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피난처

 

1984. 7. 1. 주일 오전 

 

본문 : 이사야 26장 1절∼7절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선지자선교회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이 참되다 하는 것을 체험 하고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시대를 타고 났습니다. 물론 구약 때도 하나님의 계약은  신실해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만 그때는 그 눈이 떠서, 기간이 떠서 당장에  이루어지지를 아니하고 긴 세월을 거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약이 정확히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그때 그때 심령이 어두운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 후 역사가 이루어진 후에 '과연 계약대로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말세지말이라 그저 하나님의 계약하신 그대로 즉각 즉각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금은 참 계약대로 이루어지는 이 사실을 어두운 사람들도  잘 깨달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중에도 강대국의 국민으로 되어 있는 그런 사람들은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다는 것을 알기가 좀 어렵습니다. 왜? 그런 나라는 변동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변동이 없으니 하나님이 계약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구경하기가 몇 십 년 만에, 혹 몇 백 년 만에 이루어지는 것을 구경하니 그들은  참 육적으로는 강대국에 있기 때문에 복 있는 사람이지만 신령한 면에서는 복이  그렇게 않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한국 같은 나라는 지금 전쟁 없은지가 한 삼십여 년 평온하게 지나갔고,  또 그 정권이 그저 자주 교체되지 안하고 이래 좀 나가기는 나갔지만 벌써  그동안에도 변동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왜정 말년에 조선과. 일본이 이렇게  합병되었다가 또 해방되고 난 다음에 또 6.25전쟁이 나고 북 이렇게 자꾸  변해지는 이런 것을 인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철두철미하게 그대로다 하는 것을  체험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체험을 했고, 또 벌로 돈이나 세상 권세나 그런 것만  보고 정신없이 사는 사람들은 아무리 그 가운데 있어도 체험을 못한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 민족 자체도 그렇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다  동감으로 '한국은 도매 위에 올려놓은 고기와 같다. 지금이라도 칼을 때리면,  척척 쪼개져서 다 그만 박살이 된다.' 그렇게들 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긴장은, 마음의 긴장은 풀리지 않다. 한국의 긴장은 그대로 계속 되어  있다. 이러니까, 온 세계에서 동정을 하고 한국 백성의 긴장을 좀 풀어 주도록  하자. 해서 뭐 유엔 안보회에서도 노력을 하고 강대국들이 이렇게 노력을 하나  한국의 이 긴장 완화는 안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참 아주 도매 위에 오른  고기처럼 지금 생명이 어찌 되나 하는 이런 위급한 도상에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러니까,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어떻게 하면 지금 강대국으로  이민을 가서 피난을 갈까 해서 그 재산을 딴 데로 도피를 시키다가 발각도 되고.

또 도피시키는 게 발각 안 된 게 더 많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똑똑히 모르지만.

모두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이 나라에 될 가지고는 안정성이 없기 때문에 강대국에  갖다 놓고 거기 가서 좀 '이제 안심하고 살겠다.' 하는 그런 생각이 거의  다대수가 다 그러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강대국에 이민을 갈 수 있는데 가지  않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를 못합니다. 갈라고 해도 갈 수 없어서 못 가고 그래  있는 것이지 갈 수만 있으면 갈 건데 가 봤자, 그 나라에 가 봤자 아무 재산  없지, 아무 기업 없지 또 그 나라에 가 가지고 무슨 출세나 무슨 취직이나 하려  해도 또 어렵겠지 이래 놓으니까 어쩔 수 없어 그래도 우리 한국에서 있어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들이기 때문에 아마 하루도 마음이 도근도근합니다.

그래 놓으니까 우리 남한에는 공산주의의 지하운동이 아주 손쉽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재산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공산주의 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이  공산주의자들을 박대해서는 안 되겠다.' 해서, 나는 모르지만 그렇지 않는 가  싶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부자들 찾아가 가지고 이렇고 이런데 이거 좀  지하운동에 정치 자금 좀 대 주십시오? 하면 척척 대 주고 그래 가지고 그럴  때에 이제 좀 대 줘 놓고 무슨 일 있으면 '나도 이 정치 자금을 누구누구에게 대  줬습니다.'  이렇게 지금 말하려고 그렇게 모두 꾀쓰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또 그 돈이 지하  운동 정치 자금에 쓰여지느냐 하면 그래 가지고 겁쟁이들을 이용해서 돈을  착취해 가지고 자기의 또 사재를 만드는 그런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뭐  껍데기를 활딱 벗겨 놓고 보면 연극이 굉장한 연극이 모두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한 말로 말하면 '어떻게 하면 나와 내 가정을 안정 살이를  할 수 있게 할까? 안정 생활을 하게 할까?' 그만 그것이 그들의 총 중심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에는 우리의 유일한 이 피난처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참 이 피난처는 든든한 피난처입니다.

