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4 15:12
율법과 구원
1989. 2. 23. 목새벽
본문: 마태복음 5장 17절∼18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 율법은 하나님께서 선포해 놓으신 육십육 권 성경에 문서 계시로 발표된 그 율법을 말하는데, 곧 이 율법은 진리를 말합니다. 여기 우리 법학 박사가 저게 와서 앉았습니다. 법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진리를 가르쳐서 여게 율법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율법은 하나님이 계시고 이 법을 세우셨느냐? 하나님과 함께 이 법이 있었습니다. 이 법은 진리요 하나님의 예정이요, 또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문서 계시입니다. 이래서 문서 계시의 양과 진리의 양이 다릅니다. 문서 계시는 그 발표된 양이 얼마 안 되고 진리는 참 무한이라고 할 만치 양이 많습니다. 그래서 문서 계시 안에는 내재적 영감 계시가 있습니다. 영감 계시를 가리켜서 은밀 계시라고도 하는데 이 영감 계시는 곧 진리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언제부터 이 법이 있었는고 하니 하나님이 영원 자존하실, 이 시공 창조 전에, 이 예정 전에 하나님의 영원 자존하실 그때에 이 진리가 동시에 있었습니다. 동시라 하면은 시간을 말하면 좀 이상하나 이제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이 진리가 창조하셨고, 또 하나님의 이 진리가 곧 하나님의 예정으로 나타났고 하나님의 예정이 영감으로 나타났고 영감이 육십육 권 이 구원 도리로 나타났습니다.
이 율법이 하나님의 사람들 선지자를 통해서 나타나서 차차 차차 그 선지자들을 통해서 나타낸 그 율법이 나타나고, 나타남이 모여 종합이 돼 가지고서 된 것이 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이 율법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와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미암기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지마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동시에 있었다 그렇게 말을 하면 알아듣기 쉬운데 동시에 있었다 소리를 하지 못하는 그 이유가 뭐인가? 하나님이 계신 그 시간이 있었다 이래 되기 때문에 그래 되면 거기서 배치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율법이 어떻게 그 가감이 되리라 이렇게 생각을 가지고 이 율법을 사람들이 있고 난 다음에 사람들의 입법이 있다 하는 것처럼 이 율법이 아주 오갠 후에 성경 기록할 때 그때에 우리에게 성경으로 나타내 줬고 선지자들로 나타내 줬기 때문에 그 율법의 시발이, 시존이, 있기 시작한 시존이 그때로 이렇게 생각하고 이 율법의 권위성과 가치성을 사람들이 인정을 못하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율법의 근원인 이 진리가 모든 것을 예정하였고 또 창조했고, 창조한 그 피조물들을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이 율법을 가지고 그 모든 것을 통치를 하십니다. 그러면 그 율법의 범위를 불교인들은 팔만 대장경을 말하고 기독교에는 신구약 성경을 경으로 말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이 법도는 도리는 매우 그 양이 적다 그렇게들 말을 하고서 불교에서는 저거는 기독교보다도 그 경의 양이 많다고서 이리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기독교의 문서 계시 안에는 영감 계시가 있고 영감 계시는 곧 진리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는 인격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계셨다고서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진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왔지마는 실은 이 진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는 곧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하는 것과 같은 그런 성질로 함께 있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진리가 이제 선지자와 율법으로 나타났는데, 이 진리는 가감도 못 하고 또 변동도 못합니다. 영원 불변의 진리요 하나님도 이거는 없애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입법을 해 놓고 마음대로 이리 저리 정권자들이 고칩니다. 법을 개정하는 일이 있으나, 그것은 정권자들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그 표준으로 중심으로 입법했기 때문에 그 권세가 이리 저리 고칠 수 있지마는 만일 그 법이 바로 된 법이라면 고쳐지지를 않는 것이 그것이 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세워 놓은 이 입법은 어떤 그 세력에게 매수를 당해서 그 세력의 인을 맞으면 그 법이 벌써 그 생명은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법이 바로 되어 있는 법은 그 나라가, 그 민족이 어떤 그 정권자가 폐한다고 해 가지고서 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들 속에 벌써 변동 못 할 수 있는 진리로 그 인간들 속에 내재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법으로서는 그 어떤 자의 사욕을 토대로 해서 하지 안 하고 전부 좀 공적면을 근거로 해 가지고서 입법한 것이 로마법이 제일 공적이다 이래 가지고서 지금도 로마법을 무시하지 안하고 모든 법인들이 참고를 합니다.
