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2 18:45
욥의 자녀들은 순교자
1984. 6. 29. 금새
본문 : 욥기 1장 1절∼5절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 하였더라.
짐승을 잡아서 드리는 제사 중에는 네 가지가 있었으니 하나는 속죄제요. 또 하나는 속건제 또 하나는 화목제, 하나는 번제 이래서 제사가 넷이 있었습니다.
속죄제는 죄를 범했을 때에 죄 사함을 얻기 위해서 그 죄를 짐승에다가 전가시키고, 하나님 앞에 그 짐승이 죗값으로 죽음으로 죄 지은 자기가 사유함 받는 것이 속죄제요, 속건제는 모르고 지은 죄, 혹 실수해서 지은 죄 속건제.
허물이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을 생각날 때에 짐승에게 그 허물 범한 사람이 머리 위에 안수해서 그 짐승에게 자기의 허물 된 죄를 부담을 시켜 가지고 짐승이 대신 죽음으로써 이제, 그 허물을 속하는 것이 속건제입니다.
또 화목제는 불목이 있을 때에 그 불목을 하나님 앞에 사함 받기 위해서 짐승에게 불목된 것을 책임을 지워서 짐승이 대신 죽음으로써 화목이 되어지는 화목제가 있고, 또 번제는 자기의 전부를 다 하나님에게 드린다는 그런 소원하는 뜻을 가지고 번제를 드립니다. 다른 제사는 다 드릴 때에 불로 사뤄서 드리는, 다 화제는 화제인데 그중에 번제는 그 짐승의 전부를 다 불에 사뤄서 드리는 것이 번제요, 다른 제사는 불로 사뤄서 드리는 것도 있고 또 거기서 사루지 안하고 버리는 것도 있고 그렇게 다 드리는 것이 좀 번제와 다릅니다. 번제는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드리는 뜻의 번제입니다. 그러면, 속죄제가 있어서 속죄하고, 속건제가 있어서 속건하고, 또 화목제가 있어서 화목하고 깨끗하게 된 것을 하나님에게 다 드리는 그것을 가리켜서 번제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이 제물은, 짐승이 그렇게 사람의 모든 것을 다 대신 담당하고 죽는 그 짐승은 예수님을 예표해서 그렇게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에 짐승으로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이 속죄, 속건, 화목, 번제의 효력을 입습니다. 입어서, 입고 있으나 그 효력이 늘 미결돼 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 부활하실 때에 그때에 이 대속의 효력이 완성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휘장이 갈라지고 바위가 터지고 지진이 나고 또 부활하실 그때에 죽음 가운데서, 죽은 무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죽었을 때에 무덤이 열리고 자던 성인들이 살아났으나 아직까지 무덤 밖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무덤 밖에 나와서 거룩한 성으로 들어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욥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고, 또 '사울 왕이 사무엘을 점쟁이를 통해서 불러 올려 가지고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해서 온갖 예언을 했는데 그것이 뭐입니까?' 그렇게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런 것은 뭐 난해절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전히 마귀가 연극을 한 것입니다. 구약 성도나 신약 성도들이 한 번 세상을 떠나면 세상에 나타나지 못합니다. 못하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그때에 나타나지 그전에는 나타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순전히 사울 왕도 마귀에게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고, 또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그 점쟁이가 그렇게 마신을 불러 가지고 마신이 사무엘처럼 그때에 말했습니다. 그거는 마신들이 과거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고 미래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데 다만 미래사에 대해서는 비밀을 그들이 캐치 하지를 못합니다. 본인이 모르면 본인에게 대한 것을 마귀는 모릅니다. 그러나 본인이 아는 것은 마귀가 알 수 있습니다. 왜? 마귀가 마음 안에 들어와서 그 사람 마음을 다 감찰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아는 것은 다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점치는 사람들이 자기가 자기만 알고 있는 일을 그 마신 붙은 점쟁이에게 가서 점을 하면, 마신에게 가서 점을 하면 자기만 아는 밀을, 마신이 척척 말해 주면 '야, 이거 내게 대한 모든 것을 다 아니까 이 점쟁이에게 내 장래를 물으면 환하게 다 알겠다.' 그만 거기에 미혹 받아 가지고 '내 장래가 어찌 됩니까?' 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게 사로잡았기 때문에 형편에 따라서 마음대로 말합니다. 이렇고 저렇고 이렇고 저렇고 말해 재낍니다. 그러면, 그 말을 듣고 그런 줄 알고 그래 가지고 속는 것이 점치는 자들의 속는 것입니다.
