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법칙 다섯 가지

 

1981. 5. 16. 토새 

 

본문 : 창세기 2: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으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바라보는 주님은 자존자시며 창조주시며 주제시며 주권자이시고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시며 또 영원한 평강과 생명이 그에게만 있습니다. 이분이  우리의 주신데 어쩌든지 이분을 우리가 가까이 해야 되겠고 이 분을 사귀야  하겠고 또 모셔 섬겨야 하겠고 이분과 친밀해지며 이분을 영광스럽게 기쁘게  하는 자 됨으로 이 주님의 보호와 축복과 생명으로 동거 동행해 주심을 입는  일에 우리가 힘써야 합니다. 세상에서 어느 정도 가까와졌든지 친밀해졌든지 또  그를 영화롭게 섬기되 섬기는 일에 연달이 되었든지 그것 가지고 영생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너무 주의하지 아니해 가지고 주의하지 않는 그런 죄를 범했습니다.

절제하지 않는 그런 죄를 범해습니다. 절제하지 않는 죄를 범해서 그것은 주님이  이렇게 치료하셔야 되지 권능으로 보호해 주면 나는 완전히 자연을 하나님의  물리를 무시하는 하나의 미신의 지도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얼마동안 누워서 생각하는 그 생각에 하나님과 사귀는 일, 섬기는 일, 모시는  일, 참 하나님으로 더불어 밀접해지는 이것을 말로는 하기는 했지만은 이것이  우리에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느낌이 심히 빈약했다는 것을 회개를 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는 했지만은 이것이 우리에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느낌이 심히 빈약했다는 것을 회개를 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어야 겠는데,  이 소원보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무엇을 받아 어떻게 존영해지며 부강해지는 이  면을 생각하는 것이 앞서지 안했나 하는 이 면에 대해서 제가 회개를 많이  했습니다.

제가 작정하기를 허락하시면 가다가 부득이 할 수 있지만 가급적이면 창세기  1장에서부터 하나님 섬기는 길, 하나님을 모시는 길, 하나님을 가깝게 하는 길,  하나님을 존귀케 영화롭게 하는 길, 이 길을 계속 증거해서 여기에 중점을 두고  어떤 환경에서든지 주님과 가까와지는 길이라면 주님을 모시고 섬기는 길이라면  그 고락을 개의치 아니하고 이 일에 주력하는 사람이 우리가 다 되어야 이기  우리 성공이고, 또 앞으로 주님이 이 일을 위해서 영화로운 날로 우리에게 주실 때에 그 시기를  놓이지 않고 우리가 받아 감당하게 되지 이것이 아닌 다른 소망에서라면 우리는  실패하기 쉽겠다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 중에 첫째로  우리에게 가르치신 길이 오늘 아침에 봉독된 말씀입니다.

제가 오늘 아침까지 사흘 아침 계속해서 이 말씀을 증거합니다. 증거해도  딴말없고 늘 그 말이오. 하나님을 우리 구주가 되신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내가  모시게 되느냐 모시지 못한 자가 다시 모시는 길, 또 모시고 사는 길, 섬기지  못했던 자가 섬기는 길, 계속 섬기는 길, 하나님을 사귀지 못했던 자가 어떻게  새로 사귐을 가지느냐 새로 사귐을 가지는 계속 사귀는 길, 새로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는 일을 시작하는 길 계속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는 길, 그분이  기뻐해서 그분의 보호를 입는 길, 그의 주시는 생명을 받는 길, 계속하는 길  이것을 첫째로 가르쳐 주신 것이 오늘 아침에 봉독된 말씁입니다. 간단합니다.

그때는 한 형체를 가지고 우리 조상 제일 처음 교회 제일 처음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법칙인데 지금은 그 형태는 다를지라도 속에 이치는 꼭  같습니다. 조금도 틀림이 없습니다. 이치는 꼭 같습니다. 또 앞으로도 꼭 같소.

이 가르쳐 주신 이 방편이며 길은 함축 시켜서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이 간단  명료한 함축된 이 성구를 우리 기억하고 여기에 함축되어 있는 이치를 깨닫고  우리가 생활 할 때에 이 법칙을 기억하기도 쉽고 가지기도 쉽고 또 내 쓰기도  쉽고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있는대로 함축된 그런 성구를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에 기록해 주신 이 내용을 풀이해서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은 심히  그 성구들이 많습니다. 광범위합니다. 우리가 그 성구들도 기억해야 되지만 그  성구들을 기억할라다가 보면 우리는 일방적이 되기 쉽고 전체적인 우리의 지혜가  되지를 못하는 일이 되기 쉽습니다.

