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5 23:35
하나님의 축복
1984. 12. 30. 주일오전
본문 : 신명기 28장 1절∼19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이 말씀을 지난번 금요일날 증거를 할려고 하다가 또 증거를 못 했습니다. 또 토요일날 아침에 증거를 할려고 하다가 또 증거를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 교인들이 많이 모인 데에서 증거하게 됨을 대단히 다행스럽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금생도 잘 되어야 하겠고 또 내세도 잘 되어야 할 우리들입니다. 또 우리의 육신도 잘 되어야 하고 영도 잘 되어야 할 우리들입니다. 모든 만물이 다 그러하지마는 우리 사람들은 더욱 더 그러합니다. 잘 되는 길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고, 또 망하는 길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흥하지 안하면 망하는 것이고 망하지 안하면 흥하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그렇게 여러번 증거할려고 했는고 하니 그 동기는 그거 였습니다. 우리 믿는 형제들이 서부교회 교인뿐만 아니라 뭐 전국 교인이 다 그러하고, 또 세계에 있는 모든 교인들이 다 그러하다고 제 생각에는 그렇게 판정이 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육신의 모든 것이 좀 형통하고 잘되는 것 같은 그런 나라나 민족이나 또 가정들을 살펴보면 그 이면에 조만간에 절단 날 그런 것들도 대개 다 속에 암초같이 감추어 있고, 또 그보다도 더 기막히는 일은 죽는 날까지는 그대로 잘 살지마는 시편 73편과 같이 세상에서만 분망하지 참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이루는 이런 일은 생각해 볼 만한 그런 기회도 찾지 못하고 일생을 그대로 미끌어져 가는 그런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구원을 생각하고 그저 조심해서 살겠다고 애를 쓰는데 또 그런 사람들은 이 세상적인 것과 육의 것이 또 너무 비참해서 또 가련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고만 이 세상에서 육체나 그 심령 마음이 평안하고 즐거우 심령이나 이런 것이 아주 행복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그 사람 종류가 하나 있는데 그것을 보면 그 웃음을 빨리 울음으로 바꾸어야 되겠고 그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어야 할 터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으니까 갑자기 다 낭파를 당할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런 종류가 하나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을 그런 행복된 자리에 살고 있는데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위주로 하고 그날 그날에 그저 그것만 무사 형통하면 됐다고 생각을 하고 하나님 문제나 심령 문제나 이런데 대해서는 생각할 어떤 그런 한 기회도 없이 그만 일생을 미끌어져서 저 엉쿠렁에 쳐박히는 사람과 같이 죽음이 오기 전에는 아무 생각도 한번 해 보지도 못 하고 반성도 못하고 갑자기 죽음을 닥쳐서 죽는 그런 비참한 사람들도 있고, 그러면 이 두 사람들은 다 불쌍한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제 생각대로는 그래도 그런 사람들을 구원을 해야 되겠다 하는 그 구원에 대한 책임성을 또 가지고 이 말씀을 할라고 선택했고, 또 하나 불쌍한 사람은 말씀대로 살겠다고 뭐 성경을 읽고 또 조심을 하고 그 곤한 몸에도 뭐 새벽 기도도 나오고 대예배도 빠지지 안할라고 또 그 뭐 억지로 그래도 성경을 먼저 읽어야 된다, 성경을 그대로 채워 읽을려고 또 기도도 또 하루 제대로 작정한 대로 기도를 할라고 양심대로 산다고 이렇게 발동을 하는데, 사실 그 영의 구원에 대해서는 하늘나라에 대해서는 복이 얼마나 쌓여지는지 그거는 우리가 가 봐야 알지마는 우선 당장에 이 세상 일과 육신의 일로 비참하게 되어지니까 그게 뭐 복음을 가루지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 못 되고 있으니 그것도 참 불쌍한 사람중에 하나가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이 되어집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말씀해 놓기를, 너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은 자들이니 이제는, 옛날은 하나님 없는 하나님 권속 밖에 있던 자들이요 저주와 사망 아래에 있는 자들이지마는,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이 되었고 온갖 하나님의 그 축복의 약속을 입고 있는 자들인데 영만 잘될 뿐 아니라 육도 잘되고 이래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 날 수 있는 그런 아주 영육이 존귀한 사람으로 이렇게 살 수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한 것이 성경입니다.
이러니까 여기에는 잘사는 사람들 보면은 하나님과 진리를 현저히 떠나서 살고 있으니 우리가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볼 때에 조만간에 저거는 비참하게 된다.
마치 쥐약을 먹고 맛있다 하는 자와 함정에 큰 낭떠러지나 떨어지면서 이 아주 기분 좋다 하는 그 사람 한가지지그게 뭐 부딫히면 나중에 박살이 될 것이고 좀 시간 지나가면 그 도끼로 다 절단날 터인데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사람도 마음에 불쌍하고 기막히고, 또 예수 믿는다고 애를 쓰는데 참 생활이 안 되어서 근근히 이렇지, 모두 직장이 다 실직이 되어 가지고서 이 비참하게 되지, 무얼 하나님의 뜻대로 좀 자기 몸도 천강이 있어야 되고, 또 돈이 있어야 무엇을 그 아무리 선한 사업 이라도 비용으로 쓸 수도 있고, 또 자기가 아무리 실력을 갖츨라고 해도 먹을 게 있고 뭐 배울 학비가 있어야 뭐이 되어지지 그것도 없으면 안 되고 이런데 전부 비참이라 그말이오.
왜 이렇게 우리 믿는 사람들이 비참하게 되어 있느냐? 성경에 분명히 우리가 보기를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요 전지전능자시요 대주재시요 크고 작은 모든 것을 당신 혼자 주권하시고 계시면서 당신 마음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혼자 주권 크고 작은 것을 섭리하신다고 계약에 분명히 해 놨는데 이 계약이 거짓말이면 우리가 불로 태워 버리고 완전히 그만 치워 버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 계약대로 한번 해 가지고 뭐 예수 믿는 게 참 진짜인지 가짜인지 이걸 한번 해 보든지 이래야 되지 머뭇거리면서 이래 가지고 산다는 것은, 우리도 아야 택자들은 기본 구원은 있습니다. 택자들은 지옥은 안 갑니다. 택자들을 제가 일생 동안 죽는 날까지 죄에서 죄를 뭐 천하에 죄를 제일 많이 지었어도 택자는 지옥은 안 갑니다. 천국 갑니다. 또 불택자는 제가 세계에 제일 많은 자선 사업이나 구제 사업을 봉사 사업을 한다고 해도 그는 지옥이지 지옥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절대성을 가지고 있는 불변의 기본 구원이요, 또 유기함을 받은 종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영과 육이 잘 되고 또 누구보다도 한없는 그 기쁨과 평강으로 쾌락을 누리고 살 수 있는, 영육이 잘되고 쾌락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그 길이 있으면 그 길을 가야 되겠고, 영육이 그저 잘되고 쾌락을 누릴라면 영육이 잘되고 쾌락을 누릴라면 누릴 수 있는 그 길이 있으니까 그 길로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기본 구원은 꼭 같으니까 건설 구원이 못 이루어질 판이야 건설 구원이 이루어지지 못할 판이야 마구잡이로 얼마든지 죄를 짓고 뭐 도적질을 하든지 얼마든지 하고서 그래 안 믿을 때와 꼭 같이 그래 사는 것이 지혜가 아니냐 그렇게 생각이 되어집니다. 안 믿을 때와 같이. 뭐 할라고 추운날 이날 여게 주일 지킨다고 와 가지고 볼볼 떨면서 이래 오며, 또 주일 지킨다고 직장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가정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또 자기 자유업을 한다고 해도 오늘 돈을 벌었으면 뭐이 좀 곤란을 면할 건데 하나님의 계명이 원수같이 생각해지고 자기에게 무거운 짐 같이 생각해지는 이런 가운데서 이렇게 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진실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진실이 없어서. 아야 안 되면 그만 안 믿을 때와 같이 그렇게 살지요. 뭐 주일 지킬 것 뭐 있습니까? 제 마음대로 수단 있는 대로 도적질하는 수단을 부리든지 사기 횡령 협잡을 부리는지 그리 안하면 뭐 일대 일로 투쟁하는 그런 생존 경쟁의 생활을 하든지 이렇지,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할 말도 못하고 오기도 쓰지 못하고 취하고 싶어도 취하지 못하고 가고 싶어도 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썩은 새끼에 억매여 가지고서 이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아주 솔직하고 진실되게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고 그래 단판을 지워서 그래 할 일이지 그 머뭇거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잘 믿지는 못 하기는 못 하지마는 내가 아는 어떤 집사님이 말하기를 '참으로 천국이 있는 줄 알진대야 그거 뭐 세상에 이래 살게 뭐 있느냐? 