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11:16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4가지
본문 : 고전10:1-13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반사 선생님들은 그 공과를 암만 못 읽어도 한 삼십 번을 읽어야 됩니다. 이십 번 읽고도 외우는 사람이라면 뭐 그러하지만 그래도 한 삼십 번 읽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여러분들이 학생을 가르치려고 할 때에 성신이 여러분들과 함께 역사할 수가 있지마는 공과를 여러분들이 외우지도 못하고 있는데 성령이 여러분들과 같이 하실 수 없고 같이 한들 뭐 되겠습니까? 같이 하면 여러분들은 해를 당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나쁜 것은 소멸시켜 버립니다.
그러기에 한 삼십 번 공과를 읽어서 외워 가지고, 그러면 자기 가르치는 반에 간추려서 '무엇 무엇을 가르치면 되겠다'하는 것을 성령이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그것만 가르치면 됩니다. 그대로 다 가르칠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에게 감동시켜서 가르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주일학교나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반사 선생님들 손 한번 뻐뜩 들어 보이소. 예.
이번 공과는 사람의 두 종류라는 것, 생명길은 하나뿐인 것, 악령이 생명길을 찾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사망의 길을 뚫어 놓은 것, 또 믿는 사람들이 기본구원 얻은 것은 꼭 같지마는 기본구원 얻은 자와 기본구원 얻은 자의 영원한 그 영광의 차이는 세상에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것, 우리가 보고 듣고 접촉하는 가운데에서 종류와 종류의 가치 차이 권위 차이가 많고 한 종류에도 차이들이 많이 있는 그것은, 그것이 자연계시인데 무엇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차이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이고 알리는가? 그것은 하늘나라에 구원 얻은 자의 영광이 차이 있는 것을 알리기 위한 자연계시입니다.
모든 만물의 그 차이점이 예정과 창조와 섭리로 된 것인데 그것이 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기본구원 얻어 가지고 하늘나라 가서 영생하게 되는 것만 해도 참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세상에는 그것 암만 좋다 해 봤자 죽는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택한 자들은 죽음은 없습니다. 지옥에는 비할 것이 없지마는 믿는 자 믿는 자 차이의 그 차이점은 심히 많은 것을 똑똑히 가르치고, 세상 일도 준비하는 것은 고달픈데 하물며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고달프지 않는가 하는 그것을 인식을 시켜야 할 것이고, 세상 사람들은 하늘의 소망이 없으니까 막살이를 하는 사람들이라, 자기 마음대로 욕심대로 막살이 하는 사람들이지마는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이 생활을 연습하고 이 복종하는 생활에서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힘써야 하는 것을 우리가 가르치면 됩니다.
그 학생들에게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 또 생명길은 하나뿐이고 악령이 만들어 놓은 사망길이 많이 있는 것, 구원 얻은 자의 영광의 차이가 심히 큰 것 준비하는 사람은 고달프고 막살이는 수월합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들이 세상 분깃을 가지고 그대로 사는 것을 보고 믿는 사람들도 사람이면 꼭 같은 사람인 줄 알고 그런 사람의 생활을 따라가다가 멸망을 받습니다.
그런 것을 간단하게 가르치면 되는데, 공과를 한 삼십 번 읽고 기도하고 그리면 여러분들도 은혜가 되고 또 여러분들이 가르치는 그 설교를 듣고 그 학생들이 다 살아납니다. 힘을 얻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런 일입니까? 믿는 사람들이 복음으로 사람의 심령을 살리고 구원한다는 것은 얼마나 존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 심령을 살리는 일에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그 상을 결코 베풀지 않지 않겠다고,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들이 바로 가르쳐서 사람을 구원 얻게 한다면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상급은 얼마나 클 것입니까? 이것을 생각하면서 공과를 충분히 읽어 가지고 외워 가지고 해야 됩니다. 그저 알쏭알쏭하게 그렇게 외우면 안 됩니다. 충분히 외우고 난 다음에 한 이틀 기도해야 될 것이오. 외우고 난 다음에 한 이틀 길 가면서도 기도하고 일하면서도 기도하고 그러면 기도 가운데서 가르칠 것이 여러분들에게 환해져서 '요것을 가르쳐야 되겠다' 그 가르치는 가르칠 때에 그 학생들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들에게 같이 하니까 성령이 같이 해서 남을 가르치는 동시에 자기를 성령으로 가르치게 됩니다.
그러면 주일학교가 자꾸 부흥이 될 터인데 주일학교 반사들이 이렇게 공과 준비를 하지 안하고 또 주일학교 마치고 난 다음에, 물론 피곤하지요. 아침 안 먹은 반사도 있고 또 그때 가서 식사를 하고 오는 반사도 있고 이러니까 그만 오전 예배 시작하게 되면 모두 느리 해 가지고 와 가지고는 저 뒤에 한쪽에 처박혀 가지고는 그만 누워 잡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죽고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맡겨 주신 양떼 죽고 다 몰사 죽음 합니다.
학생을 부득이 데려다 줄 학생은 데려다 주지마는 새로 학생들을 데리러 가기 위해서 예배에 참석하지 안하는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자기도 죽고 남 죽이는 일입니다. 자기가 살아야 남을 살리지요.
그러고 주일날 밤에는 일곱 시부터 재독이 시작되는데 주일날은 오전 오후 것을 다 재독하게 됩니다. 그뭐 비디오가 나오나 안 나오나 재독만 하면 되니까 재독할 때 그때에 오전 오후 설교만 들어 가지고는 여러분들이 잘 모를 터이나 재독할 때 들으면 환하게 알게 됩니다. 알면 기도하고, 여러분들 속에 진리가 박힙니다. 박히면 박힌 그 진리가 여러분들의 심신의 능력이 됩니다.
그런고로 말씀이 없으면 속에 아무런 창조적인 능력도 건설적인 능력도, 부활적인 능력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반사들은 기도하는 것보다도 주일날 밤에는 재독을 참석을 해 가지고 환하게 알도록. 그러고 난 다음에 다 재독이 끝나거든 하 아홉시쯤 너머 될 터이니까 그래도 그때에 재독을 그 자리 앉아 가지고 눈을 감고 가만히 명상하면서 '내가 이 말씀에는 심판 걸릴 게 없느냐? 하는 걸 생각하면서 회개하고 하면 여러분들에게 그때에 기도가 나올 것입니다. 그래 깨달아 가지고 기도하는 십 분 기도하는 것이 깨닫지 못하고 중언부언 기도하는 것 한 시간 두 시간 뭐 열 시간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러니까 공연히 기도하러 간다 해 놓고 저 산만당에 올라가 가지고 처녀 총각들이 연애나 하고 죄나 짓고 그래 가지고, 반사들 가운데 한목 뭉쳐 가는 사람들은 안 그렇지마는 기도하러 간다 해 놓고 반사들 가운데에 뒤에 쳐져서 달리 가고 이래 가지고 나쁜 행동 하는 것 죄는 지었는지 안 지었는지 내가 모르지마는 서로 안된 접촉을 하는 그런 것은 내가 몇몇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짓을 하면 축복을 벗겨버리고 그 사람의 하는 일을 다 하나님이 낭패가 당하도록 그렇게 만드십니다.
