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3 23:29
우상
1984. 10. 11. 목새
본문: 베드로후서 1장 4절∼11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우리가 이런 저런 그런 사소한 종류의 죄도 있지마는 제일 큰 죄는 일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요 그다음은 이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지난밤에도 증거한 대로 우리가 우상을 정리하는 그 일을 빨리 힘써야 하겠습니다.
밤마다 회개의 눈물을 강같이 흘리라는 그것을 우리가 인사로 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우리의 받을 징계를 보는 눈동자를 새지 않게 하라는 이런 피차의 경고로 인사를 삼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개적 우상을 이것을 정리하지 못한 사람은 공적 우상에는 그는 벌써 필연적으로 패전하게 됩니다. 그러면, 개적 우상은 우리가 공적 우상이 오기 전에 우리 개개적으로 언제든지 우리가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적 우상은 내 평생에 있을는지 없을는지 언제 있을는지 우리는 그걸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우리는 미리 생각을 가지고 준비는 한다고 하지마는 실상을 우리가 만나지는 못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개적 우상은 우리가 언제든지 찾으려면 찾을 수 있고 정리하려면 정리할 수 있습니다.
크게 말해서 내가 소유를 위주로 하는 생활을 하면 그 소유가 그 사간에게는 우상이 되겠습니다. (저 아이 어머니가 없습니까? 저 아이가 울고 있는데.) 소유가 우상일 수도 있습니다. 왜? 소유가 나를 끌어서 그 소유. 그것이 내 언행 심사를 주장하고 하나님이 주장하지 못하게 되는 일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소유 그것을 위하는 것이 하나님 위하는 것보다 더할 수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소유 그것으로 인해서 내 희로애락이 되는 수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벌써 소유가 내게는 우상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유에 대해서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 때에 내게 소유가 많이 와도 좋고 적게 와도 좋습니다. 많이 오든지 적게 오든지 그것은 주님이 내게 적당하게 조절해 주시는 것인 것을 알고 우리가 거기에서 사욕을 가지지 안해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주관을 가지지 안하고 소유에 대해서 나는 하나님의 인도만 따라서 갔는데 거지의, 소유의 거지가 왔으면 소유에 대해서는 거지 되는 것이 내게 좋기 때문에 주님이 주신 것인 것을 의심하지 말고 알고 거기에서 우리는 신앙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만일 내가 말씀대로 사는데 소유가 크게 많이 왔으면 그것도 주님이 내게 조절해서 적합해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많은 소유를 내 마음대로 할 것이 아니고 그것이 많으니까 업신여기지 말고 주님을 위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병 이어로 오천 명이 먹고 난 다음에 오병 이어로 오천 명 먹었으니까 그까짓 거 남은 부스러기야 생각할 거나 뭐 있겠나 했는데 주님 이 그것을 낱낱이 부스러기를 주우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어떻게 많을지라도 그것을 지극히 작은 거 하나라도 거기에 조심 없이 애끼지 안하고 남용을 하든지 허비를 하든지 할 수는 없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 것입니다.
또 우리는 자기의 하는 사업이 우상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사업이 내 성심성의를 다 뺏들고, 또 그 사업이 나를 주장해서 성경과 주님은 어떻게 할지라도, 자기의 신앙 양심은 어떻게 할지라도 사업 위주로 어떻게 하든지 사업만을 꾸려서 세워 나가자는 그런 우상 숭배 또 우상을 섬기는 거 그런 거 그런 죄를 범하기 쉽습니다. 사업이라는 것은 처음에 시작할 때도 자기대로서는 하나님이 이거 하라 하는 그것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것인지 자기 육체의 소욕이 하려는 것인지 그것을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사업이라면. 자기의 직장이라든지 자기의 무슨 어떤 사업이든지 그걸 할 때에는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 어떤 것을 해야 될는지 자기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안하니까 이것을 하라고 하시는 것인가 가만히 놀라는 것인가 자기가 비판하며 생각하면은 해야 할 일이 나올 것입니다. 또 모를 때에는 '뭣을 해야 될는지 주님이여 내가 모르겠사오니 당신이 인도하시옵소서.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벌로 시작을 내가 할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서 게을하게 있을 게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나에게 시키실 터인데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안하고 게을리 있으니 이것이 곧 게을이 죄이기 때문에. 인생으로서 탈선된 삐뚤어진 죄가 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해야 되겠는데 주님이 나에게 알려 주시옵소서.' 나에게 영감으로 알려 주시지 안하고 진리로 깨닫게 해 주지 안하고 또 나보다 신앙 선배로 알려 주지 안할 때에는 하나님이 분명히 하시는 섭리가 있습니다. 그 일을 안 할 수 없고 그 일을 하게 되는 그 섭리가 있습니다. 이거 뭐 이런 거 저런 거 모든 환경이나 주위나 접하는 사람들이나 형편이나 사정이나 모든 것들을 보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몰아넣어 가지고서 이 일을 하라고 나에게는 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 모든 일을 시작할 것이지. 우리는 돈을 위주로 해서 돈이 어느 것이 많이 벌리나 그것은 돈 위주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벌써 돈이 우상이 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또 내가 어느 것을 해야 사람들이 좋아 할런가 가족들이 좋아 할런가, 그것도 가족이 우상 되기 쉽습니다.
