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2 23:58
'우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본문 : 창3:1-6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우리의 구원들입니다. 하나님의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는 어려운 구원입니다. 그런고로 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우리가 알기 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설정되어 있고 또 이 공로는 택한 자들에게 한해서만 공로를 베푸신 공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택함이라는 것은 곧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신데 하나님이 영원 전 자존하시고 자존하신 하나님이 움직이심의 첫 순서가 하나님의 목적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지 세계에서 말을 하면 하나님은 영원 전 아무것도 없을 때에 홀로 계셨고 또 홀로 계신 하나님이 역사하신 역사에는 제일 먼저 한 역사가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이 목적이십니다. 이 목적을 성경이 가리켜서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택한 자들을 대속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고 또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고, 또 죽은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대속하신 이 대속은 어데서부터 시작됐는고 하니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실 그때부터 시작된 우리의 대속입니다. 이 대속을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걸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보존도 하시고, 또 섭리도 하시고 섭리하시는 중에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까지 하셔 가지고 십자가에서 대형, 우리의 받을 형벌을 대신해서 대형으로 우리에게 사죄를 주셨고, 또 대신 행하신 대행으로 의롭다 하시는 칭의를 주셨고 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된 원수를 대신 화목의 제물이 되셔서 화친을 주셔 가지고 하나님과 연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하신 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위해서 대속을 하셨고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 대속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도 따라서 구원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택함을 입어서 택함 안에서 지음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택함 안에서 지음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속하신 것은 우리가 나기도 전에 우리 몫이 다 대속돼 가지고 있는 것인데 때가 되니까 우리가 잉태돼 가지고 나오게 됐습니다.
또 우리가 출생한 후에도 어릴 때부터 이 대속의 공로를 효과적으로 이용을 하는 그런 사람도 있고 대속의 공로는 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서 택한 자들은 다 입고 있는 대속이지마는 입고 있는 이 대속이 그 본인에게 효력이 있게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것, 입고 있는 대속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입게 된 대속은 순전히 그거는 객관적입니다. 객관성의 것입니다.
하나님편에서 우리에게 대속을 입히셨고 우리는 대속을 입고 있는 것이지 우리 주관에 대해서는 그 대속을 입지를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런데 하나님이 사람을 내실 때에 택합 안에서 지음을 받아 가지고 출생된 자도 있고 택함 밖에서 지음받아 출생된 자도 있어서 사람은 날 때부터 두 종류입니다.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목적하신 그 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은 자를 가리켜서 택함을 입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에베소 1장에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 하는 창세 전이라는 것은 이 물질계 우주를 창조하신 그 창세를 말씀하시는 것 아니고 하나님의 의지 안에서, 하나님 홀로 의지 안에서, 순서를 말할 때에 하나님이 예정이 있었고, 예정대로 창조하셨는데 창조 전에 예정이 있었고, 예정 안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고, 목적보다 그 안에는 영원 하나님이 자존하심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계신 것이 순위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기 전부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우리 에게 입혀 주셨지마는 그것은 다 객관성의 것이요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창조를 그 안에 하셨지마는 우리는 그때는 몰랐고 우리가 나고 난 다음에 예수님께서 이 대속하신 이 공로를 입히시기를 시작한 것이 언제인고 하니 곧 죽은 영이 성령과 진리로 살아나는 그때부터 우리가 주관적으로 그 대속의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그래 입었다가 입은 즉시로 그 사람이 부름을 입어 가지고 이 건설구원을 시작한 사람들도 있고, 건설구원이라면 중생된 영이 주격이 돼 가지고 그 사람의 심신의 모든 생활을 주장하는 것이 그것이 부름을 입은 것인데 그 사람이 중생이 됐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중생된 영이 그 심신을 주관하게 하시는 그 역사를 입기 전에는 그 사람이 중생되기 전입니다. 중생이 되고 난 다음부터 비로소 그 심신이 구속을 입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이 중생되는 것을-아이를 말이요, 그 아이를 더운 데다 자꾸 그래 놓으면 안 될 건데. 옷을 좀 벗겨 보지. 옷을 조금 벗겨 보지. 아이구 여기 나가려 하면 뭐 감감한데.
될 수 있는 대로 어린아이 데린 분들은 좀 선선한 데를 택해서 가에 그런 데 있는 것이 좀 슬기롭습니다. 그 아이가 언제 어찌 될지 모르니까. 마음에 자신이 있을 때는 돼. 내가 기도를 많이 했고 했으니까 '하나님이 이 아이를 고요히 해 주실 것이라.' 그럴 때는 가운데다 앉지마는 가운데 앉는 거는 얼마나 참 힘이 드는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할 수 있으면 가에서 무슨 소리 나면은 좀 관리해서 바람도 쐬 줄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앉는 게 좋고 가운데 앉으려거든 공로가 있어야 됩니다. 공로가 없으면 안 돼요.
일찍부터 이 집회가 나기 전부터 공로가, 기도를 해야 되고, 또 그 보다도 아이가 임신되기 전에, 임신되기 전부터 공로가 있어야 돼요 '주여, 나는 앞으로 임신이 되면 언제든지 진리와 영감에 순종하는 그런 아이가 나도록 그렇게 해 주옵소서.' 배기 전부터 기도하고, 또 배고 난, 다음에 계속해서 기도하고, 또 나고 난 다음에도 기도하고 자꾸 이렇게 기도를 하게 되면 그 아이가 예배 볼 때는 오면은 조용히 있습니다.
그것을 처음에는 몰라서 못하고 또 게을해서 못하고 이랬는데 갑자기 그만 공로 없이 그 아이를 예배 볼 때에 조용하리라 생각하고 이래 했다가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아이 어머니가 될 사람들은 벌써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대해서도 기도해야 되고, 남편을 만나면 남편이 믿음의 남편이 돼서 자기를 믿음으로 이끌 수 있는 그런 남편이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이 되고 또 자녀가 나면 순종하는 자녀가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이래야 되는데, 부모 때부터 믿는 그런 사람들은 이런 일을 들어 가지고 알았지마는 우리가 부모도 믿지 안하고 중간에 복음을 받아 가지고 믿은 사람들은 그런 이치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도하지 안했기 때문에, 저는 제일 부러운 것이 어떤 게 부러우냐? 모태에서부터 믿은 그런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부럽다는 것은 내게 대한 것이 불만이 있다는 것이 아니고 아주 모태 때부터 믿은 그런 사람이 많이 존경이 되어지고 사모가 되어지고 참 그런 분들이 다 복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부부라는 것은, 부부라는 것을 성경에 보면 부부의 시작이 아담 하와로 시작됐는데 아담 하와가 그 뒤에 사람들이 보기에는 하나님편의 근본인 근본은 보지 안하고 그후 순서를 보면은 아담은 아담대로의 한 개인 또 하와는 하와대로의 한 개인, 이렇게 개인이지마는 실상은 그 개인이 되기 조금 전에는 아담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아담 한 사람뿐이었는데 아담 한 사람의 몸이 둘로 나뉘어져 가지고 부부가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그후에도 말하기를, 우리는 부부라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을 모르지마는 부부는-딴것 말하지 말고! 여기만 봐. ○목사 여기 자기나 은혜 받아, 옆에 사람 어짜든지. 정신 안 차리면 안 돼. 마귀한테 언제 홀켜갈지 몰라요.
부부라는 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 그렇게 말했어. 하나라 그말은 합해 가지고 하나라는 그게 아니고 근본 그 부부는 다 아담 하와가 된 것과 같이 그렇게 된 하나가 돼 가지고 하나가 하나님께서 둘로 나누어 가지고서 부부를 만들어진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
그러기 때문에 제가 있는 서부교회서는 결혼 상담이라 하는 그런 시간이 화요일날 새벽예배 마치고 기도를 마치고 난 다음에 모여 가지고 결혼 상담회가 있습니다.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가정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가정 제단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의논인데 그 의논을 할 때에 거게 참석하는 사람 중에도 모르는 사람은 '어떤 좋은 사람을 구해 가지고서 이렇게 할까?' 이렇게 생각을 가지고, 깨달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를 둘로 만들어 가지고 내보냈는데 우리는 하나가 둘된 그게 어데 있는지 모른다. 하나가 둘된 그걸 어데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 가지고 속히 찾아서 하나가 둘된 그것이 이제는 둘이 하나가 되어 활동할 수 있는 동거 동락 동행할 수 있는 가정교회를 이루도록 그렇게 해야 된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정하신 배필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정해 놓은 사람을 우리가 찾는 것이지 우리가 노력을 해 가지고 어떻게 한다는 그게 아니기 때문에 결혼해 가지고 잘살아도 우리는 거게 대해서 아무런 공로가 없고 또 못살아도 거게 대해서 우리는 책임을 질 수가 없는 것은 다만 하나님이 한 사람을 나눠 가지고서 두 사람이 되도록 해 가지고 세상에 나왔는데 그것을 하나님은 아시지마는 우리는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찾기 위해서 이래 더들어서 자꾸 찾아 가지고서 '이게 하나님의 예정입니까?' 이렇게 해서 찾다가 찾아서 둘이 결혼을 하게 됩니다.
둘이 마음에 뜻이 맞으면 그다음에는 우리가 하는 일이 뭐인고 하니 이제는 '우리가 너거에게 소개를 한 대로는 소개를 했으니까 이제는 너거가 작정해라.
우리는 모른다.' 그때부터는 중매를 권하는 것이 아니고 중매를 방해하는 비슷하게 그래 합니다. 방해하는 비슷하게 하면서 저희에게 맡겨 둡니다.
맡겨 두면 그때는 인제 남자가 여자에게든지 여자가 남자에게든지 결혼하기를 원하면 이쪽에서는 그때는 단점을 말합니다. '야, 그 여자에게 이런 이런 단점이 있는데 그래도 좋으나?' '그거야 뭐 사람 단점 없는 사람이 어데 있습니까?' 이제 벌써 마음에 있다 그거요.
또 여자에게 '그 남자는 이런 단점이 있는데 그래도 좋으나?' '뭐 단점 없는 사람 있습니까? 나는 그보다는 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면 너거 마음대로 해라. 그러면 우리는 이만큼으로써 우리 하는 일은 협조가 다 됐으니까 너거가 원해서 하고 싶거든 하고 그렇지 않거든 하지 말아라.' 그말 하는 것은 뭘 가리켜 말하는 건고 하니 '하나님의 뜻이면 되고 뜻 아니면 안 되니까 그저 아무리 너거 마음에는 있고 좋아도 안 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또 되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그 일을 잘 감당하도록 그렇게 하라.
만일 너희들이 부부에 대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사람 생각대로 오다 가다가 만나고 이렇게 해서 서로 짝된 것으로 그렇게 생각지 말고 근본 하나가 둘돼 가지고 있는 것을 이제 둘돼 있는 것을 하나로 합해서 구원을 이루도록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중매를 하는 것이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에베소 5장입니까 4장입니까? 결혼에 대해서 5장입니까? 5장 몇절에 있나요? 22절. 저게 보면은 내리 보면은 부부에 대해서 말했는데 '둘이 들어서 한 육체를 이룬다' 두 사람이 이제는 한 육체 이룬다 그말은 두 사람이 결혼해 가지고 이제 부정모혈로 한 아이 난다 하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둘이 합하여 한 육체를 이룬다' 그말은 한 아이가 난다는 그런 말 아니고 우리의 이 지금 건설구원은 육체의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건설구원은 육체의 구원을 이루는 것인데 육체를 어떤 사람들온 고기덩어리만을 육체로 보지마는 실은 고기덩어리만이 육체가 아니고 마음과 고기덩어리를 합해서 육체라고 그렇게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짐승과 사람이 다른 것은-저 기도해요. 저 아이를 위해서 가도 하라고.
들으면서 기도해요. 기도를 해야 되지 저거 마귀가 저걸 하나 붙들어 가지고 여러분들이 저 아이 때문에 방해를 많이 당하고 있어 저 지금 저 아이를 저러니까 마귀가 저렇게 해서 은혜 받지 못하도록 그 마귀는 굉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저래 우니까 원망하고, 그거 어머니 마음대로 합니까 그 아이가 마음대로 합니까? 마음대로 못 해. 그보다 강한 마귀가 붙드는데 어짬니까? 그러니까 위해서 기도를 해야 되지 자꾸 저러니까 저 아이 소리 여러분들에 들려지니까 그 마음이 집중 되어지지 안하고 자꾸 이렇게 된다 그거요.