반사들은 의무적으로 주일날 밤에는 와 가지고 재독을 다시 한번 은혜를 받고 듣도록, 그래 가지고 거기에 깨달아 가지고 기도하고 가고 하면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주일학교가 부흥될 것이고 여러분들이 벌써 학생한테 가서 권면할 영감이 여러분들 속에 있을 것이고 진리가 있을 것이고 가르칠 때 또 영감과 진리가 역사하시게 될 터이니까 여러분들도 살고 또 학생들도 삽니다.
목사도 한가지입니다. 제가 성경 배운 것은 앉아서 성경 본다고 거기서 배우지 안했습니다. 제일 성경 많이 배운 것이 언제 많이 배웠느냐? 설교할 때에 많이 배웠고, 또 그 다음에는 기도할 때에 많이 배웠고, 그 다음에는 그 말씀을 생각하면서 내가 이 말씀대로 사는 행동할 때 많이 배웠고 거기에서 배웠지 사람에게 배운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그 배운 것이 다 옳고 참되고 바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성신이 가르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고로 목사도 다른 사람에게 설교할 때 자기가 은혜 받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경험으로는 새벽기도를 하고 예배를 마치고 난 다음에 산으로 가겠다 해 가지고 산에 가서 기도할 때는 혹 은혜가 있어서 기도를 참 은혜롭게 기도할 때가 간혹 있고, 설교하고 난 다음에 그 자리에서 기도할 때는 하루 새벽도 마음 가운데에 참 뜨거운 은혜가 없을 때는 없습디다.
그러니까 이 말 왜 하는고 하니 목사도 그런데 반사 여러분들이 학생을 갖다 놓고 심방을 열심히 다녀 가지고 모아놓고 서서 진리를 가르칠 때에 여러분들이 그 진리를 여러분들이 가지고서 통달해 가지고서 거기서 기도 가운데 생각나는 것을 가르치고. 그러면 가르칠 때에 성령이 와 가지고 가르치게 합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확신이 조그매 있어도 가르치는 가운데 확신이 생겨지고 또 가르치는 가운데 진리가 나오니까 얼마든지 가르칠 것 있고 좀 더 가르쳐야 되겠고 하는 그런 능력의 힘이 나오는 것을 여러분들이 체험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공과를 아무래도 삼십 번 이상을 읽어야, 외우기야, 외우기는 한 이십 번 읽으면 외울 것이고 재주 있는 사람은 한 여남은 번 읽으면 외우겠지마는 그래도 외우는 것 가지고 다가 아니고 이러니까 한 삼십 번 읽어야 될 것인데 그만 공과를 이래 갖다 놓고 가르치는 그날 주일 아침에 인쇄한 것을 봐 가지고 뭐 가르치겠습니까? 공과를 외워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합시다. 외워 가지고 가르치도록 하고 또 못 외울 수도 있어. 사람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게 인생이오. 그게 인생의 약점이라. 자, 한번 반사들, 이제 공과를 익혀 가지고 가르치도록 노력할 분들 한번 손 들어 봅시다. 노력할 분들 한번 손 들어 봅시다. 노력할 분들? 네, 그러면 이제 다음 주일에는 살 것입니다.
뭐 가르칠 때에 소리를 살살 내 가르치는 그것도 좋소. 그것도 좋지마는 요새는 또 그게 아니겠어. 그래 내 가지고도 안 돼. 그 아이들이 어떻게 청감이 아주 민감한지? 청감이 민감해서 이 선생들이 와글 와글해도 저거 선생 가르치는 것 다 알아요. 와글와글해도 벌써 그 학생들 말 들어보면, 앉았기야 여기 앉았으면서, 앉았기는 저거 반사 밑에 앉았으면서 듣기는 저게 지금 먼 데서 반사가 가르치는 것 그것 듣는답니다. '아무 반사는 잘 가르치더라. 은혜가 있더라.' 그런데 오늘 내가 수요일날 밤에 주일학교 설교를 ○목사님이 했고 또 그 뒤에 사회를 누가 했습니까? 누가 했지? 손 들어 보소. 사회 하는 사람하고 ○목사님하고 둘이 주일학교 학생들을 두고 아주 나무래 재끼는데 학생들은 콧똥을 뀝니다. 콧똥을 뀌어. 내가 오층에서 보니 콧똥 뀐다 말이오. 나무라는 데 대해서 같잖게 봅니다.
인도자가 도무지 경건하게 하나님 앞에서 삼가하지 안하고 그래 하는데 그 학생들은 십 배나 더하지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러면 못써요. 예배 드릴 때, 내가 언제도 한번 그전에 한번 주의를 줬지마는 주일학교 학생들 어리다고 시뻐 보면 안 됩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은 부패해지기를 덜 부패해졌기 때문에 옳은 말 듣는 것은 훨씬 민감합니다. 부패해지기는 세상에 학문 많은 사람은 많이 부패해졌기 때문에 세상에 학문 많은 사람은 말해야 잘 못 알아듣습니다. 못 알아들어. 그것이 길바닥에 뿌린 씨입니다.
거기에 자기네들보다 영감이 충만한 학생들 꽉 찼는데 그뭐 아주 업신여겨 아주 어린아이 취급해 가지고 이래 하면, 어린아이 취급해 가지고 아동 설교를 어린아이 취급해 가지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대실패합니다.
장년반 설교는 여간 실수해도 피차에 인간의 그런 점을 알기 때문에 이해를 하지마는 아동들은 그런 것을 모르기 때문에 조그매라도 경건치 못하거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못하거나 진실이 없이 설교하면 그만 학생들이 그만 업수이 여겨 봅니다. 그만 업신여겨.
그러기 때문에 제일 어린아이들을 상대할 때에 그 아이의 인격을 지극히 존중히 여겨야 됩니다. 아주 지극히 존중히 여겨야 됩니다. 또 자기보다 위에 사람에게는 여간 실수해도 괜찮지마는 자기 밑에 사람일수록 인격을 존중히 여기고 아주 삼가 조심해야 거기에 도가 들어가지 그리 안 하면 도가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반사들도 그래요. 가서 이러면서 가르칠 때에 아이들에게 대해 가지고 반사가 뻘뻘 떨면서, 이 한 말씀 한 말씀 가르치는데 뻘뻘 떨면서 '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할까? 잘못 가르치면 어떠며 이것들이 구원을 이루지 못하면 주님이 어떻게 섭섭하게 여기지 않을까?' 그렇게 반사가, 반사가 열 근쯤 떨면, 반사가 열 근쯤 떨면 학생들은 한 근쯤 떱니다. 반사가 한 근쯤 조심하지 안하면 학생들은 열 근쯤 조심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은 십분지 일 본받기 어렵고 나쁜 것은 십 배나 잘 본받습니다.
