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16:28
일어서는 것 세 가지
본문 : 요한복음 5장 6절∼11절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우리가 새사람이 되어 살고저 할 때에 우리를 미혹시키는 그 조건이 있는 것을 여게 한 서너 가지로 말했는데 이 안에 다 포함됐습니다. 하나는 내가 누구보다도 중환자라. 또 나를 도와 줄 이가 없다. 나보다 먼저 들어가는 이가 있어서 나의 하는 일을 방해해서 안 된다고 세 가지 유혹이 우리에게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 세 가지 유혹을 우리는 여기에서 온전히 배제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고, 일어서서 걸어 가라. 자리를 들고 걸어 가라. 그러면 사람병 고치는 것을 계시해 주신 밀씀이니까 사람병이 고쳐지면 인제 참사람 새사람이 되겠습니다. 이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거 그러면 참사람으로 걸어가는 거, 병든 사람이 아니고 참 정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인데,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정상적인 사람은 어짜든지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먼저 예수님의 피의 대속을 입어야 하고, 또 예수님의 대속을 입는다 할지라도 그 능력이 있어야 되는데 영감과 진리가 이제 그 능력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새사람으로 일어서는 게 뭐이냐 하면. 일어서는 거. 일어서 걸 어 가는 거. 그러면 일어섰던 사람이 병신이니까 일어섰으나 그것이 다시 넘어질 수도 있고, 또 일어서 가지고 너댓 자국 걸어갈 수도 있고 또 한 여나문 자국 가다가 넘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 그 병이 나아서 일어서 걸어가는 거, 일어서는 게 어떤 것이 일어서는 것인가 요 것을 우리가 단단히 잡읍시다.
일어서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이 피공로를 믿어서,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하신 거는 그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주님의 세 가지 대속으로 힘을 얻는 것을 가리켜서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양식을 먹으면 힘이 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형이 어떤 그 과정을 통과해서 대형이 됐으며 대행이 됐으며 대화친이 됐으며. 이로 인해서 우리가 이 공로를 입은 자에게 이 공로로 말미암아 오는 그 은혜가 무엇이며. 소망이 무엇인가, 그것을 자꾸 생각해서 그럼으로 내게 힘이 나는 그 힘이 바로 주님의 피와 살을 양식으로 먹은 그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뭐 논리만이 아니고 예수님의 피로 대형의 사죄와 대행의 칭의와 대화친의 하나님과 연결되는 그 연결을 우리가, 연결의 과정을 생각하고, 또 연결로 말미암아 내가 어떠한 그 혜택을 입어서 하나님의 지공의 심판 앞에서 어떠한 자가 된 것과, 또 내가 공로로 인해서 받는 은혜가 무엇인지 그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내가 길이요' 하는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그것이 전부 다 내 것입니다. 대형이 내 대형이요, 대행이 내 대행이요, 대화친이 내 화친이라,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그 대속이 그것이 바로 내가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는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대속을 자꾸 자기가 생각하고.
그러면 대속을 생각할 때는 몇 가지로 생각해야 되겠습니까? 세 가지로 생각해야 됩니다. 대속을, 그러면 대속이 어떠한 그 어려움의 과정을 겪어 가지고 내 대속이 됐다는 거, 그러면 대속으로 말미암아 내게 오는 하나님과 연결돼서 내게 오는 은혜가 어떤 것이라는 것 또 그 대속으로 말미암아 내가 어떤 자가 됐다는 거 요 세 가지를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세 가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거기에서 온갖 겸손도 나오고 신실도 나오고 또 소망도 나오고 담력도 나오고 모든 좋은 것이 거기 다 나옵니다. 이 세 가지를 생각하면 좋은 것이 다 나오는데, 그것이 마치 배고픈 사람이 밥 먹으면 힘 나는 것처럼 이 세 가지를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그 힘 나는 그것이 무슨 힘이냐 하면 그게 곧 참사람 새사람의 힘입니다. 그러면 그 세 가지 이래 자기가 생각해서 세 가지를 입고 사는 그것이 일어서는 것 중에 삼분 지 일이라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 세 가지 대속을 입은 거 그것이 지금 일호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안 돼요. 영감이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다. 진리가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다. 그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가 내게 힘이 올 때에 그 힘을 통해서 영감이 내게 옵니다.
그 힘을 통해서 진리의 깨달음도 오고 진리의 힘도 우리에게 옵니다.
그러면, 요 세 가지 힘으로 자기가 '이제는 내가 주님의 피공로를 어떤 일에도 벗지 안하고 피공로를 입고 영감대로 진리대로 살겠다'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곧 일어설라고 하는 것이요, 일어설라고 하는 것이요. 그것이 일어설라고 하는 것이요, 그래 가지고 자기 현실에서, 뭐 크나 작으나 상관없습니다. 자기 현실에서 고 영감과 진리, 그 주님의 피는 입고 있으면 돼요. 뭐 새로, 내가 노력할 게 아니고 입고 있으면 되고, 안 벗으면 되고 입고 있으면 되고. 고 시간에 자기가 영감은 뭐 영감은 제가 받습니까? 못 받습니다. 못받으니까 그때는 그저 현실에 자기가 아는 대로 요 현실에서는 요대로 살면 성경대로 사는 것이다. 조대로 살면 성경대로 사는 것이다. 그러면 이 호가 자기가 깨달은 대로 성경대로 사는 그것이 이 호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삼 호는 뭐이냐? 삼 호는 그라면 이 호가 갖추게 되면 삼 호는 성신의 감화가 우리에게 감동시켜 줍니다. 삼호가 오면. 일호 내가 입고. 이 호를 내가 지키고 그라면 삼호가 옵니다. 영감이 우리에게 옵니다. 오면 벌써 그렇게 영감이 왔으면 고게 뭐이냐 하면 내가 일어선 겁니다. 피를 아, 그 다음에는 그 진리를 내가 지키고, 고 시간에 뭐 무슨 진리라도 좋아. 현실마다 우리에게 진리 없는 때는 없습니다. 그 진리를 지키고, 고라면 영감이 옵니다. 요래 우리가 일단 지킬 진리를 지키면 우리에게 마음이 새로와지고, 또 영감이 오면 주의 피에 대해서 더 깨달아지고 느껴지고 또 그 큰 공로로 인해서 참 나는 한없는 그 전능자의 그 태 속에 전능자의 그 모태 속에 있는 것처럼 전능자의 그 절대적인 모든 보호 속에 있는 그 온유도 나오고 기쁨도 나오고 나옵니다. 거기에서 고 생활을 자기가, 시작해서 벌써 영감이 왔으면 고게 일어선 것입니다.
