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이마에 표

 

1984. 10. 14. 주일오후

 

본문 : 마태복음 18장 21절-22절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우리는 참 복잡한 이 사이에 끼여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연습 연단 연성 시키되 세상과 영계를 다 교회에게 일임해서  통치, 관리. 보존 하게 하시려고 선포하셨고 또 이 실력을 갖추도록 하시기  위해서 양육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을 오는 어떤 세대보다도 또 어느 시대의  어떤 복잡하고 사나운 길보다도 더 복잡하고 사납고 또 사이비한 그런 길을  하나님께서 만드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 때까지에는 모든 삐뚤어진 것이  하늘까지 관영하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노아 때는 삐뚤어진 것이 온 천하에  가득찼었지마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삐뚤어진 것이 하늘까지 가득 차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삐뚤어진 것들을 세상에 가득 채우시는 이유는 거기에서 구별하고  구별해 가지고 옳고 바른 것을 찾아서 모든 것을 다 정평 정가하고 능가한 그런  실력을 배양해서 영원한 무궁의 그 나라를 택자들에게 유업으로 상속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길을 가는데 수많은 악령이 사람들을 미혹시켜 가지고 별별 그  유혹의 길들을 또 마찰의 상대들을 만들어 두셨습니다. 또 그뿐 아니라 우리  안에도 그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원죄가 있지 본죄가 있지  악령의 출입이 있지 또 이제까지 잘못 살아 나온 그 모든 잘못된 습성 버릇이  있지. 이러니까 찹 우리는 심히 혼자로서는 감당 못 할 이런 마찰 모순 속에서  사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생의 법칙으로 삼아 가지고  살아 볼라고 하면 얼마나 대적이 많은 것도 알게 될 것이고, 또 사이비한  유혹들이 많은 것도 알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제 주관대로 해석하고 주장해서  마음대로 사는 그런 사람은 이럴 때는 이렇게 해석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또  소속하고 하기 때문에 고에게는 마찰되는 것들이 그렇게 없습니다. 왜? 모두가  다 합리주의요 다 화합주의기 때문에 그거야 뭐 이질적인 것이 있을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신앙을 살려고 하는 것은 제일 어려운 생활입니다.

 신앙이라 하는 것은 외부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은 하나님의 법칙을  준해서 사는 것이 신앙이요, 그 신앙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들에게  감동시키시는 영감대로 사는 그 생활이 그것이 참 신앙생활인 것이니까 얼마나  어렵습니다. 한분의 그분의 법칙을 따라서 고대로만 살라고 하면 우리가 많은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인 것도 알고, 또 우리가 바로 구별하지 못할 복잡한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도 알아서 예수님의 대형의 사죄가 필요하고. 대화친의 칭의가  필요하고. 또 영감과 진리가 우리를 인도하시는 데에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느낄 것입니다.

 오전에는, 우리 마음을 하나님에게 기울여서. 하나님이 제일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하나님 떠나서 이런 거 저런 것들에게  접촉해서 사귀는 그런 생활을 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살자는 그런 말씀을 증거를 했습니다.

  또. 지난 주일에는 우상에 대해서 증거를 했습니다. 우상도 사적 우상이 있고  공적 우상이 있는데 사적 우상은 다른 사람에게는 상관 없고 자기만 이 범할 수  있는 그 우상이요, 공적 우상은 혹 지방적으로 모든 사람이 범할 수 있고 그  민족적으로 범하는 죄도 있고 또 국가적으로 그렇게 범하는 죄도 있습니다.

그래서 개적 우상, 공적 우상, 사적 우상, 공적 우상이라고 그렇게 구별해서  증거를 했습니다.

 우상이라 하는 것은 어떤게 우상되는고 하니 다 자기가 만든 우상이라고 했는데  우상이라는 것은 자기가 없는 가운데에서 그것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혹  자기에게 차차 필요한 것이 되어지면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또 필요한 것이  되면 그것을 잘 가꾸어서 보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거 필연한 일인데,  이렇게 하다보면 그만 자기도 모르게 그것이 풍부하면 자기는 염려 없는  사람으로 인식을 하고, 또 그것들이 어떻게 절단이 나든지 하면은 자기의 그  모든 행복이라 하는 것은 다 변동되는 것으로 이렇게 사람들이 여겨서 알지  못하는 가운데에 차차 차차 자기가 만들어 놓은 필요한 그런 것들을 하나님  대신으로 섬기는 그런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하나님 대신으로 섬긴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하니, 사람들의 생사도 하나님만이  주관하지 아무것도 주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혹 사람은 나중에 가서 어떤  것이든지 자기가 만들어 가지고 이것이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다 또 우리를  복되게 한다, 우리를 또 모든 투쟁에서 승리하게 한다 이것이 들어서 우리의  사업을 흥왕하게 한다 자꾸 이렇게들 망령돼서 자꾸 탈선돼 나가는 일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다가 보면 자기는 그것은 번연히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이요 자기의  소유 중세 하나이지마는, 실은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아끼고 보호하고 귀중히  여기기를 하나님보다 더 아끼고 보호하고 귀중히 여기게도 되기 쉽고, 또 그것을  중심해서 그것이 잘 보존되고 흥왕하고 잘 유지되고 성장되기 위해서 그것을  준해서 자기의 모든 생활을 조절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따라서  움직이기도 되고.

 또 어떤 때는 가면은 네가 바로 직접 네가 주일날 주일을 범하지 안하며 이  일이 낭파된다는 데도 있고, 네가 그 어떤 시대에 국신이면 국신. 국신에게 네가  절하지 안하면 네 이런 모든 업체에 대해서 면허를 취소 하겠다 그런 것도 있고.

또 네가 일 안하면  네 직업을 아주 그만 면직을 시키겠다 하는 그런 일들도  있고 뭐 별별 일들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차차 차차 그 자체는 우상이  아니지마는 그것을 필요로 여기는 사람 그 사람들이 그것을 차차 차차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그것들이 할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하도록 하고 그렇게 행동을 하도록해서 하지 안하면 어려울 일들이  그렇게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사적 우상이라는 것은 자기의 무슨 자기 몸 아래 있는 어떤  기술이나 또 자기 육체나 자기의 그 마음의 모든 기능이나 또 자기의 사업이나  자기의 소유나 자기의 어떤 애착하고 있는 모든 귀중히 여기고 높이 평가하고  있는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은 분명히 자기 소유요 자기가 만들었지마는 나중에  가서는 하나님보다 거기에 애착을 더 두게도 되고, 또 하나님은 섭섭해도 그것은  조그만치라도 낭파되면 안 되겠다, 그것이 조그만치라도 손상을 보면 안 되겠다  이렇게 해서 그것이 나를 지배하고, 말로는 안 그렇다 해도 실상은 나는  그것에게 내 모든 가족의 행불행이 달린 것처럼 이렇게 차차 차차 인식하게 돼  가게 되면 그것이 자기 사사로운 우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상을 멸하는 방편은 그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해  나가서 그것이 나를 끌고 그것이 나를 끌고 내가 그에게 끌려가고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는 그것을 보고 '아무래도  내가 이것을 자유자재로 해야 되자 이것에게 내가 달려 가지고 이와 같이 사니  이거 정상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얼마 동안 나가다가는 나중에 가서는  그만 그것이 나를 주장하고 나는 거기에 속하게 되고 그거는 나를 주장하고,  나는 거기에 따라서 피동되고 그것들은 나를 주장하는 이런 경우에 내려가면  벌써 그것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그럴 때는 우리는 그런 것을 회개해야 되지 그리되면 그때부터는 하나님과  대적입니다. 그게 빨리 나타나든지 더디든지 간에 그 값은 자손의 삼사 대까지  자기로 더불어 망하는 그런 일입니다.

 지금 이 남북에 대해서는 이북은 무신론입니다. 우리 이남에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그들은 모든 물질이 제일이라고서 물질  유물주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주의입니다. 아무리 물질이 세계의 제일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안하면 그 모든 강대국이라는 그  강대 그것으로 인해서 그 나라는 망하고 만다 그렇게 그런 해석입니다.

