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축복


선지자선교회 1986년 5월 19일 새벽(월)

 

본문 : 로마서 8장 18절∼25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 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하는 이 우리는 복수인데 이 누구를 가르치신 것입니까? 우리가 아나니 하는 것은 `교회가 아나니' 하는 말이요 `교회가 아나니' 하는 말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또 이 공로로 말미암아 중생된 모든 영들이 다 단합해서 그 복수를 우리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여기, 우리가 아나니 하는 데는 우리의 이 심신이 여게 포함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심신이 포함이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심신이 포함이 안 됐다 할 수도 있고 포함이 됐다 할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심신이 이미 완전이 된 거 있습니다. 현실에서 영생으로 완전히 고정된 거 있고 아직까지 미결이 되어 있는 거 있기 때문에 미결이 되어 있는 것은 마귀 그놈에게 지금도 이용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정반대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이 도리를 긍정하고 반대하는 두 역사가 우리 속에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찬성하는 것은 성화된 것이고 반대하는 것은 아직까지 미성화의 것인데 그것들이 현실을 통해서 차차 미성화의 세력이 강해질 수도 있고 성화의 세력이 강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현실에서는, 성화되는 일이 되면 성화 세력이 강해지고 미성화의 세력이 점점 약해져서 어떤 사람은 진리를 반대하는 것이 그 속에 조금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그런 이는 조금 있어도 그놈이 힘을 쓰지 못 하고 퍼뜩, 어째 퍼뜩 생각해서 조금 반대가 됐다가도 정신 탁 차려 버리면 그놈이 죽어 버리고 그만 쫓겨나가 버립니다. 이러니까,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에 잠깐 근심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깨닫고 난 다음에는 `아이쿠, 이게 아니로구나.' 하니까 다시 미성화의 것은 거기서 꺾어지고 죽어지고 성화의 편이 점점 많아집니다.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우리' 하는 이것도 복수인데 이거는 누굽니까? `또한 우리' 하는 거는 누굽니까? 이거는 `또한 우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도 되는데 고 밑에 해석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령의 처음 익은" 익었다 말은 완성됐다 말 아니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았다 그말은 결실을 받았다 말이오. 열매 받았다 말은 결실을 받았다.

"받은 우리까지도" "우리까지도" 내나 위에 `우리'나 밑에 `우리'나 한가지입니다. "우리까지도" 그러면, 요것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영들이 지금 탄식을 합니다. 중생된 영들이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그러면 탄식하는데, 중생된 영들이 탄식을 하는데 중생된 영들은 뭣 때문에 탄식하는가? 탄식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그러면 양자될 것이니까 양자가 됐다 말입니까 아직까지 안 됐다 말입니까? 양자가 아직까지 되지는 안 했는데 될 그런 희망성과 소망성을 가지고 있는 걸 말합니다.

"양자될 것" 양자될 것 뭐인데?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 몸이 현실을 통해서 구속을 입으면 영생이 되고 현실을 통해서 구속을 벗어 던져 버리고 악령 악성 악습 고놈대로, 말하자면 제 뜻대로 제 생각대로 제 욕심대로 제 소원대로 사는 그것은 이제 이 구속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우리 구원은 이미 얻은 것도 있지만 앞으로 지금 얻을 구원을 우리가 가지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뭐 얻은 구원은 그거는 영원히 변치 않기 때문에 생각할 필요도 없지만 이제 소망이 되어 있는 이 소망을 실상으로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소망되어 있는 이 소망을 실상으로 만들어야 되겠는데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이는 것을 누가 소망하겠습니까? 보이는 거는 이미 현실이 됐는데 소망은 미래에 속했다 말이오.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아 기다릴지니라" 그러면 우리가 소망하는 이 소망을 실상으로 만드는 방법이 뭐입니까? 보이는 모두 우리가 소망하는 거, 바라보는 거, 이와같이' 되기를 원하고 이렇게 될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는 그 모든 희망을 실상으로 만드는 그 방편이 뭐이라고 성경에 기록했지요? 네? 믿음은 모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믿음은 모든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 믿음이라 그말이오. 믿음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행하면 그것이 믿음 아닙니까?

그런데 여게, 여러분들이 단절적으로는 이래 하지만 여게서 깨달을 것은 뭐이 깨달을 것이냐? 우리 구원 이것을 자꾸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에누리를 합니다. 에누리를 하기 때문에 우리 구원 이것을 불교에는 불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해 놨고 유교에도 해 놨고 모든 종교 단체라 하는 것은 다 이와 같은 비슷한 말들을 해 놨고 또 심지어 뭐 돌팔이 미신들도 다 이와같은 말들을 다 합니다.

이러니까 기독교에서 말하는 소망이나 이 모든 구원도 다 그런 종류와 같다 이렇게 보도록 마귀란 놈이 해 가지고 그런 것들을 많이 주장 세워 놓은 것입니다.