여기에 다섯 가지를 간단하게 말씀했는데 하나는 너는 이 에덴동산에 거처해라  에덴동산을 거처로 주셨습니다. 거기에 둘째로 하나님이 명하신 것은 내가  거처하는 이 동산을 네가 잘 다스리라. 또 셋째로 말씀하신 것은 다스릴 뿐만  아니라 네가 지키라. 그 다음에 넷째로 명하신 것은 이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내가 얼마든지 임의로 먹어라. 먹으면 네 양식이 되어서 네 힘도 되고 네 성장도  된다. 얼마든지 먹어라. 그러나 선악을 아는 선악과는 내가 먹지를 말아라. 먹는  날에는 내가 정녕 죽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이 다섯 가지로 하나님을 떠지  않고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 섬기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입고 영생을  가지고 영원히 그 에던동산에서 살 수 있는 길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류 시조가 이 다섯 가지를 다 범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실패한 그  영향으로 그 자손이 제일 싫어하는 망하고 죽는 이 사망을 다 입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그들에게 실상으로 주셨고 우리에게는 문서로 기록해서 주신 것은 그  형태는 다르지만 내가 거기에 그 방법인 이치는 우리에게도 꼭 같은 이치이기  때문에 첫째로 우리에게 주신 법칙이요, 길이요, 이치입니다.

요 간단하게 에덴동산에 너는 여기에 살라, 또 동산을 내가 다스리라, 동산을  지키라, 다른 실과는 네 입으로 먹되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요 다섯 가지를  첫째의 방편과 범칙과 길로 주셨습니다. 첫 아담은 여기에서 실패를 했습니다.

둘째 아담은 이것을 잘 지켰습니다. 그는 승리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 에덴동산 안에 있을 때에 그가 자유가 생명이 있었고 또 그밖에는  전체가 사망이었습니다. 또 생명과 평강과 권세를 가진 것이 에덴동산이지만  에덴동산 안에서 영원한 사망을 빗어낸 실수도 에덴동산에서 했습니다.

그러면 이 에덴동산이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자연이 주든지 세상이  주든지 무엇이 우리에게 주든지 우리에게 닥아오는 현실입니다. 현실 이것이  내게 있어서는 에덴동산입니다. 어떤 것이 내게 주든지 이 현실을 만드신 이는  주님이시요. 또 우리에게 주시는 이는 주님이십니다.

무엇을 통해서 당신이 어떻게 만드셔서 무엇을 통해 나에게 주시든지 우리가  만나는 현실은 주님이 만드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우리의 에덴동산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는 자입니다. 이 현실을 벗어났을 때에는 죽음뿐입니다. 이 현실을  벗어났을 때에는 벌써 죽었습니다. 죽고 난 다음에 현실에서 벗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첫째 우리가 단단히 기억할 것은 천하에 천태만상의 현실들이 많지만  내게는 내게 부딪혀온 그 현실이 네 에덴동산이요 그 이상 좋은 곳이 없습니다.

그곳에 주님이 우리를 거처하라고 했습니다. 그곳 이상 다른 곳을 탐하는 데에서  죽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다른 처소를 위치를 탐하다가 죽었습니다. 그 자리  있을 때에는 만물이 복종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천하에 어떤 형펀 사정있을지라도 내가 만나 내 현실이 내게는  천하에서 제일 좋은 곳이라는 것, 주님이 나로 거처하고 살라고 내게 주신 내  처소 내 에덴동산이라는 요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하겠습니다. 만일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처소에서 남의 처소를 엿본다든지 하는 그것이 해와가 범한  원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가 만난 자기의 현실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의  처소로 만들어 주신 천하에 내게는 제일 좋은 내가 거처할 에덴동산이라는 것을  우리는 굳게 잡고 흔들리지 안해야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아는 것이 이것이  법이요, 이것을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고 내가 쓰고 있을 때에 이는 은혜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의 이 길, 승리의 길, 하나님 모시는 길, 섬기는 길, 위하는  길, 사귀는 길, 가까이 하는 길, 그를 영화롭게 하는 길, 기쁘시게 하는 길,  그의 보호를 입는 길 동산 안에 있는 해와을 아무것도 해하지 못합니다. 요 다섯  가지가 허물어질 때에 해가 왔지 이기 허물어지기 전에는 해를 못합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요 길로 우리에게 가르쳤는데 첫째가 에덴동산을  자기의 처소로 인식하고 하나님이 주신 제일 좋은 곳인 것을 깨닫고 요  에덴동산으로 만족해야 됩니다.

