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총애받는 방편

 

1983. 5. 18. 수야.

 

본문 : 요한복음 15장 1절∼14절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들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한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다음 주일 주일학교 공과가 이 말씀이 공과가 될 건데 제가 공과를 작성을 못  했습니다. 오늘밤에 반사 선생님들은 잘 듣고 기억하시고 그러면 제가 내일  공과를 작성해서 금요일날 밤에 나눠 드리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잘  들은 사람은 공과 공부는 뭐 자기가 익히기만 하면 되지 다 깨닫게 되기는 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진리만 잘 깨달으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라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라, 하나님 아버지는 지금 하나님으로 일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라 이렇게 말했고, 또 예수님은 구속의 일을 지금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또 예수님이시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포도원 이 농부라 했는데 이 포도원에는 포도나무가 여러 주가 있는 그런  포도원이 아닙니다 이 비유로 이렇게 하셨기 때문에 포도나무와 포도나무 가지와  또 포도나무 주인인 하나님 아버지와 그 관계가 어떻다 하는 것을 비유로  가르치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것뿐이지, 포도원에는 포도나무가 여러 수십 주가  있어야 포도원이지 한 주만 가지고는 포도원이라고 하지 안하는데 여기에 이  포도원은 '아버지는 그 농부라 이래 놨지 포도원이라 말 안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기에서 포도나무는 예수님 혼자뿐이시요, 포도나무는 예수님  혼자뿐이시요 또 모든 성도들은 포도나무 가지로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포도원 농부인 하나님 아버지가 당신의 소유 전부, 또 능력 전부, 노력 전부를  기울이시는 것이 포도나무에 기울이십니다. 그런데 포도나무에 대고  기울이시는데 포도나무는 한 주지마는 가지는 많습니다.

 포도나무에는 하나님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기울이시지마는 포도나무에  기울이시는 그 하나님의 모든 소유, 능력, 노력 전부를 기울이시는 그  기울이심을 개인이 받는 데는 과실을 맺어야 개인이 받을 수 있고 또 그 가정이  받으려면 가정이 과실을 맺어야 가정이 받을 수 있고, 또 그 교회가 이 은총을  받으려면 그 교회가 과실을 맺어야 됩니다. 만일 과실을 맺지 안하면 그 은혜만  못 받을 게 아니라 찍어 버려버린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아버지에게  버림을 당하게 됩 니다.

 그러면 여기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그 은혜를 다 받으려고 하면 과실을  맺어야 된다. 예수님은 과실을 잘 맺었습니다. 예수님은 과실을 잘 맺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계속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그 총 은총을 계속 입게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농부라' 이랬는데 그다음에는 말하기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셨다' 이랬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셨다' 그러면  농부된 하나님 아버지가 있는 소유와, 그 무한한 능력과, 참 엿새 동안에 우주를  지으신 그 권위 있는 노력, 그 노력 전부를 포도나무인 예수님에게 기울였는데  그 밑에 9절에는 말하기를 이것이 아버지의 총애라, 아버지의 사랑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가 이렇게 있는 소유 전부, 능력 전부, 노력 전부를  예수님에게 기울이신 그것을 가리켜서 '아버지가 나를 사랑 하셨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그다음에는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가 모든 소유와, 모든 능력과, 모든 노력을 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에게 기울이셔서 주를 사랑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받아서 예수님이 다 받으셨습니다. 다  기울인 것을 다 받으셔서 예수님이 그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지금은 하나님 아버지가 가지신 그것을 예수님이 다 가지게 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는 아무것도 안 가지고 계시는가? 하나님 아버지의 가지신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예수님의 것이 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모든 영계나 물질계에 있는 모든 소유는  아버지와 예수님의 것이 됐습니다. 또 모든 능력도 아버지와 예수님의 능력이 돼  버렸습니다. 또 모든 그 노력도 아버지와 예수님의 노력이 하나입니다. 아버지의  노력이 예수님의 노력이요 예수님의 노력이 아버지의 노력이요 이제 그 노력이  하나가 됐습니다.

