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4 13:40
위엣 것과 땅엣 것
1980. 8. 12. 화새집회
본문 : 골로새서 3장 1절 - 4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세상을 떠날 때에 그것으로 영원한 멸망에서 머물러야 하는 것이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인해서 믿는 자에게는 죄와 허물로 가리워져 있던 하늘의 것이 다시 나타나게 되었고, 열리게 되었고, 귀에 들리게 되었고, 눈에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저희 믿는 사람들이 중생되는 그때부터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이 두 가지를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또 소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이 믿는 사람 가운데도 이름만 믿는다 하고 그저 형식만 따라서 예배당에 왔다 갔다 하는 이런 사람들은 안 믿을 때에 땅의 것만 보고 욕심 품어 살던 거와 같이 믿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똑같은 그 사람으로 삽니다. 이는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고 보아도 보여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양심을 쓰지 않기 때문에 들리지 아니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거리낌이 없는 그런 것들을 회개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뵈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다 이런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차차 차차 양심도 가꾸고 또 그 사람의 잘못도 하나씩 둘씩 회개를 하므로 마음이 깨끗해져서 하나님의 그 주시는 하늘의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은 의심하게 들려지기도 보여지고, 어떤 사람은 뚜렷이 확실히 들려지고 보여지고, 어떤 사람은 더욱더 밝히 들려지고 보여짐으로 이제는 이 사람은 땅의 것과 하늘의 것을 비교를 할 수 있습니다.
땅의 것은 어떤 것이며 하늘의 것은 어떤 것인가? 그러면 땅의 것이 좋은가 하늘의 것이 좋은가? 내가 어느 것을 취할꼬 하는 이것이 차차 자기에게 생겨지게 됩니다.
이러니까 땅의 것은 자기를 해치는 것이요 또 영원히 자기 것이 되지 못할 것이요. 이것은 다 죽은 것이요 썩은 것이요. 약한 것이요. 되지 못할 것이요.
더러운 것들이라. 하늘의 것은 다 깨긋하고 옳고 참되고 영원한 것인 것을 알게 됨으로 그 사람이 땅에 살지만 하늘의 것만을 보려고 들으려고 알라고 하늘의 것만을 소원을 품고 욕심을 품습니다. 이래 가지고 전 마음과 힘과 성품과 뜻이 하늘의 것만을 자기 것 삼으려고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러니까 이 사람이 땅의 것은 밉고 싫고 더럽게 됩니다. 이러다가 하늘의 것을 원해서 이렇게 한 가지 두 가지 살고 보니까 차차 살아갈 수록 눈은 더 밝아지고 귀는 더 밝아집니다. 눈과 귀가 밝아지니까 '하늘의 것은 좋고 땅의 것 이것도 페물 이용으로 이용할 가치가 있구나!' '땅의 것도 이용 가치가 있구나!' 이래서 땅의 것도 소중히 여깁니다. 땅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땅의 것을 자기가 차지하려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고, 땅의 것 이것은 하늘의 것을 자기 것 삼는 데에 비용처럼 아주 요긴하게 쓸수 있는 그 자본이 되어진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됩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하늘의 것을 위해서 노력을 할 때에 땅의 것은 저절로 옵니다. 땅의 것을 제가 취하려고 애를 써서 오는게 아니고 땅의 것은 하늘의 것만을 취하려고 애를 쓰니까 땅의 것은 저절로 옵니다. 땅의 것을 위해서 힘을 쓰거나 원하거나 그렇지 안했는데 하늘의 것만을 취하려고 애를 쓰고 노력하니까 땅의 것은 저절로 그것이 옵니다. 어떨 때는 적게 올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많이 올 때도 있고 또 어떨 때는 왔던 것이 제대로 버릴 때도 있고 많이 왔던 것이 적어질 때도 있고 적게있었는데 그것이 차차 많아질 때도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 사람이 눈이 밝고 귀가 밝아서 이것이 어떻게 해서 왔다 갔다 또 많아졌다 적어졌다 있다가 없다가 이렇게 하는가 이것을 바로 알게 됩니다.
'이것은 하늘의 것을 얻어가지도록 하시기 위해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대주재가 되신 주님께서 이것을 나로 하여금 하늘의 것을 잘 취해서 하늘의 것으로 충만케 하실려고 이런 것들을 조정하시는 것이로구나!' '이런 것들을 조절해서 이렇게 하시는 것이로구나!' 자세히 보니까 이것이 많이 필요할 때는 많게해 주시고 적게 필요할 때에는 적게 해주시고 어떨 때는 없는 것이 필요할 때는 없게해 주시고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눈으로 봤습니다.
이러니까 하늘의 것만을 위해서 노력을 하면서 땅의 것이 오니까 또 자기가 받아서 간직하고, 또 가니까 가구로 두고 그것이 오던지 가던지 많아지든지 적어지든지 상관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것이 자기에게 왔을 때에는 작든지 많든지 크든지 적든지 간에 이것을 하늘나라의 것을 얻기 위해서 잘 이용합니다. 거기에 투자를 합니다.
이러니까 이 사람이 하늘의 것을 차차 얻어가니까 그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가 밝아집니다. 귀가 밝아진다 말은 양심이 점점 깨끗해서 밝아집니다. 눈이 밝아진다 말은 그 사람의 모든 생활과 자기의 마음과 몸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잘 보이고 잘 들려집니다. 이러니까 잘 들려질 수록 잘 보여질 수록 하늘의 것은 참 지극히 보배롭고 영화롭고 다 영원성을 가졌고 완전성을 가진 것들이요. 땅의 것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눈 앞에 있는 안개와 같이 다 좀먹을 것들이요 다 동록 쓸 것들이요 다 없어질 것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게 대해서 욕심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어집니다.