 일차 대전 때도 독일에서는 그 독가스를 마련해 가지고 그것으로서 온 세계를  다 정복하고 저거들이 온 세계를 통일시킬라고서 그렇게 주장을 했지마는 그렇게  좋은 아주 신발명(新發明). 다른 나라에서 가지지 못한 그런 아주 귀한 그  과학을 가지고 있었지마는 하나님이 그것을 복되게 안 하니까 삼십 년 통계를  내어 가지고서 반드시 요때는 저리 바람이 부니까 요거는 뭐 삼십 년이나 통계에  맞추어도 이럴 때에 역풍은 없었으니까 순풍뿐이니까 요때는 뿌리면 세계에  민족은 다 독가스에서 취해 넘어질 것이고 우리가 통일시킬 수 있다 했는데,  삼십 년만에 뿌렸는데 처음으로 역풍이 불어 가지고서 그 독일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다 많은 살해를 당하고 그들이 경영했던 모든 일은 다 실패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잘 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그걸 복되게 하시며 돈도  복되고 욕도 복되고 다치는 것도 복되고 병든 것도 복되고 하나님 이 복되게  하실 때에는 복 안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화되게 하면 화 안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이걸 주권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하나님  외에 딴것을 우리가 하나님 위치에 두고서 내가 하나님을 대접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에게만 이 주권을 가지신 분 인 줄 알고 섬기고 이렇게 바라보고  의지하는데, 내가 하나님 외에 딴것들에게 대해서 그와 같이 하면은 벌써 그게  망령입니다. 그게 벌써 조만간에 망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벌써 내가 그것에게 자유가 없다 그것으로서 혹 한번 두 번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는 실수를 하게 된다. 한 번 두 번 양심의 가책 때문에  하게 된다. 이러면 그것이 벌써 우상의 미수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에 일어서야 됩니다. 일어서서 단정코 그것을 구별해서 하나님의 선물로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근본부터 따져서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 주신 것은 내가 이것을 활용하고 애용하되 하나님의 법도대로  활용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이것을 이용하고. 하나님 섬기는 데에 이것을  사용하라고 준 것이지 이것 가지고 내가 하나님의 법도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죄 지어서 하나님을 노엽게 하라고 하나님 주신 것 아니다. 이거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누구 누구를 통해서 공로자가 가득 있어도 그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리를 주관하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확 삐뜰트렸으면 그가 날 도울 수  없는데 하나님이 그 심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도울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도운 것이기 때문에 도운 그 실물은 그 사람이요, 도움의 그 주권적  모든 총 지위부는 주님이시라 하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구별해서 이제부텀은  단정하고 그것을 주의 법도대로 내가 취급을 하겠고, 주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그 명령대로 나는 그 사업에게 명령하겠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그대로  나는 내 직장에게 내 명령을 하겠습니다. 주님은 나를 주관하시고 나는 그  주관해 가지고 내게 관련된 그 모든 소유와 온갖 것들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신대로 나는 주의 명령에 복종해서 이 모든 것에게 복종하는  생활하겠습니다. 복종하는 생활하다가서 네가 그 세력이 너보다 강하니까 목을  끊으면, 목을 끊으면 목 끊는 거는 저거가 할 저거가 하는 일이고, 나는 목이야  끊기든지 말든지 그거는 주님에게 맡겨놨고 나는 목이 끊길지라도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이것이 나의 신앙인 것을 내가 단정짓고 있습니다.' 하고서 그  대로만 나가면 그 모든 것이 예물이 되어지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이 다 우상성을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도 이제 공적으로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렇게 또 그 우상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뭐 일본 나라 같은 나라에서도 그 미신은 미신이지마는  천조대신이라 하면은 아주 그 나라의 공신이라 그래 가지고서 그 신화로 꾸며  내려 왔습니다. 꾸며 내려 오고 그들은 다 다신 종교의 그 나라기 때문에 그것을  자꾸 위하고 위하고 이래 가지고 그것을 섬기는 일도 있고, 또 어떤 신궁은  위대한 인물을 그 일본 나라의 아주 공로자, 또 많은 그 희생을 한 그런 인물들  그런 인물들을 또 하나의 추모의 대상으로, 또 기념의 대상으로, 또, 모든  국민들에게 하나의 표본의 그 대상으로 그렇게 삼아 가지고서 무슨 신궁 무슨  신궁 하면서 그래 해 놨었습니다. 그런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이는 언제 나서 우리나라의 이 순신 장군과 같이 우리나라의 해적을 이렇게  물리치고 이런 공행이 있었다. 이렇게 충성을 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가 궁지를 면하고 우리나라가 그때에 보존되게 되었다. 그런 그 공로를  찬양하는 또 기념하는 모든 후손들에게 알려서 그런 분을 본 받아서 그와 같은  그런 인물들이 나고 그런 정신들을 배양해 나가는 거 숭상해 나가는 거는  좋습니다. 그것은 다 할 수 있습니다. 그거는 뭐 그런 동상을 얼마든지 만들어도  좋습니다.

 만들어도 좋으나, 거기에서 조금 지나가서 그는 그 사람은 어떤 공로자라도 그  공로를 베풀고 죽었습니다. 죽고 난 다음에는 털끝만한 그 능력도 힘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 뭐 죽고 난 다음에 무슨 귀신이 돼  가지고서 사람을 보호할 만한 그런 아무 힘이 없고 불택자면 지옥에 가 있어야  되고 택자면 하늘나라에 가 있어야 되고 두 길 밖에는 없습니다. 그거는 예수님  재림 때 오지 그 전에는 못 옵니다. 죽었다고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다 음부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 또 낙원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 그 대기소에서  기다리고 예수님의 재림 때를 기다리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얼마든지 우리나라에 우리들에게 공행이 있는 그 선조라고 그 공행을  찬양하는 것도 좋고, 또 그로 인해서 국민의 정신을 양성하는 것도 좋고 또  본받게 하는 것도 좋고 그래서 그와 같은 인물들이 많이 후진에서도 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거 다 좋습니다.

 좋으나, 만일 이것이 들어서 이 죽은 자의 이 동상 해놓고 이것이 들어서  우리에게 복을 준다. 우리나라를 승리케 한다. 우리나라를 행복되게 한다.

거기에서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그것이 한다고 인식을 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그게 우상이 됩니다. 아무리 한 동상이라도 한 사람의 이는 참 아주  우리가 추모하고 존경할 만한 그런 우리의 좋은 그 선조다 하는 것을 하는 그  사람에게는 좋은 자기의 선조를 기념하는 선조를 기념하는 한 동상이 되겠고,  이것이 우리를 행복되게 지금도 할 수 있다, 우리를 구원을 할 수가 있다, 이  능력이 있다, 우리가 여기에다가 무엇을 복이나 행복과 난제를 비로소 도움을  받아야 되겠다 하면은 고 사람이 들어서 우상을 고 우상을 만들어 고 사람에게  고게 우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무슨 형상이든지 그것이 나를 구원하고 돕고 생사도  하나님이, 빈부귀천의 화복도 하나님이, 승패도 하나님이 전부이 하나님에게  사람이 나고 죽는 것도 하나님에게 다 있는 것인데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그것이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은 그것이 그 사람으로 인해서 그  사람에게는 그게 우상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그리 알고서 거기에 다가 절을  하든지 섬기든지 하면은 그 값으로서 삼사 대 망한다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는 없어야 할 터인데, 혹 우리나라도  모릅니다. 우리나라도 나중에 가서 어두워지면 그런 신사를 만들어 놓고 복되다  해 가지고서 깨끗한 국민들을 거기에다 절을 시키고 또 숭배하게 하고  거기에다가 모든 것을 빌도록 하고 공을 드리도록 하고 이래 가지고서 백성들을  깜깜 어두운 저주 받은 백성을 만드는 그런 시대가 올란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우리는 우리가 세상의 빛이기 때문에 이것은 아니라는 그런 것을  말을 해 주고 '우리는 출애굽기 20장 4절 이하에 있는 이 말씀에서 금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고, 그 일을 하면은 우리가 망하기 때문에  우리의 위대한 그 선조를 우리가 추모하고 또 그렇게 그 모든 정신이든지 그  이력을 우리가 늘 추모하고 기념하고 본받고 이렇게 하는 것은 얼마든지  좋지마는 만일 그것을 하나님 대신으로 그것이 무슨 우리에게 생사 화복. 존비  귀천. 승패를 그것이 줄 수 있다고 그렇게 인정하면 '벌써 그걸 하나님 위치에  세워 놓기 때문에 그것은 우상이 되어 지는 것이고, 우상이 아닌데 그렇게 하는  사람으로 인해서 우상이 되어지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면 우리와 우리 자손이  망하기 때문에 그것은 할 수 없습니다.' 하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대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가면은 왜정 말년에도 이것으로 결국은 그 결정을 지 웠습니다.

