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8 16:03
좁은 문과 넓은 문
1986. 10. 17. 밤(금)
본문: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벌써 이 말씀을 여러 시간 봉독하고 증거를 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다른 해석이 있을 것을 생각지 말고 믿어야 됩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은 생명으로 가는 길이고 넓은 문 넓은 길은 현재는 안 망하고 좋아도 결국은 제 생전에 망하고 영원히 망하는 길입니다.
망하고 흥하는 그것을 보는 것도 그 사람의 지식에 따라서 잘못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보면 그 사람같이 비참하고 가련하고 불쌍한 사람이 없는 자도 세상 마귀 지식을 가지고 보면은 아주 행복된 사람이라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망하고 흥하는 것은 금생만이 아니고, 금생은 하룻밤 나그네와 같이 짧고 죽어 가지고 부활한 다음에 가는 세계는 영원합니다. 그러기에 세상 멸망보다도 영원한 나라의 멸망이 더 큰 멸망입니다. 또 세상 행복보다도 영원한 나라의 행복이 더 큰 행복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영원에 완전히 멸망하는 길이라도 하룻밤 나그네와 같은 이 세상에 좋다면 그것을 취해서 가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비참하게 멸망한 사람도 하룻밤 나그네와 같은 오늘 떠날지 내일 끝날지 모르는 세상 것으로 좋으면 그 사람은 망하지 안한 사람이고 복받은 사람이라고 그렇게 사람들이 잘못 판단을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이든지 판단할 때는 금생은 하루밤 나그네와 같고 오는 세상은 영원 무궁한 세상이 있으니 이것을 깨닫고 우리가 무엇이든지 비판도 하고 평가도 해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또 자기가 물질로 부강한 것보다는 사람으로 부강한 것이 낫습니다. 사람으로 부강한 것보다는 진리와 하나님으로 부강해지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으로 빈부해지는 그것은 생각지를 않습니다.
또 아주 천한 사람들은 사람으로 빈부되는 것은 별로이 생각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아무도 그 사람의 사람이 되어 있지를 안하고 모든 사람은 그 사람을 못쓸 사람이라고 다 버리는 사람 가난한 사람, 제 사람이 없는 사람, 저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사람이 없는 그 사람이 사람 가난한 사람이요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칭찬하고 인정하고 존경하고 따르고 그 사람의 편이 되는 그것이 사람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그 지식에 따라서 사람 빈부는 그렇게 문제시 않는 사람 많습니다. 다만 물질 그것이 많고 적은 그것을 가지고 물질 많으면 복된 사람이고 부요한 사람이라, 물질이 없으면 가난한 사람이라 이렇게 물질만을 위주로 표준으로 해 가지고 평가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보다도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잘못된 취미든지 무엇이든지 우선 그날 그날에 기쁘고 즐겁고 재미있게만 흥미있게만 살면 그것이 복된 사람으로 알고 자기 흥미있게 산 그것이 자기와 자기 자손과 자기 장래와 늙어서와 또 무궁세계에서 어찌되나 하는 그런 것은 전연히 생각지 안하고 현실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많으니 그 사람을 가리켜서 꼭 사람이나 짐승과 같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자기 행락만을 가치로 삼는 사람도 있고, 물질만을 가치로 삼는 사람도 있고, 사람이 자기를 인정하는 인권, 사람의 인정. 인권만을 가치로 삼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과 진리를 가치로 삼는 사람도 있고, 금생만을 가치로 삼는 사람도 있고, 영원 무궁세계와 금생을 꼭같이 놔놓고 금생은 조그만한 가치 있고 영원 무궁세계는 많고 큰 가치 있다 이렇게 평가해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바로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바로 알아야 그 사람이 평가도 바로 하고 소원도 바로 하고 성공을 바로 할 수가 있지 잘못 알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게 좁은 문이라 넓은 문이라 이랬는데 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일생을 걸어가는 데에 처음 닥치는 것을 가리켜서 문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갔으면 그 다음에는 사망으로 가는 문을 열고 사망의 길을 걸어가든지 생명으로 가는 문을 열고 생명의 길을 걸어가든지 무엇이든지 문 열면 그 다음에는 그대로 가고 가고 또 그 다음에 또 새 문이 있으니까 또 새 문 열고 들어가고 또 그 다음에 새 문 있으니까 새 문 열고 들어가고 이라는데 문은 사망으로 가는 문도 있고 생명으로 가는 문이 있다 주님이 그렇게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인생아 네가 무엇이든지 처음 생각하는 것, 처음 닥친 일, 처음 시작하는 일, 처음 보는 것, 처음 아는 것, 처음 소원되는 것, 처음으로 욕심나는 것, 또 처음에 맛본 거, 뭐이든지 이제 처음이라는 그 시작이 중요하다 그걸 말했습니다.
처음이라는 시작이 중요하다. 시작은 왜 중요하냐? 시작에는 죽고 사는 그 두 가지가 있고 망하고 흥하는 두 가지가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시작할 때에는 이 시작하는 것이, 내가 지금 처음으로 배워서 아는 것이 이것이, 또 지금 깨달은 것이, 지금 소원하는 것이, 지금 욕심을 내는 것이, 지금 내가 재미로 여기는 것이, 기쁨으로 여기는 것이 이것이 무엇이든지 자기가 처음으로 당하는 일, 하는 일 있으면 거게는 반드시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고, 하나는 흥하고 하나는 망하는 그 둘 중에 하나라는 것을 이것을 주님이 가르치시면서, 그러기 때문에 네가 처음에 시작하는 것을 잘 택해서 시작하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것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또 사망으로 인도하는 문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저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자기가 처음으로 보는 것, 처음으로 깨달은 것, 처음으로 원하는 것, 처음으로 시작하는 것, 처음으로 본 것 이런 것을 죽고 사는 것이 거게 있는 것인 줄을 알고 그것을 삼가 조심해야 할 터인데 사람들은 그렇지 안하고 무엇이든지 처음 닥치는 것이면 다 안 본 것이고 처음 본 것이기 때문에 좋다고 마구 달라들어 가지고 그 제 욕심대로 해 가지고 다 망하고 맙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여게 문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거게, 좁은 문이라 넓은 문이라 이렇게 말했는데 좁은 문은 어떤 게 좁은 문이며 넓은 문은 어떤 게 넓은 문인가? 