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날 은혜

 

1986. 10. 26. 주일오전

 

본문:히브리서 4장 1절∼13절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래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2절,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예수님 믿어 구원 얻는 이 도리를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에 들어가는 약속을 받았으나 유익이 되지 못했는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하나님의 도리를 듣고 믿음하고 서로 화합을 해야 되는데 말씀만 가지고 있고 믿음에 화합을 하지 안했기 때문에 그들이 실패했습니다.

3절,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이미 온전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안식 세계에 들어갑니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노한다 말은 하나님이 노한다 말입니다.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같이」 하나님이 맹세하시기를 「저희가」 육체의 이스라엘 처음에 안식일 받은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으나, 이것은 우리에게 관한 말이 아닙니다.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 말은 그 말씀하신 것은 벌써 이루어져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대해서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씀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4절, 「제칠일에 관하여는」 제칠일이 안식일입니다. 안식교는 제칠일 토요일날 지킵니다. 어제가 안식일입니다. 안식교인들은 제칠일을 지킵니다. 「제칠일에 관하여는」 안식일에 관하여는 하는 말입니다.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선지자들이 성경에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하던 일을 다 쉬고 제칠일을 안식일로 복 주어 거룩하게 하셨다 창세기 2장 1절 이하에 있습니다.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저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 하였으니까 저가 아닌, 저희 속에 포함되지 안한, 저가 아닌 사람들은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 말입니다. 처음에 안식을 받은 저는 들어오지 못하지마는 그 뒤에 다시 딴 안식일을 정해 줌을 받는 사람들은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저는 못 들어간다 했으니까 저만 못 들어가지 다른 사람은 들어갈 수 있다 그말입니다.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함을 인해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안식일날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그대로 순종치 안해서 안식을 지키는 일을 순종치 아니해서 못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안식일 지키는 데에 순종치 못했다고 이렇게 여기 기록했는데 이스라엘이 안식일 지키기는 얼마나 엄격하게 지켰느냐? 안식일은 불을 때서 밥을 안했습니다. 안식일날은 닭 모이도 안 줬습니다. 만일 모이 주면 그 종자가 어데 딴데 떨어져서 싹이 나면 씨뿌린 거 된다고 닭 모이도 안 줬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안식일날 일하는 사람이 있으면 온 이스라엘이 잡아다가 돌로 쳐서 죽여 버립니다. 이렇게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그랬는데 하나님께서 순종치 아니함으로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켰는데 하나님께서 순종치 아니함으로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면 여게서 우리가 깨달을 거, 안식일날은, 지금 우리가 주일 지키는 주일은 다시 정한 안식일인데, 새로 정한 안식일인데 이 안식일 지키는 것은 일을 하나도 안 하고 가만히 일 안 하고 있고 송장같이 꼼짝도 안 하고 일 안 하고 가만히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이 안식일을 잘 지킨 것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일은 안했지마는 안식일 지키는 것은 일 안 하는 것이 안식일 지키는 것이 아니고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할 수 있는 은혜를 몽땅 받는 날이 안식일인데 이은혜 받는 일에 주력하지 아니하고 일 안 하는 것으로만 끝났기 때문에 그들은 외식자라고 하나님이 말했습니다.

오늘도 우리 교회들은 잘못 깨달아서 주일날을 일 안 하면 주일 지키는 줄 압니다. 아닙니다. 일 안 하는 것이 주일날 목적이 아니고 영원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은혜를 몽땅 종자와 같이 받는 날이 이 주일날입니다. 안식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안식 세계에 들어갈 그 은혜 받는 데에 전심 전력 기울이고 보니까 땅의 일은 저절로 하지 못하는 것이고 땅의 일 하면은 거게 전심 전력이 안 기울어지기 때문에 땅의 일 하는 자들을 죽였습니다.