이러니까, OOO이라는 사람은 그 사람은 처음부터 그렇게 큰 사람은 아닌데 그 사람이 점점 마귀가 거머쥐고 쓰니까 큰 사람이 돼서 아주 세계적으로 굉장합니다. 그 사람을 다 잘못됐다고 매장할라고 달라들었다가는 그 사람한테 물려서 항복을 했습니다. 왜? 마귀 세력도 상당히 큽니다. 돈이 많지 또 세상 것이 다 제것이니까 권력이 있지 이러니까 OOO씨 같은 그 사람도 아주 뭐 많이 떠들어 쌓았지만 OOO이한테 당했다가서 나중에 사과문까지 써냈습니다. 그랬지? 그런 신문 못 봤나? 그런 것도 좀 알아야 돼.

OOO씨는 `다 모두 종교마다 다 그렇게 자기네들 자랑하고 다 그런 말은 다 해 놨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불교를 많이 주장합니다. OO신문이라는 것이 내나 OOO씨가 내는 신문인데 그 신문에 보면 언제든지 불교 것을 많이 실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뭐 스님 숭님 승님 이래 가지고 그 불교를 아주 칭찬을 하고 불교에 대해서, 일체 할라고, 그 사람의 목적은 어디 있는고 하니 종교 통일 `모든 종교는 하나다, 별게 뭐 있노?' 종교 통일을 할라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뭐 기독교에서는 또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지만 너거들이 다 모두 무식해서 그렇지 광문 다학을 해 봐라, 넓게 듣고 많은 것을 읽고 배워 봐라.

종교마다 꼭 기독교와 같은 그건 모두 사죄의 법도 있고 칭의의 법도 있고 다 영원한 소망도 있고 또 속죄하는 일도 있고 다 믿음도 있고 다 있다. 너거 공연히 기독교인들은 우물 안에 든 개구리와 같이 기독교에만 보고 이거 우리만 이럴다 이래 가지고 하지만 다른 종교 가 봐라. 다 그렇다. 이러기 때문에 종교는 다 한가지이니까 출발점이 다르지 마지막에 가 보면 종착점은 다 하나다. 이러니까 뭐 그럴 거까지 싶고 너거가 조부라운 생각가지지 말고 종교 통일을 하도록 해라.

이것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이 OOO씨입니다.

그러나 다른 이종교에 `내가 천지를 창조했다.' `내가 천지를 창조 다.' `천지를 내가 이렇게 멸하고 이래 한다.' 그 주권적으로 그런 말까지는 이종교에서 못 했습니다. 그것도 또 기록할 수 있어. 하면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건 말은 안 했습니다.

불교에서 석가모니가 내가 천지를 창조했다. 그따위 소리는 하지 안했습니다. 안 하지만 앞으로는 또 그것도 또 인제 자꾸 그래 가지고 거게 따르는 사람들이 천지도 모르고 무책임하고 그라기 때문에 `우리 부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 모든 거 했다,' 이렇게도 또 이제 불교에도 자꾸 말할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옛날 불경에는 없는데 새 불경에서는 그와 같은 말들을 자꾸 기록해 내고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에 이 구원을 말을 해도 그런 것을 많이 듣고 본 사람들은 `다 하는데 뭐 같은 그것이지' 이래 보니까 이 말씀에 대해서 참 깨달음을 가지지 못한다 그말이오. 요번에 깨달음 몇 가지 배웠어요? 다섯 가지 배웠어요. 다섯 가지 그 깨달음을 가지지를 못합니다.

그런 걸 가리켜서 씨 뿌리는 비유에서 뭐 어디다가 뿌런 씨라고 말했습니까? 길가 뿌린 씨. 길가 뿌린 씨가 그걸 말하는 것인데 길가 뿌린 씨에 해석이라 하는, 그 뜻의 바른 해석이라 하는 것이 그것이 듣는 사람들이 그렇지만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 그게. 그게 언제 거게 대해서 대구 집회에서 여러 시간을 말했는데, 길가 뿌린 씨라 하는 그것이 땅 위에 있는 모든 그 지식들에게 밟혔다 하는 것을 말했는데 그거 알아 듣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이렇게 모두다 공부 많이 하면 좋은 줄 알아도 삐뚤어진 지식을 많이 가지니까 옳은 지식을 가지기가 힘이 듭니다. 이래서 처음에는 공부 그것을 할 때에 주일 학생이 교회서 배운 것을 큰 걸로 알았지만 학교 들어가고 난 다음에는 차차 학교 것을 큰 걸로 알고, 그거는 안 하면 안 되는 줄로 알고 부모네들도 막 안 하면 안 될 줄로 알고 있고 저도 또 보니까 온 세계에 하교가 다 있고 이러니까 그게 큰 줄 알지 교회에서 이래 가르치는 그런 거는 시시하게 여깁니다.

이러니까, 나중에 배운 그 지식이 차차차차 무엇이 됩니까? 그 지식을 가리켜 뭐라 했어? 배운 그 지식들을 가리켜서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성경에? `음행의 포도주' 음행의 포도주라 했다 그말이오. 음행의 포도주. 음행의 포도주라는 포도주 먹여 가지고 그만 음행 하게 만든다 그말이오.