어짜든지 천국을 위해서 한번 살아보지. 나는 교회 다니기는 다녀도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또 내가 택한 자인지 불택자인지 그걸 몰라서 지금 그저 이라다가 혹 알아질까 싶어서 머뭇거리고 다니지 확정이 되고 확신이 된다면 이렇게 뭐 이 거짓부리 이중 삼중의 이런 생활할 필요가 뭐 있느냐' 하는 그 말을 들었는데 그분이 지금은 확정이 됐는지 장로까지 됐고 그래 지금은 예수를 아주 열심히 어짜든지 한번 믿어보자 하고서 잘 믿을라고 하는 그런 사람이 된 것을 봤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대로 그렇게 단순히 되는 거는 아닙니다. 그래 살고 싶지마는 몰라서 이는 백 프로 만점이다 싶으지마는서도 또 눈이 밝은 사람이 보면은 저거는 육십 프로 사십 프로도 안 됐다 또 그렇게도 볼 수도 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머뭇거리지 말고 벌써 오늘이 84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러니까 머뭇거리지 말고 학정을 지워서 그 꼭 죄를 짓고 거짓말을 해야 남한테 아부를 해야 간교를 부려야, 주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아부해도 좋고 천대받아도 좋고 욕을 먹어도 좋고 속을 썩우어도 좋고 억울함 당해도 좋고 어떤 일을 당해도 좋지마는 그까짓 거 먹고 사는 뭐 의식주 그것 때문에 그럴 필요는 절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거는 참 못난 사람입니다. 안 되면 얻어 멱어도 뭐 의식주 그 까짓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아부하고 천대받고 멸시받고 자기 양심 아닌 그런 본의 아닌 그런 생활을 할 욀요가 뭐 있습니까? 우리는 너무 못났습니다. 좀 잘나 봅시다. 그럴 필요가 없어. 뭐 그게 가치 있다고 그렇겠습니까? 또 그러고 성경에는 분명히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네가 뛰어나게 된다 말씀했는데 또 위에만 있고 꼬리가 안 되게 한다고 했는데, 꾸어 주고 꾸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왜 우리가 천한 꼬리가 되어 가지고 머리가 되지 못하고 천한 꼬리가 되어 가지고 이래 있습니까? 그 믿는 사람 가운데에는 참 머리가 되고 위에 있는 사람으로 좀전에 말한 대로 그 비참 둘을 피하고 화약을 지고 불로 들어가는 그 장기를 부리는 그와 같은 그런 위험한 것이 아닌 그런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존대하고 부러워하는 그런 것을 가진 사람이 됐다면 좋습니다. 그런 사람도 없지는 아니하리라 생각됩니다. 또 영육이 성경대로 살아 가지고 영육이 복을 받아서 금생과 내세에 다 존대함을 입을 수 있는 뭐 다니엘같은 요셉같은 다윗같은 그런 믿음으로 복을 누리고 아브라함같은 그런 사람들도 있기는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왜? 노아 때도 보니까 있었고, 어느 시대든지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예수님 재림 때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는 없어도 영육이 복 받는 사람이 있다고 그렇게 말씀을 했으니까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면, 그들만 있을 거 아니라 우리도 당신이 계약을 우리에게 했으니까 이 계약은 뭐 그분들에게 무슨 단독 계약이 아니고 우리에게도 이 계약이 왔습니다.
이 계약대로 우리가 지킨다면 우리 할 일 했고, 이 계약대로 지킨다면 이제 당신 할 일이니까 당신이 안 해 주면 위약자로서 하나님 못 합니다. 하나님 노릇 못 합니다. 위약자로서. 계약한 대로 우리가 계약을 지키는데 하나님이 그 계약을 안 지키면 하나님 노릇하겠습니까? 못 합니다. 지옥의 세력이 모지라지 지옥에 불을 타면 불 타면서도 욕을 할 것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왜 계약을 해놓고 계약을 이행하지 않습니까? 이거는 권리지 이거는 절대 평가적은 아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계약을 지키면 당신은 그 계약하신 대로 그대로 이행하시기 위해서 알기도 전에 당신이 혼자 스스로 입법 해 놓은 그 입법을 지키실라고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어 오신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의 대형 대행의 대화친의 그 죽음으로 이 공로를 설정해서 해결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에 신실함을 믿어 봅시다. 이런것도 못 믿는다면, 언제 제가 말하기를 '믿으면 석 달 안쪽에 효력이 나온다.' 석 달 안 쪽에 굶어 봤자 석 달 굶으면 될 건데 욕 얻어 먹고 천대 받아 봤자 석 달만 받으면 될 터인데 석 달이면 나옵니다. 석 달이면 됩니다. 석 달 이면 효력 나옵니다. 석 달이면, 뭐 석 달이면 제가 암만 둔해도 아무리 둔해도 봄이 와서 모든 산천 초목이 새움이 트는 것을 봄이 오면 다 제가 볼 수 있는 것처럼 석 달만 이대로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봄 오듯이 수르르 오는 것을 제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성도들이 체험했고 저도 여러번 체험했습니다. 몇차례 체험했습니다.
이런데, 혹 여러분들이 생각하기를 '백 목사 저러면 저런데, 왜 자녀들은 그런가?' 그렇게 생각할 건지 모르는데, 내가 저 먼저도 설교하면서 나사로 설교를 하면서 내가 그 눈물을 흘리는 그것을 보고서 뒤에 어떤 사람 이 말하기를 '목사님이 기도원을 구하다가 기도원이 안 되니까 우시기까지 두 번 우시기까지 봤다' 그렇게 말한 이들도 있고, 또 '자녀가 목사가 안 됐으니까 그래서 두 번이나 울었다' 그렇게 말하는 이도 있는데 내 울음은 그런 울음은 아닙니다. 그걸 구하기는 구했지마는서도 그것을 그런 것을 구하다가 내 욕심대로 안 된다고 마음에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그 옛사람 그 사람으로 산 그것이 너무 비참하고 참 원통하고 그로서 비교도 못 하는 그 나사로 처지에서 그는 만족하고 불만 없이 산 그분의 그 믿음의 생애의 위대함에 대해서 머리가 숙어지고 감탄이 되어서 제가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그러고 내가 그런 말을 내가 속으로도 하고 내가 몇 번 했습니다. 내 형제간이지마는서도 ○○목사님은 설교를 하면 말씀대로 행하면 전부 가족들도 자녀들도 다 복을 받는다 하는 것을 속에 힘있게 증거를 합니다. 그래 나는 그 설교를 하는 데에는 이중이 됩니다. 힘 있게 설교할라 하면 모든 사람들이 보고서 '그 뭐 자기부터 복 받지, 이런데 그래 그러면 말로만 말로는 누가 말 못 해? 말로 할라 하면은 하루 아침에 온 세계 사람이 떡을 먹고 남구로 다 말할 수 있는 것인데 말로 하는 것이야 누가 못해? 이러니까 하다가 설교를 하다가 꺼꾸러집니다. 꺼꾸러졌다가 다시 설교를 합니다. '이는 내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내가 그렇다고 예수 잘 믿는다 하는 사람이 천인 만인이 망했다고 하나님 말씀이 틀린 게 아니라 망한 그것이 망한 그 사람이 잘못됐든지 망하는 것 같은 그게 뒤에 가서 무엇이 될런지 뒤를 끝을 봐야 결국을 봐야 알지. 결국은 뭐이 될런지? 인간에게 틀림이 있는 것이지 하나님에게 틀림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이제. 힘 있는 설교를 하면서 내가 하나님에게 종종 그런 기도를 내가 더러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 없는 자들은 외모만 보기 때문에 그들의 구원에 오랑캐가 있고 고들의 구원에 거리낌이 되는 그것이 애터지지 당신이 내 마음 아시는 대로 딴 거는 내가 애터지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꼭 내 자녀가 뭐 목사가 되어야 됩니까? 예수 믿어야 됩니까? 내게 속한 내혈육의 자녀가 다 지옥 갈 자로 정해 가지고 있는지 또 목사로 정해 가지고 있는지 지금은 개망나니 노릇해도 뒤에 가서 또 뭐 훌륭한 성자가 될란지 되거나 말거나 그거는 당신의 것이고 당신이 나를 통해서 만들었는데 나를 통해 만드니까 나는 일 호 하면 거게 이, 또 셋, 넷, 군인의 똑 번호 헤아리는 거와 같이 그렇게 하나 하면 그 다음에 아들은 둘 할 것이고 그 다음에 손자는 셋 할 것이고, 그 다음에 증손은 넷 할 것이지 그만 큰 순서가 뭐이냐? 전부 당신의 것이니까 나는 그까짓 것 번호에 매겨진 것 순서 뿐이지 딴거 없으니까 당신의 그저 하고자 하시는 대로 그대로 되는 것을 내가 원하고 그것을 바라고 당신이 광대하신 절대적인 이 영원을 예정하신 그 예정에 전지한 지혜로. 전능한 능력으로, 주권으로 이 택함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걸 예정하고 창조했기 때문에 분명히 구원에 유익된 그것을 아는 내가 뭐 그 뽀시래기 같은 그런 것 하나 이것 가지고 이런가 저런가 거기에다가 모든 것을 기인시켜 가지고 그래 가지고 해석할 그런 생각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 압니다. 그런 유치한 데는 있지 않습니다.