땅의 일 하는 자들을 죽이고, 전심 전력 기울이지 안하는 자들은 그때에 죽이면 다 죽여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껍데기 다른 일 때문에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은혜 받는 데에 전심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 그 일하는 자만 죽이고 일은 안 하면서도 전심 전력 기울이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참고 기다려서 전심 전력을 기울일 수 있는 때까지 하나님이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못 하였으므로」 7절에,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윗은 신령하고 유력한 선지자입니다. 다윗의 예언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하나님이 예언하기 때문에 그때는 주일이 닥치지 안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다윗을 통해서 “이제 이 안식일을 주어서 영원 안식 세계의 준비를 하라는 것은 이들이 순종치 안해서 다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 내가 맹세하고 들어오지 못한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지자 다윗을 통해서 앞으로 하나님께서 다시 안식에 들어가는 이 모든 준비를 하는 날로 정하는 날이 있을 터이니까 다시 어느 날을 정해 주실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어느 날을 정하여 주실 터이니까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오늘날」 이제 오늘날이 안식일이다, 오늘날이 안식일이다 하는 이 말씀을 하나님이 선포하실 터인데 오늘날이 안식일이라는 그 선포는 어느 날이냐?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삼 일 만에 부활하신 그날이 오늘날이라고 예언한 그 안식일입니다.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설정하셨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중생 새생명의 영감과 진리의 이 은혜를 우리에게 끼치는 대속의 부활을 하셨으므로, 죽으시고 살으신 이 두 가지 대속 공로로 오늘날이라는 이 새 안식일이 우리에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주일은 안식일로 다시 정한 안식일인데 다시 정한 안식일이라고 이렇게 하시지 안하시고 주일날이라고 하신 이유는 다시 정한 안식일이라는 그것은 영원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모든 구비 은혜를 이 안식일날 받는다 하는 그 은혜 받는 날짜와 방편을 가리켰고 주일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날짜와 방편이 아니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은혜의 실상이 곧 주님의 사활로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방편보다 실상이 귀중한고로 이 날을 주일이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칭한 것입니다.

이래서,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우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했습니다. 마음을 강퍅케 하는 것은 어떤 것이 마음을 강퍅케 하는 것인가? 주일날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세 가지 대속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고 또 부활하심으로 성령과 진리의 은혜를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설정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부활로 온 것이고 진리도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이 사람, 피조물 되어 오셨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세 가지 대속을 베푸셨으니까 그만 해도 큰 말할 수 없는 희생인데 그것만 가지고는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만 받지 이 대속을 자기가 자기 것을 삼아 영원히 이 대속으로 영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대속으로 영생을 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다시 창조주로 피조물을 입고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래서, 베드로전서 1장 3절 이하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케 하심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가 중생됐습니다. 우리 중생은 영감과 진리로 중생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로 영감과 진리가 우리에게 왔고 또 예수님의 부활로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우리가 영생하는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살아난 것은 영만 살아났고 심신은 살아나지를 못했습니다. 영이 주격이요 심신은 영의 소유가 되어 있는 것인데 주격인 영을 이 세 가지로 하나님이 살리시고 난 다음에는 살아난 이 영을 붙들고,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이 이 중생된 영을 붙들고 우리의 심신을 영생으로 살리는 역사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입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피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의 이 지극히 큰 능력의 역사가 중생된 내 영을 통해서 내 심신에게 가르치고 타이르고 또 모든 사람을 통하여 가르치고, 성경을 읽어 가르치고 이래 가지고 우리가 현실 현실에서 이 심신이 중생된 영과 성령과 진리와 피가 인도함을 따라서 이 심신이 복종해 살면 과거는 순종치 아니함으로 멸망했는데 우리가 이렇게 복종해서 순종해 살면은 안식 세계에 들어가서 사는 준비가 완전히 됩니다.