이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이 말씀은 선자자와 율법이라는 것은 이 피조물들에게 당신의 그 완전하신 그 율법을 선포해 놓은 그 양을 가리켜서 선지자나 율법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는데 이것은 폐할 수가 없습니다. 이거는 삭감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이래서 로마인서 8장 3절에 보면 '율법이 육신을 인해서 연약함으로 이루지 못했다' 그 말은 율법이 연약해서 이루지 못했다 하는 그 말은, 왜 율법이 연약했는가? 율법은 절대성을 가지고 있는데 왜 연약했는가? 그 연약하다 말은 하나님께서 이 율법을 세워 놓고 율법을 세운 것이 율법이, 율법은 영원 자존성이라 할 수 있으나 순위, 논리 순위적으로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입법됐기 때문에 영원 자존성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은 진리시라 말했는데 하나님의 자존하신 그 속성의 이 진리가 하나의 속성으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성 지혜성, 지식성 지혜성 또 사랑성 진실성 완전성 내나 그것이 전부 이 진리요 곧 진리가 곧 법이요, 그러기 때문에 이 법은 폐할 수 없는 법인데 이 법이, 법을 가지고 당신이 피조물들을 통치하고 피조물들을 통치하고, 피조물들은 이 법에 따라서 이게 자유의 율법이요 이 생명법이요 영생법인데, 이 완전한 이치인데 완전한 진리인데 이를 가지고서 사람들을 피조물을 구원하실라고 이렇게 하시다가 실패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법으로 피조물을 구원하실라고 하시다가 실패를 했습니다. 실패한 그 이유는 거게 율법이 육신을 인하여 연약함으로 말씀했으니까 얼핏 들으면 율법이 약했다 이렇게 보나 율법이 피조물을 이렇게 이 법으로 가지고서 구원할라고 했는데 인간들에게는, 인간이 모든 피조물의 대표자인 영장입니다.
영장인데 영은 이 율법으로 구원하시는 이 구원을 넉넉히 얻을 수가 있고, 이 영은 이 율법을 다 감당해서 거게 복종할 수가 있지마는 이 사람들의 심신의 육을 가진 이것이 연약해서 하나님께서 실패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실패했다 하는 건 여러분들이 알아듣기 쉽게 하기 위해서 자꾸 이런 말 합니다. 연약하여 이루지 못했다 하는. 그게 내나 그 말입니다. 이걸 안 들으면 또, 로마서 8장 3절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은 뭐 선지자나 율법을 폐하든지 조그매 가감을 할 수 있다고 온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이 율법을 세우셨는데 이 율법은 곧 하나님이 이렇게도 세우고 저렇게도 세울 수 있는 율법이 아닙니다. 이 율법은 진리기 때문에 하나님과 고 동시에 있었다 하면 논리적 순서적으로 하나님이 계셨고 율법이 있있기 때문에 동시에 있었다 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의 목적 전 하나님의 예정 전 하나님의 창조 전 이 율법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율법이 진리인데 진리가 이렇게 우리 피조물들에게 알 수 있도록 나타내신 그때부터 이 진리가 율법으로, 하나의 제도로 이렇게 나타 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이는 이 율법을 폐하면 하나님이 폐해집니다. 율법이 없어지면 하나님의 그 권위가 없어지고 진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진리는 없어질 수 없는 영원 존재입니다.
불변의 진리입니다.
이래서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완전케 하려 함이라 말은 이 율법을 세우신 이 율법이 완전 성공하고 율법이, 하나님이 처음에 계획할 때의 권위와 같이 이 율법의 권위를 절대 세워서 이 율법의 권위를 추호도 가감하지 안하고 그대로 절대성으로 이렇게 율법을, 율법의 권위를 인간의 육체로 인해서 이 율법의 권위가, 권위가 다 서지를 못하고 그것 때문에 율법으로 구원하는 이 구원이 실패됐던 것을 율법으로 구원하는 이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셨다 하는 말입니다.
율법 구원을 인간의 육체로 인해서 성취하지 못한 이것을 이제 율법 구원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율법대로 요대로 딱 심판을 하고 모든 만 가지를 율법대로 딱 통치하고 율법대로 심판하고 이래서 율법으로 멸망을 시키고, 또 율법으로 구원을 시키고 율법으로, 생사가 율법으로 인하고 또 성패가 율법으로 인하고 축복과 저주가 율법으로 인하고, 율법 가지고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을 다 통치하시는 이 일을 하시려고 했는데, 인간의 이 심신이라는 고기덩어리 이것 때문에 이 일을 달성하지 못해서 하나님이 이 일을 달성하시기 위해 가지고 사람은 못하나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하나님께서 자기 독생자를 죄 있는 형상으로 보내 가지고 그에게 죄를 부담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이 법을 어긴 그 위법에 대한 처단을 다 만족히 했습니다. 이 율법이 이 법을 어긴 자에 대해서는 이 법대로 처단하면은 영원 멸망입니다. 영원 멸망의 처단을 했습니다. 영원 멸망의 처단을 했는데, 그러면 예수님이 안 오셨으면, 이 율법은 그 행위를 두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는데 하나는 율법을 범한 자에게는 형을 주는 거 있고, 영원한 사망의 형을 주는 것이 하나의 권위 행위요, 하나는 이 율법을 지킨 자에게는 그는 영원 자유 완전 생명 완전 자유 완전 영광과 존귀와 존대 이 평강 이것을 주는 것이 그것이 율법의 행복에 이 역사에 두 가지인데 하나는 범한 자 처단은 됐습니다.