또 이것이 욕심을 낼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이용 가치는 있다는 것을 또 깨닫게 됩니다. 이용 가치가 있으니까 이것을 마련해야 되겠다 그렇게 날뛰다가, 눈과 귀가 더 똑똑히 밝고 보면 이용 가치가 있으니 땅의 것도 이것을 마련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헛된 힘도 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헛된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 그것은 내가 많아야 될지 적어야 될지, 있어야 될지 없어야 될지 똑똑이 알지도 못할뿐만 아니라 안다고 해도 그것은 내가 많이 마련하려고 해도 많이 마련이 안되고 또 그것을 마련을 안 하려고 해도 또 마련이 되어지고 하는 이 비밀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마련하려고 애를 쓰나 안 쓰나 이것이 있다가 없다가 하는구나!' '또 이것이 많다가 적다가 하는구나!' 이것은 어떻게 해서 이런 것들이 이리 되는가? 안 믿을 때에는 제가 이것을 욕심 품고 전력을 기울려서 이것을 마련했던 것인데 예수 믿고 나서 보니까 하늘의 것만 마련하려고 애를 쓰다 보니까 땅의 것은 저절로 됩니다. 이럴 때에 저절로 되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이것은 다 마련을 하시되 내게 내가 하늘의 것을 마련하는 데에 이용하기에 적당한 양을 적당한 종류를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다는 이것을 자기가 깨달았습니다. 이러니까 자기에게 땅에 속한 것들이 많이 오든지 적게 오든지, 오든지 가든지, 있어지든지 없어지든지 여기 대해서는 관심을 하나도 가지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이 있든지 없든지 많든지 적든지 뭐 많든지 적든지 이것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잘 이용해야 되겠다 하는 그것만 가지게 됩니다.
이러니까 하늘의 것은 차지하려고 이것을 자기 것 삼으려고 전심 전력을 거기다 기울이고 땅의 것은 있게 할라 없게 할라 근심하고 왔다고 좋아 하는 그것도 하나도 없고 있으면 하늘의 것을 마련하는 데에 이용하려고만 하는 요것으로 단정짓습니다.
그래 이제는 차차 눈이 밝고 귀가 밝은 사람은 하늘의 것에 대해서는 욕심이 점점 강해집니다. 뜨거워집니다. 땅의 것에 대해서는 가도 '저 사람이 저기 저렇게 확 가버렸으니까 아마 울끼다.' 가 보니까 싱싱합니다. 땅에 것이 저렇게 한목 왈칵 왔으니까 저 사람이 교만해질 것입니다. 아 가봐야 조금도 그런게 없습니다. 오든지 가든지, 많아지든지 적어지든지, 있든지 없든지 그게 대해서는 상관하지 아니하고 있기만 하면 놓치지 않하고 그것을 하늘의 것을 마련하려고 씁니다.
이러니까 땅의 것은 쓰려고만 하는 것뿐이고 하늘의 것은 마련하려고만 하는 이것이 눈이 밝고 귀가 밝은 장성한 사람입니다. 장성한 사람. 이 사람이 예수 잘 믿는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예수를 잘 못 믿는 사람들이 아 그 사람이 보니까 땅의 것도 가지고 있고 또 땅의 것이 오니까 받아 들이기도 하고 또 땅의 것을 이용도 하고 이러니까 '아 저 사람도 예수 잘 믿는 사람인데 땅의 것도 힘을 쓰고 노력을 하고 하늘의 것도 노력하니까 사람이 잘 믿는 사람도 하늘의 것 마련하는 데에 반츰 기울이고 땅의 것 마련하는 데에 반츰 기울이고 반반이 기울려서 사는가 보다.' 이렇게 제가 봅니다.
또 그보담 더 잘못 믿는 사람은 못 믿는 사람은 잘 믿는 사람이 하늘의 것을 마련하는 것은 제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들리지 안하니까 '아 잘 믿는 저 사람도 나와 꼭같이 땅의 것 이것만을 마련하고, 이것만을 좋아하고, 이것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구만.' '이러니까 잘 믿는다는 저 사람도 나와 꼭같이 살고 있구만.' 이렇게 생각을 해서 자기는 자기보다 잘 믿는 사람의 하늘의 것에 대해서는 보이지 안하고 땅의 것만 보여지니까 뭐 잘 믿는 그 사람도 우리와 같이 내나 월급 생활하고 내나 장사하고 또 이런 직장 저런 사업 우리와 같이 세상살이 하두구만 해서 저는 땅에 생활만 그렇게 합니다. 그것은 제 눈이 어둡고 귀가 어둡기 때문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아니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말하기를 한 자리에, 둘이 누워 자는데, 한 밭에서 둘이 일을 하고 있는데, 두 여인이 메 한개를 돌리고 있는데 껍데기 보기에는 들리기에는 꼭같은 일 하는 것 같은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데리고 그 사람의 생활한 것을 다 걷어 가지고 가고, 한 사람은 땅에 버려두고 생활도 버려두고 한 사람은 그 사람의 사람만 데리고 가고 모든 그 생활이나 소유는 다 집어던져 버리고, 이래서 어떤 사람은 자기도 하늘나라에 그 하루 산 것이 하루 산 사람도 하늘나라 갔고, 하루 산 일도 하늘나라 갔고, 하루 산 행동도 하늘나라 갔고, 어떤 사람은 평생 동안 예수 믿어도 사람도 행동도 해놓은 일도 하늘나라에 갈 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 땅에 속해서 다 죽고 썩고 망합니다.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은 차이가 많습니다.
이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썩을 것, 약한 것, 욕된 것, 혈육의 것 이런 것을 심어서 하늘의 것으로 산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것을 심어서 이런 것을 자본으로 들여 가지고 하늘의 것을 마련한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앞에는 언제든지 이 두 가지 것이 있습니다. 종류마다 두 가지입니다. 어떤 종류든지 하늘의 것도 있고 땅의 것도 있고 두 가지 종류가 우리 앞에 동시에 놓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갈랫길이라 그렇게도 말합니다.