요 세 가지로 일어서는 것인 것을 우리가 언제든지 명심하고 그러면, 일어섰다고 해서 걸어 가지느냐? 일어섰다가 걸어가는 수도 있고 일어섰다가 대번 넘어지는 수도 있고. 또 일어서 가지고 한 몇 자국 걸어가다가 넘어 지는 수도 있고, 넘어진 자는 그것이 안 넘어지는 게 아니라 넘어지는 것이 그게 필연성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기지 안하면 너희들과 나와 상관이 없다' 말씀하신 그것이 뭐이냐? 우리가 일어섰다가 넘어진 때에 당신의 그 은혜를 다시 새로 입히는 그것을 가리켜서 발을 씻기는 것으로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넘어졌다가 다시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이 생활 시작했다가, 주님의 피를 내가 아까 세 가지로 생각하자. 세 가지로. 그 피의 대속에 대해서 주님이 어떤 과정을 통과했는가 그 과정을 죽 통과하면 거기에서 우리가 겸손도 나오고 뭐 주님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오신 것도 있고, 또 거기에서 고난 당하신 것도 있고, 대속으로 인해서 내게 뭐 성령도 내속으로 인해서 내게 왔고 진리도, 대속으로 인해서 내게 왔습니다. 누구든지 진리, 알아지는 게 아니오. 석가모니가 그렇츰 애썼지만 진리는 몰랐습니다. 그러면 진리를 안 것도 주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왔고 성령의 감화가 온 것도 대속으로 인해 왔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뭐 요번에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들어주셔서 척척 되는 그게 뭐이냐 만유의 대주재외 친근한 대화의 권세를 우리가 가진 것이 다 예수님의 피공로 때문에 왔다 그 말이오. 그러면 예수님의 피 공로로 인해서 내게 온 거 그것 생각하고, 그 다음에 그러면 그 피공로로 인해서 내가 어떻게 어떤 자 됐다는 거, 그 세 가지 생각할 것. 피를 생각할 때는 세 가지 생각하고, 그러면 세 가지 생각하고 보니까 내가 그 공로를 벗을 수 없고 누가 뺏들라 한들 그 공로는 내게 보배 중에 보배인데 그 세 가지 공로를 뺏길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공로를 생각할 때에 내게 힘이 나옵니다. 힘 나오는 그게 뭐이냐 하면 피와 살을 먹은 힘입니다. 힘이 나오면 그 힘을 가지고 내가 뭣 하느냐? 말씀대로 지킵니다. 그러면 피로 일어서고, 그 다음에는 그 진리의 말씀으로 일어 설라고 지금 준비를 하고, 그라면 영감이 오면 내게 확실히 믿어지는 힘이 나옵니다.
영감이 오면 '아 요대로 내가 살겠다.' 하는 이게 벌써 자기에게 작정이 되어지는 그 작정의 힘이 강해질 뿐만 아니라 고대로 실천이 됩니다. 실천은 뭣 되느냐? 고 현실에 말씀대로 실행하는 고게 실천된다 말이오. 고라면 고게 일어선 것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뭐 별스럽게 일어서서 그만 당장에 무슨 성자가 된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말고 그게 내나 새사람으로 일어선 것이요. 인간 병신이 인간병 고치고 건강한 그 참 사람으로 새 사람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일어선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 믿는 것이 요게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무슨 자기가 새사람으로 병을 고쳐서 새사람으로 치료돼 가지고 일어서는 일어서라 하는 일어서는 게 무슨 무슨 무슨 특수한 그런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다 틀린 것입니다.
그러면 일어서는 것을 뭘로 일어서느냐? 일어서는 것은 요 셋으로 일어섭니다.
그러니까, 셋으로 일어서는데. 하나는 내가 입으면 되고. 입으면 되고 또 그 두 가지로 내가 행하는 거. 그러면 이제 일어섰습니다. 그러면 일어설 때는 세 가지로 일어서는 거. 그러면 세 가지로 일어서는데 자기가 말을 해도, 말을 해도 힘이 나오지 안하고 그렇게 외식으로 일어서는 그것이 어디서 그 결정이 나느냐 하면 영감이 안 오면 헛일입니다. 영감이 안 오면 그거 다 외식이요. 그거 다 거짓부리. 그러면 일호가 뭐입니까? 일호 피, 이호는? 진리, 그러면 인제 그게 바로 됐으면 삼호가 옵니다. 바로 됐으면 삼호가 돼 영감이 옵니다. 영감이 오면 벌써 일어섰소. 일어섰으니까 고대로 고 다음 현실에 그도 자기가 현실에 해당되는 고 말씀을 하나 행합니다. 고라면 한 자국 떼놨소. 또 고 다음 현실에 또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말씀대로 행했는데 또 행하니까 영감이 또 온다 말이오.