둘이 합하여서 한 육체가 됐다 그말은 우리가 지금 구원을 이루는 것은 영의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육의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영은 주격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단독이 당신 혼자 우리 영의 구원을 이루어서 중생시켜서 영의 구원이 됐는데 영의 구원을 받은 자들이 영의 소유가 되는 육을 구속시키려고 성화 시키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들입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후에는 성령이 직접 하지를 아니하시고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해 주신다' 그렇게 말씀했어.-거기 뭐이야? 거기 뭐 있어? 자꾸 보니까 그래 마귀노릇 하는데 그게 자기 마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 듣는 데만 집중돼야지 딴데 옆에 사람이 존다고, 조는 데 대해서 깨우는 그것이 의로운 일 같지마는 깨우는 그자가 깨우고 난 다음에는 제가 좁니다.
그게 뭐이냐? 그게 벌써, 그러면 내가 할 것은 '아이쿠 저 사람 지금 마귀란 놈이 잠을 일으켜 가지고 은혜를 받지 못하게 이래 하니까 저 마귀가 내게 올라? 주여, 나를 자지 않게 해 주옵소서.' 자꾸 자기를 위해서 지금 단속을 이래 해야 되지 그뭐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하다 보면 결국 그 사람 그 잠마귀에게 사로잡히고 맙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은혜 받는 것도 그래. 여기 들어앉았으면 내가 은혜 받아서 내게서 받아 가지고 은혜가 넘쳐 흘러나가야 돼지지나는 은혜 받지 안하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그것 필요없어. 요한복음 10장에 보면은 '앞서 가면 뒤에 사람들이 따라온다' 그렇게 성경에는 말씀을 했습니다.
영이 단독 자기의 소유인, 심신을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부득이 해서 하나님의 성령님이, 중생시킨 성령님이 우리의 영과 함께 합작해 가지고서 우리의 심신을 구원하는 역사를 일으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는 밤낮 계속해서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구원 이루는 구원은 영이 자체를 뭘 구속하려는 것이 아니고 영 자체에 대해서는 자기의 소유를 튼튼케 만들기 위한 그 노력이고 또 성령님은 그 사람에게 예수님이 베풀어 놓으신 그 구속을 입히시는 것이 그것이 성령님의 당신의 책임이요 역사이기 때문에 성령님이 우리의 영을 통해서 그 사람의 심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이렇게 하려는 그것이 성령과 중생된 영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노력하고 있는 것은 뭐이냐? 심신 구원 얻기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노력인데 '두 사람이 합하여서 한 육체가 됐다' 그말은 두 사람이 합해서 한 육체 구원을 이룬다 그말입니다. 한 육체의 구원. 두 사람이 합해서 한 구원을 이룬다 하는 그말입니다. 두 사람이 합해서 한 육체의 구원을 이루고 있다 그러면 근본 하나가 둘로 나뉘어져 가지고 이 세상에 여게 저게 동서남북에 이래 있는 것을 또 하나님의 섭리로 어떤 인간을 통해서 우연을 통해서 이렇게 둘이 합해 가지고서, 결혼하기 전에는 개인의 구원을 이루지마는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둘이 합해서 한 구원 이룬다 그말이오. 둘이 합해서 한 구원 이루어져요.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가정구원이라. 그러면 개인구원이 있고 가정구원이 있으니 가정구원 그것이 어떤 사람은 개인구원은 잘 이루어 가지고 있어도 가정구원은 이루어 가지고 못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만 잘 믿으면 되는 줄 알아도 자기가 근본 하나가 둘로 나뉘어져 가지고서 있는 그게 있는데 자기 구원만 잘 이루면 반쪼가리 구원만 이루었지 가정구원은 이루어지지를 못한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둘이 합해서 한 육체가 됐다' 말은 둘이 합해서 한 육체 구원을 이루게 됐다 하는 그말입니다. 둘이 합해서 한 자녀가 났다는 그말 아닙니다.
둘이 합해서 한 육체 구원을 이루게 됐다.
그러기 때문에 아내의 구원이 바로 되면 남편 구원 바로 되고, 남편 구원이 바로 되면 아내 구원이 바로 되고 이래서 아내의 구원이 바로 되지 안했으면 그 남편 구원도 바로 되지 못한 것이고 반쪼가리고 또 아내의 구원이 암만 바로 됐다 해도 남편 구원이 안 됐으면 반쪼가리 구원이라.
그러기 때문에 한 육체 한 구원인 줄 알고 그것이 합해야 가정교회가 이루어집니다. 가정 제단이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처음에 개인구원이 있고, 개인구원이 그것이 차차 발달돼서 가정구원이 이루어지고, 가정구원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는 그것이 차차 발달돼 가지고 이 사회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사회구원이 이루어지는 그것이 벌써 어느 교회 하면은 그 교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사회구원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제 이 사회구원이 차차 커지면은 그것은 시대구원이 되고 그 시대에 자기 시대에 있는 택한 자들의 구원이 바로 돼야 자기가 시대구원을 바로 이루는 것이고 또 역사 구원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와 그 모든 인류시조 때부터의 그 모든 역사에 있는 구원이 바로 되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히브리 11장 끝에 보면은-저런 아이가 자꾸 나올 겁니다. 자꾸 나을 것이니 여러분들이 기도하지 안하고 그저 여기 와서, 지난밤에도 말씀했는데 말씀을 들을 때에는 생명과 성령, 성령과 생명을 같이 받아 가지고서 그 말씀과 함께 성령도 영접해야 되고 또 생명은 능력이라 했는데 그 능력도 영접하고 이 영접해야 되는데 여기 고기 덩어리만 와서 앉으면 되는 줄 알고, 또 강단에서 말씀하는 그 말씀을 세상 지식을 강론할 때에 강의할 때에 그 지식을 자기가 납득하는 것처럼 그렇게만 하면 되는 줄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다 껍데기 외식의 사람들입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일러 준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 살리는 것은 영이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 가지고만 안 되고 말씀이 곧 생명과 영이 돼야 된다 하는 이것을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그 개인구원이 가정구원으로 성장돼 나가고 가정구원이 사회구원으로 성장돼 나가고, 사회구원이 시대구원으로 성장돼 나가고 시대구원이 이제 역사구원으로 성장돼 나가서 빛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히브리 11장 끝절에 보면은 '구약에 이렇게 믿음을 지키려다가 톱으로 켜인 사람도 있고, 쫓겨나서 유리 방탕하는 사람도 있고 불에 사른 사람도 있고, 별별 고난을 당한, 그래도 그분들이 요동치 아니하고 믿음을 지켜 나갔지마는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그말이 있습니다.
저 구약에 있는 아담 하와의 구원이 내가 내 구원이 바로 이루어지지 안하면 그 구원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이루어 놓은 그 구원이 우리에게 연관성이 있어 가지고 연결이 돼 가지고 있는데 그분들의 구원이 바로 이루어져야 우리 구원이 바로 이루어지고 우리 구원이 바로 이루어져야 그 구원이 바로 이루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하는 우리는 거게는 복수인데 우리는 우리 구속받은 사람들만이 아니고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까지를 다 포함해서 우리라고 했는데 예수님만 말한 것 아니고 우리까지를 말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인 고로 교회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그러면 하나인 교회가 시대적으로는 어떤 데 있느냐? 벌써 근 육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긴 세월 가운데에 이렇게 늘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요 하나님의 교회요 또 공간적으로는 차차차 번져서 세계적으로 이렇게 퍼쳐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합하여서 한 교회, 한 구원을 이루는 것인데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몸이라.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가 위대한 개혁가 라도, 위대한 부흥사라도, 목회자라도, 또 위대한 신학자라 할지라도 이제 자기는 예수님의 몸인 이 교회에게 소속한 한 분자요 또 한 지체인 줄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이 조부랍게 생각해서 은혜를 끼치는 사람들은 자기 혼자가 다인 줄로 알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성신의 감화의 역사를 받아 가지고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그만 성신의 역사로서 은혜 역사가 있다고 해도 자기를 통해서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은혜 역사에 참여하는 것은 좋은데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리 됐다고 하면은 실쭉한 그 사람이 있는 것이 그게 시험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벌써 그것이 단일 교회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도 단일 교회에 소속한 한 지체요 한 분자요 한 세 포이니 자기가 온전케 되어져야 온전케 된 것은 역사에, 공간에 모든 교회를 다 봉사하는 일이 되어지고 그리 되면은 자기가 모든 교회에 유익을 주는 한 세포가 됐으면 모든 존재인 하나님의 교회의 전체의 혜택을 또 자기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구원인데 잘못하면 단일 교회, 교회는 하나뿐이요 예수님의 몸은 하나뿐인데 우리는 예수님의 몸에 속한 한 분자요 한 지체요, 이러기 때문에 분자도 그 몸에 이 지체에 속한 분자 있고 저 지체에 속한 분자 있고 세포 있고 있는데 지체마다 하는 일이 같지 안하고 이 지체는 이 일하고 저 지체는 저 일하고 이렇게 각각 그렇게 하는 일이 다르나 그것이 합해서 하나가 되는 것이지 다 눈이라면 손이 없으면 어떻게 되며 다 손이라면 눈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러기 때문에 육체의 이 몸도 하나님이 첫째는 하나님의 교회가 본체요, 하나님의 교회가 본체요, 그 본체를 모형하는 것이 이것이 영이요, 영을 또 모형하는 것이 우리의 또 육체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육체는 신령한 하나님의 단일 교회를 하나 나타낸 보통계시, 보통계시 자연계시입니다.
계시는 신구약 성경과 그 안에 내재하신 영감을 가리켜서 특별계시라 우리가 말을 그렇게 표현을 하도록 해 놨고 또 보통계시라 자연계시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또 하나님의 모든 섭리, 또 모든 존재들의 구조, 사람들의 마음의 구조 그런 것이 다 합해서 자연계시라 보통계시라, 계시라는 것은 열어 보인다는 것인데 그것이 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러한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각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이루나 마치 자연 계시인 그 속에 오묘한 하나님의 몸된 하나님의 몸인 이 교회,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교회인데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교회인고 하니 피조물로서 창조주와 꼭 같아서 피조물이 볼 때는 창조주인지 피조물인지 모를 만치 창조주와 같이 자존자와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되어서 이제 하나님에게는 피조물이요 하나님에게는 은혜를 받는 자이지마는 피조물들에게는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해서 대신 비취는 것이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요 만물은 발등상이라' 발등상이라 말은 발 밑에 붙었다, 발 밑에 있다 그말이요, 위치가.
그러면 우리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의 몸에 속했는데 그 몸이 다 눈이면 그 사람 아무짝도 못쓰겠소. 또 발만 돼도 못쓰겠소. 그 전부지 있어야 쓰는 것처럼 이제 그리스도의 몸인 이 교회는 이런 부분도 있고 저런 부분도 있고 이런 직책 저런 직책 하는 것이 있으니 다른 모든 직책이 눈이 말할 때에 눈은 지금 손발이 지금 일하는 그 전부가 눈을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눈을 위해서 일하고 눈은 그 혜택을 받게 됩니다.
그러기에 안과 의사가 만일 그 사람이 이 눈 하나를 자기가 연구를 하려고 하면은 그 눈과 전신 전체와 관련된 것이 어떻게 관련돼 가지고 있느냐 그것을 연구해야 되지 그건 연구하지 안하고 동그라이 눈 하나만 연구하면은 그 의사는 눈을 전부 다 버려지고 말고 맙니다.
그러면 이 눈에 대해서는 이 눈은 몸과 어떤 연관성이 있고 어떤 연관성이 있고 이래 가지고서, 과거에 한의들은 보면 자기의 눈이 나쁜데 눈에 다래끼라고 안 있습니까? 눈에 다래끼가 났는데, 눈에 다래끼 났는데 그걸 손가락 끝에나 발가락 끝에 거기, 거기도 많은 데가 있으니까 거기다가 침을 꽉 찔러 놓으면은, 찔러 가지고 찌르고 나면 그만 그 시간부터 그거 그만 부드러워지는 게 낫는다 그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 하나님의 교회라 하는 건 이렇게 돼 가지고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모든 지체에게 각각 이렇게 줘서, 이 손이 제 일을 못 합니다. 만일 내 손등어리에, 손이 빠르기는 빠르지마는 손등어리에 가시가 들었으면 이거는 제 손이 제가 못 합니다. 거게서 막 역꾼이 와야 돼요. 아프다 하면 발가락 끄터리까지 다 아프다고 그렇게 말하고, 인제 이것이 들었으면은 첫째는 와 가지고 신경이 '어데가 전신이 어데가 아프노?' '손등어리가 아프다.' 이 신경들이 동원을 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러면 저게 내가 가 봐야 되겠다.' 눈이 가 가지고서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또 들여다보고 난 다음에는 '이것은 여기 들었으니까 내가 오른손이- 왼손이 들었으니까-오른손이 이걸 가시를 빼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서 전체가 동원해 가지고 그래 한다 말이오.
