이, 혀를 놀리고 행동한 그것이 참 지극히 큰 능력이로구나 하는 것을 사람들은 몰랐지마는 결과로 나타남을 인해서 사람들은 능력이라 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실 때에 능력을 받고, 지식을 주실 때에 지식을 받고, 지혜를 주실 때에 지혜를 받고, 사랑을 주실 때에 사랑을 받고 진실을 주실 때에 진실을 받고 거룩을 주실 때에 거룩을 받고. 온전을 주실 때에 온전을 받는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니 하나님은 원 바탕 원형이요 우리는 그 원형과 같은 그런 원형을 닮은 자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나를 닮아라, 나와 같은 그 신성을 네가 가져라. 그 신성을 피조물된 우리들이 가졌을 때에 우리에게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신성이 아니고 신성같은 인격성입니다.
신성같은 인격성. 내가 주는 그 신성을 받아라.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그 인격성을 받아 가지는 것,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는 기쁨을 받아라. '예' 하고 그 기쁨을 받아 가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 내가 너희에게 존귀와 영광을 주노니 내가 주는 존귀와 영광을 네가 받아라 이랄때에 '예' 하고서 그 영광과 존귀를 받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을 딿는 하나님에게 속한 믿음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하나님에게 있는 온갖 좋은 것을 애낌 없이 우리에게 다 주시는데 주실 때에 그분은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무형의 존재니까, 형체가 영체도 물체도 없는 무형의 존재이니까 그분이 우리에게 주실 때에는 이 형체로 주지를 못 하시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방편은 당신의 그 뜻과 마음을 당신의 그 뜻과 마음을 우리에게 나타내 줍니다. 우리에게 뜻을 주시고 그 뜻을 마음으로 주십니다. 마음으로 주실 때에 그것을 사람들에게 표시하시기를 영감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실 때에 당신이 영감으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영감으로 나타날 때에 그 영감이 우리에게 뉘든지 다 보고 읽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이제 접할 수 있도록 나타난 것이 곧 계시 이 성경 말씀입니다. 이렇게 나타나서, 나타난 계시, 문서 계시 이 말씀을 우리에게 나타내서 우리가 문서 계시를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육십 육 권의 문서 계시를 가지고 있는데 이 문서 계시만이 다 아니고 문서 계시 안에 성령의 감화가 내재하시 가지고 영감이 내재, 안 내(內)자 있을 재(在)자 영감이 내재해서 내재적 영감이 우리에게 또 문서로 다 발표하지 못하고 그 문서 속에, 문서 한 성구 속에 많은 하나님의 은밀 의지, 은밀의 하나님의 그 마음이 내포되어 있는 그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그 무한한 양도 질도 무한이라고 할 수 있는 무한한 그 좋고 참 가치 있고 권위 있고 그래서 그는 진실한 것이요 영원한 것이 요 거룩한 것이요 온전한 것이요 불변하는 것인데 그런 하나님에게 있는 모든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뭘로 주시느냐? 영감과 진리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래밖에는 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영감과 진리로 주실 때에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나를 권세 주신다 하더니마는서도 뭐 성경 말씀을 나에게 주시고 또 그 마음에 성신의 감화라 하면서 마음 가운데에 감동이 되어지도록 주고 하니까 내가 어데 권세 달라 했지 이런 것 돌라 했나 하고서 부인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받지를 못 합니다. 그럴 때에 그 진리를 '아. 이것이 권세입니까?' 하고서 그 진리를 받고 그 영감을 받아서 자기가 그대로 지식하고 그대로 상각하고 그대로 원하고 그것을 받아서 행동하면, 마음과 이 몸으로 행동하면, 그것이 권세인 줄을 몰랐는데 그 마음과 몸으로 받아서 행동에 나오니까 행동의 결과로 맺아지는 것이 큰 권세가 맺어졌습니다. '아! 하나님이 나에게 이와 같이 하라 해서 하니까 나에게 큰 권능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지마는서도 그때 권능이 나타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을 때에 그 말씀 그 자체가 하나님의 권능이요 또 영감을 주실 때에 영감 그 자체가 하나님의 권능이요, 예를 들면 하나님의 은혜 중에 권능 하나를 들고 지금 말합니다. 그 권능인데, 그 권능을 권능이 감화로 내게 왔을 때에 그 감화를 내가 버리지 안하고, 성령의 감화를 소멸하지 안하는 것이 그 권능을 소멸하지 안하는 것이요, 또 그때에 요렇게 하라 하는 문서가, 명문되어 있는 문서가 이렇게 하라는 그 법칙으로 나타 날 때에 그 법칙. '내가 이라면 죽을 터인데' 하는 때도 많다 그 말이오. 그러나. 그럴 때에 그 법칙 그것이 권능이요. 그 법칙 그것이 또 생명이요 모든 좋은 것입니다.
