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1979. 12. 18. 화새

 

본문: 이사야 58장 14절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양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자꾸 신앙은 진보해야 됩니다. 살아갈수록 믿음이 앞으로 자꾸 전진해야 되지  믿음이 뒤로 물러가면 안돼.

 새벽기도 나오던 사람이 새벽기도 안나오면 절단납니다. 또 그 사람이  무엇이든지 주님앞으로 차차 가까이 나아가야 되지 깨닫는 것도 더 깨달아야  되고 자기를 더 부인해야 되고 자기를 더 꺾어서 옛사람과 새사람을 더 구별하고  자꾸 그래야 되지 믿음이 뒤로 물러가면 히브리서에 뭐라고 했소?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지 아니한다 그렇게 했지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했습니다.

 새벽기도 잘 나오던 사람들이 결혼하고 나면 잘 안나오고 그러면 그만 그  행복이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복을 줘야되지.

 내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 아니요. 애쓴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어제 아침에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이 되어야 하는데 성경에 해석해 놓은 것이  다른 성경이 반박할 수 없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기 때문에 이 성구를  해석하는 해석된 그것이 또 다른 성구도 역연 그를 찬동해야 되지 성경는  진리인데 이 진리가 저 진리를 반박하지 않습니다. 하나입니다.

 껍데기로는 이 진리가 저 진리를 반박하는 거 같은 정 상반되는 성구가  있습니다. 또 그걸 찾아야 됩니다. 이번에 졸업하는 그 양성원 학생들에게  성경에 상반되는 그것을 연구를 하도록 요번 학기에는 제목을 줄려고 하다가  그것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어려워서 그것을 하기에는 너무 감당치 못할  것 아니겠나 해서 그것은 주지 안하고 그만 그것은 연구하지 못하고 끝을  냈습니다.

 돌아가서 일생동안 노력을 해서 연구하라고 제목을 줬습니다. 이 성구가 저  성구를 반박하는 그걸 찾아보면 겉어머리는 반박하는 그 반대되는 성구같은데 그  속에 한 걸음 더 들어가면 그것이 모순이 아니고 일치되는 그것을 찾게됩니다.

모순속에 이치가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일치되는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게  도입니다. 아무나따나 성경을 해석하면 되는 게 아니다.

 이대로 사람이 배우고 알고 아는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니까 사람의 구원이  좌우되는 것이니 행동이 좌우되는 것이니 거기는 반드시 심판이 따르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많이 스승되고저 하지 말라 스승된 자는 받을 심판이 크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기에 왜 이제까지의 구약시대 사람들은 그는 오래 됐기  때문에 없지마는 신약교회 그 성경 해석은 다 간추리지 아니하지마는 그 시대  시대마다 유력하게 활동했더 그 깨달음은 다 기록되어 내려옵니다.

 그것이 교리사입니다. 교리, 교리라 말은 깨달음인데 교리역사란 말은 시대  시대 이렇게 저렇게 깨달은 그것을 엮어서 누구는 이렇게 깨달았다 누구는  이렇게 깨달았다 그렇게 후대 사람들이 기록을 해 남겨놓은 그것이 교리의  역사입니다. 교리사 교리 역사를 왜 사람들이 공부를 할라고 하느냐 하면 수많은  시대에 환경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다른  그런데에 모두 다 처하게 되니까 성경 깨달음을 잘못하면은 그 시대에 맞춰서  환경에 맞춰서 그렇게 깨닫기 쉽다 말이요. 그러나 그 시대가 지내가 버리면 그  깨달음은 달라지지 않겠소?  그러기에 사람들이 그 시대에 자기의 환경에 충격을 받아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 이것은 잘못이다 그말이요 어느시대나 성경은 진리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고 변하지 않는 진리를 가지고서 변하는  시대에 변해지지 아니하고 시대를 극복해서 사는 것이 그 신앙이라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그 교리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사람들이 깨달은 그것이 오랜  지내고 난 다음에는 그게 잘못됐다 잘됐다 바로됐다 틀렸다 이게 나타난다  그말이요 그러니까 그 시에는 깨달아 가지고 큰 인기를 끌었지마는 나중에 얼마  지난뒤에 그것이 차차 두고 보고 연구해 보니까 잘못됐다 말이요. 이단이라  그말이요 잘못됐으면 그 사람이 그때에 인기끈 그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소.

잘못된 깨달음이니까 그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잘못됐으니 하나님앞에 심판이  얼마나 크겠소.