그 점쟁이는 마신이 붙어서 다 그렇게 미친 것인데, 정상이 아닌, 사람이 비정상의 미치광이가 되면 이제 점쟁이가 되는 것인데 그 점쟁이가 되면 그 본인, 점하러 온 사람 그 본인이 알고 있는 것은 그 마신이 알지만 본인이 모르는 것은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거는 뭐이냐? 그 본인의 모든 지성 이성을 벌써 마귀가 사로잡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때에 언제 한번 미신을 없앨라고, 점쟁이 없앨라고 왜정 시대에도 그 걸 많이 일본 정부에서 애를 썼습니다. 그 점쟁이들을 불러다 놓고, 경찰서 불러 놓고 물으면 점쟁이가 다 안다 그거요. 이래 뭐 말하니까 '아이구' 이렇게 뭘 바로 미래사를 알고 은밀을 아는 이 점쟁이를 멸할 수 없다.' 이랬는데, 그때 어떤 믿는 사람 하나가 그걸 깨닫고 말하기를 '그거는 그가 그 사람이 아는 것을 물으면 잘 알지만 모르는 것을 물으면 모른다. 한번 시험해 봐라.' 이라면서 콩을 이래 딱 모르게 딱 열 개를 쥐고 딱 내면서 '몇 개고?' 하니까 '열 개' 딱 들어 맞추거든. 모두 탄복을 했다 그 말이오. 그런데 그 본인이 푹 집어 가지고, 몇 개인지 모르고 푹 집어 가지고 '몇 개고?' 이라니까 못 맞혀요, 그래서 '아, 이거 인간들이 완전히 마귀에게 사로잡혀 가지고 이용당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그걸 깨달아 그때 마귀가 기독자의 신앙가의 말한 것으로 대파괴를 당했었습니다.
이 사무엘에 대해서도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욥에 대해서도 '욥이 이렇게 의인인데 왜 이렇게 욥의 아들이 이렇게 당장에 십 남매가, 십 남매가 다 몰살을 당해 버리고 이렇게 재산도 다 이렇게 전멸을 당했는가?' 이래서 욥이 그런 환난 가운데서도 참고 견디는 그 신앙은 아름다우니까 그 신앙은 본받을 만하다.
그러나 욥이 당한 그런 일을 당할까 두려워해서 다 욥의 신앙을 본받으라고 말했지만 욥의 신앙은 다 징그럽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는, 그렇게 형편이 된 사람에게 욥을 말해 주면서 참고 견디라고는 할 수 있지만 욥의 신앙을 원하는 사람은 잘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난해절입니다.
내가 이 왜 설교를 하게 됐는고 하니 어제인가 언제 어떤 사람들이 있는 데 욥에 대한 것을. 그 무슨 뭐 누구 얘기를 하기 때문에 욥을 들어서 욥이 이렇고 이렇고 그 자녀들이, 다 이렇게 해서 죽었는데 그 욥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 가정에 이런 이런 일이 있고 할 때마다 무슨, 자녀들에게 무슨 복잡한 일이든지 기쁜 일이든지 어떤 무슨 별스러운 그런 일들이 있으면 반드시 그 뒤에는 욥이 하나님 앞에 속죄제 속건제 이 화목제를 드리고 그 다음에 마지막에는 낱낱이 그 자녀의 수대로 번제를 드렸다. 그 욥의,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그래서 욥의 행사로써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을 말하니까 그 사람이 그 말을 이해를 못 해요 그저 말하는 대로 듣기는 들어도 '그 참 복되다.' 이렇게 이해는 못 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이 교인들이 다 이렇지 않나?' 해서 오늘 아침에 이 설교를 하게 됐습니다.
