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8 16:10
종교와 정치
본문 : 로마서 3장 10절∼18절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이 제일 노여워하시는 세 가지는 하나님의 이 법도를 어기는 것과 또 피조물이 피조물 위주로 사는 것과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 세 가지 죄가 제일 하나님 앞에 거리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또 기뻐하시는 의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잘못된 이 세 가지 죄를 없이 하는 것과 또 하나님의 지성 지공의 법을 완전 이행한 것과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의 동거 동행하는 이 세 가지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이 세 가지 노를 정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심판이요 또 세 가지 의에게 보상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심판인 것입니다.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세 가지 노를 다 풀어 드렸고 세 가지 기뻐하심을 다 설정했습니다.
이 일은 사람만으로도 안 되고 하나님만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어 사람만으로는 유한하기 때문에 안 되고 하나님만으로서는 피조물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안 되는 이 어려운 모순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한 격을 이루고, 신격과 인격이 한 격이 되고, 또 한 일을 같이 책임지고 감당하시는 일위의 이 지위를 가지셔서 이 일을 완성했습니다. 이래서 기독교는 신인양성일위의 교주를 모신 것이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세 가지 하나님의 진노를 해결 짓고 세 가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을 완성해서 하나님의 공심판을 면하게 된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은 이런 의를 베풀 아무런 이유도 없는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신데 피조물의 이 노엽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 일을 할 수 없어 피조물이 할 수 없는 것을 신인양성일위가 이 일을 책임지고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과 사람이 사람을 대신해서 세 가지 노를 풀고 세 가지 기쁨을 완성해서 하나님의 공심판을 만족히 통과하고 남음이 있는 이 공로가 설정됐는데 이 공로는 사람들의 그 전부를 대신해서 대속을 하신 것이 아니고 영원 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 한해서 여섯 가지 이 문제를 대속하심으로 완료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은 만인 구원, 전인류 구원이 아니고 제한된 구원이니 택한 자들에게만 한해서 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은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이 좀 못 되는, 지금으로 말하면 1986년인데 거기다가 오 년을 그라면 91년 되겠습니다. 그때에 십자가에서 대속을 베푸셨는데,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언제부터 지구상에 있게 됐는가 하면 창세기 1장에 아담 하와가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요, 또 거게서 가인 아벨 셋 이 사람들이 택함을 입은 백성들이요, 또 그 외에 성경에 기록되지 안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은 택함을 입지 안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래서, 그때부터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백성들은 창조 받기 시작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창조를 받았는데 그분들은 하나님이 예약으로 짐승을 잡아서 대속의 제물로 삼는, 곧 신인양성일위의 대속 그 실상이 이루어지는 그 실상을 미래에 두고 하나님의 모형적 예약을 준행함으로 구약에 속한 사람들은 이 대속을 입게 됐고, 또 지금 신약에 속한 사람들은 지나간, 예수님이 대속하신 그 지나간 대속을 우리들이 다 믿고 이렇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대속하신 이전의 사람들이 대속된 것은 세례 요한이가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증거를 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장벽이 되어있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이 사람 손대지 안하고 위로부터 아래까지 갈라져서 휘장 가운데 열린 문이 생겨졌습니다.
예수님 이 십자가 못 박히시기 전에는 짐승의 피를 가지고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만 출입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그 휘장은 즉시 동시에 갈라져서 구약에 있는 모든 짐승으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를 드린 이 제사가 예수님의 대속을 예표, 모형, 예약한 것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실상이 이루어진 것을 증거해서 휘장이 갈라졌고, 바위가 터졌고, 부활하셨을 때에 자던 성인들이 많이 일어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구약 성도들에 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게 되고 한 것을 그렇게 계시를 해 주셨습니다.
그라고, 신약 교회에는 예수님이 이렇게 대속하신 것을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셔 가지고 대속하신 것을 증거해서 이 택함을 입은 자 곧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들에게는 성령이 그들에게 임해 가지고 성령으로 중생하는 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세 가지 노를 풀고 세 가지 기쁘시게 하는 이 일로써 하나님의 공심판에 의인이라고 인정 통과된 이 대속을 입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를 입은 의인들이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인이라는 말을 자꾸 하기 쉬운데 죄인은 우리가 이 심신은 아직까지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죄인이라는 말은 그 말은 안 된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의인들이요 하나님의 공심판을 의인으로 통과한 의인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의인이지 우리가 자체에게 의가 있어서 의인은 아닙니다.
의인된 나는 과거에 이런 이런 죄인이다 하는 것을 언제든지 그 순서로 우리가 기억도 하고, 생각도 하고, 말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죄인이라 하면 곧 예수님의 대속을 벗고 하는 말이 되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말을 하지말고 의인이라고 자기가 자기 이름을 부를 것이고, 의인인데 나는 과거에 이런 죄인이요 실상은 이렇던 죄인이라 하는 것을 그것을 우리는 생각하면서, 그러면 현재는 어떻게 살 것인가? 현재는 나는 의인이니까 의인이 사는 생활을 우리가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의인 생활은 어떤 게 의인 생활인가? 의인 생활의 법칙을 하나님이 주셨으니 곧 신구약 성경이 예수님의 이 여섯 가지 대속으로 의인된 자가 의인이 살 때에 사는 법칙을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이 법칙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 이 생애 법칙은 크게 말하면 두 가지니 하나는 하지 말라는 것 기록되어 있고 하나는 하라는 것 기록되어 있는데 하지 말라는 것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노를 대신 풀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노를 푼 자로 다 하나님의 노를 예수님이 대신 풀어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노를 다 푼 자로 소극적 의인이요, 하라는 것 한 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기쁘시게 한 자로 적극적인 의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믿음으로 자기가 의인인 것을 알고 의인으로 살 때에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사람이요, 자기가 죄인으로 인정할 때에 예수님의 대속을 벗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의인된 자기가 의인 생애 법칙인 신구약 성경 이 두 가지 법칙, 하지 말라는 법칙을 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 노를 푼 자로 사는 것이요, 또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의인이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의인인데 내 생활은 어떤 것이 의인 내 생활인가? 하나님이 금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내 생활이요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의인된 내 생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말씀에 금하는 것을 금할 때에 의인된 내 생활을 내가 하는 것이고 금하는 것을 금하지 안할 때에 옛사람으로 돌아가서, 의인된 내 생활이 아니고 옛사람으로 돌아가서 옛사람 생활을 하는 것이니까 그럴 때에 영은 같이 하지 않기 때문에 영은 살았지만 심신의 기능은 옛사람으로 살 때의 심신의 기능은 영원한 사망이 되는 것이고 그 새사람으로 살아, 금하신 것을 금할 때에 그것이 새사람 생활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새사람 생활 한 것은 다 영생입니다.