자꾸 온다 그 말이오. 그걸 자기가 체험해 보면 알아요. 아. 오니까, 그라니까 한 현실에서 한 자국, 두 현실에서 두 자국 세 현실에서 세 자국, 그것이 떨어지면 일어서 걸어가는 것이고, 자기가 아무리 예수님의 피를 아무리 이래 말을 하고 뭐 수십 번이고 자꾸 말을 하고 되새기고 이래도 거기서 힘이 안 나오면 저는 지금 회개할 거 있습니다. 이게 다 죄 사함을 받고 난 다음에 되기 때문에 그 대형의 사죄를 지금 못 입고 있다 말이오. 사죄를 못 입고 있고, 사죄를 입은 것은 자기가 그만치 자기가 아는 대로는 그걸 고해서 없애야 돼 진다 말이오.
또, 고범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고하면 사함 받지만, 고하면 사함 받고 두번째는 고하면 사함 받습니까? 한 번 사함 받았는데 두번째 고하면 사함 받습니까? 두 번째 고하면 사함 못 받습니다. 그걸 처음에 고하면 사함 받고 두번째는 알고 짓는 고범죄기 때문에, 알고 짓는 죄기 때문에 그러니까 지금.
고해서 사함 받았으니까 그 다음에 한 거는 알고 지은 죄 아닙니까? 그러면 그거는 어떻게 해야 사함 받습니까? 알고 짓는 죄는 어째야 사함 받습니까? 사함을 못 받는다 했어. 사함을 못 받는 다 했으니까 그 다음에는 뭐 고치면 됩니다. 고쳐야 되지 고치기 전에는 고함만 가지고 안 된다 말이오. 그런데 제가 고범죄를 범하고도 고치지 안하기 때문에 영감이 안 온다 그 말이오. 성령은 속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감이 이게 중요한데, 사람들은 영감을 무시하기 때문에 영감을 무시하니까 그 사람은 뭐 얼마든지 세상 말로써는 자기 지식 설교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뭐 성경에 기록한 그 성경 말씀이야 얼마든지 증거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증거하나 영감이 안 가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과 능력이 같이 해야 되는 것인데. 영감이 안 가면 아무 소용이 없어. 그 면을 내가 어떤 사람에게 '네가 그 설교를 아무래도 그래 해 가지고는 안 된다. 설교에 은혜가 없어 그렇다. '아, 내가 말씀한 대로 그대로 똑 뭐 녹음하듯이 그래 하나도 틀리지 안하고 어. 아 하는 것도 전부 그대로 다 했는데 은혜가 없다 하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네가 성령을 모른다. 성령에 관한 걸 모르고 영감을 네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하고 영감이라는 것을 네가 모르니까 그것 때문에 그렇다' 영감을 그걸 내가 누누이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주의 피를 말하는데 힘이 안 오면 주님의 피공로로만 힘이 안 오면 벌써 그게 뭐이냐? 죄의 문제 거기에 대해서 지금 걸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걸려 가지고 있으니 한 말로 말해서 교만입니다. 그 교만이 하나님 앞에 교만하니까 자꾸 물리침만 당하지, 당하지를 못합니다. 그래 가지고 피공로를 생각할 때 자기에게 힘이 와야 돼. 힘이 오는 그게 벌써 뭐이냐 하면 양식으로 먹었다 말이오. 바로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자기에게 효력이 있었다 그 말입니다.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그말은 첫째는 힘을 얻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자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음식을 먹으면 힘 안 얻습니까? 음식 먹으면 힘 얻고. 그 다음에는 자꾸 음식 먹으면 자꾸 한 치가 두 치 되고 자꾸 이래 자라가는 것 아닙니까? 이런데 피를 생각할 때 자기에게 힘이 나와야 돼. 힘이 나오는 그것이 피가 자기에게 효력 있는 공로가 됐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힘 가지고 이차적으로 뭣 합니까? 예? 아니야. 겉 먹으면 안 돼 자꾸 말씀을 이 시간 겉 먹고 자꾸 지나가기 때문에 전부 건방만 자꾸 만들지 아무 소용없어. 겉 먹으면 안 돼. 이 겉 먹으면. 거기 지금 순서가 얼마나 있는데 지금 자꾸 그만 겉 먹어서 '당장에 뭐 예수 믿으면, 예수 잘 믿으면 된다' 하는 그런 사람, '아, 설교 뭐 자꾸 들을 게 없다. 아 실컷 엿새 동안 공부하니까 예수 잘 믿으면 되는데 뭐.' 그 사람 예수 잘 믿으면 된다는 그거 한 마디로 다 돼 버렸어.
