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7 16:31
재림에 대해서 일곱가지
본문 : 베드로후서 3장 10절∼13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이 말씀을 우리가 여러 주일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치반 중간반들도 그렇게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일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덧붙여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유는, 사람들은 악령의 유혹을 받아서 자꾸만 이 지상 현실주의로 기울어지고. 심령이 어두워지니까 눈에 보이는 거 귀에 들리는 거 접촉되는 이런 데만 다 인정을 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등한히 하는데,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재림이 중요하기 때문에 거게다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안하고 이 세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 이루어진다고 보증하는 말씀을 다시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일곱 가지 기억할 것을 성경에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들이 다 벌써 외우고 있는 줄 압니다. 주일학교 학생들도 거의가 다 외우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외우는 것이 첫째 중요하고, 다음에는 이 사실을 제가 의심 없이 확실히 믿는 것이 중요하고, 다음에는 이대로 될 것이니 여게 대해서 소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이대로 실행을 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것이 다 중요하지만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실상이 이루어지지 아니한다면 소용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무엇인가 잘못된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일곱 가지 중에 첫째는 노아 때와 같은데 그때 사람들이 자기의 현실에 의식주 가정 사업 모두, 자기의 거처 이런 데다가 다 주력을 하고 노아 홍수로 멸한다는 그 말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다 관심을 가지지 아니한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렇지를 아니했고, 땅 위에 온갖 뭐 의식주를 다 하는 것이니까 중요하고 생사가 중요하고 자기의 온갖 직책과 사업이 중요하지만 이런 것보다 홍수 심판을 제일 중하게 여겼고 그의 전생활을 보면 홍수 심판을 준비하는 그 일로 모든 일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그 노아의 생활은 홍수 심판을 면하기 위한 전 생활이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이것은 둥한히 하고 온갖 방편으로 온갖 자기를 위하는 일을 마련했지만 그 모든 것이 다 홍수로 전멸됐습니다. 이것을 첫째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매일 매일 생활이나 우리의 정신이 예수님이 불심판 내리신다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내가 이 세상에 이런 저런 모든 생활, 관계 맺어 있는 모든 사건 모든 종류 그런 것들보다 예수님의 재림의 불심판 여게 대해서 제일 우리가 관심을 깊게 가지고 있는지 자기를 저울질해서 비판해 보면 알 것입니다. 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불교 모양으로 세상을 버리는 염세주의가 아니고 꼭 같은 세상 생활을 하면서 산 채로 승천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아처럼 오늘도 이런 저런 분야에서 다 가정 생활 또 사업 의식주 이거 다하면서 그런 것을 다 주님 오실 때에 불심판에 멸망받지 않기를 위한 그 준비로. 그런 일들을 하면서 그 일에서 준비하고, 또 그 일을 이 준비를 하기 위해서 일하고. 이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노아와 같은 사람이니 이 불심판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기를 시험해서 내가 전 언행심사나 정신이나 생활이나 내 모든 마음이 예수님의 불심판에 거게다가 중점을 두고 내가 생활하고 있는지 이것은 둥한히 하고 헛된 데에다가 중점을 두고 하는지 자기 판단으로써 불심판에 멸망 받고 안 받을 것은 자기가 스스로 알 것입니다.
또 다음에는 이 천지가 이와 같이 남아 있으니까 예수님의 재림의 불심판을 사람들은 무시하고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순종자와 거역 자가 판별되는 그 기한까지 둬 두지, 판별하시는, 그 기한이 차면 그것은 다 하늘과 모든 땅에 있는 모든 우주에 있는 것은 다 불사르기 위해서 보존해 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것도 우리는 이런 줄을 알고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어디 가든지 안 믿는 사람과 달리 어떻게 크고 견고한 것을 봐도 '저것도 다 주님 오시면 불탈 것인데 저것이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만드는, 의인을 만들고 악인을 만드는 데에 소용된 것들이다' 하는 것을 언제든지 기억하고 거게서도 자기는 의를 마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견고하고 강하다 할지라도 '저거는 영원 불멸의 것들이라' 하면 그 사람은 성경을 부인하는 사람이요 착각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사정없이 노아 홍수 때에 멸하시는 거와 같이 불로 멸하시지만 멸하실 때까지는 하나님의 그 사랑과 긍휼은 한없습니다. 그래서, 사랑과 긍휼을 발표해서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했습니다 회개한 의인들을 볼 때에는 이렇게 곤욕스러운 이 세상에 하루 두는 것이 천 년같이 지루해 보이고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볼 때에는 이 천 년이 하루와 같이 너무 세월이 빨리 지나가는 데 대해서 마음에 탄식이 되어지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은 갑자기 옵니다. 사람들이 뜻하지 못할 때에 이 예수님의 재림이 오고, 예수님의 재림이 임할 것을 밤낮으로 고대하면서 혹 참 이상한 무슨 소리만 나도, 이상한 징조만 보여도 '아,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지 않는가, 이렇게 늘 깨어서, 이 중심에서. 여게다가 모든 중심을 기울이고 여게다가 중요성을 두고. 이 외의 것은 그렇게 가치로 삼지 안하고 여게다가 전 가치를 두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도적같이 오지 못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말씀하시기를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날이 감자기 임하지 안하고 이날을 인해서 얼마든지 충분히 준비를 한 고요한 때를 주시고 주님이 심판을 내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재림이 임하면 그때는 하늘과 이 땅은 다 불에 타서 풀어집니다. 하늘에 있는 모든 하늘을 말하는 것은 이 우주의 공간들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고 체질들을 말하는 것은 이 우주라는 공간. 속에 이런 체질 저런 체질들이 있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런 거는 다 불타서 완전히 원소로 변화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그것을 새로 만드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게 불탈 때에 하나님께서는 불타는 가운데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순종해서 만든 것이 의인데 이 의는 하나도 불타지 않습니다. 노아 홍수가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돼서 멸망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만이 참되다고 인정하고 그분에게 속하여 그분의 말씀을 신청하고 산 자에게는 노아 홍수가 자기의 신앙생활 한 것이 홍수로 말미암아 효력을 나타냈고 그것이 도리어 은혜와 복이 되어졌지 손해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주님의 이 재림의 불심판을 신실히 듣고 여게다가 중점을 두고 그렇게 떨면서 준비한 사람들은 이 불심판이 들어서 저희의 준비한 그 공로의 효력을 나타냈지 추호도 손해는 보이지를 못합니다. 그런 것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의인은 불이 사르지 못 한 것을 보였습니다. 불냄새도 나지 않는 것은 그런 것은 하나의 계시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의만이 구원을 얻는데 이 의를 마련하는 데에는 어떻게 마련하느냐? 그 마련하는 방편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마련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행실은 어떤 것을 가리킴인가? 구별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하나님의 제시하신 이 말씀, 계약의 말씀이요 교훈의 말씀이요 또 생의 법칙의 말씀인데,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법칙에 맞나 안 맞나, 하나님의 계약에 어찌 되느냐, 하나님의 교훈에 어찌 되느냐. 