또, 무엇이 일시에 어떻다고 해 가지고서 어떻다, 거기에 대해서 평가 하기가 싫습니다. 좋다 나쁘다, 성공이냐 실패냐 싫습니다. 다만 그분이 복되게 예정하셨으면 예정되고, 그분이 또 지옥 가기로 예정되면 지옥된다. 그분의 예정에 달렸다. 예정보다 앞섬이 그분의 택함에 더 근원이 있다. 그거보다는 자존자이신 완전자이신 전지전능자이신 그분에게 속했다. 그 분에게 속한 것이 어떻게 뒤에 속해 있으며 그분으로 말미암아 연결이 어찌 되어 있으며, 그분으로 말미암아 정함이 어찌 되었으니 그분이 어떻게 그 목표를 정했든지 그게 크고 그게 위대하지 온 천하가 있어 봤자 그까짓 거 당장 없어질 수도 있고 없어도 있어질 수도 있고 하기 때문에 무엇을 그분 외에는 절대성이란 가치를 붙일 것이 하나도 없다 하는 것을 이렇게 보기 때문에 그런 것에서는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런데, 내가 이 말하는 것은 지금도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다른 생각을 가지지 말고 듣고 요대로 하십시오. 듣고 실행하면 살고 안 하면 망합니다. 뭘 보고 서겠습니까? 이 세계에 강대국 하지만 강대국 그게 오늘 당장 그것이 바다 가운데 빠져서 사해와 같이 될런지도 모릅니다. 뭐이 섰습니까 뭐이 강합니까? 아무것도 강한 것도 없고 튼튼한 것도 없습니다. 그분 한 분에게 모든 것이 다 주권되어 있고 그분이 없는 가운데 지었고 지은 것을 당신 뜻대로 요리하셔 가지고서 영원을 건설해 나가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난번에도 25일날 전도지를 백만 매를 거의 전했습니다. 백 십만 매가 됐는데 남은 것이 십만 매 조금 못 되고 한 백만 매는 거의 전해졌습니다. 전해졌는데 우리가 그렇게 전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은 그들이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깜짝 좀 멈추어 설 수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너무 세상에는 다 사막 같고 비참이고 원하는 대로 하나도 안 되고 전부 아무리 웃어도 웃는 면이 일 면이면 우는 면이 삼면 사면 안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여게 복 있는 구원의 길이 있다 하니까 멈춤하지마는 멈춤하고 난 다음에는 '보자.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 보자.' 그들이 보는 것은 바로 직관적이니까 바로 보니까 속에 내용이야 뭐 하나님과 관계가 어찌 됐는지 그걸 압니까? 아브라함이 그 시대에 하나님이 제일 천하 인류 가운데에 제일 이것으로 했지마는서도 그때 보기에 아브라함이 볼 게 뭐 있습니까? 아무 볼 것 없지. 그런 내용은 모른다 그 말이오.
모르니까 다만 외모를 봅니다. '보자. 저 믿는 사람들의 행위를 보자.' 그첬 볼 것이고 또 '믿는 사람들의 저 얼굴을 보자' 볼 것이고, 또 '믿는 사람들의 그 모든 경제 형편이 어떤고 그걸 보자' 그걸 볼 것이고, 또 '믿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 처세하고 있는데 그 지위나 권세나 그 가치들이 어 떻게 되어 가지고 있느냐?' 그걸 볼 것입니다. 그것이 좋아지면 '아, 저 사람들 과연 복 받았구나' 하고서 오지마는서도, 아무리 말을 그래 해도 보니까 아이구야 뭐 보니까 길가 앉아서 '이 죽고 살고 망하고 흥하는 것 여기 있습니다.' 하면서 사주책을 내어 놓고 빨간 줄을 죽쳐놓고 사주책을 내놓고 이래 자꾸 그걸 보고서 지금 와서 '아, 여기에 죽고 살고 흥하는 게 여기 있습니다. 금년에 뭐 운이 나쁜 운을 다 막을 수 있고 행운을 다 끌고 올 수 있습니다.' 이래 쌓는데 그 사주쟁이 책을 놓고 앉았는데 그 사람의 모양이, 토정비결을 놓고서 점을 치고 앉았는 그 사람의 모양이 그 저 거지 중에 거지고 옳게 먹지를 못해서 영양 실족으로 바짝 말라 가지고서 그저 연명도 잘 못하고 앉았으면서 모든 행복을 논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이 보고서 '그저 저것도 뭐 저래라도 해 가지고 거짓말 해 가지고 모두 거짓말하고 속이고 속고 해 가지고 먹고 사는 세상이니까 또 저런 거짓말 이라도 해 가지고 먹고 살아야 안 되겠니, 저것도 하나 저 사는 하나의 수단이고 방편이다.' 이렇게 보지 쇠근있는 사람이 그 사람 하는 것 보고서 따라가지를 안할 것입니다.
어떤 아이가 한다는 말을 내가 들었습니다. 보더니마는서도 그 사람은 아주 사람에 대해서 뭐 건강이니 뭐이니 의술이 능하다 하는데, 그 사람은 콜락콜락 병이 들어 가지고 있고, 어떤 그 한의사는 뚱뚱하이 건강하게 살이 찌고 있으니까 아하, 그 한의사한테 가서 좀 거석해라. 그 사람은 보니까 아주 건강하고 그런 거 보니까 그래도 자기가 뭐 건강한 걸 말한 대로 그거해서 효력이 났기 때문에 저렇게 건강해 가지고 있지 그 사람은 말로 하는데 제가 병들어 콜락거리고 있는데 그러면 제병 낫우지 뭐 그럴 게 뭐 있느냐' 하면서 아이가 거게 가지 마시고 저 한약방으로 가자고서 그렇게 말하더랍니다.
오늘 우리가 꼭 그와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전하는 사람들이 보니까 그 사람들은 모두 경제에도 윤택한 사람들이다. 또 사람들도 보니까 인물들이 다 진실되고 아주 실력 있는 사람들이다. 다 그 분들은 다 박력과 권력과 그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보니까 또 지위도 있고 권세도 다 가졌다. 야, 사람이 복된 길은 이 길이로구나. 쭉 따라올 것 아닙니까? 다 따라올 것인데, 우리가 망하면서 전도를 하니까 그들이 어떻게 우리 말 듣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천국 문을 가로막고 우리도 들어 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영육이 다 복받습니다. 다 부자돼요. 안 되는 거 아니라 부자되는데 부자되는데 깨달은 사람은 부자되는데 부자된 그걸 부자되는 그걸 마구 흩습니다. 부자된 그거 갖다가서. 부자된 걸 가지고서 이렇게 저렇게 해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래 흩고, 또 하나님 주시면 또 부자가 또 흩고, 부자 하다가도 부자요 흩고 부자요 흩고 이래 사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부자인데 흩어 버리고 내가 이거 원치 않습니다. 내가 이거 가지고 할라 하니까 힘이 들고 어떤 사람에게 뭘 줘야 될런지 모르고 나중에 보니까 구제해 쥬다 하는 것이 도리어 그 사람에게 화를 준 것이 되고 만 것이 많이 있습니다. 아, 그 사람 옷을 줬더니마는 그 옷 때문에 그 사람은 죄 짓고, 아, 돈을 얼마 좀 도와 줬더니 그 사람 그 돈 때문에 그 사람 망했고 이거 도무지 이거 물질적인 육체의 것 가지고는 바로 선한 일 할 수가 없습니까 내가 이일 안 할랍니다. 이 대신 나에게 진리를 주옵소서. 이거 대신 성경의 권능을 주옵소서. 이거 대신 인간을 위해서 몸과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랑을 주옵소서. 이 신령한 걸 원합니다. 이거는 암만 줘도 폐될 것도 없고 그 사람에게 대해서 아무런 잘못될 것도 없고 이러니까 이걸 주십시오. 이런 사람들 더러 있고, 세상을 가지고저 원하는 사람으로 세상도 가지고 천국도 가지고 세상 것 가지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세상 빛이 되도록 사람에게 모본이 되도록 모든 사람에게 아, 과연 이 예수는 효험 있는 도라. 그 다리오 왕이 아,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은 참으로 참 하나님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곤고하게 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그것을 복음을 위해서 다 바쳐서 곤고하게 삽니까? 그렇지 않으면 풍성하게 살라고 하는 데 안 돼서 그렇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스스로 살펴 보면 알 것입니다. 이러니, 내가 세상에서 권세를 가지고 살고 싶은데 권세가 자꾸 안 올라가면 그것도 어디엔가 막혀서 그렇습니다. '나는 학벌이 그런데' 아니오. 이 지금 세상에서 보면은 학벌 그게 좌우하지 않습니다. 학벌보다 그 사람의 실력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실력은 세상이 없애지 못합니다. 그 실력은 제대로 가지 그 실력을 못 꺾습니다.
