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5 23:24
하나님의 축복
1985. 1. 3. 목새벽
본문 : 신명기 28장 1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지난밤에 밤예배 때에 봉독한 공과를 여러분들이 많이 읽고 새기면 거기 있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고, 거기에 이제까지의 신학에서 난제로 해결짓지 못한 그런 해결이 거게 한 가지 들어 있습니다.
그저 예사롭게 자꾸 이렇게 보고 지나가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는 게 아니라 만홀히 여기는 그 죄를 우리가 얼마나 많이 범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말씀을 증거해도 그 말씀이 뭐인지 그 넓이와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하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그저 앵무새 모양으로 입에만 익어서 줄줄거리지 도무지 거게 대해서 듣든지 읽든지 하고 깨달아지는 무슨 감각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기억력이라는 그것만 가지고 하고 있으니까 기억 그거 가지고는 안 됩니다. 기억력이라는 것은 그것은 마음의 지체 중에, 마음의 요소 중에 아주 말단의 것이요 저급의 것입니다.
그 기억한 것을 기억할 수 있도록 자기가 아는 것을 그것을 거게서 깨달은 깨달음이 있어야 됩니다. 깨달음이 있고 깨달음이 있은지 후에는 거게 대해서 확신이 생겨져야 됩니다. 그 확신이 생겨지고 난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소욕이, 욕심이 생겨집니다. 욕심이 생겨지면 필연적으로 '요렇게 하겠다' 하는 그런 의지가 서게 됩니다. 의지가 서면 그다음에는 하든지 못 하든지 자기가 그대로 실행할라고 달라들게 됩니다. 달라들면 거게서부터 자기의 연약한 것을 알게 될 것이요. 자기의 너무 진실치 못한 허무한 거짓을 알게 될 것이요. 그러면 필연적으로 겸손해지고 또 주님 앞에 간구하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자기에게 웅답해 주시는지 안 해 주시는지 그 결과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응답이 없다고 느껴질 때는 자기가 발동을 할 겁니다. 응답이 되면 자기가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더 확실히 알게 됩니다. '아, 주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는구나' 하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는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더 확고합니다. 더 확실합니다.
이래야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성화도 되고 평강도 얻고 담력도 얻을 건데, 자기는 주님과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믿는 줄로 알고 있는데 믿는 준비를 해야 될 때에 믿지를 아니하면서 믿는 줄로 아는 그것이 지금 낭파입니다. 준비할 때는 믿음이 없으면서 믿는 줄로 이렇게 마귀란 놈에게 꼬여 가지고서 어리석게 과인하고 있지. 지나치게 인정하는 그 과인을 하고 준비할 수 있는 그 시기를 지나 보내 버리지, 이제 실제로는 믿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그런 현실을 줄 때에 그때는 닥쳐 보니까 아무것도 안됩니다. 그 현실에, 현실을 닥칠 때에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믿는다는 것이 아주 통통 거짓부리입니다. 하나님의 그 능력에 대해서나 지혜에 대해서나 사랑에 대해서나 하나님의 주권 섭리에 대해서나 믿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될 것입니다.
아는 것은, 왜 그때에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 말씀을 믿으면 필연적으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데 왜 그렇게 하는 그 일을 할라고 해도 하지 못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저렇게 하는 그런 삐뚤어진 멸망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가 그걸 자기가 알게 되고.
그보다 더 미련하고 거짓부리 외식자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형편 되는 대로, 자기가 현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하는 그런 것은 없고 그저 하나님 말씀도 제가 거짓부리로 이용을 해서 몰라도 아는 척 하고 없어도 있는 척 하고 또 돼도 모르고 안 돼도 모르고 이렇게 지나가니까 그런 현실에서 그런 일을 닥쳐도 외식하는 것을 아주 처세술로 압니다. 다른 사람은 끙끙거리는데 자기는 그것을 아무런 감각 없이 자극 없이 그냥 통과하는 그게 자기에게는 처세술입니다. 이러니까, 형편 되는 대로 이럴 때는 이래 하고 저럴 때는 저래 하고 아무 거친 없이, 아무 거침없이 그렇게 형편에 따라서 주위와 환경에 피동되는, 주위와 환경에 피동되는 그거는 죽은 건데, 죽은 자인데, 주위와 환경에 피동되는 그생활을 아무 가책 없이 그렇게, 그게 지혜의 수단인 줄 알고 가롯 유다 모양으로 그렇게 하는 자 있습니다.
