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4 15:10
율법 주야 묵상의 복
1984. 8. 12. 주일오전
본문: 시편 1편 1절∼6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우리는 잘못된 관념이 있어서 복이라고 하면 좀 신성치 못한 것같이 그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무슨 이해(利害)를 또 말해도 그것도 좀 추접한 것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게 복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은혜들을 가리켜서 복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복을 받아야 되는데 육체 복도 받아야 되고 또 영의 복도 받아야 됩니다.
육체의 복은 대개 말하면 첫째는 건강 복이고 그 다음에는 평강 복이고 또 그 다음에는 명철 복이고 그 다음에는 물질 복이고 그 다음에는 형통하는 그런 복입니다. 이것은 다 주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하고 조심하고 하면은 이런 것을 복을 만들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나 그거는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복은 주님에게 있기 때문에 주님이 주고 싶은 자에게 주시고 주기 싫은 자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또, 신령한 복은 우리가 첫째로 믿음이 있어야 되니까 믿음 복을 우리가 받아야 하고. 또 진리를 깨닫는 복을 받아야 되고, 또 진리대로 실행하는 복을 받아야 되고, 또 계속 할 수 있는 계속의 복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영원 무궁세계를 우리가 죽었다가 부활의 심판 너머 맞이할 때에 그 나라에 가 가지고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이런 모든 복은 신령한 복은 무슨 복인고 하니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돼지고 모든 만물과의 관계가 바로 돼지는 자기라는 사람과 행위가 다 바로 돼지는 복입니다. 이것이 신령한 축복이요, 또 세상에 있는 육신의 축복도 처음에 말한 그와 같은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금생에나 내세에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복이 되지 하나님이 복 주시지 안하시면 복이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화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천하 인간이 제일 나쁘게 여기는 그것도 크게 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의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그것이 좋은 것이 되지 화를 주시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화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복과 화는 주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밤이나 낮이나 가다보면 그만 잊어버리고 세상 이런 일, 저런 사람, 물건 그만 거게 치우쳐 가지고 그것만 생각하고 신앙 생활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주님도 잊어버리고 신앙 생활도 잊어버리고 준비도 잊어버리고 그래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면 잊어버렸다가 다시 시작할 때에 잊어 버렸다가 시작할 때든지 또 자기가 이래 계속 할 때든지 언제든지 시작은 복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계속하는 일도 가다가 피곤할 때에는 복에서 좀 쉬고, 또 복에서 또 출발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에 복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무슨 일을 할 때에도 내가 이 일을 어떻게 하면 복을 받겠나? 내가 이 말을 하면 복을 받겠나, 화를 받겠나? 반드시 복이나 화가 있기는 있습니다. 복도 안 되고 화도 안 되고 그냥 지나가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에 말할 때도 내가 어떻게 말하면 주님이 나를 복 주시겠느냐? 또 이 일을 이렇게 처리하면 주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겠나 화를 주시겠나? 또 내가 이 사업을 하면은 이 사업을 주님이 이 사업을 인해서 나에게 복을 주시겠느냐, 화를 주시겠느냐? 언제든지 시작할 때도 복으로 시작하고 끝을 마칠 때도 복으로 마치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이게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이 복을 생각지 못하고 복이 아니라도 무엇이 될 줄로 여기는 그런 어리석음에서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뭐 복 없어도 잘하면 된다.
열심히 하면 된다, 조심하면 된다, 또 다른 사람들이 다 협조하면 된다'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모든 것이 복되지 하나님이 화를 주시면 모든 것이 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 아닌 것이 없고 화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화되게 하시면 전부 화되고 복되게 하시면 다 복이 됩니다.
그런고로 언제든지 우리는 복으로 시작하고 복으로 끝을 마칩니다.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 행동하고 있는 것, 내가 마음에 지금 품고 있는 것, 내가 말하는 것, 내가 지금 길을 가고 있는 것, 일을 하고 있는 것 과연 이것이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수 있는 일이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또, 일을 마치고 난 다음에도 생각할 때에 내가 한 일이 이거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일을 했나. 화를 받을 일을 했나?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겠나 화를 주시겠나? 그것으로 심사해 가지고서 잘못 됐으면 즉시 고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첫째로 시작할 때나 마칠 때에 복을 생각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복을 생각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요거 첫째 기억합시다. 복을 자꾸 생각하는 사람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요, 또 화를 자꾸 생각하는 사람이 화를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복과 화를 자꾸 생각하면 복을 받고 화는 벗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복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화를 주시는 화라는 걸 잊어버리고 이 두 가지를 잊어버리고 행동하는 것은 전부 멸망하는 행동입니다.
