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의 주관자를 구별하자

 

1989. 5. 19. 금새

 

본문 : 약 1:13-18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우리가, 인류 시조는 처음에는 자유하는 자이었으나 뱀의 유혹을 받은  이후부터는 자유가 없는 뱀의 종이 됐습니다. 뱀이 그때에 마귀의 이용이 돼  가지고 마귀가 뱀을 입고 인류 시조에게 들어와서 유혹을 시켜서 인류는 이 뱀  곧 마귀의 종이 되고 마귀의 것이 됐습니다. 그 후부터는 사람은 전부 다 마귀의  종이요, 마귀의 것이 됐습니다.

 그 마귀가 사람을 점령한 후에는 어떤 것만 점령했는가? 사람은 뭐 간단하게  해서 이목구비 수족도 있고 또 그 마음 속에는 지정의도 있고 또 거게서 모두 다  희로애락이 나오고 각종의 욕심이 나옵니다. 이래서 사람은 하나의 굉장히 많은  수들이 모여 가지고 있는 하나의 종합체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사람은 작은 우주라. 우주 안에는 수많은 만물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 속에는 굉장히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이래서 사람은 작은  우주다. 그렇게 복잡하고 많은 것들이 다 내재해 있다.' 그렇게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우주의 주인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고 또 '우주의 으뜸되는 것이다.

우주의 제일 큰 것이요 으뜸되는 것이다.' 이래서 불교에저는 유아독존이란 말이  있습니다. 내가 가장 위대하다 그렇게 말하는 사상들도 있습니다. 이래서  어쨌든지 우리라는 작은 존재이지마는 이거는 굉장히 많은 것들이 다 내포돼  가지고 있고 또 이것들은 작은 우주라 작은 국가라 사회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아무리 우주든지 어떤 국가든지 어느 시대를 본다 할지라도 그것이 서로  모든 기관들이 모여 가지고 회의를 하지 않습니까? 뭐 국회도 있고 또 무슨 뭐  행정회도 있고 또 사법회도 있고 뭐 많이 있다고 이래 하지마는 그런 것은 한  사람 속에서 회의되는 그런 것을 좀 눈을 떠 가지고 보고 난 다음에는 그까짓  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주 그런 거는 비하면은 아주 보름세배를 비하면은  막넉새베, 늑새베 같은 거 또 요새는 뭐 체 같은 거 같으면은 뭐 십팔반이니 뭐  이십반이니 띤 몇 백반이니 하는 그렇게 가늘고 굵고 하는 거 모양으로서 이렇게  이 세상일은 아무리 한다고 해도 인간 조직같이 그렇게 세밀히 조직된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지금 그런 데 대해서 어떻게 연구를 하나? 과학의  발명가들이 이미 되어 있는 이 과학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연구를 해 가지고서  둘을 합해 보기도 하고 또 열을 합해 보기도 하고 또 합했던 거 하나 떼 보기도  하고 이래 가지고서 그래 과학자들이 자꾸 연구해서 발명해 나갑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과학자가 참으로 사람의 이 인체를 보고, 사람의 인체의  여러가지 그 기관 지체를 보고 그것을 하나의 표본으로 삼아 가지고 이 물리를  연구한다면 굉장히 발달이 될 터인데 거게 대한 착안은 아직까지 과학자들이 못  하고 있습니다.

 또 사람들의 인체를 표본으로 가지고 연구하는 것보다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  마음과 고기덩어리 있는데 마음이라는 그것을 보고 연구한다면 그 조직도  세밀하고 또 그것의 연결성이, 연결이 되고 안 되는 그 연결성이 참 아주  세밀하다. 그것을 보고 그 비슷하게 흉내를 낸다고 하면은 이 물리로서는 굉장한  세밀한 것이 될 것입니다.

 여기 뭐 기계도 조금 그것이 천한 기계는 몇 가지 안 합해 가지고 그게 된  것이고 또 아주 고귀한 그런 기계들은 많은 종류가 합해 가지고 되어진  것들입니다. 그러면 무슨 자동차 이런 걸로 말해도, 자동차를 말해도 첫째는 입도  있겠고, '자동차 입은 뭐이며 자동차 코는 뭐이며 자동차 눈은 뭐인가? 자동차의  오른손은 뭐이며 왼손은 뭐인가? 자동차의 발은, 다리는 뭐인가?' 이런 걸 좀  비추어서 생각해 보면은 아주 하나님이 지으신 그 오묘의 인체를 가지고 비해  보면은 물리가 아주 많이 발달이 될 것입니다.

