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8 16:30
좋은 것
1980. 6. 17. (화) 새벽
본문 : 갈라디아서 6장 6절 -10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 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 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 령을 위하여 심은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 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어제 아침에 이 말씀을 봉독하고 증거하다가 중단했습니다. 여게 좋은 것이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여게 좋은 것이라는 것은 이 범위도 그 질도 양도 무한입니다. 영, 육, 세상, 천국, 하나님, 이웃, 자기 전부에게 좋은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게 좋은 것이라고 하신 이 좋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에게 좋은 거같으나 저것에게 좋지 아니하고, 또 저것에게 좋은 거같으나 이것에게 좋지 아니하고, 사람들은 다 좋게 하면 좋겠지마는 다 좋게 할 수가 없으니까 자기로서 그래도 더 많이 좋은 것 많이 좋은 것 그것을 선택해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찾아 행하는 것이 다 사람들입니다.
이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생각대로는 좋은 것을 택해서 한다고 생각을 가지고 하기는 하는데, 어떤 사람은 저만 좋고 남에게는 해롭고 이래도 자기만 좋으면 되겠다고 이래 생각을 해서 언제든지 그 사람은 말하는 것도 저 좋은대로만 하고, 경영하는 것도 저 좋은 표준으로 경영하고, 또 비판하는 것도 저 좋은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비판해서 다른 어떤 것이 좋다 할지라도 저만 좋지 안하면 그것은 안됐다고이렇게 자기를 표준해서 아주 자기만 생각하는 그런 좁은 범위에서 좋은 것을 택한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조금 넓게 자기 가정, 자기 가정에 좋은 것을 어떤 사람은 좀 더 크게 자기 사회에 좋은 것을, 자기 나라에 좋은 것을 자기 민족에 좋은 것을, 이 세계 인류에 좋은 것을 이렇게 한다고 사람들이 생각을 해서 택합니다.
그래서 고 범위가 좁아서 자기 좋은 것만 택하는 그런 사람은 참 제일 맥히고 답답합니다. 그 사람하고는 모든 것을 상대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그래도 온 가정을 위해서 온 가정에 좋은 그런 것을 선택하는 사람은 사회에서는 저거 가정만 알기 때문에 그거는 용납이 안되지마는 그 저거 가족끼리는 그래도 모이면 뭐이 통해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가정 중에서도 자기라는 것만 아는 그 사람은 그 가정에서도 그 사람이 안 통해요.
그래서 차차 범위 넓어서 어떤 사람은 자기 가정만 아니라 그래도 우리 가정이 어찌 됐든지 우리 사회, 우리 동리,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좋아야지. 사회를 표준해 가지고 하는 사람은 그 사회에서는 용납이 됩니다. 또 우리 사회야 하나 어찌 되든지 그래도 우리 나라가 잘되야 되지 하고서 나라를 표준해 하는 사람은 그 나라에서는 서로 통해질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은 모두 선별을 하는데 그러나 사람들이 다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 좋고 저것에 나쁘고, 또 저것에 좋고 이것에 나쁘고, 이 나라에 좋고 다른 나라에는 나쁘고, 또 인류에게는 좋고 인류를 만드시고 이제까지 기르시는 하나님에게는 좋지 않고 그러면 그거 다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은 어떤 길인고 하니,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은 창조주도 피조물 어떤 것도 전부가 다 좋아할 수 있는 전부에게 좋은 길입니다. 이것이 생명길입니다. 하나에게도 그들이 시기 문제로 이해를 못해서 원망 불평 할지라도 마지막에 깨달을 때에는 그것까지 다 자복할 수 있고 모두 다 감사할 수 있는 이런 것이 하나님의 도입니다.
그러기에 "너희는 자유의 율법으로" 그 말은 모든 것들이 다 좋아하고 모든 것들이 다 자유할 수 있는 그런 법칙이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이 지도는 이 교훈은 창조주와 피조물 전부에게 다 좋은 가르침입니다. 이래서 창조주나 피조물이 다 좋아하시는 좋아하는 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피조물에게 좋지 못한 것은 다 제거가 되어지고 좋은 것은 또 마련이 되어지고, 또 좋은 것은 점점 더 좋아지도록 이렇게 되어지는 이런 진리입니다. 뭐 어느 한 존재에게도 해되지 않고 전부가 더 좋고, 그러기 때문에 어떤 존재에게라도 나쁜 것은 전부 다 고쳐지고 좋은 것은 보존되고 다 이것이 점점 구비되어지는 이 길입니다.