이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 가져야만 넓은 문을 우리가 피할 수 있고 좁은 문을 우리가 취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것을 바로 모르면, 넓은 문과 좁은 문을 바로 구별하지 못하면 그저 아무라도 넓은 문은 찾기 쉽고 가기 쉽고 좋고 재미있고 좁은 문은 좁고 험하고 해서 찾기도 어렵고 가기도 힘드는데 누가 그 길을 갈 자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사람이 ‘서울을 갈라면 어디로 가나?’ 하는 그 길을 물으니까 그 사람이 길을 가르쳐 주기를 ‘서울로 갈라면 지남철 그걸 가지고 어쩌든지 북쪽으로만 가거라. 북쪽으로만 가면 된다.’ 서울 가는 길을 물으니까 ‘북쪽으로만 가라' 그렇게 가르쳐 준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 물으니까 어떤 사람이 있다가 ‘어느 군에서,뭐 무슨 군, 김해 군이면 김해군, 또 남해군이면 남해군 이렇게 어느 군,어느 군에 가 가지고 또 어느 군으로 가 가지고 어느 군으로 어느 군으로 어느 군으로 그렇게 자꾸 통과하면 서울 갈 수 있다.’ 또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또 어떤 사람한테 물으니까 그 사람은 ‘어느 동리에 가 가지고 요게서 아무 동리를 갈라 하면 어디로 갑니까 해 물어 가지고 또 그 동리로 가고 또 그 동리에서 또 그 다음 동리는 어느 동리로 물어 가고’ 자꾸 동리를 가르쳐 주면서 ‘요 동리에서 그 다음 동리를 물어 가지고, 요 동리에서 또 아무 동리로, 아무 동리에서 아무 동리로, 아무 동리에서 아무 동리로, 아무 동리에서 아무 동리로 그래 가면은 서울을 갈 수 있다.’ 그렇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 사람이 가르쳐 줬다고 하면 그러면 제일 처음에는 ‘북쪽으로 가면 된다’ 했고, 두번째 가르쳐 준 사람은 `어느 고을, 어느 군을 밟아서 또 어느 군을 통과해서 그래 가면 된다’고 가르쳐 줬고, 또 마지막 사람은 어느 동리를 가르쳐 주면서 ‘그 동리에서 동리에서 동리로 이렇게 가면은 서울 갈 수 있다’ 이렇게 가르쳐 줬으면 그 세 가지로 가르친 중에 어느 사람이 제일 넓게 가르쳐 준 사람이 됩니까? 자, 어느 사람이 넓게 가르쳐 줬는지 일호입니까 이호입니까 삼호입니까? 그 넓게 가르쳐 준 사람이 일호인지 이호인지 삼호인지? 일호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또 이호라고 생각하는 분들? 또 삼호라고 생각하는 분들? 녜, 일호가 제일 넓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넓게 가르쳤으면은 정확성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또 제일 좁게 가르쳐 준 것은 이호인지 삼호인지 어느 것인지. 제일 좁게 가르쳐 준 것이 이호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면 제일 좁게 가르쳐 준 것이 삼호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잘 압니다. 그겁니다.
그러면 일호, 이호, 삼호에서 어느 것이 제일 정확성이 많습니까? 일호가 정확성이 많습니까, 이호가 많습니까, 삼호가 정확성이 많습니까? 삼호가 정확성이 제일 많습니다. 그만 그것입니다.
우리가, 목수가 나무를 끊으라고 할 때에, 나무를 끊으라고 할 때에 끊으라는 그 표를 해 주는데, 끊으라고, 나무를 끊으라고 표를 해 주는데 그 나무는 길게 끊어도 안 되고 짧게 끊어도 안 되고 꼭 척수가 맞도록 끊어야 되는데 나무를 끊으라고 표시를 해 줄 때에 이만한 넓덕한 붓을 가지고 이래 쩍 그어서 표를 했습니다. 넓덕한 붓을 가지고 나무에 이래 쭉 그어서 ‘여기 끊어라’ 이란 게 있고, 또 요만한 붓을 가지고 또 `요래 그어라' 요란 게 있고, 또 조그만한 아주 가느디리한 아주 바늘 끄트리 같은 그런 붓을 가지고 쪽 그어서 ‘요게 끊어라’ 이랬으면 어느 것이 넓게 가르쳐 준 것입니까? 어느 게 넓게 가르쳐 준 겁니까? 큰 붓으로 하는 것이 넓게 가르쳐 준 겁니까 제일 작은 붓으로 한 것이 넓게 가르친 것입니까? 큰 붓으로 한 것.
그러면, 제일 정확하게 가르쳐 준 것은 작은 붓으로 가르친 것입니까, 큰 붓으로 가르친 것입니까? 작은 붓으로 가르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저 뒤에도? 못 알아들어요, 저 뒤에는? 저 뒤에 저기는 못 알아들어요? 녜, 작은 붓으로 기록한 것이 정확합니다.
이 큰 붓으로 기록해 놓은 것은 이걸 여기를 끊어야 될지 저기 끊어야 될지 모르니까 그것 보고는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 보고는. 목수가 좀 능숙한 목수라면은 ‘여기 끊으라’ 했는데, ‘여기 끊어라’ 했는데 이 넓덕하게 이만한 붓으로 이래 쭉 그어놨으니까. ‘여기 끊으라 말이요, 여기 끊으라 말이요, 여기 끊으라 말이요, 여기 끊으라 말이요? 어데 끊으라 말이요? 어데를 끊으라 말입니까? 어데를 끊어야 됩니까? 이 가운데를 끊어야 돼요, 가에를 끊어야 돼요, 저쪽 가에를 끊어야 돼요, 어데를 끊어야 돼요?’ 그렇게 묻는 사람이 그게 목수가 바른 사람입니다.
그라면 ‘아, 거기 끊으면 돼, 그만. 거게 표 안 해 놨어?’ 그래 놓으면 ‘이 바보야. 표를 이렇게 넓게 해 놨는데 어데를 끊어라 말이야, 그라면 이거?’ 지금 여기 끊으면, 여게 끊으면 한 치가 모자랄 거고 여기 끊으면 한 치가 길거고 여기 끊으면 또 반 치 상간인데 뭐이야? 똑똑히 말해.’ 이게 정확한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넓은 문이라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요 정확을 표준 두고서 하는 말이기 때문에 넓은 문 넓은 길이라 말은 틀린 것이 많은 그 길을 가리켜서 넓은 길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틀린 것이 많은 것을 넓은 길이라 말하고 좁은 길이라 하는 것은 틀린 것이 적은 길을 가리켜서 좁은 길이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거는 이해가 됩니까? 넓은 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넓은 길은 예수 믿는 이치에 틀린 것이 많은 길을 가리켜서 넓은 길이라고 말하고 좁은 길은 예수 믿는 이치에 틀린 것이 적은 길을 가리켜서 좁은 길이라 그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좁은 길이라, 제일 좁은 길이라, 제일 좁은 길은 틀린 것이 몇 개나 되는 길이 제일 좁은 길이겠습니까? 예? 틀린 것이 두 개입니까, 열 개입니까? 틀린 것이 없는 것이 제일 좁은 길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만하면 다 됐어.