이러기에, 그 법칙을 내가 받아서 행하려고 하니까 환경이 안 된다고 말하고 또 내 안에 있는 주관의 옛사람 그놈이 들어서,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되어 있는 나 아닌 나, 나를 죽인 원수인 나 그놈이 내라고 가장을 해 가지고 내 속에서 이라면 나 죽는다 안 된다고 야단 지깁니다. 그럴 때에 이제 믿는 것이 뭐인고 하니 고 영감을 소멸하지 안하고 명문된 진리대로 고대로 딱 행하고 보니까 나중에 아 권능으로 나타났습니다. '아 내가 이렇게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을 하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권능을 주셨구나,' 이렇게 깨닫는 사람도 있고, 아 이렇게 내가 행하니까 권능을 주신 것이 아니라 막바로 나에게 영감된 그 영감이 지극히 큰 권능이요 나에게 요렇게 하라고 명문되어 있는 그 명문이 지극히 큰 능력이었는데 나는 그 능력을 내 안에 있는 주관과 대립되기 때문에 그 능력을 나는 날 해하는 것인 줄 알았고, 그 법칙하면 죽는 줄로 알았고. 그 법칙대로 행하면 죽는다고 만 인간이 다 그거 안 된다고 이렇게 말을 했는데 나는 그 말 듣기 쉬웠는데, 그럴 때에 모든 인간을 다 부인하고 자기 옛사람 그놈도 부인하고서 딱 그대로 감화대로 그 말씀대로 실행을 하니까 그 이렇게 권능 이 나타났다, 권능이 나타나는 것은 막바로 내게 대한 명문된 고 내 현실에 하나님 말씀이요 현실에는 요렇게 하라 하는 고 현실에 하나님이 명문으로 나에게 말씀하신 고 명문, 고 명문이 바로 능력이로구나. 고때에 내 현실에 요렇게 하라고 감화되는 그 감화가 능력이로구나.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을 내게 주실 때도 영감과 진리로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이 나에게 돈을 주실 때에도 영감과 진리로 돈을 주시고 하나님이 내기에 원수로 더불어 싸울 때에 원수를 이길 수 있는 승리를 주시는 것도 영감과 진리로 나에게 주시는구나.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영감과 진리는 하나님의 온갖 좋은 충만을 내게 주시는 그 실상이로구나. 그러기 때문에 그 실상을 내가 배척하지 안하고 그 실상을 받아 가지고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안하고 내 주관에는 보이지 안하는데 받아 가지고 내가 행하니까 그 실상으로 나타나서 내가 볼 수 있구나. 자기가 마음으로 행동으로 그와 같이 행하는 것은 자기가 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그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이 볼 수 있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볼 수 있게 나타나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 그것이 새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오. 막바로 진리가 하나님의 온갖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신 그 자체요.
영감이 그 자체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이 뭐이 축복이냐? 곧 진리가 하나님의 축복.
막바로 진리가 하나님 축복 그 실상이요. 영감이 하나님 축복 바로 그 실상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담력을 주셨는데 담력을 주실 때에 담력을 어떻게 하면 담력을 주십니까? 아니요. 막바로 그 현실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렇게 하라는 그 말씀이 나에게 담력이요 그 말씀대로 하면 담력이 됐고 그 말씀대로 하면 담대한 자가 맺는 그 결과를 맺게 되어서 맺었을 때에 비로서 자기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온갖 충만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영감으로 또 좀 더 나오면. 진리로. 또 그 진리가 한 꺼풀 더 나오면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으로 이렇게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말씀을 거머쥐고 조금 안으로 들어가 보니까 진리요 그 진리를 거머쥐고 조금 들어가 보니까 영감이 요 영감을 거머쥐고 조금 들어가 보니까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뜻을 거머쥐고 조금.
