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7 22:30
주일날 얻는 능력
1986. 11. 16. 주일새벽
본문:베드로전서 1장 22절∼25절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땅에 속한 사람과 하늘에 속한 사람은 아주 판이합니다. 땅에 속한 사람은 사망에 속해서 사망으로 사망에 점점 이르게 하는 그 사망의 법을 가지고 살고 하늘에 속한 사람은 생명법을 가지고 생명에서 생명으로 점점 나아가게 하는 이런 방편으로 삽니다.
그러면 땅에 속해서 사망으로 사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육체로 산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하늘에 속해서 영생하는 생명으로 생명에 점점 나아가고 있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 곧 새사람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육체로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육체로 사는 사람인가? 그 사람의 행동은 미움에 속한 행동을 하고 있고, 미움에 속한 행동이라면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라는 것은 모든 사람보다 자기를 더 낫게 귀하게 좋게 이렇게 여겨서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위하게 하는 그런 계획과 도모로 살고, 하늘에 속한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웃에 유익을 끼치는, 이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는, 유익을 끼치는, 나보다도 남이 기쁘고, 내 마음이 쾌한 것보다도 다른 사람이 쾌하고, 다른 사람이 불쾌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면 내 자신이 차라리 불쾌했지 다른 사람을 불쾌케 해 가지고 내 자신이 쾌하게 하려는 그런 것을 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에 속한 사람과 땅에 속한 사람은 하늘에 속한 사람은 땅의 것을 소망하지 안하고 하늘의 것을 소망해서 그 소망을 이룰라고 애를 쓰고 땅에 속한 사람은 이 세상에 속한 그런 것들을 자꾸 달성할라고 애를 쓰게 되고, 또 땅에 속한 사람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다른 사람을 해하고 자기를 유익되게 하려는 사람이고 하늘에 속한 사람은 자신이 모든 사람을 유익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라고 애를 써서 자기가 모든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요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말 한 마디라도 하고 행동이라도 해서 그것을 자꾸 연습하고 연성해 가지고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될 수 있는 그런 필요한 사람이 될라고 애를 쓰는 것이 하늘에 속한 사람의 생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사람의 생활은 사랑이요 또 땅에 속한 사람의 생활은 미움입니다. 미움에 속한 것은 다 사망이 되는 것이고 사랑에 속한 것은 생명이 됩니다. 이래서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일생 동안 살면서 자기의 언행심사가 자기가 됩니다. 그러면 일생을 살고 나면 한 시간도 빠짐없이 자기 혼자 생각한 것이나 여럿 있는데 생각한 것이나, 행동한 것이나, 마음 먹은 것이나, 뜻한 것이나, 소원한 것이나 그 모든 것이 다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일생은 마음이나 생각이나 뜻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그것은 자기라는 사람을 보면은 다 그것이 거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했나 하는 것을 필름에다가 그 촬영해 놓으면 그 촬영된 것은 변동할 수가 없이 어떻게 행동했다는 것을 그 사진을 보면은 다 나타나 가지고 있고 또 서로 말하기를 어떻게 말했는가 하는 그 말한 것이 다 녹음에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본인들이 다른 말을 할래야 할 수가 없도록 되는 것처럼 그렇습니다.
이래서 요 사이도 뭣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다 녹음기를 몸에다 지니고 다닙니다. 그래서 사람이 서로 주고 받은 그 말을 한 것이 다 녹음에 기록돼 있기 때문에 뒤에 그 사람이 ‘내가 언제 그런 말 했노?’ 하는 그런 것을 할 때에는 그 녹음을 틀면은 자기 말한 것이 나오기 때문에 뒤에 가서 이유를 못 하는 것처럼, 또 무슨 본인이 부인할 수 있는 그런 일에는 자기도 모르게 사진을 찍어 가지고서 사진에 그 찍혀 가지고 있으면은 그 본인이 부인할 때에 사진을 내면서 ‘이는 누구냐? 이래도 네가 부인하겠느냐?’ 사진에 촬영돼 있으면 그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무슨 그 필요한데 그 사람이 꼭 부인할 수 있는 그런 일이면 그것을 요새는 사진을 박아 가지고서 그렇게 할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기에 지금 연구하기를 그 사람이 다니는데 눈에도 보이지 안하는 그런 조그만한 것을 하나 날려 보내면 그 몸에 붙어 가지고 있다가 그걸 또 떼서 보면 거게 그 사람의 언행심사 한 것이 촬영도 되고 녹음도 돼 가지고서 나오기 때문에 이 모두 미국에서도 그것이 약간 좀 있어 가지고서 도청했다고 그때 국제 가운데 많은 시비 있었던 것이 다 그런 것입니다.