그러면 오른손이 동원할 때는 그 배후에 모든 전신 전체가 신경이나 모든 그런 것이, 나는 의학을 공부 안 했지마는 이 오른손에게 집중해 가지고 오른손이 뭐 두뇌도 모든 신경 정신 지혜 총명 다 들어 가지고서 이것을 뽑으려고 애를 써 가지고서 그렇게 뽑아서 치료하게 되고, 이러기 때문에 '하나에게 다 주면 나머지기는 쓸데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권력을 각각 나눠 준 것은 서로 교만치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서로 아끼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온 전신을 그렇게 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했어. 그러면 그것은 육체를 가리키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몸된 교회인 예수님의 몸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손이 썩으면 발도 아프고 이런 것인데 우리가 교파와 교파끼리 서로 시기 질투하고 또 개인과 개인끼리 하고 있는 이것은 순전히 마귀의 공작입니다.
그러면 그거 옳은 것 옳다 하는 것이 마귀 공작인가? 그게 아니오.
아주 우리는 잘 알아야 되는 것이 우리가 다른 교파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다른 지체에 이래 잘못된 게 있으면 온 전신은 아픔을 가지고서 그걸 치료해서 이것이 잘되도록 하려는 그것이 그 사람의 몸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저게 가시가 들었다.' '그놈 가시 잘 들었다. 가시 들었으니까 어짜든지 그만 썩구로 내비둬 버려라.' 하는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안 된 증거라는 그겁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증거가 됐으면은 다른 교파에 교리적으로 잘못 됐든지 이런 게 있으면은 잘못된 그것을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야 되고 아픈 마음이 있어야 되고, 그걸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고, 고치고자 하는 마음에 고치는 방편은 자기가 그 교리와 신조를 바로 지켜 나감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배 들어가야 되고, 몇 번이나 몇 차례나 걸쳐서 간간접으로 가 가지고서 해야 될 것을 직접 가서 치료하려 하면은 반발이 되고 안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먼저 자기가 온전함을 이루면 그 혜택이 차차 차차 퍼쳐 가 가지고서 그와 같이 되어지기 때문에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아픔을 깨닫고 사랑을 깨달아 가지고서 자기가, 그 교파에서 잘 모르는 게 있으면 자기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증거할 수 있도록 그렇게 그 면에 은혜를 주셔 가지고 은혜를 입은 자이기 때문에 그 교리 신조대로 자기가 행동하는 것이 그들에게 소문에 들려가고, 또 그들의 모든 접촉 사회 생활에서 빛을 보게 되고, 깨닫게 되고, 이렇게 해서 어쨌든지 그게 치료가 되어질 만한 그만한 속에 아픔의 사랑, 동일체 또 단일 생명, 단일 구주, 단일의 하나님, 단일의 영감, 단일의 소망, 이것인 것을 깨닫고 이렇게 해 나가지 안하면 안 되는 것업니다. 그러면 그게 벌써 그걸 모를 때에는 시험에 들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기도문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인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이 임 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를 자꾸 말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말씀하신 그것은 복수인 모든 다수가 합해 가지 하나가 된 것이 그것이 우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돼야 자기 전체에 분자요 세포요 한 지체요 이런 것인 것을 알고 대아인, 대아 이 전부, 하나님이 택한 자는 육천 년 전에 세상에 나온 자도 있고 또 지금 우리 뒤에 나올 것이 아직 나오지 안한 자도 있고 또 동양에 있고 서양에도 있고 세계에 이와 같이 흩어져 가지고 있는 이것이 다 그리스도의 택한 자는 한 몸을 이루어 가고 세워져 가는 것이라는 이것을 자기가 깨닫고, 그래야 전부가 합해서 네라는, 택한 자는 많은 숫자이면서 이것 하나의 단일 생명으로 살고, 단일 생명으로 산다 말은 단일 연결로 산다, 대상이 주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에 주님과 연결돼 가지고 모든 것이 살아나기 때문에 이렇게 단일 생명으로 산다는 이것을 확실히 우리가 깨닫고 우리가 노력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이 지체는 저 지체에게 교만할 수 없고 저 지체는 이 지체에게 교만할 수 없어서 모든 것이 다 합해서 바로 되어져야 되는 감을 가지고 우리가 해야 되지 거게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하면은 안 된다 그것을 엄하게 말했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하면 안 돼 제가 우리라 하는 것부터 먼저 돼져야, 우리라 하는 것부터 먼저 돼져야 하나님이 저희 아버지 될 수 있다 말이오.
우리라는 것은 복수인데 천하에 역사에 택합을 입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은 자는 다 그것이 내라 그거요. 그것이 잘돼야 내가 잘되지 그러니까 그것이 내라는 이것을 깨닫고 여게서 있어야 이제 하나님이 아버지가 돼지지 그 복수에는 예수님도 안에 들었고 또 성령님도 내나, 예수님이 들었다 하면 성부 성자 성령 다 들었습니다.
예수님도 들어 있고, 성령님도 들어 있고, 진리도 들어 있고, 또 모든 우리 믿는 신자들도 다 들어 가지고서 하나인데 이 전체가 하나인 것인 것을 제가 지식적으로 알든지 자기가 무슨 소망적으로 알든지 알아 가지고서 하나인 것을 알고 이 하나가 돼 가지고, 내가 하나가 돼 가지고 '아버지'이래 불러야 아버지가 대답하는 것이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할 때는 내 아버지는 안 된다 그말이오. 내 아버지는 안 됩니다. 우리 아버지가 되지.
또 일용 할 양식을 달라고 주기도문에 하나님이 가르친 것은 일용할 양식은 육신의 양식과 신령한 양식을 다 말하는 것인데 우리는 한 날에, 내일 일은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내일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한 날 사는 데는 신령한 양식도 육체의 양식도 있는데 육체의 양식이 신령한 양식 되고 신령한 양식이 육체의 양식 되고, 심신은 이거는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자기가 오늘 하루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 내 구원에 요소가 되어지도록, 먹고 마시는 것이 내 구원의 요소가 되어져서 모든 역사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것이 빚지지 안하고, 요것을 빚지지 안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 하지 못해서 이것이 지금 할 바를 하지 못한 바가 되지 안하고 빚을 하나씩 벗어넘기는,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는 자기가 되기를 원하는 그것이 되어져야 비로소 그 마음부터 가지고 해야 그날 하루 종일 먹는 것이 믿음의 생활을 할 수가 있고 영감의 생활을 할 수가 있지 벌써 거게서 자기 개체로 나타났으면 그것은 뭘로 변해집니까? 우리가 아닌, '오늘날 우리에게' 하지 안하고 '오늘날 내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내게라고 내라고 돼져 버렸으면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으로 돌아갔습니까? 어떠한 사람으로 돌아갔소? 예, 그 사람은 벌써 옛사람으로 돌아갔습니다.
옛사람으로 돌아갔는데 옛사람이라는 것은 그것은 자기 아닌 자기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는 자기가 하나뿐이었는데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둘이 됐습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자기가 하나 뿐이라 말은 자기는 죽어버렸어. 주격이 죽어서 영은 죽어버렸고, 있으나 아무런 기능적으로는 없는 것과 같이 완전히 죽어서 기능적으로 아주 없는 것과 같이 됐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됐고 그러면 활동은 뭐이 하고 있느냐? 활동은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하고 있는데 마음과 고기덩어리를 합해서 이것을 육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정통과에서도 사람의 요소를 말하기를 이분설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삼분설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분설로 말하는 것도 맞고 삼분설로 말하는 것도 맞습니다. 왜? 삼분설로 성경에 말해 놨기 때문에 삼분설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분설로 말하는 것이 맞다 그말은 이분설로 말할 때에 하나는 영을 말하고 하나는 육을 말하는데 육은 한 마디로 육이지마는 육 안에는 심신 둘이 합해서 육이 되는 것이 포함됐기 때문에 내나 삼분설이니 이분설이나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되어져야만 되지 그렇게 않으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짐승과 사람과 다른 것은 뭐이 다르냐? 다른 것은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고 짐승은 육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이 없기 때문에 다릅니다. 그러면 짐승에게 마음이 없기 때문에 다르다고는 못 합니다. 짐승에게도 마음이 있고, 또 그 이성도 있고, 성경에는 '이성 없는 짐승과 같다' 그말은 인간적인 이성이 없다는 것이지, 그걸 가리켜서 본능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짐승도 고기덩어리 외에 본능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이 추억도 할 줄 알고 추억도 합니다. 추억도 하요. 짐승이 추억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많이 봤을 겁니다. 추억도 하고 또 그것이 예산도 합니다. 미래사를 예산도 하요. 예산도 합니다. 예산도 해.
예산을 어떻게 하느냐? 좀전에 제가 거기 있는 거게 처소 옆에 비둘기가 한 마리 어째 보니까 한 마리 와서 있는데 그것이 그 집에 밑에다가 삿뽀도를 고아 놨는데 거게 집을 지어 놨다가 그만 그걸 뜯으니까 새끼가 다 크지 못한 걸 물어다가 그 위에 올려 놓은 모양이오 이것이 거기서 고생을 하고 자라요. 보니까 그 풀잎파리 케일이라 하는 큰 채소 잎사귀 밑에 거게서 비가 오나 그저 바람이 부나 거기서 있으면서 어머니가 하루 두 번 와서 먹여줘요, 보니까.
두 번 와서 먹여주는데 그걸 먹으면서 아예 처음에는 어미가 와서 그러면 거게서 그저 이래 날개만 이래 흔들고 이러더니마는 또 조금 있다가가는 거게서 조금 높은 난간 위에 올라가서 이래 있으면서 어머니가 날아가니까 뭐 못견뎌서 뭐 떨어지니까 가려고 이래도 암만 예산해 봐도 날아가면 안 되겠으니까 안 날아가더라 그거요.
이러다가 며칠 자라고 나더니만 그 보니까 어머니가 날아가면 이래 쌓더니마는 또 어머니는 또 그게 아마 될 법 하니까 자꾸 이래 가지고 지금 따라오도록 이러니까 이게 나서 가지고서 날아 가지고 후르르 날더니마는 떨어질 상바르니까 여게서 날아 가지고 요리 와서 여기 그만 앉아버리고 말아요. 날아가 보니까 안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게 예산이 있어.
그래 가지고 그래 얼마가 지나고 나니까 그다음에는 조그매 날아 보더니마는 자꾸 이래 날아보고 그 안에 떨어져도 상하지 안 할 데서 요래 날아보고 저래 날아봐 가지고서 그래 날 상바르니까, 꼭 날 때는 실패없이 날아요. 그만치 날아가지고는 그다음에는 안 되면 거게 앉 았다가 또 이러지 먼데 나서지를 안해요.
제가 강아지도 개도 길러봤는데 강아지가 어미 개가 도랑을 훌떡 건너뛰면은 거게서 새끼 쳐놓고 거석한 놈은 훌떡 건너 따라 뛰는데 거기 좀 약하고 한 놈은, 어미도 갔지 형제들도 다 갔지 이러니까 애가 터져서 못 견뎌서 가려고 막 깽깽거리면서 아래로 위로 돌아다녀 쌓고, 거게 제 힘으로 건너갔다가는 거기 떨어지지 그 언덕에 서지를 못하고 물에 떨어질 터이니까 그렇게 돌아다니며 가고 싶지마는 예산을 대 보고 계산을 해 보니까 아무래도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안 가고 끙끙 거리며 거기서 울기만하고 있더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래 에미가 저리 돌아다니다가 나중에 건너오면서 따라오더라 그거요.
그것도 예산도 있지 또 기억력도 있습니다. 추억도 있지, 기억도 있지 또 예산도 있지, 희로애락의 감정도 있지, 사랑도 있지, 어떤 사람이 도야지를 길렀는데 도야지가 두 마리가 이래 있다가 그만 그게 죽었다 말이오. 죽으니까 죽은 그 시간이 되면은 그 울면서, 보면 눈에 눈물이 촬촬 흐르더라고. 그것도 감정도 있고 애정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그저 사람을 말하자면, 그러기 때문에 영을 모르는 사람들은 '사람은 짐승보다 다른 것은 고등동물이요, 짐승은 저급의 동물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가리켜 말하기를 짐승도 고기덩어리 만이 아니고 혼과 육 둘이 있다 하는 것을 말했어.
