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7 16:32
재림에 대해서 일곱가지
본문 : 베드로후서 3장 6절∼14절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누가복음 21장 34절 이하에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방탕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그날이 뜻밖에 덫과같이 이를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 그렇게 권면을 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뜻밖에 재림이 닥친다 하는 그런 말씀은 성경에 많이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러고,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는 특별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주님이 말씀하신 말씀은 한 마디도, 획 하나도 가감이 없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우리에게 덧붙여 보증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조심하라 말은 마음을 붙들어 매라 말인데, 마음을 잡아 매라 말인데 어디다가 잡아 맬 건가?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는 이 우주의 종말, 모든 것이 다 불타서 하늘과 땅이 다 녹아지고 그 가운데 모든 것이 죄냐 의냐 둘로만 드러나는 그날이 갑자기 올 터이니까 그날에다가 붙들어 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날에다가 붙들어 매라 말은 그날에 만날 내 마음이 항상 거게 있어야 된다 말입니다. 거게 가 있어야 되는데 뭐 귀넘어 들으니까 이렇게 말씀하거나 말거나 제가 죽는 날까지 그런 말 한 마디도 듣지 못하고 그저 땅에서 좀 편리하게 먹고 좀 잘 먹고 좀 잘 입고. 잘 입으면 뭣, 하며 잘 먹으면 뭣 하며 좀 편하게 살면 뭣 할 것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말세에 인간이 멸망받는 그 죄악을 한 마디로 들어서 어쩌든지 자기를 좋게 자기 좋게 하다가 인간들이 망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좋게 해야 하나님 앞에 가서 서지 하나님이야 어쨌든지 제 좋도록만 해 가지고야 어떻게 제가 설 것입니까?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일곱 가지 말씀하신 것을 언제든지 기억하고 잊어 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고, 우리에게 닥치는 그 현실을 제 소원과 현실이 다르다고 해서 불만 불평할 것이 아니고, 자기 소원과 현실이 다르다고 해서 불만 불평을 품을 것이 아니고, 현실은 주님이 혼자 만드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현실인데 그 현실에는 사람도 들고 물질도 들고 사건도 들고 또 이 무슨 자연들도 들고 다 들어 있지만 그 모두 들어 있는 그것이, 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 보기에는 여기 사람이 들었으니까 사람이 이 현실 내 현실을 만들었다 무슨 자연이 만들었다 생각하지만 그 자연을 거기다가 끌어다 붙이고 사람을 끌어다 붙이고 사건들을 끌어다가 붙이신 이는 주님이시라 그말이오. 주님이 혼자 만드셨어.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 없는 거는 만들지 안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없는 거는 만들지 안했고 전부 우리에게 필요한 걸 만들었고 우리 구원에 유익된 것을 만드신 것이 우리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하고 요긴한 그런 것을 만드신 것이 현실이라고 하면 현실은 내게 만일 뭐이든지 싫은 것이 있으면 그것이 아니면 내 구원이 이루어지지 안하고 다시 말하면 그것이 아니면 사람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그 현실을 만든 것입니다. 자기에게 무슨 경제의 어려움이 있으면 그 사람은 경제의 어려움이 없으면 귀신이 돼 나가고 그 사람이 구원을 다 절단내 버리고 자타를 망칠 것이기 때문에 경제의 어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에게 무슨 어떤 환난이 있으면. 환난이 없으면 그 사람이 아무짝도 못 쓰는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배나 지옥의 자식이 될 것이기 때문에 환난을 주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에게 병이 있으면 그냥 뭐 병 어떻다 할 게 아니라 실은 성경대로 따져 보면 병이 있으면 그 병은 그 병이 들지 안하면 그 사람이 얼마나 멸망길을 갈 것이기 때문에 멸망길을 가지 못하도록 주는 병이 대개입니다. 또 그 사람을 그 병을 가지고 그 사람을 회개를 시키기 위해서 하는 그 병이 대개입니다.
특별히 그렇지 않는 일이 있기는 있습니다. 자기에게 어려움 닥치는 것이 그 어려움을 닥침을 인해서 '아, 다른 사람들은 이런 어려움을 닥치면 다 신앙을 지키지 못하는데 이 사람은 어려움을 닥쳐도 신앙을 지켜 나간다' 해서 그 사람의 믿음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들려 주 그 보여 주고, 또 그 사람에게 그 어려운 가운데서 믿음 지키는 그 상급을 하나님이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면, 딱 죄값으로 있는 일만 아니고 그 사람 속에 있는 믿음을 드러내 가지고 본인에게는 하나님이 상을 주시기 윈해서 하는 것 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도움을 주는 구원의 빛이 되고 구원의 본이 돼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봄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돋아지고 사람들이 회개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시는 일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닥친 어떤 어려움이든지 그 어려움이라는 것은 그것은 내 자신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있는 일 있고 내 자신이 회개할 일이 없을 때에는 다른 사람을 회개시키기 위해 가지고 있는 일 있고 그 두 가지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자신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있는 일은 회개하지 안하면 자기가 멸망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회개시켜서 멸망치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하는 어려움은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그 일을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상급을 받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이 그 생활에 흠이 없는 사람인데 왜 다니엘에게 그런 사자 구덩이의 어려움을 당했겠습니까? 어려움 당한 것은 다니엘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그 어려움을 준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어려움을 줬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은 어찌 돼? 다니엘에는 상급이 됩니다. 다니엘이 그와 같이 됨으로 말미암아 오늘도 우리가 그 사실을 생각하면서 믿음을 가지고 회개를 합니다. 