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8 15:25
제사 우상
1984. 9. 16. 주새
본문: 시편 106편 28절∼30절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함을 인하여 재앙이 그 중에 유행 하였도다 때에 비느하스가 일어나 처벌하니 이에 재앙이 그쳤도다
여기에 기록된 제사는 죽은 사람을 제사하는 제사입니다.
과거에는 지금으로부터 벌써 몇 천 년 전에 그때에 하나님 앞에 제사하는 일이 있었고 또 죽은 사람을 위하여 제사하는'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개인 적으로 집집마다 제사하는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철학에서 나온 것인데 철학자 중에는 사람을 이분 해 가지고 상체와 하체 아래 둘로 나누어셔 상체는 죽고 난 뒤에 혹 몇 년 가고 또 사람에게 있어서 어떤 사람은 몇 백 년도 가고 몇 천 년도 간다, 그 하체는 죽는 그때부터 다 흙으로 돌아가서 없어지게 된다 하는 그런 사상에서 나온 것인데, 일반적인 그런 소인들은 그저 몇 해 가다가 없어지고 또 아주 그 모든 면이 도덕면이나 지능면이나 또 행동 면이 탁월한 그런 위인들은 그 상체는 오랫동안 간다 하는 거기에서 그 지역마다 유력한 공로자라고 다 존경을 받던 그런 사람은 그만 죽고 난 뒤에도 그를 숭배하는 그런 제사 제도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일본에도 제사라는 제사가 있으나 그 제사는 개인을 제사하는 제사가 아니고 다 그들이 생각하는 데로 위인들 덕인들 또 그 나라와 백성들에게 공로가 있는 그런 사람들을 간추려서 몇 명 사람을 제사하면서 차차차차 숭배해 나가는 그런 일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도 그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제사하는 제사를 하고 사람에게 대해서는 제사하는 일을 하나님이 금하셨는데 이방 사람들이 그 위인이라고 생각하는 지금 뭐 말하면 석가모니라든지 노자라든지 공자라든지 하는 그런 뭐 유력한 사람들, 또 지방마다 그 향교라 해 가지고서 그 지방에 유력한 인물들을 제사하는 그런 일이 유교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그런 제사인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 사람을 따라서 그들이 죽은 자를 위하여 제사하는 그 제사하는 데에 같이 제사는 안 했을지라도 그 제사는 제물을 그들이 먹으므로 하나님을 격노케 해서 큰 재앙을 받았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사람 비느하스가 그때에 모두 제물 먹은 자들 또 그로부터서 음행한 그런 자들을 다 엄중히 처벌했을 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그 자리에서 멈추게 됐습니다.
사람은 택자와 불택자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잘 믿든지 못 믿든지 세상을 떠날 때에 그 영과 혼이 하늘나라로 가게 됩니다. 영과 혼이라면 곧 마음인데 이 마음은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는 신령한 물질로서 영물과 비슷하기 때문에 마음이라 하는 것은 세상을 떠날 때에 영이 마음을 입고 낙원에 가 가지고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고로,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서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대기하고 있는 곳을 낙원이라 그렇게 말을 하고, 또 불택자들은 세상에서 살다가 죽을 때에 그 영과 마음이 죽어서 음부에 가 가지고 예수님의 재림하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각각 자기의 그 영과 마음이 예수님과 함께 와서 자기의 그 몸이 육이 어떤 원소에 분산돼 가지고 있든지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그 모든 몸을 다시 부활시키고 영과 마음은 그 몸 안에 내주해서 부활한 사람이 됩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영육이 합해졌을 때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때 사람이 돼 가지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예수님의 공로를 믿지 못한 사람들. 택함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부활할 때에 심판받기 위해서 심판의 부활 곧 사망하기 위해서 사망의 부활을 받고 또 택함을 입어 중생하고 신앙생활한 사람은 잘 믿었든지 못 믿었든지 그 사람은 부활할 때에 그 생명 영생하기 위해서 생명의 부활을 받는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부활할 때에는 바다에서도 죽은 시체를 내주고 땅에서도 내주고 또 공중에서도 내주고 뭐 여러 가지 어디 있든지 자기가 가지고 살던 그 고기 덩어리의 모든 요소는 다 주님이 부활시켜 가지고 그 영육이 합한 한 사람으로 다 부활을 시키십니다.
이래서, 택자들은 부활을 받아 가지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니 이것은 벌써 지공 지성의 공심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면제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면제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심판을 받아서 예수님의 대속을 힘입어서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길든지 짧든지 했지마는 그 신앙생활한 자로서 그리스도화된 자가 얼마나 있는지, 그 그리스도화된 것만 그때에 다 부활할 때에 부활하고 그리스도화되지 안한 그 기능들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아서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현실 현실에서 중생된 영과 마음과 몸이 예수님의 이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을 벗지 아니하고 현실을 살았을 때에 그 현실에 해당된 그 기능은 죽지 않는 영생으로 완전히 구속함을 받아서 영생에 들어가게 되고, 아무리 믿는 사람이라도 현실에서 이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안하려고 하니까 세상에 압력도 많고 유혹도 많고 여러 가지 그 박해의 희생이 많으니까 그 어려움을 벗기 위해서 일시 편리로 예수님의 대속을 벗어 사죄 받은 자가 다시 죄를 범하고 칭의 받은 자가 다시 자율대로의 행위를 하게 되고 하나님으로도 화친 하나님을 자기 안에 주로 모신 자가 주를 버리고 딴것을 주로 모시나 자기가 주가 되거나 해 가지고서 그 현실을 통과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그것들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부활할 때에 이 형체는 꼭 같은 부활을 하지마는 그 안에 기능은 천 층 만 층도 넘습니다. 그 층하가 있는 것을 고린도전서 l5장 40절 이하에 쭉 내려보면 땅위의 이 형체가 많으나 그 형체의 차이는 많은 거와같이 우리 부활의 기능 차이가 그렇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태양도 한 형체요 땅에 있는 바닷가에 모래알 하나도 한 형체인데 그같은 형체를 가지고도 있고 형체라는 이름도 같지마는 그의 영광이 다른 거와 마찬가지로 부활은 다 같이 했지마는 부활한 자의 영광은 크게 차이가 있다고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불택자들은 죽은 영과 죽은 혼과 죽은 몸이 예수님의 재림으로 심판을 받기 위해서 부활해 가지고 행동록에 기록한 대로 자기 행한 대로 자기 마음이나 생각이나 한번 가졌던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공 지성의 심판 앞에서 심판받아 가지고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택자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고통이 심하고 사람 중에 제일 불행한 그 세상을 살고 있다고 해도 죽었다가 다시 부활 후 하나님의 심판받아 가지고, 유황 불못에 간 것 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낫습니다.
또 택자들은 이 세상에서부터 예수님을 믿다가 하늘나라에 가면 하늘나라에 부끄러운 구원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자기 공적이 불타면 구원 얻었으나 불가운데에 구원 얻은 거와 같다고 또 부끄러운 구원을 얻는다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택자들은 하늘나라에 가서 아무리 수치스러운 구원을 얻는다고 해도 이 세상에 제일 좋은 세상보다는 낫습니다. 또 불택자들은 아무리 그 세상에서 불행하다 할지라도 유황불 구렁텅이보다는 지금 이 세상이 낫습니다.
