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7 15:26
주안에서 기쁨과 평강
1987. 12. 13. 주일오전
본문:빌립보서 4장 4절∼7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하신 것은 이 세상 것으로 기뻐함이 아니고 주님의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여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기쁜 생활을 하지 못하고 항상 초조한 생활을 하고 또 우울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말하기를 ‘어데든지 어깨가 축 처져 가지고 활기 없는 그런 사람을 보거든 예수 믿는 사람으로 알아라’ 그렇게 보통 말합니다.
그런데 서울에 아현, 김현봉 목사님 계실 때의 그 교인들은 일반 교인들과 다릅니다. 그들은 머리는 빡빡 깎았고 옷은 언제든지 광당목 꺼먹물 들여 가지고서 한복 입고 그래 다닙니다. 누가 보면 괴물 중에 괴물입니다. 그래도 무례한 일은 안 하지마는 시장에든지 골목에든지 어데 가는 것 보면 막 길을 씁니다. 이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 아주 뭐 어떻게 활기 있게 그렇게 걸어가고 또 하는 일도 씩씩합니다.
그 사람들은 하루 일을 보통 세 시간 합니다. 세 시간 하고 남은 시간은 성경 보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또 교회 일 와서 봉사하고 또 다른 형제들 일 돕고 그래 삽니다.
그래 내가 거기 사람들 청년 하나 만나 가지고서 ‘자기는 뭘 하고 사느냐?’ ‘예, 지금은 노트장사 하고 삽니다.’ `노트장사 그것 가지고 밥을 먹을 수 있나?' ‘예, 뭐 얼마든지, 하루 세 시간만 하면 잘살 수 있습니다.’ `몇 해나 했느냐?' `이제 한 한달포 됐습니다.’ ‘그 전에는?' `그 전에는 연필장사 했습니다.' `그러면 연필장사도 밥먹는다 말이가?’ ‘예, 그것도 세 시간만 하면 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어떤 종류든지 세 시간만 하면 밥먹을 수 있는 그런 훈련을 받아 놨습니다. 저는 교인들 백 명이라도 맡겨 주면 백 명에게 다 밥먹을 수 있는 직업을 다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합디다.
그 사람은 한 가지 가지고 여러 날 하지 안해요. 그저 그걸 시작해 가지고서 밥먹을 만하면 다른 사람 넘겨주고 또 저는 또 딴것 하고 딴것 하고 이래서 그렇게 하는데 그 사람들은 항상 기뻐합니다, 항상 즐거워하고. 항상 기뻐하고.
또 그 교회는, 지금은 큰 교회가 있지만 그 당시는 그 교회가 우리 전국에서 제일 많이 모이는 교회입니다. 그뭐 영락교회니, 또 대구 제일교회니, 신정교회니, 서울에 충현교회니 하는 그런 교회들, 부산에도 여게 삼일교회니 초량교회니 하는 그런 교회들 지끈 삼백 몇십 명 사백 명 다 미만이었습니다. 그랬는데 그 교회는 그때에 천 명이 모였습니다.
그랬는데 다른 교회는 삼사백 모이지마는 늘 시비요 싸움입니다. 또 껍데기는 서로 뭐 손을 거머쥐면 팔이 떨어질 만치 막 흔들고 악수를 해도 속에는 악과 독이 가득 찼습니다. 이래 가지고서 전부 속으로는 시비요 시기요 쟁투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거게는 그런 게 없어. 김현봉 목사님이 말하면 그저 죽으라 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합니다. 그러니까 모두 말하기를 ‘아현교회는 그 모두 핫바지 광당목 옷 입은 그 등신들 그런 것만 모여 있기 때문에 그 교회는 김현봉 목사가 말만 하면 다 순종하고 그렇게 한다’ 그렇게 하는 소리를 제가 일반 교계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그거 그럴 것 같애요. 다른 교회는 다 모두 똑똑하고 그렇게 뭐 제직회 하면 이 사람이 주장 내놓고 저 사람이 주장 내놓고 하니까 그만 제직회 하면 나중에 가서는 시비하다가 싸움하다가 말고 그만 이렇게 하는 것이 이 교회인데 그 교회는 김현봉 목사님 말이면 그만 전적 순종합니다. 이러니까 ‘등신들만 있어 그렇다’ 이랬는데 그때는 등신이 누군지 알 수가 있어야지? 나중에 김현봉 목사님이 별세를 하시고 난 다음에 그 교인들이 그때 다 흩어졌습니다. 흩어졌는데 가는 곳마다 그 사람들이 다 장로요 또 그 사람이 그때 국회의원도 있고 지금도 거게서 나간 사람들 거의 사장입니다. 뭐 다 큰 회사 사장들이오. 그뒤에 그 사람들을 제가 좀 만나봤는데 아주 건전하고 경건하고 똑똑합니다. 아예 속이는 일도 안 하고 속는 일도 안 하고 헛일을 안 해요.
지금은 사람들이 과연 김현봉 목사님의 목회하던 그 아현교회가 참 그것이 참 교회라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고 그 교회가 여러가지로 나뉘어서 분열되니까 ‘봐라, 그 분열되니까 그것 교회가 뭐 아무 제도도 없고 그러니까 분열됐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있고 하는데 그분이 참 특수한 목회를 했습니다.
