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6 14:39
기독자의 생애 법칙
1984. 9. 4. 화새벽.
본문: 베드로전서 3장 8절∼12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영원 자존하셔 가지고 홀로 계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신 것은 그 목적이 이루어졌을 때에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되게 하려는 이 목적을 정하시고 이 목적을 위하여 모든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이 예정은 땅의 것만 예정이 아니고 하늘의 것도 예정하시고. 하나님의 창조전 이 목적을 위해서 예정하시고 예정하신 그대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이루신 그 중에 든 것이 창조입니다.
이 물질계와 물질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마지막날 창조하셨습니다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창조된 아담 해와를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셔서 거처하게 하셨습니다.
지난밤에 에덴 동산 인류시조에 대해서 ○ 목사님이 잘 증거를 해 줬습니다.
인류 태초에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으로 인도해서 에덴 동산에 살게 하시고 또 그 후에 해와로부터 아담이 타락하도록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아담의 타락은 일반 생육법으로 난 모든 사람들을 대표해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계약하신 그 계약을 맺고 그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일반인은 다 그 계약에도 동참했고 위약에도 동참해서 그때 다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그 후 동산에서 쫓겨나서 하나님과도 대립이 되어졌고 또 사람은 많은 사람은 없었지마는 단 그 친밀한 부부끼리 대립이 되어졌고 또 모든 만물과도 다 대립이 되어졌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범죄함으로 이렇게 타락하게 된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부터 천사 중에 높은 자를 타락하게 하셔 가지고 타락한 그 천사가 우주 밖에 있다가 또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예정하신 대로 우주 안으로 들어와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시켜서 인류 시조가 배암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타락했습니다. 배암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서 타락한 것은 배암이 하늘에서 타락한 그대로의 타락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사람들은 그 전함을 받아 가지고 그대로 타락했던 것입니다.
이 타락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기가 어렵고 또 하나님이 감추어 두셨기 때문에 어느 시대까지는 여게 대해서 확실한 교리를 정하지를 못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다는 것은 다 이미 제정되어 있고, 또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생겨져 근원은 하나라는 그 일원의 교리도 다 제정되어 있고 이것을 종합하면 타락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 하는 것이 결론이 되어지나 거게 대해서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또 많이 조심을 해서 명문되지 안한 일을 그렇게 말하기가 어려워 교리로 정하지를 못했기 때문에 이것은 늘 감추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벌써 마귀의 도가 높아졌고 사람들은 자기의 두뇌로 연구해서 벌써 전자 계산기를 만들어 내는 이런 시대가 됐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람의 타락이라는 것이 그것이 어디서 나왔느냐? 추궁하는 그런 지혜를 가졌고 또 거게 대해서 전체적인 계산을 할 수 있는 그런 벌써 명철이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가리워 두셨다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늘의 타락과 이 우주 안의 타락이 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하나님의 단독 의지로 예정되었고 단독의 그 능력으로 성취된 것을 벌써 지금은 저만 말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 개적으로 발표를 하고 있을 것이고 또 이런 계산을 다 대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타락을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이루어 놓으시고 타락에 대한 책임을 피조물들에게 지우셔 가지고 네가 이리 이리 하였으니 이런 심판을 받아서 너는 이런 벌을 받아야 된다 이렇게 하나님이 하셨을까? 또 그것이 하루 이틀이나 뭐 그런 짧은 기간이 아니고 영원 무궁토록 하나님을 배반한 자의 그 형을 무궁한 유황불 구렁텅이의 그 형벌로 그렇게 형을 가한 그런 일을 했을까? 이것도 참 하나님의 불공평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이 돼지기 때문에 모든 타락이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그 말을 하지를 못했으나 지금은 사람들의 영이 자랐고 또 더 광명해졌기 때문에 그런 것을 다 말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그 선하신 목적하나를 달성하시기 위해서 거게는 별별 것을 하나님이 창조하시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요렇게 어기는 것은 요렇게 멸망을 받고 저렇게 어기는 것은 저렇게 멸망을 받는다는 이 모든 타락의 수많은 종류를. 또 타락의 보응의 수많은 종류를 그렇게 만드셔 가지고서 하나님의 목적인, 그 목적인 교회가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는데에 대한 모든 종류와 성질을 다 알고 거게 대한 보응은 어떤 보응이 있다는 것을 다 이렇게 지식해서 이 광대하고 구비한 지식을 가지도록 하고, 또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그 복종의 수많은 종류를 만드셔서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그 종류 종류의 보응의 그 생명과 영광이 있음도 하나님이 만드셔서 다 알게 하시고 이렇게 해서 영원히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을 그 종류대로 모아 가지고 배반한 것의 그의 결과는 어찌 된다는 것을 다 적재해 놓으시고 다 진열해 놓으시고 그것을 영원히 영원히 하나님의 목적된 존재들이 그것을 보고 타락은 그 결과가 저러하다, 또 하나님에게 복종은 저러한 생명과 평강을 얻게 된다 하는 것을 하늘나라에 진열해 놓으시고 하늘나라로 영원히 알게 하셔서 하늘의 하나님의 목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반함에 대한 모든 지식을 구비하게 하고, 하나님에게 복종하게 하는 모든 지식을 구비하게 해 가지고서 참으로 하나님의 대리자로, 하나님의 후사로, 하나님의 계대자로 이렇게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을 관할하고 그것을 양육하여 그 모든 관할과 양육 전체가 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들에게 알려 주고 또 하나님에게는 어떻게 피조물이 대해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려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바다의 물이 넘침같이 이렇게 관영하도록 이렇게 하셔 가지고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사랑과 은혜를 얼마든지 무한히 베푸실 수 있도록 이렇게 하려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로써 하나님의 택한 사람들도 다른 사람의 타락만을 구경해 보지 안하고 자신의 타락을 하나님께서 예정하셔서 다 같이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들이 이다음에 하늘나라 가면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그 타락한 그 결과가 하늘나라에 따라와 가지고 그 사람을 괴롭게는 하지는 못하기는 못하지마는, 예수님이 대속하셨기 때문에 그 지공 심판이 그에게 형을 가하거나 고를 가하거나 가하지는 못하지마는 심령들이 밝기 때문에 알기는 다 압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있는 사람도 참 뭐 천층 만층만 아니라 그 층어리가 심히 많아서 어떤 사람은 자기 팔을, 자기가 잘못해서 자기 팔을 끊어서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지금 타고 있고 고난을 당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 눈을 잘못 사용하여 범죄함으로 눈이 빠져서 저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불타고 형을 받고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 심장을 잘못 써서 자기 마음이라는 그 심장이 유황 불구렁텅이에 가서 타고 있고. 