이래서, 이 불택자들은 음부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대기하고 있고, 또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낙원에 가 가지고 심판을 대기하고 있는데 택자들이 대기한 그 심판은 그리스도의 심판이고 또 불택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그 심판은 하나님의 공심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라는 것은 세상을 떠나면 다시 세상에 자유로 오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 그때는 신불신자가 다 살아나지마는 예수님의 재림전에는 살아나는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대속하실 때에 자던 성인들이 일어나고 무덤이 열리고 하는 그것은 구약에 미래적 그 예약의 예수님의 대속을 믿고 바라 봤던 자들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완전히 사망의 그 탈을 벗은 것을 가리켜서 말하고 많이 일어나서 거룩한 성으로 들어갔으나 도로 무덤으로 들어가고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를 기다리고 있지 그 안에 돌아다니면서 육지 그 물질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영육으로 되어 있는 것인데 영이니까 영계를 가서 활동하지마는 물질로 되어 있는 이 물질계는 물질로 되어 있는 육을 입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피조물 가운데에 사람같이 이렇게 특수한 지음을 받은 자는 없습니다.
천사는 영체뿐이요 그 사람은 영체와 물체의 그 양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누구든지 세상을 떠났으면 다시 오지 못합니다. 불신자도 오지 못하고 신자도 오지 못하고 다 예수님의 재림하시면 심판 받기 위해서 부활을 하는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아서 영생하기 위해서 살아나는 것이고 불신자는 불택자는 부활해서 심판받아 가지고 영원한 사망의 유황불못으로 옮겨지기 위해서 부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음부와 낙원에 대한 것을 그 실상을 우리에다가 끌어다가 보여 준 것이 있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가 그가 내나 음부 와서 기다리는데 그가 세상에서 호화롭게 지낸 그것이 그 마음은 호화로운 마음과 교만한 마음은 하나도 변화 되지 안하고 형편만 변했기 때문에, 세상에 호화롭게 지낸 그것이 음부부터 그때부터는 오히려 불행하게 지내는 사람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자유를 두시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그 필요성을 느끼고 평가하고 원하는 그만치 하나님은 주십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는 그 사람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얼마나 소원이 됐든지 소원된 것만치 주었고, 예수를 믿지마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자기에게 그렇게 필요 없다고 세상에 있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취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은혜를 소원도 안하고 취하지도 안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하늘나라 갔지마는 하나님이 저희에게는 참 아주 빈약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 은혜도 빈약하고, 세상에 있는 것을 좋아했던 것은 세상을 떠날 때에 다 두고 가기 때문에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유황불 구렁텅이는 모든 사람들이 땅에 있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만 필요하지 다 자기 힘으로 살고 자기 것 가지고 산다고 생각했고 하나님도 필요 없고 하나님의 그 은혜도 필요없다고 하는 것이 그들이요 하나님을 필요없다 하나님을 없다고 무시한 것이 일생 동안 생각했기 때문에 상당한 그 보응으로써 이제 하나님이 전혀 손대지 않는 그 세계,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없는 세계, 하나님의 그 지으신 것이 물 한 방울도 거기에는 없는 그 세계에서 영원히 살게 되기 때문에-지옥은 어떤 곳이 지옥인고 하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은 것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지옥이기 때문에 그곳의 고통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더기도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도 없는 곳이 유황불 구렁텅이기 때문에 그는 참 그 고난이 세세토록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신불신자 간에 세상을 떠나면 다시 오지 못합니다. 홍포 입은 부자가 자기는 출입 못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사로를 보내가지고 그 형제들에게 좀 소식을 전해 달라고 말했지마는 여기에서는 그곳에 갈 수가 없다고 그렇게 밝히셨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는 물 한 방울의 그 자유도 소유도 하나님의 은혜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홍포 입은 부자이니까 세상에서는 얼마나 많고 부자고 호화롭고 모든 것이 구비했지마는 그것이 일단 생명이 끝나서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는 물 한 방울도 가지고 가지는 못했고, 다만 옛날 세상에서 호화롭게 잔치하던 그 영광심 교만심 그것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영영히 지옥의 제일 밑창에 있는 사람, 어떤 사람이 지옥의 밑층에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느냐 하면은, 다 같지마는 세상에서 그 사람이 자기 욕심대로 해서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누린 그 습관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제일 세상에서 잘 사는 사람이 제일 고통을 누리는 사람이라 그렇게 평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 자유로 올 수 없다는 것을 성경에 말했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 대해서 '그 복술이 사무엘을 불러올리니까 사무엘이가 올라와 가지고서 말을 하지 않느냐? 꼭 사무엘을 천사와 같이 그렇게 말을 했으니 그 사무엘이 참 사무엘이냐, 어떤 거짓부리 사무엘이냐?' 그렇게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성경을 잘 보지 안해서 그렇습니다.
사무엘은 살아서도 하나님에게만 복종한 사람이지 복술에게 복종한 사무엘이 아니고 또 그 마신에게 복종하는 사무엘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무엘의 과거의 생애를 본다든지 그를 비판한 하나님의 말씀을 본다든지 사무엘은 하나님에게 순종하기를 그 이상 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 그런 사람인데 그 사람이 어떻게 마귀에게 호출당해 가지고서 복술에게 호출당해 가지고 올라갈 수가 있으며 또 사람은 갔다가는 다시 못 온다고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홍포 입은 부자에게서 말씀했는데 거기에 올 수 있는가? 그거는 마귀가 저거끼리 연극하는 것이기 때문에 올라온 사무엘이 아니고 마귀입니다. 마귀의 작용들이요 귀신들의 작용들이요 사무엘은 거기에는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혹 생각하기를 '제사는 부모에게 제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선을 안 할 수가 있느냐' 그렇게들 말을 합니다. 네, 부모의 혼령이 와서 먹지 안할지라도 부모의 혼령이 온다면 우리는 하나님 다음으로 우리에게 은인은 부모입니다. 세상에서는 그 삼강을 말한 때에 그 나라의 왕과 스승과 부모를 제 셋째로 뒀지마는 하나님께서는 첫째로 두어서 제 오 계명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모의 혼령이 온다면 의례히 해야 되지마는 부모의 혼령은 오지를 못하고 부모의 혼령을 일생동안 유혹시키던 따라 다니면서 유혹시키던 귀신 그것이 옵니다.
그러기에, 제사 지낼 때에 어떤 사람들은 '그 흔적이 보인다. 또 꿈을 꾸면은 자기의 선조가 와 가지고서 분명히 와서 현몽을 한다.' 그런 수도 있습니다.
마귀란 놈이 우리에게 주는 그 마몽(魔夢)이 우리에게 얼마든지 있습니다.
