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자

 

1988. 3. 13. 주일오전

 

본문 :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누가복음 13장 24절-30절.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사람들이 동서 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좁은 문과 넓은 문에 대해서는 얼마 전에 여러 차례 증거를 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기억하고 있는 줄 압니다.

 좁은 문과 좁은 길은 곧 하나님의 이 대속하신 구원을 믿는 믿음의 문이요  믿음의 길이요, 넓은 문 넓은 길은 이 믿음을 떠난 모든 인간들의 생애와 그  방편들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니 이것을 가리켜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길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이 길 외에 것은 현 세계에나 또 수많은 과거의 것이나 미래에 어떤 문화 도덕  예술 모든 행정들에 별별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넓은  문이요 넓은 길입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믿는 이길 외에는 생명은  없습니다. 다 그것들은 불타 멸망할 것들입니다. 그러면, 좁은 문 넓은 문 좁은  길 넓은 길은 여러분들이 그 뜻은 복잡하지마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거기에 대해서 좁은 문 넓은 문에 대해서 모든 선배들이  어떻게 말했는가 찾아 볼라고 칼빈 주석으로부터 몇 가지를 봤으나 다 이 절수에  대해서는 쏙 빼놓고 아무데도 해석이 없습니다. 그러나 좁은 문 넓은 문은 이제  말한 대로의 요 해석이 정확합니다.

 누가복음 13장 2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마태복음 7장 13절과 14절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렇게만 말했는데 여기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그 다음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이랬습니다.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구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이랬습니다.

 왜 못 들어가는가?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저가 하는 것은 예수님 당신을  가리켜 말씀한 것입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이렇게 문 닫은 뒤에 문 열어 달라고 그렇게 문을 두드리면서 말을 해도 안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들이 어디로서 온자인지 모른다’ ‘나는  너희들이 어데서 온 자인지 모른다’  이라니까 26절에 ‘그때에 너희가 말하기를’ 문 밖에서 두드리는 너희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 주님 앞에서 신령한 양식을  먹고 마셨으며’ 주님 앞에서 하나님의 도리를 듣고 배웠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우리는 주님 앞에서  교훈을 받았고 또 길가에서도 주님은 우리에게 교훈하셨고 길에서도 교훈하셨고  들에서도 교훈하셨고 집에서도 교훈하셔서 언제나 우리에게 계속 교훈하시지  아니하셨습니까?   그렇게 말을 하나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예수님이 그때에 똑똑히  말하기를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데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나는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냉정하십니다.

 오늘에는 주님이 우리들에게 굉장히 참으시고 관용하시고 인자하시고 뭐 아무런  속 없고 뼈 없고 참 그렇게 물렁한 주님으로, 배반해도 거역해도 또 또,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 거역해도 또 참으시고 또 가르치시고 이렇게 권고하시나  사람이 하나님이 권고 하시는 때가 언제든지 있는 것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러하고 지역적으로도 그러하고 가정적으로도 그러하고 개인적으로도 그러한  것을 성경에 많이 말씀해 놨고 우리는 봅니다.

 과거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참으시다가 기회가 있어서 그 기회가  지나가면 아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극히 사랑하심 같이 극히 미워하신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또, 신약 시대에도 보면 지역 지역마다 민족 민족마다 하나님의 긍휼이 참 말로  다할 수 없이 마구 물을 들이 쏟아 붓는 것처럼 그렇게 은혜가 충만할 때도 있고  다시는 물 한 방울이 없는 그런 메마르게 비참한 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길거리에서도 우리를 가르치셨고 방에서도  가르치셨고 누웠을 때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 마음을 두드려서 가르치셔서  우리 마음에 주님에게 대한 생각 많이 했습니다. 너희들이 생각도 하고 깨닫기도  하고 작정도 하고 이래야 된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그런 일이 수없이 많지  안했습니까’ 이랄때에 ‘나는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내가 도무지 알지 못한다’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 다음에 마지막에 말씀 했습니다.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여기 악에 대한 정의를 과거에 역사에 없었습니다. 모든 신학자들이 악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를 안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악에 대한 정의를 주셨습니다. 이것도 설교록이 세계에 나갈  터이니까 깨닫는 자는 깨달을 것이고 욕하는 자는 욕할 것 입니다.

