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4 15:23
은사위치에 있는 자에게
본문 :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 사데 교회는 특별히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은사 위치에 세워서 몇몇 사람을 자기에게 붙여서 주님이 성령님과 자기를 같이 붙드시고 일을 하시는데, 우리에게 성령님이 오신 것은 주님의 심부름하러 오셨습니다. 주님이 이 십자가의 대속의 역사를 베푸신 이 일을 모든 우리 성도들에게 개인 개인에게 주님이 대속하신 그 대속이, 지극히 큰 구원이 있는데, 그 구원을 성령님이 우리 개인 개인들에게 다 전하여 나누어 줘 가지고 우리 개인이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일하실려고, 예수님의 하신 그 일을 맡아 가지고 일할라고 오신 하나님이 성령님이시요, 또 맡아 일할라고 온 그 진리가 곧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그 계시 말씀과 또 영감 계시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주님이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셨다는 말씀은 주님이 성령님과 나를 붙들고 일하신다 하는 말입니다. 불들고 일하신다. 나를 통해서 일하신다. 그러면 나를 붙들고 일하시는 그 붙드신 것이 내가 주님을 택해서 내가 주님에게 일꾼 될려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주님이 우리를 택해서 일꾼을 삼으신 것입니다. 또 일꾼을 삼으실 때에 당신이 당신에게는 힘이 모자라서 내게 있는 힘을 얼마되지 안하는 힘이라도 그 힘을 당신이 이용해서 당신의 일을 하실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그 일은 타락한 자들에게는 털끝만치도 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빛의 일을 할 수가 없고. 죽은 자가 산 자의 일을 할 수가 없고. 살리는 일도 할 수가 없고. 산 자를 만드는 그 능력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붙들고 일하십니다. '일곱 별을 잡으신 이가 가라사대' 이래 말씀하신 것처럼 여기에도 가지신 이라 말은 내나 잡았다는 말 한가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나를 당신의 그 생명 운동에 일꾼으로 쓰실려고 당신이 나를 만드셨고 또 나를 택하셨고 나를 등용하시고 이렇게 하시는 것이지 그것이 내게 무엇이 있어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닌 것이고. 당신에게 있어서 그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등용당한 이 등용을 당하는 것이 이것이 내게서 난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서 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제일 기초가 되는 건데 제일 제일 그 밑절미가 되는 근거가 되는 이 사실이기 때문에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나를 붙드시고 일하시면 내 힘을 들여 가지고 일하시는 거 아닙니다. 당신이 당신의 능력을 가지고 나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통해서 일하시는데 내가 만일 그분의 일하시는 데에 필요한 요소가 있다고 하면 그분이 이 일을 위해서 없는 가운데서 만들어 가지 게 된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내게 그 일에 대해서 뭐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다고 하면 있는 그것도 내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필요한 것이 되어지도록 만들어 가지고 하시기 때문에 순전히 당신의 그 객관 능력입니다. 당신의 힘을 가지고 이루시는데, 그러면 이루시는 그 구체적인 방편에 있어서는 혹 주님과 나와의 의사를 같이 해 가지고 회의적으로 그 의논 해 가지고 당신의 의사와 내 의사를 서로 이렇게 조화해 가지고 그렇게 하시는 것인가?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당신 혼자의 의사를. 당신 혼자의 쓰는 그 도구처럼, 암만 생명 없는 이런 농구처럼, 생명 없는 도구처럼 우리를 쓰셔서 당신의 능력으로 당신이 계획하신 그 뜻을 이루시지, 거기에는 쓰이지는 내가 되어져 있는 그것도 당신이 쓰기에 합당하도록 당신이 만드신 것이요, 내 스스로 있는 게 아니요 만드신 것이요, 또, 만드셨는데 나를 지금 들고 쓰시는 것도 당신이 나를 등용해서 쓰시는 것이지 내게 무슨 내 의사가 있고 내가 소원하기 때문에 되어지는 거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요거 순전히 주관의 것이나 주관의 역사나 주관의 종류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일하실 때에 일하시는 그 모든 일, 일이나 방편이나 그런 것들은 혹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과 내 것을 합해 가지고 하는가? 합해 가지고 하는 게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혼자의 의사만을 이루시지 내 의사는 거기에 추호도 가입을 안 시킵니다. 당신 혼자의 의사를 당신 혼자 만든 도구 가지고 당신 혼자의 뜻을 당신 혼자의 그 능력을 가지고 일하기 때문에 내라는 존재가 지음 받은 존재 된것도 당신 쓰기에 합당하게 당신이 만드셨고, 또 당신이 이용하시고, 당신이 당신의 뜻을 나를 통하여 이루시고. 당신의 능력이 나를 통하여 이루시는 그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순전히 주님의 시발이나 또 존재나 시발이나 존재나 모든 설계나 또 시공이나 또 그 모든 지능이나 모든 것이 순전히 주님의 것이지 주님의 것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주님의 것으로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을 때에 믿는다는 것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내가 그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믿는 것은 마음으로 믿을 때에 내가 이성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이성 판단에서 이렇다 이성으로 믿고 지식으로 믿고 감각으로 믿고 또 사상으로 믿고 자기의 신경으로 믿고 신경으로 믿고 또 자기의 모든 마음의 요소로 믿고 자기에게 있는 욕심이 믿고 성질이 믿고 뜻이 믿고 소원 이 믿고 자기의 피부가 믿고 전부가 다 믿는 그것이 되면, 순종하는 것이 되면, 자기 욕심도 암만 다른 거 내비두고 자기 욕심은 거기에 순종 잘하고, 욕심은 지금 딴 거 엉뚱한 일 하면 안 됩니다.