그 까짓 거는 예수 잘 믿기는 커녕 저는 평생 진리에는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걸 회개해야 나아가지 그러면 피가 자기에게 양식이 되고,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피. 첫째 순서가 피니까 피는 내가 입었습니다. 그 다음에 둘째 순서는 뭐입니까? 현실에서, 영감은 못 받아요. 물론 피로 말미암아 되는 거기서 오는 영감이지만 또 그 영감과 또 이 영감이 다르다 말이오. 그러면 현실에서 자기가 아는 대로 여게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요게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고게서 자기가 하나님 말씀과 서로 결합이 된다 말이오. 여게서 어떻게 하면 주의 말씀대로 살겠느냐? 되겠느냐? 요걸 찾는다 그 말이오. 찾는 그게 있어야 찾는 그게 있을 때에 자기라는 옛사람에게 사로잡혀 있는 그 마음과 몸이라는 그 심신이 그것이 요, 현실에서 주의 말씀이 주의 뜻이 뭐인가? 주님의 뜻을,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거라 말이오. 그걸 찾을라고 할 때에 그때에 내 마음은 거기에서 탈옥을 합니다. 내 마음이 감옥에서 벗어난다 말이오. 감옥에서 탈옥이 되고, 또 그 몸이 감옥에서 탈옥이 됩니다. 탈옥이 되면 탈옥되면서 요 시간에는 이렇게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이 자기에게 깨달아진다 말이오. 깨달아지면 이호를 했다 말이오.
고 말씀대로 지키면 고 때 지키는데 고 지키는 것이 바로 됐느냐 안 됐느냐 하는 것은 뭘로 진가가 납니까? 영감으로 진가가 나온다 말이오. 영감 진가는 영감이 그 뭐 딴 겁니까? 그 영감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현실에 지켜야 되겠는데 고 지켜야 된다는 것이 확고부동하게 자기에게 '아. 요대로 지키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자기에게 확신이 와지고, 또 고대로 지켜야 된다는 간절한 마음이 와지고, 고대로 지키고 보니까 자기에게 고게 잘 됐다는 그로 인해서 상당한 고 결과의 보상이 온다 말이오. 주님이 자기에게 오신 그게 와. 그러면 고게 뭐이냐 하면 일어선 것이라 말이오.
고게 일어선 것인 것을 여러분들이 증거해서 어짜든지 일어서 가지고, 일어서서 그러면 고 생활이 우리가 계속이 돼야 되는데 처음에는 연습이 되기 전에는 계속이 안 된다 그거요. 안 돼서 아. 찬송도 할라고 하면 한 절수도 일절 하면 일절도 일절 찬송할 때 벌써 그 마음이 뭐 수십 군데 돌아다니고 하는 수가 있는데. 아무리 성자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힘을 쓰지 안하고 이라면 찬송할 때 제 마음은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돌아 다녀서 찬송하다 보면 어디 가고, 마음은 어디서 돌아다녔는지 엉뚱한데 돌아다니고 입만 놀리고 있었지 또 그렇다 그거요.
그와 같이, 그러기 때문에 일어서는 요 생활을 자기가 마음을 들고 그러기 때문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다하고' 그 마음을 다하니까 딴 데 기울여지지 안해야 된다 그 말이오. 내나 이제 기도할 때 보니까 옥토에 뿌린 씨라. 옥토에 뿌린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다 먹는 그게 옥토에 뿌린 씨입니다. 내 마음을 다 먹는 것.
그라면, 자기가 요 일어서는 걸 자기가 생각해 보면 일어섰느냐 내가 분명히 일어서기는 일어섰다. 요 생활이 계속돼야 되겠다 압니다. 고 생활이 계속이 되면 고 다음 현실까지 계속이 되면 고게서 상당한 자기에게 힘이 나집니다. 그러면 병자가 일어섰으니 일어서서 한 자국 두 자국 걸어가니까 피곤한 동시에 자꾸 다리에 힘이 오르지 않습니까? 그라다가, 그라면 또 넘어진 걸 안다 그 말이오.
'아이쿠 내가 팍 엎어졌다.' 그러면 엎어진 걸 알아. 일어섰던 자가 넘어진 걸 알아. 일어섰던 자가 넘어졌으니까, 그것은 일어섰던 자가 넘어졌으니 병신으로 만나기 전에 그런 게 아니고 넘어 졌으니까 얼른 일어서야 된다 그거요. 일어서야 되는데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네가 다시 병신됐다. 못 일어선다.' 병신됐다고 자꾸 절망을 주는 것이 그게, 처음에는 게을을 주고 게을을 주다가 그 다음에는 절망을 주고 자꾸 그래 가지고 짙어지니까 그 다음에는 일어서지를 못하고 그만 아주 완전히 옛사람으로 산다 말이오. 악령 악성 악습으로 산다 그거야.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저 ○목사님이 설교를 했는데 새 것으로 산다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러니까 새 것이 되면 헌 것을 알지만 헌 것은, 새것을 모른다 말이오. 헌 것으로 사는 줄을 몰라요. 모르고 새 것으로 사는 사람이 헌 것으로 사는 걸 알지 그리 아니면 그걸 모르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거기에서 자기가 넘어졌다 말이오. 다시 일어서면, 일어서려고 하는 데에는 내나 뭘로 일어서야 됩니까? 일어선다면 어떻게 일어서야 됩니까? 넘어져 일어서는 데는 또 세 가지로 일어서라 그러면 피로 일어서고 또 진리로 일어서고 또 영감으로 일어서고, 그러면 피로 일어서는 것이 바로 되어지면 그 진리로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피로 일어서기 전에는 자기가 자기 현실에 하나님의 뜻이 뭐인가 못 찾아요. 찾지 못해.
제가 저 이름은 말하지 안 하는데 그 사람이 ○○교회도 갔고 뭐 ○○목사님의 주석을 전부 그 사람이 출판한 사람인데, 만나서 보면 무슨 사건을 만나서 얘기할 때는 한 사건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걸 내가 보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하고 같이 이리 갈라 그랬는데 와서 '어제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런 걸 제가 물어요.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을 내가 이리이리 처리를 했는데 어떻습니까? 전부 보면 항상 육백 육십 육이라. 그 뭐 나는 그렇츰 허무한 줄 몰랐어. 육백 육십 육이라. 그래서 그러니 뭐 나무래지는 못하고, '거기서 혹 이리이리 하면 어떻겠습니까?' 하면 '아이쿠 그게 옳습니다' 그 한 여나문 번을 만나서 봐도 육백 육십 육이지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를 못해.