여게 맞추어서 사는 것을 가리켜서 거룩한 행실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맞추어 사는데 거룩한 행실이라는 이 거룩이라는 데 대해서는 한 번 그렇게 거룩을 만들었으면 그 일에 대해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죽는 날까지 심사하다가, 하나님의 이 구속의 도리를 법전으로 삼고 근거를 해 가지고 항상 주님 앞에서 구별한 것을 또 구별해 보고 구별한 것을 또 구별하고, 시간이 있는 대로, 자기의 힘이 돌아가는 대로 바울과 같이, 구별했으나,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이 구별했으나 이로써. 나보다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가서 설 터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안심할 수 없다' 해 가지고 항상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게 있으면 알려 달라고 호소하는 것과 또 자기 힘으로써 잘못된 게 있는가 살펴서 늘 모든 자기의 전 생애를 살피면서 가져가고 주님 앞에 물으면서 가져가고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가져가고 두려워하면서 가지고 주님 앞에 서는 것이 사도 바울의 영감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경건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을 가리켜서 경건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경건도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닌 것을, 디모데전서 4장 7절로 8절에 보면 '경건을 연습하라' 이랬습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도 단번에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을 연습하고 또 하나님을 위하는 일을 해 놓고 난 다음에는 그것이 혹 잘못됐는가 한 번 다시 재심사 하고 또 연습하고 심사하고 이렇게 경건도 연습으로 이루어지고 거룩도 연습으로 이루어집니다. 단번에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실지의 생활에서 체험하는 것은 자기가 다른 말 보다도 설교했다면 설교야 그거야 물론 하나님 말씀을 보고 정성껏 했기 때문에 자가 생활 중에 가장 바르고 옳은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설교도 설교하고 난 다음에 다시 심사하면 잘못 된 게 있어서 자기가 스스로 자복을 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고 다시 고치고 또. 그 다음에 다시 설교를 그 설교를 새로 했는데, 이만하면 완전이째? 설교하고 보니까 또 이제 잘못된 점이 있어서 고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체험하는 바요 우리의 생활인 것입니다.
자기가 무슨 말도 내가 요렇게 하면 요 말에는 틀림없다.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요렇게 답변을 했으면 되겠다' 했는데 고렇게 답변을 하고 나서 막상 그 뒤에 생각하니까, 답변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준해서 답변 하기 전에는 그만 하면 됐다 생각했는데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답변을 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 보니까 '아이구, 내가 요 면이 모자랐다. 요 사랑면이 모자랐다. 화평면이 모자랐다. 경건면이 모자랐다. 겸손면이 모자랐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그런 이제 양식을 주는 면이 모자랐다' 자꾸 또 뭐이가 모자라서. 고때 맞쳐 가지고 또 새로 자기가 거룩을 만들어 가지고 했으면 이제 완전인가? 또 완전이 아닌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준해서 실행을 하면 실행한 거만치 자신이 변화가 됩니다. 자신이 성화가 됩니다. 성화가 되기 때문에 자신이 변화되니까 변화 전 모든 사색과 변화 후 사색과 사색이 다릅니다. 자기가 성화 이전에 모든 감각과 비판과 평가와 자기가 성화되고 난 다음이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디까지 자기가 거룩을 좋아서 거룩과 경건 이 일을 계속한다 할지라도 성도들은 마지막에 세상을 떠날 때에는 자기에게는 더욱이 고칠 잘못된 것이 많고 고쳐진 것은 별로 없어서 마지막에는 무익한 종이라고 하는 그것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겸손으로 주 앞에 서게 될 것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사도 바울이 나는 죄 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도 바울이 우리보다 삐뚤어진 게 많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분은 자꾸 그렇게 거룩과 경건을 연습하니까 자신이 거룩하게 성화가 되어지니 이전에, 성화되기 전에 모든 평가한 것 과 성화되고 난 다음에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과거의 모든 것이 다 잘못됐다고 그렇게 통계를 맞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생활을 할 때에, 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생할을 하는 것이 무엇으로 인해서 하는가?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 불탈 그 사실을 생각하면서 거게다가 가치를 두고 거게다가 중요성을 두고 우리가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양면을 가지고 있는. 옛사람이 아직도 남아 있지 또 신령한 우리의 성화된 자아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육체의 자아가 있습니다. 육체의 자아가 있기 때문에 옛사람이 아니고라도 우리는 영이 있고 또 마음이 있고 몸이 있는데. 성화된 마음의 기능도 있지만 성화 될 미성화의 마음의 기능도 있고, 또 성화된 몸의 기능도 있지만 미 성화의 몸의 기능도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미성화의 부분과 성화의 부분은 항상 서로 다툼이 있는 것이 우리의 생활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한 행실을 중심해서 할라고, 경건한 생활을 할라고 이렇게 할 때에 우리에게는 여러가지 염려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주님이 여게 대해서 말씀해 주신 일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0절에 보면 너희들이 죽을까 염려하지 말아라. 너희들은 머리털까지 내가 다 세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의 생명을 내가 허락하기 전에는, 너거의 생명이 다 끝나기 전에는, 예정의 끝이 되기 전에는 너거의 생명을 빼앗을 자가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고 안심하고 담대히, 죽음에도 담대히, 모든 손익에도 담대히 고락에도 담대히 우리는 이 일을 해 나가야만 하겠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6장 25절에는 더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너희들이 네 목숨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버리면 네가 생명을 잃을 것이고 주님의 복음과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서 생명을 애끼지 안하고 싸우면 생명을 찾으리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목숨이 진리의 것이 되고 주님의 것이 되면 그는 전능자의 것이기 때문에 기한 전에는 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배반하고 진리를 배반했으면 그는 악령의 것이 됐으니까, 뭐 무정하고 아주 사정없고 거짓 부리 그 악령에게 맡겨졌으니까 악령의 솜씨대로 우리의 육의 생명도 자유 자재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한 전에 떨어지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마가복음 10장 29절로 30절에 보면 소유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가족에 대해서도 말씀했습니다. 나와 내 복음을 위해서 네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전토나 뭐 그런 것들을 다 손해본 것은 세상에서 여러배 백 배를 주님이 다 보상해 줄 터이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거룩과 경건의 생활을 해 나갈 때에 우리의 소유에 대해서도 염려할 필요가 없고, 또 우리가 무슨 활동면에 대해서도 염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대해서는 머리털 하나까지 다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에 세상이 다 나를 달라들어서 천하게 만들라 해도 천하게 만들 지 못하고, 나를 쫓아낼라 해도 쫓아내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집회에 가서, 어떤 사람은 이제 그 중직에서, 아주 돈도 월급도 많은 중직인데 거게 있다가서 집회 간다 하니까 사장이 사정을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이제는 그라면 사표를 내고 가라고, 사표를 내고 이제는 다 단정하고 뭐 리어카를 끌든지 태짐을 지든지 지기로 그렇게 작정을 하고 갔다 왔는데 갔다 오니까 기적적으로 역사해 가지고 그 사람이 없음으로써 회사가 망하게 돼서 사장이 달리 면할라고 애를 쓰다가 나중에는 머리를 숙이고 와 가지고 잘 못했으니 용서해 주고 어떻게 하든지 와 달라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안 하겠다고. 그저 이다음에는 뭐 집회든지 뭐이든지 얼마든지 자유하고 그저 와 달라고. 그래서, 하도 사정을 해 쌓아서 갔더라고. 가니까, 자기보다 훨씬 더위가 되어 있는 그런 상급의 기사가 와 가지고 했는데 그 사람이 말하기를.