 그랬는데, 그러면 농부된 아버지가 모든 소유와 능력과 노력을 다 기울여서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위해서 전부를 애낌없이 싹 다 기울인 그것을 9절에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9절에는 이렇게 위에 농부가 포도나무를 위해서 모든 전부를  다 기울이시는 이 농부의 하는 일을 9절에 가서는 그것이 아버지가 주님을  사랑하신 것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요걸 똑똑히 잡아야 됩니다. 사랑하신  것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아버지가 그 모든 것을 주님에게 기울인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사랑하신 것이요 이제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가 주님을 사랑 하셔서 그 모든  것을 기울이신 그대로 이제는 주님이 그 모든 것을 다 이 택자들을 위해서  기울이신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 것같이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였으니'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대해서 사랑을 베푸신, 그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기울이신 그 사랑을 베푸신 그와 같이 이제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가 모든 것 다 예수님에게 기울여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같이 이제는 예수님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걸 당신이 다 가지게 됐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모든 소유와, 모든 능력과, 모든 노력을 다 우리 믿는 사람을  위해서 기울이신다 그렇게 성경에 약속을 해 놨습니다.

 기울이시는데, 예수님이 그 기울이심을 받은 것이 어떻게 해서 받았느냐?  과실을 충만히 맺었기 때문에 받았습니다. 그 사랑을 어떻게 받으셨느냐? 그  계명을 지킴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모든 걸 다 기울이신 것이 이것이 사랑이다 하는 그걸, 위에는  '농부가 있는 걸 다 포도나무를 위해서 기울이셨다' 이것을 농부로 말했고  그다음에 9절에는 이것이 포도나무를 사랑한 것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농부가 포도나무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기울이신 농부다' 농부로  비유했고, 그다음에는 더 구체적으로 해석하기를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셨다'  그와 같이 아들은 또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셨다 이랬습니다.

 이랬는데, 그러면 위에서 농부에게 그 모든 것을 기울이심을, 모든 것을  기울이심을 받는 것이 그것이 9절에는 사랑을 받는 건데, 그러면 농부되신  아버지가 모든 것을 기울이시는 그 기울여 주심을 받는 그것이 9절에는 사랑을  받는 건데, 사랑을 받는 것.

 농부가 기울이시는 것을 받으려고 하면 열매를 맺어야 받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열매를 안 맺으면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만일 열매를 안  맺었다고 하면 그 사랑은 하나도 못 받고 끊김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농부의 기울임을 받았습니다. 그랬는데  그다음에 사랑에 대해서는 또 이 사랑을 받을라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해석을  해 놨습니까? 사랑을 받는 데는 뭐라 했지요? '계명을 지켜야 사랑을 받는다'  그래 놨습니다.

 농부의 전부를, 농부가 이 포도나무에 전부를 기울여 주시는 농부로서 기울여  주심을 받는 데는 받는 방편을 가리켜서 과실 맺는 걸 방편이과 그렇게 표시를  했습니다. 또, 그게 내나 사랑인데 그다음에 9절에는 사랑을 받는 데에는 어떻게  받느냐? 사랑을 받는 데는 그 계명을 지켜야 사랑을 받는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을 받았다. 농부의 총애, 농부가 총애를  기울이는 그 총애를 받는 데에는 과실을 많이 맺어서 받았는데 그 총애를 받을  때에는 그 계명을 지켜서 받았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위에는 농부의 총애를 받는 데에는 열매 맺어야 된다 그래 말했고, 또  밑에는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데에는 그 계명을 지켜야 된다 또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들을 때에 농부가-첫날 말했는데-농부가 있는 소유 전부,  또 능력 전부, 노력 전부를 다 포도나무를 위해서 기울이 십니다. 기울이는 그  기울임을 받는 데는 열매 맺어야 된다 그렇게 방편을 말해 놨고, 그 밑에는 그  기울임을 받는 그게 뭐이냐? 하나님이 전총애를 기울이시는 그 총애를 받는  것인데 그 총애를 받는 그게, 총애라 말은 사랑 다라 그말이오. 총애를 받는  데에는 계명을 지켜야 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위에는 열매를 맺어야 된다 했고 밑에는 계명을 지켜야 된다 했으니까  이 말이 딴 말이라 말이오. 하나는 열매 맺어야 된다 하고 하나는 계명 지켜야  된다 하고 이랬는데 그 밑에 둘이 둘이 아니라 둘이 하나이다 하는 것을 그 밑에  해석을 했습니다.

