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8 16:13
종교와 철학
본문 : 에베소서 5장 15절-21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인간의 영육의 화복은 그 행위의 옳고 삐뚤어 진데서 나오고 행위의 옳고 삐뚤어진 것은 옳고 삐뚤어진 생각에서 나오고 옳고 삐뚤어진 생각은 옳고 삐뚤어진 지식에서 나오고 지식은 공을 지어서 공부를 해야 공부를 해야 지식이 구비해지고 있는 지식을 활용해서 연구를 해야 지혜가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복잡한 지식들이 있습니다. 이 지식에 해독을 성경에 쓴?물이다 이렇게 말씀도 했고 또 그의 연단을 하기에 유혹을 시키는 면을 가르쳐서 음행에 포도주라 말씀했습니다. 대체로 크게 나누면 하나님 의 지식과 또 인간의 지식 하나님 에게 대한 연구와 인간에 대한 연구. 이렇게 나눌수 있고 하나님 의 지식과 인간 지식. 하나님 에게대한 연구와 인간에게 대한 연구. 이 둘을 종합해서 화합한 것으로부터 온 지식과 연구가 다 섞여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도덕은 무탈이 없이 중앙에서 중앙의 이치를 주장하는 것이 도덕이고, 율법은 모든 것을 발견 질서를 위하여 밧줄로 얽어 매 놓은 것이 율법입니다. 식전법은 권세가 전제되어 그것이 권세에 활동의 범위와 도서를 저장 제정해놓은 절대 권세에 소상을 말하고 자연법은 인간 범위를 넘어 모든 자연 만물의 생존 유지법 까지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이 자연법입니다. 법철학은 보이는 것에서 인간의 자연적인 이 생각 범위 내의 것을 가지고 자연화 되지 아니한 그 근원인 것을 찾아가는 것이 그것이 법철학입니다. 종교는 어떤 존재가 있는데 이거와 아주 객관적으로 존재되어 있는 인간이 지식하고있는 이 존재들을 심히 탁월한 어떤 존재가 이것들을 던져 주었으니 던져 던져란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던져 주었으니 이것보다 탁월하게 큰 그분을 찾아 헤매는 것이 이종교들이요. 거기에 소망을 가지는 것이 이종교 들입니다.
철학은 임에 인간이 지식하고 있는 존재를 근본으로 하여 그것을 초절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초절하지 아니하고 거기서 부터서 계속적으로 궁극을 찾아가는 그것이 철학입니다.
그러기에 종교보다는 철학이 실질적이요. 권위적이요. 종교는 하나의 공상성 공상성이 많이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기에 세월이 지나가면 철학이 종교에 근거가 되고 원동력이 됩니다. 철학은 이치를 중하게 여기고 종교는 감정을 중히여기는 색채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타락한 인간과 악령만으로 공작해서 생산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이라고 할 수 있어 결과는 동기와 목적이 인간을 속여 타락케 하려는것이요. 다시 본지로 돌아올수 있는 그런 길을 혼미케해서 강하게 해 버리는 순전히 악령의 역사인것입니다. 이것이 순전히 거짓말이 되지 아니하고 반 거짓말고 섞여 있는 옳은 반말 옳은 것으로 반을 차지하고 있는 그 옳은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옳은 지식을 악용하므로 저희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된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기에도 하나님의 지식이 섞여 있기 때문에 머물수 있고 살 수 있고 양식으로 먹을수 있다고 미혹에 오해를 가져 빠져가는 것이 사람들입니다. 이래서 기독교에 큰 타락은 철학과 혼합한 데에서 온것입니다.
하나님의 도가 세밀히 분석되어 구약이 권수가 많이 나타났고 신약 권수가 나타나서 인간이 알아야할 계시에도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계시의 도가 완료된 후 세상 지식의 진화에 따라 거짓말과 옳은말. 두 양이 두 양이 아롱아롱하게 조화되어야 할터인데 옳은 지식의 양이 적은고로 중세/에 악령은 믿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또 옛적부터 멸망받기로 예정된 저희의 사람들을 교회에 넣어 하나님의 지식을 세상 지식속에 많이 끌고가서 혼합을 하였는고로 옛날보다 세상지식은 분량이 많아졌고 사이비함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동기와 목적이 무엇이라는 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을 떠나서 별개로 교회안에 믿는사람들이 여러 모로 깨달은 그 모든 깨달음에 교리가 있고 교리를 간추려 교리 중에 몇가지의 강령을 들어 신조가 있습니다.