포도주를 먹여 가지고 음행하게 만드는데 음행이라 하는 것은 누구하고 음행합니까? 음행하는 것은 세상하고 음행하게 만든다 그말이오. 세상을 호세아서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간부라 말했습니다. 간부.

그러면, 음행을 했으면 그 본남편은 누군데 본남편을 배반하고 간부하고 음행케 만듭니까? 본남편은 누구지요? 하나님이 우리 본 남편이라 말이오. 본남편이라 하면 이 관념들이, 부부라 하면 꼭 남녀 이성 암컷 수컷이 이래 합해 가지고 암컷 수컷 이거 교미하는 이것만 꽉 배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만 이거 하나님은 본남편이라 하면 '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라면 동침을 하는가? 또 우리가 하나님의 아내가 되는 가' 이러니까 남자들은, 깨닫지 못하는 남자들은, 지금은 요새 그분이 안 오는데 아마 혹 배 타고 나갔는가? 그 설교를 하면 그만 눈꼬리가 그만 찢어져 올라갑니다.

그만 '야 이거 잘못하면 아내 뺏기겠다' 싶어서 그까짓 놈의 아내는 하나님께서 억억만 명 줘도 보기도 싫고 더러워서 보지도 안 합니다. 그런 것은.

속에 하나님을 향하는 참된 인격 그것만을 바라지 그까짓 거 고기 덩어리 짐승 모양으로 교미하면 새끼 낳고 또 저거 정욕 만족하는 그까짓 거 그것을 하나님은 상대하지 안하고 그런 걸 다 죽여 버리라 했습니다. 없애 버리라 했어. 땅의 지체를 죽이라, 골로새서 3장에,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각종의 모든 더러운 정욕들 그런 걸 죽이라 그랬다 말이오. 이거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생각해.

이렇게, 모든 이종교들도 이렇고 하니까 이 기독교 이렇게 말해도 이 말을 거짓말로 알고 세상에 있는 말과 다 같은 말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분한 게 제일 뭐이냐? 당신이 말씀해 놓으신 이 말씀 당신이 하시는 일을, 당신으로 인해서 생겨졌고 당신의 것 가지고 먹고 살고 당신의 것 가지고 전부 하고 있는 것들이 이것이 당신을 부인한다 말이오. 당신을 부인하는데 그냥 부인하는 것은 상관치 안하지만 하나님이 벌써 불변의 말씀을 내놨는데, 이 말씀을 다 선포해 놨는데 이 말씀을 부인한다 말이오. 말씀을 부인하는 것을 제일 분히 여깁니다.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라, 또 모든 존재에 원인은 이렇다 앞으로 이렇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걸 다 말해 놨지만 아주 이 말씀을, 아주 허투리 듣고 업신여깁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에누리한다, 에누리한다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 인정 한다고 해도 인정할 대로 다 하는 것이 아니고 인정한다고 하는 것이 억만분의 일도 인정을 안 하니까 인정 안 하는 거는 다 에누리 한 거라 그말이오'. 에누리 한 거. 어제 에누리하는 것을 첫 시간에 말했습니다. 이렇게 에누리 하는 거 또 부인하는 거 이것을 제일 분히 여기십니다. 제일 분히 여기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이걸 분히 여기시는 동시에 하나님이 제일 그 기뻐하고 귀해서 `내가 요것은 내가 요 대접을 내가 크게 한번 해 주겠다' 하는 그게 뭐입니까?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고, 모두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천 명 만 명이 부인해서 `안 그렇다' 해도 꼭 자기는 `그렇다 하고 믿는, 하나님의 이 계약에 선포해 놓은 대로 요대로 믿는 사람을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의 하나님이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돈 드린다고 기뻐하겠습니까? 돈 그거 당신의 것이지 돈, 당신의 것이지 당신의 것 아닌 돈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몸으로 헌신하신 것을 기뻐한다. 헌신하면 그 헌신 몸뚱이 그게 뭐입니까?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 다 만들어 놓은 것인데 당신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이 몸을 드리는 거, 생명을 드리는 거, 돈을 드리는 거 수고를 드리는 거, 모든 거 드리는 거, 그 모든 거 드리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과 어느 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어느 것 기뻐하시겠소? 하나님 믿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돈을 가지고 연보를 하는 그 연보 하는 것도, 연보하는 연보가 귀한 것 아닙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연보가 귀한 것 아니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연보하니까 믿는 그것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헌신해서 일하는 것도 일 그거 노동 그게 귀한 게 아니오. 노동력 그거는 하나님께서 일시에 천하 인간을 다 예수 믿구로 만들라면 만들 수 있다 말이오. 막 우르르딱딱 그러면서 공중에서 `너거 예수 안 믿으면 당장 죽는다' 이라면 일시에 다 예수 믿을라 할 것이오. 그렇지 않겠소? 하나님이 하실라 하면, 아, 뇌성으로 막 우르르딱딱 그래 놓으면 모든 사람들 겁이 나 가지고 못 견디는데 `예수 안 믿으면 다 너거 절단난다' 하면 뭐, 한 시간이 뭐이요? 일 분 동안에 다 믿구로 만들 수가 있다 그거요. 이런데 뭐 예수 믿구로 만드는 전도하는 게 큰 줄 압니까? 그게 큰 게 아니야.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믿기 때문에, 믿음으로 하기 때문에, 믿는 걸로 그와같이 하니까 믿는 표라 말이오. 연보하는 것이 믿는 표요, 전도하는 것이 믿는 표요, 헌신하는 것이 믿는 표요, 또 순교하는 것이 믿는 표시요, 믿는 표시기 때문에 표시가 큰 게 아니라 믿는 그거 때문에 하나님이 귀중히 여기시는 요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당신과 당신의 하시는 모든 것을 믿고 인정하고 그대로 상대해서 인정하는 행동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인정하는 행동하는 걸 기뻐하시는데 그러면 행동을 기뻐합니까 인정을 기뻐합니까? 인정을 기뻐하고 행동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인정하는 표시가 행동으로 되기 때문에 이제 인정을 기뻐함으로써 그 행동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거 인제, 이번에 끝절까지 봤으니까 자꾸 가서 읽어요. 여러 수백 번 읽어요. 읽어 가지고 여러분들이 인제 읽으면 뜻을 깨닫게 된다 그말이오.