하늘의 것을 취하는 그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도 되고 땅의 것을 마련하는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기 앞에는 갈랫길과 같이 이렇게 두 길이 딱 갈랫길로 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요 길로 가든지 요 길로 가든지 둘 중에 하납니다.
이 말은 갈랫길이 있다. 또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있다. 의로운 것과 불의한 것이 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있고 거역으로 사는 것이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앞에는 어떤 종류든지 반드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둘이 한꺼번에 자기에게 오니까 하늘의 것을 취하느냐 땅의 것을 취하느냐? 하늘의 것으로 사느냐 땅의 것으로 사느냐? 하늘의 방편을 쓰느냐 땅의 방편을 쓰냐? 이렇게 우리는 반드시 둘 중에 하나만 취합니다.
이래서 한번 땅에 것을 취해 놓으면 고만 땅의 것만 취하고 하늘의 것을 취하지 못하느냐? 아닙니다. 땅의 것을 취했다가 바로 그 시에 하늘의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늘의 것을 취하다가 보면 하늘의 것만 취했으니까 이제 하늘의 것만 취하게 되느냐? 하늘의 것을 취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땅의 것으로 바꾸어지기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꾸워지기를 시간이 걸리느냐? 아닙니다. 눈 깜짝일 사이에도 얼마든지 바꾸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는 하늘의 것을 취할 줄 알고 안심하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순전히 땅의 것만 취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땅의 것을 취했다가 보니까 '아이코 내가 땅의 것 취했구나!' 해서 원통해서 하늘의 것을 취하려고 결심해 가지고 하늘의 것을 취했습니다.
이러니까 먼저 취한 사람이 실패하기도 하고 뒤에 취한 사람이 그것을 잡은 사람이 성공하기도 합니다. 이래서 성경에 "앞된 자 앞선자가 뒤되고 뒤선자가 앞된다" 하는 말씀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이래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끝을 마친다." "육체로 시작했다가 성령으로 다시 고쳐서 성공을 한다." 이렇게 성경에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지난밤에는 나는 그만 하나 잊어버리고 넷이라고 말했는데 어떤 성도가 와서 '목사님 가르치기는 넷을 가르친 아니고 다섯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그분으로 인해서 고맙게 제가 하나를 내가 빼주고 했구나 하는 것을 제가 다시 여러분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되어서 대단히 잘 되었습니다.
지난 밤에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이 두 가지가 나타났는데 몇 종류가 나타났느냐? 다섯 종류가 나탄 것을 지난밤에 우리가 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다섯 종류.
첫 종류는 하나님 그런데 세상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하고 하늘님 하느님 한울님 이것은 다 이름 조차도 그것은 다른 것들 입니다. 그것은 하늘님이란 말은 높은 자라 이말이고, 하눌이란 말은 큰자라 말로 저들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것은 다 땅에 속한 신입니다. 마귀입니다.
사탄입니다. 귀신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이름은 하나님이라 이렇게 부르지만 이름만 바로 불렀지 실상은 땅에 속한 하나님을 믿는 자, 의지하는 자, 바라 보는 자 있습니다. 그것은 이름은 하늘에 계시는 참 하나님의 이름을 말은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 사람이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늘님 한울님 저희들의 신, 귀신, 마귀, 사탄 그것을 저희 하나님 이라고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 중에 평신도만 아니라 권찰, 집사, 주일학교 반사, 장로, 목사 이중에도 땅의 하나님 거짓 하나님 사탄이 마귀가 귀신이 하나님인 척하고 그 사람에게 나타나 가지고 그 사람을 속여서 내가 하나님이라 하고 속여 가지고 그 사람의 일생 생활을 땅의 것만 취하고 하늘의 것을 낱낱이 버리도록 이렇게 만들어서 마귀 집사, 귀신 집사, 마귀 장로, 귀신 장로, 사탄 장로, 사탄 목사, 귀신 목사, 마귀 목사 이렇게 마귀 신자, 귀신 신자, 사탄 신자 이렇게 살도록 만듭니다.
이래서 그것을 가르쳐서 성경에 외식하는 자라, 외식하는 자라, 거짓 형제라, 육체에 속한 자라, 땅에 속한 자라, 인본주의라, 세상을 위주로 하는 세본주의라,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도덕만 취해서 도덕주의자라, 기독교 사회주의자라, 기독교 정치주의자라 이렇게 이름을 부르는 것이 다 그 사람의 말은 하나님 하나님 말하지만 실상은 땅에 속한 거짓 하나님, 자기를 속이는 하나님, 모든 사람을 속이려고 하나님 아닌 것이 하나님 척 나나타는 그 자에게 붙들려 가지고 그 자에게 걸려 가지고 일생을 그놈에게 속고 저도 많은 사람들을 속여서 목사 노릇이나 전도사 노릇하는 사람은 이놈에게 속아 가지고 이놈의 일꾼이 되어 가지고 사람들을 다 속는 길로 인도하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받을 심판이 크다 했습니다.
이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너희들이 벌로 선생되고 싶어 하거든 선생이 되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만 가지지 말아라." "선생 지위에 있는 사람은 받을 심판이 크다" 말했습니다. 받을 심판이 크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땅에 속한 거짓 하나님, 하나님 아닌 것이 하나님인척 해가지고 나타나는 거짓 하나님, 땅에 속해 있는 하나님,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애비가 되는 이 마귀 사탄 귀신 이것이 하나님인척 하고서 나타나는 이 거짓 하나님에게 붙들려 있는 그런 교인은, 그런 집사는, 그런 장로는, 그런 목사는, 그런 당회장은, 그런 노회장은, 그런 총회장은, 그런 시찰장은, 그런 공회장은 뭣을 듣기 싫어하는고 하니 고만 인본주의를 말하면 듣기 싫어합니다. 인본주의 하면 저것 또 인본주의 뭔지 한다고 인본주의 소리는 죽자고 듣기 싫어합니다.
