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8 16:11
종교와 정치
본문: 빌 3: 9 - 12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려 함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생겨지려 함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려 함이니 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밖에는 전부가 사망 뿐이요 그리스도 안에만 생명과 평강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밖의 것은 이전에는 그것을 귀하게 여겨서 그것을 상대해서 소망도 하고 또 노력도 하고 즐거워도 하고 근심도 하고 했지마는 그리스도 밖의 것은 그것이 다 사망아래에 있는 것이요 또 저주 아래에 있는 것이요 일시적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리스도 밖의 것은 상대하지 않는 자가 된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의 것은 어떤 것이 그리스도 밖의 것인가? 영계에 있든지 물질계 이 우주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이 구원 역사 안에만 생명이 있지 이 구원 역사 밖에는 다 멸망입니다.
아무리 구원이라는 말이 많이 있고 구원이라는 운동들이 많이 있지마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작정하신 이 구원 안에만 생명과 평강이 있는 것이지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지음 받은 것들이 이렇게 하면 구원된다 아무리 주장하는 것들이 많아도 벌써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이 구원은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결정되어 있는 그 구원이기 때문에 창조된 만물은 이 구원을 위하여 이용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구원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는 이종교가 많이 있고 또 별별 도가 많이 있고 사상들이 많고 주장들이 많고 지식들이 많지마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기 전 예정하시기 전 벌써 구원은 하나님에게 결정되어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인데 하나님의 정하심인데 이것을 위해서 예정도 있었고 이것을 위해서 창조도 있었고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섭리도 있었지 섭리 중에 영생이 있거나 또 창조에 영생이 있거나 예정에 영생이 있거나 있는 것이 아니고 예정 있기 전에 창조 있기 전에 하나님의 섭리 있기 전에 하나님의 목적 안에만 영생이 있고 완전이 있고 평강이 있도록 하나님이 이렇게 작정하신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창조되어 있는 이것도 우리가 창조되어 있는 이것도 무엇 때문에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은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의 목적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첫째 아담으로 창조된 이 영육 이것으로서는 무궁세계 영생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영생을 위하여 이용이 되고 영생을 이루기 위해서 이용이 되어지고 또 영생의 것이 되어져야 되지 이대로는 영생을 못합니다.
"그런고로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하는 그 안에서란 말은 그 위에 보면 8절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그러면 그리스도 밖에는 전체가 사망입니다. 저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만 생명이 있고 평강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언제 계셨는가? 그리스도는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 예정하시기 전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시기 전 영원 전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영원 전에 계신 하나님이신데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를 말하면 성자의 위치에 속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을 그리스도라 하고 그 성호를 나타냈고 여호와 하나님일라 이렇게도 나타냈고 또 말씀의 하나님이라 이렇게도 나타냈고 또 성자라 성령이라 아버지라 이렇게도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냈습니다.
한 하나님을 이렇게 당신이 나타내신 이름이 이러하니 이것은 참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하실 때에는 이런 하나님으로 저런 일을 하실 때에는 저런 하나님을 당신이 이런 직위를 가졌을 때는 이 이름을 저 직위를 가졌을 때에는 저 이름으로 그렇게 우리에게 나타내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도라 하는 이 하나님의 이름은 그 무슨 어떤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인가?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붓는다 하는 그 뜻인데 기름 붓는다는 말인데 기름 붓다니 기름 붓는다는 것이 무엇인고 그 뜻을 알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친히 다스리신 신정국가 하나님이 정치를 직접 하신 나라를 가르쳐서 이스라엘의 사사시대라 이렇게 말합니다. 사사시대 또 그 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망령을 부리고 패역을 부려서 하나님과 일층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멀어지게 된 그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때는 제사장과 왕으로 이렇게 종교와 정치가 갈라졌습니다. 갈라져서 정치하는 사람들을 따로 세우시고 또 종교면에 교훈 하는 사람들을 따로 세우시고 이래서 교훈 하는 계통을 제사장 계통이라 또 정치하는 계통을 왕의 계통이라 이랬는데 정치와 종교를 한 사람이 하게 된 그 일이 끝난 그 마지만 그 일을 하고 끝난 그 마지막 사람이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사사 중에 하면은 정치와 종교를 혼자 맡아 가지고서 한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르쳐서 사사라 이렇게 말씀했고 또 사무엘 그 다음 첫째 정치로 정치가로 선 사람이 사울 왕입니다.