이 길이 어떤 권위를 가졌느냐? 세계와 모든 열방을 다 잘못된 것은 파괴를 시키고 그것이 일시에 파괴가 되지 안해도 시기를 따라서 파괴가 됩니다. 파괴를 하고 또 건설하고, 또 파멸하고 또 뽑고 심으고 하는 이런 절대적인 이 말씀입니다. 땅에 있는 인간의 말은 그 말이 요 범위를 보면 그 말이 참 옳은 말이고 좋은 말이라고 생각이 되지지마는 범위를 넓혀 놓으면 아닙니다. 또 요 존재에게는 비추어 보면 고기 들어 맞는 거 같지마는 또 다른 존재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혼자 지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혼자 경영하시고 혼자 당신의 본질과 본성대로 당신의 그 지능대로 지으신 것이기 때문에 피조물이 실은 한 분으로 지음을 받아 하나의 본질과 본성을 가지고 다만 그의 좀 더 귀하고 덜 귀한 차이만 있습니다.
성경에 금 그릇 은 그릇 또 나무 그릇 흙 그릇 흙으로 만든 그릇 이렇게 차이 있는 것처럼 모든 만물의 그 차이는 있지마는 그것이 하나님 한 분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꼭 그 동질 동성으로 지음받은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본성을 본 사람이 없지마는 만물을 보아서 알지니라' 만물에게 나와 있습니다.
이러니까 완전자 하나님 한 분이 지으신 것이기 때문에 지으신 그 숫자로 하나만 알지 다른 것은 모르고, 또 그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도 하나님만 알지 다른 것은 모르고, 또 그것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되든지 그것도 하나님만 알지 다른 것은 모릅니다. 조물주만 알지.
그런데 뭐 이종교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것 중에 하나인 그 인간이 제가 이런 철학을 말하고 저런 종교를 말해 가지고 말한 그것이 맞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는 것도 참 억억만분의 일도 알까 말까 하는 그런 정도요. 또 그것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그것을 안다는 것은 더욱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한한 것이라 할 만한 이런 것을 창조하신 분이 이것에게 대해서 영원히 영원히 가도 그런 것들이 불평할 수가 없고 다 감사하고 할 수 있는 그들을 해치는 것은 뽑아 없애고 그들에게 유익된 것은 다 끼칠 수 있는 이런 진리의 길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우리 중보자 예수님의 대속을 인해서 우리 사람들에게 오게 됐습니다. 이것이 자유의 율법이요 모든 것을 완전케 하는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전케 하며 행위를 온전케 한다 하는 착한 행위를 온전케 한다 하는 그것은, 만물 가운데 영장 되는 이 사람은 지금은 조그만한 좁은 범위지마는 물질계에 있는 모든 만물과 영계에 있는 모든 만물을 다 접촉해서 움직일 것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접촉해서 움직일 때에 올바른 움직임을 가지지 안하면 안 되는 이런 존재로 기루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법칙은 사람에게는 온전하고, 만물에게도 온전하고 또 온전치 안한 것에게도 온전합니다.
온전치 안한 것에게도 온전하다. 온전치 안한 것에게는 온전치 안한 것을 다 파멸을 시키 버리고 온전으로 바꿔 놓기 때문에 온전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중보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에게 오게 됐습니다.
죄로 인봉이 됐는데 죄로 안밖에 써 놓은 이 모든 책을 다 봉해 놨는데 이 봉해 놓은 책을 아무도 뗄 자도 없고 읽을 자도 없다. 하늘에도 없고 땅에도 없더라 이랬는데 일찍 죽임을 받은 어린양이 이 인봉한 두루마리 책을 인봉을 떼고 읽더라 하는 이 계시록에 하신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이 택한 자들과의 그 사이가 끊어진 것은 택한 자들에게 소속한 모든 천상 천하의 피조물이 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영계 것은 끊어지지 안하고 물질계의 것은 끊어져 있지마는 영계 것도 이 중보자가 없으면 시기 문제지 끊어집니다. 사람에게도 영은 끊어졌으나 그 육은 서서히 끊어지는 것처럼 끊어집니다.