범한 자 처단은 돼서 이 법을 범한 그 원죄와 본죄 이 법을 범한 것이 곧 원죄와 본죄인데, 죄는 뭣을 죄라 하느냐? 죄라는 것은 그 과녁을 맞추지 못한 것을 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활을 쏠 때에 그 활에 딱 표를 해 놓고 그 표해 놓은 그걸 꼭 맞추면 과녁을 맞췄는데 아래 위로 옆으로든지 조그매만 삐뚤어지면 그걸 그럴 때에 그 말하기를 그걸 과녁 맞추지 못한 것을 죄라고 요렇게 했는데 고것을 우리에게 지금 하나님이 다른 걸로는 발표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요 법칙을, 요 이치를 가지고 발표를 해서 죄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는 뻐뚤어진 게 죄라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삐뚤어진 것 무엇을 기준해서 삐뚤어진 건가?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이 진리에 삐뚤어진 것이 그것이 죄입니다. 진리에 뻐뚤어진 것이 죄라, 그러면 그게 무엇인가? 그것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선포해 놓은 그 선포에 삐뚤어진 게 죄다.
그러면 그게 무엇인가? 그거는 선지자들이 문서 계시로 육십육 권을 기록했기 때문에 거게 삐뚤어진 것이 죄다. 그러면 문서 계시만 다 지키면 이제 죄가 없는가? 문서 계시로 나타냈지마는 문서 계시 안에는 은밀 계시가 들어 있으니 곧 은밀 세시는 곧 진리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에 삐뚤어진 것은 다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죄로 인해서 사망하게 된 이것은 율법의 권위가, 그 권위가 완전히 그 권위를 다 이행했습니다. 하나는 이행을 했지마는 이 율법이 하나님께서 범죄해서 멸망케 하려는 것이 그것이 목적이 아니고, 이 율법으로 구원하려는 것이 그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목적이었기 때문에 멸망시키는 그것만 됐지 구원하려는 그 율법의 근본 목적은 이것이 안 되고 말았어. 이게 왜 안 됐느냐? 육체가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이 안 된 것입니다.
안 된 것을 하나님이 하실라고 독생자를 보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은, 율법을 완전케 하려, 율법의 권위가 조그마치라도 손색이 없고 이 율법의 권위가 완전하도록, 이 율법의 권위는 완전한데 완전한 율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왔다. 그러면 세우기 위해서 왔다. 완전케 하려 함이라. 세우기 위해서 왔다.
그러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이 율법의 권위는, 두 가지인데. 율법의 권위는 범한 자에게는 그 형이요, 또 이행하는 자에게는 생명과 평강의 자유를 주고 상을 주는 것인데 오시기 전에는 이 율법이 무슨, 율법의 권위는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둘입니다. 율법의 권위는 두 가지요. 율법의 권위는 둘인데 우리 박사는 새벽기도 잘 안 나오는데 여 보니 딱 이래 둘을 딱 드네. 이래 좀 법을 좀 배운 사람들은 통하는데 법을 안 배운 사람들은 통하지 안해.
이래서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가 그렇게 많은 것은 이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법을 하지 안했기 때문에 이렇게 문제가, 법 한 사람들은 뭐 안 믿는 사람도 그게 당연한 이치라고 그만 이래 뻐뜩 알아들어.
이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율법의 권위가 둘인데 범한 자에게 대한 권위는 섰지마는 이 율법을 이행하는 자에게 대한 권위도 서야 될 터 인데, 이행하는 자에게 대한 권위는 이행자가 없기 때문에 이 율법은 그만 권위가 다 서지를 못했다 말이오. 못해서 이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와서 이 율법의 권위를 세우신 것은 뭐인고 하니 당신이 우리를 구원할라고 하니까 율법을 어긴 자의 형을 이것을 다 받기 전에는 그 정죄돼 있는 자가 해방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그 형을 다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형으로 말미암아 죄는 죽었습니다. 죄라 하는 것은 그 형을 받으면 죄가 죽습니다. 그 사람이 십 년 그 정죄를 받아 선고를 받아서 감옥에 십 년 징역 살 것이라도 그 사람이 십 년을 다 살고 나면은 그 사람을 정죄하는 죄는 죽어 버렸습니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 뒤에는 다시 그 사람을 정죄하지 못합니다. 또 죄를 지어야 정죄하지 그 죄 가지고는 정죄를 못 한다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대신 이 인류가 범한 원죄와 본죄의 그 모든 죄를 다 예수님이 대신해서 형을 받았기 때문에 이 율법의 두 부분으로, 분류해서 두 종류로 이렇게 역사하는데 범한 것에 대해서 처단하는 그 율법의 것은 예수님이 안 오셨으면 우리가 영원히 그 벌을 받아 가지고서 율법의 권위는 영원히 우리를 정죄해서 멸합니다.