다니엘은 그 앞에 사자 구덩이가 있어도 사자를 부인했어. 사자를 부인했어. 사자를 부인했다 말은 사자가 아무리 구덩이 속에 배 곯고 있으니까 사람 들어가면 빠숴 먹는 것이 그것이 다 역사요 그것이 사실이지만 다니엘은 사자를 부인했다 말이오. '아무리 내가 던져져도 하나님의 뜻대로 이와 같아 살고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자에게 잡아 먹어라 해야 잡아 먹지 사자가 그 속에 배가 곯았다고, 또 그 사자가 여러 마리 있다고 해서 내게는 상하지 못한다. 나를 아무리 사자 가운데 집어 넣어도 나를 상하고 안 상하고 내가 죽고 사는 것은 주님이 허락하시고 주님이 하시는 대로 되는 것이지 사자 네까짓 게 무슨 힘이 있으며 권리가 있느냐?' 그게 사자를 부인한 것이요. 사자를 부인하는 그런 믿음을 우리가 보고, 우리는 조그만한 무슨 일만 있어도 '아, 이 일은 이래 있으니까 암만 믿음 지켜 봤자 낭파가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 지만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먹혀 죽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의 주권으로 하나님의 주권대로 되어지는 것이지 사자 그까짓게 나를 죽이고 살리는 권리가 없다는 그 사실을 믿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떤 산벼락 같은 일이 닥쳐도 자기가 회개할 일이 있으면 빨리 회개를 하고 '회개한 나에게 산벼락 같은 일이 닥쳐 봤자 그 일이 내게 대해서 절대 해하지 못한다. 왜? 하나님이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 앞에서 회개했으니까 당신이 날 보호하시니 그뭐 산벼락 같은 그런 어려움이라고 해 가지고 그것이 날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러니까 그런 것을 부인했다 말이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 가운데 들어가면 타 죽는 거는 정한이치 아닙니까? 이래도 불을 부인했소. '아무리 너거가 나를 불 안에 집어 넣어도 하나님이 나를 불에 타 죽도록 해야 되지. 또 여기 불 구덩이에 안 들어가도 여기서 하나님이 죽게 하면 죽고 살게 하면 살고, 내 생사를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지 불이 주권하고 있겠느냐? 아무리 불 가운데 넣어도 하나님이 구원하시면 소용없고 또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거기서 죽는다' 불에 대해서, 불은 태워 죽인다는 주권을 주지 안했다 말이오. 불은 태우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이 허락해야 타지 주권이 허락하지 안하면 안 탄다 이렇게 믿는 그 믿음을 우리가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그런 사람들은 다 회개하게 하기 위해서, 죄를 회개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고. 본인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이 사람들과 같은 이런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 보고 '나는 그런 사람과 같은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 하는 것을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시는 역사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닥친 일은 무슨 일이든지, 본인을 회개시키기 위해서라든지 다른 사람을 회개시키기 위한 것이라든지 그 두 가지 중에 하나이지 아무 뜻 없는 필요없는 현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들어 주시지를 안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게서 자기 닥친 현실을 이 두 가지로 생각해서 첫째는 '아. 내게 무슨 회개 할 게 있는가 보다. 왜 내 가 이래 가난하게 사노? 돈이 있으면 내가 망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돈을 안 주시는 것이다. 왜 다른 사람은 건강한데 나는 병신 돼 있느냐? 아, 내가 만일 건강하면 무슨 죄를 짓고 돌아다닐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보니까, '아. 저 사람은 왜 저 병이 낫지 않는고' 이래 생각했는데 그래 내가 그 뒤에 염려를 했어. 처음에도 염려를 하고. 내가 처음에 그럴 때에도 '너 이런 것을 회개해야 되지, 네가 다리가 성하고 몸뚱이가 성하면 무슨 죄를 짓고 돌아다닐란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까 그걸 회개하면 낮는다' 내가 처음에도 말했다 말이오. 또 지금도 내가 그 말 하고 있어. 내가 언제 보니까 그 사람이 그저 그래 가지 그 있으면서도 생각하지 안할 거 생각하고. 간섭하지 안할 거 간섭 하고, 참견하지 아니할 것 참견하고 이러기 때문에 안 된다 그거요. 만일 건강 해 놓으면 더 안 참견해야 될 것을 더 참견하고, 간섭 안 할 것을 더 간섭하고, 상관 안 할 것을 더 상관하고 돌아다니면 저 죽고 남 죽고 가정 망하고 다 망할 거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무조건 자기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이것은 내게 회개할 것이 있어서 이래 하든지 그리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또 회개시켜서 구원을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든지 둘 중에 하나다 이것을 깨달고, 먼저 무슨 어려움이든지 닥치면 '아. 내가 여게 대해서 내가 회개할 것이 뭐인고 이것을 회개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 하는 생각 가지고 자꾸 파서 회개를 해야 됩니다. 회개 안 하면 저 망하고 가정 망하고 다 망합니다 이러니까 첫째는 제가 회개할 것을 찾아서 회개하는 그런 일을 하고, 또 회개할 것 다 하고도 그 일이 물러 가지 안하고 그대로 있으면 '아,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내가 참고 견딤으로 나와 같은 이런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도 다 참고 견디라고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참는 데에 욥과 같이 본을 보이기 위해서 하시는 것이로구나. 이러니까 내가 이때는 잘 참아야 다른 사람이 날 보고 이와 같을 때에 그사람도 참아 가지고 죄 짓지 안하고 의롭게 되지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참고 견디는 일 하면 조그만간에 그것 이 다 물러가고 상이 되고 만다 그거요,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사람이 오늘 죽는다 생각하면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들도 그대로는 의로운 사람이 됩니다. 선한 사람이 됩니다. 모든 독이 없어지고 악이 없어집니다. 악과 독이 왜 있느냐? 악과 독이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 악과 독이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기 위해서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 악과 독이 있는 것이지 이 세상이 끝난다고 하면 모두 다 후회를 하고 회개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심리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에 말하기를 '사람이 언제 제일 선하냐? 마지막 임종시에 선하다. 마지막 죽을 때에 선하다.' 그것이 심리 학자들의 통계입니다.
