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1987. 4. 17. 밤 <금>

 

본문:베드로후서 3장 9절∼14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선지자선교회

우리가 이 약속의 말씀에 대해서는 충분한 지식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또 무슨 별다른 여게 지식을 말할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줄 알면서 모르기 쉽고 믿는 줄 알면서 믿음 없는 자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요사이는 그런 말을 이 서부교회서는 광고하고 작정들을 하고서 실행하는 그런 일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재림에 대해서 다섯 가지로 이렇게 생각하는 일을 물론 계속해야 되지마는 아무리 못 해도 하루 열 번 이상은 이것을 생각을 해서 자기에게 실감이 일어나도록 그렇게 힘쓰자하는 것을 약속하고 아마 그렇게 지금 계속하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여게 대해서 그만 별 관심없이 그렇게 지내보내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후회조차도 하지 안하고 이 약속한 것을 잊어버린 줄도 모르고 그렇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거게서 굵닥한 다섯 가지를 말했는데 이 모든 존재들은 다 불탄다, 거게 불에 타서 풀어진다 하는 말이 있는데 풀어진다는 것은 모든 이 우주 안에 있는 각종의 것들이 참 수많은 형체를 가지고 색깔들을 가지고 이렇게 있지마는 그런 것이 다 풀어져서 없어집니다. 모든 형체가 다 풀어져서 없어지고, 또 체질이 녹아진다 말은 지금은 각각 하나님이 여러 형태를 만드시기 위해서 이런 질로 저런 질로 하나님이 만드셔 가지고 이용하셨지마는 그런 질들이 다 녹아서 전부 원소가 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은 뭐 산이니, 바다니, 들이니, 또 바위니, 지금 이십세기의 과학들과 모든 문화들이 그 찬란하게 꾸며 놓은 그뭐 별별 것들이 많이 있고 사람들도 별 모양의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것이 하나도 제 형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집니다. 다만 의인들만은 거기에 포함되지 안했지마는 의인 외의 것은 다 전부 일단 그 모든 각종의 형상을 다 녹혀서 풀어져서 다 그런 형상이 다 확 풀려져 가지고 하나의 한 액체로 원소로 다 화해집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진노하신 그 보응입니다. 사람들이 제 욕심대로 하나님이 지어주신 것 가지고 제 맘대로 이렇게 저렇게 뭐 제멋대로 수백 수천 수만 가지를 만들어 가지고 제 취미대로 이렇게 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저거 욕심대로 하는 그것을 보응하시기 위해서 일단 하나님이 분개하신 진노가 모든 형체가 다 없어집니다.

 

자랑하는 과학들이 만들어 놓은 그 모든 각종의 형체가 없어지고 또 사람들도 제각각 다 이렇게 저렇게 꾸몄지마는 그거 싹 없어집니다. “모든 것이 풀어진다모든 형상이 다 완전히 다 녹아져서 다 해체가 돼진다. 전부 다 풀어져 가지고 한 형상도 남아 있지 않도록 하나님이 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의인은 별도지마는 의인이 안 된 것은 뭐 미남도 어데 갔는지 풀려버렸고, 미인도 풀려버렸고, 금강산도 풀려버렸고, 히말라야 산도 풀려버렸고, 이 나라도 풀렸고, 저 나라도 풀렸고, 지금은 수많은 나라 뭐 별달들도 별것이 있지마는 그런 것이 다 풀려 가지고 전부 하나의 원소가 돼 버리고 또 이런 질 저런 질 그 모든 본질들 별질들이 다 있는데 그런 것도 풀려 가지고 다 한 원소가 돼 버리고 말아.

 

하나님이 당신을 잘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오만 것을 지어서 선물로 주셨는데 이 선물에 다 미혹받아 가지고 그런 것만 좋아하고 하나님 배반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다 멸하십니다.

 

요한계시 18장에도 말씀하시기를 거게 분개해서 모든 상고들이 꾸며 놓은 아름다운 상품이 다 전부 불타버린다 이랬습니다. 또 남녀 신혼부부, 남녀 그 모든 애정 그 모든 것들도 하나님이 분개해서 다 녹아서 다시는 신랑과 신부의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소리가 영원히 없어지리라 그렇게 말씀했어. 이거 다 하나님이 복수하는 일입니다.

 

그중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나로다인제 지금은 뭐 별별 감추어서 이중 삼중 십중 뭐 몇십중으로 덮어 가루어 가지고 사람들은 그 진상을 모르고 이래 있지마는 그때는 그 모든 것을 다 당신이 확 드러내 가지고 당신의 분함을 다 갚으십니다.

 

그런데 이 일이 이루어진다는 그것을 사람들이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또 지식으로도 그거는 하나의 신화에 지나지 못한다 이래 가지고 부인하는 기독자들이 많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으례히 믿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그 재림하시면 이 모든 것이 이렇게 갑자기 다 풀어지고 녹아지고 드러난다는 여게 대해서 하나의 그저 옛날 신화같이 그렇게 생각하지 이 놀랠 만한 이 큰 사실을 자기가 실상으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하고 사는 기독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요대로 이루어지고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노아 때도 그때에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예사로이 듣고 자기 볼일에 분망해서 자기 욕심 채우는 데에 분망해 있다가 멸망을 받았다, 그때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 때도 그러하다 그렇게 주님이 예언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이 사실을 우리들이, 이 사실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이 사실을 예사로이 한 궤변같이 듣고, 세상에는 하도 거짓말이 많으니까 그런 거짓말 중에 하나와 같이 이렇게 듣고 또 인간들이 꿈며 내놓은 그런 모두 신화들도 많이 있으니까 그런 신화와 같이 듣고 이 실상을 믿지 않는 너무 그런 거짓부리가 우리가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실상으로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하루 열 번 이상 한번 이것을 생각하자, 적어도 열 번 이상 생각하자. 어떤 사람은 뭐 열 번 이상이 아니고 계속 이 생각만 가지고 있습니다.