그래서 사망의 권세는 뭐이라 했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에, 사망의 권세는?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이렇게 해.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죄 그놈이, 죄 그놈이 무엇을 가지고 인간을 죽이느냐 하면은 하나님이 입법해 놓은 그 법을 근거해 가지고서 이제 죽입니다. 그래 그 사망케 하는 것은 죄가 사망케 하는데 죄 그놈이 무슨 배경을 가지고 하느냐 하면은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율법을, 율법의 권세를 의지해 가지고서 죄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러는데 예수님께서 오셔 가지고서 율법에 정죄한 그 죄의 형을 예수님이 다 받으셨기 때문에 그만 택한 자들의 범죄가 과거 현재 미래까지의 모든 택한 자의 그 죄, 그것을 전부 다 예수님이 담당해 가지고 형을 받았기 때문에 그만 죄는 사망을 했습니다. 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죄가 사망했기 때문에 죄가 이제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이용을 하고 계시는 것이지 죄가 우리에게는 뭣을 못 한다고 했습니까? 왕노릇을 못 한다고 했습니다.
로마인서 6장 12절 이하에 보면은 왕노릇을 못한다고 했습니다. 왕 노릇 못 한다 말은 주권하지 못한다 그말이오. 그 죄가 우리를 지금 시련시키고 우리를 침노해 가지고 괴롭히지마는 이 죄를 가지고서 그만 예수님의 대속에만 떡 들어붙여 버리면 이 죄가 다 예수님이, 한 죄로 한 형을 받으면 되는 것이지 그 한 죄를 또 형 받고 난다음에 또 새로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또 형을 하고 하고 이렇게 형을 그 여러 번 두 번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게 또 법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당신이 대신 형을 받음으로써 이 율법의 권위를 가지고 우리를 사망케 한 영원히 멸망케 한 것을 완전히 없애 버렸고, 또 하나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이 율법의 권세가 그대로 권위가 있었습니다. 권위를 세워서 사망시켰습니다. 사망시켰는데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서 대신해서 사망을 시키니까 그 사망한 것은 같지마는 대신 했기 때문에 영원히 사망할 우리들이그 사망에서 해방돼서 사죄돼 가지고 해방을 받았다 말이오.
해방받았으니까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죄가 범죄한 데 대해서 형을 베푸는 것은 오기 전이나 뭐 온 후나 꼭 같지마는 예수님이, 이 율법이 범죄한 자를 사망시키는 것은 예수님이 오기 전이나 예수님이 온 후나 꼭 같습니다. 같은데 다른 것이 뭐 하나 있습니까? 다른 것이 하나 있는 것은 이 사망했던 우리가 거게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해방을 받았어.
그게 인제 예수님 오신 이후로 율법의 요구, 율법이 요구하고 율법이 권세를 가지고 있는, 율법의 권위 중에 하나는 오시기 전이나 오신 후나 꼭 같이 율법이 그 권위를 썼지마는, 권위 쓴 거는 꼭 같지마는, 한 가지 다른 게 뭐냐 하면 예수님이 대형을 했기 때문에 이제 형 속에 있는 우리들이 거게서 해방을 받아 가지고 형 없는 사람이 돼 버렸고 형 없이 존재하는 자가 됐다 그말이오. 형 없이 존재한 것이 예수님의 대형으로 사죄받은 것입니다. 형 없는 자로 존재는 했지마는 이것이 뭐 율법을 범한 것은 그랬지마는 율법이라 하는 것은 범하지만 안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이행해야 된다 말이오. 율법을 범하면 사망하고, 율법을 이행을 해야 그 율법 권위대로 자유가 있고 또 평강이 있고 또 생명이 있고 모든 데 대해서 법 있는 데는 법을 지킨 자는 거게 자유가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에게도 자유 또 만물에게도 자유 죄에 대해서도 자유 죄 그놈에 대해서도 우리가 제재받을 것이 하나도 없어. 마귀에게도 자유 어데든지 자유라.
