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엣 것과 땅엣 것

 

1980. 8. 14. 목새집회

 

본문: 골로새서 3장 2절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위의 것과 땅의 것, 곧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  하나뿐이었는데 하늘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 외에 딴것을 만들어 낸 것이  타락한 천사입니다.

이 타락한 천사는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이 우주에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이 우주에는 사람이 하나님 대리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이 타락한 천사가 뱀의 그 기관을 써 가지고 인류시조를 하와와  아담에게 들어와서 꾀었습니다. 꾀임을 인해서 하와가 먼저 꾀임을 받았고 그  다음에 하와로 인해서 아담이 꾀임을 받았습니다.

꾀임을 받아 가지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 하나 뿐인 거기에서 또 하나를  만들어 내서 처음에 하나님이 주신 것은 변질되고 타락이 되어 가지고 처음에  가졌던 그 하나와 같은 그 하나도 없고 변질된 것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변질된  그것은 다 저주 아래에 있는 것들이요. 사망 아래에 있는 것들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있는 것 들 뿐이었습니다. 그것만 사람들에게 있었는데 그  멸망가운데 있는 것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공로를 인해서 새것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새것을 그때에 만들어 가지고 주신 것은 아니고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예정안에  있었던 것이요. 만물을 창조할 그때에 있었던 것인데 이것은 나타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예수님께서 대속으로 인해서 그것이 타나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이 관계로 이것이 가리워지고 다시는 나타날 수  없었는데 어린양이 이 인을 때어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중에는  변질된 그 하나만 가지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 또 예수님의 이 구속으로 인해서  새로 우리에게 나타난 이것과 변질된 것과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전 새로 나타난 이 영원한 것을 소유하도록 하려는 그 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아 출생한 자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열려진 이 새것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목적 밖에서 지음을 받은 자들, 곧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은 자를 위해서 이용되기 위해서 지음받은 자들이 있으니 이것은  변질된 그것만 상대하여 살게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두 가지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류시조가 모든 사람을 대표한 신인 대표로 하나님이 계약을 어긴 이것으로  인해서 변질된 것들을 변질된 것들을 가지고 있는 이것을 가리켜서 옛 것이라.

옛 것이라. 또 땅의 것이라. 사망 아래에 있는 것들이라. 이렇게들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옛것, 곧 땅의 것, 이것을 가지고 있고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새것,  위의것, 곧 완전하고 영원불변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또 우리에게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이에  끼어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들인데 두 가지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들은 다 영과 육으로 된 사람들인데 어떤 사람은 이 두 가지 사이에  끼어있지만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은 아직도 옛것, 땅의 것, 이것만 가지고 있고  하늘의 것, 위의 것, 새것, 영원한 것 이것은 제가 가지지를 못하고 알지도  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전도를 받아 가지고 그 영이 진리로 살아나고  영감으로 살아났을때에 그때에 영은 옛것을 차지했던 자가 옛것을 상대하던 자가  완전히 하늘의 것, 위의 것 새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영은 중생되기 전에는  완전히 죽어서 전구에 전기가 않오면 전구는 있지만 불이 켜지지 않는 것같이  영이 없어진 것은 아니고 영은 있기는 있지만 영에 생기가 되는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서 이 영은 기능 작용적으로서는 완전히 죽은 자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님과  진리로 다시 살아나 이후부터는 옛 것에게 속하지 아니했고, 옛 것 안에 있지  아니했고, 새것, 위의 것, 하늘의 것이 저희 것이 되었고 이것만을 상대해서 이  안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영육으로된 사람으로서 중생된 이후 영은 영원한 것, 새것 영원 불변의  것, 하늘의 것을 위의 것을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주어진 이 새것을 완전히  제것을 삼았습니다. 그러나 육은 이것을 단번에 제것을 삼지 않고 또 하나님께서  직접 이것을 하늘의 것을 저희 것을 삼도록 해주시지 아니하시고 육의 주인이  되어있는 주인은 살아났으니까 육의 주인은 살아났으니까 육의 주인되는 그 영을  통해서 이 육을 살리도록 역사합니다.

그러면 이 육이 단번에 살아나지를 못하고 수많은 여러 번으로 중복으로 이렇게  살아나게 됩니다. 이유는 영은 단일의 것으로 되어 하나로 되어있지마는 이  육이라는 것은 하나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것이 합해 가지고 하나로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마음이라면 여러 것이 합해서 이 마음으로 되어있고 몸이라는  것도 한 몸에는 여러 지체도 있고 여러 세포도 있어서 여러 수억억만 개도 더  되는 것이 합해서 가지고 한 몸이 되어있습니다.

이러기에 이것은 단번에 살아나지를 못하고 수없는 그 차례를 통해 가지고 이  심신으로 된 이 육은 살아나게 됩니다. 살아 예수님의 이 대속으로 인해서 이  심신의 그 부분 부분이 심신의 분자 분자가 이것이 살아남에 따라서 살아난 것은  위의 것 하늘의 것 새 것을 가지게 되고 또 새 것을 가지는 자는 살아나게 되고  이렇게 구속 역사를 하나님이 일으키십니다.

일으키실때에 영을 구속할때는 영을 살릴때에는 하나님의 단독이 이 진리를  가지시고 택한 자의 죽은 영을 살리시는 역사를 했지만 일단 영을 살려내고 난  후에는 하나님께서 영 배후에서 영안에 계셔서 이 영을 통해서 이 심신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하십니다.

하나님이 직접하시지 아니하시고 심신을 통해서 구원 역사를 하십니다. 그  이유는 어데까지든지 마음은 몸은 영이 주관하고 몸은 마음이 주관하고 마음은  영이 주관하는 그 자유성있는 개별성, 인격성 이것을 살려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영을 통하여 구원하셔서 언제든지 이 심신으로 된 육은 영으로 자기 영으로  인해서 살고 또 영으로 인하여 살아난 것이 영원히 영으로 인해서 움직이도록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기 위해서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이 심신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증거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이렇게 행동을 하면 행동한  것만치는 살아나게 됩니다. 살아나게 됩니다.