일을 안 하는 것은 이 세 가지 대속의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입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다 제거해서 입지 못하게 하는 그 방해하는 것들은 다 제거한 것이 되지마는 일을 안 한다 할지라도 이 은혜를 받지 안하면 일만 안했지 이 은혜 받지 안했기 때문에 일 안 하는 것은 이 은혜 받기 위해서 일하는 자를 죽였습니다. 알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아무리 이 예배당에 와서 앉았을지라도 이 다섯 가지 대속을 우리가 이 시간에 받아서 자기 것을 삼지 아니하면 순종치 아니한 자입니다. 다섯 가지 이 대속을 실상으로 자기 것이 되어 있는데 자기 것 되어 있는 것을 자기 심신이 깨닫고 자기 것인 것을 알아서 이 다섯 가지를 가진 마음, 가진 몸이 되어 이 다섯 가지를 가지고 이 다섯 가지로 엿새 동안 사는 사람 되면 은 안식 세계에 가 가지고 안식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미치지 못한다는 말은 이 주일날 일만 안 하고 이 다섯 가지 실상을 자기 것이 되어 있는 건데 이 실상을 자기 것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것인 것을 믿지 못함으로 이 다섯 가지의 능력의 혜택을 이용하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자가 될까 두려워함이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미치지 못하는 자가” 여게 도달치 못하고, 이 은혜를 받는 데에 방해하는 이 세상일 그거는 다 중단을 시켜서 안 하지마는 이 다섯 가지 은혜 받는 데에 도달치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옛날도 순종치 안한 것은 그들이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켰지마는 하나님께서 예약적으로, 모형적으로, 예표적으로 준 짐승의 피를 가지고서 속건제, 속죄제, 화목제, 번제 이 네 가지 제사로 인간이 어떤 죄가 있어도 이 네 가지 대속 이 공로를 그때 예표적으로 가르친 것을 입어서 양의 피로 대속을 받고 다시 죄를 짓지 않으면 얼마든지 깨끗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랬는데, 그들이 안식일날은 이 능력을 받는 날인데 이 날을 이 능력 받는 것은 그때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가르치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르치지를 못하고 껍데기 일하지 말아라는 것만 가르쳤지 일하지 안하는 그 이유가 완전히 사죄, 칭의, 화친, 영감, 진리의 이 다섯 가지 은혜를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이 베풀어 놓은 것을 우리가 받고 있고 그때 사람들은 앞으로 예수님이 베푸실 것을 예약적으로 그들이 모형적으로 주신 그 모형, 형상을 함으로써 실상은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히실 때에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약과 모형으로 준 것을 가지고 그들이 깨끗해지지를 못한 그것을 가리켜서 순종치 아니했다 이랬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그 모든 성도들이 이 짐승의 피로 깨끗함을 입었으나 완전 깨끗함을 입지 못하고 깨끗함을 입을 수 있는 자 축에 들어 있었습니다. 있다가 언제 깨끗함을 입었느냐?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실 때에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고, 또 바위돌이 갈라졌고, 어두워졌다가 다시 광명의 날이 왔고, 부활하신 다음에 무덤 속에 죽은 의인들이 다 살아나 가지고서 한꺼번에 예수님과 예루살렘에 들어갔다가 다시 예수님 재림 때 부활하기 위해서 무덤 속으로 들어간 것으로써 예루살렘에 그 수많은 이스라엘이 볼 수 있게 하셔서 이 구약은 예약 예표의 짐승의 피로써 이렇게 예약해서 속량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속하셨을 때에 다 그때에 완성이 됐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 약속의 예약의 말씀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 말은 대속에 실상 제물이 되기 위해서 왔다는 말씀입니다.