보니까 아랫층에는 남반사들 하는데 좀 힘있게 가르쳐. 뭐 힘있게 가르쳐요.
누가 말하기를 '아따 서로 고함 소리 시비하는가? 고함 소리 시합을 하는가?' 고함 시합을 하는가 하면서 조롱하지마는 조롱하거나 말거나 힘대로 가르쳐.
가르치면 내가 힘이 나옵니다.
아이들에게 고함을 질러요. '봐라, 세상에 생명길은 하나뿐인데 마귀란 놈이 사망의 길을 여러 수백 수천 개를 내놨다.' 고함을 질러, 있는 대로 막. 그러면 그래 쌓아도 와글와글거려도 저거들 듣는 대로는 다 들어요.
뭐 심리학 연구하고 뭐 한다고서 정적으로 '세상에서는 그런데' 아이들에게 무슨 응답이 되도록 그것도 있지마는 그거는 능숙해야 되는데 그것 잘 안 돼요.
또 기도도, 기도도 그래. 언제 ○○○집사하고 의자 때문에 서울 갔다 와 가지고 어느 교회 갔었는데 거기는 한 백오십 명 모이는 교회인데 뭐 통성기도 하자 이러니까 뭘 막 어떻게 모두 고함을 지르는지 와글와글 그러니까 무슨 소리인지 한 마디도 없고 참 기도하기는 좋더라고. 자기도 뭐 무슨 소리 고함을 질러 해도 괜찮더라고 고함을 질러 해도. 거기서 고함 질러 좀 힘있게 한번 기도했다 이래. '고함을 질러도 괜찮습디다.' 여기에서는 다 요래 가지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 좀 말만 해도 그만 기도를 못 하고, 그게 기도가 약해 그래요. 조용히 하려 하면 기도 장성한 사람이 조용히 하지 처음에는 고함 질러 해야 됩니다. 장성해서 기도 하는 사람은 아무리 옆에 고함을 지르거나 뭐 꽹메구를 치거나 뭐 조용하거나 뭐이거나 상관이 없어, 제게는. 그러면 조용히 할 일이지.
이제는 마음놓고, 여기 뭐 인제 다 알아요. 이 서부교회 다 알기 때문에, 우리 이웃 사람들도 오해를 했어. 연보해 가지고 백 목사 착취하는 줄로 오해했어요.
'그 목사 어린아이들 코묻은 돈까지 전부 다 끌어모아 가지고 다 삼킨다'고.
부자라고.
우리 집에 노처가 시장보러 가면 시장을 참 째째하게 보거든. 돈도 뭐 그래 안 주고 말이지 이러니까, 이러니까 가면 '부자 할머니가 와 가지고 시장을 이래 보느냐?'고, 자꾸 온 시장에서 부자 부자 소문 나. 그 사람들 모두 착취하는 줄 알고 그래 했어.
그래 놓으니까 우리 예배당 지을 때에 자꾸 티를 뜯어 쌓고 이래 쌓아서 한번은 내가 나갔어. 가만히 보니까 그분들이 다. 그럴 분들이 아닌데 그래. 그래 내가 있다가 '이 예배당은 누구든지 예수 믿으러 나오면 그만 자기 집이 됩니다. 이 예배당 이것 내 이름으로서는 하나도 없고 전부 우리 교인들 예배당이오.
내것으로는 한 푼어치도 없습니다. 이 주일학교는 또 연보 이래 하는 것이 일 년에 장년반들이 한 몇백만 원씩 보조하지 안하면 유지가 안 됩니다.' 이러니까 그뭐 암말도 안 하고 있다가, 그말 대답도 안 하고 있다가 '우리 가렵니다. 진작 목사님이 나오셔 가지고 그래 말하면 그만 다 되는데 나오지도 안하고 그랬다'고.
그래 내가 전도를 하니까 '전도는 또 좀 안 싸울 때 전도해야 되지 싸울 때 전도하면 되겠느냐'고 이래서, 아무것도 아닌데 '그뭐 싸우는 게 아니라 거기서 그래 말한 것이지 누가 싸웁니까? 우리가 다 이웃인데.' 이러면서 그러고는 다시 말 안 합니다.
이러니까 이 이웃이도 믿는 걸 그래 미워하지 안해요. 우리가 잘못 됐는가 오해를 해 그렇지. 이러니까 고함 질러 해도 괜찮으니까, 그 러니까 열시까지는 고함 질러 기도해요. 기도하고, 또 여기보다도 저리 가면 저기 뭐 전도관이지 저쪽에 학교지 아무도 할 사람 없습니다. 또 중앙병원은 우리 교인이지, 아무 뭐 그럴 사람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고함 질러서, 고함도 얼마든지 질러요. 또 저 삼층에는 소리가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암만 고함 질러도 괜찮습니다. 이러니까 여기서는 뭐 뚜드리고 고함 지르고 저 산골짝 모양으로 그래 해도 되니까 바짝 바짝 기도합시다.
오늘 이 봉독한 말씀에는 다는 증거를 못 하겠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 가나안에 못 들어가고 광야에서 애만 쓰다가 멸망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데 이것을 우리에게 거울로 줬다 이랬습니다.
거울이라 하는 것은 거울을 보면 자기 모든 얼굴이 다 보이고 몸도 보이지 않습니까? 이제 이 거울로 줬다. 그말은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 우리가 멸망할 자인지 상을 받을 자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인지 하나님이 노여워할 것인지 이스라엘의 행동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신 것을 보면 우리가 알 수 있다 그말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받기를 네 가지로 멸망받았습니다. 하나는 우상 숭배하다가 멸망받았고, 또 간음하다가 멸망받았고, 또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멸망받았고, 또 원망하다가 멸망받았고, 요 네 가지 죄악으로 멸망받았는데 요 네 가지 죄악을 한테 뭉쳐서 말하기를 믿지 안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 그런 거는 다 아니까.
우상 숭배.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그렇게 이적과 기사를 행하셔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냈습니다. 또 홍해 바다도 그렇게 뭐 역사에 없는 그런 바다도 건너게 됐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렇게 해 주겠다 하시고 난 다음에는 그와같이 해 주셨습니다.
이렇지마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 놀랠 만한 지극히 큰 역사를 했지마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에 답답했습니다.
