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8 15:12
제사
1981. 5. 22. 금요일 밤
본문 : 창세기 8장 20절∼9장 3절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와 총명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별별 그 명철한 지혜와 총명을 지으신 지혜와 총명이 심히 탁월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또 역사가 지나감에 따라 차차 발견되어지는 모든 오묘와 세밀과 그 복잡한 것들을 홀로 지으시고 운영하시는 지혜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은 심히 그 지혜와 감정과 공의와 정의가 무한하신 분으로써 당신에게 거리낄 때에 무서운 복수로 영원히 베푸시는 하나님이시요. 당신이 한번 책임졌을 때에 영원히 책임을 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런 부족, 저런 잘못 그런 것을 구원하시는 사랑면에서 안타깝게 여기시기는 여기시지만 그렇게 큰 것으로 생각지를 아니합니다. 그러나 당신과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할 때에는, 업신여길 때에는, 대항할 때에는 하나님은 심히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요구에 제일 큰것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로 알고 자기야 부족하든지 잘났든지 간에 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바로 대우하고 상대하고 인정하는 이것을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왜?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대접하면서 상관을 가지면 이것이 생명이요, 행복이요, 평강입니다. 그러나 사람이나 만물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그것이 막바로 사망이요 고통입니다.
그러기에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겠다"고 하신 말씀이 이것이 필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인이든지 가정이든지 단체든지 어떤 일이든지 물건이든지 상대할 때에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께 대해서 옳게 바로 하려고 애를 쓰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크게 기뻐하시고 책임을 지십니다. 그러나 어떻게 크고 강하고 많다 할찌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면 하나님은 꼭 원수를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두려우신 하나님이요. 우리가 이분은 속일 수 없는 전지한 지혜를 가지신 분이시요. 이분은 우리의 모든 안팎과 행위까지 세밀히 감찰하시고, 아주 예민한 감정으로 우리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사람들은 그 개인이나 가정이나 단체나 나라나 그 무엇이든지 현재 강하고 크고 작고 그런 것을 가지고 그것의 실력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강해도 그것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면 그까짓 것 없는 것같이 여깁니다.
없는 것같이 여기는 그대로 얼마 안가서 절단나 버립니다. 지금 무신론 소련이나 중공이나 이북이나 이 모든 무신론 유물주의 세력들이 저렇게 점점 강하여지는 것은 이 말씀하신 이 말씀에 부합지 아니한 현실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러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기뻐하셨을 때에는 이스라엘을 해할려는 그런 것이 저절로 쇠약해졌고 또 그것이 절단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노엽게 했을 때에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그것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을 마치 채찍처럼 몽둥이처럼 써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 하시려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신론의, 유물주의의 세력이 강하여지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을 때릴 매가 점점 많아지는 것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저것은 하나님을 부인해도 저렇게 강해지니 성경 말씀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부인하는 것은 절단나고 하나님을 가까이 알아 섬기는 자는 흥해진다는 그 성경 말씀이 그대로 이루워지지 않는 것이 아니냐 하는 그런 오해를 가지면 안됩니다.
지금 세계에 있는 교회는 공산주의의 세력이 강하여지는 것을 보고 다 근심하고 놀랍니다. 왜? 그들이 일반인은 어떤 민주주의자든지, 민족주의자든지, 제국주의자든지, 어떤 이종교가든지 그것은 이 머리에 들어 있는 그 사상을 씻을라면 씻을 수 있다는 것을 저들이 체험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사람들은 문제하지 않습니다. 얼마 안가서 그 머리를 씻어서 보냅니다.
우리나라에서 어선들도 붙들여 가서 근 1년동안이나 그래 있는 가운데 그들은 저거들의 할 일의 공작을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세뇌를 해보려고 머리에 든 사상을 씻어보려고 애를 쓰다가 보냈을 것입니다. 씻겨졌는지 바꿔졌는지 그대로 변질되지 안하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변질되지 아니하고 왔으리라 그렇게 기대를 가집니다.
그러나 통계에 모든 종교가, 모든 사상가, 모든 주의가들의 그 사상은 씻어서 공산주의로 바꿀수 있으나 기독자의 그 신앙 사상은 씻지 못한다 하는 것을 그들이 단정지워 놓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이것은 제거를 해야 되지 다시 어떻게 개량은 할 수 없다고 생각들을 하기 때문에 최종은 참된 기독교에만 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자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이 되지 아니하고 일을 하지 아니하고 생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노여워 하시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입으로는 하나님 하나님 부르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아주 없는 것으로,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입도 없고, 손도 없고, 아무 동작도 없는 하나의 우리 상상 가운데 그저 생각하고 있는 그런 미신같이 그렇게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그 하나님의 분노에서 몽둥이를 점점 키우면서 이 몽둥이가 너희를 한번 칠 때는 너희들이 어찌 되느냐? "회개하라"는 이 회개를 재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알고 가까이 섬기는 자에게 약속한 축복이 없어 그런 것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멀리할 때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복수하겠다는 이 말씀이 허무해서 그런것 아닙니다. 거기에 대해서 오해를 가지면 안됩니다. 저것은 몽둥이로 저렇게 키우는 것입니다. 몽둥이로 키우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대한 계약이 그대로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기 때문에 하나님이 몽둥이를 숭상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 대접을 하면 몽둥이는 제거됩니다.