또,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라고 명령하신 그 명령대로 이행을 할 때에 의인이 의인 생활한 것이요 곧 의인 자기 생활을 자기가 하는 것이요 만일 하라시는 것을 하지 안할 때에. 그때에 의인은 감춰지고 심신은 악령과 악성에게 유혹 받아 가지고 옛사람으로 돌아가 가지고 의인된 자기 생활이 아닌 멸망에 속한 옛사람의 생애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나는 의인이라' 나는 의인이라 하는 의인인 것을 자기가 자기 힘으로 의인된 게 아니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의인된 자 이기 때문에 의인된 의인을 자랑하는 것은 대속하신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이요, 의인이 의인 생활하는 그것은 자기 생활하는 것이요 의인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죄인 생활하는 것은 자기 생활이 아니요 심신을 악령과 악성에게 빼앗겨서 옛사람 생활하는 것이니 그것은 사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그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좋아하실 때 있고 싫어하실 때가 있습니다. 나는 의인입니다. 하는 절 깨닫고 자신이 의인인 것을 알고 의인이면서, 예수님이 이렇게 대속하셔서 의인이 됐기 때문에 자기는 의인인 것을 알고 의인으로 살면서, 자기는 의인인 것을 깨닫고 의인이 의인되기 전 예수님에게 부담시킨 그 모든 죄악은 자기가 얼마든지 깊이 느껴서 나는 이렇던 그 죄인인데 예수님이 이것을 다 대형하셔서 하나님의 노를 다 푼 하나님을 노엽게 한 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한 의인이라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평생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노엽게 한 세 가지 종류의 노를 우리는 평생 생각하면서 나는 과거에 이렇던 자인데 예수님께서 이 노를 풀기 위해서 이 노를 푸는 데는 그 형벌 받음으로써 없애지 형벌 외에는 없애는 길이 없어 주님이 죽기까지 신인양성일위가 형벌받아 가지고 이 노를 푼 것을 재기가 생각하면서 이렇게 힘들여 의인 만들어 주셨으니 다시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죄인 생활할 수 없는 이것을 얼마든지 생각하고 하나님을 노엽게 한 죄인 생활이라니?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는 것과 또 자기 주장,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율, 주관, 사욕 이제 어떤 피조물이라도 그 피조물을 하나님 대신해서 그것에게 피동되고 그것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는 이런 우상 섬기는 이런 일을 내가 과거에 함으로 하나님을 노엽게 했는데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여기서 나를 대형하셔 가지고 구속하셨으니 나는 이 죄를 다시는 범할 수 없다 하는 그것은 얼마든지 각오도 하고 명상도 하고 되풀이도 하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일단 나는 의인된 의인이 그런 것을 생각해야 되지 의인인 자기를 잊어 버리고 옛사람으로 돌아가서 그렇던 죄인이라는 것을 그것은 의인으로서 그것을 생각하면서 과거에 그랬기 때문에 이제 현재로부터 미래에는 다시는 주를 노엽게 하는 이런 세 가지 종류의 죄를 범할 수 없단다는 이 사실을 자기가 깨닫고 이 면을 힘쓰면서 과거에 이렇던 자이다 하는 것을 생각해서 새사람으로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유익이 있지만 새사람을 잊어버리고 옛사람이 자기인 줄 알고 할 때에 마귀는 좋아하고 주님은 탄식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로마서 1장 17절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의인이라는 것은 그 의인은 우리 대속 받은 사람을 가리켜서 의인이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의인인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의인인 것을 깨닫고 의인이니 의인 사는 생활이 내 생활이라.
