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0 13:49
예비하신 구원
1986. 7. 10. 목새벽
본문: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은 예수님의 그 희생하신 희생으로 얻게 됐습니다. 죽으심이라는 말을 하지 안하고 희생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근본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피조물되어 오신 거게부터 당신은 희생입니다.
모든 걸 가지신 부요하신 자유하신 하나님이 한 번도 자유하지 못하고 하나도 가지지 못한 그 가난하게 된 그 모든 것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대속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에 우리의 대속하신 구원을 우리가 믿어야 하고 믿으면 그것이 내것이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대속을 깨달으면 그 이상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된 일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공심판에서 심판받아 지옥을 가서 영원한 사망을 받는 그 모든 정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켰다는 것이 그거 생각하면 뭐 끝이 없는 그 한없는 은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걸 깨달아 아는 사람은 땅위에 무슨 어떤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들어서 이 구원 받은 자의 감사나 기쁨을 요동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에 하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에 반쪼가리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반 구원이요 반 구원은 죽은 가운데서 다시 창조주가 피조물을 영원히 입고 살아나신 것이 그것이 반 구원입니다.
이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하신 그것은 한정이 있습니다.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 그때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까지 베푸신 이 구원이지마는 이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신인양성일위로 사람되셔 가지고 우리에게 베풀어 놓으신 그 구원을 실상으로 우리로 하여금 가지게 하셔 가지고서 영원히 누리도록 하는 이 누리게 하는 것은 끝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공로를 내가 완전히 실상으로 입게 됐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실상으로 입게 된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실상으로 입었고 또 실상으로 입은 우리들에게 성령과 진리로 우리를 살렸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중생된 새사람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새사람은, “산 소망이 있다” 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과거에 예수님 믿기 전에 가졌던 소망은 다 죽은 소망입니다. 다 죽은 소망.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소망은 다 산 소망입니다.
죽은 소망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공부를 해 가지고 어떻게 되겠다, 또 자기가 재산을 모아 가지고 어떻게 되겠다, 자기는 도덕을 닦아 가지고서 어떻게 되겠다, 자기는 이런 종교 저런 종교 수많은 종교들이 있는데 그런 종교들을 믿어 가지고서 어떤 그 소망을 이루어 보겠다 하는 그런 것이 전부 하나도 없이 다 죽은 소망입니다. 다 원죄의 정죄 아래에 있고 영원한 사형을 받아서 사망 아래에 있는 것들입니다. 요것도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그러면 어떤 종교 이종교든지, 예를 들어 불교라고 말하면 그들은 극락이라고 말하지마는 극락이라고 말하는 그것조차도 전체가 다 죽은 것입니다. 죽은 것이기 때문에 살지는 못합니다. 그저 악령이 꾀워서 이렇게 저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 죽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죽지 안하고 영원히 산 이 생명에 속한 산 소망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서만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그 사람에게 해당된 것이지 그 밖에 사람은 하나도 산 소망 가지지를 못합니다.
산 소망을 가지고자 하는 것은 이 큰 난제인 죄의 문제가 해결이 돼야 되고, 하나님의 율법 문제가 해결이 돼야 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렇게 친교를 맺는 이 화친의 문제가 해결돼야 되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대신해서 이 해결을 지우셨습니다. 사죄, 칭의, 화친.
이것이 대속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다시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이 새생명, 하나님을 향한 우리 대신 살아나서 완전한 살아남으로 모든 것을 구비하게 갖춰 가지고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도 흠 없는, 마귀란 놈이 그렇게 송사를 잘하고 고소를 잘하는 마귀지마는 아무리 마귀가 고소할래야 고소할 수 없도록 완전 준비를 갖춰 가지고 완전 생명을 얻은 이 생명은 예수님이 대속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났다고 해서 산 사람으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이 산 사람으로 산다고 해도 이것은 뭐 그저 아주 죽어 있는데 숨 깔딱거리는 것도 못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의 생명이 점점 온전해지고 깨끗해지고 실력 있어지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하는 이것은 산 소망이라는 것은 고다음에 말한 것도 들었고 자체가 영원히 산 소망, 하늘나라의 영원한 산 소망을 가지는 것이고 고다음에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이 산 소망 중에는 기업도 들어갔지마는 산 소망과 기업을 따로 말한 것은 이 기업에 속한 것 말고, 기업을 누릴 수 있는, 기업을 가질 수 있는 그 자체가 더욱 산 소망이고 그다음에는 기업 이런 것도 소망 중에 들었지마는 “산 기업이라” 하는, 산 소망과 기업과 밝힌 것은 기업으로 다가 아니고 소망으로가 다인데 그 소망 중에는 기업도 들었다는 것을 구별해서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또 썩지 안할 기업 잇게 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은 뭐이 기업인가? 이 기업은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것을 우리가 상속받는 것을 가리켜서 기업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8장 17절 이하에 보면은 받으신 기업을 거게 기록했습니다.
「이제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다 내게 주셨다」 하는 것은 하늘은 영계를 말하고 땅은 이 우주를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우주와 영계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것, 예수님도 하나님이시지마는 삼위일체 중에 일위요, 하나님이라는 것은 삼위일체인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요 삼위일체에 대한 것을 여러분들이 잘 깨달아야 되는데 삼위일체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이 별로이 없고 또 신학자들 가운데서도 삼위일체는 말은 익어서 하지마는 뭣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 구원이 자꾸 흐트러지고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어지고 올바른 곧은 길을 찾지 못합니다.
기업은 예수님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내게 주셨다” 하신 그것을 우리도 다 받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자체가 아니고 하나님이 가지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마치 말하면 이 세상에서도 그 부모의 모든 재산이나 모든 그런 것 그 자녀들이 다 상속받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그런 종류의 것인데 이는 하나님 자체 외에 하나님께서 가지신 오만, 종류가 뭐 천도 만도 억만도 넘는 그 모든 것을 우리가 상속받아 가지고 자기 것으로 가지고 누리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가지시고 하나님노릇 한 거와 꼭 같이 우리들은 그런 거 가지고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이면서 하나님과 꼭 같은 그런 직책을 합니다.
그러면 이 직책은 어느 선 이상을 올라갔기 때문에, 피조물의 이 선 이상을 올라갔습니다. 그러면 피조물 이상에 있는 것들이요 모든 논리들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게는 이 저주받은 기업과 다릅니다. 저주받은 기업은 뺏들라 하는 사람들도 많고 시기하는 사람들도 많고 또 그 기업 자체도 상속받은 자를 싫어해서 배반할라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가 큰 회사를 일으켜 가지고 경영할 때에는 온 사원들이 그 회사가 잘되기를 원하고 아주 처음에 조성하신 그 사장이 조그마치라도 병이 든다든지 약하든지 이라면 걱정을 하고 ‘죽으면 어짤꼬?’ 이렇게 걱정을 하고 그 모든 사원들이 그 사장이 사장되기를 원하고 만일 그 사장을 뺏들어서 다른 사람이 사장될라 하면은 마구 그들이 데모도 일어날 것이고 사생 결단할 수 있는 그만침 그 회사에서 신임받은 그런 회사가 있다 합시다.