이래서 종교와 정치가 그때 나뉘었는데 나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 되셨고 사사가 왕의 직계자로 왕에게 모든 것을 받아 가지고 이스라엘을 통치했는데 왕이 선 그 이후부터는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 다스리던 일을 하지 아니하셨고 정치가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종교가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교훈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조금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간격이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세상에 있는 교회들도 그러합니다. 어느 시대나 개혁이 되어 가지고 참 교회수가 적고 또 모든 것이 다 깨끗하고 솔직할 그때는 종교와 정치가 나누어지지 아니하고 종교와 정치를 은혜 받는 그 개혁의 사람들이 이것을 혼자 겸해서 했지마는 차차차차 교회가 많아지게 되면 문제도 생겨지고 또 복잡도 하고 수도 많고 이러니까 여기서는 한 사람이 종교와 정치를 힘들여 이제는 종교화 정치를 나누어서 하게 됩니다.
마치 비유컨데 저 강물의 그 근원인 산골 생수는 저 산골 바위틈에서 나오는 그 생수는 강물보다 깨끗하고 그 물은 이렇게 저렇게 그 관수 할려고 방천을 방축을 싸고 또 이렇게 물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는 그런 물을 관수 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아니해도 골짜기로 제 마음대로 쫄쫄 흘려 내려와도 별 피해는 없고 또 그것이 바로 잡아서 흘러내리지마는 차차 이 물이 모여서 많게 되면 그 다음에는 이 물이 흘러 나가는 길도 그렇게 자유롭지를 안하고 또 많은 물이기 때문에 이 물이 외통으로 졸졸 흘러내려 가지도 안하고 이리 내가 흐르고 저리 내가 흘러서 모든 농작물도 다 절단 내고 인가도 절단 내고 이러니까 부득이 이것을 방축을 쌓아 가지고서 이리 나가게 저리 나가게 물을 관수 하게되는 그와 같이 그런 것입니다.
처음에 나온 때는 다 깨끗하고 온전하고 그때는 모든 일이 다 솔직하고 이래서 간편하고 간단하지마는 차차 수효가 많아지면 이 복잡해져서 종교와 정치가 나뉘게 됩니다.
지금 모든 교회 교파들이 다 종교와 정치가 나뉘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이 개교회로 나가는 교회도 이제는 종교와 정치가 하나로서 이제까지는 되어 나왔습니다. 되어 나와서 장로들이 있고 집사들이 있으나 별 장로들이 할 일이 없었고 집사들이 할 일이 없었습니다. 왜 성경대로 영감대로 이해가 차니까 종교라는 것이 그 정치요 정치가 종교라 그래서 성경대로 정치하고 또 정치 그것이 곧 성경이고 이렇게 되어 나왔지마는 사람의 수효가 많으니까 거기서 사무엘 시대에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도 외국과 같이 왕을 세웠으면 좋겠다 이렇게 부르짖어서 하나님께서 왕을 세워주었습니다.
왕을 세워 주시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들이 왕을 너 사무엘이 통치할 때에 이스라엘이 평안하고 왕이 통치한 이후에는 사무엘이 통치한 때와 같은 평안을 평생 만나지 못할 그것이지마는 저들이 이렇게 너를 반대하고 정치왕을 세워서 정치하기를 원하는 것은 너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너 반대 전에 나를 반대하는 것이니까 그들이 행한 대로 그대로 줄 수밖에 없다.
