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16:16
일곱 가지 도적질 회개
1986. 8. 24. 주일오후
본문:말라기 3장 7절∼12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돌아오라 하는 것 보면 하나님을 떠난 것을 전제로 하고 말한 말 아닙니까? 돌아오라 하는 걸 보면은 떠났다 그말 아닙니까? 요 성경에, 요 아무나따나 해석하는 게 아니고 꼭 요걸 요게 본문에 있는 것이라야 되지 본문에 없으면 안 됩니다. 아무나따나 꿰맞췄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그걸 본문에 있는가 없는가 알아야 되지.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는 것 보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갔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러면 떠나갔다는 말을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 규례를 지키지 안하고 내 규례를 떠났다” 그러면 주님의 규례를 떠난 것이 하나님 떠난 것이라 하는 것을 요 본문에 똑똑히 말한 것을 확신하고 확고히 잡으라 그말이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로 돌아가겠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지금 묻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전생각을 총론해 가지고 성령이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로 돌아가겠습니까?’ 하는 그런 다 생각을 가지고 말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여게 계시로 나타낸 것입니다. “하는도다” 8절에 그러면 돌아오는 이치를 말합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러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갈라고 하면 도적질하는 일을 버리고 이제는 도적질 안 하는 일을 해야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말이오. 도적질하는 그 일의 정반대를 해야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규례를 떠나는 게 하나님을 떠나는 게 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지 안했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규례를 떠나는 것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라 했으면 규례를 뒤에 지키는 거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 이렇지마는 여게 말을 그래 안 해 놨다 말이오.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너희가 내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러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도적질 안 한 것으로 알고 이렇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도적질한 이것을 회개하고, 일곱 가지 도적질을 말했는데 그걸 회개하고 그걸 바로 하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과 친근해집니다. 아주 하나님과 친밀해집니다.
요거 본문을 잘 알고 해야 되지 요걸 모르고 그냥 ‘백 목사 설교가 그렇더라’ 하면은 백 목사 설교 그까짓 게 무슨 힘이 있습니까? 백 목사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딱 증거하면 이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천지보다 중량이 큽니다.
그러나 백 목사 말은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그까짓 거 조그만한, 없는 가운데서 모래알 하나도 못 만듭니다. 알겠습니까? 백 목사 말은 힘 없어. 하나님 말씀은 전능이야.
이러기 때문에 이게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고 믿으면, 하나님 말씀인 것을 하나님 말씀인 것을 알고 믿으면 전능이요, 백 목사의 말을 하나님 말씀으로 알고 믿으면 속는 일이요 헛일이요, 또 백 목사가 하나님 말씀을 전했는데 하나님 말씀을 사람 백 목사 말로 알아도 그래도 하나님 말씀이지마는 그렇게 알고 믿기를 잘못 믿었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도적질하겠나이까 하도다」 이제 말합니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도적질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 하나님을 떠나 도적질했기 때문에 보내야 되겠는데 네가 그거 신실히 수종을 들겠느냐?’ ‘내 씨 외에 거는 다 바치지요. 만일 내 생활비가 삼백만 원 드니까 천삼백만 원만 주면은 천만 원 씨로 보내지요.’ ‘그래?' 천삼백만 원을 주니까 천만 원 통장에 진체 구좌에 딱 넣어 버리거든. 딱 넣어 버린다 말이오. 온라인 통장이라 하던가, 뭐. 온라인 통장인가 거기다 딱 넣는다 말이오.
‘야, 이놈 어북 신실하구나. 그러면 아무 데 지금 그 예배당 짓는 데는 그 모두 가난한 사람들 그래 있으니까 그 예배당 짓는 데는, 서이를 지으니까 또 거기 하나 짓는 데 일억씩 들어야 되니까 삼억이 들어야 되는데 이놈한테 여수거래를 한번 해 볼까? 도적질을 해 먹고 안 떼먹는가, 신실한가 ○치과 안 떼먹는가 한번 해 볼까?’ 하고서 척 일억삼백을 떡 주니까 삼백만 딱 떼고 일억은 온라인 통장에다 딱 넣어 버립니다. ‘하, 이놈 신실하구나.’ 그래 일억 가지고 또 집 지었다 말이오.
‘보자. 서부교회 분교가, 분교가 지금 스물 여섯 개인데 이거 하나씩 할라 하면은 하나에 일억씩은 해야 될 터이니까 이걸 너하고 거래 한번 해 볼까? ○치과 너하고 거래 해 볼까? ○치과하고 거래 해 볼까? ○의사 하고 거해 해 볼까, 이거 지금 사업가 지금 ○○○장로하고 거래 해 볼까? 누구하고 거래 해 볼까? 누구하고 거래 할꼬? ○장로 하고 거래를 해 볼까? 누구하고 거래해야 내가 안 속지?’ 하고서 한번 해 본다 말이오.
처음에는 많이 안 해요. 하고서 ‘너는 씨가 얼마고 양식은 얼마지?’ ‘내 양식이야 정해 가지고 안 있습니까? 지금 아이 하나 더 낳으면 지금, 아이가 하나 더 나오면 양식이 좀 더 많이 들지마는 지금은 하나뿐이니까 안 듭니다. 뭐 그동안에는 변동이 없습니다.’ ‘아이 하나 더 낳으면 네 양식이 얼마지?’ ‘하나 더 낳았으니까 얼마 양식을 더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네 양식은 얼마지? 그래. 양식을 넉넉히 해라. 양식은 넉넉히 하고, 그래 보자.’ 저주받습니다. 하나님 떠나면 도적질합니다. 하나님 떠나면 별수 없이 하나님 떠나면 그 모든 것이 다 도적질입니다. 하나님 떠나고 먹는 거, 입는 거, 마시는 거, 사는 거, 세상에서 말하는 거, 행동하는 거 전부 도적질입니다. 도적질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그러면 “온 나라가” 이랬으니까 온 나라라 했으니까 빠졌습니까 온 나라 다입니까? 온 나라라니까 다를 말해요, 다.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이제 선포하니 너희들이 지키면 다 복이 되고 거역하면 나하고 싸워서 내가 힘이 모자라면 너거한테 질 것이고 너거가 힘이 모자라면 박살된다. 그러면 하나님을 이길 자가 누가 있습니까? 이 하나님이 지금 싸우자고 달라듭니다. 만군의 여호와라 말은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이 자꾸 겉을 말하니까 속에 알맹이는 많이 들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가 뭐인고 그거 또 뒤에 말하겠습니다.
「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러면 십일조 드리는데 “양식이 있게 하고” 이 양식은 누구 먹을 양식입니까? 누구 먹을 양식이요? 자, ○○○집사님? 앞으로 목사될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누구 먹을 양식입니까? 녜, 제사장 먹을 양식이요 하나님 먹을 양식입니다. 알겠습니까? 제사장은 뭣 먹습니까? 십일조 드린 물질 먹는 것이 제사장 먹는 겁니다.
하나님은 뭣 먹습니까? 그 물질로 하나님 앞에 헌물과 십일조 드리는 그 사상과, 그 정신과, 그 성의와, 그 주의, 그 지식, 그 행동은 누가 먹습니까? 그거는 하나님이 먹습니다. 알겠습니까?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나를 시험해 봐라.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혹 사람들이 하늘 문을 연다 하니까 “때를 따라 비내린다” 말이 다른 데 있으니까 뭐 적당한 때에 하나님이 비를 내려서 풍년들게 해 주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겠는데 그것도 복 중에 하나지마는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지 아니하나 보라” 하늘 문을 열고 복을 내려 준다 그말은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요 복 뭉텅이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복 뭉텅이요, 하나님은 생명 뭉텅이요, 하나님은 능력 뭉텅이요, 하나님은 지혜 뭉텅이요, 하나님은 사랑 뭉텅이요, 하나님은 온전 뭉텅이요, 완전 뭉텅이입니다. 이런데 이 뭉텅이하고 우리와 그 사이가 가로막혀 있습니다.
가로막혀 있는데 이제 문을 연다 말은 가로막힌 것을 탁 틔우고 그말입니다. 탁 티우고.
뭘로 틔웁니까? 뭘로 틔웁니까? 어짜니까 터지지요? 하늘 문이 어짜니까 활짝 열려 버립니까?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니까 하늘 문이 탁 트입니다. 알겠습니까? 그 무슨 말이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니까 피조물로서 하나님과의 가로막힌 죄가 완전히 해결된다 그말입니다. 완전히 죄가 해결돼요.
이러니까 복덩어리와 우리와 사이가 가로막힌 게 탁 터지니까 막 복이 쏟아져 내려오지. 그렇지 않습니까? 아, 저 저수지에 물이 막혀 있는데 물하고 나하고 그 사이 막힌 만일 못둑이 터져 보십시오. 어찌되는가? 마구 못에 있는 물이 마구 홍수처럼 확 쏟아질 것 아닙니까? 이것만 틔우면 하나님의 복이 막 쏟아지니까 그뭐 곳간에 그까짓 거 뭐 쌓을 곳이 없지요. 막 차고 넘치지요. 본인만 아니고 따라서 연관 있는 대로 막 자꾸 차고 넘칩니다.
「시험해 보라」 「붓지 아니하나 시험해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그러면 복을 어떻게 쌓는데? 하늘나라 문을 열고 복을 쌓는데 사람들 보기에는 어떻게 쌓는가, 사람들 보기에는? 「황충을 금하여 그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황충 재앙을 멸합니다. 황충 재앙은 오전에 배웠습니다. 우리 하는 일에 방해하는 모두 해치는 것들 그것이 황충입니다.
공부하는 데 학마가 들어서 공부 못 하게 되지, 사업하는 데 사업의 마가 들어서 자꾸 안 되게 되지, 공연히 직공이 들어서 회사를 망치지, 사무원이 들어서 회사를 망치지, 또 모든 정권자들이 들어서 사업을 망치지, 이웃이 망치지, 또 제가 잘한다고 실컷 잘해 놓은 것이 나중에 가 보니까 꺼꾸로 해서 망쳐지지, 이것 뭐 하나님이 망칠라 하면 감당 못 합니다. 그런 경험 더러 있습니까? 그거 없으면 우리 바보요. 눈을 뜨고 가만히 보면 요 말씀 그대로입니다.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의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공부하는 너에게 공부하는 데 방해물, 공부하는 데 방해물을 없애서, 병이 들어도 공부하는 데 방해, 머리가 뛰해도 공부하는 데 방해, 또 다른 공부할 시간에는 딴게 바쁜 일이 있어 가지고 그만 시간이 이리저리 끌려서 공부할 시간이 없어도 공부하는 데 방해, 동무도 방해, 또 학교서 공연히 이런 일 저런 일 딴거 엉뚱한 일 시켜도 방해, 뭐 방해하는 거 많습니다. 돈벌이도 방해하는 것 많소.