의인 사는 생활이 뭐인가? 의인 생활하는 의인 생활의 법칙은 신구약 성경에 있는데 하지 말라는 것과 하라는 것 두 가지 있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하는 것이 의인 내가 사는 내 생활이라, 또 하라는 것을 하는 그것이 의인된 내 생활이라는 것을 알고 이 생활을 하면서 의인이 살라 할 때에, 의인으로 살라고 할 때에 의인 생활하는 데에 하지 말라는 걸 하지 말기가 어렵고 하라는 것을 하기가 어려울 때에 과거에 내가 이런 어려워서 이렇게 이렇게 해 가지고 영원히 죽었던 자를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이래 해 놨는데 내가 다시 어렵다고 안 할 것을 하고 어렵다고 할 것을 안 할 수 없다는 거게 대해서 우리가 얼마든지 새겨서 강조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인 생애 법칙인 이 법칙이 의인된 우리의 생애 법칙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두 가지, 금하고 명한 이대로 사는 것이 곧 의인된 내 생활이요 정상의 내 생활을 내가 하는 것이지 그걸 떠나면 내 생활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가서 구속받지 않는 사람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그러면 요것은 서론적으로 깨닫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는 오늘 봉독한 말씀과 같이 치우치면 안 됩니다. 이 치우치면 아무리 열심을 내서 무엇을 한다 할지라도 치우치면 실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선도 지나치면 악이 되는 것입니다. 또 사랑도 지나치면 악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봉사나 희생은 좋은 것으로 알지만 사랑도 봉사도 지나치면 다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의를 지나치게 한 자는 기한 전에 죽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하는 것을 반드시 하나님의 계약 조문에는 거게 겸하여 기록해 두셨습니다. 신명기 28장에도 보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사이, 아마 우리 서부교회만 아니고 하나님이 주님의 재림이 가까왔기 때문에 이 운동이 한국에도 전국적으로 이 회개 운동이 일어나고 또 세계에도 이 운동이 일어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그 소식은 제가 정확한 소식은 지금 들어 보지를 못했습니다. 과거에도 보면 한 군데 회개 역사가 일어나면 뒤따라서 그 회개 운동이 일어나는 그것이 일반적 방편이었고, 또 어떤 시대에는 보면 다른 데는 얼마든지 타락하구로 내비두고 부분의 그 회개 운동을 강력히 역사하셔 가지고 부분면에 회개한 그 회개자를 하나님이 붙드시고 온 세계적으로 역사하시는 그런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서부교회는 분명히 회개 역사를 하나님이 일으키고 계신다 하는 것을 제가 짐작을 하고 그렇게 모든 증거를 자꾸 보고 있습니다. 있는데, 제가 원하는 것은 우리 서부교회뿐만이 아니고 우리 전국이 다 이 회개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힘쓰는 우리 전국 교회가 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이 돼지고 우리 전국만 아니라 세계 교회들이 다 회개 은혜를 받아 가지고 이 회개에 힘을 썼으면 참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기도도 하고 있지만 지금 어떻게 하고 계시는 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서부교회만은 하나님께서 회개 역사를 지금 하고 계시는데 하나님이 이 회개 운동을 일으키실 때에, 이때에 그것을 자기 마음이라고 생각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의 은혜의 기회인 줄 알고 회개를 힘써 해야 됩니다.
영감이라 하는 것은 성신의 감화가 내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 하시는 것인데 하나님과 화친해서 하나님과 우리가 화친의 결합을 가지는 것은 그것은 곧 성령의 감화와 우리 마음이 하나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과 화친인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성령의 역사와 우리 주관 역사가 하나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우리 주관이 특별히 아는 것, 깨닫는 것, 믿는 것, 원하는 것, 행하는 것 이런 것이 다 우리에게 신령한 은혜들입니다.
신령한 은혜들인데 이 은혜가 자기 주관의 그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 주관의 한계가 있어서 자기 주관선, 자기 주관선이라는 이 선에 와 가지고 도달하고 다시 뒤로 물러가고 하는 그런 일 있고, 또 이 자기 주관선의 이 절정에 도달하지 안하고 중간에 시작하다가 만 그런 때도 있고, 자기 주관 절정선에 도달하고 난 다음에 자기 주관이 아닌 그 객관 역사가 자기 주관 이상에 지식하게 되는 것, 깨닫게 되는 것, 또 믿게 되는 것, 소욕을 가지게 되는 것, 실행의 능력을 가지고 실행하게 되는 것 이런 것, 다 자기 주관을 초월한 객관 역사가 오는 그것을 가리켜서 성령의 역사라, 하나님의 역사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대개 우리가 이 은혜를 받는 것을 경험해 보면 자기 주관이 다해서 충성할 때에 그때에 이 객관 역사가 그 다음을 인계해 가지고 역사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하나님이 회개 은혜를 주시는 좋은 기회인데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대로 회개에 힘을 쓰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회개를 우리가 힘을 쓰는데 잘못하면 우리가 힘써 신앙생활을 하고 또 회개 생활을 한다는 것이 도리어 잘못되기 쉽습니다. 주님이 이스라엘에게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주를 위하여 간절한 것이 나를 삼켜 멸하게 했다 그렇게 요한복음에 말씀했습니다. 주를 위하여 간절한 것이 나를 삼켜 멸하게 했다.
그들이 주님에게 대해서 간절한 성심 심의를 가지고 한다는 것이 지나쳐서 다 하나님에게 큰 욕이 되고 진노가 됐던 것입니다.
하나 예를 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이방 로마 돈을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제물을 사는 데는 쓰지 못한다 이래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데는 이스라엘 돈을 써야 되지 이방인의 돈을 사용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한 것은 이스라엘의 돈을 그 제물 쓰는 데에 해야지 우리가 비록 로마 나라에 식민지로 돼 가지고 있을지라도 로마의 통화를 사용하는 것은 안 된다 이래 가지고 성전에서 돈 바꾸는 일을 해 가지고 반드시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제물을 살 때에는, 이스라엘의 돈은 그때에 다 식민지이기 때문에 못 쓰는 돈입니다. 못 쓰는 돈이나 그 돈을 로마의 현재 사용하는 그 돈과 바꾸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의 돈의 가치를 높이 둬야 된다 해 가지고 못 쓰는 돈 가지고 쓰는 돈보다 가치를 높여서 그렇게 돈 바꾼 일을 한 것이 성전에서 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데에는 아무나따나 벌로 길러 놓은 그 양을 사서 제사 드리는 것은 이 부정하기 때문에 양을 아예 어릴 때부터 사 가지고 구별 있게 성전 제물 위해서 길러 가지고 그 기른 그 제물을 사 가지고 제사를 드려야 된다고 이렇게 해서 거게서 기른 양이라면, 다른 데서 기른 양이면 예를 들어서 한 천 원 갈 것 같으면 거게서는 한 이천 원이나 삼천 원이나 돈을 많이 주고라도 그걸 사 가지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제사를 드린다고 이렇게 해 가지고 그때 해서 소와 양 파는 것을 예수님이 채찍으로 쫓아내시고 돈 바꾸는 것을 다 엎으시고 그렇게 하면서 말씀하시기를 주의 전을 위해서 간절한 것이 도리어 나를 삼켜서 멸하게 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기도하는 집을 강도와 도적의 굴혈을 삼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그것들입니다. 잘못하면 사람은 치우쳐 가지고 도리어 죄가 되는 그런 일이 많이 있습니다.