 또 사람에게 몸이 있는 동시에 몸 속에 마음이라는 이상한 신비한 것이 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이, 앞집 사람이 장사를 잘해서 자꾸 성공하니까 그 사람을  보고서 그 사람같이 꼭 같이 나도 하면 저 사람같이 성공이 될 거 아닌가 이래서  앞집 주인이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고, 문 닫는 시간에 문을 닫고, 또 손님들이  왔을 때에 어떻게 손님을 접촉하며 대우하며, 또 물건을 매매할 때 어떻게  매매하며 살 때는 어떻게 사는가? 요런 것을 꼭 그 앞집 주인을 보고 그대로  따라해도 뒷집 주인이 안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뭐이냐? 고기덩어리 속에 마음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고, 입으로 말할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손으로 모방할 수 있는 그 속에  신비한 것이 들어있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게 안 되면 안 됩니다.

 이래서 그것을 한 말로 말하면은 그것이 이 고기덩어리, 이거 입이니 이목구비  수족 그거 속에 사람의 인성이라는 게 있다, 인품이라는 게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인품, 인품이 있는데 그 인품은 보이지 않는데 그것이 들어서 이래 모두 다  이목구비 수족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러기 때문에 지난 주일에도 '주일학교  반사들이 자기 학생 명단을 하루 몇 번씩 읽으면서 이렇게 그 학생들에 대해서  염려를 하고 구원하고자 하는 그 사랑을 가지게 되면 뭐이 되느냐? 돈벌이가  된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해서 가르쳐 놨습니다. 모두 다 그런 알고 있어요. 돈벌이  된다는 그 말은 그라는 가운데에서 자기라는 사람이 차차 되어집니다. 사람이  되어지면 행복은 사람을 찾고 있고, 사람을 따르고 있고, 돈도 사람을 따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돈을 따를라 하면은 그 사람은 함정에 빠져서 절단납니다.

그러면 돈이라는 것은 참 사람을 따르고 있고, 권세도 행복도 참 사람을 따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되는 그 방편이 자기가 행복되는 방편이요 부자되는  방편이요 성공하는 방편입니다. 그런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행동을 앞집 그 상점보고 뒷집 상점이 꼭 그대로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것은 꼭 같이 된다 할 지라도 일이 안 됩니다.

그건 그 속에 마음이 역사하는 그 마음아 다르고 그 속에 사람이 다르고 이러기  때문에, 또 그 속에 양심이 다르고 그 속에 다른 그것을 보고서 보이지 않는  그분이 지금 주권을 가지시고 축복하는 축복이 다르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란 거 이거 오묘한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할 때는 그냥 하는 게  아니고, 그 마음도 여러 뭐 수십이 아니고 수백도 다 넘는데 약한 자 강한 자  있어 가지고 그것들이 회의를 합니다. 회의를 해 가지고 무슨 행동을 하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그 속에 양심이, 양심이 주격이 돼 가지고 이 모든 것을 붙들고  주장하면은 그 사람이 희망이 있습니다. 양심이 제일 거게서 바르고 옳고  지혜로운 것인데 양심이 자기 마음을 통솔하고 통치하면은 그 사람은 대단히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른 것보다도 그 사람의 그 감정 그놈이 주격이 돼 가지고  그 사람을 전체를 통치하고, 어떤 사람은 돈 욕심 그놈이 들어서 그 사람을  주권해 가지고 통치하고, 어떤 사람은 이 모든 세상 행락욕 그놈이 들어서 자꾸  주권을 합니다. 그것은 그것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이렇게 말했는데, 한번 돈을  사랑하는 그 욕심이 돈 욕심이 한 번 주장하면 그만치 권위가 크고 두 번  주장하면 그만치 크고 세 번 주장하면은 그만치 돈 욕심이 권위가 큽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이렇게 말해서 악습이라 그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저 사람은 지금 마음 가운데 무슨 세력이 제일 주력을 하고 있느냐? 또 명예심,  영광심, 또 교만, 또 무슨 자기의 도덕심, 윤리심 뭐 그 모든 그런 게 여러가지가  있는데 이 사람은, '저 사람은 저것이 그 속에 주격이 돼 있구나. 저 사람은  자기의 모든 욕심들 그런 것은 그래도 의지라 하는 것은 약해 가지고 아무리  작정해도 그것이 그만 몇 시간도 못 가고 그만 넘어지는 저거는 의지가 아주  심히 아주 허약한 사람이로구나. 저 사람은 아주 고집이라 하는 그것은 굉장히  강한 사람이로구나.' 이 모든 요소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다 합해 가지고  마음이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움직여지는데 그 마음이 잘못 움직여지면 잘못  움직여지는 그것이 한 번 움직여지면 그만치 권위 가졌고 두 번 움직여지면  그만치 권위가 있고 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연습이라 습관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일이라도 한번 행했으면 그만치 자기 속에는  그것이 세력을 잡고 있습니다. 두 번 행했으면 두 번 세력을 잡고 있습니다.