 '내 계명은' 계명을 지켜야 총애를 받는데 '내 계명은 다른 것이 아니고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는 것같이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니 라' 그렇게 둘이  아니고 합해서 하나라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자, 예수님 이, 열매를 과실을 많이 맺어야 된다 이랬는데 예수님이  맺은 과실이 뭐입니까? 예수님이 맺은 과실이 뭐입니까? 맺은 과실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밖에는 없습니다. 과실 맺은 게 우리를 사랑하신 것밖에  없어. 또 우리도 과실 맺는 것은 사랑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또 그 계명  지키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서로 사랑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들이 서로 사랑한다.'  또 사랑하는 게 뭐입니까? 사랑하는 것은 그것은, 요한일서 몇 장이지요? 4장  10절. 녜, 다 외우네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냈셨음이니라.'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것인데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라 그렇게 이제 결론을 지워  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주님의 이 사랑을 받는 데는 계명을 지켜야 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은 어떤 게 계명 지키는 것이냐? 계명 지키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속하심같이 이 구속한 그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구속하신 이  구원을 받는 그것이 사랑하는 것이다 하는 것으로 요 결론을 지웠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농부인 하나님 아버지의 총력을, 총력뿐 아니라 전 소유까지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내게 기울이시게 하려면, 내 가정에  기울이시게 하려면, 내 교회에 기울이시게 하려면 뭘 해야 됩니까? 뭘 해야  되지요?  농부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전부를 다 나 위해서 기울여 주시도록 하려고 하면  내가 뭣 해야 됩니까? 열매 맺어야 되지요. 또 우리 가정이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전부를 다 우리 가정을 위해서 기울여 주시도록 하려고 하면 우리  가정이 뭐 해야 됩니까? 저 뒤에도? 뭣 해야 됩니까? 삼층에? 똑똑히 알아야  돼요. 이래 하면 막 살고 안 하면 죽는데. 열매 맺어야 되지요.

 우리 교회가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우리 교회를 위하여  전부를 다 기울여 주시도록 기울여 주시는 그 은혜를 다 받으려고 하면 우리  교회가 뭐 해야 됩니까? 우리 교회가 열매 맺어야 됩니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어.

 열매 맺어야 되는데, 또 그다음에는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총애를 기울이실 때에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사랑을 솔빡 다, 그 총애를 다 받기를 뭣 해 가지고  받았습니까? 계명 지켜 가지고 받았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나를 사랑함같이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였으니 주님의 사랑을  내 개인, 주님의 사랑 전부를 총 내가 다 받으려면 그 사랑은, 그 사랑 속에  뭣뭣 들었지요? 몇 가지가 들었지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그 사랑 속에 몇  가지 들었습니까? 여기에 몇 가지? 그 사랑 속에 몇 가지 들었어? 자, 우리   선생? 허, 사람들 참. 그 사랑 속에 몇 가지가 들었습니까? 남반에 한번  대답해 보이소. 두 가지? 대답은 저기는 맞는데, 여기는? 자, 그 사랑 속에 몇  가지 들었습니까.? 세 가지 들었습니다. 세 가지. 세 가지. 뭣뭐? 있는 소유  전부, 그 능력 전부, 노력 전부 이 총애라 그말이요, 이 총애.