 

계속 이 생각만 가지고 있는데 열 번 이상 생각해 가지고 여게 대해서 실지로 자기의 그 실감이 느껴지도록 하기 위해서 열 번 이상 생각해 보자 이렇게 말했는데 그동안 열 번 이상을 생각했으면 자기에게는 반드시 나타난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에게는 무엇인가 자기에게 느껴지는 그 실감이 자기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게 없었으면 그 사람이 열 번 생각해 본다는 것이 그거 다 거짓부리로 생각한 것이지 실상으로 생각하지를 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갑자기 이 모든 것이 다 풀어지고 녹아지고 드러난다. 갑자기, 생각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는 때에 그렇게 이 사실이 닥쳐진다. 그러면 닥쳐지면 그때에 어찌 될 터인가? 우리가 지금 말로는 다 못 하지요. 말로는 못 하는 것이 지금 제가 이렇게 설교는 하지마는 이 설교를 이 세상에 나가면 이 세상이 얼마나 싫어할지 모릅니다. 얼마나 싫어하고 마귀란 놈이 얼마나 싫어하고 지금 송사를 할라고 날뛰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믿기 때문에 혼자 자기가 한번 여게 대해서 생각하고 느껴보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자기 만지는 것, 모든 것 만지는 것 전부 이것도 오늘 불타고 녹아지고 없어질 것인지 모른다.’ 만지는 것 다, 또 내가 보는 것, ‘이 보는 것 이것도 다 오늘 지금 다 불타서 녹아지고 원소가 될란지, 오늘 될란지 모른다. 되기는 되는데 오늘 될란지도 모른다. 오늘은 안 되고 내일 될란지도 모른다.’ 주님이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것은 뭣을 요구하셔서 알지 못하게 했느냐 하면은 항상, 이 시간에도 불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이 모든 것이 다 풀어지고, 뭐 오막조막 여게는, 아마 지금은 모르지마는 내가 가 보지는 안했지마는 말만 들어봐도 불란서 같은 그런 데는 그런 나라는 가 보면 기이하게 만들어 놓은 사치들이 많을 것입니다. 또 일본 나라 같은 데도 많습니다. 뭐 시장에 가 보면 기이하게 만들어 둔 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다 많을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 멀리하고, 앞집 사람이 그거 다 구비했기 때문에 여보 당신 돈 부지런히 벌어 가지고 저거 구비합시다.’ 이래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도 믿는 데는 관심없고 앞집에는 피아노 들여놨는데 우리는`앞집에는 또 전자올겐 들여놨는데 우리는앞집에는 십만 원짜리 단스 들여놨는데 우리는' 또 그대로 또 들여다 놓고 난 다음에는 아무것이네는 그거 바꿔서 오십만 원짜리 들여놨는데 우리는이래 가지고 전부 가구를 더 값비싸고 좋은 것 하는 그런 경쟁, 또 명예 경쟁, 뭐 또 옷도 남보다도 먼저 앞서서 최신 유행을 요렇게 하고 조렇게 해 가지고 모든 그런 각종 요 모양 조 모양 요렇게 뭐 빼쪽삐쭉 또 알롱달롱 요거 모든 요런 모양, 요런 색깔, 요런 것 가지고 꾸며서 그것 때문에 거게 취미 붙이고 그것만 바라보고 하나님 배반한 데 대해서 얼마나 분하셨던지, 이게 분해서 이제 완전히 다 확 풀어서 하나도 없이 없애겠다요것을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말은 못해도 국제시장에 가든지 어데든지 가면은, 소문을 듣든지 들을 때에 오늘 풀어질지 모른다. 이 많은 게 이래 다 진설해 있는데 이게 진열돼 있는데 이것도 오늘 풀어질란지 모른다. 저 모두 삐쭉빼쭉 모두 유명한 그 모두 다 그런 유명한 모든 인걸들이 많이 있는데, 인걸들이 많은데 저것도 오늘 또 어찌 될란지 모른다.’ 이것을 우리 혼자로서는 모든 존재를 다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이 옳습니다.

 

내가 듣는 것, 내가 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부러워하는 것, 자랑하는 것,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고 자랑하고 야단지기는 모든 것 다 한 말로 오늘 이것이 다, 이 모든 각종의 천태만상 이것이 다 확 풀어진다. 모든 그 체질이 다 녹아진다.

 

인간이 수많은 방편으로 뭐 마구 요리 얽고 조리 얽고 요리 가루고 조리 가루고 덮어 가루어서 전부 저잘난 재미입니다. 전부 저를 요렇게 변호 조렇게 가루고 덮고 하지마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날 것이오. ‘오늘 지금 드러날지 모른다.’ 이것을 자꾸 생각해서 내가 들을 때에 어떤 강대국 그것도 오늘 풀어질란지 모른다.’ 어떤 영광스러운 공부 열심히 해 가지고 세계를 울리는 과학 노벨상 그것도 오늘 불탈란지 모른다.’ 이 세계에 해상 문화, 육상 문화 해상 문화 모든 것 듣고 보는 것 다 그거 오늘 불탈란지 모른다.’ 어려운 문제도 급한 것도 모든 것도 `오늘 불탈지 모른다.’ 그럴 때에 우리의 사람이라는 것과 생각이라 하는 것은 발라집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전부 변질이 돼 가지고 정상의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다 변질돼서 비정상의 사람입니다. 비정상의 사람인데 이 비정상의 사람이 정상의 사람이 되는 데에는 먼저 바른 지식을 가져서 바로 알아야 정상의 사람이 됩니다.

 

바른 지식을 가져야 이것은 잘못 알았다 삐뚤어졌다알 수 있고 `요래 아는 게 옳다 바르다이래 알 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니까 전부 지식이 다 변질돼서 비정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존재관과 만물관이 완전히 다 변질되어서 비정상되어 있습니다. 이래서 며칠 전에는 여덟 가지 관찰에 대해서 증거한 일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 비정상된 이 사람을 정상화시키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정상화시킬 수가 있는가? 정상화시키는 것은 이 지식을 바른 지식을 저들에게 줘 가지고 바른 지식을 줘서 모든 존재관이나, 또 그 모든 움직이는 그 활동관이나, 또 상호 화합관이나, 또 심판관이나, 보응관이나, 멸망관이나, 영원관이나 이런 것을 다 바로 알아야 이거 되지 그걸 바로 모르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성경 말씀을 우리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래서 그 많은 것 가운데에 우리가 모든 것을 정관해서 모든 것을 정관, 바로 보는 정관을 해야, 바로 봐야, 정관을 해야, 정관한다 말은 바른 지식을 가진다 말입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의 소원도 계획도 비판도 평가도 다 바로 됩니다.

 

그것이 다 삐뚤어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완전히 변질된 환장한 다 미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다.

 

그중에 여게서도 모든 이 피조물, 모든 피조물 중에 영계는 여게 포함되지 안했고 이 물질로 되어 있는 물질계, 이 우주라는 물질계, 물질계에 대해서 첫째 정관할 것은 뭐이냐? 이것은 뜻밖에 이 모든 것이 다 불타서 모든 형상들은 다 완전히 해체가 되어지고 또 그 본질은 다 녹아지고 이래서 원소가 된다. 그 일이 사람들이 생각지 못할 때 알지 못할 때에 갑자기 된다.