그러면 그자는 언제 가서 후회가 되느냐? 가룟 유다가 마지막에 완전히 주님과 원수가 되어진 완전히 멸망으로 결정이 된 그때사 알았지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가롯 유다가 후회 안 한 것 아니오. 후회 했지마는 소망 할 그런 기회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룟 유다는 후회를 해서 곤두박질을 쳤다 했습니다. 곤두박질, 그때 배가 아파 곤두박질 친 것 아니오. 곤두박질 치다가 못 견뎌서 나무에 올라가 가지고 떨어져서 죽었습니다. 그렇게 죽기까지 후회했어요. 죽기까지 후회한 것이 가롯 유다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죽을 때에 후회되는 거, 또 완전히 패전이 되는 그때사 준비하지 못한 것을 '기름을 나눠 주십시오' 하는 자와 같이 그래 되는 것이 그것이 좀 거석한 말이지마는서도 그게 불택자인지 택자인지 우리가 단정을 짓지는 못합니다. 자기에게 대해서는 '내가 불택자인갑다' 단정 짓는 것도 좋습니다. 왜? 뭐 선지자 노릇도 하고 모든 권능도 행하고 이랬지마는서도 ' 나를 떠나가라 이 악한 자들아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 쫓겨나지 안했습니까? 그것은 행위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그 전도지. 인사 전도지가 벌써 거의 없다고 하는데 전도지를 빨리 박도록 하십시오. 전도지 박는데 십만 장 박을라고 하면은 돈이 다 들고 얼마 모자란다 했지? 예? 예? 오만 장? 예? 지금 그라면 뭘 오만 장 박는다 말이오? 전도지 있고 그래 지금 오만장 박는다고 했어? 오만 장에 얼마라? 오만 장에 십만 원. 오만 장에 십만 원인데 조금 모자라서 저한테 누가 뮐 가지고 와서 고것 좀 채워 가지고서 박았습니다. 박았어? 주문했어? 그런데 그 인사 전도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거게 회개의, 눈물을 말했는데 우리는 거게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생각이 없었는데 별로이 생빛이 없었는데 고거 받을 때에 줄 때에 고때에, 참 인사 중에는 큰 인사라, 왜? 어짠지 그걸 안 받으면 섭섭한 것이 내 마음이 강퍅해져 나가는 것 같은 것이, 그거 받을 때에 다른 사람보다 저는 은혜로운 것이 하나 있어요. 회개의 눈물을 강처럼 그렇게 흘리게 해 달라고서 그렇게 성구를 가지고 우리가 증거하는데, 저에게는 회개의 눈물은 없고. 있기야 있지마는서도 회개의 눈물보다 노병의 눈물이 많아. 늙어서 병든 병의 눈물이 많아. 이것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니까 꼭 자연 법칙으로 그래만 될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눈물 안 흘려도 죽을 수 있을 건데 이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안하기 때문에 이 질고의 눈물이 나는 것이니까 질고의 눈물을 낫게 해 달라고 그 기도를 제가 먼저 하지 안해요.
회개익 눈물과 감사의 눈물이 주님 보시기에 그저 됐다 싶을 때까지 질병의 눈물, 질병의 눈물 그거 자꾸 흘리니까 눈동자가 작아져 그런지 눈두덩이 푹 꺼져요. 푹 꺼져. 똑 한 쪽 눈 뭐 아이들 말로 새 까 먹었다 하는 거와 같이 푹 꺼져. 그러니까 눈이 앞으로 요래 꼬꾸랑하이 끝이 딱 앞으로 숙여지는 것이 그렇게 아주 밉상스럽게 돼져. 그래서 '고 두 가지 참 흘려야 될 눈물을 흘리거든 이 눈물을 제해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하는데, 고 전도지를 전할 때마다 고 기도를 아무리 바빠도 멈추면서 하고 또 자기가 받아 가지고 돌아가서, 전도지 받아 가지고 돌아가서 또 거게 대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진노도 우리가 그만 그런 건데,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생각하현서 '하나님의 진노를 나로 하여금 볼 수 있는 성신의 감화의 눈을 주시옵소서. 주님 앞에서 큰 징계가 지금 무슨 징계가 와 있고 또 현재 징계를 받고 있는 무슨 징계를 받고 있는지 그만 징계에 대해서 까마득히 잊어 버리기 쉬운데 진노와 징계에 대해서 볼 수 있는 그런 영감의 밝은 심령을 주옵소서.'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노를 풀어 드리는 일을 급하게 해야 되겠고, 그분에게 우리 모든 소원과 전체가 다 있는데 그분을 노엽게 해 가지고야 일이 다 허사 아닙니까? 또 그분이 징계하는데 우리가 뭐 힘쓰면 뭐 할 겁니까? 그분의 노를 풀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면 우리에게 오는 징계 대신에 당신의 긍휼이 올 것이라 그거요.
그런고로 인사 전도지가 참 어떻게 귀한지.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인사로서는 그 이상 나에게 반가운 인사가 없는 것을 저는 느꼈습니다. 그 인사가 없으면 섭섭해요. 그러니까. 믿는 사람을 만나는데 만날 맛이 그전에는 다른 맛인데 만나면 서로 사람적으로 반갑고 뭐 권면하고 또 그에게 대해서 부탁 못 할 거 부탁을 하고 워 이런 좀, 물론 신앙의 용무야 용무이지마는, 그 용무인데. 지금은 그것보다도 만나면 내가 제일 중요한 참 눈물에 대해서 깨달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깨달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서 깨달음을 가지고 거게서 거게 대해서 기도를 하게 되니까 얼마나 그 소식이 반가운지. 얼마나 그 말씀이, 마치 내게 못 견디는, 지금 창사가 틀려서 못 견디는 병으로 고통하는데 약을 주든지 주사를 줘 가지고서 그게 스르르 풀려지면 기쁘고 즐거운 거 모양으로 그 사람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그 하나를 날 줄 때에 내게는 그런 치료되는 것이 확실히 느껴지기 때문에 기쁘고 즐거워요.
우리 마음은 우리가 자꾸 아렇게 강퍅한 것을 고칠라고 애를 써야 되지 강퍅한 그 마음을 고칠라고 자꾸 애를 쓰고 내 마음에 강퍅한 데 대해서 이렇게도 생각하고 저렇게도 생각해서 내 마음이 어떻게 강퍅한가 그 강퍅한 면을 자꾸 이렇게 묵상하면서 한 번에, 강퍅한 거 한 전도지를 받을 때에 하나씩이라도 깨달아서 고치고 또 고쳐지지 안했으면 그것을 몇 번이든지 자꾸 전도지 받을 때마다 그걸 그라고 하면은 사람들이 그런 말 있습니다. 십벌지목이라 열 번 도끼로 쪼은 나무라 거의 열 번 쪼우면 그 나무가 넘어간다 그말입니다.
끊어진다 그말이오. 우리가 자꾸 회개를 생각하고 생각하면 그놈이, 옛사람 그놈이 못 견뎌서 도망을 칩니다.