 그런데 내 개인이 이 세 가지가 들어 있는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이 세  가지를 다 기울여 주시는 총애를, 총애라면 사랑 전부를 총애라 그말이요, 총애.

다 총(總)자, 사랑 전부. 총애를 내가 받으려면 내 개인이 받으려면, 뭐 가족이  다 안 해도 자기 받으면 돼. 내 개인이 받으려면 그 계명 지켜야 되고, 또 우리  가정이 받으려면 그 계명 지켜야 되고, 또 교회가 받으려면 그 계명 지켜야  되고, 총애를 받는 방법이 그 계명 지키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그 계명은 뭐입니까? 그 계명은, 뭐 그 계명은 십계명입니까, 몇째  계명입니까? 그 계명은 뭐입니까? 그 계명은 녜,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라 하는 그것이 내 계명이니라 이랬습니다.

 그 계명은 뭐이 계명인고 하니 그 계명 지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과 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그 계명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한 일이 뭐입니까? 사랑하셔서 옷을 해  줬습니까, 밥을 해 줬습니까, 우리에게 취직을 시켜 줬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하신 일이 뭐이지요? 뭐입니까? 한번 대답해 보이소. 세 가지  구속이랍니다.

 그러면 사죄 칭의 화친의 새생명, 십자가상에서 못박혀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우리 죄를 없이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에게만 피동될 수 있도록 이제 의를  입히시고, 또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화친을 주시고 이렇게 세 가지 대속을  예수님이 입히셨습니다. 이 세 가지 대속을 입힌 것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했으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라 하면 어째야 됩니까? 뭘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게 됩니까? 밥을 줘야 됩니까 떡을 줘야 됩니까,    집사님? 뭣  줘야 됩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뭘 해야 됩니까, 뭘 줘야 됩니까?  손가락으로 말해 봐. 뭣 줘야 돼?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저 못 알아듣는 것  같애. 못 알아들었지? 알아들었어? 그 옆에 사람 말해 봐요. 알아들은 것 같애?  답이 맞 았어? 뭐라 하노?! 만날 뒤로 돌아가면 어짜는고?  우리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세 가지 공로를 입힌 그것이 우리를  사랑한 것이라. 그러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요? 세 가지 공로를  입히는 그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 그말이요. 또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또 하는 게 사랑하는 것이요? 또 나에게 세 가지 공로를 입히는 것이라.

 내가 이 세 가지 공로를 입고 안 벗으면 나를 사랑하는 것이요 또 형제에게 이  세 가지 공로를 입히기 위해서 어데까지 힘써야 됩니까? 땀이 나도록 힘써야  됩니까, 그저 땀 안 날 정도로 힘을 써야 됩니까, 목숨까지 다 기울여 힘을 써야  됩니까? 저 학생?  대 다니는 학생 말이야? 어느 정도 힘써야 돼? 목숨까지 다,  목숨까지 다해서 기울 여야 된다 말이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은 뭐이냐? 세 가지 나에게 대속을 입힌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거라. 그래 내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내가 형제에게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입혀야 되는데 그것 입힐라 하면 수월하게 입히는 것도 있지마는 그  입힐라 하면 나도 내 소유와, 능력과, 또 하나 뭐이요? 노력. 이것 다 기울여야  그에게 입힐 수 있다 말이오.

 아버지가 예수님 사랑하신 것도 세 가지 다 기울여서 사랑하셨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도 세 가지 다 기울여 사랑하셨고, 우리도 형제를 사랑할라  해도 이 세 가지를 다 기울여야 형제를 사랑할 수 있고, 또 내가 나를 사랑할라  해도 이 세 가지를 다 기울여야 사랑하지 내 목숨만 하나 빼 놔도 자기가 자기를  사랑 못 합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방편이요 하나님의  전부를 다 받는 방편이라.