욥의 아들은 욥의 십 남매 아들은 깨끗한 순교자입니다. 깨끗한 순교자. 또 욥의 재물은 하나도 그거는 없어지지 안하고 그 재물은 가진 것 그게 전부 다 하늘 창고에 다 쌓이게 됐습니다. 그러면, 소유도 자녀도 다 하늘 창고에 하늘나라에 다 들어가게 되는 이렇게 한목 욥이 평생 소원하는 대로의 소원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루어졌지만 욥도 거기까지는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깊은 사랑으로, 하나님의 지극히 큰 은혜로 일생 동안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조심해서 살고, 또 악에서, 자기주장을 떠나서 하나님 중심 위주로 그렇게 사는 그 깨끗한 그 행사 한 욥에게 대해서 이렇게 후대하셨다 하는 그것은 욥이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후대하는 것을 깨닫지는 못하고 그는 보편적으로 생각을 했었고, 이러니까, 보편적으로 생각하니까 자기 밖의 그 자녀나 소유에 대해서 하나님이 제물로 받으실 때에는 그가 범죄하지 안하고 일반적 해석을 가지고 '하나님이 내게 주셨던 것 하나님이 가지고 가시니까 내게 있으나 가나 다 하나님의 것이니 그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느냐?' 이렇게만 말했는데, 자기 몸에 대해서 하나님이 제물로 받으시는 이런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는 욥이 만족하지를 못하고 거기서 여러 가지로 불만 불평을 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마지막에는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이 자기에게 소속한 이 가족들의 모든 매일 매일의 그 생활을 대해서' '혹 하나님 앞에 잘못됐는가?' 해서, 매일 자녀가 혹은 잘못 됐는가 싶을 때에는 속죄제를 드렸고, 속건제를 드렸고 또 화목제를 드렸고, 또 마지막이 번제인데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세 가지 제사는 다 잘못됨이 있을 때에 잘못됨을 사유함 받는 것이 세 가지 제사요, 번제는 깨끗해진 것을 하나님에게 다 바쳐서 하나님이 다 받으시게 하는 바치는 제사가 번제입니다. 이 번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속하신 제사를 드렸는데 그 제사의 각 부분 부분, 요소 요소 하나도 빠짐없이 대속의 전부를 하나님 앞에서 다 입는 제사입니다. 다 바치는 제사인 동시에 하나님의 바치진 그 은혜를 자기네들이 다 받는 것입니다. 번제는 다 드리는 것인데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다 받는 것이 그것이 번제입니다.
이래서, 제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으로 보여지나 실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자기들이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은 다 사람 지각으로는 드리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 앞에 받는 것이다 하는 것을 이 제사에서 잘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연보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내 돈을 바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성경을 깨닫지 못하고 하는 사람이오. 자기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보관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은 보관하고 있는 것을 영영히 자기 것으로 하나님에게 이제 허락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에게 연보하지 안한 것은 그것은 자기가 보관하고 있는 것이니까 세상을 그대로 뜨면 자기는 그만 다 보관한 것을 내놔야 됩니다. 그러나 연보한 것은 그것은 영원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달라는 그 요구를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에게 다 바친 것은 하나님의 것을 보관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에게 영영히 자기의 개인 소유로 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증거하려는 것은 그 욥의 소유와 욥의 모든 자녀가 평상 소원하는 대로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져서 그것이 깨끗한 다 제물이 되었고 깨끗한 다 순교자들이다 하는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말하려는 것입니다.
이것도 또 나가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단적으로 '그런 어디, 그 욥이 시험물의 이용은 당했지만 어디 그게 순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순교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걸 알지 못합니다. 순교라 하는 것은 범죄로 죽지 안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 깨끗한 것이 이용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 앞에 물건은 헌물이요 생명을 바친 것은 그것은 순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 깨끗이 다 순교의 제물이 되고 헌물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걸 여러분들이 깨닫고 나가서 알지도 못하면서 가 가지고 떡 이런 말 해 가지고 그 사람들한테 말도 못 당하고 지혜도 못 당하고 또 지식의 범위도 못 당하면 그 사람들한테 속절히 정죄를 받아 가지고 이래 가지고 봐라, 이 백 목사가 이렇게 가르치는 것은 이런 걸 이래 가르치니까 잘못이 아니냐? 이단이라.' 이라면 그리 넘어간다 그 말이오.
