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16:25
일곱가지를 생각하라
1984. 4. 1. 주일오전
본문: 베드로후서 1 장 1 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달리 번역하려고 하면 '마음이 빈 자는, 마음이 빈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빈 사람이 복이 있다, 그 사람이 천국을 차지할 수 있다, 이 천국은 행위 천국 성화 천국을 말합니다. 마음이 속에 차 있지 안하고 마음이 빈 사람이라야 건설구원을 이루어 가질 수 있다 하는 말씀입니다. 마음에 무엇이 들어 있기에 마음에 아무 것도 없이 빈 사람이 복이 있는가? 여기 산상 보훈에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한 중에 첫째 복이 마음 가난한 사람, 마음에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안하고 텅 비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복있는 이 복을 첫째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이 비어 있기 전에는 건설구원은 이루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마음에 무엇이 들어 있기에 그런가? 마음에 들어 있는 것은 간단하게 한 말로 말하면 옛사람이 마음에 들어 있습니다. 옛사람이 들어 있다 말은 악령이 사람들 마음에 들어 있고, 또 자기중심으로 살려는 이 악성, 원죄가 사람들 마음 가운데에 들어 있고, 또 자기중심으로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서 제 욕심, 제 마음, 제 소원, 제 성미, 제 기분, 제 뜻, 저 좋아하는 대로 한 그 모든 삐뚤어진 행위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한 말로 말하면 사람들 마음에는 자기 아닌 자기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서 왕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자기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것인데 그것이 겉으머리 나타날 때에는 자기 주관이요, 또 자기 욕심이 자기 사욕이요, 자기 모든 원하는 것들이요 기절들이요 그런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마음 속에 들어와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인 줄 착각하고 사람들은 삽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아니고 자기를 죽인 원수인 자기 아닌 자기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원수인 줄 모르고 자기인 줄 알고 그것이 하자 하는 대로 하고, 그것이 하자 하는 대로 하면 좋을 줄 알고 그것을 위하고, 섬기고, 거기에 속해서 마음과 몸이 살고 있는 그것이 옛사람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요, 마음 가운데에 그것들이 가득 차 가지고 마음을 그것들 마음대로 이용을 하게 됩니다.
마음이 빈자는 복이 있다 하는 말씀은 그 마음 가운데 옛사람 이놈을 물리쳐서 쫓아내면 복이 있다 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집에 있는 귀신들을 다 쫓아내고 집을 깨끗하게 하고 나면은 대단히 그 집이 복스러운데 그 깨끗하게 해 놓고 난 다음에 주인이 들어 가지 안하면 깨끗이 해 놓은 그 마음 집에 옛날 쫓겨나 갔던 마귀가 다시 들어오게 되면은 그 사람 후환이 그전보다 더 크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마음 가운데에 자기 아닌 옛사람, 악령과 악성 악습 그것들이 세력을 합해 가지고 우리 마음하고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입니다. 마음도 미혹을 받아 가지고 이놈이 원수인 줄을 모르고, 이놈이 제인 줄 알고 아주 단합해 가지고서 이놈의 소원이라면 제 소원인 줄 알고, 이놈이 기뻐하면 제 기쁨인 줄 알고, 이놈의 욕심이라면은 그것은 제가 가져야 할 자기욕심인 줄로 이렇게 착각을 하고 사는 것이 인생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산상 보훈 산상 교훈은 보배로운 교훈이라 해서 산상 보훈이라고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산상 보훈 중에 첫마디가 마음이 빈 자는 복이 있다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제일 처음 선포했습니다. 그는 마음에 자기 아닌 자기가 들어서 왕이 돼 가지고, 이놈이 마음의 온갖 지체, 마음이나, 성품이나, 뜻이나, 생각이나, 지식이나, 모든 취미나, 기억이나 이런 전부를 다 옛사람 이놈이 들어서 이용을 해 가지고 일생 동안 망한 일만 하도록 그렇게 만드는 것이 인생들이요 옛사람의 생활들인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은 그것이 들어서 역사하는 중에, 한 가지 예를 든다고 하면 어떤 사람은 돈 욕심이 생겨져서, 돈 욕심이 들어서 그 마음을 주장하고, 그 몸을 주장하고, 전 행동을 주장해서, 돈 욕심 그것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욕심을 내서 모아봤자 그것이 영생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구원도 되지 안하는 것인데. 그만 그 마음 가운데에 돈을 탐하는 그것. 그것이 하나 마음에 주장을 하고 마음에 차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일생 동안 돈을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그라면서 돈이 한 푼 두 푼 모여서 부요해지면 자기는 성공한 줄 알지마는서도 세상을 떠날 때에 두고 갈 것과 또 자기가 범죄로 모은 돈이 자손에게도 큰 화근이 된다는 이 사실을 모르고 돈을 위해서 일생 동안 노력을 하느라고 자기 이를 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헛일만 하고 가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돈이 아닌 무슨 공로나 명예나 이런 공명의 욕심에 끌려서 이놈도 내나 옛사람 그놈의 지금 작용인데 공명 욕심에 끌려 가지고서 그 공명욕이 자기 마음을 주장해서 일생 동안 공명을 위해서, 공로와 명예 이것을 위해서 밤낮 노력하고 이라다가 한 공로가 서고 한 명예가 올라가고 이라면은 이제 성공한 줄로 이렇게 알지마는서도 그 공로나 명예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정죄만 받지 하나도 무궁세계에 남아 있을 것도 아니고, 또 그 공로와 명예가 자손에게 유익을 주는 줄 알아도 그라면 그것으로 인해서 그 자손은 고통만 오고 손해만 오고 결국은 그로 인해서 멸망만 오는 것이지 유익 올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공명이 높은 사람의 자손은 다 망하기 때문에 부모의 공명은 자손에게 화가 되고, 부모의 못나고 천대받은 것은 자손의 거름이 된다 하는 것을 사람들이 통계적으로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주 이런 욕심이 아니고 무슨 노름을 하는 욕심이라든지, 또 요새는 사람 죽이는 취미가 자꾸 생겨져서 살인을 뭐 예사롭게 재미로서 살인을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고기 낚는 사람이 그 고기의 생명을 제가 하나 취해서, 안 죽을라고 퍼득퍼득하다가서 죽으면, 한 마리의 생명을 끊는 취미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를 잡는 그 백정은 얼마 동안 소를 많이 잡고 나면은 그 다음에는 돈 벌이가 없어도 공(空)으로라도 소를 안 잡으면 그 취미가, 산 것을 죽이는 그 취미가 없어서 못 견디는 사람이 됩니다. 