일본 나라가 승하느냐 패하느냐 할 때에 신사 참배 그것을 강요해 가지고서 일본  나라 백성들은 다 신사 참배를 해 버렸습니다. 아닌 줄 알면서 다 굴해서  했습니다. 그때에 우리나라에 있는 교회에서는 다 하지 안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감옥에 두고 꺾지를 못했고 또 자유로 활동하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꺾지를 못해서 그때에 우리나라 교회는 우상 숭배를 하지 안했습니다.

말단에서는 했지마는 그 머리 되는 신앙가들이 안 했기 때문에 결국은 마귀가  굴복을 못 시켰습니다 이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는 승리의 나라로  두시고 그 나라는 패전의 나라로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요한계시록에 보면은 '일곱 머리 중에 하나가  상하였다가 나았다'하는 그 말씀을 여러 번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됨을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것을 패망케 하는 그 일을 오래 제속하지 않습니다.

패망케 하는 일을 퍼뜩 패망케 했다가서 그만 회복시켜 버립니다. 그러기에  패망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보고 '아 저렇게 하는 건 패망하는 일이다,  보자. 퍼뜩 패망하면 아. 패망했다.' 하는 것을 보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즉시  복구를 시켜 버립니다. 복구시키면 '아 패망하기는 뭘 패망해. 그때 퍼뜩  거리다가 고만 나아 버렸는데.'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퍼뜩 패망하는  그것을 보고서 경성해서 그런데 빠지지 안하도록 살고 있는 것이고, 멸망할  사람들은 패망은 보지 안하고 패망했다가 복구된 그것을 보고 사는 것이  멸망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을 요한제시 13장에도 말해 놨고 17장에도 말씀해  놨고 그 가운데도 또 말씀해 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기독자들이 혹은 과거에도 국기에 대해서 배례를 하자, 그  태극기는 어떤 사람이 해석하기를 '태극기는 아주 능치 못함이 없는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 거기에 숭배하면 우리의 모든 그 행복이 다  이루어진다.' 이런 그 조작배기 말들을 꾸며 가지고서, 주역에서 나오는 그런 걸  꾸며 가지고 그렇게 해서 백성들을 그때 국기배례 시키려고 할 때에 그것을  생명을 내 대면서 안 하려고 한 것은 나라의 국령을 반대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 애국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민족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참  애국한 것이요 그것이 참 애민족하는 것이요 그것이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왜?  그리 하면은 나라가 망할 줄 알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은 그리하지마는 아는  사람은 제가 나라의 망하는 그런 일을 좀 고난을 당한다고 고난면하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때에 망할 수 있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하나님을 노엽게해서 하나님의 진노로 망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시킬 때에  기독자들이 죽어도 안 하는 것은 그 생명을 국가를 위해서 바친 애국자요 참  순국자요 또 순민족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할 수 있으면 우리가 평소에 말해 가지고 우리나라 그  신불신자의 모든 국민들이 다 심령이 밝아져서 그런 일을 안 하고 그런 그  실수에 빠지지 안하도록 그렇게 우리가 미리부터해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도리를  아는 신자들의 책임인데, 우리가 지금 교회들이 뭐 그런 거는 생각 안 하고  어쩌든지 어떻게 하면 사기 협잡을 해서라도 잘 먹고 잘 입을까 어떻게 계명을  어기든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뭐인가 좀 좀 뭘 잘돼 볼까 하는 여기만  도취하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님의 그 진노 거리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제, 과거 국기 때문에 그때 재판할 때에 제가 꾸며 놓은 그  괌프렛이 있었는데 그때 그걸 가지고서 온 우리 교인들도 나눠 주고 우리 진영의  교인들도 나눠 주고 나눠 주는 대로 나눠 주는데 그것이 어꺼 됐는가해서 좀  찾아 보라 했더니마는 어제 찾아서 찾아 놨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국기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다 알려 줘서 신자에게 알려 주고 불신자에게도  알려 줘서 차차차 이 지식이 널리 보급해 나가면은 국기 배례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멸망받는 그런 죄는 우리 민족이 짓지 안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하나님이 꾸미면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런 걸로서  우리에게 하는 것이 좋고, 또 이 공적 우상도 그런 일이 되지 않도록, 우리  선조를 뭐 단군 선조라든지 뭐 기자라든지 또 어떤 아주 충렬 그런 분 들을  우리가 아주 존경하고 추모하고 그렇게 우리가 기념하고 표창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것을 만일 우상을 만들면 우상이 되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런고로, 그런 것들을 미리부터 알아야 되지 지금 모르고 있으면 나중에  그때는 가서 말하면 대적하고 갑론 을박이 되기 때문에 마찰만 되어지지 그 일에  대해서 효력을 보지 못하고 상당한 박해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애가서 2장에 '밤낮으로 회개의 눈물을 강같이 흘릴지어다 또  하나님의 진노의 안면과 하나님의 징계의 그 광경을 보는 그 눈동자를 돌리지  말자고 우리가 인사로 하는 표어로 한 것은 그 회개는 전적 우상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상이라는 건 이제 말한 대로, 우상이라는 것은 간단한 해석이 고것입니다.

우상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요 다른 것은  아무것도 그 일은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대해서만 거기에 대해서 관계를  가지고 구해도 그분에게 구하고, 의논해도 그분에게의 논하고 부탁해도 그분에게  부탁하고 그런 것은 다 하나님과에만 관계가 돼야 뒬 터인데 아무것도 아닌 제가  만들어 놓은 그것을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그것을 그것이 할 수 있다고 그것을  상대해 가지고서 하나님 대우할 것을 그거 대우하고 하나님에게 상대할 것을  그것에게 상대하게 되면 우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가 고요히 생각하면서 사적 우상이라는 그것을 잘 분별해  가지고 우리는 우상을 섬기지 안하는 사람이 되어져야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것입니다.

 오전에. 에스겔 9장에 있는 말씀을 우리가 읽어 봤습니다. 에스겔 9장 4걸에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헴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좋아' '표 찍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이마에 표 받은 자에게는 가까이도 가지 말아라.' 치는 해하는 그 도륙하는  자들은 그 근방에 가까이도 가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그  천사들에게 분부하는 그 명령을 에스겔선지가 듣고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해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감동시켜서 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전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양을  잡아서 문설주에 양 피를 바른 그 집은 다 장자 재앙을 치지 말고 넘어서  가라해서 그 절을 유월절이라 합니다. 유월절이라 말은 오월 유월이라 하는  유월절이 아니고 넘을 유(逾)자 넘을 월(越)자 뛰어 넘는, 양의 피가 발려 있는  그 집은 뛰어 넘어서 피 발리지 안한 집에는 장자 재앙이 다 내렸고 그 피가  있는 집에는 장자 재앙이 내리지 안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  하시고 고게 준해서 그러면 양의 피가 발렸으면은 애굽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양의 피를 발랐으면 안 될 것이냐? 안 됩니까? 됩니다. 애굽 사람이 다 그  소리를 듣고서 '아, 우리도 양의 피를 바르고서 이제 하나님의 재앙을 면하자'  했으면 애굽 사람 전부 다 장자 재앙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약을 선포해  놓은 다음에는 계약 이행자에게는 공평되게 다 보응 하시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천인 만인이 천인 만인이 네 곁에 엎드러지나 이 재앙 이  네게는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그런 말씀이나 '이런 이마에 표를  쩍어라 그 서기관의 먹물 통을 허리에 찬 베옷 입은 자에게 말하기를 네가 이  성거리에 순행하면서 이 가증한 일을 보고 탄식하고 눈물 쏠리는 자에게는  이마에다가 표를 찍어라. 그러고 전멸을 시킬 때에 이마에 표 찍힌 자에게는  가까이 가지 말아라. 그 재앙을 가까이 하지 말아라.' '천인 만인이 네 곁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 하는 말씀과 꼭 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그 도륙의 재앙을 내릴 때에 늙은이로부터 시작했고  늙은이로부터 시작했고 성전에서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예루살렘이라말은  오늘의 교회를 말합니다. 에스겔서는 예언서입니다. 이사야서는 예언서인데,  이사야서는 예언서라도 예수님에 대한 예언. 말세의 예언 섞여 있고, 에스겔서는  거의가 다 말세의 예언서고, 예레미야서도 말세의 예언서고, 또 요한계시록도  말세의 예언서입니다. 늙은이로부터 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도륙하라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말했습니다.