 이러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아는 사람은 성경 깨달음을 아무나따나 깨달아  가지고 아무나따나 지껄이지 안하요. 일시 그 사람들에게 감언이설이 돼서  사람들이 달콤하게 여겨 가지고서 깨달아지는 인간 귀만 즐겁고 그 사람들만  좋아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좋아하셔야 됩니다.

 깨달아 가지고서 바른 깨달음을 증거해서 배운 사람이 그 사람이 바로 배우기는  배웠는데 제가 행하기 않아서 구원을 못 이뤘다든지 바로 가르치는데 제가 제  안에 주관이 세어 가지고서 삐뚤어지게 깨달았든지 이것은 그 본인에게 책임이  있지 가르친 사람에게는 책임이 없지마는 잘못 깨달아 잘못 가르쳤으면 그  사람에게는 책임이 크다 그거요.

 그러기에 이렇게 모두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이렇게 잘 깨달았구나. 이렇게  삐뚤어지게 깨달았구나 잘못 깨달은 것 잘 깨달은 것이 역사에 쪽 나온다  말이요. 그래서 잘못 깨달은 그것을 자기에게 그런 것이 있는 것을 발견해서  고치고 그 역사에 바른 깨달음과 같은 것은 자기가 안심을 하고 바른 깨달음과  자기의 깨달음과 과거의 모든 사람들의 깨달음과 대립이 될 때에는 그때에는  고민이라. 대립이 될 때에는 이것을 가지고 연구하고 연구해서 어느 것이  진가인가? 연구한단 말이요. 연구해 가지고서 자기 깨달은 것이 과거 깨달음보다  바르면 옳으면 이게 뭐인가? 이게 바로 하나님이 지금 시대에 주신 것이란  말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시대마다 보면 어떤 사람을 하나 세워가지고 깨달을 때에  그 사람이 제가 제 지능 가지고 깨닫는다 하면 역사의 깨달음에 어떻게 일치가  될 것이며 능가할 수 있겠소?  그러나 하나님이 줘서 깨달은 것은 그 한 사람이 깨달아도 아무 책을 보지  아니하고 성경만 봐도 그 깨달음이 역사의 옳은 깨달음과 다 같고 역사의  삐뚤어진 깨달음과 다 대립이 되어지고 또 역사의 옳은 깨달음 보다도 앞서 그  시대를 감당할 수 있도록 이렇게 깨닫게 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께서 시대에  당신이 역사하시는 것이란 그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에게 붙들려  사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시대마다 그 선지자가 있다고 다 선지자가 되는 게 아니야 그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그 사람을 막대기 같은 것이라도 잘나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붙들고  쓰셔서 그 시대를 예언하고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러기에 내가 이제 보니까 또 뭐 세계 복음화 운동이던가? 기독교 협의회든가  뭐 협회인가 하면서 또 회가 하나 조직됐는데 거기에 참석하라고 돈을 많이  들여서 통지가 왔습니다.

 저도 여기 참석하라고 회장이 누구고 어쩌고 그런데 그놈의 회장이 하나고  부회장이 셋이라. 그는 부회장 한 사람 주면 다른 두 사람이 어덩거렸던  모양이지 그러니 부회장이 세 사람이라. 그런데 거기에 회장이 보니까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회장 하나는 그 첫째 둘째하던 그 사람이 회장되어 가지고 있고  아, 부회장이 되어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홋수 번호만 대어가지고서 지금도 그  오일 예배는 대개는 옵니다. 오는데 요새 며칠은 보니까 안오는 것 같애. 아마  그 사람이 그런 일 하느라고 지금 못오는 것 같아. 언제든지 허투른 일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허투른 일 합니다.)  자기가 원수요 자기가 원수 자기 좋게 할라 하면 그만 그것으로 어두워집니다.

자기 유익되게 자기를 높일라고 하면 그만 그것으로 어두워져 버리요.

 이러기에 천국은 자기는 자꾸 내려가므로 올라가는 것이 천국 걸음입니다.

자기를 부인함으로써 자기가 더 똑똑해지는 그게 천국 걸음입니다. 왜? 자기속에  둘이 있기 때문에 네가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다고 했으니까 그 즐거움은 신구약 성경 계약안에  있는 즐거움이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즐거움이요. 심판대 앞에서 영광스럽게  통과할 즐거움이요 그 즐거움은 하나님도 즐거워하고 모든 피조물도 즐거워하고  원수까지도 즐거워할 수 있는 그런 참 평가적으로 완전한 그런 즐거움이  아니겠소? 여호와 안에 있는 즐거움이니까 계약안에 있는 즐거움이라 말이지요.