요사이 이 서부교회 에서 회개 운동이 일어나는 동시에 귀신 들렸다고 하는 좀 정신 이상자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일어나는데, 제가 거게 대해서 많이 걱정을 하고 했었는데 이제는 해결을 받았습니다.
왜? 우리가 기도를 해도 나가지 않는 귀신은 귀신 들린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고의적으로 그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오지 못하도록 금해버려야 됩니다. 그걸 늘 구별 못 해 가지고 했는데 귀신 들린 사람이면 반드시 우리가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 귀신이 나가는데 귀신이 들리지 안하면 제가 고의적으로 그 행위하는 것은 절대 안 나갑니다. 제가 고의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 사람이 회개를 해야 되는 것이지 귀신도 아니고 제가 그와같이 역부러 그와 같이 하는 것인데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고걸로 판정하고, 기도해서 안 나가는 사람은 그런 짓 하는 사람은 교회에 못 나오구로 아주 금해 버려야 됩니다. 아주 그 교회에 오지 못하도록 그렇게 금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회개하고 나중에 그 짓을 안 하겠다고 하고 고쳐질 것입니다.
내가 그라고 났는데, 그 뒤에 내가 조사를 좀 해 보니까, 그 광신 노릇하는 사람이 그 사생활에 어떠냐 이래 가서 그거 물어 보니까 다른 사람 보면 미치괭이 노릇하고 저 모르는 데 가 가지고 시장을 보는 것이라든지 뭐 이런 거 하는 데는 철두 철미하고 생생하이 그런 것 하나도 없고 물가 같은 것도 뭐 어떻게 예의도 있고 체면도 있고 깎기도 하고 정확하게 그렇게 한다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작정한 것이 더욱 그렇다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고, 또 우리가 대개 요새 그 정신이 이상돼서 정신 병원에 가 가지고 치료 받는 사람은 제가 의사에게 몇 사람에게 들어 봤습니다. 들어 봤는데 그 의사가 말하기를 이 병은 대개는 십분지 구는 제가 고의적으로 그렇게 환경에 따라서 환경이 만만하고 고의적으로 그와 같이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니까, 호기심에서 또 다른 사람이 그렇다고 모두 겁을 내고 염려하니까 또 그렇게 해서 그런 것이 많은 것이기 때문에, 참 병으로 그런 것 있고, 제가 그게 고의적으로 방심 방탕해 가지고 그와같이 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이 정신병자는 본인이 정신 이상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면 벌써 십분지 육팔은 고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알고 난 다음에는 그 연습됐던 것, 악습이 돼서 그런 것이니까 좀 조심하면 괜찮다 하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또 그런 것 많이 봤는데 대개는 고 말이 맞고 그대로 됩디다.
또, 그뿐만이 아니고 우리가 지금 회개 운동을 하는 이때에 잘못하면 이렇게 저렇게 치우쳐 가지고 나중에 가서 비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그리 되면 악령이 붙어 가지고 그 비정상의 신앙생활을 점점 미혹시키고 혼란케 해 가지고 치우치게 만들어서 실패를 시킵니다. 거게 대해서 잠깐 간단하게 말할라고 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정치와 종교를 하나로 해 가지고 해 나을 때에 그때에는 사사 시대라 이렇게 말합니다. 사사 시대는 정교가 하나였습니다.
정교, 정치와 종교가 하나여서 한 사람이 정치도 종교도 다 맡아 가지고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럴 때에 왕은 하나님이시고 다만 그 사사는 하나님의 사자라고 해 가지고 사사라 이렇게 해서 구약에 사사기라 하는 것은 사사 시대의 사사를 기록한 것이 사사기 성경입니다.
그때 보면, 종교와 정치가 하나되어 있을 때에는 이스라엘 나라가 그래도 강성했고 이스라엘을 다른 나라들이 해하지를 못했고 이는 과연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이상한 나라다 하는 것을 세상들에게 보여 주고 하나님이 직접 관리를 하고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라다가 사무엘 사사 그 다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도 이 좀 정치와 종교를 나눠 가지고 왕을 세워서 다른 나라와같이 이 왕이 그만 이 모든 행정들을 책임지고 그와같이 했으면 우리나라도 강성하게 되겠다 해 가지고 사무엘을 반대하고 임금 세우기를 원하는 그 일을 했습니다.
사무엘이 걱정하니까 하나님께서 저희들이 너를 반대하는 게 나를 반대하는 것이니까 저희들이 원하는 대로 그대로 둬 둬라 하시고 그 다음부터 하나님의 간섭은 사사 시대와 아주 달리 간섭을 해서 그 나라가 참 비참한 것이 이스라엘 나라였습니다.
그때 역사에 보면 정치와 종교가 나뉘어 있을 때에 정치는 현실적이고 다 권리적이고 다 물질적이고, 종교는 다 신앙적이고 소망적이고 또 신령적이지 때문에 대개는 정치가 세력을 많이 가지게 됐습니다. 이래서 정치가 세력을 많이 가져 가지고 월권 남용을 할 때에 그 나라는 망했고 또 종교는 탈선된 일이 없었으나 종교가 타락해 가지고 권위가 없을 때에 그 나라는 망했는데, 이 정치와 종교가 아롱 아롱하게 반반하게 이렇게 돼서 종교는 정치를 지도하고 정치는 모든 백성들을 통치하고 이럴 때에 그 나라가 이상적으로 잘 됐던 것입니다.
첫째 왕이 사울 왕인데 사울 왕은 정치를 맡고 난 다음에, 그때에 종교는 사무엘이었는데 사무엘보다도 이 사울 왕이 독권을 가지고 날뛰어서 그 사울 왕이 망했고, 그후에 다윗이 왕이 돼 가지고, 이렇게 왕이 돼 가지고 정치를 잘 했으나 종교에 대해서 종교보다 정치가 앞서서 힘을 썼기 때문에 그때에 다윗도 실패를 봤고 그나라에 그저 별로 유익을 보지 못하고 그만 솔로몬 때에 와 가지고 벌써 십 이 지파가 두 나라로, 열 지파와 두 지파로 두 나라로 나뉘었던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지금도 그때와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정치와 종교 이 양면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아롱아롱하게 살아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실패됩니다.