 이래서 마귀가 하는 일 성령이 하는 일 둘로 나눌 수 있는데, 마귀 하는 일을  자꾸 이번에도 못 하게 만들고 다음에도 못 하게, 못하게 되면 그게 자꾸 권세가  약해지고 그것이 출세를 해서 한 번 두 번 자꾸 이거 자기가 주권을 가지고  행사하게 되면 그게 자꾸 강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행동을 하든지 행동하면 그 행동은 그만 자기 속에 자기가 됩니다.

 이래서 자기가 무슨 임시 형편으로 이런 행동 저런 행동하지마는 이거는 나쁜  행동인 줄 알기 때문에 '이거는 요때만 하고 뒤에는 안하지'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했으면 벌써 자기가 됐기 때문에 뒤에는 안할 수가 없도록 그것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행동에 거게서부터 자기를 고쳐서 만들어  나가야 되지 다른 데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 마음 속에는 수많은 것들이 있어 가지고 회의를 하는 줄 알아서  그러니까 '두 사이에 끼어서 우리 소원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우리 속에 싸움이  있다. 대내전, 그것을 가리켜서 내재전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싸움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내전, 자기 안에 있는 자기에게 있는 두 세력이  싸울 때도 있고 세 세력이 싸울 때도 있고 네 세력이 싸울 때도 있고 회의를 할  때도 있고 하는 그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또 자기 밖에 것하고 싸우는 것을 가리켜서 대외전이라 그래. 자기 밖에 것하고  싸우는 것을 대외전이라, 밖을 대해 가지고 싸운다. 대 내전이라, 자기 안에 서로  대해 가지고서 싸움이 있다.