 미가야 선지에게 대해서 회의를 하는데. '자. 저 지금 아합 왕 저놈이 저렇게  강퍅하고 도무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도를 멸시하고 저렇게 바알 서지를 저렇게  끌여 들여 가지고서 미신과 우상을 끌어 들여 가지고 저라니까 저 아합 왕을  누가 죽일자가 없느냐?' 이라니까 거짓말하는 그 영이 와 가지고 '제가  죽이겠습니다.' '네가 어떻게 죽일래?' '내가 그 거짓말하는 영이 돼 가지고서  선지자들 속에 들어가 가지고 거짓말하게 하고 또 아합 왕에게도 거짓말을 들을  수 있도록 잘 듣도록 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하겠습니다.' 하는 그런 회의를  미가야 선지가 들었는데. 그때에 그 거짓 선지자들이 아합 왕의 말을 따라서  '요번에 전쟁만 하면 이제 우리가 완전히 통일을 합니다' 이렇게 하니까  전쟁하려고 할 때에 '전쟁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모든 선지자들에게  물으니까 다른 선지자는 다 '하면 이깁니다' 했는데, 미가야 선지자한테  물으니까 미가야 선지가 이 비밀을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하늘나라의 그 회의가 있는데, 이리 이리 회의가 있었는데, 그때에 그 회의에서  저 아합 왕을 죽일 자가 없느냐 하니까 거짓말하는 신이 나서 가지고서 내가  죽이겠다 하고, 그거 어떻게 죽이느냐? 거짓말하는 영이 돼 가지고서 모든  선지자들 속에 가서 거짓말 하도록 하면 아합 왕에게도 거짓말 듣도록 해  가지고서 내가 멸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 요번에 왕이 이 전쟁을 하면  반드시 죽습니다. 하지 마십시오,' 이라니까 '이놈은 항상 나 말하는 거  반대하는 놈이다' 하고서 그걸 거부하고서 전쟁해 가지고 그 전쟁에서 아합 왕이  전사했습니다.

 이것도 그와 같은 그 계시를 말했는데, 이 계시가 요거 하나님이 그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법칙이 그 법칙이요, 마귀가 그 마귀요. 인간들,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법칙, 마귀, 인간들, 하나님의 심판 요 꼭 같은 겁니다 같은  것이기 때문에 어느 시대든지 어느 시대든지 그 사람들이 그 마귀에게 끌려서 그  행신하면 하나님이 그 법 가지고 하나님이 심판해서 그와 같이 망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노아 시대의 심판이나 예수님의 재림 때 심판이나 꼭 같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옛날 지나간 일이 아니고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일이 있은 그대로 결국은 마지막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 이스라엘은 완전히 망했습니다. 주후 칠십 년에 그때에  예루살렘이 망해 가지고서 그때에 패망돼서 세계에 흩어진 민족이 얼마 전에  비로소 이스라엘이 독립을 뭐 하기는 했었습니다. 그 때까지 모든 나라에  유리방황하면서 학살당한 거는 수로 세지 못합니다. 학살당하고 참혹한 것은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도 그렇게 비참한 일을 당했습니다. 또  양심 시대의 종말인 노아 때도 흥수 때에 노아 여덟 식구만 남고 나머지기는 다  전멸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도 이스라엘 종교 말년이나 신령한 이스라엘 종교의 말년이니까 이  일이 내나 그때와 꼭 같은 예언인데, 예루살렘 재앙이 내릴 때에도 그때에 그  모든 하는 일을 가증스럽게 보고서 마음에 답답해서 아무래도 이 멸망받겠다  하는 그 생각을 가지고서 예수님의 하시는 말씀을 기억하고, '안식일에  도망하기를 면케하라' 하는 그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아무래도 우리  이스라엘은 이래 가지고 안 된다. 하나님은 떠났다, 벌써 망한다.' 하는 그것을  생각하고 그때에 잠깐 동안 로마에서 와 가지고 국기를 세워 놓고 그때에 그  로마 황제가 병이 들어서 잠깐 다시 철군하라 하는 그 후퇴 명령이 내렸을 때에  후퇴하니까 이들은 좋다고서 이제 우리가 승리했다고 했는데 그때에 깨달은  사람들은 다 도피했습니다. 다 피난했어요. 피난하고 나머지기 사람들은 다  몰사되고, 그때 피난한 그 사람들이 남아서 유대 민족의 조상이 됐고, 또 그때  교회의 처음 믿는 신자들이 됐습니다.

 우리도 그저 전도지로 가지고서 인사를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우리가 참  절실히 우리가 애통하면서 회개해야 될 죄 하나는 우상입니다. 우상죄를 이걸  회개를 해야 됩니다. 우리는 돈이 우상이 분명히 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분명히 우상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의 사업이나 직장이 분명히 우상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뭐 자기는 아주 유아독존이 우상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우상을 깊이 회개를 하고,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섬긴다  하지마는 정말로 하나님을 생존하신 하나님으로 모든 것을 아시고 감찰하시고  비판하시는 하나님으로 이렇게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으로 이렇게 그저  형식으로 이래 하고 있지 우상은 얼마든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상을 정리하기  전에는 우리가 화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순행하면서 모든 가증스러운 일하는 것을  보고서 마음에 분개한 사람도 있겠고, 가증한 것을 보고서 마음에 울분하게 그래  여기는 사람들 많이 있을 것입니다. 가증스러운 것은 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거.

하나님을 대항하는 일. 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일. 인간들이 인간을  주관하고 있는 일, 모두 다 하나님이 지었고 하나님이 먹이고 하나님이 입히고  하나님이 살리고, 십 분도 하나님이 은혜를 안 주면은 뒈질 인간이 얼마나  참람되게 하나님을 무시하고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마구 방해하고 있는 그것을  아마 사람을 구원하는 사람이면 절실히 느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좀 올바른 권찰일을 볼라 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마음 아피 느낄 것이고, 또 주일학교 반사들도 마음 아피 느낄 것이고  세상에서 뭐 우선 먹고 입는 그것만 가지고, 사람을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야  되겠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해야 되겠다, 하나님에게 사람을  연결시켜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해야 되겠다는 고거  없는 사람은 이 세상은 좋은 세상이지 뭐 인생에서의 그렇게 거리낄 거  없습니다. 가증스럽게 그렇게 다 보여지지를 안합니다. 아주 가장 좋은  세대지요.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순행하며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인하여  가증한 일을 볼 수 있는 자가 복 있습니다. 가증한 일을 할 그 일을 볼 수 있는  자가 자기가 가증해서 떠난 자요 가증의 반대의 운동을 하고 있는 자입니다.

가증의 반대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들이라.

하나님 편에 선 사람.