우리가 회개할 그 모든 것은 누가 들어 만들어 놨느냐 하면은 옛사람이 들어서 그 일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원죄도 옛사람이 만들었고 본죄도 옛사람이 만들었는데, 원죄가 시발된 그것이 옛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부터 들어왔는데 뭣이 데리고 들어왔느냐? 악령이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악령. 그 악령이라 하는 마귀인데 마귀를 왜 악령이라고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름을 줘서 악령이라고 그렇게 하느냐? 악령이라 말은 영인데 영으로서 제 중심으로 사는 영이라 그말입니다. 제 중심으로 사는 영. 악령이 들어와 가지고서 우리 사람들을 악인을 만들었습니다. 악인을 만들었는데 악인을 만든 것이 우리를 악성의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의로웠는데, 의로웠다 말은 하나님 중심의 우리 본성이었는데 악령이 와 가지고 자기중심의 본성을 만들었습니다. 고것이 원죄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악습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중심으로 한 번살았으면 고것이 한 번 행했습니다. 두 번 살았으면은 한 번 더 연습이 됐습니다. 세 번 살았으면은 이제는 세 번 연습한 것이 됩니다 또 고대로 악성으로 산 고것이 여러 번 됐으면 그것이 이제 자기중심의 습관이 한 번 두 번 자꾸 습관이 많아졌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이러니까 악령도 우리가 아니오. 악령도 내가 아닙니다. 참 내가 아닙니다.
그놈이 나를 죽이는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서 이 어리석은 마음에게, 우리 마음은 어리석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마치 이런 풀 한 포기와 같습니다. 풀 그거는 죄가 없습니다. 그 풀을 사람들이 죄되게 이용하면 죄되게 이용당하는 것이지 그 풀 속에 죄가 배어 들어가는 것 아닙니다. 아무리 우상 섬기는데 중들이 절에다 갖다 놓고서 그 아름다운 풀을 갖다 놔서 우상의 재물로 삼았다 할지라도 거게서 그만 내어다가 딴 데 심으든지 다른 사람 의인이 가져가면 의인의 풀이 되는 것이지 그 풀 속에 죄가 속에 배어 들어갔거나 그런 거 아니라 그거요.
이런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죄로 물드는 것이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거창 집회 때에 어떤 사람이, '우리 사람의 마음이나 몸은 무색이라 색이 없이 무색의 존재다 색깔이 없다' 이라니까 어떤 사람이거기서 써 냈는데 '그러면, 죄 중에 잉태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는데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런 말을 질문해서 그때 간단하게 해석을 해 줬으나마, 벌로 듣고 그랬기 때문에 모르니까. 벌로 들으면 몰라요.
죄 중에 잉태했다 했지 죄를 잉태했다 그렇게 하지 안했습니다. 죄 중에 잉태했다 말은 잉태된 것이 죄 가운데에 잉태됐다 말이요, 하나님이 창조 하실 때에 하나님이 사람의 심신 영을 다 창조했는데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죄 뭉텅이를 창조한 것 아닙니다. 의롭게 창조했는데 그 창조 된 것이 그것이 인간 안에서 창조되기 때문에, 창조된 거는 깨끗하지마는서도 죄 안에 창조됐다 말이오. 죄 안에. 죄 속에서.
또 육체의 생각이라 그말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그것이 마음을 거머쥐고 제가 사용하니까 악령에게 붙들려서 사용이 돼지니 그 마음이 악의 병기가 됩니다. 악의 병기, 불의의 병기. 성경에 그렇게 말해 놨습니다. 그렇지마는서도 즉시 의인이 쓰면은 의의 병기가 됩니다. 새 사람이 쓰면은 우리 마음은 의로운 병기가 즉시 됩니다. 또 옛사람이 쓰면은 악의 병기가 즉시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심신은 이것은 죄가 없는 깨끗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자꾸 씻으면 씻겨집니다. 물리치면 자꾸 물러갑니다.
불택자들은 그것이 안 됩니다. 악령과 악성과 악습, 악습은 내가 행동해서 만들어 놓은 행동이고, 내 마음이 아니고 내 몸도 아니고 내 행동이고. 악성은 자기중심으로 사는 인간의 본성인데 그 본성이 나빠 그런 게 아니라 악령이 들어와 가지고서 악성으로 사로 잡았다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마음이 이 악령에게 붙들려서 악령의 지배를 받아 가지고 악성 그것을 제인 줄로 착각했습니다. 자기 아닌 것을 자기인 줄 알고 이렇게 착각을 해 가지고서 그와 같이 되어 있는 것이니까, 되어 있는데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왕권으로 돼 있습니다. 왕권을 가지고 왕권적으로 돼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변동을 못 합니다.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왕권을 가졌기 때문에. 왕권을 가졌다 그 말은 최고의 권리를 가졌다 그거요. 그 권리를 누가 아무나 어떻게 지배할 수가 없어.
그러나 택자들에게는 그것이 왕권을 가지지 못하고 다만 그것이 침노하는 그 침노의, 패잔병이기 때문에 침노하는 침노권을 가졌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깨어서 '이게 아니로구나' 생각만 하고 물리치면 즉시 쫓겨 나가야 됩니다.
악령을 '이거 악이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면은 즉시 나가야 되지 저는 안 나가고 못 견딥니다. 왜? 우리는 사탄보다 지극히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악성도 그렇습니다. 악성도 '요거는 내 본성이 아니고 악령으로 말미암은 요 악성이다. 요거는 옛사람의 성품이다' 하고서 물러가라 하면 즉시 물러가야 됩니다. 우리가 수십 년 동안 나쁜 죄를 짓던 그 악습이 된 것이라도 예수님의 피공로에 '주여, 내가 몰라서 이런 죄를 지었고 죄에게 마음도 몸도 이용을 당했습니다. 이 죄를 주님의 십자가 보배피 공로로 대속해 주시옵소서.' 담보를 시키고 사함을 받았다는 이 사실을 자기가 믿고 고 다음부터 그것을 범하지 안하면, 그놈이 와 가지고 침노를 해서, 자꾸 과거의 습성이 있으니까 와 가지고 침노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물리쳐서. 물리쳐서 끊으면 그놈은 더 올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요 전도지, 인사 전도지가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니다.