 "그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여기에 유다 땅이라 하는 것은  팔레스틴 그곳을 두고 말하는 것이나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한 그  백성의 나라를 가리켜서 유다 땅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유업으로  남겨둔, 유다가 십이 아들 중에 믿음의 조상이 되고 그 믿음의 나라, 택자들의  구원의 세계를 가리켜서 유다 나라라. 유다 땅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성읍이라 하는 것은 어떤  것인고 하니 원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 원수가 침략해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원수를 단단히 방어해 둔 곳이 성입니다. 또 원수를 방어했기 때문에 원수는 그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해하지를 못하고 또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유리해서  성 밖에 있는 사람 백 명이 오는 것을 성 안에 있는 한 사람이 다 그것을 능히  이기고 남을 수 있도록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이 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자주 요새지라 그렇게 말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내나 요새지도 해안에  있는 곳으로서 원수는 불리하고 이쪽은 유리한 그곳을 가리켜서 요새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성도 더욱 더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다.' 원수가  아무리 버글버글해도 원수의 그 침해가 우리를 해하지 못할 수 있는 그런 견고한  성읍이 있다. 견고한 굳은 성읍이 있다. 또 원수는 우리를 해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원수를 다 정복해서 이용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되어 있는 그런 성읍이  있다.

 이 견고한 성읍이 있다는 이 이사야 26장의 이 절수를 보고 그 ○○○ 씨는  '이곳이 뭐이냐? 천년성이다.' 이래 가지고 그리 몰아들여서 재물을 많이  축재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견고한 성읍이 있는 줄로 알았는데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그 성읍을 잘못 깨닫고 사람들이 만든 성읍인 줄로 그렇게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피난을 잘못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여기에 이사야 26장에 말씀하신 이 견고한 성읍이라는 이 성읍을  만일 그 ○○○장로가 거머쥐고 이 성읍, 성읍을 발견해서 이 성읍에 피난을  했더라면 그는 온 천하가 다 달려들어도 털끝만치도 해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는  대적은 다 그들을 위하는 것이 돼 버리고 말고 그들의 것이 되고 마는 그런  성읍입니다.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소망을 단단히 가집시다. 뭐  자기가 미국에 가서. 건너가 가지고 날쌔게 모두 다 '저 사람은 너무 날랜게  탈이다.' 싶은 목사 쳐 놓고는 미국 시민권 가지지 안한 목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볼 때에 '저 사람은 느린 게 탈이 아니라 날랜 게 탈이다. 날랜 게  탈이고 예민한 게 탈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앞서 움직이는 그런 실수가  많다.' 싶은 사람들은 전국 미국의 시민권 다 얻어 가지고 한국에 와 가지고  지금 일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시민권 없는 한국에 있는 사람들 보고 아주 어리석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강대국 시민권을 가지고 이래 와 있으니까 무슨 꽝 하면  후루루 날아가면 되는데 아 그런 방비도 안 해 놓고 저래 가지고 큰 소리 뻥뻥  하고 있으니 저거는 참 어리석다.' 이렇게 보는데, 또 미국 그 강대국 시민권을  지금이라도 얻을 수 있고, 미국 가도 얻을 수 있고 미국 안 가고 앉아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앉았어도 시민권을 줄라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앉아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 시민권을 안 받고 시민권을 받으면 그들 앞에서 맹세해서  한국을 배반하고 그 나라의 국민이 돼서 하겠다는 그런 수치스런 약속을  선언하게 되기 때문에 안 받는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여기에 있으면서도 또 생각하기를 '아 저 사람들은 뭐 한다고  거기까지 가 가지고 또 시민권 얻어 놓고 또 한국에 와 가지고 이렇게 날뛰고,  대단히 급하고 바쁘고 참 조급한 사람들이네. 뭐하려고 그렇게 애터지게 그럴까?  여기 있으면 좋을 건데.' 그렇게 또 그 사람들을 답답하게 여기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이 견고한 하나님이 세워놓은 견고한 성읍을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도 혹 그저 이 세상 돈이니 권세니 행락이니 취미니  그런데에 도취가 돼 가지고 정신을 못 차려서 뭐 전쟁이 나는가 뭐 어찌 되는가  그런 것도 모르고 지금 안심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은 안심해 봤자 한 번은 꽝  놀랠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참 '이렇게 앞으로 어려운 일이 우리에게  있을지 모르는데 그 준비를 어떻게 하나?' 마음이 조급해서 '이민을 갈까?'  이민을 가도, 어쩌든지 한국 땅만 벗어나면, 뭐 그곳에 가서 죽도록 일해 봤자  우리나라보다 미개한 나라도 자꾸 이민 갈라고 합니다. 왜? 반국같이 이렇츰  공산주의 바로 입 벌린 그 턱 밑에 있는 나라는 없기 때문에 그렇게 갈라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또 할 수 있으면 이민 갈라 하면, 이민으로 지금 이민 청원을 한  사람들 수를 말하면. 다 갈라 하면 뭐 얼마나 갈는지 모르겠소. 나는 그 숫자는  똑똑히 모르지만 굉장히 많으리라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거기에 가 봤자, 거기에 가 봤자 든든치 못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때에 홍수가 내리니까 날랜 사람들은 높은 잿만당으로 산만당으로  기어 올라가서, 먹을 것 짊어지고 기어올라 '설마 며칠밖에 더 되겠나?' 하고  높은 산만당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올라가서, 안심을 하고 기뻐하면서 '이제  여기까지야 물이 안 올라오지.' 하지만 마지막에 그 산만당까지 물이 채여서 다  몰사되고 말았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까 강대국이 뭐 얼마나  높아 봤자 얼마나 높으겠습니까? 강대국도 소용없습니다.