 그러기 때문에, 제가 말하기를 '어쩌든지 우리 교회는 나이 많은 분이나 젊은  분이나 높은 분이나 낮은 분이나 장로님들이나 꼭 인간 구원에 주력을 합시다.'  그래야 주님이 주기도문에 말씀하신 대로 '네가 남의 죄를 사해 주면 천부께서  너의 죄를 사해 주고' 사해 준다는 그 뜻은 해방이라는 뜻입니다. 네가 다른  사람을 죄에서 해방시켜서 하나님 앞으로 이끌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그 역사를 해 주신다고 말씀하신 약속인 것입니다. '네가  남의 죄를 사해 주지 안하면, 남을 해방시킬라고 애써 주지 안하면 하나님께서도  널 해방시켜 주지 않는다.' 그렇게 말씀하신 그것을 주님이 주기도문에다가  그렇게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주일학교 반사로서 학생을 하나라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고 보면. 사람을 참 하나님의 뜻에 맞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사람으로 이 악한 세상에 물들지 안하고 속화되지 안하고 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사람을 만들라고 하는 것 만치 그 사람은 세상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거슬리고 대적하고 있다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될 것이고, 또 그렇게 하는  자면 그렇게 하는 사람도 알게 될 것이고 말도 알게 뒬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  마음에 대립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대립이 되어지면 처음에는 잘못하면  그것을 밉게 생각하겠습니다. '꼭 저 학생들이 들어서 이 학생은 죽이네. 저  부모가 들어서 저 자녀를 망치네. 저 악한 동무가 들어서 저렇게 하네. 흑은  테레비 저게 들어 가지고서 어쩌든지 사람들을 망치네.' 테레비에 대해서 사람  망치는 거기에 대해서 마음에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런 깨달음의 느낌은 있을리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문화의 것은 좋지마는 그게 들어서 사람의 마음을 솔박 빼뜰어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마음을 기울이야만 뭣이 되는데 인간의 마음을 그게 다  빼뜰어 버려서 뭣 이 인간들은 전부이 마음 다 뺏겼기 때문에 껍데기 고기  덩어리만 그저 허수아비 모양으로 덜렁 덜렁하고 있지 사람의 마음이라 하는  것은 완전히 여기에 뺏기고 저게 뺏기고 전부이 다 뺏겨서 사람은 제 정신  가지고 사는 사람이 없다고 할 만치 어떤 사람은 돈에 뺏겨서 돈에 뺏겨 가지고  제딴에는 돈을 보고서 어짜고 일사천리로 투쟁하니까 자기 정신이 깨끗한  사람으로 알지마는 사람은 돈 가지고 사는 것 아닙니다. 그 사람도 벌써 거기에  홀겨서 벌써 정신 빠진 사람입니다. 명예도 지위도 권세도 다 그런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어쩌든지 이 학생들을 구원하는 그 일을 우리가 힘써서  해봅시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쩌든지 여러분들이 이 일을 예사로  듣지 말고 장로님들 다 주일학교 반사하십시오. 내가 언제 주일학교 반사하라  했더니마는 그 장로들도 주일학교 반사한다고. 장로를 주일학교 반사하라는 것은  장로님을 장로님으로 대우하는 것이요. 장로님이 장로님으로서 또 일장된 장점이  있지마는 아동을 구원하는 데에서 자기가 평생 보지 못할 참 주님으로 더불어  밀접한 밀접한 결합이 될 수 있는 그 생명적인 은혜가 거기에 있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만일 내가 오늘 죽는다 하면은 주님 앞에 설 때에 내가 무슨 일을 한 것을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고 그분에게 떳떳할까? 만일 내가 죽는데 내가, 내가  죽는데, 지금 너는 오늘 간다, 오늘 밤에는 너는 네 영혼을 불러서 세상 뜬다 할  때 주여 날 좀 더 살려 주십시오 할 때에 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은  내가 널 얼마 동안 더 살려 주지 하나님이 만일 그렇게 한다고 하면 여러분들의  양심이 여러분들의 양심의 비판이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일을 하면은 얼마  동안 그 생명을 연장시켜 준다고 해. 그러면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일이  뭐일까? 뭐일까? 생각하면 반드시 여러분들은 이렇게 저렇게 헤매다가  마지막에는 '주님이여 내가 인간 구원에 전폭을 기울이겠습니다' 하는 것이  답안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구원할라 하면 내가 어른을 구원할라 하면 한 사람 구원할라  하면 힘이 많이 들고 이러니까 내가 이제는 남은 때는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다  기울여서 내 힘 있는 대로 학생들을 구원해서 몇 십 명 이렇게 몇 백 명 내가 다  구원해서 내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그 어린 생명이나 부자 생명이나 같은  것이니까 그 한 생명 구원하는 그건 다 같은 것이니까 내가 어쩌든지 많은  생명을 구원해야 주님이 기뻐하실 터이니까 주님이여 나에게 살려 주시면 내가  주일학교 반사 노릇하겠습니다 하는 그것이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서 양심으로  바로 직고가 될 것입니다.

 제가 어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하아 그 사람이 그 ○○교로 갔다고. 그  사람이 어디에 경찰국장을 한 사람이 시 경찰국장 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이거  이 교회로 나올라고 하는 것을 그때 아무 인도하는 사람이 없어 가지고 ○○교로  갔다고 이라면서 원통하게 됐다고 이래서. 참 원통하게 됐다고 이라는데  그라면서 나중에 마지막에 결론을 그런 결론을 지웠습니다. 원통하게 됐으나 그  사람이 그와 같이 된 것도 원통하지마는 오늘 이 길거리에 지저분하게 놀고 있는  그 주일 학생 하나를 내가 인도했으면 인도했을 터인데 그 학생을 내가 인도하지  안해서 그 학생이 예수를 믿지 못하고 있다. 또 이 학생이 인도를 바른 인도를  받지 못해 가지고 ○○○로 갔다 그 학생 하나가 ○○○로 간 것이나 그분이  ○○○로 간 것이나 꼭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는 꼭 같은 가치를  가지고 꼭 같은 그 평가에서 우리는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하는 그것으로서  결론을 지우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든지 지금 주님을 노엽게 한 걸 노를 푸는 것이  무엇인가, 우상을 우리가 회개를 철저하게 합시다. 우상을 철저하게 회개해  우상에 대해서 참 우리에게는 눈물이 흘러야 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우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만이 구원할 수 있는, 노아 홍수 때는  하나님만이 구원할 수 있는 재앙을 내리니까 하나님 구원을 바라고 하나님에게  구원을 부탁하고 하나님 구원만을 바라본 사람은 하나님 이 책임지고 그것을  구원했지마는 하나님 구원 외에 무슨 세상에 있던 어떤 뭐, 그때도 과학이 없는  거 아니요 오만 구원을 다 의지하고 하나님 구원 무시한 사람을 다 하나님께서  그 멸망으로 다 멸망을 시키고 말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럽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당신 욕심이 안 그렇습니까? 우리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사람도 그런  마음 가지지 않습니까? 자기가 모든 것을 다 해 놨는데 다 해 주고 다 전부 다  전부 다 자기 것인데 당신은 아무리 말해도 당신은 듣지 안하고 뭐 이거 있는데  하나님 필요 없어 이거 있는데 하나님 필요 없어 하니까 하나님께서 나만이 필요  있고 나만이 구원할 수 있는 재앙으로 하나님이 심판할 것 아닙니까? 그거  필연한 일 아닙니까? 우리가 다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지 않습니까? 또 성경에  그래 놨었고 성경에 그래 놓으니까 당연하다고 우리가 생각이 돼지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오늘은 내 모든 구하는 것과 바라는 것과 의지하는 것과 내가  높이는 것과 섬기는 것과 위하는 것과 내가 사귀는 것과 내가 모든 간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인지. 무엇이든지 내가 간구하는 대상이 그게 망하면 나도  망합니다. 그게 무능해지면 나도 무능해집니다. 그게 절단남으로 절단 나집니다.