또 무슨 말이요? 하나님안에 있는 즐거움이지요. 하나님안에 내가 아버지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내안에 내가 너희안에 우리가 하나님안에  출입할 수 있고 하나님이 우리안에 출입하실 수 있는 이것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입니다.

 우리안에 주님이 계시고 아버지가 계시고 우리가 주님안에 있고 서로안에 있는  것을 너희들이 알리라 환하게 보리라 알리라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이러니까 네가 네인데 우리는 네가 둘인데 네가 둘이니까 네가  둘이지요.

 상대방이 말할 때는 너는 두 사람이라 그렇지요 우리는 둘이지요 그러니까 나는  둘이지요 이런데 하나님께서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다고 하니가 그  네는 두 가지 중에 어느 자기입니까? 어느 자기지요 어느 자기지요? 새사람  자기지요. 아 옛사람 자기 그것이 하나님안의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겠소? 못  누리지요. 새사람 자기지요.

 이러니까 주일을 잘 지키는 거기서 옛사람과 새사람 자기아닌 자기와 자기를  주일날 구별할 수 있고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위에 안식일 지키면 그렇다고  하지 안했소?  이러니까 이 주일날 그저 와서 시간이라 보내고 와서 앉기나 하고 예배나 보면  된다고 사람들이 이렇게 인식을 하는데 그것은 주일지키는 것 아니요. 그것은  주일을 지킬라고 모두다 거기다 구비된 조건들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 주일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새사람을 찾게하는 참 자기를 찾게하는 그 참 자기를  자기가 받은 것이 주일을 바로 지킨 것이란 말이요. 바로 지켰으면 새사람  자기를 찾아 그런데 그 자기는 하나님안에 있고 하나님은 저희안에 있고 서로  내주 서로서로 안에 있을 수 있고 밖에 있을 수 있고 서로 이렇게 싸고 있고  서로 보호를 입고 있고 또 서로 보호를 하고 이러면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  계약된 즐거움이 아니면 자기 즐거움이 아니라 그말이요  성경에서 말하는 행동이 아니면 자기 행동이 아니라 그말이요 이러면 여기에  있는 요 말의 뜻은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이러는 것은  요것은 즐거움이 큽니까? 즐거움을 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그 사람이 큽니까  어느것이 크지요? 사람이 크요? 즐거움 얻는다 그 즐거움이 크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네가 하는 그 네가 크요? 어느것이 더 중합니까?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그 즐거움이 더 큰지 네가 더 큰지 네가 더 크지 않소  너는 주인 아니요 즐거움은 누리는 행복 아니요? 행복이 크요 자체가 크요  자체가 크지 그렇지 안해요?  자, 자기를 망치는 네가 있고 또 자기가 참 영생하는 하나님 아들 자기가 있고  이런데 이제 주일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 사람의 주체가 누가  되었는고 하니 새사람이 됐기 때문에 네가 지금 그 상대됐다는 말이요. 이  사람이 주체가 안되고 옛사람이 됐으면 그 어찌되요? 너는 멸망할 자식이라  이랬을 것이란 말이요.

 이런데 너는 행복은 누린자라 이랬으니까 이제 이 사람은 새사람 아니요?  이러니까 새사람이 자기가 새사람 있고 옛사람이 있는데 옛사람은 자기가 주일  지킴으로써 그것을 원수를 삼아서 거꾸러트려 버리고 물리쳐 버리고 새사람  자기가 지금 자기가 되어있는 그것이 즐거움 누리는 것 요량하면 억억만 배로 더  크지않소?  어찌 그 큼이 같다니 비유가 되겠소 그렇지 안해요? 아 박집사님 지금 박집사님  행복 누리는 것이 크요 박집사님이 크요 자체가 크지않소? 이것이 주일을 잘  지키면 주일날 자기 아닌 원수인 자기를 발견해서 아는 것도 주일을 잘 지키는  데에서 뭐 주일을 잘 지키는 데에서 잘 지켰느냐 못 지켰느냐 자기 아닌  옛사람은 그날 이전보다 미움이 강하고 똑똑히 알고 성령으로 중생된 참 자기를  똑똑히 알고 참 자기는 보배로움을 알고 시편을 기록한 그 기자들 같이 성령으로  중생된 자기는 하나님처럼 온전한 것을 깨달아서 하나님앞에 담대히 자랑할 수  있다 그말이요  자, 나는 이런 자입니다. 중생된 자가 나는 이런 자입니다. 이런 자입니다. 참  이런 나입니다. 그래 자랑하는 것은 자기 자랑하는 것이요 자기 힘 하나도  안들이고 하나님이 그렇게 해놨기 때문에 하나님 자랑하는 것이요? 자기  자랑하는 것이요? 어느것 자랑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자랑하는 것이지요.