 이거 그리 되면 어찌 되느냐? 그러면 뭐 자기는 다 그 꼴 되니까 좋을 게 없다  싶은데, 그라기 때문에 해석을 붙여 놨어. 너희들이 꺼풀만 보지 말아라. 내가,  너희들에게 이 말 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으로 충만케  하기 위해서 말한다. 이 일은 인생 으로서, 인생으로서 다시없는 지상의 기쁨을  가질 수 있는 그것이 이 길뿐이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자, 이제 그것만 기억해요. 농부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총 소유와 총  능력과 총 노력을 다 기울이심을 받는 그것이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것인데,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것인데 하나님의 총애를 받으려면 열매를 맺어야 되는데,  열매를 맺어야 되고 또 그 계명을 지켜야 되는데, 열매 맺는 게 뭐이냐? 그  열매가 뭐이냐? 그 열매가 세 가지 구속을 입힌 그 결과, 그 계명이 뭐이냐? 세  가지 구속을 입히는 것.

 이러니까, 세 가지 구속을 '서로 사랑하라' 저 사람도 네게 입히고 나도 저  사람에게 입혀서 그렇게 이 구속을 입히는 것이 사랑이요 구속을 입히는 것이  과실 맺는 것이라.

 그러면 '과실을 많이 맺으면' 과실을 위에 붙여 놓으니까 잘못하면 떨어진  해석하기 쉽다 말이오. 그러면 이 과실을 많이 맺으면 농부의 총애 총력을 다  기울임 받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 전부인데 그게 뭐이냐? 하나님의 사랑이라.

 그것을 받으려면 과실을 많이 맺어야 된다. 무슨 과실? 그 과실은 계명 지키는  과실이니 예수님이 내나 계명 지킨 그 과실이니까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세 가지 구속을 입히기 위해서 오셔서 공로 베푸신 그것이  예수님이 맺은 열매라.

 예수님께서는 과실을 많이 맺어서 아버지의 총력 총애를 다 받는데 예수님이  과실 맺은 과실이 무슨 과실입니까? 땅위에 와서 이적과 기사를 행한 그  과실입니까, 뭐 땅위에서 와 가지고서 뭐한 것입니까, 뭣을 예수님이 과실을  많이 맺었기에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받게 됐습니까? 그것이 곧 우리를  구속하신 구속을 베푸셨기 때문에 전부를 다 받았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열매가 주님의 계명 지키는 것인데, 주님의 계명 지키는 것 곧 열매  맺는 것 그것은, 계명 지킨다는 말이나 열매 맺는다 말이나 같은 말인데, 계명  지키는 것이 열매 맺는 것이요 열매 맺는 것이 계명 지키는 것인데, 그러면 재명  지키는 것 곧 열매 맺는 것, 열매 맺는 것 곧 계명 지키는 그게 뭐이냐? 사죄  칭의 화친의 새생명 이 세 가지를 입히는 것이 열매 맺는 것이요 제가 입는 것이  열매 맺는 거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것이 농부의 전부를 기울임 받는 그것이  하나님의 총애받는 것이라. 하나님의 총애 곧 하나님의 모든 것을 기울여 주심을  받으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받느냐? 열매 맺으면 받지. 열매가 뭐인데? 그 계명  지키는 것이지. 그 계명 지키는 것이 뭐인데? 그 계명 지키는 것은 십자가의 이  세 가지 대속하신 그것이 계명 지키는 것이지.