자기에게 있는 그, 마음의 요소로는 수 없는 종류가 있는데 그 수 없는 것이 다 믿을 때에 되지 믿지 안하면 않는 고것 때문에 고게 들어서 사고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내가 은사 위치에 있는 자 내가 존재하게 된 것이고, 내가 거기에 쓰도록 합당하게 만든 것이고, 마치 공장에서 어떤 부속품을 만들든지 그 부속품을 거기에 쓰기에 합당한 부속품을 만들어 가지고 부속품이 되어진 것이지 부속품 스스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뭐 차를 하나 만들었다 할지라도 그 차에 대한 모든 윤곽이나 부속품 그것이 그 제작자의 마음대로 계획대로 다 만들어져 가지고 그게 존재한 것이지 차라는 것이 제대로 생긴 거는 먼지 만한 것도 없고, 순전히 제작자 그 이의 뜻으로, 그이의 솜씨로, 그이의 지능으로, 없는 가운데에 그게 생겨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그 뜻대로 이용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팔면 물건으로 팔려 나가게 되고, 또 팔아 가지고도 고 대로 사용돼 지지 그것이 무슨 변화돼 가지고 딴걸로 사용된다고 하면 변화된 것은 다 사고뿐이고 그거는 박살되는 것뿐이지 건설이라 하는 것이나 보증이라 하는 것은 하등 딴것으로는 하나도 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꼭 이와같이 로마서에 다 같은 진흙이지만 토기장이의 뜻대로 그 진흙을 이런 그릇으로 저런 그릇으로 만드니까 만들어져 돼 가지고 있지 제가 무슨 조그매라도 요거는 도가지가 될 요소가 있어 가지고 도가지가 된 것 아니고, 조그만한 종바리가 될 요소가 있어 가지고 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도가지된 그것도 만드는 그분에게서 다 나온 것이요, 종바리 된 것도 그래 된 것이요, 또 만들어 진 것도 그분의 것이라고 그렇게 발표를 성경에 해 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사 위치에 있는 것이 내가 무슨 그런 자격이 있고 소원하고 해서 당신이 '아, 그렇게 간청하면 내가 써 주마.' 해 가지고 등용된 것이 아니고, 또 내게 무슨 자격이 있으니까 '아, 나는 이런 자격이 있으니까 좀 와서 일 해 줄 수 없느냐?' 하고 간청해서 등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 순전히 주님의 그 객관 역사지 주관 역사가 하나도 없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믿는 것이 요것이 성경대로 바로 믿는 것입니다.