그래도, 그 아들이 상속받으면, 상속은 회사와 사원들을 다 상속받았는데, 회사도 상속받고 사원들도 상속받았는데 그 사원들도 상속받은 그 상속주인 그 사장을 싫어서 데모를 일으키고 ‘그 사장 갈아 치워 버리자’ 하고 또 그 모든 회사에 있는 사원들 아닌 그 모든 물질과 기계들도 다 상속받은, 상속받은 사장을 다 싫어해서 반대하기 때문에 그 회사가 대번 망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씨가 자기 경영해 놓은 조성해 놓은 그 회사를 자녀들에게 물려 주면, 자녀들이 말하기를 ‘아버지는 그렇게 경영하시는데 이렇게 경영하면 그것이 쉬울 터인데 아버지 경영은 그렇기 때문에 그저 성공이 더딥니다.’ 이 철때기가 없으니까 ‘더딥니다’ 이라니까 ‘그라면 한번 상속 받아 봐라. 보자.' 살았을 때 상속을 줘 가지고서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 상속을 받아 봐라 하고 상속을 주니까 상속 받은 지 다 오 년 이내에, 그 자녀들에게 준 회사마다 오 년 이내에 삼 년 이내에 다 회사가 망해지고 전부 그 사원들이 사장을 반대해서 ‘저놈 죽으면 된다 저놈 없애야 되겠다. 이 회사는 망해야 되겠다.’ 전부 다 그래 놓으니까 회사가 될 게 뭐입니까? 그러니까 삼 년 이내에 망하게 된 회사, 오 년 이내에 망하게 된 회사, 이러니까 ‘그거 참 이상하네. 이라면 잘 될 거 같은데 안 된다.’ 하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가 아무래도 이걸 맡아야 되지 우리가 이라면 아주 그만 이름도 없이 다 망해 버리고 말겠습니다.’ 그 ○○○씨가 새로 맡아 가지고서, 맡으니까 막 사원들이 다 생기가 나 가지고 ‘죽자 살자 하고 한번 해 보자’ 이러니까 회사가 당장 일어선다 말이오.
사람이 소견 없어서 일방적인 지식을 가지고서 날뛰는 그런 거, 그런 것과 전면적을 보고 아는, 경영하고 하는 것과 경영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여게 언제 내가 한, 이 전자계산이라 하는 것이 나온 지, 물론 선진국에는 좀 오래 됐지마는 우리 나라에 나온 지는 그렇게 많이 오래 되지를 안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서울 대학에 경영학과라 하는 것이 처음으로 생겼는데 처음으로 생겨도 물질에 대해서 경영학과가 생겼지 인간 심리에 대한 경영학과는 생기지를 안했습니다. 지금은 아마 약간 아마 우리 나라에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때 서울 갔다 오니까, 아마 어느 대학 교수 같애요. 내가 전도를 하니까 이렇게 얘기를 하다가 어째 전도하는 가운데에서, 사람이 공자도 말하기를 오십이 되면은 비로소 소견이 들어져서 소견이 든다. 오십이면 지천명이라. 소견이 든다. 이런데 요새 모두 젊은 정치가들을 낼라 하는 그것이 다 망할라고 하는 것이라고 내가 이래 놓으니까, 그분이 바짝 서둘러 가지고서 ‘요새는 나이 많은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가 없습니다.’ ‘왜?' 이라니까 지금은 전자계산 뭐 컴퓨터라 하던가 뭐 전자계산인가? 컴퓨터가? ‘컴퓨터 그게 있어 그런 세상이 돼 놔서 다 이렇게 거기다 집어 넣으면 늙은 사람 아니라도 계산이 다 쪽 다 나오기 때문에 그뭐 경험 많은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가 없습니다’.
이래서 좀 세우다 나중에 한번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면 보자 너 그래 똑똑하면 그러면 그 전자계산기니 컴퓨터니 그것은 하늘에서 공중 내려왔나 하나님이 짓기는 지었지마는 누가 발견했노? 어린 아이가 발견했나 그게 오래 살고 나이 많은 것이 발견했나? 그거 사람이 발견했다. 너거 그것이 사람보다 크다고 하는 것은, 사람은 그걸 만들었는데 그것은 기계이기 때문에 아무 능동 작용이 없고 모든 것을 비판 평가하는 작용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기억하라 하면 기억하고 있고 하나에 둘 보태면 얼마 되느냐 서이되는 그것만 알지 인간이 아는 그걸 모른다’. 그렇게 해 가지고서 나중에 꺾어졌습니다.
이랬는데 나는 그걸, 그때는 그걸 몰랐어요. 사람 한 사람 두뇌에 컴퓨터가 몇 개 있다 했지요? ○○○목사님 어데 있소? 천억. 한 사람 머리에 컴퓨터가 천억이래요. 나는 그거 기억할 머리가 없어. 자꾸 잊어버려. ○○○목사님이 알고 있으니까 언제든지 여기서는 물으면 나온다 하고서 거기다 맡겨 놓고서 그 면에 대해서는 ○○○목사님이 내 컴퓨터라. 그거 딱 기억해 놨으니까 물으면 언제든지 나오지 하는데.
그걸 그때 알았더라면은 ‘사람 한 사람 머리에 컴퓨터 몇 개나 돼 가지고 있는지 알아? 천억이 돼 가지고 있어. 천억. 그런데 그 컴퓨터 하나가 크나, 천억을 가진 그 인간의 머리가 되는데 사람이 뭐인지 알지도 못하고 하느냐?’ 그 말 했으면 그만 더 멋지게 이겨 버리고 딱 꺾어지는데 그걸 모르니까, 그때는 그게 나오지 안했어. 그런 말이 나오지 안했어.
사람들은 요새 젊은 사람들이 나이 많은 사람을 무시합니다. 내가 나이 많으니까 나이 많은 사람 편이 아니라 나이를 많아보니까, 왜? 내가 나이가 많지마는 어제 안 것과 오늘 아는 것이 또 다릅니다. 오늘 안 거와 내일 아는 게 또 다를 거라.
보는 면이 어제 보지 못한 그 면까지를 계산해 가지고 알기 때문에 다르다 말이오.
젊은 사람이 저거들이 떠들어야 암만 그래 쌓아도 시시하다 그거요. 시시해. 그 고기덩어리 힘 그까짓 거 뭐야? 막 내가 육체 힘이 있으니까 막 그거 뭐 된다.
이래서 내가 요번에 ○○○목사님이 좀 요새 한개 징계를 먹는가 그뭐 다 죽어가.
꺼꾸룽하이 이래 가지고 영 아주 폐인이 돼 가지고 왔어. 폐인이 돼 가지고 왔어.