내가 구하는 대상의 그가 완전하면 나도 완전해집니다. 그가 튼튼하면 내가  그분에게 구하라고 해놓고 약속했는데 그분에게 구하는데 왜 그분이 우리를  버리겠습니까? 버리면 당신은 하나님 못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당신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고 그분에게 모든 주권을  가지고 계시고 그분이 주재인 줄 알고 그분을 상대하느냐? 땅 위에 있는 이것  저것을 상대해서 그분을 버리느냐?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 분을 버리면 그것이  멸망할 때에 저도 멸망할 것이요 그게 구원하면 구원 할 것이요 그것이 구원 할  때까지는 구원을 받을 것이요 그것이 멸망할 때는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최종에 그런 것들을 다 멸망을 다 시킵니다. 하나님만이 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지식으로는 알고 있기마는 우리가 할 수 있는데  못하니까 할 수 있는 데도 게을리 해 가지고서 우상 정리를 그렇게 빨리 하지  안하고 느른 느른하고 또 우상을 암만 정리해도 오늘 쏵 다 정리해도 이 시간에  쏵 다 들어설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 또 다 우상이 들어서도 이 시간에 다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정리가 계속돼야 되겠고 이 우상을, 우상을 뭐로  합니까? 우상을 뭐로 만들어 우상하면 다 버려야 됩니까? 우상은 불로 태워야  됩니까? 우상된 그것을 어떻게 해야 우리가 회개가 되는 것입니까? 우상을  어떻게 해야 회개됩니까? 자, 우상을 어떻게 해야 회개됩니까? 우상을 버려야  회개가 됩니까? 그러면 손 들어 보십시도. 또 우상을 내가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선 불로 알고 하나님께서 내 신앙 생활하기에 필요해서  필요하게 해 주신 것 인 줄을 알고 고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선물로 내가 변질을 시키는 그것이 회개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겁니다 이기 우리가 똑똑히 기억해야 됩니다. 예사로 기억하면 안  됩니다. 이거 쉬운 말 아니요. 쉬운말 아니요 이거. 그렇게 쉬운 말이 아닙니다.

이것을 아무나 따나 그렇게 알아지는 말이 아니오. 우상을 선물로 바꿔야 된다는  것을 이것을 알면 힘이 됩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도 귀너머 들어 버리고 또  모르는 사람은 모릅니다. 만 명이 있는데 만명 중에 한 사람도 모르는 사람 만  명까지 있는데 만 명 중에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만 명이  다 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전도지를 전할 때에 자꾸 전합시다. 전해 보면 여러분들이  유익을 볼 것입니다. 받을 때에 '아, 내가 과연 이런 내가 그 회개의 눈물을  내가 흘리고 있나? 오늘은 하나님의 진노가 오면 어떤 징계의 그 무서운 무시  무시한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이 임할 것인데 그런 재앙을 내가 오늘  생각해 봤나? 그런 재앙 속에 내가 들어갈 자로 알아봤나? 그런 재앙 속에 내가  파묻힐 자로 알고 내가 회개를 해 봤나?' 자기를 여러번 받을 때마다 반성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주면서 '나는 내가 이래도 안 전할 수 없어 주지만 피차에  이와 같이 하지 안한 것이지. 나는 주면서 내가 또 내가 이런 사람이 됐나? 내가  지금 전하기만 하고 이래 내가 하지 안하면 이 가증스러운 사람이지 다른  사람에게 전도지까지 전하면서 내가 이런 일 하지 안하면 이것이 얼마나 지금  하나님 앞에 진노를 더 하겠느냐. 이 가증스럽지 아니하냐?' 또 우리가 스스로  회개를 할 수가 있습니다.

 또. 안 믿는 사람에게 자꾸 전도지를 주면서 중이든지 뭐 이든지 자꾸  전합시다. 천하의 다른 이름으로서는 구원 얻을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성경에 근거해서 하는 것이지 성경에 그 본문대로의 고대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알아 듣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성경에 그 이역을 해서 그렇게 전도지에 베낀  것입니다. 자꾸 전합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노를 푸는 데에 참 중요한 것입니다.

그라고 하나님이 다 보십니다.

 그러면, 그 모든 가증스러운 걸 보고 우리는 처음에 얼핏하면 미워합니다.

미워하기 쉽습니다. 네. 미워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사람을  구원할려 할 때에 악의 세력이 구원을 방해할 때에 미워하는 것도 좋습니다.

주님이 그것도 무심한 것 보담은 기뻐합니다. 미워하면 조금 있으면 성령이 와서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아. 그 해위를 미워해야 되지 사람까지 미워하면  안된다' 하는 그 깨달음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행위를 미워하고, 행위를  미워하고 나서 좀 더 생각하면 좀더 생각하면 사람들은 다 이렇게 참 자멸할 줄  모르고 어리석다. 자기 망할 줄 모르고 이렇게 어리석게 자멸할 줄 모르고  이렇게 자꾸 하나님을 대적하니까 망할 줄도 모르고 대적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참 인생이 불쌍하다고 하는 그 말이 나오지 거기에 대해서 괘씸함이나 분함이나  그런 것은 잠시 후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탄식해서 간구로, '아니다. 낙망할게 아니다. 주님에게 내가  이거 내 할 일이 이거 아닌가? 주님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기도대로 모든 거  이루어 줄라 했으니까 내가 당신의 약속을 믿고 당신의 이름으로 구하면 다  시행할려 했으니까 나는 여기에서 할 일이 뭐이냐? 이렇게 대적하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대적하니 이들을 다 회개시켜 달라고 나할 일 이 일이다. 나 할  일이니 내가 이 일을 하지 못한 이것이 지금 이렇게 쌓여져서 이런 것이니까  주여 내가 불충입니다.' 하는 이것으로서 마음에 그 마음에 탄식하고 대적하고  탄식하고 불쌍히 여기고 간구하고 자기의 부족과 그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눈물  흘리는 그 자를 이마에 먹칠을 해라. 무슨 먹으로? 성경 기록한 서기관의 먹통  먹으로, 성경, 성경 기록한 그 먹으로 표를 해라. 그것이 뭐이냐? 성경과  부합했다 그말이오. 성경과 연결됐다 그말이오. 성경과 연결됐다.

 그걸 표를 해놓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 뒤에 그 사람들에게 독촉해서  쳐라. 치는 데는 나이 많은 늙은이로부터 먼저 죽여라. 말했습니다. 우리 늙은이  되는 사람들 정신 차립시다. 나이 많은 사람들. 예수 믿어서 신앙 생활에 연령이  높아져 갈수록 이 사람은 점점 악해져 갑니다. 이상합니다.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도 굉장히 악해졌습니다. 노아 시대에 그 종교 말년에도 굉장히  강퍅해지고 악해졌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악해지고 강퍅해집니다. 이제는  뻔뻔해서 뭐 하나님을 우상이니 뭐 하나님이니 하는 소리는 꿈에 뭐 옛날 꼭  호랑이 담배 풀 때 하는 얘기같이 그래 들려지고 뭐 생각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표 받은 사람에게는 가까이 가지도 말라 했습니다. 가까 이 가지  말라. 표 받은 자에게는 그 이마에 표가 찍힌 자에게는 가까이 가지 말라. 뮐로?  재앙아 가까이 가지 말라. 너희들이 치는 그 살륙의 재앙을 가지고 내려가는  자야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가지 말아라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뭐 다른 사람 다 망하고 저만 살라 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천인  만인이 내 옆에서 엎드려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 하는 그  말씀도 내나 이와 같은 말씀인 것입니다. 캄보디아에서 그렇게 미군이  구원하려고 하니까 '당신들이 우리나라를 책임지고 있다가서 우리 민족을 다  공산주의에게 던져서 다 죽구로 만들고 하는데 내가 이 민족 두고 내가 당신  따라가 나만 혼자 살면 뭐 합니까? 나는 같이 죽고 안 따라 가겠습니다.' 그것이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요, 창자 가 있는 말이요. 미국에 대해서 대단히 섭섭해서  대항하는 그 호소가 영원히 호소 있습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그 호소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쩌든지 몰라서 하는 것이니까 이렇게 해서 우리가 회개의  본이 돼야 되겠고 또 우리가 우리가 모든 재앙을 먼저 안자가 힘써 가지고서  여기에서 면하도록 해야 될 것이고, 또 앞으로 우리나라가 우상 숭배에 이런  것을 나중에 후상 숭배해 가지고서 순교하는 것도 좋지마는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미리부터 방비해 가지고 그런 것이 올 때에 모두 다 씩씩하게 '아. 이거는 못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위반되기 때문에 못합니다.' '안 하면 이놈 죽인다'  '아, 죽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이거 하면은 삼사 대까지 자손이 망한다 했는데  나와 내 자손이 삼사 대 망하면 나로서는 좋을게 뭐 있습니까? 아, 내 삼사 대  망하면 나도 좋을 거 없고 이러니까 망할 일을 어떻게 합니까? 못 합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서 그런 모두 하나님의 노한 일을 와도 하지 안하고 그러면  하나님은 더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이렇게 하는 제 신앙 경험에서 자꾸 오전의 말씀같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두어서 참 하나님과 동행은 참 좋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무슨  예를 들면은 여러분들 요만한 요 꿀밤 하나만한 형체라도 가지고 나와 같이  하시면 혹 내게 걸릴 것이 있을 것입니다. 꿀밤한 개 만한 형체를 가지고라도  나와 같이 하신다고 하면 내게 거리낄 데가 있고 내게 좀 방해될 때도 있고 좀  이렇게 거석할 때 있지마는 주님은 무형입니다. 꿀밤 한 개만한 그런 형체도  없오. 암만 해야 내게 걸릴게 하나도 없오.

