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8 13:25
제6회 공의회 회의록
1978년 3월 6일 오후 7시 부산 서부교회 예배당에서 임시 사회자 이진헌 목사 사회로 개회되다. 사회자의 기도에 이어 찬송가 32장을 합창한후 백태영목사의 사도행전 1장 1∼8절의 성경 봉독후 백영희 목사의 개회 설교가 있었다.
설교내용 본문 : 행 1 : 1∼8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여러번 제자들과 말씀하셨고 마지막 승천하시게 될 때에 이제까지 대망하고 있던 로마나라 식민으로부터 이스라엘이 해방되어 독립이 되는가 하여 묻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그들이 늘 동경하고 있는 하늘나라가 이루어 지는가 하여 의문을 가지고 묻는자도 있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똑똑하게 가르치시고 또 그들이 생각지 아니한 것들을 구별하여 말씀하셨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셨다. 이것이 땅위에 있는 교회들의 할 일인 것을 가르쳤다.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개인이든지 가정이든지 사회든지 어떤 단체든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의 할 일은 두가지다. 하나는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이 증거는 하나님이신 성령의 권능이 아니면 증거를 못하는 것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완료하시는 이 일에 책임자이시다. 그런고로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는데는 성령의 도움이 아니면 아무도 구속을 입을 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일 순서가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이다.
성령의 권능을 받기 전에는 악령의 소욕의 사람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아무리 교회안에 성직을 사람들을 통해 입었을지라도 성령의 권능이 그에게 임하지 아니하면 거짓된 사자요 양의 껍질을 입은 이리다.
성령의 권능을 받을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가르쳐서 열 처녀 중 다섯 처녀는 기름 준비를 하였다고 했고 다섯 처녀는 기름준비 하지 못 했다고 말씀하셨다.
기름준비가 곧 성령의 권능을 말씀했다. 성령의 권능을 받는 다는 말은 사람들이 어린 심정으로 우선 알아듣기 쉽게 말씀한 말씀이요. 실은 성령의 권능에게 사로 잡혀서 완전히 성령에게 결박을 당해서 남은 때에 자유하지 못하고 성령에게만 이끌려 피동되는 이것이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이라고 표시하는 것이다.
이런고로 우리가 개인교회 가정교회 사회교회 또 국가교회로 이번에는 모였다.
이렇게 모인 이 모임이 성령의 권능을 받은 모임이 아니라면 다 불탈 풀과 나무로 지은 집과 같다 성령에게 온전히 사로 잡혀서 이 모인 단체가 추호도 성령의 결박을 벗어 날수 없는 성령에게만 결박당하여 그에게만 완전히 피동되는 이것이 되어져야 성령의 권능 입는 모임이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믿는 사람은 자기가 어느 정도 성령에게 매였는지 성령에게 자기의 사용과 자율이 박탈당해 성령의 것 되었는지 성령에게 결박을 당했는지 이것이 성령의 권능인 것이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이 권능은 성령의 능력에게 붙들려서 파괴시킬 것 파괴시키고 건설할 것 건설하는 그 능력으로 하나님이 그 사람 통해 파괴할 것을 다 파괴하고 건설할 것을 다 건설할 수 있는 이것이 성령의 권능을 받은 사람이다.
만일 하나님이 그에게 그 단체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파괴가 파괴되지 아니한다면 그 단체는 마귀의 세력이 주장함이요 하나님의 권능은 거기에 주장하지를 못한다.
또 하나님께서 그 단체를 통하여 건설하고자 하는 그 건설을 그 사람이나 그 단체나 그것에게 속한 것들의 방해로 인해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건설이 제재(制裁) 된다면 그 곳은 하나님의 권능이 없고 악령의 권능이 있는 것이다. 성령이 이 권능으로 인해 하는 그것이 개인교회이며 단체교회이며 사회교회인 것이며 이 권능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거는 예수님을 모르는 자에게 예수님을 알려 줌이요. 보지 못하는 자에게 보여줌을 가르쳐서 증거한다고 말한다. 증거하는 그 증거는 가까운 예루살렘으로부터 그 다음 가까운 유다로 그 보담 먼 사마리아, 그보담 먼 땅끝까지 라고 했다.
그런고로 이 권능이 임하면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거는 자기가 있는 머무는 처소에서부터 이 증거가 시작되는 것이 그것이 성령의 권능의 역사요 자기가 있는 그 당지에는 증거가 되지 않고 초월적으로 먼데 다른데 가서 증거 되는 것은 순수한 성령의 복음역사가 아님을 말씀한다. 그러기에 먼저 자신이 자신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해서 자신이 증거를 받게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서부터 먼 사람에게로 마지막에는 원수에게까지 증거되는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요 이렇게 증거하는 이 교회가 교회 노릇하는 정상의 형태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창조주 대주재시오 전지전능의 구속의 하나님이시오 또 우리의 중보자이신 인성을 가지신 분이시다. 신성과 인성, 신인양성 일위이신 우리 구주 하나님이시라고 알려 주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 구주를 능력적으로 시험한다. 우리 구주를 전능의 구주로 인정치 않게 하려고 예수님의 능력을 시험한다. 구주의 전능을 부인케 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의 사랑을 부인케 한다. 구주의 지혜를 부인케한다. 온 세상의 권능이 다 달라 들어서 우리 구주의 권능을 부인케 할려고 할 때에 그 권능을 부인하고 그 권능보다 예수님의 권능을 위에 두는 데는 자기에게 있는 것 다 투자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전능자가 내 구주가 되고 전능자가 나와 함께 하는 전능의 능력으로 그것을 능가하고 그 능력을 바꾸어 가게 한다.