그러면, 종교는 우리가 어떤 게 종교면인가? 우리가 성경보고 기도하고 또 말씀을 전하고 하는 이것이 종교면입니다. 또 정치면 어떤 게 정치면인고 하니 가정과 사회와 국가 이것이 정치면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이 양면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인데 잘못하면 종교로 치우치기 쉽고, 또 잘못하면 정치로 치우치기 쉬워서 정치로 치우치면 속화가 되어지고, 또 종교로 치우치면 불건전한 신비주의로 이렇게 기울어지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정치는 종교를 두려워 바라보고 또 종교는 정치를 염려하면서 이렇게 병행할라고 애를 쓰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지금 기도하는 데 대해서 힘을 쓰고, 성경보고 기도하는 데에 힘을 씁니다. 아마 지금부터 한 이 86년도 들어서기 전, 85년도 보다 86년도에 와서는 우리 서부교회뿐 아니라 이 부산에 있는 이 총공회 산하에 있는 교회들은 종교면에 많이 힘을 씁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또 기도도 열심히 하고, 또 복음 전하는 것도 열심히 전하고 하는 그런 일을 열심히 합니다. 그거 대단히 큰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면을 힘을 쓰는데 이 면을 힘을 써 이 면도 힘을 쓸 대로 다 써서 이 면 충족하게 됐느냐 하면 이 면도 지금 우리가 힘써서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시작한 것인데 시작을 해도 시작한 데서도 치우치기 쉽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하는 말 들었습니다. '모두 기도하기만 다 힘을 써서 모두 기도하러 가고 이라니까 나도 이제 심방 안 하고' 기도하러 가야 되겠다.' 그 사람이 좀 못마땅해서 그렇게 말을 하는 줄 압니다. 심방 안 하고 기도만 하러 가니까 나도 그랄란다 하는 그것도 좀 아마 기도도 치우쳤다 그렇게 보여서 하는 것이고, '보자. 자꾸 기도하러 간다, 성경 본다, 전도한다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보자, 저래 보면 저 가정이 어찌 되느냐, 저 사회가 어찌 되느냐, 저 경제가 어찌 되느냐?' 그런 것을 또 보고 지금 조롱을 하고 염려를 하는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치우치면 안 됩니다.
이래서, 종교는, 성경보고, 기도하고, 또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 이 셋을 대표적으로 합해서 종교면이라 그렇게 할 수 있고, 기독자의 정치면이라 하는 것은 기독자가 이 종교면에서 얻은 모든 신령한 그 능력을 이 정치를 통해서 발휘를 해야 됩니다. 정치를 통해서 이걸 나타내고 힘을 써서 그 성과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경보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없으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없습니다. 기적과 축복이 없으니까 암만 제가 알뜰히 애를 써도 점점 분주만 해지고 점점 타락해서 신앙은 벗어나고 그만 완전히 세상 사람과 꼭 같은 속화되는 그렇게 해 가지고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없어 가지고 망하는 사람됩니다.
또, 이 세 가지 종교면을 힘을 쓰고 정치면을 무시하면 하나님이 이 종교면을 힘쓰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기적과 축복을 주실라고 해도 기적과 축복을 줄 자리가 없습니다. 기적과 축복을 부어 줄 곳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은 오지 못하니까 암만 기적과 축복을 하나님이 주시지만 자기가 이 정치면을 행하는 거게다가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28장에도 보면 네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신다 이렇게 말씀했고, 또 성에서도 들에서도 이렇게 복을 주신다고 말했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한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다 위에만 있고 아래 있지 않는다 또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는다 하는 이것은 전부 정치면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정치면으로 이제 탁월하게 된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종교면인 성경 열심히 보고, 기도 열심히 하고, 또 우리가 그러면 자연히 전도라 하는 것은 자기가 회개하고 다른 사람에게 회개하는 그 빛을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 도를 전하고 자기가 자기에게도 도를 전해서 그 회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성경보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이 세 가지를 하는 데에 성경을 보고 기도함으로 그 고치는 회개가, 회개 열매가 이루어지지 안하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성경 봄으로 회개가 이루어지고, 또 기도함으로 회개가 이루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를 전함으로써 도를 전하다 보니까 자기가 자기에게 도로 도를 전해서 깨달아 가지고 회개의 역사, 회개의 결과가 맺어지고 이래야 그 사람이 기도도 바로 한 것이고, 성경도 바로 본 것이고, 이 도를 증거하는 증거도 바로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양산동에 거기 가서 있을 때에 그 오는 사람마다 내가 만나는 데는 개인이나 단체나 그 부탁이 그것입니다. '여게 오는 성경 많이 보십시오.' 어떤 사람에게는, 자꾸 기도만 하는 사람에게는 성경 많이 보라고 말하고, 또 그 기도 안 하는 사람에게는 기도하라고 말하고, 성경보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회개의 열매가 있어야 되지 회개의 열매가 없으면 안 됩니다. 고침이 있어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고침이 없으면 축복을 못 해줍니다. 그런 말을 또 합니다.
