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7 22:28
주일날 받는 능력
1986. 11. 16. 주일오후
본문:요한복음 6장 53절∼5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신구약 성경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이 대속에 대해서 예언한 말씀들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에 대한 예언의 말씀들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이 하나님이 예언하신 그 예언이 이루어져서 예수님의 대속이 완료된 것인 것을 우리는 성경을 보고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또 반은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 우리에게 대속을 주셨으니 이 받은 대속을 우리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느냐 하는 데 대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은 다 예수님의 대속에 대한 예언과 또 예수님의 대속에 대한 우리들의 받는 그 모든 구비를 말씀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고로 신구약 성경은 그 중심이 예수님이시요 다 예수님을 예언적으로 또 현재적으로 가르친 것이 다 신구약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오전에도 거게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오후에도 또 거게 대한 말씀을 다시 재독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며 또 완전하시고 영원 불변하신 전지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변치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존재의 크고 작은 것, 또 움직임의 나타난 것 은밀한 것, 과거도 현재도 미래 영원도 다 이 하나님이신 이분 한 분으로 인해서 모든 것은 다 존재하였고 또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분을 한 말로 이렇게 말을 하니까 이분의 크심에 대해서 우리가 실지로 깨닫고 느끼는 것이 너무도 거리 멀고 너무 흐미합니다. 이래서 그분의 모든 속성에 대해서 우리는 그분이 지으신 모든 만물들과 그분이 섭리하시는 모든 섭리를 가지고, 우리 나름대로 ‘그분이 얼마나 크시며 얼마나 능하시며 얼마나 광대하신가?’ 하는 것을 우리가 자꾸 알아서 깨닫는 것이 좋습니다.
이래서 로마인서 1장에는 “그의 지으신 만물로써 그분을 알 수 있다” 말씀했습니다. 또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알 수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땅위에 어떤 것이든지 큰 것을 보면 그 큰 것 그것을 엿새 동안에 지으신 그 크신 분인 것을 우리는 거게서 또 깨달아 배우게 됩니다. 어떻게 두렵고 능하고 한 그것을 보아서 그분의 능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십세기의 과학자들이 한 과학 한 과학이 발명됨에 따라서 그들이 다 놀라고 신기하다고 말하는데 그 모든 신기가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엿새 동안에 지음을 받은 그 사소한 것들이라 하는 것을 또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를 대속하셔서 영계와 물질계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정복하고 통치하고 모든 것에게 하나님의 대리 노릇을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 같은 자 되게 하려는 이 구속은 얼마나 어려운지 그분은 창세 전부터 계획 세워 가지고 오늘까지 역사 세계에서 벌써 육천 년이 다 걸리고 또 앞으로 영원 무궁세계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영원히 계속된다고 했습니다. 소망은 믿음으로 이루어지고 그것은 다 사랑의 역사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구원이 얼마나 큰가를 아무리 우리는 알아도 다 알 자가 없습니다.
그분의 크심도 능하심도 두려우심도 그분의 정확무오한 그 진실하심도 사람들이 알대로 다 알 자 없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그 은혜를 받아 가지고 자기가 차차 차차 참이 되어져 가고, 또 완전으로 차차 이루어져 가는 자기의 자라감에 따라서 알아진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된 것만치 진리를 알고 그래 가지고 진리 안 그 진리는 어디서든지 자유하지 그 진리가 다시는 우리와의 떨어지지 안하고 그 진리를 거역하는 자가 되지 않는 진리로 자유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우리에게 주실라고 주님이 도성인신하셨고, 도성인신했다 말은 혹 처음으로 나온 분은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을 가리켜서 도성인신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 무한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이 천한 인간 돼 가지고 오신 것이 우리 때문에 오셨습니다. 도성인성하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두 가지 역사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또 삼 일 만에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영원 완전 생애를 주시기 위해서 다시 사람으로 또 살아났습니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의 그 위치나 형편이나 대우를 가진다는 것은 그것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인 사람같이 된 것은 그분은 무한히 천해진 것이며 무한히 낮아진 것이며 무한히 가난해진 것입니다.