그분들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는 이 기쁨을 가진 교인들이었습니다. 다른 교회는 장로고 목사고 다 이런 기쁨을 가지지를 못하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해방 직후에 모든 그 불신자들이 말하기를 ‘모두 목사들을 전부 국회의원으로 세워 가지고 그래 이 민주주의 나라를 세우자. 아무래도 그들이 사욕이 없으니까 그분들을 국회의원을 세워 가지고서 우리 나라에 이 초기 건국을 하자.’ 뭐 아마 거의 전국이 다 그랬었습니다. 그러고 목사들이라 하면 다 머리를 숙이고 이렇게 존경을 하고 장로들이라 하면 다 존대를 했습니다.
했는데, 그러고 나서 모든 사람들이 목사에게 이렇게 뭐 벼슬을 줄라 하니까 어떤 목사는 안 한다 하고 그것을 자기는 목사노릇 하지 직분이 다르기 때문에 안 한다 이라고 장로들도 안 한다 하고 어떤 사람들은 좋다 하고서 뭐 목사 장로들이 그때 높은 벼슬 거의 다 했습니다.
다 했는데, 맡겨놓고 보니까 도적질은 혼자 합니다. 부정은 혼자 합니다. 이래 하니까 ‘이놈들 순 외식쟁이로구나. 천국 천국 하고 땅의 것은 아주 그것은 아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고 이렇게 천국만 말해서 우리는 땅에 있는 욕심이 없는 줄 알고 땅의 것을 맡기면 잘할 것이라 했더니만 그놈들이 땅의 욕심은 더 부리는구나, 이 도둑놈들.’ 이래 가지고서, 처음에 해방 직후에는 성경만 거머쥐면 a때 통행금지가 엄격했습니다ct3 t2성경만 거머쥐면 통행금지가 없었습니다, 성경만 가지면. ‘예, 가십시오.’ 이랬는데 그때 그저 한 약 일년 못 되게 그런 대우를 받고 난 다음에는 전부 도둑놈이라고 그래 가지고서 뭐 쫓아내고 이래서 그때 뭐 날뛰던 장로들 다 쫓겨나오고 또 무슨 뭐 위원장이니 뭐이니 무슨 장이니 장관이라 하는 것 다 쫓겨나오고 그랬었습니다.
그것이 교회가 아니고 그것이 거짓 교회입니다, 거짓 교회, 땅에 속한 교회, 세상 것을 차지 못 하니까 사람들을 꼬와 먹느라고서 ‘그까짓 거야 가치 있나, 뭐 그럴 것 탐할 게 뭐 있나, 욕심낼 게 뭐 있나? 이러다가 막상 저거 손에 닥쳐 놓으니까 이제는 됐다 싶어서 마구 둘러마시고 이러다가 다 탄로가 나고 야단이 났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런 기독교가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크고자 하는 자는 종이 돼야 될 것이고 높고자 하는 자는 낮은 자 작은 자가 돼야 될 것이다.
너희 나라는 세상 나라와 같지 않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 기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기쁨이 없는 것은 왜 기쁨이 없느냐? 이거 안 믿을 때와 같이 죄를 짓고 이렇게 살고 보니 양심에 가책이 돼서 또 고통이지 또 죄 안 짓고 깨끗하게 살려고 하니 모든 일이 안 되지 이래 놓으니까 이리도 저리도 못해서 항상 찡그리고 그만 어깨를 축 처져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서 한번도 어깨 펴고 다니지도 못하고 살지 못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늘의 것을 잡지를 못하고 땅의 것만 잡고 있고 하늘의 것을 잡지를 못했는데 땅의 것을 잡고 그것을 취하려고 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이것 뭐 거짓말을 그것을 지혜로 삼아 가지고 하는데 이러니까 또 교회 오니 그런 것은 그리 하면 안 된다 이렇게 교훈을 받으니 엎드리면 가책되고 일어나서 살려고 하면 또 그대로는 안 되고 또 모순되고 이러니까 이리도 저리도 못해서 그렇게 항상 불안한 가운데에, 천한 가운데에, 비겁한 가운데에 옹졸한 가운데에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 정직하게 깨끗하게 살아보면,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했는데 살아봐야 축복이 와야지? 이래 놓으니까 한 며칠 살아보고 난 다음에는 그만 소용 없다 이래 가지고 낙심하고 배신하고 돌아가는 것이 기독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으로 기뻐해야 됩니다. 구원으로 기뻐하는 이 기쁨을 가져야 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이 우리가 간단하게 몇 가지만 말해서 무슨 구원인가? 영원히 죄에 종되어 있는 우리들을 죄에서 해방시켜서 죄짓지 않고 살 수 있는 죄에 자유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다 사함을 받았습니다.