정권이 꺾느냐? 정권이 못 꺾습니다. 실상 실력은 못 꺾습니다. 정권에게 꺾어지는 그 실력은 실력 아닙니다. 실력이라 하는 거는 꺾지 못하는 것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아무래도 이 예수 믿는 것을 이제 고장이 생겼으니까 이 잘못 믿는 것을 고쳐야 되겠습니다.
요번에 척 목사라고 미국에 그 목사님이 와서 집회를 인도하는데 그 목사님의 설교 전부를 총론을 다 결론을 지우면 기본 구원을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기본 구원을. 기본 구원을 지금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모든 걸 공으로 주신 기본 구원을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 설명 하는데 아마 한국에서는 자꾸 그래 봐야 별로이 모이지를 안할 것입니다. 미국은 그만 너무 청교도들 신앙 그때로부터 신앙이 유전적이고 또 습관적이고 이러기 때문에 그 자기 개인적으로 느끼는 무슨 그런 신앙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기본 구원이라는 걸 전혀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속해 주신 우리 말로 하면은 기본 구원이요 일반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인데 그 구원을 전연히 모르고 그저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은 선하게 살아야 된다. 정직하게 살아야 된다, 진실하게 살아야 된다. 서로 봉사하며 살아야 된다, 화목의 화평하게 살아야 된다 이것뿐이지 그 뭐 사죄니 칭의니 화친이니 거게서 물어 봤자 사죄 칭의 화친을 백 명 놓고 물으면 그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런지 모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도 벌써 그런 습관적인 유전적인 그런 신앙으로 바꾸어져 버려서 삭개오가 예수님 볼라고 따라다녀야 전부 사람 뒷꼭 지만 보이지 하나도 안 보이니까 삭개오는 그 사람은 참 진실한 사람이라 암만 따라다녀 봤자 인간만 보이지 예수님은 안 보이니까 '안 됐다' 뛰어가 가지고서 저 뽕나무에 올라가 가지고 기다리고 있으며 보니까 '그 예수님 어떤 분인가 보자' 하니까 거게 내려와 가지고서 그렇게 찾는 분을 예수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거게 와 가지고서, 그 뭐 삭개오가 올라간다고 그거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저녁에 너희 집에 유하겠다.' 그걸 원하십니다.
오늘 이 모든 사람들이 그저 부모 때 믿는 그 믿음, 또 조부 때 믿는 그 믿음, 선배들이 믿는 그 믿음 이래 가질 거 아니라 우리가, 이거 혁명이 뭐이 혁명이냐?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이렇게 하면 이렇게 복되게 해 주겠다 영육이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너거를 보고 두려워하도록 이럼게 그 복된 자가 되게 해 주겠다 당신이 말씀하신 이대로의 사람이 되어야 되겠고, 뭐 이대로의 가정이 되어야 되겠고, 이대로의 뭐이 되어야 될 터인데 이게 안 되니까 암만 말해 봤자 그들이 우리를 거짓 말쟁이로 압니다. 별소리 말아라.
종교는 다 도둑질하는 하나의 수단 방법이라. 그것도 하나의 종교도 하나의 착취하는 착취의 그 한 술법이다. 그것도. 점쟁이 술법이나 뭐 상쟁이 술법이나 뭐 토정비결의 술법이나 술 법이니 뭐 딴거 뭐 있느냐? 그러면 다른 사람을 그럴 게 아니라 너거부터 복을 받아야 뒬 거 아니가 하는데 뭐 있어야지.
이러니까. 우리가 이 구원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교는 불교 대로 뭐 무슨 교는 무슨 교대로 전부 별별 종교가 지금 한국에서 나온 종교가 얼마 뭐 사백 몇 종이라 하던가 되는데 이게 다 다 저거가 잘된다 하니까 잘된다 해 봤자 '뭐 그거는 잡교다. 그거는 잡교지 그거는 정교가 아니다. 잡교다.' '뭐이 정교가? ' '예수교가 정교다.' '뭘 보고 예수교가 정교라 하노?' 많은 이 믿으니. 많이 믿으니까, 많이 믿으니까.' '많이 믿으면 사람 많은 것 가지고 정교가?' 만일 여게 기독교가 아닌 어떤 그 불교라도 믿고 난 다음에 그만 자꾸 그 죄인이 의인되고 그 망하는 자가 흥해지고 자꾸 이래 되어지면 대번에는 모르지마는서도 사람들이 보면 아, 저 당대 저라다가 그다음 후대는 망할 거다.
아, 후대 더 잘 되고 삼 대 더 잘 되고, 만일 삼사 대가 다 그대로 잘된다면 그만 그 나라에서는 그 종교가 '다른 소리 말아라. 어느 종교가 제일이다.
우리가 뭘 보노? 그 교는 보니까 현재에 효력이 나올 수도 있지 않나? 효험이 나타나 있지 않느냐? 누구는 말해 봤자 말뿐이지 효험이 하나도 없지 않느냐?' 이럴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데, 사람들은 시야가 좁아서 길게 통계를 맞추지 못하기 때문에 우선 보고 어느 종교에 보자, 자가용이 얼마냐? 자가용 많은 종교 따라갑니다. 부자들 많이 가는 종교를 따라갑니다. 이러기 때문에 불교가 대단히 강성합니다. 강성한데, 그 불교가 강성한데 불교의 그 사학을 공부한 사람은 불교가 어찌 됐느냐? 불교가 들어온지 그후에 나라가 어찌 되며 불교가 왕성되면 그 뒤가 어찌 되느냐? 이것을 좀 역사 사학을 공부해서 통계를 보는 사람들은 거기에 주저하지 안하지마는서도 단편을 보는 사람들은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의 사는 것은 묘를 잘 쓰고 못 쓰는 산리에 있는 것이다. 산리, 묘를 잘 쓰면 잘 살고 잘못 쓰면 안 된다. 산리에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 산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풍수입니다. 풍수. 그 사람들 가리켜서 풍수라고 하는 사람들인데, 이 나침판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것 오행을 가지고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인데 그 풍수에게 어떤 사람이 질문하기를 명산은 명산은 거지가 명산에 싶고 난 다음에 부자가 됐습니까? 부자들이 명산을 써 가지고 뒤에 가서 더 부자가 됐습니까 망합니까? 그러면 명산은 부자가 명산을 쓰느냐, 거지가 명산 쓰느냐? 뫼를 쓸 때 묘를 쓸 때에는 어떤 사람이 쓰느냐? 이거는 다 통계가 되어 가지고 있으니까 부자가 남의 뫼를 명산이라 하면은 그 뫼에 돈을 많이 주고 사서 씁니다. 지금은 내가 모르지마는 시골 있을 때에는 지금 돈으로 말하 면은 뭐 그 논 한 마지기 그때 뭐 몇닢 안한 한 오천 원이 얼마 갈 때에도 오만 원이면 열 섬, 오십만 원이면 백 섬, 오백만 원이면 천 섬입니까? 계산이 그렇습니까? 오십만 원짜리 뫼 자리가 많이 있습니다. 아주 뫼 좋은 것 오십만 원짜리를 돈 많이 오십만 원을 주고서 뫼 자리를 사 가지고서 씁니다. 쓰는데 뫼자리 팔아 먹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팔아 먹은 사람은 얼마나 망했기 때문에 그 선조 뫼자리를 팔아 먹겠습니까? 부자가 뫼 좋은 데 사서 쓰고 망하면 팔아 먹는다. 그러면 부자가 좋은 뫼 자리에 쓰고 나중에 쓰고 난 다음에 망해 가지고 팔아 먹는다 그것이 통계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 지금도 이 종교에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부강하고 형통한 사람들이 취하는 종교가 있고 또 거지가 취하는 종교가 있고 이 종교가 둘입니다. 형통한 사람들이 취하는 종교가 있고 거지가 취하는 종교가 있는데 그거는 여러분들이 어떤 것이 그 낭패와 실패와 거짓 그런 것 들이 취하는 종교인지 어떤 것이 부자와 뭐 권세 있는 그런 사람들이 취하는 종교인지 여러분들이 조금만 통계를 맞추어 보면 환하게 다 알 것입니다. 그러면 그라고 난 다음에는 좀 그것을 알아서 자기 동리 이런 도시에는 몰라요. 도시는 몰라도 시골은 압니다. 아무 집이 무슨 종교라. 그러면 얼마 안 가서 그 집에 가면은 그 길게 안 가요. 사십 년입니다. 시골서 제가 경험한 대로는 사십 년이라. 사십 년으로 요 집에 머슴살이 고용살이 한고 고용자가 고용을 당한 자가 피고용자가 사십 년 후에는 고 사람의 자손이 와가지고 고 집에 와서 남의 집 삽니다. 사십 년이면 휘딱 뒤비져요. 시골에서는 사십 년이면 뒤비져요. 이 도시도 사십 년 오십 년이면 휘딱 뒤비질 것인데 그 통계를 사람들이 보지 않습니다.