여러분들이 성경을 안 배운 걸 가서 읽으면 그것은 좀 알기가 어려우니까 안 배운 성경을 읽을 때에는 그렇게 읽으면 돼요. 요번에 대구 가서 말했지만 안 배운 성경을 읽을 때에 `이 성경이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는가? 아, 요거는 해야 되겠다. 또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는가? 요거는 안 해야 되겠다.'성경을 읽으면서 해야 될 것과 안 해야 될 것을 그것을 찾을라고 하면, 아무리 무식해도 제대로에, 제대로, 제 나름대로 해야 된다는 것도 알게 되고 하지 말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거요.

그러면 그대로 해야 되고 안 해야 되는데 과거를 살펴봅니다. '그러면 내가 하라는 것을 허나,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했나? 하라는 것을 안 한 게 있구나.

하지 말라는 것을 한 일이 있구나.' 고게 뭐이냐 하면 회개입니다. 고게 회개라 그말이오.그러면 또 앞으로 `앞으로 내가 어째야 되겠느냐? 요거 하라 하는 걸 해야 되겠다. 하지 말라는 걸 안 해야 되겠다.' 그것이 또 현실에 실행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또 자기가 그렇게 하면서도 자기는 힘이 없으니까 주님에게 '주여 앞으로 요걸 이렇게 하라는 걸 다 하고 하지 말라는 걸 안 하고 요것을 해야 되겠는데 요거 할 힘이 나에게 없으니까 할 힘을 주시고 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게 또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 말이오. 아무나 따나 중얼중얼 기도하는 거 기뻐할 줄 압니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그걸 `내가 과거에 요걸 못 했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지금 하기를 내가 원하고 할라고 하는데 나에게 힘이 적으니까 요 일을 하도록 해 주십시오.' 그거 할라고 애를 아당아당 쓰는 그거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고 예쁘다 그말이오. 또, 안 할 걸 한 것은 안 할라고 애를 쓰고 요거 안 하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꾸 요라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예쁘다 말이오.

아름답다 그말이오. 그것이 다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이제 그렇게 한 거,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말씀하신 하라는 것 중에 작은 거 하나 말했는데, 하라는 것 중에 이 물이 꽉 찼지 안 해요, 뭐? 물을 데울라 하면 힘이 들지만 찬물 그거야, 냉수라 말이오. 냉수는, 뜨신 물 떠 주기가 쉬워요 냉수 퍼 주기가 쉬워요 어떤 게 쉬워요? 냉수 퍼 주기가 쉽잖아? 물 데울라 하면 힘들지만.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하나님이 `냉수 떠 줘라' 하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의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하늘나라에서 결단코 상을 잃지 않고 상을 준다 이렇게 말씀했어.