 이러니까. 참 우리에게 피난처를 주셨습니다. 똑똑히 배우고 여기서 안심을  하고 오늘은 모두 다 할렐루야를 부르고 이제 이 성으로 다 피난하도록 노력을  합시다. 여호와의 말입니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계약을 선포해 놓으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구원으로  성을 삼았다 말은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성 안에 있는 것을 말하고 곽은  성울타리를 가리켜서 곽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계약으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이  구원으로 성곽을 삼았다. 구원으로 성곽을 삼았다. 이 구원으로 성곽을 삼았기  때문에 이 구원을 자기가 자기 것으로 알고 이 구원을 이루어 가지는 자는, 이  구원을 이루어 가지는 자는 온 천하가 그를 아무도 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해하려고 해도 해하지 못한다.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박멸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털끝만치도 공산주의가 그런 기독자는 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해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그 참된 기독자를 위해서 모든 것이 결과적으로는 이용이 되고  만다. 모든 존재에 대해서 기독자는 하나도 해하지 못하고 기독자는 그것들에게  대해서 다 이용할 수 있는 유익이 된다. 그것을 요게 말씀했습니다.

 구원으로 성을 삼으셨고 곽을 삼으셨다. 이 외에 모든 어떤 뭐, 자기와 가까운  것이나 먼 것이나 어떤 것이든지 모든 존재에게 피해를 받지 않는 것은 구원밖에  없다. 또 모든 존재가 결과적으로 자기를 위함이 되어지게 하는 것도 구원밖에는  없다. 모든 해하는 자를 결과적으로 내가 그를 삼켜서 이용해서 그는 나에게  정복을 당하고 저는 나에게 이용을 당하고야 마는 그런 성과 곽이 있다. 있는데.

그거는 뭐이냐? 하나님이 무슨 쇠로 만든 철성으로, 어떤 섬으로 만든 곳을,  어떤 대륙으로 만든 곳을, 어떤 강대국의 아주 선진한 그런 모든 물리의  과학이나 물강으로 가지고 만드신 것이 아니고 구원으로 하나님이 요렇게  만드셨다. 구원으로 만드셨다.

 구원으로 만드셨다 말은,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외에는 없습니다.

구원으로 만드셨다 그 말은 사죄로 성곽을 만드시고 칭의로 성곽을 만드시고  하나님과 결합으로 성곽을 만드셨다. 자기가 이 사죄도 죄를 벗겨 주신, 이  사죄를 입혀 주신 이 사죄를 벗지 아니하려고 하는 그것은 성과 곽이 된다.

사죄를 벗지 안하려고 하는 그 사람의 모든 움직임은 모든 존재를 결과적으로는  다 이용하는 이용이 된다. 사죄를 자기의 생의 전공으로 삼고 있는 자는 어떤  피조물이라도 그는 하나도 가해하지 못한다. 해를 주지 못한다. 어떤 존재라도  해를 주지 못한다. 또 모든 존재가 그를 위하는, 결과적으로 이용이 되고 만다.

그는 대적하는 모든 존재를 멸할 수 있으나 대적하는 것들은 하나도 이를 해하지  못한다 요것을 약속했습니다. 사죄를 전공하는 자, 나는 어디서든지 죄를 벗지  안하는 자 뭐 직장이 떨어져도 나는 죄는 안 입는다.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주님이 나에게서 죄를 벗겨 주셨는데 죽어도 내가 죄는 짓지 않는다. 죽어도  나는 죄는 입지 않는다. 직장이 떨어져도 나는 죄는 입지 않는다. 생명이  끊어져도 죄는 입지 않는다. 온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나는 죄는 입지 않는다.

나는 죄는 벗었기 때문에 이제 다시 죄는 입지는 않는다.

 또 나에게 칭의를 주셔서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도록 이렇게. 피동되는 이 공로를  베풀어서 하나님에게 피동되도록 딱 시발을 시켜 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이것을 나는 양보하지 많고 나는 빼앗기지 않는다. 뭐 천인 만인이  말해도 하나님에게만 나는 피동한다. 하나님의 역사인 그 진리에게만 피동한다.