이 율법을 완전히 이행만 하면. 이러기 때문에 이 사죄받은 자가 율법을 이행을 해야 자유가 있고 권위가 있고 또 평강을 가지고 생명을 가질 수 있지 생명을 가졌는데 율법 하나를 범죄했으면은 그 가진 생명이 어찌 됩니까? 저 O목사님? 이 율법에서 율법이 만일 뭐 그 수는 얼마가 되는지 모릅니다. 전지자의 율법이요, 곧 진리요. 이러기 때문에 그 진리는 하나라면 하나요 그 펴면 수가 한없이 많은 것인데 이 진리를 비유컨대 다 지키다가 한 진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생명이, 절대성 있는 생명이나 절대성 있는 자유나 절대성 있는 권위가 그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고 다른 법이 와서 말할 때는 다 권위가 있고 이라다가 하나 범한 그 법이 딱 와서 부들트리면 그 사람이 죽습니까 안 죽습니까? 죽게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 제판도 이제 일심 이심 삼심 뭐 고등 대법원 자꾸 이래 가는데 암만 가도 그 사람을 정죄할 법이 없으면은 그 사람은 자유입니다.
정죄법이 없으면은 재판소에서 너는 그렇지만 미우니까 한다 이러면 못 합니다.
'뭣 때문에 나를 그라느냐, 무슨 법으로 그라느냐' 할 때에 그 법이, 정죄할 법이 없으면은 그 사람이 법에 걸리지 안했으면 그 사람을 뭐 해치지 못합니다.
해치면은 해친 판사 그것이 틀렸지 그 사람은 자유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라.
그러나 뭐 다 괜찮았는데 나중에 그 사람에게 다른 사람 증인이 하나 떡 나왔는데 이제까지 전부 다 시비를 이겼지마는 그 사람이 마지막 증인이 나와 가지고서 그 사람의 잘못된, 법에 어겨진 것 그걸 하나 딱 증거를 해 버리면은 그 사람 정죄받습니까 안 받습니까? 정죄받아. 면할 수 없어. 그대로 형을 받아야 돼요. 이 법이라 하는 것은 세상에 있는 법은 법의 생명을 나는 말하기를 법의 생명은 권위라 이렇게 말해, 권세라. 권위가, 권세가 없는, 힘 없는 법은 죽은 법이오. 그래, 사람들이 입법해 놓은 그 법의 권위는 사람의 권위기 때문에 권위가 그것이 뭐 없다가 있다가 이렇게 되지마는 이 하나님의 율법은 그 권위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율법의 권위는 이것이 가감될 때가 없고 그거 또 자체가 진리기 때문에 가감될 때가 없는 것입니다.
없는데 이 율법의 행위는 범한 자에 대한 그 처리, 또 이행자에게 대한 그 처리, 이행자에게 대한 대우, 또 범한 자에게 대한 처벌 이 두 가지가 율법이 하는 일인데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범한 자의 그 처벌이라 하는 이것은 뭐 온 이후나 오기 전이나 꼭 같습니다. 꼭 같이 법이 처벌한 것은 같습니다. 처벌한 것은 법 자세에서는 처벌한 것은 예수님이 오기 전이나 온 후나 꼭 같지마는, 같지마는 무엇이 하나 다릅니까? 다른 것이 뭐이 다릅니까? 저 O집사. 우리가 달라.
해방된 우리가 달라, 우리. 알겠습니까? 해방된 우리가 달라.
법 자체로서는 처벌한 게 꼭 같지만, 법 편에서는 같지마는 우리 편에서는 예수님이 대신 처벌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서 해방됐기 때문에 영원히 멸망 가운데 있던 우리들이 거게서 해방돼 가지고 있는 거, 죄지은 것이 뻔뻔스럽게 해방받아 가지고서 사망의 권세를 다 벗어나서 있는 그것이 하나 다르다 그말이오. 그러면 사망의 권세를 벗어난 게 달라서 사망의 권세는 벗어났지마는 사망했던 것이 사망의 권세 벗어났으니까 그것은 사망이 없습니다. 사망이 없다고 해 가지고 그것이 그 산 자가 됩니까 안 됩니까? 산 자가 되는 것 아니라. 생명이 와야 또 산 자가 돼요. 생명이라는 것은 어데서 생명이 오느냐? 이 법을 이행한 데서 생명이 오는 것입니다. 법을 순종한 데서 생명이 와요. 법을 열 가지를 지켰으면 열 가지 그 열 가지 법 그런 조문에 대해서는 자유합니다. 아무도 해하지 못해요. 그러나 열 가지는 지켰지마는 법이 열한 가지 있는데 한 가지를 안 지켰으면 한 가지 거기 딱 그만 정지된다 말이오. 이래서, 야고보서 2장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모든 계명을 지키다가 한 계명에서 거치면 모든 그 계명을 범한 자가 된다' 그렇게 말씀했어요.
그러면 그 법은 하나이기 때문에 이 모든 법이 다 완료가 돼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이거 몇 가지 지켰다고 해서 몇, 가지 지켰으면은 지킨 것까지는 자유가 있지요. 지킨 데까지는 자유해요. 그거 어데 자유하는 법에 요새 말하는 거 뭐 패스포드라 하던가? 패스포드. 인제 떡 들어갈라 하니까 표 내놔라. 율법 지킨 표 내라 말이오. 표 떡 내놓으희까 쑥 들어갑니다. 이러니까 뭐 자꾸 들어갑니다.