마귀가 주는 마몽(魔夢)이 있고, 성령이 주는 영몽이 있고, 또 주사야몽(晝思夜夢)으로 된 그런 잡된 꿈이 있고 그렇게 있습니다. 꿈은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몽은 우리에게 있지마는 다급할 때에 이 영몽을 받는 수가 혹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미쳐 몰라서 자기가 둔한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 자리를 떠나라 하는 그런 일은 혹 있습니다. 저도 그런 것을 한번 경험한 일이 한번 있었습니다.
6·25 때에 제가 기도를 하고 잠깐 잠이 드니까 이제 그 꿈에 네가 여기에 있으면 지금 너를 잡으러 오는 사람이 있으니까 빨리 일어나서 피하라 이라기 때문에 그래 일어나 보니까 꿈도 비슷하고 뭐 생시도 비슷해서 그때 ○○○목사가 그 남청년으로서는 그들에게 주목당할 만할 사람이 ○○○집사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래 ○○○집사를 소리해 가지고서 '이런 그 이상함이 있는데 이 자리를 떠나자' 하고서 그 자리에 떠나 가지고서 한 십 분 걸어오니까 총소리가 나는데 그 공비들이 내려와 가지고서 첫째 나를 찾더라고. 찾아서 예배당에 없으니까 사택에 오고 그래 그 닥치는 대로 사람들에게 물어 가지고 조사를 했으나 '벌써 여기에 아랫방에 여기에 주무셨는데 어디로 갔는지 없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잡지를 못하고 그래 나와 가지고 사흘 동안 그 면이 인민 공화국으로 그렇게 돼 가지고 있었습니다. 6·25 지난 뒤입니다.
또, 말 들으니까 한 상동 목사님이 출감해 가지고서 9월 l7일날 출감해 가지고 평안에서 잠깐 머무는데 한군데 모두 모여 가지고 출옥 성도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으니까 꿈에 '이 자리를 떠나라. 너거를 잡으러 온다.' 해서 퍼뜩 깨 가지고서 모두 일원들이 그 말하고 그 자리에서 피해서 다른 방으로 어디로 다른 집으로 옮겨서 가고 났더니마는 그때에 소련군이 거기에 출감한 성도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그 자리에 와 가지고서 체포할라 하다가 하나도 잡지 못하고 떨궜다는 그런 말을 제가 한 상동 목사님 설교 가운데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뭐 그런 것은 다 영몽이니까 그렇지마는 영몽도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안하니까 심령이 어두워서 둔하니까 그렇게 보여지는 것이지 성경에 다 그래 해 놨기 때문에 우리는 영몽이라도 꿈일 때에는 성경을 가지고 해석을 해서 아, 영몽이 이 하나님이 보여준 것이라도 성경에 이렇게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성경으로 내가 믿는 것이지 꿈 보고 믿는 것은 아니라 해서 어쩌든지 꿈이라 하는 것은 마지막으로 부인을 해서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꿈을 인정하다 보면 그 악령은 우리보다 지혜로와서 우리의 미래를 다 사람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인인 관계 일은 알기 때문에 미래의 이 미래사를 우리에게 꿈으로 알려 줘서 딱딱 들어맞습니다. 딱딱 들어맞으면 '이제는 내 꿈은 영락없이 들어맞는다. 내 꿈은 성경과 같기 때문에 내 꿈이 말하는 건 뭐이든지 그대로 해야 된다.' 그렇게 열 번 꾸이 가지고서 인정을 딱 시키고 난 다음에 열 한 번째 그 사람을 완전히 멸망 할 꿈을 딱 꾸일 때에 이것도 꿈이 맞는다 해 가지고서 해서 그 사람을 멸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꿈은 부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세상을 떠나면 다시 오지 못하는데, 살았을 때에 그 사람을 데리고 항상 유혹시켜 가지고서 요리 끌고 조리 끌던 그 마귀가 그 사람에게 대한 것을 환하게 다 알기 때문에, 왜? 그 사람을 일생 동안 요리 조리 미혹의 길을 끌어 가지고서 멸망시키는 성공을 한 그 악령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대한 내용을 다 안다 그 말이오. 알기 때문에 그런 걸 자손들에게 혹 알릴 때도 있고 점쟁이를 통해서 알릴 때도 있지마는 그것은 자기부모의 영과 혼이 아닙니다.
영은 죽은 영이고 혼도 그 혼은 아니고 벌써 음부에 가 가지고서 출입을 못 하게 딱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사람마나 천사가 담당한 천사들이 따라다닙니다. 한 사람에게 마다 한 천사가 따라다니고 한 사람에게마다 한 마귀 혹은 수십 마귀 수천 마귀도 따라다닙니다. 군대 사귀는 그 수천 되는 군대 사귀가 그 사람에게 따라다녔습니다.
이렇게 이 세상은 악령의 조직적인 세계요 하나님의 조직적인 세계기 때문에 이 가운데 끼어 있는 우리들인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들은 마귀와 죄와 사망이 왕노릇하지 못하기 때문에 호령만 치면 그들이 다 물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옆에서 침노하고 유혹하기 때문에 환영만 하면 들어오고 환영하면 마귀가 들어와 가지고서 성령을 배척하면 성령은 쫓겨 나가야 하는 것이 인생들인 것입니다.
왜 성령은 하나님인데 인간에게 쫓겨나가는가? 그것은 사람들에게 유한한 자유지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려고 하기 때문에 유한적 자유나 자유를 줘 가지고서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되어져야 되지 강제적으로 되어지면 하나의 그 가치 없는 동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 자유성을 살리는고로 우리에게는 영접해야 들어오고 배척하면 나가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고린도전서 8장 7절에서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식은' 이 지식이라 말은 우상에 대한 지식을 말합니다.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의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요 다음에 지식을 말했습니다.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우상의 집이라 말은 혹은 절이라든지 그렇지 않으면 제사 지내는 그 집이라든지 제사 지내기 위해 가지고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모여 있으니까 그때는 그 집이 우상을 섬기는 집이 됐습니다.
왜 부모 제사 지내는데 우상이라 하는가? 부모를 우상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 그 부모는 죽었으니까 믿었으면 낙원에 가 있고 안 믿었으면 음부에 가 있지 오지는 못하는데 그 사람을 유혹시킨 악령이 와 가지고 거기에 와서 모든 행사를 하고 또 그것은 하나님이 오지 못하는 그 죽은 자를 위하여 제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죽은 자를 하나님의 음부에나 낙원에나 머물도록 해놨는데 자유로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벌써 그 실체의 권위를 그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 이상으로 두기 때문에 그것이 다 우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과거 왜정 말년에 황거 요배라고 천황 폐하에게 우리 조선 나라에 있으면서 동방을 향하여서 절을 하는 것은 그것은 곧 천황 폐하가 동경에 있으니까 거기에 절을 하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벌써 그걸 신격화했기 때문에 그것이 우상 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사 참배는 안했지마는 그것도 내나 우상 숭배의 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거는 벌써 하나님이 정한 그 이상으로서 사람들이 과대평가 해 가지고서 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아, 저 사람 보니까 우상의 집에서 먹는 거 보니까 저 사람도 우상의 제물을 먹네.'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안심하고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러면 요 멸망이라는 것은 우상의 제물 먹는 것이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멸망을 자취하는 일입니다. 시편 6 편에도 죽은 자에게 제사하는 그 제물을 먹고 그 우상의 제물을 먹고 하나님의 재앙을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약한 자가 멸망하였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 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요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지식을 가지고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바로 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제가 ○○교파에 있을 때에 ○○교파에 유력한 ○○○ 목사님 이 계셨는데 다른 분들은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먹고 안 먹고 그런 논단이 없었습니다. ○○○목사님과 저와의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논단이 있었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안 된다 하고 먹으면 된다 하고, 그 목사님은 먹으면 된다 하고 그 목사님은 우상의 제물을 먹었습니다. ○○○ 목사님 저는 먹으면 안 된다고서 그라고 서로 그것이 일치를 보지 못하고 그만 서로 나눠지고 끝났습니다.