그러니까 '짐승은 죽으면 그 혼이 아래로 내려가고 사람은 죽으면은 그 혼이 위로 올라간다' 그말은 심판을 받아야 되고, 짐승은 죽으면 끝나지마는 사람은 죽으면 신불신자간에 심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에게 마음이라는 이것은 짐승의 그 본능이라는 거와 같애요.
이성이라고도 하고 이런데 짐승과 같은 짐승도 우리 사람과 같은 혼은 같이 있지마는 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의 마음을 영에다가 붙일 것이 아니고 고기덩어리에 붙여야 된다 그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은 혼이지 그거 영은 아니라. 그러니까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 '영과 혼과 몸' 이렇게 말한 그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그러니까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라, 고기덩어리 같으면 고기덩어리가 무슨 생각이 있습니까? 영은 내비두고 고기덩어리에 무슨 생각이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육체라고 가르칠 때에 그 육체가 뭐이냐 생각도 알고, 희로애락도 알고, 모든 걸 경영할 수도 있는 그런, 인간에게 마음이 있는 그걸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죽은 영은, 죽은 영은, 죄와 허물로 죽었다는 그 영은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없는 거와 같은데,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형 노릇만 하지 딴 노릇은 못 합니다. 죽은 영이라고 그것이 마귀 노릇하고 마귀에게 이용되는 것 아니오. 그거는 아주 그 영이 뭐인지를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육의 생각이라 하는 것은 '사람이 육체가 됐다' 창세기 6장에 보면 사람이 육체가 됐다 했는데 육체가 된 그 육체는 순전히 그것은 영은 죽어버렸고 다만 그 심신 그것만이 작용을 하고 있을 때에 그걸 가리켜서 육체라, 육체의 생각이라, 육체의 사람이라, 겉사람이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중생된 사람도 육체로 살 때도 있고 영으로 살 때도 있습니다. 중생된 영이 그 사람의 주격이 돼 가지고 육체를 다스릴 때도 있고 그 사람 심신이, 중생된 영이 주격이지마는 배척을 해서 버려버리고 그 영을 영접지 안하고 심신 제가 주장이 돼 가지고 하는 그게 전부 육체의 생각이요 육체의 욕심이라 그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이분설로 말하면 마음은 육에게 속했고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는데 지음받은 하나님의 모형인 그 영이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은 다른 데 나타나지 안했고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들이 나타났는데 하나님은 형상이 무형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신령한 형체도 없고 물질 형체도 없고 무형의 존재입니다. 무형의 존재인데 무형의 존재가 나타났을 때에 그분의 그 속성이 나타난 것을 성경에 말씀했다 그말이오.
그분이 자존하신 것이 그분의 속성이요, 완전한 것이 그분의 속성이요, 영원 불변의 것이 그분의 속성이요, 수많은 속성으로 나타나지마는 실은 그게 하나의 속성이 완전하기 때문에 그 속성에서 나오는 것은 뭐 노도 나올 수 있고, 기쁨도 나올 수 있고, 사랑도 나올 수 있고 미움도 나올 수 있고 모두 나오는데 그것이 하나의 단일성에서 나온다, 그래서 단일성이 그분의 속성이요, 그분의 지식이나, 지혜나, 또 선이나, 사랑이나, 진실이나, 거룩이나 의나, 주권이나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속성인데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그 형상이 속성에서 나왔고 또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나님이 있었으니 곧 그 하나님은 예수님 이신데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나님의 형상이라 우리를 부르신 것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님이 나타냈는데 우리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님의 형상을 우리가 입도록 하기 위해서라 이랬습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입도록 하기 위함이라 그말은 예수님의 그 물질적인 형상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글씨 하나 쓴 것도 남겨두지를 안했습니다. 음행한 여인 앞에서 글을 쓰시고 글을 다 뭉캐버려서 없애버려. 그것만 있으면 뭐 사진이 나왔으면 굉장할 것입니다.
이러나 없애버렸는데 당신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 곧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예수님을 보아서 알 수가 있다.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예수님의 형상을 입도록 하기 위해 그랬다'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은 곧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속성이 나타나,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난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오.
하나님의 속성이 예수님에게서 환하게 나타났고, 그러면 우리를 예수님의 형상을 입도록 하기 위해서 불렀다. 예수님의 형상을 입으면 예수님의 물형을 입느냐? 물형을 입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그 속성을 우리가 입어서,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 곧 우리의 중생, 우리의 죽은 영이 죽은 영이 하나님과 연결되면은 산 영이 돼 가지고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나타낼 수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그 입는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혹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렇게 말합니다. '영이 마음이요 마음이 영이라. 그러기 때문에 영이 마음이요 마음이 영이라. 양심이 영이요 영이 양심이라.' 그렇게 말하는 그런 말은 틀린 말입니다.
영을 이성적 영이라 그말은, '이성적 영이라' '양심적 영이라' 그런 말과는 달라. 그거는 말할 수 있어, 옳은 말이오. 그거는 말할 수 있소. 그말은 영은 양심적이요 영은 양심을 통해서 나타난다, 영은 이성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러면 이성적으로 역사를 한다 이렇지마는 '이성이 영이라' '마음이 영이라' '양심이 영이라'하는 그런 말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중생된 것은 영이 중생됐지 육이 중생된 것 아닙니다.
그런고로 중생된 그 사람에게도 그 마음으로 얼마든지 범죄할 수가 있고 그 고기덩어리로 얼마든지 범죄할 수가 있고, 그 이성으로 범죄할 수가 있고, 그 양심으로도 범죄할 수가 있고, 양심도 다 그것이 썩었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범죄할 수 있지마는 중생된 영은 하나님과 결합했기 때문에 다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고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그는 다시 범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거는 하나님과 결합이 됐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나신 이가 지키시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께로 나셨다 그말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이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뭐이요? 진리와 보내신 파송한 성령님이십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잘 들어서 전체 하나님의 도를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자꾸 이래 말을 하는 것이니까 그걸 잘 들어서 깨달으면 자기에게 도가 통해질 것입니다. 깨달으면 또 성령과 진리는 자기에게 같이 역사하게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도 우리가 돼야 아버지가 된다. 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영적 양식이나 육적 양 식이나 그것이 하루에 참으로 내 양식이 되는 것, 육이 먹은 그 양식이 우리가, 저는 밥기도를 할 때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주여, 좋은 식탁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는 구미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구미도 있게 해 주시고 또 소화도 잘되게 하시고, 또 영양도 또 잘되게 하시고, 또 건강한 몸도 되게 하시고, 이래 가지고 이것이 의의 병기로 주님에게 드려서 주를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그 결과를 맺게 해 주시고, 결과를 맺고도 주님의 구속이 크기 때문에 이 큰 구속을 내가 깨닫는 자 되어서 어떤 자리에서라도 무익한 종이라 하는 것을 알고 무익한 자로 알고 주님의 구속을 깨달아서 무익한 종이라는 것을 알고 사는 자 되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식기도를 할 때는 대개는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우리가 하루에 밥을 먹은 그것이 참으로 육체에 건강이 안 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또 건강이 돼서 힘센 사람 암만 있어봤자 무슨 소용 있습니까? 제가 어떤 약수탕이라 하는, 이름이 약수탕이요, 좋은 물이 아니고. 목욕탕 값도 꼭 같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약수탕인데 한번 거기 가니까 어떤 사람이 젊은 사람인데 자기가 서서 다리를 쭉 뽑아보고, 다리가 생기기를 잘생겼어요.
아주 쪽 곧은 게 참 아주 매꿈하게 잘생겨. 그래 그걸 한번 쭉 펴보고 또 팔을 한번 쭉 내보고 그것 아주 자랑스러운가 그렇게 많이 해요.
그렇지마는 그것도 좋기는 좋지마는 그것이 하나님에게 드려서 의의 병기로 살아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그 육체가 되지 못했다면 그것은 참 하나님 앞에 벌받을 것뿐이지 하나의 빚진 것뿐이고. 하나님의 것을 먹고 그 나쁜 짓 했으니까 안 그렇겠습니까? 이러니까, '잘 생기기는 생겼다마는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드려서 의의 병기가 돼야지 죄의 병기가 되는 날이면 그거 좋지 못하다'그런 말 나 혼자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육체의 양식을 먹는 그것이 '오늘 내 육체의 양식을 주소서' 하는 것이 오늘 육체의 양식 먹는 그것이 참으로 내 구원을 이루 위해서 그게 있는 것이면, 내 구원을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되는 양식이라면 그렇지만, 밥을 굶으면, 내가 어떤 사람들 보면은 소화가 안되면 좋겠고, 사람에게는 소화가 안 되면 좋겠고 몸이 좀 약하면 좋겠는데 이게 몸 튼튼하고 건강해 놓으니까 그 건강한 것 가지고서 자꾸 죄만 짓고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뭐 하나님이 주신 양식입니까? 그래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는 그말은 하나님께서 오늘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 이것이 구원이 이루어지게 해 주옵소서. 구원은 뭐인데? 구원은 주를 위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주를 위하는 것이 버렸으면 구원이 됐다 그말이오.
주님을 위하는 것이, 피조물이 조물주를 위하는 것이, 조물주를 위하는 것만 됐으면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조물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조물주를 위하고 조물주로 말미암아 살고, 그분으로 피동되고 그분으로 또 모든 것을 얻어서 가지고 또 그분을 위해서 살고 그분을 이리 이 연결이 된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요 천국인 것입니다. 하늘나라입니다.
그러기에 그래야 참 그 양식이 가치 있고 또 그날 심령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진리와 영감의 역사를 주셔 가지고서 진리와 영감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함께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고, 우리 마음을 주관하고 우리 마음과 진리와 영감과 중생된 영은 합해 가지고서 우리의 몸을 주관하고, 그러면 성령과 우리 영과 또 진리와 영감에 붙들린 마음과 육과 이 넷이 합해 가지고서 내가 살고 있는 모든 접촉하는 만물을 그것도 진리화 영감화, 또 영화, 또 내 육체화, 내 마음화돼져야 그것이 내가 산 것이 이긴 것이라 말이오.
이런 은혜는 우리가 돼야 되지 우리가 안 되고는 기도할 권리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랬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데 우리가 원수돼 가지고서 자기 개적으로 돌아가는 것, 개인으로 돌아가는 것, '나 나, 내것 내것.' 그리 되면은 그것이 뭐이냐? 옛사람으로 돌아갔다 그말이오.
옛사람으로 돌아갔으니까 그것은 악령 악성 악습, 악습이라 하는 것은 자기 중심의 행동을 한 번하고 두 번하고 자꾸 해서 모으니까 그것이 악습이 됩니다.
또 자기 중심의 그 성품, 자기 중심의 사상, 자기 중심의 성품, 하나님 중심이 그것이 하나님께서 지음을 주신 우리들인데 우리가 타락해서 변질이 돼 가지고서 이제는 우리의 모든 속성이 자기 중심의 속성이 됐습니다. 그것이 변질된 것이요 그것이 타락이요 그게 사망한 것입니다. 그러면 악성. 또 악령.
그러면 악령을 버리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제 악성을 이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중심하는 믿음으로, 또 악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 의의 행위 이것으로써 이제 되어지는 이것이 우리가 구원을 받고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옛사람 새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 새사람으로 되는 첫 입문이 뭐냐 하면은 우리가 입문이라 그말이오. 새사람이 되는 입문이 우리가 입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를 부르는 그것이 우리가 돼야 아버지를 부를 수 있고 아버지가 대답할 수 있고 그에게 아버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되는 것이 입문이요 우리가 되는 것.