이러니까 우리 마음이 주님의 재림에 있다, 내 마지막 죽는 그것이 내 종말이요 또 주님 구름 타고 오셔 가지고 불로 태우는 것이 우주의 종말이니까, 내 마음이 내 개인의 종말에 있고 이 우주의 종말에 항상 거기다가 마음을 두고 있으면 내 마음이 자연히 선해지고 옳아지고 옳은 것은 못 해서 후회가 되고 잘못된 것은 또 잘못된 것이 후회가 되어지고 이러니까 마음을 거게다가 두면 고칠 것이 자꾸 계속해서 나오고 '아, 내가 이거 떠나서 주님 앞에 곧 검사를 맡을 것이고 주님 앞에 가서 설 터인데 내가 이것도 모자라고 저것도 모자라고 하니까 어찌 되겠느냐?' 하는 거게 대해서 옳은 준비가 되도록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시험본다 하면 '아, 내일이 시험이다' 하는 데에 그날 밤에 공부 안 하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아. 시험을 보니까 내가 잘못 알면 안 되겠다 이거 틀려면 안 되겠다' 이러니까, 시험을 닥쳤다고 하면 그 아이가 그저 평소 때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틀리면 어쩔까? 바로 돼야 되겠지' 하고 틀린 것을 고쳐서 바로 할라고 애를 쓰는 그거라 그거요. 또 자기가 무슨 물건을 만들어 놨는데 '이제 오늘 검사 온다' 오늘 물건에 대해서 검사 온다 하면 제 딴에는 검사 올 때에 그 검사에 떨어지지 안할라고 그때까지 뭐이 잘못돼나? 포장이 잘못됐나 뭐이 잘못 됐나? 오늘 지금 검사에 떨어지면 다 우리 공장은 다 문 닫는다.' 이러니까 이제 뭐 어쩌냐? 검사가 온다 하면 모든 것을 조심해 가지고 다 옳게 바르게 그 검사에 합격이 되도록 할라 하는 거와 마찬가지라 그거요.
우리가 개인의 죽음이라든지 우주의 종말을 자기가 생각할 때는 뭐 땅 위에 여게 매이고 저게 매이는 데 거게 매여지지를 않는다 그거요, 모두 다 준비를 한다 그말이오. 예수를 믿어도 더럽게 모두 믿어서, 자기 주관 대로 감정대로 그렇게 표준 해서 믿는 그런 신앙은 믿어 봤자 기본구원이나 얻지 헛일입니다.
어찌 됐든 간에 구원이라 하는 것은, 지난 밤에 몇 가지 부인을 배웠습니까? 돌짝밭에 뿌린 것은 무슨 부인이라요? 예? 돌짝밭에 뿌린 것은 자기 부인이야.
자기 부인. 자기의 감정도 주장 도 생각도 비판도 평가도 경험도 체험도 욕심도 모든 뜻도 소원도 취미도 전부 부인해야 돼. 그 놈이 들어서 다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전부 부인해야 됩니다. 그거 부인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또 길가에 뿌린 씨는 뭐이라 했습니까? 한 말로 말하면 세상을 부인해 야 됩니다. 역사를 부인해야 됩니다. 문화를 부인해야 됩니다. 인간들의 지식을 다 부인해야 됩니다. 그것이 뭐이냐? 왜 그걸 길가라 했느냐? 길가라 한 거는 왜 길가냐? 길가는 뭣 때문에 씨가 심어지지 안하느냐? 사람이 자꾸 밟고 밟고 해서 다 다져졌다 말이오. 다져졌다 그말이오. 모든 인간들이 이렇게 걷고 저렇게 걷는 인간들의 그 걷는 모든, 인간들의 걸은 그 자체, 인간들이 이렇게 생각이 나 가지고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생각 나 가지고 저렇게 말하고, 이렇게 경험해 가지고 이렇게 말하고 모두 다 인간들의 움직인 그것이 다 쌓이고 쌓인 것이 문화요 그것이 인간들의 지식이요 그것이 역사요 그것이 세상이라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온 세상이 반대해도 세상을 던져 버려 버리지 하나님 말씀을 의심치 않고 믿는 것이 그것이 길가 뿌린 씨를 면한 것입니다. 길 가 뿌린 씨를, 길을 파서 개간해 가지고 옥토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 할라고 할 때 하나님 말씀을 보든지 읽든지 들었는데 그 말씀을 온 세상이 들어서 부인케 할 때에 그것이 길가 밭에 뿌린 씨의 해를 당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부인케 해도 온 세상을 부인했고. 온 세상의 통계를 부인하고 전 인류들이 다 합동 주장을 한다 할지라도 그까짓 걸 부인했지 하나님 말씀은 한 마디도 부인을 못 합니다. 그것이 길가 뿌린 씨의 해를 면한 사람입니다.
또 말씀대로 살라고 할때에 자기가 방해돼서, 자기 감정이 방해되고, 자기 가정이 뭐 자기 사업이 방해하고, 자기의 주장이 방해하고. 자기 성질이 방해하고, 자기 욕심이 방해하고, 자기 취미가 방해하고 뭐 방해하는 것들이 꽉, 자기가 방해하는 게 많다 말이오. 방해하는 자기, 방해하는 자기를 완전히 죽히 버려요. 방해하는 자기를 죽여 버리고 꺾어 버리고 그것을 용납지 않는 것이 돌짝밭의 해를 벗어난 사람이라 그거요.