이래서 이게 다 종교에 속한 것인데 이렇게 종교에서 힘을 얻었으면, 종교에서 얻은 그 힘, 종교에서 얻은 그 은혜, 종교에서 깨달은 깨달음, 종교에서 이 원하는 일어나는 소원, 종교에서 하나님의 이 축복과 기적을 받았습니다. 종교에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받았는데 받은 기적과 축복이 이제 뭘 통해서 자기에게 나타나느냐 하면 자기의 그 정치면의 생활, 정치 생활을 하는 데에서 그 기적과 축복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범위를 넓힐라면 많지만 그 정치에 대해서는 한 서너 가지로 우리가 아는 대로는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는 그 가정입니다. 자기 가정에 대해서 자기 의무나 책임이나 또 부부의 의무 책임, 부모와 자녀의 의무 책임, 또 뭐 이런 것 그런 면, 가정에 대해서 첫째는 경제면에, 경제면에 대해서 자기가 기적과 축복 받은 것을 가지고 경제면에 대해서 활동을 해야 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윤리면에 대해서 힘을 써야 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이 모든 교육면에 대해서 힘을 쓰고 이 세 가지로 힘을 쓰면 됩니다. 그 세 가지면 거의 다 그 안에 내포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내가 만일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 종교면에 힘을 써서 은혜를 받아 가지고 그 기적과 축복을 제일 입문에서, 그게 제일 입문이요 가치가 적은 것인데 가치가 적으면서도 중대한 위치를 잡고 있는 것이 그 경제입니다.
이래서, 네가 두 주인 섬기지 못한다 하면서 하나는 하나님이요 하나는 경제라고,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주인 하나는 재물로 이렇게 아주 높이 평가해서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기도하면서, 성경을 보면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거게서 얻은 힘을 가지고 내 가정의 경제면에 힘을 써야 됩니다. 경제면에.
행정을 하는 것인데 경제면에, 내가 성경을 보니 내가 이 경제면에, 이 물질면에 대해서 어떻게 내가 의무와 책임과 본분의 역할을 바로 해서 이 면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되겠다, 이 면으로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 보지 안하고 기도하지 안하고 이 전도하지 안하는, 종교에 힘쓰지 안하고 이 정치에만, 정치면에만 힘을 쓰는 이런 사람들과 종교면에 힘쓰는 나와 이 둘을 볼 때에 종교면에 힘쓴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이 정치면에 와 가지고 역사하기 때문에 정치면을 무시해 버리면 이 사람들은 이 세상주의라도 이렇게 자꾸 해 나가고 이렇게 서 나가지만 이거는 바싹 뿌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너는 자꾸 하나님 하나님하고 종교면만 힘쓰니까 보자 나중에 배가 고파서 얻어먹으러 가야 되고, 돈 빌리러 가야 되고, 쌀 빌리러 가야 되고, 또 머리를 숙여서 가 가지고 그 사람에게 이제 굴하고 아부해야 되는 그런 굴욕적인 그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성경을 읽음으로써 이 경제면에 어떻게 힘써야 되겠다 성경을 읽음으로 성경을 읽어보니까 경제면에 과거에 성경을 모를 때에 힘쓰던 것은 다 그것은 틀리고 망하는 길이고, 성경을 읽어보니 이렇게 경제면에 힘을 써야 되겠다, 기도해 보니까 이렇게 힘을 써야 되겠다, 또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도를 해 보니까 '전도, 자기나 복 받고 잘 사십시오.' 이런데 떡 거석하면 있다가'왜 다른 사람한테 돈 꾸러나 돌아다니지 말지, 쌀 꾸러나 돌아다니지 말지, 다른 사람 빚이나 갚지, 남의 돈 떼먹고 뭐 전도하러 돌아다녀?' 이러니까 전도하다 보니까 더 또 힘이 나 '이제는 내가 암만 해도 죽어도 내가 이놈의 꼴 내가 면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성경보고, 기도하고, 전도하다 보니까 이 가정 의무에 대해서, 그게 정치라 말이오.
정치에 대해서, 가정에 대해서 이걸 내가 잘 다스려서, 가정에 대해서 잘 다스려서, 저거 기도한다고 산기도 돌아다니고 만날 예수 믿는다고 돌아다니고 조롱하던 사람이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을 받으니까 그 사람보다 쑥 올라가 버립니다.
쑥 올라가니까 떡 가 가지고는 '너 암만 죽도록 골 빠지게 해 봤자 소용없어.
골빠지게 공부해도 소용없다. 너 공부하는데 너는 죽도록 공부만 하는데 너는 골찌인데 나는 그 일등이 되지 안했느냐? 너 또 그렇츰 이래 쌓는데 자꾸 왜 돈 꾸러 뭐하러 오노, 그렇츰 불철 주야로 노력하는데?' 이럴 수 있어야 된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인제 성경을 읽으면 자꾸 옳은 방편이 나와요. 성경을 읽으면, 내가 가정 의무를 가져야지 가정 의무를 가져서 다른 사람에게 '봐라. 가정은, 가정의 의무는 이렇게 해라.' 하는 이것을 보여 줘야 되겠으니까 가정 의무에 대해서 첫째로는 뭐냐? 경제면이니까 다른 사람 내가 이렇게 종교면에 힘쓰기 전보다도 경제면이 다 활발스러워지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경제면이 윤택해지고, 저절로 윤택하게 되여집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수고하고, 노력도 해야 되고, 절제도 해야 되고, 절약도 해야 되고, 근검 절약도 해야 되고, 그래도 또 하나님의 축복 없으면 안 되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하고 이렇게 하고, 또, 그 다음에는 윤리면이라. 윤리면이니까 '내가 이제 종교면에 힘을 쓰면서 혹 아이들에게 잘못해 놓으면 조롱을 받겠다.' 조롱을 받겠으니까 '그거 만날 기도하고 성경보고 전도하고 돌아다니는데 나는 그렇지만 그 아이들 해 놓은 것 보니까, 그 아이들에 대해서 교훈한 것이라든지 옷 해 입힌 거라든지 몸을 씻겨 놓은 것이나 학교 보내는 것 보니까 그거 참 아주 어머니 쳐 놓고는 아주 현모로구먼. 그 참 모범 어머니다.' 이래야, 전도하다 보니까, 전도하러 가 가지고 보니까 비쭉비쭉 거립니다. '아이는 순 바보같은 등신같은 것 그래 만들어 놓고. 외동아들 그래 만들어 놓고 뭐 지금 입을 떡 벌리고 돌아다니노?' 이래 놓으니까 전도 안 된다. 그거야.