이런데, 그래도 보면 그 가정이 아무라도 보면 그 얄굿게 믿어도 믿는 사람들의 가정을 보면은 그래도 참 더럽게도 자라지 똑 여기 저 돌 크듯이 커 뭐.
아비보다 자식이 거저 조금 낫고 자식보다 그 손자가 조금 낫고 근근히 이라다가 어째 삼 대나 지나가면 그 사람 인물이 하나 나고 좀 지내기 괜찮고 이래도 싹 망하지는 안해요 보면 그래도. 이러나 그 불신자들은 보면은 참 안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보면은 뭐 내가 다 보지는 못하지마는 내가 보는 대로는 보면은 그저 근방 이렇게 큰 세력을 가졌다가 푹 꺼꾸라지고 그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 걸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이런데, 이 기독자들이 예수 믿으면서, 아, 예수 믿는 사람 보니까 여기 말해 놓지 안했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계약을 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이랬으니까 이 복을 다 받아서 우선 세계 냅두고 부산서 자꾸 뛰어나고 대신동서 뛰어나고 그 이웃에서 뛰어나고 이 뛰어나면 복음이 절로 전해질 터인데 이 하나님이 거짓말 해서 안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그 순종을 하지를 안해서안 되는 것입니까? 이 둘 중에 하나 뭐 사고는 있습니다. 고장은 있어요.
그래 내가 어제도 어떤 권찰들을 몇을 만나 가지고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 짐작에 저 구역은 아마 경제가 많이 성장이 됐을 것이다. 내가 그 뭐 개인이 압니까? 모르지마는서도 권찰 그 지도나 모든 성의나 방편을 본다 그말이오.
-기도하는 것이나, 그래 물으면서 그 구역에, 다른 것뭐 신앙 그거는 속에 있는 걸 모르니까 그만 경제를 가지고서 '그 경제가 좀 낫아 집니까 어떻습니까? ' 이러니까 '아이구 뭐 부자 됐습니다. 누구도? 누구도 누구도 누구도 누구도 누구도 어쩌고 이래 됐습니다.' 이라고, 또 어떤 구역은 그 구역은 기가 찰 거라, 아마 떡 묻습니다. 물으면 '그 구역에 지금 뭐 이런데 좀 연보도 많이 하고 좀 그래하지 어떻습니까?' 아이구 뭐 무엇이 어떻고 무엇이 어떻고 무엇이 뭐 무엇이 비참하고 무엇이 낭파고 무엇이 굶어 죽을 지경이고 뭐 어떻고 어떻고 뭐 이래 가지고 돈이나 있으면 그만 한 무더기 내 뿌렸으면은 거석할까 복 받은 사람이 없어, 보기에, 이러니까 참 구역장 잘 만나고 못 만난 게 그게 참 큰 복에 관계가 있고, 또 교역자 잘못 만나고 잘 만난 게 그것이 큰 복에 관계 있어요. 여러분들도 교역자를 잘못 만났어요. 잘못 만난 것은 내가 참 정말로 잘 믿어서 복의 기관이 되어서 아브라함 요셉같이 그렇게 아브라함같이 잘 믿어서 복의 기관이 되면 막 복을 다 받을 터인데 내가 복의 기관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빼빼 말랐다 그거야.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얼마전에 교역자 신임 투표를 했는데 거게서 뭐 백 몇 사람은 안 찍었는데 그분들이 정신 차린 사람이라. 그리 안 하면 복의 기관이 되도록 복의 기관이 되도록 그럴러면 딴 사람을 바꿔서 복의 기관을 바꾸든지, 그 복의 기관이 되는 사람 밑으로 가 가지고서 신앙생활 해서 복을 받든지, 또 하나 뭐입니까? 복의 기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갈든지, 못 갈상 바르면 복의 기관된 그 교역자 앞으로 가 가지고서 거기에서 신앙생활하든지 그리 안 할라면 뭐 해야 됩니까? 뭣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 ○ 장로님 한번 말해 보이소 뭘 해야 되겠습니까? ○○○ 장로님도 한 번 말해 보고, 아, 이 복의 기관 못 된 뭇 된 이거 백 목사가 복의기 관이 되도록 막 기도를 해야 됩니까? 뭐 할랍니까?자 얼른 얼른 얼른 서둘러 버리소.
서둘러야지 이거 어거정 어거정 하다가 우리 구원 이루지 못하고 이러면 그 황금보다도 비할 수 없는 이 세월을 허송 세월을 할 수 가 없어.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얼른 교역자를 갈든지 그뭐 갈라 하면 내가 또 어디로 가든지 내가 갑니다. 와 그러냐 하면 내가 여기서는 복의 기관 아 못 돼 복의 기관이 되도록 가야 안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그만 새로 원한다면 내가 한 번 투표 더 하겠어요. 해 가지고서 갈든지 그렇지 않으면 어라. 내가 갈라 해도 못 가니까 내가 나 혼자 그만 복의 기관되는 그러 교역자에게로 내가 가겠다. 교회를 옮기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제 ○○○ 장로님 말한 대로 기도를 해 가지고서 이 백 목사 이거 복의 기관 되지 못 하고 저주의 기관 된 것이 복의 기관이 되도록 하나님에게 변화를 시켜 주시든지 빈화를 시켜 주시든지 변화를 안 시켜 주실라면 죽여 버리든지 그리 안 하면 딴 데로 날려 보내 버리든지 우리가 못 살겠으니 이거 자꾸 복의 기관이 만들든지 해 달라고 좀 하나님께 부르짖든지 무엇인가 해야 되지 이거 뭐 살아서 움직여야 되지 이거는 송장 모양으로 날마다 세월 가니까 썩어지기만 자꾸 썩어지고 이래 가지고 뭐이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오늘이 84년 마지막 주일인데 어짜든지 이설교를 '지금 내가 할라 하다가 지금 뭐 이거 그만 선도하고 말았는데 나중에 차근차근 좀 하겠습니다.
뒤에, 그랬는데. 여게 보면, 그렇습니다. 들에서도 산에서도 뭐또 떡반 죽 그릇도, 또 손으로 하는 모든일도 성읍에서도 다 복을 받는다. 이래 가지고서 모두 머리가 되고 위에만 있고 꾸어주고 꿀 것은 없고, 또 모든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고 이래 존대하고 이래 된다 했는데. 이것이 전부 보면은 아, 네가 들에서 복받는 것은 네 아주 농술이 있어서 농업하는 농술이 있어서 됐다. 네가 열심히 해 그렇다, 건강해서 그렇다. 네가 무슨 지혜가 있어서 그렇다. 네가 그 농업에 대한 과학이 능해 그렇다 그런 말 한 마디도 없습니다. 네가 명철해 그렇다 지혜 있어 그렇다. 열심 있어 그렇다. 건강해 그렇다, 뭐 들이 좋아 그렇다, 뭐 또 목축은 종자가 좋아 그렇다 그리 하지 안했습니다. 여게는 다만 하나님이 복 주시니까 복됐다 그뿐입니다. 복 주시니까 복됐다 복 주시니까 복됐다. 사람 잘난 사람에게 복 줬다 소리 없습니다. 명철한 자에게 복 줬다 소리 없습니다. 열심 있는 자에게 복 줬다 소리 없습니다. 또 장소가 좋아 복 줬다 안했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 말은 가나안에 무슨 젖과 꿀이 흐르는 그렇게 좋은 땅입니까? 아니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복 주시면 젖과 꿀이 흐릅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면. 하나님이 복 주시면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복 주시면 그 사업에 마구 모든 것이 하나님이 축복하시니까 그로서 얼마든지 존영해 질 수가 있고 자기가 무슨 직장을 가겼든지 무슨 사업을 하든지 그 하나님이 복 주시면 되고 복 안 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복을 주시고 안 주신 데 있다. 아무리 잘나도 금방 하나님이 복을 주셔 가지고 이렇게 됐는데 하나님이 저주를 주니 싹 망했다. 망하는 것은 장소 나빠 망하는 것 아니고 사람이 못나 망하는 것 아니고 또 그뭐 지혜가 없어 망하는 것 아니다. 하나님이 저주 해서 망했다. 망하는 거는 저주로 망했다.