 악은 어떤 게 악인가? 창조주, 주재자, 우리를 구속하신 주 하나님 이분 중심이  아니고 이분 위주가 아니고 이분의 뜻이 아닌 것은 다 악입니다. 전 인류를 위한  것도 악입니다. 전 민족이나 국가나 사회나 가정이나 자신이나 위주한 것도  악입니다. 그것들의 중심도 악입니다. 모든 인간들의 주관도 다 악입니다.

 이래서, 악령과 악성은 원죄요 악습은 본죄인데 악령 원죄 본죄로 된  옛사람이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행악하는 자들아’ 하나님의 목적, 예택 구원. 모든 것 네가 주관을 다  버리고 네 욕심 버리고 어떤 것을 위주로 중심으로 하는 것 다 버리고 하나님의  목적이신 예택 중심,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예정 중심. 창조 중심, 도성 인신의  중심, 사활의 대속 중심, 대형으로 사죄에 자유 중심, 사망과 마귀에게 자유  중심, 하나님의 공심판에 자유 중심, 하나님의 자녀의 이 연결 중심 예수님의  부활로 하나님을 향한 중생 중심 영감과 진리와 피의 중심, 하나님이 우리에게  천직을 맡겼으니 제사장, 선지직, 왕직 이 중심으로 사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순전히 하나님이 작정하신 당신의 주신 구원 이 구원 중심 위주, 이구원  안에서만 있기를 노아 때에 방주 안에서 있는 것처럼 이것이 좁은 문이요 좁은  길입니다.

 이것은 뭣과 적이냐 하면 악과 적입니다. 이것은 피조물 중심과 적입니다.

피조물 위주와 적입니다. 피조물의 주관과 적입니다. 순전히 악으로 더불어  대적입니다.

 이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그가 어떻게 순생의 아름다운 생활을 하고  어떻게 복음을 위해서 살고 자기의 소유 기능 생명 일생을 다 바쳐 살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에게 하나도 필요 없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 세상에서 많은 사람 가운데에 자기중심 자기 위주나, 민족이나 국가나  명예나 문화나 과학이나 그런 것들 위해서도 일생을 바치는 사람 많이 있습니다.

다만 주님이 구속하신 이 중심 이 위주 인간의 주관에 반대인 하나님의 뜻 이 세  가지 아닌 것은 당신에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신학자도 됐고 부흥사도 됐고 선교사도 됐고 개혁가도 됐고 봉사와 희생의  자선 사업가도 됐고 내 전부 일생을 바쳐서 생명을 바쳐 이 도를 위해서 바쳤다  할지라도 악을 뽑지 안한 건 나는 상관없다. 악이 주관한 건 나는 상관없다.

 제 중심 제 위주 제 주관에서 일생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것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공산주의의 그 진한 사람들, 많은 사상가들 있는데 그 사상가들에  진한 사람들, 그 석가모니같은 그런 사람들의 그 진한 사상가들, 진한 철학가들  많이 있지마는 하나님이 목적하시고 하나님이 택하시고 당신이 없는 가운데서 이  구속을 위해서 예정도 하셨고 창조도 하셨고 하나님이 피조물되어 오셨고 사활의  대속하신, 다시 말하면 피의 운동과 영감의 운동과 진리의 운동 요 세 가지 외에  것은 당신은 상관없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일생동안 권고하나 각자들이 때가 있어서 그 기회를 놓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버려두십니다.

 이래서, 주님 재림이 가까울 때에 요한계시록에 보면 성전 밖마당이 많고 양이  많고 넓습니다. 그런 것은 다 하나님이 취급하지 안하고 그 안에 있는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만 측량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만히 눈을 뜨고, 땅 위에는 기이한 복음 운동이 있고 놀랠 만한  희생도 충성도 있습니다. 참 놀랠 만한 봉사도 있고 관대함도 관용함도  있습니다. 열심도 있습니다. 큰 운동들 있습니다마는! 눈을 뜨고 딱 볼 때에  악이 주장하고 있느냐? 정말로 자기를 비웠느냐! 자기중심 자기 위주 자기  주관을 완전히 버리고 주님의 구속 중심 구속 위주 당신의 뜻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냐! 여기에만이 생명은 있는 것입니다.