그러기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은 아무리 저희들에게 온갖 큰 역사를 해도 믿지 안하고 저거가 만들어 놓은 그것은 눈에 보이니까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좋아서 '이 송아지가 우리를 앞으로 인도하고 우리에게 복 줄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 이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자꾸 믿으라 하니까 마음에 힘이 안 쥐이고 암만 하나님이 하신 역사 보기는 봤지마는 하나님이 안 보이니까 답답하고 이래서 믿지 안하고 이러다가 저거 손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는 좋아서 마시고 뛰고 굴리고 노래 부르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게 이스라엘이 멸망받은 원인 중에 제일 큰 원인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믿지 안하고 저거가 만든 하나님은 잘 믿는 것, 이러니까 저거가 만들어 놓은 그것은 자기에게 복되게 해 준다 하는 그것은 믿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저희들에게 복 준다는 것은 믿지 안했습니다. 그게 이스라엘의 멸망받은 죄 중에는 제일 큰 죄입니다. 요것 똑똑히 들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온갖 큰 은혜 역사를 저희들에게 했지마는 눈에 안 보이니까 믿어지지 않는다 하고 믿지를 아니하고, 저거가 만 들어 놓은 것은 '이게 우리를 복 주고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를 구원한다' 하면서 좋아서 먹고 마시고 뛰놀고 노래 부르고 그래 했습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 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얼마나 좋았던지 말이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저희들을 주관하는 일은 애굽에서 거기에까지 구원해 냈으니까, 홍해 바다도 건너게 했으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저희들을 구원하시는 것은 경험했고 체험했고 했지마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보이지 안하니까 믿지 안하고, 저거가 만든 것, 저거가 만든 그것이 저희들을 구원하고 복 주고 할 것이라고 인정을 하면서 그것을 믿었습니다.
저거가 만들어 놓은 저희 구주, 저거들이 저거가 만들어 놓은 저희의, 뭐라고 할꼬? 저희의 주라 할까? 요것 잘 안 들으면 안 되는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자희들의 언행심사를 조사하시고 모든 생사화복을 다 주관하시는 이것은 믿지를 안합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니까 안 보이는 하나님을 믿지 안해요.
안 보이는 하나님은 안 믿고 저거가 만든 것, 저거가 만든 하나님은 잘 믿습니다. 저거가 만든 하나님은 잘 믿으면서, 저거가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저거가 하나님 만들어 놓고 '이 하나님이면 족하다. 이 하나님이면 우리가 이제 행복도 되고 우리를 잘 구원해 줄 것이다.' 하는, 그러면서 좋아서 먹고 마시고 뛰고 노래 부르고 놀았어. 요것 때문에 멸망받은 것이 제일 큰 멸망, 제일 많이 멸망을 받았습니다. 요것이 우리에게 거울이라, 거울.
오늘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 구원이 기본구원이 어데까지 우리를 구원했습니까?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신자가의 대속까지 하시고 모든 존재가 우리 구원 위해서 지으셨고 모든 순서가 우리 구원 위해서 예정하셨고 이렇게 지극히 큰 일을 했지마는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주일마다 가르치고 하는 것이 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모든 보이는 것들을 지었고 보이는 모든 것보다도 크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능력 많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보이는 모든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이 더 큰 것을 믿고, 더 능력 있는 것을 믿고, 보이는 모든 것보다 보이지 않는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이 사실을 믿으라고 성령이 암만 말하고 아무리 말해도 이것은 안 믿습니다.
안 믿고 저거 손으로 만든 하나님, 저거 손으로 만든 하나님, 저거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 그것은 만들어 놓고 '아따 이만하면 이제 됐다.' 하고 뛰고 굴리고 놀고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저거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은 어떤 게 저거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이지요? 이것 한번만 대답해 보십시오. 저거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은 어떤 겁니까? 하나님이라 말은 저희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겻이 하나님이라. 이러니까 저희는 배로 하나님을 삼는다 성경에 빌립보 3장에 '저희는 배로 하나님을 삼는다' 이랬어. 배로 하나님 삼는다 말은 사람이 먹어야 산다. 잘 먹고 잘, 입는 그것이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줄로 그래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라 그렇게 말했다 그말이오.
저희들이 만든 하나님이 뭐입니까? 저희들이 만든 하나님이 제가 만들어 놓은 지식, 제가 만들어 놓은 지위 권세, 제가 만들어 놓은 직장 제가 만들어 놓은 기술, 제가 만들어 놓은 사업, 제가 만들어 놓은 모든 부요, 이것 누가 만들었소? 제가 만든 것 아니야? 하나님이 만드셨지만 제딴에는 제가 만들었다 그거요.
제가 만들어 놓은 것은 '이제는 내가 과장이 됐으니까' 이제는 과장이 됐으니까 '여보, 이제 내가 과장이 됐어요.' 기쁘다고 온 식구가 과장 됐으면 인제 잘먹고 잘살겠다고 좋아하고 먹고 뛰놀고 막 기뻐합니다.
제가 만들어 놓은 과장 됐다고, 계장이 과장 됐다고, 제가 만들어 놓은 무슨 또 인제 무슨 높은 지위 뭣 됐다고 뭣 됐다고 뭣 됐다고. '이제는 우리 사업이 외국에 수출할 수 있는 수출의 길이 열렸으니까 이제는 먹고 마시고 뛰놀자.' 좋아하고 기뻐하고. '이제는 내가 이제까지 공부했다가 좋은 직장에 취직을 떡 했으니까 이제는 됐다.' 제가 만들어 놓은 그것 가지고는 제가 행복되다고 의심없이 믿고 안심하고 기뻐하고 뛰놀지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이렇게 믿지 않는 요 죄값으로 멸망했습니다. 요 죄값으로. 요게 죄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으례히 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지식, 지위, 권세, 사업, 재산, 직장, 부요, 가정 뭐든지 제가 만들어 놓은 그것을 주님보다 더 믿고, 주님으로 인해서 '주님이 계시니까 우리는 문제 없다. 우리 생사화복 이것 모든 존비 귀천을 다 주님이 주관하시니까 주님이 계시니 됐다.' 주님이 계시니까 됐다고 주님으로 인해서는 기뻐 즐거워 뛰놀고 이래 좋아하고 이렇지를 안하지마는 제가 만든 것 가지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뛰놀았기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이것 알아야 돼요! 이것 때문에 멸망했어.
고요히 생각해 봐요. 자기 직장이 무엇이 조금 어떻게 되면 '아이구, 이것 나 죽는다.' 그만 벌벌 떨고 야단이고 '이러면 나 죽는다.' 주님에게야 거리킨 것이 암만 거리껴도, 주님이 섭섭해 하는 짓을 암만 하는, 으례히 범죄하면 주님과 멀어지는 줄 아는데 그래 가지고 주님이야 떠났든지 섭섭해, 하든지 말든지 주님의 축복이 있든지 말든지 거기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하고 제가 만든 데 대해서는 조금 잘되면 좋아서 기뻐 즐거워하고 하나님으로 참, 능력 있는 하나님을 믿고 즐거워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무시하는 요것 때문에 우리도 멸망받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제가 만든 그것은 주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인 줄 알고, 오늘도 거둬 가면 그만이라. 이것은 지극히 적은 능력도 없어. 주님이 내게 복되게 하시면 복되고 주님이 내게 화되게 하시면 오히려 부자가 화가 되고, 오히려 성공이 화가 되고, 오히려 높은 승격이 화가 되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사람들이 볼 때는 '저 사람 내려가서 망했다' 망한 그것도 복이 되고, 손해본 것도 복이 되고.
