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6 14:50
기독자의 생활관
1982. 6. 16. 수야
본문:누가복음 16장 1절~13절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의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25 공과.
제목은 기독자의 생활관. 기독자가 어떻게 생활해야 되느냐 하는 데 대해서.
요절은 10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일.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에 팔려 그 공로는 우리 것 되고 우리는 주님의 것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모든 것은 내것이 되고 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 된 셈이다. 내것을 내것으로 찾으면 주님의 대속의 능력이 건설구원에 와서 역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다시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른 아무것을 위해서도 살 수 없고 주님만 위하여 살아야 하고, 둘째, 기독자의 영원한 준비는 이 세상에서만 할 수 있고 세상을 떠나서는 영원 세계의 준비를 하지 못한다.
셋째, 영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준비하는 길 곧 금생에서 내세를 위하여 유익되게 하는 길은 한 길뿐이니 주님의 피운동에 동참하는 인간 구원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 행하든지 곧 주님을 대접하는 일, 만왕의 왕 만주의 주를 친근히 사귀는 일이 되는 것이다.
넷째, 없어질 것 가지고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진리대로 살지 못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것을 주면 더욱 주관과 사욕대로 살 것이기 때문에 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다섯째, 주님의 것에 우리가 알뜰히 충성하면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에도 지극히 큰 능력으로 알뜰히 충성되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
여섯째, 이 일을 이루는 방편은 곧 하나뿐인데, 지극히 쉬운 방편이나 쉽기 때문에 교만한 인생으로서는 이 방편을 쉽게 보고 사용치 않기 때문에 세상에서 능한 자 교만한 자는 다 실패한다.
그 유일한 방편은 무엇이든지 지극히 작고 쉽고 사소한 것들 이것을 구속하신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뜻대로 하기를 힘쓰는 자는 지극히 큰 어떠한 신앙 위인의 걸음도 다 걸어 달성할 수 있다.
이 청지기 비유는, 청지기는 자기 것은 하나도 없고 주인의 것을 주인 대리로 맡아 가지고 관리하는 부자집 총무를, 요새 말로 총무를 가리켜서 청지기라 그렇게 말합니다. 부자마다, 그 부자의 모든 것을 부자 대신으로 권세와 책임을 가지고 처리하는 사람을 청지기라 말합니다. 그런고로 청지기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도 자기 것이 아니고 부자의 것을 보관하고 있는 것이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가, 우리가 그 공로를 베풀지 않았는데 그 공로 아니면 영원히 멸망받는데 예수님이 그 공로를 베푸셔 가지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공로를 베푸실 때에 당신의 전부를 다 생명까지 들여서 이 대속의 공로를 설정하셔 가지고 그 공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주님과 주님의 모든 소유와 주님의 생명까지를 다 투자해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는 이 구원의 공로를 베풀어 가지고,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이 공로가 우리 것이 되는 그때부터 우리는 살아 있지마는 주님의 것으로,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뜻대로만 우리는 대리 노릇을 할 수가 있지 하나도 우리의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품앗이를 하면 오늘은 내가 너희 일을 해 줄 터이니까 내일은 우리 일을 해 달라 그렇게 품앗이 했으면 오늘 그 사람이 우리 일을 해 줬으면 나는 내일 그 사람들 일을 해야 되지 내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모든 것을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다 투자하셨기 때문에 투자하신 그 공로로 인해서 내가 멸망을 벗어났고 구원얻었으니까 우리의 남은 때는 나 위해서 대속의 공로를 인하여 모든 것 다 투자하신 그분의 것을 내것 삼았기 때문에 내것은 당신의 것이 되는 것이 이것이 당연한 법칙인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신 죽었으니 내가 죽은 셈이요 주님이 내 대신 그 일을 했으니 그 일 한 그것을 내 모가치를 삼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이것이 지당한 것입니다.
청지기가 하나도 자기의 것은 아니고 부자의 것을 대리맡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는 주님의 공로가, 공로의 구원이 내것이 됐기 때문에 주님의 공로를 우리가 받아서 멸망에서 구원받고 나는 이 공로를 주시는 주님 앞에 내 놨습니다. 이러기에 주님은 지극히 영화롭고 좋은 것을 만들어 우리에게 주시고 아무것도 아닌 가치없는 것을 당신이 차지한 셈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자기나 자기의 모든 소유는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주님의 것이요 주님의 대속의 공로는 우리의 것이 됐습니다. 마치 상점에 물건 사 가지고 물건을 내 물건 삼을려면 내게 있는 돈을 내 줘야 되지 돈도 안 주고 물건도 내가 가져올 수는 없는 것처럼 주님의 지극히 큰 공로와 우리 아무짝도 못쓸 이것과 바꾼 셈입니다.
이래서 주님의 공로는 내가 그렇게 영광스럽고 존귀한 지극히 큰 공로를 베풀어서 이 공로는 죄를 완전히 멸했고, 사망을 멸했고,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자기 것 삼았고, 하나님과 부자의 이 화친을 가지게 된 이 지극히 영광스러운 공로인데 이 공로는 인간이 아무래도 억만분의 일도 할 수가 없는데 예수님이 대속해서 이 공로를 베푸셨습니다.
베푸시고 이 공로를 우리에게 주시면서 이 공로가 너희 것 되었으니 너희는 이제 내것이 되어 달라고 이렇게 바꾼 셈이 된 것입니다. 돈을 주지 않으면 물건을 도로 찾아가는 것처럼 자기가 주님의 것이 안되면 주님의 공로는 아무리 입술로 말해도 자기 것이 안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공로가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는 그 기본적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이 공로가 들어서 변호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공심판을 다 면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망과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기본구원적으로는 내것을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든지 안하든지 우리가 알기도 전에 우리 영이 죽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 공로를 우리에게 입혀 가지고 우리 영을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기본구원이라 합니다.
그러면 하늘나라 가는 것, 영생 얻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 것 이런 것은 다 기본구원입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하는 것도 다 기본구원입니다.