진리에게 피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피동하는 것이요 그게 하나님에게  피동하는 것이라. 죽인다 해도 하나님에게 피동, 뭐 있는 걸 다 박탈시켜서  뺏든다 해도 하나님에게만 피동, 또 존귀를 준다 해도 하나님에게 피동. 좋은 걸  줘서 꾀워도 하나님에게 피동하는 거 변동없고. 어떻게 박해를 가해도  하나님에게 피동하는 거 변동 없다. 하나님에게 피동된 요것만을 전공으로,  또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과 결합하는,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을 주로 삼고  하나님을 지존자로 이렇게 삼아서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을 제일 높여서,  하나님을 자기 마음 가운데에 제일 높이고 그분을 지상의 분으로 여겨서  그분에게 속하고. 그분의 명령을 따르고, 그분의 하는 역사의 인도를 따르는,  그분에게 속한, 그분 모시고 그분 숭배하는 그분 섬기는 거 이거 변동 없다,  요것이 구원입니다. 요 세 가지가 구원이오.

 사죄를 입고 벗지 않는 것이 구원이요, 칭의를 입고 벗지 않는 구원이요,  하나님과 화친을 벗어 버리지 안하고 입고 있는 것이 구원이니 요 세 가지를  입고 있는 이것이 말세에 견고한 성과 곽이다! 요걸. 여러분들, 우리가 견고히  잡아야 됩니다. 견고히 잡아야 됩니다!  과거에, 과거에 일세기나 삼세기, 일세기, 삼세기, 사세기, 오세기, 또  칠세기에는 천주교로 더불어 많은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팔세기, 뭐  십세기 십 일 십이 십 삼 십사 십오 십구 이십 그 세기마다 군데군데에서 큰  불들이 일어났습니다. 큰 박해들이 일어났습니다. 일어났지만 이 구원의 성곽  속에든 사람들은 하나도 손해 보지 안했습니다. 다 세상을 이기고 다  정복했습니다.

 이러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셨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잡읍시다. 그때는 예언으로 이사야는 예언했는데 이제 신약 시대에는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았습니다.

 이러니까, 이 구원 속에는 노아의 방주 안과같이 홍수가 해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망하는 것은 죄 때문에 망하는 것인데 이 구원 속에 있는 자는 죄가  망치지를 못합니다. 인간이 망하는 것은 무지한 제 욕심대로 하다가 망하는  것인데 의을 입은 자는 이 인간의 제 욕심이라는 그런 것'이 근방에 오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 이 놈에게 끌려  가지고 망하는 것인데 하나님으로 화친돼 결합을 놓지 않는 자는 마귀가 근방에  와서 침노도 못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호와의 구원이 견고한 - 견고하다 말은 아무것도 해 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 세상 뭐 견고한 성곽 해 봤자 그 까짓 대번  부서지는 그런 거 말하는 거 아니오. 절대성. 완전성, 불변성. 영원성, 전지성,  전능성을 가진 구원이기 때문에 그 구원은 피조물을 이용 만 하고, 피조물을  그거 위해서 이용되도록 창조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든 천상천하의 피조물을  창조하신 목적이 뭐이냐? 창조의 목적이 이 구원을 위해서 창조됐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의 존재 목적은 이 구원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이 구원을 위하는  것으로서 그들은 이용되는 것이 그들의 직책을 하는 것이요 그것이 목적 달성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굳게 잡읍시다.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너희는" 말한 것은 구속받은 자들은,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찌어다" "문들을  열고" 문은 인본주의의 세계, 인간이 주인이 되어 있는 세계, 모든 인간의 자율  세계, 인본 세계. 인간의 자율 세계, 죄악의 세계, 악령의 세계, 악령과 악성.

악습으로 된 세계. 창조주가. 엄연히 있는데 제 중심으로 날뛰는 자를 가리켜서  악령이라고 말하고. 제 중심으로 살려는 인성 타락성을 가리켜서 악성이라고  말하고, 또 인간 욕심대로 행동한 것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악을 한번 두번 하는  악습이라.

 이러니까, '문을 열어라' 네 주관으로, 네 생각으로. 인간들 생각으로 보이는  세계만을 상대하고 피조물만을 위주로 해 가지고 하는 그런 세계를 버리고, 문을  열고, 한 번 열면 진리 세계, 진리 세계. 하나님이 계시는 세계 생명 세계, 불변  세계. 완전 세계. 이 문을 열면 그 세계에 들어갑니다. '문들을 열라.' 네가  세상을 부인하고 너를 부인하고 인생을 구원하고 하나님, 이 창조주와 대립되어  있는, 창조주와 이질되어 있는, 창조주에 거슬리는 창조주에게 반대되는, 진리에  반대되는 그 모든 것은 크든지 작든지 다 불탈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다 망할  것들이요 불탈 것이다. 영원히 타는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갈 것들이다.