그래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하신 것은 그 사람의 일생 동안 자기가 밤이나 낮이나, 혼자 있을 때나 여럿 있을 때나 한 그것이 뭐 전부 다 촬영되어 있고 또 녹음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입니다. 자기가 그대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슬기로운 사람은 자기가 땅위에 이런 거 저런 거 욕심내는 것보다도 자기가 과거에 언행심사의 행동한 그것이 지금 어떻게, 내 눈에는 보이지 안하지마는 하늘나라 가면은 이 꺼풀을 다 벗기 때문에, 가리운 꺼풀을 벗기 때문에, 지금은 많은 껍데기로 가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나쁜 행동이 있는 것을 말하고 싶지마는 그 사람 권세에 눌려서 또 그 사람이 악하기 때문에 말 안 합니다. 말 안 하고 그만 뭐 그대로 덮어두고 이래 있어도, 악하기 때문에 악한 그 독해서 덮여 가지고 있는 거, 돈이 많아서 덮여 가지고 있는 거, 그 사람 너무 입이 무섭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서 바른 말 하지 못하는 거 별별 것이 다 있고 또 웃는 낯에 침 못 뱉기로 되어 있는 그런 것도 있고 있지마는 이다음에는 그런 것이 확 다 벗어지기 때문에 속에 진상이 다 나옵니다.
그 진상이 나오니까 나오기 전에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그것을 다 해결지워서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으로 주님에게 고해서 사유함을 받고, 그라면 잘못된 것도 있지마는 그것을 회개해서 주님 앞에 사유받은 그것도 또 있다 말이오. 그것도 있어. 있기 때문에 자기의 그 잘못된 것을 찾아서 해결을 지워서 죽기 전에 해결지울라고 애를 쓰고, 또 다른 사람으로 더불어 조그마치라도 내게 대해서 원망하든지 불평하는 것이 있으면은 그런 것을 “하나님 앞에 제단에 예물을 드릴라고 가져갔다가도 먼저 그것부터 다 서로 화해를 하고 화목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제사를 드리라”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것도 어짜든지 해결을 지울라고 애를 씁니다.
해결지울라 해도 상대방이 해결을 짓지 안하고서 독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이쪽에서 그 해결을 짓고 또 해결 짓도록 그 사람도 그래 가지고 서로 화친하도록 이렇게 사랑에 속해지도록 할라고 애를 써도 그 사람이 안 들어 줘도 애쓴 그것도 또 기록에 있다 말이오. 그러면 나중에 가서 그게 드러날 때에 상대방은 부끄러울 것이고 이 사람에게는 부끄러움이 면할 것이고 그럴 수 있다 말이오.
그런데도 또 ‘뭐 이리 되면 상대방은 부끄러울 것이고 내게는 부끄러울 것이 없다. 이리 되면 좋겠다.’ 싶은 거 그것도 또 박혀집니다. ‘네가 너만 면하고 나는 거게서 반대하고 있으면은 너는 화친을 원했고 나는 화친에 반대하고 요랬으면 네 안면은 좋지만 나는 수치가 되어지도록 그런 생각을 가졌지?’ 하는 그것도 가지고 있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창세기에 보면은 아비멜렉 족속이 그렇게, 아브라함이 거기 가 가지고서 아브라함의 아내를 취할라고 이렇게 해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 아브라함은 또 자기 아내를 자기 아내라 하면은 아내 뺏들라고 자기 죽일까 싶어서 둘이 의논하고 사촌간이라 형제간이라 이렇게 말해. 근본은 그 이복형제간입니다. 그 나라는 또 우리 나라와 달라서 피가 같은 사람들이 아니면은 더럽다고 하지를 안합니다. 우리는 피가 같은 사람끼리 혼사하면 더럽다고 짐승 같다고 또 그래요. 그건 풍속이기 때문에 그건 사소한 일들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아 가지고 그만 그 백성들이 전부 태문이 막혀 가지고 임신도 안 되고 아이도 낳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그거 그라면 죽는 거 아닙니까? 이랬는데 태문이 닫혀졌는데 아브라함은 잘못한 게 없지마는 아브라함의 그 인연해 가지고 그렇게 상대방이 그런 범죄를 해서 피해를 당하게 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사람들을 어짜든지 회개를 시켜 가지고 그 사람들도 그 너로 인해서, 저거가 잘못하기는 잘못했지마는 너로 인해서 그들이 해를 보게 된, 너를 해할라 하다가 해를 보게 된 그런 것이 없어지도록 해라 해서 위해서 기도하고 그 사람들이 회개하고 이래 가지고 아브라함이 그들 위해서 축복을 하고 할 때에 그들도 당장 태문이 열렸고 또 아브라함에게는 아내 사라가 이삭을 잉태하게 됐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이렇게 깨끗해야 됩니다.