또 세상 온갖 지혜지식이 와서 나와 함께하는 내 구주의 전지를 부인케 하려고 할 때에 그 모든 지혜 지식을 인정함보다 탁월한 나와 함께 한 예수님의 전지를 부인치 아니하고 주의 전지를 그대로 인정하고 따라 간다. 온갖 세상에 필요한 모든 사랑이 다 와서 예수님의 사랑을 부인케 할려고 내어 놓게 바꾸게 할려고 해도 바꾸지 아니하므로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한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세상 능력 이기고, 예수님의 지혜로 세상 지혜 이기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세상 사랑 이기고, 이기는 이것은 성령의 권능이 아니면 안된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자도 두려워 아니하고 바울이 대적을 두려워 아니함이 자기와 함께한 자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앎으로 두려워 아니했다.
세상 어디서든지 예수님의 권능을 부인하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세상의 지혜 지식으로 예수님의 지혜 지식을 부인하는 자는 기독자가 아니다. 첫째로 이것이 우리의 증거다. 큰 것은 작은 것을 이긴다. 우리 구주 예수는 어떠하신 능력자이시며 어떠하신 지혜자이시며 어떠하신 사랑의 주님이신 것을 어디서나 바꾸면 안된다. 이 예수님을 나타내고 예수님의 권능을 예수님의 지혜를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 낸다는 것은 천하의 모든 지식 앞에서 예수님의 지식을 자랑함이요.
모든 능력보다 예수님의 능력이 크니 모든 도덕보다 예수님의 능력이 크니 나는 이를 따라가는 따름이 첫째 증거이다.
둘째 증거는 예수님의 자체와 예수님의 하신 일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자체를 증거하는 것은 예수님은 볼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즉 예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요, 예수님의 할 일을 나타낸다는 것이요. 신인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을 나타내고 예수님의 형상과 예수님의 행위를 나타냄이 우리의 증거이다.
예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은 물형도 영형도 없으시고 우리의 인격성과 같은 인격성이 탁월한 신성으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인격성이라는 말은 인격성의 형상은 물형이 아니다 그 사람의 온갖 속성이 온전하면 그 인격의 형상이 아름답다고 하고 그 인격성의 속성이 추하면 추하다고 한다. 곧 그 인격의 형상은 속성이다. 예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나타내셨으니 예수님은 볼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다 삼으셨으니 하나님의 지식으로 당신의 지식으로 삼고 하나님의 지혜로 당신의 지혜로 삼았다. 하나님의 선이 예수님의 선으로 하나님의 진실이 예수님의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거룩을 예수님의 거룩으로 하나님의 의를 예수님의 의로 하나님의 권세를 예수님의 권세로 삼아 있었다.
또 예수님의 회고적으로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예수님의 불변성으로 하나님의 인격성과 꼭같은 인격성을 가지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내 구주를 세상과 비할 때에 세상을 압도하고, 신인양성일위의 구주시며 내 구주는 전능자이시며 내 구주는 사랑이심을 나타냄이 둘째 증거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니 어디서나 우리도 예수님의 지식을 내 지식으로 예수님의 지혜를 내 지혜로 삼아야 하는데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의 지식만 내 지식으로 예수님의 거룩만 내 거룩으로 예수님의 권능만 내 권능으로 예수님의 성결만 내 성결로 해서 예수님의 속성이 움직이는대로 속성에 피동되는 대로 내 속성이 되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내 사는 것이고 이것을 나타냄이 교회요 이대로 나타냄이 가정교회요, 사회교회이다. 이것이 참된 교회요 공회요 그리스도인의 공회다.
다음은 그 행위를 나타냄인데 예수님은 당신이 범죄치 아니할 뿐 아니라 우리의 죄를 홀로 담당하시고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멸하셨다. 또 의를 보존하시고 건설하셨고 온 세상이 다 달라들어도 하나님과 연결이 요동치 아니했다.이것이 증인이요. 하나님을 나타냄이다. 죄와 타협하지 아니하고 죄를 멸하신 이것을 나타내고 의를 보존할 뿐만 아니라 의를 건설하는 자로 죄 파괴자로 하나님과 결합한 자로 이것만 어디서나 증거하고 생애에서 이것을 나타내고 예수님의 형상을 어디서나 나타냄이 우리의 할 일이다. 이는 하나님이신 성령의 권능이 아니면 안된다. 이는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자기 아닌 자기를 이기는 것이니 이 권능을 힘 입지 아니하면 안된다.
그런고로 그리스도인은 너나 내나 다 없고, 이 교파다 저 교파다 운운하고 자랑함이 필요 없다. 다만 개인이면 개인, 두 사람이면 두 사람, 단체면 단체, 교회면 교회로 첫째의 권능을 받아야 하고 둘째로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권능을 얻는데는 자기를 주님에게 양보함이 유일의 방편이다. 이 공회가 온전히 주님에게 다 양보해서 그에게 다 박탈당하고 그에게 완전히 결박당할 때 이것이 기독교의 권능이다. 한 사람이라도 이 성령의 권능에게 결박 당치 아니한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권능은 그에게 역사를 못한다. 권능의 역사가 못 나타난다. 이 권능을 입었으면 결과가 나타난다. 그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찌니 권능이 있느냐 없느냐 그 열매를 보아 안다 열매는 증인이다.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세상에 구주의 권능을 나타내는 것이다. 과학 만능, 인지 만능의 세상에 하나님의 권능을 그대로 나타내며 이 지혜 지식을 나타내고 이 지혜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증거다 예수님의 사랑을 자랑하고 나타내고 예수님의 은혜를 자랑하고 나타냄이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함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형상을 입기 위해서,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너희를 부르심은 이 형상을 덧 입기 위하여서이며 이 형상을 입고 세상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천하 지식 다 갖다 주어도 그 사람의 지식에는 다른 것이 못 들어가고 사랑에도 진실에도 전부가 하나님의 요소가 저 사람의 요소요 이 인격을 어디서나 그대로 나타냄이 증인이다.