멸망하는 것이 당장에는 나타나지 안하지마는 조만간에 나타납니다. 또 이거는 멸망 안해도 또 저게 멸망 받습니다. 어느 모퉁이에서 병이 들어도 병이 들기는 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복으로 시작하고 복으로 끝마쳐야 되겠는데, 복이냐 화냐 하는 이것을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은 받을 자격이 없고 하나님께서 주실 수 없습니다.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지혜와 총명이나 또 사람들의 응원이나 모든 형편과 사정 처지가 좋은 것을 그것을 주 목적을 하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은 다 성경에 간부 섬기는 그런 음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간부 섬기는 그런 음녀라. 뭐 좋고 나쁜 것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나쁜 거라도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그것이 자기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천하에 제일 좋은 것이라 해도 거게다가 하나님이 화를 주시면 그것이 화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복과 화를 우리가 늘 생각하면서 두려워 복을 받도록 조심하고 노력하고. 또 화를 면하도록 조심하고 노력하는 그것이 복을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려고 해도 그 사람이 복이란 걸 생각지 안하고 마구잡이로 하니까 그 사람에는 복을 주실 수 없고. 또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화를 벗겨 주고 싶지마는 화를 생각지 안하고 마구잡이로 벌로 하니까 화를 벗길래야 벗겨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복을 생각하고 화를 생각하는 것이 복을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요. 또 화를 하나님께서 면케 해 주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복을 생각하는 것이 기도요 화를 생각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화 받을라 하는 이것이 화를 하나님 앞에 벗겨 달라고 하는 그 기도가 되고, 내가 또 복 받는 사람이 되야 될 때 하나님이 복을 안 주시면 어짜나 이렇게 복을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복을 달라는 유일한 기도가 됩니다. 그것을 우리가 첫째 중심으로 해야 됩니다.
뭐 잘난 사람도 그렇고 높은 사람도 그렇고 대통령도 그렇고 왕도 그렇고 호주도 그렇고 종도 그렇고 누구든지 다 크나 작으나 그저 복과 화를 생각해서 짤막한 세상에서 화를 면하고 복만 받는다고 하면은 뭐 어데까지 높은 사람이 다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천한 데 있어도 화를 하나님 앞에서 벗겨 주심을 받고 복을 베풀어주심을 받으면 아무리 천한 사람이라도 얼마 안 가서 인간 중에 최귀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화와 복을 잊어버리지 맙시다. 언제든지 이웃에 가면서도 사람을 만나러 가면서도 생각 할 때에 '아 내가 오늘 가서 이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하면 내가 화를 면하며 어떻게 하면 내가 복을 받겠느냐? 그러면 내가 이 사람한테 가 가지고서 어떻게 해야 이 사람하고 서로 사이가 좋아질까. 이 사람이 날 좋아할까, 이 사람에게 뭐 실수하지 안할까, 이 사람에게 인격이 올라갈까, 이 사람에게 내가 천하게 보이지 안할까 이 사람이 가서 손해를 보지 안할까?' 이런 생각은 다 썩은 생각입니다. 그저 그것만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오늘 가서 이 사람 만날 때에 이 사건을 만날 때에 이 회의에 참가할 때에 이 물건을 만날 때에 내가 이 일을 할 때에 어짜든지 하나님 앞에 복 받는 내가 돼야 되겠다' 복 받기 위해서 하십시오. '또 화를 받지 않도록 내가 해야지. 이러면 화 받을 일이 아닌가?' 이 복과 화만 생각하면 화는 벗고 복을 입는 사람이 됩니다. 그것 첫째 생각할 것,
또, 둘째로 생각할 것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하는 이것은 사람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조심해야 됩니다. 악인이 다른 사람에게도 악인이 있지마는 내 안에도 악인이 있습니다. 내 안에도 악인이 있고 내 밖에도 악인이 있습니다. 악인은 어떤 게 악인인고 하니 자기 중심의 사람이 악인입니다. 그 다음에 보면 4절에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하는 것은 악인은 다 날라가 버리고 망한다 그말입니다.
하나 비유를 한다고 하면은 그 전에 제가 어릴 때에 거게 댓들 보라 하는 그 보가 지금은 뭐 냇물을 모두 조부라트려 나서 그러하나 그때는 내(川)가 아주 넓어서 저는 도평에서 자랐는데 그 보가 아마 이 안에만 할 것입니다. 이 안에 이 본관만 할 겁니다. 본관만 한데 수해가 져서 그만 보를 그 때는 세멘도 없는 때니까 나무니 이런 걸 짜다라 대 가지고서 보를 막는데 보가 쏵 나가 버리니까 그들의 농사짓는 농부들이 한 백여 명이 모여 가지고 여러 날을 걸쳐서 보를 막았습니다. 보를 막으니까 한 길 반, 물이 한 길 반 되는데 처음에는 괜찮더니마는 나중에 차차 차차 저 한 가운데 이런 구멍이 나 가지고서 그저 물이 빙빙 돌면서 자꾸 이래 도니까 뭐 이래 우리가 그 밖에서 나뭇가지를 하나 이래 던지면은 나뭇가지가 빙빙 돌아 가지고 슬슬 돌아서 나중에 자꾸 가까이 갑니다. 가까이 가면 잘도 돕니다. 돌아 가지고는 그 한 가운데 가면 그만 쏵 내려 가 버립니다. 그만 내려 가 버려요. 그래 가지고 거게 사람들이 들어가 가지고 참 상한 사람도 있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인제 겁이 나 가지는 안하고 밖에서 뭐 물건을 자꾸 던져 봅니다. 던져 보면 이 가에 아주 저 한가운데 이만치 갖다 놔 둬도 차차 차차 물이 빠져 내려가며 물이 돈다 말이오. 빙빙 돌며 이게 실실 돌아 가지고 차가 차차 가까이 가면 이리이리 가 가지고 그만 그 한 가운데 구멍 안에 폭 들어가 버립니다.