이제 기본구원은 우리가 똑 같은 구원으로 다 얻어 가지고 있고, 기본구원 얻은 우리들이 기본구원을 얻어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서 살 때에 수치스럽게 살지 않을려면 이 세상에서 준비해야 되고 또 기본구원 얻어 하늘나라 가 가지고 능력 없는 무능한 자로 살지 않을려면 또 이 세상에서 준비를 해야 되고 또 무궁세계에서 모든 존재들이 우리를 환영하도록 하려고 하면 그 준비도 이 세상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안 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 가지고 살지마는 이 세상에는 죄악의 죄의 세력과 사망의 세력과 모든 악령의 세력과 불의의 세력이 가득 차 있습니다. 또 우리의 심신적으로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을 수 있도록만 돼 가지고 있지 대속의 공로를 아주 입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을 수도 있고, 대속의 공로를 입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영은 구원을 얻었지마는 우리의 심신으로 되어 있는 육은 이 세상을 잘 살아 통과해야 하늘나라의 영광의 구원이 될 터인데 이것을 잘못 살아 실패하면 천국 가기는 갔지마는 하늘나라의 실력이나 영광이나 부요나 이런 것은 하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늘나라에 가서 실력, 영광, 대우, 존귀 이것은 우리가 기본구원을 힘입어 가지고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련하려고 우리가 할 때에 이 구원을 마련하지 못하게 하는 그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 세력은 어떤 세력인고 하니 죄와 사망이라는 세력입니다. 죄와 사망의 세력이 와 가지고 우리 구원을 이루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죄가 와 가지고 우리를 죄 짓도록 만들고, 죄만 지으면 뒤따라 사망이 와 가지고 사망을 시킵니다.
사람이 날마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그 살아가는 것이 이 사망에게 해를 받아 사망이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사망을 이기고 저주를 이기고 죄를 이겨서 죄 없는 자 사망 없는 자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세력이 우리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데 죄와 사망의 세력을 이겨서 정복을 하면 우리는 죄의 해를 받지 아니하고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합니다.
또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지성 지공의 율법을 우리가 다 이행을 해야 이행한 것만치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율법인 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만치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진리 반대의 인간 생각, 인간 이치, 인간의 모든 지식, 인간의 자율, 하나님의 이 법칙 외에 인간들이 세워 놓은 모든 법칙이 있고 또 하나님의 축복의 정반대인 축복같이 보여지지마는 실상은 그것이 저주와 멸망이 되는 그것들이 이 세상에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이 세상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뜻인 이 뜻으로 더불어 싸워 이겨서 이 뜻을 이겨야 하고 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악령의 뜻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겠고, 또 악령의 뜻대로 삶을 인해서 저주가 오는 이 저주를 멸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되는 이 난제의 큰 싸움 하나 둘 지금 말했습니다. 이 큰 싸움이 우리 앞에는 있습니다.
또 싸움 하나가 더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친이 되고 하나님과 친밀이 되어지기를 마치 머리와 우리 몸뚱이가 한 몸으로 이렇게 연결돼 가지고 있는 거와 같이 하나님과 우리가 머리와 몸이 하나된 것처럼 이렇게 밀접한 연결을 가져야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능력이 우리에게 건너와 가지고 우리 것이 될 터인데 이것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강한 세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그 반대로 하나님을 반대하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하나님과 대립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이 세력이 이 세상에는 가득 찼습니다. 무신론주의라는 이 공산주의도 하나님은 없다고 부인하는 그 무서운 하나님과의 화친을 방해하고 깨트리는 역사입니다.
또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는 우리들인데, 하나님으로 인해서 산다는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이 세상에 인간은 물질로 행복을 가질 수 있다 이래서 유물주의를 주장하는 강한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온갖 세력들이 가득찼고 또 하나님의 온갖 능력을 가져오는 것을 방해하는 세상에 속한 이 거짓된 능력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이것은 사망하게 하는 능력뿐이지 살게 하는 힘은 하나도 아닙니다.
과학은 사망하게 하는 세력이지 과학이 영생을 갖다 주는 세력은 한 내끼도 없습니다. 모든 게 다 그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능력을 우리가 받아야 되겠는데 이 능력을 받지 못하도록 이 능력은 부인하게 하고 아무 능력도 되지 못하는 사망의 능력인 그것을 자꾸 우리에게 갖다가 안겨 주며 ‘이게 좋다 이게 좋다’ 하니까 이 생명의 능력과 사망의 능력을 혼돈해 가지고 사망의 능력을 좋은 것인 줄 알고 받아 가지고 멸망하는 수 있고, 사망의 능력은 사망하는 능력인 줄 알고 이것은 물리칠려고 해도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이제까지 역사에 사람으로서는 인간을 멸망시키는 그 능력, 이 능력이 곧 마귀의 능력이며 세상에 속한 사망 아래에 있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능력들입니다.
이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은 보이지 아니하고 이 능력은 환하게 보이기 때문에 ‘보이는 능력 이게 좋으니까 이거 취해라. 하나님의 능력을 네가 말하는 그것은 속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취하려고 하지 말고 이 인간 능력 이걸 취해라.’ 이러기 때문에, 인간 능력을 물리치고 하나님 능력을 받아야 될 터인데, 인간 단독으로는 이 일이 안되는데 이것을 싸워서 인간 능력을 물리치고 하나님 능력을 우리가 받도록 승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려고 하면 세상은 세상 저하고 우리하고 이렇게 한덩어리 되자고, 세상 저하고 우리하고 이렇게 화친하자고 해 가지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화친이, 그것은 너희가 공연히 주관 행동이지 하나님이 어디 보이느냐? 이러니까 하나님하고 화친하는 이 화친을 방해해 가지고 세상과 화친을 되도록 하려고 하는 이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세상과 화친케 하여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이 세력을 이기고 하나님과 화친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큰 싸움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사람들은 기본구원은 싸움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기본구원은 다 받아 가졌습니다. 이것은 택한 자의 구원은 기본구원은 꼭 같습니다. 차이가 없습니다. 받아 가졌지만 이제 기본구원을 얻은 자가 하늘나라에 가서 영광의 차이 있는 것, 실력의 차이 있는 것, 지위에 차이 있는 것, 부강에 차이 있는 것, 존귀에 차이 있는 것 이 차이 있는 그 차이점은 세상에서 우리의 노력으로 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마련을 해야 되는데 이것을 마련을 하려고 하면 세 가지 싸움을 싸워 이겨야 이것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 세 가지는 세상에 속해 가지고 있는 세력인데, 세상은 이 세 가지 세력으로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 가지 대적을 싸워서 이긴다고 하면 그 사람은 세상을 이긴 사람이요 세상은 자기 것으로 완전히 정복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건설구원을 이루는 것은 싸워 이김으로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있는 교회는 싸우는 교회라 그렇게 말합니다.