그래서 내가 그 나중에 그라기를 ‘너는 가서 병원에 가서 그라면 얼마든지 진찰도 받아보고 다 하기는 해 봐라마는 네 병은 거게서는 못 낫운다.’ 그래 나중에 갈 때에 ‘그러면 저ㅡ다 마치고 나서ㅡ올라가겠습니다.’ 올라가라. 올라가는 데는 네가 회개할 것은 뭐이냐 하면은 네가 육신의 힘이 있으니까 ‘내가 가다인데, 깡패 중에는 왕깡패고 내가 가다인데 육체의 힘만 되면 되지.’ 하고서 그거 뽐내던 그놈을 팍 꺾어지게 하나님이 꺾는 것이니까, 요 죄를 깊이 회개하고, ‘이것 가지고 하나님을 노엽게 했다’ 교역자들 뭐 말해도 너 그전에 말하면, 내가 말하면은 ‘내가 힘이 이렇게 센데, 저까짓 놈의 영감탕구 저거 집어 던져 버리면 던질 건데’ 하고서 네가 육체의 그 힘을 뽐내지 안했나? 그걸 네가 회개해야 이 병이 낫지 그거 회개하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 내가 요번에 그말 했습니다. 요번에 그 말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예, 알겠습니다. 내가 그거 회개하겠습니다.’ 이랬는데, 우리 진영을 사랑해요. 그래 설설, 하나님이 일을 안 추면은 그게 자꾸 이래 될 것인데 설설 그래서 ○○○목사님도 그게 어떻게 육체에 그거 뭐 배짱을 가지고 고함을 지르고 이래 쌓았는데 그만 그거는 제가 있다가 ‘내가 한번 개척하겠습니다.’ `그러면 개척 교회 한번 해 봐라’ 그때 나는 ‘하나님이 이놈을 지금 고치기 위해서 지금 하는가보다' 그거 알았다 말이오. 제까짓 게 개척 교회 할라 하면 근방에 가지도 안한 게 개척 교회 할다고 지금 하기 때문에, 제딴에는 하면 되겠다 싶은데 내가 보기에는 하나도 안 되겠거든.
‘그러면 개척 교회 해 봐라. 개척 교회 하는 데는 다른 사람은 여게 가 해라 저게 가 해라 장소를 지정해 주지마는 너는 장소 지정하지 안할 것이고 네가 어디든지 장소를 지정해라.’ ‘녜 나는 서울 가 할랍니다.’ ‘그래 서울 가서 해라.' 인제 하나도 우리는 부담 안 시키고, 개척 교회 하는 데는 제가 제 단독으로 그저, 우리가 돈은 얼마 대 주지마는 딴것은 제 독단으로 제 자기 주장대로 자기 생각대로 해야 뒤에 책임이 없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개척 교회 하면서 여게 가 가지고서 장소 옮겨 가지고 해 봐도 헛일 저게 옮겨도 헛일, 나중에 가서는 사람 둘인가 하나 있고 뒤에 가서는 아무도 없고 저거 내외, 저거 부부뿐이라. 이래 놓으니까 제까짓 놈이 뭐 견딜 도리가 있습니까? 교회서 주는 거 사례만 받아먹고 한 달 두 달 석 달 넉 달 뭐 있지마는 그것도 양심이 있으니까 암만 해 봐야 안 되니까 헛일이라 말이오.
헛일이라 안 되니까 자복을 하고 ‘나를 좀 옮겨 주이소’ 이래서 그래 있다가 말하기를, ○○교회를 막 욕을 하고 ○○교회를 더럽다 하고서 그렇게 배척하고 나오고 이렇게 해서 뭐 ○○교회서 얼마나 엉망으로 귀신 놀음을 해 놨든지 ○○교회 사람들이 그거 귀신으로 보지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말이오.
이런데 내가 있다 말하기를 ‘○○○목사는 그라면,’ `이제는 내가 순종하겠습니다.’ ‘순종할래? 그러면 순종할라면 보자 순종할라면 ○○교회로 가 볼래? 네가 나왔던 ○○교회로 갈래?’ 이라니까 ‘예 가겠습니다.’ 그래 ○○교회 갔어. ○○교회 가 가지고서 애를 썼습니다. 애를 쓰니까 그 교회가 그래도, 그 모두 귀신으로 보는데 하도 애를 쓰니까 그래도 현상 유지는 되고서 조금 이래 다른 사람 새 사람도 나오고 묵은둥이들이 지금 사람 같잖이 보기 때문에 목회가 안 돼요.
그래 가지고 이래 하다가 이번에 또 하도 그래 쌓아서 이제는 아마 이거는 이제 옮길 때가 됐다 해서 옮기면서 우리 열두 명이, 열한 명인가 모아 가지고서 꼭 여덟시 얼마까지 약 두 시간을, 그 사람들이 다 중요한 인물들이라서 뭐 일 분이 아까운 사람들인데, 시간이 일 분이 아까운 사람들인데 약 두 시간 걸쳐 가지고 거게서 의논을 해서 그것을 아껴서, 이라면 좋겠느냐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거 아껴서 길러가기 위해서 이렇게 이렇게 의논해 가지고서 한 군데 작정을 해서 보냈습니다.
보냈는데, 또 어제 엊저녁에 예배 보기 이십 분 전에 전화가 왔어. 아마 ○○○목사님이 전화하니까 전화가 왔어. 전화가 와 가지고 또 이런 얘기를 저래, ‘나 지금 시간 없다. 뒤에 해라. 지금은 시간 없다. 의논 못 한다. 나 끊는다.’ 끊고 말았습니다. 그게 아직까지도 지금 그런 기운 가지고 할라 하니까 헛일이라.
그래 내가 저거, ○○○목사도 그랬습니다. 그게 맏아들이라. 맏아들은 굉장히 육체는 강한 것입니다. 맏아들은 육체는 다 강하요. 굉장히 강해요. 이래서, ‘너도 그거 육체의 힘 깡패의 힘 그거 다 그거 죽여 버려야 되지 그거 가지고 될 줄 알아도 그거 가지고는 안 된다.’ 요새는 우리 교역자회 모이면 내가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항상 그겁니다.
우리 총공회는 주먹이 제일이다. 주먹이 제일이니까 뭐 성령의 힘이 필요가 있나 진리의 힘이 필요가 있나 예수님의 피공로의 힘이 필요가 있나 주먹 힘이 제일이기 때문에 주먹 큰 사람이 제일이고 왕이다. 그러니까 주먹 힘 가지고서 얼마든지 해 봐라.
요새 내가 큰 소리합니다. 주먹힘 가지고 얼마든지 해 봐라. 하면 하나님께서 주먹 힘을 다 깨서 박살을 만드는 것을 너거 눈으로 볼 것이다. 인제 거의 다 박살이 돼졌어. 인제 정 안 듣고 강퍅부리는 것은 고기덩어리를 쳐서 박살을 만들어 버리고 또 좀 덜한 것은 목회를 박살 만들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천대해서, 아무것도 아니거든. 실력이 없어 아무것도 안 된다 그거요.
그런데 요번에 또 교역자회 때에서 하나 말 하나 또 들은 것은 뭐이냐 하면은 그 어떤 전도사가 그 사람 설교도 잘하고 전도 잘하고 그 목회를 잘 해요. 잘하는데, 그래 내가 요번에 ‘저게 저거 회개해야 되지 저거 속에 지금 교회 망칠 게 들어 앉았구나. 그 교회가 더 늘어가지 않는다.’ 고걸 내가 봤어. 더 늘어가지 안해요.