그것은 위의 것 새것을 저희 것으로 가지게 됩니다. 이래서 썩은 것만 가지고  있었는데 하늘의 것 새것을 가지게 되는 것은 썩은 것을 가지고 있는 그것을  마귀 시키는 대로 하면 썩어진 그것이 썩어진 그대로 있으면 영원한 멸망인데  썩어져 있는 그것을 마귀 시키는 대로 가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것을 취급할 때에 그때에 그것이 다시 변화함을 받고 하늘에 속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대속해 놔서 죽은 것 썩은 것 망한 것 이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로 값을 내 가지고 해방을 시키셨고 또 하나님께 예수님이 모든  순종과 화평을 이루어가지고 그것을 생명에 속하도록 했습니다.

생명에 속하게 했지만 그것들의 주인이 되는 몸, 마음 이 마음에 부분되는 이  기능들도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법적으로 살아났지만 이것이 시험하는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현실을 하나님이 주실때에 그 현실에서 마음의 기능이나  몸의 기능이나 이런 것이 하나님에게 속한 그 행사를 하면 하나님에게 속하고  그때에 하나님에게 속한 행사를 하지 않고 다시 악령에게 속한 행사를 하게 되면  법적으로 살아났던 것이 실상으로 죽어버리고 맙니다.

또 실상으로 죽어있던 것이 법적으로 살아난 대로 그대로 그것이 진리에 속해서  움직일때에 그것이 실질적으로 실상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의 육은 하나님께 드리면 의의 병기로 성화되고 의의 병기가 되고 죄에게 이  육을 드려서 죄대로 행동하면 죄악에 병기 죄악의 도구 죄악이 쓰는 도구가  되어집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현실에서는 우리의 마음과 몸의 이 기능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임으로 영생을 가진 의로운 기능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고 아무리  중생된 사람의 기능이지만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지를 아니하고  자기는 고마음과 몸의 기능은 단지 고 기회를 한번 밖에는 못받는 기회인데 그  한번 받은 그때에 마귀의 뜻대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삐뚤어진 그 죄로 움직이게  되면 그 기능은 죄의 도구 마귀의 도구가 되어 다시는 그 기능은 살아날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말했습니다.

첫째 사망의 해는 인류시조 첫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정죄받아 사망아래 있었던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삶에 속할 수 있는 살아날 수 있는 이  소망이 있었는데 법적으로는 살아난 것인데 이것이 제가 배반하고 다시 타락한  셈입니다.

그러면 둘째 사망의 해가 됩니다. 우리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우리의 마음이나  우리의 몸이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지 아니하고 마귀를 따라서 우리 마음이나  몸이 움직이게 되면 그것은 타락된 그것이 타락된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타락된 것이 타락한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 생명에 속한  것이 다시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구속은 단번 뿐이기 때문에 다시 타락한 자는 예수님의  대속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이 심신은 이 육은 주님이 살려주신 구원해 주신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고 사는  것이고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겨 죄를 범하는 것은 예수님이 구속받은  데에서 다시 타락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처음은 첫 아담으로 말미암아 사망하게 된 첫사망이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것이 다시 사망되기 때문에 이것을 가르쳐서 둘째 사망의 해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불택자들은 한번 사망으로 영원 사망되고 택자들은 둘째  사망으로 영원 사망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택자들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 것은 영은 완전히 살아났기 때문에  이것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을 수가 없는 것이지만 이 몸은 법적으로는 입었지만  이 구속을 법적으로는 입었지만 실상으로는 이 구속을 입지를 못했습니다.

법적으로 입은 이 구속이 실질적으로 입으면 법적과 실질적으로 완전히 입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적으로 입어 가지고 있는 이 심신이 현실을 만났을때에 고 현실에서  법적 구속을 입은 그대로 이 심신이 이제는 하나님에게 속했고 하나님의 것이  됐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법적으로 살아난 자가 되었습니다.

이러니까 요 심신이 현실에서 하나님에게 속한 행위 하나님의 것이 된  하나님으로 인하여 구속을 받은 이 심신이 구속받은 자로 그 현실에 한번만  행동하면 행동은 그것은 완전히 하나님에게 속하게 되어 다시는 사망이 미혹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영감과 진리의 인도를 따라서 현실에서  이 심신이 하나님을 따라 사는 이 산행동을 했을때에 그 심신의 기능은 사망을  완전히 이별했고 예수님이 해방시켜준 해방이 완전이 됐고 또 배반하는 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을 완전히 배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럴 때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살아났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법적 해결을 다 지어서 법적 구원을 이루어 논 것을 성령님이 이것을  책임을 지시고 영도 살려냈고 영도 법적으로 살아난 그 영을 성령이 살린 그것이  중생입니다.

법적으로 살아난 것이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의 공로를 설정해서 이 세 가지  대속을 입게되는 것은 하나님의 지공법 지성법에서 대속을 입은 것입니다. 그  대속은 우리가 나기도 전에 예수님이 공로를 베푸실때에 하나님의 지공  지성법에서는 나기 전에 벌써 구원돼서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을 입은 자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러기에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 보면 우리는 영원한 때 전부터 하나님 법에서  의롭다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법적으로 구속받아 있는 우리의 영육인데 이  법적 구속은 우리가 나기도 전에 벌써 하나님의 법에서 우리는 구속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나고 난 다음에 나던 길로 법적 구속받았기 때문에  실질적인 구속을 받은 것이 아니고 나고 난 다음에 어떤 사람은 몇 십 년 있다가  받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배속에서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질적인 이  구속은 누가 누구가 이것을 일으키는고 하니 예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이 이 일을 역사합니다.