이런데 어린 양되신 예수님께서 이 그 인봉을 뗐다. 그 말은 하나님과 가리워진 이것을 이제 헐어서 가루어진 맥혀 있는 이것을 헐어서 티워서 하나님과 연결시켰다 하는 이 말씀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연결되었는고로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들 하나님이 세우신 그 선지자들을 통해서는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 전체에게 다 좋은 이 길을 가르치고 나타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서로 관계를 가질 때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가르치는 입장에 있으면 제가 무슨 특별해서 바로 가르치는 그런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워 놓으셨기 때문에 바로 가르치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너희들은 그 서기관들의 가르치는 거 제사장들의 가르치는 것을 지켜 행하라 그들의 행함은 본받지 말고 가르치는 것을 다 지켜 행하라 어떻게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세의 자리에 세웠느니라' 이랬습니다. "모세의 자리에 세웠느니라" 이래서 그들이 하나님 앞에 저주받아 멸망받을 그런 행위에 있어서 이스라엘이 아주 예수님 오실 때에 그때에 참 무화과 나무가 뿌리에서 부터 마르는 것처럼 그렇게 가속도로 이스라엘이 멸망을 받았고 참옥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이렇게 받았지마는 그렇게 멸망받을 수 있는 그자들이지마는 하나님이 모세 자리 세웠기 때문에 그들이 모든 피조물에게 다 좋은 이런 말을 할 수가 있고 이런 것을 가르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위대해 그런 것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인해서 그 자리에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인해서 옳고 바른 것을 가르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는 마태복음 23장에 말씀하실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인데 뭐 그래 그는 벌써 창세기 3장 15절에 여인의 후손으로말미암아 배암의 후손을 멸하고 구원 얻을 그것이 우리의 중보자를 주실 것을 약속하신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그때부터 하나님께는 짐승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리라는 그 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대속의 그 공로를 설정한 그것을 미댕겨서 그의 한 예표로 하나 그의 모형으로 구약 시대 사람들을 믿어서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구원이 다 이루어 놨지마는 한 문제가 해결되지 안해서 미결로 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휘장이 갈라졌고, 또 바위가 깨졌고, 자던 성인들이 무덤에서 일어나고 한 것은 예수님으로서 비로소 그들이 짐승으로 제사드린 그 제사가 완성됐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때도 그러하고 지금은 더욱 그러합니다. 구약 시대는 성령님이 하나님의 사람을 속에 들어 갔다가 나왔다가 안에서 내주해 가지고 역사되 있고 그 밖에 계실 때도 있어서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의 그 영감은 영감이 될 때는 성령의 충만을 받았고 영감이 안 될 때는 안 됐습니다. 이렇지마는 신약 시대는 언제나 떠나지 아니하고 내주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구약 시대도 하나님이 모세 자리에 세웠기 때문에 저거가 실력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고 말하기 때문에 모세 자리에 선 사람들이 만물이 다 좋아할 수 있는 앞으로 영원히 가도 어떤 만물 중에 하나라도 왜? 그 말이 내게는 불리하다 할 수 있는 그런 그 저주를 받은 그런 송사를 받지 안할, 그런 송사 받을 말이 아닌 그런 송사를 받지 안할 이런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그들이 하나님께서 선지자 모세의 자리에 세웠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믈며 신약 시대는 더욱이 더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의 자리에 세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 모세의 자리에 세운 사람이냐? 저는 서부교회에 대해서 모세의 자리에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구역에 그 구역장을 모세의 자리에 세웠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지권찰은 자기가 맡은 그 몇몇 식구에게 하나님께서 모세의 자리에 세웠습니다. 또 이제 믿는 사람이 그 다음에 안 믿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려 할 때에 모세의 자리에 세웠습니다.
이러기에 자기가 거게서 그저 그렇게 크게 힘을 안 써도 모든 피조물이 다 좋아하고 좋을 수 있는 이런 도리를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전하면 그 도리는 어제 아침에도 이 말씀을 했었는데 온 세계와 모든 나라와 민족과 개인 만물에게 있는 파괴할 것은 파괴하고, 건설할 것은 건설하고, 뽑아야 될 것은 뽑고, 심을 것은 심우고 이렇게 이 모든 피조물을 다 복되게 하고 피조물의 모든 그 화를 다 제거할 수 있는 이런 위대한 말씀입니다.
영게와 우주를 이렇게 좌우할 수 있는 이런 능력의 말씀을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세웠는데, 이 말씀은 전하지 않고 인간의 말 세계의 인간의 말을 주어 뭉쳐 놓으면 아마 그 말이 뭐 백두산 보다도 더 클란지 모르겠습니다. 한이 없을 것이요. 그 인간의 말이 다 책에 써 있지 않습니까. 그 책을 모아 보십시오. 그렇게 많은 말, 또 책에 쓰이지 않는 그 말이 얼마나 많습니까?이렇게 많은 말 그 말 전부를 뭉친 그 중량보다 하나님이 시켜서 하시는 그 말씀 한 마디가 비교할 수 없이 중량이 무겁습니다. 큽니다. 이렇게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을 다 살리고 그것들을 해치는 것을 제거할 수 있는 이런 참 지극히 큰 말씀인데,이 말씀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섯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말 다 뭉쳐도 하나님 말씀 한 마디를 못 당하는 인간의 말 가운데에 이런 묘한 말 저런 말 묘한 말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제 생각대로의 이 말을 전한다는 것은 얼마나 사람을 크게 속이고 얼마나 받을 심판이 큰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선생된 자는 받을 심판이 크니라" 했습니다. 받을 심판이 크니라.