 그래서, 자기를 연구할 때에 '내게는 지금 요런 생각 저건 생각이 서로 의논하고  싸우고 있는데 요게서 어떤 세력이 지금 강하다' 세력이 강한 그놈이 주장을 해  가지고 그걸 달성을 하는데 '그놈이 주장해서 달성할 때는 실패한다' 이러면 자기  속에는 '내 속에 나쁜 세력이 지금 제일 주도 세력이 뭐이 있으니까 요놈부터  꺾어야 되겠다. 그 다음에는 요놈 세력하고 저놈 세력하고 둘이 합해 가지고  협동을 하기 때문에 요놈들을, 둘을 갈라놓아야 되겠다. 요건 아주 꺾어서 죽여도  좋으니까 없애야 되겠다.'  이렇게 해서 자꾸 연구를 하면 아무리 사람들이 이렇게 뭐 몇십 명이 모여  가지고 이런 의논하고 저런 의논한다 해도 뭐 마음을 연구하고 자기를 연구한 그  사람은 자기에게는 백 명이 모여 가지고 쑥쑥거린다고 하면은, 뭐 우리 교단의  지금 교역자들이 이런 교역자 저거끼리 모여 가지고 숙떡숙떡한다 해도 그까짓  거야 몇 안됩니다. 한 몇 안 되는 그것들이 숙떡거리기 때문에 저게다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속에 여러 세력들과 존재들이 있어 가지고 이것이 의논해 가지고  결의되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자기가 이래 살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 무슨  뭣 의논해 가지고 지금 의논을 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는 어느 마음이 제일  세력을 잡고 있다. 그놈은 나쁜 놈이다.' 이렇게 자꾸 자기 자아를 연구하고  판단해 가지고 거게서부터 뭐이 되어져야 되지 거기서 안 되면 안 됩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에 벌써 거게 한번 비추었으면, 음욕은  품었으면 벌써 이미 간음한 것이니라. 그렇게 그 마음의 작용이, 또 '나는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안하고 그 중심을 보느니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마음  회의가 결정해 가지고 마음에 무엇을 결정된, 회의에, 회의, 회의하는데 그 마음  각 요소에 회의의 결정된 그것을 본다 그 말입니다. 중심을 본다, 그 결정된 것을  본다. 결정된 그대로 결국은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 중에는 제일 아주 깨끗하고 지혜로운 것이 양심인데 그러면  양심대로 하면은 모든 것이 다 바로 되고 옳게 되느냐? 어찌 됩니까? 양심대로  하면 바로 됩니까, 안 됩니까? 양심대로 하면은 모든 것이 바로 된다고 이렇게  생각되는 분들은 손 한번 들어봅시다. 양심대로 해도 바로 안될 수 있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데 양심도 양심이 그러면 둘이냐 하나냐? 양심이 둘이냐  하나냐? 양심은 하나입니다. 양심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양심은  하나인데 이 하나인 양심을 그것을 지배하는 자는 둘입니다. 양심을 지배하는  자는 둘이요. 둘이기 때문에, 악령이 지배할 수도 있고 성령이 지배할 수도 있고  이러기 때문에 우리 양심을 성령이 지배할 때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양심이기  때문에 옳고 바르고 참되지마는 악령과 동행하는 그 양심은 아주 나쁜 것입니다.

그러면 악령과 동행하는 양심은 뭐인고 하니, 악이라는 것은 자기 중심인데 자기  중심의 그 양심 가지고 동행하는 것은 그거는 다 나쁜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대로  한다고 해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 처음에 말하기를 처음에는 사람이 자유했으나 그 다음에는 악령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악령의 종이 됐다. 그러면 전 인류는 악령의 종이 됐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배척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떠나가고 악령의 종이 됐는데 악령의 종이  되고 난 다음에는 사람의 그 마음이나 그런 것이 전부 악령이 주관합니다. 이래서  안 믿는 사람들의, 사람의 양심도 성령이 주관하면 그 양심이 아주 옳고 바르고  깨끗하고 악령이 주관하면 아주 못쓰고 아주 정반대로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담 하와의 자손은 하나뿐입니다. 우리 양심도 하나요 욕심도  하나요, 또 뜻도 하나요, 또 의지도 하나요, 생각도 하나요 이 모든 사색하는 그  이성도 하나요, 하나인데 이 하나인 이것을, 하나인 이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역사하는 분을 가리켜서 성령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성령이 주관하는  것도 있고 악령이 주관하는 것도 있고 우리 아담 하와의 자손이 영육으로 돼  있는 건데 이 영육은 꼭 하나이지마는 하나인 이 영육을 이놈이 주관할 때도  있고 저놈이 주관할 때도 있습니다.

또 마음이 여럿이라 해 놓고 아담 하와의 자손의 영육은 하나라 그 무슨 말인고?  영도 하나요, 육이라는 것은 심신을 가리켜서 말하는데 이 심신은 마음은 여러  수천 쪼가리도 넘지마는 이것이 실은 하나이요, 또 몸뚱이도 이목구비 수족 이런  지체를 말하면은 몸에 지체 뭐 간이니 뭐 또 폐니 뭐 얼마나 많습니까? 또  세포를 말하면 종류가 얼마나 많습니까? 많지마는 그것이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하나이면서도 그게 여럿이 회의를 해 가지고 움직이는 하나라 그 말이오.