전능자이나 그분은, 전능자 전지자이지마는 전지대로 한 번도 해 보지를 못했습니다. 전능한 능력 가졌지마는 꼭 하나님이 동하라면 동하고 정하라면 정했지 자기 독단으로 행동한 일이 없습니다. 영원히 우리 위해서 아버지에게 종이 되었고 언제든지 소속되어 피동자로 살았습니다.
이래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낫우신 데 대해서 성령이 말하기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나면서 앉은뱅이를 살렸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살린 것은 인간들이 타락으로, 타락 본질 본성으로 영원히 인간 노릇하지 못하는 인간병 든 것을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간병을 치료해서 본 지위를 가졌고 하나님 다음 피조물 위인 만물의 중보인 그 위치를 다시 회복한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주일을 맞이하는데 주일을 외식으로 맞이해서 과거 이차 안식일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었으나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등한히 여기고 만홀히 여기고 껍데기만 지켰지 알맹이 영원 무궁의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그 준비는 하지 안했으므로 약간의 사람이 구원 얻었고, 노아 홍수 때는 노아의 여덟 식구만 구원을 얻었고 이스라엘 때에는 그보다 약간 수가 많았습니다.
이래서, 신약 교회에서는 구원 얻을 숫자가 그때보다는 많지 않느냐 이렇게 우리가, 일차보다 이차에 많았고 이차보다 삼차에 많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가지는데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올 때에도 노아가 올 때와 같이 그렇게 다 외식으로 멸망하는 자들이 많고 구원 얻는 자들이 적으리라” 하시는 것을 탄식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이 주일을 어떻게 지키면 주일을 바로 지키며 어떻게 지키면 이 껍데기로 주일 지키는 일이 되는가 하는 데 대해서 우리는 충분한 지식을 가지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모르는 일은 행할 수가 없고 행하지 안하면 구원은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주일날 다른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다른 일 하지 않는 그것이 주일날 하는 것이 아니고 주일날은 중대한 이 영원이 결정되는, 영원이 결정되는 영원의 영광의 구원을 씨종자적으로 모든 요소들을 받는 것이 주일날이기 때문에 이 날에는 이것 받는 데에 전심 전력 기울이고 여기에서 씨종자적으로 받아 가지고 엿새 동안 주일날 깨닫고 믿고 소망하는 요대로의 실상을 이루는 그 생활을 엿새 동안에 연습하고 또 연단 받고 연성해서 한 주일 한 주일 자기는 영원한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그 준비를 충분히 하도록 해라.
그러기 때문에, “다시 정한 오늘날이라고 너희들에게 그때가 오거든”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입니다. 구약 때에 예언하시기를 그때 다시 하루를 정해 가지고서 하나님 백성들에게 안식에 들어가는 복된 날을 주실 터이니까 그날은 막바로 그날 받는 것이 실상을 받는 것으로서 복받는 날이요 그날 모든 것이 구별해서 올바른 구별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라.
그러면, 주일날은 우리가 영원한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받는 날이요, 실력을 받는 날이요, 이것을 엿새 동안에 재연습하고 숙달시켜서 실상을 이루는 날이요, 또 모든 것을 구별해서 사람도 구별하고 하나님도 구별하고 만물도 구별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모든 사람들과 나와의 관계, 모든 일과 물건들과의 나와의 관계를 구별해서 영원 무궁세계에 만물이 심판하고 만물이 다 자유해서 다 같은 언권을 가지고 다 같은 그런 자존성을 가지고 있는 그 세계에서 그들이 다 우리를 향할지라도 예수님과 같이 무릎을 꿇고 존대하고 환영을 할 수 있는 이런 관계를 가질 수 있고, 원망 불평 복수 모든 소송 배상 청구하는 이런 것들이 있는 자기로서 될 때에는 그것을 다 응하기 위해서는 유황불 구렁텅이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영원히 창조주와 모든 피조물과의 후회 없는, 그들에게 송사를 받지 않을 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씨종자적인 모든 능력과 은혜와 지혜와 자원을 받는 것이 주일날 받는 것입니다.