이래서, 8절에,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여호수아가 저희들에게 안식을 줬는데 그 안식 가지고 완전히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 「그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다시 새 안식일을 정하지 안했을 터인데 그때 안식에서는 실패를 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무궁세계의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그 준비하는 준비의 날로 주시기를 세 차례 줬습니다. 처음에 아담 하와에게 줬는데 그때는 대속의 길이 없이 줘서 한 사람도 성공하지 못하고 다 실패했습니다. 그 뒤에는 안 돼서 하나님이 다시 대속의 공로를 약속해 가지고 대속의 공로를 믿음으로 준비하게 해 가지고 구약 성도들이 다수는 들어가지 못했고 약간의 수가 이 예약 대속을 믿어서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다시 이것도 폐지하시고 다시 재안식일을 정해 주셨으니 재안식일이 뭐이냐? 이제는, 과거에 그림자와 같이 예약적으로 바라보던 다섯 가지 대속을 이제는 다시 안식일로 정하는 날에는 이 다섯 가지 대속의 실물, 다섯 가지 대속의 실물을 내어다가 우리에게 주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주일은 예수님이 죽으심만 가지고 이 주일을 설정 못 했고 부활하심으로 합해서 사활로 우리에게 영원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그 실상을 우리에게 주시도록 됐고 우리는 받을 수 있도록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주일은 예수님의 다섯 가지 이 대속의 실상을 받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그러면, 주일날은 우리가 사죄의 실상을, 칭의의 실상을, 화친의 실상을 못 받은 자는 받는 날이요, 받은 자는, 받았던 것을 잊어버린 자는 도로 찾는 날이요, 이래서 이 날은 이 세 가지 대속을 자기가 가지고 입고 자기는 세 가지 대속 받은 의인이라, 죄 없는 자라, 하나님과 화친된 자인 것을 확실히 믿고 그 사람인 것을 깨닫고, 이제는 예수님의 부활로써 영감과 진리의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기 때문에 이날 영감 받은 자가 영감으로 더 충만해지고 진리 받은 자가 진리로 더 충만해져서 죄 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화친된 자의 생활 곧 영감과 진리 생활을 계속하는 그 능력을 받는 것이 오늘 주일날인 것입니다.

이 능력을 받는 자는 순종한 자고 이 능력을 받지 안는 자는 순종하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으라는 것을 믿지 않고 받으라는 것을 받지 안하고 그런 자이니 “다시 네가 더럽히지 말아라” 하는 것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요, 다시 더럽혔으면 하루 일곱 번이 아니라 천 번 더럽혀도,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천 번 더럽혀도 더럽혔다는 걸 네가 깨달을 때는 즉시 ‘주여, 내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고 즉시 사죄, 칭의, 화친과 영감과 진리의 은혜를 입어 가지고, 천 번 범했으면 천한 번째 즉시 일어나는 거, 일어나는 이것이 우리의 사는 생활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뭐 그렇게 범하고 일어나면 된다 하면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속한 이 공로를 속된 것으로 업신여기는 자의 받을 벌이 크다고 히브리서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럴 때는 그것이 고범죄가 되기 때문에 사유는 못 받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음 아피해서 ‘이제 내가 요 죄를 죽어도 안 짓겠습니다.

이제는 주의 말씀대로 내가 법에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 모시고 화친하여 살겠습니다. 영감과 진리로 삽니다.’ 요렇게 하면서 시작해서 영감과 진리로, 사죄, 칭의, 화친의 사람으로 살 때에, 살 때 ‘나는 살아났다, 나는 살아났다, 나는 영생을 가졌다, 나는 하나님의 공심판에 무죄자다, 죄가 없는 자다, 나는 공심판에 의로 인정받은 자다, 나는 하나님과 화친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 하나님의 몸이 됐다.’ 이 사실을 자기가 믿고 이 사람이 되었으니 이 사람된 것을 생각해서 이 사람으로 일어서 살고 있는 거 주님이 제일 원하십니다.

이것은 하루 몇 번이든지 해서 이래 되는데 주일날 여게 대한 실상을 우리가 받고, 받은 실상을 우리가 연습하는 것이 엿새 동안이요, 또 훈련받는 것이 연단받는 것이 엿새 동안이요 연성하는 것이 엿새 동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일날 받은 이 은혜 생활을 내가 할라고 해도 자꾸 실수되고 실패되게 되니까 실패되면 또 한 번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됐으면 하나님께서 됐다 하면은 또 연단해서 우리에게 됐다 하나 안 된 부분이 있다 해서, 연단은 금을 불로 연단하는 것처럼 ‘나는 이 다섯 가지를 받았습니다’ 할 때에 받은 것을 내놨다가 뺏겼다가 또 도로 찾았다가 자꾸 이게 연습이고 연습을 하는 가운데에 ‘됐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 `됐다' 할 때에 다시 금을 연단하는 것처럼 환경을 조금 어렵게 하니까 또 내놨습니다. 이것이 이제 연단입니다.