우리는 참 눈물이 없는 강곽한 사람인데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안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안하면 여게 있는 여러분들도 내가 흘리는 늙은 노병의 눈물을 다 흘려야 됩니다. 안 흘릴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다 흘려야 됩니다. 그게 오기 전에 감사의 눈물과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 이, 눈물을 흘리면 참 기쁘고 즐겁고, 저도 노병의 눈물뿐 아닙니다. 자주 그래 돼요. 감사의 눈물이 흐를 때에는, 감사의 눈물과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에는 노병의 눈물이 없는데 그게 없을 때는 있어. 그러니까, 그게, 눈물을 그만 잊어버리고 난 다음에는 노병의 눈물이 흐릅니다.
노병의 눈물이 흐르면 그때 뭐 감사의 눈물과 회개의 눈물, 눈물 닦으면서 그렇게 그 눈물로 바꿀라 한다 해도 바꾸어지지 안해 바꾸어지는게 그리 쉽게 바꾸어지지 안해요 껍데기 가지고 되는 게 아니고. 그랄라고 하면은 제법 시간이 걸려서 참 버리기는 쉬워서 회개의 눈물과 감사의 눈물을 버리기는 쉬워도 그 눈물을 다시 찾는 때에는 상당히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이 안 걸리는 게 아니라 상당한 시간이 걸려요. 명상하고 이래 가지고 어떨 때는 하나님이 주실 때는 그만 뻐뜩 찾아지지마는서도, 바꿔지지 마는서도 하나님이 주시지 안할 때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래 가지고 애를 써도 그 눈물이 바꿔지지 안하고 내 마음이 바꿔지지 안한다 말이오.
내 마음이 바꿔지지 안하고, 참 주의 온갖 은혜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이 은혜를 생각하니 감사하고 저 은혜 생각하니 감사하고 감사해서 자기가 참 눈물을 안 흘릴래야 안 흘릴 수 없는 감사의 눈물이 나오고. 또 잘못한 것을 입으로는 말하기 쉽지마는서도 고 잘못된 그것을 자기가 생각하고 깨달아질 때에 마음에 원통하고, 내가 죄를 짓기 때문에 내 신세가 가련해서 원통한 것보다도 고 주님을 노엽게 하고 주님을 섭섭하개 하고 주님의 그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줬는데 나는 예사롭게 말로 죄를 짓고 마음으로 죄를 짓고 행동으로 죄를 짓고 뭐 이런 사소한 그런 것들 때문에 죄를 짓고 한 그것이 너무도 주님 앞에 부끄럽고 참 죄송하고 미안하고 두렵고. 이런데. 들어가면 두려움은 없어져요. 처음에는 두려움이 있어야 회개의 눈물이 나오는데 나중에는 들어가면은 두려움은 없고, 두려움이 없고 미안하고 죄송하고 황송하고 못 견디는 그때에 우리에게 감사의 눈물과 회개의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꾸 그렇게 하면 우리 마음이, 강퍅해진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예민해져서 참 아주 마비된 살과 같이, 문둥이 살은 마비가 돼 가지고 암만 칼로 끊어도 아프지 안합니다. 마비된 데는 아픔이 없어요. 감각 이 없어요. 그러나. 새살에는 조금만 거석해도 아프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우리 마음이 새살같이 예민한 마음을 만들어 주시고, 마비된, 마목된 그와 같이 그렇게 마비된 마음이.
강퍅하고 완패한 마비된 마음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자꾸 하면 자꾸 우리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우리 마음이 예민해지고 그래 됩니다.
그러니까, 인사의 그 전도지가 참 중요하고, 다른 사람에게 믿으라고 전 하는 그 전도지도 중요하지마는 인사의 전도지에서 은혜를 받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는 전도지를 전할 그때에 능력이 갑니다. 그거 없이 전 하는 것도. 뭐 이래 전하나 저래 전하나 전하는 것은, 전파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시기 때문에 다 좋다 이렇지마는 모르고 전하는 거 또 무례로 전하는 거 교만으로 전하는 거 회개로 전하는 거 감사로 전하는 거 감격으로 전하는 게 다르다 그거요.
그러고. 오늘 아침에 이 말씀 봉독한 데 고 한 가지 지난 공과에 말씀한 대로 우리의 이 구원이라 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 그리스도의 심완을 통과해 가지고서 하늘나라에 있을 것이 우리 구원 아닙니까? 그 우리의 구원이라는 것은 이것은 불신자에게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공로가 없어서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근본은 예수님의 피공로가 없기 때문에 그렇지요.
외부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심판을 통과되는 것은 전부 완전한 것입니다. 완전한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변할 수 없는 것이요 다 영생을 가진 영생의 것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이나 또 우리의 옛사람에게는 아무리 제가 일생 동안 노력을 하고 충성을 다한다고 해도 완전을 만들 만한 완전의 능력이 없습니다. 영원을 만들 만한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영생을 만들 만 한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은 그 자체에게 그런 능력이 없어서 못 만드는데, 그 능력은 다만 하나님 한 분만 가지고 계십니다. 가지고 계시는데,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 힘으로써 다 사망 아래에 저주 아래에 죄 아래에, 이 변해질 거 죽어질 거 낡아질 거 쇠해질 거 없어질 거 이런 것 들만 만들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사람들에게 있지 딴거는 사람들에게 없습니다. 완전을 만들 그것은 사람들에게 그런 능력 없습니다.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에게도 없습니다.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에게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 한 분에게만 있는데, 하나님이 왜 우리를 타락을 시켰느냐? 타락을 시킨 것은 인간애게는 완전을 만들 만한 그런 힘이 없는 인간을 만드셔 가지고서 이것이 인간만으로서는 완전을 만들어 내지 옷한다, 완전을 만들지 못한다는 그것이 표시되고 그것이 증거된 것이 타락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완전한 능력을 가지고서 완전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하나님이 계시니까 그 하나님의 이름이 뭐입니까? 예수님이라고 지난밤에 공과에 거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지능을 가지시고 완전한 것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시고 영원한 것을 만들어 주시고 모든 것을 불변하는 그것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실라고 우리에게 왔습니다.