이러니까 그것은 너를 반대함이 아니고 반대함이요 저희들이 복이 적어서 그런 것이니까 그것을 그대로 자유성을 주지 아니하면은 도리어 더 심히 타락할 것이고 하니까 그대로 두어서 내가 왕을 세워라 사울을 택해서 왕을 세워라 해서 왕을 세웠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일종 한층 타락하는 것입니다. 그 모양으로 행정은 행정대로 종교는 종교대로 이렇게 분리되어야 된다 하는 것을 자꾸 원합니다.
그런 교회들을 보고 원하고 그런 것을 보고 원하고 이러면 이제는 차차차차 어찌할 수 없이 장로 한 분 세우고 두 분 세우고 세 분 세우고 이제는 행정 정치라 하는 일 행정을 세워서 우리 진영에도 행정 위원회라는 것을 이번에 조직했습니다.
이것이 다 새것이 아니고 옛것을 되풀이하는 역사를 변동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게 다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예수님 재림 때까지 타락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나쁜 것만이 아니고 저 산골짜기에서 나오는 생수는 깨끗하기는 그것이 깨끗해서 아주 물맛 좋고 위생적이고 좋지만은 그 산골 물 그거 가지고는 여기에 배가 다닐 수도 없고 또 거기에는 큰 고기가 자랄 수가 없습니다. 이제 거기 내려와서 물이 탑탑하고 좀 나쁘지마는 그 양이 많으니까 많은 양을 인해서 배도 다니고 또 많은 양을 인해서 깨끗한 고기는 아니지마는 많은 고기들이 그렇게 생겨 가지고 또 이용이 되어지고 하는 거와 같이 이렇게 교회수가 많아지면 깨끗함은 처음만 못하지마는 그런 많은 숫자에서 하나님에게 필요하고 요긴한 하나님의 뜻이 또 많이 이루어져 나가는 그런 좋은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개혁한 그 개혁의 복음 운동이 좀 있으면 또 차차차차 타락하고 부패해집니다. 숫자가 많아지면 타락해지고 부패해지고 부패해지면 또 그 가운데에서 또 종교개혁이 생깁니다.
그러면 요것을 잘 생각할 것은 그러면 개혁이라는 것은 아주 그 교회들이 타락하고 부패해집니다. 부패해지면 그 속에 같이 부패하고 타락하지 아니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이 부패하고 타락하지 아니한 사람들이 있어 그 사람들과 타락한 교회와 결국 충돌이 생겨집니다. 충돌이 생겨지니까 언제든지 세상 세력은 타락한 교회들이 세력을 가집니다. 타락한 그 부분들이 세력을 가집니다.
세력을 가져서 세상 세력은 이 타락한 교회들이 세상 세력을 많이 가지고 신령한 진리와 영감의 세력은 타락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나오는 그 사람들이 더 실력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이 둘이 서로 충돌이 되어 가지고서 갈라지게 될 때에 타락한 교회의 세상 세력이 또 하나님의 영감 진리의 세력과 둘이 싸울 때에 타락한 교회는 세상적 힘이 있고 진리와 영감 계통의 타락하지 아니한 편들은 영적 세력이 있기 때문에 영적 세력이 있기 때문에 영적 세력이 있는 것은 세상 세력이 있는 자들에게 영적 세력인 진리와 영감을 양보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영감으로 강하게 역사하고 이 타락한 교회들은 영감과 진리의 세력은 없고 이 세상적 세력을 강하게 역사하고, 이러니까 영적 세력에 있는 자들은 이 외부의 육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므로 영감과 진리는 더 강하게 고수해서 이렇게 세우고 타락한 세상의 이 세력은 세상 세력으로 영감과 진리로 타락치 아니한 세력들은 이 세력을 가지고 죽이고 이래 가지고서 오랫동안 나오다가 두 세력이 다툴 때에 타락한 세력은 타락한 그 힘을 가지고서 대항하고 영적 세력은 영적 세력을 가지고서 대항하기 때문에 뒤에 가다가는 싸움이 일어나 가지고서 이제 예배당에도 싸움이 일어나고 이렇게 대적이 일어납니다.