이러니까,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하는 거, 그러면 성경을 읽을 때에 요 두 가지를 두 가지를 보고, 과거에 이 두 가지를 했나 못 했나, 못 한 것은 반성하면서 사과하고 앞으로 할라고 결심하고 이렇게 성경을 보면 성경, 보면 다 압니다. 성경 보면 그 성경마다 성경을 바로 깨달을 수가 있어요. 이렇게, 성경을 배우지 안하고 이렇게 이 방식으로 성경을 연구한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이러니까, 성경을 자꾸 보고, 나는 하나님이 그런 은혜를 주셨어 이거 할거냐 안 할 것이냐? 두 가지로 보고, 안 할 거 할 거 이랬는데, 이걸, 안 할걸 말하니까, 성경에 하지 말라는 거 `이거는 안 해야 된다' 하는 것을 말하니까 마구 OO신학교에서 `그거 틀렸다' 이래 가지고 야단을 지기는데 '성경에 이거는 하지 말라랬는데' 이라니까 그때는 모르니까 어떨떨해 `아이고 그런데는 높은 모두 박사들이 있고 높은 지식들이 있는데 거기서 안 된다 하는 거 보니까 아마 안 됐는가?' 이래도 또 성경 보면 `아니다. 이래 했는데' 그래 가지고, 자꾸 이러니까 대립이 되지지만 나중에, 대립 됐다가 나중에 심히 살펴 보니까 옳다는 확신 가지고 또 거기서도 나중에, `그게 옳다' 긍정이 돼 지고. 례 낸 싸워 봤다, 몇 번 대립해 보니까 `이게 옳다!' 이라니까 그 다음부터는 용기가 있어. 성경에 자꾸 상고해서 성경에 꼭 맞은 것이면 담대히 말합니다. 박사가 말하거나 뭐 천하가 말해도 `이렇다' 주장을 한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을 뭐 세계에서 야단을 지기고 전국이 야단을 지기고 박사들이 다 야단을 지기지만 눈도 꼼짝거리지 안하고, 불쌍하다 그거 어짜든지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나 할 일이지 겁이 나 가지고 그 협박에 떨어지지를 지금 안 한다 그말이오. 상당히 담대해졌습니다. 이러나, 그래 보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예를 들어서 로마서 8장 18절로부터 39절까지는 여러 번 읽었고 해석을 대강 해서 어려운 것을 다 말해 줬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꾸 읽어 가지고 요것이 자기가 돼야 돼요. 자기 지식이 돼야 되고 자기 행위가 돼야 되고 자기 자체가 돼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하나씩 자꾸 돼 나가야 되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니까 배운 그것을 자꾸 이렇게 복습하고 또 자기가 그대로 살아 보고 이라면 자꾸 이제, 익히고 또 자기가 실지로 생활해 보면 경험의 지식이 되고 체험의 지식이 돼 가지고 나중에는 자기 주관 지식이 돼 버리고 자기 지식이 되고 자기가 그만 그 사람, 하나님과 같은 꼭 같은 지식을 꼭 같은 사상을, 꼭 같은 사람이 돼 가지고 있으니까 이제 타율이 아니라 그만, 제 법이 돼 버리고 말아. 자율이 되고 말아요.

이런데, 그 하나 하나 여게 된 것이 이것이 다, 이런데는 아주 난해절입니다.

이게 난해절들이 많아서. 이러나, 그걸 다 말해 줬다 말이오. 말해 줬으니까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여기 18절에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얻을 영광을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하는 이 말을 어제도 몇 번이나 말을 했는데,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 우리에게 고난을 주는 것이 몇 가지가 고난을 주고 있습니까? 봐, 이 집사님, 요런 걸 똑똑히 알아야 돼. 믿기는 잘 믿고 열심 있고 이런데 요런 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성경을 알라고 생각지 안하고 자꾸 기도에 많이 들어가다 보면 불건전한 신비주의로서 여기 OOO씨 그런 사람 되기 쉽고 나중에 탈선돼서 또, 그와같은 사람들 많아요.

성경 모르고 자꾸 기도만 이래 하는데 기도만 하게 되면 나중에 가서 뭣 된다 했지요? 신비주의는 좋은 겁니다. 그냥 '신비주의' 하면 안 돼. `불건전한 신비주의' 신비주의야 좋지요. 좋은데 `불건전한 신비주의' 바르지 않는 삐뚤어진 신비주의라 말이오. 신비주의는 참 신비주의는 하나님께 피동으로 사는 것이 신비주의인데 이제 불건전한 신비주의는 하나님께 피동이라 하면서 자기 주관을 하나님인 줄 알고 자기 생각에 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그와같이 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런 사람 되기 쉽습니다.

뭐 어떤 여자, OO씨는 날 하나님이라 하면서 자꾸 소문을 내고 돌아다닌다 말이오. 온 전국에 갔어요. OOO목사님한테 갔었는데 거기 가서 뭐라 했든지 그때 와 가지고 좀 실쭉한데 좀 고쳤는가 하니까 내나 그 뒤에 물어 보니까 그렇대요.

다른 사람한테 물어 보니까. `나 할 말하고 다니는데 나는 이 말 하다가 죽는 것이 나 할 사명인 줄 알고' 그말 한대요. 내가 예수라고, 내가 인제 재림할 예수라고 그래. `너거가 몰라서 그렇지 실은 재림할 예수님이시다, 그는 하나님이시다,' 자꾸 이렇게 하고 돌아다녀요, 돌아다니기를.