잘되는 거는 복으로 잘된다. 이 복과 저주에서 흥망 성쇠는 결정된다. 요걸 성경에 말해 놓은 것이요 신명기 28장입니다.
그러면 복은 어디 있느냐? 복은 어떻게 있느냐? 복은 그저 간단합니다.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복을 주어 가지고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 나리라 했으니까 뛰어났으면 뭐 오만 것 다 뛰어나야 뛰어나지 한 가지만 뛰어나 가지고 뛰어난 게 되겠습니까? 간단해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삼가 들으라 말은 조심해 들으라 말입니다.
그러면 삼가 듣고 하는 말은 성경에 보면 '삼가 성경 읽고''삼가 듣고 성경 삼가 읽고' 삼가 읽고 삼가 들으라 말이오. 삼가라 말은 조심해 읽고 들으라는 말이오. 뭐 무슨 조심 할라고? 뭐 할라고? 요 말씀대로 우리가 당신에게 순종하면 당신이 복을 쌓을 곳이 없이 복을 쌓아 주고 이 법칙 어기면 저주 줘서 망하고, 이러기 때문에 당신이 날 망치고 나를 흥하게 할 수 있는 죽이고 살리고 망하고 흥하게 하는 권리가 당신 혼자에게 있는데 혼자에게 있는데, 그분이 이제 내가 너에게 말하는데 내 말하는 대로 요대로 하면 요렇고 요대로 하면 요렇다.
당신의 하는 말씀에 망하는 것도 말해 놨고 흥하는 것도 말해 놨고 죽는 것도 말해 놨고 사는 것도 말 해 놨으니까 그 말이 생사의 말이니까 얼마나 중요한 말입니까? 이런 말씀 인 줄 알고 삼가 조심해서 '보자. 주님이 지금 망하는 말을 하시는데 어떻게 하면 망한다 하는 망하는 데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망하는 데 대해서 말씀하시니 망하는게 어떻게 망하는고 듣자 그 말에 망하는 그것이 거게 달려 있는 것을 알고 듣는 사람이 삼가 듣는 사람이오. 또, 복을 받아서 흥 하는 것 그까짓 거 뭐 아무리 세상에 잘나 봤자 무슨 소용이있습니까? 하나님이 쑥 무너 버리면 그만 없습니다. 없어요.
여러분들이 이사야서를 좀 볼 필요가 있는 것은 나도 며칠 전에 내가 그런 일을 했습니다.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서, 요한계시록을 이렇게 보다가 보다가 이사야서를 보다가 덮어 놓고 덮어 놓고 말을 하면서 덮어 놓고 '어라, 요한 1서 3서 보자. 요한 1서 3서 보자.' 왜? 이사야서는 보면은 깽깽깽 깽깽 거리며 요거 잘못했다. 요거 틀렸다 요라니까 하나님이 꼭 침으로 준다. 요래 가지고 너를 찌른다. 요래 가지고 깨뜨린다 파괴된다. 요 깽깽깽 깽깽깽 요래 쌓으니 이사야서만 보고 에스겔서만 보면 사람이 깽깽깽깽 하고 자꾸 남 듣기 싫은 소리만 자꾸 이런 소리만 하게 되니 사람들 싫어하지 내 마음 불안하지 이러니까 자꾸 상이 찡 그린 상이니까 항상 찡그려져 가지고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펴지를 못하니 어라, 이 성경 치우고 이 요한 l서 보자. 사랑, 사랑. 사랑의 성경 보자. 그래서 그만 그날 아침에 요한 l서를 찾아 가지고서 쭉 끝까지 그만 다 읽었습니다. 그 날 새벽에 이사야서를 덮어 놓고. 나도 그거 혼자 발동이요 그게 발동이.
왜? 이거 깽깽깽 그리 쌓으니 모든 사람 듣기 싫어하고 사실에는 지금 그게 뭐 덮어 놔 봤자 뒤에 가서 나타나니까 나타나니까 그걸 알아서 고쳐야만 되기는 되겠는데 이 고칠려고 해 봤자 되지도 안하고 이러니까 백지 남 듣기 싫은 소리만 하고서 뭐 별 효력도 안 나는데 그저 차라리 사랑을 말하는 게 좋다.
그래서 그 척 목사님이 제일 성경 연구할 때에 요한 l서를 착수해 가지고서 연구했고 그 다음에는 에베소서를 착수해 가지고 연구했다고 이랍디다. 그 에베소서 요한 l서는 참 좋은 성경입니다. 다른 것도 좋은 성경이지마는 거기는 기쁘고 즐겁고 호화릅고 참 좋은 것만 기록되어 있는 젓입니다. 이러나 예레미야 애가니 예레미야서니 에스겔서니 이사야서니 요한계시록이니 하는 성경은 깽깽깽 깽깽깽 거리면서 사람 녹아 죽겠다 그 말이오. 녹아 죽을 말씀이라. 녹아 죽어.
이러니까, 그날 아침에 내가 생각하면서 아. 척 목사님은 성경을 복이 있어서 좋은 성경을 택하셨다. 이러니까 항상 웃으며 살 수 있고 기쁘며 살 수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워하는 소리를 하면서 살 수 있는데 나는 이런 걸 보면서 장,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교인들이 다 듣기 싫어서 상을 찡 그린다. 그날 내가 지난 주 오후 설교를 그걸 들으면서 나는 들으면서 속으로 짜증을 냈어.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 나도 듣기 싫다. 아이구. 뭐 한다고 한번 하면 말 일이지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자꾸 되씹어 가지고서 그만 사람들이 안 들을 래야 안 들을 수 없도록 다 이렇게 해 버리고 하니까 한번 썩 해 버리고 난 다음에 들으면 듣고 말면 말고 이라고 나면 아 뭐라 했노. 뭐라 했노 이랄 것인데, 암만 자다 들어도 장, 그 소리이니까 안됐다. 이거 설교 적게 해야 되지 이거 안 되겠다. 이래 가지고 나도 이래도 그게 또 나중에 생각해 보면 또 죄는 죄라요. 죄는 죄를 지었다 말이오. 죄는 죄라 말이오.
이런데, 어쨌든지, 지금, 우리는 참 때는 이사야서를 봐야 되고 예레미야서를 봐야 되고 예레미아 애가서를 봐야 되고 에스겔서를 봐야 되고 그 요한계시록을 봐야 될 때입니다. 왜? 우리의 마음이 너무 강퍅해져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안 보면 우리가 점점 독사가 돼 나갑니다. 점점 멸망의 사람이 되어가요.
이 세상에는 어짜든지 자기중심의 자기중심 자기 위주. 자기중심 자기 위주 이것으로 사니까 다 형통하고 또 그 사람을 정상의 사람으로 보고 이라는데, 그러니까 뭐 수단 방법 가리지 안하니까 무슨 뭐 당기니까 오지지 않습니까? 이래 돼진다 말이오. 되나 그 뒤가 어찌 된다는 그것은 사람들이 모르는 거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왜정 말년에도 다 그것만 좋은 줄 알았지 그때 그 하나님의 시험에 낙제된 그것은 지금도 사람들이 낙제된 그거야 한번 낙제된 것인데 뭐 되나 합격되나 뭐 그것이 뭐 있는가 그 표 아무것도 모릅니다. 6, 25때도 그렇고 고거는 모르는데 그래도 그게 지혜입니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들이 그저 뭐 이것도 저것도 다 버리고 어짜든지 에스겔서나 예레미야서 그런데 말한 것도 깽깽깽거린다 말해도 그 말씀도 무슨 말씀이냐 하면은 그 말씀은 전부 요라면 네가 망한다. 요라면 망하는 걸 많이 말했어. 요라면 망한다. 요라면 하나님의 진노가 온다. 요라면 저주 받는다. 자꾸 망하는 걸 말했으니까 그 소리는 듣기 싫고. 요라면, 복 있다, 요라면 복 있다, 요라면 복 있다 하는 그것만 가지고 말했으니까 이 둘 이 있어야 돼요. 망할 것 이것을 벗어나고 난 다음에 복 있는 걸 해야 되지 망할 것 벗어나지 딴고 복 있는 것만 하면 됩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이제는 우는 것 가지고도 안 되고 웃는 것 가지고 안 됐고, 또 무슨 잘 산다 해도 안 됐고 하나님 그분 앞에 해결이 되어야 될 터 이니까 우리가 요대로 완전히 우리 생활을 완전히 바꿉시다. 생활을 완전히 바꿉시다.