○○○목사님도 그 전에 여기 대티에 기도실에 다니면서, ○○목사. ○○○목사, 또 누가 있었지? ○○○목사. 또 저 ○○○목사님은 저쪽 교회 있었지. 있었는데 셋이 잘 자주 뭉쳐요. 자주 뭉쳐 가지고 하는데 그 때 내가 무슨 사건을 이래 물으니까 전혀 몰라요. 정평을 전혀 못 해요. 정가를 못 하고 이래서 내가 하도 기가 차서 '아 ○조사가 완전히 병신이 됐다. 그렇게 정평 정가를 못 하나? 엉뚱하게 생각 하나?' 이랬는데 그 뭐 자기는 그래도 그게 옳다고 빡빡 세우고 뭐 이라며 몰라요. 모르는데 오래 동안 그라는 가운데 그게 지금은 이제 고쳐져서 좀 정평 정가 하는데 내가 그동안에 겪어보지 못했는데. 자기가 교회나 모든 일을 처리할 때 육백 육십 육으로 되면 꼭 인간으로는 잘되는 거 같은데 고게 고 다음에는 마귀가 따라들어오고 일이 안 됩니다. 아주 그게 중요합니다 ○○○목사님 있습니까? 안 왔지. ○○○목사님이 ○○교회 있을 때에 그때에 ○○○목사님하고 이래 접촉을 해 가지고 자꾸 이래 됐었습니다. 이래 됐는데 인제 ○○목사가 그걸 발견돼 가지고 그 다음에 보니까 완전히 사람이 그만 변질이 돼 버렸어. 제딴에는 일한다 하는데 육백 육십 육으로 하고 있어. 그래서 아무리 말해야 알아 들어야지. 할 수 없어서 그때.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들은 사람 있는지 몰라도 그때 양성원에 연구과라 하면서 그때 전부 목사님들이 다 입학을 해 가지고 했습니다. 했는데 그 목사님들 그 나와 있는 거니까 목사님들 못 가구로 하고 토요일날 못 가구로 하고 여나문 거기 둘러 앉혀 놨습니다. 앉혀 놓고 '자. 일이 이런 사건이 돼서 이렇고 이렇고 이러면 이 일을 이렇게 해야 됩니까 저렇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요게 대해서 판단하고 해서 인제 물을 때 대답을 하십시오.' '이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판단해야 됩니까 조렇게 판단해야 됩니까?' 그걸 그래 가지고 모아 놓고 그래 판단을 한 적이 있는데 그러면 이래 물으면 ○○○목사님한테 먼저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자기는 거기서 알라고 이랬지 무슨 반감이나 그런 건 아니고 자기가 바로 알겠다고 애를 써 가지고 판단하는데 답을 한다 말이오. 그러면 그 다음 사람, 그러면 자, 다른 분 어떠냐? 다른 분은 전부 다 반대라. 그 사람에게 아니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 그래 자꾸 제가 옳다, 나도 둘이 만나면 자꾸 제가 이해를 못 하고 제가 옳다. 옳다 이라기 때문에 그래 가지고 많은 사람이 모여 가지고 하니까 또 판단을 못 해요. 그라다가 시간이 돼서 앉아 있을 수 없어 집에 가야 되니까 모두 가라 하고 또 그 다음에 한 서너번 그래 했어요. 서너번 해 가지고, 그래 그 다음에는 조금 낫아. 또 그 다음에는 조금 낫아. 그래도, 이라다가 자기 부인이 좀 낫아서 자기 부인을 내가 데려다 놓고 가르쳤는데 한 내 앞에서 너댓번 울었습니다. 처음에 이렇게 좀 나무래기도 하고 이래 거석해 가지고 그 처음에는 울고 이라더만 나중에는 감사하면서 그걸 바로 깨닫고, 그 부인이 바로 먼저 깨달아. 부인이 먼저 깨달아 가지고 먼저 서요. '네가 이제는 깨달았으니까 네가 남편을 그 뒤에서 협조를 해라' 그래 가지고 이랬는데 아마 지금은 그 뒤에 보니까 좀 바로 깨닫는 거 같은데, 깨닫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그 목회를 이거 정치라 하는 것이 이것이 보면 육백 육십 육의 정치가 있고 성령의 정치가 있는데 성령의 정치는 성경과 성령이나 꼭 같소. 그러니까 실은 헌법 그까짓 게 필요가 아는 것입니다. 헌법은 악한 자의 못된 자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 그 헌법이 있는 것이지 사람 기루는 데는 헌법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성경이면 다 된다 그거야 그래서 그게 바로 깨닫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인데 요게 뭐이든지 진실이 없으면 안 돼. 그러니까, 제일 처음에 일어서서 걸어가는 것은 뭐이냐? 자기가 '아, 나는 인간병이 들었다'하는 그 아는 게 중요하다 하지 안 했습니까? 그러면 지금. 있는 그거 다 과정은 다 냅두고 이제 그거는 우리가 다 배웠다고 보고, 그러면 일어서서 걸어가라. 일어서라 하는 데서, 일어서는 데에 일어서는 게 몇 가지로 일어섭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세 가지로 일어서는데. 그러면 일어서는 데는 제일호가 뭐입니까? 피. 그 피에서 피를 자기가 그라면 대속의 공로를 입어야 되는데, 입었느냐 벗었느냐 하는 그 증거가 뭐입니까? 예? 힘이 나와야 된다 말이오. 힘이 안 나면 거짓부리라. 힘이 안 나면 그거는 귀신에게 속해 가지고 지금 지금 그 예수님의 피공로를 조롱하고 지금 이렇게 해서 뭐하고 있는 것이지 실지로 주님의 대속하신 대속의, 그 대속이 몇 가지 과정이지요? 세 가지 과정 그 세 가지 과정을 자기가 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거 있어. 그러니까 힘이 안 나. 그러면 힘이 나오면 피를 바로 입은 것입니다.