 

이것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자꾸 생각해서, 자꾸 생각해서 자기가 뭣을 이거는 못 견디겠다 하는 분해서 못 견디는 것도 이것이 오늘 불탈지 모른다이러니까 여게 대해서 내가 만일 복수할라고 이거 원수니 이걸 복수해야 되겠다.’ 한다면 오늘 불탈지 모르니 이거는 오늘 탈지 모르니까 오늘 끝날지 모르는데 내가 여게 대해서 아무런 하나님 심판에 걸릴 것이 없느냐?’ 이러니까 복수보다 자기 걸릴 것이 문제고, 또 욕심이 나서 견디지 못하는데 오늘 불탈지 모르니 거게 욕심낼 아무 가치가 없고, 이 일은 급하다오늘 불탈지 모르니 아무 급할 게 없고, 이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문제가 커서 여게 대한 문제가 뭐 마음도 쓸 수 있고, 걱정도 할 수 있고, 근심도 할 수 있고, 노력도 할 수 있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외의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가치로 삼을 것이 없고 아무런 관심 가질 것 없고 아무리 큰 게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돼집니다. 이러면 이거 정상의 사람이 된다 말이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고 오시면 이 모든 형체는 다 풀어진다. 모든 것은 다 녹아져서 원소로 되어진다. 모든 잘잘못의 그 진상의 모든 것이 다 드러나게 된다. 요것을 요렇게 믿을 때에, 요 믿을 때에 믿는 것만치 그 사람의 모든 존재에 대한 것이 정상이 됩니다.

 

믿을 때에, 존재라면 몇 가지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십시오.

 

존재는 몇 가지가 있습니까? 여게 여반들, 존재는 몇 가지 있어요? 얼마 이렇게, 어떻게? 말을 바로 들어. 뭐 이렇게는 뭐 이렇게? 아무데나따나 요래 들면 되는가? 이 두 가지. 모든 존재는 두 가지야. 창조주 피조물. 이것도 세계에 예수 안 믿는 박사들은 하나도 모릅니다. ? 그들은 저대로 말하지마는 실상에는 맞지 안해.

 

여게 대해서 모든 존재에 대해서 이 모든 것이 불탄다. 갑자기 뜻밖에 불탄다.’ 하는 요 지식을 가지고 요 사실을 믿는 것만치 그 사람은 모든 존재에 대한 존재관이 바로 되고 모든 존재에 대해서 행동하는 것이 바른 행동 할 수 있습니다. 이거 모르면 바른 행동 못 합니다. 다 삐뚤어진 행동이오.

 

지금 내가 증거할라 하는 건 딴걸 증거할라 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못해요. ‘저 빌딩도 오늘 탈란지 모른다. 내 집은? 내 집도 오늘 탈란지 모른다. 우리 서부교회 예배당도 오늘 타서 없어질란지 모른다.’ 이거야 해도 좋지마는 남의 집이나 뭐 그런 거 무슨 나라니 말하면 그거 좋아하겠소? 말은 못 해도 하루 종일, 말 안 하나마 하루 종일 이것도 불탈지 모른다. 오늘 탈지 모른다. 저것도 불탈 것이다. 저것도 불탈 것이다. 다 불탈 것이다. 불탈 것인데 오늘 탈지도 모른다.’ 그라면 어짤라고? 이렇게 해서 이 사실이 사실로 인정되는 것만치, 사실을 사실로 인정이 되는 것만치, 그 사람의 모든 사고 방식이나, 언행심사나, 그의 모든 소원하는 것이나, 준비하는 것이나 모든 것이 정상됩니다. 정상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립니까? 정상이 됩니다.

 

이게 안 되면 정상이 안 됩니다. 다 비정상의 사색이요, 비정상의 계획이요, 비정상의 소욕이요, 비정상의 모든 행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사실인데 사실을, 사실을 사실 아닌 것으로 아니까 그 모든 계획이나 모든 행동은 다 틀리지 않겠소?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보면은 본 것만치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은 다 삐뚤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모든 것은 오늘 불탈지 모른다.’ 이걸 자꾸 모든 것을 다 봐요. ‘나도 불탈지 모르고 사랑하는 형제도 불탈지 모르고,’ ? 의가 됐으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져 가지마는 의가 안 된 건 다 불탑니다. 뭐 예수 믿는 사람도 불타버리요. 다 불타요. 의 된 것만 남아 있지.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했으니까 의만 그 남아 있고 옮겨가지 딴거는 다 소멸이 됩니다. 소멸돼 가지고 다음에 부활하기는 하지마는 일단 다 소멸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꾸 모든 것은 이 시간에 불탈란지 모른다. 모든 게 불탈란지 모른다.’ 그러면 불탈란지 모른다 이라는데 우리는 거게서 하나 주의할 것은 모든 것은 불탈란지 모른다이럴 때에 자꾸 이렇게 자기가 느끼고 느끼고 생각하고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생겨지는 일이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생겨지는 일이 있으니 무슨 일이 생겨지느냐? 이 모든 것은 다 헛되니 내가 모든 존재 현실에 대해서 내 현실에는 모든 존재가 내게 당도하고 관련을 가지게 되는데, 모든 존재와 나와 관련을 가지게 되는데 현실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이것도 오늘 불탈지 모르고 저것도 불탈지 모르고 그러니까 경영도 건설도 뭐 소원도 소욕도 계획도 있을 것이 없다.’ 이리 돼 버립니다. 필연적으로 그것이 생겨지기 쉽습니다. 생겨지기 쉬워.

 