‘보자, 내가 하는 사업에는 뭐이 방해하고 있나?’ 요것을 볼 줄 모르면 망하고 남아야 돼요. 그거 실컷 망해야 돼요. 그놈은 실컷 망해야 됩니다. ‘아, 나 하는 일에 이게 방해로구나. 이게 내 무슨 재앙이로구나. 이게 화로구나. 이걸 어짜면 이걸 면하겠느냐?’ 요걸 모르는 그 인간은 더 알도록 망해야 될 것 아니겠소? 그 평생 모르면 평생 망해도 망하는 가운데 죽고 끝마쳐 버려야지, 뭐 송장되고 말아야지. 그렇지 안해요? 황충 재앙이라, 농사 짓는 데 황충 재앙이니까, 황충 재앙, 농사 짓는 데는 황충 재앙이니까 공부하는 데는 공부하는 데 공부 재앙, 사업하는 데는 사업 재앙, 모든 것 다 전부 방해하는 거, 사람이 방해하고, 자연이 방해하고, 시대가 방해하고, 국가가 방해하고, 세계가 방해하고, 여론이 방해하고, 사람들의 인심이 방해하고, 이상해요. 사람들의 인심들이 공연히 ‘이게 좋다’ 하면 막 모든 사람이 그것 좋다고 막 기울어집니다. 기울어져서 ‘이게 제일 좋다’ 이랬는데 하나님이 픽 틀어 놓으면 아무도 그거 필요 없다고, ‘그거 아무 소용 없다’ 하면 홱 돌아.
사람 마음 하나님이 요래 돌리면 요래, 조래 돌리면 조래, 이렇습니다.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이러니까 포도농사 짓는 사람에게 포도가 선포도가 떨어지고 익기 전에 떨어져 버리면 아무짝도 못 쓰지 안해요? 그만 포도가 달렸는데, 포도 내가 좀 농사 지어 봤어요. 이라면 그만 익지도 안하고 꼭대기가 골아 가지고 줄줄줄줄줄 흘러 버리면 돈 한푼도 못해요, 그거. 먹지도 못하고.
그것 모양으로 네가 공부하는 데 꼭 성공이 될듯 될듯 하다가 그만 성공이 안 됩니다. 자, 사업을 해도 미완성, 공부를 해도 미완성, 정치 운동을 해도 미완성, 뭐 목회를 해도 미완성, 교육업을 해도 미완성, 결혼을 해도 미완성, 결혼해서 시집가고 장가가서 결혼식했으면 됐습니까? 아니오. 결혼식 했는데 오늘이나 행복할까 내일이나 행복할까 하다가 기어코 그거 망해 버리고 말면 무슨 소용 있어? 그런 사람 얼마나 많소? 모든 것을 미완성으로 절단나게 한다. 미완성으로 절단나게 한다.
그런 게 있으면 ‘나는 참 이게 미완성이다. 나는 뭐이든지 하면 열매를 못 맺고 결과를 맺지 못하네. 결과가 좋지를 못하네. 나는 하는데 뭘 하든지 결과가 좋지 못해.’ 처음에 계획보다 자, 계획보다 결과가 좋지 못한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이소. 그런 꼴 겪어본 사람. 처음에 할 때보다 계획보다 결과가 좋지 못한 사람, 못 했던 사람은 손 들어 봐요. 나도 그런 거 많이 경험했소. 여러분들은 뭐 안 그렇습니까? 또 처음에 계획보다 결과가 좋은 거 더러 경험해 봤습니까? 처음에 계획할 때보다, ‘계획할 때는 하나를 바랐는데 나중에 결과는 보니까 둘이 왔다. 처음에 계획할 때는 이렇츰은 될 줄 몰랐는데 몇십 배 더 커지게 됐다.’ 처음 경영보다 뒤에 결과가 더 좋게 된 꼴 만나 본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그것도 우리가 다 만나 봤지. 하나님이 요것도 주시고 조것도 다 그래 주신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이러니까 그 사람이 무슨 사업하니까 ‘그 사람은 그 사업해 가지고 성공했다. 나도 그 사업 해 보겠다.’ 백날 해 봐라, 되는가? 너는 하면 안 돼. 나는 거게 그 점포가 좋으니까 ‘그 점포 나한테 그만 돈 엔간히 벌었으니까 파십시오.’ 팔지. 주니까 점포가 좋습니까? 팔아도 망합니다. 사도 망해. 또 딴데 가면 또 돼.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장사 쳐놓고 부자 안 되는 장사 없고, 사업 쳐놓고 성공 못 하는 사업 없고, 취직 쳐놓고 출세 못 하는 취직 없고 다 돼요.
여러분들, 서울 갈라면 어데서 나서야 됩니까? 서울 갈라면 꼭 경북에서 나서야 됩니까, 경남에서 나서야 됩니까, 똑 남해서 나서야 됩니까? 서울 갈라면 어데서 나서야 됩니까? 어데서 나서야 됩니까? 아무 데 나서도 관계 없어. 어데 나서도 관계 없어. 서울 가는 길로만 바로 가면 서울 가지, 뭐. 별수 있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무슨 일이라도 시작해 가지고 그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만 하면 다 완전 성공 최고 성공에 나아간다 그거요.
이러니까 모든 사람이 있다가 ‘저 사람 있는 집터가 좋은갑다. 집을 좀 돈 많이 주고 사야 되겠다. 저 사람 농사 짓는 아마 토지가 좋은갑다. 저 사람 사는 곳이 좋은갑다. 저 사람 하는 직업이 좋은갑다.’ 암만 따라해 봤자 소용 없어.
따라오거든 그만 헐하게 줘 버려요. 따라오거든 헐하게 주고, 그 헐하게 주면 그 사람 좋아하지. 헐하게 주고 또 딴거 다른 사람 망하는 것 그거 또 해요, 또. 또 하면 그게 또 성공돼요. 하나님의 축복에 있는 것이지 인간에게 있습니까? 암만 날뛰봐야 너 골만 빠지고 아까운 청춘만 늙지 아무 소용 없어. 안 굶을 죽을만하이 그저 먹고 살만 하지.
이렇게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마구 그 축복을 쌓을 곳이 없어. 쌓을 곳이 없어. 자꾸 넘쳐 나간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어떻게 축복하시는가? 재앙을 없게 하지, 방해하는 걸 없게 하지.
하나님 떠나면 방해하는 걸 자꾸 만들어 하나님께서 자꾸 생겨져. 방해하는 게 하나 둘 자꾸 생겨지고 하나님을 가까이 가서 하나님하고 하나가 되니까 방해하는 것은 하나 둘 자꾸 없어지지.
또 미완성의 모든 실패는 없어지고 자꾸 성공입니다. 이것도 성공 저것도 성공.
이러니까 나중에 보는 사람이 있다가 ‘저 사람 뭐 시시한 저런 일 하고 있노?’ `야, 그런 게 아니다. 그 사람 하는 일은 성공 안 되는 게 없다. 그 사람 시시한 일 해도 그거 다 뒤에 큰 성공이 된다. 안 그런 일 하나도 없다. 그 사람 시시한 일 하거든 따라 해라. 얼른 따라 해라. 뭐 따라 하면 성공한다.’ 따라 하면 이 사람만 성공이지 저도 성공 됩니까? 하나님의 축복에 성공이 있고 하나님의 저주에 멸망을 받는 것인데.
이러니까 오전에는 귀한 축복 하나 받았어. 뭐이냐? 오전에 배운 것이 뭐입니까? 오전에 배운 것이 뭐이요? 자, 오전에 배운 것, 내가 답을 할 터이니까 여러분들 답이 맞은가 헤아려 봐요. 오전에 공부한 것은 오는 저주를 다 없이 하고 성공 못 하게 하는 것을 다 없애는 것 그거 배웠어. 성공에 방해하고 모든 하는 일에 방해하는 그 모든 방해를 다 없이 하는 그 방편을 배웠어요, 그 방편을. 실패하지 않는 방편을 배웠어.
요게 뭐 어누리가 있습니까? 말쟁이 말입니까? 과장한 말입니까? 털끝만치도 틀리지 안해요. 여러분들이 당장 해 봐. 당장 직장에서 해 봐. 사업에서 당장 해 봐. 마음이 변하지 안하면 그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 그때부터 하나님이 축복 안 하는가 가만히 계산을 대 봐요. “추억해 보라. 계산해 보라.”
그러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본문에 읽어 본 대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뭣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건 뭣이지요? 자, 한번 계산 한번 해 봐.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도적질은 뭣뭣 했어, 도적질 한 것. 그걸 회개해야지. 도적질은 무슨 도적질 했습니까? “너희는 내것을 도적질 했다” 그러면 내것은 첫째는 무슨 도적질이요? 하나님의 것을 제것이라 하거든. 도적질 하고 도적질 안 했다 하니까 하나님 것을 제것이라 한다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내가 언제 도적질 했습니까?’ 하니까 그것을 제것이라 하는 말 아닙니까? 두 가지 소유권 도적질이 여게서 나왔습니다.
“내것을 도적질 하고도 도적질하지 아니했다 하도다” 여게서 소유권 도적질 두 개가 요 성경 본문에서 나왔습니다.
정말로 성경 본문에서 나온 게 확실합니까? 억지로 말쟁이로 끌어다 붙였습니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됐습니까, 본문에 그게 있습니까? 도적질 한 게 있소, 본문에? 요 본문에 있다 요걸 딱 거머쥐어야 돼요. 심령이 둔하면 몰라요.
자, 그라면 당신의 것을 당신의 것이라고 하지 안하고 당신의 것을 내것이라고 해도 도적질, 당신의 것을 저 사람의 것이라 해도 도적질, 그러면 하나님의 것을 내것이라 다른 사람의 것이라 하면은 그 도적질입니까 도적질 아닙니까? 소유권 도적질이요 도적질 아니요? ‘요게 본문에 요 있구나 과연 있구나’ 요걸 꽉 잡고 `아멘! 과연 이거 소유권 도적질 둘을 말하는데 그게 요 본문에서 나왔구나. 본문에 있구나.’ 요걸 딱 알아서 ‘아멘! 요 있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다! 요게 맞다! 요렇게 요 도적질을 어떻게 발견해서 진리를 깨닫고 요래 우리에게 가르쳐 주노? 참 고맙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되게 하셔서 요걸 가르쳐 주시는구나.’ 억지로 끌어다붙여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여게서 소유권 도적질 둘을 발견해서, 소유권 도적질 둘을 한 것을 여게서 발견해 가지고 우리에게 알려 주시니 ‘억지로 끌어다 맞춘 것이가 과연 본문에 있나?’ 자, 여기 ○의사 말해 봐.
본문에 있어, 똑똑히 있어? 확실히 있어? 확실히 있어.
심령이 둔해서 줄줄 훑어 내려가고 어두워 그렇지 거게 분명히 말해. “내것을” 했으니까, 내것을 저희들이 도적질 안 했다 하니까 전부, 내것이라 말은 그거 뭐입니까? 소유권 아니요? 소유권 도적질 한 둘을 회개해야 돼. 소유권 도적질이 뭐인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이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뭐 요렇게 명확히 한데 많이 없소. 하나님의 법규를 규례를 떠났으니까 그게 하나님 떠난 것이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법규를 지키는 게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라 이럴 건데 아주 본문에 그렇게 해 놓지 안했어. 하나님이 그말 할 줄 몰라서 못 했겠습니까? 아니야. 돌아가는 건 그렇게 말하지 안했어. 말하지 안하고 도적질 하는 걸 요것은 회개하라 그렇게 했어.