이러니까, 나는 지금 거게 대해서 뭘 지금 생각하고 있느냐? 내가 자칭 하나님이라는 자인가보다. 내가 저 아래에도 또 그걸 또 생각했어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는 자이니, 인간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되는데 자기 중심으로 사는 그게, 자기 중심으로 사는 그것이 하나님 된 것 아닌가? 이래서, `우리중 하나'와 같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는데 내가 아직까지 내 중심이라는 것이 다 뽑혀 나가지 안하고 그런 요소가 내게 있기 때문에 그래 하는가보다, 저 여인이 저래 하는 것은 내 중심, 백 목사가 순전히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의 사람으로 완전히,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사람은 죽어서 공동 묘지에 매장한 거와 같이 그렇게 싹 죽어 버리고, 죽은 송장이 다시 일어납니까? 완전히 죽어서 뒤에 일어날 수 없도록까지 죽고 이제 완전히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내가 사람이 돼야 될 터인데 이게 아직까지 미완성이기 때문에 지금 그렇게 하는가 것인가보다.

그래 나는 지금 그 면에 대해서 기도하고 그 면에 대해서 아래도 산에서 몇 시간 동안 심해서. `내 중심이 아직까지 속에 있는가보다' 내 중심 뭐이냐? 그런 것이 없으면 내 중심 내 위주라 하는 것은 전혀 없다고 내가 생각하는 건데 그게 있으니까 그런 게 있는가 해서 반성도 하고 고칠라고 또, 그런 게 있으면 뽑아 달라고 기도도 하고 그렇게 한다 그거요.

뭐이든지 미치괭이든지 무슨 말이 있을 때에는 `우리에게 저것도 자연 계시라' 자연 계시인 줄 알고 회개하는 사람이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또 그래 생각했어. `이거 나만 우상이 아니고 우리 서부교인들이 예수 믿는다 해도 전부 제가 다 하나님이다. 전부 자기 중심의 인간들이다.' 나만 아니라 나한테 지금 이와같이 말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서부교회 장년반, 유치반, 중간반 전부 모조리 다 우상이라 제가 하나님이 돼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에서 전적 회개하지 안 하면 안 된다 하는 그것을 내가 강단에서 여러 번 내가 외쳤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런 것도, 성경은 아니지만 자연 계시로 보니까 내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

나는 6.25 때 좋은 자연 계시 받은 것은 OO목사가 나하고 함께 사면서 그때 조그만하이 요만할 때인데, 같이 자니까 오줌을 싸서 내 옷에 오줌이 젖었다 말이오. 그런데 그날, 주일날 아침인데, 뭐이냐? 저 위천에 있을 때인데, 위천에, 인민군들이 나를 죽일라고 몇 번이나 하다가서 이제 내일은 인민 재판이다.

내일은 인민 재판 해 가지고 첫째로, 뭐 그때 주임, 지서 주임을 첫째로 죽이고 둘째 이호가 내라 말이오. 내가 이호인데 인민 재판 한다고 이라니까 기별이 들어와서 내일은 지금 인민 재판을 하는데 백 조사가 내일은 다 사형받을 날이니까 함부레 오지 말라 하라고.

그래서, 내가 농산교회 그때, 뭐 교인들이 오라고 쌓아서 내가 잠깐 갔었는데 그 기별이 그래 왔어요. 제 아내가, 뭐 그때는 다른 사람은 오지도 못해. 다른 사람은, 가다가 `너 뭐하러 가지?' 하면 이거 그만, 잡히면 거석할 거고, 겹이 나 가지고 꼼짝을 못 해요. 왔어. 와 가지고, 이렇고 이러니까 내일은 온 교인들이 다 안 오는 것이 좋다 하니까 내일은 오지 말고 여기서 예배를 보도록 하라고. 내일 그들이 인민 재판 날로 내일을 결정을 해 가지고 그러니까 그렇다고 그렇게 말을 해요.

이래서, 그래 인제 농산교회도 자꾸 만류를 해 쌓고 이래서 그러면 농산교회에서 내일 주일은 예배 보자 하고 거기 드러누워 잤다 말이오.

드러누워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오줌을 싸서 내 옷에, 옷이 좀 젖었어.

그게 오줌이면 그거 썩은 거 아닙니까? 오줌은 배설물 아니요? 이러니까 그 배설물이 내게 대해서 그걸 내가 가만히 `이거 뭐 때문에 오줌이 내 옷에 이와같이 젖었는고? 아, 내가 오늘 여게 있으면 부패해져 썩는다. 내가 여게 있으면 썩으니까 안 썩을라면 본교회로 돌아가야 된다.' 요걸 깨달으니까 뭐 그때부터 나서 가지고 막 달음질을 쳤습니다. 달음질을 치니까 예배 십 오분 전이요, 전에 위천교회 도달했어. 가 가지고, 가니까 다른 사람들이 막 놀래면서 야단을 쳐. `어짤라고? 오는 절 아무도 안 봤습니까?' 막 벌벌벌 떨어 죽어.

그런데, 그래서 그만 얼른 그만 그대로, 말 듣다 보면 안 되겠다 싶어서 그만 쫓아 강단으로 뛰어올라갔습니다.

밑에서는 있으니까 `오늘 죽는다' 안 죽을라 하니까 두려워 못 견디겠고 이제 뭐 죽자 하니까 또 담대해지고 강단에 올라가니까 두려움이 하나도 없어. 그만 거기 올라가 가지고 십 오분 동안 준비 기도하고 그날 그 강단에 은혜가 굉장했습니다.