의사들도 참된 사랑을 가지고서 구원하고자 하는. 그 인자의 마음을 가지고 하지 안하고 과학적으로만 한다면 그 사람의 배를 그릴 때에 사르르르 하는 그 소리에 아주 기분좋은 그 기분을 맞추면 그 사람의 살을 그리지 않고는 고만 도무지 견디지 못하는 그런 취미가 가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욕심도 이런 욕심 저런 욕심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살인하는 욕심, 또 어떤 사람은 오락을 취하는 욕심, 어떤 사람은 또 음행하는 욕심, 별별 명예 욕심, 돈 욕심, 권세 욕심, 공로 욕심, 욕심이라 하는 그 욕심은 뭐 이런 욕심이나 저런 욕심이나 그것은 다 사욕이기 때문에 성령의 소욕에 원수되는 것이니 그것은 그 결과가 사망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다 육체의 욕심인데 '육체의 욕심은 다 사망이요' 성경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성령의 소욕은 생명과 평강이라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 욕심 중에는, 그 욕심이라 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그것은 다 망하는 것들이요, 죽는 것들이요, 다른 것이 섞이지 안한 사망 뭉텅이인데 인간의 그 사욕 성령님이 이런 욕심을 가지라 하는 성령의 소욕이 아닌 인간들이 생각해 가지고서 품은 욕심 그 욕심을 가리켜서 인간 욕심이라, 사욕이라, 육체의 소욕이라 그렇게 말하는데, 그런 것은 섞인 것이 없는 전체가 사망 뭉텅이입니다. 사망 뭉텅이는 꼭 같은 사망 뭉텅이입니다. 명예욕도 사망 뭉텅이요, 공로욕도 사망 뭉텅이요, 도덕욕도 사망 뭉텅이요. 돈욕도 사망 뭉텅이요, 음욕도 사망 뭉텅이요, 살인욕도 사망 뭉텅이요, 모험성, 호기심의 욕심도 사망 뭉텅이요 꼭 사망 뭉텅이는 다 사망 뭉텅이입니다.
사망 뭉텅이인데, 그것을 금을 입혀서, 금을 입힌 것이 있고 사망 뭉텅이 그대로 있는 것 있고 이런데, 욕심 중에는 아름다운 비유입니다. 금으로 겉으머리 입혀 놓은 욕심 뭉텅이 욕심이 있고, 껍데기 아무것도 입히지 안해서 사망 그대로의 꺼풀, 맥기라 하는데, '이거는 금으로 맥기한 것이다.' 금으로 이제 겉으머리 발랐다, 그말이지요. 그런 아름다운 것으로 겉을 발라 놓은 것도 있고, 겉을 바르지 안하고 아주 사망 그대로 흉한 그런 것도 있고 인간 욕심은 별별 종류의 것이 있는데, 사람들은 껍데기 금으로 발라서 이거는 도덕이라는 금으로 맥기를 해 놨고, 이거는 명예라는 금으로 맥기를 해 놨고. 이거는 공로라는 금으로 맥기를 해 놨고, 이거는 재산이라는 금으로 맥기를 해 놨고, 이거는 권세라는 금으로 맥기를 해 놨고 이렇게 맥기를 아주 꺼풀을. 그 꺼풀을 색칠을 해서 아름답게 해 놓은 것도 있고, 바로 이것은 살인이라는 흉측한 사망이다.' 살인욕의 사망이다, 이것은 음욕의 사망이다, 이거는 안일욕의 사망이다, 이런 것은 꺼풀을 입히지 안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흉하게 봅니다.
그런고로, 욕심 생활을 하되 꺼풀을 입힌, 꺼풀이 아름다운 욕심 생할이나 겉이 흉한 욕심 생활이나 욕심 생활이라 하는 것은 다 사망은 사망입니다. 그렇게, 자기 생의 애착욕이나, 생을 살기를 욕심하는 생의 애착욕이나 또 가정을 욕심하는 가정욕이나, 이 욕심이라 말은, 우리가 가정욕을 가질 수 있고 생명을 아낄 수 있어야 하지마는서도 하나님의 성령이 허락하지 아니하는 살기를 원하면 그것도 내나 육신의 소욕이요, 또 하나님이 허락지 안한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가정을 욕심낸다면 그것도 내나 사욕이요 다 같은 것들입니다. 어짜든지 성령의 소욕이 아닌 육체의 소욕이라 하는 것은 그 본질과 본성이 꼭 같고 그 결과의 보응이 꼭 같은 것이니 꼭 같은 사망인데 껍데기를 잘 칠해 놓으면 사람들은 보고 그것 좋다고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도 하고, 또 자기도 자랑스럽고 영광스럽다고서 이렇게 생각을 하는 그것은 껍데기 색깔 칠해 놓은데에 미혹을 받아 그런 것이지 껍데기를 때고 나면은 그 속은 꼭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껍데기 금칠이나 아름다운 색깔 칠을 한 그 욕심이나, 껍데기에 아주 색깔 칠을 안해서 흉한 그런 욕심이나 욕심의 그 결말에 사망을 이루는 것은 꼭 같은데, 껍데기 금칠 해 놓은 것은, 금칠 해 놓은 것은 모든 사람들이 좋다 하고 또 자기도 보기에 좋고 이러기 때문에 그것은 사망의 결과를 맺는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기가 어려워서 그 사욕은 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명예 사욕을 회개하기가 어렵고, 공로 사욕을 회개하기가 어렵고, 재벌 사욕을 회개하기가 어렵고, 권세 사욕을 회개하기가 어렵고, 그 모든 행락 사욕을 회개하기가 어려우나, 아주 나쁜, 무슨 껍데기가 흉한 살인욕이라든지, 남의 것을 훔치는 도적질하는 그런 취미나 그런 욕심이라든지, 무슨 음행하는 그런 욕심이라든지 이런 욕심은 꺼풀이 험하기 때문에, 꺼풀은 이것은 험하고 다른 것은 아름답지마는서도 아름다운 것이나 험한 것이나 그 시간에 성령의 소욕으로 살지 못하고 그 시간을 그것에게 빼앗겨 가지고서 허비한 그것은 다 결말적으로 멸망이라는 그 결과는 꼭 같은 결과입니다. 꼭 같은 결과이나, 꺼풀에 이렇게 색깔 칠을 아름답게 해 놓은 것은 그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고 나쁘다고 생각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진 사람 자신도 그것을 죄악으로 느끼지를 못하고 그것이 멸망이라 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어북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알기 때문에 그 본인도 회개하기가 어렵고 또 제삼자들도 그것은 칭찬하고 좋다고 하기 때문에, 제삼자들이 인정해 주기 때문에 그것 또 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꺼풀이 나쁜 것은 본인도 '이거야 말로 사망 아니겠느냐?' 멸망이라 하는 것을 본인도 깨닫기가 쉽고, 제삼자들도 (어이, ○ 선생.) 제삼 자들도, (이걸 못 알아들으면 헛일이야. 눈이 바짝 떨어지고 뭐 귀가 찰 건데. 예사로 들어?) 제삼자들도 자기가 하는 그 욕심의, 사욕의 생활을 보고 '네가 이렇게 할 수가 있느냐?' 이런 놈은 죽여야 된다, 이런 놈은 뭐 멸망을 받아야 된다, 이런 놈은 감옥에 처넣어야 된다, 이런 놈은 도무지 용납을 안해야 된다 이렇게 한 그 껍데기가 흉한 사욕의 행위나, 모든 사람이 칭찬하고 영광이라 존귀라 부러워하는 그 행위나 어쨌든지 성령의 소욕이 아니고 사욕대로 된 것은 그 본질과 본성이 같기 때문에 결말의 멸망이라 하는 것은 꼭 같은 멸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사욕이면 꼭 같은 종류요 꼭 같이 그 결말은 멸망이 되어지는 것인데 그 멸망이 된다는 그것을 반성해서 회개하고 돌이키기에는 꺼풀에 금칠을 안한 것이 더 유익하고, 금칠 한 것이 더 해롭습니다. 그 사람은 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이 또 회개하도록 그렇게 공격을 하지를 않습니다. 