 '어찌 하나라 하고 자꾸 또 여럿이라 하는고?' 이렇게 말하는데 '여게는 무슨  부대가 와 있다' '그러면 몇 부대나 왔나?' '한 부대 있다' 한 부대가 와 있는데 한  부대가 와 있으면 그러면 거게는 한 부대인데 여러 사람이다. '한 부대면 한 사람  뿐이지 여러 사람인가?' 한 부대라 하는 건 여러 사람을 총칭해 가지고 한 부대라  하기 때문에 하나라는 그것이 속에는 사람으로 말하면 많은 사람이라. 많은  사람의 숫자가 있다 하는 그것 모양으로 이제 우리 마음이라 하는 마음은  하나지마는 이 마음을 분류해서 그 속에 내부를 말하면 수백의 종류도 지체도  많고 수백의 그 종류가 많아.

 그러면 이 수백 종류가 이래 합해 가지고 의논을 해 가지고 그렇게 잘 의논을  해 가지고 행동하면 그 사람의 행동이 좀 정상이라 합니다. 왜? 그러면 이 면의  마음도 있고 저 면의 마음도 있는데 이게 합해 가지고 의논해 가지고 이 면의  마음에도 모순 안 되고 저 면의 마음에도 모순이 안 되고 의논해 가지고 양쪽에  모순 된 데가 없고 배치된 데가 없이 이렇게 하는 게 바로 되어지는데,  어떤 사람은, 정신 이상이라 하는 그 사람은 뭐이냐 하면은 그 마음에 전체가  의논해 가지고, 예를 들면은 백 가지 마음이면 백 가지 마음이 다 의논해서 백  가지 마음에 배치되는 점이 없이 이래 하면 되어지는데 이것은 구십 아홉 가지  마음은 다 죽은 것 같이 돼 버리고 하나가 들어서 주장을 하면을 그거는 뭐이냐  하면은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미치괭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지금 사람이 조금 보고 '저 사람은 아마 좀 위험한 사람이다. 좀 있으면 정신이  이상자가 되기 쉽겠다'하는 그것을 우리가 판정하는 것은 어찌하느냐 하면은 그  사람의 행동은 수많은 그 마음의 요소들이 의논해 가지고 협의해서 모순됨이  없이 그렇게 하지 안하고 일방적으로 다 없어버리고 한 마음이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대로 주장 하니까 정상이 아니고 여러 면은 못 오고 일 면만  가지고 주장하니 그거는 미치괭이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거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봉독한 대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왜 어려움을  당하느냐? 어려움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나를 어려움 줬다' 이렇게 생각지  말라. 하나님이 네게 어려움 준 게 아니라 하나님은 네게 어려움 주시지  아니하시고 너를 고치는 일만 자꾸 이렇게 하고 계시지 네게 어려움을 주지  않는데 어려움 준 것은 네게 잘못된 욕심에 끌려 가지고 거게 미혹을 받아  가지고 어려움을 당한 것이기 때문에 네가 잘못된 욕심 그것을 끊어 없애 버리고,  그러면 욕심을 끊어 없애 버리면 욕심을 파서 들어내 버립니까, 욕심 주관자가  바꿔지는 것입니까? 욕심 주관자가 바꿔지는 것입니다.

 주관자가 바꿔져서 성령의 욕심으로, 성령의 욕심을 가리켜서 성령의 소욕이라고  말했고 성령의 소욕이 아닌 것은 육체의 소욕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니까 마음이 둘이라 이렇게 해 나온 것이 오늘까지의  교리와 신조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성령의 소욕의 마음도 있고  육체의 소욕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둘이라, 성령의 소욕의 마음도 성경에  말했고 육체의 소욕의 마음도 성경에 말했기 때문에 마음이 둘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그게 틀렸고 마음은 하나인데 성령이 주관할 때도 있고 악령이 주관할  때도 있다 하는 그것이 우리 총공회 교리입니다.