어느 일을 해야 주님이 기뻐하시고 내 신앙에 자유가 있고 내가 양심 자유 있고 이래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선택할 때에 자기가 힘을 아주 안 쓰고 게을리 해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그런 길이 있고, 이 길은 참 주님의 뜻대로 할라 하면은 번개같이 내가 움직여야 되겠고 내가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되겠고 전심전력만 기울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못할 것은 없지마는 내가 여간 힘써 가지고 조그마치라도 마음을 놓고 게을리 하면은 이 일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안하고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겠다 했으면 어느 것을 택해야 되겠습니까? 자기로서는 자기 정도로서 있는 충성을 다해서.
있는 전심전력을 기울여 신앙생활이 되는 그것을 해야 자기가 성장 향상이 될 것이고 또 그것이 자기 일일 것입니다. 얼마든지 놀고 수월하고 이렇게 얼마든지 해도 될 수 있는 그 길은 벌써 자기는 지나온 길이요 자기에게 하나님이 은혜 주신 그 정도로서는 그 일은 벌써 자기에게는 해당치 않고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해당된 그런 업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면으로 놓고 떼면, 또 '이 일을 하면은 그래도 내가 가족을 굶겨 놓으면 안 될 터인데, 가족의 의식주는 돼야 될 터인데 어찌 되느냐? 의식주 되는 일을 택할라 하니까 열심히 해야 되겠고 바쁘게 해야 되겠고 마음을 놓지 못하고 해야 되지 얼마든지 게을리 해도 될 일은 아니니까 이 일도 하면, 그러면 이 일은 하면은 신앙을 못 하겠느냐? 하나님의 뜻을 뜻대로 순종 못 하겠느냐? 뭐 죽자 사자 하고 노력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할 수는 있기는 있겠다마는 그러면 사람이 피곤하고 너무 되서 안되겠다.' 그러면 자기 정도로서 또 자기 몸에 감당 못 할 그런 지나친 어려움이라면, 힘드는 일이라면 자기는 안되겠습니다. 자기 건강이라든지 자기 총명이라든지 자기에게 있는 활동성이라든지 그런 것에 맞추어서 그저 있는 것을 다하면 할 수 있다 하는 그것으로써. 경제면을 생각 할 때에도 '아, 이만하면 그저 가족들이 하나님에게 욕 돌리지 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조롱받지 안하고 할 수 있겠다.' '근근히 되지마는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람들 참 잘 산다 하는 영광되게 그렇게 하지 안하는 것이니까 이것보다도 더 수입 많은 것을 택해야 되지 않겠느냐?' 수입 많은 것을 택하려고 보니까 자기로서 또 신앙이 안 됩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수지 계산과 모든 다방면의 면을 다 살펴 가지고서 자기로서 선택하고 또 하나님이 섭리로써, 하나님이 섭리로써 자기를 몰아치는 인도하는 그런 길을 따라서 움직이게 하실 것입니다. 택할 때도 자기 사업을 그렇게 택할 것이고, 또 사업을 경영해 나가면서도 자주 자기가 스스로 '이 사업이 나에게 우상되어 있지 않느냐' 그것을 살피면 하나님이 '네가 그것을 우상으로 가졌는지 하나님의 주시는 사명으로 가졌는지 네가 살필 수가 있을 터인데 내가 너를, 네가 스스로 살피지 안하니까 내가 시험을 해야 되겠다' 해서 시험하는 단계에 이르러 사업이냐 하나님이냐 어느 것에게 내가 복종하는 것이냐? 내가 어느 것을 내가 위주로 하는 것이냐? 어느 것을 더 아끼고 내가 하나님에게 내가, 하나님이 나에게 보호함을 입지 않지마는 하나님의 복음이나 하나님의 영광이나 그것을 잘 알뜰히 내가 잘 지켜서 이렇게 하느냐? 어느 것을 더 지키느냐? 사업을 더 지키느냐 하나님을 더 지키느냐? 사업이 나를 인도권이 더 있느냐 하나님이 인도권이 더 있느냐? 내가 그 사업을 위하는 위함이 앞섰느냐 하나님을 위한 위함이 앞섰느냐 이것이 반드시 둘이 판정될 수 있는.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것 둘 다 같이 갈 수는 없고, 사업 위하는 것이 하나님 위함이 됐고 하나님 위함이 사업 위함이 됐고, 사업 힘씀이 하나님 힘씀이 됐고 사업의 영광 돌림이 하나님에게 영광 돌림이 되고, 일치 될 때도 있지마는 이것이 반드시 둘로서 분리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벌써 내가 조심하지 안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시험하는 단계입니다.