대구에 있는 목사님들이 주암산 기도원에 거기 가서 따라다니면서 나와서 목사님들이 보고 '우리가 예수 새로 믿어야 되겠다. 우리가 다 깨달은 것이 잘못이다. 그래 가지고 큰 변동이 일어났었는데 그건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렇고 저렇고 말하니까 그만. '아 그게 틀렸다.' 이래 가지고, 저거가 틀리고 내가 말하는 것이 맞다고 이렇게 하면 저거는 다 새로 일학년으로 입학을 해야 되니까 참 근심을 하고 가서 물었는데, 물으니까 그 사람들이 '아. 백 목사 말하는 게 틀렸다. 이게 맞다.' 이라니까 '그러면 그렇지.' 하고 뒤에 와서 물어 보지도 많고 달아나 버리고, 몰아가 버리고 말았다 말입니다. 돌아가 버리고 말았어. 옛날 제사장 서기관들이 다 꼭 그와 같은 성격을 가졌었던 것입니다.
이것도 공연히 알지도 못하고 가 가지고 그런 얘기를 하면 '이렇고 이런데 틀리지 안했느냐?' 하면 '그래, 틀렸다. 아참 그 교회 가지 마라. 그 교회는 이단을 가르치는 교회, 그런데 가지 마라.' 이래 가지고 말하면 그만 미혹 받아 안 간다고. 이단이 아니라 정통 중의 정통입니다. 똑똑히 요대로만 믿어! 눈이 밝고 귀가 밝아, 그걸 믿으면. 어리석은 미혹 받지 말라 말이오. 그러니까, 가 가지고 알지도 못하고 뭐 이렇다고 또 그러 이야기를 해 가지고 도리어 정죄 받고 오지를 말라 그거요.
욥의 아들과 물건은 욥의 그 신앙을 인해서 하나님께서 천추만대에 복음을 위해서 이용할 수 있는 복음 위한 제물이 되어졌고, 그는 깨끗한 사람들이요 하나님이 그 가족은 아주 동방에서는 제일 크고 깨끗한 의인이라고 그렇게 자랑할 만한 사람의 자녀들인데 한목 그와 같이 된 것은 뭐이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죄 없는 깨끗한 제물이 하나님에게 완전히 바쳐져서 이용된 것입니다. 요것을 단단히 깨달아야 돼요. 그것은 알리기 위해서 하는 말이고 오늘 아침에 내가 소원하는 것은, 그것은 상식으로 신앙 상식으로 알아야 하고, 그래서 욥이 그렇게 깨끗하게 산 것이 '아이구. 욥과 같이 될까 겁난다.' 욥과 같이 될까 겁난다 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모든 성도들이라 그 말이오. 왜? 요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다 그래요. 목사들마다 요렇게 생각하고 있는 목사들이 백의 구십구는 될 수가 있어. '아, 욥같이 되면 좋겠느냐?' '욥의 그 인내, 욥의 참고 견디는 것 참 아주 본받는 그것은 그런 형편 됐을 때에는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만 나도 욥의 자녀같이 욥의 모든 소유물같이 한목 그렇게 돼 가지고 그만 절단나지는 그런 일은 아이구 끔찍하고 겁나고 무섭고 징그럽다.