어디서나 사죄 칭의 새생명을 그대로 가지고 파괴 건설 할 것, 그대로 참 이 증인이다. 이것이 아니면 허공치고 풀과 나무로 지은 집이요 이것이 있으면 점점 건설되 나간다 숨어 있는 것이 드러나서 온 세상을 점령한다 예수님은 이 본질 본성으로 살았으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면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셨다.
이상과 같이 백영희 목사의 개회설교가 있은후 임시 사회자 이진헌목사가 소집이유를 교역자회의가 주최가 되어 사도행전 13장 1절로 3절을 근거하여 소집을 청원하였다는 설명에 이어 사도행전 11장6절을 근거하여 가입청원을 신도범목사가 보고하여 주실 것을 임시 사회자가 요청하니 사도행전 15장 6절을 근거하여 신도범 목사가 가입청원을 집계 보고하니 목사 14명 장로 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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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 못하였을 때 어느 세상 법전이나 권위에게 가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신앙선배요 ??가된 신앙 근거지인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사도들에게 문의해서 거기서 판정하여주는 대로 하자고 사람들을 보냈다. 이들이 예루살렘에 있을 때 사도들이 반가히 맞이해서 이 문제에 대하여 장시간 논의 하였다. 그 내용은 첫째로 하나님 앞에 선포해 놓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해서 진실을 가릴려고 노력하였고 둘째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떻게 섭리하시느냐 그 섭리를 들어서 참고 삼아 논의하였다.
그러다가 성경 말씀과 하나님께서 현재 섭리하시는 것을 합하여서 그들이 성경대로 결정을 내렸다. 네 가지 구약제도를 지키게 하고 그 외에 것은 구태여 얽매여서 그 의식을 행하는 일은 그만두고 온전케 하려 함이란 말씀대로 ?? 조성으로 이루워져가는 그 면으로 순종하겠금 하고 사람들을 보내어 갔다. 그때 그 교회들이 결정한 그대로 순종하였으니 구약교회와 신약교회가 접근되는 곳에서 악령의 기회를 막고 신약교회가 바로서 나가게 되었다.
이와같이 사도들이 세운 이 교회에 근거하여서 여기에 속한 우리다. 오늘 자기가 얼마든지 깨달은 ?? 다를 때는 변론할 수 있는 것이 교회다. 나는 이렇게 깨달았는데 다르다든지 이번에 부임한 교역자는 깨달음이 다르다 할 때 얼마든지 그 다른 것을 논의 할 수 있다.
목사님이 이렇게 가르치니 나와 다르니 아무리 하여도 내 깨달음이 옳으니...하고 얼마든지 논의하고 세밀히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요청 할 수 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교회는 교역자와 교인 선배와 후배 동류사이에서 그 믿는 도리에서 얼마든지 논의하여서 옳고 그른 것을 확정짓고 확신으로 나아가야 자기란 인격이 변화된다. 그러나 하나의 지식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다소의 지식으로 지배는 될지 모르나 자기의 사람됨에는 전혀 도달치 못한다 그런고로 깨달음은 얼마든지 변론하고 받아 줄수가 있다 왜, 이 깨달음이 잘못되면 그 생활이 잘못되고 구원이 잘못된다.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고로 초대교회들이 변론을 용납하고 변론이 있었다. 그때에 의논이 틀렸든지 옳든지 내 주장을 세우자는 그러한 것은 용납하지 아니하였다. 사람은 원죄가 있으니 같은 말이라도 자기 말이 성립되어야 쾌감을 가짐이 사람이다.
먼저 가지가 말해서 성립이 되면 통쾌감을 가짐이 원죄의 발동이다. 교회는 믿는 도리에 대하여 얼마든지 바른 것, 바로함이 교회다.
그런데 변론할 때 자기 주장을 세우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꺽으려 함은 원죄의 소행이요. 악령의 역사다. 거기에는 악령의 일만 성립되지 구원 성립은 안된다.
그들은 다 같은 성경을 가지고 논의 하였으나 자기들로서 해결이 안될 때 우리보다 성령의 충만한 사람, 믿는 도리의 권위를 가진 사도 하나님의 신약교회를 부탁하고 책임진 사도들과 더 성경적으로 깨달아 성경대로 바른 깨달음을 받아 가지고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나가야 하겠다는 욕망에서 예루살렘으로 자기네들이 권위있다고 보는 사람들을 보내었다. 이것이 옳은 교회다 옳은 교회는 성경대로의 아는 깨달음이 옳으냐를 얼마든지 논의 하여서 이대로 살아 가야 할 것으로 아는 것이지 우리 깨달음 우리 교파가 제일이다 성경 깨달음보다 우리 단체를 세워야지 하는 것은 교파와 당파 운동이다. 성경 깨달음은 같은 깨달음의 사람이 자연히 모여지고 같은 깨달음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유기적인 단체이다. 어떤 구원을 좌우하는 단체가 아니다 교파보담은 깨달음이 위에 있고 깨달음 보담은 더 많이 깨달아 아는 신앙 선배들의 깨달음이 위에 있고 이것보담은 성경이 위에 있으니 최고의 법전은 성경이다.
이러니 성경에 위반되는 선배의 깨달음은 용납지 아니함이 교회요 선배의 권위있는 깨달음을 묘사하는 단편적 유약적 깨달음을 다음으로 둔다. 그 깨달음보다 더 빈약한 권위로 인정함이 교파다. 그런데 천주교는 이와 반대로 개인의 깨달음도 선배의 깨달음도 다 교회와 교파 밑에 두고 있다. 또 성경 말씀은 그들이 깨달은 그 깨달음 밑에 위치를 두고 있다. 그러니 가속도의 부패를 가져왔다.