그게 필연적으로 생겨지면 그 사람이 이 모든 것이 다 불타서 소멸될 것이라는 이것만 생각했고, 이것만 생각했고 이 모든 것이 풀어지고 녹아지고 모든 일들이 다 드러날 터이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불탄다는, 이 모든 것이 불탄다는 이 사실만 알아 가지고는 이 모든 게 불타는데, 모든 것이 불타는데, 이렇게 모든 것이 불타는데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의를 이룬 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지마는, 이러니까 오늘 이 모든 게 불탈지 모르니, 자꾸 불탈지 모른다는 이것을 자꾸 자기가 느끼고 느끼고 하면은 필연적으로 생겨지는 일이 일차적으로는 모든 것이 다 소용 없다.’ 그래 이제 자기의 모든 생애에서 현실을 완전히 부인하는 사람이 됩니다. 현실을 부인하고 무시하는 사람되고, 현실을 부인하고 무시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그 사람은 낙망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라다가 이 모든 게 이렇게 되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하는 요거 피난길이 있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날을 네가 바라보고 사모하라하는 요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 있기 때문에, 길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낙망하고 다 모든 세상은 다 소용 없다.’ 전부 포기한 그 사람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이 날을 피난할 준비하라하는 요 성구를 그 사람이 볼 때에 그 사람은 이것을 포기 낙망할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언제 탈지 모르니까 한 시간이라도 나는 이 모든 것이 소멸되는 땅위에 큰 환난이 오는 환난을 피할 수 있는 이 피난을 나는 마련해야 되겠다, 피난길을 마련해야 되겠다.’ 하는 사람으로서 그 사람이, 나중에는 아무래도 그렇다고 해 가지고 뭐 자살해도 소용 없고 안 되니까 이 문제는 아무래도 자기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이 문제를 다 극복해 나가야 되겠고 이것을 다 통과해 나가야 되지 거기서 낙망해도 안 되고, 또 그거 무시해도 안 되겠고, 모든 것 세상에 대해서 다 포기해도 안 되겠고 아무래도 이거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의 이 준비가 있어야 되겠다하는 그 사람이 필연적으로 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것도 다 실지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실상을 자기가 해 보지 안한 사람은 그 사람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모든 것이 갑자기 다 불에 타서 모든 형상이 다 풀어지고 모든 체질이 녹아지고 모든 일이 드러나고요것을 자꾸 생각하면 일차적으로 모든 존재에 대한 무가치라는 것으로 아무 그 가치할 것이 없고, 아무 가치 둘 것이 없고, 아무 가치 둘 것이 없고, 욕심낼 것이 없고, 탐할 것이 없고, 할 일도 없고, 모든 존재에 대해서는 완전히, 이 온갖 미혹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요것을 가지지 못하는 가운데서, 이거 실지로 해야 되지 실지로 안 하면 안 되는데. 요것을 가지지 못하는 여게서 저 할일이 아닌 일에 미혹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이 지극히 큰 약속이 있지마는 그 약속을 자기가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하고 어리석은 이 모든 미혹, 이런 형체에 미혹받고, 이런 색깔에 미혹받고, 또 이런 뭉텅이에 미혹받고, 이런 모든 본질 본성에 미혹받고, 그 전부가 자기를 미혹을 줬었는데, 미혹을 줬었는데 오늘 불탈지 모르는 이 사실을 믿을 때에 그 모든 미혹은 다 소멸돼 버리고 맙니다. 미혹이 다 소멸되고 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뭐 부러워하고 탐하고 하는 그런 모든 것이 일단 뜻밖에 밤에 도적같이 그날이 오리니 모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모든 것이 풀어지고 모든 일이 드러나는 요 사실, 갑자기 요 사실이 되는 요 사실을 믿을 때에, 제가 열 번 생각하라 했는데 믿나 안 믿나?’ 요걸 자꾸 믿으면 믿는 것만치 자기에게는 필연성의 사람이 나옵니다. 요것을 믿는 사람이라야 그걸 만나고 그런 걸 체험하고 경험하지 믿는 사람이 아니면 경험이 안 돼. 이 말을 내가 하는데 여러분들에게 뭐 이 들려지는지는 모르겠어.

 

이거는 이 걸어봐야, 걸어봐야 자기에게 체험에서 느껴지고 자꾸 경험에서 느껴지고 하는 그걸 말하기 때문에 이거는 그대로 해보지 안하는 사람은 안 해 봤는데 무슨 체험이 나오겠어? 안 해 봤는데 무슨 경험이 나오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요거는 꼭 주님의 날이 밤사이에 도적같이 임하면 모든 것이 풀어지고 모든 것이 녹아지고 모든 일이 드러나는 요것을 자꾸 느껴봐야 됩니다.

 

자꾸 생각해 봐야 됩니다. 그러면 일도 안 하고 그것만 생각하면 어짤라고? 일 안 하고 그것만 생각하면 좋습니다. 자꾸 생각해야 됩니다, 자꾸 생각해야.

 

? 에덴동산에는 농사 짓고 그리 안 해도 잘 살았습니다. 너희들에게 있어야 될 걸 필요한 줄 아는데 인간들이 죄를 짓기 때문에 죄 짓는 것보다는 제가 벌어 가지고 제가 먹고 사는 게 낫다 해서 그런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에게는 그런 거 할 필요가 없이 하나님이 얼마든지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먹인 것을 봐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도 참 믿음의 말인데, 자기가 자꾸 이 사실을 느끼고 느끼고 하면 나는 자꾸 여게 대해서 언제 불탈지 모르면 그러면 저 미인도 불타버린다, 저 미남도 불타버린다, 저 좋은 빌딩도 불타버린다. 아이구 저 화려한 문화도시도 불탄다, 그 나라도 불탄다. 어떤 나라의 그 수상인 대대수상인 그 사람도 그것도 불탄다.’ 모든 것 다 모조리 탄다는 것을 저 혼자 말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 부애 내. 멀거니 보고 멀거니 있는 걸 불탄다 하면 노하지 않겠소? 그러나 성경이 말해 놨다 말이오. 자기 혼자 자꾸, ‘이것도 불탄다 이것도 불탄다.’ 자꾸 이걸 자꾸 느끼면 무슨 사람이 됩니까? 그라면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가치 없다. 뭘 믿으며 뭘 고정적이며 뭘 안심하며 뭘 잡으며 뭣이 가치가 있나? 이 모든 것이 다 전부 헛되다.’ 이럴 때에 그 사람은 세상에 대해서 낙망하는 사람이 되는 동시에, 세상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는 동시에 그 사람은 예수 믿는 신앙 생활 하지 못하게 하는 온갖 미혹이라 하는 것이 다 발아래 발끈 밟혀버립니다. 알겠습니까? 모든 미혹이 발 아래 다 발끈 밟혀버립니다.

 

아이구야, 이 노벨상!’ 노벨상도 발 아래 밟혀버립니다. ‘그것도 오늘 끝날인지 모른다. 오늘 끝날인지 모른다.’ 이러기에 이 미혹하던 모든 음녀 같은 이 세상, 자주옷을 입고 아주 금과 은과 보석으로 장식을 꾸미고 또 손에 금잔을 들고 이렇게 아주 아릅답게 꾸민 음녀, 요거는 이십세기의 문화를 말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문화의 찬란을 말한 것입니다.

 

이랬는데 이제 그 음녀가 다 불탈 것인 것을 볼 때에 아무 가치할 게 없고 불쌍하고 가련하기나 하지 아무 매력이 없어. 여게서 일단,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과 음행, 세상하고 한짝이 되는 이 음행의 포도주에서 깨어납니다. 포도주에서 깨어납니다. 아무 매력으로 볼 게 없고, 탐할 것이 없고, 거기 끌릴 것이 없고, 미혹받을 것이 없어. 없어.

 

그라고 나면, 그라고 나면, 그라면 절망입니까? 자살해 죽습니까? 아니오. 이제 그 모든 걸 끊고 나면, 이것도 필연적이라. 끊고 나면, 끊고 나면, 끊고 나면 하나님과 그 사이를 끊었던, 이 끊었던 이 간부가 끊어지면, 이 간부가 끊어지면, 불탈 것이 끊어지면, 이 불탈 것 간부 이 음녀 이것이 끊어지면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라면 필연적으로 소망이 생깁니다.

 

무슨 소망이? “이 모든 게 이렇게 풀어지고 녹아지고 드러날 터인데 네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기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이 날을 바라봐라하는 소망이 생겨집니다.