들어가다가 나중에 그 한 군데는 가니까 갈라. 하니까 그만 그게 없어. 그만 거기 못 가고 딱 갇혀 버렸다 말이오. 더 못 가고 갇힙니다. 그게 법입니다.
이래서, 율법의 그 권위 행사에 대해서 범한 자에게 대한 권위 행사는 율법이 했기 때문에 율법이 그 권위 행사를 다 했지마는 율법을 지킨 자가 없기 때문에 이 율법이 존재 목적은 법을 형을 하기 위해서 그런 것보다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법이 생명법이 있는 것인데 이거 지키지 못했으니까 법에 외나 목적과 소원에 중요한 것은 이것을 그만 실패를 하고 말았다 그말이오.
실패하고 만 것을 하나님이 그 일을 기어코라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율법의 권위를 기어코라도 세워 가지고서 이 율법의 완성을 위해서 당신이 이래 친히 사람을 입고 오셨다 말이오. 당신이 사람 입고 오셔 가지고서 신인양성일위가 돼 가지고, 당신은 뭐 이거 율법을 지킬 이유가 없고 율법의 주인이요, 그는 진리가 당신의 뜻이 진리요 하나 이기 때문에 그는 당신이 하나님으로 계시면 그 벌써 율법 그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는 율법을 지켜야 될 이유가 없는데, 율법을 지킨 것은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율법을 이행했다 말이오. 그러면 율법을 이행했어.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 가지고 이 형을 받아서 율법의 권위를 세웠고, 그러니까 율법의 권위를 오기 전이나 같은, 세웠지만 우리를 거기서 구출해 냈고, 또 율법을 당신이 이행을 해 가지고서 순종을 해서 율법의 완전 이행, 환전 순종, 율법의 요구를 다 응해 드렸다 말이오.
예수님이 율법의 요구를 다 응해 드렀다는 말은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이런 이건 자가 되기를 원한다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심판의 소원이요, 또 그것이 율법의 소원이라 말이오. 하나님의 공심판이라는 이 철망을 떡 하나 방어선을 하나 내놓고 여게는 하나님의 율법을 다 이행한 자만 통과하지 하나도 범한 자는 통과 못 해요. 못 하는데 예수님이 대신 우리 대신 이행했기 때문에 우리 대신, 예수님은 그 이행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데 우리를 대신해서 이래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신 이행인 이 대속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공심판에 자유로 통과라 말이오. 자유로 통과라.
그러면 자유로 통과니까 여게는 하나님의 율법에 다 완전히 이행하고 다 지킨 자라야 여게 통과하게 되고 여게 통과한 자는 말하자면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킨 자라야 통과하게 되기 때문에 이 공심판 통과자는 완전자라 할 수 있다 말이오. 공심판 통과자는 완전자라. 진리에 대해서 완전자라 하나님의 입법에 대해서 완전자라.
이 완전자이기 때문에 그 완전자가 살 수 있는 그 세계 가 가지고 살 수가 있는 공심판 통과를 시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율법 이행을 대행해 가지고서 이렇게 우리에게 칭의를 주셨다 그거요. 이래서,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면 여기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이라니까 천지가 없어지고 난 다음에는 이 율법이 어찌 되느냐 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의 잘못하면은 의문점이 생기기 쉽겠습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전부 낱낱이 다 전부 기록하는 것이 아니고 영감받은 사람들이 건너뛸 수 있는 정도로서는 건너 뛰도록 이렇게 발표했기 때문에 다 기록할라 하면 세상에 둬도 기록한 책을 두지 못할 만치 양이 많지마는 육십육 권에 간추려서 이래 놓은 것은 이것은 그 속에 영감 도리가 있기 때문에 간추려서 이헤게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왜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이 율법이 그라면 폐해질 때가 있느냐?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다 한 획도' 하나도 폐하지 안하고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 말을 기록한 이것이 좀 잘못하면 거게서 좀 의혹이 생겨 가지고서 어렵겠는데 왜 천지가 없어진다는 요것을 여기다가 붙였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입법하신 입법은 그 입법은 영원한 입법이요 완전한 입법이지마는 그 입법이 지금 있는 이 천지, 지금있는 이 천지가 있는 동안에 거기에 관련된 입법이 있고, 이 천지가 정죄 받아서 없어지고 난 다음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생겨지고 난 다음에는 그때는 적응되지 않고, 그때는 적응되지 안하고 이 없어질 이 천지가 있는 그 기간 내에만 적응될 수 있는 그런 법조문이 있다 그말이오. 그것을 여게 나타내서,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짐으로 폐해질 법이 있습니다.