또 좁은 길은, 좁은 길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데, 말씀대로 행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만일 법조가 백 조라 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법 조문이 백 조라. 백 가지, 조건이 백 가지 조건이 있다 말이오. 조건이 있는데, 좁은 문은 그러면 백 가지 조건 가운데에서 하나 지킨, 하나 지킨 사람이 좁은 길 가는 사람입니까, 둘 지킨 사람이 좁은 길 가는 사람입니까, 열 지킨 사람이 좁은 길 가는 사람입니까?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이 백 조문인데 백 조문 가운데에서 열 조문을 지킨 사람과 한 조문을 지킨 사람이 있는데, 저 ○○○? 뭐 한다고 졸고 있어? 못 알아들으면 망해요.
좁은 길은 하나님의 법조가 예를 들어서 백 조문이라고 하면은 그 조목을 하나 지킨 사람과, 백에 하나 지킨 사람과 백에서 열을 지킨 사람이 있다고 하면은 두 사람 가운데에 좁은 길 가는 사람은 어느 사람이 좁은 길 가는 사람입니까? 하나 지킨 사람입니까, 열 지킨 사람입니까? 열 지키면 열을 지켰으면 넓은데? 열을 지키면 더 많지 않아요? 거게서 혼돈되면 안 됩니다.
열 지킨 사람이 좁은 길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열을 지키는데 열 지킬라 하면은 열 지키기가 쉽습니까, 하나 지키기가 쉽습니까? 예? 하나 지키기가 쉽지요. 그러면 열 지키는 사람에게 ‘네가 열 가지나 지킬 필요가 뭐 있나? 다섯 가지만 지키라.’ 하면은 그 사람을 좁은 길로 가라고 인도하는 사람입니까, 넓은 길로 가라고 인도하는 사람입니까? 넓은 길로 가라고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넓은 길 넓은 문으로 가는 것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 가는 사람은 열 가지 지키던 사람이 이제는, 이제까지는 열 가지를 지켰지마는 앞으로 아홉 가지 지키는 사람이 되면은 그 사람은 좁은 문 좁은 길 가는 사람입니까, 넓은 문 넓은 길을 가는 사람입니까? 저 사모님? 다른 데 대답하지 마. 저 사모님? 뭐라 해요, 거기서? 이리 연락해 봐요. 열 조문 지켜 살던 사람이 이제는 아홉 조문을 지키고 열 조문 지키던 사람이 아홉 가지만 지키면 그 사람은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인지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인지 저 ○조사님 사모님 대답 한번 해 봐요. 뭐라 해? 넓은 길 가는 사람? 알기는 알았어. 그게 넓은 길 가는 사람입니다.
또 그 사람이 열 조목을 지키다가 ‘아이구, 이래 해 안 되겠다. 백 조목에서 열 조목 지키니까 그 사람은 지금 몇 조목을 못 지키고 있습니까? 구십 조목을 못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어라, 이거 안 됐다, 이래서는. 내가 힘을 써 가지고 하나 더 지켜야 되겠다.’ 해 가지고 열 지키다가 자꾸 힘을 써 가지고 열 하나를 지킵니다. 열 하나를 지킵니다. 열하나 지키다가 또 하나 더 지켜 가지고 열둘을 지킵니다. 이렇게 자꾸 더 많이 지켜가는 사람은 좁은 문 좁은 길 가는 사람입니까, 넓은 문 넓은 길 가는 사람입니까? 좁은 문 좁은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요렇게 가는 것은 생명으로 나아가서 영과 육이 다 성공되고, 열 지키다가 아홉, 아홉 지키다가 여덟로 이래 가는 사람은 넓은 길 넓은 문으로 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가는 길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그 사람의 앞으로 닥칠 것은 멸망이 오지 생명은 오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좁은 길을 가는 사람 가운데에 구십을 지킨 사람이 있고 구십구를 지킨 사람이 있다고 하면은 어느 사람이 더 좁고 어느 사람이 넓습니까? 구십 지키는 사람과 구십구 조문, 구십구 조문 지킨 사람과 구십 조문 지킨 사람이 있으면 어느 사람이 넓은 사람입니까? 어느 사람이 좁은 길 가는 사람입니까? 자, 구십 조문 지킨 사람이 구십구 조문 지킨 사람보다 더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아무도 없습니까? 여러분들이 잘 알아. 그러면 구십 조문 지키는 사람보다 구십구 조문 지키는 사람이 좁은 문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이라 이렇게 아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여러분들이 핑계 못 해. 다 알았어, 바로 알았어. 이러니까 핑계 못 해요. 핑계를 못 해. 핑계 못 하고 심판 받을 거라, 이제.
그러면, 백 조목에서 구십구 조를 지키면 그 사람은 이제 좁은 길을 다 갔습니까, 아직까지도 좁아져야 될 것이 있습니까, 이제 완전한 좁은 길은 완전한 생명이요 완전한 성공인데 완전한 좁은 길을 그 사람은 지금 걸어 가는 사람입니까, 아직까지 미달의 사람입니까? 미달의 사람입니까, 완전히 걸어가는 사람입니까? 구십구 조를 지켰는데 미달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저 뒤에도 쭉쭉 들어요. 녜, 미달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백 조를 다 지키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그 사람으로서는 좁은 길 가는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구십구 조를 지키던 사람이 보니까 저 사람은 오십 조목도 지키지 못했는데 자기는 구십구 조를 지켰으니까 나는 너무 지켰다 해서 구십구 조 지키던 사람이 이제는 구십 조를 지키기로 하면은 그 사람은 넓은 길 취하는 사람입니까 좁은 길 취하는 사람입니까? 그러면 그 사람은 멸망을 합니까 생명을 얻습니까? 멸망합니다.
그러면, 구십구 조 지키는 사람이 그 사람이 구십구조를 지키면 그 사람은 구십구 조를 그대로, 지킨 그대로 지키고 있으면 그 사람은 넓은 문을 들어가는 사람입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넓은 문도 좁은 문도 아니고 이미 연 문 그대로 열고 있고 새 문을 열지 않는 사람입니까? 좁은 문을 열고 가는 사람입니까, 넓은 문을 열고 가는 사람입니까, 이미 연 문 거게서 지금 머물고 있는 사람입니까? 구십구 조를 지키던 사람이 구십구 조 그것만 지키고 있으면은 그 사람은 넓은 문을 지금 찾아 열고 들어가는 사람입니까, 좁은 문을 찾아 열고 들어가는 사람입니까, 문을 열지 안하고 그대로 있는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입니까? 자,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넓은 문을 찾아간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이미 열어놓은 그 문에서 들어가지 안하고 그 자리에서 지체하고 머물러 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머물러 서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자, 그라면 여게 구십구 조를 지키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구십구 조를 지키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여게는 팔십 조를 지키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팔십 조 지키는 사람이 팔십일 조를 지킬라고 애를 써서 팔십일 조를 지킵니다. 또 구십구 조 지키던 사람이 이제는 구십팔 조를 지킵니다. 그러면 구십팔 조를 지키는 사람은 넓은 문 취하는 사람입니까, 좁은 문 취하는 사람입니까? (넓은 문) 구십팔 조를 지켜도? 팔십 조 지키던 사람이 팔십일 조를 지키면은 그 사람은 넓은 문 취하는 사람입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입니까? (좁은 문) 그겁니다, 여러분들. 이제 다 알았어. 그만 하면 돼.