거머쥐고 저 조금 더 들어가 보니까 하나님이시라. 그 논리적으로 말하면, 논리적으로, 사람이 논리하는 그 논리로 말하면 이러하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하나님은 신령이시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한다고 영체가 있다 그 말 아니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는 그 영이 영계에 있는 그 영이니까 영체가 있을 것 아닙니까? 아니요. 그 영이 아니요. '하나님은 영이시요' 그 말은, 하나님은 영이라 말은 인간의 그 영이란 말과 달라서 인간의 영은 영체가 있습니다. 인간의 영은 영체가 있지마는서도 하나님의 영은 영체가 없습니다.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그런고로, 하나님은 영이시라 그 말은 그 영이싸는 그 영을 뭐 만일우리나라 말로 번역을 한다고 하면 하나님은 생뗬이시 라, 하나님은 능력 이시라, 하나님은 지혜 시라, 하나님은 완전자시라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영이라 말은 하나님의 무한이라 무한이라 완전이라, 영원이라 그런 말로 표시할 수 있는 그 존재인데 그것을 당신이 표시하기를 하나님은 영이시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에게 예배 드리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릴지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하나님을 우리가 접촉하는 것이.
접촉하는 데에 제일 하나님을 접촉하기에 거리가 멀고 아주 둔한 것이 뭐이 둔한 것이냐? 우리의 이몸 이것이 제일 둔합니다. 하나님을 접촉하는 데에 제일 둔하고. 몸 보다는 마음이 하나님을 접하는 데에 좀 실력 있고 예민합니다. 또.
마음 보다 하나님을 접하는 데에 제일 권위 있는 것은 영입니다.
그러기에, 영은, 천상 천하에 영은 사람들만 가졌지 천군 천사가 우리가진 영을 가진 것 아닙니다. 천군 천사도 영물이지마는 그 영물은 우리 사람들의 영이라는 영물과 다릅니다. 사람들의 영은 하나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어 있는 것이 사람의 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어 있는 것은 사람뿐입니다. 사람의 영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천군 천사가 하나님을 접할 수 없는, 그 천군 천사를 초월한 하나님을 접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되어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궁 세계에,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그 나라에는 그리스도인 곧 교회, 교회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몸 같이 그렇게 되어 있고, 천군 천사는 발등상 되어 있는 것입니다.
천군 천사는 발등상이 되어 있고. 교회는 하나님의 몸같은 그렇게, 몸으로 되어 있는 그런 높은 지위에서 하나님의 모든 당신의 뜻을 교회가 받아 가지고서 만물들에게 전해서 만물에게 충만케 되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교회의 위치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교제 하실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귀실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접하실라고 할 때에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먼저 영을 살렸습니다.
그러기에, 믿는 택한 자는 그 택함의 구원이 시작되는 것이 어데서부터 시작됐는고 하니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시는 그 목적에 우리가 없는데 이 목적 안에서 어떤 자를 짓겠다 그렇게 한 것이, 짓겠다 한 그것이 뭐입니까? 예정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구원 예정 구원 거기에서 그대로 창조 하신 것이 창조 구원. 창조 구원이 그 다음에는 구속하신, 대속하신 대속 구원 중생 구원 이래 자꾸 나와서 이래 돼지는 것인데,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접하되, 우리를 접하되 우리의 해 놓은 일, 우리가 해 놓은 그 일을 하나님이 대접 받을라고, 하나님이 우리와 교제하기를 우리가 해 놓은 그 일과 당신이 서로 연합하고.
사귀어지기를 원하시는가, 또 하나님이 우리의 고기 덩어리와 사귀어지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가, 또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사귀어지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가, 또 하나님이 우리 영과 사귀어지는 것을 원하시는가.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가 해 놓은 일 우리가 해 놓은 물건이나 일, 하나님이 우리의 그 사물과 교제하는 것을 원하시는가, 우리의 몸과 교제하는 것을 원하시는가, 우리의 마음과 교제 하는 것을 원하시는가, 우리의 영과 교제하는 것을 원하시는가. 그러면, 몇 가지입니까? 예? 교제하는 것이, 하나님이 접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입니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이 몇 가지입니까? 네 가지.
하나님을 대접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저 뒤에. 저 뒤에 여반에. 저 뒤에.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전연히 말귀를 못 알아듣는 모양이라. 못 알아들으면 새벽으로 한번도 빠지지 말고 총총 나와요.
알지도 못하는데 무슨 행동이 나옵니까? 행동도 안 되는데 무슨 구원이 됩니까? 안 된다 그 말이오, 자꾸. 이런데, 이 마귀들이 들어서 자꾸 그저 위안만 줍니다.
위안만 줘. '아 이래 믿어도 된다, 믿으면 되지. 믿사옵니다. 하면 된다. 믿으면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다.' 은혜로 주 시는데 은혜로 주셔도 은혜로 주시는 것을 받는 방편이 신구약 육십 육권이요 영감입니다. 그 방편에 맞아야 되지 방편에 맞지 않는데 어떻게 줄 수 있으며 어떻게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이 네 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귀고저 하고 우리를 접하고 우리를 상대하고 하는데 하나님이 이 네 가지 가운데에 어느 것을 원하십니까? 자 어느 것을 원합니까? 네. 자 그러면, 이 제일호는 사물, 이호는 몸, 삼호는 마음, 사호는 영.