굉장하고 인민군이고 뭐 그까짓 거 다 모두 그것이 참 먼지같이 보이고 뭐 아무것도 아닌 걸로, 그래 가지고 그 날 그 강단에서 큰 은혜가 있었다 그말이오.

나는 그게 자연 계시인 걸, 오줌 젖는 그게 썩는 것으로 알려 줬기 때문에 내가 그 자연 계시를 그것을 '무시 안 했기 때문에 됐어.

이걸 내가 늘 신앙의, 그뿐 아니라 다른 것도 그리 경험했기 때문에 OOO씨가 하나님이라 하는 그것도 저거 자연 계시다. 그냥, 그렇다 고 뭐, 이렇게만 자꾸 말 하면서 속에는 장 양심에 `저게 자연 계시인데 내게 뭐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저래 하지' 이래 나는 보고 지금 그것을 그래 이 발견하고 자꾸 이라니까 `아마 내가 차차차차 이게 없어지면 저 여인이 없어질 거 아닌가?' 또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을 자꾸 이거 자기 중심으로 사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사는 요 원죄,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무슨 죄입니까, 그거? 죄 이름이 뭐이요? 원죄라 말이오.

원죄 이놈을 아무래도 회개를 하도록 자꾸 외쳐야 되겠다. 외쳐서 엔간이 외쳤으면 인제 주님이 됐다 싶으면 그 사람도 고쳐줄 것이라 그거요.

제게 조금 비위에 서끌리면 막 `확' 그렇습니다. 주님에게 거슬리면 확 그러는 게 아니라 제 중심에 걸리면 확 그래. 그게 예수 믿는 것이요 그게 이 세상에 다 장로들이요 다 목사들이요 잘난 사람 들고 다 그래. 잘난 사람들은 저 옛사람 그놈을 슬슬 추켜 올리며 자꾸 이래 해야 되지 옛사람 그놈 자기 중심 자기 위주에게 조그매라도 걸렸다가는 `꽝' 그란다 말이오. `꽝' 그래. 알겠어요? 자기 중심 자기 위주에 조금만 삐뚤어지면 그만 눈 꼼짝이, 그거 뭐꼬? 눈꼬랭이가? 여기 그 뭐꼬? 사람의 인형 만들어 놓은 거 조그만한 거? 인형 만들어 놓은 거 그거 내가 그거, 그걸 그랬더만 막 이 큰걸 사 가지고 왔어요.

인형 만들어 놓은 거, 세 가지 있는 거. 삐쭉하이 삐꾸고 또 시기하고 또 뭐 얄궂게 또 좋아서 또 웃고 하는 거 그런 거 가지고 해 놨는데. 그거 모양으로 그만 꼭 그래요, 그만. 눈 꼬리가 그만 삐쭉하이 삐쭉 그만 돌아가 버립니다.

그거 보면 알아. 어북 잘 믿는다 하는 사람들도 이래 보면 그만 그걸 몰라 그렇지 그걸 요긴하게 고놈을 꼭 찔려 버리면 삐쭉하게 그만 돌아가 버려. 그게 자기 중심이거 든. 자기 위주거든. 이거 다 회개해야 돼요.

이렇게 자연 계시를 이걸 헛되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OOO이는 나는 그래서,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이 지금 나를 깨우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내 손에 못자국이 있다. 내가 지금 함께 못 박힌 사람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못자국이 내게 있는 걸 온 교인은 오른다.' 자기가 또 편지를 써서 이렇게, 이렇게 편지를 신고함에 써 보냈어.

편지를 그때 장서를 해 가지고, 그 편지 쓴 것을 누가 지금 가지고 있나요? OOO조사님 어디 있노, 손들어 봐. 편지 가지고 있나, 지금? 편지 가지고 있고, 그 편지 거기도 이만침 가지고 있어요. 할 수 없이 이제, 이걸 말하면 안 들으니까 `편지를 봐라' 그 사람 편지를 보라 했어. OOO조사님도 거게 물이 들어서 한참 마귀놀음 했다 그말이오. 그거 내가 된지를 줬어. `이 편지 봐라 자꾸 `편지 봐라' 이거는 어짤 수 없는 거라. 이거 뭐, 내야 암만 듣거나 말거나 나 괜찮으면 괜찮지만 사람을 살리는 데는 그거 안 그럴 수가 없다 그거야.

이래서 또 저 O집사. 예수 잘 믿는데 O집사 또 이 OO씨한테 걸려 가지고 그런 걸, 자꾸 말해도 그때는 OO씨가 선지자라 하나님이라 막 이래 가지고 이 달라드는데 이거 말해야 변명이나 해야 소용 있어야지? 그래도 잘 순종은 해요.

그래 내가 편지를 보였어. 편지를 한 움큼 된 걸 `이 신고함에 이런 편지를 했으니 이 편지를 봐라' 편지보고 오더니만 `아이구 참 비정상의 사람입니다.