 

그럴 때에 모든 미혹을 다 끊어버리고 똘똘 뭉쳐서 정비 정돈한 자기의 인품과 하나님과 상대된 데에서 이제 거룩한 행실과 경건의 이 소망이 자기에게 오게 됩니다. 이래서 이것도 필연적으로 나중에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에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도 필연입니다.

 

소멸될 것을 자기가 자꾸 생각하고 생각해서 믿고 믿고, 또 믿고 또 믿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자꾸 느끼고 느끼고, 자꾸 느끼니 그다음에 필연적으로 생겨지는 게 뭐입니까? 필연적으로 생겨지는 것은 모두가 다 헛되다. 모든 게 다 무가치하다. 모두가 다 무가치하다.’ ‘아이구, 나는 이렇게 좋은 신혼 부부, 이렇게 좋은 명예 지위 권세, 이렇게 좋은 모든 과학 모든 행락 모든 명예 다 헛되고 헛되다. 오늘이 끝인지 모른다.’ 할 때에 온갖 미혹이 다 제거돼 버리고, 미혹이 제거되고 그대로 있으면 우리는 낙망해 죽겠는데 미혹이 제거돼서 가루는, 빛을 가루는 것이 없어지고 나니까 빛을 가룬 이 철판이 없어지고 나니까 빛이 비추어 환하게 비춰서 우리 마음이 밝아집니다. 우리 마음이 밝아져. 철판이 없어지고 나니까 이 빛이 우리에게 비춰서 비춰집니다.

 

이거는 비유입니다. 철판이 없어진다 말은 세상에 애착의 모든 미혹이 다 없어지고 나니까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리워진 것이 없어지고 나니까 하나님의 그 영감의 빛이 우리에게 비춰 옵니다. 영감의 빛이 우리에게 비춰 와. 비춰 오니까 심령이 밝아집니다.

 

비춰 오니 이제는 세상은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정평 정가했는데,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자는 세상을 과대 평가했지 정평 정가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을 바로 믿는 사람은 세상을 정평 정가하게 됩니다.

 

세상을 정평 정가하니까 우상되었던 것이 다 깨어지니까 하나님의 빛이 우리에게 비추어집니다.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지니, 심령이 밝아지니 이 모든 것이 다 풀어지고 녹아지고 드러날 터인데 네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이 소망이 자기에게 확실히 생겨집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이 신천 신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수 있는 소망이 생겨지는 게 거게 생겨집니다. 이러기에 필연적으로 나 할 일은, 급하다. 나 할 일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 외에 할 일이 없다.’ 거룩한 행실은 뭣인고 하니 모든 잡탱이 있는 데에서 구별하고 구별해 가지고 참에 옳음에 도달하는 것을 가리켜서 거룩이라 말합니다. 거룩이라 하는 것은 온전을 찾는 그 과정까지를 합해 가지고 말할 때에 거룩이라고 말하고 그 과정을 떼놓고 말할 때에는 진실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진실이라. 그게 거룩인데 이제 이 거룩을 이루는 그것을 다음 시간에 말하겠습니다.

 

거룩은 이렇게 모든 것을 다 구별해. 구별해서, 무슨 법칙을 준해 가지고 구별하느냐? 구별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복음으로 나타내 주신 하나님의 지식의 이 말씀이 우리가 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거룩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으신 이 지식을 준해 가지고,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지식을 기준해 가지고, 지식을 잣대로 삼아 가지고 이 잣대로 자꾸 이래 지식으로 잣대로 이렇게 자꾸 재어 가지고 이래 하는 그것을, 그래 가지고 온전한 것을 찾은 것을 가리켜서 거룩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거룩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느냐? 이 거룩은 신앙 양심이 거룩을 찾아가서 신앙 양심이 거룩을 이룹니다. 거룩을 이루면 거룩은 진실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제 거게 대해서는 또 너무 복잡해 모를 터이니까, 그러면 자꾸 구별합니다. , 말도 구별해, 듣는 말도 구별해, 보는 것도 구별해, 생각하는 것도 구별해, 접촉도 구별해, 사람도 구별해, 가족도 구별해, 친구도 구별해, 일도 구별해, 행동도 구별해, 자기의 웃음도 구별해, 근심도 울음도 구별해, 모든 것 다 구별해.

 

모든 걸 구별하니까, 모든 걸 구별하니, 모든 걸 구별하니 필연적으로, 모든 걸 구별하니 필연적으로 내가 사는 세상은 어찌 됩니까? 모든 걸 구별하니 내 세상은 필연적으로 무엇이 됩니까? ○ ○ ○ 선생? 뭐이 되지? 자꾸 이렇게 구별 구별해 모든 것, 듣는 것, 보는 것, 접하는 것,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전체를 구별하니까 이 세상은 나와 어찌 되는지? 어찌 됩니까? 밤이 돼? 세상은 어찌 됩니까? 쓸쓸한 빈들판이 됩니다. 알겠습니까? 필연적으로, 이거 해 봐야 알지 해 보지 안한 사람은 몰라요. 쓸쓸한 빈들판이 됩니다.

 

? 아무리 친구간이라도 동역자라도, 동역자라도 그 사람 만났을 때에, 그저 세상은 그렇습디다. 죄만 지으면 좋아하고 좋아합니다. 이 거룩을 양보하면 마구 좋아합니다. 이러나 이거 거룩을 양보하지 안할라고 하니 그 사람들은 교만하다. 딱딱하다.’ 자연히, 자연히 세상은 내게 대해서 빈들판이 됩니다.

 

밤이나 낮이나 성도들이 눈물 머금고눈물 머금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눈물 머금어? 눈물은 참 너무 외로와서 눈물입니다. 외로와서 눈물이오. 성도의 눈물은 외로와서 눈물이요, 외로와서. 왜 외로와져, 왜 외로와져? 사람이 이렇게 많이 사는데 왜 외로와져? 내가 거룩한 행실을 할라 하니까 외로와집니다.

 

거게서 말 한 마디라도 죄를 지어 주면 좋아하고 죄되는 말을 용납하지 안하고, ‘하면 좋아하는데 그말을 예라고 대답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저 암말도 안 하고 허허 하지 거기 대답할 수 없으니 분명히 거기서 안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말할 때에 `, 그렇습니다.’ 말하면 짝자꿍이 딱 되고 좋아하지마는 이 말을 못하다 보니까 외롭습니다. 쓸쓸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주 제딴에는 지혜 있는 줄 알고 팔방미인으로 이 사람 만나면 또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 만나면 저렇고, 이 사람은 내가 이래 말하니까 참 진정인 줄 알지,’ 나는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우리 진영에 네 목사가 내가 아파 있을 때에, 좀 머리되는 목사인데 이 목사들이 각각 왕될라고 다 합니다. 왕 될라고 다 이라고 있소.