그 법이라는 것은 그것은 법이 정죄하고 이행한 자에게 대우를 해 줄 수 있는 그런 무슨 조건이 있어야 법이 필요하지 그게 없으면 안 되는데 이제 법이 필요가 없는, 이 세상에 있어, 세상에 이 심신의 육을 가지고 있고 영을 가지고 있을 때에 해당되는 이 법이 영육이 육이 없어질 때, 육이 없어지고 그만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고 난 다음에는 그게 없어진다 말이오.
그러면 없어지면은 그 법이 '폐해진다' '폐해진다' 그러면 폐해지는 것은 누구에게 폐해집니까? 그 법이 전피조물에게 폐해집니까, 택한 자에게 대속한 자에게 대해서 폐해집니까? 그 법이 대속하지 안한 자들에게도 폐해집니까? 어찌 돼요? 대속하지 안한 자에게는 폐해 지지 안해요. 이 법이 영원히 있어요. 영원히 정죄하고 그만, 정죄해 버리면 한번 정죄해서 영원히 그대로 형으로 계속하지마는 폐한 자들에게 한해서는 부활하기 전에는, 부활하기 전에는 이 법이 적응되는 법이 있지마는 그만 잘했든지 못했든지 정죄받아서 이렇게 심판받아 가지고 부활하고 난 다음에는 이 법이 폐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이 천지가 없어진다는 요 말은 그 법이 법에 한계가 있어서 그 한계가 지금 있는 천지 요 천지 동안에만 적용되고 역사할 수 있논 한계되는 법이 있고, 새 하늘과 새 땅과 영원 무궁토록 법의 권위가 역사할 수 있는 그 법이 있기 때문에 요 제한된 법을 부분을 들어서 표시하기 위해서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다 없어지지 않는다 요 말씀으로써 표현한 것입니다.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이 법도 또 영원한 법도 예수님이 대행으로써 다 이행했고 대형으로써 이거 범한 것을 다 완료를 완전히 하고, 하나님의 그 입법은 세상에서 지킬 것은 세상에서 지켜야 하고 그 율법을 자기가 수행해야 하는 그 시간과 장소와 그 모든 범위 그 모든 각 종류에 대해서 그 종류가 끝났으면은 그 법은 또 거게 대해서는 법이 처리할 것이 끝나 버리고 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획 하나도 남기지 안하고 당신이 법을 어긴 데 대해서 정죄한 것은 이 형을 받아서 하나도, 획 하나도 빼지 안하고 다 형을 받아서 그것을 완전히 완료를 했고 완료를 했는데, 그 완료한 것이 영원 무궁에 관한 것도 있지마는 이 세상에 관한 것도 있기 때문에 이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리라 한 요 말씀은 이 하나님의 율법 가운데에는 그 시간과 공간에 한계된 그 조건, 한계된 그 부분들이 있다 하는 것을 여게 표시했습니다.
한계된 부분들이 있는 것을 표시했는데 또 하나는 뭐이냐? 당신이 우리를 대행했는데 우리를 대행하시는 그 대신 행한 그 대행에, 그러면 우리를 주님이 우리를 대행했는데 대행하실 때에 그 율법에 대해서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안하고 우리를 대행할 것은 다 대행을 했습니다. 이래서,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안하고 다 이루리라 하는 이 말씀은 율법의 절대 권위성으로서 여게는 하나도 가감하지 못한다, 가감하지 못한다 하는 것을 여게 나타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구원은 법으로 구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법으로 정죄하고 법으로 구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구원은 무슨 사정이나 정리로 그런 것으로 하는 게 아니고, 이거는 우리 구원의 근거는 법입니다.
이래 가지고 정죄보 이 법으로 정죄했을 때에 아무도 면제하지 못 하고 이 법으로 정죄했을 때는 면제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와 가지고서 십자가 못박혀 죽은 것이 이 법을 어긴 그, 법은 하후하박으로 조금도 가감이 없고 사정이 없다. 이 법은 절대성을 가지고서 법대로 처리 하시는 이 법의 권위성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획 하나도 예수님이 우리 대속한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이기 때문에 뭐 사람들이 하는 것은 얼렁덜렁해서 대략만 하면 되지 않느냐? 대략만 되면 되지 않느냐? 예수님이 우리를 대형한 것도 대략만 하면 되지 않느냐? 대형한 것도 대략이 아니고 획 하나도, 획 하나라 말은 그 법에 아주 극히 세부분을 가리켜 말하는데 세부분도 그는 도매금으로 그와같이 하지 안하고 낱낱이 그 하나도 가감이 없이 그대로 이행하게 되고 대행도 그렇다.