그러면, 하나님이 몇호를 제일 원하십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몇호를 원하십니까? 새로 한번 들어 봐. 몇호를 원합니까? 네, 알기는 압니다. 사호, 사호 원합니다. 사호를 원하시오.
그런데 사호도 없고, 사호는 가만히 있고, 사호 가만히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사호가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요? 저 ○○○ 목사님 사호가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지요? 예? 뭐라 하노? 불택자, 불택자가 사호는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라. 중생되지 안하 사람들. '불택자' 하는 것은 답이 오십 점밖에는 안 되요. 오십 점밖에는. 사호는 가만히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아직까지 중생 안했으면 그 사람은 사호는 가만히 있는 사람이라, 택자라도. 오십 점 졸면서. ○ 목사님 자꾸 저 먼저부터 자꾸 요새 보면 졸아.
뭐이 바쁜지. 어데 취미가 붙었는지. 그 졸면 안 돼요. 졸면 되는가. 헛일 아니야? 자꾸 그래 가지고서 잘못 알아서 잘못 가르치면 큰일 나지.
사호는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들은 다 사호입니다. 이 사호는 가만히 둬 두고 사호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아무 관심도 아무 상관도 가지지 안하고, 그 다음에 이 삼호를 가지고, 삼호를 가지고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이 삼호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사람인데 이 삼호가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소 없소? 바로 알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바로 모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니 뭐 한 한울님이라 또 한울님이라 또 의중주신이라, 별별 이름을 많이 붙여서 이래 놨지마는 그들은 다 헛된 말을 하고 있지 하나님을 하나도 보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교에서는 뭐 하늘님 하늘님 말을 짜다라 해 쌓지만 그거는 범신론이지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은 그들은 알지도 상상도 못합니다. 또, 둘째 것은 뭐입니까? 예? 마음. 이 첫째 것은 뭐입니까? 사물.
이런데, 이렇게 모든 것 엿새 동안에 만드신 분이 뭐 그까짓 것 원합니까? 이런데 제가, 이제 말한 대로 사호도 움직이지 안하고 이호도 움직이지 안하고 삼호도 움직이지 안하고 그 일호만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런 연보나 하고, 연보나 하고 물건이나 가지고서 부자되면 '하나님이 내게 축복을 주셔서 내가 부자가 됐습니다.' 이렇게 하는 자 그자를 하나님이 원하십니까? 그 일호로 하나님 섬기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몇호로 섬기는 것을 일호보다 낫게 여기십니까? 이호로 섬기는 것을 더 낫게 여기십니다. 이호라니 뭘로? 몸으로. 입술로.
몸뚱이로. 그보다 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얼마? 삼호. 삼호라니? 뭘로? 마음으로. 그보다도 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뭡니까? 사호, 영으로.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영을 접하기를 원하십니다. 영을 접하지 안하면 성령이 우리에게 올 때에, 성신의 감화가 올 때에 우리에게, 자 성신의 감화가 직접 우리 마음에 올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생각 하는 분들. 그러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성령이 우리 마음에게 직접 올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요. 또 손 놓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직접 올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알기는 잘아는데 가만히 잊어버려 버리면 헛일이오. 잊어버리면 헛일이라. 잊어버리면. 성령은 우리 영에게 접하고 우리 영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오지 우리 영을 통하지 않고는 오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증거한다.' 그러면, 성령이 무엇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와요? 우리 영을 통해서. 영을 통해서 오는데 이 영을 부인해 버리고 마음이 영이라 해 놨으니까 거기에 무슨 성령의 역사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전부 구원을 방해하고 가로막는 역사들을 하고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영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제일 원하시는데 하나님이 그러면 영으로 우리가 섬기는 것을 어데까지 원합니까? 영으로 섬기는 것이 충만해서 그 마음에게까지 번져 나가고 마음에까지 번져 나간 것이 그 마음에 몸에까지 영감이 번져 나가고 몸에까지 번져 나간 그 영감이 어데까지 번져 나가기를 원합니까? 해 놓은일, 해 놓은 물건에까지 번져 나가기를 원하신다 그 말이오. 그러므로, 위에서부터 밖으로 이렇게 점점 번져 나가는 것을 원하시고, 또 이 밖에서는 저 안에까지 다, 연결돼 있기를 원하고. 그러면, 사람이 밖에서 처음에 되어 질 때에는 밖에서 되어 들어가는 것도 있고 안에서 되어 나오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되어 들어가는 것은 그것은 자꾸 옆에서 말해 주면 그것이 몰라서 처음에는 일로 듣고 그 다음에는 표적으로 본다 말이오. 표적으로 보는 것은 표적은 보지만 딴 것은 볼 줄 몰라. 표적으로 보이고 그 다음에는 행동으로 보이고 그 다음에는 마음으로 보이서 마음에게 알리고 그 다음에는 영에게 알려서 중생시키고 이라는 것 있고 안에서 영이 마음으로, 마음이 몸에까지, 몸에서 모든 행동까지, 행동에게 물건까지 이렇게 번져 나오는 것이 되는 그런 방편도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이제까지 하는 이 모든 말은 총괄적으로 말하면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은 이렇게 영, 마음, 몸. 행동 이래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행동으로보다도 그 몸이 그런 몸이 돼면 좋다 원하신다 말이오.