 암만 해도 걸릴 거 없으면서 나의 진지의 지혜로 내게 와 계십니다. 전지의  지혜로, 내가 그분을 사모하고 동행하면 그분을 아무 무형의 전지로 더불어 내가  같이 하고 그분은 전지의 전부요 전지의 전부요 전능의 전부요 안전의 전부요  사랑의 전부요 은혜의 전부요 성공의 전부요 횡강의 전부요 전부인데, 그분  그분과 나와의 암만 동행해 봤자 그분에게 거리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칠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게 방해될게 하나도 없어요 눕고 구부는 데도 하나도 방해가  안 돼요. 내가 일하는 데도 하나도 방해가 안돼요.

 그분 같이 하면 그분의 전지의 지혜가 내가 올 것, 전능의 능력이 나를  도와주실 것 그분의 완전한 신성이 내 인격성을 소생시켜서 그 형상화 시켜 주실  것 나에게 내가 모르는 깜깜 어두운 것을 모든 것을 환하게 보게 해 줄 것, 내가  공연히 두려워하지 안 할 것 뻘뻘 두려워서 겁을 낼 때에 그분이 나에게 담대와  평안을 주실 것. 내가 내 혼자는 견딜 수 없어도 고문과 고행이든지 너무 복잡한  자기 의무와 책임이든지 고달픈 피곤한 일이든지 할 때 내가 견디지 못한 그런  일에 그분과 동행하면 그분이 전능한 능력으로서 나를 도와주시니까 나에게 찬고  견딜 힘을 주시고, 또 도와 줄 수 있고, 이러기 때문에 만고에 해되지 않을 뿐  해될 거 뭐 뭐 그분을 마귀 요놈이 유혹시켜 가지고서 자꾸 여러분들 물욕에  나는 참자기가 아닙니다. 물욕의 자기는 참 자기가 아니요 명예욕의 자기도 자기  아니요 안일욕의 자기도 자기 아니요 공포의 자기도 자기 아니요 비겁의 자기도  자기 아니요 허영의 자기도 자기 아니요 허욕의 자기도 자기 아니요 교만의  자기도 자기 아니요 망령의 자기도 자기 아니요 방종 방탕의 자기도 자기  아닙니다. 그건 자기 아니오. 우리는, 우리는 어떤 자냐? 우리는 영이, 영이  하나님과 끊어지니까 아무 기능으로서는 아무 기능 없는 무기능,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죽었오. 무기능의 존재인데 무기능의 존재가 성령으로 이것이 살아났고  진리로 살아났고 십자가의 보배피 공로로 살아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은 진리의 생각이 내 생각이요 진리 욕심이 내  욕심이요 진리의 취미가 내 취미요 진리의 두려움이 내 두려움이요 주님의  소원이 내 소원이요 진리의 담력이 내 담력이요, 영감의 담력이 내 것이요  진리의 쾌락이 내 것이요 진리의 소원이 내 것이요 주님의 십자가의 보배피  공로, 사죄의 소원, 무죄의 소원 하나님에게 피동되려는 소원, 의의 소원. 의의  욕심, 의의 행동, 의의 기쁨 의의 평강, 의의 주장, 우리는 진리와 성령과 주의  피로 살아난 자이기 때문에 이 셋으로만 움직여지는 것이 참내입니다 이 셋으로  움직이지 않는 거는 전부이 옛사람이 요 원수입니다. 이놈이 우리의 적이기  때문에 이놈을 우리가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잠깐 고요한 이때에 우리가 이런 준비를 우리가 깨끗이 해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우상 버릴 것. 우리 마음이 주님과 동행할 것, 주님과 함께  뭣이든지. 길을 가면서도 그분은 뭐 우리에게 아무 거리낌 없어 조그만도 교만이  없오. 교만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 거슬릴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잘못돼서도 잘못해도 잘못됐으면 잘못한대로 그대로 가만히 고만  묵인하고 고대로 둬둡니다. 옳게 하면 옳으면 도와줍니다. 내가 아무리  엉망진창을 당신에게 구해도 당신이 구하면 안 들어 주시고 그대로 둡니다. 네가  이걸 구하노 하면서 우리에게 맡겨 주지 않습니다. 구하면 안 들어 주시고  그대로 둬둡니다. 그라다가 한내끼라도 옳은 걸 구하면 얼른 들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러니까 그분은 우리에게 거리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길을 가면서도 주님과 동행하면 '주님 내가 이 가다가서 낙상 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아, 주님 내가 차사고에 다치지 않게 해 주옵소서 피곤치  않게 해 주옵소서.' '주님이 길가는데 내가 뭘 해야 되나?'당신에게 묻고  의논하고 간구하고,  또. 당신에게 가면서 심심하니까 둘이 가면서 주님 그 주님이 나한테 한거 내가  감사할게 뭐입니까? 좀 이거 주님이 나에게 은혜 베풀 때 내가 감사할 거  모릅니다. 감사할 거 뭐입니까? 물으면 당신이 차차 차차 눈을 열어서 가르쳐 줄  때 '아 주여 감사합니다. 내가 이제까지 감사 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도  당신을 얼마든지. 사귀어서 동행할 수가 있고.

 또 우리가 당신에게 '혹 내가 주님에게 노여워한게 뭐 있습니까?' 노여워한 거  하나 둘 찾으니 '아, 이거 내가 노엽게 했습니다. 이거 주님 용서해 주웁소서.

자복합니다. 주님의 피공로에 고하면 사해 주옵소서.' 노여워 한 걸 우리가 주님  앞에 사함을 구하는 것으로 동행할 수 있고,  또. 주님에게 '내 모든 사정 내게 요새 지금 이런 사정이 있습니다. 내가 이런  재를 저질렀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그  사건이 있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됩니까? 모든 사정을 당신에게 애낌 없이  가리움 없이 다 통 털어 놓고서 의논할 수 있습니다. 물어도 당신은 뭐 묻는다고  해 가지고 그거 가지고 무슨 소문을 내어서 나에게 악용하지 않습니다. 그분에게  물을 때에. 내가 물어서 바로 가르쳐 줄 때에 내가 들으면 축복 주시고, 바로  가르쳐 주셔도 안 들으면 그냥 또 참고 그대로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도 만 가지의 해는 하나도 없습니다. 해는 하나도 주지는 않는 이  친구입니다. 이 친구요, 이 참 좋은분이 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라면서 내게 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거 이렇게 해 주십시오. 저렇게 해  주십시오.' 할 때에 그분이 동행해서 그분보다 더 좋은 친구가 없고 미쁜 친구가  없고 든든한 분 없고, 그분만치 내가 지도받을 만한 분이 없고 그분에게보다 더  의논할 상대가 없고, 그분에게보다 더 내가 무엇을 맡겨 둘 만한 분 없고 이런  좋은 친구요 참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지혜의  권능이오. 고린도전서에 말한 '그는 우리들의 지혜라' 했습니다. '우리들의  능력이라' 했습니다. '우리들의 평강이라' 했습니다. '우리들의 생명이라'  했습니다.