 그러면 결론적으로 우리가 개인이 하나님의 은총의 전부를, 하나님의 사랑의  전부를 내가 받으려면 어짜면 받을 수 있느냐? '열매 맺어야 받지.' 그 사람이  그래 말했습니다. 또 하나는 있다가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되지.' 또 그래  대답했습니다. 또 하나는 있다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같이 그렇게 사랑하는  그 사랑을 해야 되지.'  이렇게 말했으면 그 말이 이 세 가지 말로 했는데 그 세 가지 말이 각각 다른  말입니까 꼭 같은 말입니까?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꼭 같은 말입니까? 여기에도, 꼭 같은 말입니까?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다른 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들지 말고. 녜, 꼭 같은  말이오. 녜, 꼭 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기울이시는 전소유 전능력  전노력을 다 나 위해서 기울이시도록 해서 나 위해서 기울이시는 그것이 나에게  사랑을 다 기울이는 그것이요 그 사랑을 다 받는 것이 그 은총 다 받는 것인데  그것을 다 받으면, 자, 계명 지켜야 된다, 열매 맺어야 된다, 또 서로 사랑해야  된다 이러는데 마지막에 결론으로 떡 가 가지고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총애,  주님의 총애, 총애,  총애라 하니까 총애라 해도 뭐 아무것도 없이 사랑만, 사랑만 자꾸 하는 이  세상에 사랑만 하는 건데 그게 아니고 모든 소유, 모든 능력, 모든 노력 다  기울인 그걸 총애라, 그걸 해석하기 위해서 위에 농부라는 그것을 발표했다  그말이요.

 그러면 이것을 다 기울이는, 하나님의 전부, 은총 전부, 하나님의 소유 전부,  하나님의 능력 전부, 하나님의 노력 전부, 하나님의 총애, 그 전부를 결론적으로  내가 받으려고 하면 마지막에 결론적으로 대답을 해 보십시오. 받으려고 하면 한  가지 말로만, 한 말로만? 뭘 해야 됩니까? 뭘 해야 됩니까?  내가 혼자 받으려고 하면 예수님의 세 가지 구속을 내가 입고 벗지 않는 것, 또  이 구속을 형제에게 입혀 주는 것 이겁니다. 또 우리 가정이 자, 농부이신  아버지, 주님 총애, 사랑의 전부, 은혜의 전부 이 전부를 그 가정이 받으려고  하면 그 가정에서 뭘 해야 됩니까? 뭘 해야 되지요? 받으려고 하면 그 가정에서  뭐 가져야 됩니까?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입고 벗지 않는 것,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입히는 것 이겁니다.

 또 교회가, 아버지, 아들 예수 그리스도, 농부이신 아버지와 예수님의 그  전부의 은총과 사랑을 다 받으려면 받는 그 방편이 개인이든지, 가정이든지,  교회든지, 단체든지 받는 방편은 한 말로 말해서 열매 맺는 것, 열매 맺는 게  뭐인데? 계명 지키는 것, 계명 지키는 것이 뭐인데?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게 뭐인데? 내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라.

 이러면 순서가 됩니까? 어찌돼요? 저 뭐꼬,    장로님 어데 있어? 일치가  됩니까? 됩니까? 내나 열매 맺는 것이 계명 지키는 것이고, 계명 지키는 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 내나 십자가 대속 입히는 것이고 그거  통합니까, 됩니까? 일치가 됩니까? 용기 있게 다음 주일에 가르칠 용기  있습니까?  저 먼저 대구 갔다 와서 그 이튿날, 대구 갔다 온 그다음 주일날은 지하층도,  일층도, 이층도, 사층도 막 불이 펄펄 나. 불이 펄펄 나. 이랬는데 그다음에는  또 달라진다 그거요. 요걸 단단히 알아요.

 이 외에 없습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뭐, 열매 안 맺으면 찍어내 버려요.

"열매 안 맺으면 찍어버린다 계명 안 지키면 찍어버린다" 같은 말이오. 또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찍어버린다' 같은 말이오. 또 '세 가지 대속을 입지 안하면  찍어버린다. 이 세 가지 공로를 다른 사람에게 입혀 주지 않으면 찍어버린다.'  남 입혀 주고, 저 입고 남 입혀 주는 이게 그만 복받는 전부라.