전투교회라.
한번 따라 합시다.
전투교회! 전투교회! 예, 전투교회라고 하는 것은 싸우는 교회라는 그말입니다. 그러면 이 싸움은 밤이나 낮이나, 춘하추동, 사시, 언제든지 이 싸움은 계속을 해서 이겨도 또 남아 있고 이겨도 또 남아 있고, 져도 또 새로 싸울 전쟁이 또 있고 또 있고 이래서 세상 마치는 시간까지 성도들은 이 전투를 하다가 갈 십자가의 군병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전쟁을 하는데 무슨 전쟁을 하는가? 이 세 가지 전쟁을 합니다. 이 세 가지 전쟁을 해서 이기면 이긴 것은 전부 영생의 상급을 받고, 진 것은 영생받을 터인데 졌으니까 이긴 자에게 종이 되는, 이 사망에게 종이 되어서 다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싸움은 첫째 어떤 싸움인가? 죄에 관한 싸움, 둘째 싸움은 의에 관한 싸움입니다. 셋째 싸움은 화친에 관한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인생이 대개는 알지도 못하고 이 싸움은 싸울려고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이 싸움을 싸워야 할 그 대적들을 자기가 가장 친밀한 자로 알고 그로 더불어 화친해서 그가 인도하는 대로 함으로 죽는 줄도 모르고, 속는 줄도 모르고, 망하는 줄도 모르고, 인간 일생에서 완전히 속고 완전히 망하고 완전히 죽고 하는 것으로서 끝맺는 것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공로를 인해서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의 문서계시로 우리에게 알려 주셨고, 그보다 더 세밀히 알려 주신 것은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우리에게 똑똑히 알려 주셨습니다. 이래서 세상은 그것이 사는 것인 줄 알고, 성공하는 것인 줄 알고, 복되는 것인 줄 알고 했는데 마지막에 결말은 전체가 사망뿐입니다.
이런데 기독자는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성경과 영감으로서 우리는 이 세상에 우리를 꾀우는 삐뚤어진 모든 세력, 삐뚤어지게 하는 세력, 또 인간의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 뜻, 자기 지식 그대로 살게 하는, 인간 주관과 인간의 지혜 지식 이것이 멸망시키는 세력인 줄 모르고 이것이 좋다고 하나님의 세력보다도, 하나님의 법칙보다도 이것이 좋다고 오만 방편을 다 들여 가지고 이것을 마련하고 심지어 신앙까지 팔고 자기 인격까지 팔아서라도 이것을 마련해야 되겠다고 하면서 사람들은 마련하지마는 그것은 사망의 지식이요 사망의 지혜입니다.
또 조물주가 하나님이시며 주권자가 그분이시며 주재자가 그분이신데 그분을 없다고 부인하고, 그분을 욕하고 그분을 배반하고 제가 만들지도 않은 세계에서 제가 만든 것처럼, 제가 아무 권리도 없으면서 제가 주권을 가진 것처럼 순전히 거짓말을 해 가지고,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그 세력이 있어 가지고 그 세력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살 수 있다고 하는 이런 모든 이종교, 모든 도덕, 모든 철학, 철학은 자기 속에 자기를 행복되게 할 세력이 속에 내재해 있다 하는 것이 철학이요, 이종교는 자기 이상에 어떤 세력자가 있는데 그분에게 공을 들이면 그분이 행복을 준다 하는 것이 이종교들이요, 도덕가들은 저거 생각대로 양심대로 살면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 하는 그 주장을 하는 것들이 다 도덕가들입니다. 사상가들은, 온갖 사상들이 있는데 사상가들은 자기의 조부랍고 아주 무식한 생각을 가지고 자기 생각한 그 생각이 옳다고 주장해서 자기 생각대로 하면 인생이 행복될 수 있다 하는 것이 모든 만인의 사상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을 죽이는 그 인간의 원수가 가져왔고 원수의 것이라는 걸 알지 못하고 인간에게 이것이 가장 필요하고 요긴하다고 생각을 해가지고 이것을 따라서 이것을 가지고 자기의 실력을 삼고 스승을 삼아서 사는 것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아직까지 이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 가운데서 말로는 말하지마는 실은 삼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영감계시, 문서계시 이 두 가지로 우리에게 알려 줌을 인해서 삐뚤어진 능력을 삐뚤어진 능력으로 알고, 이 삐뚤어진 것을 통해서 인간에게 사망이 오기 때문에 삐뚤어진 이놈부터 정리해야 사망이 깨어진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러면 삐뚤어진 세력이 와 가지고 우리를 삐뚤어지게 만들려고, 죄라 말은 삐뚤어졌다 그말이오. 바르지 않고 삐뚤어진 것을 가리켜서 죄라 이럽니다.