그러기 때문에 그걸 다른 말로 하면은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 하는 그 사랑이라는 것이 그것이 뭐이냐? 우리화되는 것, 우리가 되는 그것이, 우리인 줄 알면 그것이 그만 사랑입니다. 이 사랑도 제일 악하고 독한 것이 사랑이요 제일 좋은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중심, 하나님 한 분의 중심화 시키려는, 중심화 시키려는 그것이 뭐이냐? 사죄 운동이요 칭의 운동이요 하나님과 화친 운동인 것입니다. 이러기에 우리화시키는 그것이 돼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 또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또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가 돼야 죄가 사해지지 그걸 밑에 해석을 하기를 '네가 남의 죄를 죄를 사해 줬으면'-이것 봐, 우리 ○○○목사님, 순전히 잠마귀한테 붙들려서, 이 앞에 ○○○목사님도 앞에 앉았기는 앉았는데 이거 내가 보니까 눈이 빨가이 해 가지고서 벌써 잠마귀한테 사로잡혀서 꼼짝을 못하고 있구만. 그거 내가 덤비는 것 보니까 그렇겠어, 보니까. 속았다 그거요.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 죄사함을 받는 그것은 죄에서 해방받는 겁니다. 죄에서 해방받는 것은 첫째는 어데서 해방받아야 되느냐 하면 악령에서 해방을 받아야 되고 악성에서 해방을 받아야 되고 악습에서 해방을 받아야 되니까 악령 그놈은 내가 아니고 딴데 따로 있는 악령이지마는 악령 악성 악습은 내가 아닌데 나를 죽인 그자가 둔갑을 해 가지고서 내인 척해 가지고 나타나니까 이 심신은 어리석어. 눈도 없고 심신은 눈이 없습니다. 심신은 겨우 눈이 있다 하는 것이 겨우 조그매 당달봉사 모양으로 아삼하게 짐작하는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이 있으나 그거는 밝지를 못하다 그말이오.
이런데 이것이 이제 총합해서 악령 악성 악습을 합해서 그것이 뭐이 됐습니까? 그것이 뭐이 됐지요? 저 한번 뒤에 대답해 봐. 그게 뭐이 됐습니까? 옛사람이 그게 뭣 됐습니까? 우리의 반대가 뭐이요? 나 나, 나.
따라합시다.
나! 나! 나를 죽여야 된다! 나를 죽여야 된다! 나 그것이 벌써 변해서 나를 죽이고 우리가 돼야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는 우리가 돼야 아버지도 영접할 수 있고,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도 있고, 또 죄사함을 받을 수도 있고, 또 시험 드는 것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시험은 모든 닥치는 현실을 이기게 해 달라 하는 것입니다. 시험에 드는 것은 현실에게 사로잡혀서 현실에 피동되고 현실을 정복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데,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그말은 현실을 어떤 현실을 당하든지 그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고 그 현실을 정복하고 현실에 대해서 나는 위에 지상 명령인 주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그대로 그 현실에게 탁 퍼쳐서 이렇게 놓으면 그 현실이야 내게 대해서 저거 할 일 저거 하니까 나를 죽이든지 말든지 나는 하나님에게 받은 바의 그 피동으로 현실에게 딱 선포하는 이것이 이제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돼야 시험에 들지 안하게 해 달라는 기도하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현실을 이기게 해 주옵소서 그말이오.
현실을 이기게 해 주옵소서. 현실을 이기게 해 주옵소서 하는데 이기게 해 달라 하는 그자가 내가 돼 가지고서 이기게 해 달라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현실 지고 안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는 누가 원수입니까? 하나님 원수는 누가 원수요? 나 그놈이 원수입니다.
나 그놈이 원수기 때문에 그놈이 들어서 하나님에게 간구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들을 수가 있소? 하나님이 듣지를 못하고 애가 터져서 '저 아이가 저렇츰 지금 저놈한테 삼켜 가지고 있으니까 저거 어떻게 구출해야 되겠느냐?' 지금 하나님은 땀을 흘리면서 분개도 하시고 노력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우리라는 것.
그런고로 부부라는 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 둘이 아니고 하나인데 하나가 들어서 둘이 된 그것을 이제 중매쟁이가 와 가지고 이렇게 해서 둘을 하나를 만들어서 결혼식을 떡 했기 때문에 이제는 결혼식 하고 난 다음에는 남자의 소원은 여자에게 있고 여자의 소원은 남자에게 있다 그랬어. 제 소원을 제가 이루지 못해요.
제 소원을 제가 이루지 못하고 여자의 소원은 남자가 이루어 줄 수 있고 남자의 소원은 여자가 이루어 줄 수 있도록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이렇게 서로 하나로서 역사하도록 된 한 육체 구원을 이루게 된다, 한 육체가 된다는 것은 한 자녀가 났다는 그말이 아니오. 그렇게 모두 해석한다 말이오. 그 해석하니까 꺼꾸로 모두 해석해 버려. 성경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에 전부 교회는 뒤비지고 만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한 육체를 이룬다 말은 둘은 한 구원을 이룬다 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이 하나가 둘 되어 있는 것을 둘을 합작됐으니까 그런 줄 알고 남편이 잘되는 아내에게 있고 아내가 잘되는 건 남편에게 있고 이 둘이 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하나 망하면 다 망한다는 것을 이것을 깨닫고, 한 육체 이루는 이것을 깨닫고 이렇게 서로 존경하고, 서로 돕고, 서로 책임지고 이렇게 나가면 참 말할 수 없는 영과 육의 큰 성공이 있어 구원을 이루어지는 것인데 마귀란 놈이 거게 와 가지고서 거기 쐐기를 박았다 말이오.
요 둘이 겨우 하나가 둘이 돼 가지고 이래 있는 것을 이제 둘을 합해 가지고 하나로 이래 만들어 놨는데 그 속에다가 쐐기를 박아 놨다 말이오.
쐐기를 박은 게 뭐이냐 하면은 쐐기를 박은 것은 남자를 통해서 쐐기 박는 것도 있고 여자를 통해 쐐기 박는 것도 있으니 그 사이에 두 사람이 일남 일녀로 이렇게, 하나가 됐던 것이 일남 일녀로 나눠진 것을 일남 일녀가 합해 가지고서 둘이 한 육체를 이루게 됐는데 그 속에다 쐐기를 박은 것을 가리켜서 그게 칠계범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칠계범이 들어서 쐐기를 박아 놓지, 또 칠계범 아니라도 그 마귀란 놈이 의사가 충돌되구로 해 가지고 의사가 충돌돼서 이래 벌어지기도 하고, 이 둘이 하나 안 되고 벌어지면 낭파가 되는데 벌어지는 그것도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이 있습니다. 벌어지는 것도, 하나님을 중심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함으로써 이 하나가 안 따라오니까 따라오도록 자꾸 이렇게 하며 하나님 중심과 떨어지지 안하고, 하나님 중심과 떨어지든지 이것하고 떨어지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될 때는 하나님 중심하고 붙들려 이걸 떨어지지 안하고 하나님 중심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 난 다음에 되고 난 다음에 그걸 떨어지지 안하고 붙어 가지고 자꾸 이를 역사해서 하나가 되도록 노력을 해 가지고서 하나가 될 때에 비로소 바로 돼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단계에 이제 남편이 자꾸 예수 믿는 것을 반대 하고서 '하나님과 떨어지면 내가 사랑하겠다' 또 아내가 '하나님과 떨어지면 사랑하겠다' 자꾸 이렇게 할 때에 이제 '하나님과 떨어져도 이 부부는 떨어질 수가 없다, 이 친구는 떨어질 수는 없다' 이리 되면은 '부부가 떨어질 수 없다' 이리 되면은 그거는 뭣이 되느냐? 그것도 그만 이것이 둘이 합해지는 게 아니라, 어찌 됩니까? 그리 되면은 하나는 하나님과 안 떨어지려고, '떨어질 때는 너를 떨어뜨렸으면 떨어뜨렸지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다' 이래 가지고 서로 충돌 의견 충돌이 되고 부부간에 이래 되는 것이 있고 그만 '정 그러면 부부가 하나이기 때문에 어떻게 부부가 나늴 수가 있느냐? 부부는 하나라 했는데. 의사가 하나이니까 부득이 뜻에 맞지는 안하지마는 따라가야지.' 해서 인간끼리 합해집니다.
합해지면 그것은 누구 하고 나뉘고 누구 하고 합한 것입니까? 하나님 하고? 나뉘고, 또 누구하고 합했소? 인간끼리 합해졌다 그거요 그것이 에덴동산에 하와가 아담을 사랑하고 아담이 하와를 사랑한 배암의 사랑이요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럴 때는 부부의 합하는 것이 그것이 나뉜 것보다 나쁘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나뉘면 다 나쁘고 합하면 다 좋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일단 이 생명이 끊어지지 안하고 생명에 달려 가지고 죽지 안해야 그 나머지기를 살릴 수가 있지 않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마태10장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이 세상을 하나되도록 화평케 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분쟁케 하기 위해서 왔다 이 분쟁이 있었으면 좋을 뻔했다' 그래 시어머니가 며느리 하고 부모와 자식하고 이렇게 된 그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러기 때문에 나뉘는 것도 합하는 것보다 좋은 것도 있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인간과 합해도 진리와 끊어지면 절단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일단 자기가 하나님과 진리와 끊어지지 안하고 연결을 가지고라야 그다음을 아내도 살릴 수가 있고 다른 걸 살릴 수가 있지 여게 끊어지면 다 죽어버리면 살아날 수가 없기 때문에, 이제 그때는 하나님과 합한 데 안 따라오고, 그리 하나님을 중심해서 합하지 안하려고 할 때는 부득이, 합하도록만 노력해야 되고 자기가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까 '하나님만 놔라, 네가 하나님 잡은 것 하나님만 놔라, 하나님만 놓으면 합해지겠다.' 그렇게 말할 때는 부득이 하나님하고 안 떨어지니까 '그러면 나는 달아난다' 해서 달아나도 하나님과 떨어지지 안하고 결합이 된 요것을 가지고 보존을 하고 있어야 거기서 능력이 나 와 가지고 그것을 뒤에 합해서 살릴 수가 있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는 그렇게 되어져야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라 하는 것은 제일 개인교회가 처음세고, 이 개인교회가 성장해서 가정 교회가 되고, 가정교회가 성장해서 사회교회가 되고, 사회교회가 성장해서 시대교회가 되고, 시대교회가 성장해서 역사교회가 돼서, 내라는 사람이 이것이 가정교회에 온전함을 이루고 또, 내 구원이 가정교회 온전함을 이루고, 내 가정교회 내 개인구원이 이 사회교회와도 한덩어리가 되고 또, 사회교회와도 한 덩어리 되고 내 구원이 또 이 시대교회와도 한덩어리가 되고, 시대교회와도 한 덩어리 될 뿐 아니라 내 구원이 역사교회와도 한덩어리가 돼야 되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것이 이다음에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니까 자기가 구원을 이룬 것이 그것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서 보니까 그저 생전 처음 만났지마는 옳은 교회는 만나니까 딱딱 들어붙고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그게 되지 안하고 가서 보니까 이거는 무슨 교파로, 이거는 세모잡이입니다. 세모잽이. 또 이거는 육모잽이입니다. 이러니까 한테 붙이려 하니 거기 새가 빈다 그말이오. 그러면 헛일이라.
가서 천 명 합하든지 만 명이 합하든지 어데 합하든지 다 하나가 돼야 이제 그리스도의 몸이 이루어가는 건데 그리 되는 데는 뭘만 가지고 뭐 그 사람들 만날 수가 있어야지? 그 사람들이 이래 구원 이루는지 저래 구원 이루는지 그 사람 구원과 내 구원이 하나가 돼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나 되겠습니까? 우리에게 잣대가 있어요. 잣대가 있기 때문에 잣대에 딱딱 맞춰, 잣대가 있고 도면이 있어.
신구약 성경은 도면인데, 출애굽기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께서 요래 요렇게 하라고 딱딱 말씀하시고 치수도 말하고 종류도 말라고, 순위도 말하고 다 말했는데 그걸 한목 다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반적인 전체적인 설계를 한번 해 주시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개별적으로서 '오늘은 요거 해라 조거 해라' 만들어 가지고 말한 대로 그대로만 탁탁 하면 된다 그말이오.
그게 뭐이냐 하면 우리 현실을 주시는 것인데 현실에 그 잣대로 재서 영감과 진리대로만 요렇게 딱딱 해 가지고서 가 보니까 영감과 진리 한 덩어리입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구원에는 우리의 개체라 하는 것은, 이거 개인이라는 것. 다시 말하면 개인을 다른 말로 말하면은 뭐라 했습니까? 개인이 뭐입니까? 여게 말해 봐. 내가 보니까, ○○○목사님 이 줄 나중에 다 풀어버리이소, 이 줄 다 풀어버려. 여게 앉을 자격이 없어. 앉을 자격이 없는 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졸고, 무슨 자격이 있어, 있기를? 그것도 세상적인 모양이라.
여기 있으면 여기 있는 것만치 야 보니까 저 교인들이 볼 때에 '아이구' 잠이 오고 이러다 보니까 저쪽에 쳐다보니까 눈을 딱 보니까 '아이구' 하나의 이스라엘이 요단강 건너가 가지고 열두 돌을 포개 놓은 것 모양으로 이제 다른 사람들이 힘을 얻고 깨우쳐야 되는데 '목사님도 조네. 또 조사님도 조네. 조는 것 보이니까 조는 것 보이려고 여기 지금 모여 앉았습니까? 그러니까 이 줄 다 끌러버려. 다음부터 끌러버려. 앉을 자격 없어요.