그래 일어나면 하나의 예를 든다고 하면은 그 어떤 교회에서 두 줄기가 싸웁니다. 싸우면 때리기는 누가 때리고 맞기는 누가 맞겠습니까? 누가 맞겠소 영적 세력이 맞겠소 세상세력이 맞겠소 누가 맞겠소? 자, 세상 세력이 맞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 번 들어봐요 그러면 영적 세력이 맞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 번 들어봐요. 예 그게 맞습니다. 맞아도 진리와 영감을 조금도 양보하지 아니하고 고수하는 그것이 저거 승리고 이쪽은 또 두드리는 것이 저거 승리고 그러면 에배당 시비는 일어날 때 누가 차지하겠습니까? 영적 세력이 차지해야 될 건데 영적 세력이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타락한 세력이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분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타락한 세력들이 차지합니다.
그러면 영적 세력의 사람들이 졌습니까 이겼습니까? 졌습니까 이겼습니까? 한 분 대답해 보십시오 이겼습니까? 맞았는데 뭐 져요 예배당을 빼앗겼는데 뭐 이겨요 못 이겨요 세상적으로는 못 이겼고 영적으로는 이겼고 진리적으로는 이겼습니다. 또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때리고 예배당 빼앗아 갔으니까 그 사람들이 이겼습니까 졌습니까? 이겼소 졌소, 이겼소 졌어 그 말을 묘하게 했는데 이겼는데 졌다 세상적으로는 이겼고 천국적으로는 천국적으로는 천국적으로는 졌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승리와 성도의 승리가 따로 있습니다. 얼마 전에 편지가 어떤 사람이 나한테 하나 왔는데 교회는 당회가 최고 기관이라 당회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면 그 부하인 재직들이 일선에서 역사하고 목사는 설교만 하고 신앙 면만 다스려야 된다 설교나 하고 혹 타락이나 하는가 그런 거나 간섭하지 교회 행정이라 하는 것은 그것은 손대는 것은 월권이다 하는 그 편지가 만리 장성으로 왔습니다. 그 사람 말이 제대로는 맞습니다. 그리 안 해도 그리 되어집니다.
그렇게 말 안 해도 차차 차차 그 길을 향해서 타락해 갑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사사 시대에 사사 제도를 버리고 교훈과 정치를 해서 이렇게 나가기를 원하는 내나 그때 원하는 그것이요 별스러운 새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다 인간들에게 원해져 가지고서 자꾸 그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가 정치요 정치가 종교요 교훈, 교훈이 정치요 정치가 교훈이 된 그것이 하나되어 나가야 그것이 바로 되는 것이지 정치는 정치대로 따로 있고 교훈은 교훈대로 따로 있는 이것 가지고는 바른 길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한국 교회나 세계 교회의 역사에 그러면 그 교회가 타락한 제일 시발은 어디냐 시발은 어디냐 요것이 나누어지는 때고 그 다음에 교회를 현저히 나타나게 완전히 절단을 낸 것은 누구냐 교훈하지 아니하고 정치만 하는 그 정치가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훈 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겸하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교훈을 겸해서 이 둘을 겸해서 타락하지 않도록 하려는 그런 방편으로 노력을 해서 하지마는 또 그것이 타락은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제가 생각하는 것은 일반 교회에서 하는 거와 다릅니다. 일반 교계에서는 정치는 장로가 하고 교훈은 목사가 한다 하는 그것이 그만 일반 상식화 되어 가지고서 어느 교파든지 다 그것을 그렇게 생각하고 또 사람들이 헌법을 제정하기를 그렇게 헌법을 제정해 놨습니다.
성경보다 헌법을 위주 해 가지고서 교회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그때 고신에 있을 때에 고신의 교리와 신조를 책임지신 분이 누군고 하니 박윤선 목사님이십니다. 그분이 그때에 교리와 신조를 제일 잘 알고 있었고 많이 알고 있었고 또 그분이 고려 신학교 교장으로서 모든 목사들을 가르쳐서 내 보내고 하기 때문에 그분이 책임자입니다.
그 책임자 박윤선 목사님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세 시간 서로 논쟁했습니다.