우리는 엿새 동안은 연습하는 날이요 연단받는 날이요 이래 가지고 엿새 가운데 연성, 완전히 이래 주일날 받은 것은 완전한 내것을 만들어서 연성, 연습 하고 연단받아 연성해서 완성하여 다시는 세상이 어떻게 생명 가지고 위협하고, 물질 가지고 위협하고, 안일을 가지고 위협하고, 세상에 모든 행락이나 어떤 미를 가지고 유혹을 해도, 유혹에도 위협에도 강제에도 나를 높이는 데에도 유혹받지 안하고 주일날 받은 이 다섯 가지 이 실상을 자기가 뺏기지 안하는 요것이 영원 무궁세계의 안식에 들어가는 준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하나님이 쉰다 말은 하나님이 일하지 안하고 논다 말 아닙니다. 쉰다 말은 창조하시는 일을 끝냈다 말입니다. 이제 창조는 다시 안 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는 다시 안 하시고, 창조는 없는 가운데서 만든 것이 창조인데 없는 가운데 만들어 놓은 창조하신 그걸 가지고서 하나님께서 재가공은 수천 번 수만 번 합니다. 그것은 이미 창조해 놓은 그 재료를 가지고 요렇게 가공하고 조렇게 가공하고 요렇게 재창조하고 이렇지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 창조하시는 일은 다시는 하지 않습니다. 그 일 쉰 걸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안식에 들어간 사람은 자기 일을 쉬느니라 하는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요것을 여러분들이 잘 들으십시오. 쉰다 말은 안식 세계의 준비, 안식 세계의 준비가 끝났다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안식 세계의 준비가 끝났다.

그러면, 안식 세계의 준비는 무슨 준비인가? 다섯 가지 준비인데 준비한 대로 많이 했든지 적게 했든지 그것으로써 그 사람은 끝나고 그것으로 영원히 삽니다.

거게 준비가 제일 큰 게 무엇이냐 하면은 하나님하고 자기하고 밀접한 결합입니다. 하나님과 자기와 결합이 그것이 이제는 세상 있을 때는 하나 결합에 둘 결합할 수 있고 둘 결합에 열 천 만을 결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각도는 천도 만도 넘습니다. 억억만도 넘습니다. 이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의 일 면만 결합한 사람 있고, 백 면 결합한 사람 있고, 억억만 면 결합한 사람 있고, 하나님과 결합은 수많은 관계 있기 때문에 이것이 하늘나라의 영광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되 요런 면으로만 사랑하고 조런 면으로는 상관없고 조런 면 그런 면만 사랑했지 다른 건 없고 그래서, 하나님의 수많은 그 다각의 면과 내가 다 이렇게 화친을 예수님이 다 맺으셨었는데 요것을 내가 버리지 안하고, 주님이 맺은 화친은 완전 화친이기 때문에 ‘주님이 나를 대신해 화친 맺어 주셨으니 이 화친은 나는 완전한 화친을 맺었다’ 하는 요것을 자기가 믿고 완전한 화친을 맺었기 때문에 ‘화친은 나의 것이요 화친 맺기 위해서 주님이 죽으신 그 죽으심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범죄케 하는 그놈은 죽었고, 그놈은 죽었고 내 심신으로 된 영육, 내 영육은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을 입었으니, 화친을 입었으니 화친은 내것이요 내 영육은 주님의 것이라.’ 요 주님의 것이 완전히 된 자는 주님의 입으신 화친은 완전히 자기 것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면은 어떤 사람이 영광스러운 사람이냐? 땅위에서 일을 많이 한 사람보다도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과 부활의 두 가지 대속을 믿고! 믿고! 믿고! 옛사람 완전히 죽여 버렸고! 자기의 영육은 완전히 주님의 것이 돼 버렸고! 주님의 이 다섯 가지 대속은 자기 것이 된 요 믿음 가진 사람이 최고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통치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으로 되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그러면 안식일을, 구약 때는 안식일을 일하지 안하는 것으로만 안식일이라고만 알았는데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하는, 우리가, 안식일 주신 것은 안식 세계에 들어갈 그 모든 준비를 하는 날이 안식일인데 이거 뚱딴지같이 안식일 준비하는 것은 빼내 버리고 일하지 않는 것만 위주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다 망하고 말았다 그말입니다.