줄 때문에 자꾸 막 줄을 잔뜩 쳐 놓으니까 우리 ○○○목사님이 오늘 아침에 그만 아주 잠을 일등 잠을 잤다 그말이오. 이것 보니까 그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했으면 그거 잠이 안 올 터인데 그거 아마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안한 일을 한 모양이오. 이거 줄 끊어버리십시오.
내가 어데까지 했었지? 뭘? 옳지. 그만 제일 원수가 개인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것이 제일 원수입니다. 이러니까 아버지에게 대해서 자기의 하루의 양식에 대해서나, 자기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읍시고.' 사하여 준다 말은 해방받는다는 말인데, 해방받는다 말인데 우리가 죄에서 해방받는 것, 그것도 우리가 돼야 해방받을 자격이 있지 우리가 아닌 자를 죄에서 해방시켜 놓으면 그것이 배나 지옥의 자식이 되려고? 에덴동산에서 이제 우리가 되지 안했기 때문에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어지니 이들을 냅두면 생명과실을 먹고 영원히 살까 싶어 두렵다 쫓아내라' 쫓아내 놓고서 들어오지 못하구로 화염검으로 지켰다 그거요. 우리가 안 되고 내가 됐기 때문에 그래 됐습니다. 우리가 안 되고 내가 됐기 때문에 쫓겨나왔어.
에덴동산에 쫓겨나온 그 원인이 뭐이냐 하면 우리가 아니고 내가 됐기 때문에 쫓겨나와. 내가 뭐인데? 내가 그것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서 자기 중심이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를 범죄케 하는 자가 누구인가? 이러기 때문에 그 범죄케 하는 자를 우리가 깨닫고, 범죄케 하는 자가 누굽니까?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자기 아닌 자기 그놈이 범죄케 하는 주인공이라 그거요.
그래 가지고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범죄할 때에 범죄하는 힘을 가만히 보면은 자기가 과거에 범죄했던 그것이 한번 두번 해서 구습. 버르징이 말이오. 구습, 버릇. 그것이 강하게 힘을 또 쓰고 있습니다 그놈이 우리에게, 과거게 죄 지었던 그 습관, 습관 습성, 그놈이 들어서 그와 같이 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 그말이오. 그놈이 악습인데 악습이 우리를 범죄케 하는 그 능력이요, 또 보면은 마귀란 놈이 우리를 훼딱 뒤벼뜨려서 어둡게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 '이것은 너를 훼방하는 소리다. 너를 삣는 소리다. 너를 멸시하는 소리다. 너 너 너.' '나 나, 내게 대해서.' 자기를 알뜰히 생각하는 것 같지마는 자기를, '너를 훼방하고 너를 멸시하고 천대한다' 이랄 때에 그때 '누가 그래요?' '아무것이가' '그렇습니까? 참 고맙습니다. 내 원수를 그분이 죽여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내라는 걸 죽여 주니 감사하다고. 그러면 내라는 그놈을 죽이려고만 딱 들어서면 그때부터 성령이 와서 역사하고 마귀는 달아나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함받는 것도 죄에서 해방받는 것인데 우리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말은 다른 사람이 나와 관련돼 가지고서 죄에 빠진 것이 있으면,죄에 빠진 자가 있으면, 나와 관련돼 가지고 범죄한 자가 있으면 그자를, 다른 사람은 범죄를 모르지마는 나와 관련돼 가지고 범죄한 전 내가 안다 그말이오.
그분이 악독의 죄를 지었든지 욕심의 죄를 지었든지 무슨 죄를 지었든지 지은 것은 내가 아니까 내가 안 그거는 그때부터 내가 거기서 해방받도록, 그 죄에서 해방되도록 노력하는 그 일을 해서 '네가 해 방되도록 노력하면 이제 천부께서는 너를 해방되도록 노력해 줄 것이고 네가 헤방되도록 노력하는 이 노력이 없으면 천부께서는 너를 해방 되도록 노력하시는 노력이 없다' 그말입니다.
그 말인데 마귀란 놈이 해석을 주기를 뭐라고 해석을 주느냐? '다른 사람을 관용해라. 죄지은 것도 묵과하고 관용해라.' 이래 가지고서 죄를 관용한, 죄를 관용하고. 죄를 용납하는 이것을 용서라 사함이라.
사함이라니? 사함이라 말이 용서라 말이요 사함이라 말은 해방이라 말인데 이것을 혼돈돼 가지고서 어짜든지 죄짓는 것을 용서해야 그 사람이 무슨 죄를 지어도 '그래 다시 짓지 마라.' 이것을 용납해야 그래야 하나님 앞에 용납을 받을 줄로 이렇게 해석을 해 놓은 그게 꺼꾸로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예를 들면은 다른 사람의 어떤 잘못된 비를 들었으면 잘못을 들었으면, 잘못을 들은 그 전에는 자기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잘못된 그것을 자기가 들었으면 제가 잘못됨이, 잘못됨이 관련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른 사람의 갑이 잘못된 것을 내가 들었으면 듣기 전에는 그 사람의 잘못됨이 나와 관련이 없지마는 그 사람의 잘못됨을 내가 안 후부터는 그 잘못됨이 내게 관련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뭐냐 하면은 곧 우리에게 잘못됐다 그말이오. 우리에게 잘못돼.
이 대아인 대아인 그리스도의 몸인 이 대아에게 잘못된 거니까 그거 곧 우리에게 잘못됐기 때문에 그거 우리에게 그 사람이 '아무것 이가 잘못됐지 너한테 잘못됐는가?' 그것이 잘못된 죄는 우리가, 우리의 원수는 죄입니다. 잘못된 거는 삐뚤어지는 거는 우리의 원수인데 잘못된 것이 내게 관련이 있으니 관련이 있는 그걸 '그 잘못됐다' 훼방이나 하고 그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해 줘야 된다.
그것을 사해야 천부께서 너를 사하는 운동을 하신다.
사하라 말이 무슨 말입니까? 용서라 말입니다. 용서라 말이 무슨 말이요? 사하라 말이오. 사하라 말은 무슨 말이요? 해방이라 말입니다. 요걸 알아야 돼요. 용서라 말은 이제 사함이라 말이요. 거기 해 놓지 안했습니까? 사함을, 주님이 말하기를 인간 말로 용서라 말했는데 이걸 껍데기 용서라면 죄를 용납하라는 말로 착각하고 있다 그말이오.
이런데 사함이라 해방이라 그말은 네가 그 사람의 잘못을 들었으면 들은 그때부터 너와 관련된 죄이기 때문에 네게 책임있는 죄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잘못된 데에 빠져 있는 그것을 네가 해방시킬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해방시키는 그 운동을 네가 해서 어짜든지 그 사람을 거기서 해방되도록 기도도 하고, 노력도 하고, 빛도 보이고 이렇게 해서 어짜든지 그 사람을 해방시키는 운동을 해 가지고서 해방시키는 네가 그 사람을 해방시키는 운동을 하면은 나도 너를 해방시키는 운동을 할 것이고 네가 해방시키는 운동을 하지 안하면 나도 네게 대해서 해방시키는 운동을 하지 않겠다 하는 이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란 놈은 순전히 성경을 인본적으로 해석을 해 가지고서 사람들의 깨달음을 훼딱 뒤벼트려 놨기 때문에 이거 구원이 틀렸다 그말이오.
제일 지금 기막히는 것은 뭐이냐 하면 이 사랑에 대해서 '사랑은 제일이다' 사랑이 제일이지요. 사랑은 뭐이 사랑이냐? 배암의 사랑이 있으니까 배암은 사랑은 제일 해로와서, 배암의 사랑이 인간 사랑이오 선악과 먹고 난 다음에 하와가 아담 사랑하는 그것이 배암의 사랑 배암이요 배암에게 받은 사랑인데 그 사랑은 악 중에 악입니다. 그 사랑이 아담을 죽였어. 그 사랑이 아담을 죽였고 아담도 그 사랑 때문에 하와의 말을 들어서 죽었습니다.
이러니까 이 사랑 중에, 제일 악한 게 사랑이고 제일 귀한 게 사랑인데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지 안하고 사랑을 혼돈해 가지고 '사랑하자. 뭐 공산주의 민주주의 뭐 있느냐? 합한 게.' 합한 것이 좋기야 좋지마는 합한 게 진리만 못하고 합한 게 하나님만 못하다 그말이오. 진리를 배반하고라도 합한다, 하나님을 배반 하고라도 합한다. 그럴 수 없는 거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배반치 않기 위해 진리와 배반치 않기 위해서 서로 나뉘어지는 것도 그것도 좋다. 내가 그거 위해서 왔다. 이렇게 나뉘어져 하기 위해서 왔다. 나뉘어져서 일단 네가 하나님께 속해 가지고라야 그런 것 그걸 살려낼 수가 있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요새 지금 큰 이 독이 들어서 마구 사람을 휩쓸어 죽이는 건 뭐이냐 하면 화합이라 하는 이 독이 들어서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게 뭐이냐? 그게 속에는 뭐이냐 하면 사랑이라 하는 그것입니다. 사랑 속에 뭐이 들었느냐 배암이 있어. 이러니까 우리가 그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참 이거 알면 그만 다 아는데, 알려 하면 다 아는데 어데서 삐뚤어지느냐 하면은 내라는 그놈 때문에, 내게 손해가거든. 내게 손해. 여러분들이 여기서 말씀을 들어도 말씀을 들을 때에 길가 뿌린 씨가 안 돼야 되고, 길가 뿌린 씨가 안 돼야 되겠고 또 돌짝밭에 뿌린 씨가 안 돼야 되겠고 덤불밭에 뿌린 씨가 안 돼야 됩니다.
'덤불밭에 뿌린 씨'는 세상 이기는 것이요, '돌짝밭에 뿌린 씨'는 자기를 이기는 것이요, 또 '길가에 뿌리는 씨'는 이 세상에 많은 인간들의 중론 그것을 부인해야 된다 그말이오! 이렇게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야 되는 것인데 세상하고 합해 가지고 무슨 구원을 이루겠다고 지금 자꾸 그러고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이제 이래 가지고 뚤뚤 뭉쳐서, 요한계시 17장에 보면은 열 뿔 일곱 머리가 합해서 하나가 된다' 말은 이제 예수님의 재림 때가 가까차 올수록 세상에 있는 힘이라 하는 건 전부 합해 가지고 한 힘이 됩니다. 힘이라 하는 건 전부 합해 가지고 한 힘이 돼요 한 힘.
이러니까 종교와 종교와 대립이 됐고 또 종교와 정치가 대립이 됐고 이렇지만 이제는 종교와 정치와 모든 게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되고 진짜 예수 믿는 사람만 하나가 안 됩니다. 어린양으로 더불어만 적이 됩니다. 어린양으로만 더불어 적이 되기 때문에 어린양 하고 마지막에는 싸우게 됩니다. 싸우게 되는데 '진실한 자는 이긴다' 했습니다. 진실한 자라는 그 진실에 대해서 뒤에 시간이 있으면 언제 한번 말씀을 하겠습니다.
이러니까 사해 주는 것도 우리가 돼야 되고 또 우리로 시험에 들지 않는 것, 모든 환경을 정복하고 이기는 것, 이기는 것도 우리부터 돼져야 되지 우리 되기 전에는 주님이 이기게 안 해 주십니다.
우리 되기 전에 놓으면 그거 누가 이긴 것입니까? 저 ○○○장로님? 우리가 되기 전에 승리를 시켜 주면은 그 승리는 누가 승리했다고 하겠소? 우리가 되겠다? 그건 뭐 얼토당토 안한 말인데.