이러기에 우리가 자기가 하나님 편에서 목사가 안되고 평신도로서 안 믿는 사람에게 도를 전할 때도 그 전하는 거기에 참 우주와 만물이 다 좋아할 수 있는 그 말을 전할 수가 있다 그말이오. 지권찰은 더욱 전할 수가 있어. 원권찰은 더욱 전할 수가 있고, 교역자는 더욱 더 전할 수가 있고, 또 교역자들을 가르치는 저는 더욱 더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서 있으니 권위도 심히 크고, 또 결과도 심히 크고, 책임도 심히 큽니다.
이런데 만일 이렇게 권위 있는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인간의 어떤 묘한 말을 이 말과 같은 그 권위를 가지고 같은 그 만물에게 유익되는 그런 양을 가진 줄 알고 이 서적에서 묘한 말을 빼고 저 웅변가에서 저 정치가 저 도덕가에서 저런 종교가에서 저런 철학에서 그런 말들을 빼 가지고 이것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그 사람들에게 억억만원 짜리를 그것을 그들에게 주라고 했고 그들은 그것 받으려고 있는데 억억만원 짜리 대신에 십원 짜리도 안 되는 걸 주면 그 사람이 받는 사람들을 얼마나 속이는 사람이며, 또 전하라고 하는 그분에게 얼마나 지금 속이는 도적질하는 사람이겠습니까?그러기 때문에 이 사람의 받을 심판이 큽니다. 우리가 이렇게 권위 있는 말씀을 전하지 못하는 이 전할 위치에 있으면서 전하지 않는 그 이유는 어데 있느냐? 그 이유는 하나님 대신 자기입니다. 전할 때에 자기 영광스럽게, 자기 존귀케, 자기를 위주로 하는 그것을 하나님 중심 대신 자기로 또 하나님의 것이 그 사람들에게 가 가지고 만들어지는 그것 대신 그 사람들 좋아하도록,이러기에 세계의 주일학교가 가르치는 사람들이 다 어떻게 가르치느냐? 인간의 그 아동들의 심리를 연구해 가지고 아이들 좋도록 하기 위해서 아이들 좋도록 성경 말씀을 가르쳐야 되겠다 해 가지고 동화가 나온 것입니다. 또 아이들 좋도록 하기 위해서 예배 시간에 이런 공작물 이런 것 만드는 재미 저런 거 만드는 재미 이런 이런 이런 재미나는 그 모든 공작물들을 만듭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그 아들을 아이들의 주관들이 좋아하도록 하기 위한 도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기 계시지를 안해. 그러기에 가르치는 것도 동화가 없이 하나님이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느냐 하는 고것을 찾아 가지고 가르치려고, 둔해도 좋아요. 하나님이 이 교인들에게, 이 사람들에게, 이 개인에게, 하나님이 이들에게 어떤 그 가르침을 하고 있는가? 날 통해서 가르칠라 하니까 하나님이 무슨 가르치심을 지금 하고 계시는가? 요게 대한 관심만 가지고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그것을 내가 이들에게 가르쳐야 될 터인데 요 마음만 있으면 이탈이 안 됩니다.
우리가 인간이 전체가 다 뭉쳐도 찾을 수 없는 모든 피조물에게 다 좋은 요 자유의 법 생명의 법 요것을 전할 수가 있고, 그 사람들이 좋아해서 그 사람들이 받는 사람들이 감동받아 좋아해서 자기를 어떻게 할까? 그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 사람들이 기뻐할 수 있는 고것을 바래지 말고 하나님이 그 사람들에게 지금 만드시는 그것이 그들에게 가서 만들어 줬야 되겠다는 요것을 생각하면 이탈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구약에 있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그분들이 그렇게 나빠져도 요 면이 틀리지지 안했습니다. 서기관은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그때는 이거 뭐 베껴서 기계로 척척하는 이런 문화가 없고 성경을 붓으로 기록합니다. 요것을 붓으로 기록할 때에 하나님이라는 그 하나님에 대한 이름을 기록하든지 기록할 때는 이제까지 기록하던 그 붓을 다 씻거 버리고 새로 먹을 묻혀 가지고 그래 기록했습니다. 그냥 기록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그 명사가 나오면 기록할 때에는 이제까지 하나님 말씀을 기록했지마는 그 말씀을 기록하던 그 붓을 새로 씻어 가지고 하나님 이름을 기록할 때에는 새로 먹을 묻혀 기록했던 그 사람들이 바로 서기관들이요. 그 사람들이 성경 기록한 서기관들이요.