오늘도 재차 안식일로 주신 날인데 재차 안식일로 주신 것을 다시 정한 안식일이라 했는데, 다시 정한 안식일이 더 알맹이겠습니까 이 다섯 가지 대속의 실상을 주는 날이라 하는 것이 더 알맹이입니까? 어느 것이 알맹이고 어느 것이 껍데기입니까? 이 안식에 들어갈 그 실상을 받는 날이라,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는 그 실상을 받는 날이라는 그 뜻으로서 안식일이라 정했고, 그 실상을 이제 우리에게 주시는 날이라 하는 것으로 주일날로 정했으니까 어느 것이 껍데기이고 어느 것이 더 알맹이가 되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게 알맹이입니까? 안식 세계에 들어 갈수 있는 모든 구비 요소를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는 받는 날이라 하는 이것이 더 알맹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면 예수님의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의 이 다섯 가지의 사죄, 칭의, 화친, 영감, 진리 이 다섯 가지 실상을 이 주일날 준다, 이 실상을 주니까 이 실상을 받아라 하는 실상을 받는 날이라, 실상을 받는 날로 우리에게 주신 이것이 더 알맹이가 되겠습니까 껍데기가 되겠습니까? 이게 더 알맹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모르는 사람들, 손 들어요. 알맹이 돼요, 알맹이. 다 들어요, 다. 더 알맹이입니다. 저것은 방편을 말했고 이거는 실상을 말했지 않습니까? 방편보다 실상이 더 알맹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도 온 세계 교회가 주일날은 일하지 안하는 날로 이렇게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 다대수이고 주일날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써의 이 다섯 가지 대속을 우리에게 해서 우리에게 주님이 다섯 가지를 실상을 만들어 가지고 이 다섯 가지를 우리에게 주시는 날이니 우리는 주일날 다른 일 다 집어던져 버리고 주일날 이 다섯 가지를 받아야 된다는 요 사실을 깨닫고 다섯 가지를 받지 못하면 저는 주일날 일 암만 안 한다 해도 소용 없고 이 다섯 가지를 받는 날인 걸 알고 요 다섯 가지를 받을라고 전심전력 기울여 요 다섯 가지를 받는 일을 열심히 했으면 순종하는 사람이요, 이 다섯 가지를 주일날 받아 가지고 받은 다섯 가지를 엿새 동안 몇 가지 합니까? 엿새 동안에 몇 가지합니까? 엿새 동안에 몇 가지 하는 것이 엿새 동안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엿새 동안에 몇 가지? 세 가지 하는 날이야, 세 가지.