자기의 정신과 총명이 거게 가서 타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입술이 잘못해서 입술이 둘째 사망으로 해를 받아 가지고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고 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잘 사용해서 입도 그 전체에 감사하고 눈도 감사하고 지체도 감사하여 그 모든 것들이 다 하늘나라에서 그 지체가, 지체가 본체로 인하여 존영하게 되었고 본체는 지체로 인해서 존영하게 되어 영은 모든 그 육에게 감사하고 육은 영에게 감사하고, 영은 육을 위하고 육은 영을 위하고,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는 그런 것으로써 존귀함을 보여 줘 그때에 사람들의 후회가 심히 많을 것입니다. 후회가 심히 많아서, 마치 홍포 입은 부자가 그렇게 참 뼈아픈 후회가 있지마는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성도들도 그때에 후회가 있지마는 그는 어짤 수 없어서 그저 후회되는 것마다 주님이 대속해서 죽은 것을 살려 주셨는데 다시 두번째 자기가 잘못해서 죽인 거게 대해서 원통하고 하니까, 하늘 나라에는 계급이 심히 많습니다마는 분쟁은 없습니다. 왜? 그런 것을 다 알기 때문에 제가 그저 마음에, 참 자기가 잘못한 책임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그 책임을 누구에게 증가시킬 수 없는 고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는 다 같이 부활은 받았지마는 그 모든 심신으로 된 육의 형체들은 다 부활받았지마는 그 안에 무한하다고 할 만한 그 기능, 그 기능이 피조물의 기능이 아니고 피조물이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기능을 힘입어 가지고서 굉장하게 그 기능이 숙달되고 성화되어서 하나님의 것으로 바꾸어져 가지고 하나님의 것으로. 썩지도 쇠하지도 낡아지지도 변하지도 아니하는 참 유한의 것 속에 무한의 것으로 가득히 채워 있는 그 기능으로 부활을 해 가지고서 영광을 우리는 사람들도 있고 또 그것을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 생의 법칙을 바꾸지 못해서 다 죽여 버렸고 그렇게 다 껍데기만 부활시켜 가지고 하늘나라 가서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니까, 육은 기능을 잃어서 거게서 가치가 정해지고, 또 영은 자기의 소유인 육을 자기가 어느 정도 잘 인도하고 잘 구출해서 육의 기능 가진 그 육이 어떤 육으로 자기는 가지고 있는가? 자기의 소유는 자기의 힘이 되는 것이요 또 자기는 소유의 힘이 되는 것이 그것이 필연한 것입니다. 이래서, 영은, 자기의 가진 육으로 인해서 영의 그 차이점이 생겨지고 또 육은 저희의 가진 기능을 인해서 차이점이 생겨지고 또 그 육의 활동이라는 그 움직임이라는 움직임은 모든 피조물로 인해서 그의 지위와 가치의 차이점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편 2편에 말씀하시기를 '땅에 있는 군왕들과 관원들이 헛된 것을 꾀하면서 그 하나님의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나자 하는 그런 헛된 경영을 하기 때문에 하늘에 계시는 이가 웃으심이여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창조된 피조물을 이렇게 하는 것이. 타락이나 구원이나 회개나 또 의나 그 모든 것은 하나를. 한 분이 당신에 만족하도록 당신을 위해서 예정하셨고 예정하신 그대로 만드셔서 일차 창조에 하나님이 보시고 선하다고 만족하신 것처럼 이차 창조에 변동되지 아니할 것들을 조성해 놓으시고 하나님이 만족하실 수 있는 그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조직적이라서 마치 요새, 제가 ○○○교회 다닐 때에 한번 어느 곳에 심방을 기니까, 거게 어느 집사님이 있다가 말하기를 '이거는 끈을 만드는 곳입니다' 그렇게 소개 합디다. 이 노끈을 만드는 곳인데 거기 보니까 노끈을 요리 감고, 기계로 가지고 감았는데 찬찬찬찬 감아 가지고서 그 끈을 감아서 이만큼하게 이렇게 감아 가지고 이랬는데, 그렇게 끈으로 또 동이고 동이고 감고 감아 가지고서 이렇게 뭉텅이가 돼 있습디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을 이렇게 끈 뭉텅이로 묶어 놓은 거와 같이 이렇게 여러 수백 겹, 수십 겹. 뭐 수천 겹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 그렇게 첩첩이 얽어 놓고 첩첩이 매 놓고 이런데 인간이 자기의 그 자율이나 주관이나 이런 것대로 해 본다고 하는 것은 만판 속는 것입니다. 그 자기 주관대로 해서 일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나중에 가 보니까 주님이 예정하신 고대로 돌돌돌 말려 가지고서 자기는 결과적으로 악에게 이용을 당하고 선에게 이용을 당하는 그것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은 다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옥 간 자도 하나님 증거하고 천국 간 자도 하나님 증거하고 의인도 하나님 증거하고 죄인도 하나님 증거하고 하나님 증거를 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것이 당신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피조물들에게 알리려 하는, 제일 당신을 잘 알리고 정확하게 알리는 자를 창조하시겠다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시요. 또 의의, 그 다음으로서 모든 일반인. 하나님이 제일 당신을 잘 나타내려는 그 모형의 존재가 하나님의 교회요 그 다음에는 모든 만물들이요 모든 인류들이요 그 외에 있는 모든 것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는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제가 그 결박을 끊고 그 맨 것을 끊고 결박을 벗어날라고 하는 그것은 참 어리석은 일이요. 벗어날라고 무신론을 일생 동안 주장을 하면서 하나님의 교회를 반대하는 그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예정하셔서 저는 일평생 동안 무신론을 주장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으로 저희의 전 생애를 삼아 가지고서 그 보응 그대로의 상당하게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영원히 후회하도록 영원히 후회하도록 그렇게 하는, 후회하는 존재가 되어서 영원 무궁토록 모든 존재들에게 '나는 이리 이리하여 자존자 조물주를 이리 이리 반대하고 나는 이리 이리 하는 이런 결과로 이런 자로 되어져 있다' 하는 것을 그는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증거하지 안하는 자가 없고 전부 다 이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조브랍게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신불신자에게 타락을 허용하시고 이 타락 하면은 이 타락은 다시는 복구가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 자체로써 회복할 수 없는 영영한 타락이요 멸망인데, 이 멸망이라는 이 타락은 영영한 멸망이라는 이 지식을, 이 지식을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 가지지 못 한다고 하면 지식중에 반은 가지지 못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지식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타락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지식은 두 가지밖에 없는데, 한 가지 지식은 하나님에게 속하고 그를, 그에게 속하고 그를 위하고 그로 인하여서 움직이는, 다시 말하면 한 말로 말하면 '하나님에게 속한 것은 어떠하며' 하는 한 가지 지식과 또 '하나님을 떠나면 어떠한가' 하는 한 가지 지식과 어 두 가지 지식뿐인 것입니다.