바로 믿을 때에. 바로 믿을 때에 성령은 와서 일하실 수가 있지 바로 믿지 안할 때에는 하나님은 거기에 일할 수 없습니다. 바로 믿지 안 할 때에 바로 그것이 뭐이냐? 삐뚤어 진 것이요 그것이 죄요 거기는 악령이 와서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삐뚤어진 데는 악령이 와서 일하게 되고 바로 될 때는 악령은 와서 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하고 안 하는 것이, 마귀가 일하고 마귀가 일 못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됐을 때는 사망이나 악령이 침노하지 못하고 삐뚤어지게 됐을 때에는 성령이 침노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받은 바의 그 은혜를 고대로 보존할 때에 성령은 당신의 것이 됐기 때문에 당신이 와서 역사할 수가 있지만 우리가 받은 바의 그것을, 받은 바의 그 은혜를 내가 고대로 가지지 안하고 내가 변질될 때에는 그것이 막 바로 주님을 배반한 것이기 때문에 주님은 강제로 밀고 다시 들어 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은사 위치에 있는 자에게는 첫째 중요한 것이 나를 나 되게 해 가지고 나를 등용한 것이 순전히 당신의 홀로의 그 능력으로 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 능력으로 만들어진 자가 그분에게 등용된 것입니다. 등용 돼서 그런 직책을 맡게 됐기 때문에, 우리는 첫째가 이 모든 것을 미루어 다 생각하면서 자기 것이 아니라는 그 표시가 뭐이냐 하면 감사입니다.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그 표시가 감사요, 그러기에 감사도 그저 여기에 어떤 사원이나 어떤 직원이 기를 시험을 쳐 가지고 합격이 되니까 이렇게 등용한 거와같이 '나를 등용해 주셨으니까 감사합니다.' 하는 그런 감사는 주님은 받지 않습니다. 주님에게는 해당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없는 가운데서 이렇게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쓰시니 감사합니다' 그 모든 시초부터 존재의 시초 시발부터 거기에서부터 당신 한 분으로 말미암아 되어져서 나를 이렇게 만들어서 이렇게 쓰시니' 하는 그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할 것이고, 그것이 이제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감사가 우리로서는 제일 중요합니다.
감사가 어떤게 감사냐? 감사는 그분이 하신 것을 인정하는 감사요, 그분이 나에게 인정해서 나에게 만들어 주셨으니 그 은혜를 잘 보존하는 것이 그것이 감사요, 또 그 은혜를 나에게 주셨으니 그 은혜가 무엇 때문에 그 은혜의 존재가 있어졌느냐? 은혜의 존재가 있어진 것은 그 은혜로 어떻게 하기 위해서 나를 존재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사명까지를 생각을 하고 감사하는 그것이 감사라 했기 때문에 그 감사가 제일 중요합니다.
감사가 제일 중요하고, 둘째로 중요한 것은, 이러기 때문에 내가 무슨 일하는 게 아니고 내가 내 일 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일을 당신이 주신 내게 능력 가지고 일하는데 그 능력은 지극히 큰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어떤 능력이냐? 그 능력은 너희에게 맡겨 주신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분이 모든 것을 예정했습니다.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또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또 섭리하시고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우리 첫째 아담이 졌을 때에는 뱀이 제것 아닌 것이 제것처럼 가지고 이렇게 날 뛰었지만 예수님께서 그 뒤에 도전하셔 가지고 예수님이 승리하셔서 이제는 뺏긴 것을 도로 찾고 보니까 근본 목적과 근본이 완전히 복구됐습니다. 근본이 완전히 회복 됐습니다.
회복됐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내게 주셨다 하는 그 말씀은 이 모든 순서 순서는 예정인데, 모든 순서나 도든 존재가 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루셨고, 또 모든 순서인 예정이나 존재나 보존이나 또 주권 섭리나 모든 전부 우주와 영계에 가득찬 거 이 전부는 다 당신의 목적하나를 이루시기 위해서 근본 이렇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목적 다음에는 예정이 있었고, 예정 다음에는 창조가 있었고, 창조 다음에는 모든 것이 보존과 섭리가 있었는데 이 근본이 목적 곧 우리 구원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 역사를 위해서 존재케 된 것인데, 이것이 첫째 아담이 망령되게 해 가지고 뱀에게 이것이 빼앗기게 됐습니다. 뱀에게 빼앗겨 가지고 된 것인데, 뱀에게 빼앗겨 가지고 된 그것이 모든 피조물 다 원치 안하지 만서 그 대표자인 책임자인 아담이 패전해서 뱀에게 유혹받아서 뱀의 것이 됐기 때문에 아담에게 된 것은 다 뱀의 것이 된 것입니다. 이러니까, 완전히 하나님의 창조하신 것이나 예정한 것이 다 이것이 다 변질이 돼서 원치 안하는 것들에게 다 이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랬다가 예수님에게서 승리하신 다음에는 모든 것이 복구됐습니다.
원상 회복이 됐습니다.