그 다음에 가시떨기에 있는 해를 벗어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세상 염려와 재리라 했어. 뭐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 할 때에 어떤 물질 문제가 생기고 또 어떤 사건 문제가 생길지라도. 어떤 사건이 생겼든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일은 요동치 안해. 뭐 사건이야 깨지든지 말든지 그 까짓 거 어찌 되든지, 마지막에 죽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그러니까, 어떤 사건으로도 막혀지지 안하고 중단당하지 안하고 어떤 물질 문제로써도 중단당하지 안하는 그 사람이 덤불 밑에 뿌린 씨를 면한 사람이라 그말이오. 금방 예수 믿고 뭐 새벽 기도 나온 것이 말 한 마디에 생각하는 데에 저 좀 알아주면 되고 알아주지 안하면 그만 삐쭉 삐꾸고' 그까짓 거 가지 고는 백날 해 봤자 너는 썩을 사람이나 있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은 털끝만치도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게 뭐 할 것입니까, 뭐 하기를? 이래서, 옥토에 뿌린 씨가 되면 그 사람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가 백 배라는 것은 인인 관계에 대해서 완성을 이루어. 육십 배는 마귀의 유혹이 온 것 같지만 그거 낱낱이 다 이겨서 좋은 성과를 다 거둬. 삼십 배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흠 없이 다 완전 성과를 이루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이랄라면 옥토에 뿌린 씨가 돼야 돼. 옥토에 뿌린 씨가 될라면 이 세 가지 방해를 이겨야, 이 세 가지 방해를 받지 안해야 옥토에 뿌린 씨가 된다 말이오, 이 세 가지 방해를 받지 안해야. 길바닥에 뿌린 씨가 뭐이요? 길바닥에 뿌린 씨는 옆의 이웃으로 말미암아 자기 신앙을 지키지 못하는 것. 뭐 친척으로 지키지 못하는 거나 그 모든 인정으로 신앙을 지키지 못하는 것, 사정으로 지키지 못하는 것, 감정으로 지키지 못하는 것, 동정으로 지키지 못하는 것. 동정이 무슨 필요 있습니까? 우리는 정을 어쩌라 했습니까? 정도 욕심도 어쩌라 했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라 했어. 우리는 정이 없는 사람이 돼야 돼. 과거에는 정이 있어 가지고 정 그게 들어 이리 저리 끌고 가지만 이제 정도 죽여 버려야 되고 욕심도 죽여 버려야 되고 뭘로 사는가? 진리로 살고 영감으로 살아. 하나님의 말씀이면 죽어도 살아도 그대로 시행하고 성신의 감동이면 실행하지 성신의 감동 아니면 까짓 거 암만 육신의 인정이나 동류의 인정이나 암수의 인정이나 뭐 부부의 인정이나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까짓 놈의 정이 다 뭐입니까, 친구의 정.
이러기 때문에, 다니엘을 다리오 왕이 그렇츰 사랑했으니까 일국의 왕이 사랑했으니까 그거야 귀한 일 아닙니까? 그 왕이 그렇게 사랑했지만 서도 마지막에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라는 그 말 했을 때에는 다니엘이 얼마나 냉정했습니까? 하루 종일 왕이 자기 밑에 있는 총리에게 빌었다 말 이오.
'어쨌든간에 네가 이 말대로' 하루 종일 사정해도, 아무리 사정해도 눈도 꼼짝거리지 안했다 말이오. 왜 그러냐? 왕이 자기를 사랑하는 인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가 없지만 인정을 죽였기 때문에 '내가 과거에 충성한 것도 왕 너 보고 충성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내가 충성한 것이고 지금도 네가 아무리 사정을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위반되는 그런 일을 할 수 가 있느냐?' 이러니까 아무 상관이 없었 다 말이오. 그때 만일 다니엘이 정을 죽이지 안했더라면 '이렇게 내가, 왕이 나를 평생 사랑했는데 내가 참 박정하게 이와 같이 하는 게 참 어렵다 어렵다' 그렇지만 다니엘에게는 어려움이 없었어.
정에 끌려서 약해지는 거, 여러분들, 우리가 정에 끌려 약해지는 그것이 참 아주 어려운 것입니다. 저도 내가 결론을 짓기를 그래 지었어, 나는 약점이 어디 있느냐? 약점이 정을 십자가에 아직까지 못 박지 못하고 남은 것이 있어서 그게 약점이다. 왜? 정에 끌려서 '이거 이라면 이게 좀 어려울 것인데, 이게 좀 곤란할 것인데. 이거 그라면 이게 낭파될 건데. 어렵게 될 건데' 이래 가지고 동정하는 데에서 실패가 많다 그말이오. 동정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대로만 하면 되고 뜻대로만 하고 영감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지 동정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이래서, 지나가고 보면 '아. 그때 내가 동정한 게 틀렸다' 사람에게 대해서, 옳은 거 옳다 아닌 거 아니라만 해야 될 터인데, 무슨 일을 시켜도 옳은 건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만 이래야 될 터인데, '이거는 틀렸지만 그 사람이 혹 마음이 상할라' 이래 가지고 아, 옳은 것을 양보 한다 말이오. 그 사람의 틀린 것을 지적을 해 줄라 해도 '아, 이라면 그 사람이 섭섭해 할라' 섭섭하는 것과 그 사람의 틀린 것을 바로 지적 해 주는 거와 어느게 가치가 큽니까? 틀린 것을 그 사람에게 틀렸다고 말해 주는 그 가치는 하늘까지 크다면 그까짓 서로 인정적으로 그 사람이 섭섭해 하는 그까짓 거야 먼지 같은 것이지 뭐이 큽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정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려야 됩니다. 십자가 못 박아 죽여라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정을 용납지 안 해야 된다 말이오. 다른 사람은 '아. 목사님은 참 아주 정이 없는 사람이라' 이러지만 그게 아니야. 그놈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죽여 버려서, 그래. 죽여서, 그래 내가 지금 한 이십 몇 년 됐는데. 우리집에 큰 딸 아이가 내 밑에서 나를 아주 잘 봉사하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이제 거기서 부산은 그때 항공이, 외항이 없었기 때문에 거게서 비행기를 타고 떠납니다. 떠나니까, 모든 사람은 그것만 봤던 모양이라. 모든 사람은 '아, 저 지금, 목사님을 저렇츰 큰 따님이 봉사하고 그렇게 수종을 들고 참 수족으로 저와 같이 역사하다가 이제 미국을 가게 되니까 아마 목사님 이 마음이 섭섭할 거다' 이래 싶어서 내 눈만 봤던 모양이라.