이상하다고. 내가 도무지 눈이 보이지 않아서 푸른 것은 붉게 보이고 붉은 것은 희게 보이고 긴 거는 짧게 보이고 자꾸 이러니까 내가 이걸 아무래도, 내 눈이 이거 도무지, 완전히 눈이 바꿔져서. 달라져서 이걸 고칠 수가 없고 해서 내가 이래 됐다고. 내가 눈이 영 아주 눈이 완전히 틀려겼다고 이라면서 자복을 하지마는, 그 사람은 압니다. 하나님의, 그게 기적입니다.
어떤 사람들도 자기는 이번 집회에 가서. 가니까 아주 노해서 이제는 뭐 이제는 가면 아무래도, 자꾸 감원당하는, 지금은 감원을 당하고 있는 때인데 감원은 나는 틀림없이 당하겠다 하고 갔는데, 갔다 오니까 오히려 월급을 좀 올려 주더랍니다. 갔다 오니까 갔다 온 데 대해서는 이러니 저러니 말도 하지 안하고 그저 월급만 올려 주더래요. 그게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모든 사장 위에 하늘의 사장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모든 상관 위에 하늘의 상관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염려 없이 주님에게 맞겨 놓고 이 거룩 생활과 경건을 마련할 것이고, 자기 소유에 대해서도 염려 없이 주께 맡겨 놓고 거룩과 경건을 이와 같이 마련할 것이고 자기의 뭐 건강이나 생명에 대해서도 주님에게 맡겨 놓고 거룩과 이 경건을 전력 기울여서 할 것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말씀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거룩한 생활과 경건한 생활을 해야 되겠는데 이것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수백 번 수천 번 연습해 가지고 비로소 거룩한 사람이 되어지고 경건한 사람이 되어지기 때문에, 이렇게 연습을 하는 그것은 단번이 아니고 장기간하기 때문에 그거는 수많은 사건들이 다 늘비해 가지고 있는 고로 우리들이 계속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배운 말씀이 이와 같이 어떤 현실이든지 현실을 만든 그 현실은 주님이 예정하신대로 다 순서가 닥쳐오는 것이요 주님이 창조하신 그 존재들이 다 등용 등장해 가지고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 그 모든 것이 목적을 위해서 예정하셨고 창조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굳게 잡으면 그 다음에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 다음에, 우리가 믿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몇 번이든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든 현실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기 때문에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고 믿음으로 그 모든 것을 다 승리해 나가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은 주님이 만든 것인데 그 현실은 나를 죽일라고 하는 것도 내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구원을 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그 현실을 다 정복하고 이기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믿음 외에는 딴것으로 이겨 나갈 것이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는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권세를 내가 다 가졌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셨다. 나에게 주권을 주셨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내가 너희들에게 분부한 말씀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 또 세례를 받게 해라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같이 하겠다'는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 새삼스럽게 다시 우리에게 마지막 승천하실 때에 말씀해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공간계 모든 공간을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고. 모든 시간을 다 주님 이 주권하고 계시고, 모든 활동을 주님이 다 주권하고 계시고, 인간들의 모든 심리계를 다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고, 모든 생사계를 주님이 다 주권하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이 주권하고 계시는데, 누가 권리가 있습니까? 아무도, 정권자도 권리 없고 사업가도 권리 없고 재벌가도 권리 없고 우리의 무슨 상전도 권리 없고 아무도 권리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대한 모든 주권은 주님이 다 가지고 계시는뎨, 머리털까지 너희들에게는 다 간섭하시고 세밀히 주권하고 계시는 것을 말씀했기 때문에 이 계약을 믿고 우리는 담대히 나아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룩을 우리가 연습해야 되는데, 우리는 그 거룩에 대해서 차례 차례 자기 현실에서 닥쳐오는 대로 그 거룩을 마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그라면, 성경이 가르쳐 주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에게 대한 거룩이 됩니다. 내가 이거 하나님을 위함이냐 나를 위함이냐, 이것은 하나님을 위함이냐 인류를 위함이냐, 이것이 하나님을 위함이냐 돈을 위함이냐, 하나님을 위함이냐 내 가족을 위함이냐, 이거 뭐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는 것이 이것이 내 중심의 위함이냐 성경 말씀대로 위하는 것이냐 하나님 위한다는 것이 겉으머리는 위하지만 속에는 딴것이 있어 외식이 아니냐 이렇게 자꾸, 하나님을 위하는 것도 구별하고 구별하고 자꾸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지식에 대해서는 어찌 되느냐, 하나님이 말씀하신 지혜에 대해서는 어찌 되느냐, 그 지혜에 대해서 구별해 보고, 지식에 대해서 구별해 보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구별해 보고 하나님의 진실에 대해서 구별해 보고, 하나님의 그 의에 대 해서 구별해 보고, 하나님의 모든 거룩에 대해서도 구별해 보고 자꾸 이렇게 자꾸 구별해 봅니다.