이래서, 야고보서 5장에도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눈 앞에서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네가 월권하고 남용하고 또 침략하고 모두 다 이런 저런 억울케, 해를 가할 수 있는 가해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네가 조심해라. 그들이 한 마디 한 마디 불만스러운 것을 호소하는 것이 만유주의 귀에 다 들린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만유주에 다 들려서 호소가 되니 네가 호소를 받는 것이 네게 흠점이 없고 상대방이 잘못했으면 네게는 관계없고 그들이 회개해야 될 것이고 네가 호소를 받을 만한 그런 일이 있거든 어서 길에 있을 동안에 급히 사화해라” 말씀했습니다.
“길에 있는 동안에 급히 사화해라” 길에 있는 동안이라 말은 이 천성길을 다 가기 전에, 죽음을 닥치기 전에 세상에 있는 동안에 급히 모든 문제를 해결하라.
“그렇지 안하면 그가 너를 법관에게 내어 준다” 말은 하나님의 지공 지성의 법에다가 붙인다 말입니다. 붙일 때 그 법에 내가 걸리면 나는 심판받아야 됩니다.
“법관에게 내어 주고 법관이 간수에게 내어 주고” 간수라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일꾼들을 가리켜서 간수라, 천군 천사를 말합니다.
천군 천사들에게 내어 주어 “너를 옥에 가둘까 두려워하라” 옥에 가둔다 말은 그 나라에서는 이런 감옥 같은 것이 없으나 거게 말하는 것은 자기 실력대로의 모든 제한된 범위를 말합니다. 자유도 범위가 있고 실력도 범위가 있고 권세도 범위가 있고 영광도 범위가 있으니 네게 조그만치라도 거리낌이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서 너는 갇히게 된다. 조그만치라도 거리낌이 있으면 거리낌 있는 거 그것만침은 네가 자유하지 못하게 된다.
네게 무엇이든지 잘못한 게 있으면은 그것만치 너는 거게 걸려서 자유하지 못하니 이것은 아무 형체가 없는 자기의 모든 언행심사의 자체의 됨을 인해서 그의 활동이나 권능이나 영광이나 대우나 실력이나 모든 것이 다 범위가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체가 바로 녹음 테이프요, 자체가 바로 모든 것이 촬영된 필림이요, 자체가 바로 모든 만물에 대해서 환하게 벌거벗은 것과 보여지는 그런 모든 자체가 다 드러나는 것들이기 때문에 “나그네로 있을 동안에 급히 사화해라.
네가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그 가운데서 결단코 나오지 못하리라.” 사람들은 무궁세계에도 그의 자유의 범위가 좁은 사람 넓은 사람, 깊은 사람, 자유가 얼마든지 자기의 된 행함의 범위, 권위의 범위, 모든 봉사의 범위 이래서 그 범위는 무슨 범위인가? 그 범위를 한 말로 말하면 사은의 범위입니다. 사은의 범위.
너에게 대해서 감사할 사람이 하나밖에 없으면 너는 그 하나라는 거게 돌 사이에 끼인 거와 마찬가지로 너는 하나인 그 속에 끼여 있어야 될 것이고, 너는 사은하는 것이 넓으면 그만치 너는 넓은 세계에서 살 수 있고, 너에게 만일 감사하는 사은하는 사은의 것이 무한하다고 하면 너는 무한한 그것이 너의 무대요 너의 곧 처소요 너의 세계가 될 것이고, 너는 사은에 대한 것이 하나도 없으면, 모든 존재에게 사은 받을 것이 하나도 없으면 너는 용납할 곳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고, 그 나라에 실력은 사랑의 희생인데 너는 세상에서 사랑의 희생의 실력 준비를 안 했기 때문에 아무런 하늘나라에 무궁세계 가 가지고 거게는 의식주도 문제가 없는 나라이요 다만 쓸모 있는 것은 모든 존재를 위해서 사랑으로 희생할 수 있는 그 일밖에는 없는데 네가 사랑으로 희생할 것을 하나도 배운 것이 없고 숙달한 것이 없고 하나도 거게서는 알지를 못하고 거게 대한 성질조차도 네게는 존재가 없으니까 아무 실력의 존재가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자유의 나라요, 생명의 나라요, 지공의 나라요, 화평의 나라요, 공평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영원 무궁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으니 네가 땅위에서 조그만한 사람들의 비위 맞추지 말고 이제 이 세상은 나그네 세상이기 때문에 두려움으로 지내라. 언제 끝날란지 모르니까 네가 모든 존재로 더불어 살펴서 모든 것을 바른 관계를 가지도록 노력을 해라. 바른 관계를 가지도록 노력을 해라.