자신도 회개하기가 어렵고 다른 사람들이 회개해야 된다고 그렇게 충고하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에. 회개하기가 어렵고, 아 그는 장하다고 칭찬해 주기 때문에 좋은 줄 알고 이렇게 해 나가지마는서도 마지막에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자서 보면 전체가 멸망되는 것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가만히 눈감고 자기나 모든 사람을 생각해 본다고 하면, 이 사람은 그 속에 옛사람이 들어 가지고서 이런 방면으로 그 사람을 멸망시키고, 저런 유혹으로 멸망시키고, 저런 취미로 멸망시키고 저런 공명심으로 멸망시키고, 그 사람 오기로 멸망시키고, 그 사람 교만으로 멸망시키고 자긍으로 멸망시키고, 자존심으로 멸망시키고 별별 이 모든 멸망으로 인간들을 다 멸망을 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가득히 차 가지고, 멸망시키는 그자가 자기 마음 속에 가득히 차 가지고 있는데. 이자가 자기를 멸망시킬 자인 줄을 모를 뿐만 아니라 그자가 자기인 줄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멸망에서 건져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또 그뿐 아니라 믿는 사람들은 이 성경을 배우고 난 다음에 '아, 이것은 성령의 소욕이라. 성신이 이 욕심은 가지라 했다.' 성신이 가지라는 욕심은 세상이 가지면 안 된다고 하고, 세상이 가지라는 욕심은 가지면 세상이 좋아하고 하나님이 안 된다 하고 이렇게 욕심과 욕심이 대립되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인데, 기독자들은 성경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듣기 때문에, 이것은 성령의 감화의 소욕이 아니다. 하나님의 소욕이, 하나님의 욕심이 아니다. 하나님의 욕심이 아니다. 이거는 마귀 욕심이다, 이거는 의의 욕심이 아니다. 이거는 죄의 욕심이다, 이는 무궁세계에 가서 참 존영하고 모든 것이 다 환하게 드러날 때에 칭찬하고 환영하고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욕심이다, 아, 이것은 이제 이 세상을 떠날 때는 후회할 욕심이다, 하나도 가지고 갈 것이 없는 욕심이다. 이런 것을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 세상이 말해 놓은, 악령이 말해 놓은 이 사회에 모든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 도덕주의, 기독교 공명주의, 기독교 정치주의, 기독교 유물주의, 기독교 세상주의 이것을 다 '존영이라' 이와 같이 하고 있지마는 그 중에도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고 '아, 내가 이 육체의 소욕으로 사니 내 생애는 다 멸망이다. 과거에 십 년을 생각해 보니 십 년 산 생활이 전부 육체의 욕심대로 살았다. 내가 이제까지 하고 있는 것이 전부 준비한다는 것도 육신의 욕심이 근거가 돼 가지고서 그 준비 했고, 노력한 것도 그것이었고, 다 헛일이다.'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닫기 때문에 깨달은 그 다음부터는 어짜든지 육신의 소욕으로 살지 안하고, 옛사람으로 살지 안하고 새사람으로 살라고 애를 쓰고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이래서, 매일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기를 '주여, 이제는 진리와 성령의 사람으로 살게 하시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 악령, 악성, 악습이라 말은, 악령이라 말은 자기중심으로 살았던 그 천사를 가리켜서 악령이라고 말하고, 악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중심으로 타락한 원죄성을 가리켜서 악성이라고 말하고 악습이라 하는 것은 인간이 악성과 악성으로 말미암아 자기중심으로 한 행동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말하는데, 자기중심으로 사는 행동을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하니까, 두 번 하니까 두 번 연습했고, 세 번 하니 세 번 연습했고 네 번 연습한 그 자기중심의 생애를 자꾸 연습해서 숙달된 그것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니까, 악령과 악성과 악습은 옛사람이요, 나를 멸망시키는 것이요, 내가 아닌 내요, 나를 죽인 원수인 내라는 것을 알고 이놈을 대적해서 죽이고 '오늘 종일은 주여 옛사람으로 살지 않게 해 주옵소서. 옛사람 이놈을 죽이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하고도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어떤 기회에 (○○○씨) 자기 옛사람을 공격을 떡 하면, 옛사람 공격을 하면, 아침에 기도하기는 '옛사람 이놈을 죽여 주시옵소서. 이놈을 죽이도록 다른 사람에게 응원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도 자기 옛사람을 책망을 탁 하면 그만 착각을 착 해 가지고서 '저 사람이 왜 날 인심 공격을 하는가? 날 어떻게 저렇게 미워하는가? 훼방을 하는가? 날 멸시를 하는가?' 이래 가지고 아침 내내 기도하고도 자기는 옛사람을 대적하는 사람을 대적으로 삼고, 옛사람 그것이 자기인 줄 알아 가지고서 거기에서 주장하고 나가게 이렇게 하기 때문에, 옛사람 이놈을 쫓아내기가 얼마나 어렵고, 옛사람 이놈의 행사가 원수인 줄 알고 이것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산상 보훈에서 안 믿는 사람들이 다 산상 보훈을 보고는 다 머리를 숙입니다. 산상 보훈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신구약 성경 가운데 산상 보훈이 제일 요지요, 제일 강령되는 교훈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산상 보훈 중에 첫째 교훈이 뭐이냐?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니라, 마음이 빈 자, 마음을 비우기가, 마음 비운 사람이 복이 있고, 제일 복 있는 사람인데 마음 비우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들이 자기 속에 옛사람의, 옛사람의, 그 악성 악령 악습을 버릴라고 애를 쓰고, 악성 이것들이 욕심내는 그것을 가리켜서 사욕이라 그말이오. 사욕은 하나님이 주신 욕심이 아니고 제가 자기중심으로 만든 욕심이 사욕이라 말이오. 자기중심으로 가지는 욕심이 사욕입니다. 또 하나님의 법에 순종해서 살아라 했는데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을 가리켜서 자율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 것들을 또 주관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요한복음 10장에는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도적이요 강도라' 그 말은 이 복음을 받기 전에 인생들에게 얻은 지식이나 주관이나 자율이나 선입적 관념이나 기존 지식 경험 체험 그런 것은 다 너를 죽이는, 너를 죽이기 위해서 온 절도요 강도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런고로, 어떤 사람은 옛사람으로 사는 것이 성공인 줄 알고, 아주 장기인 줄 알고 그걸 자랑을 하면서 옛사람으로 살면서, '나는,' 옛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존귀한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명예가 있고 공로가 있고 영광이 있다, 또 나는 이런 권세가 있다.'