 이래서, 이러니까 이것 때문에 뭐, 지금 여러분들은 들으니까 모르지만 굉장한  많은 논리들이 있고 지금, 어떤 사람이 물어서 '그라면 육체의 욕심이 있고 성령의  욕심이 있고 이러니까 욕심이 몇이냐?' 둘로 이래 가지고, 그거는 둘이 하나가  주관자가 다른 게 아니라 본래부터 둘이 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래서, 이걸 자꾸 말하다가, 그러면 사람이 이렇게 타락 후에는 완전히 그  사람의 영은 주관하지 못하지마는 심신은 악령이 주관하게 된 것이 타락한 후의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심신은 주인이 둘뿐입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든지 마귀가  주관하든지 둘 중에 하나이지 하나님에게 주관도 당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주관도 당하지 아니하고 저는 아무 데도 주관당하지 아니하고 독립자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거는 어리석은 소리요 성경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은 그라면 타락됐으니까 사람은 전체가 어떤 사람 됐습니까?  누가 주관하는 사람이 됐습니까? 타락한 사람은 누가 주관하는 사람이 됐습니까?  악령이 주관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전체는 악령이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여게서  성령이 주관하는 것만 빼버리면 전부 악령이 주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 인류는 누가 주관하는가? 악령이 주관합니다. 성령이 주관하지  안하고. 그러면 성령이 주관하는 마음 외의 거는 전부 악령이 주관한다. 성령이  주관하는 사람 외의 사람은 전부 악령이 주관한다 요렇게 판단하면은 쉬운  것입니다. 이러면, 여게서 말하니까 '이제 세상에는 성령이 주관하는 지식이 있고  그 외의 것은 전부 악령이 주관하는 지식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 이외는 전부  마귀 지식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사람들이 말할 때에 듣지 안하고 이 교계에서  자꾸 듣지 안하고 자꾸 이래 나가는데, '이 세상 지식을 마귀 지식이라 악령의  지식이라'하는 것을 전부 반대를 합니다.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느냐? 도덕도 있고  뭐 다 있는데 그럴 수 있느냐?' 그러나 똑똑히 성경의 원리를 보면은 성령이  주관하지 안하는 사람은 벌써 이미 다 악령이 주관하는 사람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면 사람은 성령이 주관하는 사람  외에는 전부 악령이 주관하는 사람이라. 악령이 주관하는 사람의 그 사람의  언행심사는 전부 악령의 주관의 언행심사라. 그러면 악령의 주관치 않는 그  사람의 지식도 연구도 모든 사상도 그 모든 발표하는 욕심도 모두 다 말도 그  모든 것은 전부 악령이 한 것이라. 그렇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면 과학은 어찌되느냐?' 과학은 성령의 주관자들이 연구한 것도  있고 악령의 주관자들이 연구한 것도 있는데 악령의 주관자들이 연구를 해도  물리라 하는 그것은 하나님이, 물질은 타락하지 안했기 때문에 타락되지 않은  물리를 연구했기 때문에 그것은 악령이 주관해 가지고 연구한 것도 그것은 옳은  말이라 바른 것이라 그렇게 그전에 가르친 일이 있습니다.

 이런데 이걸 이제 과학이라 하는 이 과학이란 한 뭉텅이 이것도, 이걸 과학이라  하는 게 있는데 이걸 누가 지금 이용하느냐? 성령의 역사로 이것을 이용을  하느냐, 악령의 역사로 이용을 하느냐? 이거는 이용을 누가 하느냐 하는 거게  따라서 이제 악이 되고 선이 됩니다. 예를 들면은 이 종이 여게 있는데 종은 한  개지마는 이 종을 누가 치느냐 그 말이오. 종을 누가 사용하느냐? 그러면 종을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공산주의 저거 일 하기 위해서 종을 치면은 이거  공산주의가 지금 종을 사용하는 것이 되고, 또 교회에서 이거 무슨 설교하기  위해서 종을 치면은 교회에서 종을 치니까 이 종은 교회에서 이용하는 것이  되어지고 그렇게 되어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러면 주인공이 바뀌어진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과학을 가리켜서, 이 모든 물리가 과학인데 과학을 가리켜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온 거짓말이라고 말했소, 반거짓말이라고 배웠습니까?  반거짓말이라고 배웠습니다. 반은 틀리고 반은 맞다 그 말이오. 왜? 모든 물리가  물리 그 자체는 맞은데 물리 그것은 그것을 용도, 물리의 용도, 물리를 쓰는  물리의 용도, 물리의 활용성 그런 것이 삐뚤어졌다 말이오. 그런 것이 삐뚤어졌기  때문에 그것은 반거짓말이라 그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마귀가 작용하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이 마귀가 작용하지 않는  것입니까? 마귀가 작용하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이 마귀가 작용하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의 마음이나 몸에 대해서 마귀가 작용하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을  마귀가 작용하지 않는 것입니까? 마귀가 작용하지 않는 것은, 성령이 주관하지  않는 작용은 전부 마귀가 작용하는 것이라 요렇게 봐야 맞습니다.