다섯 가지를 주일날 받은 것을 하나는 뭐이요? 연습하고, 또 하나는? 연단받고, 또 하나는? 연성이라 하는 완성했다 그말이오. 이 다섯 가지를 엿새 동안에 완성을 하는 것이 엿새 동안에 우리 할 일입니다. 자기 일을 힘써 하라 말은 이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직장에 있든지, 직장은 뭐 수많은 종류의 직장이 있지마는 어느 직장에 있든지 자기가 기독자라면 그 직장에서 자기는 이 다섯 가지를 자기 것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자기 것 만드는 연단을 받고, 연단받는 거는 자기것 만들었다가 자기 것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으니까 그만 처음에는 떨어졌다가 그 다음에 두번째는 뭐라 해도 또 만들고 이래서 그것이 연단되는 것입니다. 연단하고, 그 다음에 연성이라 하는 것은 그리 연습하고 연단받아 가지고 ‘이제는 천지가 달라들고 뭣이 달라들어도 내가 주일날 받은 요 다섯 가지는 놓지 않는다’ 해서 자기 것 받은 사람은 안식 세계에 들어갈 모든 그 부분에 대한 준비를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져」 이스라엘 백성들이 껍데기 일만 안 하고 마는 거게 그런 걸 본받아 가지고 오늘 신약 교회에 주일날 일 안 하는 것으로만 이제 위주로 사는 이런 껍데기 생활에 빠져,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런 것 본받지 말고 어짜든지 알맹이 차지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은 이 공자, 맹자, 석가모니 뭐 이런 이종교 사람들이 말한 거와 같은 그런 말이 아니고 이 말씀이 없는 가운데 우주를 창조한 능력의 말씀입니다. 이 한 말씀이 이 우주보다 큽니다. 이 우주에 있는 전체, 영계에 있는 모든 피조물 전부 똘똘 뭉친 것보다 한 말씀이 능력 크고 더 권위 있고 더 영광스럽고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이런데 이 말씀을 어떤 뭐 위인들이 말한 위인들의 말과 같은 말로 알기 때문에 이는 다 저주를 받아야 하는 것이요 멸망을 받아야 하는 망령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날카롭다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날카롭다 말은 하나님 말씀은 들어가지 안하는 곳이 없다 말입니다. 우리 생각 속에 다 하나님 말씀이 벌써 들어와. 내가 생각하면 이 생각 속에 하나님 말씀은 우리 생각 속에 들어왔습니다. 들어와 가지고 거게서 이는 정죄, 이는 옳다 해 가지고 다 멸망과 구원을 다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혼은 우리 마음 곧 이성 이런 것들을 말하고,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영물을 말하고, 관절과 골수라 하는 것은 우리 고기덩어리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이 말씀이 감찰합니다.

말씀이 감찰하고 안 들어가는 데 없습니다. 다 들어가서 그대로 심판이 딱딱 즉시즉시 심판과 멸망과 구원이 딱딱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님께 지으심을 받은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나타나지 안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이거는 비유입니다. 벌거벗었으면 몸뚱이 다 보이지 않습니까? 이제, 벌거벗었으면 알몸뚱이만 나오지 안해요? 이와 마찬가지로 속에 알맹이가 다 나온다 그말입니다. 속에 알맹이 다 나와. 우리 마음의 알맹이도 다 나오고 생각의 알맹이도 다 나오고 욕심의 알맹이도 다 나오고 그 진상이 그대로 솔빡 다 드러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말씀 끝으로 한 거는 뭐이냐 하면은 예수님의 다섯 가지 대속을 자기 것 삼지 않고는 우리가 구원 얻는 길이 없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평생 발발 떨면서 살았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 것 삼고 믿어 이 공로를 벗지 안하는 데서만 우리의 구원이 되는 것이지 아무리 애를 써 공을 들였다 할지라도 이거 가지고 됐다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 전지하신 그 빛 앞에 갖다 놓으면 전부 막 흠투성이고 죄투성이입니다. 이거는 그래서 욥이 말하기를 인간의 의는 아무리 의라 해도 때묻은 옷과 같이 우중충하이 전부 때가 꽉 끼인 더럽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주일날 뭐해야 될 건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이제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이러니까 오후에 이 말씀이 또 계속될 것입니다.빼지 말고 나와요.