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지마는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진실히 사는 사람은 이 옛사람을 죽일라고, 이 옛사람을 벗을라고, 우리가 지난번에 성찬 먹을 때도 옛사람은 죽어서, 세례받는 것도 옛사람은 죽어서 장례 지내고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을 향하는 사람으로서 이제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결돼 죽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연결돼 다시 사는 것으로서 그 의식을 행해서 세례와 성찬을 우리가 과거에 베풀었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제일 원수는 뭐이냐?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이놈을 쫓아내지 안하면 안 됩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이놈이 원수인 줄 알아야 되지, 옛사람이 원수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놈으로 더불어 싸워야 되지 옛사람이 원수인 줄을 모르는 그 사람은 원수를 자기인 줄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은 살아날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안 속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그 비유가 될란지 모르지마는서도 아주 참 진짜 공산주의의, 아주 공산주의의 주도자가 남한에 와 가지고서 정치에 들어가서 아주 자기는 남한의 민주주의 정치인으로 그렇게 가장을 꾸며 가지고서 속으로는 공산주의의 그 사상을 가지고서 지하 운동을 한다면은 그 사람을 잡지 안하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 남한이라 하는 것은 큰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자기 속에 원수가 들어있는데 이 원수가 얼마나 민첩하게 숨었든지 이 원수가 원수로 나타나지 안하고 원수가 자기로서 가장을 해 가지고서 본인이 자기인 줄 알고, 마음도 자기인 줄 알고, 몸뚱이도 자기인 줄 알고. 영은 탄식을 하고 이래 가지고선 이래 철통같이 마음 가운데에 원수가 가득 차 가지고 있으니까, 이 원수를 비워내기 전에는 헛일입니다. 원수를 쫓아내야 자기가 구원 이루지 원수 쫓아내기 전에는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이 빈 자는 복이 있다, 마음에 이런 것을 쫓아내서 이런 것이 없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는 것을 제일 첫째로 말씀하신 말씀이 이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어데 있느냐? 영의 성공과 실패도 마음을 비워서 마음 안에 있는 옛사람을 쫓아내는 것이 영의 성공이요, 육체의 성공도 옛사람을 쫓아내는 것이 육체의 성공인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믿는 것은 하늘나라의 성공만 되고 이 세상에 성공이 안 된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본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성공이요 세상 성공이요, 영의 성공이요 육신의 성공입니다.
그런데, 영의 성공 육신의 성공인 이 성공을 세상에서 믿음없는 사람들은 볼 때에 '아, 믿는 것은 하늘나라 성공이요 세상에서는 실패다' 그렇게 봅니다. 왜? 하늘나라의 성공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 하나님에게 저주가 되고 하나님에게 진노가 되고,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그 원인이 되는, 이 멸망의 원인이 되는 돈 멸망의 원인이 되는 지위 멸망의 원인이 되는 권세, 멸망의 원인이 되는 공부, 멸망의 원인이 되는 출세 이런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하니까 그런 것을 취하지 못하고 그런 것이 다 깨져 버리고. 깨져 버리니까 '아, 예수 믿는 것은 천국만 바라봐야 되지 세상에는 손해간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 것이지마는서도 진리에 삐뚤어진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요, 조물주에게 뻐뚤어진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요. 조물주에게 저주거리로 되어 있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함으로 그런 것이 없어지는 것은 자기 암병과 같은, 자기 행복에 암병과 같은, 자기의 성공에 암병과 같은. 자기 권세에 암병과 같은, 자기의 출세에 암병과 같은. 자기 세상 성공에 암병과 같은 그 암병과 같은 것들이 치료돼서 없어지는 것이니까, 그게 일단 치료돼서 없어지고 나면은 그 다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전토나 버린 자는, 하나님의 도와 복음 때문에 버린 자는 여러 배를 얻고 백 배를 얻고' 백 배를 얻는다 그 말은 뭐 아내 하나 버리면 백 명 얻는다 그 말이 아니라. 아내 하나가 백 배나 좋은 아내가 된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은 껍데기만 보고서, 멸망의 원인이 되는 것이 치료돼서 없어지는 것을 보고서 이것이, 멸망의 원인인 것이 치료되어 지니까 행복인 줄 모르고 그게 없어지니까. 병 없어진다고 야단지기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것이 일단 치료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세상이 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축복하고 만물도 축복하고, 마귀들도 그 일에는 찬성합니다. 마귀도 하나님의 부리는 신입니다. 이러나, 마귀가 하나님에게는 하나님께서 네가 이런 믿지 안하는, 믿음 없는 자들을 미혹을 시켜서 연단을 시켜라 했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마귀도 예수님의 부리는 신이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신앙은 육의 성공이요 영의 성공이요, 금생 성공이요 내세 성공이요, 하나님 성공이요 자기 성공이요, 만인간 성공이요 만물 성공이니까 전체가 다 생명뿐인 것입니다. 이것을 해하는 자가 누구냐? 이것을 해하는 자가 악령과 악성과 악습 이 세 가지가 해하는 것인데, 악령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꾀어서 악성으로 만들어서, 악성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 먹어 가지고 인생이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서 자꾸 악령과 악성이 시키는 대로 산 생활이 하나 둘 연습된 것을 가리켜서 악습이라고 그래 말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옛사람입니다.