인본주의 소리 듣기 싫어하고, 또 세상주의라는 소리 듣기 싫어하고, 기독교 도덕주의라는 소리 듣기 싫어하고, 기독교 정치주의라는 말도 듣기 싫어하고, 기독교 민족주의라는 말도 듣기 싫어하고, 기독교 국가주의라는 말도 듣기 싫어하고 요 말만 하면 자기 속에 딱 걸려버립니다. 고만 자기 속에 거리껴서 듣기가 싫습니다. 고만 미운 마음이 나옵니다. '저놈의 단체를 어째야 저것을 깨트려 버릴꼬' 싶습니다. 공연히 그 맘이 나옵니다. 공연히 그 말이 듣기 싫습니다. 그렇게 자기 생각이 되지 성질이 되어져 버립니다.
그럴 때는 자기가 하나님이 둘인데 참 하나님은 제가 배반해 버렸고 자기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타락한 천사 사탄이 하나님인척 하고 자기에게 나타난 자기 망치고 그 다음에는 자기를 이용해 가지고 자기의 가까운 사람 자기 교인 망치고, 자기 친척 망치고, 자기 친구 망치고, 자기 이웃 망치고 다 망치게 하는 이 거짓 하나님 이 마귀 이놈에게 붙들렸다는 것을 자기가 알아야 합니다.
이놈에게 붙들리면 회개하라는 소리는 죽자껀 듣기가 싫습니다. 옳은 진리를 말하면 듣기가 싫습니다. 택한 자라도 그렇습니다. 중생돈 사람이라도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어떤 것이 제일 중요한고 하니 참 하나님과 거짓 하나님, 성경에 '영과 영을 구별해라.' 요한일서 4장에 보면 "영을 잘 구별해라 영을 잘 구별하지 못하면 망한다" 했습니다.
이러기에 자기가 섬기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지 거짓 하나님인지 이것을 살피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것은 살피지 아니하고 사람들은 뭐 선이냐 악이냐?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냐 불의하는 것이냐? 이런 도덕 면에만 가서 살핍니다. 이것이 도덕에 맞나 이것이 안 맞나? 이것이 사람에게 칭찬 받겠나 욕을 얻어 먹겠나? 이것도 좋지만 이것보다 더 좋은 있습니다. 내가 참 하나님을 지금 모시고 사느냐 거짓 하나님 마귀 이놈을 모시고 내가 사느냐? 그렇게 신과 신을 구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악령이 하나님의 영인척 하고서 그렇게 나타나고 아주 빛을 가지고 광채를 가지고도 이렇게 나타난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참 하나님이 계시는지 참 하나님을 믿는지 거짓 한님을 믿는지 이것을 따지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참 하나님을 자기가 모시고 있으면 '이 참 하나님은 없는 가운데서 만물을 창조하신 이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라.' '이분이 내 구주라.' 이걸 믿어질 때에는 참 하나님이 자기를 거느리고 자기는 참 하나님을 모신 때입니다.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만 조그만한 인간이 와도 공산주의가 와도 무슨 세력이 와도 아이코 그게 크게 보이고 제가 섬기는 하나님은 작아 보입니다. 그 사람은 벌써 하나님 바꿨습니다. 조그만한 세력이 와도 고만 겁이 나고 무섭고 하는 것은 그것보다 강하신 하나님이 나를 암닭이 날개로 병아리를 품고 있듯이 자기를 품고 있는 그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그러기에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신 이 하나님이 자기 구주가 되어서 자기를 거느리고 있고 자기가 이 하나님을 모시고 있고, 있는지 없는지 보면 압니다. 제가 보면 압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지 없는지 제가 압니다. 전지하신 주권자이신 주재이신 개별 섭리자이신 이분이 나를 생명을 주시기까지 죽어 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분이 내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저는 모시고 있는지 이름만 하나님하지 이 하나님을 모시고 있지 안하고 세상이 뭣고 두려운게 오닌깐 '아고 무섭다.' '무섭다 겁난다.' '내가 이럴 때 하나님 믿는다 했다가는 절단나니까 함부로 그 세력에게 굴복을 해라.' 이래 가지고 성경대로 살지 못하게 하고 성경 말씀을 어기게만 하고 이 세상에게 굴복을 하도록 하고 세상 따라서 살도록하고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소원하고 행동하도록 이렇게 만드는 이 신이 자기 속에 있을 때에는 이 사람은 벌써 참 하나님을 섬길 사람인데, 참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인데, 참 하나님을 배반해버리고 거짓 하나님에게로 벌써 돌아갔습니다. 그 사람은 벌써 옛사람이 됐습니다. 새사람 아닙니다. 그 사람은 옛사람이 되버렸소.
예수를 믿되 새사람으로 믿는게 아니라 옛사람이 예수 믿습니다. 옛사람이 설교를 합니다. 옛사람이 심방을 갑니다. 옛사람이 찬송을 합니다. 새사람 아닙니다. 이러기에 이모로 저모로 참 하나님을 내가 모시고 있느냐? 참 하나님 안에 있느냐? 이름 뿐이지 실은 참 하나님을 잊어버렸느냐? 참 하나님을 부인하느냐? 부인하는데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계실 없는 것입니다. 부인하는지 모시고 있는지 사탄을 하나님이라고 거짓 하나님을 그 사람을 그 사람에 모시고 하나님이라 알고 있는지 그것은 자기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알 수 있습니다.