생활 방편을 완전히 바꿔 봅시다. 뭐 어째됐는지 바꿔 봐요. 바꿔 봐 가지고 한 서너 달 바꿔 해 봐요. 그라면 뭐 무슨 낭파가 오든지 정말로 바꿔 해 봐요. 석 달만 바꿔서 해 봐요. 어떻게? 바꿀 것은 하나님이 성경에 기록한 말씀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요 말씀은, 요 말씀이 사는 것도 말했고 죽는 것도 말했고 요거 말했습니다. 살고 죽는 것이 여기 있습니다. 살고 죽는 것이 여기 있고, 또 저주 받고 축복 받는 것이 여기 있습니다. 요 말씀에 있어요. 요 말씀에 요게 축복과 저주와 죽는 것과 사는 것이 여기에 있다는 요 사실을 우리가 뭐 우리의 성공하고 실패하는 그 죽고 사는 것이 우리 몸에 건강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젊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뭐 일류 대학에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직장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데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데 있는 것도 아니야, 아무 데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거는 공연히 귀신 마귀 고놈이 와 가지고 요래 꼬와 그렇지 성경에는 거게 있다고 하지 안했습니다. 거게 있다고 하지 안했어. 다만 하나님의 이 말씀 여기에 죽는 것도 여게 있고 사는 것도 여게 있고, 이 말씀에 요라라 했는데 그래 안하고 요라면 죽고, 또 요라라 할 때에 요라면 살고, 이 죽고 사는 게 요 말씀에 있어. 죽고 사는 것이 말씀에 있다는 요것을 우리가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뭐 이 정계에서도 이 사회에서도 과하에서도 찾지 말고 우리의 죽고 사는 것이요 말씀에만 있다, 또 우리의 흥하고 망하는 것이 요 말씀에만 있다 요것을 확정을 지우고 요 말씀에 대해서 삼가하는 사람이 됩시다. 먼저 삼가하는 사람.
삼가하는 사람 되고, 고 다음에는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신 대로 지켜 행 하라.
오늘날 명하시다니? 오늘날 명하시면 신구약 성경에는 성경 말씀이 많이 있는데 이 말씀을 주님이 오늘 너거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그 당신이 명령한 고대로 해야 되지 신구약 육십 육권에 기록한 이 많은 말씀을 우리가 다 지켜 행할 수가 있습니까, 어디? 이 말씀에는 여러 수백 가지도 수천 가지도 넘은데 이 말씀을 어찌 다 지켜 행하겠습니까? 그라면 어째야 됩니까? 창세기 l장 l절에서 부터 오늘은 l절 지키고 내일은 2절 지키고 3절 지키고 4절 지키고 이래 지키는 거와 같이 이래 지켜 나가겠습니까 어짜겠습니까? 이랬는데 여기에는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대로 지켜 행해라 했으니까 오늘 무슨 명령을 할런지 그걸 모른다. 그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오늘 네게 명령한 요대로 지켜 행해라 요대로 지켜 행하면 된다 이랬으니까 오늘날 우리에게 명령 해 주시는 그 명령이 무슨 명령입니까? 그 명령을 우리가 바로 맞아서 당신이 요 말씀 지키라 하면 고 말씀 지켜야 천하 모든 민족 위해 뛰어나는 이 복을 받지 그 말씀을 안 지키면 다른 말씀 암만 지켜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없으니까 그분이 오늘날 네게 명하는 요 명령을 지켜 행해라 했으니까 오늘날 명하는 그 명령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 해 주실 때에 우리에게 귀에 들리구로 소리로 해서 명령해 주시지 않습니다. 또 우리의 눈에 오늘은 이 성구를 지키라 하소서 글에 써 가지고서 보여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요 오늘은 요 명령 요 계명 지키라, 요 명령 지키라, 조 계명 지키라 하면서 날마다 우리에게 지킬 계명을 가르쳐 주시는 것은 뭘로 가르쳐 주시느냐? 당신이 소리로 가르쳐 주시지 안하고 글에 써 가지고 가르쳐 주시지 안하시고 우리 현실을 요런 현실을 당신이 만들어 주시고 조런 현실을 만들어 주시고 자꾸 현실을 바꾸어 만들어 주십니다. 이러니까 요 현실 만들어 주시면 고 현실에 해당된 말씀대로 살고 조현실 만들어 주면 조 현실에 해당된 말씀대로 살고 당신이 현실을 자꾸 요 현실 조 현실 자꾸 바꾸어 가면서 그 현실을 자꾸 나에게 만들어 주시니까 만들어 주신 고 현실에 해당된 고 계명을 지키면 고것이 주님이 고 시간에 고날에 내게 명하신 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이러면 그것뿐입니다. 이것만 지켜요. 이것만 지키고 나중에 더 한 마디 말하기는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버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안하면' 그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안하고 버리면 그것도 틀린 것인데 버리는 중에 잘못하면 버리는 것 중에 아주 버리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 말씀이 뭐라 하든지 버리는 것도 있지마는 버리는 것도 있지마는, 그 버리는 것. 하나님 말씀은 이라라 하는데 이라라 하는데 안 하는 것도 버리는 것입니다. 버리지 마는서도 이라라 하시는데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것을 지나치면 그것도 치우치는 것이라.