우리가 그 거석할 때에 그 사람이 나를 해할라고 하는, ‘자기 칼에 자기가 엎드러져서 상했다’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 말과 같이 ‘저거가 우리를 해할라고 하는 그 해할라 하는 것이 도리어 자기를 해하는 것이 되게 해 주옵소서. 저희들이 우리를 살해할라고 함정 판 그 함정에 자기가 거게 빠지게 해 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혹 합니다. 성경에 있기 때문에 하지마는 그 하는 그것을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했지마는 그렇게 하는 것을 하고 난 다음에는 회개를 해야 됩니다.
‘그는 나를 해할라고 함정에 빠트리는 일 했지마는 그게 몰라 그러니까 그 죄를 사해 주시고 그 사람이 그런 죄를 회개케 해 주옵소서’ 하는 그런 기도 하고 나면 개운하고, 나 해할라 하는 그게 도리어 자신에게 해가 되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 하고 난 다음에는 불쾌해서 성도들은 뒤에 다시 그 기도를 고쳐서 하게 되는 것이 성도들인 것입니다.
이래서, 하늘에 속한 사람을 새사람이라 또 땅에 속한 사람을 옛사람이라고도 하고 육체의 사람이라고도 그렇게 말합니다.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본질과 본성을 말하는 건데 타락한 후에는 본질과 본성이 악입니다. 배암에게 유혹받아 가지고 그랬기 때문에 악이라 말은 자기 중심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라 말입니다.
그러면 종교 창설자 어떤 종교든지 뭐 종교라는 종교 창설자면 대단히 선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래 했다 하나 그것을 살펴보면은 따져들어가보면은 결국 다른 사람은 돈 노렸는데 자기는 돈 노리지 안하고 돈보다 더 높은 권세 노렸고, 권세보다 더 높은 도덕을 노렸고, 도덕보다 높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참으로 찬성하고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 영광을 노리고 한 것이 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중생되기 전에는 절대로 사랑의 법칙이라 하는 것이, 사랑의 법칙이 생명의 법칙인데 생명의 법칙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법칙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중생해야 그 속에 본성이 사랑의 법칙을, 생명의 법칙을 할 수가 있지 그 전에는 안 됩니다.
그런데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은 자기는 모르게 다 영은 중생돼서 영은 살아났습니다. 영이 살아났기 때문에 영이 살아났으니까 영이 살아난 사람은 영생을 얻을 그런 소망이 있고 또 다른 사람, 모든 존재들이 ‘저거는 없어도 너는 있어야 된다’ 모든 존재들이 없으면 안 된다고 있기를 소원하는 그런 존재, 그런 존재는 모든 존재에게 필요한 존재라야 그렇지 필요치 안한 존재는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시 말하면 사랑은 사람이나 만물이나 모든 존재가 다 없어지기를 원치 안하고 있기를 원하는 그것이 사랑의 법칙으로 산 자고 또 미움의 법칙에 산 것은 모든 존재가 있기를 다 싫어합니다. 그거는 부부간에는 사랑하는 줄 알아도 부부간에는 사랑하는 것 같애도 부부간에도 둘이 다 저 죽고 상대방 죽어야 될 때에는 상대방은 죽구로 냅두고 제가 살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본질과 본성이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중생되지 안하면 사랑의 법칙 생명의 법칙을 가질 수 없는데 우리는 중생됐기 때문에 사랑의 법칙 생명의 법칙을 가졌습니다.