도적질 너희들이 하고도 그게 내게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라. 그러니까 도적질 한 그것을 고치는 것이 내게로 돌아오는 것이라 하는 것을 본문에 말해 놨다 그거요.
소유권 도적질 둘이 무엇입니까? 하나는 자기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 하나님의 것이라, ‘내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의 소유권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는 것을 깨닫고 자기 몸 밖에 있는 크고 작은 어떤 것이든지 그걸 대할 때에 조그만한, 자기 몸 밖에 있는 뭐이든지 대할 때에, 대할 때에 ‘뭐 이까짓 거 이거 뭐꼬? 이까짓 거.’ 휙 집어던질라 하니까 퍼뜩 생각하기를 ‘이거 주인이 하나님이신데, 주인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것을 내가 이렇게 천대하면 그 주인이 좋아하겠나?’ 여러분들,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의 뭐 헌신짝 하나라도 있으면 그 헌신짝에 대해서 조심이 생겨지고 삼가가 생겨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 몸 밖에 귀한 것 천한 것, 큰 것 작은 것, 모든 거를 대할 때에 ‘이것은 내 하나님의 것이다. 만유의 대주재 전능자 주권자 만왕의 왕이신 두려우신 그분의 것이다.’ 자기 몸 밖에 어떤 것이라도 대할 때에 이게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제가 깨닫고 연상해 가지고 거게다 조심을 들여서 ‘이거 하나님의 것이다’ 천한 걸 대할 때에 하나님을 연상하고, 귀한 걸 대할 때 하나님을 연상하고, 모든 사람이든지 무엇이든지, 마구 김일성이가 ‘나는 막 이렇다’ 이렇게 이랄 때도, 김일성이 그걸 어떨 때는 욕을 할라 하다가도 김일성씨라 또 이래 합니다. 왜? ‘김일성이, 김일성이가 누구 것이야?’ 하나님께서. ‘예, 하나님의 것입니다.' `왜 내것을 네가 욕해? 내가 필요해서 해 놨는데.’ 내 몸 밖에 있는 모든 귀하고 천하고, 높고 낮고,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주인이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거게 대해서 주인이 하나님의 것이니 물질이나 사람이나 그걸 대할 때에 그로 인하여서 그것의 주인인 하나님을 연상해서 하나님을 대우하는 요것이 하나님을 정말로 알뜰히 섬기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라면 성자가 돼. 이라면 하나님이 막 복을 부어 줘.
또 어떤 자가 ‘이거는 내 정권 아래 있기 때문에 이 영토는 내 영토다.’ 느부갓네살 왕이 ‘이거는 내것이다, 내 나라다, 내 백성이다, 내것이다.’ 떠둘러 쌓을 때에 ‘느부갓네살 저것도 하나님의 것,’ 또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에게 줘 가지고 이런 걸 다 통치하게 했으니까 그 통치가 하나님이 권세를 줘 가지고 통치하게 하는 것이니 하나님 때문에 그걸 욕도 못 하겠고, 하나님 때문에 괄시도 못 하겠고, 하나님 때문에 거게서 범죄하지도 못하겠고, 하나님이 그 주인공이라는 것을 이것을 똑똑히 알아서 ‘이게 다 하나님의 것이다. 이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래.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 내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서, 확실히 알아서 그 모든 것과 하나님과의 연관성을 가지고, 연결성을 가지고, 그 소유권적인 그 관계성을 가지고 모든 존재를 대하는 요것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요것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거.
또 그것이 내 몸 밖에 있는 소유권을 내가 ‘이거는 뭐 미국 것이다. 이거는 영국 것이다.’ 하는 그 도적질을 회개해서 요거는 다 하나님의 것이라, 말은 안 해도 다 하나님의 것이라.
‘미국 사람은 어짜고?’ `미국 사람도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이 미국 나라는 하나님께서 미국 사람에게 지금 맡겨 가지고 지금 보관시키고 있다.’ 이렇게 아는 것이 그것이 소유권 도적질을 바로 내가 회개하는 것이라 말이오.
또 소유권 도적질 하나는 뭐이냐? 나! 나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거, 나, 내 지혜, 총명, 생명, 명철, 지식, 기술, 내 모든 돈, 온갖 소유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 내 주 하나님의 것이라. 이제 요것을 내것인 줄 알면 도적질, 저주받고. 요것을 내것으로 알면 저주받고, ‘요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이 내게 맡겨서 내가 보관하고 있다’ 하면 축복받고, 내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 줄을 알고 그렇게 상대하고 취급하면 축복받고, 내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 아니고 어떤 자의 것이라고 하면 저주받고, 저주와 축복이 여게 있습니다. 요것 단단히, 요대로 살면 당장 돌아옵니다. 요대로 살면 당장 돌아와요. 그만 일주일 살면은 달라. 일주일 살면 하나님의 복이 오는 것이 여러분들의 심령에 보일 거라고.
비춰 봐요. 강퍅해서 듣지 안해 그렇지.
이제 다음에는 용도 도적질 둘이 있습니다, 용도 도적질. 쓰는 거 말이요, 용도 쓸 용길 도자. 쓰는 방편이 틀렸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쓰라 하는 대로 안 쓰고 잘못 썼다 그것이 용도 도적질이라. 용도 도적질 다섯 가지. 하나는 헌물이라, 십일조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 그말은 온전한 헌물과 십일조를 드리라 그말입니다. 그 위에 헌물과 십일조라 말해 놓고 여기는 온전한 십일조라만 말했으니까 위에 헌물 그걸 드려야 여기 온전한 십일조가 된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헌물은 뭐인데 헌물은 두 가지입니다. 헌물은 두 가지가 헌물이요. 하나는 어떤 것이든지 제일 머리되는 거, 머리 그것을 하나님에게 떼서 바치는 것이 그것이 헌물 중에 하나입니다.
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 중에도 제일 좋아하는 것, 사모하는 중에도 제일 사모하는 것, 기뻐하는 것 중에도 제일 기뻐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중에도 제일 두려워하는 것, 그거 뭐이냐? 내가 과거에는 사람을 두려워했고 사업 망하면 사업 망하는 그런 걸 두려워했는데 지금은 머리를 떼서 바쳤어. 사업보다도 하나님 두려운 것이 제일이라.
그러면 하나님 두려운 것, 그러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께 바쳤다 말이오.
‘야, 너 지금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독침 가지고 너 찔러 죽인단다. 이라니까 얼마나 두려우냐?’ 이러면 하나님은, ‘그 사람들이 와 가지고 예수 안 믿으면 냅둘라 한다’ 이라니까, 예수 안 믿을라 하면 하나님이 야단칠 것이고 또 예수 믿을라 하면 공산주의가 야단치고 그라면 둘 중에 이것 두려워하면 저거 버려야 되겠고 저거 두려워하면 이거 버려야 되는데 그럴 때에 하나님보다 공산주의를 두려워서 예수 믿는 것을 자기가 어기든지 뭐이든지 그라면은 두려운 걸 어데 바쳤습니까? 두려운 걸 어데 바쳤소? 공산주의에 바쳤지.
공산주의가 독침으로 찌를라 하지마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든지 하나님을 배반한다든지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거는 하나님이 더 두렵다 말이오.
그래서 공산주의 독침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면은 그 사람이 두려움의 제일 머리를 누구한데 바쳤소? 예? 하나님께 바쳤어. 요거는 다 해석을 요래 하면 돼져요.
또 사랑도, 사랑도 이거 사랑 저거 사랑 모두 사랑이 꽉 찼는데 제일 사랑하는, 제일 사랑은 누구한데 바칩니까? 제일 사랑은 하나님께 바쳐.
아브라함이 이삭을 사랑하니까 ‘네가 나보다 이삭을 사랑한다’ 이래 가지고 하나님이 한번 시험을 한번 해 봤어. 시기가 나 가지고 시험을 한번 해 봤어.
‘아브라함아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 하니까, 자, 이삭 사랑을 하나님 사랑보다도 더 했으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겠소 안 드리겠소? 그라니까 ‘예!’ 하고 얼른 드렸습니다. 얼른 드렸어.
얼른 드리니까 아브라함의 사랑은 하나님께 바쳤소 이삭에게 바친 것입니까? 하나님께 바쳐.
자, 자기 행동으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머리를 떼 바치는 것이고 또 이제 물건이 생겼습니다. 물건이 생겼는데 요 물건 가운데에 물건이 들어왔는데, 들어왔는데 이제 이 물건이 자꾸 계속해서 들어올 터이니까 머리 떼서, 거게서 순서 머리라, 순서 머리.
순서 머리는 어떤 걸 드리는 게 순서 머리가 되겠습니까? 순서 머리는 어떤 걸 드리는 게 순서 머리 되겠지? 제일 처음에 들어오는 게 그게 순서 머리 되는 거라. 순서적으로 머리 드리는 거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제일 처음에 하나님 생각해.
또, 보자, 이게 들어온 게 우리 집에 감홍시가, 감홍시가 열 개가 들어왔는데, 감홍시가 열 개가 들어왔는데 보자, 열 개를 보니까 감홍시 중에 모두 ‘요게 제일 좋다 요게 제일 좋다’ 아이들이 주 모여 가지고 `요거다' 제일 좋은 게 하나 있어. 제일 좋은 감홍시가 한 개 있습니다. 제일 감홍시가 한 개 있으면은 그 감홍시 가운데에 그 품질로 말하면 제일 머리 되는 게 뭐입니까? 머리 되는 게 뭐이요? 제일 좋은 감홍시라 말이오.
그 ○○○선생님 그 더러 해 봤소? 해 봤어, 제일 좋은 거? 제일 좋은 거 하나님께 바쳐 봤어. 바쳐 봤으면 돼. 거짓말 하는 것 같다. 보이는 사람도 안 섬기는 것이, 제일 좋은 거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은 나한테 좋은 것 더러 가져오는데. 좋은 것.
저 아래 누가 뭐이더라, 내가 그걸 잊어버렸어. 고추던가? 무화과? 무화과를 하나 가져왔어. 무화과를 접시에 하나 딱 담아 가지고 왔어. 우리 오층에는 무화과나무가 이만한데 마구 뭐 아마 수천 개는 될란지 몰라도 수백 개는 넘습니다. 꽉 열어 가지고 있어. 있는데 그 무화과를 하나 좋은 그릇에 딱 받쳐 가지고 하나 가지고 왔어.
‘이거 뭐하러 가져왔더냐?’ 나는 알지요. 이러니까 ‘요게 무화과에 제일 처음 연 무화과인데 제일 먼저 익은 것이라고 요거 하나님께 바칠라 해도 이거는 뭐 대금으로 그랄 수도 없고 이러니까 요 하나님 대리자 목사님에게 바쳐야 되겠다 해서 그래 좋은 것 무화과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이래 말하면서 가져왔더래요.
그것이 머리 떼 바치는 거라. ○○○선생 그거 더러 해 봤어. 안 해 봤지? 해 봤어? 나한테는 안 가져오던데? 내가 그걸 가지고 ‘야 이거는 내가 혼자 먹기가 아까운 거다’ 그래 이 갈라 가지고, 우리 집에 무화과 많이 있어요. 그래도 그 무화과와 그 무화과가 달라.