이러니까, 인제 전도를 다녀보니까 어짜든지 요걸 공부를 잘 시켜 가지고 해서 다른 사람이, 보니까, 그거 내가 그런 말 들었어요. 저 OOO목사 저게 충청도 갔는데 가 가지고 가서 이게 쪼그만한 게 학교서 일등이지, 품행에도 일등이지, 모든 것 다 이래 놓으니까 그만 소문이 났대요. '저 아이는 그렇게 공부를 잘하고 학교 성적도 좋고 그렇게 모범생이라지요?' 어머니들이, 안 믿는 어머니들이 찾아와 가지고 보고 막 보배같이 여기고 자꾸 이란대요. 그러면 전도가 될 것 아닙니까? 떡 와 가지고 보고 비웃으며 '자식이나 거석해 놓지. 에이고, 여보 천국 갈라고 하지말고 아이가 그거 뭐이요?' 이 전도해 보면 기가 찬다 말이오.
성경보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가운데에서 이 가정 문제, 여게 대해서 경제 문제, 그 다음에는 윤리 문제, '그거 남편 좀 와이샤스나 좀 씻어 보내지, 남편 떨어진 궁둥이나 좀 집어서 살이나 안 나오구로 해 놓지, 그거 뭐 그래 놓고 시커머이 해 놓고 그래 돌아다니며 그렇게 하지말고 좀 하지.' 이래 놓으니까 또 부인으로 이렇다 말이오.
또 남자는 산기도 자꾸 이래 가니까 '에이고 야 임마 너거 마누라 밥이나 굶기지 말아라. 순 만날 돈이나 질질 꾸러 돌아다니고 거지가 돼 가지고 그게 뭐야? 너 예수 믿는다고 그렇게 말고 좀 사람노릇이나 해.' 이러니까, 남편도 이거, 남편도 남편노릇 잘해야 되겠고, 아내도 아내노릇 잘해야 되겠고, 부모도 부모노릇 잘해야 되겠고, 또 학생들도 이거 공부를 하면서 이 종교면을 힘써 가지고 이렇게 주일학교 새벽 기도도 잘 나오고 나오면서 이 정치면을 힘을 쓰지 안하면 '야, 너 너거 부모 걱정하는데 뭐 공부도 안 하고 그까짓 거로 하고 있어?' 공부 내가 그전에 교회 안 나을 때 내가 꺼꾸로 일등인데 지금 교회 나오고 난 다음에 옳게 일등이오. 어짜라 말이요?' 그러면 뚱그래, '아, 그래?' 이래 가지고 이제 윤리면, 윤리면이라 말은 부모나 자녀나 뭐 이래 모든 그런 가정 혈통의 그 계급, 그 지위 그런 것을 가리켜서 윤리면이라 말합니다. 윤리면 또 그 다음에는, 앞으로 그 교육면, 이 앞으로 어른도 배우고, 자꾸 어른도 자꾸 배워야 돼요. 죽는 날까지 학생이 돼요. 자꾸 배워서 문견도 넓고 모든 것 이래 가지고 모든 것이 자꾸 그 발달이 돼서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자꾸 앞서 가야 된다 말이오. 앞서 가고 이라니까, 미개인하고 문화인하고 둘이 있으면 문화인은 미개인에게 항상 봉사를 해 주면서도 미개인의 것 다 울궈먹고 다 뭐 식물같이 다 잡아 먹습니다. 다 먹어요. 그러기 때문에 무지 무능자는 유능자에게 이용당하기 마련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기독교가 들어가면 반드시 문예 부흥이 일어납니다. 문화가 자꾸 발달돼. 문예 부흥이 일어나고 경제 부흥이 일어나고 인재 부흥이 일어나고 자꾸 일어나는 게 기독교라 말이오.
이 자꾸 이렇게 해서 나가고, 또 그거 사회면에 대해서도 모두 다 다른 사람이 볼 때에, 그 사회 뭐 그만 사회도 다른 것 다 냅두고 뭐 우리가 간단한 서민이기 때문에 고 면 사회면에 대해서도, 경제면으로, 또 이 모든 사회에 사교면으로, 또 자기의 모든 이렇게 사회를 발달시키는 발달면으로 이런 면으로 염두를 둬 가지고 이와같이 해 나가면 자꾸 이거 치우치지 안하고 돼진다 말이오. 인제 나라에 대해서도.