본질과 본성적으로 가졌습니다. 가졌지마는 우리 마음 속에 미움의 법칙, 옛사람의 법칙, 땅에 속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란 그놈이 너무 강해서 그놈에게 이기지를 못해서, 그 마음에 깊이 어떤 집회에 참석하면 ‘나도 참 주님이 나 위해서 하신 것처럼 나도 모든 사람에게 그와같이 하는 사람이 되어져야 되겠다’ 하고서 그것을 소원하기는 소원하지마는 막상 현실을 당하면은 그만 자기 중심 자기 위주를 택해 버리고 그라고 나면은 그때는 쾌하지마는 조금 지나고 난 다음에는 후회가 돼서 그걸 다시 고칠 수도 없고 후회가 되니까 하나님 앞에 자복을 하고 만날 이런 되풀이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지금 노력할 것은 어떤 것을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되느냐? 노력하는 것은 내 마음이 이것이 완전히 변화돼서, 영이 중생된 것처럼 내 마음이 완전히 변질돼서 내 속에 육체의 생각은 죽여 버리고, 육체의 생각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것은 죽여 버리고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그 사랑의 생활을, 봉사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우리 마음과 이 고기덩어리의 기능을 변화시켜야 됩니다. 그 변화시키는 데는 달리는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여게 22절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그러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그 영혼이 깨끗해져야 형제를 사랑합니다.
영혼이 깨끗해진다는 건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의 마음과 몸의 기능이 깨끗해져야 사랑하지 자기 마음과 몸의 기능에 더러운 것이 붙어 있으면 안 됩니다. 자기 마음과 몸의 기능이 깨끗해져야 자기가 점점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뭐 예를 들면은 만일 장생골 집회 같은 데 가서 이래 집회하고 집회하는 그 도중에는 모두 사람들이 다 변화가 됐습니다. 영혼이 깨끗해졌습니다. 다소라도 자기 나름대로는 깨끗해졌어. 깨끗해졌으면 그때는 모든 그 원수 맺는 그런 더러운 것이 없어졌는데 그만 그 집회를 하고 ‘가자’ 하고서 보따리 싸 가지고 오면 다 잊어버려 버리고 그만 올 때는 그만 그 영혼이 더러워집니다.
더러워져 가지고 거게는 뭐 예의도 체면도 없이 나중에 차 서로 탈라고 싸우기도 하고, 또 처음에 가서 시작할 때에는 천막터 때문에 뭐 싸우고 이렇게 뭐 모두 다 환장한 사람 모양으로 그만 이렇게 날뛰다가 집회 가운데는 또 후회를 하고 회개를 하고, 또 집회할 때는 그랬다가 또 올 때는 또 딴 사람 되고, 자꾸 이래 가지고 우리들이 육체의 사람이 됐다가 또 새사람이 됐다가 왔다 갔다 이래 가지고서 우리 구원을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혼이 깨끗해진 것만치 자기는 생명법 사랑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영혼이 깨끗해지는데 어떻게 깨끗해지느냐? 영혼이 깨끗해지는 것은 다른 법은 없습니다.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이 깨끗해집니다. 그러면 자기 현실에서 어짜든지 말씀대로 살라고 자꾸 애를 씁니다. 자기 현실에서 말씀대로 자꾸 살라고 애를 씁니다. 이래서 말씀대로 살라고 애를 써다 보면은 자기 영혼이 깨끗해지고 영혼이 깨끗해지면 남한테 가해하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안하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행위를 차차차 이것이 시들어지고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요번 공과에는 다시 변경된 안식일, 주일을 대해서 공부를 했는데 과거에 공부할 때는 “그 날짜가 변경됐다” 그것을 가르쳤고 또 사람들이 주일 지키는 거나 안식일 지키는 거나 일차 이차에서 실패한 것은 껍데기만 지킬 줄 알지 속의 알맹이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오늘 지금 삼차 안식일로 주일을 주셨는데 주일을 맞는 신약 교회들도 이 껍데기 지키기만 힘쓰지 알맹이 지키기를 힘쓰지 안하기 때문에 실패한다. 거게까지를 여러분들이 가르쳐 놓은 줄을 압니다.
알맹이 지키지를 안하고 껍데기 지키는 데에 힘을 써서, 껍데기가 뭐인데? 주일날 일 안 하는 것만 다 된 줄 알고 일 안 하기만 힘을 써서 일 안 하면 다 된 줄 알지 일 안 하는 그것은 참 가치 있는 무거운 일을 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면은 그 일 못 하기 때문에 주일날은 중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 지저분한 그런 가치없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 놀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가르친 것이 이제까지 가르친 것인 줄 압니다.