 이걸 깨닫지 못하니까 억설을, 이거는 사람 쳐놓고는 자기가 온전하다 하는  것이다. 온전하다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니 교만한 자이지. 그러니까 영을  모르면 영을 모르면 성경 해석이 다 거꾸로이지 알맹이는 모릅니다.

 어제 운양서 지난 주일에 운양에서 여기까지 예배보러 온 집사가 한 분  있었는데 그 옆에 교회에서 어떤 그 박사가 와가지고 한 번 집회를 했다고  하는데 그 신학박사인지 무슨 박사인지 목사고 박사인데 집회를 하는데 아, 욕을  하다가 못하니까 이제 백교회라 하더래요. 백교회 그 사람속에 영생이 있겠소?  미워하는 자 속에는 그속에 영생이 없다 했는데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없다 했는데 그래 내 그 소리 듣고서 속으로  마음에 걱정되는 것은 그 집회 헛 집회 했다 걱정이 되는데 그래 아, 그  사람들은 중생된 영혼은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영혼과 육체를 어떻게 나눌 수가  있는가?  그래 그 사람들은 영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 성경에 영혼이라고 기록된 것은  영이 아닙니다. 영혼이라고 기록된 것은 영이 아니고 그것은 마음을 가르쳐서  영혼이라 그렇게 해놨소. 성경에 영혼이라고 기록하지 아니하고 영이라고 기록한  것, 영, 영이 이제 중생된 영입니다.

 이러니까 영혼도 모르는 사람들이니 이 사람들이 무슨 성경을 깨닫겠소? 시편  기록에 자기를 이렇게 자랑하고 하나님 앞에서 허물이 있는가 찾아보십시오  허물이 없습니다. 이 말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시켜 놓은 완전 중생 완전  진리대로 성령대로 된 그 사람 중생된 그 영 이 영은 완전하지요?  그러니까 하늘나라 가는 것은 완전치 못한 것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태워  버리고 완전한 것만 갑니다. 이러니까 영은 다 완전한 영이 가지요.

 그러너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은 완전한 것만 가지 완전치 못한 사기 협잡  거짓 하는 그런 실력은 다 심판받아 불에 태워버리고 가니까 이 사람이 세상에  제일 잘났는데 하늘나라 가 보니까 기능이 하나도 없어 그 심신 그것만  부활했지. 그것이 기능은 하나도 얻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거는  병신이라 그말이요 하늘나라에는 무용지물이라 쓸모가 없어 이런 자기가 우리가  있습니다. 자기 속에는 지극히 보배로운 자기가 지금 있는데 참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하나님이 봐도 흠없고 점없는 이런 자기가 있소.

 이게 자기인데 예수님이 이것 때문에 오셨는데 이렇게 완전하고 깨끗한 자기가  있는데 이 자기를 옛사람 자기 이게 인간인줄 알고 이 마음이 이 자기를 자기로  자기의 주인공으로 모시고 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마음과 고기덩이가 되어가지고  살면 전체가 의가 될 것인데 이 자기는 잊어버려 버리고 만물보다 거짓된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자기 아닌 자기를 죽인 원수 이 자기 이것을 자기라고  생각해 가지고서 마음이 주인공이라고 마음이 이놈한테 순종하고 이놈하고  합작하고 고기덩어리 이놈하고 합작되니까 전체가 멸망한 죄인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중생되기는 됐지마는서도 평생 자기를 한 번 찾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고 자기 생각은 한 번도 못하고 중생되어도 멸망할 그 죄의 생활을 그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골로새 3장에 네가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엣것을 찾으라  위엣것을 생각하고 땅엣것을 생각지 마라 예수님은 이렇게 해 가지고서 승리해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 너희는 너희는 죽었다 옛사람 그놈은 이제 죽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왕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패잔병처럼 돌아다니니까 네가 이길 수 있다  안믿는 사람은 그게 안죽어 있습니다. 그게 살아있소 옛사람이 살아있소 죄가  살아있다 그말이요  우리에게는 죄가 죽었소 죄가 왕노릇하지 못해 너희 생명이 하나님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감취었느니라 하나님안에 있는 생명이라 하나님안에 있는 생명  진리안에 있는 생명 하나님안에 출입할 수 있는 생명을 예수와 함께 받았다  그말이요 너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 영광중에 같이  나타날 수 있는 이런 소망이 있는 너희이다.