제가 생각하기를 모든 인간들이 어데 빠져 죽느냐, 모든 인간들이 어데 빠져 가지고 죽느냐? 요 물이 빙빙 돌면서 거게 빠져 놓으면 못 살아 나옵니다. 고게 빠져 들어가면 그만 죽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거게 들어가다가 근방에 가다가 참 옆에 사람이 밧줄을 여기 대어 가지고 이래 끌어당기는데 '어떻더냐?' 이래 물으니까 '아 그만 쭉 댕기 들어가는데 쭉 댕기 들어가는데 도무지 헤엄치는 것도 소용없고 쭉 댕기 들어가더라 그래서 옆에 사람이 있다가 밧줄을 대 가지고서 잡아당기고 이래 가지고서 했는데 뭐 쭉 댕기더라.' 이 모양으로 인간은 다 어느 구멍에 빠져드느냐?, 높은 사람, 낮은 사람, 귀한 사람, 천한 사람, 남자, 여자 노소 할 것 없이 전부 빠져 죽는 구멍이 무슨 구멍인지 압니까? 빠져죽는 구멍이 자기 중심이 구멍입니다. 자기 중심의 구멍. 전부 이 자기 중심으로 다 빠져 죽습니다. 뭐 높은 사람도 자기 중심에서 빠져 죽고 못난 사람도 그렇고 젊은 사람도 늙은 사람도 인류를 가만히 이래 쳐다보면 전부 자기 중심이라는 거게 빠져 죽습니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악인은 전부 다 망한다 하는 말인데 악인 뭐인고 하니 자기 중심의 사람입니다. 인간은 자기 중심이라는 이 구멍에 빠져 가지고 다 죽는다, 그렇게 그때는 내가 예수 믿지 안할 때에 모르지마는 그 후에 이렇게 물이 빙빙 도는 걸 종종 명상하면서 인간은 다 이렇게 자기 중심이라는 이 구멍으로 다 빠져 죽는다, 근방에 가도 실실 그래 들어간다 말이오.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가운데에 자꾸 이 사람 만나면 자기 중심이 더 강해지고 저 사람 만나면 자기 중심이 강해지고 모두 만나면 만나는 대로 자꾸 행동만 하면 자꾸 자기 중심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 중심이 점령해 가지고서 나이가 한 살 두 살 많으면 자기, 중심이 자꾸 강해집니다. 석가모니 같은 그런 사람은 자기 중심이 아니고 공자 같은 사람은 자기 중심이 아닌 것 같지마는 욕심이 커다란 그 구멍은 큰 구멍입니다. 자기 중심으로 다른 사람은 돈을 탐하지마는 이는 자기 중심으로 명예를 탐해보고 자기 중심으로 사람들의 군중심리를 탐하고 이라니까 모두 다 그게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 중심인데 하나님은 뭐이냐? 하나님도 자기 중심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도 자기 중심인데 자기 중심이요 인간도 자기 중심인데, 하나님 외에 거는 자기 중심으로 전부 다 멸망을 받게 되고 하나님은 자기 중심으로 다 생명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지금 어떤 대인의 중심으로 사느냐, 어떤 사장의 중심으로 사느냐 어떤 정권자의 중심으로 사느냐? 아니고, 내나 하나님 중심으로 우리가 삽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왜? 그런데 그 분도 중심인데 모든 사람은 하나님 중심인 그 문으로 들어가 가지고서 다 영생하게 됩니다. 하나님 중심 그 문으로 들어가 가지고 다 영생하고, 또 인간 멸망은 인간 중심으로 들어가 가지고 멸망하게 되고, 왜 그러냐? 하나님 중심,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완전 중심으로 되는데, 완전으로 들어가니까 그거 다 영생이고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인간은 만물보다 거짓되기 때문에 인간 중심으로 들어가 가지고 다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조심 할 것, '악인의 꾀를 좇지 말라' 말은 자기 중심의 사람을 딿지 말아라, 네가 네가 네 중심으로도 하지 말아라, 다른 사람의 중심으로도 따라 가지 말아라, 하나님 중심 이것은 하나님이 완전자요 영원자요 불변자요 전지 전능자요 생명과 평강이 그에게만 있기 때문에 그의 중심으로 빨리만 들어가면 그 구멍으로 들어가기만 들어가면 그 구멍으로 들어가기만 들어가면 영생이요 완전이요 이제 평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닌 만물보다 거짓된 인간이 자기 중심으로 가는 거기에서 다 빠져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원죄가 뭐이 원죄인가? 인간의 원죄는 인간이 자기 중심으로 된 그것이 인간의 원죄입니다. 