자기가 어떤 현실이라도 요 현실은 천하에 숨은 현실들이 있지만 내게는 요  현실이 나의 낙원이요, 요 현실이 나에게 천국이요, 요 현실이 나의 피난처요,  은신처요, 나의 처소라. 요것을 요동치 않는 것, 자기가 어떤 화형 속일지라도  어떤 고문과 고행 속일지라도 어떤 종류의 현실을 자기가 만났든지 그 현실이  자기에게 에덴동산이요 사랑하신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천하에 제일 좋은 자기의  거처할 처소라는 것 요것이 확고 부동할 때에 그는 벌써 생명에 속한 자입니다.

요것부터 되야 됩니다. 요것이 허물어지고 난 다음에는 제가 아무리 신앙 생활에  백방 노력해봤자 허공치는 것뿐이지 아무 소용 없습니다. 요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요것이 기초입니다.

그 다음에 그러면 그 처소에 어떻게 살라고 하셨는가? 그 처소에서 첫째로  명하신 것이 다스리라 다스리라 이랬습니다.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다스리라는  것은 그 처소를 다스리고 처소에게 다스림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스리라는  것은 내가 그를 내가 주관 하는 것이요. 또 내가 그를 통치하는 것이요. 그가  나에게 피동됐지 나는 그에게 피동되지 않는 것이 그것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것은 그것은 왕위를 말합니다. 왕권에 있는 자가 왕이 백성을  다스립니다. 이것이 다윗의 열쇠입니다. 왕이 백성을 다스리는 것처럼 네가 네  처소로 준 네 현실을 네가 다스리라. 현실에 피동되지 말고 현실에 지배받지  말고 현실에 꺽어지지 말고 현실에 미혹되지 말고 현실을 내가 다스리라.

어떻게 다스리느냐? 하나님이 명하신 그 하나님이 너에게 교훈하신대로 하나님이  너에게 가르치신 법칙대로 하나님의 지도대로 하나님의 감동대로 하나님이  너에게 하시는 그대로 네 현실을 다스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둘째로 중요한 것, 우리의 행동에서는 첫째가 되겠는데 우리가 어떤  현실을 만났든지 그 현실에 피동되지 않는 것이 능력입니다. 왕입니다.

왕권입니다. 그 현실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교훈대로 명령대로 법칙대로 당신의  요구대로 당신이 시키시는대로 그대로 그 현실에 내가 상대하는 것입니다.

현실 제가 어떻게 하든지 든든지 말든지 나는 그대로 다스립니다. 이것은  다스리는 것은 내가 다스릴 때에 그것이 역적하는 일도 역하는 일도 있고  순종하는 일도 있고 그로 말미암아 방항하는 일도 있고 대적하는 일도 있으나  이것은 다스리라 했습니다. 내가 그대로 그에게 대해서 행동하고 취급하고  그대로 관계를 가지고 내 언행심사가 현실에 대해서 내 언행심사가 하나님에게  받은 교훈대로 그 법칙 그 지도대로 그 요구대로 그 명령대로 그대로 합니다.

요것이 에덴동산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요것이 자기 현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요것 지면 헛일입니다. 우리는 다른 데에 이리 저리 힘을 쓰지 말고 여기에다가  힘을 마구 모다 써야 됩니다. 마귀는 그러기에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에 하나님은  혹 하나나 몇이든지 그렇지 복잡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러기에 레위기 21장에는 보면 쪽발로 걸어가라 했소. 두 가지로 이기냐  이기냐, 어느 것이냐, 이기냐, 좌냐 우냐 이렇게만 네가 따져서 가야 되지 네가  그렇지만 이것도 어떻다 해 가지고 나가면 수없는 그 조건이 붙고 단어가 붙어서  너는 망한다. 꼭 쪽발로만 걸어가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복잡한 생활에 이 열쇠되는 요것만 우리가 지금 행해야  되겠습니다. 첫째는 아 어떤 현실이 오든지 이는 나를 구속하신 사랑하신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요 현실을 나의 처소로 만들어 주신 것인데 요 안에는 생명이  있다.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나와의 밀접함이 있다.

그러나 요게서 내가 잘못하면 사망하는 위험도 있다. 그것은 내가 요게 있으면서  요것을 다스리지만 안하면 망한다 하는 것으로 기억하고 자기 현실을 자기의  에덴동산인 것을 주님이 만들어서 자기의 처소, 이 처소 떠나면 죽는 것이요.