뭘 보고 알 수 있는가? 알 수 있습니다.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현실을 주십니다. 요런 현실 조런 현실을 주십니다. 이것이 사탄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으면서 참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줄 알고 있기 때문에 너는 참 하나님을 지금 배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어떤 두려운 현실을 줍니다. 두려운 현실을 만들어 주니까 고만 그때 전능하신 주권자 주재이신 하나님이 자기를 보듬고 있다고 하면 겁날 필요가 없는데 고만 그 두려운게 오니까 고만 겁이나서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을 그 두려운게 와 가지고 '네 너 갔다가 예수 배반하지 안하면, 네 죄짓지 안하면, 네 거짓말 하지 안하면, 네가 주일 범하지 안하면 당장 어떻게 된다' 하니까 고만 이 사람이 겁이 나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계명을 어기고 예수 믿는 일을 버립니다.
자, 그 사람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계신 모시고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 사람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기를 지키고 있는 것을 인정합니까? 안 합니다. 안 합니다.
이렇게 거짓뿌리 예수를 믿기가 쉽습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모래 위에 짓는 집이라. 풒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이라. 예수는 잘 믿었습니다. 이렇지만 환난이 오니까 왕창 무너져버립니다. 세상을 떠날 때 가보니까 아무것도 가져가는게 없어.
이 사람이 번들 번들 이름도 많이 가지고 유명도 하고 막 세계도 유명하고 이랬지만 하나님의 진리 가지고 딱딱 심판을 하니까 전부 다 타버리고 남은게 없어. 그것을 가르쳐서 뭐라고 비유했습니까?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과 같다 했습니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과 같은 이런 준비를 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걸릴게 하나도 없소.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거될 것 하나도 없소. 전부 알맹이는 다 통과해요. 전부 알맹이라요.
이러니까 주의 말씀 듣고서 준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터닦고 집을 지은 것 같애.
비가 오고 물나고 바람이 부딪히지만 넘어지지 않해. 주의 말씀 듣고서 실행 안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으니까 이런 현실 저런 환경이 오니까 확 타버리 버립니다. 확확 변해버리요. 그것은 뭐 때문이냐? 말씀을 듣고 준행하지 안했기 때문에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아서 다 무너진다 그거요.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집짓는 사람이라. 안 믿는 사람도 집짓는 사람, 믿는 사람도 집짓는 사람, 안 믿을 때 짓는 집은 전부 모래 위에 집. 모래 위에 짓는 집이란 말은 자기를 토대로 해 가지고 산다 그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도 자기를 토대로 삼아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석위에 짓는 것은 만세 반석이신 우리 구주 하나님 이분을 근거해 가지고 이분에게 뿌리박아 가지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스스로 비판해서야 되지 아무나따나 제 생각대로 예수 믿는 사람, 제 욕심대로 예수 믿는 사람, 제 주관대로 예수 믿는 사람, 제 뜻대로 제 생각 대로 예수 믿는 사람, 성경대로 믿지 아니하고 자기를 꾀이는 인간이 말하는 그 꾀이는 인간 말대로 믿는 사람, 이것은 다 잡탱이 이니 땅에 속한 거짓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이요 섬기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자기가 실행을 하면 눈이 밝고 귀가 밝아서 성신이 감동시키는 것을 자기가 차차 차차 받게 됩니다. 이러면 이 사람이 영감 도리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따라합시다. 영감도리, 영감도리, 영감도리, 영감도리라는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만 말하는 것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만 자기가 통달을 하고 의우고 말씀대로 행한다고 할지라도 영감은 하나도 없을 수 없습니다.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성경 말씀대로 하지만은 목적이 다르고 동기가 다르고 소망이 다르고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사람이 행동하면 사람 보기는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은 말대로 예수 믿는 사람이라. 성령은 없는 사람입니다. 경건한 모양은 있으나 하나님 잘 섬기는 껍데기 형태 모양은 있지만 경건이 무엇이 없습니까? 네 능이 없습니다. 경건의 능력이 없습니다. 제 힘으로 예수 믿지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 졸졸 믿지만 제 힘으로 할 수 없는 하나님 권능이 와야 참을 수 있고 하나님의 권능이 와야 담대할 수 있고 하나님의 권능이 와야 평안할 수 있고 하나님의 권능이 와야 말할 수 있는 그럴 때 닥치면 그만 팍 쪼그라져 버리요.
왜정 말년에 선천 고을에서 여기도 아마 더러 있을 것입니다. 선천고을 사람이 그 일군에서 넷집 말고는 전부 예수를 다 믿는데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가 와 가지고 안하면 전부 죽인다. 전부 갔다가 잡아다 가둔다 하니까 전부 신사참배 다했버리고 신사참배 안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답니다. 그 사람들 예수 잘 믿는 모양 있었소. 없었소. 있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었습니다. 신사참배 하는 것은 마귀가 시키는 것인데 신사참배를 이긴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경건의 능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이렇게 가짜 예수 믿기 쉽습니다.
이러니까 요한계시록 2장으로부터 3장까지에 보면 교회마다 다 두 쪼가리 싸움이 있습니다. 교회마다 싸움이 있었소. 싸움 없는 교회 하나뿐입니다. 어느 교회입니까? 라오디게아 교회, 그 교회는 다 죽었소. 다 죽었기 때문에 뭐 싸울 있어야지. 다 죽었으니 한편인데 산 교회는 다 두 쪼가리입니다. 아닌 교회가 하나도 없습니다. 또 그 사람에게 한 사람 뿐입니다. 그럼 그 사람, 죽은 사람입니까 산 사람입니까? 그 사람에게는 한 사람뿐입니다. 죽은 사람입니까 산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다. 산 사람에게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러니까 사도 바울이 항상 고통이라고 속사람 겉사람하고 싸우는데 골치를 앓았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아 이렇게 말년에 탄식을 하면서 참 한숨을 슀습니다.
이러니까 자 사람 사람에게는 두 사람이 있고, 산 교회는 두 종류의 교인이 있고 이러니까, 하나만 있는 좋습니까 둘 있는 좋습니까? 하나만 있는 좋습니까 둘 있는 좋습니까? 하나만 있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하나도 없고, 둘 있는 좋다고 여기는 사람, 소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네 둘 있는 하나 있는 것 보다 좋습니다.