여기 고려 신학교에 있을 때에 세 시간 논쟁했고 그 뒤에 고려 신학교에서 박윤선 목사님에 대해서 쫓겨 나오게 됐고 해서 동래에 이재만 목사님 교회 가 가지고서 잠깐 머물고 계실 때에 그때 가 가지고 또 두 시간 논쟁했습니다.
왜? 성경대로 하지 아니하고 이 헌법이라는 이것이 인간이 시대 타락으로서 이렇게 정해 놨다 할지라도 목사님이 지금 교리와 신조에 고신에는 책임자이기 때문에 왜 이것을 개혁 안 합니까? 이 헌법을 고쳐야 됩니다. 성경에 어데 정치만 하는 장로라는 장로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 장로라는 장로가 어디 있으며 교훈만 하는 장로라는 장로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 장로라고 기록한 것은 목사도 장로요 설교자도 장로요 정치하는 것도 장로요 다 장로입니다.
감독으로 천주교에서 감독들이 세력을 부려 가지고, 사도시대에는 감독으로 나왔는데 감독정치인데 감독정치가 월권을 해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 안됐다. 그 장로로 이제 장로를 세워 가지고 행정은 장로가 하도록 해 가지고서 이 교훈과 정치가 서로 상호 견제해야 되겠다 이래가지고 생겨진 것이 장로교입니다. 또 장로가 나와 가지고서 폐단이 많으니까 안 된다 다시 감독정치로 들어가야 되겠다 한 것이 감리교 감독정치 감리교입니다. 이렇게 자주 갈 지(之)자 걸음을 걷습니다.
신강하다가 자기가 성경을 가지고 대는 데에는 이 성경을 성경대로 해석하십시오 성경에 대해서는 그 분이 결국은 변명을 못했습니다. 변증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옳다고 긍정하지는 아니하면서도 성경에 그렇다는 증거는 못 댔고 나는 성경이 잃지 않느냐 하는 증거를 대서 성경적으로 제 말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긍정이 되고 변명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 교회들이 이렇게 됐기 때문에 이것을 이래 할 수 없다 이랬는데 성경에 보면 교훈을 잘하고 첫째 교훈을 잘하고 다스리기를 잘하는 사람이라야 장로로 선택을 입을 수 있습니다. 장로로 선택을 입은 장로들 중에 대우하는 이 대우에 대해서 그 다음에 말하기를 그랬습니다. 다스리기를 잘하는 장로를 귀중히 여기고 다스리기를 못하는 그런 장로보다 다스리기를 잘하는 장로는 다스리는 그 정치를 못하는 장로보다 정치 잘하는 장로를 귀중히 여기고 교훈을 잘하는 그 장로는 더욱이 귀하게 여겨서 교훈 잘하는 장로가 제일 일 위에 대우를 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행정 잘하는 장로를 제 이 위로 대우를 해야 하고 그러면 그 성경대로 보면 교훈 잘하고 정치 잘하는 장로는 이제 탁월한 장로로 이렇게 대우해야 된다 하는 성경입니다.
이랬는데 오후에 헌법은 이제 많이 타락하게 도니까 거기서 성경을 근거해서 법을 정한다고 하지마는 타락한 숫자가 많으니까 성경대로 못하고 시비해서 서로 서로 서로 이렇게 양편이 다 자기 주장을 세워 가지고 타협을 했기 때문에 헌법이라는 것은 성경에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될까? 사람들은 책에 기록했으면 권위 있는 줄 알지마는 책이 거짓말 책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내가 미국에서 온 사람인데 그것은 책을 못 읽어서 그렇지 이런 책을 읽어보면 아무것이 이렇고 이렇다, 이렇고 이렇다, 자기끼리 시비하는 것을 내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네가 그렇게 유치해 놨으니 다 모두 박사들입니다.
모두 박사들이요 시비하는 사람들이 다 박사 학위를 다 얻은 사람들입니다.