제가 대구 가서 집회할 때에 우상의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한 시간 강하게 역설을 했습니다. 이랬더니마는 대구 시내에 있는 장로교 장로님들이 다 모였습니다. 장로님들이 다 모이고 권사님들이 다 모여 가지고서 단합을 해 가지고서 여기에 어떤 조사가 하나 와 가지고 집회를 하면서 우상의 제물 먹는 것이 죄라고 정죄를 하고 이와 같이 한다고 하니까 어떤 자인가 가 가지고서 집회를 못 하게 하겠다고서 그라면서 대구에 있는 장로님들과 권사 전도사 여전도사 전도 부인들 그런 분들이 모여 가지고 왔습디다.
와서 내게 대해서 상당하게 좀 해를 가하려고 이렇게 왔었는데 그때에 제가 대구 서부 교회라 하는 그 교회에 가서 집회를 했는데 서부 교회에, 거창 있을 때입니다. 거창 있을 때에 그 서부 교회 ○장로님이라는 그 장로님이 정미소를 하고 돈도 많고 한 장로님인데 그 장로님이 별명이 호랑이 장로님입니다. 이래서 거기에 있는 장로들이 와 뭉쳐 왔었는데 이 호랑이 장로가 아주 웅크리고 '왜 우리 교회의 강사를 뭣 때문에 너희들이 정죄하고 그따위 할라 하느냐? 성경에 가르치기를 우상의 제물 먹으면 안 된다고 나는 이 시간 배웠는데 그게 옳은데 왜 그러느냐?' 그래 가지고 시비가 있었습니다.
시비가 있었었는데, 제가 사석에서 전도 부인을 보고서 거기에 대해서 한 두 시간 남아서 말을 했습니다. 했는데 대구에 있는 신자들은 전부 우상의 제물을 다 먹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와 가지고서 우상의 제물을 대구에서도 먹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고 먹지 않는 그 교회들로서 되어졌습니다.
그러기에, 약하나 강하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리대로 말하는 것은 반드시 진리가 이기지 진리가 폐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마산에 가서도 집회할 때에 ○○○목사님이 거기에서 사회를 했는데 그때에 공과가 나온 것을 그 공과 공부를 좀 시켜 달라고 해서 그 공과를 보니까 그 공과에 구원에 대해서 '이 모든 성현들, 예수님의 도가 들어오기 전 이천 모든 성인군자들 이런 사람들의 다 구원이 있다 그들은 다 구원 얻었다, 예수님 안 믿어도 구원 얻었다. 왜 그러냐? 그때는 양심 시대기 때문에 양심에 저촉 되지 않는 것은 구원 얻었다'하는 그 공과가 '예수님을 안 믿어도 공자나 맹자나 석가모니나 다 이런 위인들은 구원을 얻었다' 하는 그것으로서 공과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공과는 장로교는 통일 공과로서 공과 하나뿐이었습니다. 그 공과가 되어 있어서 그 공과를 보고서 제가 ○○○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이것은 도무지 하나님 앞에 큰 진노를 끼치는 말인데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않고는 구원이 없는 건데 그들이 양심이라 말하지마는 그들이 하나님도 몰랐고 하나님이 정하신 구세주도 몰랐고 또 저들이 죄를 누구가 대속해야 된다는 것도 전연히 몰랐는데 어찌 구원이 있을 수 있느냐? 이거는 안 된다.' 이렇게 말을 하고 그 공과를 가르치지를 안하고 그대로 가르치지 말라고 마산 문창 교회에서 제가 그랬었습니다.
이랬는데, 그래 ○○○목사님이 그 뒤에 내가 총회 가서 말하겠다고. 나는 그때에 총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그때는, 그때가 해방 전인가? 해방 후입니다.
해방 후입니다. 그랬는데 그것이 총회에 가 가지고 그때는 모두 합동 총회인데 총회 가 가지고 그 말을 말해서 많은 시비들이 있었으나 그 때에 연구의 제목으로 이 제목은 되기는 했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은연 중 그거는 가속도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래서, '예수님 오시기 전의 사람들은 다 구원에 이르지 못했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구원을 얻지 그 외에는 구원이 없다' 하는 것은 그것은 그대로 결정된 것이 아마 우리나라에도 전국적으로 다 그것이 결정이 그대로 돼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나는 뭐 우상의 제물 안 먹으면 된다, 제사 지내는 집에 가 가지고서 우상의 제물이 아닌 것이야 그거는 제사상에 놓지 안한 것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 하는 거. 네. 놓지 안한 것 먹으면 됩니다. 또 그 제사 지낸 집에 가 가지고라도 안 놓은 거 그런 거 먹으면 됩니다. 또 제사 지낸 데 가서라도 모두 다 봉사해 주는 것도 제물 만드는 것 아니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잘 깨달을 것은 '네 지식이 너는 아주 칼덩어리 같은 날카로운 그런 길을 너는 재주가 있고 너는 강건하기 때문에 그 길을 솔솔솔 잘 떨어지지 안하고 건너가지마는 약한 자들이 너 위험천만의 길을 따라가다가 떨어져서 죽으면 그 책임은 네게 있지 않느냐?' 그와 같이 하는 것이 말입니다.