이러니까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내게 주셨다 하는 것은 이제 승리하고 근본대로 모든 존재는 그리스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존재요, 또 순서는 그리스도의 목적을 이루는 순서라. 그것을 가리켜서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모든 전체가 다 내 것 됐다. 내 것 됐다. 이제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이 이용당하고 존재하고 모든 전개되게 됐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내게 주셨다 이렇게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극히 큰 능력이 내 배경되어 있다. 지극히 큰 능력이 배경되어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서 예정하시고 창조하신 그 분이 나의 배경이 되고 딴거는 섞이지 안하고 그분만이 내게 배경이 되어 있는데 그 배경은 끝이 없는 무한의 것으로서 내게 배경되어 있다. 내 자본이 그것이다. 나의 원천이 그분이시다. 나의 그 수도의. 저수지의 그 저수가 그분이시다. 그분의 은혜시다. 그분 자체가 그럴 뿐아니라 그분이 움직이는 역사와 움직여 놓은 역사와 모든 정해 놓은 그런 것이 다 전부 다 내게 맡겨 주신 이 은사 위치에 된 이 사명을 감당하는 이것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 이것이 나의 배경이다. 나의 자본이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둘째로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이것이 성경에 약속돼 있는 것인데, 약속되어 있는 것인데 믿지 않기 때문에 고장이 생겨서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뭐 믿고 뭐 하는 것 아닙니다.
믿으면 변화됩니다. 믿을 때에 벌써 그 지식이 믿는 대로의 지식이 되고, 소욕이 믿는 대로의 소욕이 되고, 성품이 믿는 대로의 성품이 되고 사상이 믿는 대로의 사상이 되고. 비판과 평가가 믿는 대로의 비판과 평가가 되고 이러면 감정이 믿는 대로의 감정이 되고, 신경이 믿는 대로의 신경이 되고, 모든 그러면 피부가 믿는 대로의 피부가 되고 모든 그 근육이 다 믿는 대로의 근육이 되고, 그러니까 자기의 희로 애락과 모든 것이 다 그대로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것을 믿어서 마음에 안심이 되어지고 감정에 안심이 되어지고 자기의 신경에도 안심이 되어지고 자신의 모든 이성 비판에도 안심이 되어지면 그것이 뭐이냐 하면 곧 변화요 성화요 그것이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있는 것이라. 뭘 가지고 똑딱거려서 일하는 게 아니고 내가 믿을 때에 와 가지고 내게 일하기 때문에, 그 능력이 모든 피조물을 다 이용할 수 있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자기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만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당신 것 된 것 아니라 당신이 사실이 내 배경이요 나의 힘인 것을 믿을 때에 우리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사망과 생명과 모든 전부가 다 내것이라 하는 이것을 별스러운 말로 생각할 게 아니라 그것이 그대로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믿으면 그대로의 역사하는 것이고 믿지 안 하면 이것 때문에 역사하실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라는 요 비밀을 우리가 지극히 보배로운 이 믿음의 비밀을 자기가 깨닫고 요 믿는 것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름은 역사인데. 운동인데 이름을 믿음으로, 믿기 때문에, 믿음으로 그 이름이 와서 이렇게 했다. 믿음으로 그 이름이 와서 했다. 그 운동 역사가 와서 그 역사가 와서 그 사람을 통해서 이런 것 저런 것을 했다. 그런데, 그것을 그라면 그 개인이 받기는 어떻게 받느냐?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믿음. 믿음은 선물인데, 주신 그 믿음이 내게 와서 내가 믿어질 때에 그대로 내나 와 가지고 이루어졌다.
이거 순전히 객관 역사요 주관 역사가 하나도 아닌데, 그러기에 나를 만들어서 나를 나 되게 만들어 가지고 나를 등용하셨다 하는데서 첫째로 감사해야 되겠고 그 다음에는 이 지극히 큰 능력이 내 배경이 되어 있고 내 자본이 되어 있다는 것 이것을 둘째로는 우리가 믿어야 되겠고. 셋째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지 당신의 뜻을 이룰 때는 이 전부가 다 내 것으로 일하기 때문에 당신의 뜻을 이룰 때는 지극히 큰 능력이 네게 있는데 그 능력이 당신 뜻 이루는데 여기에 다 이용되고 일하고. 당신이 등용하신 여기에 다 합해 가지고 일하게 되고, 내가 여기에서 고장나는 것은 내 힘으로 할라고 하는 것이나 내 뜻으로 할라 하는 것이나 둘은 하나입니다. 