이래서 어쨌든지, 이 종교에서는, 종교에서는 힘을 얻어 가지고 정치에 가서 힘을 쓰고, 정치에서는 힘을 얻어 가지고 종교에다가 힘을 쓰고, 종교는 정치를 돕고 정치는 종교를 돕고 이렇게 치우치지 아니하고 이래 나가야 이게 원만한 기독교가 되어지고 나중에 가서 이 도가 자꾸 영광스러워지고 많은 사람을 구출할 수가 있지 자기가 그렇지 안하고 치우쳐 버리면 결국은 실패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저 새벽 기도 나오고 성경보고 기도하는 사람들 보면 치우친 사람들이 많애. '그 사람 보면 열심히 믿는데 어떠노?' 물어 보면 열심히 믿기는 믿는데 어떠노 물어 보면 그 집은 빌어먹고, 마누라는 거지가 돼 가지고 있고, 아내는 어떻고, 또 그 자녀는 학교도 못 가고 그렇다고 하니까 이 도가 복음이 가리워져 영광되지를 못한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지금 이 하나님이 회개 역사하고 있으니까 제일 중요한 것이 종교면입니다. 종교면 성경보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이 세 가지에서 얻은 힘, 이 세 가지에서 깨달은 것, 이 세 가지에 얻은 힘, 이 세 가지에서 가진 결심 이것을 이 정치면에 가 가지고 성취를 시키자 말이오. 정치면에 성취. 가정, 사회, 이 국가에 이 면에 가 가지고 성취를 시켜서, 그러면 경제면이나 윤리면이라든지 앞으로 개 명 면, 개화면, 이렇게 교육면이라든지 이런 면으로 자꾸 이래 가지고 발전을 해 나가도록 어짜든지 치우치지 안하고 이래야 됩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뭐이냐? 그렇게 하는 데에는 우리가 녹아나야 됩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우리가 어짜든지 내 자신의 마음도 과거 몇 배 힘을 써야 되고, 몸도 몇 배 힘을 써야 되고 이래 가지고 이런 가운데서 주님에게 영광 돌아가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녹아지는 것이 그것이 소금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쓸데 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힘이 된다' 이렇게 말씀했는데, 그러면 소금이 맛을 잃지 아니하면 어찌 되느냐? 맛을 잃지 아니하면, 잃지 않으면 정반대로 쓸모 있다. '밖에 버리는 것' 중앙으로 영접해 들인다. '모든 사람에게 밟힘 된다.' 모든 사람에게 존대함을 받는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소금이, 맛 잃은 소금이 무슨 소금입니까? 맛 잃은 소금이라 말은 소금은 우리가 이 새사람 된, 의인 인, 의인을 말해. 간단하게 말하면 의인입니다. 이 진리와 영감 이걸 말하는 것인데, 이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이 맛 잃으면 다시 못 찾는다 그 말은 이 새사람 된 의인이 의인으로 하루를 살지 안하고 의인이 아닌 옛사람으로 하루 살았으면 다시 의인 생활은 찾지 못한다. 그 다음 날은 아무리 의인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세월이 지나갔었기 때문에 하루 헛일했어. 하루 헛일한 것은 다시 찾을 도리가 없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다시 무엇으로 짜게 하겠느냐?' 기회를 놓치고 나면 뒤에 다시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소금이 맛 잃지 안하고 제 맛으로 살면 그 말은 소금이 제 맛으로 녹아지면 그 말입니다. 하루 동안 우리가 이 의인으로, 의인은 세 가지 노를 풀고 세 가지 기쁨이라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의인데 이 의로써 의인된 우리들의 힘은 뭐입니까? 우리들의 힘은 진리의 영감이 우리들의 힘입니다.
진리가 우리 힘이요 영감이 우리 힘이라.
이러니까, 내가 하루 하루를 살 때에 대속으로 의인된 내가 내 생활인 진리와 영감대로의 생활,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하고 하나님이 하라 하는 걸 하고 요것으로써 하루 동안을 살면 하루 동안 생활한 이것은, 이것은 내게도 쓸모 있고, 하나님께도 쓸모 있고, 만인간에게도 쓸모 있고, 만물에게도 쓸모 있다.
우리가 새사람으로 영감과 진리대로 하루 산 이 생활은 하나님과 나와 만물에게 다 쓸모 있는 보배가 된다.
이래서, 밖에 버리는 것 대신에 점점 중앙으로 영접해 들이게 된다. 내가 이 새사람으로 이제 산 이 생애는 산 것만치 점점 모든 존재들에게 다 필요 있어서 점점 승격된다 그 말이오. 점점 승격된다. 사람에게 밟힘된다 하는 것 반대로 이제 그리 되면 모든 사람들에게 존대뿐 아니라 만물들에게 다 존대함을 받는다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해서 녹아져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게을을 부리고 어짜든지, 요새 보면 봄이니까 뭐 내일 학생들도 국민학생들, 중학생들 막 놀러간다고 이렇게 해 가지고 그 모두 다 바람이 들어서, 간다고 해도 모두 갈 때가 있어서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자꾸 소풍 간다 하는데 뙤약 양지 가 가지고 빼빼 굽히고 아무것도 없지만 바람이 들어. 아이고 어른이고 바람이 들어 가지고 야단입니다. 이런데 우리는 이 기도하는 것이 바람 들어서 야단들이기 쉽다 그거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는 성경과 기도의 이 전도에서 강한 힘을 얻어야 됩니다.
강한 힘을 얻어서 우리가 이 정치로 세상에 빛이 되어서, 빛이 되라 그 말은 빛이 없으면 이거 모르지요. 빛만 꺼져 버리면 이거 누가 누군지 모릅니다. 빛이 오면 사람 다 알지 않습니까? 이것은 빛이 된다 그 말은 뭐이냐 하면 사람이 이 면에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 저 면에는 저렇게 저렇게 살아야 된다, 모든 면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것을 인간들이 깜깜 어두워 모르고 있는데 모든 면을 이렇게 살아야 된다, 이렇게 살아야 된다, 사람이 지식으로 치우치지도 안하고 돈으로 치우치지도 안하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이거, 정상적인 이 인간 생활을 세상에게 보여 줘야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세상빛으로 살아야 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성경과 기도와 이 전도에서 얻은 것을 우리는 기어코라도 실천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이렇게 하는 그 자기의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이래 오는 것은 자기 힘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게 왔으니까 기적 아닙니까? 자기가 아무리 노력을 해 봤자 한 개밖에 못 만들 터인데 자기 노력을 통해서 천 개가 만들어졌으면 구백 구십 개는 기적 아닙니까?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힘이 다 기울어지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지 우리 힘을 애껴 두고 게을을 부리는데 하나님의 역사는 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것을 기억하고 요 기회에 어짜든지 우리가 회개해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집집마다 다 받아서, 그거 문제가 뭐입니까? 뭐 부도난 것도 문제없고, 빚진 것도 문제없고 우리가 요렇게만 살면, 살면 사는데는 '내가 요렇게 알뜰히 노력을 하니까 이 문제가 해결됐다' 제가 제힘으로 해결됐다고 어리석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만치 자기 노력을 통해서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자기 힘으로 자기가 했다고 이렇게 여길 만치 자기 힘이 요구되고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 한 거는 아니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끌어올 수 있는 하나의 그 자격이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동정을 받고 긍휼을 받는 그런 하나의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