죄라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나라 말로 번역을 이렇게 하니까 이렇지 죄라는 말은 옳은 것에서 삐뚤어졌다 하는 것을 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삐뚤어지게 하는 삐뚤어진 이 대적을 싸워서 이겨 삐뚤어짐이 우리를 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되고, 또 인간의 모든 지혜 지식의 이 세력이 우리를 붙들어서 그 지혜 지식으로 살라고 하는 이 세력을 이기고 하나님의 지혜 지식으로 사는 우리가 되어져야 하겠고, 이것이 칭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피조물들끼리 똘똘 뭉쳐서 하나만 되면 살겠다고 하는 이 세력을 싸워서 이기고, 피조물과 아무리 한덩어리 돼서 영계와 물질계 모든 피조물이 한덩어리 될 수도 없지마는 한덩어리 돼 봤자 그까짓 게 조물주 앞에는 아무것도 아니라 그말이오.
한덩어리 될 수도 없지마는 이것 돼 봐야 안되는 것인데 이것 한덩어리만 되면 산다 하기 때문에 이놈을 싸워서 물리쳐 가지고 이것이 우리와 하나 되자 하는 그 세력을 싸워서 이기고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렇게 한덩어리가 되어야 사는 이 일을 성공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하나님 버리고 이 피조물로 더불어 뭉치면 산다. ‘우리 민족끼리 뭉치자. 우리 국민끼리 뭉치자. 우리 민주주의끼리 뭉치자, 우리 공산주의끼리 뭉치자.’ 다 각각 자기네들끼리 뭉치면 산다 하는 그 뭉치는 세력, 이 세력이 인생을 행복되게 할 수 있다는 이 운동이 심히 강한데 이 운동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을 자가 하나도 없다 그말입니다.
실은 이 세력에 휩쓸려 들어가지 아니하고 이 세력을 배반하고 창조주요 조물주요 주재자요 주권자이신 한 분이신 이분이 나하고 한덩어리가 돼야 되지, 이것하고 한덩어리 되려면 이분하고 이별해야 되고, 이분하고 한덩어리 될려면 이것을 이별해야 되니까 이것을, 이 피조물과 한덩어리된 이 세력을 이별을 하고 하나님과 한덩어리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것을 이겨야 될 때 이길 자가 없다 그말이오.
이것을 이겨서, 이 세력을 이겨서 하나님과 한덩어리 되어야 되겠고, 또 인간의 주장, 인간의 뜻, 인간의 사상, 인간의 소견, 인간의 추측, 인간의 추론, 인간의 욕심, 인간의 주장, 인간의 법 이것이 제일이기 때문에 이 법대로 살아야 행복되다 하고 이 법대로 살게 하려고 하는 세력이 세계에 가득찼는데, 이 법이 하나님의 법에 맞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법이 그대로 전달해 온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 법이 조물주의 한 분의 법에 위반될 때에는 이분의 법만 지키니까, 이분의 법 하나만 지켜, 이분의 법 하나만 지켜서 이 분의 법이 동회에서 나오면 이분의 법이 동회에서 나오면 동회에서 나온 법이 아니고 이분의 법이 동회를 통해서 왔기 때문에 우리는 복종하고, 나라에서 이분의 법, 하나님의 법이 나왔을 때는 하나님이 나라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 법을 주신 줄 알고 그 법을 복종하되, 나라나 사회나 국가나 가정이나 이분의 법에 대립이 되고 이분의 법과 반대되는 것이 올 때에는 강한 세력이든지 큰게 하든지 뭐라 하든지 이 법은 거절해 버리고 하나님의 법 하나만 지켜야 되기 때문에 이 싸움이 얼마나 싸우기 어려운 싸움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둘째로 어려운 싸움입니다. 이제 첫째 싸움 말했고 둘째 싸움 말했습니다.
또 셋째 싸움은 하나님의 이 법칙에 삐뚤어지게 하는, 하나님의 법에 삐뚤어진 이 세력이 와 가지고 우리를 날마다 사는 생활에서 하나님의 법칙에 삐뚤어진 생활 하면 그들이 환영도 하고 대접도 하고 칭찬도 하고 친근히도 하고 좋아도 하지마는 하나님의 법에 삐뚤어진 그 법을 삐뚤어졌다고 배척하고 하나님 법대로 하려고 하면 죽이는 일도 있고 옥에 갇히는 일도 있고 취직 자리에서 그만 쫓아내는 일도 있고 배척하는 일도 있고 모듬벌도 받고 매도 맞고 갇히기도 하고 별별 일들이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싸움도 참 싸우기 힘드는 싸움입니다.
이 세 가지 싸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첫째 싸움은 삐뚤어지게 하는 세력으로 더불어 싸워서 이겨야, 이겨야 죄를 이기는 자가 되고 사망을 면하는 자가 됩니다. 사망을 면할려면 죄를 이겨서 죄를 박살을 내 버려야 되지 죄가 있으면 사망은 안 오는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사망만 무서워하고 싫어하지마는 사망 그놈은 힘이 없습니다.