자꾸 구별하고 구별하고 구별하고. 구별하는 그것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구별한 것을 또 구별해 보니까 찌끼가 나옵니다. 구별한 것을 또 구별해 보니까 껍데기가 나옵니다. 구별한 것을 또 구별해 보니까 잡것이 또 나옵니다.
이것을 우리로 하여금 구별하도록 하시고 이것을 우리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당신이 도와 주시기 위해서 우리 현실에, 요 현실에서는 내가 요걸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는데 고다음 현실을 닥치니까 나로서 그걸 지키지 못 하고 발발 떨다가 내가 어기게 됩니다. 이래서, 내 그 모든 부정과 모든 찌끼 모든 잡것 있는 것을 다 드러내서 사르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 현실을 닥치게 해 주시는 것인데, 우리 현실에 어려운 것은 두 말 없이 그 어려움을 인해서 내게 잡것이 어렵지, 잡것이 어렵고 옛사람이 어렵지 새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새것은 기쁘고 좋은 것입니다. 어려울 때는 어려워하는 그놈은 두 말 없이 죽여야 됩니다.
어려워하는 그놈은 두 말 할 것 없이 꺾어 버려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자기가 또 자기에게 대해서 은갖 구별을 하겠습니다. 이것이 내가, 내가 주인이냐 하나님이 주인이냐.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사느냐 하나님이 나를 위하도록 하기 위해서 사느냐, 하나님이 나를 주권하느냐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날뛰고 있느냐 그것을 우리가 자꾸 구별해야 됩니다.
우리에게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세 가지 대속을 주셨는데 이 세 가지 대속을 가리켜서 피라고 말하고 또 성령과 진리라고 또 말했습니다. 내나 성령과 진리와 피는 한가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사죄는 뭐이 사죄인가? 사죄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지 않는 것이 사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지 않는 것이 사죄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내가 거기서, 뭐 어떨 때는 생명 문제도 있고, 소유 문제도 있고 지위 문제도 있고, 권세 문제도 있고, 모든 신체 문제도 있고 다 있지만 어떤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알고 있는 그 말씀을, 범하지 않는 것이 사죄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범하지 않는 거.
칭의를 입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칭의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그 다음에는 양심의 작용으로 인해서 영감이 우리에게 오는데, 말씀대로 순종하고도 그 다음에 보면 양심에 가책되는 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기가 언행심사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그 다음에는 양심으로 순종하면 영감 순종이 되어지는 것이니, 그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순종과 영감 순종 그 순종이 자기가 칭의를 벗지를 안하고 칭의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친의 새생명은 어떤 게 화친의 새생명인고 하니, 이렇게, 처음에는 말씀을 범하지 안하고. 그 다음에는 말씀과 영감에 순종하고. 그 다음에는 내가 완전히 순종하는 가운데서 차차 차차 기능이 다 바꿔지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주장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주장하셔서 하나님이 나를 주권하고 계십니다. 나는 하고 싶은데 하나님이 못 하게 하십니다. 나는 이 말을 할라고 생각도 안 했는데 하나님이 그 말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말을 하고 난 다음에 뒤에 '왜 내가 이와 같이 어리석게 이런 말을 했던가? 왜 호랑이 입에다가서 주먹 넣는 이런 말을 했던가' 하나 그것이 뒤에 가서 보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그것이 들어서 큰 구원이 됐고 능력이 된 것을 우리가 얼마든지 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대속은 하나님 말씀을 범하지 않는 일을 노력하는 데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 하는 이 일을 많이 연습하는 가운데에서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주권하시고 나는 완전히 하나님에게 이 자유를 박탈당했고, 하나님은 나를 완전히 주장해서 당신의 자유 자제대로 하는 사람이 되고 나는 하나님 앞에 자유나 권리는 하나도 없는 이런 완전히 박탈되어서 당신에게 대해서 한 기계와 같은 이런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둥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 결합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생명에 나아갈라고 준비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나를 주권하셔서 하나님이 나를 주장해서 그분에게 피동된 그것이 참 믿음이요 그것이 이제 영생하는 생명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거룩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에게 대해서도 자꾸 내가 현실을 당할 때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냐, 나는 누가 주인이냐 내가 주인이냐, 나는 땅의 것을 바라고 사느냐 하늘의 것을 바라고 사느냐, 내가 제일 사랑하는 것은 뭐이냐, 의지하는 건 뭐이냐, 내가 제일 귀중히 여기는 것은 뭐이냐?" 자기에게 대해서 현실에서 자기를 연구합니다. 자기를 연구해 가지고 자기를 구별해서 마지막에는 자기를 경건을 만들어서 이거 저거 구별해 가지고 주님을 위하는 자기가 되도록 그렇게 자기를 연구해서, 현실을 닥치지 안하면 자기를 모릅니다. 현실을 닥칠 때 그 현실에서 이 자기를 또 발견해 가지고 연구하고 저 현실에서 또 자기를 발견해 가지고 연구하고 연구하는 것은 거룩입니다.