내눈만 봤어. 내 눈 봐야 거게 대해서 눈물이 한 방울 날 리가 있습니까? 안색이 변할 리가 있습니까? 그런 게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하나도 없으니까 나중에 그 뒤에 '아, 목사님은 그래 참 보니까 하나도 없더라' 그라는데. 그런 것은 정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 그렇다 말이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동정하고 사정하고 약자에게 대해서 하는데 대해서는 내가 그것을 냉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죄라. 그것도 내가 죄라고 지금 판정해서, 아무리 약자에게라도 냉정스럽게 그저 진리면 행하고 진리 아니면 말고 그 사람이 어떻게 된다고 해도 동정이나 사정이나 그런, 정을 인해서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을 조그마치라도 지체를 하든지 양보하든지 하면 안 된다 하는 것을 자꾸 만날, 날마다 다지는 게 그거라.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왜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엿새 동안에 지었는데 그분이 왜 엿새 동안에 지은 그것을. 독생자도 주신 우리에게 왜 그런 것을 풍성하게 줘 가지고 우리가 풍부하게 살지 못하고 만날 곤고하게 어렵게 사느냐 그말이오. 사는 것은 죄값이든지, 그렇지 안하면 네가 어려운 가운데 살면서 그래도 신앙 지키고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살아야 저거 죄값으로 어렵게 사는 사람이 낙망하지 안하고 '아, 저런 분들은 저래도 기쁘고 즐거움으로 사는데 우리도 그런 생활 한다고 이렇게 뭐 낙망하고 원망 불평 시비하고 이럴 게 뭐 있느냐?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살아야 되지' 해서, 다른 사람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서 했든지 내 죄를 회개시키기 위해 했든지 하는 것이니까, 뭐 돈 없는 사람, 병신된 사람, 어려운 사람 또 어려운 난제가 생기는 사람, 모두 다 자기가 원치 안하는 거 생기는 것은 이것은 다 회개케 하기 위해서 있다 하더라 하는 그것을 단정을 지우라 말이오.
단정짓고, 첫째는 자기 회개하고, 자기 회개할 게 없으면 '아, 이러면 다른 사람에게 이런 가운데서라도 좋은 본을 보여서 나와 같은 이런 입장을 당하는 사람들도 그 사람도 '아, 이런 일을 당해도 아무것이 보니까 기쁘고 즐겁고 다 믿음을 잘 지키더라. 그란다고 해도 주일 범하지 안하고. 그렇다고 해서 새벽기도 빼지 안하고, 그렇다고 해서 기도하는 일 변동하지 안하더라.' 이렇게 본을 보여야 될 터이니까 내가 이럴 때에 이런 입장에 있는 사람 나와 같은 이런 어려운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믿음의 본을 보여야 되겠다. 본 보이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와 같이 하신 것이니까 본을 잘 보여야 되겠다" 그걸 하든지.
인제 그렇지 않으면 먼저는 할 것은 '내게 무슨 잘못이 있어 이런가? 죄값으로 하나님께서, 내가 이것을 고치지 안하면 이걸 주지 안하고, 내가 고치지 안했는데 이런 걸 주시면 도리어 그게 내게 역효과가 돼 가지고. 오히려 해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가' 이래 두 가지 회개만 생각하면 일이 된다 그거요.
그래 가지고 자꾸 고쳐 나가면 뭐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네가 회개하면 씨를 주고 양식 준다. 씨 준다 말은 복음 운동 위해서 바칠 것을 가리켜서 씨 준다 그렇게 말합니다. 씨를 줄 것이라, 양식 준다 말은 네가 생활할 것을 주는 것을 가리켜서 양식 줄 것이라 이랬습니다. 육체의 건강이라든지 지식이라든지 모든 형통이라든지 그런 것을 다 합해서 씨와 양식이라고 그렇게 비유한 것인 것입니다.
이래서, 장생골 집회에 모여 가지고 연보한 것을 보니까 어떤 교회는 아주 '뭐 거게 연보 하나, 연보 하나 안 하나 다 큰 교회들이 있으니까 할 것이고 너는 우리 교회로 해라' 그렇게 목사가 가르쳤는지, 여게 대해서는 장생골에 대해서는 연보를 안해, 저거 교회서는 연보하고. 그것은 그것이 들어서 자기가 스스로 망하는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교인 그까짓 거 연보 하나 안 하나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되고, 그 연보 안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딱 가로막았으면 자, 그 교역자가 그 교인을 살렸소 죽였소? 자, 죽였다고 생각하는 분들 다 손 한번 들어 봐. 죽였지 죽였어. 뭐 두 말 할 게, 서슴할 게 뭐 있는가? 그게 죽이는 거라. 그게 뭐이요? 그게 성령의 소욕이요 사욕이오? 성령의 소욕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마귀 욕심 사욕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그게 죽이는 거라.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풍성하게 해 주셔 가지고 이제 분교가 스물 몇 군데? 스물 두 군데래요. 물으면, '스물 두 군데' 그럴 때는 소리 크게 해도 괜찮아요. 그럴 때는 크게 해도 괜찮고, 백지 집회가서 떠들고 하는 그런 거는 나쁘지만 이런 거야 뭐 소리가 작 아 그렇게 할 수만 있으면 마이크 안 대어도 사람들이 다 듣도록 스물 두 군데입니다!' 이렇게 크게 말하면 좋지 안해요? 스물 두 군데라. 스물 두 군데인데 그거 월세포 주고 있는 것도 있고 전세로 주고 있는 것도 있고 또 터를 사 가지고 있는 것도 있고 이런데 그걸 다 터를 다 사야 돼 터를 다 사야 되고 집을 다 지어야 돼. 여러분들이 씨를 많이 받아야. 씨를 많이 받아야 그 씨를 하나님께 바치면 그거 가지고 터를 다 사고 집을 다 짓고 거게 사람들은 길러 놨으니까 그때 목사들이 다 가서 스물 두 교회가 생길 거라 말이오. 서부 교회서 지교회 스물 두 교회가 생길 거라.
그래서 내가 며칠 전에도 말했습니다. 내가 언제든지 뭐, 살란지는 모르지만 일반 보통을 생각하면 내가 일흔 여섯 살이니까 죽을 날이 가깝다 그거요.