그러면 둘 있으면 둘 다 살리고 길러야 됩니까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살려야 됩니까? 네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살려야 되겠습니다. 하나는 꺽고 뽑고 하나는 길러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교회에 두 교인이 있을 때에 바로 말하는 편도 있고 바로 가자하는 편도 있고 삐뚤어지게 가자하는 편도 있습니다 . 재직회 모이면 신본주의, 인본주의 둘이 있습니다. 천국주의, 세상주의 둘이 있습니다. 도덕주의, 세상주의 둘이 있습니다. 자 이럴 때에는 이럴 때에는 신본주의, 천국주의, 영혼주의, 의주의, 믿음주의 이 사람들은 교만해야 됩니까 겸손해야 됩니까? 교만해야 됩니까 겸손해야? 소리가 적어. 교만해야 됩니까 겸손해야 됩니까? 겸손해야 됩니다.
왜. 겸손해야 됩니까? 겸손해야 될 이유는 제가 잘나서 그렇게 된것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눈에 보이지 안하는 은혜를 주어서 제가 그와같이 됐으니까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자가 된 그것을 하나님이 도로 교만하니까 뺏들어 가십니까 둡니까? 뺏들어 가십니다. 교만한 자에게는 물리치십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늘에 속한 자는 이 사람은 겸손해야 되겠습니다. 땅에 속한 자, 마귀에게 속한 자가 돌아올 수 있도록 돌아오기 쉽도록 노력해야 됩니까 돌아오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됩니까? 돌아오기 쉽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또 돌아오도록 협조를 해야 되겠습니다. 설설 달개야 됩니다. 어떨 때는 왈기기도 해야 됩니다. 책망도 해야 됩니다. 가르치기도 해야 됩니다. 붙들어도 줘야 됩니다.
인본주의에 속한 자, 도적주의, 세상주의, 육신주의 여기에 속한 자는 자기가 볼 때에 교회에 두 편이 있다, 두 쪼가리가 있다 싶을 때에는 나쁜데 속한 자는 옳은데 속한 자를 대적해야 됩니까 얼른 따라가야 됩니까? 대적해야 됩니까 따라가야 됩니까? 따라가야 됩니다. 나쁜데 속한 자를 배반해야 됩니까 한편이라고 뭉쳐가야 됩니까? 배반해야 됩니까 뭉쳐야 됩니까? 배반해야 됩니까? 뭉쳐야 됩니까? 그것을 배반하면 누하고 하나 됩니까? 하나님하고 또 오른편에선 성도하고 하나 됩니다. 삐뚤어진 그 인본주의, 세상주의, 육신주의, 기독교 유물주의, 기독교 무신론주의, 기독교 도덕주의, 기독교 정치주의, 기독교 민족주의, 기독교 국가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이런 주의자들을 배반치 아니하고 살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배반치 아니하고 살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배반치 아니하고 살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배반을 하는 데는 보이게 배반해야 됩니까 속으로만 배반해야 됩니까? 보이게 배반하면 안되고 속으로만 배반을 하면 차차 차차 보이는 보이는 배반까지도 되어지는데 속으로만 배만하면 보이는 배반이 되어질 때에 그 사람이 원수로 상대하지 아니하고 보이는 배반으로 나타날 때 '아이구 저 사람도 저 회개하고 고쳤구!' '나도 따라가야 되겠다' 해서 죽음에 속한 자가 따라오기 쉽게 됩니다.
그러므로 속으로 배반하고 기도하고 배반하고 기도하고 자꾸 이렇게 하면 흠이 없어. 탈이나지 않게 나쁜 결화글 맺지 않게 좋은 결과를 맺도록 슬슬 배반해야 저도 살고 남도 삽니다. 저도 살고 남도 삽니다.
제직회에서, 교회에서, 당회에서, 교계에서, 노회에서, 총회에서, 시찰회에서, 공회에서 이렇게 모였을 때에 하늘에 속한 것과 땅에 속한 것이, 참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과 거짓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과 이것이 환하게 두 쪼가리로 보이는 사람의 눈에 밝습니까 안 보이는 사람의 눈이 밝습니까? 이것 다 보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 볼 수 있습니다.
보면 땅에 속한 자가 하늘에 속한 자를 다 부러워하고 좋아하고 따라갑니까 보일수록 반대를 더 합니까? 네 따라가고 싶은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아따 내가 어제 보니까 땅에 속한데, 죽음에 속한데, 마귀에게 속한데, 거짓 하나님에게 속한데, 사탄에게 속했구나!' '아이쿠 얼른 저리 건너가야 되겠다.' 이렇게 빨리 서둘러 건너가는 사람도 있고, '요러니까 오 요것들 하고 우리하고는 반대로구나 이놈들 죽어도 한번 해보자.' 아 발을 딱 버티고 요래 대항을 해봅니다. 그 자는 멸망의 자식입니까 살 자식입니까? 멸망의 자식에 분들렸습니까 안 붙들렸습니까? 그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까? 그래도 고칠 수 있습니다. 예 고칠 수 있습니다.
자 멸망에 속한 놀음에 과거에 한 경험이 한번도 없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시오. 하나도 없습니까? 이런 경험 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아 의인들 뿐이네, 나는 이런 경험 많이 있습니다. 멸망에 속한 사람 노릇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들 안한 사람 많이 있네요. 내가 보니까 안한 사람은 손 한번 들어 보시오. 자 한 사람은 다 손들어 봐요. 한 사람 손들어 봐요. 우리가 다 했어. 다 했어.