 28절에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우리가 여기에서 좁은 문 넓은 문 좁은 길 넓은 길 여기에 대해서 혹 학자들이  수많은 해석을 했으나 다 그것이 다 넓은 문들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은  하나님의 이 사활의 대속 구원 요것 밖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이 긍휼히 여길 때에 우리가 회개를 해야 되지 히브리 12장  16절로 17절에 보면 음행하는 자와 한 그릇 식물에 장자의 기업을 판 그 에서와  같은 자들이 그 뒤에 하나님의 축복의 기업을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면서  간구했지마는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이와같이 해 나가도 될 줄 알지마는 아닙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권고하시는 그 때가 있어서 그때까지는 참으시고 아무래도 좋지마는  그때가 지나고 난 다음에는 그 하나님께서 버리고난 다음에는 영감을 못  받습니다. 자기 마음을 아무리 간절히 가질래도 가지지 못합니다. 진리를 아무리  발견할라 해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꺾어서 단속하고 절제할라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실 때에 은혜를 받고 회개의 은혜를 줄 때에 회개를  해야 되지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행악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자기가 신앙생활하면서도 정말로 내  신앙생활을 내 중심으로 하고 있나, 내 위주로 하고 있나, 하나님의 뜻, 뜻  하지마는 내 뜻과 딱 대립이 될 때에는 마지막은 자기 뜻으로 돌아가고 하나님  배반치 않나? 누구 중심이며 누구 위주며 누구의 뜻을 따르느냐? 냉정스럽게  비판해서 오늘에 작정해야 됩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 지금 우리 총공회서도  많은 논란이 났었습니다. 논란이 나서 지금도 확정을 못 짓고 있는 사람들은 못  짓고 있습니다.

 여기에 슬피 울면서 이를 갊이 있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가르침을 받았고 주님에게 들어갈라고 문을 두드렸고 구하였고 한  사람들이 다 지옥 갈 건가? 다 지옥 갈 건가? 그러면 여러분들의 오늘에  신앙생활 하는 것은 이 정도보다 나은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  배우고 또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따를라고 하는 이 정도의  신앙생활을 초월한 신앙가들이 여기에 얼마나 있습니까? 그 사람들이 다 지옥  가서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다고 하면 여기에 있는 우리들은 다 어데로 갈  건가?  이것은 기본구원, 택한 자들은 다 하늘나라 가는데 기본구원 영이 하늘나라  가고 고 심신의 형체가 하늘나라 가는 그것을 말함이 아니고 기본구원은  택함에서 결정되고 우리의 행위구원, 행위로써 이루는 구원은 건설구원,  성화구원, 부활한 자의 영광이 차이 있다고 하는 영광의 구원 이 행위구원이니  행위구원은 그 구원이 차이가 많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형체의 영광  차이와 같다 했습니다. 형체는 땅에, 속한 형체들도 수 없고 하늘에 속한  형체들도 수없이 있는데 모래 알도 한 형체요 해도 한 형체요 별도 한 형체인데  그 각각 영광이 다른 거와같이 부활한 자의 영광들이 각각 다르다.

 땅 위에서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지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불로 심판을 할  때에 다 타버리고 자기 건설한 것, 자기를 자기 행위 건설한 것, 자기 건설한  것, 자기 기능 건설한 것 전부 썩고 타고 없어질 것들만 건설 했습니다.

 썩지 안하고 없어지지 안할 거 영원한 것은 건설하지 안했으니 금과 은과  보석으로 건축한 것은 타지 안할 걸 말합니다. 이것이 내나 피와 성령과  진리입니다. 이걸로 건설한 것은 영원히 타지 안하고 그 외의 것은 세상 학문,  세상 지식, 기능, 권세, 영광, 존귀, 제 명철, 제 심한 노력, 열정 무엇을  가지고 했어도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이 세 가지로 된 것만이 남아 있지  나머지기는 다 불탑니다.

 이러니까, 저희 공력이 다 불타니 공력 남아 있는 자는 상을 받고 공력이 불탄  자들은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거와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자기 공력이 다 타되 하늘나라는 가기는 갑니다. 중생된 영도 가고 악한  자들은 그 심신의 형체도 갑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실력과 하늘나라의 가치는  하나도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말세 교회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여기에 대해서 ‘아예 이거는 우리 택함을 받은 자들은 상관없다.

우리 택함 받은 사람들은 다 하늘나라 갈 것인데 여기에 슬피 울며 이를 간다,  또 내가 모른다, 나를 떠나가라 하는 자들은 택한자가 아닌 지옥 갈 자들이다.