그러면 우리는, 히브리서 10장에 말씀하시기를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신앙에 후퇴가 있습니까? 여러분들, 신앙에 후퇴가 있습니까? 신앙의 후퇴는 사망입니다.
따라합시다.신앙의 후퇴는!사망이라!하나님과 적이라! 그러니까 일 조도 지키지 안하던 사람이 일 조를 지킬라고 애를 쓰면 그 사람은 좁은 문 가는 사람이요 넓은 문 가는 사람이요? 좁은 문 가는 사람이오. 구십구 조를 지키던 사람이 이제는 구십팔 조만 지키고 이제는 한 조를 버렸습니다. 그 사람은 넓은 길 가는 사람이요 좁은 길 가는 사람이요? 그 사람 넓은 길, 망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뭐이냐? 성경에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했습니다.
이런데 어짤라고 여러분들은 자꾸 예수 믿는 데 자꾸 쉬운 예수 믿을라고만 자꾸 애를 쓰고 있습니까? 자, 새벽기도 안 나오던 사람이 새벽기도 나오는 것은 그것은 좁은 길 가는 사람입니까 넓은 길 가는 사람입니까? 새벽기도 나오던 자가 이제는 일이 바쁘다고 새벽기도 안 나오면 넓은 길 가는 자입니까 좁은 길 가는 자입니까? 그 길은 멸망입니까 구원입니까?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요새 지금 나는 오늘도 뭐 산에 가서 천막에 가 있어도 하루 종일 기도 못 하요.
기도 못 하고 그저, 기도 못 하고 또 기도한다는 게 졸다가, 앉아서 또 졸다가 보면 시간만 갔지 기도도 못 하고 졸다가 또, 그런데 항상 마음 가운데는 여러가지가 너무 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모르는 게 내게 많이 들어 있고 아는 게 내게 많이 들어 있어, 복잡한 것이.
복잡한 것 중에 하나는 뭐이 복잡한고 하니 예수 믿는 자들이 자꾸 넓은 길을 가고 있으니까 이것이 내 마음에 제일 복잡하요. 예수 믿는 자들이 넓은 길, 반사들도 넓은 길, 집사들도 넓은 길, 장로도 넓은 길 자꾸 넓은 길 갑니다. 좁은 길로 가지 안하고 넓은 길로 가니까 이게 다 멸망이니까, 암만, 내가 해 놓은 게 멸망이니 이거 기차지 않소? 넓은 길 가는 사람은 멸망이요 생명이요? 여기 ○집사 말해 봐. 졸면서 멸망이라 하노, 졸면서도? 그래 가지고 지금 ○집사 망하고 있지 않아? 이게 내게 제일 고통이야. 처음에 월요일날은 그날 아침에는 새벽기도 천 명 나왔어. 숫자가 천 명 나왔는데 그 다음에는 한 번도 천 명 나온 일 없어. 구백 명, 또 그 다음에는 팔백 명, 자꾸 기어내려가. 아무리 좁은 문으로 좁은 길 가면 생명이고, 영과 육, 금생 내세가 전부 성공인데 이 길은 가라 해도, 옆에서 말하기를 ‘쉽게 예수 믿자’ 하는 거 그만 그거는 취해 가지고 다 그리 가지 생명 길을 갈라고 하지 안해. 그게 고통이고, 또 하나는 냉장고 속에 있다가 나온 사람이 무슨 말 한다고 그걸 막 테이프를 해 가지고 여기 반사들도 돌리고, 권찰들도 돌리고, 권사들은 안 들었는가 몰라.
권사는, 권사는 그런 거 들었으면 내가 책벌해요. 치리를 해 버려. 벌을 줘 버려.
‘한 달 권사 일 하지 마. 권사직 사면해라.’ 이랄 건데 그건 내 모르겠어. 그런 사람 아마 없을 거야. 냉장고 속에서, 또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나왔다고 해 가지고 또 그거. 뭐 별별 이단들이 마구 일어납니다.
이러니까, 이거 전부 사람을 요리 조리 꾀워 가지고 넓은 길 가도록 하는 것이니까, 마귀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지지 안해야 돼요. 유혹을 안 받아야 돼요, 꼬임을 안 받아야 돼요, 꼬임을. 간사한 유혹이라 하는 것은 제게 달콤하게 좋은 말만 하면 그만 쭉 따라가 버립니다, 좋은 말만 하면. 와 가지고, 마귀 요놈이 와 가지고 막 한번 추켜 올리고, 추켜 올리고, 위하고 막 이래 추켜 올리면 그만 붕 떠 가지고 그만 그 꼬임에 빠져 간다 말이오. “간사한 유혹” 살살 자기에게 좋게 하면서 그 사람을 요렇게 속여서 삐뚤어지게 꼬우는 그것이 유혹이라 그말이오. 유혹을 안 받아야 돼요.
그라고 “교훈의 풍조에 밀려서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교훈의 풍조라 말은 세상 말 말이요, 세상 말. 세상에 많은 말이, 안 믿는 사람들 말뿐 아니라 교계말도 있어. 세상에 모든 말, 이 교회 말 이런 말 저런 말 이런 말 저런 말에 쏠려 가지고, 이런 말 저런 말에 거석해 가지고 요동하는 그거, 요동하는 거. 그런 데 요동이 안 돼야 되지 요동하면 안 됩니다.
내가 ○○○교회 그와같이 하는 거, 칭찬한 거 뭐 그런 데 내가 피동돼 그런 줄 압니까? 지금도 나는 칭찬해요. 왜? 우리 서부 교인들은 ‘예배당이 무너진다’ 또 그리 안 하면 ‘오늘 하루만 모두 총동원 해 가지고 전도하자' 해도 안 됩니다. 하루를 말해도 안 돼요. 여러분들이 하루도 하나님께 순종 못 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한 달 동안을 뭐, 장로고 집사고 전부 ‘이 달은 지금 총동원 주간이니까 이 달은 전부 하루 몇 집을 전도해야 됩니다. 한 사람이 삼십 명,’ 장로는 얼마라더라? 장로님은 몇 명? 여기 뭐 없나, 젊은 사람들? 못 들었어? 이백 명. 장로는 이백 명, 장로는 이백 명, ‘장로는 이백 명 안 믿는 사람을 인도해야 된다’ 딱 정해 놓고, 뒤에 말 들어 보니까 이백 명이면 이백 명 정해 놓은 대로 장로들이 이백 명 인도한 사람들이 많아. 집사는 몇 명이요? 집사는 오십 명. 자, 이거 하나님이 기뻐 안 해요? 뭐 도적질 해 오라 합니까? 예수 믿으러 전도해 가지고 오라 하는데 오십 명, 이백 명 하는데 하나님 기뻐 안 해요? 하나님 기뻐해요.