우리가 되기 전에 그 사람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시험을 이기도록 해 주면은 어떤 놈이 양냉이 치고 깃발을 들고 나옵니까? 어느 놈이 양냉이 치고 깃발 들고 나오요? 저 ○○○장로님? 악령. 또 그 옆에? ○? 인제 이 시험쳐서 다 인제 모두 낙제가 돼야 인제, 여기 줄 쳐 놓은 안에 있는 사람들 보니까 여러분들이 시험에라 말이오. 모든 사람이 '저 안에는 인제, 그 안에는 벌로 못 들어간다.' 그러니까 '됐다. 요것들만 졸게 해서 요것들만 솔끈 점령하면 이것 다 점령된다.' 마귀란 놈은 그 수단이 있다 그말이오. 그 수단이 있어. 그러니까 조이거든. 또 하나님은 그보다 능한 수단이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한번 이래 가지고 수치를 당해서 줄 딱 치워버리니까 이제 수치를 당했다 말이오. 그 수치를 당하면 낯이 뻘거이 수치 당한 줄 알아야 되는데 그래도 뭐 철면피라. 똑 철판 오양으로 도무지 이래 뻔뻔하게, 뭐라 해도 예사로 예사로, 그거는 벌써 양심에 가책도 못 받는 것이기 때문에 화인 맞았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되기 전에 시험을 이기도록 해 주시면 그게 뒤에 가서 제 자랑하게 된다 말이오. 우리가 되기 전에 시험을 이기게 주면 제 자랑 돼.
이러니까 사람이 이기고 난 다음에는 시험에 듭니다. 이기고 난 다음에는 시험에 들어요. 이러니까 과거에 신사참배 때도 이기고 난 다음에 시험에 든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기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는데 이거는 전체의 한 전체에 속한 전체의 일부분이 세포 지체가 이겼기 때문에 이 이긴 이것으로써 전체에게 혜택을 입혀서 영향을 입혀야 된다 이러기 때문에 그 이긴 그것이 영감과 진리와 함께 역사하지 안 하고 자기 개인으로 나불거져서,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날 때부터 앉은뱅이된 자를 살려 놓고 난 다음에 모든 사람들이 '햐, 저분이 저런 이적과 기사를 행했다.' 이러니까 '왜 우리가 무슨 이런 일을 한 것같이 너희들이 우리를 모두 이상하게 보고 주목을 하느냐? 이는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가 이 일을 하셨다' 그렇게 똑똑히 밝혔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되기 전에 승리를 안 준다 그말이오. 우리가 되기 전에 승리를 안 줘요.
그러니까 승리도 우리가 돼야 되고, 또 죄에서 해방받는 것도 우리가 돼야 되고, 또 하루 동안 가치 있는 생애를 하는 것도 양식 얻는 것도 우리가 돼야 되고, 하나님이 자기의 아버지로서 거게서 후계가 돼 가지고서 아버지의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는 무한한 그 유업을 받는 그것도 우리가 돼야 되고, 이러니까 우리가 안 되면 전부 망하는 것이요 발가벗는 것인데 이게 어리석게 우리를 깨닫지 못하고 자꾸 '나 나' 해 가지고 제가 아니면, 제가 아니면 진리라도 그만 반대합니다. 아주 어리석은 일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안 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개인교회가 이제 가정교회로 커 나가고, 가정교회가 사회 교회로 커 나가고, 사회교회가 시대교회로 커 나가고, 시대교회가 역사교회로 커 나가야 된다는 그말은 자기가 처음에는 자기 혼자만 맞았지마는 가정하고 둘이 이래 가정에서 합하려 하니까 모순된 것이 많고 거게서 복잡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이 가정교 회에 딱 합하도록, 가정교회가 이루어지도록, 그게 뭐이냐 하면은 상 대방도 변화되지만 자기 변화라 말이오.
자기가 변화돼 가지고서 가정교회도 딱 들어맞고 사회교회서도 딱 들어맞고 인제 온 교회 그 교인이 백 명이든지 천 명이든지 뭐 얼마가 모일지라도 그 교인들의 그 신앙이 자기 신앙이요 그 교인들의 신앙이 말하자면 손에 가시가 들어오니까 온 전신이 아픈 것처럼 그 교인의 희로애락과 모든 감정, 생명. 역사 그것이 한 몸과 같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사회교회가 된다 말이오. 사회 교회가 되는 그것이 이제 그 교회로서는 자기와 우리가 됐다 그말이오. 이 말을 압니까? 우리가 됐어.
그러면 자기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은 자기 개인으로서는 똑똑하게 이루었지마는 그것이 가정교회도 안 됩니다. 가정에 가니까 모순되고 배치되고 마찰되고 이러니까 그것이 조화가 바로 안 됐다 그말이오. 바로 되면 다 조화가 되는데 바로 안 됐다 그거요.
거기 바로 됐지마는 그것이 교회에 오면은 '아무것이네 가정" 어떤 교회는 가 보면은 그 교회에 김가 교회가 있고 이가 교회가 있고 박가 교회가 있고 지방 교회가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 어떤 교회 가 잊으니까 거게는 호남 교회인데 호남인들만 똘똘 뭉쳤고 호남인과 이제 또 무슨 월남한 분들, 또 경상도, 충청도와는 이래 합해지지 안하는 그게 있었기 때문에 제가 그 집회 동안에 하면서 그걸 깨뜨리는 역사를 하나님이 하라고 보냈다 해서 '지방 정실을 완전히 떠나라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네 애비 친척 본토를 떠나야 된다. 이랬었기 때문에 그것을 완전히 초월해서 그것을 벗어나서 거게 매이지 안하고 초월해져야 되지 그 전에는 안 된다.' 하는 그것을 많이 말해 가지고 말을 했었습니다.
그래, 그래 가지고 자기가 보니까 이제 시대 구원에도 자기 구원이 모순되지 안하고 그 시대의 모든 구원과도 화합이 될 수 있는 그 길이 있기 때문에 바로 되면 화합이 된다 말이오.
화합이 돼 바로 되는데 바로 되는 것은 하나님과 화합이 돼 가지고 된 그걸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과 화합을 떼놓고 시대교회와 하나되기 위해서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하고 그들과 하나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오늘 교회들이라 그말이오! 이것 지금 다 탈이라 그말이오.
이래서 하나님과 자기와 하나된 것이 이것이 하나되지 아니한 시대교회와 마찰이 있어도 그것이 자기인 줄 알고 이제 거게서 하나되도록 하기 위해서 기도도 하고 또 말을 해서, 개를 개라고 말하면 도로 반동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방편적으로는 간접적으로, 또 후퇴적으로, 또 친목적으로, 기도적으로 하는 운동도 있고, 말로 전해서 운동하는 것도 있고, 어떨 때는 대결해서 책망으로 하는 것도 있고, 이래서 어쨌든지, 그 시대교회가, 바로 된 교회는 언제든지 있습니다. 없는 것 아닙니다. 바로 된 교회가 있기 때문에 바로 된 그 교회와 자기와 합작해 가지고 바로 되지 안한 것을 그것을 자기 몸에 병든 것인 줄 알고 그것을 치료하도록 이렇게 노력해 가지고서 그 시대교회와, 시대교회에 삐뚤어진 것과는 안 해도 바로 된 것과는 바로 되도록 이렇게 돼지고 그 다음에 역사교회와 바로 되도록 이렇게 하는 그것이 우리 구원을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땅위에서 이 구원을 바로 이룬다고 하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에 통일된 이 모든 존재 그것을 우리가 으례히 통치하고 그들을 통치할 수가 있고 그들에게 또 생명과 은혜를 끼쳐 줄 수 있는 시은의 기관으로 살 수 있습니다.
에베소 1장에 보면은 '교회는 만물에게 층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충만이라' 하나님의, 만물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층만케 하시는 그 충만 덩어리가 교회라, 그러면 교회에서 충만이 나와 가지고 그들에게 충만케 돼진다. 교회는 머리, 하나님은 머리요 교회는 몸이라 했다 말이오. 이렇게 밀접해.
그거는, 그것은 뭐이냐? 하나님과 이 교회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이렇게, 무슨 자갈 무더기, 자갈 무더기를 모아 놓은 것 모양으로 그래 합한 것도 아니고, 또 기계를 부속을 조립해 가지고 한 것과 같은 그래 가지고 된 것도 아니고, 순전히 우리 몸에 여러 지체 세포가 있지마는 한덩어리로 이와 같이 되어지는 그것보다도 더 밀접한 건 세상에 없기 때문에, 여럿이 합해서 하나된 것은 사람의 몸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을 들어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교회에도 쐐기가 박히면 헛일이라. 아무리, 마귀는 자꾸 쐐기를 박습니다. 쐐기를 박아요. 쐐기는 뭐이 쐐기냐 하면은 쐐기를 모르는 사람들 있을 것이기 때문에 쐐기는 나는 시골 있어서 장작 팰 때 장작을 많이 패봤어요. 이래서 쐐기를 알아요. 쐐기는 나무로 만들어 가지고 끄트머리는 얇고 위에는 벌어지고 이러는 게 있었는데 쐐기를, 그전에 나는 시골에 있을 때는 이거 나무로 만들었는데 쇠로 만들었어. 쇠로 만들어 가지고 요래 끄트머리 요렇고 또 위에 넙적하기 때문에 나무에다 대고 그만 그 쐐기를 대고 자꾸 뚜드려 박으면 이게 처음에는 조부단 하지만 들어갈수록이 자꾸 넓어지니까 그만 나무가 쩍 갈라집니다. 이러니 쐐기 있으면 뭐 장작 쐐기가 어떻게 좋은지? 쐐기를 박는다 말이오. 이거 지금 바쁩니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신앙이 화합됐으면 저 쐐기를 박아야 되겠다.' 쐐기를 가지고서 박는다 말이오.
그래 가만이 보면은 '아무 목사님과 아무 목사님 속에 쐐기가 박혔다' 쐐기 그놈을 빼야 되겠는데 쐐기 그걸 뺄 때에 처음에는 옳고 틀린 것을 말을 하다가 아예 안 될 상바르면 그거는 말 안 해야 됩니다. 말하지 안하고 아무리 삐뚤어져도 말하지 말고 자꾸 위해서 기도만 하고 하나님이 그 쐐기를 뽑아 줘야 되지. 그래 가지고 어쨌든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 안에서 진리와 영감으로 하나가 돼야 거기서부터 무엇이 있지 하나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가정도 두 사람이 부부된 것이 아니고 하나가 둘이 되어 이 공간 세상에 나왔고 공간 세상에 나온 것이 때가 되니까 둘이 합하여서 한 부부된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된 부부요 하나님의 예정된 부부요 그것이 하나된 참 부부라 말이오.
그거는 둘이 합해야 한 구원을 이루는 굉장한 구원을 이루게 될 것인데 거게 마귀란 놈이 쐐기를 박는 것이 있다 말이오. 첩살이를 넣어 가지고 쐐기를 박고, 또 가운데 간부를 넣어 가지고 쐐기를 박고, 또 거기 간음을 시켜 가지고 쐐기를 박고. 이래 박고, 또 무슨 의사 충돌을 가지고서 이렇게 쐐기를 박고, 쐐기만 박히면 갈라지면 헛일입니다.
이러니까 갈라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되고 갈라진 것은 합작을 될 때에는 하나님과 먼저 붙고, 갈라지는 그걸 갈라지지 않도록 하려는 그 힘보다도 하나님하고 이래 결합되는 그 힘이 강해야 결합이 되고 난 다음에야 뭐 갈라진 걸 뭐 어떻게 하는 것이지, '결합을 냅두고 갈라진 걸 이걸 막아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진리와 영감에 삐뚤어져도 이제 인간끼리 화합을 해야 된다' 이러면서 성구를 쓰기를 무슨 성구를 쓰느냐 하면은 '바울이 율법 있는 자에게는 율법 있는 자로 없는 자에게는 없는 자로 이거는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 했다' 이러니까 그것이 이제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 하고도 그렇게 한 줄로 그렇게 알면 틀립니다.
그게 그래서 인간 화합을 위해서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하라 그말은 아니오.
다른 데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말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말씀하신 그것이 이제 사람의 율법 있는 자로 뭐 없는 자로 그와 같이 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을 얻어서 주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나 되는 운동 이 운동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하나되게 하는 이 운동을 버리고 인간끼리 하나되게 하는 그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전부 꺼꾸로 지금하고 있다 말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깨어 있어야 됩니다. 말세가 되어갈수록 벌써 이 마귀도 이 세상에 있는 지식이 더해지리라 말씀하신 대로 얼마나 이십세기의 과학이 지금 발달돼 가지고서 가고 있습니까? 이 과학의 주인이 누굽니까?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이런 그 사람을 과학 이런 것을 다 우리가 자연계시로, 저것이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저 과학이, 지금 뭐 인공위성이 나왔다, 뭐 핵 세계가 됐다, 또 뭐 하는 그것을 우리가 내 구원을 위해서 과연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이용할 수 없으면 그것의 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약한 자는 강한 자의 종이 되고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는 아침에는 이제, 조금 영에 대해서 그만 좀 말이 나왔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을 주셔서 나는 생각지도 안했는데 그런 말씀이 나와서 하게 됐습니다.