창세기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 중 하나와 같으니' 하나님이 당신 중심으로 모든 것을 경영하시고 심판하시고 이루시는 거와같이 인간들이 자기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이를 생명 세계에서 쫓아내야 된다. 왜? 하나님도 당신 중심이면서 우리도 우리 중심이면 되지 않습니까? 녜, 하나님은 완전자시요 생명의 주시요 그는 진리시요 그 영원 불변의 완전이시요 참이시기 때문에 그분 중심으로 들어가서 그분 중심만 돼 버리면 다 영생입니다. 완전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같이 완전한 자가 되면 인간도 인간 중심으로 하면 되지요. 하나님 외에는 완전자가 없고 하나님 외에는 모든 것을 주권자 주재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 외에는 자기 중심 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악인의 꾀를 좇지 말라 말은 하나님 중심 외에 뭐 국가 중심이나 민족 중심이나, 과학 중심이나 문화 중심이나 뭐 예술 중심이나 제가 뭐 뭐 언제 내가 어떤 그 총장 하나가 서로 담화하는 것 봤는데 자기는 이렇게 하는데 '뭐 어떻게 무슨 동기에서 이 일을 시작했습니까?' 이라니까 그이가 '예, 내가 이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그래 시작했습니다. 내가 떡 나서 보니까 나와서 보니까 모든 사람들이 좋은 것 다 차지했고 이라니까 내가 뭐 할 거 있나, 내가 뭘 좀 해야 이제 좀 유명해지고 내가 뭘 좀 해야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할까 이렇게 찾아보니까 이게 하나 남아서 내가 이견 차지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도 자기 중심이 악중에 악입니다. 그게 대 악이요 대 악입니다. 여러분들 요거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이러기에, '악인의 꾀를 좇지 말고' 네가 악을 주장하든지 다른 사람이 악을 주장하든지 피조물 중심을 네가 딿지 말아라 그말이오. 피조물 중심을 딿지 말아라. 하나님만이 완전자기 때문에 그분 중심으로 그분을 따라야 살지 피조물은 만물보다 거짓된 모두 다 타락한 원죄와 본죄가 있기 때문에 안 되니까 자기 중심의 주장을 자기 중심의 의논을 자기, 중심의 계획을 자기 중심의 행사를 자기 중심의 말을 자기 중심의 지식을 자기 중심이라면 아무것이라도 따라 가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악인을 좇지 말아라. 따라 가지 말아라.
또, 죄인의 길에 서지 말라는 무슨 말씀인고 하니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어긴 것이 죄입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말라 말은 성경 말씀에 위반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네가 거기 서지 말아라. 성경 말씀에 위반되는 것이라면 거기에 네가 가담하지 말아라. 가담하면 너는 죽는다. 성경에 위반된 것은 무엇이든지 성경에 위반되는 것을 해 가지고 당장에 뭐 민족이 해방 당하고 민족이 구원 얻고 세상에서 유명해지고 네가 어떤 권세를 잡고 어떤 성공을 한다고 할지라도 성경에 삐뚤어진 것은 그것은 멸망이요 사망이요 그게 바로 죄니까 네가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라. 성경에 삐뚤어진 것은 아무리 껍데기가 좋고 삐뚤어진 데 들어가면은 아주 결과의 상급이 믿고 보수가 많다 할지라도 성경 말씀에 삐뚤어진 데는 네가 서지 말아라.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라.
오만한 자리에 앉지 말아라 하는 말은 네가 어디까지 열심히 하고 성공했다 할지라도 너의 달려 갈 길은 끝이 없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이니까 네가 어디까지 성공했다 할지라도 이만 하면 됐다 하는 생각을 가지지 말고 배우는 일을 그치지 말고 연구하는 일을 그치지 말고 네가 건설하는 일을 그치지 말고 회개하는 일을 그치지 말고 네가 모든 것을 심사, 조사한 일을 그치지 말아서 회개하는 일도 그치지 말고 건설하는 일도 그치지 말고 너는 어디까지 갔든지 죽는 그 시간까지 너는 중단하지 말고 계속 하나님을 향하여 가다가 끝을 마쳐라 하는 그 말입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라는 말은 그 말씀입니다.