옆에 내가 앉았다가 이렇게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 심판이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보다 자기 속에 있는 빛이 더욱이 밝다 양심을 써보면 이런 거 알 수 있는데 책에 기록했다고 그것을 신임하지 못한다.
왜 한 가지 일을 동시에 한 자리에서 같이 봐도 깨닫는 것은 백 명이면 백 명이 다 달리 깨닫는다. 천 명이면 천 명이 은밀히 말하면 다 다르게 깨닫는다. 왜 같은 사건을 다 다르게 깨닫느냐? 그 이유는 자기가 다르기 때문에 다 다르게 깨닫는다.
보이는 그 객관의 것은 자기 아닌 것을 자기하고 둘이 합해 가지고서 발표가 나기 때문에 자기라는 그 본인들이라는 그 자기라는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에 즉 보이는 것은 하나지마는 서로 합하니까 달라진다. 보이는 그 가수 될 것은 하나지 하나라 하지마는 여기 피가수 될 것이다. 둘하고 하나하고 보태면 어찌 됩니까? 빨리 대답해요. 예. 셋.
열하고 하나하고 보태면 어찌 됩니까? 백하고 하나하고 보태면 어찌 됩니까? 백 하나. 하나는 틀림없지마는 이쪽 그 피가수가 다르니까 그 답은 다르다 그 말입니다. 그럴 것 아니겠소? 인간의 발표가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이다 하고서 그 어리석음을 한 번 깨우친 일이 있었습니다.
너거가 모두 다 샘 안에 개구리라서 너거 그 좁은 학위 받았으니까 너는 학위 받아 가지고 나라에 정부 초청으로 오니까 대단한 줄 알지마는 아직까지 샘 안에 개구리다 너거가 무슨 위대하고 어떻고 뭐 그 무슨 학위 받았다고 야단이지마는 다 어리석다.
뭐 그 무슨 학위 받았다고 야단이지마는 다 어리석다 너거 모두 샘 안에 개구리라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너거 아는 것만 알고 너거 모르는 것은 지금 모르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주관식 주관식이 객관식만 대개는 못하고 탁월한 것은 주관식에 있고 제일 간단해서 제일 냉냉한 것들이 새순에서 발달돼 나가는 것은 주관식이고 그 뒤에 강물이 되었을 때는 객관식이 좋다.
주관식은 바위틈에서 나는 생수요 객관식은 그것을 큰 강물 되어서 관수 되어있는 것인데 주관식은 맞은 것은 굉장히 탁월함이 좋고 틀린 것은 다 절단 나버린다.
왜? 바위틈에서 나오는 생수 그거야 귀하지마는 이제 생수가 많이 나오니까 여기 저기 많이 나오는 가요? 여러분들이 어짜든지 많이 알아야 됩니다. 아는 것은 인간의 지식으로 아는 그것으로 보조를 받아야 됩니다. 대단히 그게 보조학으로서 자기가 아는 데에 도움이 되는 학입니다.
그런데 도움이 되는 학인데 세상에 있는 학을 우리가 두 가지로 이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데에 도움이 되는 좋게 바르게 이용되는 것도 또 하나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는 데에 이 뜻을 대적하는 것들이 어떤 것들인가 대적하는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용되는 것도 있고 직접 이용되는 것도 있고 간접 이용되는 것도 있습니다.