내 뜻으로 할라고 하면 하나님의 힘은 없어졌을 때에 사망의 힘 제 힘만 가지고 하게 되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할라고 할 때면 여기에는 사망의 힘이라 하는 것은 생명이 왔기 때문에, 빛의 힘이기 때문에 어두움은 금방에 녹아져 버리고 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뜻대로 할라 할 때에 당신의 능력은 의례히 당신의 능력으로 하게 되고, 내 뜻대로 할라 할 때는 내 힘은 사망의 힘뿐이지 생명의 힘은 없기 때문에 사망의 힘 가지고 하는 것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뜻으로 하면 사망의 뜻이요 사망의 힘이 하는 것이요 사망의 결과를 맺을 것이요,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힘으로 하는 것은 생명의 결과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힘으로 할라고 하는, 주님의 힘으로 할라 하는 그 말이나 주님의 뜻대로 할라는 그것이나 꼭 같은 것이요 하나입니다. 두 말을 하지만 하나요. 누구든지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다.' 이렇게 자기가 말을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다고 내 의사는 내 사욕이라는 것은 다 없애고 당신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고 당신에게 피동으로서만 나는 하겠다. 이렇게 할지라도 거기에 내게 이런 힘이 있으니 내 힘이 무슨 저 사람보다는 내게 뭐 이런 힘있고 저런 힘있는 뭐 내 힘이 있으니 이 힘을 들여 가지고 하면 저 사람보다 더 낫게 할 수가 있겠다 해서 자기 힘으로 하겠다고 하면 막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하는 게 아니고 자기 뜻으로 바꿔져 버리고 말고. 성령으로 하지 안하고 악령으로 하는 것. 사망의 역사로 바꿔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기에서 자꾸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는 하는 데에 자기 힘 많다고 자기의 힘 가지고 하겠다고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그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는 한다 하지만 자기 힘으로 하는데는.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은 마귀 일 사망의 일만 하지 하나님의 뜻대로의 그 일은 생명의 일이기 때문에 자기 힘으로는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의 힘이기 때문에 사망의 힘이 어떻게 생명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할 수 없어.
없기 때문에 그 힘 가지고 할라 하면 내나 사람의 뜻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거요
그러기에, 여기에 제일 금물은 뭐이냐? 그 인적의 요소가 금물입니다 인적의 요소가, 사람의 뜻이라는 사람의 의사, 사람의 욕심, 그것 또 사람의 무슨 힘 그것은 뭐이냐? 그것은 믿음의 적입니다. 믿음의 적이오. 믿음의 적이 뭐이냐 하면 믿음의 적이 뭐이냐? 하나님의 뜻의 적이 뭐이냐? 인간 뜻이요, 믿음의 적이 뭐이냐? 하나님의 능력의 적이 뭐이냐? 인간의 실력 인간의 힘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이런 것 많은 사람이 일할 줄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들어서 방해를 지기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자기의 그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게 다 음행의 포도주지 아무 여기에는 쓰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가 하나님에게 드려서 갚음을 받을 자가 있느냐?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서 줘 가지고 준 그것이 잘 그대로 그 이행되게 되면.
이용되게 되면 자꾸 얼마든지 자라간다. 이러기 때문에 그 비유에. 포도나무 비유에. 포도나무 둥치와 포도나무 가지를 말한 것인데 가지에게 만일 둥치에서 나온 것이 아닌 껍데기라든지 알맹이라든지 순액이라든지 잎사귀라든지 꽃이라든지 열매라든지 둥치에서 나오지 안한 것은 전부 포도나무를 죽일라고 하는 해독의 것이지 하나도 도움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거는 순전히 만일 않게 악 떨어지면 벌써 소스락 벌거지입니다. 소스락 벌거지가 포도나무 그 가지에 파고들어 와서 거기 가 있지 그 외에 껍데기 발려 있으면 껍데기 먼지가 발려 있는 그것은 방해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것이 이래 덮어 가루고 있는 것도 방해요, 전부 햇빛을 쐬야 되는데. 이러기 때문에 순전히 우리는 주님 한 분으로 인하여 온 것만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우리에게 유익된 것이지 딴 걸로 온 것은 유익이 안 된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단단히 간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부터 삼십 삼 년 전인데 고려 신학교 다닐 때에 포도나무 비유에 대해서 이 설교를 하니까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억지 소리 많이 한다 이렇게 말하고 제가 그때에 지금 한 이십 한 팔구 년 했는데 거창에 저게 삼봉산에 집회하고 오니까 ○○○교장이 제 말을 듣고 한번 와서 설교를 한번 해 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해서 하도 간청을 해 쌓아서 집회를 마치고 오면서 잠깐 그 중 고등학교에 제가 들어갔었습니다. 그 중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예배 인도를 할 때에 그때에 내가 하나님께 내게 주시기를 포도나무 비유에 대해서 말씀해라.