연구해서 거룩을 가지고 거룩의 목적은 뭐이냐? 경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실에서 자기를 연구하지, 현실에서 다른 사람들을 연구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만한 그런 사랑이 있는 줄로 알았는데 현실을 닥치고 보니까 나는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요. 사람을 시기할 수 있는 사람이요, 사람을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는 교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내게는 그런 죄악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 현실을 닥치고 보니까 생각도 못한 그런 사람이 나오는 것을 자기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현실에서 다른 사람도 발견되고 나도 발견되고,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도 내가 거게서 구별해서 연구를 해서, 내가 그러면 이 사람에게 대해서 어떠하면 이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또 이 사람에게 대해서 내가 과거에는 어떻게 했으뗘 현재는 어떻게 하느냐.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자기가 관계되는 데에 대해서도 구별. 그 사람에게 대해서 자기가 말하는 것도 구별, 그 사람에게 주고저 하는 것에 대해서도 구별 그 사람에게 대해서 자기가 소원하는 것도 구별. 그러면, 소원하는 것이 입술로는 소원하지만 중심으로는 소원 안 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입술로 소원했다고 그것으로 만족하면 틀립니다. 사람들이 회개할 때에 입술로 회개해 놓고 눈물이나 명 방울 흘리고 하면 된 줄 알아도 어림도 없습니다. 그 안에 참 회개라 하는 거는 자기 속에 무거운 그 쇠 덩어리 같은 것이 자기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우리가 얼마든지 발견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현실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우리가 연구해서 거룩을 만드는 그 현실이오. 내가 분명히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인 데 왜 그때 가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인데 나는 왜 그 현실을 닥 칠 때에 상이 새파라이 죽은 자와 같이 아주 청황색이 돼 버렸는가, 나는 왜 현실을 당했을 때에 내 모든 안면 뭐 새파라이 공포의 사람이 됐는 가. 내가 그 현실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대해서 내가, 내가 본의 아닌 그 말을 왜 했는가 왜 내가 우상 숭배를 했는가? 이렇게 자기를 현실에서 연구해 보지 안한 그런 사람들은 다 신사 참배에 담대한 사람들은 다 졌습니다. 왜정 말년에 잘난 사람들, 의지가 굳은 사람들. 다 지성인들. 다 높은 권세 잡은 사람들, 배짱있는 사람들은 다 패전했습니다. 그때 배짱이 나타납니까? 배짱이 그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기 '의지가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의지보다도 강한 생명 문제가 되는 것인데.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을 평소에 자기를 연구해서 구별한 사람들은 그런 일이 왔을 때에 그거 뭐 다 웃으면서 이겼습니다. 내가 그때 무슨 말을 그런 말을, 죽을 줄도 모르고 그런 말을 했올까, 자기가 상상도 못 할 그런 말을 했고 그런 행동을 했고 그런 담력을 했지만 하나님이 주권하고 있기 때문에 그 들이 말 한 마디도 못 하고 그런 것을 다 승리하고 나온 그것이 다 역사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요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하나님을 연구하고, 하나님을 연구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해 구별로 연구합니다. 구별로 연구하고, 자기를 또 구별로 연구하고, 현실에서 이웃 사람을 구별로 연구하고, 모든 사건을 구별로 연구하고, 물건들을 구별로 연구하면 그 현실에 다 나옵니다. 내가 그 현실에서 거룩지 못한 면이 있는 것은 주님이 그 현실을 만들어 줘 가지고 그 현실에서 그 거룩을 만들 수 있도록. 거룩 아닌 것을 정죄해서 회개할 수 있도록, 이래서. 그 현실은 전부 새로 깨달을 것이요. 새로 알 것이요, 회개할 것이요, 고칠 것이요, 마련할 것이요, 강하고 굳세게 할 것이요. 그러니까 현실 같이 보배로운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현실에서 거룩을 만들어서. 내가 이라면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이냐, 내 마음에 대해서도, '아, 나는 화목한 줄 알았는데 화목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기뻐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기뻐함이 없다. 나는 사랑이 있는 줄 알았는데 사랑이 없다. 나는 또 온유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온유가 없다. 나는 담대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담대가 없다. 나는 진실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진실이 없다' 내가 진실로. 철통같이 만들어 놔도 당신이 보실 때에 진실이 없을 때에는 나를 사랑하심으로써, 내가 진실을, 진실할 그 거룩을. 진실한 거룩을 만들라고, 거룩한 진실을 만들라고 애를 쓰는 걸 당신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볼 때는 나에게는 진실이 아닌 것이 없다고 보는데 당신이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 딱 주실 때는 내가 진실이 없다는 것이 거게 확실히 폭로됩니다. '아, 주님이여, 내게는 이렇게 진실이 없다는 것을 몰랐는데 이제 이 현실을 주심으로 내가 진실 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게서 그 진실을 회개를 합니다.
욥은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천하에 욥과 같은 의인이 없다 그와 같은 겸손한 사람이 없다 그와 같은 진실한 사람이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지만 하나님 보실 때에는 욥에게 홈점이 있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욥에게 만신창으로 그와 같은 시험을 줬습니다. 시험을 주니까 욥이 하나님에게 원망 불평을 마지막으로 했습니다. 원망 불평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떻게 내게 대해서 이렇게 하느냐' 이렇게 말씀할 때에 그때에 욥이 자기 속에 그런 악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주님이여, 내 속에 이런 것이 있었다는 것을 내가 몰랐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자복합니다. 나는 전 무지한 죄인이요 악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대한 이보다 더한 처분을 해도 마땅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셨던 거 하나님이 가져가시고,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 만들어 놓은, 암만 만신창이 들어도 처음에 없는 것보다는 많이 있는데 내가 불평할 것이 없었는데 내가 이래 불평을 했습니다.' 그 속에 그것을 뽑아 버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충해서 배나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세밀합니다. 철두철미합니다! 절대 불변입니다! 조그마치라도 어리석음이 없습니다. 어두움이 없습니다. 세밀하고 현명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덕에 대해서도, 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덕이 안 되니 덕이 안 되는 그 일을. 나는 덕을 세워야 되는 데 덕 안 되는 일이 있으니까 덕 안 되는 일을 인해서 우리들은 하루도 울고 한 달도 일 년도 이 년도 삼 년도 사 년도, 어떨 때는 오 년이 지나가 도 그 일이 해결되지 안하고. 우리에게 무엇인가 고칠 것이 있기 때문에, 당신의 요구가 있기 때문에, 그게 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당신의 요구가 뭐인가 그걸 찾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무지한 죄인입니다' 하고 하나님 앞에 항상 겸손히 울부짖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라면 복음을 가리워지게 하는 것이냐 복음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냐, 이렇게 하면 주님에게 영광이 돌아가겠느냐 주님에게 욕이 돌아가겠느냐, 이라면 서부 교회에 욕이 돌아가겠느냐 서부 교회에 칭찬이 돌아가겠느냐 이라면 내 욕심대로 하는 것이냐 복음을 위하는 것이냐, 이라면 내 성질대로 하는 것이냐 하나님의 영감대로 하는 것이냐, 이라면 내가 지금 주장이냐 하나님이 주장이냐? 얼마든지 가리는 그거는, '죄라. 요거는 틀림없는 죄라! 요거는 악이라! 고쳐야 된다? 죽여야 된다! 뽑아야 된다!' 하는 것을 확실히 알 것인데 구별하지 안하고 하기 때문에, 그래도 예수는 저 혼자 잘 믿습니다. 이런 자들이 다 예수로 미치괭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라면 귀신이 마지막에는 들어가 가지고 그를 한없이 괴롭게 하고 자기를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을 망치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만은 마귀를 청하는 것이요 마귀는 그에게 비참하고 가련한 결과를 마련하게 하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언행심사, 우리가, 내가 말을 구별해 봐야 되겠고 행동을 구별해 봐야 되겠고 마음을 구별해 봐야 되겠고 생각을 구별해야 되겠고, 구별 한 번 했으면 다 됐느냐? 이제는 '이 맘보다 이 맘이 낮다. 이 맘은 틀렸다. 내가 이 마음을 고쳐야 되겠다.' 고쳐서, 고쳤으면 다 고쳤느냐? 고치고 나서 보니까 또 그 속에 잡것이 또 있습니다. 또 고치고 나서 보니까 또 있습니다. 또 고치고 나서 보니까 또 있습니다. 이 것을,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진실히 믿습니다.
