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0 13:47
예비 심판
1980. 2. 1. 금새
본문: 요한복음 9: 39- 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심판하러 오셨다 말씀을 하신 이 심판은 내가 세상을 심판하지 아니하고 구원하러 왔다 하는 그 심판과 다른 심판입니다. 거기 심판은 종말 심판.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심판 사심판 그 심판을 가리켜서 내가 이 심판하러 오지 안 했다 말씀한 것입니다. 이것은 심판해서 멸망시키는 종말 심판 그것을 말씀했고 여기에 심판하러 오셨다 하는 이 심판은 그리스도의 심판 믿는 사람들에게만 한한 그 사심판, 심판은, 종말 심판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불신자 심판이요 하나는 신자들 심판입니다. 그 심판에서 정죄 받은 것은 영원히 멸망합니다.
그러나 여게 내가 세상을 심판하러 오셨다 하는 이 심판은 그리스도 심판 곧 기독자들에게만 있는 이 사심판 공심판이 아니고 이 사심판 이 심판을 예비하는 예비 심판으로 오셨다 하는 말입니다. 준비 심판 그리스도의 심판을 준비하기 위해서 온 심판이라 그리스도 심판에 걸리지 아니하도록 예비시키기 위해서 오셨다 하는 말씀입니다.
마치 요새 뭐 입학 시험 많이 말하는데 학교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는 그 시험은 입학 시험이요 이 시험에 무난히 통과해서 입학하도록 하기 위해서 가정교사를 두고 또 학교에서 예비 시험을 많이 치릅니다. 시험 치뤄서 거기에 합격이 되면 마지막 입학 시험에 무난히 합격이 될 것이고 입학 시험 때에 낙제될 미리 낙제가 되도록 해서 잘못된 걸 고치기 위한 그것이 예비 시험이라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게는 예비심판이라 예비심판은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심판하러 왔다.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울어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고 잘못된 것을 아무리 그때는 강하게 느껴봤자 후회해 봤자 소용없는 그 때가 오기 전에 미리 잘못된 것을 예수님께서 알려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멸망을 받는 그런 요소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다 믿는 자에게 한해서 택한 자에게 한해서 말씀하시지 불택자에게는 이 성경에 기록한 관련을 가지지 않습니다.
불택자에게는 일반적 하나님으로 관련을 가지시고 또 장차 불심판에서 심판해서 영원한 멸망을 멸망으로 보응시키는 이 일을 하시지 세상에 있는 동안에 없어지지 아니할 이 구원을 주시는 역사는 하지 않습니다. 없어지지 아니할 구원 멸망하지 아니할 구원을 주시는 이 구원 역사는 택한 자들에게 한해서만 있는 것입니다.
여기 심판을 하셨다 하는 것은 택한 자들에게 마지막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 잘못된 것을 깨닫고 느끼고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는 이 심판이 오기 전 미리 예비 심판에서 각자들이 깨닫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심판하려 오셨다 잘못된 것을 알려서 마지막 심판에 걸리지 아니하도록 심판에 정죄 받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다 하는 말씀입니다. .
어제 아침에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할 일 두 가지를 말했지요 하나는 자기가 이미 받은 바의 은혜 이미 받아 가지고 있는 은혜 이것을 생각하면서 자기가 늘 감사해야 되고 이미 받아 가지고 있는 은혜를 먼저 감사해보고 이 은혜를 생각해야 우리에게서 생명의 역사가 역사 할 수가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자기가 이 감사에 대해서 자기가 현재에 하나하나 은혜를 받아서 이루어진 여기에 대해서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미 받아 가지고 있는 지나간 은혜에 대해서 우리가 늘 감사해야 되고 또 현재에 자기가 받는 은혜에 대해서 감사를 해야 되고 이것이 합해서 하나, 그 다음에는 자기의 잘못된 이것을 자기가 우리가 찾아서 주님 앞에 자복 하는 이 일을 용서를 구하는 이것을 우리가 해야하고 또 자기가 현재에 잘못된 것 앞으로 미래에 잘못될 모든 소원 소욕 경영 이런 것을 또 주님 앞에 고쳐 주기를 이렇게 간구 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이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가 당장 할 일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전체 면으로 말하면 감사를 먼저 해야 하고 당장 현재에 당한 일은 잘못된 것을 찾는 것이 이것이 지혜입니다. . 그러면 감사 곧 그 다음에 잘못된 것을 생각하는 요것이 그 다음에 있고 그 다음에 감사가 있고 감사 속에 그 과거에 기본 감사 그 현재 감사 모두의 잘못된 것이 있고 죄에 대한 것이 있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있는 것이 이것이 자복입니다.