이래서, 이 세 가지 악인의 꾀를 좇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말 것, 오만한 자리에 앉지 말 것 이것은 사람을 조심하라 말이오. 너도 조심하고 남도 조심하고 사람 조심하라.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손해케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이 손님이 오면 잘못하면 손님 온다고 손님을 반가웁게만 생각해 가지고서 맞이했다가는 큰 낭파 당합니다. 사람마다 귀신 안 따라 다니는 사람 없어요. 참 자기보다 신앙이 앞서 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자기의 유익한 성령의 은혜를 모시고 오지마는 사람들은 대개 마귀를 끌고 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손님이 올 때도 우리는 조심해서 요 말씀을 외우는 것이 좋습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안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그저 겉으머리는 그라면 미쳤다 할 터이니까 안하지마는 속으로 이걸 자꾸 외웁니다. 소리내어 외우려 하면은 더디고 둔하니까 소리내어 외우지 말고 마음으로 외우고 생각으로 이 세 가지를 외웁니다. 자꾸 외우면서 그래 가지고 외워 보면 외워 보면 그 사람이 악인의 꾀를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와 가지고 악인의 꾀를 내가지고 이 악인의 꾀로 같이 가자. 또 죄인의 길로 동행하자, 또 그만 오만한 자리에 앉아라 그렇게 세 가지 유혹하는 사람이요, 손님이 아니라 세 가지를 유혹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벗어나게 되면은 주님 만납니다.
또, 자기 혼자 앉았을 때에도 나 혼자 앉았으니까 이때야 뭐 사람 없으니까 안심하자 하지마는 자기 안에 악인이 들었습니다. 자기 안에 악인이 들었고 자기 안에 죄인이 들었고 자기 안에 오만한 자가 들었습니다. 오만한 자가 있어서 그만 좀 쉬자, 놀자 이렇게 됩니다.
나도 어제 큰 죄를 지었습니다 큰 죄를 지은 것은 어제 오후에 어찌 더운지 더워서 뭐 더워서 이것 저것 거석하면 좀 덥다고 이라면서 요게 가서 기도하지 저게 가서 기도하지 이라다가서 그래 기도한다고 했는데 그만 그게 엉터리라.
이래서 오늘 내가 설교를 할라고 암만해도 안 돼서 하나님 앞에 할 수 없어서 뭘 찾았습니다. '주님 내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주님을 노엽게 한 죄를 지은 거 같은데 가르쳐 주옵소서' 이라니까 아무래도 안 나와요. 이래서 자, 설교를 이 말씀도 해야 안 된다, 저 말씀도 안 된다. 아무것도 안 된다, 또 이라다가 마지막에 시편 일편도 해도 안된다 자꾸 이래요. 뭐 도무지 캄캄해서 설교를 할 수가 없어요.
아, 이랬는데 찾다 보니까 하루 삼십 분 기도하는 걸 지난밤에 삼십 분 기도한다는 것이 그만 더워서 이 사람들 저 사람들 와 가지고 이래 저래 후딱거리는 바람에 이제 뭐 골만 때웠지 기도가 틀렸다 그 말이오. 그래서 고걸 찾았습니다. '주님 내가 지난밤에 앞으로 환난 위해서 주님이 나에게 예고해 주신 이 삼십 분 기도하는 것을 고만 이것을 다 거짓부리로 골 때움으로 했습니다.
이걸 내가 죄를, 잘못했습니다.' 잘못된 걸 이제 깨달았다 그말이오. 이제는 오늘 내가 오전 설교하고 가서 그 시간에 부득이지 나갔지마는 골을 때워서 고 보충을 하겠습니다. 또 오후 기도. 설교하고 난 다음에도 보충하겠습니다. 오늘 오늘 해당되는 오늘밤 기도 삼십 분 되기 전에 어짜든지 그 기도를 내가 때우겠으니까, 불쌍히 여겨 달라고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나니까 시편 일편에 대해서 설교하라는 그게 나에게 알려줬습니다. 알려줬는데, 알려 준 그 말씀은 지금 아직까지 나오지 안했습니다.