이렇게 그분들이 말씀 그 증거할 때 어떻게 도리까 절 앞서 생각지 안했고 이들은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행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저거 구원이 되지 안했지 전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증거하기를 "그들의 말 가르치는 말은 지켜 행하라 하나님이 모세 자리에 세워서 바로 가르치리라" 이렇게 말씀했다 그말이오.
이럴 수 있는 위치에 우리가 서 있는데 이 위치에서 힘을 바로 쓰면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 일이 이루어지면 아 최권능 목사님이 길을 가시다가 명 따는 그 처녀를 보고 옛날이니까 서로 대화할 수 없으니까 지나가면서 그저 '예수를 믿으면 좋을 걸' 이 말 한 마디하고 가는데 그 처녀가 병이 나 가지고 기어코 예수 믿게 됐다 그 말이요.
이럴 수 있는 이것이 우리에게 자꾸 그 듣고 이런데 우리가 이런 위치에 있으면서 이런 절대적인 권위 세계와 우주를 뒤엎고 엎치고 뒤치고 할 수 있는 뽑고 심우고 할 수 있는 이런 권우이의 말씀을 우리가 찾아 가지고 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얼마든지 능하시는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서 전해도 안 되면 그 사람을 나무랠 게 아니라 자기를 나무랠 수 있는 이 사람이 이제 되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목회를 하는데 교회가 부흥이 안 되면 그게 다른데 원인 있는 거 아니고 자기에게 원인 있는 것입니다. 이 능력의 말씀을 전하지 않게 돼.
그게 어찌 그러냐? 전하되 순전히 하나님을 중심해서 하나님을 전하지 않고 자기를 중심해서 자기 위해서 이것을 도를 팔아 먹고 이 도로 가지고 자기를 위하는 안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들이 세상 방편 가지고 자기 위하는 것처럼 믿는 사람들이 이것 가지고 하나님의 것 가지고 자기를 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이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전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전하시는 이 좋은 것, 가르치는 좋은 것을 가르치면 크게 상이 있고, 모든 만물이 좋고 좋은 것을 가르칠 입장에 서 가지고 인간의 것 나쁜 것 좋은 거 반대는 나쁜 건데 전체에게 나쁜 것인데 이것을 가르치면 심판이 큽니다.
그런데 이 가르치기를 잘 가르쳐도 가르치는 사람들이 멸망하는 것은 여기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모든 좋은 거 요것을 똑똑히 새겨야 됩니다.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함게 하라." 제가 가르칠 수 있는 실력 있어 저는 그런 사람이 돼 가지고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서 가르치게 하는 것이니까 자기도 지금 배워 가지고 암만 가르쳐도 자기가 행하지 아니하면 자기 구원은 없습니다.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설교하고 난 다음에 첫째 나오는 기도가 '주여 내가 다른 사람은 가르치면서 나는 가르치지 못한 이런 망령되고 어리석은 자입니다. 왜 다른 사람에게 있는 죄는 미우면서 내게 있는 죄는 밉지 않습니까?' 이것을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런고로 좋은 것을 줄 수 있고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주시는 그 영감의 도리라면 영감의 말씀이라면 이 말씀은 모든 것이 살고 모든 것이 모든 것의 멸망이 다 물러가는 이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좋은 것을 함게 하라" 아무리 이렇게 가치 있는 권위 잇는 말씀이지마는 가르친 자도 가르치기만 하고 행하지 안하면 저도 멸망 아무리 좋은 것을 가르침을 받아도 가르침받기만 하고 행하지 안하면 저도 멸망 이것을 여게서 말씀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앞으로 이 말씀을 계속하겠습니다. 이 새벽 기도 나오는 사람들 여러분들이 이래 한 줄에 안 앉고 이래 앉으니까 이렇게 많이 안나옵니까. 가서 권면해요. 지금 조금 시간 많이 늦었는데 다섯 시 되면 기도 됩니다.
이러니까 어쩌든지 권면해서 새벽에 나와서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배워야 되지, 때가 가까왔는데 뭐 지금 그 주저 주저하고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라면 안 들으면 할 수 없지마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새벽 기도 나와서 배우도록 권유를 해야 됩니다. 자기 맡은 식구들을 자기가 잘못 가르치면 심판이 있으니까 이런 자리에 참석을 시켜 가지고 배우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 있는 인도자입니다.
오늘 아침에 권찰회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