사망이 올 때는 죄를 앞장 세우고 옵니다. 죄를 앞장 세우고 오기 때문에 죄 그놈을 멸하면 사망은 왔다가 제대로 녹아져 버리는 것입니다. 죄 그놈 때문에 사망이 있지 죄만 없으면 사망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제일 일학년 싸움으로 죄로 더불어 싸워서 사망을 물리쳐야 우리가 되고, 또 둘째로는 피조물의 주장, 피조물의 주장, 피조물들이 세워 놓은 이치 법칙 피조물의 주장 이것이 와 가지고 나도 피조물의 주장대로 살고 창조주의 주장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이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피조물의, 하나님의 주장인 뜻 이것을 버리고 피조물 주장을 뜻대로 같이 살자고 하는 그것을 대적해서 싸워서 그걸 물리치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이 일을 해야 이제 이 전쟁을 이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법을 통과했을 때에 법을 통과한 그 통과한 것만치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 싸움보다 좀 어려운 싸움, 이제 둘째 싸움을 싸워서 이깁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마지막 셋째 싸움이 있으니 그 셋째 싸움은 어떤 싸움인가? 하나님과 한덩어리되는 이것을 버리고 피조물들끼리 한덩어리 되자고 이렇게 운동하는 이 운동이 강하게 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과도 한덩어리 되고 피조물과도 한덩어리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좋지마는 평소에는 하나님과 피조물과 양쪽 다 이렇게 한덩어리가 될 수 있는 그런 것이지마는 이거는 마지막에 결말에 나아가지 않은, 널펑해서 아직까지 이것이 구별되지 않고 혼합되어 있는 때입니다. 차차 해 나가면 마지막에는 이것이 아니면 이것이라는 둘 중에 어느 것 하나 하는 고 지경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하고 한덩어리 되려면 세상하고 한덩어리 되는 것을 물리쳐야 되고, 세상하고 한덩어리 되려면 하나님하고 한덩어리 되는 것을 물리쳐야 되고, 그러니까 세상보다 하나님이냐 하나님보다 세상이냐 어느 것을 사랑하고 어느 것을 미워하겠느냐? 네가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네 생명까지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그 말씀이 마지막에 이렇게 절정에 가 가지고 지금 하는 말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세 가지 싸움 이 싸움을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건설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건설구원이, 건설구원이 많이 됐든지 적게 됐든지 건설구원이 된 것만치는 세상을 이긴 것입니다. 건설구원이 된 것만치는 악령도 이겼고 악성도 이겼고 악습도 이겼고, 모든 피조물을 다 이겨서 피조물을 발 아래 딱 복종시켰기 때문에 피조물의 왕이 될 만한 실력이 당당히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 가지 싸움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거냐 저거냐 하는, 그 둘 중에 어느 것이냐 하는 여기까지 나아가지 아니하고 전부가 한데 섞여 태여 가지고 있는 거기에서 머물고 있기 때문에 이거나 저거나 다 혼합돼 있으니까 거기에는 뭐 구별이 나지 않습니다.
거기에서 이게 옳다 이게 틀렸다 해 나가게 되면 마지막에 둘 중에 하나라 하는 그 절정에 딱 이릅니다.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 왼쪽 편에 것 이 세 가지를 이기고 오른 편에 것을 잡아야 그때에 성화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화구원은 영생하는 나라에 가 가지고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의 모든 것들인데, 그런 성질의 것들인데 이것을 자기가 많이 받든지 적게 받든지 받는 것은 죄와 사망도 이겨야 되고, 자율과 저주도 이겨야 되고, 모든 하나님과 원수된 것도 이겨야 되고, 그 모든 원수를 이기고 이제는 죄없는 자로, 하나님의 뜻과 자기 뜻이 일치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친밀이 된 자로 이렇게 이 세 가지 통과를 해 가지고 건설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건설구원 이루어진 것은 많든지 적든지 이루어진 그 양만침은 영계나 물질계나 모든 피조물을 발 아래 다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몸이요 만물은 발등상이라. 만물 위, 만물 위 교회의 머리가 되셨느니라 만물 위 교회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만이가 성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떻게 하면 오는 죄악의 세력을 이길 수가 있느냐? 오는 사망의 세력을 이길 수가 있느냐? 이것을 이기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서는 제가 각오나 결심이나 의지나 아무것을 가지고도 안됩니다. 기도해도 안됩니다. 힘을 써도 안됩니다. 되는 길은 한 길뿐입니다. 뭐이냐? 이것은 주님의 사죄가 내것이 돼야, 주님의 사죄는 지극히 큰 능력이 죄의 세력을 완전히 멸해서 정복했고, 사망의 세력을 완전히 정복한 이 정복의 승리로써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의 이 공심판에서 무죄라 하는 이 승리의 성공을 한 것이 사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죄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나와 동행할 때에 죄는 그 앞에 박살이 납니다. 사망도 박살이 납니다. 사망과 죄는 우리에게 와 가지고 침노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죄가, 사죄의 능력이 와 가지고 내게 역사해야 되는데 이 사죄의 능력이 내게 와서 역사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역사를 하고 싶어 원하고 원합니다. 원하고 원하는데 역사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사죄는 주님이 나를 대신한 것이기 때문에, 나를 대신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대신하신 당신의 것이 되어야, 대신하신 이것을 나에게 주어서 값을 주고 사라 했습니다. 바꾸라 이랬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주님의 대속을 받은 주님의 것인 것을 확실히 인정하고 주님의 것이 되어져, 주님의 것인 것을 알고 주님의 것으로 자기가 행동할 때에 그때에 사죄의 능력은 와 가지고 어떤 죄든지 다 박멸시켜 버리고 이제 사망은 와 가지고 거기서 박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를 주고 사죄를 사야 됩니다. 나를 주고 사죄를 사야 됩니다.
내가 당신 것이 되어야 대속하신 이 사죄가 내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속하신 공로를 베푸신 공로와 주님, 대속하신 공로와 주님을 내것을 삼으려 하면 나와 내 모든 죄는 당신이 담당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이 자기의 소유가 아니고 부자의 청지기, 자기가 자기 것인데 대속을 받고 보니까 자기는 부자의 청지기라. 자기가 보관한 것은 다 주님의 것이라 하는 이것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또 이 세상에 모든 인간 주장 이것이 와 가지고 하나님의 주장을 꺾어 나로 하여금 인간 주장에 속하게 하려 할 때에 나는 인간 주장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장에 속한 사람 되어져 하나님의 주장을 달성한 자에게 축복하시는 이 축복을 내가 받아야겠는데 이것을 하려고 하니까 인간 주장의 세력들이 와 가지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주장대로의 사람 되지 못하게 온갖 방편과 수단 가지고 나를 막고 붙들어서 이 일을 성공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럴 때에 인간이 목숨을 내놔도 안됩니다. 생명을 내놔도 결국은 자기도 모르게 껍데기는 입은 것 같지마는 속에서는 자율로 주관으로 자기 생명만 헛일하고 말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못 이깁니다. 이거는 절대 안됩니다.