왔는데, 그분이 와 가지고서 만드는 것이 뭐이냐? 두 가지 종류를 만드는데, 한 가지는 그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영원한 하늘나라의 것으로 변화될 수 있는, 하늘나라의 완전한 것으로 변화될 수 있는 변화될수 있는 것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왔습니다. 변화될 수 있는 변화의 희망을 가진 것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왔습니다. 변화의 희망이 있는 것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왔고, 또 하나는 완전히 변화가 아니라 영원히 멸망하지 안하고 완전한 그 자체, 완전한 것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오신 것은 두 가지를 만들어 주실려고 왔는데, 하나는 아예 이거는 완전한 것을 만들어 줘서 영원불변의 완전한 것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완전한 것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 있고, 주시는 것이 있고 또 완전한 것을 만들지 아니하시고 완전한 것으로 개조할 수 있으면 개조할 수 있는 재료 완전한 것으로 변화시킬라면 변화시킬 수 있는 재료 이거는 완전치 못한데, 변화시키지 안하고 다시 개조하지 안하면 그대로 완전치 못하기 때문에 그만 멸망하고 마는 건데 요것을 개조만 하면, 변화만 시키면 요것이 완전이 되어지는, 변화시킬 수 있는, 변화를 받을 수 있는 재료와 변화받을 것 없이 완전이 되어 있는 그 완전한 것으로 주시는 것과 요 둘을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왔습니다.
고 신명기 28장에 보면은 이런 축복 저런 축복을 말하시다가 11절 이하에 내려가 보면은 '열조에게 맹세한 땅에서' 라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열조에게 맹세한 땅에서 너희들에게 새로 준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금방 또 이래 준다 저래 준다 이렇게 말씀해 놓고 그다음에 열조에게 맹세한 땅에서 또 준다 그렇게 말씀해 놨습니다.
그것은 열조에게 맹세한 땅은 가나안을 가리켜 말합니다. 육체의 이스라엘에게는 가나안이요 우리로 말하면은 죽음 너머 있는, 요단강이 죽음인데 죽음을 상징했는데, 죽음 너머에 있는 가나안, 죽음 너머에 있는 천국 그러면, 이 세상에서 요단강을 건너간 사람들, 건너간 사람이라고 항 상 건너가 있는 게 아니라 건너갔다가 왔다가 갔다가 이렇게 자꾸 하는데 새사람은 전부 요단강 건너간 사람들입니다. 사선을 넘은 사람들입니다. 죽음의 사선을 넘은 사람 죽고 난 다음에 살아난 그 사람이 새사람이지 죽음을 두려워한 죽음 이편에 있는 사람은 새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일이라도 두려움이나 염려나 있을 때에는 그거는 옛사람이라는 것을 자기가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두 가지로 말했는데, 다시 개조할 수 있는 재료, 변화시킬 수 있는 재료 심으면. 썩을 것으로 심으면 썩지 안할 것으로 변화가 되고, 약 한 것으로 심으면 강한 것으로 변화가 되고, 혈육의 것으로 심으면 신령한 것으로 변화가 되고. 욕된 것으로 심으면 영광된 것으로 변화된다. 그 욕 된 거 욕된 거 그것을 만들어 주실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거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이는 욕된 게 아니고 참 영광스러운 거, 신령한 거, 또 능력 있는 거, 깨끗한 거. 영원 불변의 것, 완전의 것, 영생의 것 이것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오셔서 두 가지를 우리에게 만들어 주십니다.
만들어 주시는데, 이 개조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는 원료. 원료, 재료, 이 재료를 우리에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왔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부귀 영광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부귀 영광이오. 이 세상에 있는 부귀 영화, 모든지위나 권세나 뭐 육체의 건강이나 이런 거 모든 재산이나 이 세상에 모든 이런 평안 저런 기쁨 그런 모든 것들이나 이 '불신자들이 가지고 사는 좋은 것,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좋은 거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지극히 큰 능력이 이것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가리켜서 세상 축복이라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세상 축복이라 육신의 축복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재료로 우리에게 만들어 주는 것인데 그 재료를 만들어야 되지. 그 재료를 신령한 것으로. 그 재료를 아주 강한 것으로, 그 재료를 썩지 안할 것으로, 재료를 또 영광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야 되지, 만들지 안하고 개조하지 안하고 둬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그거는 하나 고철과 같은 것이오.
개조를 해야 돼.
이러니까, 개조하지 안하면 안 되는. 소용 없는 것이지마는 개조할 수 있는 재료로 우리에게 줘서, 암만 돈이. 돈이 한 푼도 없으니까 돈 가지고 하늘나라의 보배를 만들고 싶지마는서도 돈이 없으니까 됩니까? 돈이 없어 안 되는데 돈을 준다 말이오. 그걸 가리켜서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 했습니까, 성경에? 연보에 대해서, 연보에 대해서 말하지 안했어요? 씨. 씨입니다. 씨를 줬다 하는 그 씨는 변화할 수 있는, 개조할 수 있는 재료를 줬다 그말이오. 또 양식은 그럴 때에 제가 먹고 소비하는 그것을 줬다 그 말입니다.