우리 안에도 그만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라. 날이 이렇츰 덥고 뭐 이러니까 날 덥다 핑계되고 이래 저래 하다가서 그만 골 때움이 돼 버리고 그만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그 엉터리 외식하는 그 기도를 해서 골 때움의 기도를 했다 말이오. 그거 몰랐어. 그래도 엊저녁에 잘 때는 잘 잤습니다. 하나님이 잘 재워 주시요. 잘 재워 주시는데, 보자 요놈하고서 이제 오늘 설교할라고 설교를 하나님 앞에 달라니까, 왜? 내 말은 하면 그까짓 것 억 만 마디 해봤자 사람 죽이는 말뿐이지 무슨 소용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야 창조의 능력의 말씀이요. 생명의 말씀이요, 이제 파괴할 걸 파괴하고 건설할 걸 건설해야 되지 내 말은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그래서 암만 달라 해야 안 되는데 그만 오만한 자리에 앉아서 실수했어. 오만한 자리는 뭐 다른 사람이 해 그런 게 아니라 내 속에 오만한 자리 그놈이 들어 가지고서 그만 실패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둘째로는 사람 문제, 첫째는 복과 화를 생각하고, 둘째는 사람을 삼가 할 것, 사람을 삼가할 것. 내 안에 있는 사람도 삼가고 내 밖에 있는 사람도 삼가 해 가지고서 세 가지 면으로 삼가하면 되겠습니다. 하나는 악인의 꾀를 좇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말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이 세 가지 면으로 사람을 조심해서 자기가 요 세 가지 면을 생각하면서 하면은 상대방이 이 세 가지를 내 놓는 걸 보고서 그걸 말을 안 해도 '내가 넘어갈 뻔했다. 여게 내가 넘어가지 안해야 되겠다.' 요래 가지고 그 세 가지 전투를 해 가지고 승리하게 되면 그때 우리에게는 또 면류관이 오고 기쁨이 오고 이제 그 능력이 오고 주님하고 아주 밀접해진 것을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동행하는 것을 환하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람 조심하는 것 이것을 하고, 셋째로 '그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 왜? 이 율법은 우리의 눈을 밝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눈을, 우리가 이 고기 덩어리의 눈은 밝다 할지라도 마음의 눈이 어두워 가지고서 자꾸 망할 일만 자꾸 하고 있습니다. 저는 몰라도 다른 사람은 보면 우리 교인들 보면은 자꾸 망할 일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것을 말을 하면은 그 사람이 들으면 하지 마는 안 듣습니다. 말을 했다가는 그 사람하고 그만 이렇게 그만 원수가 돼 버린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말은 못 해도 보기는 보인다 그거요. 그런데, 여호와의 율법. 하나님의 이 성경 말씀을 즐거워하여. 왜 이 성경 말씀을 즐거워하는가? 이 성경 말씀은 우리 눈을 밝게 합니다. 우리 심령을 밝게 하지, 또 이 성경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취사, 선택을 바로 하게 되기 때문에 아주 복입니다.
그래 또, 이 성경 말씀은 우리를 모든 면을 치료해 주십니다 이 성경말씀이 심령을 치료해 주시고 육체도 치료해 주시고 모든 사업도 치료해 주시고 이 성경 말씀을 자꾸 묵상하면 자기에게 요 사업에 요거 잘못했다, 요거 잘못했다. 아무 것이 교제한 거 잘못됐다. 아무것이 만나 이 말한 것 잘못했다, 자꾸 이 말씀을 자기가 묵상하면 치료가 나옵니다. 교제 치료되지 사람 치료되지 사업 치료되지 뭐 자기의 계획 치료되지 경영 치료되지 욕망 치료되지 모든 면이 뭐 전부가 치료가 된다 말이오. 이 말씀은 우리 눈을 밝게 하고, 또 이 말씀은 우리를 치료해 주십니다.
또 이 말씀은 주님을 만나게 합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만나게 하니까 이 말씀은 우리를 강건하게 합니다. 우리의 심령을 강건하게 하고 의지를 강건하게 합니다.
눈을 밝게 해, 강건하게 해, 모든 것을 치료하게 해. 모든 것을 바로 해서 이루어 가지도록 모든 것을 바로 해서 성공하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생명이요 평강이요 성공이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이렇츰 보배로운 말씀인 것을 자기가 깨닫고 말씀을 생각하는 것을 가리켜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이것이 먼저입니다.
성경 암만 읽어도 소용없어. 성경 암만 읽어도 소용없고 외워도 소용없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보배이기 때문에 이 가치성을 깨닫고 이 말씀을 즐거워, 마치 숨이 막힌 자리에 들어갔다가 이제 좋은 공기가 쐬어지니까 마음이 시원하고 기분이 좋고, 또 자기 눈이 아주 깜깜하게 이랬다가서 눈이 나으면 환하게 밝아서 좋아진 것같이, 또 자기에게 아픈 병이 있어 놔서 못 견뎠는데 그만 그 병이 싹 치료되니까 좋아서 못 견디는 것, 저도 석 달 동안 장질부사가 들어 가지고 모든 사람이 다 죽는다 했는데 그 장질부사 병이 똑 끊어지고 나니까 빠짝 말라 가지고서 이거는 뭐 거미같이 빠짝 말라 가지고 있는데도 그 속에 어떻게 낫았으니까 살 희망이 있고 이제 소망이 있으니까 어떻게 기쁜지 뭐 이것도 봐도 기쁘고 저것도 봐도 기쁘고 그게 치료되니까 기쁩니다. 아픈 것이 치료되면 기뻐요.