죽는 것입니다. 그때도 죽었을 때에 떠났습니다. 아담 해와는 사망을  받았습니다. 사망 받아 가지고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우리가 힘을 모다 가지고 첫째는 어떤 불만 불평을 품을 수 있는 천하 인간이 다  불평 품을 수 있는 무소 가죽에 싸이 가지고 햇빛에 쪼우니까 슬슬 조아가면서  온 전신이 기름을 짜 가지고 죽이는 그것도 자기 현실입니다. 그것을 자기 이  에덴동산으로 사랑하시는 주님이 자기의 천하에 제일 자기에게는 복된 처소로  마련해 주는 요것을 믿는다는 것이 권능입니다.

우리가 그냥 이것을 그저 입술로 아는 것 가지고서는 안됩니디. 자기에게 주신  그 현실 그에게는 물소 가죽에 쌓이 가지고 말라 들어가는 것이 자기  현실입니다. 자기 현실 그것이 에던동산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사랑하시는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천하에 제일 행복스러운 자기에게는 행복스러운 자기의  행복에 처소 주님과 동거 동행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섬기고 모시고 사는 그  처소인 것을 그 성자는 잃지 안했습니다.

그래서 그 괭장한 고문과 고행이지만은 거기에 피동되지 안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게 피동되서 옆에 사람이 들을 때에 마지막 말라서 숨이 끊어지는  데까지 기뻐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과 즐거워 하는 것만 그에게 있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그것뿐이고 딴기 없었어. 그게 뭐이야? 그것이 동산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두고 앞으로 내게는 하나님께서 어떤 동산을 어떤 처소를 어떤  현실을 주실런지 그때에 과연 내 현실을 사랑의 주님이 나에게 가장 행복스로운  처소 나에게 주신 것을 확고 부동하게 인식하고 요동치 안할긴가 그때에 내가  동산을 잘 다스릴 수 있을 긴가 하는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게 피동되지 않고 주님이 나에게 주신 그대로 그에게 행하는 것이 그가  듣든지 말든지 나는 나는 주님에게 내가 받은 그대로 거기에 대해서 행하는,  주님이 기뻐하라면 기뻐하고, 감사하라면 감사하고, 그에게 대해서 말하지  말라면 말하지 말고, 말하라면 말하고 그것이 우리가 다스리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할 말은 하는 것이 그것을 내 현실을 내가 다스리는 것입니다.

죽이면서 말하라 해도 입을 벌리지 말라하면 벌리지 않는 것이 그것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어떤 고문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기뻐하고 하라하면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다스리는 것이고, 그때에 그 고통에 피동되고 원망 불평 거기에 대해서  하면 나는 다스리지 못하고 그 환경에 내가 피동된 것입니다. 환경에 충동의  사람이 됐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얼마나 강하게 싸워야 될 큰 싸움인지  모릅니다.

또 동산을 지키라. 요것도 사이비합니다. 지키는 것은 파수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용납지 않는 것은 용납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내 현실에  하나님이 허락지 않는 것은 내가 용납지 안해야 되고 그러면 내가 용납지 않는  것은 내가 용납하지 안할라면 안할 수 있는 것을 내가 용납하는 것이지 내가  용납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행동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 현실에 어떤 것이 가해 오든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가해  오는 것은 그것은 내기에 있어서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이 현실이 지나가고 그  다음 현실이 오고 그 현실에 또 현실이 붙고 붙어서 자꾸 현실이 현실로  옮겨져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현실을 당할 때에 이런 고문이 하나 더 가해지고 또 저런 미혹이  하나 더 가해지고 저런 영광스러운 벅쩍거리는 그런 무슨 허영과 허욕이 내게  하나 가해져 올 때에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게 있어서 내 현실이 되겠습니까,  그것을 내가 용납한 것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되겠습니까? 네 뭐이 되겠지요?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뭐이 됩니까? 그것은 내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서  주님이 말들어서 내게 주신 내 처소입니다. 내가 살 입장입니다. 내가 살  처지입니다. 내가 만나야 할 내가 현실입니다.

그럴 때에 내가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는 것을 용납지 않는 것은 그럴때에  첫째로 하나님이 가지라고 하는 마음만 가지지 가지지 말라는 마음을 가지지  안해야 되겠고, 가지지 말라는 욕심, 소원, 성질, 감정, 두려움, 말, 행동  이것은 내가 가지지 안할라면 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지 안할라면  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용납지 안하면 못 들어옵니다. 그런 것은 못  들어옵니다.