이래서 실질적으로 이 예수님의 구속, 완전한 것, 영원 불변의 하늘의 것,  이것을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우리 것을 삼아주시는 이 일은 성령님이 이 일을  책임자로 정해졌습니다.

이래서 이 구속의 보증자가 성령님이라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 보혜사가 오면 너희들을 이 진리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내가 가면 보혜사를 보내겠다." 성령을 보내겠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 성령을 이 책임자로 보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법적인 구속은 예수님께서 이 일을 일으켜서 완성하셨고 완성해 놓으신  이 구속을 실질적으로 입히는 데에는 내나 그리스도의 영, 예수님의 영, 성령,  영으로 오셔가지고 이 일을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입혀줍니다. 처음에는 우리의  영을 성령님이 이 구속을 진리를 가지고 입혀서 우리의 영은 성령의 도우심과  진리의 도움을 받아 가지고 우리 영이 살아났습니다.

이것은 우리 영이 원해서 된 것도 아니고 죽었기 때문에 살아나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살아나고 난 다음에는 알게 됐습니다. 이거는 순전히 영, 살아난  것은 하나님 혼자의 역사로 살아났습니다. 이제는 영을 살린 그 사람은 그  다음으로 육을 살리는 일을 순차적으로 하나님이 시작을 하시는 것입니다.

영이 구속받은 이 중생이 되고 난 다음에도 그 사람이 무신론을 주장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영이 반대함이 아니고 이 심신으로  된 육의 것이 반대를 하고 이것은 구속받지 못했고 영은 하나님에게 속해서  살아났지만 하나님과 진리와 하나가 되어있지만 이 육이라고 하는 이 심신은  여전히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더불어 하나되어 있는 자이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도 반대하고 중생된 영, 참 자기, 자기의 주격, 자기의 주체가 되는  참자기도 이 심신이 반대를 합니다.

반대하고 옛날 살던대로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더불어 친밀해 가지고 이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이신 성령님과 또 중생된 영과 이 진리와 셋이  합해 가지고 자기의 죽음속에 들어있는 이 심신을 살래낼려고 애를 씁니다.

이 애쓰는 그것을 표현해 탄식으로 애를 쓴다. 암만 말해야 안들으니까 요  현실에 요 심신이 악령, 악성, 악습을 배반해 버리고 성령과 중생된 영과  하나님의 인도대로의 믿음을 탁 취하면 하나님 영접하고 새사람, 참사람, 참자기  영을 영접하고 하나님에게 속한 행위인 요 믿음을 자기가 영접해서 하나님과  산영과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요 믿음 요 세 가지만 딱 영접해버리면 그만 고  심신이 살아나는 것인데, 아무리 요렇게 살릴려고 애를 써도 요 심신이 어리석어  가지고 살려주는 요 방편은 싫어하고 죽이는 고 방편만 좋아해서 아무리 말을  해도 강제로 짐승 모양으로 소 코 끼는 것 모양으로 이래 끼어 가지고  끌어당기면 이것은 기계가 돼 버리지. 이것은 인격성이 없게 됩니다.

이러니까 아무렇든 해도 하늘나라에는 기계적 기계적으로 되어있는 그것은  기계로는 가지마는 인격으로는 못갑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이 심신 영이다  인격성으로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격성으로 되어있는 이것이 제일 가치있는  것인데 인격성으로 되지 안한 것은 다 이것은 제거 돼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하늘나라에 주인 하나님 다음에 대리 주인격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되지를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하든지  감동시키고 가르치고 타이르고 또 이런 모든 만물을 가지고 이치를 알려주고  이래 가지고 이 심신이 이제는 긍정을 하고 중생된 영이 말하는 것, 진리가 와  가지고 깨닫게 하는 것 성령님이 와 가지고 타이르는 것 이것을 옳다 인정해서  내가 요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그 현실에서 악령과 악성과 악습을 배반하고  성령과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이 중생된 영과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요 믿음을  탁 취하면 그만 취한 고 기능은 고 현실에서 성령이 살려주는 이 살려줌을 받아  버렸습니다. 완정히 살아났습니다. 악령과 악성과 악습을 완전히 배반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을 이겼습니다. 요 고통이 자기의 십자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속한 그것을 자기 십자가로 자기가 구속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요것이 하나님이냐 악령이냐 할때에 하나님  배반하고 악령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영을 주격으로 삼느냐? 자기 중심으로 삼는  요 악성을 주격으로 삼느냐? 요기서 죽고 살고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요 순종  믿음으로 행동하느냐? 옛날 하던 행동 그대로 구습대로 행동하느냐? 요기에서  죽고 사는 것이 결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성령님이 있는 힘을 다 쓰고 중생된 영이 있는  힘을 다 쓰고 또 진리가 요 법칙대로 하라 요렇게 이 진리가 있는 힘을 다  씁니다. 있는 힘을 다 써서 구원을 하려고 애를씁니다. 이럴때에 요 심신이 요  셋이 들어서 구원을 하려고 애를 쓸때에 그때에 요 구원을 심신이 영접하면  그것이 예수님을 제일 대접하는 것이요. 성령님을 제일 대접하는 것이요. 그것이  예수님에게는 그만 만족입니다. 그 이상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줘버립니다.

이러니까 심신의 요 기능이 하나님의 주시는 요 구원을 영접할때에 이것이  주님을 참 대접하는 것이요. 주님을 환영하는 것이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요것이 주님의 구속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요것이 주님의 구속을 자기가  인정하는 것이고 영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요 심신의 기능이 요 심신이 예수님으로 구속을 해 놓은 걸 성령님이  이것을 입혀줄려고 중생된 영도 살릴려고 또 진리도 요대로 해서 살릴려고 애를  쓸때에 그때에 그 현실에서 하나님을 따라서 옮겨지지 아니하고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법에 어기는 죄를 짓는것 제 욕심대로, 제 욕심대로, 제 버릇대로, 제  버릇대로, 제 구습대로, 제 버릇대로, 제 욕심대로, 제 생각대로 악령의  감화대로 해서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법을 어겨 죄를 딱 범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을 제일 섭섭하게 배반하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요.

