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로 묵상

 

1984. 8. 13. 월새벽 

 

본문: 시편 1편 2절∼3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 내나 여호와의 율법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때는  성경 말씀이요 또 지금은 신구약 성경 말씀이 다 여호와의 율법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특별히 이렇게 표시한 것은 '여호와의 율법이라' 하나님이  구속받은 우리로 더불어 계약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약하신 그 계약을 자기가 생각해 보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역사할 수 있고 믿지 안할 때는  하나님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나를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한 말은 너희들이 준행치 안하니 내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준행은 첫째 인정하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그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계약한 그 계약이 계약은 참  사람이 상상도 못 할 계약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영생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영생한다. 전부 다 거짓말같이 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신의  감동을 받지 안한 사람은 다 신구약 성경 말씀은 전부 거짓말만 주 모아 놓은  것이 성경이라 이렇게 그들은 말합니다.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 어떻게 사람이 영생을 합니까? 영생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된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유업으로 상속받는다. 세상에  제일 잘난 사람이라도 자기가 난 그 지역을 차지한다 해도 몇 해 차지하고는 다  내놔야 되는데 못난 우리에게 하늘에 있는 것과 땅의 것을 다 가질 수 있다 하는  게 이거 뭐 믿을 수가 없는 일이라 말이오. 자기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죽는다  해도 이것도 참 놀랠 일인데 하나님이 천한 죄인 날 위해서 죽으시고 살았다는  이것도 믿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성신의 감화가 오면 믿고, 믿으면 믿는 자에게는  그만 뭐 사생 결단 안할 수 없어 이 사실이 인정되는 자에게는 딴데 옆 돌아볼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딿는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내 부모가 죽어서 이제  마지막으로 장사만 지내면 이제 부모에게 대해서는 손 다 떼는 것인데, 내게  대해서 그래도 육적으로는 제일 은혜 베푸신 시은자인데 마지막 장례 지내는 것  장례 지내고 오겠습니다' 하니까 주님이 허락지 안했어요.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라라 내가 너 위해서 이렇게 했는데. 뭐 너거 부모가  너한테 은혜니 뭐이니 하는 그런 것도 내가 다 만들어 그 순서를 만들었고 내가  널 위해서 대속했으니까 그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나? 부모가 은혜의  기관이라 부모가 만일 몰라서 직접 은혜를 베풀었다 할지라도 그런 은혜의 억억  억억억만 배도 더 되고 측량 못 하는 은혜인데 이 은혜를 관계를 네가 두고서  갔다 온다고?' 책망했어요 허락 안 했어요.

 또 하나는 있다가 '내가 이제는 주를 딿겠습니다. 그래도 이미 이래 돼 가지고  있으니까 가정을 마지막에 그래도 좀 작별이라도 하고 말 한 마디라도 하고  따라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라니까 책망했습니다.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 너는 지금 큰 값에 팔렸기 때문에 그런 뭐 여유  시간이 없다. 마음 다하고 뜻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성품 다하고 전부  다해서 나를 사랑할 것이요 내가 또 인간을 사랑했기 때문에 나로 인해서 인간을  네 몸같이 사랑할 것이지 딴거 없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계약 주님이 우리로 더불어 계약한 이 계약을 사람들은 못 믿습니다 그러나  성신에 감화된 사람들은 믿어집니다. 우리는 믿어집니다. 그러면, 믿어지는데  우리가 여기 대해서 생각 갖지 안하고 평가해 보지 안하고 비판해 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큰 계약을 받고도 헛된 일에 뭐 쭈물쭈물 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로 더불어 계약한  이 계약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니까 기쁘고 즐거워서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그러면, 그 율법을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여러 가지가 종합돼 가지고 있는 마음인데, 우리 마음에는  기억성도 있고 감정성도 있고 취미성도 있고 뭐 이성도 있고 또 평가성도 있고  별별 것이 다 모여 가지고 우리 마음이 됐는데,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생각하면은  생각할 때에는 자기의 마음의 요소가 전부 똘똘 뭉쳐가지고서 지금 생각하는  것입니다. 전부가 뭉쳐 가지고서 초점이 돼 가지고 온 마음의 요소가 전부가 똘똘  뭉쳐 가지고 뭘 생각하느냐? 여호와의 율법을 생각합니다  이래 생각하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생각하니 자기의 마음의 모든 요소가 똘똘  뭉쳐 가지고 여호와의 율법을 생각하니까 여호와의 율법 속으로 기어 들어갑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생각하니까 여호와의 율법 안으로 들어가고 여호와의 율법  안으로 들어가게 되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성령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성령  안으로 들어가게 되니까 마지막에는 하나님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입니다.