추호라도 네가 갚기 전에는 갇힌 데서 나오지 못할 것이고, 네가 가진 그 실력과 행함을 온천하 사람이 하나도 모르고 너는 가장 못쓸 사람으로 깊은 매장 속에 들어 있어도 하나님은 그걸 다 아시기 때문에 그 나라에 가면은 네가 사랑의 희생의 실력이 얼마 되며, 봉사의 실력이 얼마 되며, 또 네게 대해서 감사할 존재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것이 하늘나라 바로 대우요, 하늘나라의 실력이요, 하늘나라의 영광이 되는 것이니 이것을 다 바로 알아서 구별해서 오늘에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그것이 거룩인데 주일날 그 거룩에 종자적으로 네가 받는다. 주일날은 거룩에 종자적으로 받는 날이다.
또 주일날은 영원한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그 모든 실력과 구비를 종자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주일날이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복 주어 거룩하게 하셨다. 우리가 거룩을 해야 됩니다. 거룩하도록, 거룩하는 일을, 구별해서 완전에 도달하는, 구별해서 완전에 도달하는 일을 하도록 하셨다 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우리가 그것을 다 하지 못하나 할 수 있는 그 자본적으로, 자원적으로, 구비적으로, 실력적으로, 모든 것에 대해서 씨종자적으로, 마치 씨는 조그만한 솔씨라 말하면 솔씨는 그저 작은 쌀내끼만한데 그 솔씨 속에는 여러 아름되는 소나무가 그 속에 들었습니다. 키우기만 하면은 그대로 다 크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은혜를 씨종자적으로 받았다 그말은 주일날 받은 고 은혜 가지고서 엿새 동안에 키우고 자꾸 이제 키우면 그것이 다 온전을 이루는 것을 가리켜서 표시하기 위해서,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서 씨 종자적으로 받는 날이라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주일날 그 실상을 이루는 것은 뭐인가? 간단하게 말해서 첫째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줬습니다. 우리는 죄에게 매여 가지고 죄 때문에, 죄를 범하고 보니까 사망이 와 가지고서 덮칩니다. 죄를 범하니 왜 사망이 덮치는가? 하나님의 법에 “범죄한 자는 죽으리라” 했기 때문에 내가 죄를 범하니 사망이 와서 덮칠 때에 우리는 꼼짝 못하고 죽기 싫지마는 죽음에게 삼키게 되고 죽음 아래에 매이게 되었고 그러니까 악령은 우리를 삼킵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우리 대신 형을 받아 죽음으로 멸살된 것이 죄가 멸해졌고 사망이 멸해졌고 마귀가 우리에게 관계하는 것이 멸해져서 그는 우리에게 쫓겨나가서 예수님이 대신 죽으셔서 형벌 받으심을 믿는 자에게는 죄가 왕노릇하지 못하고 사망이 왕노릇하지 못하고 마귀가 왕노릇하지 못한다고 로마서에 많이 기록을 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우리 대신 형을, 죄값을 우리 대신 주님이 받으심으로써 우리는 마귀와 죄와 사망에서 해방을 받아 자유한 자 됐습니다. “너희들을 자유케 하기 위해서 불렀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사망에 대해서 자유하고 죄에 대해서 자유하고 마귀에 대해서 자유하는 이 자유를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죽으셔서, 죽기까지 하셔서 자유 주신 그분에게 그분이 설정해 놓은 자유를 내것 삼으니 그 자유를 받아서 내것 삼은 나는 영원히 주님의 것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것이 되었으니 이제는 우리는 자유자로 사는 그 능력 받는 것이 주일날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믿고 또 능력 받는 거.