이런데, 사람들에게, 택한 자들에게 하나님을 떠나면 어떠하다 하는 그 지식부터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속하면 어떻다는 그 지식을 잠깐 주시고, 고 지식으로 시작해 놓으시고 고다음 순서가 사람이 타락해서 하나님을 배반하면 어찌 되느냐 하는 그 지식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 지식을 필요하기는 하지마는 이 지식을 알고 난 다음에는 다시 돌아서지를 못합니다. 못 하기 때문에 이 지식을 넣어 주시고 또 타락한 자, 정죄받은 자, 저주받은 자가 다시 하나님의 그 목적대로의 온전함을 이루는 데에는. 여게는 하나님께서 대신 모든 것을 다해서 대속하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부를 이 대속으로 다시 타락에서 복구해서 회복시키려는 이 대속의 역사를 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있는 것을 다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큰 학비를, 큰 학자를 당신이 다 제공할 각오를 가지시고 이 타락의 체험과 경험의 지식을 우리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처음에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그 객관적 은혜를 가지고서 이렇게 베푸셔서 간접적 은혜 이런 은혜. 그저 하나님의 당신의 지능의 역사만으로 그를 만족케 할 수 있는 이런 대상이 되어졌다가 이제는 지옥의 역사만이 아니고 당신의 전부. 당신의 그 본체 전부, 당신의 전부를 다 이 피조물에게 다 주시고 또 피조물은 하나님의 전부를 다받고 하나님은 당신의 전부를 피조물을 위해서 다 위해서 투자하고 피조물은 하나님의 전부를 다 자기가 받아 가지고서 일 초 동안이라도 그와 끊어지면 죽고 그와 끊쳐지지 안하면 살 수 있도록 이렇게. 하나님은 인생에게 다 주기를 원해서 다 주는 방편을 취했고 인생은 하나님에게 다 받는 방편을 취하게 됐고 하나님과 인생이 찰나라도 떨어지면 죽는다는 이 밀접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타락을 주시고 그 다음에 대속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 대속은 억만 년 지나가도 하나님과 만일 찰나가 끊어지면 찰나에 거게서는 완전히 죽어지는 것이고. 또 자기가 어디까지 타락했을지라도 하나님의 대속으로 연결되면 즉시 살도록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대속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타락을 허락해서 세상에 있는 모든 온갖 종류의 그 죄악의 종류도 우리가 상상 못 할 만침 참 구비하게 되어 있고 놀랠 만침 그렇게 엄청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있으나. 그 모든 것을 다 주님이 필요 있어서 당신이 혼자 예정하시고 당신이 혼자 창조하셔 가지고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절대 계획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 한 분의 역사라는 것을 깨닫고 거게 대해서 시시비비를 하는 그것이 제삼계명을 범하는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람으로서 두 종류가 있으니 한 종류는 타락한 그 타락의 가운데서 일생 동안 타락을 되풀이하고 그것을 자기의 생애로 삼이서 살다가 끝을 마치는 자 있고, 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이제 타락 속에서 타락의 방해를 받고 타락의 그 시련을 받으면서 이렇게 타락의 죄악이, 하나님의 저주와 사망과 죄악이 하늘까지 관영하도록 이렇게 빡빡하게 채우기를 바다에 물이 가득 찬 것처럼 이렇게 채워 놓으시고 거게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그런 모든 타락과 저주와 사망의 그 모든 악의 세력을 능히 능가하고 그런 것들을 다 이기고 헤고나고 다 정복하고 그 모든 것을 다 승리하고 이렇게 있는 지능을 다 해서 사이비하게 참으로 바르고 삐뚤어진 것을 분별할 수 없는 이런 복잡하고 세밀한 모든 것을 나열해 놓은 그런 것들도 하나도 알지 못함이 없이 정확하게 '이거는 아니라 이거는 고것이라' 그 시비곡직을 바로 판단할 수 있는 이런 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 가운데서 이렇게 되어지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 달성인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써 모든 것을 다 대속하신 이로써 윤곽과 세포와 조직을 다 이루어 놓으시고 그 안에서 성령의 감화와 진리의 역사로써, 역사로써 하나님의 무한한 완전도 입을 수 있고 하나님의 그 모든 속성도 다 연결돼서 입을 수 있고 하나님의 지능도 다 입을 수 있어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 창조주와 꼭 같은 이런 모형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대리로 모든 피조물을 다 통치하도록 그렇게 한 것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을 대해서 어떻게 세상관을 가지느냐? 세상관을.
이것을 하나님께서 타락하게 하셨기 때문에 전지자가 타락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 타락의 종류가 전지자가 계획으로 한 것만침 그만침 종류대로 수많은 타락이 있다는 것, 수많은 악의 세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 수많은 것이. 그 수많은 것이 있는데 그 수많은 것이 무엇을 위해서 있느냐? 하나님의 목적인 하나님의 교회의 그 연습. 연성 언단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이 교회를 위해서 있고 교회는 하나님을 위해서 있도록 이렇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악에게 속한 수많은 종류가 나타날 때에 그를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비한다는 것은 우리는 착각해서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안약을 사서 발라서 눈을 보게 해 가지고,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날 위해서 주신 것이니 내 현재에 당한 것만이 내것인 것인데, 네 현실에 봉착된 것이라면 반드시 이것으로 인해서 나는 이를 정복하고 통치하고 또 이것을 잘 통치해서 하나님의 목적인 내 구원이 이루어져 영원히 이것의 이런 종류에 속한 것을 능히 다 다스릴 수 있고 또 그것을 이용할 수 있고 또 그런 것을 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그 사랑대로 그 모든 것을 다 잘 이용해서 내가 그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하신 고 일을 고대로 전달해시 하나님의 수족으로. 하나님의 혀로,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꼭 대할 수 있는 이런 것을 우리는 연성돼 가도록 이렇게 할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해서-시간이 없으니까-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먼저 잠깐,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잠깐 에덴 동산에서 살게 하시고, 거게서 타락으로써, 둘째로 타락을 줘 가지고서 이렇게 타락을 경험하고 체험하고 이렇게 하시고 이 타락한 가운데에서 다 타락 그대로, 그 타락도 얼마든지 성장해 나갑니다. 주님의 재림 때까지 죄악도 그대로 성장해 나갑니다. 악의 세력도 그대로 성장해 나가고 그대로 번성돼 나갑니다, 마치 어떤 식물 하나 내놨으면 그것이 점점 번성해 나가는 것처럼 재림 때까지는 그런 게 점점 번성해서 그것이 쇠하지 안하고 점점 번성해 나갑니다. 번성해 나가는 이 속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그 속에 있으면서 그것에게 감염되지 아니하고 그것에게 정복당하지 안하고 그것에게 피동당하지 안하고 그것을 닮지 안하고 거기에서 역류해서, 거게서 역류해서 절대자이신 그분과 연결되어서 그분의 것이 내게 와 가지고서 내 자체가 되어지도록 이렇게 역사해서 그 관영한 사망 속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 이루어지고 아주 거짓된 속에서 영영히 변치 않는 그 진실이 이루어지도록 이런 것은 뭐이나? 