 성령이 작용하지 않는 것은 전부 마귀의 작용이라 요렇게 봐야 되지 요 둘로  보지 안하고 거게서 '요런 거는 그렇지마는 요거는 도덕을 말하고, 요거는 지혜를  말하고, 의를 말하고, 사랑을 말하고 하기 때문에 요거는 마귀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성령이 주관하지 안하는 것은 전부가 마귀가 주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욕심에 끌려서 미혹됨이라' 사람의 욕심을, 욕심 그놈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욕심 거게 끌려 가지고 사람들이 미혹됐는데 그러면 욕심 속에는 뭐이  들었습니까? 욕심 속에는 뭐이 들었소? 욕심 속에는 악령이 들었습니다. 그 욕심  속에는 악령만 듭니까?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 욕심은 그러면 전부 악령만  주관하고 있습니까? 악령만 주관하는 게 아니라, 욕심은 몇 개입니까? 욕심은 몇  개요? 욕심은 하나인데, 욕심은 하나인데 성령이 주관하면 성령이 몇 가지 일을  하는가? 성령이 천 가지 일도 만 가지 일도 더 합니다.

 이러니까 성령이 그 욕심을 주관하면은 이런 욕심 저런 욕심 자꾸 성령이  주관하는 욕심만 내게 되고 악령이 주관하면 악령 그 놈도 백도 뭐 천도 넘기  때문에 그런 욕심을 자꾸 이와 같이 지금 주관하도록 그렇게 만듭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그런 일을 안 할라고 아무리 해도 안되고 이러니까 우리 마음을 성령이  주관하도록 이렇게 하지 안하면 성령이 주관하지 안할 때는 전부 악령이  주관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령이 주관하지 안할 때는 악령이 주관하는 것이니까  악령이 주관할 때도 있고 안할 때도 있고 성령이 주관할 때도 안 할 때도 있고,  또 이것도 저것도, 성령도 악령도 주관하지 안하고 그냥 진공으로 제 마음 혼자  있을 때도 있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거 맞습니까, 틀립니까?  틀립니다. 이것은 둘뿐이라. 성령 주관이냐 악령 주관이냐. 요 둘뿐이라.

 이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걸어갈 때는 쪽발로 걸어가라' 이거 둔하기 때문에  모르니까 이거 자꾸 쪽발로 이래 가르쳐 놨는데 '이거 아니면 저거다, 저거 아니면  이거다.' 요 둘로만 해야 되는데, 어떤 사람이 나한테 와 가지고 '가운데가 없다  그렇게 하니 이건 양극뿐이기 때문에 이 서부교회 복음은 틀렸다' 이라는데 내가  보니까 그 부인이 여기 와 앉았는데 그분이 천국과 가까와요, 내가 보니. 가까운데  그것을 바로 말해주면 툭 튀어버려요.