이래서 이는 하나님을 하나님이 주신는 이 계시는 근거해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화를 힘입어 깨달음을 나타낸 교리와 간추려놓은 신조가 있고 또 하나님의 사람들이 은혜입어 복음의 문서역사로 복음의 문서역사로 이렇게 이루어 놓은 여기에 악령은 이것을 또 타파하기 위해서 그 동기와 목적이 정 반대로 교회를 세상화 시키기 위해서 조리해 놓은 교리와 신조들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교리와 신조를 우리는 심히 조심해서 참고로 하여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 받은 사람들이 깨달은 그 교리 작정한 그 신조 이것도 사람들은 온전치 못하기 때문에 밝을때도 있고 어두울 때도 있고 시험에 들었을 때도 있고 시험을 벗어 날때도 있는고로 그사람 자체가 온전치 못하고 시간을 따라 변하는 심신의 요소가 나타나기 때문에 독실한 신앙의 사람으로도 그의 깨달음이나 그의 신조가 잘못된 것이 섞여 있을수가 있는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리와 신조는 정확무오의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신구약 성경의 원본만이 정확무오하고 또 번역에도 성신의 역사가 함께하신 번역도 있고 사본도 있고 악령의 동기와 목적으로 된 사본도 번역도 섞여있는 세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정확무오한 것이 성경이요. 그 다음으로 우리에게 유익을 줄수있는 것이 바로된 교리와 신조입니다. 우리에게 성경 다음으로 유익을 줄수 있는 것이 바로된 교리와 신조 교리와 신조인 동시에 악령다음으로 우리에게 크게 해독을 줄것이 삐뚤어진 교리와 신조들입니다. 이다음으로 우리에게 잘 활용하면 잘 활용하면 유익된 것이 그밖에 있는 세상안에 있는 지식이요. 또 잘못활용하면 우리에게 교리 신조 그 다음으로 우리에게 큰 해독을 줄 것이 세상지식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지금 공부하는 것 아주 좋은 합니다.
그것을 공부를 스스로 혼자할수 할려도 시간 많이 걸리고 또 할수있기까지의 실력을 갖춘 것을 가르쳐서 박사라 합니다. 박사는 자기혼자 모든 사람의 지식을 종합해서 연구할 수 있는 혼자 걸음을 걸어갈수 있다는 표시가 박사입니다. 다 안다는 것이 아니요. 혼자 노력하면 알아갈 수 있다 하는 것이 박사입니다.
이런데 그렇게 많은 박사들이 얻는 지식을 여러분들이 배우게 되었으니까 아주 요긴한 때입니다.
그런데 어제 들으니까 교수가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것과 같이 이것저것 갈아입고 나오지만 실은 그것이 하나다. 그런 말했는데 아주 바른 상징을 했습니다. 에덴 동산에 타락을 살펴보면 20세기에 심히 복잡해졌지만 그때에 나타난 그 종류를 벗어난 것이 하나도 없고 그때 나타난 꼭 그 종류입니다. 수많은 현실에서도 그때 있는 그 종류와 이치에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에덴동산 인류 시조의 타락을 확실히 깨달으면 오늘 20세기의 수많은 별색깔 옷을 입고 나와도 꼭 한가지입니다. 다 알 수 있습니다.
해서 저도 늘 그 말을 많이 합니다. 시대마다 다른 시험 다른 사건 다른 사상이 나오지만 그것이 근본은 똑 같다. 한 마귀요 한 원죄요 한 덩어리 본죄요.
피동성을 가진 인간이요. 천지일월성진으로 되어있는 자연속에 있으니까 이것이 이리 합하고 저리 합해서 그렇지 똑같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이 세상 지식속에 파묻히지말고 이것을 아주 객관적으로 보고 이것을 뒤져 가면서 연구해서 잘 가려 먹어야합니다.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지식은 생명과 신령한 곳을 울타리 해놓은 말씀입니다.
신구약성경은 생명과 신령의 세계를 문작으로 가라놓은 문작입니다. 이밖에 안나가면 사망이 없습니다. 이밖에 안나가면 유한한 것뿐이 없습니다. 이 안에 있으면 다 영원하고 신령과 생명에 속한 것들인데 이 울타리 안에 울타리 안에서 살려 하는 것은 영감이십니다. 영감은 창조주이신 대주제이신 절대자이신 유일하신 하나님 이 피조물은 향하여 역사하시는 제일 원동력입니다. 역사하시는 제일 원동력입니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끼여 있는 것이 영감입니다. 영감 다음으로 위치를 잡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계시의 지식 신구약 성경말씀입니다.