그러면 감사 자복, 감사 자복 자기가 생애에 언제든지 결론에는 잘못된 그것을 찾아 가지고 '나는 무익한 종이라' 하는 요것이 우리의 생애입니다. 그러면 잘못된 것을 찾아서 우리가 자복할 것과 감사할 것 요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입니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 그것은 넘어집니다. 그것은 실패한다 말이요.
자기가 무엇을 하리라고 날뛰는 '내가 이만치 뭐이 됐으니 자신 있다' 하는 그 사람은 벌써 그것은 옛사람입니다. 새사람이 아닙니다. 뭐 내가 이만치 실력이 있으니까 이런 것 할 수 있지 않느냐? 그것은 벌써 옛사람으로 바꿔 졌는데 그 사람의 심령이 어두워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주님이 이 일을 해주시지 아니하시면 안 되는 요것을 자기가 분명히 깨닫고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이 일을 주님이 나에게 해주시는데 대해서 내가 거리끼는 무엇이 있지 않나 주님이 나에게 해 주실 수 없는 무슨 거리낌이 있지 않나 요것을 찾는 것이 겸손입니다.
요것을 찾지 아니하고 요것을 주님이 해 주셔야 되지 주님이 안 해 주시면 안 된다고 요렇게 바로 깨달았다 할 찌라도 주님이 해주시고자 하시지마는 주님이 이 은혜를 나에게 주실 수 없는 이 은혜를 받으면 내가 도리어 이 은혜가 구원이 되지 아니하고 교만해서 도리어 멸망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그런 무슨 은혜 받는 데 거리끼는 요소가 나에게 있지 않는가 하는 그 면을 찾아 가지고 고치려고 하는 것이 없으면 그 사람은 벌써 옛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자라가 가지고 왕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라가지고 왕이 되어서 마지막에 보면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서 주의 이름과 주의 복음주의 구원까지 팔아 가지고 자기를 위한 이 왕국을 만드는 이런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면에 주의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일반적으로는 어짜든지 자기에게 잘못된 점 이 점을 찾는 것이 우선 자기에게 시원하게 됩니다. 시원하게 갇혀 있든 자가, 갇혀 있던 자가 해방되면 얼마나 시원하겠소.
아마 ○○○이가 장로라 하는데 ○○○이가 사형이 무기징역으로 되었으니까 마음이 대단히 가벼울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장로랍니다. 신자라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흠 없는 회개만 하면 생명이 남아 있으면 그에게는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갇혀 있든 사람들이 얼마나 놓이면 기쁘겠소 지금 여섯 사람이 사형을 받고 있는데 다섯 사람이 사형을 받고 있는데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그 사람들을 누가 와 가지고서 면제해 보십시오 그것을 그곳에서 해방시켜서 면제해 준다고 해 보십시오 얼마나 그 분들이 기뻐할까? 그래봐야 이미 죽을 죽음 잠깐 좀 더디게 죽는 것뿐이지 아주 면제하는 것 아닌데, 기뻐하는 그런 기쁨이 우리에게 넘쳐야 합니다.
우리에게 사망을 면해주신 것은 그보다 더 큰 것은 없어 영원한 사망을 면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느낌은 심히 빈약합니다. 그러기에 이 느낌이 그 실감을 가지도록 실지의 느낌을 가져 자기의 모든 것을 주를 향하여 다 기울여 주를 사랑하고 주께 순종하고 주를 위해 살고도 마음에 주님은 무한하신 분이고 자기는 유한한 것이 무한을 이렇게 서로 상대하게 되었으니 그기에 대해서 부족함을 측량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인데 여기에 대한 실감이 없어서 이 구속의 은혜에 대해서 예사롭게 생각하는 것이 주의 피를 범한다 그렇게 성경에 말했습니다.
그것보다도 오히려 이 구속 이것을 참 살 말을 얻는다고 오히려 이 구속 이것까지 자기를 위해서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그것은 참 말로 할 수 없는 굉장한 망령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심판하려 오셨다는 요것을 기억하고 그 다음에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지 못하든 자들은 보게 하고" 이 말씀은 쉽게 말하면 성경에 있는 대로는 부인하는 자는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참 것을 주시고 하는 그런 말입니다.