이러니까 하루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멸망에 속했으면 빨리 돌아서라 이랬습니다. 제일 중요힌 것이 참 하나님과 거짓 하나님을 모시는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거짓 하나님을 그 이름이 무엇이지요. 사탄, 악령, 마귀, 귀신 거기 하나님인 척하고 나타나 가지고 그 목사를 주장하고, 장로를 주장하고, 그 집사를 주장하고, 그 평신도를 주장하고, 권찰을 주장하고, 반사를 주장하고, 주일학교 학생을 주장하고 합니다.
자 이만하니까 속에 마음에 듣기 싫은 사람 있을건데 손 한번 들어라 하면 손 못 들거라. 있기는 있지. '아이구 저 말 고만했으면 좋겠다.' '저 말 고만하고 고만 중단했으면 좋겠다.' '고만 폐회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지요.
우리가 요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 이렇게 참 하나님을 섬기는지 거짓 하나님을 섬기는지 어데서 볼 수 있으며 언제 봅니까? 어데서 봐야 됩니까? 어데서 봐야 됩니까? 언제 봐야 됩니까? 현재, 현재 봐야 합니다. 현재 현실에서 봐야 됩니다. 그때에 무엇을 봐야 알 수 있습니까? 네,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셨기 때문에 참 하나님이 도와줘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입으로는 큰 소리를 떵떵했는데 현실을 닥치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고만하지를 못 하겠습니다. 고것은 참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참 하나님이 돕지 안하고 거짓 하나님 마귀란 놈이, 마귀란 놈을 하나님으로 모셨기 때문에 그놈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게 합니까 못 하게 합니까? 못 하게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못하게 하는데 언제든지 못하게 합니까, 언제든지 못하게 합니까? 과거에 대해서도 못하게 합니까? 미래에 대해서도 못하게 합니까? 아닙니다. 과거에 대해서는 못하게 합니다. 못하게 하다가 말씀대로 하려고 하면, 말씀대로 하려고 하면 살모시 꼬아 가지고 과거에 대해서만 말씀대로 하라고 합니다. '과거에 대해서만 말씀대로 하자' 또 앞으로 미래에 대해서만 말씀대로 하게 합니다. 현재는 말씀대로 못하게 합니다.
이러니까 이 사람이 과거에 대해서는 '아이쿠 내가 성경 말씀대로 요래 할 걸 잘못 했다.' '조래 할 걸 잘못 했다.' 자꾸 후회가 됩니다. '주여 내가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잘못해서 눈물을 쭐쭐 쭐쭐 흘립니다.' 그런데 현재는 떡 닥치고 나면 현재는 말씀대로 못하게 됩니다. 고 무슨 하나님을 모시고 있지요? 사탄, 마귀 그놈이 하나님 처럼 해 가지고 왔습니다.
또 미래에 대해서도 '앞으로는 주여, 이렇게 결심합니다. 이렇게 살겠습니다.
이렇게 결심합니다. 이렇게 결심을 했는데 결심은 하면서 앞으로는 그렇게 살겠다고 결심은 하면서 현재는 닥치니까 그렇게 안 살아집니다. 그 사람 무슨 하나님 모시고 있습니까? 거짓 하나님, 뭐 마귀, 귀신, 사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과거에 대해서는 잘못이 후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예? 네, 후회가 있습니다. 미래에 대해서 결심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또 현재에 대해서는 실행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고만 몇 가지가 가졌습니까? 몇 가지 가졌습니까? 똑똑이 말해. 몇 가지, 몇 가지? 몇 가지? 네, 세 가지. 거짓 하나님 마귀를 모시고 있는 사람은 몇 가지 가졌습니까? 몇 가지 가졌습니까? 몇 가지 가졌습니까? 몇 가지 가졌습니까? 무엇이 빠졌습니까? 현재 실행하는 빠졌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현실을 자꾸 비췄습니다.
현실을 누가 만든 겁니까? 주님이 혼자 만들었습니다. 혼자 만들었어. 어떨 때는 나를 써서 만들 때도 있고, 다른 사람 써서 만들 때도 있고 어쨌든 만들기는 이것 저것 사용하지만 당신이 혼자 만든 것입니다. 현실은 당신이 혼자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당신이 혼자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만들었습니까 구원을 깨트릴라고 만들었습니까? 구원을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과거에서 이루어집니까, 미래에서 이루어집니까, 현재에서 이루어집니까? 네 현재에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런고로 요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합니다. 참 하나님을 모신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대로 하는 것, 몇 가지 가졌습니까? 와 게을하이 소리 안 질러. 몇 가지 가졌습니까? 네 세 가지, 거짓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사탄을 하나님으로 잘못 모시고 있는 사람은 말씀대로 하는 것을 세 가지 가졌습니까 두 가지 가졌습니까? 두 가지 가졌습니다. 어느 것이 빠졌습니까? 현실에 말씀대로 하는 것이 빠졌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해방 직후에 대구 그때 총회할 때에 갔는데 그때 총회할 때에 새벽기도를 손양원 목사님이 인도하십디다.
인도하시는데 첫, 첫날 새벽 설교할 때에 그 손양원 목사님이 설교하는 제목이 '하나님을 찾읍시다' 하는 그 제목으로 설교를 합디다. '하나님을 찾읍시다.' 마음에 어떻게 좋은지. 국가를 찾고, 민족을 찾고, 독립을 찾고, 자유를 찾고, 모든 것 좋지만 하나님 못 찾으면 헛일입니다. 하나님 못 찾으면 헛일이요.
하나님 찾는 것이 중요하지.
그 설교를 들을 때에 어떻게 좋은지. '아 저 종이 좀 돌아다니면 외쳤으면 되겠다.' 하나님 전부 다 잊어버리고 있으면서 하나님 모시고 있는 척하니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있지만 실상은 죽은자라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지켜 생각하고 지켜 행하라"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어리석지를 맙시다.