말씀으로 자기의 위치를 바른대로 자기의 마음을 바르게 자기의 몸을 바르게 행동을 바르게 자기를 바르게 이 말씀으로 정리 정돈 정리하면 정리 정돈 정리하면 영감에 접하는 이것이 옳고 참된것입니다. 너희안에 기름부음이 하는 것은 곧 이를 말합니다.
영감은 무엇으로 역사하는가? 성령과 피와 불로 역사한다 했습니다. 피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불은 신구약 66권 도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책이면 기독교에 관한 책이면 마구 읽는 그런일 하면 안됩니다. 교리 가운데는 시작부터 인간을 망치기 위해서 출발 한것있고 신조도 그러하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사람도 성령으로 시작했다 육체로 마치기 쉽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잠깐 변질되기 쉽게 때문에 아주 삼가서 해야됩니다.
그러기에 요새 책자가 많은 것이 적은데 사람들은 어리석게 광문다학 해야 된다.
광문다학 해야된다. 넓게 듣고 많이 배워야 된다. 어리석소. 그러기에 우리는 세상 지식보다 올바른 교리와 신조의 지식이 그 머리가 되어야 되겠고 올바른 신조가 교리의 지식보다 하나님 의 계시 말씀이 머리가 되어서 언제나 하나님 의 말씀대로라는 그것이 교리의 생명이요 그것이 교리의 머리요 말씀과 틀린 교리는 천 번이라도 짖밟을수 있습니다. 신조도 짖밟을수 있습니다. 또 시대가 달라지기 때문에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꾼들을 세운 것은 그 시대를 강당케 했기 때문에 그시대에 필요한 교훈 그시대가 바뀌어지면 그 교훈은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모든 지식은 다 피해지고 순전한 하나님 의 지식만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주교는 교황의 깨달음을 교리라고 그가 제정한 것을 신조라 만물보다 거짓된 감토싸움에 분분한 가장 마귀중에는 대마귀 구비한 실력을 갖춘 대마귀 종을 교황으로 세워놓고 교황 무오설을 말하기 때문에 그렇게 지금 완전히 우상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개혁교회에서 교리나 신조라고 하는 것은 그래도 공통성을 가진것입니다. 혼자 그렇게 깨달은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은혜 받은 많은 사람들이 이 깨달음은 옳다 심사 인정을 해서 혼자 단독이 한 것이 아니고 선정을 해서 만들어 놓은 공통성을 가진 교리요 신조요. 또 한 시대만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때도 또 아주 평안한때도 식민지에서도 전쟁한 나라에서도 동서양 어디에서든지 어느 시대라도 이 깨달음과 신조는 틀림없다고 많은 역사성을 가지고 나온 그것을 이제 교리와 신조로 인정하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선택의 권위성이 창조주와 아주 판이합니다. 그렇지만 이 교리와 신조도 틀림이 없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믿는 것은 대단히 잘못입니다. 그런 그사람도 어두워진 사람입니다.
이래서 지금부터 한 20년전 칼빈의 깨달음의 잘못된 것을 칼빈을 존경하기 때문에 그분이 깨달음에 잘못된 것은 후배가 빨리 고쳐서 그것을 지워버리고 옳은 것을 주장해 나와야 그의 정죄는 줄어드는 것입니다. 백목사가 여러분들에게 정해놓은 것 중에 잘못된 것을 즉시 고치는 후배가 있다면 그가 선배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것이 세상에 나가서 많은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많은 해를 끼치기 전에 이것을 다 제정해서 수정하는 그것이 그 선배를 아끼는 것이요. 선배를 쓰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요. 선배를 통해서 하나님 의 역사하신 그 복음을 존귀케하고 보배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데 거꾸로 깨달아서 그분이 말한 것을 거꾸로라도 숭배해나가야지 그러면 우상됩니다.