요새 우리 나라에서는, 우리 나라뿐 아니라 세계가 뭐 죄지어도 죄값이 그렇게 크다는 것이 별로 보이지 안하고 그만 이렇게 나가기 때문에 이 성경 해석도 영 달라집니다. 참 죄라는 그것 죄지어서 정죄돼 놓으면 거게서 그 죄를 형을 받기 전에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데 하도 세상이 죄지어도 뭐 돈만 좀 주면 되고, 죄지어도 거짓말만 하면 되고, 죄를 지어도 몇 사람이 그만 단합만 되면 문제 없고 이렇게 돼 놓으니까 이것 죄에서 예수님이 해방시켜서 사죄받았다는 것 이 영원한 멸망의 원인이 되는 죄에서 해방시켜 주신, 죄를 면제해 주신, 예수님이 대형하셔 가지고서 면제해 주신 이 일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여기지를 안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공변된 보응에서 멸망의 원인이 되는 그 죄를 예수님이 다 대형하셔 가지고 하나님도 죽지 안하면 죄를 없앨 수가 없어서 형을 받으셔 가지고 죄를 없앴는데, 죄를 없애 주신,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신 여게 대해서 그렇게 감사한 줄도 모르고 큰 줄도 모르고 기쁜 줄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것이 참 기뻐할 만한 가치가 없어 그런가? 가치는 무한히 큽니다.
우리의 심령이 어두워서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죄에서 해방되어 그 사람에게 다시는 영원히 죄의 형벌이 없는 사죄받는 것과 한국 땅덩어리를 전부 다 차지하는 것과 어느 게 큽니까? 한국 땅덩어리를 차지하는 그것 억억만 배보다 더 큽니다. 이렇지만 몰라서 그렇습니다.
아현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사함을 받은 이 가치를 깨닫고 보니까 그들이 기뻐서 항상 어깨를 막 추켜 들고 돌아다니요. 그래도 불량은 안 지깁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영원히 죄의 형벌에서 면제되고 영원한 이 크고 작은 모든 죄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다 사죄함을 받은 이 사죄에 대해서 자기가 깊이깊이 생각하고, 조끄만한 죄만 지어도 일 년이면 일 년 구형됐으면 일 년 징역을 가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되고, 또 더 큰 죄 지으면 오 년 십 년 이렇게 거석하면 그 형을 받아야 되지 안 받으면 안 되는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나 만물에게나 인간에게 대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는 뭐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데 이 죄를 주님이 다 대속해서 사해 주신, 죄를 사해 주시고 또 죄에서 해방돼서 다시는 내가 죄를 안 지으려면 안 지을 수가 있어. 죄가 나에게 왕노릇하지 못하고 우리가 죄를 안 지으려면 안 지을 수 있다 그거요.
누가 말하기를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서 죄 안 짓고 사노?’ 죄 안 짓고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로서는 안 되지만 예수님의 대속으로 됩니다. 그걸 가리켜서 “죄에서 해방하여 자유를 주었다” 자유를 주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으로는 안 되지만 예수님이 죄에서 사죄 주신,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사죄 주신 것을 자기가 믿고 죄를 짓지 안하려고 죽기까지 힘쓰면 안 지을 수가 있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이것을 다 뭐 해석하려면 한정 없는데, 하나님의 심판에서 영원한 세계에서 죄에 대해서 사함받고 죄를 완전히 없애서 죄 없는 사람으로 무궁세계에 발을 옮겨간다는 것, 지금부터 죄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됐다는 것 이것을 생각하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을 우리가 가져야 하고, 또 예수님이 우리를 영원한 사망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서 사망의 종이 되지 안하고 사망에게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사망을 없애 줬습니다.
그러면 지금 믿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죽는 게 아니요. 그것은 이 시간과 공간에 제한되어 있는 이 몸뚱이를 시공을 초월한 신령한 몸으로 변화함을 받아 가지고 입기 위해서 이 제한된 육을 이것을, 혈과 육을 이걸 벗어서 주님에게 맡기는 것은 신령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시공을 초월한 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성화시켜서 우리가 입기 위해서 벗는 것이지 죽음은 없는 것입니다. 이 죽음이 영원히 없어진 이 일이 얼마나 큽니까? 다시는 마귀가 우리에게 왕노릇하지 못하고 마귀에게 자유의 해방을 얻은 것,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완전히 해방 얻은 이 구원, 하나님의 공심판에 정죄받은, 하나님의 공심판에 모든 인간이 다 그 심판받아 가지고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는데 우리는 예수님이 대신 행하셔 가지고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셔서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의 공심판에 의로운 자로 통과가 이미 됐어. 우리는 공심판을 받을 이유가 없어. 이것도 생각하면 하나님의 공심판에 의인으로 통과됐으니 이것도 뭐 밤낮 기뻐서 뭐 뛰어도 못 견딜 것이고, 만유의 대주재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 됐으니까, 대통령하면 우리 나라는 칠 년이 제일 길었었는데 그러면 칠 년이라 할지라도 칠 년 대통령하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이제 평민으로 돌아간다 말이오. 그 동안 그 대통령 아들만 된다 해도 굉장할 건데, 이승만 대통령 아들도 아니고 양아들이라고 하는 그 양아들이라는 그 말을 경주 가서 하니까 이 대통령 양아들 왔다고 마구 경주 시내가 덜썩거렸는데. 이 대통령이 큽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큽니까? 이 하나님의 아들이 됐지만, 이 거짓말입니까? 아니오. 하나님의 아들이 됐소. 하나님의 아들이 됐지.