 이런고로, 이 주님을 버리고 생명의 근원되신 주님을 버리고 터진 웅덩이를  너희들이 만들었으니 이 웅덩이는 물을 저축할 수 없는 웅덩이라. 이러기 때문에  너거 이 두 가지 죄 때문에 망한다. 터진 웅덩이 만든 그것이 말하면 그게 내나  우상 만든 것입니다. 우상 만든 것이오. 이 죄를 우리가 회개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려고 하다 보면 여러분들이나 나나 제 경험으로서 너무 자꾸  엉망진창의 실수 많고 자꾸 실수와 실족이 많기 때문에 여러분들이나 내나 다  같은 사람인 줄 알고 오후에 이 성구를 봉독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 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했습니다. 주님이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은 우리의 연약도 아시고 우리의 실수도 아시고 우리의 참  허무한 걸 다 아십니다.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구가, 저는 '네 죄가 주흥  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회어지고 양털같이 회어지고 나와 의논하면 땅에서  아름다운 소산을 먹으리라' 하는 이 성구가 아니면 당신 앞에 서지를 못하겠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신다고 하신 이 용서라는 이 용서의 주님이  아니면 우리는 주님 앞에 대할 수 없고 살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주님이 우리를 관대하게 우리를 용서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넘어져도 하루 천 번 넘어져도 일어서면 주님은 우리를 환영하십니다.

이러니까 이 주님이 계시니까 얼마든지 넘어졌으면 일어서고, 그러나 우리가  만일 이와 같이 주님이 이렇게 우리를 용서하시니까 용서하시니 뭐 아무나따나  나쁘게 하고라도 그분은 다 용서하는 분이니까 상관없다. 이 선을 이 사랑을  악용을 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복이 없고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많은  세윌을 제가 허송하고 그에게 이루어질 건설구원은 다 뺏기고마는 그런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의 이 사랑을 바라면서 어쩌든지 우상 회개를 어쩌든지  빨리 회개하고 정리하고. 또 우리의 마음을 주님에게 바쳐서 '너희들의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 하였도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라. 너거가 행한 대로 갚는데 너거가 행하는 것은 몸뚱이 행하는 거  그거 아니고 너의 뜻과 마음이다.'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목숨을 다해서 당신을 사랑하라고' 처음  말했고 제일 귀한 것을 마음이라 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그 다음에  '목숨을 다하고' 그 다음에 '행동인 힘을 다하고'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어쩌든지 우상, 주님 배반하고, 우리는 뭐 주님하고 이렇게  속살거리다가 뭐 무슨 소리만 하나 꽝 나도 그만 주님 잊어버려 버리고 주님  내놓고 그만 그 소리하고 맞붙어 가지고 하루 종일도 지냅니다. 우리는 주님하고  이렇게 약속하고 그분이 우리의 생명이요 전부인 줄 알면서도 주님과 같이  속삭거려서 기도하고 깊은 교제 관계를 맺고도 사람 하나 만나면 그만 그 사람  만나면 그만 주님을 던져 버립니다. 주님 잊어버렸어. 주님 던져 버려요. 던져  버리고 그 사람하고, 얼마나 좋았든지 그 사람하고 만나면 그 사건하고 만나면  그 돈하고 만나면 그 물건하고 만나면 얼마나 좋았든지 하루 종일 주님 한 번도  생각 안 하고 다 버려 버리고 거기에서 접촉해서 사니 이것이 뭐이냐? 이것이  음녀입니다. 이것이 자기가 애착해서 자기에게 필요해서 애착해서 유혹 받았으면  음녀요, 그게 두려워서 내 생사화복이 거기에 있다고 내가 높여서 그게 나보다  커서 내가 거기에 정복을 당했으면 그것이 간부입니다.

 우리는 똑똑히 이 기회에 회개를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풀고 우리가 영육의 복  받는 사람됩시다. 영육에 복 받는 사람, 우리는 잘 살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일이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렇게 교회서 연보 이래 많이  나오는데 연보를 다 어짜는고' 말하지마는 우리는 아직도 빚이 있습니다.

현상유지를 못 하는 셈입니다. 연보 가지고. 연보 가지고 그러면 목사가 다  먹는가? 저 한 달에 백 오십만 원입니다. 백 오십만 원. 내 활동비까지 다  합해서 백 오십만원이오. 백 오십만 원인데 십 오만씩 십 만 원씩 오만 원씩  이렇게 내가 안 주면 내가 안 주면 교회가 안 될 곳이 있기 때문에 내가 아무도  모르게 내가 사적으로 내가 주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아무도 먹는 사람 없오.

 여기도 뭐 목사님 남권찰님들 목사님들 찍해야 한 달에 십 삼 만원 십 사 만원  이거 받고 있습니다. 반사 선생님들 뭐 아이 업고 돌아다니며 그렇게 힘써도  칠만 원 팔만 원 그겁니다. 이 사찰님들은 벌써 근 십년이나 돼서 이 예배당  닦고 소지하느라고 애를 쓰지마는 육만 오천 원 칠만 원 칠만 오천 원 되는 분이  제일 높은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돈을 그렇게 마음대로 쓰지를  않습니다.

 그래도, 저 당리에 그 분교로 그 학생들이 많으니까 그 분교에서 예배를 드려야  되는데 분교가 좋은 장소가 나와 가지고서 한 뭐 이십 평인가 뭐 얼마 되는가,  사십 평인가 된다 하는데 그 전세가 팔백만 원이라. 이래서 하기는 했지마는  그것도 또 팔백만 원 또 빚내야 됩니다. 빚을 내야 돼. 빚을 내야지 딴거는 할  수가 없어. 그래서 인제 내가 기도 중에 그걸 생각했습니다. 저 목장 하던  목장이 저리 갔으니까 목장을 그거 팔아야 되겠다. 목장을 팔면은 얼마나 갈까?  또 모든 밭이 모두 있으니까 그게 한 이십 평 되니까 그것도 팔아야 되겠다, 또  연보로 들어온 집이 들어 왔으니까 그것도 팔아야 되겠다, 그런 걸 팔아  가지고서 좀 우선 급한 것을 메꿔 나갈까 그런 생각도 있습니다.

 이거 다 우리가 잘못 살아 그래요. 우리가 잘못 살아서, 잘못 살아서우리가 다  궁핍하니까 하나님 앞에 연보를 내지 못하지 아, 십일조 남았으면 수입의 십분지  일은 낼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가난하게 궁핍해서 축복이 없어 이렇게  모두 곤고하게 살고 있다 말이오. 하나님의 축복이 왔으면 우리가 넉넉하게  연보도 넉넉해서 복음 운동하는데 얼마든지 경제적 어려움이 없을 것 아닙니까?  한번 잘 살아 봅시다. 잘 살아서 환난도 면하고 금생에도 복음 운동 얼마든지  하고 영광의 구원 장만해 가지고 영원무궁 세계에도 천한 자로 살지 말고 벗은  자로 살지 말고 영광 있는 자로 그렇게 영원히 살 이 소망이 우리에게 있으니까  어쩌든지 힘써 한번 잘 살아 봅시다. 잘 살아.

 실수하면 이 두 가지 죄만 회개하면 돼요. 두 가지 죄만 회개하고 충성하면  돼요. 아, 소망 없는 세상 소망만 보고도 잘 사는데 우리 잘 사는 것이 세상에도  유익이 되지 무궁세계에도 유익이 되니까 세상과 무궁세계에 유익 되는 그  생애를 와 우리가 게을리 할 것입니까? 왜 우리가 이 욕망 가운데에서 감사와  기쁨으로서 열심을 품어서 살지 못하겠습니까? 얼마든지 우리는 충성되이 살고도  마음에 충성해도 갈급이 있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해도 아,  충성 못 했다. 좀 더 해야 되겠다 하는 그래 가지고 병이 나는 것이 모두 다  하나님의 종들이오. 우리 교회 권사님들 다 너무 충성하다가 다 병난  사람들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마에 먹물표를 받읍시다. 먹물표를 받읍시다. 우리에게 눈물과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를 보는 눈이 우리에게 쉬지 안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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