몸이 그런 몸이 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원하시오.
예를 들면은 네가, 뭐라고 말할꼬. 얼마 전에는 주일을 지키면 다 그때는 주일날은 투표를 하라 했는데 투표를 만일 주일날 안 하는 날이면 이거는 반동 분자이기 때문에 이는 당장 요시찰인이 돼 가지고서 나중에 잡히간다 이래 가지고 주일날 선거가 떡 나왔다 말이오. 이러니까, 위의 사람들이 주일날 선거는 하면 이거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일날은 그런 중대한 일을 할 수가 없다 이래서 주일날 안 하기는 안 했습니다. 안 하기는 안 했는데 안 하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에게 밥 맛이 없습니다. 안 하기는 안 했는데 밥맛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 몸이 순종을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선거는 안 하기는 안 했는데. 안 하기는 안 했으니까 그 행동, 일은, 일은 주님에게 순종했지마는서도 왜 밥맛이 없느냐 하면 몸이 순종하지 안했기 때문에 밥맛이 없다 그 말이오.
이랬는데, 또 고만 잠이 안옵니다. 잠이 안 오요. '아 내가 선거를 안 해 놨으니 큰일난다. 안 하면 큰일 나겠다.' 해서 고만 잠이 안옵니다. 뭣이, 그 마음이 하나님 섬기는 것이요 안 섬기는 것이요? 믿는 것이요 안 믿는 것이요? 예? 안 믿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런 우리가 외식자가 되기 쉽다 이거요. 외식자가 되기 쉬워. 그럴 때에 영이 믿고 우리 마음이 믿어서 마음이 '뭐 주님 나 위해서 죽으셨으니 나 주님 위해서 죽는 것 마땅하다 죽기까지 하여 주님을 섬길수 있는 기회를 내가 만나게 됐다. 이러니까 참 기쁘다.' 이렇게 마음에 기쁜 기쁨이, 마음에 기쁜 그 기쁨이 몸에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예? 기쁘면 얼굴에 나타납니까 안 나타납니까? 예? 네, 마음에 기쁨이 이 몸의 기쁨까지 되고 몸의 기쁨이 그 일을. 다른 사람이 자 내일은 주일날 투표 한다 하는데 이랄까 저랄까 하니까 '아, 마음대로 하지. 하지마는서도 나는 주일을 어기기 때문에 나라를 지금 좌우하는 그런 중대한 일을 어떻게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며 할 수가 있겠느냐 나는 안 한다!' 이래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그말이오 '안한다!' 그러면,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 속에 영으로 섬기는 것을 제일 원하시기 때문에 대속을 하셨고, 그 다음에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을 왼하시고, 그 다음에는 몸으로 섬기는 것을 원하고, 그 다음에는 일로 섬기는 것을 원하고, 아무리 일로 하나님을 섬긴다 할지라도 행동이 다르면 하나님은 섭섭해 하십니다. 암만 행동은 그렇게 했다 할지라도 마음이 따로 있으면 헛일이요. 아시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 그 말은 신령이라 말은 그 영과, 진정이란 진정이 영입니까 마음입니까? 저 ○조사님, 진정이, 진정이 영입니까 마음입니까 몸입니까? 예? 어데 속했소 그게? 마음에 속했지. 그거야 뭐 더듬을게 뭐 있어? 마음에 속했지. 그 말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 말은 네가 영과 마음을 다해서 예배를 드리라 하는 그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쩌든지 하나님 앞에 외식하면 안 되는데 마귀란 놈은 자꾸 외식하라고 말합니다. 외식하라고 말해서 연보를 해도 연보하고 난 다음에 속에는 자꾸 '연보를 안 했으면 어데 쓸 터인데.' 인색한 마음을 자꾸 가지도록 이렇게 자꾸 한다 말이오. 연보는 해 놓기는 해 놨는데 마음은 헛일이요. 