 

이런데 이 한 목사는, 이 목사는 이 목사도 나하고는 한짝이고 이 목사도 나하고 한짝이고 이 목사도 나하고 한짝이고 이 목사도 나하고 한짝이고 한짝이다.’ 그래 내가 그 목사 보고 말했어. ‘너 그거 회개해. 그게 창기성이라.

 

팔방미인 창기성이라. 네딴에는 이 사람은 요래 대하니까 좋아하고 저 사람은 저래 대하니까 좋아하니까 네딴에는 처세술이 능한 줄 알고 그 사람 된 줄 알지마는 네가 네 꾀에 빠졌어. 네 거룩을 버렸어. 너는 창기성의 팔방미인이 되고 말았어.’ 그럴 때에 요 말을 자기 말에 찬동이나, 반대만 안 해도 좋아할 터인데 반대 안 하면 거룩의 행위가 깨지기 때문에 할 수 없어 반대 말을 해야 돼.

 

이렇게 거룩한 행실하다 보면 성도들의 자기의 세상은 쓸쓸한 빈들판이 됩니다.

 

자기에게 동무가 없어. 동무가 없어. 동무는 없어. ? 자기보다 신앙이 앞선 사람은 자기 보고 있을 여가가 없어. 자기가 그 사람하고 암만 잡을라고 해도 잡히지를 안해. 자기보다 앞선 사람은 암만 그 사람 붙들고 같이 가자 해도 그 사람은 혼자 달아나기 때문에 그 사람 잡을 수가 없어. 또 뒤에 사람은 나 따라올라 하지마는 그 사람을 돌아볼 수가 없어. 이러니까 나를 따라오는 사람하고도 나하고 벌어지지 앞서 가는 사람하고도 벌어지지 이러기 때문에 광야라.

 

이래서 배암이 여인을 삼킬라고 하니까 독수리 날개를 주면서 광야 제 곳으로 날아서 피난해라그것이 뭐이냐? 그거 우리에게 쓸쓸한, 쓸쓸한 빈들판과 같은 고독한 생활, 고독한 생활, 거룩한 행실 할라 하면 필연적으로 고독한 생활이 돼져.

 

경건함으로모든 사람이 이 사람 위해 주고 다 저 위해 주면 다 좋다 하는데 경건이라 하는 것은 주를 위한 진리 생활이 경건입니다. 주님을 위한다면 진리 생활해야 되기 때문에, 사람도 위해, 사람 위하는 것 좋기는 다 좋지마는 암만 위할라 해도, 위할라 해도 주님 위해야 되고 사람 위해서 안 되기 때문에 내가 주님을 위해서, 그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 ○ ○ ○ 장로하고 나하고 둘이 이래 사귈 때에 내가 주님을 위하는 일을 해야 장로님을 내가 참 위하는 것이고 사귀는 것이 돼지지 서로 좋도록 이라면은, 주님은 안 좋고 서로 좋도록 이래 버리면 사람 옛사람으로는 좋아하지만 실상은 그 사람을 함정에 빠뜨린 게 되기 때문에 그리 못 하겠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자연히 경건함을 할라 하니까 사람과 나와에 벌어져. 거룩한 행실을 할라 하니까 모든 활동이 벌어져.

 

이러니까 밤이나 낮이나 눈물 머금고눈물은 외로와서 눈물 나오는 눈물입니다. 외로와서 눈물나는 눈물이오. 내가 참 의지하고 바라보고 좋아하는 분은 그분인데 그분이 지금 고대스러워서 그분이, ? 그분밖에는 바라보고 고대할 것이 없어. 고대할 것이 없어. 이러니까 눈물 나와, 눈물이 나.

 

쓸쓸한 빈들판에서 흐미한 등불을 밝혀놓고이제 자기가 근근히 참 진리를 지킨다고, 진리를 지킨다고, 빛의 생활 한다고, 세상에 속화되지 안할라고 이렇게 하니까 그뭐 빛이라 하는 것이 보잘것 없는 빛이지마는 흐미한 등불을 밝혀들고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하여 고대할 수밖에 없는 거라.

 

이러니까 자기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이 사람이 될라고 애를 쓰니까 그는 이 세상은, 세상은 민주주의가 공산주의 국가에 있으니까, 공산주의에게 있으니까 접촉하는 사람마다 자꾸 자기와 적이 되어지고 자기는 자꾸 외로와지고 자기 생명은 자꾸 위협이 돼지고 이제 이러니까 어서 민주주의 나라에 날아가야 되겠다 하는 그 사모할 수밖에 없는 거라.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자연히 세상과는 멀어지고 이제 주님의 재림의 날이 고대해지는 이것이 필연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이러니까 주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그러면 소망 그 소망밖에 없어. 소망은 다른 소망이 없어. 소망은 그 소망밖에 없어.

 

이러니까 간절히 사모하라밤이나 낮이나 생각은 주님 오시는 그일만이 자기 마음은 항상 밤이나 낮이나 그것뿐이라. 저 공산주의자들이 6 5 때에 가다가 그만 저 인천서 막아버려서 올라가지 못하고 전부 패잔병들이 이 산에 숨어 가지고 있었습니다. 있는데 저 위에서 무전을 들으면은 저 위에서는 석 달만 참아라 한 달만 참아라 곧 해방해서 내일 다시 남한을 남침해서 내려가서 한다이라니까 행여나 올까 싶어 그 사람들은 밤낮으로 고대야.

 

밤낮으로 이북이 곧 쳐오나 쳐오나?’ 자꾸 이렇게 지금 고대하고 밤낮 그 사람들은 고대하는 게 이북 사람들만 오기를 고대해요. 무슨 행여나 다시 적화통일 될까 싶어서 그걸 자꾸 고대하게 돼. ? 요 남한에서는 발붙일 곳이 없어지니까 자꾸 공산주의의 정권들이 자꾸 사모하게 돼져.

 

믿는 사람이 거룩한 행실과 경건의 요 생활을 하면 할수록 세상과는 멀어지고 주님과는 가까와지고 세상에는 절망이 되어지고 주님의 재림하시는 거게만 소망이 되어지는 이것이 필연적으로 되어진다 그거요.

 

이제 그러면 이 생활 하면은 그 사람은 필연적으로 뭐이 되느냐? 의의 사람이 돼져. 의의 사람이 돼져. 이라니까 왜? 아무것도 소망할 것 없고 의지할 것도 없으니까 자꾸 그렇게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하다 보니까 자기 생활은 전부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은 죄인인데 암만 살아봤자 그런데.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 구속밖에는 바라볼 것이 없어.