옛사람이 우리 마음 가운데에 원수인데 이놈이 주인이라고 가장을 해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알고 원수인 줄 알고 이것을 쫓아낼라고 애를 쓰는 사람도 어떤 그런 경우에, 그런 경우에 옛사람을 치면 그만 자기인 줄 알고 착각을 해 가지고, 오해를 해가지고서 오히려 옳은 말을, 옳은 말을 원수로 생각하고 옳은 길을 오히려 죽는 길인 줄 이렇게 착각하는 그런 일들이 있기 쉬운데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쫓아낼 리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옛사람이 원수 중에 원수라, 옛사람이 원수지 마귀도, 옛사람 이것만 물리치고, 옛사람만 물리치고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살면 마귀는 보배요 죄도 보배요, 사망도 보배요 모두 다 보배입니다. 왜 보배라? 새사람으로 사니, 마귀가 왔는데, 마귀가 와서 시험하는데 새사람으로 살고 마귀가 아무리 해도 마귀 유혹을 받지 안하니까, 모든 사람은 다 유혹 받는데 유혹 받지 안하니까 영광이 있지, 죄가 와 가지고 막 디리 덮어도 상관없이 죄가 있으니까 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더 빛나지, 사망이 와서 디리 덮어도 이 새사람으로 사니까 사망이 해하지 못하니까 더 빛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진리와 나와 셋이 합작돼 가지고서 사는 요 새사람으로 살면 마귀도 필요있는 물건, 사망도 필요 있는 것, 죄도 필요있는 것, 만물도 필요있는 것, 원수도 필요있는 것, 왜? 그것들에게 해는 하나도 받지 안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 가치만 나타나고, 내 존귀만 나타나고, 영광만 나타나고, 실력만 나타나고, 면류관만 나타나니까 해가 될 것이 뭐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의 원수는 자기 안에 있는 옛사람 이것이 원수입니다. 이것을 자기 마음 안에 들어 있는 사욕 그것이 내나 옛사람 그놈이 발동해서 사욕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주관이라는 것이 옛사람 그놈이 발동해 가지고 주관이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죄 되는 것은. 뭐 성경 말씀에 위반되는 물질 나쁜 것 아닙니다. 성령이 물질을 취하라 할 때 물질 취하는 것은 의가 됩니다. 성령이 취하지 말라는 물질을 취할 때에 죄가 되는 것이지, 하나님이 권세를 가지라는 그 권세를 가질 때에 의가 됩니다. 하나님이 권세를 가지지 말라고 할 때에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권세 가지는 것이 그것이 죄가 되어지는 것이지.
이렇게 우리 속에는 참 자기같이 꺼풀을 입어서, 자기인 줄 아는 그놈이 원수가 둔갑을 해 가지고서 자기 속에서 자기같이 가장을 해 가지고서 활동하는 요놈을 발견한 사람이라야, 발견한 사람이라야 사망을 발견한 사람이요 요놈을 원수로 알고 대적하는 사람이라야 망하고 죽는 것하고 대적하는 사람이요 요놈을 대적해서 이긴 사람이라야 사망을 이긴 사람인 것입니다. 기본구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얻지마는서도 건설구원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요놈을 쫓아내지 안하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새사람과, 중생된 새사람과 옛사람과 둘이 싸우는데 새 사람 배후에는 진리와 성령이 계시고. 옛사람 배후에는 불법과 악령이 그 배경이 돼 가지고서 이와 같이 하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는 집과 같이 성전과 같이 새사람을 영접해서 우리 마음 가운데 모실 수도 있고, 옛사람을 자기 마음에 맞이해 들일 수도 있고 이러니까, 우리 마음도 영의 모형이기 때문에. 영은 하나님의 모형이라 하나님과 차이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고, 우리의 마음은 영의 모형이기 때문에 영과 같은 자유는 없지마는서도 영보다 좁은 범위의 제한된 자유를 가졌기 때문에, 이 마음이 자유로 새사람을 영접할라면, 새사람을 영접하고 옛사람을 영접할라면 영접하고 자유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은 새사람도 없지마는 옛사람을 쫓아낼라 해도 왕이기 때문에 '이놈, 내가 왕인데 어데 쫓아내노?'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 사망과 악령과 죄악이 우리에게 왕 노릇 못 한다고 로마인서 6장에 똑똑히 말씀해 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물리치면 된다 말이오. 물리쳐서, 우리는 이제일 원수가 옛사람 이것이 우리의 금생 원수요 내세 원수요, 우리의 영육의 원수인데, 이거 원수인 것을 깨닫고 이놈을 쫓아 내서 마음 가운데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이 사람은 행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놈을 쫓아내야 될텐데 이걸 쫓아내기 위해서 사람들은 기도를 많이 합니다. 저도 오래 동안 기도를 많이 했고 지금도 기도하고 모든 사람이 이놈을 쫓아내기 위해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했어. 그러나 이놈은 쫓겨 나가지 않습니다. 이놈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옛사람 이놈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지혜도 있고, 권세도 있고, 배짱도 있고 또 술책도 있고 해서 못 쫓아냅니다.
이것을 쫓아내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방법 하나, 쫓아내는 방법은 뭐이냐? 쫓아내는 방법은 오늘 이 말씀을 읽었는데, 이 말씀을 제가 벌써 거 지난 주간 월요일날부터 계속해서 이 말씀을 증거해 나왔고, 한 주간 증거했는가 두 주간 증거했는가 여러분들이 아마 베드로후서 1장 1절이라 하는 이 말씀을 들을 때에 귀가 아플 것이고 듣기가 싫을 것이고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깨달은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여기에서 우리 구원이 좌우된다는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지마는서도, 너무 듣기가 어렵고 알거 어려운 그 속에 든 것을 이 말을 하면 자기가 영감받아 가지고 알도록 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자꾸 말하는데, 이러니까, 속에 영감으로써 가르쳐 줌을 받을라고, 인간의 방언으로 표시할 수 없는 것을 성신의 감동으로 알려 주는, 그 감화를 받을라고 애를 쓰지 안하는 사람은 자꾸 잔소리같이 보여지고 거듭 들으니까. 좀 듣기 싫고 고만 염증나고 이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 혹 성신의 감화의 그 시동이 걸릴까 해서 자꾸 이렇게 말하는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소망을 다해 가지고서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도무지 성령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말이오. 걸리지 안하니까 걸린 사람은, 걸린 사람은 뒤비지고 걸린 사람은 이제 권능 얻어 가지고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람을 쫓아내는 것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놈을 암만 쫓아낼라고 암만 기도해 봐야 소용없어. 아무리 원수라 해도 소용없습니다.