제가 김천 가서 집회할 때에 어떤 사람이 양반질을 딱 하고 저쪽에 앉아 가지고 꼴아보고 있습디다. 이래서, 그렇게 하다가서 나중에 기본구원이 나와서 기본구원을 말하니까 무릎을 딱 끓고 눈물을 흘리면서. 나중에 설교가 끝나고 나니까 즉시 찾아왔습더다. '나는 돌아다니면서 자꾸 회개해야 구원 얻는다고 하기 때문에, 회개를 하고 나서 보니까 또 나오 그 또 나오고 이제는, 나오니까 간증을 해서 있는 것을 뭐 수치고 뭐이고 죄 지은 거 낱낱이 솔빡 다 간증하고 이랬으니까 된다 했더니만 그 다음에 설교를 하는 걸 들으니까, 또 회개할 거 있고 이러니까. 암만 해도 새 것 나오는 것이니 회개해야 구원 얻는다 하는 이 구원은 다 거짓말쟁이고 사람을 괴롭히는 것뿐이다' 이랬는데, 기본구원 있고 건설구원 있다는 걸 구별하니까 그 사람이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와 가지고 그 사람 당장 가 가지고 교회 세웠습니다. '내가 지금 있는 살림 다 팔아 가지고, 나도 지금 그 동리에서는 제일 부자인데, 있는 살림 다 팔아 가지고 내가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이 개혁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하면서, 그때 내가 ○○교파에 있을 때에 그 사람이 ○○교파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늘 따라다니고 이랬는데 ○○교파 교회서 백 목사는 이단이라 하는 정죄하는 바람에 그 사람들은 만나지 못하고 자꾸 정죄하니까 그랬으니까 이것도 하나님 앞에 가면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가룬 것이, 자기는 의인 줄 알고 복음을 전했지만 복음을 가루는 원수가 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를 날마다 심사하고 심사해야만 되지 그렇지 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안 믿는 사람들도 좀 깨끗하게 살라 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공자 같은 사람도 '일일 삼성이라' 하루 세 번 자기의 과거를 반성해서 조사해 본다, 조사해 보고 나니까 또 뭐이 '나오고 조사하니까 또 나오고 그라니까 그 재미로써 매일 세 번 반성했다 하는데, 기독자는 매일 세 번 반성입니까? 열 번 기도하면 열 번 반성입니다. 백 번 기도하면 백 번 반성입니다. 그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의 생각을 조사해 가지고 구별해 보고. 또 자기의 마음을 구별하고, 자기의 행동 구별하고, 자기의 말 구별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또 자기의 -우리는 기쁨 없으면 못 삽니다. 자기의 기쁨을 구별 해. 희로애락을 구별해 자기의 기뻐하는 것을 구별해 봅니다. 기뻐하는 거 구별해 보면 실컷 기뻤는데 기쁜 것을 구별해 보면 미친 기쁨입니다. 기쁠 게 하나도 없어. 그 기쁨 밑에는 지금, 기쁨 밑에는 큰 통곡이 밑에 받혀 가지고 있는데, 초지장 만한, 초지장만 빼내면 통곡이 붙어 있는데 기쁘다고 하는 거 우리 미친 일 아닙니까? 자기 기쁨을, 자기의 성내는 것을, 성내는 걸 그걸 심사해 보면 내가 내게 대해서 성내고 자기가 다 자기를 도끼로 찍어야 될 터인데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성내는 그거 참 얼마나 월권 행위이고 얼마나 교만한 행위를 했는지 모릅니다. 슬퍼하는 것도 또 즐거워하는 것도. 이게 다, 그러니까. '나는 미친 사람이라 나는 미친 사람이라, 어리석은 사람이라, 나는 아무것도 힘이 없는 만삭되지 못하여서 낳은 아이와 같은 사람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공연히 -요새 사람들 모양으로 -기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그거도 이용해 먹을라고 다른 사람에게 이거 겸손하다 하기 위해서, 겸손하다 소리를 듣기 위해서 그렇게 겸손을 이용해 먹는 그 자는 교만 겸손이요 지능 겸손이기 때문에 그들은 고등 교만입니다. 그 자는 망하고 맙니다. 그런 자는 망합니다. 회개 안 하면 망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희로애락을 자기가 구별합니다. 이래서. 이렇게 구별해 가지고 경건을 만드는 가운데에서 차차차차 자기 이목 수족은 달라집니다. 자기의 눈을 뽑아야 될 거, 자기 손을 끊어야 될 거 자기 지체를 끊어야 될 거, 이래 가지고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너무 분해서 ○○○목사는 자기의 성기를 끊어 버렸습니다. 그사람은 그럴 때는 그렇지만 그게 회개를 할 때 성경대로 회개를 안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종말은 실패를 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대로 자기의 이목 구비 수족을 이렇게 거룩과 경건으로 자꾸 심사해서 구별하면 이래서, 어떤 사람은 눈을 뚜드려서 눈이 퉁바리같이 붇고, 어떤 사람은 자기의 혀를 깨물어서 자기의 혀가 항상부어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의 수족을 거석 해서 자기의 수족을 그렇게 참, 어떤 사람은 끊으라 하니까 아주 수족을 끊은 사람도 있고, 끊은 사람은 성경대로 하지 안했기 때문에 반드시 그 회개는 뒤에 후퇴하는 회개가 돼 가지고 실패를 하고야 만 것입니다.