시험하는 단계이니까 그때에 '아,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시는구나. 내가 여기에 대해서 평소에 깨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벌써 우상의 우려성이 있기 때문에, 염려성이 있기 때문에, 우상 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깨우치시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닫고 거기에 대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계명도 지키고 하나님도 위하고 이 사업도 실패되지 아니하고 하는 그런 면을 자기가 기도하면서 생각해서, '하나님 위하면 되지 뭐 사업 그까짓 거 팽개치고 까짓 거 이럴 때는 사업 내몰라라 하고 집어던져 버리면 안되느냐?' 그것도 안 됩니다. 잘못 던져 놓으면, 잘못 던져 놓으면 뒤에 다시 내가 찾아야 될 터이니까 힘이 들 것이고 그만치 뒤에 나는 자본을 대야 됩니다. 그것을 생각지 안하고 버려 놓으면 거기에 대해서 나는 큰 투자를 해야 됩니다. 큰 손해를 봐야 됩니다. 시간 손해를 봐야 되고, 정력 손해를 봐야 되고, 정성 손해를 봐야 되고, 물질 손해를 봐야 되고 손해를 봐야 되는데. 하나님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지 안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선물로, 우상이 정리되는 데는 선물이 되면 정리됩니다. 그 모든 것이 주를 위해서 주님에게 순종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그것이 있고 주님을 섬기는 일로 그것이 있게 되면, 우상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물이 되고 제물이 되고 주를 위하는 것이 돼 버렸으면 그만 그것은 잘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할 때에 자기는 조심있게 기도해서 하면은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또 그 업도 건지고 손해 보지 안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이리 저리 암만 연구해 봐도 이거는 버리기 전에는 안 된다 할 때에는 애낌없이 버려 버려야 됩니다.
이러니까, 버려야 될때도 있고 거기에서 조절해야 될 때도 있고. 그 순위를 뒤바꿔서 하나님을 앞세워 그것을 하나님 위하는 것으로 해야 될 때도 있고 이렇게 거기에 대해서 자기가 업이 우상 되지 않도록 그렇게 하는 그 일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물어야. 하나님께 기도해야 지혜와 총명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보다도 자기에게 대한 어떻게 처리 해야 되나 걸어가야 되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은 성경이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성경은 대충 원리 원칙을 가르쳐 주고 제게 가르쳐 주는 것은 성신의 감화가 가르쳐 줍니다. 성신의 감화가 가르쳐 주는 것은 자기 신앙 양심이 듣습니다. 양심 외에는 성신의 감화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성신의 감화의 음성을 듣는 것은 양심이니 자기가 양심을 저버리고 욕심이 주장하든지 감정이 주관하든지 자기의 교만이 주관하든지 허영과 허욕이 주관하든지 이런 것들이 자기를 주관하고 있으면 양심은 거리가 멉니다. 양심도 거리가 멀어서. 양심이 나를 주관하는 자 돼 가지고서 양심이 들어서 주의 음성을 들을라고 찾지 안하면 주의 음성은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자기 할 일은 자기가 깨달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업이 우상 되는 일도 있고, 또, 자기의 그 성질이 우상 되는 일도 있습니다. 자기의 성품. 자기의 게을한 성품이라든지, 자기의 경망한 성품이라든지, 자기는 또 음식을 좋아하는 식성의 성품이라든지, 또 자기는 무슨 어떤 애정을 좋아하는 애정의 성품이라든지 별별 거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의 성품이 속성들이 또 우상 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깨달아서 정리해야 됩니다. 정리하면 자유합니다. 정리하면 평안합니다. 정리하면 담대합니다. 정리하면은 모든 것에 대해서 자유가 있습니다. 평안합니다. 주님의 말씀 들어 가지고는 시작해서 들을 때는 어렵지마는 순종하고 나면은 언제든지 평강입니다.
또 그다음에는 자기 몸이 우상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 몸이 우상 되어서 자기는 몸 위주로 몸을 따라서 움직이기도 쉽습니다. 또 몸을 아끼기를 주님보다도 내가 더 아끼고 복음보다 더 아끼는 사람 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몸이 우상이 되겠습니다.