죄에서 완전히 면제됐지, 하나님의 공심판을 의인이라고 통과가 됐지,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 됐지, 또 우리에게 영생하는 생명을 우리가 받았지. 영생하는 생명으로 우리가 중생되지 안했습니까? 우리의 영은 영생합니다. 우리의 마음이나 몸도 믿음 지킨 것은 다 영생의 기능으로 영원히 부활해서 다시는 죽지 않습니다.
영생을 받았지,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우리가 기업으로 받았지, 하늘나라에, 늙는 일이 없고, 늙는 일도 없고, 병드는 일도 없고, 쇠해지는 일도 없고, 시비하는 일도 없고, 싸우는 일도 없고, 죄짓는 일도 없고, 아픈 것도 없고, 슬픈 것도 없고, 언제든지 장생불로, 영원히 살고 늙지 안하고 쇠하지 안하는, 하늘나라에 이 영광의 세계를 우리의 나라로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었으니까 이것도 뭐 얼마나 기쁩니까? 거게는 배고픈 일 없습니다. 아픈 일도 없고. 거게는 안 늙습니다. 죽지 안하요. 원수 맺는 것이나 그뭐 그런 원망 불평 시비하는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옳고 깨끗하고 바르고 기쁘고 즐거운 그 나라의 시민권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진리가 우리의 생명이 됐습니다. 진리가 우리 생명이 됐소. 성신의 감화가 우리 생명이 됐소. 예수님의 대속하신 완성이 우리의 생명이 됐습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생각하면 깨달아지고 깨달으면 기쁘고 즐거워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참 감사와 기쁨의 충만으로 살 수 있는 게 기독자들인데 이것은 생각지 안하고 마귀란 놈이 주는 자꾸 세상 그 죄악의 것만 생각하니까 자꾸 근심 걱정에 억눌리고 자살 자멸하는 행위를 자꾸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 역사에 자꾸 한 가지 두 가지 자꾸 새로운 것이 전개 돼 나옵니다. 새로 된 게 전개돼 나오니까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은 인간들의 문화가 발달이 되니까 자꾸 전개돼 나온다, 그것을 진화로 생각하지만 아니오.
하나님이 영원 전에 딱 예정해 놓은 그 예정 순서대로 하나씩 둘씩 착착 하나님이 진행시키는 것이지 우연히 뭐 진화적으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예정 성취대로 되는 것이오.
그러면 그 예정을 우리 구원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셨지, 모든 순서 내가 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나 모든 순서는 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그 순서는 지금 진행되고 있어.
모든 존재는 택한 자들의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셨어. 이것 거짓말입니까? 내가 말하는 게 아니고 성경이 말해 놨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성경은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변동 못 한다 했습니다. 이걸 믿으면, 이 사실을 알고 인정하고 요대로 살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는 복을 뭐 받고 이럴 텐데, 자, 아는 것도 억지로 가르쳐서 알아도 학교 다니는 그 지식만 산 지식이요 보배로 알지 이 성경 말씀 가르치는 것은 ‘그것은 호랑이 담배 필 때에 한 미신이나 신화나 그런 거다’ 믿는 사람이 없다 그말이오.
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난 다음에는 ‘이것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요대로 된다’ 확실히 인정하고, 인정하면 자기 속에 할 일이 생길 것이고, 알고 인정하면 막 뛰고 굴릴 것이고, 그다음에는 그대로 안 행할 수 없는 사람 될 터인데.
행하면 그 결과로 불구덩이에서 살아나오고, 사자구덩이에서 살아나오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고 이렇게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그 능력이 자기와 같이 하셔서 이것을 환하게 볼 수 있을 터인데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것입니다.
왜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러면, 저거 마음에는 저거가 부자가 제일이니까, 권세가 제일이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그러면 잘 믿는 사람인데 왜 잘 믿는 그 사람은 부자가 안 되는고?’ 잘 믿는 사람에게 가서 물어 보십시오, 잘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부자를 눈꼽재기만치도 똥덩이만치도 가치로 여기는가? 안 여기요. 하나님이 주시지 안하는 그 물질을 소산수 독약 그것과 같이 여기기 때문에 먹으면 죽을 줄 알기 때문에 물리치지 그것을 취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공연한 말이요? 아니오.
천하에 있는 세상 권세 전부보다도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를 지켜 행한 것을 더 고귀한 가치로 여기고 사는 것이 다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가치를 딴데 두고 욕망을 딴데 두고 이래 살기 때문에 세상 사람이 보면 미련한 사람이요 어리석은 사람이요, ‘왜 그 사람들도 그러면 그렇게 되면 안 되는고?’ 안 되는 게 아니라 원치 안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면 죽음도 좋고 부자도 좋고 하나님의 뜻대로의 주는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탐하고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된 것, 예수님 안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참혹한 멸망을 받는 것, 처음에는 모르지만 성경을 아는 사람은 환하게 알 수가 있다 이거요. ‘저 생활은 어찌 되느냐? 저 생활은 앞으로 비참하고 가련한 생활이라.’ 하는 것 알게 되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성경을 보고 알려고 애를 써서 성경을 보아서 성경을 아는 지식이 차차 차차 늘어나가고 커나가고 더 많아가고 자라가고, 성경을 아는 지식이 자라가고 이 말씀을 믿는 도수가 점점 자라가고 높아가고 넓어져가고 더 견고해져가고, 이래도 좋아서 못 견딜 건데? 하나님 말씀을 보지 안하고 알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인정 안 하기 때문에 네게는 고통이고 이 거짓말 책으로 알지.