○○○교회 나는 날마다 축복해, 지금도. ‘그 교회 그 목사님이 그렇게 인간 구원에 대해서 열정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그 교회 부흥시켜 주옵소서.’ 나는 지금까지, 지금 매일 나는 기도합니다, ○○○교회 위해서 매일 기도해요.
그 교회 그렇다 하니까 우리 교회도 열심히 전도하라고 한 사람이 한 사람씩 전도하라 해도 한 사람이 한 사람씩 전도하는 요것도 말이요, 이백 명 전도하라 했는데 이백 명을 인도해 가지고 왔었는데 여게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전도하라 해도 못 했어.
자, 한 사람이 한 사람씩 인도한 사람 손 들어 봐요. 한 사람이 한 사람씩 인도한 사람 손 들어 봐요. 뻐뜩 들어 봐요. 이꼴이라. 자, 손 놓읍시다. 한 사람이 한 사람도 인도 못 한 사람 일어서 봐요. 일어서 봐요. 하나님의 명령이라, 일어서 봐.
서부 교인으로서 한 사람이 한 사람도 인도 못 한 사람 일어서 봐요. 이래밖에 없어? 다 일어서. 하나님이 일어서라 해.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 한 사람도 인도 못 한 사람 일어서 봐요. 다 이꼴이라. 앉읍시다.
여러분들, 장로는 이백 명 인도하라 해도 그날 인도한 것이 다 와 가지고 보증해서 ‘아무것이 인도했습니다’ 딱 와 가지고 출석시키고 딱 거기서 이름 딱 적고 도장 딱 찍고 다 그래 갔어. 이래 모두 예수 믿을라고 애를 쓰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뭐하고 있는 거야? 하도 권면을 하고 자꾸 뭐 영감탕구가 나서 가지고 설교 자꾸 하고 이래 쌓으니까 마지 못해서 ‘내일 새벽기도 나올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하니 전부 다 들어 놓고 그 이튿날 새벽에는 못 나왔어.
못 나온 거 왜 못 나왔어? 자, 강해서 못 나왔소, 약해서 못 나왔소, 병신이라 못 나왔소? 그 못 나온 거 강해 못 나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잘나 못 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못쓸 사람이라 못 나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왜 안 들어? 못쓸 사람이라! 왜 손 안 들어요, 안 들기를! 하나님 앞에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온다고 약속하고 손 들어 놓고 못 나왔으면 못쓸 사람이지 뭐, 그것만큼은 못쓸 사람이라. 다른 거야 좋아도 그것만큼은 못 쓸 사람이라. 그것만큼은 못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못쓸 사람이라 생각하는 분들? 하나님 앞에 약속해 놓고 그 이튿날 그거 못 지키면 못쓸 사람이지 어째요? 놔요.
교만하지 말아요. 다 죽었어. 교만하지 말아요. 뭐 의지가 있다고? ‘아, 그래도 나는 돈 버는 의지가.’ 돈 버는 의지 있는 거는 너 망할 의지는 있다. 네가 멸망하는 의지는 있지마는 구원 얻는 의지는 없다. 하나님을 차지하는 의지는 없다, 마귀 차지하는 의지는 있어도. 그라면 병든 사람 아니요? 못난 사람 아니요? 그래도 잘났다고. 뭐 잘났다고? 의로 잘났는가 죄로 잘났는가? 하나님 뜻에 복종으로 잘났는가 제 하고 싶은 대로 잘났는가?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 멸망이지 뭐, 그거 잘난 거는 멸망이 크다는 것이지 뭐 있소, 있기를? 우리는 이런 유혹을 안 받아야 됩니다.
자, 여러분들, 저 공중에서 밤낮 성경에 없는 소리가 나옵니다. 없는 소리가, 성경에 없는 소리가 나면서 ‘이라면 구원 얻는다, 이라면 구원 얻는다, 이래야 구원 얻는다. 너희들이 아직 몰라 그렇지 이렇게 하면 구원 얻는다.’ 하는 소리를 공중에서, 한 달을 공중에서 계속 온 천하에 막 왕왕 하구로 큰 소리로, 뇌성같이 큰 소리로 ‘예수 믿어 구원 얻느냐? 너거가 몰라 그렇지 참으로 구원 얻는 건 이래 구원 얻어야 된다. 이걸 믿어야 구원 얻는다.’ 그렇게 한 달 동안에 공중에서 소리가 나서 외치면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공중에서 말이오.
미국도 그 소리가 나오고, 한국도 나오고, 중국도 나오고, 소련도 나오고, 온 세계에 그 소리가 큰 소리로 이래 나오면, 한 달 동안 나오면 그 소리 듣고, 그거 부인할 사람 손 들어 봐요. 부인할 사람? 거짓말하지 말고 똑똑히 부인할 사람 손 들어 봐요. 부인해요. 나는 부인해요. 어림도 없어, 부인해요. 내가 이제까지 나오기를 그래 나왔어요. 이러기 때문에 시대에 배치가 돼.
왜?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 얻는 길이 없다고 하는 그 성구를 나는 확실히 믿고 있어. 이러기 때문에 공중에서 뭐 한 달일랑 냅두고 일 년 내내 그 소리 나와도 ‘저거는 하나님이 우리 시험할라고 하는 것이다. 마귀를 시켜 시험할라 하는 것이다. 저거는 거짓말이지 아니다.’ 그거 떡 그래 놓고 나는 그래 하겠어.
하기를 ‘하나님이여, 저 말은 하나님이 말해도 마귀를 시켜 말하는 것, 인간을 시험하는 것이지 구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저거는 틀렸습니다!’ 당장에 하나님께 호소할 수가 있어. 신앙이 뭐인데? 앞으로 믿음을 흔들어서 삐뚤어진 믿음을 가지도록 그렇게 하는 역사가 주님의 재림 때는 있는 대로 다 나옵니다. 있는 대로 다 나와요. 그게 뭐이냐? 음행의 포도주라. 음행의 포도주라 말은 하나님하고 하나 딱 들어붙은 것을 하나님 외에 다른 피조물하고 들어붙는 게 그게 음행의 포도주라.
그러기 때문에, 넓은 길로 가는 것은 네 가지 말했는데 첫째가 뭐입니까? 미신 신앙. 자, 미신 신앙이라 하면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점 하고 손 비비고 뭐 이런 걸 미신 신앙이라 하는데 미신 신앙의 정의를 똑똑히 아십시오.