지나치면. 또 미 달되어도 치우치는 것이라. 하나님 말씀을 버리는 것은 말씀을 통으로 버린 것도 버리지마는서도 그 말씀대로 지킨다고 하면서 지킨다고 하면서 선 내끼 시작만 조그매 해 놓고 말고 지켰다 그것도 헛일 또 지킨다고 하는데 너무 지나치게 넘어가는 것도 헛일. 지나쳐도 헛일 미달돼도 헛일 그러니까 좌로 치우쳐도 헛일 우로 치우쳐도 헛일이니까 고 현실에 당신이 현실 주시는 거기에 해당된 고 계명을 계명을 지키는데 이리도 저리도 치우치지 안하고 원만하게 원만하게 고 지키 면, 원만하게 지키면 어떻게 지키는가? 원만하게 지키면 베드로후서 l 장에 보면은 첫째는 하나님 생각해서 당신에게 거슬리지 안하도록 지키고, 그 다음에는 두번째는 뭐라 했습니까? 믿음에 믿음에 뭐하라 했습니까? 믿음에 덕, 믿음에 덕 요거 좀 큰소리로 좀 해 봐요. 믿음에 덕, 덕은 사람에게 입니다. 사람에게. 그러면 하나님에게 대해서 잘못됨이 없도록 조절해 지키고, 말씀을 지키지마는서도 하나님 먼저 생각해 봐서 하나님에게 거리끼지 안하도록 딱 들어맞도록 지키고, 또 사람에게 거리끼지 않도록 지키고, 하나님에게 거리끼지 않도록 지키는 것은 고거는 믿음이고 사람에게 거리끼지 않도록 지키는 거는 고게 덕인데 요래 지키다가 보니까 하나님에게 거리끼지 않도록 지킬라고 사람에게 거리끼지 않도록 지킬라고 요 두 가지를 상대하다 보니까 고만 하나님의 지식을 잊어 버릴 수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또 지식을 더하고, 고라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됐느냐 또 상고하고, 요래서 하면 된다 했습니다. 그래 또 절제를 더하고 절제는 잘못하면 사람들이 하다가는 그만 쑥 지나가기 쉽다 말이오. 그것도 조정 있게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도 보면 그렇지 안해요? 조절해서 먹어야 되지 약을 짓는 사람들 약 장사 보면은 약국을 보면은 요것 좀, 요것 좀 자꾸 저울로 달아야 되는데 저울로 달아 넣는데 고 저울로 달아 넣는데 요걸 지나치게 많이 달아 넣으면 약이 딴 약 돼 버리고 맙니다. 그 치료하는데 보약이 보약이 그 사람에게 힘을 빼는 약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조절을 해야 되니까 요렇게 하면 그 모든 것이 된다 말이오. 또 인내를 더 하고, 암만 조절한 다고 해도 조절한다고 해도 뻐떡 하고 말면 됩니까? 아무리 밥을 잘하게 되는 모든 것이 구비하게 다 됐다 할지라도 밥이 될 만한 시간이 요한다 말이오. 시간이 요하니까 인내를 해라. 이래 가지고서 사람 상대하고 모든 것 하라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이 마지막 주일인데 바꿉시다. 첫째 바꿀 것은 모든 죽고 살고 흥하고 망하고 존귀해지고 천해지고 뭐 부요해지고 가난해지고 모든 것이 형통해지고 앞이 꽉꽉 망해서 절망이 되어지고 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말씀에 고게 매였다 말씀에 매였다 요것을 알고 보자. 말씀이 뭐라 했노? 성경을 보자. 우리 망 하는 것이 성경에서 망하는 것이 어떻게 말해 놨노? 보고 아이 요거는 망 하는 거다. 고거는 우리가 고 길을 막자. 요거는 복 받는 길이다. 망하고 흥하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까 흥망과 생사를 찾을라고 이 성경을 삼가 조심해서 읽고 말씀을 들을 때에 죽고 사는 것이 여게 있다. 뭐 죽고 사는 것이 제 기술에 있는 것도 아니요 선천적 기능에 있는 것도 아이구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이구 그까짓 거 하나님 없는데 아이큐가 필요하고 뭐 언변이 필요하고 뭐 선천 후천이 필요하지 하나님 계시면 선천 후천 그거 다 짓고 없고 부서트리는 분이시지 그거다 초월한 분이 있는 데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당신에게 있어. 이러니까 말씀에 있다. 왜 말씀에 있느냐? 말씀을 이 여호와가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이 말씀에 생사 화복이 다 여게 있다 하는 것을 확정을 지우고 말씀을 삼가서 보자 말씀이 뭐라 하는고, 말씀에 대해서 삼가 읽고 듣는 사람이 첫째 되어지고 그다음에 하나만 더 하면 돼. 하나만 더 하면, 하나 더 뭐? 하나더 할 것은 오늘날 네게 명하시는 고 명령을 지켜 행하여. 오늘날 네게 명하시는 '오늘날' 그러면 하나님 이 뭐 소리로 해 줍니까 글로 써 줍니까? 오늘날 누가, 당신이 현실을 만들어, 현실은 인간이 안 만듭니다. 제가 만드는 것 같지마는서도 다 하나님이, 현실은 하나님이 혼자 만드시지 인간이 못 만 듭니다. 현실이 요 현실을 만들어 주시면 요 계명 지켜야 될 때에는 요 현실을 딱 만들어 주시니 지키는가 아닌가 보자. 고 현실을 만들면 고 현실에 해당되는 그 계명을 딱 지켜 버리면 합격, 또 고 다음에 다른 현실을 또 살짜기 만들어 주시니까 고 현실에 또 해당되는 또 계명 딱 지키면 합격, 고 다음에 또 현실을 만나니까 그 현실에 해당되는 그 계명 지키니까 합격 요래서 합격 합격으로 나가는 고거 하나만 우리 할 일이라. 고것만 하면 그만 이 사업은 어찌하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네게 축복하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 현실에 팔장 찌르고 요래 있어야 할 현실도 있고, 또 어떨 때에는 현실 주시는데 이거는 부지런히 내가 해야 되겠다 이래야 될 그 현실 주실 때도 있고, 어떨 때는 현실을 주실 때에 어라. 여기에는 암만 속에서 뭐 부글부글해도 이 현실에서는 입을 딱 다물라 한다. 요 현실을 주는데 네가 입을 다물고 벙어리가 되는가 안 되는가 보자. 그 현실에서 입을 딱 다물고 딱 다물고 있고 또 그 어떤 현실에는 아. 여게는 이 말할 라 하면 대번 사형받겠는데 공산주의 앞에서 예수 믿는다 하면 사형받는 데 여게서는 말을 하면 사형받는데, 예수 믿는다 말을 하면 사형 받는데, 이런 하나님께서 말하나 안 하나 보자. 해라 할 때에는 고 말해때 고 말 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말을 해야 될 현실도 있고 안 해야 될 현실도 있고 이 일에는 어찌 되노? 아, 이 일에는, 네가 여기서 보자. 여기는 어떤가? 여게는 내가 이 사람에게 이 전염병 환자인데 전염병 환자이지마는서도 내가 전염병을 생각지 안하고 그 사람에게 위로하기 위해서 내가 어짜든지 이 전염병 환자지마는 내가 있는 힘을 다 기울려서 이 사람을 간호하는 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니까 요게서는 간호하고 봉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다. 고 봉사한다 그 말이오. 또 요게는 이거는 내 현실에서 요런 책임이 지였으니까 이거 다른 사람은 다 그만 픽픽 달아나 버리지마는 안 됐네. 나는 밤잠을 못 자도 요걸 지켜서 요 책임을 감당해야 될세. 고거 계명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현실 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고게 해당된 그 계명을 지키다가 보면 하나님이 복 주시고, 일은 언제 하고? 계명 지키는 그게 일이라. 현실에서 계명 지키는 그 일하는 것은 그 현실에 해당된 계명을 지키는 일은 그 일은 그 현실에서 주님의 계명을 고게 해당되는 계명을 지키는 일은 어떤 일이냐? 그 일에는 그 일은 제가 사람 보기에는 제가 하는 것 같지 마는서도 전능자가 하는 일이라. 전지자가 하는 일이라. 하나님의 축복이 마구 퍼붓는 일이라. 안 될 게 어데 있겠오? 어떻게 안 되겠오, 안 되기를, 우리가 이래 살지 안하고 꾀를 팔기 때문에 자꾸 망합니다.
오늘은 요 두 가지 오전에는 요 두 가지만 단단히 기억합시다. 우리의 생사 화복 형통 불통 모든 눈물 웃음이 전부는 요 하나님의 말씀에게 매였다. 하나님 말씀에게 요게 다 근거되어 있다. 이 말씀 무슨 말씀인데? 여호와의 하나님의 계약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요 말씀에 매였다. 요것을 깨닫고 내가 죽는 게 어디 있느냐? 말씀에 가 찾아보고, 사는 게 어디 있느냐? 말씀에 가 찾아보고, 말씀을 삼가 듣고, 삼가 듣고 삼가 듣고 오늘날 네게 명하는 대로 '오늘날 네게' 이 시간 주님이 네게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 고 현실에 해당된 고 계명대로 하는 요것이 오늘날 네게 명하는 대로 지켜 행하는 것이라. 요것만 하면 돼요. 요것만 하면. 어데 아, 네가 명철 하니까 복받는다. 네가 언변이 좋아서 지식이 훌륭해서 머리가 됐다 그말 어디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어.
하나도 없고 그저 어디든지 복 줘서 복 주어 전부 복 하나 가지고 다 돼 버렸어.
이번에 척 목사 그 집회 하는데에 세계 성경 연구 선교회라 하는 그 뭐 선교회든가 그래 했는데 거게서 사회하는 분들 보니까 나는 거게 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회하는 분들이 기도할 때에 모두 전부이 복이라. 보니까.
'주님이여 이 시간 다 복을 주셔서 복을 받아서 이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고 복을 받아서 이 말씀대로 행하게 해 주시고 뭐 다 복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복을 받아서 양떼에게 가서 복을 전해 줄 수 있도록 하게 해 주옵소서,' 전부 복이라.
그러니까 복 받을 것 아닙니까? 이제 우리가 금년으로 마지막이니까 우리 문제 없습니다. 주흥같고 진흥 같이 붉은 죄라도 죄가 있거든 주님의 피에 고하시오. 주님의 피에 고해 가지고 사함 못 받을 죄 없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행하지 못한 것이라도 주의 의에 고해 가지고서 의인 안 될 것이 없습니다. 다 됩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있어도 그라고, 그라고 난 다음에 고범죄로 아. 이거 뭐 주님에게 고해서 사함 받고 사함 받으니까 문제 없다 요래 가지고 고범죄 짓는데 하나님이 사해 주십시오.
고범죄는 사함 못 받습니다. 고범죄는 사함을 못 받는다고 했어. 그러나 이제까지는 몰라서 이 짓고 이제부터 안 지을 요랑 하고서 회개하면은 어떤 죄라도 다 사함 받습니다. 하나님의 의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무슨 실수라도 문제가 없어. 당신이 다 책임을 져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