말세에 나타내기로-말에는 신약 시대를 말하는데-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입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우리 속에 있고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와서는 그와 나와 대립되기 때문에 거기서 마찰이 되어지나, 마찰이 되어지나 마침내 그런 것이 다 결과적으로 나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이 되었고 나에게 필요한 요긴한 것이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나는 자랐고 그로 말미암아 나는 배웠고 나는 경험하고 체험해서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이 점점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그 영광의 찬미가 이루어진 그것을 자기가 체험하고서는 '잠시 잠깐 후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도다' 이래서 이것이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을 결론으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 타락을 주셨느냐? 타락을 주신 이유가 그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타락을 주시고 왜 그걸 하나님께서 또 벌을 주시고 틀렸다 하고 이와 같이 책망하느냐? 그래야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래 놓고 '이거는 봐라. 틀렸다. 이게 와 틀렸느냐? 이렇게 말하고 이라는 것 그러나 당신에게는 악이 없는 것이. 없는 가운데에 당신이 그와 같이 사용하시기 위해서 창조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집에서 불집게를 만들어 가지고, 불집게 만든 것은 항상 불붙는 연탄을 찍어내기 위해서, 타서 마지막에 없어지는데 내가 그것을 내게 필요 있는 대로 만들어 가지고 하는데 '왜 나는 불집게로 만날 거석하고 아무것이는 만날 주인의 손에 끼어 가지고서 반짝거리며 좋아하는 다이야몬드 반지를 만드느냐' 할 수 없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조브랍지 말아야 됩니다. 넓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된 세상인데 하나님의 택한 자는 중생된 그때부터 중생된 그때부터 이 세상에서 전투의 존재가 시작되었고, 또 자기가 신앙 생활을 하는 그때부터 그 모든 대외에 대해서나 대내에 대해서나 전투로 이 악에게 더불어 싸워서 악은 나를 위해서, 악은 나의 연습하는 데에 이용물이요 나로 하여금 일차 실패했으면 이차, 삼차, 그래서 얼마든지 연습해서 연성이 이루어지고 연단해서, 연단이라는 것은 이렇게 자꾸 싸우는 가운데 처음에는 자기 의지로도 되는 것 같았지마는 차차 차차 도수가 높아져서 그 의지로가 아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그의 신적 요소, 신적 요소 그것을 받은 그것만으로만 남아 있지 나머지기는 다 불타고 없도록 이렇게 해서 이제 이 일차 창조의 것을 이것을 완전히 일단 죽음으로 통과해 가지고서 완전히 신령하게 변화를 해 가지고서 영원한 것을 만드시고 그 속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창조, 하나님의 요소, 하나님의 그 능력의 요소, 하나님의 모든 지능의 요소를 가지고 와서 채워서 온전케 하려는 것이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모든 악의 세력이 있는 것을 뿌리를 알아야 되겠고 악의 세력을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을 알아야 되겠고, 악의 세력의 우리들에게 이용 가치를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악에게 대해서 어떻게 우리가 상대해야 된다는 것을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속에 있으나 8절에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이렇게 천인 만인의 마음이 다 다른데 마음을 같이 하여 한마음을 가지라. 한마음은 무슨 마음이냐?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라.' 이러니까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한마음을 가져 '체휼하며' 우리는 우리는 세상에서 살 권리를 얻은 것이 이것밖에는 얻지 못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모든 피조물을 다 사랑하시는 것과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것과 모든 피조물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과 또 모든 피조물을 생명과 평강으로 충만케 하는 그것만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당신이 목적하신 자들에게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모두 다 그것을 위해서 이런 것도 만들어 가지고 이 목적을 이루고 자러 것도 만들어 가지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지고 수많은 종류의 목적들을 이루었으나 지옥에서 영원히 타고 있는 그 존재도 하나님이, 하나님이 피조물을 사랑하시기 위해서, 피조물을 영원히 구원하기 위해서, 피조물을 영원히 행복되게 하기 위해서 당신이 하신 그것이 중심입니다. 요거는 좀 이해가 좁은 사람은 안 갑니다. 그것을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쉽게 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그 목적을 위함인데 목적을 위함인데, 목적을 위하면 피조물을 위함입니다. 피조물을 위함인데, 이 목적을 위한 그 목적인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것이냐? 하나님의 교회는 다시 만물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교회라 하는 것을 간단하게 조금 발료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고로, 우리는 이 세상을 따라서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일단 타락해서 우리가 그 타락의 그 세계에서 타락자로 이렇게 살아 보고, 지금도 그 타락을 경험하기 위해서 타락을 한 시간 타락하고 고 다음에 또 보응을 보고.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 자기 심령 속에 이루어지는 것 자기 생애 속에 이루어지는 것, 자기 사업 속에 이루어지는 것, 자기 소유 속에 이루어지는 것,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에 타락했다가 회개하고 돌아오고 타락했다가 회개하고 돌아오고 자꾸 이렇게 타락 회개 이렇게 하는 가운데에서 우리가 성장돼 나가도록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타락의 악의 세력을 만들어 놓으시고 우리를 그 가운데서 양육하심이, 우리가 연약해서 들어갔다 나왔다 이렇게 하면서 거게서 깨닫고 회개하고 깨닫고 회개하고 자꾸 깨닫고 회개해서 이래 사는데 근본적으로 강령적으로 우리의 생애는, 우리의 생애는 이 타락속에 있는 그것이 우리의 생애가 아니고 우리의 생애는 다시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중생된 이 새사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이 사람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생애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피조물을 상대할 때에 그것이 우리의 생애요. 또 거게서 모든 피조물을 우리가 사랑하고 구원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우리의 생애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첫째로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우리와 근본 본질적 우리의 생애요. 둘째로는 사람을 위하고 세째로는 만물을 위하는 것이 우리의 생애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애인데 이 생애가 세상에 관영되어 있는 악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자꾸 흔들리고 이와 같이 파묻혔다가 다시 드러났다가 파묻혔다가 다시 드러났다가 이래 가지고서 우리가 연단 받아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하면 세상에서는 두 가지 생의 법칙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의 사는 법칙이 있고, 하나님의 사람들의 사는 법칙이 있으니 그 두 법칙이 달라서 하나님의 사람들 의사는 법칙은 다 영생이고 일반인들의 사는 법칙은 다 영원한 사망인 것이니 이 두 가지 법칙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기억하고, 세상이 사망하는 그 법칙을 그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그 법칙대로 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거 필연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 법칙 외에는 살지를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미워하는 거 외에는 하지를 못합니다.