다만 대속하신 칭의의 능력이 올 때에 이 모든 인간의 주장의 세력은 깨트리고 이 모든 저주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인데 이것도 주님이 나에게 칭의를 입혀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전부를 다 기울여 이 칭의의 공로를 베푸셨으니 칭의의 공로를 베푸신 이 공로와 주님이 내것이 되는 데에는 나와 내 모든 불의는 다 주님이 담당해 주신다.
주님의 것을 내것은 삼아서 내것을 삼았을 때에 이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 된다.
내것을 당신의 것으로 바칠 때에 당신의 것은 내것에 와 가지고 능력으로 역사하실 수 있다 하는 요것을 믿음으로 확정짓고 요 실상으로 자기에게 이루어질 때에 이 모든 인간 주장이라는 세력을 다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칭의의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모든 피조물과 합하고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이 세력을 이기는 것도 예수님의 대속의 화친의 공로가 내게 와 가지고 이 능력이 역사해야 내가 모든 피조물을 다 배격하고 하나님과 화친을 이룰 수가 있지 이 능력이 역사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서는 이 일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하여 자기는 주의 것이 된 이것을 믿는 것만치 역사하게 됩니다. 자기가 아무리 지식으로 알고 말로 해도 실상이 되어지지 않으면 실상으로 죄는 이기지 못합니다. 또 의는 고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화친의 그 결과는 맺어지지를 못합니다. 화친의 결과가 실제로 맺어질 때에 성화, 하나님의 칭의의 결과가 맺어질 때에 성화, 하나님의 사죄의 무지의 결과가 맺어졌을 때에 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것은 내가 주의 것이 되는 데에서만 가능하지 이것이 되기 전에는 절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밤에는 시간이 많이 갔는데,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는 사람은 자기는 주의 것이라는 것을 이걸 확신해야 됩니다. 또 주의 것으로 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자기가 무죄자로 살려고, 의로운 자로 살려고,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살려고 애를 쓰면 이 세 가지 강한 세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를 정복하려고 하는 그 원수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대속 받은 사람으로 살려고 해야 대속 받은 사람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강한 원수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발견하게 됩니다. 강한 원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 강한 원수로 더불어 싸울려고, 싸워서 이겨 볼려고, 자기 전심 전력 생명까지 다 기울여서 싸워 볼려고 애를 써도 결과적으로는 패전하고 만다는 이 사실을 발견한 사람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탄식하는 바울의 탄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탄식이 나오고 난 다음에 이제 주를 의지해서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모든 것에서 나로 하여금 이기게 하신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라고 그 기쁨을 가지게 되는 것이 그것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이 아무리 지식으로 믿고 말로 믿고 그저 교회 형편 따라서 올 수 있으면 오고 안 오고 싶으면 안 오고,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으면 살고 살 수 없으면 안 살고 양판지고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은 평생 믿어도 기본구원뿐이지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합니다. 건설구원을 이루는 그 행위는 온전한 행위가 됐을 때에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자기가 세 가지 대속을 받았으니 이 대속 받은 자로 살고 이 대속을 팔아 먹지 않을려고, 이 대속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 대속 받은 자로 살려고 애를 쓰면 뭣이 발견되느냐? 내가 살기 싫어 안 살지 내가 살고 싶어 살면 살 수 있다. 나만 살고 싶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살려고 하고 보니까 내가 살려고 하는 내 힘보다도 살지 못하게 하는 강한 세력이 상대방에서 사자처럼 웅크리고 있다 하는 이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원수 셋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이놈이 이렇게 강한 세력이 왔으니까 내가 이것을 이겨야 되겠다. 이기려면 주님이 나 위해서 죽었으니 나도 생명 내놓고 이것으로 더불어 싸워 이겨 보지’ 하고 결사적으로 달려들어도 못 이긴다는 것을 제가 마지막에 결론 지워야 될 것입니다.
결사적으로 싸워도 안된다. 자기는 생명 내놓고 이겼는데 생명 내놓고 이긴다고 이겼는데 그 시간을 지나고 보니까 순전히 자기 속에 악독이 했고 주관이 했고, 자기 무엇이 했기 때문에 내나 죄악의 법 세상 법칙대로 했지 하나님의 객관의 세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고, 이겼다고 했는데 속에 가 보니까 판판이 다 지고 말았소.
어떤 사람이 6·25 때에 말하기를 ‘인민군을 뭘 겁을 내? 인민군을 무슨 겁을 내? 내가’ 인민군 하나도 겁내지 않고 인민군한테 가 가지고 같이 놀기도 하고 이랬다고. 그 사람이, 그곳을 갈려면 인민군들이 바글바글한데, 인민군 있는 그 자리에 자기가 무슨 일을 보러 가는데 거기 갈려면 어려운데 누가 갈 사람 있느냐? 그 사람이 있다가 내가 간다고. 뭐 어려울까 보냐고. 내가 이 인민군 왔지마는 한 번도 그 인민군에게 굴하지 않고 다 거기에서 얼마든지 담대히 다 통과했다고. 뭐 겁낼 게 뭐 있느냐고. 그러면서, 그래 우리 거기 한 자리에 있었어. 그때 그분이 목사인데 그래 내가 말하기를 ‘목사님, 그러면 그 승리하는 담대한 방편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이랬어. ‘허 그것 참 만났을때 아, 형제여! 수고합니다 그 말 한 마디만 하면 아무 일 없는데, 형제여 수고합니다 이 말 한 마디만 하면 아무 일 없이 무사 통과인데 뭐이 겁이 나시오?’ 자 그것은 참 알단지 패전이오, 알단지. 인민군 돼 가지고, 인민군 됐으니까 그 사람이야 대적할 게 뭐 있습니까? ‘형제여’ 했으니까, 저거를, 공산주의를 형제라 하니까 얼마나 반갑겠소? ‘수고합니다.’ 무신론주의가 지금 유신론주의를 격멸을 할 때 수고한다고 잘한다고 칭찬을 했으니까 저희들의 편 중에 편인데 뭣 때문에 대립이 될 것이오? 그 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서 ‘예, 그 말 한 마디 하면 문제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말 아닌 한 마디라도 하면 문제는 없습니다. 거기까지 안 나가도 그들에게 대해서 아무 대항될 것 없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들의 편이 되고 그 사람들의 제자가 되고 그 사람들 중에 그 사람들이 됐는데 무엇이 대립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자기가 어떻게 해도 결과적으로는 이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경험을 많이 하고 난 다음에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결심으로도 할 수 없다. 생명을 내 놔도 할 수 없다. 인간이 죄를 이길 수는 없다. 인간이 불의를 막을 수는 없다.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되어 피조물과 하나 되자는 이 세력을 이길 자는 없다.