오늘 내가 보니까 어떤 ○○교회 목사님들이 책을 여섯 권을 냈는데 그 세 권을 봤는데 나는 그 목사님이 어데 있으면 나 찾아가서 내가 참 아주 대단히 악수를 하고 존경을 하겠어요. 들었든지 말았든지 일권은 아주 정확하게 바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권에는 조금 그런 것이 있고, 삼권에는 조금 많은데, 어쨌든지 말씀을 들었어. 그 들으니까 그만 읽어보니까 힘이 나.
이걸 여러분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알고 요 맞으니까, 이 틀림없이 맞아요. 천하의 학자들이 다 달라들어도 맞아요, 이거는. 반대해도 맞아.
미신 신앙은 어떤 게 미신 신앙이냐? 성경이 말하지 안한 거 믿는 것이 미신 신앙입니다. 알겠습니까? 성경 외에 천하 인간이 다 해도, 성경 외에 과학 천하 과학이 다 달라들어 가지고 말해도 그것 믿는 거는 미신 신앙이라.
나한테 어데 편지가 왔는데 미국에 일흔두 노벨상 받은 과학자들과이 십사 과학 연구회에서 단합해 가지고 미국에 있는 대법원에 송사해, 고소를 했어요. 대법원에 송사를 했어. 호소를 했다 그말이오. 내나 소송 한가지라.
이랬는데, 뭐라고? ‘기독자들이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엿새 동안에 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기독교 그 종교에 쓰는 종교 교리지, 종교에서 교리를 그래 낸 것이지 그것을 과학으로 범벅하는 건 틀렸다’ 그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엿새 동안에 천지 창조했다 하는 것은 기독교에서는 그리 말하는 것 그게 신화지 실제로 엿새 동안 하나님이 천지 창조했다 하는 이 말은 이거는 얼토당토 안한 말이다. 이 말 하는 것은 법에서 딱 법을 내 가지고, 이리 하면은, 지금 세상에는 과학 싸움인데 자꾸 과학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과학자들이 자꾸 연구해서 이래 해야 되는데 이 과학 연구하는 청년들에게 천지 창조가 엿새 동안에 됐다 하면은 그들의 과학 연구심을 다 전부 다 전부 약화시켜 버리고 말기 때문에 이거 이라면 우리 나라가 망한다고, 이거 고소해서 이거 다 없애야 된다고, 그래 대법원에 뭐 호소인가 소송인가 했답니다, 앞으로 판결이 어찌 나올란지 모르지마는. 이런 세상이야.
노벨상이라 하면 박사 중에, 노벨상이라 하면 박사의 저 할애비도 더 됩니다. 제일 높은 사람들이라. 그런 과학자들이라. 이 과학자들이 ‘이 엿새 동안의 창조 그거는 그저 기독교에서 그렇게 자기네들의 그 교리와 신조를 그렇게 정해 놨다는 것이지 실상은 아니라고 해야 되지 그거 실상이라고 주장하는 이런 것은 우리 나라를 망치는 것이라’ 그렇게 말했어. 그러면 미국에 있는 과학자가 그러니까 세계에 있는 과학자도 다 그래요.
세계에 있는 그 과학자들이 다 엿새 창조를 부인하면 여러분들은 부인할랍니까 안 할랍니까? 부인할랍니까 안 할랍니까? 부인 안 할 사람 손 들어 봐요, 부인 안 할 사람. 힘 없구만. 몰라. 하나님이 그것을 다 따져 가지고 천하 사람들이 다 부인했을 때에 ‘박사 아니라 온 세계가 다 전체가 합해 가지고 엿새 천지 창조 부인해도 나는 믿습니다!’ 할 때에 주님이 ‘옳다. 너는 내 사람이다!' 하고서 들어 가지고 우주와 영계를 그에게 맡겨 주십니다.
여러분들, 노아가 방주 만들 때에, 하나님께서 방주 만들라 했는데 그 방주 만든 그 방주 만든 효력이, 방주 만든 효력이 어데 났습니까? 뭐 그 배를 가지고 운반을 해서 뭐 운반선으로 무슨 효력을 봤소, 화물선으로 효력을 봤소, 연락선으로 효력을 봤소, 유흥선으로 효력을 봤소? 그 배 효력을 언제 봤습니까? 언제 봤소? 천하에 있는 과학 뭉텅이가 다 부인했지만 천하에 있는 과학 뭉텅이를 다 깨뜨려 물 속에 매장을 시킬 그때에 노아의 이 배는 구원 얻었습니다. 알겠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는 거 언제 효력이 있습니까? 우리 믿는 거 언제 효력이 있소? 인간의 종말에 효력 있습니다. 우주 종말에 효력 있습니다. 우주 종말, 우주 종말, 인간 종말에는 모든 과학이고 뭐고 다 죽음 속에 파묻혀 들어갈 때에 그때에 예수 믿는 게 효력나고, 우주가 불로 다 타서 사위어질 때에 그때에 예수 믿는 것이 효험나.
노아 방주 모은 것은 언제 효력났어요? 홍수 때 효력났어요. 우리 예수 믿는 것은 언제 효력이 나요? 언제 효력나요? 개인이 죽어 심판 받을 때에 우주가 다 불로 탈 때 그때 효력납니다. 알겠습니까? 그때 과학이 남아 있어요? 그때 과학이 남아 있어요? 내가 못났지마는 칠십이 노벨 박사든지 뭐이든지 막 그런 사람하고 나하고 한번 싸웠으면 좋겠어요, 나하고 한번 싸웠으면. 그 사람들이 다 뭐이든지 그라면은 말 한 마디 하면 틀려. ‘너희들이 뭘 가지고 말하느냐? 하나님이 전지 전능자기 때문에 엿새 동안에도 만들 수 있고, 성경에 엿새라 했기 때문에 엿새 동안에 만들었지, 엿새 또 인제 닷새라 해도 되고 한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했다 해도 그분이 전능인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로 믿는다. 전능이니까 할 수 있다.’ ‘하루 동안 어찌 돼?' `야, 하나님께서 일 초 동안에 만드셨다 하면은 일 초 동안에 만든 것을 나는 믿는다. 그분이 전능이기 때문에 일 초 동안에, 일 초는 냅두고서 반 초에도 만들 수 있다. 이런 하나님이다. 이런 하나님이 앞으로 심판할 터이니까 이 하나님에게 너희들이 어떻게 설 것이냐?’ 그 멸망할 장본이라, 멸망할 장본.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그들은 ‘햐, 현미경으로 보고 전자 현미경으로 봐 가지고 눈에 봐야 믿지. 눈에 봐야 믿지.’ 바보야, 눈에 현미경 아니라 현미경의 천 배 만 배로 봐도 안 보이는 하나님 그분이 모든 존재보다도 크다. 그분에게서 나왔다.