그러면, 주일날 어떤 일을 하는 것인가? 주일날 하는 일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멸하고 거게서 해방을 시켜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죽으심으로, 이거는 형벌받아 죽으심으로 우리를 자유를 주셨고 사망이 와도 우리에게 꼼짝 안 하고 또 마귀가 와도 죄가 와도 거게 그것에게 복종하지 안하고, 죽인다 해도 복종하지 안하고 자유하는 자가 된다그말이오.
또 그라고 한 가지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지공법을 완전히 그대로 이행하고 하나님과 화친을 우리 대신 하나님과 화친한 것과 하나님의 지공법을 순종하니까 이 마귀란 놈이 순종 못 하구로 해야 제가 이기고, 과거에 아담은 순종 못 하게 해서 순종 못 하게 했기 때문에 아담은 져서 종됐고 저는 왕이 됐기 때문에 예수님도 지금 순종하지 못하도록 할라고 자꾸 고문 고형을 하다가서 그만 너무 지나가버려서 그만 고문 고형으로서 죽여 버렸다 말이오.
죽었지마는 순종으로 화목으로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대로 하나님 법을 순종하는 분으로 완성이 돼 버렸고 하나님 화목하는 것으로 끝이 나 버렸고 저는 이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자로 끝을 내다가 방해하지도 못하고 해 버렸으니까 저는 져버리고 말았다 말이오.
예수님이 하나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우리 대신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과 화친하기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두 가지 얻은 거, 자유와 이제 공심판 화친을 얻어서 완전 생명 얻은 것이 이것이, 완전 생명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과 연결된 그 능력의 생활을 가리켜서 완전 생명이라 말이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두 가지 얻은 것은 자유와 완전 생명 완전 연결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주일날 우리가 얻는 날이라. 주일날 뭐 얻는 날이라? 주일날 이 능력 얻는 것이 주일날이라. 그걸 알아야 돼요. 주일날은 이 능력 얻어. 주일날은 뭐 얻는 거? 주일날은 죄가 아무리 와 가지고 협박을 해도, 죄가 와 가지고 죽인다 해도, ‘너 이 죄 안 지으면 죽인다’ 해도 죽었으면 죽었지 죄를 짓지 안할 수 있는 죄를 안 짓는 자유, 또 사망이 와 가지고서 어떻게 말한다 해도 사망에게 굴복하지 안하는 자유, 마귀가 어떻게 와서 이리 저리 미혹한다 해도 마귀에게 미혹받아서 거게 어리석게 유혹을 받거나 복종하거나 하지 않는 이 자유, 이 자유의 능력 얻는 것이 주일날이오. 자유의 능력 얻는 것이 주일날이오.
하나님과 연결의 능력 얻는 것이 주일날이라. 연결의 능력 얻는 거는 공심판을 면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이행하고 하나님과 완전한 화친을 하기 위해서 했기 때문에 이것이, 완전 생명 얻었다 말은 완전 연결 얻었다 그말이요, 하나님과 완전 연결. 그러면 이것을 주일날 얻는 것이라 말이오.
또 예수님의 그 부활로 하나님을 향해서 영감과 진리대로 영원히 사는 그 대신 살아 주신 그것을 우리가 얻었어. 그러면 우리가 그 얻어서 영생을 얻었으니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영감과 진리대로 영원히 사는 것이 그것이 우리 영생인데 그 능력을 얻기 위해서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날은 죽으심으로 두 가지 얻은 거,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또 영생하는 한 가지 얻은 거, 이 세 가지를, 이 세상에서 이 세 가지로 살 수 있는 그 실력을 얻기 위해서 주일날 노력해야 되는데, 그러면 이 세 가지를 참으로 더 그것을 확실히 알고 확실히 믿고 거게서 각오도 하고 결심도 해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확실히 자기 것 된 것을 확실히 믿고 또 자기는 대속을, 세 가지 대속을 자기가 가졌기 때문에 자기는 예수님의 것 된 것을 믿어서, ‘예수님의 대속은 내것 됐고 대속을 입은 나는 예수님의 것 됐다’ 하는 요것을 다지고 다져 가지고서 요것이 어떤 환경에도 요동치 않는 요 능력을 얻는 것이 요것이 주일날 알맹이 하는 것이라 말이오.
요것을 오늘 가르치는데, 우리 오늘 아침에 말씀한 것도 사람이 이 생명법을 하는 데에는 영혼이 깨끗해야 돼. 영원히 깨끗해지는 데에는 진리를 순종하는 거 외에는 다른 게 없습니다.