그러기에, 얼마 전에 그때 ○○교회의 교인이 아마 ○○○라는 그 집사 같습니다. 그분이 와 가지고 나한테 묻기를 '제사를 지금 어째야 됩니까? 지내야 됩니까, 안 지내야 됩니까?' '네, 제사는 원리적으로 안 지내야 됩니다. 그 제사는 부모를 봉사하는 위선이 아니고 그거는 악령의 법에서 미혹돼서 그런 것이지 죽은 자에게 제사하는 그 제물 먹은 사람들이 다 재앙 받았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그런 것은 제물을 먹는 것이 제단에 참예한 거 되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그렇게 또 말해 놨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때 그 사람한테 말하기를, '이런 박해가 있습니다.' 이래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진보적인, 진보적인 범죄는 해도 후퇴적인 범죄는 하지 말아라' 그 사람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무슨 말입니까?' '네가 제사 지내는 것은 죄인 줄 알고 처음에는 제사를 열을 지내던 네가 차차차 거기에서 좀 힘이 덜드는 거와같이 해서 아홉 지내다가 여덟 지내다가 다섯 지내다가 둘 지내다가 하나 지내다가 하나도 안 지내는 그런 네가 앞으로 신앙으로 나아가는 그 회개하는 그런 그에게 진보적인 그런 방편으로 네가 지내는 것은 그걸 지낼 수 있지마는 후퇴적으로 과거에 하나 지내던 거 둘 지내고 둘 지내는 거 서이 지내고 하나 지내던 것을 이제 안심하고 지내고 이렇게 회개 없이 하는 것은 그것은 죄이니까 버려야 된다.' 하는 것을 제가 그렇게 말했더니마는 그 ○○○라 하는 그분이 그때에 그 말씀을 듣고서 자기는 참 감화를 입어 가지고 감탄해서 여기에서 돌아와 가지고서 우리 교회서 아마 지금 ○○○씨라고 아마 집사도 됐을 것이고 분구도 해서 구역장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원칙적으로 목표와 결정을 딱 해놓고 그라고 난 다음에, 우리가 늑막염 치료할 때에도 단번에, 고름이 나쁘지 마는 빼내면 죽기 때문에 그 고름을 서서히 그 건강에 따라서 빼내 가지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회개하는 것도 서서히 이렇게 해서 아무 파동 없이할 수만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거리낌이 없이 모든 사람이 주님으로 더불어 화평되는 이 일에 대해서 도움이 되고 피해가 되지 않는 그런 방편을 써 가지고서 우리가 죄를 회개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보편 생활의 보편성의 그 방편을 취해 가지고서 보편성의 신앙생활이 신앙적으로 강하고 고도적으로 이렇게 성화되어져 가는 것이 유익되다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l0장 l8절에 보면 고린도전서 l0장 18절에 보면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우리 안 믿을 때에 이방인이 안 믿는 사람 아닙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제사하는 것은 다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이지 위선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그러면 이 제사하는 거는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된다 말입니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이러기에 우리는 주님을 대항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님에게 소속해야 되고 주님에게 복종해야 되고 주님 안으로 피난해야 되지 주님에게 뭐든지 거슬리는 일은 우리가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제사에 대해서, 제사가 우리나라에는 언제 왔느냐 하면은 고려 말년에 들어왔습니다. 고려 말년에 그때에 안회헌 선생이라는 그 선생님이 중국 역사를 보고서. 중국에는 이 제사가 시작됐는데 어떻게 됐는가 하는 그 역사를 들추어 보고 거기에서 힘을 얻어 가지고 본받아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 주나라의 주나라의 문왕이라는 그 아주 성왕이 있었는데 문왕의 아들 이 주공입니다. 무왕의 형제가 주공입니다. 그래서 문왕 때에 그때에 그 나라가 때단히 아주 가난하게 됐습니다. 처음에 귀덕을 하니까 덕이 귀하다 해서 귀덕을 정권자가 귀덕을 귀덕 위주의 정치를 하니까 모두 다 전부 덕인이 되려고 이제 벼슬 사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래서 할 수 없어서 그 귀작 귀작 정치를 했습니다. 벼슬이 귀하다 해서 귀작 정치를 하니까 아, 전부 글 읽는 사람뿐이고 이라니까 당체 생산이 안 돼서 가난해졌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어서 이제 귀부정치를 했습니다. 부자를 귀하다는 것으로 귀부정치를 하니까 그만 재산은 늘고 하지마는 사람들에게 삼강오륜이라는 도덕이 완전히 박멸돼져 버려서 그래서 그 나라를 걷잡을 수가 없어서 전부 참 악인들만 내놓고, 뭐 삼강오륜이 끊어지니까 부모도 모르고 형제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니까 나라가 망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주공이라 하는 분이 하나 연구를 해 가지고서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다시 오지는 못한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나 이제 그 부모가 온다고 이렇게 하나 가정을 해 가지고서 그분이 하나 꾸며 놓은 것이 제사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때에 제도를 꾸미기를 '왕은 제어천하고' 왕은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고, 또 공후 백작이라고 하는 모든 벼슬 줄에 있는 사람들은 '제어 삼묘하고' 삼 대 제사를 지내고, '서민은 숙소어제어부모하라' 서민들은 자기 자는 방에서 단위 그 부모에게만 제사를 해라 하는 그런 제도를 해 가지고서 죽은 부모가 죽은 것이 아니라 제사를 모아서 운감을 하고 이라기 때문에 만일 너거가 산 부모에게 고려장을 하고 하면은 그 부모가 돈 못 번다고 고려장하고 하면은 그 죽은 부모가 뒤에 그 신이 돼 가지고서 너희 가정을 망치니까 너희가 산 부모를 그렇게 박대하면 그 부모가 죽어 귀신이 돼 가지고서 너희 가정을 망치는 것이니까 이제 죽은 부모에게 제사 지내라. 죽은 부모가 그 혼령이 와서 굶고 다니고 그 부모가 혼령이 너희를 축복을 해야 축복이 되고 축복 안 하면 멸망받는 것인데 그 죽은 부모에게 제사해야 된다. 이러니까 죽은 부모에게 제사하게 되니까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 그러면 그 자녀에게 생사화복을 주관할 수 있다. 이게 퍼져 가지고서 그 뒤에는 조상 단지니 그런 것이 되어졌던 것입니다.
이래서 고려 말년에 고려장 이 폐풍을 없애기 위해서 안회헌 선생이 중국에서 이 제사 지내는 제도를 끌어와 가지고 우리나라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당대 제사 지내는 사람은 벼슬 줄이 아닌 쌍놈이고 또 삼 대 제사 지내면 양반이고 벼슬 줄에 있는 양반이고 왕은 제어천하고 이랬는데, 그 일이 가속도로 번식 됐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은 다 자기가 청년 때에는 부모에게 앉아서 돈도 벌도 안하고 자꾸 뭣만 갖다 달라 하니까 부모를 고려장 해 버리면 이래 싶었지마는 고려장 한 그 사람이 몇 해 지나고 보니까 제가 고려장 당할 때가 돼 놓으니까 그만 가속도로 해서 '부모에게 제사를 잘 지내야 된다.' 이래서 그 자기 자녀가 어릴 때에는 그저 제사 지낼 때도 가오리로 말하면 요만한 가오리로 사 가지고 이러다가 이제 차차 자식이 커지니까 나중에 요만한 거 가지고 지내면 저도 요만한 거 밖에 못 얻어먹을 터이니까 시장 볼 때에는 떡 아들을 데리고 가 가지고서 가오리도 제일 큰 거 이런 거 아주 비싼 거 이런 걸 제가 제사장을 크게 봐 가지고서 거기에 와서 제사를 지내고 '꼭 부모에게 우리 복되고 망하고 흥하는 것이 부모의 이 신에게 있다 부모의 귀신이 든다.' 이래서 그때 사람들은 말하기를 '너거가 부모에게 산 부모에게 이렇게 네가 불효를 하느냐? 나이가 많으면 귀신이 된다. 산 부모가 귀신이 되는데 귀신이 돼도 지금 능력은 없지마는 내가 죽어 가지고 귀신이 돼 가지고 너희 가정을 망치는 가 안 망치는 가 봐라.' 이래 가지고 살아 있으면서 죽어 가지고 가정 망치고 흥할 것을 제재 할 수 있는 듯이 이렇게 다 모두 다 오전(誤傳)이 이렇게 가속도로 늘어 나 갔습니다. 이래서 제사라는 제도는 아주 가속도로 그렇게 흥왕 됐습니다.