하나님 말씀을 보고 사실인 것을 인정만 해도 자기는 말할 수 없는 행복의 사람인 것을, 아무도 부럽지 안하는 행복의 사람인 걸 알 것이오. 그리고 난 다음에 실행 안 할 수 없어. 실행을 해 보면 바울과 같이 “과거에 가치 있게 여기던 모든 것을 이제는 내가” 뭘로 여긴다 했습니까? 배설물. 찌꺼기로 여겼어.
왜? 인간 이 세상 생활에 보이는 이 모든 것은 찌끼요 그 속에 네가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을 지켰나 안 지켰나, 영감으로 살았나 안 살았나, 영원한 것을 위해서 살았나 안 살았나 그게 진짜라. 고것 하기 위해서 이 현실이 필요 있는 것이지 현실에 부귀 영화 그 보이는 것 있다가 없어지는 그런 데다 가치를 두지를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라 해라. 정함이 없는 물질에, 물질계의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모든 것을 주어 후히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해라.” 성경에는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어데서? “주 안에서” 예수님의 이 구원하신 이 구원, 우리에게는 그걸 알려서, 다른 데는 평생 예수 믿어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도 있어요. 열여섯 가지 예수님의 구원을 말씀해 놨다 말이오. 똑똑히 열여섯 가지 다 외우고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으로 말하면 온 국민의 대리자요 중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도 영광이 있지요. 우리는 무슨 직입니까? 우리에게 주신 직은 무슨 직이요? ○○○집사, 무슨 직이라? 주일날 예배보러 올 때에는 토요일날 밤부터 하나님께 기도하고 은혜받으러 와야 돼.
‘이제 내일은 주일이니까 시장에 장사하러도 안 가겠고, 장사하러 갈 때는 낯빤대기도 씻고 빤질빤질 분도 바르고 하이칼라도 하고 이래 하지만 교회쯤 가는 거야 뭐 그거야 입던 옷 입고 눈이 뻐끔 들어가든지 말든지 찌그러지든지 말든지 옷이 어쨌든지, 교회 가는 거야?’ 그런 심보를 가지고 오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안하고 축복을 못 받는다 그말이오.
토요일날은 할 수 있는 대로 일찍 자고, 목욕도 하고, 헌옷이라도 씻어서 갈아입고, 또 남녀 가까이 하지 말고, 정신 차려 가지고서, 와서 똘박똘박 이래야 될 터인데. ‘교회쯤이야?’ 벌써 오는데 송장이오. 오는데 반 송장이라. 이래 가지고 와 가지고 그만 올 때부터 그만 졸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들, 택자는 하나님의 축복의 도우심이 아니면 절대 영육의 성공은 없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갈릴리 바다에서 일등 어부노릇을 했지만 일단 만나고 난 다음에는 갈릴리 가서 고기 잡는 것도 안 됐어. 주님이 시키시는 그 명령대로 해야 고기도 잡혔어. 이것 뭘 가르칩니까? 벌써 예수 믿기 시작한 사람은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은 그런 수단 방법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거룩하게 깨끗하게 영감과 진리대로 살아야 세상 일도 성공을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 예수님의 주시는 이 큰 구원 속에 네가 파묻혀 가지고 있으면서 왜 기뻐하지 않느냐? 기뻐하지 않는 이것이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람되시기까지, 죽기까지, 또 영원히 피조물로 부활하시기까지 큰 사랑으로 큰 희생해서 주신 말할 수 없는 지극히 큰 구원,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데에서 이렇게 기쁨을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데에서 기쁨을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등한히 여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벌이 있다고 했소. “등한히 여기는 자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진노하시며 어떻게 너희들에게 하나님이 노여워하시겠느냐?” 했습니다.
이 구원을 우리가 생각하면 기쁨이 나와. 우리 기쁨은, 우리 기쁨은 여러분들, 눈으로 봐서 기쁜 것은 멸망의 기쁨입니다. 알겠습니까? 귀로 들어서 기쁨도 멸망의 기쁨이오. 자기 몸으로 접촉해 봐서 기쁨도 멸망의 기쁨이요 다 없어질 것들입니다.
우리 기쁨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깨닫고 할 때에 우리 마음 속에서 양심을 찾고, 양심 속에서 영감을 받아서 생각할 때에 그 속에서 막 나옵니다. 그 속에서 기쁨도 나오고 즐거움도 나오고 담대도 나오고 겁도 나옵니다. 거게서 나오는 겁은 가져야 됩니다. 네가 사지에서 네 생명이 구출되는 것보다 죄짓는 것이 더 두렵다. 생명을 뺏겨도 죄짓지 말아라 하는 것이 그 속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라.