이 말씀이 우리를 치료해 주시니까 기쁩니다. 눈이 밝아지지 모든 사업이나 인간이나 모든 면을 자꾸 이 말씀만 생각하니까 치료가 됩니다. 또 이 말씀을 생각하니까 강건해집니다. 또 이 말씀을 생각하니까 주님과 나와 자꾸 가까와집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니까 사람도 보지, 속을 것 없이 자꾸 이 말씀만 생각하니까 눈이 밝아져. 이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과 평강과 승리입니다. 생명과 평강과 승리인 이 말씀인 것을 깨닫고 이렇게 이 말씀이 나에게 복되고 참 보배로운 말씀인 것을 깨달아 이 말씀에게 대해서 내가 즐거움이 있어야 됩니다.
그게 첫째요, 즐거운 것. '성경을 몇 장 읽어야 될 터인데 그 장수를 채워야 되겠다, 부지런히 읽어서 읽겠다, 그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마는 소용이 없습니다. 이 말씀의 가치를 깨닫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이게 첫째입니다.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 묵상한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가만히 눈감고 이 말씀을 생각하는 그것만을 말한 게 아니고, 그저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주야로 묵상하니까 끊어질 사이가 없지 않습니까? 끊어질 사이가 없는 것 그러면 이 말씀을 눈감고 생각하는 것 그것보다도 실상은 뭐이냐 하면은 조그만한 일이라도 '아, 이 말씀은 이 일에 대해서는 이 말씀대로 하면은 어떻게 하는가?' 모두 닥치는 일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닥치는 사람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들리는 말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자기가 말을 할 때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이 말씀과 자기와 이 말씀과 자기와 접촉하는 모든 사물과 사람과 이 말씀과 자기의 행위와 이렇게 이 말씀으로 대조하는 그것을 계속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주야로 묵상한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이 내게 생명이요, 내게 평강이요, 내게 성공이요. 이러기 때문에 이 말씀이 이런 것인 것을 깨닫고 자기가 닥치는 현실에서 이 말씀을 생각하여 생명이 이루어지고 평강이 이루어지고 승리가 이루어지는 이 일을 하니까 또 처음에 생각할 때는 답답하지마는 지나가고 나니까 생명이 이루어졌고 승리가 이루어졌고 평강이 이루어졌고 이러니까 또 기쁘고 자꾸 이렇게 이 말씀을 가지고 자기의 현실을 생각하는 이 일 이 밤낮 쉬지 안해야 된다 하는, 요것이 오늘 설교하는데 제일 요지입니다. 제가 오늘 증거할라 하는 것은 요것입니다. 오늘 그 잘못된 것을 회개하고 나니까 이 시편 일편에 대해서 증거하라고 하는데 뭣을 증거 하랍니까 하니까 요것을 나에게 가르쳐 줬습니다.
지금 내가 증거하는 것은 여러분에게는 그렇게 느껴질란지 모르지마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자기의 현실에 언행 심사를 이 말씀으로 심사하고 비판해서 이 말씀과 자기 현실과의 연결시켜서 어떻게 해야 되나? 이 말씀과 자기 현실과의 이 조화를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그 조화시키는 것, 연결시키는 것 그것을 쉬지 않는 것이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요거 쉬지 않으면 그러면 쉬지 안하면 요게 뭣 되느냐?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았다.
그러면 그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나무가 제가 좋은 데 심기워지겠다고 좋은 대 심기워집니까? 제가 저를 심습니까? 제가 저를 심지 못 합니다. 그 주인이 저를 좋은 데 심으면 잘 되고 나쁜 데 심으면 안 됩니다. 이런데 이렇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요것이 요것이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좋은 데 심어 준다, 하나님이 좋은 데 심어 준다. 시냇가에 심어 주신다.
시냇가가 어딘가? 시냇가가 어딘가? 시냇가가 하나님의 사랑의 그 속은 뼈의 그 속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박고 하나님의 은혜에 부리 박고 요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고 언덕에 자기를 심는 것이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그것이 하나님에게 나를 하나님이 심기어 주시게 하는 것이다, 고 행위가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에게 심어도 하나님에게 뿌리박고 하나님에게 심어 주시게 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요것이 내가 요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나를 좋은 데 심어주신다.
좋은데 심어 주시는 게 어디다 심어 주시 것이 좋은 데 심어주시는 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에 연결시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에 연결을 시켜 주는 요것이 제일 좋은 데 심은 것인데, 비유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요 제일 좋은 데 심는 것인데, 좋은데 심어지면 하나님의 사랑에 하나님의 은혜에 연결을 딱 시켜 놨으니까 이런 게 닥쳐도 저런 게 닥쳐도 모든 것이 다 유익뿐입니다. 모든 것이 유익뿐이오.