신령한 것, 다시 변하지 안할 그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한 것을 표시해서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에서' 다시 또 되풀이 또 했어. 저게서 말한 거 여게서 또 되풀이 또 했어. 또 한 것은 이것은 지상 천국을 말합니다. 지상 천국, 우리가 천국하고 지옥하고 딱 붙어 있는 것이 세상이라고 말했지요? 말했는데, 이러니까. 붙어 있는데 우리가 요라면 천국에 살다가 요라면 지옥에 삽니다. 금방 자기가 사람을 만날 때에는. 만나러 갈 때에는 천국에 살면서 만나러 갔는데 그 사람 만나 가지고는 그만 둘이 그만 지옥이 돼 버리고 맙니다. 천국 갔다가 지옥 갔다가. 새사람으로 살 때는 천국에 사는 사람이요 옛사람으로 살때는 지옥에 사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천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건넌 후에,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 일세.' 요단강을 건넜다 하는 거는 죽음을 넘었다 그말입니다. 죽음을. 우리가 이다음에 단번 죽는 그 죽음도 넘지마는 그 죽음에도 그거는 참 준비하는 일이 끝났기 때문에 다시는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죽음은 우리에게 그렇게 좋지 안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아닌 이 세상에 있으면서 우리가 믿음으로 죽는 죽음 이거는 사선을 넘는 거, 죽음의 선을 넘었다 그말이오. 죽음의 선을 넘어서, 죽음의 선을 넘어서 천국이 있습니다. 그래 죽음의 선을 넘어서 천국이 있습니다. 십자가 넘어서 천국이 있습니다. 삼 일 만에 부활한 거게서 천국에 속한 것인데, 죽음의 선을 넘을 때에 천국에 가는데 그러니까 자기가 아직까지도 육신의 생명으로 죽기가 싫고 육신의 생명 그것으로 살고 싶고 새 사람으로 살고 싶지를 안할 그때에는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종되어 있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한 부부가 같은 침대에 눕지마는서도 하나는 지옥에 있고 하나는 천국에 있고 이래 같이 있으면, 같이 가나 뽈끈 거머쥐고 있으면 다 그러냐? 아니오. 하나는 지옥에 있고 하나는 천국에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 한 사람으로도 지옥에 갔다가 천국에 갔다 할 수 있어요.
이러니까, 이 세상에서 천국 생활을 해서 영원 불변의 완전자 생명으로, 완전한 마음으로, 완전한 인격으로, 완전한 속성으로. 완전한 일을 하는, 완전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주 완전한 것을 만들어 주신다 이렇게 표현을 했는데,
그러면, 이렇게 개조 할 것이나 아주 개조할 것 없이 완전한 것이나 그것을 사람이 만드는 거 있고 하나님만이 만드는 거 있어요. 완전을 만드는 건 하나님만이 만들고, 개조될 것은. 개조뒬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자연 은총으로 줘서 되는 것 있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거 다 제가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또 하나님이 능력 줘 가지고서 만드는 것 있고. 이런데.
사람들이 자기가, 하나님이 다 주시기는 주신 것인데, 시편 17편인가 거게 보면 '하나님의 주신 것으로써 배불리 먹고 자기 자녀에게 줌으로써 만족한다. 유산 줌으로 만족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먹습니다.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하나님의 주신 것이 종류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것이 종류가 두 종류인데. 다 이거 자연 은총인데, 자연 은총인데 두 종류 있는 것은 자연츤총인데 두 종류 있는 것은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되 하나님이 주신 것인 것도 알지 못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그것으로써 되어 있는 거 하나 있고 하나는 하나님에게 믿음을 지킬 때에 하나님이 선물로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그렇게, 본인이 하나님에게 달라고 하고 또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알고 또 하나님께 그렇게 달라고 하는 것은 먹을 걸 주십시오 입을 걸 주십시오 그라는 게 아니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더 해 주신다 하는 그것을 믿음으로 하기 때문에 그것도 일종의 구하는 것이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본인이 하나님이 주셨다 하는 것을 알고 받아 가지고 있는 것 있고 모르고 받아 가지고 있는 것 있고, 이렇게 자연 은총을 인생이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두 종류로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주셔서 받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알고 있는 그걸 가진 것도 있고.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아무 그런 것은 상관 없이 제가 부모가 이렇게 어떻게 해 가지고서, 인생이 어떻게 해 가지고서 이 것을 가졌다 이렇게 알고 있는 거 있고 고 두 종류 있는데, 인생이 이렇게 가지고 있다 하는 고것은 개조하기가 성화하기가 힘이 듭니다.
좀 거리가 멈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셔서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는 요것을 깨닫는 사람은 성화하기가 쉽고 개조하기가 좀 쉽습니다. 고것을 가리켜서 말라기 3장에 도적질. 소유권 도적질을 회개해라, 두 가지 소유권 도적질을 회개하라 했는데, 고것을 회개하면은 이제 제것으로 가지고 있던 것이 하나님의 것인 것을 깨닫고 바로 인식하고 하나님의 것으로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가지고 있으면 고다음에 개조 성화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니까, 요렇게 하나님의 지극히 큰능력이 와 가지고서 우리에게 이렇게 아주 개조할 것이 없이 완전히 되어 있는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또 개조하기 쉬운.
개조할 수 있는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고 주시는 것의 이름을 가리켜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고 주시는 것의 이름을 뭐라고 했습니까? 주시는 거. 주신 것. 주시는 거 주신 것 고 이름이 뭐이지요? 주신 것 고 이름이 뭐이지요? 주신 것을 받았는데 받은 거 고거 이름이 뭐이지요? 저 ○○○ 씨. 예? 뭐이요? 믿음? 저봐. 대학 졸업했으니까 아주 상당할 건데 하나님의 도리를 깨닫는 데에는 어린 아이들만 못하거든 여게 ○○○ 조사님의 아들, 쬐만한, 그거 키도 쪼그만해요.
고게 여기 있으면 요럴 때는 딱딱 물으면 '쬐만한 조것도 아는데' 이럴 건데, 너거 딸들 아는가 보자. 너 저 보자. 뭐꼬? 너, 예? 예? 너는 또? 씨? 너거 오빠 못 따라가. 이것도 뭐 대학에 다니지, 대학 소용 없어. 대학이 소용 있어야지? 너는 뭐이고? 복? 그러면 씨가 맞소 복이 맞소? 자, 씨가 맞소 복이 맞소, 답에? 예? 뭐이라? 복이 맞아요. 자. 씨가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
복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 퍼뜩 못 든다.