미워하는 거 외에는 하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미워하는 거기에서 사랑할 수 없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법칙입니다. 그들은 공연히 우리를, 매복한 사자와 같이 우리를 공연히 우리의 피를 노리고 있고 그래 하는 것이 그들의 생애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생의 법칙입니다. 그들은 그 법칙을 가지고 사는 것이고 또 우리는 거기에서 원수를 사랑하고 거기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주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하고 만물을 위하는 그 일에 내 전부가 다 거기에 만 솔빡 쓰여져 가지고서 다 없어지도록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생의 법칙이요 우리이기 때문에 세상이 그런 것을 보고서 이상히 여겨서 '세상이 다 그러니 나 혼자 이럴 필요가 있느냐' 그런 어리석음을 가지지 말아야 됩니다 세상이 다 그렇다고 하면은, 온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하면은 벌써 하나님의 교회들이 그만큼 빈약해 가지고서 타락해서 다 그들의 악의 세력에게 점령된 것이지 하나님의 교회의 생애의 본질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가 다 점령당했는데 자기 혼자 점령당하지 안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곧 둘째 아담이 거게서 홀로 승리하고 나심과 같은 그런 승리이기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이지 '세상이 다 이런데 나 혼자 그러면 무슨 필요가 있느냐 나도 같이 하자' 그렇게 타락에 감염되는 악령의 유혹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할 일은. 체휼이라 하는 것은, 자기 몸같이 사랑 하는 것이 우리가 타락해서 다시 중생돼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법칙의 생활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체휼하고 세상은 우리에게 잔인한 것이 그것이 그들의 생의 법칙으로 하나님이 줬습니다. 좋고. 우리는 체휼이 우리 중생된 사람, 하나님의 목적으로 된 사람, 하나님의 후사,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그 법칙을 따라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만인간이 감사하지 못하고 다 하나님을 대적, 전체가 궁극적으로 말하면 대적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대적하고 믿는 사람들도 다 대적하고 대립하고 박멸할라 하지마는 하나님은 당신이 그 체휼하시는 그 체휼을 요동치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의 법칙과 세상의 생의 법칙, 우리가 과거에는 그 법칙에 타락해 가지고서 그 법칙을 알았고 그 법칙대로 사는 것이 그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간단 간단하게 체험해 가지고 우리가 그것이 유익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깨달았기 때문에 이제 생의 법칙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세상이 다 자기 중심으로 산다고 나도 내 중심으로, 모든 사람이 자기 중심인데,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다 삣고 깎고 해하는데 나 혼자만이 뭐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그까짓 게 태평양 가운데에 소금 한 주먹 집어 넣은 것 같지 뭐 무슨 효력이 있겠느냐' 그렇게 낙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찍 역사 계시로 보여 준 것은 노아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반대하고 타락했지마는 노아 한 사람만은 그를 요동치 아니하고 굳게 서서 나가니까 그로 말미암아 많이는 구원하지 못해도 자기의 집안 식구 여덟 사람이라도 구출해 가지고서 세상을 정죄하고 심판하고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졌던 것이라고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을 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도리어 복을 빌라' 도리어 그들에게 유익되기를 원해라. '복을 빌라' 그 말은 그들에게 모든 것이 그들은 너를 백방으로 해 하는 것이 그들의 생활이요 백방으로 해할라는 것이 그들의 생활이요 계획 전체가 다 해할라는 것이요. 활동 전체가 다 해하는것이 그들의 생활이니 그들은 사망으로 내려가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만드셨고 그렇게 정했기 때문에 그들의 생의 법칙이다. 그러나, 너는 그와 같이 되지 안 하고 거게서 구출해서 다만 그것을 경험하고 체험했으나 얼마든지 그걸 경험하고도 거게서 벗어날 수 있도록 대속의 공로를 입혀서 놨으니까 네가 거기서 경험하고 또 안 되면 또 경험하고 해 보고 해 보고 해 보니까 자꾸 우리가 회개하는 것이 바울이 죄인 중의 괴수 죄인이라 하는 것이 그가 행함을 조사하다 보니까, 경험하고 체험해 보니 자꾸 했던 것이 틀렸다 틀렸다 이라니까 해서 틀렸던 것이 많이 발견되고 자꾸 고쳐서 해 보니까 그것이 안 됐다고 고쳐서 고친 것이 믿기 때문에 죄인 중에 죄수요, 자기가 고칠 것이 많기 때문에 죄인 중에 괴수요 잘못됐던 것이 많이 깨달아졌기 때문에 그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이 대단히 힘쓴 사람으로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복을 빌라' 복을 빌라 하는 것은 한 말로 말하면 그들이 너는, 그들 이 너는 해하는 것이 그들의 생활이요. 너는 그들 위해서, 그들이 어짜든지 복되게 영이나 육이나 잘되고 행복되기를, 복이라 말은 한 말 속에는 수많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어쨌든지 영이나 육이나 금생이나 내세나 자기나 자기 소유나 모든 것이 그이에게 관한 것이 다 잘되고 좋고 바로 되고 깨끗해서 그가 행복되기를 너는 도모하는 그것만이 너의 생애라 하는 것을 여게 말씀해 놓은 것입니다.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것 때문에 우리가 중생됐고 다시 진리와 성령으로 우리가 부르심을 입어 가지고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하나님의 목적대로의 사람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입었으니 이는 싶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함이라'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함이라' 여게 대해서 구역에는 번역되기를 '복을 대 잇게 하려 함이라' 이랬는데 유업이나 대 잇는 것이나 같은 것 같지마는 여게 복은 뭘 가리켜 말하느냐 하면 위의 복은 '복을 빌라' 그렇게 말했고, 여게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함이라' 말은 우리가 복 받는 것보다도 예수님은 복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의 복이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피조물의 복이 예수님이신데 '복을 대 잇게 하려 함이라' 그렇게 번역한 사람은 예수님을 그 복의 원체로 원형으로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 복 덩어리 예수 그리스도를 계대해서 제이 예수 제삼 예수 예수의 분자가 되어져라 하는 그런 의미에서 복을 대 잇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여게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함이라' 하는 이것은 자기에게 소유된 복 하나님이 온갖 복 주시는 거, 그 복 주시는 거 그것을 가리켜서 그렇게 깨닫고 번역한 것이고.
원어에서는 모를 것이고 다만 깨닫는 대로 그 번역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복을 받는 자가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복의 기관이 돼 가지고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을 전해 줄 수 있는 복의 기관, 우리는 좋은 향수가 향품이 될 것이 아니고 우리는 향을, 향의 열매를 여는 향을 여는 향나무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여게 복을 대 잇게 된다 말은 이 복을 향나무로 생각하고 번역한 것이고,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한 나는 이거는 향유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복도 받는 것도 좋지마는 복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복의 나무가 되어지는 것이 더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원하시는 것인 것입니다.
'복을 대 잇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 생명이라 하는 것은 우리의 육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또 영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생명이라 말은. 이 말은 범위가 넓습니다. 모든 것의 삶을 모든 것의 힘을 모든 것의 그 생기를, 모든 것의 영광을 이렇게 요 생명은 예를 들면 '아, 그 사람의 회사가 지금 죽었더라. 그 사람의 회사가 아주 다 무너져서 완전히 파멸을 당한 줄 알았는데 그 회사를 가서 시찰해 보니까 생기가 돌아오더라. 회사에 생기가 돌아오더라. 그 가정이 망한 줄 알았는데 그 가정에 생기가 돌아오더라.
야 그 사람 아주 못 쓸 사람 됐는 줄 알았는데 그 사람에게 생기가 돌더라' 이래, 모든 것의 생명이라 하는 것은, 어떤 장사라도 생명이 떠나면 그 사람의 모든 명철도 모든 건강도 다 죽어서 썩어지는 것뿐이지마는 생기 하나가 돌아오면 그 생기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이 살아서 자라고 활발스럽게 활동하고 자꾸 피어나는 것 같은 그런 생기, 요 힘 여게 속에 생기라는 것은 힘을 강조하는 것이고 요 힘을 발생시킬 수 있는 그 원동력 힘을 발생시킬 수 있는 원동력, 힘을 발생시키는 그 원동력 고 힘 그것을 뭉쳐서 여게 생명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네가 사업이든지, 네가 목회 사업이든지, 네 가정이든지, 네 개인이든지 뭣이든지 거게서 힘을 얻고저 할진대는, 그 힘의 원동력인 생기를 얻고저 할진대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너와 연결돼서 하나님의 그 무궁 하심을 네가 연결돼서 쫄쫄 빨아 가지고서 그것을 네가 받아서 가지고 저 할진댄, 하는 말입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오늘보다, 현재보다 미래가 점점 더 나아서 영원 영원토록 자꾸 미래가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자는 혀를 금하라' 이거 하나 고쳐지면 다른 게 다 고쳐집니다. '말의 실수가 없는 사람이면 모든 일에 온전하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속에 사람이 발표되는 것이 혀이기 때문에 혀를 제어하면은 속에 들어 있는 그것이 치료가 됩니다. 치료가.