그러기에 성경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자로 말미암아 나왔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서 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다.” 성경에 그래 놨다.
뭐 소경이 더듬어 가지고 그따위 말 하고 있어? 이런 세상이니까 여러분들 우리 신앙을 뺏들라고 이렇게 하고 있는데 어짠다고 지금 이 옳은 말 하면 옳게 안 듣고서 엉뚱한 짓을 자꾸 하고 있어? 미신 신앙은 성경에 없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다 미신 신앙입니다. 알겠습니까? 미신 신앙.
또 그 다음에는 무슨 신앙이요? 고행 신앙. 이거는 여러분들 때문에 내가 말해 놨어. 딴게 들어온 것 있지만. 고행 신앙이라 말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수고한 공로, 자기 공로를 인정하는 거, 수고를 인정하는 거, 고생을 해야 된다는 거 이것을 인정하는 것을 고행주의라 합니다.
옛날은 고행주의라고, 고행주의라 하는 거는 고행주의가 있어. 고행주의는 나무를 하나 끗끗히 세워놓고 그 나무에 올라가 가지고 무릎을 꿇고 요래 딱 앉아 한 달 동안 앉았으니까 그거 그랄 거 아니라? 그거 그라면 ‘아, 그 사람 장하다.’ 자기가 손가락을 이래 위로 들고 요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 얼마든지 있으니까, 한번도 안 하고 요래 가지고 꼭 그래 가지고 있으니까 나중에 오랫 동안 있으니까 그 손가락이 빠짝 말라. 빠짝 말라 요래 가지고 있다 말이오. ‘아, 그 사람 의지가다.’ 그래 가지고 의지 강하다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이 아주 명망을 가지요. 이게 다 고행주의요.
어떤 사람은 상투를 대고서 이 머리를 땋아 저 천장에 달아 놓고서 그래 가지고 꼭 그래 가지고 앉지도 못 하고 꼭 그래 가지고 요래 가지고 이제, 그래 가지고 뭐 얼마 동안 있다가 죽었으면 ‘그 사람 유명하다’ 이렇게 유명하다 해 가지고, 고행주의에서는 그런 거 하는 거라.
그것만 고행주의가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 수고하고 애쓰고 하는 그것을 가치로 삼는 것은 다 고행주의입니다. 알겠습니까? 요게 빠진 사람 많아요.
수고하는 게 그러면, 수고하는 게 소용 없습니까? 아니오. 수고도 보배입니다.
어떤 게 보배라? 말씀대로 순종함으로써의 수고는 보배입니다. 말씀을 떠나서 제가 죽어도 소용 없어. 가치 없어. 고생 암만 해도 소용 없어. 이러기 때문에 다만 인간의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 거게 연결돼서 그로 말미암아 된 것이라야지 그외에는 가치가 없어. 고행주의.
또 그 다음에 뭐입니까? 그 다음에는 인본주의. 그만 그래 냅둬, 인본주의 그거는 여러분들이 다 알 터이니까. 인본주의라 말은 인간을, 무슨 일 할 때 인간을 근본으로, 인간을 중심으로 한 그게 다 인본주의입니다.
또 그 다음은 뭐이요? 성경 가감주의. 성경을 더 보태기도 하고 줄이기도 해.
성경에 없는 것도 주장하고 성경에 있는 것도 빼고.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 그 말 한 것 성경에 있소 없소? 있어요 없어요? 그러면 성경 가감주의 범했소 안 범했소? 그러면 그거 멸망합니까 안 합니까? 멸망하니까 여러분들이 속히 어떤 사람은 얼른 녹음했다가 그 설교 듣고는 얼른 지워 버렸대요. 그거 빨리 지우고 회개를 해요. 큰 죄를 지었다고, 음행죄를 지었다고 해요, 그거. 신구약 성경대로 믿어라 했는데 성경에 없는 거 믿었으니까 죄 아닙니까? 넓은 길을 걸었어.
또? 좁은 길, 좁은 길은 뭐입니까? 좁은 길은 성경주의라, 성경주의. 알겠습니까? 성경이 말하지 안한 것이면 안 믿어. 성경이 말한 것이면 자기 생명을 다 해도 성경 말한 건 범하지 안해, 성경 말한 거. 성경주의는, 성경주의는 성경에서 말하는 것만 참되다 인정하지 그외에 딴거는 인정하지 안해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또 성경이 말하는 법칙, 성경이 말하는 생명, 가치도 성경이 말한 대로 가치를 삼고, 또 옳은 것도 성경이 말하는 것으로서 옳은 걸 삼고, 취할 것도 재미도 전부 성경 육십육 권에 기록한 요 법칙, 요 도리, 요 종류 요것만 믿지 성경 외의 거는 믿지를 안해. 성경 외의 거는 믿지를 안해. 그게 성경주의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생활할 때에 뭐이든지 성경에 아니면 다 부인해, 뭣이든지. 꿈이라도, 꿈도 성경에 없으면 부인하고, 소리도 성경에 없으면 부인하고, 사람이 말해도 성경에 없으면 부인하고, 자기 속에서 나와도 성경에 없으면 부인하고, 어디서든지 성경에 위반된 것은 다 부인해요. 성경에 일치된 것만 믿어요. 그게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요것이 천하를 이깁니다. 요것이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신구약 성경주의 요것 가지고 천하를 이깁니다. 성경주의.
또? 뭐입니까? 하나님주의, 하나님주의요. 하나님주의는, 이것도 해석을 많이 했는데 여러분들, 하나님주의. 오늘 저녁에 재독은 어제 아침, 오늘 아침 것 재독해요. 그라면 나와요. 하나님주의.
하나님주의라 말은, 하나님은 참이시요 완전이시요 영원이시요 불변이십니다. 자, 그러면 하나 예를 들어서 하나님만 사랑해야 된다. 하나님만 사랑해야 된다.
하나님만 사랑해야 되니까 하나님은 뭐? 참이요, 완전이요. 하나님만 사랑해야 된다. 부부간에도 하나님만 사랑해야 된다. 부부간에 하나님만 사랑해야 된다 하면은 부부간은 어짜고? 하나님만 사랑해야 된다 그말은 부부간 사랑이 어떤 사랑이라야 된다 말입니까? 부부간 사랑은 어떤 사랑이라야 된다 말이요? 부부간 사랑은 어떤 사랑이라야 된다 말이요? 완전 사랑이라야 된다 말이오. 또? 또 뭐이요? 참된 사랑이라 말이오. 또? 불변 사랑이라 말이오. 또? 영원 사랑이라야 된다 말이라.