자유자로 사는 것이 능력받는 것은 세 가지에 대해서 자유합니다. 첫째는 천하의 죄악이 다 와 가지고서 위협이든지 유혹이든지 어떻게 무슨 방법을 쓰든지 죄가 어떤 죄가 와도, 나에게 억울하게 하는 죄, 감정 죄, 오른뺨을 치는 죄, 애매하게 내 소유를 빼앗을라고 송사하는 죄, 억지로 공연히 사람을 잡아서 짐을 지워서 오 리 가자 십 리 가자 하는 죄, 그래도 너희는 어떻게 해서 너에게 감정을 충돌시키고, 자존심에 충돌을 주고, 네 몸에 충돌 주고, 소유에 충돌 주고, 명예와 지위와 권세에 충돌 주고 어떻게 죄악에 무슨 수단 방법을 한다 할지라도 너는 다시 죄의 종이 되지 말아라.
다시는 죄에게 피동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른빰을 칠 때에 왼빰을 돌려 향하라” 말은 오른빰을 칠 때에 네가, 오른뺨을 쳐도 ‘네 죄에게 내가 피동돼서 네가 오른뺨을 치니네가 악을 가진 그 악에게 피동돼서 나도 악을 가지는 그런 자가 되지 안 할라고 하면은 너는 그것만 참으면 실수하기 때문에 아예 오른뺨 칠 때에 얼른 질러 가서네가 왼뺨까지 쳐도 네 악에게, 네 나쁜 행위에게 내가 피동되지 않겠다.’ 오 리 가자 할 때에 나는 아예 십 리를 갈 요량하고 각오하고 있기 때문에 오 리 가자 하는 거게 대해서는 피동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죄악이 어떤 모양으로 내 감정이나 이성이나 주관성이나 주권성이나 자존성이나 명예성이나 영광성이나 행락성이나 소유성이나 어떤 걸 찔러서 침노를 해 가지고 우리를 죄짓게 할지라도 죄짓지 않는 그게 죄에 대해서 자유자입니다.
그러면, 천하의 종류가 다 와서 해도 그 죄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죄야 제가 내게 대해서 무슨 일을 하든지 나는 그 죄에게만 피동되지 안하고 주님이 죄에서 해방시켜 자유 줬기 때문에 나는 자유에 대해서 천하 죄가 다 달라들어도 나는 주님이 나에게 시키시는 대로 자유대로, 내 자유대로, 주님이 시키는 내 자유하지 그것에게 붙들려서 죄의 종되고, 또 사망이 와서 죽인다고 어떤 위협을 한다고 해 가지고서 그 사망에게 위협당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해서 사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피동되지 안하고 사망 제야 뭐라고 하든지, 주님 말씀하시기를 “사망이 와 가지고 나를 십자가에 못 박든지 말든지 저는 저 할일 저 하고 나는 상관없다, 나는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며 그에게 어떻게 내가 복종하는 것 이것만 보여 줄 것뿐이지 그것들이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내가 거게 내가 피동되지 않겠다.” 우리가 독침이 오고 공산주의가 독약을 먹이고, 우리에게 독약을 강제로 마셔 놓으면 사람은 연약해서 독약이 오면은 우리 사람은 다 변질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래도 우리는 미리부터 기도해 가지고서 독약을 마시고 독침을 줘도 그로 인해서 그 죄악에게 그때 내가 변질돼서 죄악에게 종이 되어서 범죄하거나 또 사망의 위협에 내가 떨어져서 요동해지지 않고 이 자유를 뭐 어떤 죄가 오고 어떤 사망이 오고 마귀가 어떻게 와서 한다 할지라도 이 자유를 주님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해방하고 자유 주셨기 때문에 이 자유를 다시는 빼앗기지 안하고 영원히 주의 것으로 주를 위해서 자유하는 이 생활을 할 수 있는 그 능력을 받는 날이 주일날이요 거게 대한 깨달음과 각오를 가지는 날이 주일날이요 이래 가지고 엿새 동안 연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하나 죽으심이오.