이것이 사죄로, 사죄로 살아 볼려고 칭의로 살아 볼려고 하나님과 화친으로 살아 볼려고, 이 세 가지로 살아 볼려고 애를 쓸 때에 이 세 가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원수가 있다는 것을 발견이 되고, 원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 이 원수로 더불어 싸워서 결사적으로 싸워도 이 원수를 결과적으로 이기지 못하고 패전한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이 비로소 힘으로 능으로도 할 수 없다. 아버지의 성령으로는 할 수 있다.
성령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는 자는 예수님의 대속과 주님이 자기 것 되었으니까 자기는 주의 것 된 것이라. 가지고 있는 것은 주님의 것을 보관하고 있는 것이지 제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고 비로소 예수님의 대속을 내것 삼아 나는 당신의 것이 되어지는 여기에서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역사해 가지고 승리하는 이 승리가 되어진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있는 청지기입니다.
오늘 그 다음을 좀 하려고 했는데, 여러분들이 이것을 견고히 잡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것 되는 것 이것이 죄와 사망을 이기는 지극히 큰 능력을 내것 삼는 것이고, 내가 주님의 것 되는 것이 이것이 모든 피조물의 주장을 이기고 하나님의 주장을 내 주장으로 삼는 지극히 큰 능력의 이 역사를 내것 삼아서 지극히 큰 능력이 내것 되는 것이고 모든 피조물과 하나 되자는 이 세력을 이기고 하나님과 하나 되는 이것이 그 면에 내가 주님의 것 되고 주님의 공로가 내것 될 때에 비로소 이 지극히 큰 능력은 와서 역사합니다.
우리에게 지극히 큰 능력이 역사하는 것은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하나님과 화친에 대해서, 이 세 가지에 대해서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할 때에 이것은 완전히 승리를 하고 해결을 지워서 토막 토막 성화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인데, 이것이 이루어져 가는 것은 내가 주님의 것 되고 주님은 내것 되는 것, 바꾸는 것.
“값 없어도 사라.” 값 없어도 사라 그 말은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가 지극히 큰 능력으로 와서 역사하는 이 능력을 내것 삼는, 내것 삼을 만한 그 댓가가 내게 있는 게 아니라, 댓가는 억억만분의 일도 안되지마는, 다 그까짓 거는 더러워 죄 있기 때문에 못 쓰는 것뿐이지, 못 쓰는 것이고 죄뭉텅이고 더러운 것뿐이지 댓가가 안되지마는 그래도 내 놔라. 너를 내 놔라. 너를 내게 안 주면 내것 네게 안 준다 하는 이것을 엄격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대속하신 주의 것인 것을 인정하고 주의 것으로 행동하는 행동이 한 번 있었든지 두 번 있었든지 행동한 그것은 성화되고 행동한 그것이 없으면 성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에누리해 가지고 공연히 위안제를 마셔 가지고 쉽게, 사람이 봐도 전부 찌끄러기만 가지고 갖다 바치고 수지는 저와 제 욕심대로 다 하고 이렇게 살면서 이제 구원 얻었다고 위안제를 주니까 좋아서 벙긋거리지마는 사람을 속이는 거짓 선지자라 말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라. 이것은 다 거짓 선지자입니다. 주님의 공로가 내것 되고 내가 주님의 것이 될 때에 그 공로는 실질적으로 내게 와 가지고 능력으로 역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광고 하나 합니다. 예배 마치고 30분 기도 후 남반은 1층 신관, 여반은 1층 구관에서 철야기도회가 있사오니 많이 참석 바랍니다.
오늘 저녁부터는, 요거 들으시오. 설교 말씀 재독을 비디오를 사용해서, 테레비를 사용해서, 우리는 여기에 하나도 안 보이는데 그 밑에는 보인답니다, 오늘 저녁에는 지금. 저녁마다 이래 한답니다. 비디오를 사용해서 화면을 볼 수 있게 합니다.
둘째 광고, 건축에 대해서 일곱 가지를 계속 기도합시다.
첫째는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우리 성전을 지어 주시도록.
둘째는 온 성도들이 일심 단합해서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성전 짓는 일에 전심 전력을 기울일 것.
셋째는 모든 관공서에 있는 형제들과 이웃에 있는 모든 관민들이 다 우리를 협조하도록 하나님께서 감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할 것.
넷째는 공사를 맡은 이 사람들에게 성신의 지혜와 총명을 주고 건강을 주고 충성할 마음을 주어서 잘 시공하도록 해 달라고 기도해야 되겠고, 다섯째로는 사고가 없이 잘 안보해 달라고 또 기도해야 되겠고, 여섯째로는 좋은 재료를 하나님께 달라고 이렇게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이 집은 그렇지만 저 철근은 좋은 철근이었는데 그런 철근은 돈 주고 사기가 힘드는데 기적적으로 구해야 될 것입니다. 기도 많이 해야 될 것입니다.