이러니까 그 속에서 나오는 두려움 그 속에서 나오는 기쁨,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 속에 양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성령의 감화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지식을 참되다 인정하고 보니까 그로 인해서 내 속에 나오는 기쁨이 참 기쁨이요, 소망이 참 소망이요, 부요가 참 부요요, 지혜가 참 지혜요, 능력이 참 능력이지 그 외에 이 피조물에게서 얻는 것은 다 없어질 것들입니다. 가치가 없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예수 믿는 성경을 생각지 안하고 하니까 기쁨이 없지, 생각해도 거짓말이라 하니까 기쁨이 없지,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네가 생각해 보고 ‘보자’ 시험이라도 해 봐, `해 보자. 말씀대로 해 보자.' 실행해 봤으면 `아멘. 과연 그렇구나. 과연 그렇구나.’ 예수 믿는 것은 해 보고 난 다음에 ‘과연 그렇구나. 과연 그렇구나.’ 과연 과연 해서 자기의 경험이 자꾸 쌓여지고 체험이 쌓여지고 난 다음에는 예수 믿는 이것은 기뻐하지 안할 수 없고 여게서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이래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절에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관용이라 하니까 모든 사람을 누그럽게 대해서 다 용납하는 것으로 이렇게 껍데기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관용이라 말은 네 관대함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 줘라. 모든 세상을 탁월한 이 고차원의 네 구원을 보여 줘라.
지금, 예를 들면 우리 조그만한 나라에서라도 대통령될 사람이, 대통령을 지금 소망삼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 감 한 쪼가리 가지고서 크다 작다, 왜 큰것 네가 먹노 작은 걸 날 주노 이 시비를 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 `미안합니다.
내가 큰 것 차지합니다.’ ‘큰 것 차지해. 이것 다라도 괜찮아. 먹고 싶으면 다라도 먹어.’ 그런 데다가 가치를 둬서 시비하지 안하고 거게서 높은 차원에서 있으면 그런 사소한 그런 것 가지고 가치로 삼아서 자기의 모든 인격이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극히 큰 소망을 가진 것을 인인 관계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줘라. ‘저 사람은 지금 참 분개할 만한데’ 하나도 분개 안 합니다. `저 사람은 지금 손해봤으니까 지금 시비를 할 건데’ 그렇지 않습니다. 왜? 지극히 큰 이 소망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 것 삼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써 상대하지 안하고 그런 것에게 속해서 그런 것의 사람으로써 그것 사람으로써 거게 피동되고 그것으로써 자기의 모든 인격이나 사상이나 정신이나 생활이 거게 따라서 움직여지는 거게 피동되는 사람이 안 된다 그말입니다. 이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 줘라.
“너희 관대함을” 모든 것을 다 이해함을, 모든 것을 다 양보함을 보여 줘라. 큰 걸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까짓 것 시비할 게 없어.
이러니까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저거는 등신이라. 저거는 자존심도 없고, 창자도 없고, 속도 없고, 저거는 천치 바보라.’ 바보가 아니라 네가 보고 시비하는 그런 차원의 것은 그 사람이 벌써 그것을 초월해서 그런 걸 상대하지 않기 때문에 너희들이 상상도 못 하고, 말도 해도 들을 줄도 모르고,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그런 지극히 큰 것에 소망을 가지고 이제 큰 것을 얻어 가지고, 큰 것을 얻어 가지고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상대하지를 않는 사람들이다 하는 것을 세상에게 보이니까 세상은 모르지요.
이러기 때문에요한일서 3장 1절에, 세상이 하나님을 모르니 우리도 모르고, 우리의 소망을 모르니 우리를 모르고, 우리가 보고 상대하고 가치로 삼고 있는 그것을 그들이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을 이해하지를 못하지.
이러니까 여러분들, 우리가 기뻐하지 안한 이 죄를 우리가 회개해야 됩니다.
감사하지 안한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이 감사와 기쁨 이것이 거짓부리로 위안제를 마시는 게 아니라. 위안제 마시는 뭐 아편 같은 그런 게 아니라. 이는 참으로 이 은혜를 생각하여 가치를 깨닫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하면 그다음에 말하기를 이래 놨어.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염려할 게 있어야지? 땅에 이런 뿌스러기 이런 거로 염려할 필요가 없어.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네가 필요한 것, 네게 필요한 것, 네가 할 것, ‘이게 있어야 되겠다’ `뭐 이것 해야 되겠다' `이 문제가 좀 해결이 돼야 되겠다’ 그런 것 있으면 그런 것 하나도 염려하지 말고 그저, ‘하나님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다글다글 하나님께 볶아라, 조아대라.
볶아라, 조아대라.’ 이러지 안하고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이 구원의 지극히 큰 것을 깨닫고 이 구원을 가진 자가 돼 가지고, 이 구원을 가진 자가 돼 가지고, 이 구원으로 인해서 기쁘고 즐거워 이 구원을 지금 가지고 누리는 자가 돼 가지고 이래 사는 자는 무슨 문제 하는 그것은 네가 할 일 있으면 “하나님께 아뢰라” 아뢰면 돼. 아뢰는 데 뭐 감사만 아뢸 겁니까? 아뢰는데.