그러면 힘나고 난 다음에는 이호가 뭐입니까? 이호가 자기 현실에 관한 진리를 그 힘 가지고 진리를 찾습니다. 그 힘이 아니면 진리를 못 찾아요. 그 힘 가지고 고 진리를 '오늘 날 내가 네게 명하는' 현실에서 주님이 명하신 고 진리를 찾게 됩니다. 그거 찾았는데 고걸 바로 찾았느냐 안 찾았느냐 그 증거는 뭡니까? 영감이 온다 말이오. 바로 찾았으면 영감이 와.
그러면, 요 세 가지고 이제 고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현실에 주의 말씀대로 지켰으면, 고 세 가지로 주님의 말씀을 지켰으면 고게 일어 선 것입니다. 뭐 딴 거 없어. 고 일어선 고대로만 자꾸 가면 성전에도 들어가고 예수님을 새로 만나고, 보니까 그래 가지고는 나중에 그 사람이 일어서서 걸어가 가지고 어디 갔느냐? 성전에 들어갔다 말이오. 성전에 바로 들어가니까 성전에 다니다가 누구 만났습니까? 주님 만났다 말이오. 난 다음에. 처음에는 물으니까 그가 어디 있는지-뭐 예수님이 피했으니까-그가 누구신지 모른다 했지만 성전에 들어가서 두번째 만나 가지고 아, 주님이 어떤 분이라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이제 증거했다 말이오.
다른 사람에게 증거를 했는데 증거를 한 증거가 바로 증거가 되니까 뭣이 일어 났습니까? 바로 증거한 그 증거의 결과가 뭐이 일어났습니까? 핍박이 일어났다 말이오. 핍박이 일어났어. 그 핍박이 일어났는데 누구 죽일라 합니까? 누구 핍박했습니까? 예수님을 핍박했어. '네가 예수를 잘 못 믿는다. 네가 믿는 예수는, 네가 믿는 신앙은 네가 믿는 신앙 그거는 참 신앙이 아니다.' 이제 그 신앙을 핍박을 한다 말이오. 그 신앙 핍박하는 데 가야 됩니다. 신앙 핍박하는 데 갔다가서 그래도 거기에서 그만 그들에게 타협하지 안하고 그대로 증거를 합니다.
거기에는 다 말이 기록 안 되어 있지만 요한복음 9장에는 보면, 아주 그 사람들하고, 그 때는 출회하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건데 그 출회를 당해도 병 나은 자가 눈뜬 자가 그 모든 바리새 교인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하고 막 대항을 했다 말이오. 죽을 요량하고 대항을 했다 말이오. 대항했지만 그 사람들 이 뭐 죽였습니까? 안 죽고 도로 존귀한 자만 돼져 버렸고. 그렇게 막 모여 가지서 대번 죽일 것 같았지만 죽이지 못했다 말이오. 고게 우리에게 힘이라.
요러기 때문에 고걸 믿고, 내가 이와같이 지금 진리대로 나오고 하면 내가 믿는 도를 마지막에는 그 예수를 핍박하다가, 뒤에는 핍박하다가 핍박하는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이 친히 역사하시니까 역사한 결과는 뭐이 나왔습니까? 역사한 결과는 뭐이 왔지요? 예수님이 '아버지가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지금 일한다' 그 예수님의 역사 아닙니까? 예수님이 역사하니까 뭐이 나왔습니까? 예수님을 죽일라 했다 말이오. 실은 우리가 오늘 날 예수 믿으면서 '너희 예수 믿는 것은 가짜다. 그거는 이단이다. 너희 예수 저거는 없애야 된다.' 이게 와야 됩니다.
거기까지 가야지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바른 예수 믿는 것 아니오.
그러면, 고 순서에 일어서 자꾸 걸어가면 고 다음에는, 처음에 '안식일인데 네가 어찌 그러느냐?' 저거대로 안 믿는다고, 저거대로 안 믿는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그라면 성경 아닌 이 세상법 가지고 말합니까? 성경에서 빼 가지고 말합니다. 성경 가지고 말하면서 저거대로 믿지 않는다고 그때 핍박했습니다.
그러면 핍박 그 순서가 몇 번 있습니까? 제게 핍박이 있었고. 그 다음에는 저 믿는 예수를 핍박하고, 그 다음에는 예수를 죽일라 했고, 자꾸 이렇게 어려움이 온다 말이오. 그러나 성전에서 다시 자꾸 성전에 들어가니까 예수님을 두번째 만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다 자꾸 그라는 가운데에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실히 증거 해 줄 수 있는 증거의 권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벌써 자라서 장성했어. 그래 가지고 나가다가도 넘어지면 힘이 없어요.