그것을 틀린 것을 언제 한번 말했다가 아주 큰 공박을 당하고 제가 칼빈보다 낫다고 이래가지고서 아주 그때 이단이라고 걸렸는데 그때 숨을 못쉬어서 가만히 있다가 4-5년 지난뒤에 전국 읍교회에 가서 여기 그런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한마디 했다가 그것을 고신에 장로가 있었습니다. 박장로라고 있었는데 그게 번져서 그 뒤에 말썽이 있었습니다. 그랬다가 그게 완전히 껍질을 벗어나기는 어디서부터 벗어났느냐 벗어난 것은 홍 목사님이던가 김 목사님이던가 잘 모르겠는데 남교회에서 그때 우리는 이 세대를 감당할려면 그 칼빈보다 더 깨달음을 가져야 한다. 칼빈의 깨달음에도 수정할것이 있다하는 말을 박사가 했습니다. 박사인데 박사가 하니까 이단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긍정을 해서 그때부터 이단의 탈은 그 탈은 벗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간판도 필요하다.
간판이 있으면 오해를 안아고 받는 사람들이 쉽게 받기 때문에 그것도 전하는 사람의 준비 중에는 괜찮은 것이다. 물론 장자 자리에 앉은 사람이 그냥 말하나 감투를 쓰고 말하나 마찬가지 지만 그냥 말하면 권위가 안서기 때문에 그 위에다 모자를 쓰고 그 위에 공작깃털을 꽂아서 금테를 두르고 말하면 같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이 바로 잘들어서 효력이 많이 나타난다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서목사도 박사학위 받아야되 손목사도 박사학위 받아야되. 그러나 그것가지고 일한다고 생각하면 사망입니다. 그까지것 천하의 학자들이 다 그 한시간만 아무것도 아니요 이제는 서목사님이 옷을 이옷저옷 갈아입고 나온날은 아무리 뛰어봤자 여기 다른데 열 개가지고 참 그것가지고 일하고 저라고 내나 그거지 그것외에 다른게 없다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것을 배울때에 거기서 인간속에 어떤 잡탱이가 들어있나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을 배울 때 인간속에 어떤 잡탱이가 들었는가 이 잡탱이도 들었구나 내게도 찾아보면 있소 인간속에 어떤 잡탱이가 들어있는가 인간들이 지식을 가만히 보면서 아이구 저런 것이 인간속에 들어있구나 저게 내 속에도 들어있지 이러니까 이런 것을 벗어나 하나님의 도를 믿는 이것이 되어야 되기 때문에 아주 많은 또 아 기독자라도 은혜 받아서 저렇게 삐뚤어지고 참 재미있습니다. 저렇게 삐뚤어 지고 삐뚤어진 것을 가지고 결론을 지어보면 전부 자기 나타낼려고 자기 나타낼려 하는데 자기 높이는게 결국은 원수는 자기입니다 원수는 자기요. 자기하나 부인해 놓으면 그만 거기는 시온의 대로라 자기만 부인하면 시온의 대로라 이걸해야지 이것을 안해놓구 제가 아무리 재주 좋게 한다해도 이 바닥에 대이면 괜찮은데 언제 무슨 신문인가 죽었다 하데 며칠전에 길에 다녀서 손을 대이면 넘어져서 다치겠어 뛰어야 다치지.
그러므로 모든 것을 간추리면 자기 이단자의 요소중에 제일 제일 원요소가 뭐이냐 하면 자기 높일려고 자기 나타낼려고 자기 인기 끌려고 자기를 영화롭게 호와롭게 한자는 그것이 이단의 제일 요소입니다. 여기도 이단의 요소가 뭐인지 모르고 좋은것인줄 내가 나도 백목사 죽으면 내가 그것이 자기 망치는 이단의 일대 요소입니다.
저는 고신에서 내가 나온 것은 거기서 그렇게 전 교파의 전 교계에서 정죄해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언제든지 끝까지 바른소리하고 이렇게 하다가 마지막에 그분들이 /불복종으로 제명을 해서 그 아래 있으면서 옳은 것 얼마든지 말해서 고치고 주장하고 틀린 것 고치고 옳은 것 이루어 가고 건설하고 해야되지 않아요 그게 자기의 일인데 왜 그것을 그래서 나중에 삐뚤어진 당이 세고 옳은 당이 약해져서 쫒아내는 쫒겨 나가는 쫒겨나가지 제가 말한마디 비유틀린다고 안알아 준다고 툭튀어 나가는 것이 이단자이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미국에서도 들어오고 난 다음에 거기서 신학으로 개혁해 나온 것이 그분들이 쫒아내서 나왔지 이게 틀렸으니까 나간다 그게 이단입니다 그게 이단이요.