이래서 이목구비 수족을 이래 심사하면서 거룩과 경건으로 이렇게 자꾸 고쳐 나가고 이라는 가운데서 사람이 바꿔집니다. 이런 가운데서 사람이 차차차차 고쳐집니다. 사람이 고쳐지고 보니까, 고쳐지고 나서 보니까 언행심사가, 다시 재조사하니 엉망이지. 또 고치고 나서 자기의 희로애락을 조사해 보니까 엉망이지, 또 고쳐지고 난 다음에 자기의 이목구비 수족을 조사해 보니까 엉망이지, 이라니까, 한상 평생 생활이 거룩과 경건으로 주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것이 우리의 생애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내가 고쳤는데 뒤에 고칠 게 없으면 고친다는 일을 중단하지만 어떤 사건 하나에 고치고 보니까 고치고 보니 또 고칠 게 있으니까 고치지 안할 수가 없어 이래 서 자기가 회개가 계속되는 것은 이것은 고의적으로, 무슨 자기가 이성 판단적으로가 아니고 이거는 본능적으로 필연적으로 자꾸 회개가 계속 되는 것이 그것이 기독자의 회개입니다. 회개하고 나서 보니까 또 회개 안 할 수 없고 안 할 수 없고. 자꾸 나타나니까.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그저, 성경에 나타난 데 대해서도 이런 면으로 저런 면으로 우리는 거룩을 심사하고 경건을 심사해서, 이것을 우리가 심사할 줄을 모르니까, 어떤 사람은, 후란시스 같은 사람은 그렇게 현실에서 그저 심사하지 안했습니다. 현실을 닥치기 전에 자기는 책상 위에 앉아서 다 했습니다. 책상 위에 앉아서, 자기를 그려 놓고 책상에 앉아서 이 것은 뭐이라 뭐이라 다 심사해 가지고 다 한 번에 단번에 다 회개하고 자기는 평생을 결혼하지 안하고 동정남으로 지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니까 '결혼 안 하느냐' '나는 주님으로 더불어 결혼했기 때문에 나는 결혼을 한 사람이라' 그분은 평생 후퇴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산다씽 그분은 세계에서 다 성자라도 말하지만 그분이 불란서에 가 가지고 한 번 네 시간동안 자기는 후퇴한 그것을 평생 후회하면서 그는 자기 전기에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둔하기 때문에 성경보고 회개하지 못하고, 성경보고 거룩을 만들지 못하고 경건을 만들지 못하니까 주님이 우리 현실을 주셔 가지고 내가 모르는 것을 현실에서 발견하도록 해 가지고 거룩과 경건을 만들게 하는 것이니까, 우리는 거룩한 언행심사가 돼야 되겠고, 경건한 언행심사가 돼야 되겠고, 경건한, 또 경건하고 거룩한 희로애락이 돼야 되겠고 거룩하고 경건한 이목구비 수족이 돼야 되겠고, 이래 되면 그라면 다 됐느냐? 되면 될수록 자꾸 많아집니다. 자꾸 그러니까, 그럴수록 자신이 자신을 볼 때에는 점점 죄인이 되어지고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볼 때에는 다 성자고 다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 만물과 하나님이 보실 때는 깨끗하다 하시고 자기가 자기를 볼 때는 자꾸 더러워지고 더러운 것만 보여지고 이것이 하늘나라의 성질입니다. 여게는 사망이 없습니다. 여게는 후퇴가 없습니다. 왜, 예수 믿는 사람이 뭣 때문에 권태를 내고 합니까? 왜 예수 믿는 사람이 열심히 믿다가 왜 권태를 냅니까? 왜 식어집니까? 식어지는 이유는 제가 지식에서 머물렀든지, 자기가 그렇지 안하면 행동에서 머물렀든지, 자기가 자기를 고침에서 머물렀든지 그렇치, 주님의 형상을 자기가 본받을라고 하는 데 나아갔으면 자기가 죽도록 해 봤자 미진 미진 미진 미진 미달 미달 미달 미달, 되어진 거는 좋고 좋고 좋은데 월탐해서 거게서 중단을 하고 말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오만한 자리에 앉을 수가 없는 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곱 가지를 생각하면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만들면 심판의 불에 타지 안 할 것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서 저 지난 아침인가 어느 아침에 하루 아침인가 언젠가 말씀을 한 일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모두 다 매를 갈다가, 또 밭을 갈다가 또 사고 팔다가 주님 만났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런 말을 듣고 난 다음에 '아이고. 주님 재림이 가까왔으니까 뭐 사업을 경영할 게 뭐 있느냐, 사작할 게 뭐 있겠느냐 하는 그 사람은 예수를 바로 믿지 못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시작을 하는 것을 제맘대로 제 욕심대로 시작했다면 이 소리 들으나 안 들으나 버려야 됩니다. 제 맘대로 제 욕심대로 시작한 것이고 제 맘대로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하는 일이라면 다 버려야 합니다.
예수를 바로 믿는 사람은 제 맘대로 시작하는 사업이 아니고. 제 맘대로 취직하는 것이 아니고. 제 뜻대로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안 하면 죄가 된다, 주님의 뜻이 이것이니까 나는 이 직장을 가져야 되겠다, 이 일을 해야 되겠다. 나는 이 돈벌이를 해야 되겠다. 왜? 내가 가족이 있는데 안 하면 다 남에게 누를 끼쳐야 되고 굶어 죽어야 될 터이니까 복음에 영광스럽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일을 하는 데에는 내가 이 일을 안 하면 다 다른 일은 죄가 되겠고 이 일밖에는 할 일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단 정선 정선, 선정 선정 정선 정선해 가지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은 주님 맡기신 일이기 때문에 안 할 수가 없고, 안 할 수가 없어도 뭐 의식주 때문에 했으면 그 사람이 그것을 중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식주 때문에 하는 게 아니고, 자기가 거룩을 어디서 만들 것이냐, 경건을 어디서 만들 것이냐? 자기 현실이라는 그 생활에서 만들지 안하면 만들 데가 없기 때문에 이 일을 만드는 건 주님 오실 때까지 열심히 만들어야 되니 자기의 하는 일은 더 조심있게, 더 구별되게 더 거룩하게 더 깨끗하게, 더 온전하게.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더 흠과 점이 없도록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도록, 본이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믿음의 유익을 주도록, 다른 사람에게 힘을 주도록. 다른 사람에게 감화를 주도록 해야 되니까 주님 오시는 그 시간이 가까워올수록 최고로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하는 것이 기독자의 생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외식을 버리고 깨어 삽시다. 뭐 이런 거 저런거 탐내 봤자 헛일이오. 주의 말씀대로 살면 주님이 부자 되게 하실 때면 부자 되고 가난하게 할 때면 가난을 주시고 모든 거 당신이 해 주신다 했기 때문에 생사도 염려할 것 없는 거, 자기의 활동에 대해서도 염려할 거 없는 거, 소유에 대해서도 염려할 거 없는 거, 자기의 모든 행동에 대해서도 염려할 것 없어. 모든 정치나 모든 사회나 모든 분위기에 대해서도 염려할 거 하나도 없어. 왜?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 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
이러기 때문에, 이번에도 거창 집회 갈 때에나 그때 주님의 능력 기적이 역사하신 것이 있으면 기록해 내야 됩니다. 왜? 기록해 내야 저도 그 것을 평생 잊어 버리지 안해야 되겠고, 모든 사람이 듣고 '아, 하나님은 이런 데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구나. 하나님은 실직자도 살리는구나. 하나님은 사형받은 자도 살려 주는구나. 하나님은 이렇게 사자굴에서도 살리는구나. 불구덩이에서도 살리는구나.' 공산 치하에서 역사하다 가서 온 사람 그 사람이 책을 기록해 냈는데 나는 그 책을 가지기는 가졌었는데 그 책을 보기는 한 페이지 보고는 보지 안했습니다. 안 본 거는 왜 '안 봤느냐? 그 사람하는 것을 말을 들어 보니까 내가 경험한 거나 그가 경험한 거나 똑 같기 때문에 그거 맞다고만 그거 보고 할 게 아니라 성경 보고 자꾸 연구할 일이지 그거 볼 여가가 없어서 안 봤습니다.