그러면 참 하나님 모셨는지 거짓 하나님을 모셨는지, 참 선지자인지 거짓 선지자인지, 마귀에게 붙들렸는지 하나님에게 붙들렸는지, 산 신앙인지 죽은 신앙인지 요것은 어데서 찾아봐야 압니까? 어데서 찾아봐야 압니까? 어데서 찾아봐야 압니까? 현실에서 속지 맙시다. 속으면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돌아서야 됩니다. 일어서야 됩니다.
참 하나님 자기 속에 모셨으면 그 사람은 언행심사가 그로 말미암아 나옵니다.
그분이 미워하는 것 밉습니다. 그분이 좋아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분이 귀하게 여기는 것 귀하게 여겨집니다. 구분이 멸시하는 것 은 멸시가 됩니다. 참 신자들에게 이성 비판이 빠릅니까 본능이 빠릅니까? 이성 비판이 빠릅니까 본능이 빠릅니까? 본능이 빠르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놓고. 이성 비판이 빠르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어서 손들어. 이성 비판이 빠르다고 생각하는 사람 다 틀렸어. 거짓 부리야 실행 안하면 그래. 실행한 사람이 아니라 그래.
자기보다 영감이 빠르지. 영감은 본능 속에 계십니다. 네 영감은 본능 속에 계시요. 영감이 빨라. 이성 비판이 모를 때에 본능이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이 '제물 어디에 있습니까?' 물을 때에 하나님이 '예비하셨다' 하는 그 대답은 이성 비판이 했습니까 본능이 했습니까? 이성 비판이 했습니까? 본능이 했습니다. 네. 이러니까 이성 비판만 가지고 안 된다 이거요.
이렇게 참 하나님을 모시는 방편이 두 가지 있는데, 두 가지 있는데 참 하나님 모시는 방편이 두 가지 있는데 둘다 한목 써야 되지 하나만 쓰면 빙빙 돌고 하나님 모시지는 못합니다. 방편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 것, 하나님 성경 말씀 대로 행하면 되지 하고 암만 지켜도 율법주의자만 되지 외식자만 되지 하나님을 모시지는 못 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지켰든지 주일날은 안식일날은 닭 모이도 안 줍니다. 안식일은 불도 안 때 이랬지만 외식하는 자라 다 망했습니다.
그렇게 안식일도 지키고 모든 일을 잘 지켰는데 와 예수님께서 38년된 병자 고치니까 마귀가 고쳤다고 반대를 했습니다. 와 그렇지요? 와 반대했지요? 무엇이 없어 그렇지요? 영감없어 그랬어. 영감없어 그랬어. 영감 공연히 밉다 그거요. 시기가 난다 그말이오. 영감 있는 사람은 고만 몰라도 '야 어쨌든지 38년된 병자가 나았으니 인간이 한게 아니잖나.' '아 큰일났다.' '이제 큰 분이 오셨다.' 고만 나으니 38년된 병자가 나은 것 보니까 좋고 두렵고, 또 안식일날 자리들고 걸어가는 것 보니 좋고, 기이하고 '야 이제 큰일났다.' '눈을 뜨고 찾을 것 찾아야 되겠다.' 이게 본능적으로 이래 되는데 어떤 자는 고만 속에서부터 미워 나옵니다. 속에서 미워 나오요.
참 하나님을 찾는 방편이 몇 가지라요? 몇 가지, 몇 가지. 두 가지. 하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 또 하나는 아는 분 손들어 봐요? 아는 사람 많겠지만 모르는 사람도 많겠지. 따라합시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이래 가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됩니다. 네 이래 가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됩니다.
마음을 엉뚱한데 두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내가 이래 행해야 집사를 세워줄기다.' '이렇게 행해야 저 총각이 나 믿음있다고 장가올끼다.' '이렇게 행해야 저 처녀가 나 믿음있다고 시집올기다.' '이렇게 행해야 나 예수 잘 믿는다고 신용을 할기다.' '이렇게 행해야 하나님이 나를 복을 줄끼다.' '돈을 많이 줄기다.' '이렇게 행해야 땅의 것이 잘될기다.' 순전히 욕심은 땅의 것만, 소망은 땅의 것만 가지고 말씀대로 행합니다. 이것 진짜입니까 가짭니까? 진짭니까 가짭니까? 진짭니까 가짭니까? 가짭니까 진짭니까? 가짭니까? 가짭니까? 속지 맙시다. 속지 맙시다.
참 하나님을 모시는 방편이 몇이라고요? 둘. 몇이라고요? 하나는 네 말씀대로 행하는 것, 하나는, 첫째 고함을 질러요. 첫째, 둘째, 세째, 네째, 뜻을 다하고 이래야 내 인격을 다 기울이지. 하나님이 당신이 날 상대해 줍니다. 내 인격을 나는 다 기울이지 안하고 내 손만 내놓고 내게 있는 물건만을 슬쩍 집어 던지면서 하나님도 나 살릴려면 살리고 말라면 말래. 옷만 한번 슬쩍 던지면서 돈만 한번 슬쩍 던지면서 말만 한마디 슬쩍 하면서 이래도 하나님이 같이 해줘요. 속소.
따라합시다. '스스로 속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기심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 '사람의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두나니 행한대로 받는다.' '행한대로 받는다.' 영생 받고, 썩은 것 받고, 이것이 신자의 걸음입니다. 어리석지를 맙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쩌든지 이 자리에서 충분히 기도해야 충분히 기도해 가지고 단단히 작정하고 아는 문제 아닙니다. 작정하고 고쳐야 됩니다. 이것만 고치면 병 문제 없어.
욕신의 병, 무슨 병 가졌든지 이것만 고치면 당장 그 사람의 택함을 받읍시다.
필요 있는 치료는 다 됩니다. 필요가 없는 치료, 필요가 있는 병은 고치지 안하지만 필요없는 병은 다 고쳐집니다. 당장에 권능이 옵니다. 당장에 평강이 옵니다. 당장에 능력이 옵니다. 당장에 성령의 충만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