중생된 영도 배반하는 것이요. 그것이 진리도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사랑하는 아내가 죄 지었던 것을 용서를 하고 다시 사랑하는 아내로  삼을려고 시험할때에 사랑하는 본 남편을 배반하고 간부를 따라서 배반하고 다시  간음하고 돌아가는 것과 같이 그렇게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분히 여기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때에 배반한 그 기능은 영원한 사망에 던져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속받은 기독자들이 이렇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모든 우리가  모르는데까지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법과 해결을 지워놓았고 마귀 이놈으로  더불어 싸워가지고 마귀를 이겨서 마귀를 굴복시켜서 마귀가 다 내놓기로 다  해놨고 만반의 구원 준비를 다 해놓고 이제 이것을 성령님이 오셔 가지고  실질적으로 이 구원을 줄려고 할때에 영은 죽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안  받으라고도 못하고 이렇기 때문에 이것은 그만 받아 버렸지만 이 심신이라는  이것은 법적으로는 죽어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까지 죽지를 안했고 이것이  살아 움직여 세상 별세 할 때에 다 죽어 버리니까 차차 죽어져서 사람이  늙어지는 것이 그게 죽어지는 것이요. 차차 하루 이틀 사는 것이 점점 곧  죽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것이 죽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껍데기 이것이 백  목사도 왜 껍데기 늘어지느냐? 머리가 희어지느냐? 이 껍데기 이것은 죽어지는  것입니다. 죽어지는데 죽어지는 현실을 만났을때에 속에 기능을 살려버리면  껍데기는 죽었지만 속은 살았기 때문에 겉사람은 부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 그말은 날로 자라가고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껍데기는 첫째 아담으로 인해서 늙어지고 죽어지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속의 기능은 착착 살아 나가지고 이제 겉은 부패하지만  속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강해지고 장성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을 떠날 때에 장성한 살아난 마음의 기능은 이제는 살린 영이 살린  영이 이 마음의 기능을 잡아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갑니다. 하늘나라 갑니다.

그러나 마음의 기능을 살리지 못한 자는 그 껍데기 마음만 같지 마음이라는 그  겉만 같지. 속에 알맹이는 빼앗기 때문에 알곡 없는 쭉정이와 같습니다.

다 같은 형제간이지만 쌍태를 난 형제간이지만 하나는 밥만먹고 옷만 입고  저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자라니까 키는 같이 자랍니다. 그러나 한 아들은  이것이 제 마음대로 하지 않고 부모 시키는 대로 선생님 시키시는 대로 지도자  시키는 대로 이렇게 해서 자꾸 시키는 대로 배워나가고 애써나가니까 이것이 대  신앙가요, 대 과학자요, 대 문학가요. 대 윤리가라.

이러니까 저울을 갔다놓고 두 쌍둥이를 다니까 중량도 같고 껍데기는 꼭 같지만  이렇게 노력하지 안한 아들은 깡통같소. 빈 깡통같이 속에 아무것도 없소. 한  아들은 시기 시기마다 부모가 주는 것, 선생인 주는 것, 이 물리가 주는 것,  진리가 주는 것을 착착 받아 가지고 싸놓으니까 껍데기는 키도 같고 체중도 같고  번들번들하이 같지만 속에 알맹이는 하나는 꽉차서 영어도 닥치니까 죽죽 읽고  이거는 영어도 닥치니까 못 읽고 한글도 못 읽고 이거는 독일어도 읽고 이거는  아무것도 봐야 글을 봐야 하나도 읽을 줄를 모릅니다. 또 이거는 물리는  닥치는데 뭐인지 하나도 모릅니다. 사람은 사람이지만 그러면 쌍둥이 하나는  천물이요. 무능자요. 무식자요. 그것은 이러니까 사람은 사람이요 껍데기는  같지만 속 실력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 둘이 형제간이니까 아무도 같은 줄 알지만 회사가서 취직할라  하니까 하나는 절을 하면서 우리 회사좀 일을 해달라 하는데 하나는 가니까 아  자기는 필요없습니다. 내 놓습니다. 또 지금 고등관리 자격시험을 치는데 이  시험 치러가니까 이 사람은 가 가지고 척척 척척 하니까 합격이 됐는데 이  사람은 가니까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시험치러 가도 모르고 아무것도 소용이 없고 저거 동생이  학교에 가니 여어 교실에 들어오지 마십시오. 왜 나 못 들어오게 하는가? 여는  가르칠수 있소. 이거는 뭐냐 하니까 모른다 말이오. 그러면 나가십시오.

이러니까 어데 가도 배척이요. 아는 게 없어요.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현실 현실에서 예수님이 이루어 놓은 이 구속을  성령님이 주실 때에 하나 하나 척척 받아 들려 가지고 이 이런 기능 저런 기능,  이런 기술 저런 기술, 이런 실력, 저런 실력, 이런 지식 저런 지식을 이렇게  갖추어 가지는 것처럼 현실 현실에서 심신의 그 기능 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나고 진리로 말미암아 살아나고 중생된 영으로 말미암아 살아나므로 그 속에  기능이 구비한 그 마음도 있고 하나도 구비 못한 마음도 있고 구비한 그 몸도  있고 하나도 구비못한 몸도 있습니다.

이러면 그 영이 세상을 떠날때에 영과 육이 나눠질때에 그때에 그 육 가운데에  몸은 이거는 혈육이기 때문에 혈육이기 때문에 이 몸은 신령한 세계를 가지를  못하지만 그 마음이라고 하는 그것은 영이 낙원에 갈때에 그 마음도 같이 가게  됩니다.