이러니까, "문들을 열고" 이런 것들을 부인하고 이런 것들을 버리고. 네 주관을  버리고, 네 사욕을 버리고 네 옛 사람을 버리고.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하나님에게 복종만 하는 세계로 들어오라. "신을  지키는" 하나님에게 복종만 하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분에게 만  복종하는 세계로 들어오라.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라.' 의로운  나라, 그분의 뜻을 어기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분의 뜻대로만 된 것만 가득 차  있는 이 세계로 너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한 걸음 한 걸음에서 들어오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요것을 똑똑히 잡은 자는 요동치  않습니다. 이것을 잡은 자가 독침 앞에서 겁낼 것입니까! 공산주의가 총부리를  가지고 철컥 하면서 포위를 한다고 겁을 낼 것입니까! 일본 판사나 검사나  형사나 부장들이 와 가지고 야단을 지긴다고 겁을 낼 것입니까! 더 크신 분이  자기를 아듬고 있는데 뭐 겁내겠습니까? 우리가 믿지 않는데서 그렇지 우리  지각이 없어 그런 거 아닙니다.

 어린 아이들이 동무들한테 가 가지고 좀 큰 동무가 주먹을 쥐고 때리려고 하면  도망을 치다가서, 저거 아버지 있는 곳을 일기 때문에 도망을 쳐서 막 뛰어가  가지고 아버지 품안에 딱. 딱! 안겨 가지고는 아버지 품안에 떡 안겨 가지고는,  이래 가지고 안겨 가지고는. 나도 그전에 그런 거 많이 했어. 안겨 가지고는  '아나 때려라. 아나 때려라. 아나 때려라.' 그 동무보다 힘센 아버지가 위에 떡  아듬고 있으니까 때릴리가 있습니까? '아나 때려라.' 해도 그만 아무 말도 안  하고 저거 아버지 안에 품겨 있으면 그만 도망 가 버려요. 가 버린다 그 말이오.

 이제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이 성곽이 되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안  믿으면 안돼!  다 같은 병든 자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주님이 하실 수 있으면 해  주십시오? 그거 가지고는 못 해요. '하실 수 있으면이라니? 내가 못할게 없는데  네가 안 믿으면 내가 할 수가 없다. 안 믿으면 할 수가 없다. 내가 못해 그런 게  아니라 네가 안 믿으면 내가 할 수가 없다.' '예. 믿사옵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 믿습니다.' '그래.' '믿습니다.' 하니까 탈라 나았습니다.

탈칵 나았어.

 이번에도 대구 집회에서 백 팔십여 건이 병이 나은 것은 다 고 사람이 그때  믿음을 가지고 믿으니까 낫아 주셨지 안 믿으면 안 된다 그거요. 믿으니까 됐지.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찌어다" 우리가 구원 얻는  나라 그 나라는 하나님의 복종의 세계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거뿐이지 복종  안한 거는 하나도 없어. 하나님께 복종만이 가득 찬 세계야. 그러니까, 복종하는  세계, 의로운 세계라. 하나님에게 복종하되 복종이 다 완료 완성 된 것들만 가득  가득 찬 곳이 그 구원의 나라입니다.

 3절에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시키시리니" 심지가 견고한  자. '아. 이게 젊을 때부터 돈 돈 하던 그 심지가 죽을 때까지도 돈 돈 하는 그  심지 말하는 것 아닙니다. 젊을 때, 국민학교 들어갈 때부터 '나는 공부해  가지고 세상 감투 쓰겠다.' 이래 가지고, '세상애서 부자되고 뭐하겠다' 하는 그  심지를 죽을 때까지 그 심지를 아무리 견고해 봤자 그 심지는 견고할수록 망하고  죽습니다.