 이러기 때문에 그저 바로 말해주지 안하고 이렇게 해서 하는데 그분을 고치는  볍은 자기가 교회 나오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나와서 듣고 인제  가족들도 가 가지고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러면 지금 틀리면 이거 우리가  우리 가정이 지금 이거 다 틀린 길 걸어가면 망할 거 아닙니까?' 자꾸 옳다고만  주장할 게 아니라. '망할 거 아닙니까? 이러니까 틀렸으면 호주가 돼 가지고 우리  가족을 구원해야 될 터이니까 가 가지고 틀렸거든 틀린 점을 꽉 잡아 가지고  요것을 말을 해서 이거 뭐 기독교를 뒤비뜨리든지 그리 아니면 옳으면 그라 든지  자꾸 이래 가지고 '우리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러면 와 가지고 참석을 해  가지고 이걸 옳고 그른 것을 잡아 가지고 고쳐야 될 것이 아닙니까?' 자꾸 참석만  지키면 그 사람이 깨져요. 참석을 시켜서 대중이 되면은 말할 수 있지만 단 둘이  만나 가지고 그걸 '아니다' 이라면 그만 충돌이 생겨져 가지고 일이 안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 부인 저기 와 있는 거 같은데 좀 그래요. '여보 당신이 우리 가정에  호주라면은 가정을 이거 교회 나가서 모두 망치니까 나도 망하는 것인지 모르게  거게 대해서 어제 그저 아는 것이 희미하니까 와 가지고 틀리면 틀렸다는 그것을  와 들어보고 이래 가지고 요렇다 해야 되지 자꾸 이래 뭐 여기 말 들으면, 당신  말 들으면 또 당신 말이 옳은 것 같고 또 교회 말 들으면 교회 말 옳은 것  같으니까 안되니 가 가지고 와서 듣고 이래 하라.' 그라면 그때 말할 수가 있고  그럴 때는 자기가 듣지만 단 개인이 만나 가지고는 이거는 조금 살아날려고 뭘  자기가 뭘 알라고 이래 자꾸 이래 빠닥거리고 있는데 그만 그만 우둥지를 꺾어  버리면 안돼,  그러니 그저 슬슬 이래 두고 자꾸 자기 말을 따라가고, 따라가지는 안하지마는  긍정하는 것같이 이래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어쨌든지 그런 그만치 된  사람들은 천국이 가깝고 멀지 안하니까 '교회 나와서 들어봐라' 하는 그것을 자꾸  주장을 해야 됩니다. 주장해서 와 보면 그 사람들이 나중에 회개를 해요. 와서  들어봐야 돼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요 욕심이라 하는 이걸 말했는데 우리 성령이 주관하지  안하는 우리의 마음이나 고기덩어리는 전부 마귀가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때라고 생각지 말고 성령이 주관하지 안할 때는 전부 마귀가  주관하는 것이니까 전부 마음도 마귀요, 생각도 마귀요, 성질도 마귀요, 뜻도  마귀요, 다 마귀라. 이러니까 그것을 알고 우리가 단속을 해야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무엇을 말하다가, 옳은 걸 말하다가 좀 양보하지 안한다고, 타협하지 않는다고  지금 모두 다 세상이 말해. 우리 총공회 이 모든 행정이 타협을 하지 안하니,  타협이라는 건 이거하고 서로 흥정을 해저 너 좀 얼마 양보하고 양보하고 이래  흥정하자 하는 그게 타협인데 타협하지 안하고 옳은 것이라면 그걸 생명을  내대고도 가는 그것이 총공회 행정이기 때문에 총공회 행정과 일반 교회 행정과  다릅니다.

 그 사람들은 많은 숫자가 말하는 데 따라가고 하지마는 우리는 성경을 따라가고  암만 백 명 가운데 구십 구 명이 말한다 해도 그거 따라가지 안하고 성경이  말하는 걸 따라가기 때문에 요것이 뭐이냐? 진리를 따라가는 것이요, 그들은  다수를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타협도 양보가 있지만 우리가 없다 그 말이오.

 그것 때문에 우리 지금 이 총공회 행정을 모르고 민주주의니 뮈 독재주의니  하는 이런 거, '성경을 따라서 모든 걸 결정한다' 하는 그런 걸 모르는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오, 목사라도 지금, 아직까지 도에서는 뭐 거리가 얼마나  멀고 다 인본주의요, 세상주의요, 인간주의로 다 믿는 것입니다.

 이러는데, 이 참 아주 은혜로운 일인데 이라면 꼭 하나씩 고쳐 가지고 와야  됩니다. 고쳐서 변화가 되야, 자기에게 고칠 것 모르는 사람은 그 사람은 고칠 것  모르는 사람은 앞으로 성장이 없다 말이요, 개량이 없다 말이요, 옳은 것이 건설될  수 없는 것입니다. 고칠 것 하나씩 고치고 또 모자라는 것 하나씩 보강을 하고,  뭣인가 내가 고쳐지면 하나님 고쳐지고 하나님과 나와 고쳐지면 우리 형편과  사정이 다 고쳐지고 세상이 다 고쳐집니다. 이래서 내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온  천상 천하의 것은 다 내것으로 이렇게 변화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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