넘어지면 힘이 없는데 넘어지면 힘이 없을 때에는 다시 또 일어 설려면 세 가지로 일어서. 다시 세 가지로 일어서고, 일어서 가지고 그리 인제 걸어 나가면 걸어나가면 걸어나가는 그 걸음이 평안할 줄 알아도 애로가 자기에게 와 그래서, 우리가 실은 이 예수 믿는 우리가 뭐 좀 이단이라는 그런 말은 뭐 이래 듣지만 이단이니 그런 정도가 아니고 우리 믿는 것이 참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대적이 돼서 이래 자꾸 나가면 바로 나가면 그래 천주교가 우리에게 대해서 '저거 죽여야 되고 멸해야 된다' 이럴 것이고, 이 세상 사람들은 먼저 말하지 안해요 이 사회나 정치와는 우리가 대립이 안 돼도 이 모든 이종교와 대립이 안 돼도 이 기독교와. 사이비한 기독교 이거 외식 교회와 대립이 돼요. 외식 교회와 대립이 되어서 뭐 총집중해서 '저 총공회 저것들이 예수 믿는 거는 저거는 이단이다' 우리 한국 교회가 '이단이다. 이건 없애야 된다.' 하는 그것이 다 돼져야 됩니다. 그게 진리라 그 말이오. 그렇게 대립이 돼지고 고독해지는 게 이게 그런건데, 그들에게 아무 그런 거 안 받을라고 타협적으로 자꾸 내가 그 전에도 여기 말한 것은 뭐 교단 등록을 하자. 또 뭐 하자 자꾸 이렇게 지금 하는 것은 어짜든지 내가 그말 했어. 우리 저 송용조 목사님은 선교학을 공부했습니다.
선교학 박사요. 선교학 박사이기 때문에, 선교학을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 선교라 하는 것은 안 믿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게 선교 아닙니까? 아주 안 믿는 사람 중에서도 그거는 참 아주 야만인에게 전도하기 때문에 그것을 저 아주 외부에서 전도하기 때문에 아주 이 중추 중심에 와 가지고 신앙인과 다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전도하는 거, 노방 전도하는 것과 또 노방 전도하는 것과 교인들을 기루는 것과 또 교인들에게서 아주 참 정금 같은 그런 자를 만들라고 이와 같이 기루는 거와 영 다르다 말이오. 이러니까, 여게서는 '좋다.' 그러면, '술 먹습니다.' '아, 술, 먹어도 좋습니다. 술 먹고 오시오' '나는 제사를 지내는데' '아, 제사 지내고 오시오' 그러먼 그거는 뭐냐? 저 말단에서 지금 입문에서 입문을 넓게 하고, 입문을 넓게 하고 마지막에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는 데는 아주 좁아져야 되지 않습니까? 좁아져야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것이 달라요. 다르니까 이것이 '아 요거는 입문에 속한 것이다. 요거는 아주 중앙에 속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신구약 성경 말씀은 울타리에 지나지 못하다. 울타리다.
신구약 성경은 울타리요 신구약 성경 말씀은 중매쟁이다.' 그러면 이게 나가서 오해하면 그 사람들이 얼마든지 또 이단이라 정죄할 것이라 말이오. 실은 그렇다 그 말이오. 그러면 신구야 성경 말씀은 중매쟁이라. 누구한테 중매쟁이냐? 신구약 성경말씀은 영감에 중매하는 것입니다. 영감에 중매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영감은 누구에게? 영감은 하나님 그 본체에 우리를 중매한다 말이오. 우리에게 본체가 와 가지고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이래 들어갈 수 있는 그런데 까지 나아가는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자꾸 이렇게 잘못하면, 그러면, 우리가 치우치기 쉽다 말이오.
잘못하면 입문을 다 버리고 속에 중앙만 주장하는 그것도 안 되겠고 또 중앙만 주장하고 입문을 버리면 안 되겠고, 입문만 주장하고 중앙을 잊어버리면 그 사람은 나중에 가서 너무 속화돼 버리고 말고, 그 속화 돼 가지고 만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전 밖마당이 되고 만다 그거야. 이러니까 그저 우리는 뒤로 물러가지 말고 자꾸 좁아져야 됩니다. 자꾸 좁아 져야 되고 자꾸 좁아져야 되고.
점점 온전해져야 되고 점점 정확해져야 되고 이런 것이 이 기독교요. 자꾸 뒤로 물러가면 끝이 없다 그거요.
그래서 일어서면 일어서는 게 먼저 중요한 것, 일어서서 걸어가면 저거같이 예수 안 믿는다고 반드시 핍박이 옵니다. 그게 있어야 그게 진짜요. 예를 들어서 우리 진영에서도. 바로 믿으면, 우리 진영 속에서도 '저 사람 저거 뺄쭉 난 예수 믿네.
별 예수 믿네.' 할 만치 그렇게 고독해집니다. 그러기에 뭐 여러분들이 다 봐도 그건데. 우리도 이래 주욱 보면 자, 예를 들어. 만일 삼층으로 말하면, 삼중으로 하면 일층에 속한 사람이 누군가, 이층에 속한 사람이 누군가, 삼층에 속한 사람이 누군가, 이거 여러분들이 자기 생각으로는 말은 못 하지만 다 속으로 평가할 거라 말이오. 평가 못 합니까? 알고 있지 안해요? 그렇지 않습니까? 저 사람은, 삼층에 그라면 삼층이 제일 높은 곳이라 하면, 삼층에 속했다하고 '아이구 저거는 찍해야 이층에 속했다. 일층에 속했다.' 저 사람은? '저 사람 지금 저 대문에 지금 들어오고 있다. 대문에 들어오고 있다.' 이걸 우리가. 여러분들이 다 알지 않느냐 그 말이오. 자 그것을 우리 이 동역자라도 그렇게 자기대로의 평이 돼지는 그 평함이 좋습니다. 그게 그렇다 이래 고정하고 이래 하는 건 안 됐지만 그런 줄 알고 그 사람을 내가 상대하고, 그런 줄 알고 일도 맡기고. 서로 신앙 관계를 가지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사람을 논평해라, 논평하지 말아라 했습니다. 건설적으로는 논평해야 되고, 그 사람을 논평해야 그 사람에게 교훈도 하고 그 사람과 나와 관계도 가지고 일도 맡기고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을 절망적으로 정죄적으로 논평하는 그것을 금한 것이 그것이 성경인 것입니다. 그거 다 우리가 짐작할 수 있지 안해요? '아 저 사람이 뭐, 저 사람이 일층에 있더니만 요새 이층에 올라간다. 이층에 보인다.' 그거 볼 수 있지 안해요? 이층에. '아, 저 사람은, 한 층 더 올라서 저 사람은 삼층에 있는 사람이야.' 여러분들이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자꾸 올라가야 된다 그거요.