또 우리의 생명이 우상 될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이 우상이 되는 이것이 마지막인데, 생명이 우상이 되어서 '내가 어떤 때는 살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주님과 주님의 도를 버리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생명이 주님을 위한 생명이기 때문에 주님을 위하는 그 위함이 생명이 죽어야 위함이 될 때에는 죽고 살아야 위함이 될때에는 살고. 생명이 주를 위함이 되고 우상이 되지 안하면 이것이 최고 우승입니다. 벌써 이 생명이라는 이것이보통 사람으로서는 다 이것이 최고 우상인데 이 우상을 우리가, 이거는 다 자기 우상입니다. 이거는 다 사적우상입니다. 이 사적 우상을 이것을 자기가 정리를 해 놓으면 공적 우상이나 사회적이나 국가적이 나 세계적이나 그런 우상은 그것은 뭐 우리는 쉽게 그런 것을 다 이길 수 있어서 그 우상을 내가. 우상으로써, 온 전국 사람이 우상으로 그것을 섬기고 그로 인해서 주를 배반하고 그로 인해서 주를 팔고 그에게 피동되어서 움직이는데 자기는 그 우상을, 우상을 고치면 뭣 돼야 됩니까? 우상을 고치면 뭐이 된다고 했지요? 예? 뭐? 크게 말해. 하나님의 선물이 돼야 됩니다. 그 우상 그것이, 온 전국 사람이 다 그것이 우상이 되어서 하나님께 향하던 사람이 그로 다 향했고 그를 따르는데 나는 그 우상이 선물, 그 우상을 인해서 그 우상을 가지고 하나님 기쁘시게 합니다. 그 우상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그 우상으로써 하나님을 존귀케 합니다. 그 우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도를 전합니다.
나는 그 우상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면 그 우상이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에게 끌렸는데 자기는 그 우상에게 끌리지 않고 주를 위해서 그 우상으로 인해서 생명이 끊어졌다고 하면은 그 우상을 이용해 가지고서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 되어 자기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세상에게 보여 준 증거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적 우상을 버려서 이 우상을. 거기에 '밤낮으로 눈물을 강같이 흘릴지어다' 하는 그 죄는 우상 숭배 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게 이런 우상을 제가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우상 버리지 못했으면 하나님의 진노는 풀어지지 안할 것이고 하나님의 징계는 그것은 중지시키지 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런 우상을 지금 내가 버리지 못했다.' 또, 어떤 사람은 우상을 다 정리했다고 하면은. 자기는 우상을 모르는 사람 있습니다. '주님이여, 내가 지금은 생명도 우상 되어 있지 안하고, 소유도 우상 되어 있지 안하고. 업도 우상 되어 있지 안하고, 어떤, 사람도 우상 되어 있지 안하고, 내 몸도 우상 되어 있지 안하고, 안일도 우상 되어 있지 안하고, 우상 되어 있지 않다고 지금 생각하는데 우상이 되어 있는지 없는지 나는 내가 모르겠습니다. 주님만이 내게 대해서 정확하게 볼 수 있으시니 내가 이렇게 공연히 헛되이 안심하고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우상이 정리 됐는지 나는 모르겠으니 주님이 나에게 우상이 정리됐나 안 됐나 성령으로 나에게 알려 주시옵소서.' 알려 달라는 그런 것을 우리가 기도해야 되고. 기도해서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알려 달라고. 하나님께 노여워하는 것과 거리끼는 것을 알려 달라는 간절한 그 소원의 눈물이 흘러야 됐을 터인데 우리에게는 그 눈물이 심히 빈약합니다.
주님도 그 어려움에 있어서 심한 통곡으로, 심한 통곡으로 아버지에게 간구했고, 아버지가 주님에게 대해서는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아버지가 돕지 안하면 허락지 안하면 안 되고 아버지에게 주권이 있다는 이것을 경외함으로 들으심을 받았다 이랬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를 경외함으로 들으심을 받았다 이랬습니다. 이 경외한다 말은 당신에게 대한 것은 당신이 주권을 가지시고, 아버지가 주권 가지고 아버지가 가하면 가하고 나 하면 나 하고 다 하면 다 하고, 그분에게 복종하는 것이 당신의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십자가의 대속의 승리하는 것도 주님에게, 아버지에게 주권, 우리는 주님에게 주권되어 있지만 주님은 아버지에게 주권돼 있다 말이오. 그러기에 심한 통곡으로 간구하면서도 아버지에게 주권되어 있음을 자기가 확실히 믿고 그분이 하면 되고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그 경외하심으로써 들으심을 입었다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눈물이 우리에게 마른 것을 우리가 회개를 해서 하나님 앞에 눈물을 구합시다. 눈물을 구하고, 참 밤마다 이 회개의 눈물을 강 같이 흘려야 하나님의 마음이 노가 풀어지고 하나님이 그래도 마음에 좀 노가 풀어지고 흐뭇해질 터인데, 우리는 맹맹 해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입술로만 말하지 그 속에 심장에 울리는, 눈물은 심장에서 나오고, 심장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 심장에 울리는 그런 일이 없으니 '너희들이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그렇게 요엘서에 말씀했습니다. 그거는 왜? 우리가 마음에, 상한 마음을 주님이 버리지 않습니다. 마음에 고민스럽고 고통스러운 상한 마음, 나는 참으로 이 우상에 대해서 상한 마음 그 마음이 있을 때에 주님은 물리치지 안하지마는 마음은 속으로 강퍅해서 오만 것 다 욕심 다 가지고 미련하게 있으면서 껍데기 형식만 이렇게 한다는 거 주님은 노여워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눈물 없는 기도, 눈물 없는 회개 회개에 눈물이 마른 것. 우리가 주님 앞에 간구할 때에 눈물이 없는 이것을 우리가 기도해서 찾읍시다.