주님 오시면 복되고 주님 떠나시면 다 망한다는 요것을 믿어야 될 터인데, 주님으로 기뻐하는 것보다 자기 손으로 만든 것으로 더 기뻐하고 주님 떠나 슬퍼하는 것보다도 제 만든 것이 조그매만 고장나면 그만 뻘뻘 떱니다. 이것 회개해야 돼요, 회개! 이것 회개해야 됩니다. 이게 죄요, 이게 죄.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 눈에 보이거든. 저거가 만든 눈에 보이는 것, 눈에 보이는 저거가 만든 직장, 눈에 보이는 지식, 눈에 보이는 권세, 눈에 보이는 사업, 이래 놓고 이것은 '이만치 됐으니까 좋다' 기뻐하고 온 가족이 기뻐하지마는 하나님으로는 기뻐하지 안해. 하나님 떠나도 슬퍼하지 안해요.
요것 때문에 죽습니다.
제가 만든 것이 다 우상이 돼 있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줄래야 줄 수 없고 가까이 올래도 오지 못해. 오면 멸해야 되니까, 소멸하는 불이니까. 할 수 없어 피해야지. 우리가 암만 입으로는 부르짖지마는 주님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축복을 줄 수가 있습니까?
그 죄로 멸망당했고 또 간음하다가 하루 동안에 이만삼천 명 죽었는데 민수기에는 보면은 이만사천 명 죽었다는 것은 첫날 천 명 죽고 그 이튿날 이만삼천 명 죽었는데 하루 더 있으면 오천 명이 죽을런지 육천 명이 죽을런지 모릅니다. 자꾸 더 심해져 갑니다.
이런데 비느하스가 그 남녀를 창으로 꿰뚫어서 어깨에 메고 가니까 하나님이 '내가 내 백성이 음행하는 데 대해서 심히 못 견디는 질투함같이 네가 내 질투와 갈은 질투를 가저고 남녀를 창으로 찔렀기 때문에 내 분이 풀린다' 하시고 그 이튿날부터 염병으로 죽는 그 일을 금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런 것은 이제 내가 보니까 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제는 내가 혼자 살며 이제는 여생은 내가 하늘나라를 위해서 고자로 지내겠다' 남녀간에 그렇게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것 같애. 또 그래는 못 할지라도 '절제는 해야지' 하는 있는 것 같해요. 또 그래는 거석할지라도 '죄야 짓지 안해야지' 하는 그런 것으로써 우리 교회가 점점 깨끗해지는 줄 압니다. 깨끗해지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멸망받았다 말은 하나님이 그전에는 많이 다 도와 주셨지마는 도와 주신 걸 알고 하나님의 기적도 알기는 아는데,'이번만큼은 도와 주시겠나?' 지나간 도와 주신 것을 도와 주신 과거는 인정하면서 당장은 도와 주실 것을 믿지 않는다 그말이오. 요게 시험 하는 것입니다. '도와 주실지 안 도와 주실지 알겠나?' 요게 시험하는 것이라.
지나간 때에야 애굽에서 인도하실 때 도와 주신 걸 알지요. 알지마는, 또 물 없을 때 도와 줬고 오만 데 다 도와 줬지마는 '이번 이것도 도와 주실까?' 닥치면 믿지 안해. 닥치면 도와 주실 걸 믿지 안하고 지나간 도와 주신 것은 믿고 믿지 안해서 '요번에만 내가 도와 줄 터이니까 네가 믿을래?' '예' 하고 난 다음에 도와 주니까 '이제 믿겠습니다'하고 그 다음에 또 그런 일 닥치면 '하나님이 도와 주시겠나 안 도와 주시겠나?' 또 의심하고 믿지 않는 요것 때문에 멸망받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요런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왜 주님이 구하라 주실 것이요 했는데 왜 기도하는데 왜 안 들어 주시겠소? 당신을 바라보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했는데 뭣 때문에 당신이 안 도와 주시요 안 도와 주시기를? 십자가 못박히신 것이 당신만 바라보고 희지하고 순종하라고 하신 것인데, 그말은 당신 있는 것 다 기울여서 다 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시는데 하나님을 믿지 안하고 일 닥치면 여기에, '무슨 일 있으면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믿고 기도하십시오.' '믿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이 들어 주실까요? 이 일이 될까요? 이 해결이 될까요? 일이 될까요?' 안 믿는다 말이오. 그게 시험하다가 멸망받은 거라.
그 시험함으로 멸망받는다는 그거는 뒤에 시간 있으면, 지금 해석이 많으니까 그만치만 하면 여러분들이 깨달을 것이고.
그 다음에 마지막에는 원망하다가 망했습니다. 원망하는 것. 물이 없으니까 원망 쓴물 나오니까 원망, 고기 없으니까 원망, 밥 없으니까 원망 원망을 하면서 모세를 죽이려고 했어. 모세하고 아론하고 돌로 쳐 죽이려고 했어.
왜? 모세와-똑똑히 들어 둬요.-모세와 아론이 인도한 것이 아니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모세와 아론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라서 가고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따라서 간 것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이라 말이오.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인데 모세와 아론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러다가 멸망을 받았습니다.
'왜 우리를 이와 같이 해 가지고 이렇게 지금 죽게 만드느냐?' 원망하고 낙망하고 비관하고 이라다가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거울이라.
오늘도 하나님의 종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사람 보기에는 하나님의 종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증거하지마는 실은 성령이 인도해서 성령의 인도대로 증거하는 것이니까 하나님이 증거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인도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설교하는 것이라 말이오.
하나님의 설교 말씀대로 이와 같이 살다가 자기에게 어렵고 답답하 일이 있으면 그만 '예수 믿다 이렇다' 이래 가지고, 예수 믿다 이렇다 해 가지고 가깝게 권찰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욕을 하고 이러다가 이제 권찰 위에 있는 목사를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비쭉비쭉 그래 쌓아면서, 집에 가서 아이들 만나면 아이들한테도 '뭐 우리 목사님은 뭐 이렇고, 에 뭐 어떻고, 뭐 설교도 어떻고' 그게 솔빡 어데로 가느냐? 자기의 자녀에게로 갑니다. 자녀에게.