영이 마음을 입고 갑니다. 마음을 입고가지만 어떤 영은 기능이 구비한 그  기능이 중생된 영의 기능과 꼭같은 그런 구비한 기능을 가진 그런 미움을 입고  가는 그런 영도 있고 영과 이 마음이 하나된 부분은 없고 껍데기만 되어있는  실력 없는 그 마음을 입고가는 그 영도 있습니다.

이러니까 영이 아무리 하고 싶어도 도구가 없으니까 못하겠습니다. 일등  피아노사라도 피아노가 없으면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가 없고 일등  바이올린 타는 사람이라도 바이올린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그 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은 하나님하고 결합이 되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처럼 능하게  할 수 있는데 기계가 있어야지, 마음의 기능이 있어야지. 이러니까 어떤 영은  기능없는 마음을 입고 하늘나라 가니 그 영이 평안하고 좋겠습니까? 기가  차겠습니까? 네, 그때 기가찰 그 탄식을 지금도 하면서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에는 참 성령이 울고 주님이 울으시고 중생된 속사람, 우리 자아는  웁니다. 이래서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하면서 탄식을 했습니다.

이래서 마음을 입고 갔지만 이 몸은 입고 가지를 못하고 땅위에 둬두었습니다.

땅위에 둬 둔 것은 이 혈육은 이것은 신령한 것으로 변화가 되져야 되지. 이  혈육 가지고는 하늘나라에 못가요. 혈육 이거는 좀 있으면 썩지요. 아무리 좋은  피라도 내놔봐요. 안썩는가? 썩지. 쇠해지지. 낡아지지. 시들어지지 변해지지.

이것 가지고 어찌 영생할 수가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 혈육으로 된 것은 아무래도 시공에 제한을 받지 아니하는  신령한 것으로 마음 모양으로 이 신령한 것으로 변화를 받아야 되기 때문에 이제  벗어놓고 갑니다. 벗어놓고 가는데 벗어 놓고 갔지만 어떤 것은 속에 기능이  가득찬 그 몸을 벗어놓고 갔고 어떤것은 속에 기능이 없는 몸을 벗어놓고  갔습니다.

벗어놓고 간 것이 이 다음에 예수님이 재림 하실때에 이 몸을 다시 살려내니까  이 몸이 살아납니다. 죽었던 것이 살아나니까 살아난 것은 같이 살아났지만 속에  기능은 다릅니다. 기능은 다른 것은 마치 비유컨데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비행기 조정하는 비행기를 운전하는 그 조정사입니다. 조정사가 기절해 가지고  죽었습니다.

또 이것은 자전차도 운전 못하는 사람도 기절해 죽었습니다. 시체는 꼭  같습니다. 아 두 죽은 자들이 기절했다가 둘다 살아났습니다. 살아났는데  죽었다가 살아난 그 하나는 차를 운전할라하니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나는 아  비행기도 그만 살아나니까 척 그만 그 조정을 해 가지고 이 공중에 후루루  날아가 버립니다.

그러니까 살아난 것은 죽었다가 살아 난 것은 같지만 살았을 때에 갖추어 놓은  기능이 그것이 죽었을때 같이 죽었지만 살아날때 같이 살아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는 사람들의 육은 화장을 하든지 수장을 하든지 토장을  하든지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죽어 가지고 그것이 썩어서 흙이 되고 흙이  풀이되고 풀이 또 소가 먹어서 소 살이 되고 소 살을 또 어떤 사람이 먹어서 또  살이 되고 뭐 어떻게 하든 상관없습니다. 어디까지 갔더랜대도. 만물을 복종케  하실 수 있는 능력를 가지시고 주님이 이것을 변화시키십니다. 자기의 지체를 다  찾아 가지고 부활시킬 때에 자기가 살았을 때에 하나님으로 얼마나 연결이  되었으며 영으로 얼마나 연결이 되었으며 진리로 얼마나 움직였든가 하는  하나님에게 대한 기능, 중생된 영에 대한 기능, 진리에 대한 기능 이대로 모든  인류와 만물에게 행했던 기능 고 기능 고대로 가지고 이 몸이 부활합니다.

이러니까 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영을 다 데리고 영들은 또 자기가 가진  자기의 마음들을 다 거느리고 하나님은 영을 거느리고 영은 마음을 거느리고  이렇게 부활하려고 옵니다. 부활하려고 오는데 부활을 하기는 했는데 어떤  부활은 아주 권위있는 부활 어떤 부활은 권위 하나도 없는 부활. 이러니까 몸도  부활해야 권위 하나도 없지. 실력 없지. 마음도 살아 있기는 있지만 기능 하나도  없지. 영은 기능이 얼마든지 있지만 행동을 할 수 없지 도구가 나쁘니까.

이래 가지고 이 일을 생각하니 기가 막혀서 바울은 예수를 믿어갈 수록 이  하늘의 것을 덧입을 것, 새 것을 덧입을 것, 이 장막집이 무너지면 영원 무궁한  것으로 살터인데, 장막집이 무너지기 전에 영원 무궁한 것으로 살아야 살 수  있는 것을 마련해야 되겠는데, 이러기 때문에 장막집이 무너지기 전에 영원한 것을 덧입을라고 더입을라고 애를  쓰는데 이기 잘 안되니까 얼마나 자꾸 이 마음이 기가 차든지 죽을때는 가까왔고  이제 신령한 것으로 살때는 가까왔고 이 육을 벗을때는 가까왔으니까 그 걱정이  그것이 더 심해지는 것이 필연한 일입니까? 그 걱정이 차차 이제 덜해지는  그것이 이제 필요한 것입니까? 어떤 것이 정상입니까? 심해지는 것이  정상이지요. 거기 정상의 마음이지요.

이러기 때문에 바울은 말하기를 마음이 무거운 짐진 것과 같다 했습니다. 무거운  짐은 갈수록 힘이 들지요. 갈수록 힘이 더 듭니다. 갈수록 마음이 더 눌리지는  것을 가르쳐 말씀합니다. 이랬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열심히 믿지만 나중에 늙어지면은 열심이 차차 차차 식어집니다.