포도나무 비유에 대하는 것은 네가 말하자면 완전히 주님으로 말미암아 나와야 이것이 네가 썩는데 이르지 안하고 이 가치 있는 일 하지 뭐 네 의사나 그런 것 가지고 하면 다 죽는다 다 망한다 하는 고것을 그때 증거를 했습니다. 포도나무 그 사람 말하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포도나무 비유를 말하면서 순전히 포도나무 가지에 있는 것은 둥치에서 나온 것뿐이지 둥치에서 나오지 안한 것은 전부다 포도나무 가지를 해치는 것뿐이지 유익된 거는 아니다. 둥치에 나오지 안한 열매도 없고 가지도 없고 잎사귀도 없고 줄기도 없고 진액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전부 거기에서 나와야 된다 하는 걸 이걸 말하니까 그 뒤에 비판이 들어오기를, 말하기를 '그분은 뭣을 자꾸 거기에서 뭐 사색을 하고 있고 뭐 아는 것을 증거하지 안하더라. 뭐 자꾸 이렇게 저렇게 자꾸 말을 빈정거려서 나가는데 그렇더라.' 보니까 은혜 받지를 못했다는 거, 완전히 말귀를 못 알아들었다는 것을 그때 제가 봤습니다.
그분도 뭐 외국에 유학도 했고, 다 최고의 학문을 가진 사람들인데 뭐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말이오. 못 알아들으면 자꾸 이거 못 알아듣기는 왜 못 알아듣느냐? 이 뱀의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이 정 반대이기 때문에 뱀의 지식 가지고 뭐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뱀의 지식을 죽이는 것이 우리에게 문제요, 뱀의 지식을 죽이는 것이 문제요. 자기의 주관은 벌써 첫째 아담으로 타락되어 있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죽이는 데에 힘을 써야 되고 없애는 데에 힘을 써야 되고 거리끼지 않도록 하는 데에 힘을 써야 되지 그것 가지고 악령, 악성 악습 가지고 이 성령의 역사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다 착오 돼 가지고 고장이, 폐단이 생겨지는 것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세 가지를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등용하셨다. 지극히 큰 능력이 나를 붙들고 일하기 때문에 내가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진 자이다. 이런 데에는 당신의 뜻을, 당신의 힘 가지고 당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지 거기에는 내 뜻이나 내 힘이라 하는 것은 그것은 다 금물이라. 거기에는 다 사망이기 때문에 방해 그것이 다 본질과 본성이 아주 유일적의 것이라 아주 유일적의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적이요, 내라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내 지식 인간 지식을 멸하기 위해서 왔고 인간의 능력을 멸하기 위해서 왔고 인간의 모든 소욕을 멸하기 위해서 왔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죄와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내가 왔다 그래 말씀했어. 주님이 죄와 마귀를 내가 멸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셋째로 이것을 생각하고. 그러니까 고 다음에 네째로 할 것은 뭐이냐? 이제 내가 죽도록 충성하는 것 충성뿐입니다. 그러면, 충성하면 여기에서 또 착각을 사람들이 가지게 돼. 충성하면 내게 있는 것을, 날 등용해 쓰셨기 때문에 내게 있는 지능 가지고 충성해야 되겠다. 내게 사상 가지고 충성해야 되겠다, 내게 있는 의지 가지고 충성해야 되겠다, 내게 있는 뭘 가지고 있는 것을 다해서 충성해야 되겠다. 요게서 착각이 돼 가지고 마귀가 틈을 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 충성은 뭐이냐? 당신이 나에게 주신 것 그것을 버리지 안하고 당신이 내게 주신 것 그것 가지고 일하는 것입니다. 당신 가지고 일하는 것이지 내가 가지고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충성하라 말은 당신이 주시는 그 은혜의 부스러기 하나도 허비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그걸 멸시하지 말고 은혜의 부스러기를 소중히 여겨서 은혜의 부스러기 하나도 허비하지 말고 일하라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난밤에도 말했는데, 이것을 여러분들이 자꾸 우리가 명상하고 하면 환하게 밝아질 것이요 확신이 생겨집니다. 그 믿음 생겨지는 것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거는 뭐 하나님께 어떤 사람은 자꾸 주십시오 주십시오. 하는 그것이 기도인 줄로 생각하는 것인데.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또 당신의 그 목적이 무엇이며, 당신의 그 역사하시는 방편이 무엇이며. 나는 어떤 존재이며, 나와. 그분과의 관계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면 나는 어떻게 움직이면 어떤 성과를 만들고 어떻게 움직이면 어떤 성과를 만드느냐 그것을 자꾸 이렇게 명상하는 것, 그것을 생각하는 것, 생각하되 제 생각대로 주관대로 하는 게 아니고. 주관은 원수기 때문에 주관은 원수입니다. 주관은 어디서든지 구원의 도에는 주관은 원수입니다. 주관을 버리고 순전히 객관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계시, 문서 계시 말씀의 그 법칙을 껍데기로 받고, 그 껍데기로 그 법칙을 먼저 준행하고, 법칙 안에 들어가면 영감의 법칙이니 영감 법칙을 준행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성령과 나와 주님과 하나돼 가지고 역사 하는 것이니 거기에 따라서 역사하는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지난 밤에도 말했는데, 자꾸 눈을 감고 성경을 보고 생각하고, 또 모르면 성경 사전, 성경 사전을 가지고, 성경 법전이라 말이오, 성경 법전을 가지고 성경 법전에 뭐라 했느냐 보면 성경 번에 이렇게 했다. 그러면 내가 요거 잘못 생각했다, 요 법칙에 틀렸다, 틀린 것은 성경을 가리켜서 우리에게는 최고의 법전으로 최종의 법전으로 내 생애 법전으로 내 사상의 법전으로 내 마음의 움직임의 법전으로 내 욕심의 법전으로 내 모든 내라는 요소의 법전으로 요 법전대로 살아서 요렇게 해 주면 심판을 면하는 것입니다. 심판에 걸리지 않습니다. 요것을 주장을 해야 되고, 고 엊저녁에 하나 말하다가 말았는데. 오늘 아침에 지금 딴거는 또 말할 시간이 없겠습니다.