이거는 뭐이냐? 하나님 앞에 머리 떼 바치는 것이기 때문에 이거 머리 뗀 걸 내가 먹으면 머리 뗀 것을 먹을 값을 해야 되지 값을 안 하면 또 안 된다 그거요.
이래서 그걸 가지고 ‘우리가 이걸 머리 떼 바친 거니까 자, 이걸 우리가 같이 먹자.’ 하고서 기도를 착실히 드렸습니다. 착실히 드리고 또, 먹자 하니까 모두 ‘이거는 목사님이 쪼그매라도 입에 대야 되지 맛을 봐야 되지 그라면 우리가 못 먹습니다. 입에 대야지.’ 그래 또 내가 또 입에 댔다 말이오. 그것이 뭐이냐? 그래 하는 것이 그것이 연상적으로 올라가 가지고 하나님께 상달된다 그거요.
또 어떤 사람이 뭐 그거, 토마토든가 고추든가 모르겠어. 토마토든가 고추든가 한 개를 가져왔어요. 한 개를 가져왔는데 그거 가져와서 ‘이 뭐인데?’ 내가 알기는 알지요 `이거 뭐인데 한 개를 가져와, 한 개를?’ 이라니까 ‘그게 제일 처음 열어서 처음 익은 거랍니다.' `그래.' 그것도 그거 머리 뗀 거라. 머리 떼니까 하나님을, 나를 하나님 대리자라고 인제, 하나님께 그거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인제 그거 나한테 그랬다 말이오.
그거 인제 요다음에는 다 가져오는 날이면 그거 큰일이라. 다 가져오면 내가 다 처분 다 못 할 것이고 하니까, 그걸 그래도 ‘요 고추 요거는 얼마짜리다. 시장에 가면 요거 오십 원 가겠나? 혹은 백 원 가겠나? 십 원 가겠나?’ 하면은 그 가격을 치는 데에는 성경에 뭐라 했어? 가격을 치는 데는 성경에 그 시세보다 조금 헐하게 하라 했소 조금 비싸게 하라 했소? 뭐라고 하라 했어요? ○○○목사님 대답해 봐. 조금 비싸게. 조금 비싸게.
그거 성경에 있어요 없어요? 성경에 말해 놨어요. “십일조를 드릴 때는 값을 쳐 드릴라면 시세보다 오분지 일을 더 가격을 쳐 가지고 비싸게 쳐서 드리라” 그렇게 말해 놨다 그말이오. 그래 그거 그러니까 다른 것도 다 그렇지.
인제 그래 가지고 야, 우리가 요거는 무화과 농사를 지었으면, 고추 농사를 지으면은 ‘우리가 이거 고추 새로 된 고추다’ 이라면은 떡 그 고추를 ‘내가 먼저 수지 내가 먹을란다’ 하면서 호주가 `내가 먹을란다’ 하면은 그놈의 집구석은 망할 놈의 집구석입니까 흥할 집입니까? 망할 놈의 집구석이라.
‘이거는 아버지 잡수시소.’ `아니다. 이거 제일 처음 익은 열매 머리가 되니까 이것은 내가 먹어야 되겠나, 너거 엄마가 먹어야 되겠나, 너거가 먹어야 되겠나? 머리 떼서 하나님께 바치라 했으니까 어째야 되지?’ ‘예, 그거는 하나님께 바쳐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면 어째야 될꼬?' `그라면 목사님 갖다 드릴까요?’ ‘하나님의 대리자니까 목사님 갖다 드려도 되기는 되지마는 목사님이 언제 광고하기를 그것 다 가져오면 처리 곤란하기 때문에 그 가격을 치되 시세 가격보다 조금 더 쳐 가지고 하나님께 연보하라 하더라. 감사 연보하라 하더라. 이러니까 머리 떼서 그래 바쳐라.’ 그라며 아이들 데리고 가르쳐요.
무화과 몇 개를 놓고 고추 몇 개를 놓고 가르칩니다.
그 한 개를 가지고 왔어. 가지고 와서 ‘그런갑다’ 하고서 이래 기도를 내가 그것을 인제 먹었다 말이오. 먹었는데 또 며칠 되니까 또 한 개 가져왔어요. 그래 내가, 그때는 내가 좀 나무랬어. ‘이거 뭐, 이거 뭐 장난을 하나 뭐 하노? 그러면 두 개 한목 가져오든지 하지 한 개 가져오고 또 한 개 가져오고,’ 이라니까 ‘아니, 그게 아닙니다. 작년에는 한 나무에서 연 거 머리를 떼 가지고 바치고 나니까 그거는 그 해에 어떻게 많이 열었는데 그만 그거 바쳤으면 됐다 하고서 그다음에 그만 다른 나무는 안 바쳤더니마는 다른 나무는 전부 열면 골고 열면 골고 한 내끼도 따지도 못했습니다.’ 그 사람은 또 하나님께서 그래 간섭을 하는 모양이라. 하나님이 그래 간섭해. ‘이래서 나무마다 이거 처음 연 걸 드려야 되기 때문에 이제 이거는 경험에서 나와서 이랬습니다. 받아 주십시오.’ 또 두 개 가져왔어.
그래 내가 인제 그다음에는 그랬어. 그라면 하나님이 가르칠라고 그러니까 한 개 두 개 됐으니까 이거 합해 가지고 그 전부를 다 속하는, 속하는 거, 알겠습니까? 속하는 거, 예수님의 대속 아니요? “속한다” 그랬어요. ‘모든 것이 다 속함이 되니까 하나님이 많이 열게 해 줄 터이니까 인제 그 많은 수입 가지고 그것에 대해서 그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고 그래 쓰도록 해라’ 내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 머리 떼 바치는 거, 저 언제 보니까 정갑용 집사라고 말이지 울콩 하나를 딱 들고 왔어, 한 개. 울콩 요 안에 든게 얼마나 농사를 잘 지었든지 요 네 개 들었어요. 많이 든 건 다섯 개 여섯 개 들었는데 네 개밖에 안 들었어, 짤막하이.
네 개 들었는데 그거 똑 한 개를 가져왔어.
한 개를 가져와서, 알기는 내가 알지마는 그래 내가 있다가 ‘정 집사님, 이거 뭐하라고 이거 이래 한 개 가져왔습니까?’ 그러니까 그 양반은 성자라. 못 견뎌 부끄러워하면서 ‘아이구, 그게 한 개가 제일 처음에 열어서 그래 가져왔습니다.’ 적어서 거석하지마는 하나님 앞에 어길 일은 할 수 없고 이러니까 그 머리 그거 떼 가지고 한 개를 가져왔다 말이오. 그라기 전에는 마음에 통쾌한 마음이 없어.
이렇게 뭐이든지, 자, 자기 집에 농사를 짓든지 뭘 짓든지, 어떤 사람은 ‘월급을 받았는데 이거 내가 월급 생활은 내가 처음으로 평생 처음으로 하는 것인데 이 첫 월급이니까 요게 머리니까 요걸 떼서 바치자’ 이래 가지고 둘이 내외 말이지 그거 가지고 죽도 못 끓여 먹고 근근한데 첫 월급 한 달 것 바쳐 놓으면 결국은 남한테 얻어먹어야 된다 그말이오.
그래 내가 있다가 말하기를 ‘그거는 너거 마음이면 다 바친 것이니까 그것을 먹고 하나님의 일을 해라. 그거 머리 떼서 바쳐야 된다 알았으니까 그거 내가 보증자라. 내가 증인이니까, 너거가 머리 떼 바치는 것에 내가 증인이니까 너거가 머리 떼 바쳤으니 그거 가지고 이제 하나님께 감사하고 먹고 일을 부지런히 해라.’ 요렇게 내가 해결을 해 줬다 말이오.
요 하나씩 둘씩 착착 요렇게 해결해 나가는, 해결돼 나가는 요 생활이 이거야 사소한 것이지마는 나중에 이것이 들어서 그 전체에 크게 나중에 되면은 여러 수백억 되는 그런 것이 망하고 흥하는 것이 여게서 좌우되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게 종자라, 종자 생활.
이래서 머리 떼 바치는 거, 또 어떤 사람은 ‘내가 공부해 가지고 공부를 이제 해 가지고 공부 졸업을 했는데, 내가 졸업을 했습니다. 졸업을 했는데 지금 내일 무슨 뭐 학교에 뭣이 일이 있다고 관청에 무슨 일이 있다고 지금 막 졸업생들 다 나와 가지고 무슨 일을 하라 합니다.’ 이라니까 요 졸업생 요게 딱 있다 말하기를 ‘목사님 내가 어제 졸업식을 했는데 이 졸업하고 난 다음에 머리 떼 바치라 했는데 내가 거기부터 해서는 마음에 불쾌해 안 됐으니까 요런 거는 머리를 떼 바칠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래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래.
‘네가 머리 떼 바칠라면 너는 반사지. 그러니까 졸업하고 난 다음에 먼저 네가 학생들 네 맡은 학생들 방문해 가지고 그 학생들에게 네가 하나님 말씀도 가르치고 또 세상 것도 그들 공부 못 하는 거 한번 훑어도 봐 주고 이래 가지고 그래 한 시간이나 반 시간이든지 주를 위해서 거기다가 바치고 머리 떼 바쳤다 하고 네가 가서 해라.’ 어짜든지 머리를 하나님께 바치고 딴데 바치지 안할라고 애쓰는 요것이 그 사람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그 사람에게 망할 것을 다 피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출근했는데, 출근했으니까 일하러 갔다 말 아니요? 출근이라 말은 일하러 갔다 말이오. 일하러 나왔다 말이오. 출근해 가지고 첫시간, ‘내가 출근해 가지고 머리를 하나님께 바쳐야 되지’ 이러니까 턱 출근해 가지고, 출근해 가지고 떡 와 가지고 출근부에 도장도 안 찍고 턱 와 가지고 눈 짝 감고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출근을 오늘 했습니다. 여게 일할 때에 같이 해 주시고,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다른 사람에게 신덕을 끼쳐서 감화를 줄 수 있게 하시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하루의 일이 되게 항상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하고 난 다음에 이제 ‘머리 떼서 바쳤다' 그라고 나서 출근부에 도장 꼭 찍고, 공부할 때도 또 머리 떼 바쳐야 되겠고, 아침에 떡 일어나 가지고 먼저 일어나 가지고 기도하지요, 물론. 기도하고 난 다음에 또 세수하고 나서 공부할라 시작하면, 공부할라고 시작하면은 자, 공부할라고 시작하는데 무슨 공부부터 해야 됩니까? 예? ○○○? 무슨 공부부터 해야 돼? 무슨 공부부터 해야 돼? 수학부터? 과학부터? 머리 떼 바칠라면 어짜면 머리 떼 바치는 게 돼요? 딱 무릎 꿇고, 급하면 말이요, 급하면 성경 많이 못 읽어요. 많이 못 읽으니까 한 절만 읽어도 좋아요. 나도 어떨 때는 한 절 읽어 가지고 궐을 때웁니다, 궐을 때워.
이거 떡 가 가지고 갔으면 이제 육신의 밥 먹기보다도 성경부터 먹어야 되겠는데 이거 뭐 시간 없다 말이오. 그라면 얼른 찾아 가지고 성경 한 절 읽고 밥 먹습니다.