비유컨댄 이 약한 자가 강하게 있는, 약한 자가 가득히 살고 있는 데에 강자가 가면은 강자에게 약자가 밀려 나갑니다. 약자가 밀려 나갑니다. 예를 들면은, 물이 한 드럼이 가득히 차 있는데 거기에다가 물보다 더 무거운 돌을 갖다 넣으면은 물은 다 나가 버리고 돌만 남을 것입니다. 또 돌만 있는 데다가 거기에다가 금덩이를 갖다 넣으면은 금덩이에 돌은 떠 가지고 다 나가 버리고 금만 남을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속에 이 옛사람보다도 강한 그 새사람이 우리 속에 들어가면 되는데 우리 속에 새사람이 들어오도록, 새사람이 우리 속에 들어오도록 하는 데에는 우리 하는 방법이 뭐이냐? 오늘 말씀하신 이것입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에 예수로 가득 채우고, 자꾸 우리 마음에 생각하기를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둘을 생각하고, 또 종이라는 것은, 나는 피로 값주고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또 하나님의 사자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또 시몬 베드로라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을 생각하고,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생각하고,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이다 이걸 이렇게 생각을 가지면 이게 두부렁 두부렁 떠나가 버리고 맙니다.
자, 예수 하나, 예수 하나, 그리스도 또 이제 둘 그 다음에는 이거는 자기입니다. 종 사도. 종 사도 생각하고, 또 넷째로는 시몬 베드로 생각하고.
넷을 생각합니다. 이 둘은 자기요 둘은 하나님이십니다. 생각하고 그 다음에 다섯째로는 우리 하나님 생각하고, 여섯째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생각하고, 그 다음에 일곱째는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이라 믿음 생각하고, 이 일곱만 자꾸 생각을 하면 옛사람이 떠나 가 버립니다. 믿음만 생각하면 옛사람은 거기 붙어 있을 수가 없고, 마치 불을 켜면은 어두움은 거기에 있을 수가 없어 녹아져서 달아나 버리고, 또 무거운 것을 닦으면은 가벼운 것은 다 채여서 다 넘어가고 마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일곱 가지를 자꾸 생각을 하면 우리 마음은. 이 일곱 가지를, 생각해서 일곱 가지만 자꾸 이래 생각해 가지고서 이래 있으면 이게 떠나갑니다.
그러면, 일곱 가지를 생각하면 일은 누가 하고, 밥벌이는 누가 하고 살림살이는 누가 하고, 밥은 누가 짓고 하겠느냐? 이 일곱 가지를 생각하면 이 일곱 가지에서 밥짓는 것도 나오고, 일하는 것도 나오고, 사무보는 것도 나오고, 정치하는 것도 나오고, 인간 다스리는 것도 나오고, 좋은 것도. 좋은 것은 허할 것도 나오고 나쁜 것은 물리칠 것도 나오고,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와 같이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생각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생각하고, 이렇게 믿음을 생각하고 자기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종된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신된 것을 생각하고, 옛사람으로 있을 때의 시몬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그 축복으로서 반석이라는 이름을 생각. 반석이라는, 자기가 반석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이 생각하면 거기에서 이 전체에게서 옛사람은 다 떠나가서 없어져 버리고 이 전체에서 거기에서 돋아오르는 순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돋아오르는 새순이 있고, 거기에서 그 전체에서 나오는 새것이 있으니 새것이 그것이 뭐이냐? 새것 있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이 거기에서 나옵니다. 보배로운 믿음이 나오니까, 보배로운 믿음이 나온다 그 말은 무슨 다른 말로 말하면 전지전능자 주권자가 이렇게 해라 하는 명령이 나오고 비판이 나오고, 평가가 나오기 때문에 그대로 하면 이 세상 일할 때에 전지자가 하는 거와 꼭 같이 하고. 전능자가 하는 거와 꼭 같이 하고, 주권자가 하는 거와 꼭 같이 하기 때문에 그는 금생에도 주인이요 내세에도 주인이요 아무도 그를 대항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 돈만 생각하면 돈이 올 줄 알지만 돈을 생각하면 돈이 갑니다. 권세를 생각하면 권세가 갑니다. 돈을 생각하는데 돈이 왔다고 하면 그 돈은 자기를 멸망시키는 그 멸망이 온 것이지 돈이 온 것 아닙니다. 권세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돈을 탐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그 말은, 그것이 뭐이냐? 돈을, 사모하면 돈이 요면 자기에게 유익된 돈이 오는 줄 알지마는 돈을 사모해서 올 때에 그 돈은 자기를 멸망시킬 것이요. 돈을, 오는 돈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사모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사모함으로 말미암아 오는 돈이 옵니다. 하나님을 사모함으로 인해서 자기가 이렇게 할 때에 그게 돈도 되고 권세도 되고, 오는 그 하나님이 주시는 그것이 자기에게 올 때에 복이 되는 것이지 땅위에 있는 그런 것들 다 취하려고 함으로써 바로 오는 그것은 화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말하자면 자기가 올라 갈라고 자꾸 이렇게 함으로써 멸망받는 그것이 인생의 멸망받는 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올라갈라 하다가 멸망받은 것이 인간의 멸망입니다. 예수님은 올라가시지 안하고서 예수님은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 자꾸 내려왔습니다. 자꾸 내려오니까,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이 예수님의 생활입니다. 성도의 생활은 자기는 내려가고 하나님은 올리고, 자기는 내려가고 하나님은 올리고, 자기는, 하나님은 높이고 자기는 낮아지고 그럴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올리고 올리고 하는 이것이 성도의 그 생명 길인데 마귀란 놈이 우리를 꺼꾸로 가르쳐 가지고서 전부 꺼꾸로 하기 때문에 전부 다 실패를 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일곱 가지, 이것을 내가 하도 너무,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든 못하지, 알아듣지는 못하지, 그것도 인간의 말로 뭐 표시할 수 도 없는 건데 이럭 저럭 내가 아는 대로는, 나보다 물론 말 잘하고 유식한 사람이 표시할라만 잘할지 몰라도 나로서는 이렇게 표현할라 해도 안되고 저리 표현할라 해도 안 되고 내대로는 표현하는 가운데서 혹 성령에 연결이 될까 해서 이래 해도 도무지 그 연결이 잘 되지 안해서, 오늘도 이 말씀을 증거하지 안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 말씀을 증거하지 오늘새벽에 여기 와 가지고서 새벽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증거 하라 해서 내가 그러면 증거 하겠습니다. 이래 놓고는 암만, 내치 여기에 강단에 나올 때까지 기도해도 모든 사람들이 다 듣지도 안하고 또 지루하고 '또 그 말씀,' '본문만 읽어도 사람들이 다 모두 전부 염증을 낼 터인데 이 말씀을 어떻게 증거합니까?' 하고서 이래 신강해도 다른 말씀 암만 증거 할라 해야 증거하지 못하게 하고 다른 말씀 여러 말씀을 생각했는데 그래서 다른 말씀을 또 증거하려고 이래 좀 연구했습니다. 했는데, 마지막에는 이 말씀을 증거하라 해서 와 가지고 '그러면 하나님이 증거하게 해 주옵소서, 나는 뭐 못 하니까 하나님이 증거해 주옵소서' 그래 가지고 와서 증거를 합니다.