이러기 때문에 택함을 받은 구원 얻은 우리에게는 상관없다.’ 요렇게 말하고  있는, 악령이 하나님의 종들을 꾀워 가지고 요렇게 가르쳐서 성경에 택한 자가  음부에 가서 벌받는 것은 그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 공통돼 있는데 요것으로써  건설구원은 완전히 다 삼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삼켜 버리고 말았어.

 그러면, 그들의 행위와 우리 행위와 볼 때에 그들의 행위가 지옥갔으면 우리도  그들과 같은 행위 했거든 우리의 행위도 지옥 가야지. 뭐 가지고 설 것입니까?  이것은 기능 구원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건설구원을 가리켜 말합니다.

 건설구원이 하나도 없어도 택한 자들은 하늘나라 가나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거 같다’ 불 가운데서 구원 얻었으니까 불 가운데 구원 얻은 자가 뭐 있겠소?  신문에 보니까 화재 나서 무슨 빌딩 무슨 빌딩 화재가 나니까 그때 뛰어  나왔는데 발가벗고 뛰어나 나온 자도 있고 뭐 속옷 빤스바람으로 뛰어나온 자도  있고 아무것도 없이 다 발간 몸으로 나오지 안했습니까? 고걸 말하는 겁니다.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것 같다. 살기야 살았지. 하늘나라는 가지. 자기의 구원  준비한 구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믿는 것은 하늘나라 갈라고 믿는 것 아닙니다. 하늘나라 갈우리들이  다만 그 나라에서 벌거벗은 자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무능한 자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그 나라에 필요 없는 자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영광과 존귀의  대우의 가치 있는 자로 나타나기 위해서 우리들이 땅 위에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절도후서 5장에 바울은 말하기를 무거운 짐진거와 같이 내가  탄식하며 힘쓰는 것은 짐진 것은 처음보다 갈수록 이 무거워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거는 믿어 갈수록 이 무거워지는 것이지 예수 믿으면서 얼마 지냈으니까  ‘이제는 우리는 다 될 대로 다 됐으니까 이제는 준비 문제가 없다’ 나이가  많아 갈수록 이 구원에 대한 정상은 무거운 짐진 거와같이,  무거운 짐은 갈수록 이 무거워지는 거라. 서른 살 먹으니까 이 구원에 대한  짐이 더 무거워지고 오십이 되니까 더 책임이 무거워지고 칠십이 되니까  심판감이 더 무거워지고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오.

 왜 그렇게 하는가? 이것은 벗은 자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함이라 그렇게  똑똑히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오전에 말씀은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기 때문에  자기중심 자기 위주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 피조물들의 주관 요대로 한 것은  다 멸망입니다.

 그 사람이 일생 동안 살면서 일 분을 살았든지 십 분을 살았든지 하루를  살았든지 피조물 중심이 아닌 구속주 중심 구속주 위주, 구속주의 뜻을 따라서  한 것이 찰나를 했든지 하루를 했든지 고것만 살아있고 나머지기는 다 완전히  멸망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생을 - 예수 믿는 거를, 아래도 그랬는데 영생을 어떻게  얻으리이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영생이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해야  영생이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게 그렇게 쉽습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악으로 살지 맙시다.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살지 맙시다. 자기 주관으로 살지  맙시다. 이거는 자멸 행위입니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미워하셔서 우리의 만반의 준비가 있다 할지라도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 하나 곧 내 중심 내 위주 내 주관대로하는 요 원수를  똑똑히 지적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 말씀하셨사오니 주님의 말씀으로써 우리 각자 심령 속에 완전히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을 죽여주시고 완전히,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모셔  충만케 하사 주님 앞에 한 사람도 버림당하지 안하고 다 순생의 길도 순교의  길도 기쁨으로 뿍뿍 걸어갈 수 있는 신앙의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것이 됐습니다. 험한  세상에 홀로 두지 마시고 주님의 능력으로 품어 주시고 붙들어 지켜 주사 아무  염려 없이 형통한 가운데서 세상살이를 끝마쳐 주님 앞에 서게 하여 주시고 모든  시험 다 이기고 털끝만한 죄도 범하지 안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 주의 축복으로  모든 것을 형통할라고 믿음으로 살고 인간들의 힘이나 피조물의 무엇으로 할라  하는 이런 불신에 머물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그리스도의 그 사랑에서  불붙음이 점점 뜨거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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