또 어떨 때는 기도실에서 기도하다 보면은 성경 읽고 내려와야 되겠는데, 읽고 내려오기는 와야 되는데 기도하다 깜깜 어둡다 말이오. 안경도 없고 이래 놓으니까 이거 도무지 안 보이고 이 알 수 없어. 이래 가지고 대략 뭐 시편 1편 외우는 거니까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며” 그라고 옵니다.
알겠습니까? 그라고 와요. 그래도 머리를 떼 바쳐야 돼. 그래도 그거 성의 그것을 하나님이 알고 좋아하신다 그말이오.
우리가 머리 떼서 바치는 요것을 하지 안하는 그것이 도적질이라.
뭣이든지.정신이든지, 마음이든지, 시간이든지, 순서든지, 가치로든지, 또 감사든지, 두러워하는 것이라든지, 사랑하는 것이라든지, 사모하는 거, 사모하는 것도 머리 떼 바치는 게 뭐이요? 하나님을 제일 먼저 사모하면 머리 떼 바치는 거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뭐이든지 머리 떼서 하나님께 바치는 요것이 헌물, 머리 떼 바치는 요 헌물을 드려서 도적질 하지 안하는 것입니다. 마구 뭐 처음에 것이나 나중에 것이나, 귀한 거나 천한 거나, 사모하는 것이나 그런 것도 ‘내가 지금 사모는 주님부터 사모해야지. 다 틀렸다. 주여,’ 또 새로 시작해요, 그래도. ‘주여, 용서해 주옵소서. 다 취소합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제 주님부터 사모해야지.’ 주님부터, 뭐 간단하게 해도 ‘나를 대속해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그라고 딴거 해요. 뭐 사모 퍼뜩해 버려요, 그만. 찰나로 뭐 사모 다 해 버려요, 찰나로.
이라고라도, 사모에도 머리, 생각해도 머리, 감사에도 머리, 감사도, 감사를 사람에게 감사할 것 많지만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사해야지.’ 감사의 머리, 두려움의 머리, 소원의 머리, 소원의 머리가 뭐이요’ 소원의 머리? 소원의 머리도 하나님께 소원부터 먼저 하고 난 다음에 딴거 소원해야지 하나님 소원 먼저 안 하고 딴거 소원하면 그거는 머리 떼 바치는 자가 아니라. 알겠습니까? 이것이 용도 도적질 하나를 안 하는 거라, 용도 도적질 하나 안 하는 거.
머리 떼서 바치는 데는 머리 떼서 바치지 안했기 때문에 이것이 도적질인데 무엇이든지 머리는 딱딱 떼서 주님에게 먼저 바치고 마음도, 생각도, 두러움도, 좋아함도, 사모함도, 물질도, 가치도, 선후도, 이제 이라니까 ‘이거, 이거 됐습니다. 이거 바칩시다.’ 이라면 보자, 이게 어찌 되노?’ ‘이게 제일 좋은 겁니다.' `좋은 거면 이것은 가치 머리는 되는구나.
가치 머리는 되는데 우리 집에 제일 처음에 먼저 온 게 뭐이지? 순서 머리는 안 되네.’ ‘아, 순서 머리로 말하면 요게 제일 먼저 왔습니다.' `그러면 순서 머리에 조금, 순서 머리에 조금,’ 만일 많이 못 거석할 만하면 순서 머리에 조금, 거기 대해서 십원도 좋고 일원도 좋아요. 오원도 좋아요. 알겠습니까? 무엇이든지 자기 지식에 따라서 ‘요게 먼저다, 요게 으뜸이다, 요게 제일이다.’ 생각하는 것이 둔한 자는 백 가지 중에 하나도 생각 안 나고 평생 생각 하나도 안 나겠고 명철한 자는 그 생각이 다른 사람은 하나 나는데 이 사람은 열도 스물도 많이 나.
많이 나서 많이 할수록이 ‘야, 그라면 언제 일은 언제 하고 살림살이는 언제 살고 공부는 언제 해?’ 많이 할수록 하나님이 이 컴퓨터 천억을 만들어 놓은 걸 막 새롭게 해 놓으면 당장에 뭐 횡횡횡횡 막 돌아간다 그거요.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어. 이분이 이런 줄 알고 이분을 바라보고 이분을 따르고 이분을 의지하고 맡겨 놓고 사는 것입니다.
이래서 머리 떼는 거, 그다음에 둘째 헌물은 뭐이냐? 감사 헌물이라, 감사 헌물.
감사 헌물. 감사 헌물은 무엇이든지 자기가 하루 생활을 했다든지 한 달 생활을 하든지 뭣이든지 있으면 거게 대해서 먼저 하나님에게 감사하면 그것이 감사 예물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그거는 감사하는 표시요. 왜 감사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걸, 제일 처음에 소유권 도적질 했지요? 소유권 도적질을 회개해야 그다음에 감사도 나오고, 머리도 떼 바칠 게 나오지 소유권이 그만 확고하게 정확하게 안 돼 있으면 다른 것 다 그만 묵사발 돼 버리고 맙니다. 다 헛일되고 말아요. 이래서, 전생활을 감사함으로 합니다.
이제 그러면 감사로 하나님 앞에 감사 헌금을 드리는데 요 감사 헌금 지금 이백칠십이니 삼백 얼마니 이래 감사 헌금이 들어오는데 그래 들어오면 돈이 많이 들어올 줄 알지마는 아니야. 자기 정도에, 정도에 맞춰 십 원도 좋아요. 돈 많은 거 돈 모집 할라 하는 게 아니라.
이러니까 뭣에 대해서 ‘이거 감사합니다’ 감사한데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지마는 감사함에 돈을 드린다는 것은 많이 드리지를 못하겠다 그거요. 제 정도가 안 되니까. 정도가 어리니까. 그러면 십 원 감사도 좋아요, 십 원 감사라도.
이제 그거는 감사 예물을 드린 것이고 우리는 감사는 달라요. 이제 모든 전생활을 감사함으로 해야 돼요. 길을 가면서, 길을 가면서 ‘주여, 다리 힘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리 주시니 감사합니다. 또 발바닥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래 안 해도 말이요, 전부 감사, ‘손을 줘 손 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걸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고 내가 하나님께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해요.
감사함으로.
그 감사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어요. 지금은 없지마는 그전에 담배 필 때 보면 이 성냥을 달라 하든지 뭐 라이타라 하던가 하면은 이 담배불 거석하면 다, 담배불 빼꼼 그라고 불댕겨 주면 그것도 주면 ‘감사합니다’ 이 절하며 감사해요. 이라는데, 우리에게 준 거 전부 감사할 만한 가치가 다 넘치지 안해요? 이러니까 전체를 ‘감사합니다’ 그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와 같이 살아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래서 모든 일에 감사해요. 내가 요번에 거창 가 가지고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갔었는데 가니까 그 ○○목사가 그런 얘기를 해요. ‘그때 부친상 모친상을 당했는데 목사님이 그렇게 시켜서 우리는 그때 한번 울어 보지도 못하고 그저 ‘에고 에고’ 그라는데 `감사합니다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그래 처음부터 끝까지 무덤에서 장 ‘감사 감사’ 다른 사람이 보고 `저거 무슨 소리인고?' 우리는 그때 감사했어요. 그래 그때 목사님이 감사하라 해서 그래 감사 감사 그래 하면서 따라갔다고 그 얘기를 하고 우리가 웃었어요. 그것도 은혜가 된다 말이오.
우리는 모든 전생활에 감사한 것을 느끼면서 감사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도적질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 우리 팔도 그냥 줬지, 다리도 그냥 줬지, 눈도 그냥 줬지, 줬는데 공짜배기로 줬으니까 공짜배기로 은혜로 준 것의 댓가는 뭘로 갚아야 됩니까? 은혜의 댓가는 뭐입니까? 그것밖에 없어.
자꾸 감사하면 눈도 밝아지고, 감사하면 손도 건강해지고, 감사하면 다리도 건강해지고, 감사하면, 자, 자꾸 외상 가져오고 난 다음에 돈을 착착 댓가를 보내 주면은 물건 잘 줘요 안 줘요. 잘 줍니까 안 줍니까? ○○○집사님 상점에 외상 가져가고 탁탁 돈 갖다 주면은 물건 잘 줍니까 안 줍니까? 잘 주지. 잘 줘. 그거 한가지라. 은혜의 댓가는 감사라요. 이러니까 자꾸 감사만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자꾸 많이 주신다 그말이오.
이 모든 것 다 깨달아서. 자꾸 입으로 말해도 좋고. ‘감사’ 이렇게 해도 좋고 그저 `감사합니다' 속으로 그래도 장 감사한 그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이 떨어지면 안 돼요. 감사한 그 마음이 끊어지면 안 돼요. 감사한 생각이 끊어지지 말고. 감사함으로 모든 것을 사용하는 것이 그것이 헌물입니다. 알겠습니까?
머리 떼, 또 감사로. 또 십일조는 자기의 수입의 십분지 일, 자기가 집을 팔았습니다. 집을 팔았으니까 백만 원에 집을 팔았습니다. 그라면 십일조 뗍니까? 안 돼요. 그걸 집을 팔아 가지고 그냥 집 안 사고, 집 안 사고 자기가 다른 걸 할라 하면은 그것은 십분지 일을 떼야 돼요. 집을 살라 하면은 그거 내나 집사는 것이기 때문에 십분지 일을 떼지 안해요.
미국은, 미국은 경제에 대한 모든 경제법을 보니까 이 성경법대로 꼭 그대로 돼 가지고 있읍디다. 이래 미국의 경제법은 내가 성경 보고 ‘그 나라 법이 이렇다 이렇다’ 말했더니마는 그 나라에 있던 법을 한 사람들이 와 가지고 ‘목사님이 뭐 좀 법에 대해서는 미국법보다 훨씬 목사님이 잘 아신다고, 어떻게 미국 오시지도 안했는데 그래 아는고?’ 그 사람들이 성경법과 같애요, 그만. 그러기 때문에 그만 나는 ‘이렇다’ 하면은 저거가 쎄워대도 저거가 졌지 내가 지지는 안해요. 꼭 성경대로라, 보면.
이래서, 자기가 무엇이든지 그것을 자본으로 넣을 때에는, 자본으로 넣을 때에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회사를 차렸습니다. 회사를 차렸는데 그 달에 수입이 만일 자, 천만 원이 수입이 됐다 합시다. 천만원이 수입이 됐으면 이제 천만 원 수입된 것을 백만원을 십일조 드려야 안 됩니까? 십일조 드려야 돼.
십일조를 백만원 드릴 수도 있고 안 드릴 수도 있다 그말이오. 안 드릴 수도 있어요. 안 드리는데 어짜느냐? 백만 원이 수입이 됐는데 백만원 요것을 아무래도 지금 다급하니까 요것을 자본으로 넣어야 되겠다, 자본으로 넣으면 자본 백만 원을 드렸는데 백만 원 중에 십만 원은 누구의 돈이요? 십만 원은 누구의 돈이라요? 어? 하나님의 돈이라.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돈이라.