증거를 하는데, 우리의, 우리의 원수는 우리 마음 가운데 들었습니다. 원수는 우리 마음 가운데 들었는데 마음 가운데 든 원수가 뭐인가? 그것이 옛사람인데 그놈이 들어서 성령을 거스리고 제 사욕대로,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거스려서 제 비판대로, 제 평가대로, 제 의견대로, 제 지식대로, 제 주관대로, 제 자율대로, 제 소원대로, 제 욕심대로 제가 '이게 귀하다' 평가하는 이것이 순전히 옛사람이 시키는 것인데 이대로 해 가지고서 그게 성공되면 성공인 줄 알지마는서도 마지막에 죽을 걸 생각해 봐라 죽을 때 그것이 너에게 준 것이 뭐이냐? 일생 동안 너는 이렇게 부자로 지냈는데 죽을 때 그걸 가져 가지 못하니까 네가 결말을 봐라 결산을 봐라 네게 뭐 있느냐? 또 네가 어떤, 온 천하를 점령했다 할지라도 네가 갈 때 그것을 가지고 갈 것이냐? 그것이 하나님의 의가 되느냐 그게 죄가 되었느냐? 네가 네 맘대로 산 것이냐 하나님께 따라 산 것이냐? 이것을 결산을 하면 알지마는서도 사람들이 결산을 못하고. 미혹을 받아 가지고 고게 전부 옛사람을 자기인 줄 알고 착각하는 데에서 이와 같이 되어지는 것인데, 이 옛사람 이놈이 원수인 것을 알고 이놈의 행동으로 된 것은 복이 오는 것 같으나 복이 오는 것같이 왔다고 하면 그것이 얼마 후에는 멸망이 됩니다. 안 되면 죽을 때 멸망이 되고, 안 되면 이 세상에서 구원 이를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헛된 일만 하게 되니까 그거 실패 아닙니까? 하루 일을 헛일해도 손해인데 일생을 헛일하면 뭐합니까? 이러니까 이러니 이제 이 옛사람 이놈을 원수로 알고 이놈을 쫓아내야 되는데 이놈을 쫓아내는 데는 다른 길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놈을 쫓아 내는 데는 여기에 일곱 가지, 제가 일곱 가지를 기록해 가지고 왔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자기 마음에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자기 마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만 채워요.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고, 그리스도로 채우고, 그 다음에 셋째로는 종으로 채워, 나는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이 다, 주의 종이다, 내 맘대로는 털끝만한 것도 살지 못한다, 찰나도 내 맘대로는 살 수 없다. '부모가 죽었으니 장사하게 하옵소서' '너는 안 된다.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쫓아라' 이렇게 말씀했으니까, 이제 주의 종이니, 나는 주의 종이라 주에게 순종하는 것만 하지 다른 거는 하지 못한다. 주의 종이라는 것을 가득히 채우고, 또 사도라는 것을 가득히 채워서 나는 하나님의 사자다. 하나님의 종이면서 하나님의 대사로서, 일국의 대사가 아니라 그 자존자 주권자 하나님의 나는 대사다. 대사라는 것도 자기 속에 생각하고, 또 시몬도 자기 속에 생각하고, 시몬. '나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자다.' 시몬도 생각하고, 또 시몬만 되는게 아니라 영감대로 할 때에는 주님께서 '베드로다' 너는 반석이라는, 반석이라는 그 이름도 나는 받았다. 나는 반석도 되고 시몬도 된다. 나는 시몬도 된다 반석도 된다. 시몬도 생각하고 베드로도 생각하고, 자꾸 이 둘을 우리 마음 가운데 가득히 채우고 또 다섯 째로는 우리 하나님을 가득 채우고. 우리 하나님이라 말은. 하나님은 내 단독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내가 되어서 대아가 돼야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돼 주지 내 개적 하나님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이웃 사랑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이 대아가 될 때에 하나님은 내 대아된 나의 하나님이 되고 나의 아버지 되지, 이제 대아가 안 되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 하나님 우리 아버지,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때에 말한 것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
여섯째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 이를 자꾸 생각하면, 뭐 이걸 말할라 하면 신구약 성경이 다 여기 다 들어가야 됩니다.
일곱째로는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이 보배로운 믿음을, 보배로운 믿음을 자기 속에 자꾸 이래 생각하고 그러면은 그 결과에 나온게 뭐이냐? '편지하노니' '편지하노니' 인간 구원에 착수합니다.
인간 구원에 불이 붙습니다. 이것만 하면 모든 것 다 돼.
이러니까 이거는 너무 많아서 이 몇 시간에 이래 가지고 안 되니까 여러분들이 개인들이 다 알고 있어요. 이제까지 배운 것이 이거니까. 자꾸 가서 눈감고 어데든지 시간 있으면은 시간 없으면은 간단하게 대충해서 그저 예수. 그리스도, 종 사도, 시몬 베드로, 우리의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 보배로운 믿음. 이 이름만 간추려서 생각하고 좀 시간이 있으면은 거기에서 예수님을 사모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신.
예수님에게 하신 일을, 예수님이 설정하신 일을,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을, 또 우리가 종된 것을, 우리가 또 사도된 것을, 우리가 또 시몬이 나오는 것을, 베드로가 나오는 것을. 이렇게 자꾸 이렇게 생각만 가지면, 생각을 가지고 우리 마음 가운데 이 일곱으로 우리 마음에 채우게 되면은, 채우게 되면 옛사람은 차차 밀려갑니다. 옛사람은 밀려가고 세상은 간 곳이 없습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이 없어집니다.