지금까지는 속성으로 늘었는데 이제 그 이상 더 늘어나가지 않습니다. 왜 고놈이 없어져야 되지 고놈 있으면 늘어나가는 건 고게 방해 해서 안된다 그거요.
뭐이냐? 우리가 이 교역자회 한다 하면서 또 문제를 가지고 또 이래 또 새로 말하고 새로 말하고 자꾸 재론을 하고 이라니까 ‘에이고 모든 것이 다 체계를 세워 가지고 법규적으로 이래 규칙적으로 이래 착착 하면은 진행이 빠를 건데’ 우리 진영의 행정을 불만한다 그 불만을 뭐 때문에 불만하느냐 하면은 우리 진영은 행정을 예를 들면은 이번에 이 교역자회 모인 이런 것도 이 사람이 말해 놓으면 저 사람이 또 그걸 다 깨 버리고 또 이 사람이 말하면 저 사람이 깨 버리고 자꾸 이렇게 깨고 이렇게 하니까 이 아무 체계가 서 있지 안하고 법규가 서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거 때문에 우리가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이렇게 말해.
꼭 그럴 거 같이.
여기 양성원 학생들 다 참석했지? 참석한 사람 손 들어 봐. 참석 한 사람 손 들어 봐, 교역자회 참석한 사람? 이 나머지기는 참석 안 했나? 거게 참석하는데 큰 생명의 비결이 있어. 그 가치를 모르는 거는 다 껍데기야, 그게. 제까짓 게 아직 목회 어림도 없어. 그냥 목회자 만들라고 애를 쓰는 것이지.
그래 내가 그 대답을 그래 했어. 그래 하나씩 둘씩 해서 착착 한번 결의하면 다시, 일사부재리가 법의 원칙인데 그렇게 한번 결의한 걸 또 새로 또 고치고 하는 그런 걸 못 하는데 여기서는 자꾸 그렇게 뒤집어 엎지, 이제까지 ○○목사님이 다 해 놓은 거, 다 해 놓은 거, 한 한 시간이나 지내서 다 해 놓은 거 또 내가 올라와 가지고 그거 다 전부 다 뜯어 고치지, 이라니까 여게는 그러니 시시하게 너거에게는 보이지마는 너거가 말하는 그거는 율법 세계다. 율법 세계는 법이 아니고는 단속하지 못하는 그것은 법만 가지고, 일이야 잘되든지 못되든지 율법 세계요 다수를 따라서 가는 종다수 세계로 그와같이 해 치우는 곳이지마는 여게는 사랑 세계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데서는 한번 결의해 놓은 걸, 그 사람이 결의해 놓은 걸 다른 사람이 뒤에 뒤집어 엎으면 당장 원수를 맺어 가지고 법을 가지고서 시비를 해서, 이래 놨는데 어째 한번 결의해 놓은 걸 이렇게 할 수가 있느냐, 어떻게 이래 할 수가 있느냐? 시비를 해서 거게서는 당장 수라장이 되기 때문에 한번 결의해 놓은 걸 암만 틀려도 말 못한다.
여게는 틀린 걸 이 사람이 옳다고 결의를 해 놨는데 고다음 사람이 ‘고거보다 요게 조금 낫지 않느냐?’ 먼저 결의한 것보다도, 먼저 결의한 것이 팔십 점 되는데 고다음 사람이 팔십일 점만 말해도 ‘아, 고치자. 그 팔십 점짜리보다 팔십일 점짜리가 낫다.’ 이렇게 할 때에 팔십 점으로 결의한 사람은 ‘고거보다 한 점이 나으니까 좋다. 감사합니다. 나보다 한 점이 나았으니까 내가 그래 했으면 그만침 실수되는 것인데 고쳐 주시니 좋습니다.’ 고거 또 팔십일 점으로 다 해 놨는데 또 누가 있다가서 팔십이 점짜리를 말하면은 ‘고게 낫습니다.’ 이래서 몇 번이든지 몇십 번이든지, 다수 따라가지도 안하고 결의했다고 결정하지도 안하고 얼마든지 재론하고 재론해 가지고 그보다 더 좋은 거, 보다 좋은 것이 있으면은 또 고치고 보다 좋은 것이 또 있으면 고치고, 자기가 암만 결의해도 보다 좋은 것이 나오면은 고칠 때에 인신 공격한다 그렇지 안하고서 ‘아, 좋다.’ 이라는 이 사람들은 너거가 말하는 그런 법규 체계 해 가지고 하는 거게는 한 사람도 없다. 거게는 이런 사람이 없다. 알겠나? 자, 지금 막 다 엎어서 고쳤는데 ○○목사 어떠노, 감사하나 반감이 생기나? ‘감사합니다. 기쁩니다. 그거 참 잘됐습니다.’ 속으로 벙긋거려 좋아하니까 그게 딴 세계라. 알겠습니까? 그게 딴 세계라. 거기서 뭣이 이루어 나간다 그거야. 그게 사랑의 세계요 그것이 하나님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완전을 찾아가는 그런 세계라.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둡니다. 제가 이렇게 저렇게 이렇게 다 해 가지고서 비판해서 평가해서 계획을 할 때에, 봅니다. 이게 틀린 줄은 알지마는 틀린 것을 말해서 진정 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 고쳐 주지마는 그 틀린 것을 말을 하면 ‘예 감사합니다’ 해도 그 속에 악령 악성 그놈이 주장돼 가지고 있는 데에는 나중에 가서 물고 달라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기는 말 안 해 준다고요.
말 안 해 주고 또, 버리지는 안하지요. 그러니까, 슬그머니 이래 가지고서, 그러면 혹 안 될 걸 말합니다. ‘혹 이런 문제가 생기면은 어찌 되지?’ 하는 그런 것만 슬그머니 말해 주지 그것만 또 똑똑히 말해도, ‘아’ 눈치 싼 거는 그런 건 잘 알아. 마귀 그놈이 그런 눈치 얼마나 쌉니까? ‘저게 지금 나를 공격하는 것이다’ 요라기 때문에 딱 깔꾸랭이를 요래 딱 걸어 놓으면 이거 안 뻐들뜨립니다. 안 뻐들뜨려.
천국 가는 새사람은 이 깔꾸랭이가 없습니다. 쭉 뻐들뜨려 가지고 있어. 쭉 뻐들어 가지고서 뭐 뭐든지 걸리지 안하는 거가 좋지 걸리는 거는 재미가 없어.
이래 가지고 있지 자기라는 그것을 완전히 죽어 버려. 자기를 죽이지 안하고 자기를 부인하지 안하는 그런 인간은 옳은 지도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자기를 부인해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구별할 수가 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도 또 자꾸 말하면, 이것도 여러분들이 다 들어 깨달아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안 돼. 이러니까 우리 총공회를 그랬어, 내가. 우리 총공회에 교역자회가 모였을 때에, 지금은 뒤죽박죽같이 이 사람이 말해 놓은 거 저 사람이 또 말하면 다 엎어 버리고 새로 되고 또 그래도 그라자 자꾸 이렇게 나가는 것은 너희들에게 지금 이 교훈이 있기 때문에 교훈의 힘으로서 그 옛사람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그놈이 나올래야 나올 수 없고 교훈에 눌려 가지고 이 일이 돼지지마는 모르기는 모르지마는 이 교훈이 끝날 때에는 너희들이 이래 모아 가지고서 법을 안 지킬래야 안 지킬 수가 없을 것이다. 법대로 하고 이렇지 거기서 뭐 잘못됐다고 다시 고치는 그런, 새로 재결의하는 그런 일은 너희에게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뭐 때문에 그게 있는 줄 아나? 지금이 좋은 때지 그때는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단정하고 단언으로 내가 말을 했습니다.