통계에다 말하면 그 사람들은 다 그게 기록 그렇답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데서 살아 나왔고,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인데 복음이 전해졌고, 인간으로서는 모든 사람에게 배척을 당하고 모든 사람에게 적이 될 터인데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당하고, 내가 한 페이지 봤는데, 설교를 하니까, 설교를 하니까, 그 공산주의 뭐 인민군들 속에, 저 공산주의 나라 공산군들 앞에서 설교를 막 외치니까 그 군인들이 있다가서 이렇게 마구 우 모아 들어 가지고 듣더니만. 듣더니만. 이 사람은 몰랐는데, 이 사람은 몰랐는데 나중에 오디만 입을 이라며 자꾸 이라더라고. 그래서 뭐라 하는고 몰라서 이래 쭈욱 그라고 있으니까 옆에 와 가지고 '저기 온다' 고. 그래 나중에 보니까 그 군인이 전부 그 사람 사람이라. 나중에 보니까. 뒤에 조사하는 감찰대가 저기 오니까 뭐 지금 이라다간 잡힐성 싶으니까 하, 말 중지하라고 그랬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 사람이 그것도 기록했어. 모든 사람은 공산주의라고 목숨 내놓고 죽을 줄 알고 했는데 그 사람들이 이 편이 돼 가지고 여기서는 지금 더 계속하면 지금 붙들리면 전도 못 할 테니까 조금 멈추라고. 그래 멈춰 가지고 거기서 나와 가지고 또 딴 데 가 전도했어.
그렇게 모두가 하나님의 기적인데 뭐,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서 살아난 그거는 문제도 아니라. 그런 것이 우리에게 가득히 즐비해 있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기적에서 삽니다. 기적에서 사는데 이것을, 이것을 다 부인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기적을 만났으면 기적 만난 걸 기록 해 내야 될 것 아닙니까? 이번에도 보니까, 내가 어제도 누구 만나니까 뭐 '이 병이 낫고 그 교회 뉘 병이 낫고' '나았으면 기록해 내라' 이랬는데, 어쩌든지 마귀란 놈은 기록해 내지 말라 합니다. 기록해 내 놓으면 듣기 싫다 합니다. 싫다 하는 거는 귀신이 들 어서 듣기 싫어하는 거라? 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왜 듣기 싫어! 왜 보기 싫어! 우리가 그것 보고 우리도 그대로 다 은혜 받아 가지고 살아야 될 터인데 그 은혜를 입어야 될 터인데.
이래서 말세에 주님은 이제 하나님의 기적으로만 평안을 누리고 기적 없는 자에게는 죽을 욕을 보고 곤욕을 당하도록 그렇게 하시고 마지막에는 불 속에 하나님으로 사는 사람은 평안하고 즐거워하고 노아 모양으로 더 큰 소망을 가지고 소득을 이루고.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교만한 그런 자 들은 '땅에 돈이 제일이다, 권세가 제일이다, 뭐 지위가 제일이다, 가정이 제일이다 부부 행락이 제일이다, 뭐 호의 호식이 제일이다. 미남 미녀가 제일이다' 이렇게 하는 자들은 그것으로 바짝 타서 오그라져서 죽을 지경으로 하나님이 해 놓고 복수하고 뒤에 부활시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가감이 없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습니까! (아멘) 믿습니까! (아멘) 믿어야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얼마 후에는 말씀을 증거하지 못합니다! 얼마 후에는 설교를 못 합니다! 설교를 할라 해도 설교하는 것을 용납지를 않습니다! 오늘에 듣고 준비해야 되지 마지막에 그때 가서는 물어도 가르쳐 주지도 안할 겁니다. 왜? 지금 듣고 해야지 그때 물으면 그거 악용할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악용당할 게 어디 있습니까? '아, 나는 내 구원 내가 이룰 것이고 너는 네 구원 이루라' 하지 그 말 듣고 이용을 당할 것이 있습니까? 그래 어리석은 사람들은 성도가 아니요 하나님의 종들이 아닙니다. 외식하지 맙시다. 껍데기로 믿지 맙시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는 말씀이 에누리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을 다 해야 비로소 그것이 신앙 양심 생활이요 그것을 다해야 영감을 맞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 주님,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으로 구하라 내가 시행하겠다고 거듭 말씀하신 것을 믿습니다. 구하는 자마다 얻을 것이라는 말씀도 믿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모든 말씀을 믿지 않는 이 죄악을 완전히 뿌리 뽑아 주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에누리하는 이 모든 악순을 완전히 뿌리 뽑아 주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은 획 하나도 가감이 없이 절대인 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우리들에게 더하여 주시옵소서. 이리하여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으므로 얼마든지 부강해지고 얼마든지 담대해지고 평안해지고 능력있는, 믿음으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상속받을 수 있는 오묘의 이 비밀을 확실히 믿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를 위해서 주님이 피를 홀리셨고 이를 위해서 영감과 진리를 우리에게 주셨고 중생시키신 이 사실을 깨닫고 확고한 신앙으로 주의 말씀대로 뿍뿍 걸어가는 저희들 되게 하사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기 전에 경건과 거룩으로써 불타지 아니할 수 있는 의가 온전히 만들어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처음으로 나온 형제들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은 주의 것이 됐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을 주셔서 주님을 전적 믿고 바라보고 맡겨 놓고 순종으로 사는 생활의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고, 앞으로 마귀가 그들을 흔들지 못하도록 끝까지 붙들어 주셔서 열매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려고 수고한 종들에게도 주의 십자가의 사랑의 능력이 더욱 더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