그러기 때문에 원하는 마음으로 하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 그런 것은 마음으로 섬기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외식이 그게 자기를 멸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 외식이기 때문에 외식하지 말아라. '외식하는 자들아' 마태복음 23장에 외식하는 자들아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아 화 있을진저 일곱 번이나 화 있다고 외식을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이제까지 하는 말이 다 외식하지 말고 외식 그거보다 좀 들어가서 알맹이로 그 알맹이에서 좀 들어가서, 더 알맹이로 그 알맹이에서 좀 들어가서 더 알맹이로, 그러면, 너는 그 모든 사물보다 네 몸. 네 몸보다 네 마음 네 마음보다 네 영, 그것이 똘똘 뭉쳐서 네니까 네 전부를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라 하신 말씀이라 그 말이오. 이걸 깨닫지 못하면 헛일이요. 그렇게 자꾸 어데서든지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생 동안 예수 믿는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배우고 안 사람들도 많지마는서도 평생 예수님을 믿어도 못 듣고 못 배워서 모르고 그냥 껍데기로 예수 믿는, 외식으로 예수 믿는, 주님이 탄식하는 그 외식의 신앙을 자기는 안심하고 이만하면 된다 하고서 그렇게 예수 믿기가 쉬워서 아주 뭐 부흥회하고 나면 기뻐 즐거워하고, 기쁜 것은 물론 있지마는서도 속에는 기쁘지마는서도 그 기쁨을 자기가 차지하는 데에는 한없는 애로가 있기 때문에 마음에 고통이 된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입에는 꿀같이 달지 마는서도 내 배에는 쓰더라' 그 말은 말씀을 들을 때에는 쉽지마는서도 그 말씀대로 실행할라 하니까 얼마나 어려운지 뱃속에는 쓰더라 그 말이오. 그렇지 안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어쩌든지 와서 들어서 깨달아야 됩니다. 안 깨달으면 못 믿어요.
이 서부 교회 교인들이 제법 많은데요 사람만 나왔으니 이 사람 밖의 사람들은 스스로 위안제 마시고 있소. 이 새벽기도보다, 새벽기도 나와서 진리를 배우는 것보다 이것이 더 낫다 이것이 좀. 뭐이 여기에보다 더 중요 한 것이 잠이 중요하든지 자기 직장이 중요하든지 뭣이 중요하든지 이보다 더 나은 것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믿는 사람이요 안 믿는 사람이요? 예? 껍데기로 믿는 사람이지 속에 진정 믿는 사람은 못 됐다 그 말이오. 예수님을. 우리가 본 받아야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새벽기도 안 빠졌습니다. 안 빠졌소. 예수님은 늘 새벽기도 하셨고 새벽으로 늘 하나님 말씀 듣고 가르치고. 늘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어릴 때는 들으시고 항상 그 다음 장성하고 나서 새벽으로 하나님 말씀을 이튿날 아침 일찌기 성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매일.
그런고로, 요 외식하기를 자꾸 고쳐서 자꾸 진실되게 예수 믿을라고 애를 써야 되는데, 그러기 때문에, 마음 없는 행동은 하나님 원치 안하십니다. 이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들이 나한테 날마다 제사를 드리는 이것은 나에게 큰 무거운 짐이다.
내게 고통이다. 너희들이 월삭을 지키는 것 뭐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 그런 것도 내게는 큰 짐이다. 고통이다. 내 마당을 다시 밟지 말라. 그런 껍데기만 가지고 날 와서 껍데기를 껍데기인 줄도 모르고 너거한테, 너거한테 섬김을 받는 자처럼 나를 그렇게 무지 무능자로 그렇게 상대하지 말아라.