자녀에게 가 가지고, 저거 집에서야 저거 아버지 저거 엄마가 제일 낫지 안하요? 이러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시시하게 여기는 목사를 저거들이 존경할 리가 없다 말이오. 시시하게 여기니까 그 아이들이 '예배당에 가는 건 가지마는 뭐 설교 소리 들으러 가는가?' 갔다 와 가지고 '아따 설교도 너무 길어서 어쩌고' 이러면 저거 아버지가 좋아할 줄 알고 저거 엄마가 좋아할 줄 알고 그런다 그말이오. 그러면 이제 '글쎄' 그게 자기 자녀를 불구덩이 속에다가 집어던져서 마구 태워 죽이는 것보다 더한 건데, 범죄케 하는 자는 차라리 돌을 모가지에 매 가지고 바다 가운데 그 사람을 던져 죽이는 것보다도 더하다 했는데, 자기에게 대해서도 그것이 남을 범죄케 하는 것이 바다 가운데 빠져서 자살하는 것보다도 자기에게 화가 더 크다 했는데 떡 가 가지고서 '야, 오늘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지?' '하나님 눈에 안 보이던데.' '눈에 안 보여?' '목사님이 설교 하시던데.' '사람 보기에는 목사님이 설교하시지마는 그 속에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설교하시는 거라.
그러기 때문에 껍데기는 목사님이고 속에 알맹이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너한테 뭐라고 말씀하시지?' 가면 하나씩 들으면 '아이구 네가 이걸 알아들었구나. 깨달았구나.' 이러면서 과자도 주고 대우도 해 주고 '참 우리 아무것이가 설교 말씀을 잘 들어.' 이러면서 '야, 나도 알쏭 달쏭한데 네가 알아들었나?' 이러면서 아주 그러니까 요게 용기를 내 가지고 예배당에 가면, 가려 하니까 하니까 쩌뻑쩌뻑 '인제 오늘도 한번 칭찬 한번 받는다. 오늘도 과자 한 개 얻어 먹는다.' 이래 가지고 가 가지고서 설교 듣고 가만히 딱 듣고 있다가 '엄마 아빠 오늘 하나님께서 설교를 뭐라고 하셨지요?' '하나님이 설교하셔, 목사님이 설교 안 하시고?' '아이고, 엄마 아버지는, 목사님이 설교하시지만 그 속에 하나님이 목사님을 통해 가지고 그 안에 계시며 설교한 것 아니요? 그라면 하나님이 설교하신 것 아닙니까?' 이러면 '맞다, 맞다. 네 말이 맞다.' 이래 또 칭찬해 주고, '오늘 무슨 말씀 하신 것 압니까? 나는 알아요.' '아나? 뭘 알아? 알아 봐라.' 이러니까 제가 딱 들은 것 요렇게 말하면 그만 등어리를 뚜드려 주며 말이지 그럴 때는 또 장난해도 괜찮애. 아버지가 말이야, 아들을 어깨도 한번도 태이고 업고 빙 한번 돌기도 하고 '우리 아무것이 참 장하다.' 이렇게 해서 이러니까 이게 학교 가서 공부하는 것도 하 지마는 그보다도 '보자, 하나님 말씀을 오늘은 듣는데 어떻게 할까? 무슨 말씀 듣는가?' 이러니까 그 말씀을 신실히 듣지, 하나님 말씀으로 듣지,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복된 줄 알지, 하나님 말씀 어기면 벌받을 줄 알지 이러니까 그만 성자 성녀가 된다 말이오. 저거 아들 성자 성녀 만들어 놓으면 누가 좋을 건고? 누가 악인을 만드느냐 그말이요? 아버지 어머니가 악인을 만들지.
집에서 목사 논평하지 말아요. 암만 논평해 봤자 욕이 뚫고 들어올까 싶어 나 때문에 하는 게 아니고, 물론 내가 감화를 못 줬기 때문에 그렇지마는 감화 못 줘도 나한테 와 가지고서 '이게 나쁩니다' 이러든지 그리 안 하면 저 투서함에 써넣든지 이러지 집에서 자녀 듣는 데일랑은 그렇게 하지 말아요.
자녀 듣는 데는 어쩌든지 '오늘 참 은혜가 있더라. 이런 말씀을 들었나? 네가 기억했나?' 은혜가 없으면 속으로 말이지, '아이고 은혜가 없다 은혜가 없다.' 이래도 집에 가 자녀들에게는 '오늘 목사님 참 설교하시던데 은혜가 있더라. 이 은혜의 말씀 들었나?' '뭐인데요?' '요런 말씀' '아, 나도 들었어요.' '봐라, 네가. 참 그렇지 않느냐? 이스라엘이 우상 섬기다가 다 멸 망받았다 했지, 간음하다가 멸망받았다 했지, 시험하다가 멸망받았다 했지, 과연 오늘 우리도 그런 게 있지 않느냐? 우리도 이런 이러니까 오늘 그것을 회개를 해야 되겠다. 이런 죄가 있다.' 이러면 그 아이가 '하나님 말씀 어기는 거는 죄가 되고 이것 안 되는구나. 회개해야 되는구나.' 그러면 그게 나중에 성녀가 되고 그러면 하나님이 뭐 거기 복 주지 화 주겠습니까? 이러니까 부디 남편이 가 가지고 아내한테 사람 같잖게 중얼중얼해 가지고 뭐 말씀 설교 어떻다고 그런 평하지 말고, 또 아내도 가 가지고 목사 설교 듣고 중얼중얼 평해서 저 망하는 일 하지 말라 그말이오. 여러분들이 망하는 일 하지 말아요. 또 이 설교 말씀대로 하면 복됩니다. 바르면 가르치면 되지 않습니까?
오늘 만든 우상이 뭐입니까? 만든 우상은 보고 춤을 추고 먹고 마시고 잘됐다, 아이고 과장이 됐단다, 아이고 과장이 됐어요? 앞집 사람이 오고 뒷집 사람도 오고 옵니다. '우리 과장 됐답니다. 오늘 한판 냅니다.' 야단을 지기고 이러지마는 지금 하나님이 뭐 하나님이 그 집에 와 가지고 좀 그 집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어쩐다 해 가지고는 그까짓 거야 뭐 사람 같잖이 여긴다 그말이오.
내가 어떤 집에 가니까 무엇을 막 만들기는 막 야단 잔치를 만들어 쌓아.
만들어 쌓는데 우리 대접하는 건, 권찰님하고 가니까 우리 대 접하는 것은 시시하게 대접을 해. '오늘 누가 옵니까?' 이러니, 우리가 얼른 가기를 원해.
'누가 옵니까?' '뭐 도지사 부인하고 또 뭐 검찰청장 부인하고, 또 뭐 판사 부인하고, 뭐 또 시장 부인하고 뭐하고 누구하고' 쭉 그래 가지고 오려 한다고.