 여기에 심지, 사람의 의지가 견고하다, 그 의지가 요동치 않는다. 의지라는  것은 작정한 그 작정이 됐을 때에 의지가 되는 것인데, 그 의지가 변동되지 않는  것. 심지의 견고한 자. 무슨 심지?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셨다.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문 열고 들어가자.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만 전적  믿고 의지하며 바라보면서 들어가자. 하나님 말씀에 위반되는 죄를 다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복종 복종하는 세계로 들어가자, 하는 이 일을 깨닫고  시작은 했지만 어떤 사람은 시작하다가 어려운 일 있으니까 그만 중단하는 사람,  어떤 사람은 시작하니까 마귀란 놈이 '이놈은 달리는 안 될 터이니까 돈을 줘  꾀워야 되겠다.' 시작한 그것을 돈을 주니까, 돈을 많이 주니까 그만 돈 거기에  욕심이 나 가지고 돈 그걸, '예' 하고, 돈을 많이 받으니까, 그만 신을 지키는데  '너 신 지키면 돈 이거 다 뺏든다.' 돈 안뺏기기 위해서 신을 팝니다. 어떤 자는  신을 지키고 이렇게 나가니까 마귀란 놈이 '이거는 좀 벼슬을 줘야 되겠다. 높은  지위를 줘야 되겠다.' 지위를 주니까 그게 뭐인지도 알지 못하고 덜컥 삼켜  가지고 높은 지위를 주고는 '네가 이 지위를, 높은 지위인데 이 지위를 지키는  데에는 요런 신은 양보를 해야 된다. 이런 의는 양보를 해야 된다. 이런 복종은  양보를 해야 된다. 요럴 때는 사죄도 양보하고 칭의도 양보하고 화친도 양보를  해야 된다. 예수님의 구속도 양보해야 된다. 요럴 때는 양심의 가책이 돼도 해야  된다. 요럴 때는 주일도 좀 범해도 해야 된다.'  이라니까, 그만 그것 때문에, 처음에는 독실한 사람이 그만 그 심지가 권세  때문에 그 심지가 그만 흔들리고 꺾어집니다. 돈 때문에 꺾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이 지식 때문에 꺾어집니다. 행락 때문에 꺾어집니다. 가정 때문에  꺾어집니다. 아무리 심지 굳지만 집에서 마누라가 앙얼앙얼 거리고 자꾸  아이들이 안 하려고 하니까 그만 어쩔 수 없어서, 아이구 조매만 거슬리면,  거슬리면 박지기를 들이 긁지, 좀 거슬리면 뭐 자꾸 부애질을 폭파해 가지고  '그라면 그 까짓 거 치워 버리고 어쨌든지, 내 신문 낼란다.' 이래 놓으니까  이거 발이 절려 가지고, 신문을 내거나 말거나, 뭐 사탕 장사를 하거나 말거나  우사를 시키거나, 뭐라 하든지 '여호와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겁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라야 됩니다.

 이런데 이 심지는 이제 구원으로 하나님이 성곽을 삼았으니 이것을 믿는 믿음을  요동치 않습니다. 이제는 '문을 열고 들어가라.' 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또 새  세계가 발견 됩니다. 또 한 문 열고 들어가니까 새 세계는 발견됩니다.

이러니까, 문을 많이 열고 들어간 사람은 자기가 들어간 세계를 와서  소개합니다. '이런 세계가 있다.' 소개하니까, 만날 문 열고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은 '그 무슨 무슨 세계가 있는가?' 못 들어온 사람은 있다가 '뭐 이단을  말한다,' 또 들어와서, 따라 들어와서 알쏭알쏭 해 사람은 '아, 보일 듯 보일  듯한데, 보일 듯 보일 듯한데. 그럴 듯 그럴 듯한데.' 이래도 못 따라온다 그  말이오. 높은 산에 올라가면, 올라가면 밑의 사람 보는 것은 올라간 사람이 보는  것을 못 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여기에 대해서 이 심지가 견고한, 문 여는 심지가 견고한  사람. 문 여는 일을 계속하고, 선을 지키는 일을 계속하고, 의로운 나라에  들어가기를 계속하고, 여호와의 구원으로 성곽 삼은 것을 믿는 믿음을 계속하고  하는 그런 사람에게,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심지가  견고해서 조금 들어가 보니까 '아이구야, 이렇고 이렇구나.' 조금 들어가 보니까  '아, 그렇게 겁냈던 거 겁낼 필요가 없구나.' 조금 들어가 보니까 '공산주의  독침, 야 그거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조금 들어가 보니까 이제 '아,' 겁이 나  가지고, 겁이 나 가지고. 처음에 나도 그랬소. 겁이 나 가지고 가마니 하나  가지고 가 가지고, 가마니, 가마니 속에, 저 무인지경에 가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는 짐승이 어글어글 하는 곳 이니까 가마니를 짊어지고 가 가지고, 가마니  속에 딱 들어가서 요래 딱 덮고 요래 가지고 얼른 잠이 들면 잠이 들면 모르니까  잠이들면 와 가지고 뭐 물어봤자 모르니까, 잠이 들라고 요래 자꾸 요래 쌓다가  이제 문 하나 열고 들어가고 둘 열고 들어가고 들어가니까, 그거 그렇츰 평안한  걸, 가마니 훌떡 벗어 집어내 던져 버리고 이래 거기서는 있다가 '어디 호랑이  친구가 안오나?' '어디 사자 친구가 오데 안 오나?' 이래 가지고 있다가서 뭐이  바싹 거리면 그전 같으면 깜짝 놀랜 건데 바싹거리니까 '아 거기 뭐이 있는가?'  더듬 더듬 찾아, 바싹거리니까 '야. 뭐 있나? 오라, 보자. 나 혼자 있는데  하나님 찬양하구로 오라.' 버썩거리면 찾아가도 아무것도 없다. 가봐야 찍 해  멧돼지. 가 보니까 멧돼지 그놈이 그런 거라. '아. 이거 오라.' 그놈 도망치고.

오라 해도 안하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가서 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평강에 평강을  더하시리라.' 들어가 보니까 평안합니다.