 이제 이렇게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과 권능과 지혜, 이 계약속으로 자꾸  이래 들어가서 그 속에다 뿌리를 박으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된다 그말이오.

그 나무로 말하면 가장 잘 심어진 것. 가장 좋은 데에 뿌리를 박았어. 이러니까  가장 잘 무성하고 결실 할 수 있고. 이러니까 자 약속 속으로 기어 들어갔지.

자꾸 생각하니까, 생각하니, 약속을 생각하니 약속 속으로 기어 들어가지, 또 약속  속으로 기어 들어가니까 그 약속이 하나님의 진리니까 진리 속으로 들어가지.

진리 속으로 들어가니까 하나님의 감화, 성신의 감화 속으로 들어가지, 감화  속으로 들어가니까 또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지,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하고 연결이 딱 됐으니까 '시절을 좇아서 과실을 맺는다' 어떤 피조물이 뭐  이렇게 방해하고 저렇게 방해해도 어쨌든지 피조물 위에 능가했으니까 결국은  모든 피조물들이 위하기만 했지 해하는 것은 하나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시절을 좇아서 과실을 좋은 결과를 맺을 수밖에 없고 또 언제든지  거게는 쇠잔함이 없이 청청할 수밖에 없고 날마다 청청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쁨을 가지는 것도 생각을 사용해야 되고 생각을 사용하되 그  생각을 어데 사용하는가? 돈을 생각하면 돈 속으로 기어 들어가니까 결국은  함정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권세나 지위나 그런 것 또 세상에 있는 뭐 이런  행락이나 저런 행락 속으로 들어가도, 이런 취미 저런 취미 속으로 들어가도 다  죽는 것이지 아무, 그게 백해무익입니다. 사람들이 이 생각 가지고 여게 들어갔다  죽고 저게 들어갔다 죽고 이런데. 여호와의 율법을 생각하는데로 들어가면 차차차  들어갈수록,  자, 하나님의 계약 속으로 들어갔다. 계약 속에 들어가니까 하나님의 불변의 진리  속으로 들어갔다. 진리 속으로 들어가니까 성신의 감화 속으로 들어갔다. 성신의  감화 속으로 들어가니까 하나님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하나님 속에 폭 파묻혀  가지고서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식물이 진액을 빨듯이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마구 빨아 댕기니까 그게 무성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러기 때문에, 생각을 잘못 쓰면 그 사람은 망합니다. 그러기에 생각을  여호와의 율법을 생각하는 것, 주야로 묵상, 묵상이라 말은 다른 것 다, 다른 것  다 안 보고. 묵이란 말은 잠잠 묵(默)자요. 잠자코 아무것도 보지 안하고 생각  상(想)자, 묵상, 잠자코 생각한다. 아무것도 다 생각지 안하고 꼭 거게만 생각한다,  이라면 이게 천국이 돼요.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권찰회 할라고 했는데 권찰회하는 것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 있어서 오늘은 설교도 잠깐 마치겠습니다. 마치겠으니까 전부 저 수원지  산으로, 걸어서 가요. 언제 뭐 차 타고 갈라고 우 모여 있을 동안에 갔다 올  동안에 걸어가면, 걸어가며 기도하지, 여기 모여 있으며 서로 탈라고 줄지어  가지고 있을 때는 기도 못 해요. 차 오면 서로 탈라 하지 맘이 흐트러집니다.

그만 아예 단정짓고, '나는 걸어가겠다' 단정을 짓고서 살살 걸어가면서 차에  받치지는 안하도록 눈을 뜨고 기도해요, 눈을 뜨고.

 눈뜨고 기도하는 게 안 되는 게 아니야. 저도 어떨 때는 기도할 때 눈을 뜨고  기도합니다. 눈을 뜨고, 아침에도 와 가지고 눈을 뜨고 기도하고 또 저녁으로 삼십  분 기도할 때도 눈을 뜨고 기도하고, 눈뜨고도 기도하고 눈감고도 기도하고  누워서도 기도하고 앉아서도 기도하고 서서도 기도하고 인제 기도 가운데  들어가면 뭐 누웠느니 앉았느니 그까짓 것 껍데기요. 그거 상관이 없다 그거요.