이것 왕이 저 다른 일반 서민이 다른 모르는 사람이 와 가지고 사생 결단을 말해도 그 왕이 꿈쩍도 안 합니다. 저거 아들은 필요한 걸 말을 안 해도 ‘야, 너 이것 필요하지 않나?’ ‘나 필요한 줄 모르겠는데요' `야, 이게 필요하다.
가져가거라.’ 모르는 것조차 준비해 줍니다.
알고 ‘이게 있는데 이런 것이 이게 좀 있어야 되겠는데’ 주십시오 볶을 게 아니라 ‘이게 있어야 되겠는데요’ 아뢰면 돼.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는 걸 고하기만 하면 돼. 고하면 돼.
고하면 되는 자기의 입장, 고하면 되는 자기 입장, 자기 처지, 자기 소속. 자기가 어떤 자인 것을,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어떤 자 되어 있는, 조물주와의 어떤 관계가 돼 있는, 모든 것 고하기만 해도 다 되는 이런 위치에 있게 된 그것을, 구속을 감사하는 그 사람이 되면 고하면 돼.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나는 것이 뭐 열심히 벌어 가지고 되는 줄 압니까? 노력해 가지고 되는 줄 압니까? 연구해 가지고 되는 줄 압니까? 아니오. 하나님이 다 해 주셔서 되는 것이오. 축복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런데 믿지 않기 때문에 그래.
미국 나라에 저래 한 삼백 년 동안에 저렇게 부강한 나라가 된 것은 그 사람들이 저게 구미에서 쫓겨 나와 가지고 죽으려고 배에 태여 다 쫓아내뜨려서 그렇게 유리하는 그 성도들이 와 가지고서 하나님이 저렇게 축복해 주시니까 그렇게 축복이 됐어.
가나안은 박토 중에 박토지만 하나님이 축복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사막도 에덴동산 같이 돼 버립니다. 성경에 그렇게 말하지 안했소? 이러니까,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아이고 이것 어찌할까? 어찌할까?’ 그 나라의 왕의 아들이 ‘아침거리가 없는데 어찌할까? 내가 지금 버선이 없는데 어찌할까? 내가 목이 마른데 어찌할까?’ ‘야, 염려하지 말아라.' 그게 등신이라. 왕의 아들인 줄 모르면 그렇지. 왕의 아들인 줄 모르면 그렇지.
왕의 아들인 줄 알면 ‘나는 좀 물이 필요합니다’ `야, 물 갖다 드려라. 물 갖다 드려라.' 고하면 돼. 고하면 돼.
“감사함으로 아뢰라” 네가 이 구속받아서 구속 속에 들어 있는 네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네가 하나님에게는 고하면 다 돼. 이런 비결이 있는데 믿지 않기 때문에 다 안 되는 것입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저거는 저 무슨 사람이 도무지 이런 것을 상대도 안 하고, 욕심도 없고, 시비도 없고, 분개도 없고, 저 천치 바보네.’ 네가 모르는 높은 차원에 있기 때문에, 또 그는 그보다 더 원인 중의 원인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그는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전지의 지혜를 가지고 있고, 대주재의 상속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뿌스러기 가지고서 시비하지 않는, 그런 것을 상대하지 않는, 그런 차원에서 살지 않고 이런 높은 고귀한 지극히 부강한 위치에 네가 있으면서 그들에게 좀 보여 줘야 될 터인데 내나 없는 그들과 같이 그런 수준에서 그것 가지고 시비하고 그것 가치로 삼아 가지고 거게 대해서 평가하고 거게 욕심내고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의 아들의 이 고귀한 것은 다 보여 주지 못합니다. 이걸 보여 줘라. 이걸 보여 줘라. 그들에게 보여 줘라.
그리고 아무 염려하지 말고, 뭐 있으면 그저 네가 아뢰기만 아뢰라. 아뢰면 다 된다. 아뢰면 다 되는데 왜 대글대글 간구해도 안 되는가? 이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져 가지고 있기 때문에, 끊겨져 있기 때문에 죽어도 안 돼요. 노아 홍수 때에 그 수많은 수억대의 사람들이 죽겠다고 호소한다고 눈이나 꼼짝했습니까? 안 꼼짝거렸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는 이렇게 큰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자기 소속이 달라졌고, 소망이 달라졌고, 편이 달라졌고, 자기의 배경이 달라졌고, 자기가 지위와 권세가 달라졌고, 하나님과 관계가 달라졌어.
이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나를 이렇게 영광스러운 구원을 주셨는가, 이래 큰 구원을 주셨는가?’ 이것을 깨닫고 난 그 깨달은 사람으로서는 아뢰면 된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아뢰면 돼.
자기의, 부자가 자기 사랑하는 아들이 ‘과자 먹고 싶다, 과자가 먹고 싶다.
오늘은 좀 소고기가 먹고 싶네.’ 그러면 막 ‘소고기 안 줄랍니까 줄랍니까 안 줄랍니까?’ 이렇게 아버지한테 억지댈 게 아니라, ‘아따 소고기 좀 먹었으면 좋겠다’ 얼른 소고기 옵니다. 그말 떨어지자 벌써 소고기가 구워 가지고 들어와.