 그런고로 그 다음에 무슨 성구에 뭐라 했소? 그 다음 뭐라 했지요? 그 다음에  뭐라고 말했소? 그 다음에 뭐라고 말했소?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이랬소  지체를 죽이라 그 말은 땅에 있는 육체를 죽이라 그말입니다. 뭐 이거 다  죽여버리면 뭐하려고? 땅에 있는 육체를 죽여라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옛사람  자기 아닌 이것에게 역사하는 이것에게 피동하는 그 마음을 죽여버려라 그  마음을 완전히 악령 악성 악습 옛사람 자기에게 순종하는 심신 그것은 네가  죽이라 그말입니다.

 그 심신을 죽이면 어쩔려고 심신을 죽이란 말은 심신을 죽이라는 말은 그  심신을 지배하고 있는 그 옛사람 그놈에게 한 덩어리 되어가지고 있는 그 한  덩어리 되어가지고 있는 그것을 죽이라 그 작용을 죽이라 그 활동을 죽이라 그  성질을 죽이라 그런 주장을 죽이라 그 생애를 죽이라 하는 것입니다. 죽이라  우리가 이 주일날 자기를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것은 자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는 것은 영의 목숨이  아니고 고기덩이의 목숨이요.

 이것을 다해서 하나님을 소망하므로 옛사람 자기도 나오게 되고 새사람 자기도  발견하게 되는 것인데 그저 모양으로만 일만 안하고 나오면 되는 줄 알고  있으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주일날 하나님이 주신 목적이 뭐이냐 하면 이차 창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해 놓은 이것을 주시기 위해서 주일날을 주신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받겠소?  이러니까 그 사람이 선천적으로 잘 생겼다 참 누구보다도 탁월한 사람이다  후천적으로 너무도 수양을 많이 해가지고 탁월하다 이것 가지고는 그까짓거는  어림도 없소 그것 때문에 멸망합니다. 그것 상관없어 암만 못나도 상관없어  못났든지 잘났든지 있는 거 다 바치는 그게 지금 합격이지 그거야 못난사람 다  바치는 것보다도 있는 사람 백분지 일만 바쳐도 그게 낫지요. 그렇지 않소?  둔한 사람이 십 년 공부하는 것보다도 명철한 사람 일 년 공부하는 것이 낫고  한 달 공부하는 것이 훨씬 앞섭니다. 세상일은 그렇지마는 하나님은 당신의 것을  주시기 때문에 뭐이냐? 자기 인격을 다 기울이면 못나도 되고 교만해서 그  인격을 기울이지 아니하고 내가 여기다가 백분지 일만 기울여도 저 사람보다  나은데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는 소용이 없다 그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잘난 사람은 조그매 바쳐도 된다 못난 사람은 많이 바쳐야 된다  이렇게 말하지 안했소 닷냥쭝 받은 사람도 다해야 되고 두냥쭝 받은 사람도  다해야 됐어 부자들이 연보 많이 낸 것도 과부가 아주 극히 약소한 그런 물질을  내도 이것이 모든 사람이 낸 연보보다도 더 크다고 주님이 평가했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는 오히려 잘난 사람이 좋은데 잘난 사람이 그것을 다해서  주를 섬기지 못한다면은 못난 사람으로서 다한 것이 낫다 그말이요 왜 잘난  사람이 나쁘겠소? 다같이 잘나고 못났는데 잘난 사람이 잘했으면 그 사람이 더  위에 있지.