모든 원수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깨에 메고 그 발에 티끌을 핥을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오늘밤에 봉독한 이 말씀도 보면 노아가 홍수에 구원은 얻었지만 장기간 그 물 속에, 배 안에 있다가 홍수가 잦아지고 육지가 들어나자 이제는 하나님께서 배에서 나가라고 말씀하시는 이 명령을 받고 배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나와 가지고 첫 생각, 첫 마음의 준비 그것은 자기가 배 안에 간수했던 짐승중에 깨끗한 짐승과 새중에 깨끗한 새를 취해서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렸습니다. 번제는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감사제 하나님 앞에 앞으로 바칠 각오하는 이 모든 종합의 뜻을 가지고 드리는 것이 번제입니다. 이 번제를 드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번제드리는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마음은 감동되었습니다.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이 번제드리는 이 제사를 흠향하시고, 하나님의 중심이 감동됐습니다. 중심이 움직였습니다. 움직여서 그 밑에 내려보면 하나님이 분해서 홍수로 전멸하시고 난 다음에 노아의 이 번제에 하나님이 감동되셔서 땅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않겠고 인생을 이렇게 전멸하지 않겠다. 인생은 본성이 악인데 그 본성이 악한 것인데 그 악을 행하는 것을 인해서 전멸하는 이런 일은 다시 하지 않겠다. 모든 식물에 대해서도 이런 일을 다시 하지 않겠다.
하나님이 노아의 이 번제로 인해서 땅에 대한 당신의 마음이 감동되어서 달라졌습니다. 만물과 모든 생축과 모든 생기 있는 것들에게 당신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노아에게 대해서도 이 번제를 흠향하시고 "노아야, 내가 땅위에 있는 모든 생명가진 것을 다 네 손에 붙이겠고 바다에 생명가진 모든 것을 다 네 손에 붙이겠고 이 모든 것을 너희 식물로 주겠고 너희들은 땅에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 모든 것을 너희 손에 붙여 주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노아의 번제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크게 감동되어 하나도 아낌이 없었고 그 모든 분함의 진노가 다 풀렸고 모든 존재에 대한 당신의 새로운 긍휼이 움텄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드리는 이 제사를 이렇게 기뻐하십니다. 이외에 다른 것을 원치를 않습니다.
그러나 그 후 이사야서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헛된 제물을 나에게 가져오지 말라 너희들이 월삭과 절기와 대회와 성회로 모이는 것은 함께 악을 행하는 것이 되어 내가 여기에 대해서 견디지를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제물은 이렇게 하나님이 만족히 여기셨는데 어떤 제물은 하나님이 이렇게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이스라엘 말년에 탄생하셔 가지고 그들을 향하여 말하기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들이 껍데기의 형식은 행하나 그 속에 중한 의와 인과 신은 너희들이 버렸다. 이 외식하는 자들아 화 있을찐저"라고 말씀을 하셨고 신약 시대에 와가지고 우리에게 그런 헌물이나 제물이나 제사나 그런 것을 말하지 아니하시고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하는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끝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들이 어떻게 하면 자기를 기쁘게 하고 자기를 영화롭게 할까 하는 여기만 분망했지 하나님을 생각지 안했기 때문에 당신이 노아 때와 꼭 같이 멸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멸망을 받지 않고 싶거든 그 행위에서 돌아서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노아의 제사는 그렇게 기뻐하시고 이스라엘의 제사는 하나님이 미워하셨으니 무슨 연고인가? 노아의 제사는 그가 인간의 죄악 중에 난 자기를 하나님이 붙들어 주신 그 속죄의 은혜와, 또 그를 길러 주신 그 양육의 은혜와, 그를 붙들어 경고해 주신 그 은혜, 온갖 은혜를 그가 생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자기의 마음과 자기의 정성, 자기의 전 인격을 다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의지하는 그 중심의 표로 이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약속은 받았지만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 제사가 그 모형으로, 그 예표로 거기에 소속한 것으로 되는 것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다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 감사할 때에, 잘못되었을 때에 하나님께 간구할 때에, 하나님께 맡길 때에 이렇게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그렇게 하나님이 법을 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럴때에 그 제사를 하나님이 그렇게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형식의 제도는 했지만 그 속에 의도 없고 인도 없고 신도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련에 잘못되고 바로된 그 모든것에 대한 아무런 깨달음이나, 감상이나, 정성이나 그런 것은 없이 껍데기만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외식이라고 진노하셨습니다.