그러고, 이제 서로 인사를 하면서 그때는 참 미개한 때입니다. 인사하기를 떡 뭐라고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하면서 '여보시오. 그 제사는 몇 위나 모십니까? 몇 위나 모십니까?' 그때는 거짓말하는 것이 드러나면 죽입니다.
이래서 '몇 위나 모십니까?' 이라면 머리 숙여 가지고서 '예, 단 위를 모십니다.
단 위를 모십니다. 부모 제사만 지냅니다.' 그라면 '어 어험, 그런가?' 암만 나이가 많아도 '내가 자네, 하네.' '예' 이것이 과거의 우리나라입니다.
왜? 벼슬줄이 양반입니다. 벼슬은 착취하는 것이 벼슬인데 벼슬 있어야 양반이고 벼슬 없으면 쌍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벼슬한 사람이 하나 있으면 그 사람의 그 정권의 권세를 가지고서 저 서민들의 착취를 해서 그 시골 산골에 한 벼슬자가 나왔으면 그 일 군을 거둬들이고 삼 군을 거둬들이고 마구 거둬들여 가지고 착취를 해서 그래서 지주들이 참 아주 윤택하게 산 그런 폐풍들이 있었습니다.
이러니까, 이라니까 이제 족보를 고쳐야 되기 때문에 '고쳐야 되겠다. 안 됐다.
나는 여기 있어 가지고는 안 되겠다 다른 데로 뚝 떠나 버립니다. 이놈의 압제받는 여기서 떠나 버리자' 가 가지고서 김가가 저 이가에게 갑니다. 이가의 동네에 가 가지고서 거기에 살면서 그래 가서 가 가지고서 뭐 종질도 하고 이래 뭐 살면 아, 그 모두 와 가지고 뭐 하세 합니다. '이 사람아 자네가 그 어떤 사람인가?' '예, 저는 그저 참 뭐이 돌 김가입니다. 돌 김가 돌 김가입니다.' 돌 김가라니? 어디 김가에 돌 김가가 있는 가? 우리 김가는 양반인데' '예, 저는 저거 할아버지가 이렇고 저렇고 남의 족보를 잠깐 들어서 아니까 요래 잠깐 소개를 해 가지고 '이렇고 저렇고 이래서 그렇습니다. 끼일 만한 데 끼여 가지고서 '그만 그래 돼서, 그만 다 없어지고 나 하나밖에 없이 이래 됐습니다.' '아하 그런가. 아이구! 그래.' 보니까 항렬을 찾아보니까 우리 아재비가 되는구만' 이래 가지고서 그래 족숙이라고 족숙, 친족이라는 족(族)자하고 아재비 숙(叔)자. '아, 족숙 어른' 이라면서 이래 가지고 그만 양반이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역사가가 말하기를 정직한 역사가가 말하기를 '우리나라에 제 성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할 만치 다 변성했다' 왜? 이 제 성을 가지고서 양반 노릇하는 것은 다 망해 버리고 천대받던 것이 다 변성 해 가지고서 이제 흥왕해서 인간들이 번식됐기 때문에 이 통계를 말하면 교만한 자, 이거 제사 많이 지낸 자는 다 망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 디든지 가서 종손 종손 잘된 자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종손은 다 망합니다. 왜? 그 제사 많이 지내기 때문에 망한다 그거요.
이래서, '다 제 성 가지고 있는 것 아니다.' 이래 가지고 떡 그라면 인제 그래 가지고 떡 족보를 넣었다 말이오. 족보를 넣었으면 다른 데 인사하러 갑니다. 그 저거 본 동네는 못 가지요. 딴 데는 떡 가 가지고 인사 하면 '제사는 몇 모나 모십니까?' '예, 삼 대 모십니다.' 이라면 이 당 대 모시는 것은 그만 거기다가 코패를 해야 됩니다. '아이구 그렇습니까? 네, 저는 당 대를 모십니다.' 이라면서 그만 대접 안 하면 안 됩니다. 그 때 같이 정권의 세력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들어서 동양을 망쳤습니다.
그래 가지고 고려 말년에 고려장 하는 것을 안회헌 선생이 제사 제도를 가지고 그것을 폐지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그 고려장을 면제 한 거는 제사 제도가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성경 말씀에는 위법이 되고 범죄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안 해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사람이 제사는 죄가 되기 때문에 부모의 영혼을 위해서 제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사는 죄가 되니까 안 지내지마는 제사만 안 지내니까 다른 사람들이 알기를 저들은 위선을 알지 않는 불효막대한 도라 종교라 해 가지고 기독교가 박해를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성경에 말하기를 부모를 공경하라 했기 때문에 어쩌든지 산 부모에게 효성해야 됩니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부모에게 자기 성심성의를 다 기울여 죽은 부모에게는 제사는 못 지내니까 그 무덤이 있으면 자주 가서 한번 성묘도 하고 한번 그 묘가 어찌 되는가 돌아보기도 하고 또 그 부모에게 대한 그런 좋은 유언이 있으면 그걸 자손들에게 우리 부모가 이렇게 이렇게 좋은 덕이 있는 것을 말해서 자손에게 가르쳐 주고 또 그것을 다 교훈해주고 이라면서 산 부모에게 성심성의대로 다 봉양하고 이렇게 하면 제사도 안 지내도 모든 사람이 말하기를 '그래 죽고 난 다음에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후에 어떤 뭐 잔치하는 것보다 '불여생전일배주라' 안 믿는 사람 그랍니다. 불여생 전일배주라' '죽고 난 다음에 제사를 아무리 걸판지게 지내는 것보다도 살았을 때에 술 한 잔이 낫다'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오. 그거는 안 믿는 사람들이.
이러기 때문에, 살아 있는 부모에게 효성을 했으면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그 사람은 참 부모에게 효성이 있어. 살아 있는 부모 위해서' 그러면 제사는 안 지내고? '제사는 그 부모가 오는 것이 아니고 부모를 유혹시켰던 마귀가 와 가지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사를 나는 못 지낸다.' 하면은 '그 뭐 제사 그거야 와서 운감하는지 안하는지 아는가? 다 소용없는 일이지. 그 제사하라기 때문에 그 제사는 다 헛제사라 하지 않는가?' 소용없다고 쌓고 살아서 '부모에게 효성 있는 게 제일이지 그 뭐 소용 있나?' 이래 가지고 살아서 부모에게 효성하는 거 다 좋아합니다.
그 살아서 부모에게 예수 믿는 사람이 효성하지 안하고 부모가 어서 죽기를 바라고 고려장을 안 해도 고려장 할 만한 그런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제사를 지내더라도 지내 가지고서 그 부모의 혼령이 와서 망친다는 그런 거짓거리의 권위라도 인정해 가지고 그런 자들은 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의 법을 지키는 것이요 사망의 법을 피하는 것이니까 믿는 사람들이 부모에게 효성을 해야 됩니다.