그래서, 대우하는 것이 어떻게 대우하느냐? 뭐 그렇습니다. 요거 요번에도 저게 먼저 ○○교회가 그런 걸 우리가 도와 주자 했는데 아마 도와 주자 하는 데 대해서도 혹 오해를 가질지 몰라. '거기만 도와 주고 우리는 안 도와 주느냐?' 도와 줄 수 있는 사람만 됐으면 좋습니다. 도와 줄 수 있는 사람, 뭐 도와 줄 수 있는 사람 있다면 내 생명을 내서라도 도와 줄 수 있습니다. 없는 게 아니라.
도와줄래도 도와 주고 싶은 사람이 없다 그 말이오. 그러기에 요만침 도와 주고 싶어도 요만치 도와 주고 요만치 도와 주고 싶어도 요만치 도와 주고. 이만침 도와 주고 싶어도 이만치 도와 주고, 자기 생명을 다 바쳐서 도와 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도와 준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이 다 그래. 이것이 신앙 양심입니다. 그렇지 안해요? 아, 거기 대해서는 뭐할라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걸 그거 하겠습니까? 만일 도와 주지 안하면 하나님께서 '이놈아 네가 도와 주지 안하면' 주님이 섭섭해하시는 그런 것도 있을 것이라 말이오. 이래서 ○○교회는 그러고 그 교회가 우리가 세워 가지고 다 다 폐합하자, 없애자 한 교회 아닙니까? 없애자 했는데 그 교회에 그래도 김 목사님이 가 가지고 거석하고. 또 거기에서 지방 공회도 협력을 해 가지고 어떻게 좀 살아날라고 빠득거리니까, 살아 날라고 빠득거리니까 있는 자에게 더 준다는 게 내나 그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자꾸 힘을 쓰니까 우리도 거기서 힘을 써 주고 싶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벌써 그 교회가 ○○교회가 하나 됐어. 그런데 ○○교회가 지금 있는데, 그 ○○교회가 어찌 됐소? 지금 장년반은 얼마나 됩니까? 얼마나 돼요? 이십 명 이면, ○○교회 이십 명이면 장년 이십 명이면 교회가 살아나지 안했습니까? 주일 학교는? 사십 명 그러면 사십 명 이십 명, 육십명이니까 이제 그랬는데, 또, 무슨 교회고? 먼저 그 ○조사님 있는데. 거기 우리가 다소 이래 도와 준 등대 교회 다소 도와 줘라. 나도 또 도와 줄 마음이 있어요. 도와 줄 마음 있어요.
여러분들은 자유로 하지마는서도.
자꾸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우리 사람이 '아. 그거 돕고 싶은 데 동정하고 싶다.' 사람이 동정하고 싶다 하는 그것만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동정하고 싶은 그게 있어야 됩니다. 그거 없으면 소용없어. 그까짓 거 무슨 뭐 인간으로 간판이 그거 다 아무 소용없어. 그러기에 성전 밖마당은 크고 속에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는 아주 조그만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세에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어짜든지 그런 것도 하나님이 감동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감동한다 말이오. 안 믿는 사람도 말하지 안해요? '지성이면 감천이라.' 사람이 지성스럽게 하면 하나님이 감동한다 이래 가지고 뭐 그래 그런 전설 같은 거, 그런 뭐 신화 같은 거 그런 거 있는 것이 그게 다 사람이 만든 것도 있고 실지로 또 그런 것도 있는 것도 있다 말이오. 안 믿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지성스럽게 할 때에 초자연의 능력이 와 가지고 협조하는 그런 것을 얼마든지 실지로 있을 수가 있다 말이오. 그걸 가리켜서 지성이면 감천이라. 지성이면 하나님이 감동된다 하는 그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게 대해서는 이것을 단단히 가집시오. 이게 생명의 도입니다.
그 뭐 어디든지 가 예수를 어찌 믿을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어찌 믿는가를 이 세상에 있는 그 뱀의 지식 이것만 자꾸 높아지면 그게 되는 줄로 그렇게 알고 있어서. 그거뿐이지 거기에 무슨 생명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그에게 같이 해서 찬성한다는 거, 하나님이 같이 한다는 거. 아, 우리가 요번에 그 현장에 오백 구십 구 명이랍니다. 한 명 모자라는 육백 명이라. 오백 구십 명이 인간이 치료할 수 없는 병이 나았어. 그 하나님이 증거한 거 아닙니까? 인간 지식으로 암만 박사들이 백 명이 모여 가지고 떠들어 쌓아 봤자 하나도 그런 거 안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는다 그 말이오. 이건 알아야 되지.
이러니까 어짜든지 일어서서 걸어가는 이것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