이래서 구약 교회는 차차차차 육안으로 볼수 있는 껍데기에만 주력을 하고 하나님은 영이신데 인간의 육안으로 볼수 없는 그 마음에 정성 바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서 멸해졌습니다. 그러나 신약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런 껍데기를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마음과 몸으로 이것으로 하나님 앞에 제물을 삼아서 드리라고 이렇게 하나님 말씀하셨는데, 신약교회는 구약교회의 정 반대로 마음 뿐입니다.
구약교회는 마음이 없이 정성이 없이 보이는 이 형체 이것만 주력했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주의 전을 하여 간절한 것이 나를 삼켰다." 너희들이 주의 전에 보이는 그것만 치중하다 보니까 그 마음은 전부 삐뚤어지고, 어두워져 가지고서 메시아를 죽이는 그런 일을 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신약교회는 악령이 구약 교회는 알맹이를 뽑고 껍데기만 숭상하게 해 가지고서 멸망을 시킨 악령이 신약 교회는 알맹이만 고조하고 주력하게 하고 이 껍데기를 무시하게 해 가지고서 멸망을 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래서 야고보서 2장 21절 이하에 보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헛것이라 이것으로 너를 구원하겠느냐?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온전해 진다."는 말씀은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는 그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으로 깨닫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 이 마음을 가지는 마음을 말합니다.
미가서에 보면 너희들이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껍데기는 너희들이 가졌지만 속에 마음에 대해서 도무지 작용이 없는 것을 탄식을 했는데 신약교회는 마음 뿐이고 껍데기가 없습니다. 이래서 알맹이 없는 껍데기로 구약교회가 망했고 신약교회는 껍데기 없는 알맹이로 망한 것이 신약교회입니다.
이러기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했는데 행함이란 말은 껍데기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마음의 작용, 마음의 활동,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우리의 마음의 활동,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몸의 활동,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활동. 이것이 없으면 죽은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제사를 드릴려고 하면, 제사라면 예배인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노아의 그 제사를 기뻐한것 처럼 신약교회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이 성도의 행위는 무엇인가? 어떤 생활을 해야 될것인가? 알맹이에 껍데기를 마련해야 됩니다. 껍데기가 없는 알맹이는 실을 가짜입니다. 껍데기가 있고 알맹이가 생기는 것이 모든 식물들의 법칙입니다. 알맹이가 있으려고 하면 반드시 껍데기가 생겨지고 껍데기를 말미암아 알맹이가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음에 하나님께 대해서 감사한 것이라든지 자기의 잘못된 자복의 것이라든지 간구의 것이라든지 하나님께 무슨 의논하는 것이라든지 하나님께 무슨 관계를 가진 이 마음의 깨달음이 있고 마음으로 생각했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이 고기덩어리의 행동이 있어야 되지 마음의 행동뿐이요 고기덩어리의 행동이 없으므로 신약교회는 망합니다.
마음의 작용 이것을 양육하고 온전케 할 수 있는 고기덩어리의 이 작용, 고기덩어리의 작용을 온전케 할수 있는 이 모든 사물, 이 작용이 없으면 우리의 제사는 역연 화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하신 말씀같이 화 있을찐저 마음으로만 섬기고 말로만 섬기고 행함이 없는 신약교회를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했으면 이 감사함이 내가 감사하는 이 감사의 표로 내 몸을 움직여서 감사를 표시하든지 감사의 표로 내 입술을 움직이든지 내가 감사의 표로 어떤 일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감사의 표로 이것들을 다 할 수 없으면 내가 내 심신, 정신을 가지고서 바꾸어 놓은 것이 있으니까 물질입니다. 물질로 가지고 감사의 표를 하든지, 자기는 어떤 감옥 가운데 들어 있어 물질로도 몸으로도 행동으로도 입술로도 할수 없을 때가 되면 그때는 부디 자기 마음에 작용된 그것을 껍데기를 마련해야 되겠으니까 그 껍데기 고기덩어리의 행동인 고요히 눈을 감고 기도하던 것을 눈을 뜨고 하나님께 기도해서라도 알맹이의 껍데기를 만들어야 되지 껍데기 못 만드는 알맹이는 다 헛일입니다.
구약 교회는 껍데기 뿐이고 알맹이 없어 망했습니다. 오늘 신약 교회는 알맹이 뿐이고 껍데기 없기 때문에 그 알맹이는 가짜입니다. 앞으로 여기에 대해서 요즈음 계속하고 있는데 지금 시간이 다 되어서 간단하게 그저 윤곽만 말했습니다.
이 시간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알맹이인 마음만 가지고는 소용 없습니다. 고기덩어리의 행위가 있어야 됩니다.
고기덩어리로 행동하고 안되면 일로 하고 물질로 하고 그것도 안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껍데기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