 

아무것도 바라볼 게 없다. 주님이 나를 택해 주셨사오니 나를 놓지 안할 것을 내가 믿습니다.’ 그것만이 든든해져. ‘주님이 나를 아버지 아들 만들기 위해서 대신 죽기가지 하셔 가지고 화친 만들었으니 주님이 죽으심으로 나를 아버지와 화친해 주셨으니 이 화친은 절대로 깨지지 않습니다.’ 그 화친을 바라보고, 주님이 공심판 통과한 그 의를 바라보고, 주님이 마귀에게서 나를 대형해서 내가 죄 지은 형벌을 받음으로써 죄와 나와의 관계가 끊어졌고 마귀와 관계가 끊어졌고 사망과 나와 끊어졌으니까 예수님의 대속밖에는 바라볼 게 없어.

 

이러니까 자기가 예수님의 대속 자기 힘껏은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안할라고 하는 사람, 벗지 안할라 하는 사람 돼.

 

벗지 안할라고 하는 사람이 되고, 나를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중생한 새생명 줘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시켜 주셨으니 이제는 내가 진리로 영생하고 영감으로 영생, 하나님을 향하는 그 영생 생활 이 생활을 내가 하게 되었으니까, 하게 됐으니까 이것밖에는 전력 기울일 게 없어.

 

이 생활을 이것밖에는 할일이 없는데 이 일 하는데, 이 일을 하는데, ‘나만 이렇게 뭐 외롭게 이 일 할 게 뭐 있느냐?’ 사람이라는 것은 그렇게 이 여덟 가지 구속의 생활을 하다가 피곤해. 피곤해져.

 

그런데 이게 뭐냐? 피곤해지는 이 모든 생활이 광야 생활이 이것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제사장직을 지금, 현재 제사장직을 하고 있는 것이며, 제사장 실력을 자꾸 성장시키는 것이며, 제사장 역사를 하는 것이며, 제사장 그 실력을 성장시키는 것이며, 선지 역사를 하는 것이며, 선지 실력을 성장시키는 것이며, 왕의 역사를 하는 것이며, 왕의 실력을 성장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전부가 막 소망 소망뿐이라.

 

이것이 다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의 진리는 깨닫고 보니까 모두가 필연적이라. 요거 해야, 요거 하면 필연적으로 요거 되고, 요거 하고 나면 또 필연적으로 요거 되고, 그거 하고 나면 또 필연적으로, 전부 필연적으로 다 이와같이 되어지는 것이고 시작만 하면 그것이 나중에 필연적으로 결실이 되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역부러 필연적이 아니고 할라고 애쓰는 것은 다 가짜배기고 거짓부리라.

 

 

그러기 때문에 갑자기 모든 것이 풀어지고 녹아지고 모든 것이 드러나는 이 사실을 믿느냐 안 믿는냐? 믿느냐 안 믿느냐 뭘 봐서 압니까? 믿느냐 안 믿느냐 뭘 봐서 압니까? ○ ○ ○ 권찰님? 믿는가 안 믿는가 뭘 보고 알지요? 표적이 뭐입니까? 믿는가 안 믿는가 그 표적이 뭐입니까? ‘모든 게 갑자기 모든 게 다 불타 없어진다, 모두 다 미남도 없어지고 미인도 없어진다, 모든 이 나라도 뭣도 우주도 모든 전부 명예도 지위 영광도 전부 오늘 밤에 불타서 없어질지 모른다요걸 자기가 확실히 믿으니 필연적으로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그 결과가 뭐입니까? 믿는지 안 믿는지 그 결과를 봐야 아는데 그 결과가 뭐이 나타납니까, 목사님? 모든 것이 헛되다, 다 세상에서 손이 다 풀어졌습니다. 모든 게 헛되다. 다 모든 것이 포기입니다. 거게서 미혹이 다 일소되고 맙니다.

 

모든 것이 포기돼서 이제 세상이 나를 미혹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완전히 미혹에서 벗어납니다. 미혹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모든 것을 자기가 요거 아니면 못 살겠다.’ 선악과가 하나둘뿐 아니라 선악과가 많이 있어서 요거는 아무래도 내가 취해야, 내게 참 요거는 취할 만한 가치도 있고 지혜롭기도 하고 탐스럽기도 하고 영광스러울 수도 있다.’ 요렇게 선악과가 맛있었는데 선악과가 다 바싹 다 부숴지고 없어지고 나니까, 선악과가 어데 부숴졌소? 선악과가 어데서 부숴졌습니까? 오늘 불탈지 모른다는 요것을 확고히 생각하고 믿는 데에서 이 모든 선악과가 불타 버렸습니다.

 

선악과가 불타 버렸으니까 그는 낙망이 되는 동시에 뭣이 필연적으로 없어졌습니까? 하나님과 가리워진 것이 필연적으로 장벽이 없어졌습니다. 장벽이 없어지니 필연적으로 무엇이 옵니까? 필연적으로 뭐이 옵니까, 선생? 필연적으로 뭐이 옵니까? 필연적으로 빛이 옵니다. 소망 왔다 말은 초절이오.

 

그게 안 오요. 빛이 옵니다. 하나님의 빛이 와. 이 가리워진 게 없어지니까 빛이 와서 환한 빛이 와서 빛이 오니까 자기 마음이 환해져서 이상하게도 모든 게 정상으로 다 보여져. 눈이 정상적으로 돼 가지고 그 마음의 눈이 정상돼 정상으로 보여져.

 

정상으로 떡 보여지고 나니까 뭐이 생깁니까? 필연적으로 뭐이 생겨집니까? 필연적으로 뭐이 생겨지요? 정상적으로 보이고 나니까 필연적으로 뭐이 생겨집니까, ○ ○ ○ 목사님? , 필연적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소망 주신 소망이 보여집니다. 눈이 밝으니까 보여질 것 아니겠소? 그전에는 몰라요. 이 순서를 거쳐야 보여져. 눈이 밝으니까 보여져요.

 

이런데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수 있다.’ 자기에게 소망이 꽉 생겨져서 소망이 보여집니다. 소망이 보여져. 보여지면 그 사람은 어디다가 전심 전력 기울입니까? 필연적으로 어디다가 전심 전력? 필연적으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에 전심 전력 기울입니다. 전심 전력을 기울이면 필연적으로 그 사람에게는 뭣이 생겨집니까? 필연적으로 무엇이 생겨집니까, 목사님? 필연적으로 무엇이 생겨집니까? ○ ○ ○ 목사님? 쓸쓸한 빈들판의 세상이 됩니다. 알겠습니까? 필연적으로 쓸쓸한 빈들판의 세상이 됩니다.

 

그라면 그 사람의 마음은 필연적으로 어데 가 있겠습니까? 어데 가 있겠습니까? 주님의 재림의 날에 가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재림의 날에 있습니다.

 

그러면 거게, 거게만 소망 두고 바라보고 거게만 소망되니까 그 사모는 어데 있습니까? 사모는 어데 가 있겠습니까? 사모는 주님의 재림하시는 그 소망에 마음 전부가 다 기울여서 전심이 거게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라면 필연적으로 뭐이 만들어집니까? ○ ○ ○ 선생? 의가 만들어집니다. 이러니까 해 보니 죄인이라.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보니까 살라고 보면 의인 됩니까 죄인 됩니까? 살라고 해 보니까 의인 됩니까 죄인 됩니까? ‘자꾸 살라고 하면 차차 의인되지.’ 그 사람은 살아보지 안한 사람이오.