우리가 뭐 속에 있는 고질병이 든 것을 껍데기에서 침쟁이들이 침을 놓고 또 약을 붙이고 하면은 그게 저 안에 있는 병을 치료하게 되는 것처럼 이 혀를 이것을 바로 하게 되면은 저 안에 있는 사람병이 치료가 됩니다 혀를 고칠라 하면 사람이 고쳐지게 되고 혀를 벌로 놀리면 사람은 그 사람 이래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혀는 말굴레라 이렇게 했습니다 말고삐라 이래 했습니다.
혀는 말고삐와 같다 했습니다. 고삐가 가는 대로 말은 큰 말이라도 끌려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자기 혀 놀리는 대로 자기가 그대로 됩니다. 요거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자기가 혀를 놀린 고대로 제가 그 사람이 됩니다. 남에게는 간교한 혀를 놀리고 자기는 간교한 사람 안 될라고 하지마는 간교한 혀를 놀렸으면 그만치 자기는 간교한 사람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혀를 금하라 말은 혀를 금하라 말은 벙어리 돼라 말입니다 벙어리 돼라 말은 이제 자기대로의 이 악의 세력에 속해 가지고서 일반적인 사람의 말대로 그렇게 자기가 말하는 원인이 돼 가지고서 말하지 말아라 그말이오. 자기가 원인이 돼 가지고. 자기가 말의 주인이 돼 가지고 말하는 그것을 이제 하지 말아라. 완전히 너는 하나님에게 피동돼서 하나님이 말하게 하는 것만 말하지 네가 네 말 하고, 네 마음대로 말하고 네 말하는 원동력과 말하는 원천이 네가 된 그런 것은 벙어리 돼라. 벙어리가 돼라.
이래서, 어떤 사람은 이 혀를 고치기 위해서 혀를 깨문 사람도. 많이 있고, 어떤 사람은 연습하는데서 석 달 동안 벙어리 된 사람들도 있고, 삼 년 벙어리 된 사람도 제가 봤습니다. 삼 년 동안 벙어리 돼 가지고. 삼 년 동안을 벙어리가 되어 가지고 있으니까 그 가정이 마귀 가정이요 마귀의 소굴 가정인데 그 가정에 뭐 옳은 걸 말해 봐도 소용없고 그른 걸 지적해 봐도 소용없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 없고 여게서는 말 안 하는 것이 제일이라 해서 삼 년 동안을 말 안 하고 있는 가운데에, 삼 년 동안을 말 안 하니까 악이 배가 고파 못 견뎌요. 악이 배가 고파서 악이 슬슬 말라 곯아 떨어져. 악이 곯아 떨어지고, 삼 년 만에 말을 하니까 그 가정이 다 예수 믿는 가정 됐습니다. 그 가정 저 마리면 ○○ 교회에 그 집사가 있습니다. 아, ○○○ 목사님 왔네. 그 사람 압니까? 삼 년 동안 벙어리 된 사람 알이요? 알면 손 한번 들어 봐. 다른 사람이 내가 거짓말하는 줄 알고 모두 내 말 안 들어요. 뻐뜩 들어 봐, 그런 사람 알거든. 한번 일어서 봐. 한번 일어서 봐 삼 년 동안 벙어리 된 사람 ○○○ 목사님도 압니다 그때 ○○교회 있었기 때문에 잘 알이요. 왜? 백 목사 말이 아닌데 여러분들이 백 목사 말 믿지 않습니다. 안 믿어. 다 이래 가지고 '아, 나도 저와 같이 말쟁이 됐으면 좋겠다' 해 가지고 말쟁이만 배울라고 애를 쓰기 때문에 참 스스로 속는 것밖에 안 됩니다.
나도 말쟁이 됐으면 내가 나 속인 것뿐이고 소용 없어. 그 손해가 다른 사람에게 가지 안해요. 저가 제 속인 것뿐이지.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악한 말을 그치라 말은 자기 중심의 말을 그치라 말입니다. 시몬이가 보니까, 시몬이가 베드로에게 대해서 하나님 은혜를 갈급했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원했고 모든 사람들이 성신 받기를 원했고,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원했고 이렇지마는 성령의 사람 베드로의 귀에는 그 시몬이가 구하는 그것이 자기 중심으로 그랬다는, '네가 악에게 매였으니 이 도에는 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네가 돈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은혜를 살라고 하니 은과 같이 망하리라' 당장 고만 조금만 지체했으면 아나니아 모양으로 죽을 터인데 '네가 회개 하면 혹 하나님께서 사하여 주시리라'고 말씀을 빨리 덧붙일 때에 '주여 내가 자복합니다. 회개합니다. 날 위해서 기도 해 주옵소서' 했기 때문에 죽지 안 하고 그 생명이 연장됐던 것입니다.
'악한 말을 그치며' 자기 중심을 말을 그치라 말입니다 자기 중심의 말. 전부 말하는 것도 제가 저 망치는 줄 모르고 이 혀를 금하지 못합니다. 세계같이 큰 것이 혀라. 윤회하는 만물을 불사르는 것이 혀라, 지옥, 그 불은 지옥 불이라.
지옥불에 태우는 것이 혀라. 적은 지체로되 이제 그 전신을 태우는 것이 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 말을 접촉하든지 또 자기가 말을 하든지 할때에 이 '혀를 금하라' 벙어리 돼라. '악한 말을 그치라' 하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됩니다. 자기 중심의 말은 자기 죽이는 거 외에 딴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기 죽이는 거 외에는 누구 죽입니까? 자기를 믿는 사람, 의지한 사람. 바라보는 사람 죽입니다. 자기 원수는 죽이지 못합니다. 자기 원수는 악한 말을 해도 거게 피해를 받지 않습니다. 그 해독을 받지 않습니다. 자기를 인정하고 딿는 사람이 받습니다.
악한 말이 뭣이 악한 말인가? 악한 말이라고 그 악의 정의를 뭐 이런 거 저런 거, 세상에 모든 어학 사전을 다 놓고 악의 종류를 다 말해도 그까짓 거는 다 정의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 말하면 사람은 그 가운데서 빠져 버리고 맙니다. 빠져 버리고 마요. 간단하게 강령을 잡아야 빠지지 않습니다. 악은 자기나 피조물 중심이 악입니다. 고 정의를 능치 마십시오. 그 정의를 놓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알려 주신 정의입니다. 이것도 아직까지 여기 교역자들 가운데에 인정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악은 뭐 세상에. 세상이 다 나쁘다 하는 거는 다 악인데' 나쁘다 하는 것이 악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될 인간이 자기 중심이나 피조물 중심. 가정 중심도. 민족 중심도. 사회 중심도, 잘못하면 악을 정의를 바로 내리지 못하면 '민족 중심이야 인류 중심이야 선이 아니겠나?' 아니오. 인류 중심도 악입니다.