그러나 다른 것들이 하는 것은 내가 아무리 용납지 안할라고 해도 용납 안할  권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그 현실이기 때문에 환경이기 때문에  그걸 내가 어떻게 그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하겠습니까.

그런고로 여기에서 지키라 하는 데에는 내게 대한 에덴동산인지 내가 하나님이  허락지 안하는 것을 용납한 것인지 요것을 우리가 구별해야 됩니다. 현실인지  용납한 것인지 뱀인지,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거처하라고 주신 것이고 뱀은  용납지 말라 했는데 해와가 용납했습니다. 부부일신인 그 아담이 용납한  택입니다. 용납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지키라는 요 명령을 범했습니다. 요  지키라는 것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 우리 현실에서 우리 현실은 어떻게 바까 오든지 자꾸 우리 현실은 흘러  내려가는 물과 같이 요 현실에서 조 현실로 현실이 그 현실이 현실에 꼬리를  물고 자꾸 우리에게 닥아옵니다. 이 현실은 벌써 지나서 과거가 되어지고 새로운  미래가 현실이 되어지고 자꾸 이렇게 시간과 함께 우리에게 닥아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에게 이 객관의 역사로서 어떤 것이 닥아올지라도 그것은 주님이  나에게 만들어주신 현실이라는 요것을 굳게 잡고 요게 내가 살 것이요 요게 내  보화가 있고 요게 하나님과 나와의 밀접한 관계가 있고 요게서 또 내 죽는 것도  있다는 요 중대한 것이 요 현실에 있다는 요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지켜라 했기  때문에 요 현실에서 하나님이 내가 용납 안할라면 안할 수 있고 용납할라면  용납할 수 있는 요 권한이 있는데 요 권한에 한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키라라고 하신 것이지 내가 지킬 수 없는 것을 지키라고 했으면 하나님이  범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리한 것입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을 당치  않겠다고서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키는 것은 내 현실에서 가지지 안할 생각을 가졌으면  하나님이 허락지 안한 금하는 생각 하나 가졌으면 그게 뭐입니까? 그것이  뭐이지요? 그게 뱀이입니다. 그게 뱀이요. 그때에 가지지 안할 생각을, 가지지  안할 뜻을, 가지지 아니할 소망을, 가지지 안할 욕심을, 가지지 안해야 될  해석을, 가지지 안해야 될 타협을, 가지지 안해야 될 그 에누리는, 가지지  안해야 할 말을, 가지지 안할 아니할 행동을 가졌으면 고기 뱀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용납지 안해야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까지는 나는 동산에서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에 왕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내 현실에서 다스리는 것이 이것이 만왕의 왕으로 더불어 왕  노릇하는 이 왕권 행위입니다. 또 지키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영원  무궁의 이 세계를 내가 국방하는 것입니다. 국방하는 것이요. 요 작은 데서  우주를 국방하는 것이요, 요 작은데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우주를 통치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열쇄라고 지난밤에 설교에 내가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다윗의 열쇠라는  것이 그것이 곧 승리의 열쇠라는 말입니다. 승리의 승리의 열쇠인데 그것는  베드로가 받은 그 열쇠가 아니고 요것은 왕권의 열쇠입니다. 왕권의 열쇠,  승리에 가서 정복하는 열쇠입니다. 그것이 뭐이냐? 그가 연약한 힘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과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는,  연약한 힘이라면 한정있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과 그 이름은 무한한 것을  유한한 것이 유한한 중에도 못난 것이 무한한 것을 어떻게 감당해 나가겠습니까  그걸 계속해 감당해 나가는 그게 뭐냐? 다윗의 열쇠라 그 말이오. 그게 뭐이냐?  그 열쇠가 뭐이냐? 자기에게 있는 힘을 다해서 주의 말씀과 이름을 계속  지킬라고 하는 그것이 위의 열쇠를 하나님이 줘서 받은 것이요 그게 그에게 열린  문을 열어 놨기 때문에 아무도 닫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연약한데 전능이요. 무한이요. 그것을 내가 여기에 말씀하신대로  지키라 동산을 지키라 우리에게 간단 명료하게 줬습니다. 현실에서 하나님이  용납지 아니하는 생각을 내가 용납지 말고, 뜻을 용납지 말고, 소원을 용납지  말고, 욕심을 용납지 말고, 견해를 용납지 말고, 에누리하는 그런 사이비한 것을  용납지 말고, 환한 것 환한 것 용납 말것은 용납말고, 용납할 것은 용납하고, 말  행동도 요래서 요 동산을 지킬 때에 다스리고 지킬 때에 그 마음에 둘만  남았습니다.