그래도 백살 살란지도 몰라요. 모세는 백이십 세 살았으니까 백이십 세 살란지도 몰라. 아마 백이십 세를 내가 살면 여기 있는 사람 다 거의 다 죽어 가든지 늙어 빠졌든지 뭐 다 죽고 내가 아직까지 남아 있든지 그럴 거라. 그러니까 뭐 죽는 거는, 모르기는 모르지만 내가 만일 갑자기 언제 떠날지 모르니까 떠나고 나면 그때 나와 같은 사람이 있으면 다행이지 여기 이러는 사람이 없으면 이리 저리 헤어질 거라 말이오. 헤어질 터이니까, 그때는 스물 두 지교회가 이제까지 간수했으니까 그분들이 거게 모여 가지고 이라면 스물 두 목사가 날 것이고 스물 두 교회가 되면 그때에 이 교회가 다 흩어지지 안하고 이 복음 속에서 구원을 이룰 터이니까 열심히 관리해라 내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장로님으로나 하지 뭐 거게는 나는 목사를 할 자격은 없습니다.' '왜 없어? 그래 양성원에 다 입학해야 되고 빨리 양성원 다 졸업은 하고. 장로보다 목사 직이 위에 있으니까 이제 목사 다 장립을 받아야 된다' 내가 그렇게 말했었어. 이러니까. '주님의 재림이 왔으니까 인제 뭐 양성원할 게 뭐 있겠나?' 주님의 재림이 왔기 때문에, 양성원을 주님이 하라 했는데 이년 하라 했는데 나는. 이 년을 하라 했는데 지금 일학년 같으면. 자. 일 년은 잘못됐소, 떨어졌소 바로 됐소? 주님 앞에 가 검사하면 '너는 왜 양성원 지금 이학년이어야 될 터인데 왜 일학년이냐 그라면 일학년은 까먹은 거요 바로 됐소? 뭐이요? 바로 됐습니까? 바로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일년은 까먹었으니까 어서.
주님이 재림하시니 빨리 뭐 속성과로 하든지 뭘로 하든지 어쩌든지 주님이 이 년 하라 하는 것이면 이 년 했어야 될 거라 말이오. 그러면, 거게서 진급을 하든지 뭐 급하게 공부해 가지고라도 시험을 쳐 가지고라도 이 년은 해 가지고 주님 앞에 서야 될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주님의 날이 가까운 것을 자기가 깨닫게 되면 할 일이 바쁩니까 수월합니까? 또 할 일, 할 일을 그만 두겠습니까 할 일을 하나도 놓지 안하고 전부이 챙겨서 다 해야 되겠습니까? 다 해야 되겠다는 분 손 들어 보이소? 이거라 그말이오. 신앙이 이거라.
그러기 때문에 어쩌든지. 일곱 가지, 일곱 가지 기억하지요? 노아의 때와 예수님의 재림의 같다. 모든 것은 다 경건치 못한 자들 멸망의 다 양이 차면 불 사른다. 주의 사랑은 하루가 천 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또 그 다음에는 도적같이 임한다. 자, 그라면, 다섯째인데 다섯 째는 뭐이요? 다섯째는 뭐이요? ○○○씨. 하늘과 땅이 다 불에 타서 사위어지고 모든 것이 다, 모든 일이 다 드러날 것. 또, 여섯째는 뭐입니까? 여기 여반에.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이제 의는 타지 않습니다. 의를 준비해야 돼.
마지막에 일곱째는 뭐입니까? 의를 만드는 방법을 말했다 말이오. 거룩과 경건.
거룩과 경건이 있어야 되는데 늘 그게 탄식입니다. 거룩과 경건이 도무지 없어.
뭘 구별하지 안해.
어제도 내가 어떤 사람에게. ○○○집사님이 나한테 전화를 하면서 '아 이런데, 그래서 지금 제가 뭘 가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이래. '가져가지 마라. 어디 차는 어디 있노? 날아 가지고, 가라. 네가 날아다가 날아서 갖다 줄라면 날아서 갖다 주고 그래 안 하면 못 가져간다.' '뭐 차로' '차는 그렇게 자꾸 돌아다니는 차인 줄 아나? 거기도 돈 든다 안 된다.'그래 가지고 안 보냈어. 안 보냈디만 나중에 가 가지고 그 사람이 와 가지고 그라고 야단만 치고 보내기는 보냈습니다. 왜? 그런 것도 구별해서 내가 무슨 일도 '자, 이라면 이 일이 되겠나 안 되겠나' 따져 보고 이래 가 지고, 뭐이든지 자기가 맡았으면 그 일이 빈틈 없이 그 일이 바로 완성이 돼져야 되는 것이지. '제가 말은 했는데요.' '아무것이한테 그걸 좀 전해라.' 이라면, 전했으면 그 사람이 본인이 똑똑히 알고 기억해서 그 일이 돼져야 되는 것이지 그저 '나는 전했는데요' 이래, 전부 이 꼬라지라.
이번에 주일날 오전에 저게 차가 두대가 있었다 하고 차가 없었다 하고 있는데 전부 차 부리는 사람들은 전부 다 없다고 말해. 또 어떤 사람은 차가 있었다고 말하고, 이라는데, 내가 그걸 사소한 일이지만 요거 하나로 전부 거짓부리들을 다 때려 잡아서 요것을 다 치리해야 되겠다 해서 잘못 알고 말한 사람이 나중에 드러나면 무릎을 끓고, 그냥 빌면 안돼. 서서 빌면 안돼. 무릎 딱 끓릴 거라. 딱 끓리고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잘못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자꾸 이래도 용서 못 해줘. 이라고 '이제 용서해라' 내가 명령하면 용서하도록 그렇게 만들 거라. 왜? 이래야 사람을 고쳐 나가지. 또 기사들이 그랬으면 무릎을 끓고 그렇게 자복을 해야 될 거라 말이오.
그런데 지난 주일 오저 예배 때에 저 아래 등나무 밑에 차가 있었소 없었소? 있은 걸 아는 사람 손 들어 봐. 허, 하나도 없어. 봐, 이러니까 정신 빠지고 산다 그말이오. 정신 빠지고 살아. 벌로 사는 거라. 그러면, 없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이소? 뻐뜩 들어. 없었다고 생각하는 분들 뻐뜩 들어 봐요.
사람이 몇이나 되는고 봐야 되지. 혜아려 봐야지. 자, 이들은 없었다는 사람이고 인제 또. 있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다. 그 다수 가결이니까 없었다는 사람이 이겼구먼. 그거는 있었다는 사람이 자복을 해야 되는 거로구먼. 그렇지만 숫자 그게 소용 없어. 참말로 있었느냐 없었느냐 그게 이긴다 그말이오.