'악한 말을 그치며' 사람을 만날 때에 나도 악한 말이 되지 않도록 애를 써야 되지, 우리 속에는 악이 가득 찼습니다. 아직까지도 중생됐지마는, 그놈이 왕 노릇은 하지 못하지마는 자기 중심이라는 이 원죄. 원죄가 자기 중심입니다.
원죄가 자기 중심이 원죄요. 자기 중심 원죄라는 것이 우리 속에서 왕 노릇은 못 하지마는 이놈들이 옆에 있어 가지고 항상 침노합니다. 기회만 있으면 쏙 나와 가지고서 그놈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도 다른 사람에게 이거 내 중심이나 혹은 교회 중심도 교회 중심도 나쁩니다. 인간 구원 중심도 나쁩니다.
꼭 중심은 자존자 하나님 중심이어야 됩니다. 하나님 중심이었는데 그 중심이 이제 교회를 위함이 되고 인류를 위함이 됐으면 됐지 어떻게 중심을, 교회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악한 말을 그치며' 또 그 상대방이 말을 할 때에 벌써 그것이 악이 말을 하면은. 악이 말을 하면은 우리는 거게서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조심해서 그저 그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서 듣는 듯이 하는 그런 방편은 위험한 방편이지마는 듣는 듯이 하나 속으로 그를 위해서 기도하면, 듣는 듯이 하나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 악에게 정복을 당하지 안하고 감염되지 안하면 그 사람이 조만간에 그 광명으로 깨닫게 됩니다. 그 사람 말을 다 그치기 전에 그 사람에게 나뉠 때에도 '아 내가 속만 앗겼다. 내가 속만 앗겼다. 나는 그 사람에게 양심이 앗겨져서 양심에 참 조롱만 받게 됐지 나는 오늘 한 일은 설복 못 시켰다, 설복 못 시켰다. 정복을 못 했다. 헛일 했다' 하는 것을 그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나갈 때에는 반드시 그 빛에게 비춤을 받고야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안하고 자기가 거게서 악한 말인 줄 모르고 직접 공격한다고 하는 것도 그것도 패전, 또 거게서 듣는 것같이 듣는 것도 패전 들은 것 같으나 그거는 사람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 사람을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 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일면으로 사람을 붙잡고 그가 볼 수 없는 속에서 악을 대항해서 나아가면 그게 제일 좋은 전법이 되겠습니다.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사람을 꾀우는 말 하지 말고, 꾀운다는 말은. 꾀우는 것은 뭐 어떤 것이 꾀우는 말인가? 꾀우는 말은 억천만도 넘기 때문에 그것이 꾀우는 말의 정의가 아닙니다. 꾀우는 말은 그 사람의 믿음에 유익이 없게 하는 말은 전부 꾀우는 말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소생되지 못하게 하는 말은 다 꾀우는 말이오. 뭐 뭣을 유익되게 한다는 말, 돈을 벌게 되고 뭣이 된다 할지라도 믿음에 유익되지 못하게 하는 말은, 그 사람을 하나님으로 부요하고 진리로 부요하게 하는 것, 진리로 부요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요 하나님으로 부요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게 아니면 다 궤휼의 말입니다.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자기 중심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네가 모든 것을 네가 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화평을 구하라.' 네 중심에 너만 복될라고 하지 말고 모든 사람이 이 복의 근본이시요 생명의 근본이신 하나님과 다 단합돼 가지고 하나님과 가까이 돼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이렇게 하나가 돼 가지고 복됐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이 사람으로 하나 돼 가지고서 복됐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사람과 모두 다 하나가 되어 가지고서 다 자기 지위를 지켜서 다 하나님 될라 하면, 평이라 하는 것은 거게서 공평을 말하는 것인데, 자기 위치를 가지고 다, 아들은 아들의 위치에서 아버지는 아버지의 위치에서, 장로는 장로 위치에서, 목사는 목사 위치에서. 평신도는 평신도 위치에서, 반사는 반사 위치에서 다 각각 자기 위치를 알아 가지고서 마치 한 몸에 여러 가지 지체가 있고 여러 가지 세포가 있으나 자기 위치도 떠나지 안하고 자기 분수도 뗘나지 안하고 자기 책임도 떠나지 안하고 이렇게 단합해 가지고서 한 몸이 건강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이렇게 되기를 원하는 화평을 구해야 이렇게 되기를 원하고 '이를 좇으라' 네 자신이 이제 그런 사람이 되어져라 하는 것입니다. '화평을 구하고' 그 소원이 이 소원이고 너는 뭐하느냐? 너는 그것을. 네 자신이 그것을 원해서 그것을 네가 이루어 가는 사람이 되어져라.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의인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그것이 의인입니다. 의인이 하나 나왔으니, 하나님의 소원 성취를 이룬 의인이 하나 있으니 이는 곧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신 분이 의인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제일 의로 만족하십니다.
의는 하나님의 소원하시는 그 소원대로의 이루어진 것이 그것이 의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날마다 씻을 수도 있고 날마다 가를 수도 있고 날마다 방어할 수도 있고 이로 인해서.
예수님의 피는 광대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나에게 천 군데 만 군데 여러 억만 군데라도 쓸모 있습니다. 이모도 쓸모 있고 저모도 쓸모 있고 예수님의 대속만 갖다 쓰면 다 됩니다. 이는 참으로 생명의 약이요 이는 참 방패입니다. 어디든지 가루면 다 돼. 어디든지 아무리 수치스러워도 그만 가루면 그만 번들번들하게 아주 아름다워져.