이거 또 시간이 다 됐는데, 이거 여러분들이 자꾸 알아야 되겠는데, 이거 모르면, 어데서 내가 며칠 전에 내가 그런 말 들었어. 그분이 나한테 전화로 하도 만나자 했는데 ‘그만 뭐 때문에 만나자 했는지 그것을 서로 물어보지 못했다’ 이래서 내가 뭐 때문에 하는고 물어 봐라 그러니까 그분이 있다 말하기를 혹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대해서 그뭐 잘못된 걸 아무것이는 잘못됐다 그런 걸 말했는데 그게 혹 설교록을 보고서 그래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래서, 모르겠다 이라니까, 어떤 분이 그 설교록을 보다 다 은혜가 돼서 앞으로 계속 받아 볼 것입니다. 내가 큰 은혜를 받았는데 아무것이 저거 선배를 그렇다고서 이렇게, 허는 거 아닌데 잘못된 걸 잘못됐다 하는 건 허는 게 아니고 죽기 전에 고치는 것인데, 그것을 말한 것 참 마음에 매우 섭섭하게 생각되더라 그렇게 말합디다. 그래? 그거 말하는 것이 잘못 됐느냐 잘 됐느냐 그게 문제지 잘 됐으면 말하는 게 좋소 나쁘요? 백 목사 잘못된 것을 백 목사를 헐어서 욕을 하든지 말할 때에 잘못된 것을 말하면 내가 고맙게 여겨야 되겠소 나쁘게 여겨야 되겠소? 고맙게 여겨야 돼. 그 수준에 간 사람은 그렇지를 안해요.
그런데, 이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꾸 어제 아침에도, 깨달음이 중요하다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그것을 말하고 둘로도 안 되고 꼭 옳은 거 하나만 깨달아야 되는데 잘못 깨달으면 자기 영원한 신세가 망한다. 그거 얼마나 중요합니까? 사람들이 자기의 재산을 뉘가 뺏들어 가면 막 눈이 벌거이 해 가지고서 왜 내것 뺏들어 가느냐고 시비를 하지마는 자기가 바로 깨달은 것을 귀신이 와 가지고서 미혹을 시켜서 삐뚤어지게 깨닫도록 만드는 데 대해서는 그렇게 가치로 여기지 안하고 큰 도적 맞았다 하는, 자기 영원한 생명을, 영원한 구원을 다 도적 맞았는데. 이것을 도적 맞은 줄 모르니까 사람이 그 사람이 마귀의 사람이지 육의 사람이지 신령한 사람은 아니라 그거요.
참 성자라. 이랬더니마는 전화가 또 또 왔어요. 전화가 오고 또 편지가 왔어요.
전화가 왔는데 전화가 올 때에도 말하기를 ‘우리가 과거에 이렇게 저렇게 한 그런 것은 다 없는 걸로 둡시다’ 하는 그것이 인제 소원이라. 내가 점친 거와 꼭 같애. 그게 소원이라.
그 보니까 다 그런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은 다 위대한 인물들이요, 보니까.
어짜든지 심판 앞에 가 가지고 걸리지 안할라고 땅에 있는 동안에 다 화친을 만들고 뭣을 수정할라고 애를 쓴다 그거요. 그런데 이 못난 게 죽을 때도 이를 빡빡 갈며 죽지, 그게 심판대 가면 어찌 될 건데? 그러기 때문에 지혜있는 사람은 죽기 전에 뭐이 잘못 됐는가 싶어서, 잘못 됐는가 싶어 이거 때문에, 이걸 찾을 라고 애를 쓰니까 잘못 됐는 것 찾을라 하면 어때요? 자기 잘못된 것을 자기가 다 찾을 수 있어요 남이 찾아 줘요? 자기가 다 찾지 못해요. 여기 낯에 얄궂은 이거 점을 찍어 놔도 제 눈에는 안 보이요. 다른 사람이 보지. 야 너 그거 점 찍혀 있다 이래 알 수가 있다 말이오. 다른 사람이 보고 가르쳐 줄 수 있지.
그러면 자게 자기에게 있는 잘못을 가르쳐 주도록 할라 하면은 어떻게 하면 돼요? 이래 가지고 음, 함부레 뭐, 이 경상도 사람은 이렇습니다. 음 막 이래 성을 내 가지고 아예 ‘아이구 저놈 성낸 거 보니까 저놈한테 무슨 말했다가는 큰일 나겠다’ 아무도 달라들지 못하도록 이거 응크리고 이래 있어야 되니까, 찻간에 가 가지고 응크려 가지고 있으면 저거 경상도쟁이로구나 봅니다. 응크려 가지고 있으면.
그래 내가 응크려 가지고 있는 걸 이래 한번 쳐다보면 눈을 막 차려 가지고 눈 싸움 합니다. 그만 그 차안에 눈싸움할 거야? 눈 싸움 하면 내가 하도 보다 안돼, 퍼뜩하면 눈싸움 할라고 달라드니까. 이래 눈을 이라면 ‘내가 이겼다. 눈 싸움 해 가지고 나한테 이길 사람이 있나? 내 안초에 다 떨어지지.’ 그거 참 우습고 불쌍하고 ‘저 사람이 저거 앞으로 불쌍하기가 짝이 없다’ 그런데 자기 흠점을 그 다른 사람이 지적해 주도록 할라 하면 어째요? 막 이래야 돼요? 못나 보여야 돼요? 못나 보이고 약해 보여야 됩니까 잘나 보여야 됩니까? 억새 보여야 돼요 못나 보이고 약해 보여야 돼요? 억새 보여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못나고 약하게 보여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못나고 약하게 보여야 된다는 사람. 못나고 약하게 보여야 돼, 못나고 약하게 보여야. 알겠소? 어제 어떤 이 신고함에, 그 신고함에 뭐 하나 나왔는데 그거 나는 아직 이해를 못 하겠어. 오만 욕 다 해놨어, 오만 욕. ‘백 목사야’ 이래 놓고 뭐 아주 음탕한 것으로 가지고서 이 어떤 놈 뭐 개 같은 놈 이래 가지고 그래 가지고 많이 써서 그렇게 신고함에 써 넣어 놨어요. 써 넣어 놨는데 그거 또, 쓴 사람도 또 이름을 다 기록해 놨어요. 그거 내가 알아요. 아는데, 그래 나는 지금, 그것이 요새는 기도 제목입니다.