 여러분들이 기도로, 기로로 들어가면 처음에는 근심 걱정이 가득 찼다가 기도로  이제는 신을 지키면 의로운 나라로 들어갑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자기를  부인하고 부인하고 자꾸 들어갑니다. 들어가니까 평안하고, 그 다음에는 실행을  해 보니까 더 평안합니다. 실행해. 보니까 이거는 창 시온의 대로로 걸어가는  건데. 이렇츰 누워서 걸어가는 것같이 이거는 자빠질 염려도 없고 도무지 염려  없는 이 길인데 공연히 염려를 했어. 그러니까. '언덕을 떠나서' '떠나라.

창파에 배를 띄우고'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은혜를 네가 한번 체험해 봐라,  그렇게 찬송에 있는 것입니다.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평안의 평안 위에 '평안 평안에' 그말은 들어가  보니까 평안하고, 들어가 보니까 더 평안하고 들어가 보니까 더 평안하고,  믿음을 지켜 보니까 더 평안하고, 복종해 보니까 더 평안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보니까 더 평안하고 자꾸 그런 걸 말합니다. "평강에 평강으로  더하시리니"  "이는" 왜 그러느냐?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다른 사람은 이 심지가  가다가는 척척 꺾어지는데 이 사람은 심지가 꺾어지지 안해. 왜? 주를  의뢰하거든. 주는 주권자시라. 주재자라. 주재자시라. 주권자시라. 만왕의  왕이시라. 모든 개별 섭리도 그분이 다하고 계시는 분이라. 이분이 이런데  전주가 뭐라 한다고, 상관이 뭐라 한다고, 주인이 뭐라 한다고 공산주의가 뭐라  한다고, 세력이 뭐라 한다고, 웃는다 그 말이오. 그래 쌓으니까, 삐쭉 삐쭉  비웃으면 그 사람 사람 업수이 여긴다고 오해 받을 거고 하니까 말은 안 하고  가만히 있지만 우습다 그 말이오. '절대자가 계시는데 네가 무슨. 주님이 허락지  안하면 머리털 하나도 움직이지 못할 네가 들어서 뭐 큰 소리를 뻥뻥 하고  있느냐?' 우습다 말이오. 이러니, 자꾸 웃음이 나올라 하니까 할 수 없어 그럴  때는 살짝 머리를 숙여 가지고 속으로 '주여, 이 웃음 안 나오게 해 주옵소서.

이 웃음 나오면 저 사람 오해할 터이니까' 안 나오게 해 주옵소서.' 웃음이  나오지, 뭣을 피조물에서 두려움이 있겠느냐 말이오.

 '여호와를 의뢰함이라.'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왜 그 사람이 이 심지가  꺾어지지 안하고 약하지 안하고 견고해겼더냐? 심지가 견고해졌더냐? 심지가  견고해진 것은 주를 의뢰하는 거기에 연결이 됐기 때문에 거기서 배짱이 나와  가지고 견고했다 그 말이오.

 4절에 "너희는" 그러면 그 의뢰한 게 잘못됐느냐? 아니야.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어디서든지 계약의 하나님을 의뢰하라. 이 계약하신 계약의  하나님을 의뢰하라. 계약대로 하시는 하나님을 의뢰하라. 이 계약에 된다 했으면  되고 안 된다 했으면 안 됐다. 이러니까. 계약대로 하면서 그분이 정권을  가지시고 계시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여호와를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계약의 하나님은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이 반석은 비유입니다. 튼튼한 걸  말했습니다. 그분은 뭐 홍수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바람 분다고 날아갑니까?  홍수가 난다고 반석이 요동합니까? 이것 모양으로 세상 전쟁이니 흉년이니 세계  변동이니 말세의 불로 세계를 태우니 와 봤자 그런 사람은 상관이 없어. "반석이  심이로다" 왜? 그러면 공연히 배짱만 지기고 짜다라 큰 소리만 빵빵 하는이? (저  ○씨,) 큰 소리만 빵빵 하는가? 아니라 그 말이오.

 5절에, 5절 찾아 봐요.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아, 나는 이래 높은  데 있다' 고 막 이래 쌓지만 하나님이 낮추면 어디로 기어 들어갔는지도  모릅니다.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강대국이다.' 소련 이 강대국이다, 미국이 강대국이다 일본이 강대국이다. 이거  다 높은 성인데 아무리 강해 봤자 당장에 하나님께서 진토 만들라면 진토 만들  수 있는 권리가 그분에게 있으니 그런 거 상대할 것이 없다 그 말이오.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6절에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발이 그것을 밟는데 최고의 높은 이가 밟는 게  아니라, 발이 그것을 밟는데 최고의 높은 이가 그것을 밟는 것이 아니라 "그를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로다" 천 한 인간. 천한 인간  천한 인간 중에도 지극히 천한 인간보다도 더 천한 자 가 되어서 지극히 천한  자에게도 밟힐 수 있는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다 그 말이오. 높은 게 뭐이야?  뭐이 높은고? 뭐이 큰고? 크다 해 봤자 이분이 낮추려면 까짓 거 소용없어.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며, 세계가 어떻게 하며, 공산주의가 어떻게 하며. 독침이  어떻게 할 것이냐? 독침 가지고 찌른다. 찌른다 하는데, 공간계를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오. 활동계를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오. 네가 찌른다고 이렇게  했지만, 그 독침 그것을 이랬지만 독침 그것이 문을 못 열어서 내 살에 와  대이기는 대여도 내 살에 들어가지 못하고 살에 대이기만 하고 말아라. 폭탄이  뚝 떨어지기만 했지만 폭발되지 못하고 그대로 떨어지기만 하고 말아라 하면  말았다 그 말이오.