 이러니까 주일날 자기 아닌 원수인 자기는 주일날 꼭 찾아서 이놈이 원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 평소에는 보면 그놈이 저 중에 제라 그놈을 누가 죽일라  하면 막 원수를 삼아  요새 우리나라에 싸움이 나 죽이고 살리고 막 야단을 지겼는데 그게 자기 아닌  옛사람 그놈 높일라고 그놈 위해서 죽이고 살리고 했소 새사람을 그들이 아요  그러기 때문에 위방불입이라 위태한 곳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위방불입이라 사람의 마음이란 약해서 위태한 때 이런데 난간에 돌아다니면  떨어지기 쉽소. 물재주 잘하는 사람은 물에 빠져 죽는다고 나무 재주 잘하는  사람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고 위험한 곳은 안가는 게 좋아 이러니까 세상에  지금 싸우고 죽이고 날뛰고 하는 그것이 전부 뭐이냐? 옛사람이 중심이 되고  옛사람이 주격이 되어 가지고서 옛사람으로 사는 그 싸움이요. 성령이 오면 그  탐할 것이 아니라 전부 지금 그 죽을자 놀음인데 그 부러울 것이 뭐 있으며  상대할 것이 뭐 있겠소?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에게는 싸울게 뭐인가? 새사람은 그런 것 가지고  싸우지 안하요 새사람은 악령으로 더불어 싸우고 죄로 더불어 싸우고 옛사람  자기로 더불어 싸우고 왜? 그 자는 전부 옛사람 것이라.

 중생된 새사람은 자기 중심으로 살지 안해 하나님 중심이야 자기 욕심이 아니고  하나님 욕심으로 살아 이렇게 사니까 세상이 모르는 것 가지고 사니까 오해도  훼방도 별별 다 있지마는 예수님께서 참아 견뎠어 참고 견뎠어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인하여 이 고난을 개의치 아니하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한 것은  너희들도 이렇게 살기 위해서 했다. 이렇게 말씀했어 히브리 12장에 보면은 그  부끄러움을 개의치 안했어 참 사람으로 사니까 세상이 알 리가 있겠소? 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세상이 싫어하는 건데 참 사람의 생활법칙은 옛사람이  죽는 법칙인데 죽이는 법칙인데,  이러니까 그들이 모르는 지식을 그들이 모르는 소망을 그들이 모르는 보배를  그러니까 그들이 모르는 투쟁을 져 또 진다 저 등신이라 모르는 투쟁을 그들이  모르는 세상이 모르는 승리를 이래 가지고 세상이 모르는 걸 자꾸 키워갑니다.

모르는 걸 저축해 갑니다. 아무리 저축해 나가도 세상이 보지도 못하고 몰라  망했다고만 하지 예수님을 다 일해놓고 갔는데 망했다고만 하지 누가 저축했다고  크고 온전케 이루었다고 누가 알았소.

 이러니까 중생되지 안하면 못합니다.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못하네 다시 나게 못하기 때문에 안돼. 중생이 안되기 때문에 안돼요. 하나님과  진리와 연결이 안되기 때문에 안된다는 그말입니다. 다시 나지 못한다 말은  중생된 것은 하나님과 연결 진리와 연결이요. 연결이 안되기 때문에 안된다  그거야.

 이러기에 주일날이 아니면 옛사람 자기를 못 찾습니다. 주일날 못찾을 사람은  자기가 혹 하나님이 특별한 기회로 또 특별한 환란으로 이렇게 찾게하는 일이  있지마는 주일날 찾는 것이 제일 쉽습니다. 이거는 일반적으로 공통돼 가지고  있소.

 명신홍 목사님이 그분이 지금은 아마 세상을 떠났는지 모릅겠습니다. 그분이  부총회장도 하고 오만 것 다 했소. 아마 신학박사일꺼요. 다 했는데 6.25때에  지화 보따리를 짊어지고 무슨 장사하려고 지화 보따리를 짊어지고 륙색에 한 짐  짊어지고 6.25가 탁 났다 그말이요 6.25가 탁 나 버렸어 지화 보따리 짊어지고서  6.25가 났어.

 이래 가지고 어찌 어찌 교인들 덕택에 지하실에 가 가지고 하나님 쓸라고 또  지하실에 가 숨어 가지고서 지하실에 참 땅굴에 숨어가지고 거기서 지화 보따리  다 집어내 던지고 6.25 만나 놓으니까 언제 그거 뭐 그거 할 여가는 어디 있소  중간에 다 벗어내 던져 버리고 자기 피란해 가지고서 그 교인의 혜택으로 땅굴에  들어가 가지고서 거기서 이제 시편을 읽었어 거기서 시편을 읽다가 자기가  깨달아서 회개를 하고 이제 거기서 옛사람 새사람을 구별은 못했지마는서도  찾았어 찾아 가지고서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이래 가지고 이제까지 산 것은 전부  헛일하고 한 그걸 깨닫고 그래 자기가 그걸 얘기를 해요.