그러면 여기 일점 일획에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우리 형벌을 그 받으신 것도 하나도 가감 없이 전부를 다 받았고, 대행하신 것에서 의를 준 것도 하나도 가감 없이 다 행하셔 가지고서 의를 주셨다 하는 그 절대성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 율법의 가감성이 없고 절대성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율법으로 죽이고 율법으로 살립니다. 율법으로 죽이고 율법으로 살리는데 그라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신 율법으로 우리가, 대신 하나가 대신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게서 해방돼 나와서 사죄를 받았고 또 대신 행했기 때문에 우리는 행하지 안했지만 행한 자가 돼 가지고서 모든 존재들에게 자유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유하게 되는데, 그러면 율법으로 죽었고 율법으로 살았고,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는다 이랬는데 우리가 율법을 완전히 이행한 자라야, 율법 완전 이행한 자라야 거게는 참여할 수 있는 거게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 가지고서 율법 완전 이행한 자들이 사는 그 세계, 참여하는 세계에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가게 되고 또 대속의 공로를 입고 가게 되면 그 나라는 뭐냐? 그 나라도 내나 율법의 나라요 진리의 나라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에 가 가지고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써는 그 나라에 들어갔는데 그 나라에 들어가 가지고 우리 개인들이 행동할 때는, 그 나라에 들어갈 때는 다 들어갔지마는 그 나라에 개인들이 들어가서 행동하는 거는 어찌 행동하느냐? 행동하는 것은 그 사람이 율법으로 행동합니다. 율법으로, 무궁 세계는 율법으로 행동합니다. 율법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무궁세계에는 율법 완전 이행한 자로 이 나라 들어온다. 율법 완전 이행자로 이 나라 들어오는데 이행한 자로 들어가는 데에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서 그 나라에 들어갔는데 그 나라 들어보니까 또 그 나라는 율법대로 사는 나라요. 율법대로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율법 하나를 행했으면 그 사람은 하나의 자유밖에 없습니다. 둘을 행했으면 둘의 자유밖에 없어. 열을 행했으면 열의 자유밖에 없어. 율법 이행자라야 거게는 율법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 행한 자는 거게서 하나로만 살 수 있고 둘 행한 자는 둘로만 살 수 있지 그 행하지 안한 것은 불법은 거게 들어가지를 못해요.
이러니까 예수님의 대속으로 들어가기는 들어갔는데 들어가 가지고서 활동하는 그것은 개인이 율법을 어느 정도에 이행하느냐 하는, 개인 그것이 사심판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심판으로 되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는 개인이 자기가 율법을 얼마를 세상에서 행했느냐 행한 그대로 그 나라에서 보응받고, 그러면 율법을 세상에서 행한 연습을 해서 행한 그 사람은 율법 행하는 그 실력을 받았고, 이 사람은 열 율법 열을 행하는 열 실력을 받았다, 스물을 지키는 스물 지키는 권위와 행위와 실력을 가졌다. 이 사람은 율법을 하나도 지키는 그런 권위나 실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 들어가기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들어갔지마는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그저 밥이나 먹고, 거기 밥이 없지마는 밥이나 먹고 항상 영원히 평안하게 살고 그렇게 영생만 하지 거게서 제 활동의 범위는 없어.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권위의 차이는 뭘로 정하느냐? 하늘나라의 권위의 차이, 영광의 차이, 자유의 차이, 존귀의 차이, 가치의 차이, 환영의 차이 이 모든 차이는 전부 법으로 된다 하는 요것을 지금 내가 말합니다. 이래서 기독자의 구원은 법으로 멸망받고 법으로 구원얻었다. 이러기 때문에 영원 무궁토록 이 법을 가지고서 처리한다.
이래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구원 얻은 사람들이 구원은 그렇게 해서 하늘나라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들어가고, 하늘나라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들어가고 대속으로 들어간 자들이 하늘나라에서 활동하는 것은 법으로 활동한다 그 법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이렇게 말했는데 그 믿음이라 하는 그 속에는 법이 있습니다. 믿음이라 속에는 법이 있고 사랑도 사랑 속에 생명은 법입니다. 법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래서 오늘 우리들이 율법 시대라 은혜 시대라 이래 가지고 오해를 해서 율법을 무시하는데 영원토록 우리는 율법을 지켜서 살 사람들입니다. 하늘나라 가서도 내나 하나님의 입법 그 입법대로 준해 살지 그 법을 어겨서는 못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법의 나라라, 율법의 나라라. 하늘나라는 율법의 나라라. 하늘나라는 은혜의 나라라, 사랑의 나라라,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인데 그 사랑은 율법의 사랑이라. 율법 사랑이라. 율법을 어기지 못하는 사랑이라. 율법대로 되어 있는 사랑이라. 요것을 여러분들에게 증거합니다. 또 앞으로 시간 있으면 자꾸 증거를 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 분 기도 후에 결혼 상담 있습니다. 반사 선생점들은 자꾸 이렇게 광고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예사로 들으라 말이 아니고, 꼭 신중히 듣고 이행하라 말이오.
주일학교 반사들은 꼭 공과를 외우고 자기가 실행해서 경험하고 체험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십시오.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않고 꼭 계속을 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