 지금 제가 그 교회 이름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때 6·25지나고 난 다음에  차타고 오며 보니까 그 교회가 있는데 교회 옆에, 누가 오니까 '저게' "그  문둥이 교회라. 문둥이 교회인데 모두 다 피난 갔는데 문둥이가 예배당에 앉아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이여 지켜 주옵소서. 이 거지들이 이렇게 예배당 하나 지어  놨는데 이거 날아가 버리고 나면 또 어떻게 합니까?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니 지켜 주옵소서.' 하고 꼭 피난을 가라 해도 안 가고 꼭 있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보시기에 말이오. 그 피난 가 버렸으면 확 사뤄 버릴 겁니다. 이런데  안 가고 있어. 있으니까, 그 모든 사람이 지나가야, 폭탄이 떨어졌는데 이만한  게 떨어졌어요. 그만하면 이런 예배당은 이런 거 몇 이 날아가 버립니다.

떨어졌는데, 예배당 옆에 바로 거기에서 한 두 자 간격에 떨어져 가지고 땅만 푹  패여서 푹 꽂혔지 폭발이 안 됐다 그 말이오. 폭발이 안됐어. 우리 하나님은  공간계, 시간계, 생명계, 인간의 심리계, 활동계 이거 다 주님이 주권하고  계십니다!  이러니까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 그런 것을 짓밟기까지 아주  낮추시리로다.'  "의인의 길은" 의인의 길은 뭐이 의인의 길인가? 의인의 길은 주님의 구속을  입고 구속을 벗지 않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곧아.

예수님의 이 세 가지 구속을 안 벗은 사람이 제일 정직한 자요. '인격자 인격자'  말하는데 내가 아래 잠깐 수정했는데, '인격자' 하나님의 형상 말했지만  인격자로 말하면, 인격자로 말하면 불신자들 인격자는 ○교도 인격자, 누가  말하기를 '기독자 인격자보다 ○교자 인격자가 낫다.'  '뭐 보고 그라노?' 이라니까 기독자 인격자는 뭐 빡빡 빡빡하이 뭐 밤송이  모양으로 까글까글하이 속에 보니 눈초리가 반짝반짝하고 깍쟁이도 돼 보이고  아주 꾀도 있고 이런데, ○교인들은 '음!' 이래 점잔하게 이러기 때문에 그  인격이라 해. 그런 인격인데. 인격이 아니고, 사죄를 벗지 안한 것이  인격입니다. 칭의를 벗지 안한 것이 인격이오. 하나님과 화친을 벗지 안한 것이  인격이오. 이것이 죽음 앞에서도 안 벗습니다. 이게 인격이라! 이 인격을 길러야  되지 딴거. 잘못하면 사람에게 도덕가 되기 쉽습니다. 도덕가. 이 일반적으로  인격이라 하는 것은 도덕가를 인격이라 한다 말이오. 도덕가 되기 쉬워.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하나님도 쪽 곧아. 그러니까, 의를  안 벗으면 쪽 곧은 사람 됩니다.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의인의 지름길, 의인은 어쩌든지 짧은 시간에 주름을 잡아 가지고  자꾸 가속도로 구원이 이루어 가도록 그래, 가속도로 구원 이루어 가도록 하려  하니까 경험도 자꾸 많이, 이런 경험 저런 경험, 뭐 세상에서 이런 경험 저런  경험 오만 경험, 세상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그런 경험을 해서 빨리 빨리  해서 구원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거 믿어야 됩니다. 안 믿으면 헛일이오.

믿어.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찌어다"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그는 주  여호와를 의뢰함이니이다" "주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그는 영원한  반석이심로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안해. 높은 것을 다 헐어서 낮추시고 낮은  것을 높이 하시고. 약한 것을 강하게 하시고 강한 것을 약하게 하시니까  그분에게 모든 게 주권 되어 있어.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믿어야 됩니다! 안 믿으면 능력이 안 오요! 믿어서, 믿음으로 우리 마음이  평안해져야 됩니다. 믿음으로 인한 담대, 믿음으로 인한 평안, 믿음으로 인한  소욕, 믿음으로 인한 열심. 믿기 때문에 열심이 나오고 믿기 때문에 담대해지고  믿기 때문에 평안해지고 믿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희생을 할 수 있고, 이제  믿어야 됩니다! 인정해야 되요! 그리 안하면 헛일입니다. 믿어야 됩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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