이러니까 처음에 백만 원 가지고 시작했는데 자꾸 수입이 오니까 그것 가지고 또, 십일조를 드릴 때도 있고 안 드릴 때도 있고 다 자본으로 밑천으로 넣어 가지고 백만 원 들인 것이 일억이 됐습니다. 일억이 됐어. 일억이 됐다 말이오. 일억이 됐는데 그 십일조를 딱딱 떼서 드렸으면 일억 된 것은 전부 제 돈입니다.
알겠습니까? 십일조를 드리지 안했으면은 십일조 계산한 그 액수는 하나님의 돈이라, 하나님의 돈.
이라면 나중에 얼마 안 가서 다 이래 다 계산해 보면은 전부가 가진 그 회사고 있는 거는 다 하나님의 것이 되고, 다 하나님의 것이 돼. 그러면 다 하나님의 것이니까 나는 그 종업자라. 있으면서 내가 심부름꾼으로 그 청지기 보관자로서 이렇게 하면은 하나님이 그거 다 맡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하나님이 주권하시고 시키는 대로 이래 하면서 나는 월급만 받아먹고 있어.
그라면 딱딱 계산해 가지고 이래 하면 만일 그뒤에 회사를 팔아 가지고 백만 원 들여 가지고 회사를 차려 가지고 몇 백억이 됐습니다. 만일 백억이 됐다 합시다.
백억이 됐는데, 백억이 됐는데 그 십일조를 한번도 내지도 안하고 전부 이래 해 놨습니다. 이래서 다 그래 해 놨어.
해 놨으면, 나중에 백억이 되면은 뒤에 팔아 가지고 어째야 돼요? 팔아 가지고 어째야 돼요? 팔아 가지고 백억이면 십억을 내놔야 돼요. 십억을 내놓으면 십일조 낸 것이 돼요.
그러니까 요렇게 조렇게 하나님께 십일조 내는 그것은 안 내고 그걸 그 자본으로 넣을 수는 있다 말이오. 자본으로 넣을 때는 넣은 그게 하나님의 것인 것을 알고 구별해 가지고 요렇게 계산만 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융통을 해 줘요. 융자를 해 줘요, 융자. 융통이 돼져. 이러니까 어짜든지 성경에 걸리지를 안하도록 요렇게 살라 그거요.
그래서 머리 떼서, 감사로, 또 십일조로, 요라면은 십일조 안 하던 사람이 십일조하면 도적질, 십일조 도적질 회개했고, 감사 안 하던 사람이 감사하면은 감사 도적질 회개했고, 또 머리 떼 하는 건 머리 떼 안 바쳤으면 머리 떼 바쳤으면 이제 머리 떼 안 바치는 도적질 회개 했고 요 세 가지 회개 했습니다.
소유권 회개 둘, 또 용도 회개 셋, 요라면 다섯 가지 회개 했습니다.
그다음에 두 가지가 있는데 두 가지 남은 것은 그것은 뭐이냐? 성경에 보면은 그렇게 말해 놨어. “씨와 양식을 주는데 씨는 심고 양식은 먹어라” 이랬는데 씨와 양식 그 구별하는 것을 잘못하면 큰일 나요. 잘못하면. 그만 씨를 양식으로 다 삼아 가지고 양식을 계산을 많게 대기 쉽다 그말이오.
사람들은 보면은 씨는 계산을 적게 대기 쉽고 양식은 많이 대기 쉽고, 사람들은 이게 욕심이 있어 가지고 공평되게 한다고 해도 제게 끌어붙이기를 많이 끌어붙이고 남에게는 적게 끌어붙여서 자꾸 자기 욕심 챙기기 쉽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둘이 꼭 가를 때에는 남이 좀 유익이 되도록 그렇게 하고 보면 뒤에 가서 보면 공평되게 돼져요. 이러니까 그 씨는 조금 많이 계산하는상바르게 하고 양식은 조금 적게 계산하는상바르게 하면은 마음이 편코 오산이 안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러면 씨는 어떤 것인데? 자기가 십분지 구는 제것이지. 십일조 드렸으니까 십분지 구는 제것 아닙니까? 헌물이니 모두 감사 헌물이니 헌물을 드렸으니까 나머지기는 제것이라 말이오. 제것인데 거게 뭣 들었어? 제것인데, 십분지 구가 제것, 헌물과 머리 떼서 바치고 나머지기 제것, 제것인데 제것 그것은 다 제가 먹을 것입니까, 뭐입니까? 거게 씨와 양식이 들었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씨와 양식이 들었다 그말은 씨는 어떻게 하는 것인데? 씨는 현재에 내가 가지고 있는 거 내가 쓰지 안하고, 내가 쓰지 안하고 다른 사람들을 영으로 육으로 구원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구원에 쓰는 것이 그것이 씨로 쓰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여 준 그것도 씨를 심은 것이 되고, 또 자기가 이제 연보해 가지고 개척교회 연보해서 개척교회 연보해 가지고 예수 못 믿는 사람들 예수 믿구로 만드는 것도 그것도 씨로 심으는 것이고, 이제, 그것을 자세히 생각해 보면은 ‘내가 현재에 요거는 있어야 된다’ 자기가 현재에 자기가 그것은 안 쓸 수, 암만 그걸 줄여도 줄여도 그거는 안 쓸 수 없다고 자기가 줄여서 그저, 영양실조되면 안 되고, 또 옷은 자기 분수에 합당하게 입어야 되지 분수보다 더 천하게 입으면 영광이 가리우기 때문에 그것도 안 되고, 의식주는 적당하게 제 신분에 적당하게 하도록 하고, 식물은 영양에 충족이 되도록 하고 그라고 이제 ‘ 요것은 내가 저축할라면 저축하고, 요것은 저축할라면 저축하고, 요것은 내가 현재 안 쓰고 복음에 바쳐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데 쓸라면 구원하는 데 쓸 수 있고’ 요럴 수 있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요 저축할라면 저축하고 현재 쓸라면 쓰고, ‘현재는 안 써도 되겠다’ 안 써도 되겠다 하는 그것을 저축도 할 수 있다 그말이오. 저축도 할 수 있어. 할 수 있는데 저축을 하면은, 그 힘이 듭니다. 저축을 하면은 저축하다가 뒤에 가서 도적질 해 먹기 쉽습니다, 저축하다가.
어떤 도적질 잘하는 사람은 그래요, 그 회사서 도적질 하는 사람 말이지요. 요 물건을 요게서, 요게 있는 물건을 다 안다 말이오. 알면 요거 도적질 해 갈라고 요걸 살짝 들어서 여기 갔다 놓습니다. 요게 갖다 놓았는데 요게 찾으니 없거든.
‘없다. 이거 어데 갔노?’ 모르는 척 하고 시침 떡 떼고 앉았다 말이오.
앉아 가만 앉았으면, 여게 갖다 놨기 때문에 뭐 밖으로 안 가져갔으니까 여기 있다 그말이오. 나중에 되게 들춰서 ‘이거 어데 갔노?’ 막 되게 찾으면, `그거 어데 갔을까요?’ 떡 그라고, 다른 사람들이 ‘여기 있네.' `거기 있나?' 제가 갖다 놓고. ‘여기 있다 합니다.’ 이라지마는 그라면 도적질 실패했다, 못했다 말이오.
요게 갖다 놨다가 또 한참 봐도 그걸 챙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안 챙겨. ‘아마 잊어버렸는갑다.’ 또 여기 갖다 놔, 담우랑 안에. 담 안에 여기 갖다 놔요, 대문 안에. 여기 갖다 놔. 두 번 옮겼어. 두 번 옮겨도 다른 사람이 아무 말도 안 하고 그거 없어졌다 소리 안 해. ‘지금 가져나갈까? 지금 가져나가면 만일 찾으면 들통나는데, 안 되는데. 그러면 한번 더 거석할까?’ 요걸 또 살짝, 요거 뉘가 본 사람 있는지 모르니까 살짝 요게 갖다 놓습니다. 요게 갖다 또 놓는다 말이오.
여게 갖다 놓고 몇 번 옮겨, 또. 옮겨도 아무도 몰라요.
그래도 ‘요거는 한 달 지나가면은 다시 생각 안 할 거다. 두 달 지나가면 생각 안 할 거다. 요거는 일 년 지가나면 생각 안 할 거다.’ 안 할 만한 시기가 딱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이제 살짝 들고서 도적질해 간다 말이오. 도적질 하는 사람들이 그래 해요. 집안 도적질은 그래 해요. 알겠습니까? 집안 도적질은 그래 해요. 아는 도적질은 그래 한다 말이오.
요거 모양으로, 요거 모양으로, 이제 ‘요거는 지금 당장 필요하니까 요거는 심어야 될 것이지만, 요거는 씨로 심어야 될 것이지마는 요걸 씨로 심을라면은 내가 얼마는 씨로 심어야 되겠는데, 씨로 심어야 될 것인데 이걸 더 키워 가지고 하면 안 되겠나? 요거 내가 현재 자본이 급하고 요거 다급하고 이러니까 요걸 심을 게 아니라 요걸 이 자금 현재 남한테 빚낼라 해도 안 되고 요 사업 할라 하면 요만한 자본은 있어야 되니까 요거는 내가 쓰고 뒤에 요것을 다 계산해서 내면 되지 않겠느냐?’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어요.
씨를 심지 안하고 그러면 그걸 지금 자본으로 썼으니까 제가 먹었습니까 지금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까? 먹었소 보관하고 있는 것이요? 심었습니까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까? 심으지도 안하고 먹지도 안하고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보관하고 있는데 그거 하나님이 딱 본다 말이오. ‘이놈아 네가 위험한 생활 하고 있기는 있다마는 보자’ 요거 계산을 단단히 해 가지고 항상 기억합니다.
‘내가 아무 전번에는 어느 달에는 얼마를 씨를 심어야 되는데 심으지 안하고 요걸 지금 자본으로 넣었으니까 내가 보관합니다. 내 자본 가운데 얼마는 씨로 심을 것이다. 씨가 여기 얼마 들어 있다. 씨가 여기 얼마 들어 있다.’ 계산해.
씨가 얼마 들었다 계산을 단단히 해 가지고 나중에 어떤 기회가 있을 때는 ‘씨 계산이 통틀어 계산하니까 이자까지 계산하니까 씨가 얼마입니다.’ 하고 딱 들어내면 하나님께서 그때 이제 ‘이제야 이놈아 네가 도적질 안 하는 줄 내가 알겠다. 알겠다.’ 항상 하나님도 걱정하시지.
또, 그런 방법 할 수 있어요. 방법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가르친 대로 쉬운 것은 그것이오. 그만 당장 그라고 난 다음에 ‘요것은 내가 현재에는 안 가져도 되겠다. 현재 내가 요거는 안 하고 안 쓰고 요거는 저축해도 되겠다.
요거는 그라면,’ 저축은 은행에 저축하는 것은 땅에 저축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저축하는 것은 하나님께 저축하는 것이고, 복음 저축은 하나님께 저축하는 것이라.
‘요거 저축하겠다.’ 딱 저축을 해 버려. 그러면 저축을 해 버려.
저축을 해 버리고 나면 ‘그걸 모아 가지고 지금 내가 장가갈 터이니까 장가 비용도 마련해야 될 터인데 그뭐 그것도 비용 못 하고 그만,’ 장가 비용 안 마련 해도 그래만 하면 하나님께서 장가 비용을 줍니다.