이 욕은 하나님이 허락지 안하면 그거 욕이 안 오는 것인데 그 욕 오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해서 욕이 왔고 하나님이 시켜서, 제가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욕을 하는 것이니까 내가 이 욕 얻어먹을 만한 게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이니까 이 욕 얻어먹을 만한 게 뭐인고 그것 그거 지금 찾느라고 자꾸 인제 하나님 앞에, 그 욕하는 사람에 대해서 미운 거나 괘씸한 것이나 그런 건 하나도 없고 그 욕 얻어먹을 만한 이게 뭐인가 그거 지금 찾기 위해서 알려 달라고 자꾸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있는데 암만 찾아도 내가 모르면 나중에 그 사람 만나 가지고 ‘야 그게 뭐꼬? 그 욕하는 것 좀 그것 좀 가르쳐 달라. 뭐 때문에 네가 나를 그래 욕하노?’ 그렇게 가르쳐 달라 할 거야.
그런데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은 나를 재림의 예수라고 하나님이라고 ‘그분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는 그분이 나를 하나님이라고 막 이렇게 온 전국에 돌아다니며 이렇게 높이더니만 또 이제는 막 욕을 해 가지고 욕하는 사람으로 또 이렇게 낮춥니다.
그래, 그래도 하나님으로 높여도 거게 내가 피동이 안 되고 또 욕을 해도 피동이 안 되고, 이거 나 만드는 데에 아주 요긴한 사람이라 이래서, 내가 아마 이거 다른 사람 보기에 좀 아주 약하게 보이고 아무나따나 욕을 해도 괜찮고, 아무리 해도 말이오. 아무리 해도 ‘저거는 욕을 해도 괜찮다. 침을 뱉아도 괜찮다. 뭐 쥐박아도 괜찮다.’ 그럴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 저거는 아주 죽은 것같이 이래야 그 사람에게 나쁜 걸 다 말합니다.
그래야 나쁜 걸 다 말해 주고, 또 그러면서 또 강단에서는 또 옳은 거 좋은 것만 막 이렇게 말하니까, 자꾸 약한 것만 말하면 다른 사람이 동정을 해 가지고서 단점을 말 안 해 줘요. 알겠습니까? 자꾸 약하게만 보이면 다른 사람이 또 단점을 말 안 해 줘. 동정을 봐서. 또 강단에서는 잘난 척 하나님 말씀만 이래 주장하니까, 주장하니까 이거는 약하게도 보이지도 안하고 강단에서 그라니까 그 밉상스러우니까 욕을 할 걸 다 할 거라 말이오.
그래서 세상에 있는 동안에 얻어먹을 욕을 다 얻어먹고 지적할 걸 다 지적해서 흠점을 다 지적해 가지고서 어떻게 뭐 빰을 때리며 나쁜 걸 말하든지 욕으로 말하든지 자기에게 잘못된 점을 말하는 것은 그것은 우리는 유익뿐이지 손해는 하나도 없습니다. 왜? 고칠 거 있으면 고치면 유익되고 고칠 거 없으면 가만히 참고 있으면 그거 또 손해가 안 가요.
이러니까, 그래, 어짜든지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자꾸 흠점이 있는 것을 다 지적 받아야 돼요. 이런데, 그 사람 말한다고, 그 사람 틀린 것 말한다고 그 사람이 원수 품을 것이라 하는 그 사람은 그 사람 수준밖에 안 됐기 때문에 그래. 사람 된 사람은 자기에게 단점 말하면 그 사람을 이렇게 높여 줍니다. 이렇게 높여 줘요. 천하게 안 봐요.
이번에 박윤선 목사님이 오셔 가지고서 이렇게 서로 만난 것도 또 어제 편지 보니까 오라고 한번 또 오겠다고 자꾸 이래 서로 말한 거는 뭐이냐 하면은 그저 내가 박윤선 목사님을 추켜 올리는 거 가지고서 그렇게 친근히 하고 좋아하고 사모하고 저쪽에서 뭐 사모가 돼서 그래 이렇다 한 것 아닙니다. 어데든지 자기에게 조그만한 흠점이라도 흠점을 말해 주는 그것이 있는 데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제게 대해서 제일 좋아하는 거는 흠점을 말하는 그 사람을 제일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씨는, ○○씨라 해. ○○○씨는 나를 이 높이는 데도 내 스승이라. 그거 나는 그때 여러 번 말했지요? ‘내가 아마 하나님처럼 무슨 월권하고 자세 부리고 막 이렇게 하나님처럼 날뛰는 그거 있는가보다’ 그걸 좀 반성을 해서 지금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욕하는 것도 욕 얻어먹을 거 있는가보다 그거 또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대티에 있는 그 사람은 그 사람이 누가 아레도 말하는데 저게 앉아 가지고 있다가서 내가 저 오층에서 내려오면 나만 보고 있대요. 그 사람 내가 만나보기는 한 번 만나봤는데, 꿈에 말이지. 내가 그거 지금 숙제가 많아요. 거기 있으면서, 누가 언제 말하는데 목사님이 그 위에서 오층에서 내려오니까 내려오는 걸 거기서 마치 자기 사랑하는 가족이 비행기 타고 내리면 막 좋아서 얼굴빛이 영 변하는 것 모양으로 얼굴빛이 변해 가지고 그렇게 기쁘고 즐거워하고 막 그런 것에 아주 안색이 확 변해지더라 달라지더라 그걸 나한테 말해 줘. 그것도 또 문제라.
문제인데, 나는 그 지금 그 사람이 그라면 연애신 음신이 들려서 그런데 그 음신 들린 사람이 내게 대해서 자꾸 결혼하자 하는 것 보니까 내게 아마, 음신하고 음신하고 결혼하지 딴 사람하고 결혼할 거 있습니까? 음신하고 음신하고는 결혼해야 되지. 사람하고 사람하고 결혼하지 안해요? 그러니까 그 음신 들린 사람이 나한테 결혼하자 하는 것 보니까 내게 아마 그 사람이 들린 음신 같은 음신이 내게 다 빠져 나가지 안하고 아직까지 그 음신이 속에 끼어 있기 때문에 그 결혼하자 하는가보다. 그러니까 내 속에 음신 이놈이 지금 어데 있는가 해서 그거 때문에 내가 많이 회개가 많이 돼져요. 회개가 많이 돼요.
그래서, 그런 것은 내 귀에 누가 말해서 들어오면, 들어오면 죽여 버리고, 또 눈에 보이면 죽여 버리고, 또 내 속에서 그런 생각이 뻐뜩 솟아나오면 죽여 버리고, 지금 작전 계획이 그 사람 때문에 내게 생겨졌어. 그 사람 때문에.
그 사람이 아니면 다른 사람이 그 얘기하는 데야 뭐 듣고 있는 거야 어때, 뭐? 다른 사람 그런 거야 길가 뭐 눈에 보인다고 보이는 거야 어째, 그러면? 이제 보이면 직살을 시키고, 들리면 직살을 시키고, 내게 생각 나오면 직살을 시키도록, 그러면 직살 전투, 대번에 직접, 직살 전투가 그 사람으로 인해서 생겨졌다 그거요.
그라면서, 또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그렇게 강한 그런, 그 사람이 마귀가 들어서 나를 좋아해서 그래요. 좋아해서 말이오. 그 마귀란 놈이 들면 그라거든.