하나는 우리가 아무리 죄가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법이 있는데 그 법을 우리가 순종치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인간은 다 할 수 없는고로 주님이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을 다 대신 순종하시느라고 우리 대신 모든 율법을 순종해서 로마인서 8장 1절 이하에 보면 우리 육신이 약해서 다 율법의 요구를 응하지 못한 것을 그것을 율법의 요구를 주님께서 다 요구를 응해 주시고 그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다 이행했습니다. 이행하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주어서 우리로 하여금 율법의 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화친된 그걸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 화친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과 화친할라면은 무한한 자의 무한한 요구를 다 들어야 되기 때문에 그거 우리로는 할 수 없는데 예수님이 대신 다 화친을 이루신 화친의 의, 하나님과의 완전 화친의 의, 완전 지공 지성법에 완성의 완수의, 완전 수행하신 완수의 의 이 두 가지 하나님의 의로써 우리는 완전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써 아무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공 지성의 공심판에서 온전타 인정을 받은 신인 화친의 의, 하나님의 모든 율법의 요구 이행의 의 이 하나님의 의로써 우리는 완전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완전 생명 받았다 말은 하나님과 완전한 결합을 가졌다 그말인데 생명은 하나님과 하나되면 살고 떨어지면 죽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자유와 해방을 받았고 또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의의 완전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받았으니까 우리는 완전 생명을 예수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그 율법을 안 범하면 우리에게 어떤 형이 있고, 그 율법을 이행할라 하면 어떤 형이 있을지라도 소유와 몸을 주님이 다 바쳐서 어떻게 해도 생명이 끊어졌지 그 법을 이행하셔 가지고서 우리에게 줬기 때문에 우리도 이 하나님 법을 이행하기 위해서 생명이 끊어졌으면 끊어졌지 율법 이행은 지키다가 그것이 끝나는 이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친할라고 할 때에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와도, 어떤 어려움이 와도, 소유와 몸과 무슨 고문과 고형이 어떤 것이 와도 다시는 주님이 죽으심으로써 화친을 주셨기 때문에 주님이 지극히 크신 분이 나 위해서 죽으시고 화친 주신 그 화친을 내가 뭐 세상에서 어떻다고 해 가지고서 그 화친을 버리고 배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화친의 생명.
주님이 다시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셔 가지고 우리 대신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생애, 완전한 생애, 영감과 진리대로의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생애 이 생애를 우리를 대신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활하심에 우리가 연합해 가지고서 하나님을 향해서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서 이제 영감과 진리대로 영생하는 이 생활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주님이 주신 이 영생을 내가 가지고 주님의 것으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 일을 주일날 종자적으로 받는데 이것 받고 엿새 동안에도 이대로의 생활을 해 보고 하다가 넘어지면 다시 시작하고 또 넘어지면 다시 시작하고 하루 뭐 백 번 넘어지면 백 번 시작하고 천 번 넘어지면 천 번 시작하고, 넘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시작하는 게 문제입니다.
자꾸 그래 되면은 넘어지면은 즉시 일어나고 즉시 일어나고, 만일 이 법을 범한 것을 하루,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칠칠은 사십구, 사백구십 번을 말했는데, 만일 백 번을 넘어지고 자기가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면 능히 이기고 남습니다. 만일 시작해 가지고서 넘어지고도 ‘아, 넘어졌다!’ 또 일어서고 넘어지면 또 일어서고, 이러면 그렇게 넘어져서 백 번 넘어지고 백 번 일어선 사람이면 그다음에 그것을 능히 이기고 정복하고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엿새 동안에 연습하고 연습해 가지고서 우리는 주님이 전부 다 소유와 몸과 생명 바쳐서 나를 사활의 대속 주셨으니 사활의 대속을 받은 나는 주님의 것으로, 어떻게 사는 것도 주님의 것이요 죽는 것도 주님의 것으로서 이대로의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이 우리의 법이요 우리의 의무요 책임이요 당연한 법리라.
로마인서 12장 1절 이하에 “너희들이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이것이 합리적 예배라.” 진리에 합당하게 하나님 섬기는 것이다. 진리에 합당하게. 이게 법이라 그말입니다. 합리적 예배라는 거는 그전에는 법리적 예배라 그렇게 번역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가 깨달읍시다.
이제 통성으로 잠깐 한번 기도합시다.
오늘 작정합시다. 주님의 공로는 내것 되고, 주님의 사활의 공로는 내것 되고 주님의 사활의 공로를 내것 삼은 나는 주의 것 되어서 주님이 내게 이 공로를 어떻게 해 가지고서 설정해 주셔서 어떠한 것을 깨닫고 나도 이 공로를 있는 것 다해서 잘 보존해 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