그런고로 언제든지 우리 교인들은 선후를 막론하고 자기 깨달음에 변론을 논의 할 수 있고 성경을 근거하되 보다 앞선 사람 성령의 충만한 사람들의 가르침의 도움을 입고 바로 깨달야함이어야 하고 또 선배들은 묻는 일을 가르칠 때 자기 깨달음 말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교리를 가르쳐서 깨달음의 확정을 짓고 확신으로 나가게 함이 교회이다. 이러니 이 개교회로 나가는 곳에는 상존기관을 두지 아니한다.
개교회대 개인들의 단체의 상대의 하나님으로 그 모든 법칙은 성경만으로 법칙을 삼고 나아가니까 교리 문제나 행정문제나 복음운동들의 문제가 있을때에는 지방끼리 모여서 의논하고 성경을 근거하여서 의논하고 의논이 확정이 안될 때는 총공회를 모여서 성경을 근거해서 이대로 결정 짓고는 각각 그대로 신앙생활 하는데 1년이고 10년이고 의논 할 것이 없을 때는 그대로 해체되고 회는 없고 다시 유사시에 모여서 새 공회로 표시하는 것이요.
그런고로 이는 독립교회가 아니고 개교회다.
이상의 설교가 있은 후 1978년 3월 6일 오후 10시 5분에 정회된 공회가 속회된다는 회장의 속회선언으로 속회되니 1978년 3월 7일 오전 9시더라.
회장의 요청에 따라 통지서 제 2호를 신연범전도사가 낭독하니 다음과 같다.
1978년 1월 19일 주은중 온 교회와 댁내 평안을 비오며 다음과 사항을 통지하나이다.
※교회안에 남녀 이성교제 엄금 1. 반사들이 모일때에는 반드시 예배당 안에서 모이고 교역자 대리가 될만한 자의 입회 아래 모여야 함.
2. 반사들이 모인 경우 반드시 남녀 구별하여 앉아야 하고 보조반사도 남녀 구별하여 앉아야 함.
3. 남녀반사끼리 심방하지 말 것.
4. 남녀가 한반에 원반사 보조반사가 될 수 없음(다만 부부의 경우는 됨) 5. 어떤 이름으로든지 교회안에서 송별회나 환영회는 공회의 허락하에서만 할 수 있음.
6. 장년반도 가능한 남은 남에게 전도 심방하고 여는 여에게 심방 전도 하도록 지도하고 부득한 경우에는 교역자의 시찰하에서 하도록 할 것.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 공회장 목사 백영희
회장의 요청에 따라 공회 성격, 공회결의 원칙, 교역자 이동원칙 및 시무투표에 관한 회칙을 서기가 낭독하니 다음과 같다.
1. 공회의 성격 개교회에서 처리 못할 사건이 있을 때에는 교역자나 평신도를 무론하고 누구든지 지방 공회 또는 전국적으로 총공회를 소집할 수 있고 정식 공회가 성립되기 까지 발기회가 모든 순서를 진행시키되 공회가 개회되면 발기회는 해체되고 그 공회가 안건을 충분하게 의논하여 성경대로 처리한 후 공회가 해체된다.
2. 결의 원칙 일반회는 종다수 결의 원칙을 따르나 본 공회는 한 사람이라도 반대자가 있을 때는 공회적 결의는 보류되며 옳은 편에서 충분한 설득이 있어 전원 이의가 없을 때 공회적 결의는 성립된다. 진리대로 결의 되기 까지 노력하여 소수도 다수도 다 버리고 공회결의가 성경대로 되도록 신중을 기함이 본 공회의 결의 원칙이다.
우리가 말하는 종다수는 다르다 만약 100명중 99명이 주장하여도 그 중 한 사람이 자기 신앙 양심에 인정되지 않아 반대할 때에는 그것을 결정짓지 않고 전체회로서는 그것을 미결로 두고 그리고 그 한 사람에게 이해 시켜 그 분이 깨달았으면 비로소 공회 전체로서 결의된다.
또 그 한 사람이 바로 깨닫고 99명이 잘못 깨달았으면 성경대로 바로 깨달은 그 한 사람은 개별적으로 자유할 수 있고 그 한사람이 99명에게 이해시켜 99명이 한 사람의 바른 깨달음을 따를때는 공회로서 결의 된다.
3. 교역자 이동 원칙 교역자 이동은 가견적 교회의 목회실적에 따라 이동함을 원칙으로 하되 ① 공회의 결정을 첫째로 주요시 하여 60%로 하고 ② 본교회의 실적을 둘째로 참고로하여 20%로 하고 ③ 교역자 본인의 의사를 참고로 하여 10%로 하고 ④ 그 교역자와 사회와의 관계를 참고로 하여 10%로 하여 이동원칙으로 한다.
4. 시무투표 교역자가 침체 상태에 빠지지 않고 늘 새롭게 일하며 자신을 돌아 볼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위하여 본 공회에 속한 모든 교회는 매 2년마다 시무투표를 실시한다.
세례교인 원입교인 가리지 않고 전교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3/4이상의 지지를 받을 때 시무지지로 인정한다.
행 21:17-20을 근거하여 복음역사에 대한 각부 보고를 요망한다는 이원일목사의 요청에 따라 각교회보고를 서영호목사가 집계 보고하니 다음과 같다.
(보고서 별첨)
공회 사업보고를 송용조 목사가 집계보고 하다.
매년 5월 3째 주일에 대구 집회 매년 8월 3째 주일에 거창집회 개척교회 23개처(個處) 교회 총수입금 50,826,867원 총지출금 50,324,800원
목회자 양성원 보고를 서영준 집사가 집계보고하다.