그런 틈바귀 속에 많은 틈바귀 속에 목회하는 것이 목회인데, 목회 옳게 하면은 마구 그렇게 그런 대상이 되게 되는데 그런 대상이 되는 그 속에서 나를 지켜 보호하심에 대해서 참 감사하다 또 거게서 또 감사를 또 하게 되고 거게서 뭐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내가.
은혜를 많이 받고 그래 또 내가 마지막으로는 지금 뭘 하나 작업하고 있느냐 하면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종을 은혜 받으면 좋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와 같이 좋아하고 대접한다” 했는데 그게 잘못 됐어.
하나님의 종을 좋아하는데 그 진리를 배우고 은혜를 받아 가지고 구원 이루는 데에 더 성결해지도록 하니까 성결해지는 데 대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될 터인데 이게 무식해 놓으니까 그렇지 안하고 그만 육적 지식으로 육적 생각 가지고서 남자들이 여자 좋아하고 여자들이 남자 좋아하고 하는 그런 것으로 이래 마귀란 놈이 착각을 시켜서 뒤비트렸기 때문에, 저 뒤비트린 것을 바로 뒤비트려서 ‘네가 하나님의 종을 좋아하되 그렇게 좋아하지 안하고, 좋아하되 이렇게 좋아하기 때문에 네가 마귀적으로 좋아한 것이기 때문에 그걸 고치라.’ 하는 그런 것을 지금 그이를 언제든지 내가 시간 있으면 만나 가지고서 거석할라고 그 성구를 빼 놨습니다. 내가 성구를 뽑아서 그 성구를 빼 놓고, 만나 가지고서 내 말로 해서 안 되겠고 성구를 가지고 ‘봐라, 네가 이렇게 내게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이렇게 멸망받는, 성경 말씀이 이래 놓지 안했느냐? 이러니까 그래 내가 너를 그라는 것이지 네가 참 이 성경에 요렇게 바울이 말한 거와 같이 요렇게 사랑하는 것이면 내가 너를 좋아하고 왔느냐 하고 또 위해서 기도도 하고 이래 하지마는 네가 음신에게 걸려 가지고 좋아하기 때문에 요렇게 멸망받는 것이니까 그래 내가 너를 만나 주지를 안하고 그런 것이다.’ 이래 마지막으로 말씀 가지고 한번 타이를라 하는데 타이르면 이게 돼야 될 터이니까 또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그거 때문에 기도를 많이 해야 돼요.
그러니까 기도의 제목이 생겨졌어. 생겨지니까 좋아요.
여러분들은 뭐 그런데, 우리 ○○○교회의 ○목사님은 나보다 복있는 것은 왜 그러느냐? 이렇게 수만 명을 모이도록 육월 이십구일로 딱 정해 놓으니까 그날 그 많은 사람들이 오면은 설교를 해 가지고 은혜를 끼쳐야 될 터이니까 은혜를 못 끼치고 만일 그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면 어찌 되느냐? 이러니까 이십구일날 설교 준비하는 것이 백 목사 설교 준비하는 거 몇십 배 힘을 들일 거라 말이오.
안 그렇습니까? 힘을 들이고 막 기도할 것 아닙니까? 우리가 기도 안 하면 안 되는 그런 다급한 그 환경을 만나는 게 좋습니다. 그런 분은 역부로 만들어 가지고 만났다 말이오.
이러니까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지금 뭐 6 5 같은 사변이 와 가지고 더글거리니까 마구 여기 그때 여기 초량교회에서 그 피난 온 목사들이 거기 전부 모여 가지고서 뭐 나흘 동안 기도했다던가 막 그라며 나중에 막 통곡이 나오고 이라니까 그 회개하는 그날 후퇴해 버렸어. 그날 후퇴 명령 났어요.
보는 사람은 보지만 안 보는 사람은 ‘미군이 후퇴시켰다’ 미군이 후퇴시킨 게 아니라 목사들이 회개하니까, 목사 장로들이 회개 하니까 후퇴를 시켰다 그말이오.
그때 급해 놓으니까 그런 기도 나오지 안해요? 회개가 나오지 안해요? 이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하니까 환난이 올수록이 좋습니다. 환난이 올수록 다급해 놓으니까 기도 더 하지, 다급해 놓으니까 주님밖에는 더 의지할 이가 없으니까 주님에게 부르짖지 이러니 좋다 말이오.
그래 나는 예수 믿어서 부자되는 거 좋지마는서도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이제 밥 먹을데 없이 망하도록 말이오. 그래 망하면은, 하나님이 사랑인 줄 아니까. 좀 망해서 이제는 딱 오르라져, 요렇츰 막 이래 가지고 막 대가락 같은 게 이거 딱 오그라져 딱 오그라붙고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거, 그게 하나님 앞에 옳게 되는 거라. 오그라붙고 또 꼼짝 못하고 하나님 앞에 ‘주여, 어짜든지 죽여 주시고 살려 주시고 주님이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렇게 뭐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게 만들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만 전적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그 사람이 되면 된다 그거요.
이런데 우리 그 ○집사가 지금 병원에 가 가지고서 뭐 요건 죽겠다 하는데 그거 내가 어제 소문을 들으니까 어찌 됐는지 모르겠어. 소문을 들으니까 이제 저게 더 막 개글개글개글개글거리고 죽을 지경이니까 ‘주여주여 주여주여주여! 이제 내가 죄를 자복합니다.’ 막 이럴 수 있는 참 아주, 뭐꼬? 용광로가 몇 도입니까? 용광로가 몇 도인지 아요, 누가? 쇠 녹히는 용광로? 이거 과학자가 없으니까 모르는구만. 용광로만침 그만침 뜨거운 데 들어가서 막 죽을 지경이라 뭐 예의도 체면도 이것도 아무것도 없고 ‘주여, 내가 이 죄도 자복합니다. 이것도 자복합니다.’ 뭐, ‘그냥 네가 속으로 회개하면 안 돼. 겉으머리로 회개해야 돼’ 하면은 막 이것도 ‘내가 죄 지었습니다. 죄 지었습니다.' 막 속에 토해 나올 수 있는 요런 아주 열도가 높은 도깡 안에 집어 넣어 가지고서 이제 회개가 돼져야 될 거라 말이오.
그런데, 말 들으니까 내가 물으니까 ‘얼굴이 좀 환하게 좋아졌읍디다.’ 그런데 지금 좋아진 걸 내가 그거 지금 또 물을라 합니다. 묻는 것은 뭐이냐 하면 그게 회개를 해서 좋아졌는지 그만 하나님께서 지금 항복시키는 것이 그만 끝이 나고 그만 ‘요번에는 요만치만 항복하고 말아라, 그만.’ 항복시키고 요다음에 항복을 미뤘는지 아주 항복할 거 다 했는지, 저기 ○○○집사 어째? 다 한상발라요? 다 안 했어? 다 안 한 것. 봐, 안다 말이오. 저거 엄마라. 저 ○○○집사가 저거 엄마라. 다 했는가 다 안 했는가 그거 안다 말이오. 이제 한목 다 하면 죽을 터이니까, 이 늑막염에 고름을 뺄때 한목 다 빼면 죽어요. 그러니까 조금 빼고 난 다음에 좀 있다가 또 조금 빼고 그래야 살리지 한목 다 빼면 그만, 고름 다 빼면 대번 완전 치료될 줄 알지만 죽어 버리요. 다 한지 안 한 거 알아. 척 보면 알아. 그러면 하나님이 아직까지 조금 덜 하는 모양이라. 먼저보다 요번에 좀 더 도수가 높았지. 인제 저걸 사람 만들어 쓸라 하면은 또 요다음에 또 도수가 더 높으게 또 할 것이라. 이러니까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몇 번이든지 징계해 가지고서 고치도록까지 하십니다.