복이야 복. 복, 복이라고 하지 안했어요, 여게 신명기 28장에? 복 주는 *.복 주어서 완전한 것도, 완전한 것도 전부 다 복으로 만들었어. 이것도, 이것도 복 준다, 복 주면 그게 완전이 돼 버려요. 그러면 그것도 다 복으로 되고 저것도 복으로 전부 복으로 됩니다. 복으로 되는 것은. 하나님이 완전한 능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만들어 주시는 것을 가리켜서 복이라, 그걸 이름을 복이라 이랬습니다.
복이라. 복 주면 돼.
그러면, 우리가 모든 일을 할 때에 어떤 일을 하든지 그것을 하는 데에 제일 방해물이 뭐입니까? 방해물이 뭐입니까? 방해물은 제 힘으로 할라 하는 고게 방해물입니다. 제 힘으로 할라 하는 거. 내 힘으로 요거 해야 되겠다 하는 그게 방해물입니다. 제 힘으로 할라 하는 고놈 때문에 하나님이 못 해 줘요. 해 주면은 제힘으로 했다 할 터이니까 나중에 자꾸 해줄수록이 제 힘으로 했다고 자꾸 제 힘으로 했다는 거, 제 아닌데 이거짓부리 옛사람만 자꾸 커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못 해 준다 그말이오. 고놈이 원수입니다. 제 힘으로 했다는 거, 고것을 부인하라 했습니다. 고거 부인하라 그러면 우리의 할 일은 뭐입니까? 주님이 와서 해 주는데 주님이 와서 해 주시도록 하는, 주님이 해 주시도록 하는 우리의 행동, 주님이 해 달라고 간구하는 행동 그 행동이 뭐이지요? 그 행동이 뭐이요? 그 행동은 복 받도록 하는 행동이라, 우리는 장사하면서, 공부하면서도 공부하면서 '내가 부지런히 해 가지고서 공부에 일등을 해야 되겠다' 틀렸어. 하나님이 안 해 주시요. 틀렸어.
해 주고 나면 뒤에 후유증이 있어. 해 주고 난 다음에 뒤에 후유증이 있어서 뒤에 사고가 생긴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내가 공부를 잘해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 현실에서는 요것을 요렇게 내가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내가 공부를 요렇게 하라고 하시니까 내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니 순종으로서 공부한다' 요것이 고 현실에서 오늘날 네게 명하는 것을 고대로 순종해서 지키는 것이라 그말이오. 순종하는 거라. '오늘날 네게 명령한 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지켜 행하는 거라. 공부를 하되, 공부를 하되 지켜 행함으로 하는 사람이 있고, 주님의 명령을 지켜 행함으로 하는 사람이 있고. 공부를 하면서 공부하기 위해서 하는 사람이 있고, 지켜, 그 명령 지켜 행하기 위해서 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면, 지켜 행하는 사람에게는 뭐이 옵니까? 저 뭐꼬? ○, 지켜 행 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오고, 자, 지켜 행하지 안하고 제 힘으로써 공부할 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뭐이 옵니까? 고것은 옛사람이 와서, 마귀가 와 가지고서 주장해서 저주가 오게 됩니다. 제 힘으로 할라 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전부 사망이오.
잘했든지 못 했든지 다 사망입니다. 사망뿐이라. 내가 이 공부 해 가지고서 공부를 함으로써 공부가, 열심히 함으로 된다는 그게 아니라 주님이 내가 공부하는 이 공부에 복을 주셔야, 복을 주셔야 이 공부가 복된 공부가 되고 복된 지식이 되고 또 하나님이 전능으로 나에게 주시는 그 지식이 되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요 시간 명령하는 고 명령 순종 지킴으로 합니다. 요거 아주 구별합니다.
공부를 하면서도 이 시간 주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요 명령을 지킴으로, 주님이 요거 '공부해라' 요랬기 때문에 명령 지킴으로 공부하는 것이지 명령 지킴으로 공부하는 것이지 내가 공부하면 이 공부가 들어서 나를 복 되게 하겠다 그래 가지고 하지 않는다. '이 공부에게 내 모든 행복이 달렸 다' 우상이 돼 버리고 말아서 하나님이 미워함이 되고 맙쩌다. 그만 저주 가 와 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이 공부 하는 거, 공부가 나에게 유익되게 해 줄 수 없고 하나님께서 이 공부로 나에게 유익되도록 해 주시면 이 공부도 유익되지, 뭐 원수도 나에게 유익되도록 해 주시면 유악되는데 당신의 복에 있마. 복 받기 위해서 당신.이 요시간 명령하는 요 명령 순종으로 내가 지금 한다. 그러면 그게 뭘로 하는 것이오? 뭘로 하는 것이오? 요 공부를 해야 요 공부가 지금 나를 행복되게 한다 요렇게 해서 하면은 그 공부가 지금, 공부하는 사람이 뭘 만들고 있지요? 뭘 만들고 있지요? 예? 쉬운 이름이 있는데 뭘 만들고 있어? 고 앞에. ○○○, 예? 그라면, '이 공부를 해야 내가 행복되는데, 이 공부가 나를 들어 행복되게 해 주고 날 출세도 시켜 주고 날 아주 가치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지금. 그라면 그 사람은 뭘 만드는 거라? 우상, 대학이 필요없어.