 이래 눈을 뜨고 가면서 기도합니다. 그러면, 가면서 기도해 보십시오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가면서 기도하면은 기도가 자꾸 되고 기도의 준비가 돼 가지고  가서 십 분 기도하는 동안에 그만 모든 준비가 다 됐기 때문에, '요이 땡' 하면  그만 달아나는 것 모양으로 준비해 가지고 기도하면 십분 동안이라도 십 분 동안  기도하면 굉장히 많이 기도합니다. 그라고 나면 또 오면서 또 십 분 동안  기도하면 벌써 끝을 맺힌다 말이오. 탑을 만들어 가지고서 위에 탑 꼭지를 만드는  것 모양으로 오면서 살살 기도해 가지고 집에까지 오면은, 인제, 와서는 뭐이냐?  집에 와서 일하면서 모든 것 다할 때에 기도할 수 있는 것이 다 연성이 됐다  말이오. 그러면, 밥하면서도 기도하고 직장 가면서도 기도하고 세수하면서도  기도하고 양치하면서도 기도하고 또 집에 작별하면서도 기도하고 모든 걸 기도로  이라면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인제 여기는 주야로 묵상하라 했다 말이오. 모든 생각 가지고서 밤낮으로  하나님의 계약을 생각하라 했으니까 일할 때는 두고 그저 가끔 가다 쉴 때만  그라면 되겠습니까? 주야니까, 밤낮이니까 계속이라 그말이오. 그래야 거게서,  우리의 참 행복과 권능과 한없는 평강과 기쁨이 그 속에서 우러나옵니다.

 그만 그거 잊어버리면. 믿는 사람들은 그걸 만나면 만족하고 아무것도 염려가  없고 할 일도 꼭 있고, 안 될 게 없고, 이것도 하면 되고 저것도 하면 되고 다  소망과 담대가 되는 것인데 그걸 잊어 놓으면 그만 마치 공중에 달아 놓은  두레박이 그만 끄네끼가 떨어지면 뚝 떨어져 가지고 뭐 그저 바다에 떨어져서  이리 저리 밀려가는 것처럼 걷잡을 수가 없어. 그걸 잊어 놓으면 성도들이 이것도  그만 이리 저리 헤매 가지고서 이것도 잡아 봐야 만족 없고 저것도 잡아 봐야  만족 없고 이리 저리 헤매이서 한참 미친 사람과 같이 돼 어려. 미친 사람같이,  마치 정신 잃은 사람같이 그렇게 돼져 거게 딱 들어붙으면 뭐 천지가 변해도  요동치 안하는데.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가끔 가다가 하나님과의 연결을 딱 끊어 줘  버립니다. 끊어지면 그만 갈급해서 죽을 지경이라. 꼭 마치 말하면 사람 모가지  끊어 놓으면 막 죽을라고 뛰고 굴리는 것처럼 꼭 모가지 끊긴 거라. 그래 이래  주님하고 딱 들어붙으면, 들어붙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처음에 들어붙고 그  다음에 또 한층 더 두껍게 들어붙는 것은 영감으로 들어붙고 영감으로 들어붙어  가지고서 그 안에 거석하면 그만 하나님의 안으로 견고하게 된다 그거요. 오늘  아침에는 지금 이것으로 끝마칠 터이니까 모두 산에 기도하러 가도록 하십시오.

 그라고 이번에 가서 은혜를 받아서 뭐 병 나은 거 있으면 그런 걸 세밀히 해서  기록할 것은 자기 구역 기록하고 자기 성명 기록하고 병 이름 기록하고 몇 해  동안 고생했다 그거 기록하고 또 자기는 나았다. 나았으면 나았다 이래 기록하고  다 나은 사람도 있고. 일부 병이 열 가지인데 하나만 나은 사람도 있고 또 열  가지 다 나은 사람도 있고 이런 건데 나은 대로 말하고 '내가 낫기는 나았는데 다  나았다고 이러면은 혹 찌꺼기 못 나은 것이 있을런지 모르니까 낫는 중에 있다  해야 되겠다' 하는 고거는 하나님 앞에 망령된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안하고서 항상 자기 주관으로 가는 거라. 신앙의 권능은 자기 주관을 버리고  객관인 하나님의 주관을 내 주관으로 삼을 때에 권능이 오는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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