'의인을 향하시고' 하나님의 이 뜻에 맞는 그 사람. 하나님의 소원의 뜻에 맞는 그 사람에게서 눈을 돌리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의인을 향하시고' 하는, '그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하는 이것은 아가서 4장에 '네 눈으로 나를 한번 봄으로 내 마음을 빼앗았다, 마음을 빼앗았다. 여게 눈이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첫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인해서 그와 같이 위에 말한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된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된 사람. 하나님의 뜻을 좇는 사람, 하나님의 뜻을 거머쥐고 뻘뻘 떠는 사람, 하나님의 원수 악이 나올까 해서, 또 모든 사람이 악에게 이리 충격받고 저리 충격받아 가지고서 악의 것이 되어질까 해서 어짜든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평 되어서 이렇게 하나님 보실 때에 참 견디지 못해서 그에게 눈이 기울어질 만침 하나님이 다 보고 좋아서 선하게 여기시고, '보시니 선하더라.' 만족하시고 하나님의 그 시선이 못 견뎌서 거게 기울어질 만침 하나님이 좋아서 못 견뎌 할 만침,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참 아이들 말로 말하면 남자가 여자에게 여자가 남자에게 반해서 못 견뎌,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서 반해서 못 견디는 거와 같은 그런 것을 아가서에는 말씀했습니다. 그 눈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사랑해서 견디지 못해서 그 눈은 항상 거기 가 있어. 항상 거기 가. 마음도 거게 있고 눈도 거게 있어. 이러니까 꿈도 그래 꾸이고. 그런 글이 있습디다. '약사 몽혼으로 행유적이면 문전석로 반성사라' 자기 마음이 있으면 그저 꿈에도 장 왔다 갔다 꿈에도 장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주님의 그 눈은 의인을 향하여 견디지 못하고 항상 의인에게 눈을 기울이고 있어. 또 딴거 볼라 해도 또 의인 보고 의인 보고 딴거 안 보고 '의인에게 눈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며' 주님의 귀는 항상 '뭘 요구하자는가?' 요구하면 얼른 들어 주실라고. '뭘 요구하는가?' 우리가 그런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참 아이라도 어른이라도 교인이라도 뭐 그분이, 그분이 뭣을 요구하면은 들어 주고 싶은 그런 거 있습니다. 들어 주고 싶은 것. 왜? 그분이 요구함으로써 내가 깹니다. 그분은 뭐 요구 할 때에 틀린 걸 요구하지 안하니까 그 요구 하나를 들으면 뭐 하나요 그 하나를 들으면 내 정신이 바짝 깨고 내가 살아나고, '이 사람은 이런 걸 요구하는데 나는 뭘 요구하노?' 내게 회개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귀를 기울이시나니' 주님은 의인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저도 그런 걸 좀 체험을 하기는 했습니다. 제가 어떤 때는 제가 처음에 믿을 때는 철이 없어서 참 자기를 과대 평가해서 그랬겠지요. 제가 그때는 처음에 안식교를 받아 가지고서 제가 그랬는데 '십 사만 사천 인밖에는 하늘 부활을 얻지 못한다 하니까 예수 믿는 때가 벌써 육천 년이 다 돼 가니까 십 사만 사천 인이야 안 됐겠나? 남았는지 모르겠다. 하나라도 하나라도 남았는지 모르겠다. 남았으면 남은 그 숫자에 내가 들어가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서 좀 애를 써서 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제 속으로 진정 내 속에 생각하기를 '아, 하늘나라에서는 만일 하나님께서 내가 없으면 당신이 기쁨이 없을 것이다. 내가 없으면 당신이 기쁨이 없을 것이다. 나 아니면 당신이 심심해서 재미 없어 못 살 것이다. 나 외에는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게 대한 것을 기도하지를 안했습니다.
언제 아이가 아픈데 장로님이 올라 오셔 가지고서 말씀하시기를 '아 집사님 이거 하나님에게 기도하십시오' 이랬는데 '기도하십시오' 그럴 때에 내가 듣기는, '예' 대답은 하기는 하면서도 외식의 대답이었습니다. '내게 대한 것을 뭐 하나님에게 뭐 구할 게 뭐 있는가? 안 구해도 내게 필요한 걸 당신이 아시고 다 내가 말하기 전에 자꾸 이거 이거 해라 이거 해라. 자꾸 이렇게 하실 것인데 내가 구할 것이 있는가?' 그래 제게 대한 것을 기도한 일이 었었습니다 제게 대한 기도 한 일이 없었어. '하나님이 다 아시고 내게 필요한 것은 다 주실 것인데. 그분이 내게 필요한 것은 다 주실 것인데 내가 뭐 이것 주십시오 저것 주십시오 뭐 그런 것이 뭐 있겠느냐? 나는 그때 그렇게 깨달았기 때문에. 어려서 그런 것입니다. 그 장로님이 그와 같이 한 것은 주님이 장로님을 통해시 '아, 이거 구해라.' 당신이 원하셔서 구하라 하는 것이니까 내가 구하는 것이 당신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구할 때 당신은 당장 들어 주셨을 것이라 그말이오. '주의 귀는 의인에게 귀를 기울이시느니라'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자기 중심으로 향하는 자, 주님이 계셔서 제가 제 중심으로 누구를 데리고 뭐 설득을 시키겠다고, 또 무슨 계획을 하겠다고 할 때에 제 중심으로 하늘 그때에 주님의 낯이 나를 향하고 계시는 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알아야 됩니다. 알고 놀래야 될 것입니다. 내 중심이 아니라 주님이 어떤 분이시며, 나 위해서 어떻게 하신 분이시며, 또 그분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어떻게 명철하고, 어떻게 예민하고, 어떻게 지혜로우신 분이고 어떻게 감정의 분이시고, 어떻게 복수 분이시고, 어떻게 정의와 공의를 가지신 분이신데, 그분을 알고. 그분이, 내가 뭐인데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이렇게 큰 사랑의 빚을 진 내가 지금도 자기 중심으로 남아 있는 힘을 가지고 생명을 가지고 호흡을 가지고 자기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것을 주님의 낯이 보고 계실 때에. 주님의 낯이 보고 계실 때에 부끄러워서 베드로가 참 평생 그 안면을 생각하고 우는 것처럼 우리가 이 '주님의 낯은 이행하는 자를 향하시느니라' 그 행하는 그 낯을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온 천하 사하이 다 악해져도 우리는 악해 질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과 종자가 다르고 벌써 돌아섰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의 법칙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생의 법칙은 아무리 악을 뭐 천인 만인이 악을 하고 일생을 하고 네게 어떻게 악을 할지라도 나는 그에게 구원과 사랑과 그의 생명을 줄 수 있는 외에는 다른 것을 우리는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이 세상은 무엇으로 관영해 있는가? 그 원인을 우리가 왜 타락했는가? 그것은 우리를 연단시키기 위해서, 이 악을 가만히 두고 이러는 것은 우리의 하나님으로 얻는 것이 이 모든 악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이 악을 주는 것이고, 이 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악 해 보니까? 악을 해 보니까 맛없고 또 후회하고 또 이 하나님의 진리에 들어오고 보니까 또 심심하고 답답하고 또 기어 나갔다가 또 들어오고 이래 해 가지고 해서 우리를 이렇게 온전하고 구비하고 깨끗하게 기르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온상 속에서 기르시는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고, 우리의 생애가 뭐인지. 우리의 법칙이 뭐이라 하는 것을 똑똑히 알고 변동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이상히 여기지 말고 가다가서 피곤치 안해야 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기도록에 등록 안 한 사람들도 기도하지마는 할 수 있는 대로 등록하고 기도하고 등록한 사람들은 매일 삼십 분은 빼지 마십시오. 빼면 앞으로 큰 환난을 여러분들이 이길라고 할 때에 그만침 힘이 빈약 할 것입니다. 이것을 빼지 안하고 티끌 모아 태산으로서 이와 같이 자꾸 매일 삼십 분씩만 자기의 미래의 환난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때에 이 저축 가지고서 그때는 뭐 아무 어려움 없이 다 어려움을 이기고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또 여전히, 비가 와도, 비가 와도 비에게 막히지 말고, 비에게 막히는 신앙되지 맙시다. 비에게 막힌다면은 다른 환난에 어떻게 그걸 이길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