이래서, 추석이나 명절 있으면 그래도 가고 자주 가서, 부모에게 효성 하는 것은 제일 부모에게 산 효성이 어떤 것이 산 효성이냐 하면은 부모가 그 부모가 원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제일 효성입니다. 부모에게 영광을 돌리고 욕이 돌아가지 안하고 모든 사람이 그 자식을 인해서 부모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런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제일 효성이요, 둘째로는 자기 신체가 건강해져 가지고 부모가 항상 염려하는 그런 염려가 없을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둘째 효성이요, 유교에서는 유교에서는 둘째를 첫째로 삽니다. 첫째로 삼아 가지고서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이래 가지고서 그 자기 신체를 건강치 않으면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이라 이래 가지고서 '손톱도 부모에게 받은 것인데 깎아 내버리면 안 된다, 머리털도 부모에게 받은 것이기 때문에 털을 깍으면 안 된다.' 이래 가지고서 삼 년 부모가 죽은 시체를 앞에 놓고서 그 다음에다가 제사를 삼 년 동안 흰죽 먹으면서 시모를 하고 나면은 '저 사람은 시모한 양반이라' 해 가지고서 평생 울궈먹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새로 말하면 대학이니 그 아주 높은 학벌을 받는 것 보다 낫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그 나라가 망할 것 아닙니까? 그래 가지고서 삼 년 동안 낯도 씻지도 안하고 그 털도 깎지도 안하고 손톱도 깎지도 안하고 이래 흐르면 삼 년 동안 시무할 때에는 살생하면 안 된다고 그 내나 불교에서 나온 것 하나 섞인 것인데 이가 떨어지면 이를 딱 죽이는 게 아니라 이를 잡아서 위에다가 넣습니다. 얹어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서 삼 년 동안 송장 앞에서 시무를 하면은 '저 사람은 양반이라.' 효자비를 세우면 벌써 효자라 하면 모든 사람에게 권위가 있고 다 인정을 했기 때문에 그래 가지고 그걸 울궈 가지고 평생 잘 살았습니다.
이러니까, 저는 열 세살 먹을 때에 이 양반이 어떻게 미운지 열세살 먹을 때에 학교에서 학예회라고 했는데 학예회 할 때에 하나씩 갖다 놓고 내나 거기에서 연설을 제게 맡겨서 그래 가지고 거기에는 그 웅양학교로 됐는데 그때는 우리 면에는 빈민이라서 학교 없었습니다. 연안 이씨네가 아주 양반입니다. 뭐 그 부근의 재산 다 그리 다 도지로 다 들어옵니다. 이래 가지고 그 하는 것이 삼십 분 동안 하는 것인데 얼마 했든지 두 시간 동안 해 버렸어. 그만 양반 욕을 얼마나 해댔든지 하고 나니까 나오니까 어렴풋이 말하기를 '쟤가 어디 얘라 쟤가 어디 얘라.' 그래 가지고 할 애비의 뼈 가지를 이렇게 뭐 삼 대 사 대 울궈 먹어가지고 착취해 가지고 이렇게 하니까 그 자손이 망해. 부자들은 양반들 자손은 다 망할 것이라고 고만 그렇게 그때 어떻게 했던지 그렇게 말을 했어요.
그래서 이거 제사라는 것은 이렇게 된 것이기 때문에 어쩌든지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핍박 안 들으려면 참 산 제사를 드려야 됩니다. 산 부모에게 효성을 해서 첫째는 부모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참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첫째 효성이요, 둘째로는 조심해서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안하고 자기 몸을 깨끗케 강건하게 하는 것이 이것이 둘째 효성이요 셋째 효성은 자기의 생계가 빈약하지 안해서 자기 생활에 그저 조반석죽이라도 생활에 곤란하지 안하고 자기 생활이 이렇게 풍부하도록 하는 요것이 셋째 효성이요. 넷째 효성이 부모를 음식을 대접해서 부모의 그 식물, 부모의 거처 부모의 의복, 또 부모의 그 쾌락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거 요것이 넷째로 효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선조의 무덤에 자주 가서 보는 것이 좋고 또 산 부모에게 어쩌든지 효성해야 됩니다. 그저 자기의 힘 있는 대로 자기 정도를 지나치게 하지 말고 물질을 줘도 씨와 양식으로 딱 분류했기 때문에 자기가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것은 씨라고 말했고, 자기가 사용할 것은 양식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자기가 사용할 양식 중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해 가지고서 부모를 봉양하고 마음을 편케 하고 생각을 첫째는 '주님 위해서 내가 이렇게 죄 지으면 주님에게 욕 돌아간다.' 그 다음에는 '이제 내가 이러면 아무것이 자식이라 부모에게 욕 돌아간다.' 이래서 주님과 부모를 생각하면서 행위를 조심 할 것이고 또 주님과 부모를 생각하면서 자기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강건하게 할 것이고, 또 주님과 부모를 생각하면서 자기가 경제에 빈곤한 사람이 안 되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고 또 주님을 생각하면서 부모를 봉양하는 이런 일도 해서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말쟁이라도 말쟁이에게라도 욕을 얻어 먹지 안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져야만 합니다.
제가 그때 우리 교회의 지금 권사님 된 분들인데 그런 분들이 내원사에 가 가지고서 그때 있었습니다. 내원사 절이 아니고 입구에 거기에 무슨 암자라든가 어디 내나 중은 중인데 중 집에 가 가지고서 밥을 기식을 하고서 거기에 있었는데 제가 한번 가서 일주일 있기 때문에 그때는 젊을 때니까 방문하려고 갔었습니다. 가 가지고서 그 집에 가서 방문을 하면서 그 집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중 집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이랬는데 그때는 내가 그것을 우상 섬기는 집이라는 그것을 나는 생각지 못하고 벌로 했습니다. 그 뒤에 내가 주님 앞에서 책망을 받고 회개를 했습니다.