 우리가 개인이나 가정이나 단체나 자기가 뭐 사업을 하든지, 자기가 사업을  하든지 뭘 하든지 하나님 앞에 가 보면 인간이 방편적으로는 뭐 이런 것 저런 것  있지마는 어짜든지 사람이 그 첫째는 중심이 이것이어야 되고, 중심이  이것이라야 되고, 또 방편이 이것이어야 되고, 목적과 결과가 이것이어야 되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잘 안 될지라도 그길 외에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자, 결론을 말해서, 자존자시요, 지존자시요, 창조주시요, 주권자시요,  주재시요, 이런 하나님이신 이분의 은총을 전부 사랑 전부를 받는 비결은, 자기  개인이나 가정이 이걸 받는 비결은 한 말로 말하면 세 가지 대속을 입고, 입히는  것. 이 세 가지 대속을 입고 벗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그 전부를 다 차지하는  것이고, 또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입혀 주는 것이 그 전부를 다 차지하는  것이라.

 이 외에는 하나님이 당신의 것을 하나도 주지 않습니다. 준다고 하면 그것 받아  가지고 한 그것 다 이용할 것이오. 다 이용물이오. 다 이용되지 제 모가치는 안  됩니다.

 자기 것 되는 것은 이 세 가지 대속을 놓지 안하고 이 대속을 벗지 안하고 입고  있고 이 대속을 다른 사람에게 입히는 것 그 외에는 농부이신 아버지의 전부를  받는 것도, 우리의 구주이신 주님의 전부를 받는 것도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하는 그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이것 우리가, 이것 지금 우리 방편이니까 뭐 누가 뭐라 한다 해도, 네가 뭐  주홍 같고 진홍 같고 무슨 일이 있어도 상관없다. 지금부터라도 네가 주님의  피로 말미암은 사죄를 벗지 마라. 네가 죄 없이함을 벗지 안해서 네 목숨을  뺏겨도 죄 없이함을, 죄를 입힐라고, 죄를 입으라고 죄를 지으라고 목숨을  끊어도 목숨을 내 줬으면 내 줬지 다시 죄를 입지 마라. 사죄를 벗지 알아라.

 칭의는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이 연결 그게 칭의니까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이것을 네가 끊지 말아라.

 하나님과 화친해서 하나님과 이제는 동거 동행할 수 있게 했기 때문에 동거  동행하는 이것을 네가 뺏기지 말아라.

 하나님과 화친의 동거 동행, 주님에게 피동인 의, 이제 사죄로서 어떤 죄  가운데서도 그 죄에 다시는 물들지 안하고 빠지지 안하는 것. 요 세 가지가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앞선 자가 뒤서고 뒤선 자가 앞선다고, 지금까지 어데까지 있었든지 이  시간부터 이 세 가지만 작정하고 출발하고 뭐 과거에 천번 만번 실수 있다  할지라도 이 시간부터 이 세 가지만 놓지 안하고 이 세 가지를 입고 벗지  안하고, 이 세 가지 저도 벗지 안하고 이 세 가지를 다른 사람에게 입히는 그  일을 자기 의무와 책임으로 알고서 이래 주력하면 하나님도 제 하나님, 하나님의  소유도 제 소유, 하나님의 능력도 제 능력, 하나님의 노력도 전부 다 제것.

 이 과장한 것이 아니고 요거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요것 하나님의  약속이오. 모든 성경이 그걸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 비유 아니라도.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삼십 분 기도 후에 아랫층에서 종전과 같이 그렇게 자유로 철야 기도합니다. 또  설교 재독도 있답니다. 주일학교 공과는 오일예배 때에 나누겠는데 오늘 저녁에  설교한 것을 단단히 들으면 뭐 공과 있으나 없으나 뭐 자꾸 해서 그만 그 생활  하고, 만일 요대로만 실행한다면 서부교회가 뭐 굉장히 들려 올라가고 그만 몇해  지나면 굉장해집니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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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하나님의 참사랑과 우리의 현실/ 마태복음 25장 46절/ 1982. 3. 20. 토새벽 김반석 201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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