나는 그런 거는 원치 않는다.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서 그렇다 그거요. 왜? 그것이 뭐 손해간 죽음입니까? 아주 자기 가족으로서 솔박 성공한 데는, 손양원 목사님도 그 동인 동신 그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었는데 아버지가 교훈하는 그대로 하나님을 믿고 나가는 그것 때문에, 독실히 믿는 그것 때문에 그때에 다 죽음당했습니다. 그때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 이래 증거를 하는 그것 때문에 죽임당한 게 아니라, 찾아 가지고, 손 목사님 찾아가서 찾지를 못하고 동인, 동신이를 만나니까, 뭐 동인, 동신이가 '나는 예수 안 믿습니다.' 하면, 안 믿는다 하면 그때 안 죽겠습니까? 그는 현재 자기 증거로 죽은 것이 아니라 과거에 깨끗한 생의 준비로써 하나님이 제물로 받으셨다. 그거요. 이걸 알아야 돼요. '너 예수 믿으며 죽일란다. 안 믿을라면 안 죽일란다.' 그래 가지고, 예수 믿을래 안 믿을래 해 가지고 죽은 것만 순교가 아니라 주님을 향하여 주님 앞에 제물되고 주님 앞에 깨끗한 것이 되어서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본인이 아? 말도 하지 안하고 죽었더란데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 생명을 빼앗긴 것이면 그게 다 순교자라 그 말이오.
그러기에 '십자가상에 한편에 회개한 그 사람이 순교자라.' 순교자라 했디만 이 논리가 ○○신학교에서 나 가지고 '이걸 순교자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분 해석은 틀렸다. 제가 그때에 ○○신학교에 처음에 나흘 하고 처음 창설하는 첫 예배에 참석해 가지고 입학해서 나흘 동안 하고 난 다음에'아, 여기는 배우기 싫다.
내가 복음 전하지 여기 와서 뭐한다 고 죽박거리고 앉았겠느냐?' 나흘 동안 보고 내 마음에 보기에 아무것도 없다 해서 도로 갔었습니다. 갔었었는데, 그러니까, 그 뒤에 자꾸 이래 전파되는 사람들로 통해서 알게 됐는데 해방 후입니다. 해방 후인데 '그 십자가에 한편 강도는 모든 불신자를 대표했고 한편 의인은 그는 순교자라 이렇게 말했더만 그것 때문에 논단이 많이 났었소. 그때 정죄를 받을 터인데 그 가운데 한상동 목사님이 저기 계시다가서 '아.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로써 두 가지로 갈라졌는데 여기에는 불신자로 멸망할 사람들을 대표했고 여기는 구원 얻은 사람들을 대표했기 때문에 다 순교자들도 포함되지 안했느냐? 그러기에 순교자라고 해석하는 것도 그것도 잘못은 아니다. 순교자도 다 여기에 포함돼 있다. 나는 그렇게 깨닫는다. 하니까 그만 그때 입이 막아졌소. 입이 막아져서, 정죄, 이단이라는 정죄를 그때 그것은 면했지만 이단이라고 정죄 받은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해결이 다 됐고 지금은 그대로 다,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요것만 지금 해결이 안 되고, 이것도 거의 해결이 다 돼 가고 있어. 이것도 다 돼 가고 있어서 지금은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는 그런 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 미국 가 버렸고 지금 또 여기 있어도 그 말을 잘 안 해요.