요걸 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둘만 남았어.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네가  임으로 먹어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하나님의 법칙에 위반되지 안한 것은  우리는 명예든지 지워든지 권세든지 사업이든지 일이든지 쾌락이든지 무엇이든지  막 검어 닥쳐 우리가 임의로 자기가 얼마든지 자기가 역량있는대로 취할 수  있습니다. 취하면 이것은 자기의 양식이요. 자기의 힘이 되고 이것으로 자기가  커집니다.

그러나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하나님이 금하신 것 하나님이 금하신 것 무슨  사물이든지 인간든지 사상이든지 교제든지 행동이든지 무엇이든지 물질이든지  사업이든지 직장든지 자기의 출세든지 인인관계듣지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금하신  것 그것은 우리 보기에 암만 좋아도 이것은 선악과입니다. 아무리 보기 좋아도  선악과입니다. 그게 보기에 너에게 어떻게 필요하고 어떻게 중요하고 어떻게  보배로울 것으로 어떻게 보이든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은 내기에 선악과라는 것을  확고히 가지는 이기 권능입니다.

 이것을 취하게 하는 취하게 하는 것이 내 속에 있으면 그게 뱀이요.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가지도록 하는 친구가 있으면 뱀이요. 가족이 있으면 그게 배이요.

죄악에는 어떤 위에 사람이나 그 아래 사람이나 어떤 사람이든지 내 안에 있으지  내 밖에 있든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취하게 하는 그것을 두말할 것없이 내게  대한 뱀인 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 다섯 가지를 우리가 함축해서 아주 조불트려서 간단 명료하게 해  가지고 첫째로 우리에게 주신 교훈이요 법칙이요 길인데 요것을 우리는 조그만한  가지기 쉬운 요 다섯 가지를 간직해서 내 마음에 뒤에 딱 새겨 놓고 요것을  언제든지 내써서 좀 복잡하면 요 다섯 가지를 내 가지고 우리는 비판하고  평가해서 요 다섯 가지를 잘 지키면 이것이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고 가까이하고  또 그분과 친밀해지고 그분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보호와 그분의  축복과 그분의 주시는 생명을 받는 데에 유일한 법칙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836 유월절 공부/ 출애굽기 19장 1절-20장 3절/ 871124화새 선지자 2015.12.14
1835 유월절 환난/ 출애굽기 12장 1절-14절/ 791119월새 선지자 2015.12.14
1834 유월절 환난/ 출애굽기 12장 5절-14절/ 871123월새 선지자 2015.12.14
1833 유월절 환난 준비/ 마태복음 8장 5절-17절/ 851124주후 선지자 2015.12.14
1832 유월절 환난 준비/ 출애굽기 12장 4절-12절/ 851125월새 선지자 2015.12.14
1831 유월절 환난에 구비할 도리/ 출애굽기 12장 5절-14절/ 871118수야 선지자 2015.12.14
1830 유월절에 갖출 4가지/ 출애굽기 12장 5절-11절/ 871120금야 선지자 2015.12.14
» 유일한 법칙 다섯 가지/ 창세기 2장 15절-17절/ 810516토새 선지자 2015.12.14
1828 유일한 소망/ 누가복음 9장 51절-62절/ 840923주전 선지자 2015.12.14
1827 유일한 소원/ 요한복음 14장 21절/ 791009화새 선지자 2015.12.14
1826 유일한 피난처/ 이사야 1장 18절-20절/ 850502목새 선지자 2015.12.14
1825 유일한 피난처/ 이사야 26장 1절-7절/ 840701주전 선지자 2015.12.14
1824 육과 영/ 요한복음 3장 1절-7절/ 820105화새 선지자 2015.12.14
1823 육과 영/ 요한복음 3장 6절-7절/ 820106수새 선지자 2015.12.14
1822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로마서 8장 3절-6절/ 871209수야 선지자 2015.12.14
1821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로마서 8장 5절-6절/ 820716금야 선지자 2015.12.14
1820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로마서 8장 5절/ 820717토새 선지자 2015.12.14
1819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로마서 8장 4절-11절/ 880904주전 선지자 2015.12.14
1818 육의 기능 구원/ 창세기 3장 6절/ 800109수새 선지자 2015.12.14
1817 육체와 복음/ 베드로전서 1장 21절-25절/ 820519수야 선지자 2015.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