이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껍데기로 날 섬기기 때문에 너희들이 암만 기도해도 내가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다. 암만 나한테 돌라고 이래도 안 준다. 너희 암만 기도해도 내가 귀가 따갑다. 암만 기도해도 내 딱 귀를 딱 막고 안 듣는다. 암만 날뛰어도 보지도 안한다. 이사야 1장에 말씀하지 안했습니까? 그런 외식하는 사람이 우리가 돼서는 안 됩니다. 자꾸 진실해야 됩니다. 진실한 사람이 된다고 해서 바보되지 말아요. 진실한 사람이 된다고 도무지 마귀 하는 일을 모르면 안 돼. '너희들이' 뭐라고, 뭐같이 지혜롭고?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그러면, 성령의 감동같은 순진한 사람이 되는 동시에 배암이 하는 일도 다 알아야 돼. 배암의 하는 일은 다 아는 것은 배암의 하는 일에 빠지지 안 하려고 아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내가 고대로 받아서 영접해서 고대로 될라고 하나님 하시는 일은 다 내가 아는 것이고 이래야 되지. 예수 믿는 사람이 배암의 일을 모르고 하나님의 일을 알라 하니까 몰라. 하나님의 일을 하나 알면 배암의 일도 하나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일을 열 가지 알면 배암의 일을, 열가지 알게 됩니다. 왜? 하나님의 일을 하나 알고 보니까 하나님의 일 하나에게 반대되는 뱀의 일이 있으면 '아 이거 반대되는구나' 하나님의 일을 백 가지를 알고 보니까 백 가지 하나님의 일에 반대되는 배암의 일을 알게 됩니다. 이래야, 예수 믿는 사람 세상에 꼬임을 받습니까? 어떤 사기 협잡 아주 고등 사기군이라도 그 사기군보다 사기군의 하는 일을 다 알고 그 사기군을. 사기 할려면 그 사기군보다도 훨씬 위에 대가리가 되지마는서도 안 해서, 그렇지. 이러니까, 믿는 사람은 바보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오. 마귀가 하는 일을 다 알아요. 알고도, '저 마음이 요런 마음 가지고 요런 수단으로 방법으로 그런다 그렇지마는 불쌍하지마는서도 불쌍하니까 내가 그걸 이래 안 들으면 서로 그만 떡 등이 져 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저 알고 속아야 되겠다 알고 져야 되겠다.' 수지 계산을 맞춘다 말이오. 저러니까 '결과적으로 뭐이 좋겠느냐' 할 때에 예수님이 걸어가신 걸음과 같은 그런 걸음을 걸어야 결과적으로 상대방에게 유익이 되고 자기도 후회가 없게 되기 때문에 십자가의 걸음을 걷는 것이지 어리석어서 몰라서 걷는 것 아니라 그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쩌든지 새벽기도 나와야 돼. 모르면 안 돼요. 모르면 신앙생활이 삐뚤어집니다.
알아야 바로 되지.
지금 기도록에 등록된 것은, 뭐이요? 여기에 감이 있는데, 증감인데 아 네.
알았소 알았소. 증감인데 그라면 주일 학교는 그대로고, 잘 했습니다. 중간반은 다섯이 올라갔고 또 장년반은 그대로고 이래서 이제 기도하러 온 분은, 이렇게 숫자가 적어졌네. 장로님들은 두 분밖에 안 왔구만. 19일 10시 이전에 기도하러 오신 분은 장로님은 두 분뿐이라. ○○○장로님, ○○○장로님, 두 분뿐인데 다른 장로님들은 어데 출타를 하셨는가 산기도를 가셨는가 또 자기 집에서 기도하는가.
자기 집에서 기도하시겠지 빠지면 안 됩니다. 못 와도 빠지면 안 돼요. 빠지면 안 됩니다. 저도 한번도 빠지든 안 했습니다. 빠지면 안 돼요. 빠지면 안 됩니다.
여기에 못 와도 집에서 할 수 있소, 산에서도 할 수가 있겠소, 또, 자기의 그 침실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내가 삼십 분 기도회에서 작정한 그 여덟 가지 기도를 나도 지금 이 시간도 방 안에서라도 해야 되겠다.' 해도 꼭 그렇게 삼십 분씩 하십시요.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분 기도 후에 결혼 상담회 있는데 그 결혼 상담을 요새는 그래 합니다. 이렇게 똑 경매 부르듯이 그래 하요. 경매 부르듯이. 경매 부르듯이 남반이면 남반에 성명 누구 누구 구역에 성명 남자 누구, 그라면 또 연령은 몇 살. 직업은 얼매, 학력은 얼마, 쭉 읽고 그 다음에 또 자꾸 읽어 내려 갑니다. 내려 가면은 가만히 구역장들이 왔다가 딱 앉아서 '아 고 총각이 우리 구역에 한번 거석이다.' 그라면 딱 스톱을 시킵니다. '아 고 사람 한번 더 알아 보십시요.' 이리 말하면, 그러면 '우리 구역에 이렇고 이런 사람이 있는데 어떻습니까?' 그러면 맞으면 봐서 '그러면 괜찮다 한번 예정을 해 봐라 우리가 그라면 한번 찍어 놓고서 심사해 보자.' 그러면 딱 적어 놓고 심사합니다. 또 가다가서 또 그런 사람이 있으면 딱 그래 말하고 그 다음에 여반을 쭉 부릅니다. 여반을 부르면 가만히 종각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가 '아 그 총각' 이러면, 먼저 말한 사람이 일등이요 그라면 그만 거기에 맞춰 가지고서 해서 적합하면 이래 해 가지고 자꾸 그래 합니다.