해서 그 뒤에 거기에 내원사 있는데 가 가지고서 그 골짜기에 가 있으면서 절 집에 가 있지 안하고 산장 여관이라 산장 여관이라 하는 그 여관에 가 가지고 제가 한 달 동안 있었고 절에 가 가지고 있는 그걸 피했습니다. 그 때에 우상의 집에서 네가 먹으면, 우리는 고소한 물건은 식사는 안하니까 고소 안 한 밥을 주십시오 하니까 그들이 그래 주기는 주지마는 그 집에서 먹으니까 '아, 저 사람들 중들 집에 있으니까 내나 우상 제물 그것도 먹어도 되는가보다' 이래 가지고 다른 사람 먹게 한 그것이 가책이 돼서 그 다음부터는 제가 거기에 가지 안하고 모두 그 집이 좋다 하는 거기에는 안 가고 여기서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그네 세상에서 양심이 약한 사람 지혜가 지식이 모지라는 사람들에게 미끄러지는 그런 유혹을 주지 않도록 우리가 조심을 해야 되겠고, 이러니까 그 추도식을 말합니다. 추도식 이것이 내나 제사를 제사 그것을 하나 이름을 바꿔 가지고 하는 것이 추도식인데, 이 추도식도 추도식도 제사 지내던 사람은 추도식 하는 것이 괜찮습니다. 이거 또 잘못 들으면 안 됩니다. 제사 지내는 사람은 추도식하는 사람이 괜찮습니다. 그러나 추도식 그것이 차차 변개돼서 부모의 죽은 날이면 부모 죽은 그날을 하지 말고 한 사 일을 앞당겨 가지고서 부모 죽었을 때에 그때에 수고한 사람들을 청하고 또 부모와 연령이 같은 그런 친구들을 청해 가지고서 음식을 해서 사 일 전에 대접을 하고 말하면서 '우리는 이 제사를 지내지 안하고 소사 그 대사니 그런 걸 지내지 안하기 때문에 그 별세한 그날은 어느 날인데 지금 나흘 앞당겨서 그 어른들 한번 좀 모시고 싶어서 모셨습니다. 그때 우리 부모네들 출상할 때에 그때 수고한 어른들을 모시고저 모셨습니다. 이래 가지고 대접을 약소 하지만 대접할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 대접은 하면서 그 추도식도 안 하고 추도식도 안 하고 그들을 대접하는 것으로 바꾸어지고, 또 그것이 나중에 그러다가는 부모 죽은 그것을 기념해 가지고 그리 하지 말고 나중에 가서는 그저 자기가 손 있는 대로는 그 신년을 맞이하든지 또 해가 다해 가든지 그 해의 중간을 한 유월달이 되든지 하면은 부모의 친구도 만나보고 자기 이웃들도 만나 가지고서 이와 같이 이래 지금 대접하고 서로 화친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은 좋습니다.
이것은 진보적으로 진보적으로 하는 추도식이요 그거는 회개하는 회개의 회개를 위한 회개적인 추도식인데, 이거는 하지마는 그것을 후퇴적으로 이제 그 추도식이 나중에 변해서 제사가 되어지고 제사가 변해서 자꾸 이와 같이 더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그런 일이 되어지는 것은 안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쩌든지 우리는 그 일계명으로부터 사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것이고, 이제 오계명으로부터 십계명까지는 인간에게 대한 것인데 인간에게 대해서는 제일 우리가 힘써야 될 것이 뭐이냐 하면은 그 부모에 대해서 위선하는 일에 제일 힘쓸 것을 오계명에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인인관계에 대한 계명은 첫째 계명이 오계명이다 그래 오계명은 그 사람으로서 은혜받은 자에게 사은을 하는 행위이고 일계명은 하나님께 은혜받은 하나님께 대한 사은의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 알아서 이리저리 치우쳐서 어두움으로 들어가지 말고 또 우리는 공연히 제사드리기 싫으니까 이거 좋게 되었다 하는 그런 자가 되면 그 사람은 제사를 지내야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부모에게 불효하기 위해 제사 안 지내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기 때문에.
그런고로 죽으면 제사 못 지내게 됐으니까 제사 대신에 할 일이 무엇이냐? 우리는 무덤에 자주 가봐서 수해가 나는가? 어짜는가 보호해야 될 것이고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는지 모르지마는 돈을 부지런히 벌어 가지고 할 수만 있으면 토장을 하도록 하고 그 뭐 토장이나 수장이나 화장이나 다 한가지이지마는 할 수 있으면 토장을 하도록 하고 그 화장이나 이런 것을 하지 않도록 이래 하고 또 토장 해놓고는 자주 가 가지고서 부모에 대해서 부모가 내게 대해서 은혜 베푼 것도 생각하고 또 부모가 근심하지 않도록 부모가 근심 하지 안하고 부모가 좋아하고 부모가 하늘나라 가 가지고도 예수 믿는 사람이 하늘나라 가 가지고도 부모로 인해서 자기 자녀로 인해서 하나님에게 부모가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이렇게 해서 어쩌든지 우리가 하나님 다음에는 부모를 모시는 그 위선하는 일을 하는 것이 그것이 성경적입니다.
그래 인인관계는 제일계명이 오계명입니다. 신인 관계는 일계명이 일계명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도 그저 제사를 뭣 때문에 끊느냐? 그런 것을 참 아주 끊기 싫고 이러나 부모를 위해서는 끊기 싫은데 하나님 앞에 계명에 위반되기 때문에 끊는 사람이 되어져야 되지 '아, 제사장 볼라고 하고 하니까 돈 많이 들고 하는데 제사 끊어 버리니까 편하다' 하는 그런 아주 악독한 독사같은 그런 인간의 정신 가지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저도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제사 문제를 가지고서 삼 년을 신강했습니다. 삼 년을 신강해 가지고서 양사방 학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한 사람에게 물어보고 또 한 학자에게 물어보고 양사방 물어 가 가지고서 비로소, 안회헌씨가 끌어왔다는 것과 고려 말년에 됐다는 것과 그 중국에서 주공이 그렇게 제도를 처음에 창설했다는 것과 그때에 귀덕하다가서 이제 벼슬 살 사람이 없으니까 귀작했다가 귀작하니까 도무지 돈 벌 사람이 없어서 귀부 했다가 그래 가지고 다 망하게 돼서 그것을 거기에서 다시 사람들을 계몽 시켜서 살리기 위해서 그 제사라는 제도를 주공이 그렇게 묘하게 꾸며내 가지고 그런 것인데, 세계에는 제사가 없습니다.
제사가 없고, 모두 다 위대한 인물들 그 철학에서 나온 위대한 인물들은 다 죽어도 천 년도 있고 그 혼이 있다 해 가지고서 위대한 인물들만 제사 하는 그것입니다. 내나 우리나라로 말하면 고을 고을마다 향교라고 향교에서 그 제사 지내는 것은 위대한 인물들만 제사하는 것이고 그 나라에서 제사 지내는 것 있고. 일본 나라에도 그 맛스리라고 하는 그 제사는 전부 위대한 인물들만 제사 지내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랬는데 해방 직후에 위령제라 해 가지고서 우리나라에서 그 전쟁 갔던 그 혼령이라 해 가지고서 제사 지내는 거 일본서도 그 위령제라는 것을 지내고 그때부터 개인 제사라 하는 것이 해방 후에 일본 나라는 시작했고 우리나라는 고려 말년 때부터 시작했고 그러다가 삼 대가 되고 사 대가 되고 오 대가 되면 그때 오 대부터 못 와서 그 혼령이 늙어서 못 오니까 그때는 묘에 갖다가 차려놔야 된다고서 그래 그 묘사를 지내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을 알고 우리는 우리가 산 부모에게 효성 안 할 라면 제사라도 지내야지 제사 지내는 사람보다 더 악한 자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어쨌든간에 하나님 다음으로 인간에게 대해서는 부모를 제일 귀중히 이렇게 봉양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삼강에서는 임금을 첫째로, 그다음에는 스승을 두째로, 셋째로 부모지마는 성경에는 부모를 첫째로 위를 잡았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