기분 나쁠까 싶어서 말 안 하고, 뭘 차려 가지고 나왔어. 입에 안 대고 기도만 딱 하고, 그 다음에 한번 벼락을 냈어. '네가 그래 가지고 안 망하고 될 줄 아느냐? 네가 하나님을 지키고,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그들이 지금 막 달라붙어 가지고 막 이렇게 추켜 올리고 지금 이러지 하나님에게 버림당하면 그 사람들이 네가 가려 하면 피해 다녀서 너 하루 종일 찾아다녀도 그 사람들 만나지를 못할 것이다.' 이랬어.
얼마 지나고 난 다음에는 천물이 되는데 살림도 팍 내려가 버리고 다 천물 돼 버리고 뭐 이제는 그 사람들이 접촉해 주려 해야지? 따라다녀도 교제를 못 해.
누군지 아는 사람은 알 거야.
그뒤에 그랬지마는 회개를 해요. 회개하며, 울면서 회개를 해요. 울면서 회개를 해도 속에 안 해. '울면서 회개해도 네가 오십 살이 넘어야 속속들이 회개하지 그전에는 회개 안 한다. 외식하는 회개다. 암만 울어봤자 그 눈물에 나도 안 넘어가는데 하나님이 넘어갈 줄 아나? 안 넘어간다. 회개를 해야 된다. 오십 살이 넘어가야 속에 진짜 눈물이 나을 거다.' 내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지금 한 오십 살 넘었으니까 아마 눈물이 나왔을 거라, 분명히 나올 거라.
어리석지 맙시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밤에 한 가지 말씀을 마지막으로 요 말씀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뭐이냐? 원망하다가 멸망을 받았다'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밥이 없고, 물이 없고, 고기가 없고 하니까 원망할 만하지 않습니까? 그랬는데 원망하다가 멸망받았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그게 시험 아닙니까? 그게 시험인데 피할 길이 뭐입니까? '피할 길 내사 감당하게 해 주신다' 지금, 우리 사람이나 꼭 같애요. 사람이나 꼭 같애요. 어떨 때는 사랑하는 아내가 뭣을 원치 안해도 좋은 걸 사 가지고 와서 '여보 이것 혹 뭐 필요 있소?' 이러면 '아이구 이것 사 가지고 왔습니까?' 좋아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또 말이요, 연애하는 그게 달라. 여러가지 또 있어. 어떨 때는 그것을 사 가지고 가지 안하고서 떡 이래 가지고 있으면 '뭐이 좀 필요한데요.' 못 들은 척 이래 가지고 있으면 '그게 좀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 못 들은 척하고 있으면 자꾸 달라붙으라 그말이요, 지금. 말하자면 좀 세월나도록 하는 거라. '그것 좀 하나 좀 사 주십시오.' 또 못 들은 척하고 '그것 좀 사 주십시오.' 그러면 속으로 좋다 그거요.
또 '사 주십시오' 이러면 마음에 이제 실컷 배가 차고 이래 자꾸 되면, 달라붙는 걸 좋아하는 거라, 달라붙는 걸. 남편은 아내가 달라붙는 걸 좋아합니다. 떡 그러면 그 다음에는 제 생각보다도 횔씬 좋게 많이 해 준다 그말이오. 그렇지 않소? 아이들도 어떨 때는 생각도 못 하는 것을 선물을 해서 필요한 것을 '네가 이것 필요해?' '이것 뭐입니까?' '이게 이런 것이라.' '참 필요 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래 해 주는 것도 있지마는 어떨 때는 아버지에게 간청을 원할 때도 있다.
그말이요, 간청을.
'아버지 나를 만년필 하나 사 주십시오. 그것 뭣 있는데 뭣 하나 그것 하나 사 주십시오.' 이러면 못 들은 척 하고, '그것 뭐 하려고?' '그것 사 주십시오.' 자꾸 사 달라고 간청을 하고 자꾸 이러기를 바란다. 그 말이오. 자꾸 그러면 그래 떡 못 이긴듯이 하면서 '그 뭐하려고 그래 쌓아? 얼마나 가는데?' '좋은 거는 만 원 가고 그런 것은 팔천 원 가고 그런답니다.' 만 원짜리를 사 주면서 '그래 만 원짜리 하나 사.' 팔천 원짜리 사려 했는데 만 원짜리를 턱 사라고 준다 그거요. 그게 뭐이냐?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욕심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 없을 때 뭐 하려고 원망을 해? '하나님이여, 우리 물이 없어서 배가 고파 못 견디겠습니다. 물을 주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물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은 고기도 주실 수 있다. 모든 것 하실 수 있다. 또 안 주시면 이것 유익되기에 안 주신다.' 하나님을 그분을 든든히 믿고 했으면 그때 당장에 가나안에 다 갔어요. 당장에 가나안에 가지 그뭐 사십 년 있을 게 뭐 있습니까, 있기를? 당장에 가나안에 갈 수 있지마는 이거는 하나님 믿지 않기 때문에 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 여러가지 낭패당하는 일 어려움 당하는 일, 참 원망 불만 불평할 수 있는 그럴 때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망하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비관하는 이거는 순전히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이거는 순전히 마귀가 주는 것이오.
이것 하지 말고 이것 대신 하나님을 믿고 부르짖어 '주십시오. 주십시오.' 하나님도 그것 원하거든요. 예수님 이-히브리서에 보면-심한 통곡으로 '아버지여 나를 이제 십자가 못박혀 죽으면 대속의 공로는 베풀지마는 내가 또 살아나야 이것들이 대속의 공로를 입을 것 아닙니까?' 하면서 심한 통곡을 가지고 간절히 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들어서 부활시켜 줬어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모형이오. 이러니까 부모가 자식이 부모에게 자꾸 들어붙는 걸 좋아한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부모의 정이 자식이 부모에게 들어붙을 때는 정이 있었는데 이게 좀 있으면 와서 해 달라 하는 것도 해 달라 소리 안 하고 입맛만 쭉쭉 다시고 있습니다.
알지, '저놈이 무엇이 필요해서 와서 저래 한다' 알아요. 재미는 없어. 아무 말도 안 하고 모른 척 하고 이러면 입맛만 쭉쭉 다시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래 앉아, 서로 이래 하고 앉았습니다. 참 재미 없어. 이러고 앉았어. 그러니까 정이 떨어진다 말이오. 대가리가 커지면 정이 떨어지요.
이래 와 가지고 '아버지 이것 사 주이소.' '그것 뭐 하려고?' '이것 사 줘요, 이것 내가 필요해요.' 자꾸 달라붙으면서 자꾸 이러고 '뭐이 필요해 그래? 그것 뭐 하려고 그걸 사려고 쌓아? 바쁘다. 내가 어데 가련다.' '이것 사 주고 가요.' 거머쥐고 자꾸 이래 달려맺혀 그러면 그게 좋다 말이오.