이러니까, 와 가지고서 잠깐이라도 참석해서 그래 하는 분 들이 좋습니다.
그리고, 혹 각 구역끼리 산기도를 간다고 하면 산기도 가는 데는 잘 못하면 산기도 가는데 안 되기 쉽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나한테 편지를 했는데 그래 놨소. 편지를 하기를 이 서부 교회서 이렇게 돈을 가져 오라고 자꾸 이렇게 하고 그래 가지고서. 자꾸 돈을 가져 오라고 해 가지고서 자꾸 재벌이 되어지고, 또 믿는다고 자꾸 가정에도 거석하고 가정도 돌보지 안하고 이렇게 하도록 이렇게 하니까 이래 되니까 내가 분개해서 서부 교회 이 경제가 어떤고 싶어서 그 지금 수사계에다가 의뢰를 하겠다고. 암만 의뢰해 봤자 빤들 빤들 하니까 왔다가 자빠지기나 하지 하나도 뭐 그런 것 없습니다. 다 이렇지마는 그 말 들을 때에 나는 아 이거 아마 이 말을 내가 들을 말이라. 안 들을 말이 아니라. 들을 말이라.
이거 믿는 교인들이 기도하러 간다는 것도 퍼뜩 가고 어쩌든지 새벽기도 나오면, 그 남편이 새벽기도 나오면, 그런 남편에게는, 한 시간 둘이 앉아 누워서 뭐 구불거리고 자꾸 뭐 장난도 하고 짐승 노릇 안 합니까. 이래 자꾸 장난도 하고 이래 이래 이래 좀 이라는 건데 한 시간 동안 떨어져 나가 버리니까 섭섭하니까 퍼뜩 와 가지고서 하나님 말씀 듣고 그런 가정은 퍼뜩 듣고 얼른 간다 말이오. 가 가지고서, 가 가지고 한 시간 비웠지마는 있는 보충을 채워서 기쁘게 하고 안마도 해 주고 뭐 이래 해놓으면 처음에는 삐쭉하이 이라지마는 나중에 가서는 좋아서 썩 이라면서 '괜찮애. 내가 새벽기도 가서 삐꾸는가 싶어서 자꾸 이래 달게느라고 이라는 가배. 이제는 달게지 안해도 와요.' 이래 할 수 있도록 어쩌든지 그래 가지고서 남편이 '야 이 아내 이거 어째 됐는가 이거 교회 보내 놓으니까 이것 참 멋진 아내가 되는구나.' 이래서 자꾸 아내가 교회 안 가면 자꾸 가라 할 수 있도록 이렇게 돼야 될 터인데 이래 놓으니까 이런 말이 오니 그 말 내가 헛루루 듣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그렇게 해서 산기도도 모든 것도 다 그렇게 하고, 또 새벽기도 나오는 것도 그래요. 그라면, 딱 집에 다른 것 다 반찬 다 준비해 놓고 모든 것 다 준비해 놓고서 딱 이래 가지고서 '보자.' 시계 딱 보고서 네시 반에 시작하니까 고게는 갈라면 십 분 걸리니까 네 시 이십분에 나가서 막 달음질을 쳐서 얼른 와 가지고서 설교 딱 마치고 나면은 고만 나서 가지고 달음질 쳐 가지고 가서 얼른 거석해 가지고 밥을 딱 차려 내 놓으니까 '아 여보 언제 밥을 했소?' 다 이래 가지고 해서 모두 다, 가족이 참 모든 면으로 감화를 받아야 그 지옥 갈 남편이 이제 천국 갈 것 아니겠소? 이러니까, 그렇게 자꾸 빛이 되고 사랑의 덕을 끼쳐야 될 거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원 구역장들도 지권찰들 심방 다닌다고서 얼마 데리고 돌아다니다가는 큰일 납니다. 그래 가지고 가정에 불화가 나고 그라면 안 되고.
또, 지권찰 하는 분들도 그렇고. 그래서, 지혜롭게 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가리워지지 안 하도록 그렇게 해야 합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