아닙니다.' 그때 끊었어요. 끊고 난 다음에 예수를 잘 믿습니다. OOO집사도 또 그래 가지고 아마 OO씨 만났지. OO씨 만나니까 떡 OO씨가 있다가서 `이는 참말로 내가 보니까 서부교회 가운데 제일 잘 믿는 사람을 내가 하나 만났다. 참 성녀를 만났다.' 이래 성녀 만났다고 막 되게 칭찬하지? 그래 놓으니까 또 저 O집사는 또 좋아서, 저 칭찬하니까 좋아서 또 OO씨 하고 또 한참 우쭐거리고 또 예언하느라고 야단이었습니다. 예언하느라고. 3일 동안 그랬어? 3일 동안 예언하느라고, 자기 속에 이러면 `음' 그래 가지고 `아.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한다.' 또 `음' 또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한다' 이런 짓을 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목회할라 하면 별별 일이 다 있어. 다 있으니까.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안 돼. 이래서, 마태복음 23장에 이제, 모세의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서기관과 제사장들의 가르치는 것은 너희들이 받고 그대로 실행을 해라. 그러나 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네가 이러니 저러니 하는 그것을 보지 말아라. 가르침만 받으라고 이렇게 말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가르친 진리만 배워야 되지 다른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날이면 큰일나요.

만일 내가 그런데도 안 가지만 술집에 만일, 술집이라고 전도 안 할 수가 있소? 술집에 전도하러 가면 반드시 말하기를 `아, 아무 집에 가서 술 먹더라.' 이런 말이 나면 다른 사람은 그 말들을 때에, '그 목사님이 아무 술집에서 나오데. 그래 술 먹었구나.' 이 마귀란 놈은 백방으로 터무니 없는 말로도 꼬와 가지고 이렇게 하니까 이 마귀에 거짓말쟁이 궤휼을 알아야 되지 그거 모르면 다 넘어간다 그거요.

이제 시간 지나갔는데 하나만 더 말하고 말겠습니다.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 없다' 그러면 지금 이 고난을, 고난은 서로 대립이 되기 때문에 고난이 되지만 하나가 되면 고난이 안 돼요. 그렇지 안해요? 하나가 되면 고난이 안 되는데 대립돼서 고난이 되는데 대립되는 것이 몇 종류와 대립이 돼 가지고 있습니까? 네, 두 종류와 대립입니다. 이거는, 타락한 천사와 타락한 인간 요 두 종류에만 대립이 됩니다.

그러면 두 종류에 대립되는 것이 큽니까? 억억억억억억억만에 대립되는 것이 큽니까?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가 이 두 가지와 대립이 되는 이 행위하는 거, 이 두 가지와 대립된 이 생활을 하는 것은, 대립 안 되고 일치된 것은, 둘과 대립이 되고, 두 종류와 대립이 되고, 서로 하나되는 일치된 것은 몇 개나 됩니까? 대립되는 거는 둘, 또 하나되는 것은 몇 개나 되지? 그러면 둘 외에는? 몇이나 되는고 한번 헤아려 보지. 하나님도 하나되지, 진리도 하나되어 있지, 모든 영계 천군 천사들도 하나되어 있지, 땅위에 만물들도 하나되어 있지 모든 전부 피조물이 다 하나되어 있고 둘 대립된 그것을 네가 어려워하지만 둘 대립된 그것이 전체와 하나된 그 증거이니까 전체가 하나되어서 환영받는 것과 둘에 대립되는 거와 이 비교하면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대립이, 될 때에, 이와같이 지금 죄와 대립이 되고 있으니, 죄와 대립이 됐으니 나는 의에 속했으니까, 내가 만일 죄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 의와 대렴이 되면 어쩌 되겠습니까? 이랬는데 이제 모든 삐뚤어진 거와 대립된 옳은 편에 섰으니까 내가 이걸 깨달으면 얼마나 영광이요, `주여 감사합니다.' 대립된 그게 불행으로 생각하겠소 대립된 것이 다행 중에 다행으로 생각해야 되겠소? 자, 불행으로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다행 중에 다행으로 생각되는 사람들 손들어 봐요. 이것을 우리가 알고 살아야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자꾸 생각하면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이 둘과, 변질된 둘과 대립되는 것은 변질되지 안한, 하나님과 창조의 모든 거와 나와 하나가 되니까 그 영광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네가 둘과 대립이 돼도 그때 변질되지 안하고, 둘과 대립이 돼도 변질되지 안하고 둘에게 뚜드려 맞아도 변질되지 안하고 네가 이렇게 이 옳은 걸 지키고 지켰기 때문에 만물들이 다 우리가 구원 얻었고 우리가 살았다' 이라니까, 예수님이 죽기까지 해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셨으니까 감사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불의와 대립이 돼도 양보하지 안하고 이와같이 지켜 나감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들이 구원 얻게 되니까 그 피조물들의 환영식과 찬양식이 있을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장차 받을 영광을 족히 비교 못 한다 그말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옳은 것이면 시작하면 놓치지 말아요. 그래야 그게 사람입니다. 계속성 없으면 성공 못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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