봐. 이렇츰 거게 차가 두 대가 있어 가지고 길이 막혀 곤란을 당했지 만 아무 감각이 없기 때문에, 뭐 뭐 어쨌든지 앞만 보고 가기 때문에, 전봇대에 이마를 깨든지 말든지 그저 앞만 보고. 대외의 환경이 상대 방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데 대해서 다 소경이라 그말이오. ○○○집사, 확실히 있었어? 확실히 있었어? 확실히 있었어, 주일날 오전에? 몇대? 두 대 확실히 있었어? ○장로님은 확실히 있었어? 확실히 있었어? 내가 볼 때에 있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고 없었다 하는 사람들 은 어림 짐작하고 하기 때문에 어림 짐작 고놈을 죽여야 된다 그말이오. 뭣 때문에 아니면 아니고 옳으면 옳은 것이지 그렇게 어림 짐작으로 사람 이 무슨 비판 해 가지고 생활해서 어찌 될 것이냐 말이오.
그거 물으면, '얼마고?' 하면 '아. 아마 얼마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담을 하면 그 대답은 밉다 그말이오. 그 대답은 왜? 지옥 갈 대답이기 때문에 미워 자기가 모르면 '내가 정확한 수는 모르겠습니다. 제 짐작으로서는 그저 얼마 정도나 안 되겠느냐' 그렇게 말을 그걸 붙이고 말하면, 그 사람이 '내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저 내 짐작컨데는 그 정도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하면 그 대답이 틀린 대답이 아니라 그 말이라. 그렇지만 뭐 그런 말도 안 붙이고 '얼마쯤 되겠습니다.' 쯤 소리.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런 소리 그것은 다 지옥 갈 소리입니다. 그러면 그렇고 안 그러면 안 그렇고, 그러면 모르면 '내가 똑똑히 모릅니다.' 말해 놓고, 똑똑히 모르는데 어느 정도냐 그렇게 말하면 대략 아마 짐작에 이런 정도가 아니겠느냐 그런 것은 벌써 정확한 것을 모른다는 걸 다 발표했기 때문에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 그말이오. 뭐이든지 이렇게 똑똑히 구별해서 사람이 살아야 될 터인데 왜 그렇게 흐리멍덩하이, 그렇게 삽니까? 이래 놓으니까 옳은 말 하는 사람은 전부 다, 다 죄인이라. 그른 말하는 사람이 지금 다 맞은 사람이라.
그래 내가 물어 봤어. '차가 있었더냐 없었더냐?' '없었습니다.' '없는 걸 똑똑히 알았나?' '그 없는 거 같은데요.' 전부가 같은데라요. '없는 거 같은데' 없다는 사람은 다 없는 거 같은데' 고, 없다는 사람은 숫자가 몇 배나 더 많아.
여기 손을 안 들어 그렇지. 없다는 사람은 없는 거 같다고, 없는 거 같다고 말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었습니다! 이래. 없는 거 같습니다.
없었는데요? 그게 없었는데요? 없었는데요?' 그까짓 소리는 만 마디 해도 '있습니다' 하는, '있었습니다' 하는 그말 한마디에, 이 세상에서는 진다 그말이오. 그러나 또 우리는 그 사실이 더 권위가 있어. 사실. 흐리멍덩한 거와 강한 것은 강한 게 이기고 강한 것보다는 참이 이긴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날 차가 있었어요. 두 대가 있었어. 두 대가 있었는데, 두 대 없었다고 기사들이 전부 다 말하고 차에 관계된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는데 그분들이 이제 자복을 하고 다 한테 한자리에 앉혀 놓고 내고 그 쌔운 사람 몇을 갖다 놓고 할 거라. 무릎을 끓고 손으로 빌면서 '잘못 알았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그랄라면 그라고, 그라기 싫거든 차가 없었다는 그 증명을 대도록 그렇게 해서 그걸 해요. 그거 그냥 말지는 안할 거라. 이거 전부이 흐리티부리 이래 놓으니까 전부이 수위들도 흐리티부리하지 경비들도 흐리티부리하지 뭐 이거 뭐 전부 뭐 직원들도 전부 다 흐리멍덩하이 이래 놓으니까 전부이 흐리멍덩한 속에는 마귀란 놈이 역사 합니다. 흐리멍덩하면 마귀가 역사하고 참에는 마귀란 놈이 도망을 치고 죽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좀. 그게 거룩입니다. 이러나 저러나 구별하고 구별해서 따져 들어가 가지고 자기가 확실히 알기 전에는 움직이지 안하고 확실히 알기 전까지는 그것을 확실히 알라고, 아는 연구 문제로 가지고 있는, 숙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 진실한 사람이라 그말이오. 그러기에, 거룩이 없는 사람은 진실이 없습니다. 거룩이 없는 사람은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서윤호 조사가 그때 신학도 하고 대학도 하고 대학원도 하고 이렇게 한 사람인데 눈이 어두워 가지고 아무짝도 못 쓸 사람이 돼 가지고 있다 말이오. '그런데, 이게 못 쓸 사람이 돼 가지고 있어 다른 준비는 많이 했는데 혹 이거 쓸모 있는 인간이 되지 많느냐' 한번 시험을 볼라고 설교를 한번 시켰습니다. 설교를 시켜 보니까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라오디게아 교회는 옳으냐 그르냐 이것을 따졌습니다. 거룩, 이거 따졌다, 거룩이라 하는, 따졌기 때문에 그런 성과를 거뒀습니다.' 따졌다는 말 한 마디에 나는 그만 대번에 혹해 버렸어.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을 전도사로 인허를 해 가지고 세울라 하니까 총공회 회원들이 다 반대해. 다 반대하면서 그 사람을 전도사로 세워 가지고 뒤에 가서 나중에 눈먼 소경 같은 사람을 어떻게 할라고 그라냐고. '좀 아마 조심해야 안 되겠습니까?' 반대는 저거가 못 하지만 속으로는 수근거리며 반대하는 교역자들 많아. 그래도 나는 하나 보고 매력을 보고 취한 가치가 있다 말이오.