‘또 아이를 낳을 터인데, 아이를 낳을 터인데 이거 아이가 자꾸 쭈렁쭈렁 나오면 공부를 시킬 터인데 어짤래?’ 그래 앉은뱅이 걸음으로 그렇게 모으는 재산보다 딱딱 씨는 딱 심고 양식은 먹고 요렇게 착착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자녀 낳고 난 다음에서, 공부할 건 다 당신에게 맡겨 놨으니까 당신이 책임져야 될 것 아닙니까? 다 하십니다.
이래 가지고 물질에 대해서 일곱 가지 도적질 요것을 정확히 깨닫고 회개하지 안하기 때문에 우리가 곤고함을 가지고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요것을 똑똑히 회개를 합시다.
회개를 해서, 소유권 도적질 두 가지 회개하고, 그다음에는 머리 떼는 거 도적질 하는 거 회개하고, 또 감사함으로 드리는 거, 감사 생활, 감사함으로 드리고 전부를 감사함으로 써야 돼. 감사 생활 하는 그것 회개하고, 그다음에 또 십일조 회개하고, 또 그다음에는 씨는 심고 또 회개하고 양식은 먹고 요렇게 일곱 가지를 해 보라. 그러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없다 말은 많으니까 쌓을 곳이 없지.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나 안 부어 주나 네가 시험해 봐라” 그래 보십시오. 그래 본 사람 더러 있습니까? 내가 어제 저 천막에서 오전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또 내려와서 또 점심 먹고 또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저 서 목사님 부부를 만났어. 만나 가지고 내가 있다가 내가 자랑을 했어. ‘나는 내일은 연보 소리 할란다. 하나님께서 연보 설교 하라 하더라. 내일은 연보 설교할란다.’ 이라니까 있다가 그래 말하기를 ‘혹 연보 설교 할라면은 참고가 될란가 해서 하나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래.
‘뭐꼬?’ 이라니까 라이프 잡지, 우리 내나 요번에 모두 다 사 가라 하는 것 있지 안해요, 천원씩에? 이천원인데 천원을 해. 우리 교회 여기 역사가 기록돼 있습니다. 이런데 거게 보니까 ○장로라 하는, ○장로지? ○장로라 하는 장로가 있는데 의사라.
이 장로는 저, 뭐 어데라? 아프리카더나 어데더라? 뭐 거게도 가 가지고, 아주 이 장로는 교회 세우는 장로라. 예배당 짓는 장로라. 거게도 미개인들 아주 어려운데 참 유명한 예배당을 두 곳에를 지었답니다. 짓고 저 설악산에도, 설악산에도 그 지었는데 뭐 가는 사람이 다 보도록 아주 굉장히 산첩하게 아름답게 이억오천만 원을 들여서 그 예배당을 지었다 해.
이 양반은 예배당 지으면은 그만 그래 버려. 예배당 지으면은 자기 먹고 나머지기는 통장에다 넣어요. 자기 양식 먹고 나머지기는 통장에다 넣어. 양식 먹고 나 통장에 넣는데 그만 통장에 넣은 거 예배당 지으면 통장을 맡겨 버려, 그만.
자기 본교회 예배당 지을 때도 목사님에게 ‘이거는 다 이거 바친 거니까 이거 통장 가져가서 쓸 대로 쓰고 언제든지 그라십시오.’ 통장에 있는 대로 자꾸, 목사가 내 가지고 예배당 잘 다 짓고, ‘다 짓고 이렇게 얼마 남았습니다’ 이라면 또 통장 내. 그래 가지고 또 씨를 또 저축해요. 또 저축하면 또, 그래 가지고 저 설악산에 이억오천만 원 예배당도 그래 지었대요.
이랬는데 그 장로님은 그렇게 하니까 이제 뭐 하나님께서 그저 필요만 있으면 그 장로라. 그 장로 불러대요. 그 장로 불러대면 그만 하나님께서, 그 장로는 신실하거든. 신실하니까 ‘야, 아무 데 예배당을 지을터인데 거게는 얼마가 들어야 되겠다’ 하면, ‘얼마가 들어야 되겠다' 하면 하나님께서 벌써 주면 주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양식 외의 거는 전부 예배당 짓는 데 다 거석해. 신실하다 말이오.
‘자, 너 양식이 한 달에’ 예를 들면은 양식이 한 달에 의사니까 한 달에 한 오백만 원이나 삼백만 원이나 ‘네 양식이 그라면은 삼백만 원 양식인데 아무 데 예배당 지을 터이니까 보자’ 하고서 삼백만 원에 사백만 원을 주면은 그 씨가 얼마라요? 삼백만 원이 그 사람들이 생활비라면 하나님이 사백만 원 주시면 저 의사 한번 대답해 봐. 씨가 얼마지? 씨가 백만 원이라. 백만 원 딱 통장에 딱 넣어 놔. 통장에 넣어. 또 오백만 원 주면 통장에 얼마 넣어야 돼? 어? 이백만 원 넣어야 돼요.
해 보니까, 여수 거래를 해 보니까 신실하다 그말이오. 여수 거래를 해 보니까 신실하니까 하나님께서 예배당 지을 때마다 그 사람 불러대요. 그 사람 불러대 가지고 보니까 ‘보자, 요번에는 천만원이 이제 예배당 짓는 데 들어야 되겠다.’ 하면은 천만 원 외 수입만 주면 그만 또 그거 통장에 천만 원 넣어 버려. 또 외에 걸 일억만 주면 일억을 그만 통장에 넣어 버려. 양식 외에 거는 자꾸 거기다 넣어.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데리고 얼마든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 그말이오.
이거는 보니까 ‘자, 너하고 거래 한번 해 볼까?’ 하나님이 직접은 안 되고 사람을 통해 해야 되기 때문에 ‘한번 거래 해 볼까?’ `내가 신실히 하지요.’ 저 ○치과, ○치과지? ○치과 ‘신실히 하지요’ `신실히 해? 그러면 신실히 하면 보자.’ 네 양식은 얼마고? 양식 얼마인가 따져놨어? 못 따졌어? 양식도 따지고 어서 지금 자기 집을, 병원을 자기 집으로 해야지. 자기 집을 해야 되니까 그거는 딱 이제 지금 씨로 못 심으면 그거 가지고 빌려요, 하나님 앞에. ‘얼마 얼마 요거는 씨가 얼마인데 요거는 씨가 얼마 들어갔다, 얼마 들어갔다, 요 집을 병원을 짓는 데는 씨가 얼마 들어가 가지고 이 병원이 됐으니까 요 안에 얼마는 씨를 그랬기 때문에 이거는 언제든지 씨는 내놓을 때는 내놔야 된다.’ 그걸 딱 계산하라 말이오.
계산해서 그렇게 계산을 대고 ‘보자, 쓸 일 있는데 네가 신실한가 보자.’ 하고서 ‘아무 데 지금 선교를 보내야 되겠는데 선교 보낼라면은 한달에 천만 원씩을 그래 가지고 떡 외에 것 백만 원을 딱 수입을 더 주니까, 백만 원 요거 가지고 ‘이게 내 돈인데. 내가 생활은 삼백만 원만 하면 되지마는 백만원 요거는 저축해야 되겠다.’ 제 이름으로 통장에 딱 저축하고 요 씨를 안 심군다 말이오.
그라면 ‘이놈이, 좀 깨우쳐야 되겠다.’ 권찰을 보내든지, 장로를 보내든지, 조사를 보내든지, 반사를 보내든지, 목사를 보내 가지고 ‘얘, 너 씨와 양식을 잘 구별해? 구별해서 씨는 먹고 양식은 저축하고 그래 하나?’ 이라니까 ‘예, 합니다.’ `너 그라면 지금 올해 수입이, 요번 수입이 얼마였었어? 십일조 다 냈어?' ‘예, 냈습니다.’ ‘또 두 가지 헌물 냈어?' `냈습니다.' `그라면 너 양식은 얼마인데?’ ‘양식은 뭐,’ 양식은 뭐어 하면서 이놈 삼백만 원으로 결정 다 내놓고 양식을 사백만 원이라 하니까 하나도, ‘그저 생활비 근근 됩니다.’ 백만원을 도적질 했다 말이요, 훔쳤다 말이오.
하나님이 그거 다 아시요.
다 아시는데, 또 백만 원 주니까 백만 원 정확하게 딱, 그래 딱 이거 백만 원을 줘 보니까 이놈이 백만 원인데 삼백만 원 양식으로 정할라 하니까 옆에 마누라가 있다가 말하기를 ‘여보 요번에는 백만 원 수입 더 됐으니까, 우리 생활이 곤고하지 안해요? 오십만 원만 더 늘여서 삼백오십만 원으로 합시다.’ 자꾸 생긋생긋 웃으면서 살살 간질간질 하면서 자꾸 이렇게 한다 말이오. 이라니까 있다가 ‘그래? 그라면 오십만 원 뭐 내나 그 좀 또 뒤에 연보하지 뭐. 오십만 원 늘구지. 그러면 삼백오십만 원으로 양식을 늘구지.’ 해 놨다 말이오.
그거 하나님이 보실 때에, 양심을 두드린다 말이오. ‘이놈아, 네가 삼백만 원 해 가지고 너거 마누라가 오십만 원 늘구고 네가 이놈 내가 너 백만 원 더 준 거는 내가 줬지 임마 네 돈이가? 그게 네 돈인 줄 아나 알기를? 네가 오십만 원 내 돈 도적질 해 먹었지, 너거 마누라 말 듣고. 네놈하고는 거래 안 하겠다.’ 그만 거래 안 해 버려요.
또 보니까 한번 속아도 그 뒤에 보니까 ‘그래도 한번 더 주자. 이번에는 이백만 원을 더 주자.’ 이백만 원 더 주니까 또 마누라가 와 가지고 잘근잘근 ‘여보 지난 달에는 그래도 그라니까 뭘 그래도 아이들도 뭐 사서 먹일 것 먹이고 뭐 이렇게 저렇게 하고 하니까 그래도 좀 괜찮았는데 하나님이 참 축복을 해 줘서 요번에,ㅡ축복 말은 합니다.ㅡ축복해 줘서 이백만 원이 여유가 있으니까 이제 백만 원은 씨로 심으고 그 백만 원은 생활비를 더해서 삼백만 원인데 삼백오십만 원 했는데 오십만 원을 더 늘여서 사백만 원으로 하면 어떻습니까?’ 자꾸 그라면서 맛있는 것도 해 주고, 달콤한 것도 해 주고, ‘여보’ 어짜고 이래 쌓아며 자꾸 알랑거려 쌓고 이래 쌓으니까 그만 썩 넘어갔다 말이오.
넘어가 가지고 ‘아이구, 뭐 그래 너무 곤고하게 살면 안 되지요. 자기 고생하는 줄 내가 알아요. 그만 뭐 그거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니까 너무 그렇게 뭐 곤고하게 살 거는 없고 그라면 또 백만 원으로 늘구지요.’ 그라면 사백만 원 딱 양식을 늘궈놨다 말이오.
하나님이 ‘네 요놈, 다시는 거래 안 한다.’ 그다음에는 딱 거석해 가지고 그만 삼백만 원만 줍니다. ‘너는 임마 너 먹고 살 것 삼백만 원 주지 더 외에거는 내가 줘 봤자 너한테 줘 가지고, 너한테 투자해 가지고는 내게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에 안 돼.’ 안 준다 그말이오.