1. 양성원 가입은 현 교역자 전원이 가입되고 유급 교역자가 아니라도 교역자 될 자질이 자타에게 인정되고 본인이 사명과 욕구가 있어 교회와 공회에서 이를 인정하되 신구약 성경 20독을 한 자에게 한하여 입학된다.
2. 현 입학자 1회 51명 2회 23명 학기는 일년에 3학기로 하고 매학기는 5주로 숙식 공부하되 학년은 4년으로 하되 신구약 100독을 한자에게 졸업증을 준다.
복음역사에 대한 각 부 보고를 행15:6을 근거하여 수락하자는 이동화목사의 동의와 김철수 전도사의 재청으로 수락키로 하다.
행15:6을 근거하여 각 청원건을 수락한다는 회장의 말씀에 이어 행 13:2-3을 근거하여 산창교회 이만기전도사, 여수 여산교회 신용인전도사 및 서울 청량리교회 장열 전도사의 목사 장립 청원을 이동화목사 이재순목사 및 신도범목사가 각각 청원하고 거제동교회 박장효집사의 장로 장립 청원을 서영호 목사가 청원하다.
행 15:25-26을 근거하여 시취하여 허락하여 주실 것을 이진헌목사가 요청하니 딤전 3:10을 근거하여 시취위원으로 백영희목사, 서영호목사, 이재순목사, 신도범목사, 송용조목사 및 송종섭전도사를 목사 및 장로 시취위원으로 선임되다.
딤전 3:10을 근거하여 시취과목은 성경 조직신학, 교회사, 교리사, 정치, 요리문답 및 일반상식을 시취한 결과 강도사 시취 합격자는 마산 산창교회 이만기 전도사 여수 여산 교회 신용인 전도사 및 서울 청량리교회 장 열 전도사
장로 시취 합격자는 부산 거제동 교회 박장효집사를 시취의원을 대표하여 이재순 목사가 각각 합격됨을 보고하다.
딤전 3:1-10을 근거하여 설교시취를 해 주실 것을 서영호 목사가 요청하여 설교 시취를 하니 이만기 전도사가 요한 일서 3:1-3 신용인 전도사가 계시 1:4-5 장 열전도사가 열왕기하 2:1-9을 근거하여 각각 10분간씩 설교 시취가 있었다.
딤전 3:10을 근거하여 이만기전도사, 신용인전도사, 장 열전도사의 목사 장립과 박장효집사의 장로 장립의 허락을 가부 거수로 결의하니 전원 거수로 가결되다.
고전9:14절을 근거하여 각교회 보조와 개척교회 사례금 조정에 대하여 김삼암 목사가 청원하다.
개척교회와 농촌교회가 경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우리가 다 하나가 되어서 각 교회에 보조하는 것이라든지 개척교회 사례라든지 이 자리에서 의논해서 그것을 결정짓자는 청원이니 마땅히 할 일이다. 부족하나 단일의 몸으로 협력하여서 균등되게 함이 좋다고 생각된다는 사회자 백영희 목사의 설명에 따라 각교회 보조와 개척교회 교역자 사례금 조절 위원 7명을 선출하여 전임하자는 백영희목사의 동의와 현창옥전도사의 재청으로 조절위원을 선정하니 백영희 목사, 백영침 목사, 신도범 목사, 이재순 목사, 송용조 목사, 박윤철 전도사가 선정되어 전임되다.
눅 10:2을 근거하여 목회자 양성원 운영과 가입 후보생에 대한 가입허락을 교학실의 서영준집사가 청원하다.
가입 청원한 김윤수 외 3명은 가입자격 기준에 자격이 있으므로 가입시키자는 이동화목사의 동의와 전성수전도사의 재청으로 가입 후보생으로 허락하다.
행21:25을 근거하여 오후 2시 까지 정회하자는 이원일 목사의 동의와 송종섭전도사의 재청으로 정회키로 가결하고 찬송가 30장을 합창하고 사회자의 기도로 정회하니 1978년 3월 7일 정오 12시 30분이더라.
1978년 3월 7일 정오 12시 30분에 정회된 공회가 찬송가 7장을 합창하고 회장의 기도로 속회되니 동일 3시 35분이더라.
눅 10: 2을 근거하여 목회자 양성원의 운영 및 경제문제에 대한 교학실의 청원에 대해서는 7명에 전권 위원을 선임하여 위임 의논케 하자는 송용석 전도사의 동의와 고재완전도사의 재청으로 전임위원 7명을 선출하니 백영희목사, 백태영목사, 백영침목사, 이재순목사, 송용조목사, 신도범목사, 박윤철전도사 였다.
고전 7:1∼2을 근거하여 1978년 3월 7일 오전공회에서 회장의 요청으로 낭독된 제2호 통지서에 대한 대책을 신도범 목사가 청원하다.
제2호 통지서 내용대로 공회적으로 채택하여 지키자는 전성수전도사의 동의와 정수암전도사의 재청으로 전원 거수로 찬성하여 채택하다.
딤후 4:9∼12을 근거하여 교역자 이동에 대한 결의를 신도범목사가 청원하다.
교역자 이동건은 교역자 이동에 대한 준비위원을 선정하여 이동에 대한 예비 결의를 준비위원에서 하고 이 결의를 공회에 제출하여 공회의 결정을 얻어 이동하자는 백태영목사의 동의와 신연범전도사의 재청으로 가결되다.
교역자 이동 준비 위원은 목사 전원으로 구성하고 해당 이동 교역자의 지방 공회 책임자도 함께 참석케 하자는 이재순전도사의 동의와 송종섭전도사의 재청으로 가결되다.
행21:25을 근거하여 1978년 3월 7일 오후 7시 까지 정회하자는 이종옥전도사의 동의와 전재수 전도사의 재청으로 정회키로 가결하고 찬송가 1장을 합창한 후 사회자의 기도로 정회하니 1978년 3월 7일 오후 4시 25분이더라.