 

말씀대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살라고 해 보니까 살아볼라 하는데 자꾸 죄인이 됩니다. 살라 하기 전에는 저는 의인인 줄 알았는데 살라고 하니까 자꾸 죄인이 더 돼요. 죄인이 더 되니까 저에게는 바라볼 게 뭐입니까? 자꾸 애를 쓸수록이 자꾸 죄가 나오고 죄가 나오고 자꾸 자기는 죄인이 더 되고 보니까 그 사람의 바라볼 게 뭐입니까? ○ ○ ○ 교회 사모님?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만 바라봅니다. 점점 바라요. 예수님의 구속만 바라. 그 구속만 자꾸 바라봐요.

 

구속만 자꾸 바라보니까 구속이 커지니까 뭐이 커지지? 뭐이 커졌어? 의가 커졌어. 알겠습니까? 그러면 신천신지에 갈 수밖에 없지. 이게 필연성이라는 거, 우리가 속지 맙시다.

 

 

이래서 나무를 모르거든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알라. 그 결과를 보아서 아는데 내가 정말로 예수님의 재림에 오늘이나 내일이나 갑자기 모든 것이 다 불타서 다 녹아지고 다 없어지고 녹아지고 풀어지고 모든 일이 드러날 이 사실을 내가 믿느냐 안 믿느냐? 그 결과를 보아 아는데 그 결과는 뭐입니까? 그 결과는 뭐입니까? 그 결과는 또 뭐이지요? 그 결과는 뭐이요? 이거 잊어버리면 안 돼.

 

지금 자꾸 남의 토막을 배우기 때문에, 자기가 실지로 하면 다 나와요. 그 결과는 뭐입니까? ○ ○ ○ 장로님?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 나와. 이래서 음녀가 깨져버려. 음녀가 깨져. 간부가 깨져. 음녀와 간부가 절단나 버려.

 

이러니까 음녀와 간부에 유혹받아 가지고 본남편 하나님과 이렇게 적이 돼 가지고 있었는데 이 간부가 없어지니까 하나님의 긍휼이 와. 하나님의 긍휼이 와.

 

긍휼이 와 빛이 오니까 눈이 밝아져. 눈이 밝아지면 뭘 보입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서의 신천신지의 소망이 보여져. 이러니까 그 사람은 무슨 생활 하는고? 돈벌이 생활이나 그런 거 하지 안해. 거룩한 행실과 경건에 전심 전력 기울이게 돼. 전심 전력 기울이게 돼.

 

전심 전력 기울이니까 저 조사님, ○ ○ ○ 교회 조사님, 전심 전력 기울이니까 무엇이 필연적으로 나오지? 쓸쓸한 빈들판이 나옵니다. 알겠습니까? 쓸쓸한 빈들판이 나와. 이러니까 그 사람의 모든 마음이나 모든 정성이나 사모는 어데 가 있습니까, 필연적으로? 어데 가 있습니까, 필연적으로? 여기 치과 의사? 주님의 재림에 필연적으로 가서 기울어져.

 

이래 가지고 자꾸 기울어져서 자꾸 신앙 생활 하니까, 신앙 생활 할라 하다 보니까 그 사람이 뭣 됩니까? 무엇이 돼요? 그 사람이 뭣 돼지요? 필연적으로 뭣 됐어? 죄인 됐어, 죄인. 죄인이니까 막 죄투성이만 자꾸,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 됐어. 만삭되어 못해 낳은 것과 같은 연약한 자가 됐어. 이러니까 필연적으로 그 사람은 뭘 의지해야 되겠소? 뭘 의지해야 되겠습니까, 목사님? 예수님의 대속 의지하는 사람 되고 만다 말이오. 이러니까 점점 의인이 됐지. 우리 구원이 이렇게 이 순서적으로 이 구원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열 번 생각할 게 아니고, 처음에는 열 번 생각했는데 자꾸 생각해요. 생각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변화되고 우리 구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껍데기로 가지고 뭐 이 말만 해 가지고 우리 구원 이루어지는 것 아니오.

 

기독교는 진실입니다. 진실 없으면 기독교의 구원은 하나도 없는 것이오.

 

광고합니다.

 

삼십 분 기도를 빼지 말고 계속합시다. 새벽기도에 다 나와요. 나와야 여러분들의 심령이 밝지 안 나오면, 안 나오는 사람 그동안에도 못 배운 것 많아. 못 배운 것 많아. 돈 천만 원을 줘도 못 배워. 그만한 가치가 안 돼. 억만 원도 그만한 가치 못돼. 배운 그것이 이 우주를 제가 차지해도 그만한 가치가 안 돼요. 이렇게 큰 것을 자기 것 삼을 수 있는데 뭐한다고 새벽기도 안 나오고 그렇게 망령을 부리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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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3 장로 투표/ 민수기 16장 26절-35절/ 861207주전 선지자 2015.12.17
1492 장로고시/ 1989. 2. 교역자회의록 선지자 2015.12.17
1491 장로의 범위와 할 일/ 누가복음 16장 10절/ 820617목새 선지자 2015.12.17
1490 장로의 할 일/ 베드로전서 5장 1절-4절/ 820604금새 선지자 2015.12.17
1489 장막 생활/ 고린도후서 5장 4절-7절/ 860604수야 선지자 2015.12.17
1488 장막집이 무너지기 전에/ 고린도후서 5장 1절-21절/ 861218목새 선지자 2015.12.17
1487 장성한 분량/ 에베소서 4장 13절-14절/ 890203금야 선지자 2015.12.17
1486 재림준비 올바른 자세/ 베드로후서 3장 10절-13절/ 791005금새 선지자 2015.12.17
1485 재림/ 마태복음 24장 32절/ 800525주후 선지자 2015.12.17
1484 재림/ 마태복음 24장 32절-51절/ 800525주전 선지자 2015.12.17
» 재림/ 베드로후서 3장 9절-14절/ 870417금야 선지자 2015.12.17
1482 재림/ 마태복음 24장 32절-34절/ 800526월새 선지자 2015.12.17
1481 재림/ 사도행전 2장 17절-21절/ 870823주전 선지자 2015.12.17
1480 재림/ 베드로후서 3장 12절-13절/ 820420화새 선지자 2015.12.17
1479 재림/ 마태복음 24장 29절-33절/ 800527화새 선지자 2015.12.17
1478 재림/ 마태복음 24장 40절-43절/ 1980년 22공과 선지자 2015.12.17
1477 재림/ 베드로후서 3장 8절-13절/ 1979년 22공과 선지자 201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