그랬는데, 엊저녁에 말한 대로, 그러면 사데 교회의 교인에게 말단에 있는 그 말단 교인들에게 흠점이 있다고 하면 흠점 있는 그것을 사데 교회 목회자 사자에게, 사자는 목사요 또 권찰이요 지권찰이요 반사요 보조 반사요 또 반사 안 됐어도 오늘 전도해 가지고 그 사람을 인도했으면 고 사람은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목사요, 오늘 하나 전도해 가지고 처음 믿는 사람이나 예배당에 예수 믿으러 가는데 나 한번 갔다 왔네. 자네도 같이 가세, 같이 가자고 인도했으면 그 사람은 고 사람에게 대해서는 제가 목사요 반사요 또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또 권찰이요 그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사자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사자인데, 이 사자에게 사데 교회에 흠점이 있는 그 흠점을 사데 교회 사자에게 네게 이런 흠이 있다, 네게 이런 잘못이 있다. 네게 책망을 이렇게 말했으니까 고 책망이라 하는 고것을. 그러면, 자기가 사데 교회를 자기가 맡았으니까 책임성. 책임 위치에서. 책임 위치에서 자기에게 자기 흠이라. 자기에게 흠이 있다고 말한 것인지? 책임 위치에서 책임적으로 그것이 자기의 흠이 됐소 자기에게 잘못이 됐고 자기에게 죄가 됐고 자기에게 삐뚤어져 옳은 행위를 하나도 보지 못했다. 삐뚤어진 잘못된 것이 됐는가? 책임성에서, 책임 위치에서. 책임적인 고 흠점인지. 책임적인 고 흠점인지, 그렇지 안하면 그 책임적인 흠점이 아니라 고 사자 그 자체의 흠점인지, 요것이 무슨 흠점으로 볼란지. 요 것을 지난 밤에도 많이 말을 했습니다.
말을 했는데. 고 말을 알아듣는지 몰라도 성령에는, 성경에는 고 책임 점에, 책임 위치에서 흠점을 말하지 않습니다. 책임 흠점에 말하지 안하고 고 자체의 흠점을 말합니다. 네 자체의 흠점이 거기에까지 미쳐 나갔다. 네가 네 자체의 흠점이 거기에까지 나가서 영향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도 네가 복의 기관이 된다 하는 것은 천하 만민이 너를 복 받는다는 것은 그 뭐 너 하나 바로 되면 천하 만민이 복 받을 수 있고, 너 하나 잘못되면 천하 만민이 망할 수 있다, 너 하나 바로 되면 천 대까지 잘 될 수 있고 너 하나 잘못되면 삼사 대까지 잘못될 수 있다. 너 하나에 모든 게 매였다 하는 것은 책임성에서 말하는 것인지, 책임 의무의 그 활동에서 말하는 것이요 그 책임감의 잘못, 책임감에서 말하는 것인지 책임감에서 말하는게 아니고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지요 요것이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지 요것을 결정을 지워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다 생각하기를, 그렇게 말하면 '예. 제게 그렇습니다.' 동장이 '너 이거 잘못했냐?' 하니까 '아, 내가 참 잘못했습니다. 예, 용서해 주십시오,' '너 이거 잘못했기 때문에 너는 사표를 내놔야 되다' 이라니까 '네, 사표내는 것이 지당하겠습니다.' 하는 그것은 뭐 뭐입니까 그것이? 그것이 동장 자체에 그렇다는 말입니까. 동장 그 주격의 책임감에서 그렇다 말입니까? 그 흠점이 책임감의 흠점입니까 그 자체의 흠점입니까? 그 자체의 흠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책임감의 흠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못 들은 분들은 뭐입니까? 책임감의 흠점입니다. 그거 책임감의 흠점 아니요? 기독자는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자꾸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책임감의 흠점이 아니다. 네가 그것 너는 온전한데 책임감의 흠점이 아니고 너만 온전하면 온전해진다. 네게 맡긴 것은 네게 열 명을 맡겼든지 세 명을 맡겼든지 맡겼는데. 너는 백 프로 온전을 맡겼든지 팔십 프로 온전을 맡겼든지 십 프로 온전을 맡겼는지 네게 맡긴 것이 몇 프로의 온전인지 그것은 네가 함이 아니라 네 자체가 그와 같이 돼 지면 돼진다. 너는 투명체와 같다.