어떤 사람들도, 말 들으니까, 제가 ○○○목사님에게 말을 들은 말인데 일본 가 가지고서 오래 동안 있었는데 도무지 그 마음이 강팍해져서 눈물이 없었는데 고만 거기에 있다가 아내가 죽고 또 여러가지 가정이 절단나고 또 있는 것은 병신이 되고 이렇게 이래 돼서, 그때사 마음이 아프기는 아픈데 마음이 아프기는 아파서 이렇지마는 도무지 마음에 눈물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 눈물 달라고 삼 년을 기도했더랍니다. 삼 년을 기도하면서 '내 마음이 강퍅해서' 눈물이 오고 눈물이, 눈물이 흐르고 마음이 아프고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가 맺어지는 것을 당신이 알 수 있더라고, 이래서 삼 년 기도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참 무엇을 깨달아서 원통히 회개하는 눈물을 주시는데, 회개의 눈물도 주시고 감사의 눈물도 주시는데, 그. 눈물을 도무지 어떻게 억제할 수가 없어서 그저 뭣만 은혜에 대해서 감사한 것만 생각하면 눈물이 참 쏟아지고, 또 무슨 잘못해서 주님 앞에 실수한 것이 깨달아져서 생각하면은 눈물이 쏟아지고 이래서, 삼 년 기도 해 가지고서 눈물이 몇 해 동안 흘렀는데, 차를 타다가도 다른 사람 이 참 이상스럽게 정신병자로 생각할 만치 차를 타면서도 눈물 흘리고 길을 가면서도 감사의 눈물과 회개의 눈물과 원통의 눈물과 주님 앞에 대해서 충성하지 못한 거기에 대해서 그 눈물이 흐르기를 한 사 년 동안 흘렀는데 그때에 신사 참배가 있어서 그 눈물이 마르기 전이라 그 신사 참배를 무난히 이겨서 나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 그러합니다. 다 눈물 없이는, 그래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런 말을 한 것을 내가 책에서 봤습니다. '하늘나라를 가는데는 눈물이 노자다. 눈물이 노자다.' 눈물이 여비라 말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는데는 눈물이 노자다. 눈물 없으면 노자가 떨어졌다' 벌써 하늘나라 가는데에 '하늘나라를 가는데에 양식이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차비가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늘나라 가는데는 눈물이 말랐으면 벌써 노비가 떨어졌기 때문에 가지 못하고 저는 주저앉아야 된다 그런 말을 하는 소리를 책에서 봤습니다.
우리는 인사하는 이것을 그저 예사롭게 웃으면서 하는 사람은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진노의 자리에 있고 하나님의 그 징계를 자기는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써 당겨서 봐야 합니다.
이 공산주의가 이것이 사회주의로서 만주에서는 마적당 하던 사회주의가 마적당이 돼 가지고서 마적당 하던 것이 그것이 사회주의가 됐고 그래서 김일성이는. 참 김일성이는 마적당 당수입니다. 그 사람이 사회주의로서 그럴 때에 만주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그때 일시 그들이 점령하고 세력을 부려 가지고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 잡아서 가마니에다 넣어 놓고 모든 정권자들을 자기네들이 잡아 가지고 가마니에다가 넣어 놓고 이래 넣어 가지고서 다 묶어 놓고 쫙 이패 길을 닦아, 길을 닦아 놓고서 아주 힘 센 황소를 이렇게 여러 마리를 대 가지고서 무저운 돌이나 이런 짐을 실어 가지고 이라는데 그만 그저 탁탁 소리를 하면서 그 가마니 속에서 박이 탁 깨지고 또 창자가 나오고 이러니까 마구 피가 강같이 흘렀더랍니다.