이러니까, 엿새 동안은 뭐 하느냐? 엿새 동안은 진리 순종하는 생활하면 우리 영혼이 깨끗해지니까 우리 본질과 본성이 하나님과 꼭 같은 본질과 본성이 됩니다. 이러면 자꾸 사람이 주고 주고 하면 주고 주고 줘도 못 다 준 것같이, 주고 주고 있는 것 다 주고도 못 다 준 것같이 여겨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원망과 불평과 시기와 모든 자기 중심 위주 모든 낙망 그런 것은 다 사랑에 속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온전한 사람으로 이렇게, 진리를 순종해서 자꾸 자기 영혼을 자기 심신을 깨끗하게, 심신에 잡것의 더러운 것이 없이 그 심신이 깨끗하고 맑고 옳고 바르고 참돼서 하나님과 꼭 같이 되어지는 요런 심신으로 만드는 그것이 우리 엿새 동안 우리 할 일이라 그말이오.
그런데 이거 하다가 돈뭉텅이가 턱 오면 돈을 탐해 가지고서 자기 심신을 더럽히는 그 사람은 땅에 속한 사람이라. 아무리 돈이 오고 뭐 자기 생명이고 뭣이 온다 해도 어떤 게 와도 그것 때문에 자기 심신을 더럽히려고 하지 않습니다. 심신을 더럽히지 안할라 하는 것은 진리 순종 생활을 버리지 안하고 어째도 진리 순종 내나 그대로 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학생들에게 이 가치 있는 것을 말해 주고 학생들이 이 가치 있는 데에 소망을 가지고 이 욕심을 가지고 ‘이 가치 있는 일을 너희들이 하지 못하면 너는 약자라’ 하는 것을 알아서 죄짓는 것을 깨닫고, 그러니 이런 약자가 되지 말고 이런 강자가 되는, 이래서 주일날 와 가지고 배우는 무슨 필요있는 것을 느껴야 되는 것이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니, 내가 말 들으니까 우리 서부교회 학생들도 대학에 간 그 학생 멍충이 학생들은 뭐 데모하는 데 그 물이 많이 들었다고. 그 데모는 순전히 뺄갱이 운동이야. 그걸 알아야 돼. 뭐 민주주의 뭐니 해도, ‘너는 민주주의 안 하나?’ 공산주의자들이 그래 가지고서, 일본의 사회당이라는 그 사회당은 그게 내나 공산주의입니다.
과거에 왜정 말년 때에 사회주의자는 어떤 자가 왜정 말년 때에 사회주의냐 하면은 저 만주로 저리 러시아로 저런 데로 가 가지고서 독립 운동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사회주의자입니다. 그게 내나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고. 또 그리 안 하고 저 구미로 이렇게 망명해 가지고 거게서 독립 운동한 사람들은 민주주의고, 저 구미에 가서 독립 운동한 사람들과 저 만주와 러시아에 가 가지고 운동하던 사람들이 둘이 서로 만나 가지고 위에는 이북으로 돼 버렸고 아래는 이남으로 되고 이래 갈라졌습니다. 그러면 김일성이는 이 김일성이는 참 김일성이 아닌데 이 김일성이 위에 김일성이 있습니다. 그 김일성이가 내나 사회당 내나 마적당 두목입니다. 그 역사를 알아야 돼요.
이러니까, 그래서,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도 거게 가담은 안 했지마는 물이 들어 있더라 이래. 물이 들어 있더라. 그거 같은 거에 물이 들면 영생은 뺏긴 인간들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중간반 그까짓 걸로 그래 인도해 가지고 아무것도 안 돼. 왜 하나님 말씀을 들어 왜 그럴 택이 뭐 있느냐, 있기를? 모두 썩은 교훈, 입술만 쭐쭐 하고 속에 생명 없는 교훈 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오. 어떻게 이제까지 길러 놓은 그게 이 사회당이라는 공산주의 무신론주의에 미혹을 받아 끌려가느냐 그거요.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사람의 사상이라 하는 것은 자기 생사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구원에 멸망이냐 구원을 얻느냐 하는 것이 주장되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이라 하는 게 무서워. 사람이 잠깐 동안 생각한 생각이, 잠깐 동안 생각으로서 일생을 영원을 망치는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생각이란 무서운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