그러기에 영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따로 있는 것 이러기 때문에 영이 범죄한 영은 죽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은 생명이 하나님과 연결됨으로써, 영의 직분은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뿐입니다. 영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뿐인데 하나님의 모형이기 때문에 원형을 나타내는 것뿐입니다.
영의 활동 범위는 뭐이냐? 영은 자기의 심신 안에서 활동하지 심신 밖에서 활동을 못 하게 됩니다. 그러면 지금, 지금은 영은 무슨 운동을 하고 있느냐 하면은 자기 소유인 그 심신을 영 주격인 자기에게 복종시키려고 복종하는 영이 되도록 하려고 하고 이에 대해서 성령이 중생된 영의 후원이 돼 가지고서 협조를 해 가지고 하고 또 진리가 협조를 하고 또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가 협조를 해 가지고서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속성으로 된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것인데 중생된 사람은 범죄를 합니다. 중생된 사람이 범죄를 하는 것은 중생된 사람이라면은 그 영이 주격이기 때문에 그 속에 영이 중생됐지마는 육은 아직까지 범죄 안에 있다 그말이오. 영은 중생됐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이 중생된 것 아니오. 몸이 중생된 것 아니오.
마음과 몸은 단번에 중생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수백 수천 차례를 통해서 그것이 부분적으로 자꾸 세포 세포적으로 돼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기능도 여러 수천 기능도 넘은 그 기능이기 때문에 요 현실에서는 요 기능이 살고 저 현실에서 저 기능이 살고 그 현실에서 그 기능이 진리와 영감대로 움직이면 그 현실에서 움직인 그 기능은 살아났습니다. 그건 영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번에는 전체가 사는 것 아니고 개체적으로서는 단번에 살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영은 하나님의 이 대속의 공로의 의를 입어서 살아났지마는 아직까지 이 몸은 죄 아래에 있다고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성구가 어뎁니까? 로마서 8장. 몇 절? 10절. 녜, 그 아래 내려다 보면은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짐승에게도 혼은 있고 영은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이라 하는 것은 마음이 없이 무슨 생각이 있습니까? 육신의 생각이라는 그 육신은 고기덩어리의 생각이라 말이 아니오. 심신이 합한 그자의 생각인데 심신이 중생된 영, 중생된 영은 성령, 거게 연결이 돼 가지고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중생된 영으로 말미암아 그 심신이 움직여야 되지 거계 연결 없이 심신 제 단독이 생각하는 것은 벌써 영을 배반한 것은 마귀의 소유가 됐다 말이오.
우리는 독립은 못 합니다. 우리의 심신이 마귀의 것이 되든지 영과 성령의 것이 되든지, 혼자 독립해 가지고 있을 때는 없습니다. 이러니까 벌써 그것이 그것 단독이 되면은 그 전부 계획이나 소원이 다 사망 뿐이라 그말이오.
'육체의 생각은' '육체의 생각은' 그 육체는 그러면 육체의 생각이라 했으니까 육체에게 뭐 희로애락 또 비판 평가 할 수 있는 기능이 거기 있습니까 없습니까, 육체에? 있지요. 그러면 고기덩어리에 그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환하게 나타나 있지 않소? 이러니까 육체의 생각이라는 그걸 사람들이 말하기를 원어 아는 사람들이 원어 모르는 사람들을 위협을 하기를 '육체의 생각이라는 그것은 싹스라고 원어는 싹스인데 부패성의 생각이라' 그렇게 말을 해 가지고 한창 세도를 부려먹었습니다. 이랬는데 나는 원어를 모르기 때문에 이거 분명히 아닌데 그거 낭파라 그말이요, 이렇세 주 몰아대니까. 그래서 제가 원어 아는 사람에게 물었어.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는 그 육신은 원어가 뭐꼬?' 그 원어가 뭐꼬 이러니까 '원어가 싹스라.' '그러면 싹스는 이것 다 부패성이라고 모두 다 공통돼 가지고 있는데 그러면 말씀은 예수님이 사람된 걸 가리켜 말하지 않느냐? 그러면 성자, 제이위 성자가 부패성이 됐다 말이냐?' 이러니까 그만 입이 딱 막아졌어. 그러고 난 다음에는 육체의 생각이라 하는, 육신의 생각이라 하는 것을 부패성이라는 그런 말을 하는 소리를 제가 듣지를 못했습니다.
이러니까 육신의 생각이라 말은 영과 성령과 관련이 끊어진 심신이 주장이 돼 가지고서 하는 저게도 생각이 있다 그말이오. 마음이 있기 매문에 생각이 있지.
그것은 전부 죽는 것이라 그말입니다.
이런데 마귀란 놈은 요렇게 교리가 나면 요리 살짝 삐뚤트리고 조리 삐뚤트리고, 그러기 때문에 이단들이 말을 할 때에 그거 말하면 그게 안 될 상바르면 요리 삐뚤트리고, 마귀는, 그러기에 마귀는 자꾸 변 동시키는 것이오.
요래서 알 만하면은 훼딱 변동을 시켜서 모르게 만 들고 또 그래서 알면 훼딱 변동을 시키고. 그러니까 마귀의 작용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마귀를 누가 내놨느냐? 하나님이 지었소. 뭣 때문에 그런 마귀를 내놔? 그런 마귀를 내놔야 우리를 시련을 하고 우리 일을 하지. 우리 구원 일을 하지요.
이러기 때문에 지금 마귀가 주님이 부리시는 마귀입니다. 왜? 마귀를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이겼소. 이겼기 때문에 마귀는 지금 주님에게 수종들지 안하면 안 되는 그런 마귀가 됐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제 주님이 허락하신 범위 내에서 시키시는 심부름을 하는 것인데 그 심부름이 뭐이냐? 우리를 유혹하게 할 때는 유혹하고 꾀 우게 할 때는 꾀우고, 또 막 강압으로 누르도록 할 때는 누르고 그런 심부름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는 구원을 받는 것인데, 그러기 때문에 마귀가 정치가를 붙들기도 하고, 경제가를 붙들기도 하고, 과학자를 붙들기도 하고, 시대를 붙들기도 하고, 붙들어 가지고서 이렇게 오만 작용을 하는데 그뭐 독한 것이 오든지 뭐이 오든지 올 때에는 반드시 우리는 믿는 것이 '주님은 주권자시라.' 주님의 주권도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그런 주권을 믿는 신학교 있습니다. 그 주권을 믿되 윤곽적으로 커단한 것 그런 것은 하나님 주권적으로 이렇게 하셨지마는 세부적인 것은 주권적으로 안 했다 세부적이 주권 아니면은 외부 것도 주권이 안 되고 맙니다. 심령이 어두워서 연관성을 몰라서 한다 그말이오.
전체가 주권이 안 되면 세부적의 주권이 안 돼요.
이러니까 하나님이 주권의 하나님이라는 걸 믿어야 합니다. 어제가 언젠가, 여기서 말씀했던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서 해야 되는데 그러면 주님이 주권이라면 모든 것을 주권 하시기 때문에 내게 오는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너 예수 안 내놓으면 죽인다 하는, 자, 그것은, 주님이 주권 역사입니까 주님의 주권 역사에 빠진 겁니까? 여기 대답해 보십시오. 주권 역사에 빠지지 안하고 주님의 주권 역사로 봅니까? 그러면 주님의 주권 역사라면 그것이 내 구원을 위해서 있습니가 내 구원을 방해하기 위해서 있습니까? 구원을 위해서 있는데 구원을 위하는 그 방편이 여러 방편이 있어서 '예수 안 내놓으면 죽인다' 하고 그것은 '죽어도 예수를 안 내놓는다' 하는 그것을 소원해서 주권자 주님이 그것을 보내셨는데 그래 가지고 그만, 그 오니까 뭐 그만 정복을 당해 가지고 넘어가니까 '너는 아직 안 됐다.' 그것은 시험에 떨어졌다 그말이오. 이기면 돼요, 이기면.
사람들이 자기에게 닥칠 때에 그것을 그만 눈이 어두워 놓으면 널리 보지 못해.
범위 좁게만 자꾸 생각해 가지고, 범위 좁게만 생각하면 나중에 가서 '나 나' 나 요것만 생각해. '나, 나와 그 사람, 나와 그 사람' 자꾸 이래만 생각합니다.
'나와 그 사람 나와 그 사람.' 넓게 생각하면 '나와 그 사람 이면에 넓은 것이 있고 그 모든 것을 다 운영하시는 주님이 계시고 그분이 광대하게 운영해 가지고서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요것을 다 알고 시작하는 자에게는 마귀가 달라들 수가 없어. 마귀가 달라들어 백전 백패밖에 안 되니까. 그러기 때문에 아는 것이 힘입니다.
그런고로 참 진리를 알면 자유하게 됩니다 진리를 알면 어데서든지 영감과 진리대로 마음놓고 안심하고 할 수가 있다 그거요.
그러니까, 중생된 사람이 범죄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심신이 범죄하지 중생된 영이 범죄하는 것 아닙니다. 중생된 영만이 범죄 안 하지요. 어떤 사람이 한번 집회 때 말하기를 '여게 어떤-그때 내가 조사 때인데- 그 조사는 자기가 죄를 짓고 난 다음에도 내가 죄 지은 게 아니라 이 손이 죄 지었다' 한다고. '손이 죄 지었다' 한다. 그때 아마 육이 범죄한다 하는 말을 들은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육이라는 것은 육만을, 고기덩어리만이 아닌 심신을 말하는 건데 심신이 범죄했다 말이오. 중생된 영이 범죄 안하고 심신이 범죄했어.
그러니까 회개할 때는 마음을 단속해야 됩니다. 마음을 범죄자로 단속을 해야 되고 고기덩어리를 단속하고 그 둘을 범죄한 기능자로서 단속을 해야 되지 중생된 영은 성령으로 더불어 함께 탄식을 했습니다. 그것을 로마인서 7장에 보면은 속사람은 지금 탄식을 하고 '원하는 선은 이루어지지 안하고 원치 안하는 죄만 이루어지도다 죄를 이루어지는 건 내가 범죄하는 게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가 들어서 죄를 범했다'' 그말은 악령 악성 악습이 들어서 죄를 짓고 있다 하는 그것을 밝혀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에 어짜든지 배워서 깨닫고, 깨달으면 이리 가도 저리 가도 그만 사통오달이라. 다 한 덩어리라. 한 덩어리니까 어데로 가든지 바로 깨달으면 하나라. 그러니까 그것이 안 믿는 사람들도 말하기를 저거대로의 도통이라 이러는데 그러니까 이 길도 가면은 내나 그것이고 저 길도 가면 그것이고, 하나가 말하면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부분을 모르면 가다가 마귀에게 붙들려 가지고 그만 사로잡혀 버리요. 알면 사로잡지 못해요.
그러니까 마귀와 죄와 사망이 우리에게 왕권을 가지고 날뛰지 못 합니다.
왕권을 못 가졌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왕권을 완전히 뺏겼습니다.
성경에 로마서에 말씀하시기를 '죄가 우리에게 왕노릇 하지 못한다 사망이 왕노릇 하지 못한다' 그말은 왕권을 가져 있지 못했다, 그말은 우리에게 대해서 절대성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한다, 미혹을 가지고 협박은 하지마는 우리가 물리치면 쫓겨나가야 된다 하는 우리에게, 절대성은 우리에게 있고 그들에게 절대성은, 그들에게는 마귀와 죄와 사망에게는 없는 걸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성이 우리에게 있지마는 우리가 절대성을 써먹지 아니하고 마귀를 좋다고 환영을 하니까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마귀가 우리에게 들어와 가지고 조그만한 요소라도 마귀의 것이 있으면 마귀는 안 나갑니다. 하나님도 못 쫓아내요. '내것이 있는데 왜 내걸 두고 갑니까?' 제것이 있으면 제가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 속에 있는 죄를 회개하면 마귀는 쫓겨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아직까지 한갖된 교리를 가르치지 못합니다. 이런 것 저런 것을 모든 걸 지금 말하고 있으니까 그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아멘으로 꽉 잡아야 그다음에 됩니다.
그러고 말씀을 여러번 들은 사람들이 많이 시험에 들어요. 말씀을 들을 때는 권능을 받아야 됩니다. 권능 받는다 말은 생명을 받아야 돼요. 권능을 받아야 되고 성령을 영접해서 하나가 돼야 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이러니까 이른 말씀을 껍데기만 받지 말고 그 말씀을 받아서 영을 영접하고 성령을 영접하고 능력, 생명. 능력을 영접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