구워 가지고 들어와. 이런 생활을 우리가 못 하니 참 기가 차.
“아뢰라” 7절에 “그리하면 모든 지식에 뛰어난” “모든 지식에 뛰어난” 인간의 지식으로써 상상도 못 한다 말이오. 인간의 지식으로는 ‘그렇게 안 좋겠느냐?’ 인간의 지식으로서는 생각도 못 한, 인간의 지식을 무한히 초월한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하나님의 평강이” 하나님의 평강이라 말은 모든 게 만족이라. 평강이라 말은 모든 만족이요 풍부요 만족이요 모든 소원 성취가 다 돼.
“하나님의 평강이” 하나님이 줘서 네가 평안하고 즐거울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러니까 이 평강이, 이 평강의 도리를 깨닫고 이 평강이 오니까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마음과 생각을 지킨다 말은 이 평강의 행복을 자기가 깨닫고 보니까 마음이 한없이 기쁘고 즐거운데 이것 잊어버리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속된 이 구속의 지극히 큰 구원을 자기가 깜빡 잊어버리면 마귀란 놈은 와 가지고 ‘야, 너 돈 어짤래? 너 지금 어떤 이가 너 죽일라 하는데 어짤래? 너 이 문제 어짤래?’ 마귀란 놈이 오니까 그만 근심 걱정 모든 이래 가지고, 죄도 안 지을 수 없다 이래 가지고서 완전히 변해져서 그만 그래 천한 인간이 돼 버리고 맙니다. 생각하면 존귀한 인간되고, 생각해서 깨닫고 믿고 그대로 행하니까 다 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네가 소망하는 것들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은 믿음이라. 믿음은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하니까 다 돼 버려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 못 본 것을 믿음만 지켜보니까 다 봐. 모르는 것은 믿음만 지키니까 다 알아.
이러니까 우리는 아는 것, 인정하는 것, 행하는 것 이것만 자라가면 하나님이 성도로 더불어 약속한 모든 소망이 점점 자라가지. 믿음 자라가니까 소망이 실상돼 가지고 자꾸 자라가지. 소망이 실상돼서 자꾸 실상으로 자꾸 자라가고 있지. 못 본 것, 못 본 것 자꾸 봐서 점점 보는 것이 점점 자라가지. 더 많이 알아져. 자꾸 더 알아져. 아는 것이 자라져가지. 이런데 믿음을 지키지 안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베드로가 믿으니까 물 위로 쩌뻑쩌뻑 걸어갔는데, 물에 빠졌는데 ‘적게 믿는 자여 왜 의심하느냐?’ 그러면 물 위로 베드로가 걸어간 것 무슨 힘이 있어 물 위로 걸어가겠소? ‘오라 하신 주님이 내가 가면 책임지고 물 위로 걸어가게 하실 것이라’ 하는 것을 믿고 걸어가니까 물 위로 걸어갔어. 안 믿으면 안 됐어.
물 위로 걸어간 것은 뭐 베드로가 발을 자주 떼놔서 그렇습니까 어째 그렇습니까? 물에 빠져 들어가며 고함을 지르니까 손을 거머쥐고 일으키니까 같이 갔어. 손을 거머쥐고 일으킨 주님이 손 안 거머쥐고 믿을 때에 그 베드로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해 가지고 걸어갔다 그말이오.
우리가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속에 와 가지고 역사합니다. 요것을 알고 믿는 사람이라야 세상의 종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 아는 사람이 세상 무엇이 부럽고 무엇에게 종이 돼, 되기를?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몰라서, 아는 것을 인정치 않기 때문에, 인정한 그것을 되나 안 되나 해 보라 말이오. 해 보면 되는데 해 보지 않기 때문에. 해 본 사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해 본 사람은 자꾸 하게 되지.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이 피조물되시기까지 낮아지시고, 하나님의 부요를 다 희생하시고 심지어 음부의 고통까지 우리 대신 받으시고, 또 영원히 창조주가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부활하신 이 지극히 큰 사랑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주신 지극히 큰 구원은 참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큰 구원인데 이 구원을 저들이 생각하고 깨달아 감사함으로 요 구원대로 살면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주권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다 이루어 주셔서 세상도 이기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기업으로 상속받을 수 있는 이렇게 큰 구원이 이루어지고 땅위에서도 죄에 대해서 마귀에 대해서 사망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자유할 수 있는 이런 이 생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데 저희들이 마귀가 주는 것만 생각하고 이 구원을 생각지 않기 때문에 멸망 가운데서 자살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오늘도 가르쳐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에 이 말씀으로 인하여 저들이 밤이나 낮이나 이 구원을 생각함으로 이 구원을 인해서 언행심사가 피동되는 저희들 되게 하사 하나님 아들들의 시대를 허송세월하지 안하고 완전히 구원을 이루어 가는 저희들이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를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보이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이는 모든 것을 주장하고 주권하고 계시는 것을 확실히 믿어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고 바라봄으로써 주님에게 시키시는 대로 순종만 하여 염려없고 실패없는 생명의 평강의 길을 승리로 걸어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속에 점점 뜨거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