우리가 그 밑에서 쬐일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그렇게 쬐일 때 그때에 내가 주를 과연 생각할까, 그때, 그때는 주를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장기간 고문과 고형에서 시달리는 그것은 그보다 더 어렵습니다. 총 앞에서 순교하기 쉽고 그렇게 묶일 적에는 묶일 적에는 힘들었지마는 딱 묶이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뭐 죽는 날이고 가는 날이니까 의례히 그거는 터지기는 터질 것이고 이제는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사모 하다가 탁 터져 가지고서 그 생명이 그쳐질 수 있지마는 그것이 그런 앞에 있는 것, 앞에 있는 그 모든 대적들이, 악의 세력들이 설치해 놓은 그 설치를 보고 그들이 참 아주 사나운 마귀의 상으로서 사자 같은 웅크리는 안면을, '그들의 악독한 그 말을, 그를 인해서 네가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들의 말을 인해서 네가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들의 얼굴을 보고 네가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들이 모든 이런 저런 설치해서 널 박해하고 너를 꺾으려고 하는 그런 모든 장치를 인해서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런 것을 두려워하면 내가 너에게 두려움을 줄까 하노라.' 그런 것을 두려워하면, 그런 것을 두려워하면 자연히 우리는 제일 두려운 것에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두려워하면 내가 거기에 꺾어져서 하나님 두려운 것은 없어지게 되고 그것이 제일 두려움이 돼지면 나는 그거에게 속하게 되고 그에게 복종하게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니 그러면 하나님이 너에게 두려움을 줄까 두려워하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소유에 대해서 두려움, 모든 사업에 대해서 .두려움, 우리 몸에 대해서 두려움. 우리의 모든 가정에 대해서 두려움, 생명에 대해서 두려움 이런 것들이 다 우상 되기 쉬우니 이런 것을 지금 우상을 우리가 깨끗이 정리해서 우상 없는 자로서 모든 것 가진 것은 주를 위해서 가 진 것, 내 생명도 주를 위해 가지고, 소유도 주를 위해 가지고 가정도 주를 위해 가지고, 부부도 주를 위해 가지고. 모든 자녀들도 주를 위해 가지고 주를 위해서 가진 이 사람으로 지금 변화돼야 될 터인데 변화되지 못 한 일을 인해서 우리가 참 강같이 흘리는 그 눈물을 흘려야만 이게 변화되지 눈물 흘리지 안하고 이거 변화되어지는 것은 절대 아닌 것입니다. 눈물 없이 변화되지를 않습니다. 주님도 심한 통곡으로써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그 눈물과 땀방울 흘리는 것이 그것이 피가 되기까지 해서 비로소 이겼으니까, 우리 신앙 생해 그리 쉬운 거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때에 무거운, 요새로 말하면 트럭이 아니겠습니까? 무거운 트럭 밑에서 내 박이 깨지는 그때의 내가, 그때의 내가 만일 헤어나서 그때 거기에서 헤어나 살 길이 있다고 하면은 어떻게 할 건가? 살길이 있다고 하면은 팔이. 팔이 힘 있는 대로 다할 것이고 다리에 힘 있는 대로 다할 것이고 자기 지혜 있는 대로 다할 것이고 있는 대로 다할 것입니다. 그때에 다할 그 힘을 신앙의 사람이 지금 알고 다하는 것입니다. 지금, 알고 다하면 다 해결할 수 있지마는 그때는 다해 봤자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을 하라는 것,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이것을 다해서 네가 사죄를 지키고 네가 칭의를 지키고 화친을 치키고 하나님에게 피동되고 하나님을 위주로 이래사는 이것을 다해서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러기 때문에, 이 성화 구원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점령하고 통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쉬운 것 아닌 것입니다. '네 행위의 온전함을 내가 보지 못했다.' 온전한 행위로서만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너무 쉽게 사람들이 생각하고. 성경에는 이렇게 힘드는 걸 말했는데 쉽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 사실을 거짓말로 압니다. 제가 힘드는 것을 알아서 힘써 준비했으면 이 사실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암만 해도 하지 못합니다. 못하는데. 인간이 할 수 있는 거 다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그것을 해 주시는 것을 자기가 볼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하나님이 분명히 이것은 나에게 돕고 있구나.' 하나님이 분명히 이 결심은 이 마음은, 이 담력은, 이 평강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피조물 뭐로 인해서. 돈으로 인한 평강이나 그래 안 하면 내가 무슨 집을 지어 놓고 피난하는 것이나 어떤 세력가가 나를 보호함으로써 평안이나 그런 평안이 아니고 이는 온 세상이 다 들어'캘라 해도 캘 수 없는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우상을 제거하는 이 일을 제거하지 못한 일을 인해서 제거해 달라는 간구, 또 우상이 뭐인지 나는 우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우상이.