자, 이 사랑이 좋소, 부부간에 이 사랑이 좋소 사랑하다가 쭈글쭈글하니까 바래지고 또 비위 상하면 상해져 버리고 이 사랑이 좋습니까? 하나님은 완전이시라. 하나님만 사랑하라 그말은 하나님만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완전이기 때문에 완전을 사랑해야지. 그 남편도 완전 사랑을 해야지. 남편과 교제도 완전 교제를 해야지. 영원 불변 교제를 해야지.
또 그 다음에는 뭐입니까? 정확무오주의. 좁은 길. 알겠습니까? 좁은 길.
정확무오주의. 또 그 다음에는? 죽어도 계속해요. 옳은 거 시작하면 죽어도 계속해요. 이것이 좁은 길 가는 사람입니다. 좁은 길 가는 사람.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배워야 되지 모르면 헛일입니다. 모르면 마귀에게 삼킬 수밖에 더 있겠소?
이제 새벽으로 이 말씀을 가르치는데 오면은 네시 반에 딱 시작해 가지고 다섯시면 딱 마칩니다. 다섯시면 마치는데 혹 어떨 때는 다섯시에 몇 분 지나갑니다. 다섯시에 마칠라고 요 시계 따르릉 하는, 다섯시면 따르릉 해. 오늘도 그만 좀 시간 좀 지나가 버렸는데, 오늘 저녁 설교는 사십 분 할라 했는데 좀 지나가 버렸어.
자, 그러면 내일 새벽에,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올 사람들 손 들어 봐요. 못 나올 사람 손 들지 마. 나올 사람만 손 들어, 나올 사람만. 나올 사람만, 나올 사람만 손 들어 봐요. 자신 없어.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올 자신이 없다 말이지.
자신 없거든 죽어! 죽여 버려야, 그거는 죽여 버려야 돼. 죽여 버려야 돼.
‘아, 백 목사 살인.’ 아, 백 목사 살인자지, 뭐. 교회라 하는 거는, 교회는 살인소요 구인소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교회요 사람을 살리는 것이 교회입니다. 내일 새벽에 못 나오면 사람 어떤 사람 죽이라 해요? 새벽기도 못 나오게 하는 그놈 죽여야 돼요. 성경에 죽이라 했어요 살리라 했어요? 죽이라 했어요. 옛사람 그놈은 죽이라 했어. 죽여야 돼요.
하, 그걸 말이요, ‘내가 내일 새벽에 나오자.’ 내일 새벽에 나올라 하면, 그걸 예사로 알고? 내일 새벽에 나올라 하면 아이가 앵앵 웁니다. 내일 새벽에 나올라 하니까 남편이 있다가 ‘오늘 아침에만 나가지 말고 좀 자자’ 합니다. 마귀란 놈이 제 군대를 다 몰아치는데 생명 내놔야 내일 새벽 나올 수 있습니다. 뭐 죽으면 죽고 이래야 돼지 그래 안 하면 안 돼요. 예수 믿는 게 그리 쉬운 줄 압니까? 새벽기도 안 나오던 사람들이 새벽기도 나오는 것은 좁은 길 가는 사람입니까 넓은 길 가는 사람입니까? 이게 좁은 길 가는 사람이라. 자, 내일 새벽에 이제 뭐 죽어도 어쨌든가 밥을 굶어도 새벽기도 꼭 나오기로 작정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우리 ○○○집사님은 저게 동래있는데 어찌 나올 건고? 못 나오면, 못 나오면 그 산에 가도 돼. 산에 가요. 요새 통행금지 없으니까 했으면 하나님 앞에 어찌 됐던간에 처음부터 아는 데 ‘내일 몇시부터 그래 가지고 거석해 주십시오.’ 이러기 때문에 모두 운전 배우라 하는 거라, 운전. 운전 배우면 집에 자가용 차 있으니까 운전해 가지고 그만 뚜르르 타고 오면 말이지, 딱 오면 남편도 ‘어데 가느냐’고, `나 차 타고 어데 간다’고서. ‘이거 어데 가노? 이거 바람 안 들었나?' 해서 붙들고 이라면, 붙들고 그라면 ‘어디 가는고 가보지’ 가자 해 가지고 떡 태워 가지고 오고, 이러기 때문에 운전 배워두라 하는데 운전 배우는 사람 하나밖에 없어. ○○○집사 하나는 배웠는데 떡 배워 가지고 그것 또 조심 안 해서 그만 뭐 취소 됐다던가. 새로 재생을 시켜요.
자,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올 사람? 또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내일 새벽기도 나올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저 뭐꼬? 저게 ○○교회 저 목사님 안 나올 겁니까? 예? ○○○목사? 안 나올 거요? ‘목사님도 안 드는 거 보니까 안 들겠다’ 그게 미혹 주는 거라. 자, 그거 양식 줬소 때렸소? 때렸소 양식 줬소? ‘어, 저 목사님도 손 안 드는데 우리만 들어?’ 자, 그 형제를 때렸소 양식을 나눠줬소? ○목사 대답해 봐. 어? 때렸어. 그게 때린 거야. 그게 막바로 때리는 거라.
이라면 ‘강제로 새벽기도 나오라 이래 가지고 하나님 앞에 손 들어 약속해 놓고 못 나오면 죄짓게 만드는 거 아닌가?’ 그런 죄는 죄짓게 만들어도 하나님이 상을 줘요. 그것 때문에 나 하나님께 상 받아요, 자꾸. 내일 새벽기도 나올 사람 손 한번 더 들어봐요. 더. 아이구, 그래 들어 가지고. 자, 새로. 내일 새벽기도 나올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이래야 돼. 그라고 막 결심을 해. 이래서 하나씩 둘씩 이겨 나가고 내 자신을 자꾸 하나씩 둘씩 길을 들여 나가야지.
오분 기도 후에 오늘 아침, 어제 아침 설교 재독합니다.
광고합니다.
춥기 전에,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 어짜든지 춥기 전에 우리가 회복을 해서 아무래도 금년 연말까지는 만오천 명이 돼야 될 터인데, 우리가 목표하고 기도하고 있는데 이래 게을해 가지고는 지금 안 됩니다. 이러니까 열심히 해서 어짜든지 춥기 전에 우리 목표를 달성합시다.
그라고 주일날 아침에는 여섯시 꼭 출발해야 됩니다. 자,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 모레 아침, 모래 아침에 반사 선생님들 여섯시에 출발할 사람들 손 들어 봐요.
이것뿐이라? ‘여섯시에 출발할 사람’ 하니까 못 든다, 못 들어. 아이고. 주일날 아침 새벽기도 다 나와요. 다 나오면 힘을 얻습니다. 다 나오면 그날 학생들이 올라가요.
그라고 십오 명 이하 되던 사람은 십오 명 이상이 됐으면 이제는 모범반과 우등반이 되도록 그렇게 자꾸 힘을 써서 그래야 좁은 길로 가는 겁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