 내가 지화 보따리 륙색 짊어지고 다니다가 갑자기 6.25가 나 가지고 그때 그래  가지고 다 거석하고 땅굴에 가서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살려서 그때 시편을  읽었다 하면서 그 자기가 나와 가지고 그뒤부터는 주의 일 하니 얼마나  힘들겠소. 속에 창자에 내장염이 생겨가지고 이놈 암만 치료해도 안낫아 옆구리  구명이 뚫려가지고 그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회개가 됐으면 그게 낫지요.

 어떤 사람도 보냈는데 그 암만해야 안낫아 네가 회개해라 워낙 회개해라  했더니만서도 그 집회 와 가지고 그게 막혔어 그 구멍이 막혔어 대구집회 와  가지고 그 구멍이 막혔어 여기에 고무줄을 대 가지고 고무줄을 대 가지고서  이리는 밥을 못 먹습니다. 다 잘라 그랬기 때문에 고무줄을 이리 넣어가지고  그래 잘 연습될 수 있는 그런 걸 넣어가지고 그러면서 총신 신학교 교장으로서  신학교 이 집을 짓고 보조받아 집을 짓고 그 죽도록 충성으로 끝마쳤는데 아마  죽었지요 지금 죽은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럴때에 자기를 찾는 일이 간혹 있지  찾기 어렵습니다. 꼭 주일날 자기를 찾아야 돼요.

 주일날 참 자기를 구별하는 것 이걸 자꾸 연습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암만  인간이 실수해요 퍼뜩 실수해도 엎드리면 이거는 참 내가 아니고 원수인 이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구나 나 아닌 이것에게 내 마음을 빼앗겼구나 원수인 것을  압니다. 그 내가 아니고 나 아닌 놈에게 내 마음을 빼앗겼구나 이제 주인공이  나온다 그거요.

 이러니까 주일날 참 자기를 찾은 그 결과 주일날 자기 아닌 원수인 자기를  발견한 결과 이 결과가 맺어야 주일을 바로 지킨 증거라 그거요. 이러기에 이  주일은 자체가 거룩해지고 성장되어지는 이것이 주일날 받는 것이요 또 하나는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복을 받는 것이라.

 그 다음에는 "땅의 높은 곳에 올린다" 그 말은 이제 자체가 어찌된다 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것을 말하고 그 다음에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하는 그것이 이제  모든 축복이 되어지는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거 다음에 증거하겠소.

 이러니까 어짜든지 알아야 되지요. 모르면 구원 못이룹니다. 이러니까 서로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아주 허무한 사람도 얘기 해보면 서로 통해서 아는 사람이  있고 아주 훌륭하다 해도 사리판단과 가치평가와 그 표준과 중심이 이것은  옛사람이 되어가지고 있는 그 사람은 자기가 되어있는 사람은 그게 잘못  되어가지고 있으니까 거기 따른 운동이 모든 운동이 전부 잘못됐어. 쓸 말이 한  마디도 없어. 부득이 해서 흥흥 이렇게 해놓지마는 실은 불통이라 안통해 사람  그까짓거야 안통해봤자 큰 것이 아니지만 그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라  안통하면 저는 문제지.

 예수 믿는 것은 그렇게 껍데기로 믿는 것이 아니고 예수 믿는 것은 그렇게  피곤한 것이 아니요. 예수 믿으면서 아이구 부득히 예수 믿는다 세상에 부러운  것이 있다 그거 예수 잘못 믿는 사람이요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부러운  것이 없소 예수 안에 부러운 것이 있지 세상에 부러운 것이 어디 있겠소 전부  사망안에 있는 것인데 세상은 뭐라고 말했어? 요한 1서 5장에 어디있다 했소?  세상은 죄안에 있다 했소 약한자 안 죄안에 있다 했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주의 재림이 가까웠소. 뭐 어디에나 사람은 그만 수단 방법은 가리지 않소 자기  목적을 이룰려고 이 사람 만나면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 만나면 저렇게 말하고  그저 적당주의로 그래 말하지 거기에 생명이 싸우는 생명적 투쟁이 없어  이러니까 사람들이야 다 좋고 이렇지마는서도 하나님에게 맞습니까?  김현갑 집사님 손 들어 보이소 봐 못 나온거라 김병준씨 손 들어 봐요 김병준  봐 그 집이 몰사했다 그말이요 육덩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옛사람으로  바꿔졌어 막 결심을 하는 모양이라 그거 쉽게 되는 거 아닙니다. 허탕하게  신앙생활 해서 길들여 놓은 걸 그걸 당장에 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얼마나  그게 힘이 드는 줄 아요. 주일날 예배볼 때에 막 발동을 하고 안졸려고 애를  쓰고 그걸 보니까 마음에 불쌍히 여겨지고 마음에 마음이 가서 전화를 한 번  해줬더니마는서도 예 하더니만 어제 아침에는 나왔는데 오늘 아침에는 그만 빠져  버렸단 말이요. 일어났으면 지금 후회가 많을거라 지금 일어났는지 몰라 지금  일어나도 달려와야 됩니다. 요놈을 아이구 지금 예배보고 다 나올건데 부끄러워  부끄러운 그놈이 옛놈이요 그놈 죽여야 돼요. 그래야 이기지.