무엇이 되는지 안 되는지 그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은 다 '나는 이 생명이 우상 되기가 싫고 생명도 주를 위해서 가지고 싶은데 막상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 가운데에서 그때 어찌 되느냐? 그때 어떻게 되느냐?'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힘을 주시는 것은 '나에게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한다.' '주여, 어떤 고문과 고형이 올지라도 그 고통을 이길 힘을 주시옵소서. 주 예수 이름으로 기초합니다.' 이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어떤 고문과 고통이라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능력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기도를 주셔서 그 기도를 자꾸하는 그 기도가 이제 쌓이고 쌓여 가지고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두려움도 '주님이여' 참 사람들 엉크리는 거. 지금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움 주는 것은 '아, 내가 그 사람에게 태도 하나라도 잘못해 가지고 구원에 거리낌이 될라. 그 사람이 오해를 가질라'이래서 뻘뻘 떨고 이렇게 하지마는 지금은 사람을 주를 위해서 두려워할 일이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표범 같고 곰 같고 사자 같다 했습니다. 그들이 표범과 같고 곰 같고 사자같이 나타난다 했습니다. 그럴 때에 그들의 말에 내가 두려워하지 안할 수 있는 담대, 그들의 안면에 대해서 안면으로 인해서 두려워하지 안할 수 있는 담대, 그들의 모든 고문과 고형의 장치와 설치를 하는 그것을 봄으로 두려워하지 안할 수 있는 담력, 모든 고행받은 사람들을 봄으로서 두려워하지 안할 수 있는 담력 이 담력을 주님이 주셔야 되지 그때 떨지 안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다 떱니다. 주님이 주셔야 됩니다. '이 담력을 주님이 주시옵소서.' 그렇게 걱정을 할 때에 반드시 걱정하는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이기는 길을 주실 것입니다. 걱정을 할 때에 "아, 주님이여, 그럴 때도 담대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까짓 거야 그렇거나 저렇거나 상관없이, 주님이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내게는 상관이 없다.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는 것과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뿐이다' 말씀하심과 같은 주님은 할 수 있사오니 그럴 때에 공포와 비겁에 싸이지 안하고 담대할 수 있는 이런 은혜를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하는 그 기도가 그런 사람들에게는 나오게 되고, 나오면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니까 그 기도가 그때 쓰여진다 말이오, 그때 쓰여져.
그러기 때문에 주 남선 목사님과 추 교경 전도사와 또 이 장로님과 세 분이 가셨는데 두 분은 얼굴색이 새파래서 질려 가지고서 지금 참 기절할 판인데 주 남선 목사님은 십 분도 안 돼서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면서 주무시더라고.
두려움이 있으면 잠이 오겠습니까? 평강을 가졌다 그 말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눈물을 강같이 쓸려야 되겠고, 또 나와 모든 내게 속한 모든 사람들과 이웃이 하나님의 진노로써 비참한 징계를 받을 그것을 우리가 보는 눈이 있어 그 보는 눈으로 인해서. 그 보는 눈을 인해서 눈물이 나올 수 있어야 되겠고, 보는 눈을 인해서 눈물이 나오기까지 바로 봐야 되고, 눈물이 흐르기까지 바로 봐야 되고 이래야, 이렇지 안하면 그 모든 것이 다 외식이요 거짓부리가 되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내가 나을 때에 설교할라 하는 것은 이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닌 것은, 뭐이냐? 잘못하면 우리가 이 면으로 치우쳐서 이 면을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이것도 저것도 손에 일이 잡히지 안하고 할 거 다 안 하고 그러면 이 면만 그저 마음에 관심이 되고 걱정이 돼서 이리만 기울여 지고 다른 모든 면을 다 버려서 모든 면이 구멍이 다 뚫어졌으니까 무슨 폭탄의 힘이 있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여덟 가지 구멍을 다 막아야 된다 하는 그것을 오늘 본문을 보고서 여덟 가지 구멍을 다 막아서 한 말로 말하면 여덟 가지 면이 다 겸해서 이 면도 하면서 이 면을 함으로 우상을, 우상을 버리기 때문에 우상을 버리기 때문에 더 힘써야 되고 우상을 버리기 때문에 더 열심이 있게 되고 우상을 버리기 때문에 더 충성하게 되는 이것이 돼야 된다는 그것을 오늘 아침에 증거할라 했는데 시간이 갔습니다. 다음 시간에 시간 있는 대로 증거하겠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서로 인사하는 이 전도지를 줄 때에. 줄 때에 나는 한 번 생각하면서 주고, 또 받을 때에 또 내가 생각하면서 받고 줄 때 받을 때에 생각하는 그 생각이 줄 준비로 생각하고 받을 준비로 생각하고 그것이 우리에게서 계속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돼서, 이것이 계속됨으로 계속됨으로 내가 하나님에게 영광 돌릴 수 있는, 계속됨으로 내가, 내가 사업을 열심히 내가 해서 주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되겠고 또 모든 사람에게 조롱을 안 받아야 되겠고 내 할 의무와 책임과 본분과 이 모든 것을 바로 감당함으로 이런 일이 돼지지 이것을 감당치 안하면 이런 일은 되지 않습니다.