식어지는 그것은 처음에는 육으로 시작해 차차 차차 신령한 것으로 바꾸어져야  될터인데 바꾸어지지를 못하고 항상 불탈 것 땅의 것 옛사람이 예수 믿습니다.

옛사람이 예수 믿고 가짜 하나님을 믿었고 진리 믿는 도리를 바로 배우지를  못했고 믿는 도리를 배우지를 못했고 예수만 믿으면 된다. 믿사옵나이다 하면  됩니다. 칼빈이 가르치는 그것만 하면 됩니다.

이러니까 칼빈 시대에 없었던 것이 가득차 가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칼빈이  가르치는 그것만하면 됩니다. 하니까 그것하기고는 회개가 안 낫는다 그말이오.

회개가 낫들안해.

20세기의 이렇게 이 죄악이 하늘까지 관영해진 이때에는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 이러니까 지금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 이러니까 교인들을 인도해도  교인들은 이 세상적으로는 명철해 가지고 명랑해가지고 장성했는데 영적으로는  갈길이 없어. 갈길을 모르니까 어디로 갈꼬 마구 대중을 끌어 놓고 대중의  갈길은 없으니까 이놈은 이리 툭 터지고 저놈은 저리 툭 터져 가지고 자, 불을  받으라 방언을 해라 지식을 받으라 신유의 은혜를 받으라. 이 잡된 소리만 해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될 그 길은 모른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도인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갈 이 죄악을 어떻게 방어해야 될 이  마귀를 어떻게 방어해야 될 인도하신 성령의 인도를 어떻게 받아야 될 이것이  신구약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고 영감이 그때 그때 다 기름부음이  가르쳐주시는데 이 영감을 받지 못해서 진리를 배우지 못해서 이러니까 그만  얼떨떨 해가지고 어디로 갈 줄을 모르게 된다 그거요.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의 이 현실에서 참 자기가 기능을 착착 하나 하나를  마련을 이렇게 해가면 해가면 이것을 위해서 죽기까지 힘들어 가지고 모든 것을  다 내놓기까지 해 가지고 이렇게 하신 이 예수님께서 예수님이 이루어놓으신 이  구원을 현실 현실에서 착착 입으면 예수님께서는 몸을 생명을 바치는 것보다  기뻐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힘들어 가지고 이루어 놓은 일을 배반하지 않고 착 받아 들일때  얼마나 좋아합니까? 이것은 예수님을 유일로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이것이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이것이 진리를 기쁘게 만족케 하는 것이고 이것이  중생된 영은 이상 없는 만족이 되고 이러면 살아난 심신의 기능도 이놈을  배반하고 살아나고 나니까 좋습니다.

이러기에 우리 심신 속에 성화가 된 기능은 더 이상 없이 만족을 합니다.

아직까지 살아나지 못한 이것은 만날 저 속이는 그것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들  속이는 자에게서는 속이는 자에게서는 속고 있을 때에 그놈이 나쁜 놈인 줄  압니까? 속는 거기서 물러 나와야 나쁜 놈인줄 압니까? 네, 물러나와 알지요.

이러니까 그거는 배반하고 난 다음이라야 거기 나쁜 놈인줄 알지 배반하기  전에는 모릅니다. 옳고 속는데 있는 자를 옳고 바른데로 인도할때에 인도를 받기  전에 압니까? 인도를 받고 난 다음이라야 압니까? 네, 인도를 받고 난  다음이라야 알지요.

이러기 때문에 이 심신의 기능은 구속을 받고 난 다음에라야 알지 그전에는  모릅니다. 항상 그것이 좋습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 현실 현실에서 이렇게  심신의 기능을 마련하니까 예수님은 자기 해놓은 일이 성공이 되니까 좋고  성령님은 책임 맡고온 이 일이 이루어지니까 좋고, 중생된 영은 같이  무궁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자기의 손발이 생기니까 좋고, 이 심신의 기능은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탈것이 생명에 속해서 옳은 것에게 쓰여지고 참  자기에게 쓰여지는 것이 되니까 자기가 되어졌으니까 좋고, 만물들은 하나님과  산영과 진리와 하나가 되져 가지고 하나님의 충만을 만물에게 줄수 있는 것이  살아났으니까 좋고, 이 구속이 안 될때에는 같이 살아난 만물이 죽게 되니까  이것이 참 비참이고 심신의 기능도 죽고 보니 비참하고 후회한들 소용없어.

영은 영원히 영계와 물질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기의 비행기와 배, 차와  자동차와 같은 의사가 모든 구비한 의료 기구와 같은 의료 기계와 같은 이런  모든 필요한 것을 이것을 마련했으니까 좋고, 이것이 마련이 안되니 기가차고,  성령님이 책임맡고 왔는데, 이 일이 실패되니까 기가 차고 예수님이 이렇게 큰  힘들어 해놨는데, 이것이 헛일이 되니 기가 차고, 네, 이렇게 되기 때문에 바울은 어떻게 하든지 이제는 과거에 귀하게 여겼든지,  유익되게 여겼든지, 보배로 여겼든지 이런 것을 다 포기했다. 땅의 것을  포기했고 하늘의 것을 이제는 피해서 땅의 것은 어떻게 여겼느냐? 배설물로  삼았다. 배설물로 삼았다. 똥, 오줌으로 삼았다 그 말이오. 똥오줌으로 삼았다.

다른 공장에서는 다 쓰고 이제 몹쓸 것 버리는 것 이런데 여기 배설물은  똥오줌을 말하는데 똥오줌으로 삼았다.