자기의 주관, 자율, 인본, 쉽게 말하면 한말로 말하면 모든 피조물로 근본 삼아서 아는 것 생각하는 것 아는 것 생각하는 것 판단하는 것 또 소원하는 것 경영하는 것 이런 것이 다 헛된 줄로 아는 사람 헛된 줄로 아는 사람 잘못된 줄로 아는 사람, 왜? 천하 인류가 다 뚤뚤 뭉치고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뚤뚤 뭉쳐서 다 한 덩어리가 되어서 무엇을 경영하고 소원하고 또 통계 맞추어서 판단하고 비판하고 평가한다 할지라도 창조주 주재 주권자 이분을 빼놓고 계산했기 때문에 그 계산은 다 틀린 것입니다. 마지막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제 타락한 세상 타락한 인류의 지식도 지혜도 소원도 느낌도 목적도 방편도 전체가 틀렸습니다. 맞는 것 같은 것도 틀렸소. 왜? 제일 거기에 근본 되신 분이 하나님이신 데 하나님 빼놓아서 본 지위에서 타락했는데 멸망을 받게 되었는데 하나님 빼놓고 타락한 그것들이 저거끼리 암만 뭉쳐서 움직여 봤자 다 못 보는 것이라 말이요 못 본다 그 말은 마음의 눈을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 알았다 그 말이요 보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 그 지혜는 옳은 지혜가 아니라 다 삐뚤어진 지혜라 바른 지혜가 없다 그 말입니다.
조물주를 빼놓았기 때문에, 조물주와 관계를 가지지 안 했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자는 이렇게 부인하는 자는 천하 인간의 지식을 다 뭉쳐도 이것은 정확치를 못하다 이대로 알아서는 바로 안 것이 아니다. 인간의 가진 지식 타락한 모든 사람들이 가진 지혜라 소원이라 소원 이것도 바르지 못하다. 이것도 틀렸다 피조물만으로 되어진 이 모든 것을 다 잘못된 것을 틀린 것을 삐뚤어진 것을 인정해서 이것으로서는 인정치 않는 자 보지 못하는 자 인정하지 안 하는 자 이런 자들에게는 참 인정할 수 있는 것을 주기 위해서 참 바로 아는 것을 주기 위해서 참 바로 보는 것을 주기 위해서 바른 소원을 주기 위해서 왔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부인하지 안 하면 세상을 부인하지 안 하면 전 피조물을 부인하지 안 하면 아 피조물을 아주 부인한다고 없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요 피조물 그것으로서는 온전이 아니라 그 말이요. 그것 만으로서는 사망을 벗어날 수 없다 말입니다.
그러기에 과학이 그대로의 맞지요 이것도 안 맞느냐? 그대로야 맞지요. 맞지마는 그 과학자가 그 과학과 조물주와의 관련을 모르면 그가 안 것은 전부가 잘못 안 것이요 잘못 가졌습니다. 조물주와의 이 관계를 바로 알아 이것을 영원 전 엿새 동안에 만드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분의 위대하심과 권위를 부인하고 이것을 없는 가운데 만들어 놓으신 그것의 백 분의 일 천분지 일도 안 되는 그것을 발견한 이 인물들은 위대하게 생각하고 이분은 부인했다.
내가 이것 발견했으니 이것하면 됐다 이분을 부인했다 이것을 제가 깨달으면 자기의 자세가 바로 될 것이고 이걸 뭐 때문에 내놓았으며 이것을 내가 어떻게 활용을 하느냐? 어떻게 쓰느냐? 주님이 만드신 것이니 만드신 목적이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이용하면 되고 이것을 어떻게 이용하면 어떻게 활용을 하면은 죄가 되느냐? 이것을 깨달아서 거기에 비추어야 할 것이라 말이요
이러니까 나는 그 사람 보지 못했지마는 관동에 그 원자탄을 던져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지금도 그 때에 상한 사람들이 원자 그 세포들이 상한 사람들이 지금도 많이 일어나서 그 사람들의 손해배상을 지금 청구하는 그런 시비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데 그것을 그 때에 미국나라에 먼저 발표해서 알린 그 사람이 내가 이렇게 이것을 발명해 가지고서 조물주가 쓰게 하는데 쓰지 못하고 달리 내가 악용을 했다 그 일을 회개하면서 뭐 내가 똑똑히는 모르지마는 간접으로 들으니까 그 사람이 삼 년 동안 근신했다 그 말을 들었습니다. 삼 년 동안 근신해 가지고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 믿는 사람이면은 그것을 사유함을 받아서 그것이 하나님의 노는 감해지지마는 그것이 상급이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나도 하나님을 빼놓은 그 지식은 바로 된 것이 아닌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자는 보게 하기 위하여 왔다" 이것부터 먼저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을 떼 놓은 모든 것을 부인하고 어데든지 작은 일도 거기에 하나님과 관련을 끊고는 부인한다 말이요 부인한다 그 말이요. '부인하는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과의 관련을 가진 올바른 것을 내가 주기 위해서 왔다' 이것을 가르쳐서 "보지 못하는 자는 보게 하기 위하여 왔다 하는 말씀입니다." 본다 하는 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왔다.