1978년 3월 7일 오후 7시에 동일 오후 4시 25분에 정회된 공회가 임시 사회자 송용조목사의사회로 백태영목사의 고전 15:56∼58을 근거하여 설교가 있은 후 속회되다.
교역자 이동 준비 위원회에서 결의된 교역자 이동건은 백태영 목사는 사직동교회로 신도범 목사는 달산교회로 장 열 목사는 학장교회로 이동화 목사는 청량리교회로 신용인 목사는 동문교회로 김응도 전도사는 여산교회로 정수암 전도사는 시산교회로 김정식 전도사는 묘창교회로 천석배 전도사는 창북교회로 각각 이동 청원하니 전성수 전도사의 동의와 이재순 전도사의 재청으로 전원 거수로 그대로 수락하다.
요한 일서 4: 7∼8을 근거하여 각교회 예배시간의 통일과 먼 거리에서 오는 교인들의 편의에 관하여 의논해 주기를 신용인목사가 청원하다.
예배시간을 유년주일학교 예배는 오전 8시30분에서 오전 9시 30분까지 주일 장년 예배는 오전 10시에서 오전 11시 30분 내지 12시까지 주일 오후 예배는 오후 2시로 각각 예배를 통일 할 것을 전원 거수로 결의하다.
단 부산 지방 공회는 제외하다.
요한 일서 4:7∼8을 근거하여 먼거리에서 오는 교인들에 대한 편의는 다음 예배 시간까지 휴식장소를 제공하고 식사때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자는 박은석목사의 동의와 백태영목사의 재청으로 가결하다.
행21:25을 근거하여 이진헌 목사의 동의와 백영침목사의 재청으로 1978년 3월 8일 오전 9시까지 정회키로 하고 찬송가 30장을 합창한후 임시 사회자 송용조목사의 기도로 정회하니 1978년 3월 7일 오후 8시더라.
1978년 3월 7일 오후 8시에 정회된 공회가 1978년 3월 8일 오전 9시에 행15:21을 근거하여 회장 백영희목사의 설교가 있은후 속회되다.
설교내용 바울은 유대교적 구약교를 믿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신약 복음을 전할 때 한 영이요 또 한 진리요 한 약속의 근원이나 그 시기에 따라서 어릴때는 젖으로 장성하였을때에는 여문 음식으로 먹이는 것과 같이 상고시대의 영은 어리니 언제나 형식적인 것으로 가르치다가 신약시대는 신령한 면으로 가르친 것이 많다 실은 한 진리요 한 영이나 외관적으로 조금 차이가 있으니 이는 깨달음이 달라서 변동이 있었다. 이것이 잘못됨이 아니고 정상이다. 다른 성경에 보면 변론을 좋아함이라 하여서 정죄를 했고 또 성경은 변론을 하라고 하였다.
이렇게 변론을 하지말라 함은 다른 사람을 정죄적으로 정죄하는 것은 심판적이니 하지 말라고 한 것이고 변론을 하라는 것은 옳은 것을 찾기까지는 변론을 하라고 했다.
그런고로 교회는 자기 깨달음과 다른 사람의 깨달음이 다를때는 무조건 자기 깨달음대로 따라가는 것도 잘못이요. 이때 옳은 것을 찾아서 가기 위하여 반드시 변론이 있어야 한다. 교인이 이제까지 알고 있는 깨달음에 대하여 교리가 다른 사람이 가르치고 관계된 깨달음이 다를때는 다른 사람이야 무엇이든지 내 깨달음대로 간다고 하는 것이 망하고 죽고 잘못된 것이요. 또 자기 깨달음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깨달음을 따라감도 죽는 걸음이다.
또 이렇게 저렇게 깨달음들이 있으니 각자의 깨달음대로 가니 아무리 하여도 된다는 것도 죽는 걸음이다. 오늘 교회들이 실수를 많이 하고 있다. 그러니 교회가 부패하여지고 개인과 교파가 세계교회가 부패하여지고 있다.
이것을 힘쓰면 고집이라고, 안하무인 독성자라고 하고 이것을 하지 아니하면 원만한 사람 온유하고, 겸손하고, 화평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니 이는 다 악령적이다.
이것을 깊이 분석하면 자기를 애껴서 하나님의 진리를 희생시킴이요. 그래서 자기를 높이고 키움이다. 이것이 진리를 멸시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요 죄악이다.
그런고로 처째로 주의 할 것은 교리와 교리가 다를 때는 자기 교리를 세우기 위하여 하는 것도 틀린 것이요 다른 사람의 교리를 꺽을려고 함도 틀린 것 다른 사람의 교리를 따름도 틀린 것 아무 교리나 상관 없이 다 같다 해서 종합적 교리로 타협해 나가는 것도 틀린 것. 교리가 다를 때 교리 논쟁을 해서 자기가 깨달은 그 교리가 승리하기 위해 논쟁함도 틀렸다.
그런고로 논쟁하기는 하여야 하나 동기와 목적이 잘못되기 쉬우니 이것을 피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렇게 노력하는 데 논쟁에 잘못된 요소를 피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여러 가지를 말했다.
그런고로 ①정죄적으로 논쟁을 아니하여야 하고 ②자기의 주장을 세우기 위해서도 안된다. ③남의 교리를 꺽기 위해서도 안된다. ④이런 교리 저런 교리가 있다고 상식을 얻기 위해서도 안된다. ⑤모든 교리는 하나라고 상식적으로 알아도 안된다.
다만 변론은 꼭 하나만 위해 변론을 하여야만 한다.
어느 교리가 옳은지 바로 못 잡으면 자타의 구원이 실패되니 바른 것을 찾기 위해서 변론하는 것. 이것은 하여야하고 이것을 아니하면 거룩이 없는 사람 진실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된다. 아주 이것을 주의 하여야한다. 대개 학자들은 변론을 상식을 얻기 위해서 한다.