일곱째는 일기에 맞추어서 우리 일이 돼서 좋은 일기가 되어지도록 해 달라고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이 일곱 가지 기도 잊어버리지 말고, 또 성미주머니를 주최측에서는 새것으로 다시 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묵은 성미주머니 다 버리고 새 주머니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이 새 성미주머니를 다 나눠 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신청하신 구역은 60구역뿐입니다. 나머지기 구역은 신청하지 않았으니까 그거는 다 구역장들이 좀 게을리해서 그렇고 또 몰라서 그런 줄 압니다. 신청하실 구역은 예배 마치고 2층 뒷자리에서 신청을 받겠습니다. 배부는 금요일 아침 지권찰회 때에 나눠 드리겠습니다.
이러니까 자기 구역에 성미할 사람들이 몇이라 하는 고 이름을 기록해 가지고 하든지, 이름 기록 안 해도 몇 명이라 하는 그것을 말해 주면 좋겠고, 이름을 기록해서 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만들어서 합니다.
성미 그것을 권하는 것도 어쩌든지 하나님 앞에 바치는 일이기 때문에 좋은 일입니다. 시골에서는 성미 가지고 비로소 교역자 보는 일을 합니다. 그전에 저 처음 믿을 때는 배우기를 밥솥에 떡 뚜껑을 열면 열 십자를, 주걱으로 열 십자를 떡 그리고 이래 가지고 밥 퍼는 분이 눈 감고 기도합니다. 이래 떡 기도하면서 ‘주님 온 식구가 이 밥을 먹고 다 건강을 얻어 가지고 주님의 뜻대로 살도록 해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하고 밥을 퍼서 나눕니다. 이 십자가 그리는 그것을 무슨 십자가 그려야 된다고 이러면 그것이 하나의 잘못될 수 있지마는 자기가 생각하고 십자가를, 주님이 십자가로 나를 대속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린다면 뭐 열 번 그려도 좋습니다. 그거 죄되지 않습니다. 관계없소.
또 그렇게 기도하면 얼마나 좋소? 아무나따나 팍팍 이래, 믿는 사람들이 보고, 믿는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서 고만 퍽 떠 먹는 것 볼 때에 좀 무지하고 안됐다 그거요. 나도 오늘 한번 공격을 당했어. 저녁 먹는데 얘기를 자꾸 뭣을 신앙에 대한 얘기를 이래 하고 이래 숟가락을 들고 자꾸 얘기를 하다 이래 보다 보니까 먹다가 얘기한 줄 알고 입을 이래 떠 넣을려고 했다 말이오. 떠 넣을려고 하니까 옆에 있다가 ○집사가 ‘아, 기도 안 했습니다’ 그래. 아이쿠 그만 놀래 가지고 그래 수치를 당했습니다. 기도 안 하고 먹으면 그게 수치라 말이오.
그거 모양으로 그냥 퍼 먹는 것보다 어머니가 밥솥 딱 열어 놓고 이래 가지고 간절히 ‘주님이여, 이 밥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거 먹고 우리 식구가 다 건강하게 해 주시옵소서. 이 건강 가지고 죄짓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주님이 축복해 주시옵소서.’ 기도한다 말이오. ‘오늘 이 밥 먹고 실수하지 않도록 해 주옵소서. 오늘 동행해 주옵소서.’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축복받은 밥이니까 그 밥을 먹었을 때에 또 좋은 효력이 있을 거라 그거요.
성미도 그래요. 성미 하는 분들 보니까 그렇답니다. 어떤 분들은 ‘아이구, 성미 귀찮으니까 내비두고 저 주일 아침에 갈 때 야 그 성미 주머니 쌀 좀 넣어라.’ 이래 떠 넣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가요. 그거는 성미가 아니라. 성미라는 것은 정성 성(誠)자 쌀 미(米)자인데, 정성을 모은 쌀이라 그말이오. 쌀을 정성들여 모았다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모은 쌀이라 그말이오.
‘자, 우리가 먹는 밥에 내가 다른 것으로는 하지 못하니까 이 밥에 쌀에 십분지 일을 떼 가지고 이것 가지고 사람 구원하는 데에 쓰자.’ 이래 가지고, 자기는 자기 식구들이 밥해 먹는 양에다가 성미 할 것을 더 넣고 하면 안된대요.
성미할 쌀 안 넣고 꼭 평소 때 밥하는 그 양을 넣어 가지고 고 양에서 성미를 떠 넣습니다. 이러면 그 떠 넣는 것은 자기 피 될 것을 거기 내 놓는 것이라 말이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 정성을, 그거 가지고 정성이 들어 그걸 가지고 딴 사람들을 구원하라고, 시골 교회는 연보가 없으니까 그거 가지고, 여기 주르르 나오면 성미주머니 있는 데 이름을 다 쓰고 못을 딱딱 박아 놓고 오면 성미주머니를 자기 이름에다가 딱 못에 다 겁니다.
걸면, 보면 주렁주렁 달려 가지고 언간한 교회는 한 달에 쌀이 한 서너 말 이래 나옵니다. 이러면 또 성미 집사님이 와 가지고 고것 보고 나왔으면 딱 붓고 도장 딱 찍고 도장 꼭 찍고 붓고 붓고 이래 가지고 쭉 보면 ‘아무것이는 성미가 한번 빠졌다 안 빠졌다.’ 빠진 것은 뒤에 와서 쌀을 넣고 채우려고 하면 안됩니다.
과거에 일주간 동안 때마다 정성들여 모았는데, 쌀 모으는 게 아니라 정성 모으는 거라 그말이오. 정성 모으는 거.
이래 놓으니까 이제 시골서는 성미쌀이면 축복받은 쌀이고 정성쌀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좋다 이러는데 도시 교회는 성미쌀이 값이 쌉니다. 시골 교회는 성미쌀을 값을 비싸게 받는데. 그래 가지고 그걸 가지고 교회를 유지해 나갑니다.
이 성미주머니 60구역 외에는 오늘 저녁에 그것을 다 뒤에 와서 자기 구역에 몇 명이라고 말하면 나눠 줄 때는 아무것이 구역 몇명이라 하는 것을 기록을 하고 나눠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