요번에 또 누가 말하기를 ‘그 사람을 그때 비서로 있을 때에 교역자로 보낼라 했으니까 지금 그거 그만 교역자로 보내면 안 되겠습니까? 어데 목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저거 친구가 나한테 와서 말하는 사람 있어.
그때 교역자로 나가라 그 말은 교역자 나가면 나가 봐야 나간 거나 안 나간 거나 한가지라. 나가 봐도 며칠 있으면 쫓겨 들어올 거, 이거 한가지라. 이러니까 그놈이 알고서 안 나갈라 해요. 안 나갈라 해서 그라면 하지 마라 이라고 말았는데. 하나님이 지금 고치는 판에 있어. 고치는 판에. 이러니까 몇 번 고쳐 가지고서 그래 사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 이렇게 어려움 닥치는 거, 사랑하는 자에게는 어려움 닥치는 그것이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까? 이래도 말로는 좋은 거라 하지마는 ‘주여 내게 어떤 어려움이라도 좋으니까 어째든지 내가 죽기 전에 완전한 사람만 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을 다 입어서 온전한 사람만 되게 해 주옵소서. 뭐 어떤 수치 뭐 어떤 환난, 어떤 경제 환난, 어떤 신체 환난, 어떤 명예 환난 뭣이 와도 나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그런 용광로에다가 나를 넣어놓고서 녹혀서 죽기 전에 온전한 사람 만들어 주옵소서.’ 하는 이 소원을 진정 가지는지 몰라.
그거 올까 겁이 나 가지고서, 그거 원하거든 손 들라 하면 아마 손 못 들 거라.
아이구 손 들면 그거 와 놓으면 어찌 되노 싶어서, 오면 안 되겠다 싶어 겁이 나는 사람, 겁이 나고 안 오는 걸 좋아하는 사람 손 들지 말고 ‘뭐 용광로에 어떻게 하든지 죽기 전에 온전한 사람 한번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 뜨거운 용광로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정말로 원하는 사람. 봐, 많이 못 들어.
많이 못 드는 거 정직해요. 그 들면 오면 어짤라고? 그래도 안 들어도 하나님이 시키요. 나중에 차차 차차, 하나님의 이 사랑을 좀 알라 그말이오. 이미 지나가는 이 세상인데 이 세상에서 영원 무궁에 완전한 사람을 만든다 말이오. 그게 뭐이냐 하면은 여기 그거야. 요 말씀에 요거 내일 아침에 계속해서 말씀해 주실 것인데,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 뭐이냐? 예비하신 구원이 뭐이라요? 예비하신 구원이 뭐인지 그거 좀 여러분들 가서 주석 찾아 가지고 좀 가 보라고. 말세에 나타내시기로 예비하신 구원. 그 구원이 뭐입니까? 그 구원이, 또 오늘 있다가 죽을 사람 있을지 모르니까 지금 말해 주겠습니다, 간단하게.
예비한 구원은 무슨 구원이냐? 예비한 구원이니까 이미 예비돼 가지고 있는 구원입니까 안 돼 가지고 있는 구원입니까? 다 만들어 가지고 있는 구원이야.
만들어 있는데 뭐라? 사죄 칭의 화친이라.
사죄에 연결돼서 완전히 죄 없는 사람이 완전히 돼 버려.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행해서 완전 의인이 완전 돼 버려. 하나님과 완전 친교된 사람이 돼 버려. 완전히 이 사람이 돼 버려. 그러니까 지금은 공로를 바라보고 믿지마는 이것이 이제 완전히 연결이 돼 버린다 말이오. 완전히, 실상으로 연결이.
실상으로 연결이 될라고 하면 뭣이 필요합니까? 연결을 시켜 놓고 연결됐나 안 됐나 보는 그것이 뭐이라? 시험해 보는 거라. 그래 가지고서 연결이 될라 하니까, 연결이 될라 하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이 좋은 분위기 좋은 세상 것이 아주 구비해서 좋은 게 있는데 세상 것 좋은 것 있으면 여게 연결할라 합니까 안 할라 합니까? 안 할라 해.
아마 노아 홍수 때에 그때 홍수에 사람들이 다 물에 빠져 죽는데 그때에 홍수에 빠져 죽는데 노아 홍수에 노아가 배 타고 있지 안해요? 배 타고 있는데 저 산만당에도 다 물 속에 들어가고 지금 산만당이 조그매 남아서 산만당 위에 한 백 명쯤 남았을 때에, 다 죽고 백 명쯤 남았을 때 그때에 노아의 배가 거게 가면은 배에 들어올까요 안 들어올까요? 안 들어온다 할까요 막 배에 들어와서 살려달라고 그렇게 할까요? 어떻겠소? 노아 배에 들어오겠어 안 들어오겠어? 이거 못 느껴? 노아 배에 들어 올라하겠소 조롱하면서 피해 달아나겠소? 들어올라 하지. 환경이 그래 놓으니까 들어올라 하지 저 살 곳이 많으면 안 들어와요.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세상에 있을 곳이 없어, 돈 의지하면 돈 의지 돈 그놈을 딱, 명예 의지하면 명예 그놈을, 자기 뭐 지혜 총명을 의지하면 지혜 총명을, 언변 의지하면 언변을, 이래 가지고서 ‘하나님 아니면 안 된다’ 막 하나님에게만 달라붙을 수 있도록 요렇게 환경을 만드는데, 대번 만들면 죽어. 대번 만들면 죽으니까 여러 차례 만들어 가지고 이제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고 사람으로 만들어져 놓으면은 하나님의 모든 것이 제것이라. 하나님의 모든 것이 제것이라. 요 연단을 받아 가지고서, 연단은 뭐입니까? 잡것이 타고 정금만 남는 게 연단 아니요?
금은 그래도 금은 정금만 남는데 정금도, 금도 되게 구으면 타 버립니다. 처음에는 잡철이 타고 금만 이십사금만 남지마는서도 이십사금도 되게 구으면 타 버려요.
“불에 타서 없어질 금보다 더 보배라” 이제, 우리 믿음은 그것보다도 더 태우고 태워서 이제는 아무래도 타지 안할 수 있는 영원히 어떤 것이 와도 없어지지 안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전지 전능 이 완전으로서만 우리가 되어지는 것이 요것이 우리의 구원이라.
뭐 시간이 없었으니까 거뜬거뜬 뛰니까 모를 거라. 그저, 아는 사람은 알 거라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