그러니까 못 이긴듯이 하고 '그래 그것 얼마짜리인데?' '싼 거는 오천 원이고 비싼 거는 만 원이고 그렇습니다. 오천 원짜리면 돼요.' '자' 만 원짜리를 턱 내 주면서 '사려면 좋은 것 사야지 나쁜 것 사면 되나? 그러면 만 원짜리 사라.' 이래도 인제 웃지도 안하고 이래도 달라붙는 게 좋다 그말이오. 부모는 자녀가 부모에게 달라붙는 것 좋고 부모를 믿는 것 좋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릴 때는 책임이 무겁소. 부모만 전적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달라붙고 좋아하고 이러니까, 자식은 키울 때에 세 살까지 먹을 때에 부모에게 달라붙는 그 재미, 그 영광 그것만 하면 대대학을 공부시켜도 벌써 학비는 다 받아먹었어요, 저거 엄마가. 세 살 먹을 때까지만 부모에게 달라붙고 그렇게 부모를 의지하고 바라보는 그것이 벌써 대학을 시키는 학비의 값을 다 아버지가 받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 있어요. 그러니까 그 부모가 얼마나 좋아하는 것입니까? 이런데 나중에 커 갈수록이, 뭐 하도 말 안 하니까 '야, 그게 뭐 필요 없나?' '뭐 냅두이소.' 속으로는 필요하지만 '냅두이소.' 정은 그만 천리 만리 떨어지는 거라.
이러니까 부모를 안 의지하는 것만치 멀어지고, 안 달라붙는 것만치 멀어지고, 안 바라보는 것만치 멀어지고, 안 의지하는 것만치 멀어지고, 멀어지는 것 아닙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대해서 우리가 암만 장성해도 우리는 갓난 어린 아이뿐이요, 어린아이 같소. 이러기 때문에 그분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고 간청하고 이것을 주님은 좋아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일 있을 때 그랬으면 되는 것인데 공연히 원망해 가지고 모세를 죽 이려고 아론을 죽이려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이거는 도무지 안 된다' 해 가지고 사십 년을 기다리다가 할 수 없이 광야에 다 죽어버리고 말았다 말이오.
광야에서 일찍 죽인 게 아니라 사십 년 동안이나 기다려도 가나안에 못 가서 다 나이가 많아서 죽어버렸으니까 할 수 없이 죽어버리고 새로 난 사람들만 갔다 그거요.
광야에서 일찍 죽인 게 아니라 기다렸어요. 기다려도 안 돼서 다 죽고 말았다 그거요. 오늘 저녁에 설교하는 것 그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에 약속을 다 해 놨는데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아무리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은 일이라도, 실수를 해 잘못됐더란대도 '이것 내가 잘못 됐습니다. 이것 용서해 주옵소서. 용서해 주면 내가 다시는 이 일 안 하겠습니다. 이렇게 안 하겠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다시는 이것 잘 못된 이런 일 하지 안하겠습니다.'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고 하나님에게 '어짜든지 이것 아무래도 해 줘야 되겠습니다. 해 줘야 되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귀가 어두워 안 듣는 게 아니지마는 한 번 말하고 두 번 말하고 자꾸 말하기를 원한다 말이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그렇게 자꾸 많이 하고 난 다음에 해 줘야 '아이고, 내가 기도했더니만 아버지가 줬구나 주시는구나.' 이렇게 알게 되지. 그것이 아버지가 우리를 가깝게 하는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그때에 광야에 가 가지고 어려움 닥치고 하는 것은 그것이 그 어려움 닥치면 여기에서 하나님한테 딱 들어붙어 가지고서 그만 가나안에 데리고 갈 수가 있을까 해 가지고서 어려움 주면 그것도 실패, 또 어려움 줘도 또 실패, 어려움 줘도 또 실패, 어려움 줘야 하나님께 들어붙는 일은 하지 안하고 자꾸 원망 불평하기 때문에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 그거요
우리가 오늘밤에 요것 회개합시다. 오늘 저녁에 설교 말씀하는 것은 요것이오.
자기에게 뭐 죄를 지어 가지고 잘못된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주홍같고 진홍같은 그런 잘못된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주님이여 내가 이것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그러면 주님은 고하면 사함 주셨는데 용서해 달라고 자꾸 이래 간청하고 간절히 달라붙으면 하나님이 그 실수를 하게 하고 그 낭패를 당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요 낭패를 당하는 요것은, 하나님께서 '네가 나한테 달라붙기를 한 냥중만 달라붙으면 내가 요 어려움은 해결해 주겠다' 하는 그 어려움이 있고 이거는 열 냥중이나 달라붙어야 이제 해결해 주겠다 하는 그것 있고 그러니까 어려움의 뭉텅이가 클수록 당신이 당신에게 많이 들어붙고, 많이 의지하고, 많이 바라보기를 원하는 그것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운동이라 그말이오. 이걸 믿습니까? 믿습니까! 믿습니까! 믿읍시다. 믿어. 믿어요. 믿어, 딴거 없어. 믿어요.
그런고로 당신이 우리의 모든 넘어지고 쓰러지고 엎어지고 하는 그것 다 예징입니다. 그게 뭐이냐? 그것이 어려움 당할 때 당신에게 달라 붙도록, 바라보고 의지하도록. 좋은 일 닥칠 때에 당신에게 감사하면서 영광을 돌리도록 이것 위해서, 당신과 우리와의 관계가 바로 되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예징했고, 모든 창조했고, 모든 현실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종전과 같이 여반은 일층 구관, 이층 구관, 저 신축. 남반은 일층 신관, 또 이층 신관. 삼층은 저 신축한 데는 여반 구관은 남반. 또 예배 시간은 반 시간 당겨서 다음 오일예배부터는 일곱시에 시작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등록한 분은 천구백이 명이 등록했습니다. 천구백이 명이 등록 했습니다. 등록 안 하시고 다 기도하는 줄 압니다. '그래도 등록하지 안하시고 기도 말고 선을 격발케 하도록 하기 위해서 등록을 해 주십시오.
해 주시면 그 한 분이 등록할 때에 다른 사람이 수백 명이 동해질 수 있습니다.
'아이구, 아무것이도 이래 기도록에 기록하고서 이래 기도하시더라. 나도.' 이렇게, 주님이 원하시눈 일,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구원하신 양떼인데 우리가 그것쯤 해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기도의 그 힘을 격발케 한다면 못 할 것 뭐 있소? 그것 못 할 만한 지위가 있습니까? 그것 못 할 만한 권세가 있습니까? 못 할 것 뭐 있겠소? 사람에게 구원이 된다면 우리가 죽어도 죽어야 될 것 아닙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바짝 기도해요. 작정합시다. 이제. 우상 섬기지 말 것, 간음하지 말 것 시험하지 말 것, 원망하지 말 것. 낙망하지 말고 기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