대학이 필요없어. 대학이 필요없다 말이오. 없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 이거는 뭐 고등학교 졸업했나? 중학 했나? 중학 졸업했어? 중졸 했는데 '우상' 그라면 우상이 돼 버려서. 우상 만들면 망한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구약을 보십시오. 우상에 대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우상 섬기는 자는 신령한 간음하는 자라. 간부로 더불어 사귀는 자라. 우상 만드는 자, 요렇게 요 시간에 공부하라 하셨기 때문에 요 시간에 내가 지금 하나님의 명령 순종으로 공부하는데. '뭐 할라고 뭐 공부하노? 공부가 너 어떻게 한다고?' '공부가 나를 복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공부하라 하기 때문에 당신 명령 순종으로 공부합니다.' '뭐 할라고?' '복 받을라고, 복 받을라고.' 그러면 그 시간에 무슨 복 주겠오? 자식에 대한 복을 줄 거라. 복을 줘서. 복을 줘서 그 지식이 복 받는 지식, 복 있는 지식, 복된 지식이 되게 하신다 그말이오.
요것이 붙었어요. 죄와 의가 붙었습니다. 의와 죄가 딱 붙었오. 사이가 없어.
딱 붙어 있오. 요라면 요거고 요라면 요거 돼 우리의 멸망과 구원이 다 요래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사이 간격이 뭐 이만치 떨어져 있다고 생각지 말아요. 아무리, 의에서 죄가 바로 붙어 있습니다. 요라면 죄요 요라면 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서든지, 오늘 아침에 결론적으로, 무엇이든지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복 받기 위해서 해야 됩니다. 복 받기 위해서. 그거 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장사를, 부지런히 사고 팝니다. 사고 팔면서 '이래야 돈이. 부자가, 돈을 벌고 부자가 되지' 하는 게 아니라, 사고 팔아서 돈 벌기 위해서 하면은 그 사람은 해석해 들어가면은 우상을 만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돈 벌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요 시간 주님이 나에게 요렇게 명령했으니까 요리 가고 그러니까, 돈 벌라 하는데 돈을 흩어라 할 때는 흘고 돈을 버리라 할 때는 버리고 돈벌이 하는 거 집어 치우라 하면 집어 치우고, 요 시간 주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날 복을 준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면 여러 가지가 구비해야 되지 한 가지만 가지고 됩니까? 어떤 것이 구비해야 되느냐? 그 밑에 쭉 해 놨다 말이오. 그게 구비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걸 믿되 요것도 보니까, 요것도 보니까 하나님께 복 받아야 되겠고 요것도 보니까 하나님께 복 받아야 되겠고 보 받아 됐지 딴거 가지고 된 거 하나도 없어.
이러니까 모든 일을 당신에게 복 받기 위해서 해야 돼. 복이 와야 돼. 이러니까 지식에도, 지식에도 복이 와서 복된 지식이 돼야 되고. 복된 식품이 돼야 되고, 복된 농장이 돼야 되고, 복된 손으로 하는 노동이 돼야 되고, 복된 논이 돼야 되고 자꾸 복이 와야 일이 되지 복 안 되면 사망이라 그말이오. 복이라 하는 건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해 주시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능력이 와 가지고 두 가지 하고 있어. 자연 은총의 것, 신령한 것인데 자연 은총의 것도 개조하기가 쉬운 것이오.
고러면. 어떻게 하면 복 받는가? 삼가 듣고, 두 가지, '삼가 듣고, 오 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지켜 행하면' '오늘날' 오늘날이라 하는 것은 모든 시간 가운데에 오늘로 축소했기 때문에. 오늘이라는 건 현재가 있을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오늘날이라는 것은 시간을 말한 것인데 고거는 현실이라, 현재라, 요 현재라 하는 말이나 현실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요 바로 요 시간, 바로 요 시간이 오늘날의 중심이 아니겠오? 요 시간 당신이 나에게 뭘 명하는가 고것을 깨달아서 행하면 된다 그거요. 고것은 고 현실에 비추어서 보니까 뭘 하라 하는 걸 알 수 있어. 고 현실에, 고 현실에 하나님의 계명 지키면 된다 그 말이오.
요것을 기어코라도 깨닫고 합시다. 해 가지고서 금년에는 우리가 좀 한 서너 달 되면 모두 다 변화되도록, 그러면, 고 주님이 명령하는 것이 몇 종류 있다 했습니까? 주님이 요 시간. 요 시간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이 몇 종류 있다고 했지요? 세 종류?, 자, 몇 종류 있다고 했는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저 뒤에도 몇 종류 있는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이래도 하고, 이래도, 또, 저 뒤에 저게 도, 모르는 모양이네? 아는 사람 손 다 들어요. 다. 몇 종류? 두 종류. 이것 뭣 때문에 하느냐? 귀로 듣고 모르면 '옆의 사람 손가락 어찌 드는 가 보자' 보고라도 깨달아라 그말이오.
알아야 되지. 개 머래 먹듯이 그래 놓으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두 종류. 하나는 하지 말아라 하나는 하라 요 두 종류뿐이라. 하지 마라 하라 하는 거 두 종류뿐이라. 자꾸 하라는 것만 하나님이 주시지 안해요. 하라는 것만 주시면 권태나서 안 돼. 밥 먹을 때도 밥만 자꾸 떠 넣으면 느끼해서 안 돼요.
거기다가 장하고 섞어 먹어야 되지. 이 모양으로 하라는 것을 이렇게 자꾸 시키지 안하고 하라는 거 한 두 번이나 시키면 하지 말라는 거 한 번 시키십니다. 하지 말라 할 때 고 하지 말라는 고거 현실 에서 '요거는 안 해야 되겠다'하는 그것을 딱 줄 때 고때에 '안 하겠다. 요거는 안 한다. 아무리 내 습성이 들어서 안 하면 발동이 나서 죽을 지경이라도, 아편 맞는 거 모양으로 안 하면 죽겠다 싶어도 안 한다' 요럴 때 '안 한다' 할 때 고때 하나님이 와서 기쁨이 충만해지고 유익이 온다 말이오. 또 고라고 난 다음에 '해라' '요거는 한다. 죽어도 한다' 죽어도 한다 죽어도 안 한다 이라는 데에서 우리에게는 한없는 기쁨과 평강의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