네가 투명체와 같기 때문에 투명된 것 만치. 투명된 것만치 여기서 다 이 빛이 나갈 수 있고 네가 가리워졌기 때문에 거기에 깜깜하게 어두워진 것은 네 이 자체가 투명체가 되지를 못하고 거기에서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그 빛이 나가지 못해서 어두운 것이지, 네가 뭐 거기에서 못하는 게 아니라 네가 그때를 닦아서 환하게 주님의 그 모든 능력이 직접 통해 가 가지고 역사 하도록 거기에 가리워진 어두움만 닦아서 깨끗이 해라. 그러면, 네가 완전한 투명체로서 하나님이 너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역사가 너에게 하나도 제재받지 안하고 하나도 거기에 제재받지 안 하고 방해받지 안하고 바로 그대로 직통이 되어지도록만 하면 다 된다는 그것을 가리켜서 그 자체의 흠점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이계명에 말씀하신 것도 그렇고, 복의 기록된 그런 것도 그런 것이고 또 모두 다 모든 면에서도 다 말한 것이 그 전부 자체의 흠점에 대해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이 비밀. 예를 들면. 권찰 자기가 자기를 모르겠거든 권찰은 자기 맡은 식구에 대해서 이런 흠점이 발견된 그것이 바로 네게 있다 네게 그것만 하면 그거는 문제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뺄라고 하지말고 네게 있는 들보를 빼 봐라. 들보를 빼고 자세히 보고 그 흠 잡아라.
자세히 보고 흠점을 잡아라. 네가 자세히 보고 그 티를 빼 줘야 되지 그리 안 하면 뺄 수가 없다 그 말은 네게 있는 들보가 그것이 다 정리 돼 버리면 그것은 들보 정리하다 보면 그게 빠져 버리는 것이지 그 들보 정리하고 또 그거 빼러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는 그만 시간이 없어서 그러니까 요 둘만 똑똑히 해서 그러면 자기가 권찰이면 그 식구의 요런 것 조런 것 어떤 것 있는 고것을 정리하고 치료되는 데에는 자기에게 고 점을 흠점을 발견하는 것이 자기 자체에 있는 거는 발견을 못하니까 그 맡은 식구에게 있는 그것을 인해서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발견을 하고 자기에게 있는 것을 발견해 가지고 그것 고치고 나면 그거는 고칠 여가도 없고 고칠 필요도 없고 저절로 이거 따라서 고쳐진다, 여기 안에 있는 햇빛이 있는데 여기에 투명체 유리가 있으니까 여기에 가리워져 있으면 그 뭐 유리에 빛이 나가서 그대로 비출 것인데 여기에 유리에 여기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이 빛이 못 나가는 것이니까 너를 잡으신 주님이 다 능력이 할 수 있는데 네가 가리워 가지고 일이 안 되는 것이지 네가 아는 네가 뭐 그걸 가서 할 것이 아니라 너는 할 일도 없고 네 자체가 가리워지지 안하면 다된다. 너를 등용하신 분이 너를 통해서 하실 터이니까 네가 방해하고 있지 네게 속한 모든 양떼는 네가 방해하고 있지 아무도 방해할 자 없어. 네가 방해했으니까 네가 방해 그것만 치워 버리라. 회개하면 돼 진다.
그러기 때문에, 사데 교회야 네가, 네 행위가 온전치 않다. 네가 죽게 되 남은 바를 굳게 하라. 네가 회개하라. 말씀을 자꾸 그 이인칭으로 다 둘이 하나님께서 너, 너, 자꾸 너라 요렇게 말씀하신 여기에 큰 뜻이 있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서 알아야 할 것인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