사람들이 ‘아이구, 듣기 어렵다.’ 될 수 있는 대로 쉽게 가르칠라고 하는데 내가 하는 말은, 듣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은 듣기 쉽습니다. 왜? 내 말은 아주 어린 아이 말 내가 씁니다. 어린 아이의 단어를 쓰고 아주 이 농사꾼 서민들의 말을 씁니다. 내 단어는 아주 서민들의 단어를 쓰는데 내가 가르치는 그 속에 들어 있는 이치를 지금 여러분들이 깨닫기 어려워서 이치를 깨닫지 못해 그렇지 내 말은 못 알아들을 게 하나도 없을 것이오.

이러니까, 알지 못하는 참된 이치를 이것을 가르칠라고 쉬운 말로 가르치지마는 자기가 들어 보지 못한 이치이기 때문에 모르니까 들어 보지도 못한 이치, 들어도 모르는 그 이치를 제가 어떻게 행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한 구멍입니다. 어짜든지 하나님 앞에서 구원은 요 한 구멍으로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어데서 배우든지 요 이치를 바로 배워서 바로 행한 것만치 구원이 되는 것이지 바로 행하지 못하면 구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려워서 알아듣지 못하는 자는 네가 공부를 더 해 가지고서 알아듣도록 해라, 네가 어려워서 알아듣지 못하니까 쉬운 데로 가겠다 하면은 네가 딴 하나님이 있는 줄 아나? 네가 언제라도, 알기 어려운 이치, 이게 참 이치이기 때문에 너희들과는 거리가, 너거는 지옥에 있고 하늘나라 것이기 때문에 거리가 멀어서 못 알아듣는 것이니까 너희들이 회개해서 알아들어야 되지 안 알아 듣고 네가 어데로 가면, 어느 강단 어느 교회 어느 목사 밑에 배우면 요거 안 배우고 모르면 너는 모르는 것만치 다 구원은 박살되고 마는 것이니까 배워라 해야 할 것입니다.

어데로 피해 가면 어데 뭐 딴 하나님 있어? 거게서 이걸 만일 평생 안 가르쳤다면 거게서는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안 들으면 저 우선이야 편하지마는 우선 편할라고 하면은 안 믿는 사람은 더 편하지, 뭐할라고 믿을 거 뭐 있습니까? 천주교나 믿지. 천주교는 뭐 주일 지킬 것도 없고 기도 할 것도 없고 성경 볼 것도 없고 그는 주일날 얼마든지 술장사 하고 무슨 일 하고도 할 수 있다 하는 그런 것은 쉽지마는 구원이 안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 어리석지 마십시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저희들을 무한한 대속을 입혀 주셨지마는 너무 지식이 천박해서 여게 대한 크심을 깨닫지 못합니다. 무한하신 주의 구원을 어떻게 유한한 저희들이 알겠습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은혜로 우리 각자들에게 알게 하여 주옵소서.

이 주일날 주님이 신인양성일위로 이 세 가지 완성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죽으심으로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을 주신 지극히 큰 이 은혜, 지극히 큰 권세, 지극히 큰 영광, 완성을 저들이 알게 하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이신 영감과 진리가 우리에게 임한 이 크심을 알게 하사 이 실상을 주일날 다 받아서 엿새 동안 능히 세상과 악령과 죄와 사망을 이기고 이 빛으로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이 능력을 주일날 다 받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믿음을 주시고 이 소망을 주시고 이 확신을 주셔서 다 받아 가져 완전히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충만하고 강건함을 얻는 이 주일이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또 많은 생명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흑암에 있던 자들이요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이제 돌아왔사오니 주님의 품안에 안아 주시고 장중에 잡아 주셔서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사 이 세상 마귀와 죄와 사망과 멸망이 그들을 침노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시고 언제든지 주님에게 고할 때에 들으시고 알뜰히 인자하게 서로 담화하고 의논하여 거리낌이 없이 염려 없이 세상을 발 아래 밟고 평강 가운데서 축복 속에서 세상을 잘 이겨 구원 준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주의 십자가의 사랑이 저희들 속에 더욱 더 불붙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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