왜 음식을 먹어 가지고 영양 진짜는 취하고 나머지기 찌끼 몹쓸 것은 똥오줌으로  버리는 것처럼 이 세상 만가지 현실에 요 속에 심신의 기능을 얻는 요 진짜  알맹이 깨가지고 가 가지고 기름빼고 깨묵 남구는 것처럼 요 현실에서 하늘에  속한 것 요거 마련하고 땅에 속한 것에서 하늘에 속한 것을 마련하고 땅에 속한  것으로 하늘에 속한 것을 마련하는데 비용으로 쓰고 땅에 속한 요것을 하늘에게  소속을 시키고 보이는 현실은 다 찌끼로 버린다 똥오줌과 같다. 요것을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요 현실을 배설물. 눈에 보이는 세상 사람들이 취하고 좋아하는 그것은 찌꺼기  그속에서 세상이 모르는 비밀인 신령과 생명에 속한 요것을 취하는 요것만으로  자기 수입이라는 요것을 요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배설물로 여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그 권능에 나도  참예하게 되어서 예수님의 부활하신 그 예수님의 인성의 부활에 권능과 같은 그  권능을 나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의 죽음과 그 고난에 동참하고  예수님의 부활에 권능에 나도 동참하려고 애를 쓴다. 요것이 아니면 안된다.

요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는 늘 말하기를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 이 십자가는  멸망할 자가 볼때에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 얻은 자가 볼때에는 하나님의  권능이다.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얻을 영광을 족히 비교하지 못한다. 왜 무슨 고난입니까?  악령 이놈 배반할라 하니까 고난이요. 악성 이놈 배반할라 하니까 고난이요.

악성은 누구 배반하는 것입니까? 자기 배반하는 것이요. 악령을 배반하는 것은  누구 배반하는 것입니까? 악령의 군대가 되어 있는 모든 인류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악습을 배반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의 습성을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입니다. 이것이 고난입니다. 자기 습성 그놈 끊을라하니까 참 곤란합니다.

술먹던 사람이 술먹던 습성을 끊을라하니까 노름하던 사람이 노름하는 습성을  끊을라고 하니까 이 세상 춤추고 향락 취하던 그 습성을 끊을라 하니까 참  곤란합니다. 자기 욕심을 끊을라 하니까 자기 주장 자기 생각 이것을 자기를  부인할라 하니까 참 고통입니다.

마귀에게 속해 마귀 일꾼이 되어있는 이 다리오왕 마귀일꾼 되어있는 그 모든  관민들이 세상 사람들 마귀에게 속해있는 부모형제 자매 처자 이 세상 친구 모든  정치가 이것을 배반하려하니까 참 고통입니다.

고통이지만 이제 당하는 고통과 장차 받을 영광을 족히 비교하지 못한다. 이  고통을 왜 당합니까? 이 고통을 왜 당합니까? 새생명으로 살아날라고 하니까  고통을 당하지요. 살아나지 고통이 됩니까? 살아나서 마찰이 있습니까?  살아나기전에 마찰이 있습니까? 살아날려고 하니까 마찰이 시작되고 살아나니까  마찰이 됩니다.

이러니까 마찰됨으로 속에 살아난 이것이 하늘나라에 가서 영광 누릴것과 이것이  살아날려고 살아난 이것이 죽은것들과 이제 서로 대립이 되는 것과 대립된  이것은 잠깐 대립이지만 살아난 것은 살아나서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그  비교못한다 그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바울은 어짜든지 그 표준이 예수님께서 부활의 권능, 부활의  권능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하나된 산영과 하나된 진리와 하나된 이것이 이제  이 다음에 부활할때에 부활한 자의 권능이 되는 것인데, 예수님도 이 권능을  가졌습니다.

우리와 다른 것은 하나님과 하나된 것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됐다가 하나됐고  예수님은 처음부터 하나됐고 우리는 죽은 영이 살아난 산영으로 더불어 심신이  하나됐고 예수님의 영은 처음부터 죽지 아니한 영으로 더불어 심신이 하나됐고  우리는 배반햇던 진리와 심신이 하나되고 예수님의 심신은 처음부터 진리와  하나됐고 이러니까 하나된 것은 같지만 다른 것은 하나는 죽었다가 배반했다가  하나된거 처음이 다르지 하나된 것은 같습니다.

요것을 바울은 깨닫고 어떻게 하든지 이제는 배반한것이 하나되고 어긴 것이  하나되고 죽었다가 살아난 영으로 더불어 하나되는 이 일을 하려고 하니까  세상에서 여러가지 마찰이 있지만 그 마찰에 표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마찰이 되되 얼마나 마찰이 되지는가? 마찰이 돼도 하나님과 하나되고 마찰이 돼도 하나 되니까 마지막에 마찰이  되니까 죽어 버릴란다. 이러니까 죽어도 하나되니까 죽었지 하나됐습니다.

요것이 예수님의 완성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중생된 영과 진리와 하나되므로  하나되므로 이제 어려워도 하나되고 살림을 빼들어도 하나되고 병신에 있을때도  하나되고 가난, 매를 때려도 하나되고 눈을 빼도 하나되고 껍데기를 뺏겨도  하나되고 말하지 마지막에 목숨을 딱 끊어도 하나된 자로 목숨이 끊어지는  요것을 바울이 표준했습니다. 바울은 요것을 표준해서 왔습니다. 요렇게 하기로  단정을 하고 그대로 해나갑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는 단연코 자랑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는다. 날마다 죽는다.

하나님과 진리와 중생된 영과 하나되기 위해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손해를 날로  본다. 보나 요 손해 보지 않는다. 요것을 그는 자랑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현실은 이렇게 중요한 현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구속을  입기전에는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사망 아래에 속한 것 밖에 없었지만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신령에 속한 것들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생명과  신령에 속한 것들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둘입니다.