안 주는데, 요 사람은 보니까 ‘요것도 인제 그런 거짓말쟁이고 요 도적놈이지’ 하면서도 한번 속을라고 십만 원을 딱 더 줬다 그말이오. ‘아이구, 먼저 달보다 십만 원이 더 수입이 있네. 그러니까 우리 생활비 떼고도 십만원이 남네. 요것은 아마 씨로 심어야 되겠네.’ 요 삼백만 원이면 근근히 사니까. 십만 원 딱 그것을 씨로 딱 심어서 온라인 통장에 딱 넣는다 그말이오. 지금 쓸 데가 필요한 데가 있으니까.
또 그다음에는 ‘요게 야 요거 보자’ 하고서 그다음에는, 속기가 싫어서, 그다음에는 십오만 원을 딱 더해요. 십오만 원 더 주니까 십오만 원 딱 정확하게 해 주거든. ‘요놈 됐다.’ 그다음에는 ‘보자’ 삼십만 원 줘. 삼십만 원 또 정확하다 말이오. 백만 원 더 주니 백만 원 또 해 준다 말이오.
‘보자 이제는 북떡 한번 하자.’ 하나님이 줄라 하면 억억이라도 대번 줄 수 있다 말이오. ‘천만 원 한번 줘 보자.’ 천만 원을 주니까 장확하게 딱 떼거든.
천만 원을 주니까 ‘아이구, 이 천만 원이나 수입이 됐으니까 이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이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생활비 백 만 원만 늘구자.’ 이라는까 ‘여보, 하나님이 그거 이렇게 씨로 이래 주신 것인데 그거 늘구다가 이거 우리 하나도 더 받지 못하고 요 양식만 받으면은 하나도 저축도 못하고 심으지도 못하고 하늘나라 상급 추수받을 게, 하늘나라 가서 추수할 것 하나도 없을 것 아니요?’ 이라니까, 자꾸 뭐 알랑을 치면서 뭐 집에 돌아오니까 직장에서 퇴근를 하니까 막 오느냐고 인사를 끌어안고 이래 가지고 뭘 옷을 벗겨 주고 막 부채로 부치고 야단을 지깁니다.
속으로 있다가 ‘암만 해도 내가 양보 안 한다. 어림도 없다. 이것은 나를 유혹하는 하나의 사탄이 이 속에 들었다.’ 암말도 안 하고 지금 ‘사탄이 들었다' 이래 가지고 속으로 있다가 ‘주여, 이 사탄에게 지지 않게 해 주옵소서.
주여! 내가 씨는 심습니다. 씨는 심습니다. 주님이여 절대 내가 용납 안 합니다.’ 하고 딱 떼서 ‘여보 요거 온라인 통장에 넣으이소.’ 딱 떼 주니까 요거 가지고 ‘요럴까 조럴까?' 하다가 그거 그만 딱 백만 원 딱 떼서 구 백만 원 딱 넣고 난 다음에 ‘넣었습니까?’ ‘예' `그러면 통장 주시오.' 통장에 여기 구 백만 원 넣어 놨거든. `왜 구백만 원 넣었습니까?’ ‘백만 원 가다가 보니까 뭐 급한 거 있어ㅡ이라고 저라고ㅡ또 뒤에 넣으면 안 됩니까? 뒤에 넣으면 안 됩니까?’ 요렇게 한다 말이오.
그래 그만 그 통장을 땅에다 탁 던지면서 ‘사탄이 물러가라! 네가 사탄이다, 그만.’ 이래 가지고 호통을 친다 말이오. ‘당장에 이거 채워 놔, 안 채워 놓으면 너거 친정으로 쫓아보낼란다.’ 쫓아보낼란다 이라니까 할 수 없어 돈 백만 원을 딱 해서천만 원 딱 그래. 이래야 되는 거라 말이오! 알겠소? 이래야 돼, 이래야.
이래 살아야 돼.
자, 이라니까 여수 거래 할 만합니까 안 합니까? 신실하요 안 신실하요? 이러니까 ‘일억을 줘 보자.’ 일억을 줘도 신실, 백억을 줘도 신실, 천억을 줘도 신실, 그러니까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뜻만 이루어지고 일만 성공되지 딴게 없어. 시험해 보십시오. 시험을 해 보십시오.
저 고신에 그때 처음에 초창기에 거지고 돈이 없었습니다. 고신에 돈은 전부 박봉화, 박봉화 장로지? 박봉화 장로님이 다 댔는데 박봉화 장로님 그 천사당이라고 빵집, 남의 셋방 조그만하요. 빵집 조그만한 거 했는데 그게 그짓 했다 말이오. 하나님이 이래 주니까 씨는 딱딱 심으고 이 짓 하거든. 이라니까 신실해. 하나님하고 거래를 붙었어. 하나님하고 거래를 열어 놨다 말이오.
열어 놓으니까, 그다음에 이제 뭣이 ‘박 장로님’ 그 빵장사 그까짓 거 돈이 몇 푼 된다고? `우리 지금 이래 신학교 뭘 하는데 이걸’ 그때 돈으로 뭐 십만 원이면 굉장한 돈입니다. 요새 돈으로 말하면 한 천만 원 돼요. 이런데 ‘십만 원이 들어야 될 터인데 이거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한명동 목사님은 강단 밑에서 자꾸 기도하고 또 박봉화 장로님은 빵 팔러 돌아다니고 이라는데 그 때가 되면은 십만원이 떡 나온다 말이오.
이 빵장사, 조그만한 빵장사 가지고 얼마를 했던지 그 고신에 있는 모든 재정을 그 사람이 다 댔어. 압니까? 그거 기억해요? ○○○집사님 압니까? ○○○집사님 알아요? 똑똑히 알아요? 나는 똑똑히 알아요.
이랬는데, 이라니까 그만 박봉화 장로가 대거부가 돼서 그 사람은 ‘뭣이든지 그 사람이 할라 하면 다 한다. 돈은 한정 없다.’ 이라다가 나중에 그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된 줄 모르고 자기 수단으로 된 줄 알고 뒤에 안된 짓 했다 말이오. 안된 짓 해. 돈벌이 하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고 제 수단으로 되는 안할 일 하나 했어. 안할 일 하나 해 가지고 그만 부도 나 버렸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만 절단나 버리고 말았어.
○장로가 그래요, ○장로가. ○장로가 여기 요번에 라이프지, 라이프지에 거기 보니까 32페이지더나? 32페이지든가 22페이지든가 보면 있어요. 내가 오늘 아침에 바쁜데 내가 그거 읽어 봤어. 그거 쪽 다 읽어봤어요. 읽어봤는데, 그래 그분이 보니까 하나님하고 거래를 신실히 해. 거래를 신실히.
이거 보니까 자, 이거 보면 십일조도 떼먹어 버리지, 전부 제게 있는 건 제것이지, 자기 몸 밖에 있는 거는 미국 거, 일본 거, 영국 거, 정부 거, 어느 회사 거, 그거 주인이 하나님인 걸 모른다 그말이오. 소유권 도적질 다 하지, 십일조 도적질 다 하지, 헌물 도적질 다 하지, 씨 도적질 다 하지, 양식은 지나치게 먹어 버리지 이라니까 하나님께서 거래를 해 주지 않습니다. 거래를 해 주지 안해요.
우리 교회 의사 많애. 여기도 보니까 또 의사 하나 있네. ○○○의사도 말이지 이거 의사라. 서울대학 졸업한 의사면 어북 일등 의사라. 의사인데, 요 거래를 해요. ‘주여, 나에게 한번 거래 해 주십시오.’ 나 이거 지금 설교하고 난 다음에 여러분들이 오늘 저녁부터 그래 기도해요. ‘주님이여! 나에게 한번 거래를 해 주십시오. 내가 지금 양식 은 내가 얼마를 내가 딱 작정해 놨습니다. 양식은 작정해 놨고 지금 남의 셋집에 있으니까 이거 차차 차차 봐서 커다란 병원 하나 차려야 안 되겠습니까? 그러면 그 병원 차리는 것은 당신에게 빚을 내 가지고 차리겠습니다.’ 씨를 심을 것인데 씨를 심으지 안하고 지금 그 병원에 투자하니까 병원에 일억을 투자해서 집을 지으면은 일억 그거는 뉘 돈이야? 하나님의 돈 빚냈지. 빚내 가지고 감사하면서 뒤에 또 갚을 때는 갚는다 그말이오. 이래만 해 봐요.
이래 가지고 주니까, 씨 주니까 한 달에 백만 원 여유 있게 주면 그렇지, 천만 원 여유 있게 주니까 그래 주지. 이라니까 이 여수 거래 하는 사람이 우리 교회 하나만 있어도 분교 저거 전부 지교회 다 되고 말아요. 인제 전부 여수 거래가 되면은 뭐 이 얼마나 될란지, 얼마나 될란지 몰라요. 이걸 한번 해 보라고요.
된다고요.
나도 그래 생활했어요. 나도 그래 생활해 봤어요. 얼마나 뭐? 다른 사람이 ‘저거 돈이 어데서 생겼는고?’ 오는 데도 모르겠어. 어데서 오는지를 몰라. 암만 봐야 올 데가 없는데. 사렙다 과부에게 한옴큼 되는 가루가 톡 털어먹고 나면 또 그 이튿날 아침에 보니까 또 있고 나중에 보니까 또 있고 어데가 온지 몰라요. 온 데가 없는데 뉘가 갖다 줘? 하나님이 보이지 안하는 하나님이 갖다 줬지.
이런고로 오늘 우리들이 자, 도적질 해. 보니까, 좀 더 주니까, 씨로 심으라고 더 주니까 ‘요거는 내가 장가 가 가지고 아들 낳으면 공부 시킬 것’ `요놈, 보자.’ 또 좀 더 주니까 ‘요거는 아이들 낳아 가지고 대학 공부시킬 학비 저축할 것’ 또, 또 좀 더 주니까 ‘요거는 만일 자식이 어떤 병이 들지 모르니까 병들면 의사에 수술하고 치료비를 또 준비 해 놓을 것’ 이놈까지 다 준비하니까 이놈 한정이 없어. 암만 줘 봤자 다 그래 하니까 이놈 도둑놈이라 말이오. 도둑놈이야! 도둑놈에게 하나님이 줍니까? 저주 주지.
자, 도적놈에게 저주 줬습니까 축복 줬습니까? 예? 왜 대답 못 합니까? 도적에게 저주 줬소 축복 줬소? 도적에게 저주 줬습니까 축복 줬습니까? 힘이 없다. 암만 우리가 도적질 해서 저주 받아도 오늘부터 회개하면 돼요.
그러니까 ‘오늘까지 도적질 했다’ 이래서 `도적에게 저주 줬습니까 축복 줬습니까?’ 하면 ‘저주 줬습니다!' 막 이게 속에 콱 쳐서 ‘저주 줬습니다! 이제는 내가 저주받지 않는다! 내가 이제는 도적질 회개하고 저주받지 않겠다! 저주받지 않는다!’ 이렇게 강함이 날 건데, ‘도적질 한 도적놈에게 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