 그렇게 예수 믿는 것이 슬슬해서 되는 것 아니요 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  이를 갈아붙이고 이를 깨물고 이래 가지고 뭐 겉어머리는 말 없어도 속으로는 참  소금을 치면서 회개하라고 막 살을 들어 소금을 치는 그렇게 따갑게 회개하지  않으면 회개가 되는 것 아닙니다. 그 쉬운 것 아니요 이런데 어릴때부터  주일학생들 이렇게 자라서 서서히 본능적으로 이래 자라서 이렇게 되어지는 거는  얼마나 큰지 모르요.

 자기가 그 전처 아들이 있으면 옛날부터 어짜든지 죽여가지고 그러는 것이  역사인데 전처 아들이 한 마누라에 전처 아들이 있어도 괜찮고 두 마누라에 전처  아이들이 있어도 괜찮고 전처 아들이 다섯이라든가 여섯이라든가 여럿이라도  좋고 상관이 없어.

 주일학교 반사했던 사람은 그것을 떡 데려다가 자기 주일학교 학생을 만들어  놓으니까 진정 사랑이 가지 진정 기를 마음이 있지.

 이래 놓으니까 동네에서 상을 줄라 하는거라 아이구 아이가 저렇츰 많은데 저기  누가 들어가서 저리 살겠느냐 모두 비쭉 비쭉거리며 오니까 저 가난한 살림에 저  저거오면 어찌 되겠는고 비쭉 비쭉 지금 욕을 하고 비쭉거리고 있는데 와서  보니까 그게 아니거든 도무지 동네에서 상을 줄라 하는거라.

 그러니까 그만 교회가 벌컥 일어나 참 예수 믿을 것이다. 죽자껏 저 혼자 해도  아홉명 열명 개척교회 이랬는데 당장에 스물 몇 명이 되어버렸어.

 그 왔는데 보니까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보니까 이걸 업고 데리고 왔는데 이거  주일학교 학생 업고 다니던거 그게 제 반에 학생이거든 이래 놓으니까 어떻게  귀중히 여기든지 얼굴이 그만 영 젊어지고 미인이 됐어. 야, 네가 얼굴 왜 이리  좋아졌노? 얼굴이 아주 영 그만 미인이 돼 버렸어. 딱 꽉 짜인 것이 영 미인이  되어졌어.

 그 말하다 갑자기 아 저 아이는 뉘 아이고? 우리 아이 아닙니까? 보니까 사랑이  통해가지고 있다 말이요. 야 그래 너 뭐 좀 변해졌나 속에 뭐이 생겼나 뭐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옛날 있을 때와 지금 내가 볼 때는 그만 아주 통해 주일학교  반사노릇 이거는 정말 측량못할 축복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사람 하나 만들려면 그 예삿일이 아니요 새벽에 가서 깨우고 그게 다 하늘나라  상이 있어 새벽에 가서 깨우고 오만 그 사람 하나 살릴라 하면 그게 그리 쉬운  것 아니요 자기 고기덩어리 안에 있는 이것도 열달 자기 전 요소의 진액을  뽑아줘야 그게 아이가 되는 것인데 그게 내가 인격으로 되는 것인데 내 인격이  다 거기다가 기울어져야 되는 것이지 그리 아니면 그게 되어집니까? 세상에서는  모가 안박히는 것이 좋지마는 신앙에서는 모가 박히는 것이 좋소 그게 선지자요  면도칼이 같이 그리 길러야 돼요.

 그까짓것 그리 나가면 나중에 인본주의 교역자 되지 안돼 두루두루 사람좋도록  돌아 다니는 거 안돼요. 그 사람이 안 붙을만치 진리 때문에 붙지. 그리 아니면  안붙을만치 면도칼 이같은 사람이라야 이제 선지자가 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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