이러니까 시절을 좇아서 과실을 맺는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는 말은 언제든지 과실을 맺는다, 언제든지 구원의 결과를 맺는다. 이런 일이 와도 구원의 결과를 맺고. 악인을 만나도 구원의 결과를 맺고, 의인을 만나도 구원의 결과를 맺고, 두드려 맞아도 구원의 결과를 맺고, 존경을 받아도 구원의 결과를 맺고.
살림살이가 패가해도 구원의 결과를 맺고 뭐 이래도 저래도 전부는 구원의 좋은 결과만 맺지 구원의 손해가 가는 일은 하나도 없게 된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그것이 뭐인가? 그것이 내 자신을 농부되신 하나님께서 시냇가에 심으도록 하시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주야로 묵상하는 그 자체의 그 행위가 그 사람되어지는 것이 농부되신 하나님께서 나를 제일 결실 잘 하고 제일 청청하고 무성하게 자라는 고 자리에 심어 주는 것이다. 고 자리가 뭐이냐? 고 자리가 하나님이다. 왜?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니까 하나님에게 심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에 심어지고 하나님의 은혜에 심어진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그것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를 제일 좋은 자리에 심어 주시도록, 나는 말하자면 비유컨대 과실나무와 같은데, 하나님께서 나를 제일 좋은 자리에 심어 주도록 하는 것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다.
그러면, 좋은 자리에 심어 주는데 어디다가 심어 주는가? 시냇가에 심는다는 건 비유인데. 가뭄이 와도 또 장마가 져도 손해 안 가고 언제든지 청청하고 열매 맺게 되는데. 어데 심으면 되는가? 환난이 오든지 평강이 오든지 말세가 오든지 재림이 오든지 심판이 오든지 뭐이 오든지 조금도 손해 안 가고 거게서 좋은 결과 맺게 된다. 그 어데인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니까 하나님의 그 사랑 속에 그게 심어지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심어지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심어졌으니까 그게 청청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요것을 나에게 오늘 아침에 깨닫게 해 줬어요. 내가 이제까지 요 설교는 하지는 안했습니다. 요 설교 오늘 처음으로 합니다. 고 비슷한 것은 했지마는 요것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요것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를 들어다가서 시냇가에 심으도록 하는 그 행위다. 아 요거는 시냇가에 심어야 되겠다. 뭐할라고? 열매 맺고 항상 청청할라고. 시냇가에 심으다니 시냇가가 뭐인데? 하나님이 전지 전능의 사랑과 권능의 그 은혜 그 은혜에 연결시킨다, 연결시킨다. 이러니까 모든 것이 형통하지요.
이래서, 또 오늘 아침에도 느꼈습니다. 회개가 이렇게 복된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또 죄짓게 만들어 놓고, 또 그걸 또 회개할 거 또 회개하면 또 좋은 것 주시고 이러니까 그 회개의 맛은 얼마나 좋은지 회개의 평강 회개의 재미, 회개의 재미 회개의 평강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엊저녁에 그만 얼렁덜렁 해 가지고서 삼십 분 기도하는 것을 외식으로 해서 넘겨 가지고 오늘 아침에 많이는 안 갔어요. 한 한 시간 가량 암흑 봤어요.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주니까 죽을 지경이라. 뭐 무릎팍을 꿇었다가서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이 자리에 앉았다가 저 자리에 앉았다가 내가 뭐 발동을 쳐 쌓고 자꾸 이래 쌓는데 이 발동을 쳐도 안 돼. 가만히 생각해 '아, 내가 뭐 하나님 뭐이 섭섭해하는 게 있는데 이 섭섭하는 게 뭐인지 이걸 찾아야 되는구나' 하니까 고게 나와.
고게 나와서 그것을 딱 찾아서 하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시편 일편을 설교하라고 하시는데 '시편 일편에 뭐입니까?' 이라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묵상하는 고게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그것이 시냇가에 주인으로 하여금 심으도록 하는 그것을 심어 주시도록 하는 것이다.
시냇가에 심어 주시도록 하시는 것이다. 시냇가가 뭐인데? 시냇가는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과 능력 속에 심으는 것이다 은혜 속에 심으는 것이다. 그라면 다 됐어.
그러니까 무릇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형통하다 말은 하나도 방해받지 안하고 아무것에게도 방해받지 안하고 일사천리로 구원으로만 달리게 된다.
공산주의가 와도 구원이 지체되지 안하고, 또 가난이 와도 구원이 지체하치 안하고 병이 와도 구원이 지체하지 안하고 세상에 이런 저런 역사에 어떤 방해물이 다 와도 하나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하나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그러니 형통하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인간이 다 빠져 죽는 것을 이 빙빙 도는 물 속에 빠지는 거 모양으로 자기 중심이라는 그 빙빙 도는 그 물에 빠져서 다 죽는다, 자기 중심이라는 그 함정에 빠져 가지고 다 죽는다 하는 그것을 오늘 증거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