그런고로 혼합 혼돈으로 구별치 아니하니 신구교파에서 하는 합동 번역도 진리를 팔아 교파를 유리하게 하려는 무서운 죄인 것이다. 교리와 교리가 틀릴 때는 반드시 변론이 있어야 한다. 교인들도 서로 가르침이 다를때는 그것을 그대로 알면 거룩을 잊었다. 변론을 하여야 한다. 둘이 같지 아니하고 다르니 어찌됐습니까? 하고 정죄키 위함이나 쎄우기 위함이나 상식적으로 알기 위해서가 아니고 옳은 것 찾기 위해서 변론하여야 한다. 이것이 없는 자는 그자의 믿음 행위가 텁텁하고 분석하면 자기를 위해 믿지 생명위해 믿는 믿음이 아니다. 원만하고 신사라 양반이라고 세인이 평가하니 그것이 좋아서 하는 자이다. 구별하면 자기네끼리 원만한 해결이 안될 때는 성경을 가지고 변론한다. 성경이 이러니 어찌하느냐 하여 이래서 그 진실에 도달하기까지 옳은 것은 하나이니 그 하나인 거기까지 노력하다가 안되면 안된다고 그대로 두면 안된다. 옳은 것 찾기 위해 하다가 안되면 자기네들 보담 성령에 충만함과 진리 깨달음에 앞선 믿음의 선배들에게 이것을 물어서 믿음의 선배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참인 거룩하나에 도달하게 노력하여야 한다. 이것이 공회의 시발이요 시찰회나 노회나 당회의 모임의 시발이 깨달음이 일치 안되는 것을 그 시발에서 바로 잡기 위해 모인 모임이요 모임의 근원이 이것이다.
그런고로 믿음의 선배에게 이 문제를 들고가서 문의한다. 그 때에 믿음의 선배들은 자기 혼자로서는 능히 그에게 알려 줄 만한 사회성이 있는 깨달음과 역사성있는 깨달음을 바로 가르쳐 줄수 있는 깨달음이 있고 또 많은 사람이 깨닫고 있는 사회성의 깨달음이 자기 당대만 아니고 벌써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이 100년전에도 깨닫는 정통성 역사성이 있는 것이라면 그 사람에게 성경을 근거하여 가르친다.
우리교회들이 이것이 있으면 현재의 교회와 교파의 타락은 몰라서 타락할 정도는 없고 알고 고범죄로 타락했으면 하였지 모르고 감이 없다. 명백한 도리가 우리에게 와 있다. 서로의 교역자의 가르침이 다르다면 그것을 밝혀라 그래야 교인도 교역자도 산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깨달을 수 있다고 함이 아니다. 진리를 나타내는 방편은 이 방편으로도 저 방편으로도 가르칠 수 있다. 농촌과 어촌에 가르치는 방편이 다를 수도 있다. 진리는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그런고로 변론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 잘못된 정신으로 변론을 하면 이것은 우상 숭배자가 되든지 범성죄가 되든지 어느 쪽 하나가 된다. 요한1서 5장에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은 우상이 된다고 하였다 자기가 반드시 교리의 깨달음이 다를때는 그저 지나가지 말고 흑백을 가려야 하고 이를 연구하고 잘못이면 고쳐야 하고 또 충고를 받고 고쳤으면 그가 기뻐하였을 것이다.
그런고로 자기 것이 바로 됐고 딴 교역자의 것이 잘못되었을 때는 잘못을 동역자에게 반드시 말해 주어야 한다. 거기서도 변론이 나서 고치는 것이 된다.
교인들도 이 교훈이 바로 안되면 구원이 헛일이다. 백중에 일만 깨달았으면 그 중 하나만 바로되지 구십구는 병신이다. 매일 교리를 종별적으로 많은 교리를 깨닫고 깨닫는 강도를 점점 높아져 가야 한다.
교인들이 이것을 꼭 실행해야 하겠고 교역자는 이런교인이 있을 때에 그 사람이야 어떤 목적으로 말하든지 우리 교역자는 이런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교인이니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그 사람에게 충분하게 옳은 것을 납득하게 하고 만약 틀렸으면 자기가 고쳐야 하고 또 이것이 성경을 근거한 하나님 앞에서 담대한 바른 깨달음이 아니면 그때 굴하지 않기 위해 이런 말 저런 말로 변론하면 안된다.
또 하나님은 부분적으로 깨닫게 하신다 한 사람이 성경을 다 알수는 없다.
장터라고 했다. 모든 사람이 자기 것을 가지고 와서 바꿔 가지는 것이 장터이다.
그런고로 모른 다는 것이 수치가 아니고 바른 것이다. 인간으로는 다 모르니까 다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성구 찾아 말하겠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까 잘 모르겠으니 연구해서 그것을 말해서 들으면 됐고 만약 안들으면 그 사람이 신임하는 사람에게 가서 합동으로 깨닫게 해 준다. 이 분도 저 분도 그렇게 말하니 옳구나 하고 의심이 풀어지고 믿음생활을 바로하게 된다.
교인들은 교리가 다를 때 교역자와 변론이 있어야 하고 후배는 선배의 가르침이 다른 것이 있으면 변론이 있어야 잡것을 제거하고 옳은 것 즉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것만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고 변론을 해야 한다.
그러니 연구할 때 성경 말씀만이 여기에 대한 최종의 법전과 지식이니 성경을 근거해야 하고 성경대로 깨달음을 결정하여야 한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회개하여야 하지 사함을 못 받는다. 옳은 줄 알고도 그 무엇따라 삐뚤어진 것과 옳고 바른 깨달음보다 자기 입장과 교파의 형편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지 그것 때문에 옳은 것을 깨닫으려함 보다 그것이 더 커서 성령을 업수이 여기고 그것따라 가는 것이다.