왜? 그 사람이 따질 줄 아는, 따질 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이 취한다, 그거요 따질 줄 아는데, 따지지 못하는 그런 인간들은 다 팔방 미인으로 이러면 이렇고 저러면 저렇고 처세술을 하지만 그건 지옥 가는 술법이지 천국 가는 술법 아니다. 따지는 거 하나 가지고 매력을 느꼈다 말이오. 따지는 거 하나 가지고 매력와 느껴서 그 사람 전도사 못 주구로 하는 것을 전도사를 줬습니다.
전도사를 줘 놓으니까 내게 힘이 쥐이요. '보자. 교회가 어찌 되노? 만날고 꼬라지라. 하나도 늘어나지 안하고, '네가 지금 어찌 돼서 이렇게 된 것도 생각지 안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될 터인데 네 입뿐이지 도무지 네가 사실이 없구나 네가 정말로 입 모양으로 하나님을 그렇게 믿는다고 하면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는 증거가 나타날 건데 증거가 뭐 나타나노? 이렇게 야단을 치면서도 저걸 전도사를 시켜 놨기 때문에 저게 삐뚤어지면 '봐, 그렇게 목사님 하는 일이 모두 다 저래' 이렇게 할 터이니까 그것이 또 내게 관련된다 말이오. 내게 관련돼서, '목사님 하는 것이 저래? 하면 내게 뭐 명예 떨어지고 권위 떨어질까 하는 그거는 아니야. 그라면 이제 설교도 가 가지고 마귀란 놈이 '설교를 다 들을 게 아니라 설교하는 말씀도 들을 거는 듣고 안 들을 거는 안 들어야 된다.' 그래 가지고 사람 죽이는 일이 과거에 있었다 그말이오. 과거에 있었어. 여게 뭐 그때 군에서 들어온 사람 ○○○집사님 다 군에서 이 서부 교회 나와 가지고 이래 교회가 일어났어 ○○○집사님이라든지 또 뭐이, 뭐 그런 사람들 많아. 그런 사람들 다 그런 소리 들어 가지고 미혹받아 가지고 손해 단단히 봤어. 그래 그라고 난 다음에 회개하고 난 다음에 또 하나님이 축복을 주셨는데, 또 지금 어떻게 되면 자꾸. 올라갔다가 떨어지거든 떨어지는 이유를 찾으라 그말이오.
찾지 안하고 더 독하게만 하면 될 줄 알고, 암만 네가 독하게 해서 이제 독사가 돼 봐라. 소용 있는가. 안 돼. 또 부지런해서 네가 몸뚱이가 닳아서 나중에 조그만해 가지고 다 닳아 버리고 조그만이나 남아 버리고 이래도 안 돼.
하나껌의 축복이 있어야 돼요.
그러므로 어쩌든지 구별해서 딱딱하게 살아야 됩니다. 사람은 딱딱하게 살아야 돼. 이거는 구별하지는 안하고 그 악만 자라 가지고 그만 그 장로님들 닥치니까, 장로가 돼 가지고 뭐 남의 간섭을 하고 있냐고 이래 가지고 막 들이 해 대고 이래 가지고 이래서 그 장로님이 '아이구, 이 복음에 자녀들 보냈다가는 자녀 버리겠다. 다 저런 사람 되면 어찌느냐? 안하무인이요, 아래 위도 모르고 다 제 잘났고 전부 부랑자, 저런 악 독한 자만 되겠고, 뭐 장로를 아나 나이 많은 사람을 아나 이거 안 되겠다 이래 가지고' 그 사람들은 아예 안 보내기로 됐으니까 이 복음을 가뤘으니까 제가 어떻게 할 건가 말이지. 하나님 앞에 제까짓 게 암만 구원 이룬다 그 이루어 봤자 가 보면 벌이나 받지 구원 얻을 게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그거 회개를 해야지.
대중 앞에, 집회 온 사람이 말이오. 저거 자식이지만 뚜드리면, 대중 앞에서 두드리면 그게 대중을 무시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저거 혼자, 저 혼자 가 가지고 방안에 들여다 놓고야 뭐 때리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지만, 그 채찍을 또 옳은 채찍을 때려야 되지 안 때리면 안 됩니다. 이렇지만. 그 앞에서 그렇게 한 건 틀렸어. 부모 앞에서, 암만 제 자식이라도 부모 앞에서 때리는 거는, 부모 뺨 때리는 거라 제 부모 앞에서는 제 자식이라고 뺨을 탁 때리는 것은 부모 뺨 때리는 거라 그말이오. 그거 좀 도덕을 배워야 돼. 예의를 배워야 돼. 그 부모 앞에서 제 자식이라도 욕을 하는 것은 부모 욕하는 거라. 그러기 때문에 그럴 때는 살며시 데리고 나가 가지고 다른 데서 거석하지 그라니까 아이놈들도 안다 말이오. 조그마한 어린아이 놈도 알아.
'아 우리 할머니가 있으니까 지금 날 못 때릴 터이니까' 어머니가 벌써 할머니 없는 데로 살살 가지고 데리고 가면 아예 맞을 줄 알기 때문에 이놈이 안 갈라고 막 발악을 쓴다 말이오. 안 갈라고 발악을 써. 안 갈라고 발악을 쓰면 '야, 가자 가자' 이래 가지고 그래 업고 가 버리고. 가 가지고 거기서 단속하지 단속 안 하는 건데, 아, 집회 가 가지고 거게서 야단을 지기고 하는 게 그거 마귀 노릇 아니야? 무슨 예수를 그래 믿어? 서부 교회 그래 가지고 그런 사람들이 다 복음을 다 가룬다 그말이오. 그 거 회개를 단단히 해야 돼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쩌든지 우리는 향기를 나타내야 됩니다. 향기를 나타내요. 향기 나타 내는 것은 기도해야 향기가 나온다 했어 기도하면 향기 나와. 기도하는 것은 자기 목적을 이룰라고 하는 그 사욕이 더 달성되는 그런 기도도 있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때문에 자기 잘못이 자꾸 반성되고 회개하는 그것이 첫째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