여기서 나는 나간다가 아니요 거기서 쫒아내서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쫒아내서 나가지 않았어요. 여기서도 얼마든지 옳은걸 주장해서 옳은 것이 숫자가 적어도 옳은걸 따라오면 옳은일을 할수 있는 때문에 얼마나 좋소. 옳은 것을 주장하니까 듣는사람 숫자보다 안듣는 사람 숫자가 많아져도 듣는 사람 적어도 그것을 바로 일합니다. 마지막에는 듣는 숫자가 없고 듣지 않는 숫자가 밀어내면 거기는 하나님께서 일하라고 일해야 쫒아내면 들을수 있는데 가야지 이겁니다. 제 마음에 이만한 실력이 있고 나가면 되겠다 그게 뭐지요? 그것을 유혹하는자가 누구지요? 유혹하는 자가 누구에요? 유혹하는 자가 누구지? 논에가면 논 말하고 밭에가면 밭 말하고 집에가면 집 말하고 이래 놓으니까 여기서 저것보고 저기서 이것보고 이런 걸음을 걸은자가 누구입니까? 말해봐요 누구든지 말해봐요. (고라) 그까짓게 타락한 천사 이러고 했지 타락한 천사 이러고 있지 않았소 부하가 많으니까 내가 하나님께 붙을게 뭐있겠는냐 나가보자 하는 그것이 걸은 이단자입니다 걸은 이단자요 여기서 그런 꿈을 꾸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 지금은 몰라도 이 목사 어디있어 지금은 벗어 났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벗어났다고 보는데 몰라 왕국만들기 위해서 있었는데 이제 지금은 회개를 하고 하나님 앞에 그런 사람들 더러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아가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안된다 이말이요 이거 알아야 됩니다. 이래서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있는자 같이 지혜 없는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있는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지난 주일에 이 말씀을 했는데 우리는 무식한 생각을 아무리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지식이 구비해야 그 생각이 구비합니다. 지난번에 우리가 아무리 무식해도 일곱가지 지식은 이것을 가지고 일곱가지 지식을 활용하면서 이 일곱가지 지식에 저촉되지 아니하도록 일곱가지 지식에 합치하도록 생각해야되지 이 일곱가지 지식에 맞지 아니한 것은 하지말아야지 그 지식을 하면 다 망한다해서 일곱가지 지식을 말했는데
제일 처음에 뭐지요? 제일 처음에는 창조주 창조주가 계신다. 또 둘째는 이 세상과 오는 영원한 세상이 있다. 또 셋째는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움직임이 있고 하나님 뜻을 거슬리는 피조물 중심으로 움직이는 두 행동이 섞여 있다. 넷째는 인간이 이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살았느냐 죽고 죽었느냐 부활하고 부활해서 심판을 받아서 무궁을 향하게 된다. 다섯째로를 뭐이지요.
인간은 최고 피조물로 지음받아 최고 희망을 가진 것이 인간이다. 이런데 모두 여섯째로 여기에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큰 난제가 세가지 있었는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성인신으로 대속하셨다. 일곱째로 인생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생으로 걸어가는 길과 영원한 사망으로 걸어가는 이 두길이 자기 현실마다 두 길로 나눠져있다.
적어도 이 지식은 활용해서 생각을 해야지 돈만보고 생각하고 권세만 보고 생각하고 자기 만물보다 거짓된 독사와 악독으로 생각하면 다 망치는 생각이요.
아무리 못해도 이 일곱가지 지식은 지난주에 말했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 파뭍혀 있지만 세상은 몇 개 안되요. 세상인데 이 세상을 조그만한 알밤 한 개처럼 거머지고 이것을 잘 소화시키면 세상은 우리의 이 재료를 잘만 사용하면 선물이 세상이 되면 거기 섞여 지면 위치가 바뀌어 지면 헛일이야. 주객이 전도되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자기를 부인하면 감옥을 다 벗습니다. 자기라는 감옥속에 자기라는 밧줄속에 얽매여서 꼼짝못하면 자기 부인하면 참 자유가 와요 자기 십자가 지면 능력이 와요 자기를 부인하면 자유하고 십자가 지면 능력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라 이렇게 좋은 시온의 대로의 길이 있는데 참 못나서 자기 때문에 한없는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