세상교회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니까 그 음성은 곧 주가 가르친 도리이다 우리가 찾는 것은 주가 가르친 도리를 찾고 있고 우리의 노력은 이 도리대로 살려함이다. 이 두가지 뿐이다. 교인도 교파도 이것이여야 한다. 이것이 있으면 타락하지 아니한다.
개인이나 교회나 교파나 주의 음성을 듣고 주를 따라가는 것 외에 자기 위신이나 이것 때문에 주의 음성 곧 옳은 도리를 따라가는 것을 자기 때문에 자기 교파나 자기 교회 때문에 외면하고 제외하고 올바른 도리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고 상대하고 옳은 교리를 외면하면 그것은 마귀자식이요 사망에 속한 것이다. 과거에는 성령에 충만하여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끝남이 된다.
교인과 교역자사이에 변론, 선배와 후배사이에 변론이 있어야 하고 진가를 알려 주는 최종적 법전과 원형적 지식은 성경이다 중요하니까 두 번 거듭 말한다 자타가 그러하다 교리에 변론이 없으면 위험하다 교리보담 교파 교리보담 위신이 앞서면 사망에 속했으니 멀리하여야 하고 따라가면 죽는다. 우리 전부 다 해도 하나님 한 진리를 대항 못한다. 한 진리의 중량을 당할 수가 없다.
설교가 끝난후 빌립보 4:10-15, 벧전 5:2 및 유다서 1:16을 근거하여 교역자에 대한 대접을 당분간 금하기로 하였던바 종전대로 계속 할 것인지 재고 하실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원한다는 유차연 전도사의 청원이 있었다.
이제까지 교인이 교역자를 개인적으로 대접한 일을 일체 금하도록 하여 나오기를 얼마동안 지나왔다 교인이 교역자를 대접하므로 그 교인이 생존하신 인격과 같은 신성가진 하나님을 교인이 교역자를 섬기는 그 일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그 면이 많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귐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와 사귐이 된다고 했는데 당분간 일체 금지하여 왔다.
교역자와 교인사이에 처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의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섬기는 정신에서 한 것이 그 교역자와 교인이 가까워졌고 그러니 교인이 생각 할 때는 자기와 가까워졌는 사람이라 교역자도 생각할 때에 그 사람이 나와 가깝다, 이것이 있으니 가깝다, 이것이 없으니 멀다하여서 교인은 그 교역자를 교역자는 그 교인을 이용하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람을 도용케 하였다. 이로써 질투가 나고 하여 폐단이라서 금지하였다.
이로 인하여 교회에서도 폐단이 일어나고 교역자는 그 사람의 사람이 되어 그 사람이 하자는 대로 그 사람이 전부는 아니라 할 지라도 많은 영향을 준다.
하나님의 인도대로가 아니고 동서로 기울려 자기 갈길을 못가니 교인으로 교역자 버리고 교역자로 교인 버려 마지막으로는 교회 버리게 되니 금지 하였다. 교역자는 단순하고 깨끗하고 조용하여야 한다. 조그마한 물질 때문에 또 인정에 끌려 그 사람의 사람이 되니까 이것이 없으니 이날까지 조용하고 유익을 많이 보았다. 그 후에 폐단은 사람은 인격을 대상으로하여 인격을 섬기게끔 되어졌으니 교인이 교역자 섬김에 정성이 가면 그 교역자 말이 은혜로 들리고 하나님의 대리자로 섬기니 교인이 하나님과 가까이 되나 금지하여 놓으니 섬김이 이방으로 기울려지니까 교인들의 성의가 교역자에게 가야 하는데 이방인으로 가서 속화되어서 손해가 많다. 이 점에서 제안한 것으로 안다.
벧전 5:2에 더러운 이는 하나님에게 유익된 것 외에는 다 더러운 이익이다. 우리는 하나님 좋도록 기쁘도록 유익하도록 중매 역할을 하는 것이 교역자이다. 이것을 잊어 버리고 자기 유익되게 하니 금지 하였고 유다서 16에 말씀같이 교인들에게 자기 유익되게 할려니 교역자가 교인에게 아부하게 된다. 어떤 교회는 돈 많은 장로에게 옳은 말 못하게 되고 거슬림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책망하나 내게는 못한다 하여 악의 세력을 북돋우게 하는 일이 있다.
이렇게 교역자가 교인의 사람이 되고 교인이 교역자에게 만만하게 사욕화되면 대접하는 것이 안된다. 대접을 바로 할 때에 이 대접은 하므로서 교인과 교역자 사이의 인격적으로 결합이되고 나가서 하나님과 결합되니 좋고 자연히 인격 교제가 이방으로 안 흘려가니 좋다. 당단점이 있으니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버려야 한다.
이것을 잘못하면 금하고 잘하면 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모여서 교인들이 대접하게 하고 교역자는 이를 잘 조절해서 구원에 유익되게 하든지 해제하여 보고 난 뒤에 다시 금지 하든지 하자고 결말을 지웠다. 교역자가 교인의 대접을 조절할 수 있는 교역자가 행정에 능한 사람이다. 여기서 결의하더라도 자유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니, 나는 구별치 못하니, 실패하기 쉬우니, 나는 조절 못하니 일체 금지하겠다고 자유로 할 수 있고하니 이점을 생각하고 결의하자는 백영희 목사의 설명이 있었다.
거수로 가결하니 조절할 수 있으니 해제하여 실험하자고 가결되다.
신도범목사의 사회로 성례를 거행한 후 백영희목사의 축도로 폐회하니 1978년 3월 8일 정오 10분이더라.
주후 1978년 3월 8일 회장 백영희목사 서기 신도관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