이런고로 우리는 닥치는 무엇이든지 우리가 아는 무엇이든지 우리가 듣는  무엇이든지 들리는 것 전부, 보이는 것 전부, 생각하는 것 전부, 아는 것 전부,  접촉하는 것 전부 이 전부가 우리에게는 둘이 되어 있으니 어느 걸 취할랴냐?  어느 길로 갈려냐 하는 것은 언제든지 우리 현실에는 둘이 놓여있습니다. 선이  있을때 악이 함께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권고하심이 있을때에 악령의 꾀임이 같이 있습니다. 산 영  새사람이 우리를 달래고 타이르고 있는데, 이제 악성 자기 중심으로 살려고하는  자기 아닌 자기, 원수인 자기, 가장을 쓰고 온 자기, 고놈이 옆에 같이  있습니다. 참 내가 있는데 거짓 나, 가장한 나, 그것도 함께 있습니다. 성령이  계시는데 악령도 같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산 고 생활도 거기서 옆에서 애터지게 사는 데에 죄악으로  살았던 못된 습성 그것도 같이 있습니다. 나쁜 버릇도 같이 있소. 하나님의  뜻대로 산 그 의의 믿음의 행위도 같이 있습니다. 요 둘이 있기 때문에 구습을  네가 따라서 살려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믿음을 따라서 살려냐? 원수 자기 중심으로 살려는 고놈이 원수인데, 하나님 생각하지 않고 제 가정 내  가정이기 때문에, 내 몸둥이기 때문에, 내 생명이기 때문에, 내 민족이기  때문에, 내기 때문에, 내 영광이기 때문에, 내 수치이기 때문에, 내 명예이기  때문에 나, 나, 나, 나, 나 그놈이 원수인데, 나 그놈이 원수인데 잘 자기를  생각하는 그놈이 원수인데 참 자기는, 참 자기는 하나님만을 위하는 나 진리대로  사는 나. 만물을 위하는 나. 이웃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나. 요것은 참  자기입니다.

모든 것보다도 자기가 위주가 돼 자기 중심으로 여기는 나, 요놈은 원수입니다.

요놈과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돼. 죽어도 살아도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라.

모든 인류를 위하는 것이라. 나 좋은 대로 하면 안돼. 하나님 좋아하는 대로  해야돼. 나 유익시키면 안돼. 하나님 유익이 유익을 취해야 돼. 나른 낫게  여기는 것보다 하나님을 다른 사람 이웃을 낫게 여기야 돼.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돼. 요렇게 하면 분명히 우리가 현실에 내가 둘이라는 걸 여러분들이  봅니다.

둘이 분명히 있습니다. 자기가 둘이 있습니다. 요럴 때에 한 놈은 원수입니다.

요놈을 배반해야 됩니다. 요놈을 배반하고 요 하나님 중심으로 위주로 살아야지  이제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안해야지 사죄를 받아 죄를 짓지 안해야지, 이제는  주님이 죽으심으로 칭의를 주었기 때문에 다시는 의를 버리지 안해야지.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주님이 죽어도 하나님께서 원수라고 죽입니다. 원수라고  죽여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달라붙고 하나님 배반하지 안했습니다.

요것으로서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의 이 원수가 대속이 됐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하나님과 화평준 이 화평을 어떻게 다시  내가 배반하리요. 요 사람이 있다 그말이오. 요 사람이 자기입니다. 요 자기가  있고 저 좋은대로 제 욕심대로 제 위주로 저만 생각하고 저 중심으로 살려하는  그놈이 원수입니다.

그놈이 원수인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와 자기 속에 하나는 원수요 하나는 참  자기라는 요것을 현실에서 구별해 가지고 요놈을 배반하고 참 자기에게 속하면  그때에 속한 심신은 영원히 살아납니다. 영원히 심신과 진리와 하나님과 함께  삽니다.

그때에 고 현실에 악령과 성령이 우리에게 같이 있습니다. 악령, 악령은 자꾸  악령은 보이는 것을 주장합니다. 악령은 보이는 것만 주장합니다. 야, 네가  죽으면 그만이야. 어데 내세가 있는 줄 아나? 뭐 있는 줄 아나?. 이놈은, 악령  이놈은 자꾸 보이는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보이는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악령은  이놈은 제 군대는 내 속에 있는 내나 악습 그놈 아닙니까? 악성을 가지고  악성으로 살아라.

마음에게 몸에게 야, 마음아! 몸아! 이 악성 네 중심, 네 중심으로 살아야 돼.

마귀 요놈 요렇게 꼬입니다. 요렇게 꼬우요.

성령은 그럴 때에 너는 너는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아 생겨졌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있다.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지으셨다. 모든 피조물보다 하나님이 크다.

너희에게는 이 세상은 나그네 세상이고 너희의 영주처는 무궁 세계의  하늘나라이다. 너는 죽은 지식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산지식대로 살아라.

너는 죽으면 끝이 아니고 부활이 있다. 죽으면 그만이다. 부활이 있다. 어쩌든지  말똥을 굴려도 이 세상이 좋다. 죽으면 그저 끝이다. 아니다. 부활이 있고  심판이 있다. 무궁 세계에 지옥과 하늘나라가 있다. 요렇게 옆에서 자꾸 우리  생각에 우리 생각 안에서 말해주는 것은 누구입니까? 성령님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 마음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고로 우리는 우리 앞에 반드시 둘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생각하고 살펴서 살면 될 수 있고 이것을 잊어버리고 살 때에는 벌써 그  사람은 죽은 생활 옛사람의 생활입니다. 요 두 가지를 가지고 시비를 할 때에  그때에 희망이 있고 시비를 하다가 옛사람 자기, 악령, 구습 자기가 옛날 죄짓던  습성 그놈이 미워서 그놈이 미워서 더럽고 미워서 미울 때 그때가 하나님에게  속한 때요. 새사람으로 살 때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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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 위엣것을 찾으라/ 골로새서 3장 1절-3절/ 801112수새 선지자 2015.12.14
1838 유다서 암송/ 마태복음 28장 17절-20절/ 890205 남권찰회 선지자 2015.12.14
1837 유월절 4가지 갖추면 3가지 유익/ 출애굽기 12장 7절-11절/ 871120금새 선지자 2015.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