왜 순교자라고 내가 그 한편 강도를 말했느냐?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지고 죽을 지경이니까 그렇츰 더 어려운 고난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어려운 고난 고난에서 생명이 끊어지는 그 죽음에서 그 강도는 '나는 죄인이라',하는 것을 똑똑히 밝혔습니다. '나는 죄인이라. 이분은 죄가 털끝만치도 없는 분이시다.' 똑똑히 밝혔습니다. 그래 자기가 죽는 죽음의 아주 최고의 역경에서도 주님은 의인이라 주님은 죄가 없으시다. 자기는 죄인이라. 이분은 영원한 무궁세계에 왕이라. 이러기 때문에 '나라로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시옵소서.' 하고 주님에게 마지막, 생명 마지막에 남은 힘 다해서 증거하고 다른 사람에게 증거했으니까, 그럼으로 죽었으니까 순교자 아니고 뭐입니까? 그렇츰 깨끗한 순교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머리가 돌아가지를 안해 가지고 일방적인 해석을 가지기 때문에 자꾸 지금 그란다 말이오. 모르면 모른다고 이라고 말아야 되지 알지도 못하고 자기 조부라운 지식대로가 아니라고 이렇게 속단해서 정죄한다는 것은 그거는 참 샘 안에 개구리요 안된 지식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짓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깨닫지 못하면 확실히 성경에서 아니라고 하는 것을 판정한 것은 증거해야 될 의무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나는 거기에 대해서 모르겠다. 그러면, 연구할 문제로서 과제로, 숙제로 남겨 두겠다' 이래야 겸손하고 바로 되는 것이지 알지도 못하는 걸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요것도 그렇기 쉽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나가 가지고 이 자랑삼아 공연히 쓸데없는 애기를 하지 말라 말이오. 집회 갔다 오면 사람들이 거기서 하나 둘 배워 가지고 이걸 가지고 알지도 못하고 자랑삼아 이라니까 다른 사람이 딱 거머쥐고 꽉 꺾어서 요렇게 말하면 저도 '아, 거기서 배울 때는 그렇더니만 그런가?' '그런가?' 하거들랑 와 가지고 물어 보기나 하고 가면 하지만 그만 물어 보지도 안하고 그만 그 사람들 말 듣고 그만 그리 넘어가 버리기 때문에 이렇게 복음이 자꾸 마귀 역사로 가루어진다 그 말이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들에게 상식으로 말하고, 오늘 아침에 증거하려고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욥이 자기 가정에 제사장 노릇을 할 때에 어떻게 했느냐? 자기 가족들에 대해서 어떻게 그가 일생 동안 했더냐?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성결케 하되 하는 것은 다른 제사 다 드렸다 그 말이오.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요것을 우리가 본받아서, 이렇게 애썼기 때문에 그의 소원대로의 자기에게 소속한 것은 솔박 하나님 앞에 제일 성결한 제물로 바쳐지게 됐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내 이거 어제는 내가 아침에 나오지 못했어요. 나오지 못했는데, 주일 공과 그거 간단하지만 주일 공과 만들고 또 수요일 예배 보고 하니까 고만 과로가 돼서 어제는 내가, 어제 아침에 나오면 도리어 여러 날 고생할 것 같아서 안 나왔었습니다. 공과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시쁘지만 그 공과를 나는 만드는 데에 하나 만들라 하면 참 굉장히 힘이 듭니다.
이러니까, 반사들이 잘 익혀 가지고 속에 있는 뜻을 좀 깨닫고 그 범위도 좀 알고, 그 자꾸 읽어 보고 깨달으면 신앙의 범위가 넓어질 것이요, 또 신앙의 깊이가 깊어질 것이요, 높이가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껍데기로 개 머래 먹듯이 그만 꾹꾹 씹어 그라기 때문에 참 문제라 그 말이오. 반사들이 좀 공과를 깊이 숙독을 하고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이번 공과는 뭐이지, 제목이? 예?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자세히 여러분들이 읽어서 깊이 연구해요. 껍데기로 하지 말고 그라면 거기에 깊이 깨달을 수가 있어. 뭐 때문에 이 세상에는 모든 존재는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는 그 말을 뭐 할 말 없어서 한 게 아니라, 존재를 둘로 나눌 수 있다 그 말은, 그거는 뭐이냐 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기 때문에 생겨지기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그게 사는 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고, 그게 죽는 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죽고 하나님 한 분에게 모든 것이 주권 되어 있다는 것을 거기서 똑똑히 밑에서 기초부터 해 나오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공과를 읽어야 공과를 다 확실히 터득하는 그런 사람들이 우리 반사 가운데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그 말이오. 이 부장들 통반 공부할 때에 보면 시원찮애. 내가 다시 더 하려고 하는데 첫 주일은 시원찮고 둘째 주일 가면 조금 낫고, 조금 낫아도 속에 깊은 뜻은 알지도 못하고 그저 좀 공과만 익숙해 가지고 하고 있습니다. 그만 해도 학생들이 은혜를 많이 받아. 깊이 해서 반사들이 알면, 그 공과를 알면 반사들이 마구 젊은 힘이 있으니까 막 뛸 것이오. 뭘 두려워하겠습니까? 바로 모르면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