세상에 대한 이 육체의 소욕을 없앨 권리가 어디 있는가? 육체의 소욕을 꺾을 자가 누가 있는가? 결심 가지고 꺾는가? 결심 가지고 못 꺾습니다. 작정 가지고 꺾습니까? 손을 끊어도 안 됩니다. 발을 끊어도. 자기를 희생해도 안 됩니다.
아무래도 안 됩니다. 노름하는 것 그것 끊어도 안 되고, 어떤 사람은 그 정욕 생활을 끊기 위해서 자기는 거세를 해 가지고서 성기를 잘라서, 끊어서 병신이 돼도 또 내나 병신 됐지마는 또 그렇다 그말이오. 뭘로 가지고 끊겠습니까? 못 끊습니다. 다만 우리 속에 있는 옛사람을 쫓아내는 것은 이 일곱 가지를 우리 마음 가운데에 사모하게 되면 등불 켜면 어두움이 쫓겨 나가는 것과 같이 이 자기 속에 이 일곱으로 가득 채워 있으면 자기가 받은 증거가 있을 것이요. 알 것입니다. 또 이 일과 가지는 이 악령에 속한 그런 것보다 무한히 권세가 큽니다. 영원합니다. 이 영원하고 무한함이기 때문에 그 가치의 중량이 극히 무한합니다. 이를 사모하게 되면 그것은 저절로 다 쫓겨 나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년들의 행실을 무엇으로 고칠 수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 외에는 고칠 것이 없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함으로 깨끗하여지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런데. 여기에 일곱 가지 말한 것은 일곱 가지는 성경에 다 기록 돼 있지마는서도 간추려서 그 알맹이 만 여기 간추려서 말해 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 마음에 예수가 생각이 없어, 자기 마음 안에 예수가 없을 때에는 반드시 옛사람으로 삽니다. 자기 마음에 예수가 없을 때에는. 자기 마음에 그리스도가 없을 때에는 반드시 옛사람으로 삽니다. 자기 마음에 나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이 없을 때에는 반드시 세상 종으로 삽니다. 자기 속에 나는 하나님의 사신이라는, 이 사신은 자부심을 가지지 못했을 때에는 반드시 세상에게 머리를 숙이고야 말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나는 시몬이라.' 자기가 시몬으로서, 옛사람으로 살았던 그 시몬이라는 것을 자기가 생각해서 시몬되기 쉽다는 것을 생각하지 안하면 자기는 또 옛사람으로 삽니다. 자기는 영감대로 살면은 베드로입니다.
이렇게 이 일곱 가지를 자꾸 생각해. 다른 것 생각할 것 없이, 아무것도 생각지 말고 일곱 가지 생각하면 거기에서, 거기에서 모든 사람을 처리할 것도 다 나옵니다. 모든 일 처리할 것도 다 나오고, 경제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윤리에 대해서, 가정에 대해서, 자기의 의무에 대해서, 책임에 대해서, 위신에 대해서, 명예에 대해서, 자기의 존영에 대해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명에 대해서. 여기에서 다 나와서 그대로 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하지 안한 것은 죄라 그 말은 이러면 전체가 먹는 것 자는 것까지도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되지 안한 것은 다 삐뚤어진 거라. 그러면,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이 전체를 우리에게 능동이 돼 가지고서 우리를 피동하게 하니 그에게 피동만 되면 다 된다 그말이오. 우리는 여기에서 와 가지고서 그로 인해서, 이 보배로운 믿음이라 말은 그를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보배로운 믿음 아닙니까? 그를 따라서 움직여 사는 것은 그의 충만을 다 가지는 것 인데 그를 따라서 움직이지 안하고, 믿기만 믿는다 하지만 실상 자기가 생활할 때에는 자기가 주장이 돼 가지고서 자기주장대로 살고 이분에게 피동으로 살지 안하기 때문에 실은 믿는 사람이 아니라 그거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오지를 못 합니다.
그런고로, 옛사람을 쫓아내서 새사람으로 살라고 하면 이 일곱 가지를 사모하는 것, 일곱 가지를 가운데 생각해서 마음 가운데 일곱 가지를 명상하고 일곱 가지를 명상하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은 참 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그 말은 주님의 그 대속의 공로를, 예수님의 공로를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면 거기에서 인간이 생명길을 걸을 수 있는 힘도 나오고 성장력도 나온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이 기독교는, 기독교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도가 영에게, 영에게서 온 것이 마음에서,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이 몸에서, 몸에서 이루어진 것이 이 사물에서 고렇게 위에서부터 내려와야 되는 것이 지위에 중간에 절단이 돼 끊어지면 다 마귀 노름입니다. 아무리 성자도 즉시 마귀 노름 할 수 있습니다. 성녀도 마귀 노름 할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오늘은 뭐 여러분들에게 말할라 해도 잘 안 되고 이러니까 일곱 가지를 무조건 좀 생각해 보십시오. 미쳤다 할 만침. 그저 예수님 생각하고, '예수, 예수님' 예수님이 나에게 어떻게 해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며, 내게 어떻게 했으며, 그분으로 말미암아 내게 무엇이 왔으며,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생각하고. 그리스도가 내게 하나님인데 그리스도 하나님이, 하나님이 내게 와서 무슨 일 하시며 어떻게 되느냐 생각하고, 내가 왜 종이 됐느냐. 왜 내가 사도가 됐느냐? 왜 내가, 시몬은 어떤 자이며 베드로는 어떤 자이냐? 이렇게 왜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 하나님이 됐느냐? 또 우리 구주 우리의 구주는, 예수 그리스도는 왜 우리의 구주가 됐느냐? 그의 의는, 의가 뭐이냐? 또 보배로운 믿음이 뭐냐? 자꾸 이래 명상해서 자꾸 생각하면, 생각하면 우리를 어둡게 하는 옛사람이 쫓겨납니다. 하나님의 광명의 빛이 우리 속에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는 광명해집니다. 우리는 전지의 지혜의 사람이 되고 전능의 능력의 사람이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배후에서 우리와 연결돼 가지고서 전능이 연결되고 전지가 연결되고 주권이 연결되고 완전이 연결되기 때문에 피조물을 창조한 창조주와 연결되니까 피조물이 그 앞에 머리를 숙여서 경배나 할 일이지 딴거 할 거 뭐 있겠습니까? 우리 사는 길은 꼭 이렇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기가 쉽고 어렵습니다. 여기는 돈도 안 들고 아무것도 안 듭니다. 그저 자기만 내면 됩니다. 자기만 바치면. 돈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자기만 다 들이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음이 빈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음 비운다는 것, 마음을 단독이 못 비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