오 종덕 목사님이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유물주의라, 유물주의는 어떤 사람이 유물주의냐?' 깊은 말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유물주의냐? 유물주의는 적은 물질을 아끼지 안하고 무시하는 사람이 유물주의다' 말했습니다. '적은 물질을 무시하는 사람이 유물주의다.' 그 이해 못할 말입니다. 깊은 말이오. 그라면서 그 어른은. 요새는 다 쉽지마는 어디 가서 못 한 개 있으면 반드시 못을 주워 가지고 갑니다. 못을 버리고 안가.
그때는 못이 귀할 때요. 못을 쓰려면 좀 귀하고 돈도 비싸고 이러니까 이 못을 주워 가지고 갑니다. 다른 사람이 있다가서 여기 못이 있으면 '여기 또 오 목사님 여기 못 있다 해라.' 못을 주워 가지고 갑니다. 지극히 작은 것, 지극히 작은 물질을 아낍니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서 다른 사람들이 점심때가 됐는데 배는 고픈데 이거 밥을 사 먹을라 하면 돈이 들 것이고 이라니까, 보니까 어떤 사람이 밥을 먹고서 그걸 살모시. 그리 별로 먹지도 안하고 의자 밑에 살모시 넣는 것을 봤다고. 오 목사님이 살모시 그것을 모르게 내가지고 와서 그것을 먹었다고. 그래서 차를 타고 다닐 때에는 밥을 사 먹지 안해. 또 언제든지 삼등차 타요. 타 가지고서 먹고 내버린 도시락 있으면 그것 주워 먹어요.
그라면서 그 이 말하는 것이 '지극히 적은 물질을 아끼지 안하는 사람은 물질의 종이 된다. 물질의 종이 된다. 이렇게 방종한 사람은 마지막에 물질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당할 때에, 물질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당할 때에 물질의 어려움 그 타격을 많이 당하니까 물질이 우상이 돼서 물질로 인해서 양심 생활 하지 못하고 물질의 난에 꺾어져서 물질의 종이 된다. 물질로 인해서 그 사람은 움직이고 물질 위주의 사람이 되고야 만다.' 이렇게 적은 것까지 다 아껴서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살았기 때문에, 물질에 대해서 어려움이 없을 뿐 아니라 자기가 힘껏 물질에 대해서 조그마치라도 남용하지 안하고 살았는고로 자기에게 물질에 대해서 어려움이 와도 '이거는 분명히 주님이 주시는 것이다.' 내가 게을해서 당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남용해서 당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게을리 하고 남용하고 이라는 사람은 물질의 어려움이 오면 '이거 백지 주님이 어려움을 주시는 게 아니라 내가 게을로 말미암아 물질의 어려움이 왔다' 할 때에 자기의 힘은 다, 용기는 거기에서 다 꺽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 물질에 대해서, 그래서 저는 그분을 말하기를 경제학 박사라 나는 이렇게 나는 내 속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참 깊은, 깊은 설교를 했습니다.
모든 면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교파에서는 제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오 종덕 목사였습니다. 그분은 신사 참배 할 때에는 망명 해 가지고서 그렇게 대항해 싸우지는 안했지만 신사 참배 안했습니다. 그분은 성경을 깊이 알았습니다. 성경을 아는 데 대해서는 내가, ○○신학교의 뭐 교장이고 모든 사람이 말하지마는 성경은 그분이 제일 깊이 알았다는 것으로서 성경은 ○○교파에서 제일 오종덕 목사님이 제일 성경에 대해서는 일위의 깨달음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그렇게 저는 평가를 했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요 인사하는 것을 처음에는 우습지마는 나중에는 차차 웃음이 지나가고 나중에는 거기서 차차 두려움이 되고 조심이 되고, 마지막에는 눈물이 되고 참말로 마지막에는 눈물을 흘려서 주님 앞에 간구하면 시원하고 또 그 모든 어려움을 내가 한 번 당해 보면서 거기에서, 이래서 주님 앞에 간구하며 '이래도 내가 범죄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런 순서를 많이 통과한 사람이면 그때에 '소구르마 밑에 가마니 속에 한 번 들어가 봤으면, 또 뭣이 왔으면, 어떻게 됐으면 혹 내가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께서 시험 하시는데 그 시험이 한 번 와봤으면' 하는 그런 사람도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거 그냥 사람의 말로 듣지 마시고, 주님이 지금 우리를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눈물 없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눈물을 주님에게 구합시다. 우리 마음이 강퍅하고 완패해서 눈물이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