세상 지식을 배울 때에 그 지식은 자기가 구원을 이루는 데에 인격을 이루는 데에 직접으로 이용되지 아니하고 간접으로 그 영리적으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그 지식을 배움으로 이와 같은 것이 모든 사람에게 나왔구나 내게도 요런 것이 들어 있구나 요것을 들어 뽑자 세상에 있는 모든 사상들을 공부할 때에 모든 이종교들을 공부할 때에 모든 주의들을 공부할 때에 철학들을 공부할 때에 도덕들을 공부할 때에 그것이 좋은 것이니까 예수 믿는 데에 고와 같이 믿어 가지고 구원이 되어지는 고것을 사용하면 구원이 되어지도록 그렇게 하면 구원이 되어진 구원을 이루는 데에 그것을 사용이 되는 것이니까 그것은 구원에 방해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과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정반대 되니까 그런 것이 인간 속에 있어 고것이 인간 주장이 되고 사상이 되고 인간 도덕이 되고 인간 관념이 되어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것을 뽑아야 진짜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뽑는데 사용이 되는 것이니까 어떻게 사용되죠? 불교, 불교에 이 불경, 불경 그 불도가 있습니다. 불경도 불도가 있으면 불도를 자기가 공부를 합니다. 그것을 압니다. 아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알면 불도를 알아 가지고 불도대로 행해 기독교 구원이 되겠다고 불도대로 행해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불도를 공부해야 됩니까? 불도와 같은 불도 그것이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는데 정신에서 나왔는데 불도와 같은 것이 내 속에 있는데 있는지 없는지 몰랐는데 불도 그것 보니까 그와 같은 것이 내게도 있다 이거요.
그러니까 불도를 공부하는 것은 불도에 그 중들이 말하는 그런 사상과 주의와 관념과 모든 인간의 부패성 타락성 망령성 허물성 편벽성 하는 그런 것이 자기에게 있는 자기에게 뽑을 것 있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불교를 연구합니까? 자기에게 비뚤어진 것을 뽑기 위해서 철학을 연구합니까? 자기에게 있는 비뚤어진 도덕성을 뽑기 위해서 세상 도덕을 연구합니까? 뭐 이것을 사용하면 구원이 된다고 연구를 합니까? 그것을 뽑아야 된다고 연구를 합니까? 공산주의의 사상을 민주주의에서 연구하는 것이 공산주의의 사상을 뽑기 위해서 연구합니까? 그 사상을 받아 가지고 해하기 위해서 연구합니까? 무엇입니까 뽑기 위함입니까 쓰기 위함입니까? 쓰기 위함이 아니고 뽑기 위함입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는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에서도 민주주의에서 쓸 것이 있습니다. 그 둘 다 같은 동무이기 때문에 이러나 기독교에는 이 세상 모든 도덕이나 종교나 철학이나 사상이나 주의나 그 아무 것도 기독교에는 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요것을 여러분이 판별해야 됩니다.
요것을 판별하고 있는 목사가 심히 드뭅니다. 심히 드뭅니다. 이것을 판별하고 있는 신학자가 심히 드뭅니다. 이러기 때문에 샘 안에 개구리요 그러기에 그분들이 말하는 것이 좁습니다. 작습니다. 그러기에 이쪽에서 말한 무슨 말인지 모르고 듣습니다. 모르고 듣습니다. 모르고 있어 그러니까 요것을 여러분들이 오늘 아침에 큰 것을 지금 하나 말해 줬는데 그것을 양성원에서는 제가 종종 말했습니다.
이종교나 비슷하지 않소? 고것을 가르쳐서 성경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계시록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저 가운데에 육백 육십 육, 육백 육십 육 이 수는 사람의 수요 짐승의 수라 짐승은 세상을 말했지요 세상 모아 놓은 것이요 사람의 수라 인간들 모아 놓은 것이라 그 말이요. 육백 육십 육.
그러기에 계시록을 바로 해석한다는 것은 세상지식을 다 초월해서 그 위에 쑥 올라가 가지고 전체를 포함한 하나님의 지식으로만 해석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을 넓혀야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그리스도는 영원 전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가 말씀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함께 계셨다는 말은 계시는 때가 있었다는 말이 아니고 영원 전이라는 그 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영이 성령이요 그리스도가 육신 되어서 예수님의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그러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 예수를 왜 그리스도 위에 놓는고? 이는 예수는 왜 예수를 왜 밑에 놓습니까? 예수는 인성이 들었거든 그렇기 때문에 인성이 우리의 중보자지 인성이 아니면 중보가 안 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어짜든지 나와서 배워서 깨달아야 알아야 예수를 믿지 모르는 사람은 예수를 모르는 것 만치 그 만치 밖에 못 믿습니다. 아는 것 만치 밖에는 못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