이렇게 하나님 빼놓고 피조물 그대로의 것을 가지고 되었다고 알았다고 된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은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왔다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말아라 그렇게 보면 안 된다. 그렇게 보지 말아라 그것을 부인하기 위하여 왔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둘입니다. 모든 피조물만으로 온전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 피조물만으로는 이것이 다 불완전이기 때문에 이것은 멸망이다 이렇게 아는 사람에게는 완전한 것 멸망하지 아니하는 것을 주기 위하여 왔다 이것만으로 완전타고 하는 이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 말이요. 택자라도 믿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믿지 않는 사람이 너무도 많아. 이런 사람들은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왔다. 이렇게 안 것은 너희들이 잘못 안 것이니까 이것을 버리라 이렇게 아는 것 이렇게 소원하는 것 이렇게 비판하는 것 이렇게 평가하는 것 이렇게 경영하는 것 이것은 너희들이 부인해라 이것 하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기 있는 열심 있는 유대인 중에 열심 있는 바리새 교인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다가 이 말씀에게 거리꼈습니다. 이 말씀에 거리꼈소 거리꼈어. 우리도 지금 소경인가 말귀도 못 알아듣고 뒤 퉁수 같은 말을 합니다. 우리도 소경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사랑을 받을 때에 제 된 대로 받습니다. 안된 것은 받지 못하요. 저를 죽이는 이세벨, 아합 왕이 저를 죽이는 원수 중에 원수가 이세벨인데 이세벨이 제일 원수인데, 아합 왕은 원수 이세벨은 극히 사랑해서 흉함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의 말이라면 다 들었습니다. 그를 참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미가야를 통해서 미가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미가야의 사랑을 그가 부인하다가 멸망 받았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어리석소 저 웅양이라는 데 어떤 목사인데 그 목사가 박사랍니다.
박사목사인데 와 가지고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면서 인도하는 데에 은혜를 모두 많이 받았데요. 그랬는데 나를 가르쳐 말하면서 그 사람은 중생 된 영혼이 범죄하지 않는다고서 이렇게 말을 하면서 영인지 영혼인지 이것도 구별하지 안하고 그렇게 말하는데 그걸 구별하지 못하면 선 이하에 은혜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세상 것으로 내가 본다하는 이것 가지고 지금 보는 법을 자꾸 가르치는 것이요. 그러면 그것이 헛일됩니다. 네게 보지 못하는 자는 보게 하기 위하여 왔고 보는 자는 본다 하는 자는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 하신 이 말씀을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이 유대인 모양으로 열심히 주를 따라 다니지마는 우리도 소경인가 못 알아듣고 지금 뚱딴지같은 소리를 한다 말이요 그 심령에 대해서 지식과 지혜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인데 자기는 고깃덩어리의 눈 이걸 가지고 지금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도 예수님께서는 본다 하므로 죄가 그저 있다 너희들이 지금 뭐 아는 줄 알고 지금 된 줄 알고 그대로의 것으로 그대로의 것으로 멸망을 피할 줄 알고 그대로의 것으로 구원이 된 줄로 알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삐뚤어진 것이 그대로 있다 먼저 부인할 것을 찾아서 부인해라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는 우리가 그만 쉽게 말하면 우리를 구속하신 구속주와 관련이 없는 것 구속주로 인한 것이 아닌 구속주에게 결말이 지워지지 않는 구속주에게서 시발되지 아니한 것 구속주에게 마지막 찾아가서 결합이 되어지는 것 구속주로 인해서 구속주에게 결과를 맺는 요것이 아닌 것은 우리가 다 찾아서 요것을 부인해야 됩니다. 요것 잘못된 줄 알고 요것 고쳐야 되지 이것을 고치지 아니하면 자기의 모든 생애는 삐뚤어진 생애가 됩니다.
그러기에 지금은 예비심판이니까 예비심판에서 자기를 심사해 가지고 마지막 그리스도의 심판에 걸리지 안 하도록 이렇게 해야 되지 자기 잘된 것만 나타내 보일려고 이렇게 보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바로 된 것은 그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바로 되지 못한 그것을 찾아서 우리가 고치는 것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는 권찰회 없습니다.